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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도박처럼 인생 걸었다 …안재형♥자오즈민, 국경도 이념도 모두 뛰어넘은 '세기의 사랑' [꼬꼬무 찐리뷰]  도박처럼 인생 걸었다 …안재형♥자오즈민, 국경도 이념도 모두 뛰어넘은 '세기의 사랑</font>' 등록일2026.07.26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3일 방송된 '세기의 사랑-안재형♥자오즈민'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세븐틴 버논, B1A4 산들, 배우 김수진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첫눈에 반한 그녀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1984년.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가 열렸어. 이 대회에는 우리나라 대표팀이 출전했어. 그중 한 선수를 보여줄게. 이름은 안재형. 나이는 20살. 국가대표팀 막내야. 두 번째 국제 대회 출전이야. 얼마나 잘하고 싶었겠어. 게다가 재형이는 성실하기까지 해. 다른 선수의 경기를 분석하는 게 루틴일 정도야. 그날도 마찬가지였어. 두 눈을 부릅 뜨고 공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며 경기를 분석하고 있는데, 한 여자 선수의 검은 머리카락이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해. 일명 말총 머리, 요즘 말로 포니테일 스타일이지. 공을 쫓아 움직일 때마다 이 질끈 묶은 머리카락이 휙휙 흔들리는 거야. 바로 그때였어. 상대의 서브를 받아내려는 찰나, 이마 위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휙~ 쓸어 올리는데. 갑자기 탁구공이 튀는 소리, 심판이 점수를 외치는 소리, 관중들의 함성까지. 그 순간 만큼은 재형이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 분명히 수많은 사람이 있는 경기장 한 복판인데, 마치 세상에 그 여자 선수와 재형이 둘만 남은 것처럼 고요해졌어. 한 순간에 사랑에 빠진 거야. 당시의 이야기를 본인한테 직접 한번 들어 볼게. 안녕하세요 저는 83년도부터 88년 올림픽까지 국가대표 탁구 선수로 활동한 안재형입니다. 84년도 대회 때 제가 처음 봤을 때도 바로 눈에 띄고. 탁구를 잘하기도 했고, 미모도 좀 뛰어났고 하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고요. 그 당시 머리도 긴 생머리, 찰랑찰랑 머리. 그리고 탁구도 여성스럽게 치고, 하는 특이한 행동이 있어요. 머리가 기니까 자꾸 머리를 이렇게 올리는 행동들. 처음에는 너무 예뻐보였어요. -안재형(62),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너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 믿어?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 사람만 보이고, 그 장면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콕 박혀서 낮이고 밤이고 계속 떠오르는 그런 거 있잖아. 20살 재형이한텐 바로 지금이 그런 순간인 거야. 그럼 재형이가 첫 눈에 반한 그 사람은 누굴까? 재형이가 첫눈에 반한 그녀. 바로 이 선수야. 중국의 탁구 선수, 자오스민. 국내에서는 한자 그대로 '초지민'이라고 불리기도 했대. 그녀에 관한 당시 신문 기사를 보여줄게. 선수촌의 최고 미녀 선수는 누구일까? 탁구의 좌우즈민. 양옆으로 늘어뜨린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 얼굴도 예쁘지만 탁구 실력도 대단하다. 중공 국내에서 1, 2위를 다툰다. 말하자면 외모에 실력까지 갖춘 당대 최고의 스타 선수였던 거지. 그날 재형이와 함께 출전한 동료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안녕하세요.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 김기태입니다. (자오즈민 선수를) 다들 좋아했었어요. 누가 봐도 예뻐요. 근데 탁구도 잘 쳐요. 자오즈민 선수는 하늘에다가 공을 방~ 띄워서 하는 스카이 서브를 잘 넣었어요. 그리고 머리를 묶고 긴 게 하는데, 서브 넣고 탁 치면 머리 한 번씩 넘기고. 그럼 심쿵, 남자들이 봤을 때는 그럴 수 있잖아요. 근데 난 안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야. 그냥 '예쁘다'는 생각은 했지만, 다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뭐 누구한테나 워너비 아니겠어요. 근데 뭐 어떻게. 말이 안 통하니까. 그냥 먼발치에서만 봤죠. -김기택,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 여러 나라 선수들이 괜히 말 한마디 걸어 보려 그녀 주변을 서성여. 근데 지금 문제는 시간이야. 대회 기간은 단 9일. 국제 대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내년에 또 국가대표로 뽑힌다는 보장도 없어. 지금 말을 걸지 못하면 언제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 과연 재형이는 지민이에게 말을 걸었을까? 며칠이 흐르고, 경기를 마친 재형이가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는데 가까운 곳에 그녀가 보여. 수건을 얼굴을 닦고 있어. 바로 그 순간 재형의 머릿속에 '지금이 기회다'라는 생각이 스쳐. 재형이는 마치 근처에 볼 일이 있는 사람처럼,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 앞으로 걸어갔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근데 더 큰 문제가 있어. 바로 언어. 중국어로 뭐라고 말을 걸 것인가. 일단 아는 중국어라고는 짧은 인사말 '니하오' 뿐이야.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쿵쾅쿵쾅 재형이는 자기 심장 소리만 들려. 드디어 그녀 앞에 도착했어.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말을 했어. 니하오 라고. 그녀의 눈길이 재형이를 향해. 그리고 시크하게 니하오 한마디를 던져. 그것뿐이야. 즈민이 입장에서 어떻겠어. 경기장에서 인사하는 남자 선수가 한두 명이었겠냐고. 그 길로 그녀는 떠나버렸어. 일단 남자들이 다 하는 인사 정도까지 했어. 이제 재형이는 어떻게 했을까? 재형이는 즈민이를 처음 봤을 때 눈에 팍 박혔던 그 장면, 바로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확 쓸어 올리는 행동을 따라 했어. 즈민이는 재형이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 지금 뭐 하는 거지?' 이런 표정이야. 그날 이후 재형이는 그녀를 마주칠 때마다 머리를 쓸어 넘기고 씩 웃었어.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계속 그 행동을 했는데, 어느날. 즈민이가 처음으로 재형이를 보고 씩 웃어주는 거야. 자기도 스스로 본인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탁구 칠 때 자꾸 이런다고 흉내 내면, 웃고 그랬던 기억이 좀 있죠. 만날 때마다 즐거웠고 재미있었고, 그게 마치 운명처럼 저한테 다가왔어요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재형이 심장이 두근두근. 첫 눈에 만난 그녀가 나를 보고 웃어. 심지어 말도 안 통하는데 만날 때마다 너무 즐거워. 이게 바로 요즘 말로 '썸'이지. 고전적으로 '썸'의 시작은 전화번호 교환부터지. 근데 지금은 1984년이야. 휴대폰은 물론 SNS도 없던 시절이야. 결국 두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 건 편지 뿐이야. 두 사람은 '니하오'로 시작해서 '짜이젠'으로 끝나는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야 했어.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른 채 말이야. 단지 연락할 방법이 없고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문제가 아니야. 훨씬 더 높고 단단한 벽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거든. 지금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 줄여서 중국이라고 부르지. 근데 그때는 중공이라고 불렀어. 1984년 당시 대한민국과 중공은 수교조차 맺지 않은 사이야. 공식적인 교류는 극히 제한됐을 때지. 심지어 6.25 전쟁 땐 서로 총을 겨눴던 사이야. 그러니까 오갈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전화나 편지 한 통 보내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어. 쉽게 말해 그 시절 중공은 거의 북한만큼이나 멀고도 조심스러운 나라였던 거지.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한 채 반년의 시간이 흘렀어. ▲ 애틋하게 키워온 사랑 이듬해인 1985년. 스웨덴에서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막이 올라. 재형이는 다시 국가대표로 뽑혔어. '혹시 즈민이도 왔을까?' 당연히 생각이 스쳤지만, 곧바로 생각을 고쳐 먹었어. 지금은 무조건 탁구에 집중해야 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때 남자 대표팀 성적이 최악이었거든. 재형이 역시 마음이 무거워 고개를 떨구고 한참 앉아 있었어. 바로 그 순간! 니하오! 반년만에 즈민이가 눈앞에 나타난 거야. 그 순간 재형이는 너무 떨려서 숨이 멎는 것만 같았대. 방금 전까지 어두웠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환해져. 즈민아 보고 싶었어. 널 보니까 이상하게 웃음이 나 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입술만 그냥 달싹거려. 중국어를 모르니까 답답할 뿐이야. 그다음 대회에 오랜만에 몇 개월 걸려서 만나면 반갑잖아요. 반가워서 얼굴을 봐도 별다른 얘기는 할 수가 없고. 그래서 그 당시에 서로 소통하려고 저는 국어사전을 갖고 갔습니다.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아무리 손짓 발짓으로 표현을 한다 해도 한계가 있잖아. 그때 가져온 비장의 무기가 국어사전이야. 국어사전에는 단어 옆에 한자가 같이 적혀 있거든. 그날 재형이가 가장 먼저 물어본 건 나이야. 글로 써서 묻고 대답하며 필담으로 대화를 나눴어. 식사할 때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어요 마침. 그때 제가 몇 살이냐 물어보고 했는데 63년 몇월 며칠이라 하더라고요. 제가 나이를 속여서, 그냥 62년생이라 했어요. '내가 너보다 나이가 어려' 하기는 싫어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하긴 했는데.(웃음)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당시 즈민이의 나이는 23살. 재형이는 깜짝 놀랐어. 자기보다 누나였던 거야. 재형이 나이는 당시 21살이었거든. 원래 21살인 재형이는 24살이라고, 즈민이보다 한 살 많게 썼어. 즈민이는 그런 재형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형! 스매싱 손목 중요! 이런 말만 해. 그렇게 탁구에 대한 열정으로 스웨덴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 이제는 또 헤어져야 할 시간이야. 재형이는 용기를 냈어. 즈민, 네가 한국에 온다면 서울을 꼭 구경시켜주고 싶어 라고 말했어. 그런데 당시 중공 선수인 즈민이가 한국에 오는 게 쉬운 일이었을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하늘이 돕기라도 한 걸까? 두 달 뒤, 서울에서 국제 탁구 대회가 열려. 소식을 들은 재형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해. 즈민이가 한국에 올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즈민이는 오지 못했어. 선수층이 너무 두꺼워서 대회마다 출전 선수가 다를 수 있거든. 재형이는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어. 즈민이한테 이 마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기를 모두 마치고 우승을 차지한 중국 선수를 보고 있자니 문득, 재형이 머릿속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바로 중국 선수를 통해 편지를 전하는 거야. 근데 흔쾌히 그 선수가 재형이의 부탁을 들어줬어. 이념과 언어는 달라도, 사랑만큼은 만국 공통의 정서가 있지 않았을까. 그럼 재형이는 즈민이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을까? 3달 후 호주에서 열린 탁구 대회가 끝날 무렵, 어떤 중국 선수가 재형이를 찾아왔어. 그리고 그 선수의 손에는 즈민이가 보낸 선물과 편지가 들려 있었어. 그런데 재형이는 편지를 여는 순간, 그냥 굳어버렸어.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거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때부터야. 재형이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기 시작했어. 당시 숙소생활을 같이한 김기택 선수는, 그 소리가 그렇게 징그러웠대. 정말 징그러워 죽겠는게, 테이프에 계속 중국어를 틀어놓는 거예요. '쟤 왜 저러지?' 화장실 가면 꺼놓고 가도 되잖아요. 안 듣는데 그걸 왜 틀어놔? 안 듣는데도 틀어놔. 복도에 가면서도 안 끄고, 샤워하러 들어가서도 안 꺼요. 재형이는 테이프를 안 껐던 걸로 알고 있어요. -김기택,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 회화 테이프에 이어, 당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등려군의 노래 '첨밀밀'도 수시로 들었어. 옆에서 재형이의 그런 모습을 지켜 본 동료들은 한 마음으로 응원했어. 재형이는 한마디라도 더 해야 했으니까. 얼마나 열심히 했겠어요. 우리가 상상도 못 하겠죠. 근데 그거 갖고 '야 테이프 꺼!'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는. -김기택,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 재형이는 중국어 뿐만 아니라, 탁구 연습에도 매진했어. 탁구를 잘해야 국가대표로 뽑혀 국제 대회에 나갈 수 있으니까. 그 무렵 재형이가 쓴 글이 있어. 그녀가 출전한 대회에 내가 가지 못해 만날 기회를 놓치고 나니,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나 또한 왜 보고싶지 않았겠는가. 내 탁구가 강해져야 한다. 실력을 늘려야 한다. 세계 탁구가 평가하는 선수가 되자. 즈민이를 만날 방법은 하나야.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거. 내 탁구가 강해져야 해. 제일 먼저 나와 훈련을 하고, 밤에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공을 쳤어. 즈민이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재형이를 독하게 만들었어. 그 당시에 제일 열심히 했습니다. 지치더라도 한 번 더 하고, 자기 노력이 대단했죠. -강문수, 전 탁구 국가대표 코치 그리고 마침내, 86아시안게임에 출전할 탁구 국가대표 5인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어. 즈민이도 국가대표로 선발이 됐어. 1986년 9월 20일, 아시안게임의 막이 오르고 두 사람이 드디어 한국, 서울에서 만나게 됐어. ▲ 1986 최고의 명승부 뜨거웠던 86아시안게임. 그 수많은 경기 중에서 훗날 한국 스포츠사에 한 획을 그었던 경기가 있어. 그게 바로, 남자 탁구 단체 결승전이야.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혀. 그 경기의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안재형이야. 그가 마주한 상대는 세계 최강 중공(중국)이야. 그때의 중국은 세계 랭킹 1위죠. 중국은 신 같은 존재였죠. 선수들이. -강문수, 전 탁구 국가대표 코치 중공 선수들이 그 당시에 '국가대표 되는 게 곧 세계 대표' 할 정도로 강했어요. 사자성어로 첩첩산중 이런 얘기 있잖아요. 중국 탁구에 빗대서 하는 말 같아요. 16강에서 이겼는데 또 8강에 있어, 8강에서 이겼는데 4강에 또 있어. 중공 탁구 인구와 대한민국 국민 인구가 똑같았다고 하니까. 그 정도로 중국 선수 인원도 워낙 많았고 세계랭킹 10위 안에 중국 선수들이 다 있으니까, 말 다 한거죠. -김기택,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 그래서 붙은 별명이 '중공장성'. 마치 만리장성처럼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중국 선수들의 높은 벽을 뜻해. 당시 단체전은 9단식 5선승제였어. 아홉 게임 중 다섯 번을 먼저 이기는 쪽이 승리하는 거야. 근데 당시 중공 라인업이 역대 최강이었어. 당시 최고의 수비수로 꼽혔던 첸신화를 필두로, 전광석화 같은 공격의 달인 후이준, 세계랭킹 1위 중국 탁구의 상징인 장지아량까지. 벽 뒤에 또 다른 벽이 서 있는 기분이야. 1986년 9월 24일. 경기 당일이야. 5천 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모두 손을 모아. 1게임, 안재형과 첸신화의 게임이 시작됐어. 시작부터 중국의 압박이 장난이 아니야. 하지만 재형이 역시 끈질긴 수비로 막아내며 버티고 또 버텼어. 그 결과, 재형이가 이겼어. 그리고 2게임도 한국이 이겨. 하지만 3게임은 중국이 이겼어. 다시 4게임은 한국이 이기고, 승부는 엎치락뒤치락 해. 현재까지 3승 1패로 한국이 앞서가. 5게임은 다시 재형이 차례야. 상대는 세계랭킹 1위 장지아량. 빠르고 섬세한 플레이로 상대를 숨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선수야. 그런데, 시합이 진행될수록 중국팀이 술렁거려. 5게임 결과, 재형이가 또 이겼어! 대이변이 벌어진 거야. 이제 단 1게임만 이기면 돼. 체육관의 열기는 뜨거워. 이제 금메달까지 한 게임만 이기면 돼. 근데 쉽게 무너질 중국이 아니야. 6, 7, 8게임을 모두 중국에 내줬어. 8게임까지 게임 스코어는 4대 4, 동점이야. 이제 아홉번째 게임 결과에 따라 승부가 달라져. 마지막 9게임은 안재형과 후이준의 대결이야. 단 3세트의 승부. 첫 랠리부터 재형이의 득점이야. 시작이 좋아. 하지만 악착같이 후이준이 따라와. 그렇게 4번의 듀스를 주고받은 끝에, 재형이가 첫 세트를 따냈어. 그런데 두번째 세트에서 흐름이 넘어가고, 후이준이 이겼어. 이제 마지막 3세트. 모두가 숨죽이고 경기를 지켜봤어. 그 결과. 재형이가 해냈어! 재형이가 마지막 3세트를 따내며, 최종 승리는 대한민국이 차지했어. 모두가 뛰어나와 얼싸안고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했어. 첫 번째, 두 번째, 마지막 9단식이 또 마침 저였어요. 거기서 제가 세 경기를 다 이겼어요.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1986년 22살의 재형이는 누구도 뚫지 못할 거라는 중공장성, 거대한 벽을 2.5g짜리 작은 공으로 무너뜨렸어. 그리고 그날은 '안재형'이란 이름 세 글자가 세계 무대에 또렷하게 새겨진 순간이었어. ▲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재형이는 금메달을 딴 순간, 즈민이를 떠올렸어. 즈민이는 이번 대회에서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어.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찬란했던 그 순간, 두 사람이 다시 만났어.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어. 아주 유창하진 않아도, 두 사람은 중국어로 대화를 주고 받아. 그리고 재형이는 한국 탁구의 저력을 알리는 선수가 됐고, 즈민이는 중국 탁구의 간판 스타로 빛나고 있었어. 하지만 이 찬란한 순간에도, 곧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헤어지기 전 재형이는 즈민이에게 한국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건넸어. 즈민이가 지나가는 말로 너네 트레이닝복 예쁘다 라고 했던 말을 놓치지 않을 거야. 근데 이 트레이닝복 하나가 훗날 두 사람에게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이때는 몰랐어. 1986년 그해 가을, 두 사람은 그렇게 작별 인사를 나눴어. 즈민이가 재형, 안녕! 다음에 또 보자! 라는 인사를 건네자, 재형이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 평소 같으면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을텐데, 그날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갑자기 거기서 막 그런 게 어떤 용기,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그때부터였거든요. 네… 좋아했던 거 같아요. 대회 때만 볼 수 밖에 없고, 대회가 끝나도 언제 볼지 모르고 헤어져야 하는 기약 없이 그런 상황들이 너무 힘들었죠. 둘이서 대회가 끝나는 날이면 그냥, 마지막에 헤어질 때는 막 많이 울기도 하고 그랬었어요. 헤어지고 돌아서는데 그때 그 노래가 그렇게 생각나는 거예요. 사랑이 저만치 가네/나 홀로 남겨 놓고서/사랑이 떠나간다네/이 밤이 다 지나가면/다시는 볼 수 없음에/가슴은 찢어지는데... 그 노래가 헤어질 때 너무 생각나는 거예요.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스물둘의 재형이가 2년 만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 순간. 즈민이와 헤어질 때 머리 속에 떠오른 노래. 가수 김종찬의 '사랑이 저만치 가네'라는 노래야. 40년 전 20대의 재형이가 직접 노래를 불러 녹음해 즈민이에게 보냈던 음성 테이프도 있어. 나는 죽어도 널 잊지는 못할 거야.. 생각은 했지만, 재형이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는 거야. 재형이의 눈에 비친 즈민이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애써 꿈 참고 있었거든. 두 사람은 아마 알고 있었을 거야. 그 다음이 언제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어느새 좋아하는 마음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깊어지고 있었어. 그럼 이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재영이는 그날 결심했어. 즈민이에게 이 마음을 고백하기로. 그렇게 작별하고 재형이가 돌아오자마자 향한 곳은 바로 명동에 있는 한 중국집이야. 왜 갑자기 중국집일까? 명동에 중국집들 많이 있었거든요. 그중의 하나 제가 골라서 짜장면 하나 시켜놓고…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주방에서 중국어가 들려오는 순간 재형이의 귀가 쫑긋 서. 재형이가 여기 왜 왔는지 감 잡았어? 계산대에서 재형이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어. 그리고 중국어로 번역해줄 수 있는지 물었어. 편지로 즈민이에게 고백하려는 거야. 근데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니, 당시 한국어와 중국어가 모두 가능한 중국집 사장님에게 번역을 부탁한 거야. 재형이의 고백 편지 내용이야. 보고싶은 즈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라 했다. 서로 말도 다르고, 자주 만나지도 못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당신을 알고부터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임을. 그렇게 번역된 편지가 이거야.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나를 잊지 말아요. 나도 당신을 잊지 않을 게요. 고백 편지를 받은 즈민이가 재형이에게 사진을 보내왔어. 즈민이가 숙소에서 찍은 사진이야. 자세히 보면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 속 남자가 바로 재형이야. 말로 하지 않아도 이 사진 한 장으로 즈민이의 마음이 충분히 전달됐어. 1986년 가을,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됐어. 그리고 큰 문제의 시작이기도 했어. ▲ 시대의 벽 아버님은 조금 냉철하게, 선수로서의 해야 할 상황 이런 것도 걱정하시고. 사회주의 국가, 공산주의 국가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을…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절대 넘기 힘든 현실의 벽. 위기는 한꺼번에 몰려왔어. 1987년 1월, 생각지도 못한 큰 사건이 하나 터져. 일본의 한 신문사가 두 사람의 열애설을 보도한 거야. 태극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중공 여자 탁구의 에이스 자오즈민. 이 선수가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은 작년 서울아시안게임 폐막 직후 안 선수가 정표로 선물했던 것. 아시안게임 끝나고 즈민이가 예쁘다고 해서 재형이가 벗어준 그 트레이닝복. 신문 기자의 목적은 한국과 중공이 가까워지고 있다, 정치적인 흐름이. 그거를 쓰기 위해서 우리가 재료가 된 거예요.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이건 단순히 열애설로 끝날 일이 아니었어. 국내 언론들도 들끓기 시작해. 중국의 자오즈민과 어떤 사이냐는 질문이 쏟아져. 재형이는 최선을 다해 열애설을 부인했어. 다 즈민이 때문이었어. 혹시 자신 때문에 즈민이가 중국 대표팀 안에서 곤란해지거나, 정부 차원에서 문제삼는 건 아닐지 두려웠거든. 하지만 두 사람의 열애설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어. 그리고 얼마 뒤 인도 뉴델리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어. 그 곳에서도 두 사람은 자유롭지 못했어. 즈민이와 스치기만 해도,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재형이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즈민이를 보는데, 즈민이는 애써 차가운 표정을 지어.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못 본채 했어. 엎친데 덮친격으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즈민이가 언론을 통해 갑자기 재형이와의 결별을 선언한 거야. 재형이는 걱정이 앞서. 즈민이 마음이 변한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게 끝난 걸까? 다급하게 즈민이에게 편지를 보냈어. 그리고 한 달 뒤 즈민이의 답장이 도착해. 재형, 그건 진심이 아니었어요. 즈민이의 마음은 변한 게 아니었어. 당시 언론의 지나친 관심을 조금이라도 돌려보려고 한 말이었대. 서로를 지키기 위한 하얀 거짓말이었어. 그 무렵부터 재형이 마음 속에 '결혼'이라는 진지한 단어가 들어오기 시작한 게. ▲ 인생을 건 비밀 작전 1987년 11월, 재형이는 누군가에게 은밀히 도움을 요청했어. 탁구협회 팀닥터를 했습니다. 안재형 선수가 저를 개인적으로 찾아왔어요. 찾아와서 하는 얘기가 '자오즈민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저하고 자오즈민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박사님이 좀 도와주십쇼' -양원찬, 전 탁구 국가대표팀 주치의 재형이 입장에서는 즈민이랑 만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어른이었던 거야. 양 박사도 재형이의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 아름답잖아요. 사랑이. 문화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데, 이게 사랑을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진짜 순수하게 이 사랑을 도와줘야겠다… -양원찬, 전 탁구 국가대표팀 주치의 그렇게 시작된 양 박사의 비밀 작전 첫 번째. 즈민이와 재형이 부모님의 만남을 주선하는 거야. 근데 이 계획이 어떻게 새어 나갔는지, 두 사람의 결혼설이 언론에 대서특필됐어. 이거 안되겠다, 기자들을 도저히 막을 수 없겠다고 해서…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결혼설이 터진 바로 그날 밤, 재형이는 직접 카메라 앞에 섰어. 전 국민이 보는 9시 뉴스 생방송에. 앵커: 결혼설이 사실이 아닙니까? 안재형: 네. 전혀 근거 없는 얘기예요. 앵커: 결혼 계획이 없다는 얘기입니까? 아니면 근본적으로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입니까? 안재형: 계획도 없고요. 생각도 없고요. 앵커: 사랑을 나눈 건 사실인 거 같은데요? 안재형: 그냥 친구라고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재형이는 결혼설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어. 열애설과 결혼설은 무게가 달라. 한국 선수와 중공 선수가 부부가 된다? 그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냐. 두 나라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아주 민감한 정치적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거야. 중국 측에서 보기에는 북한을 의식 안 할 수가 없거든요. 외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북한이 개입하게 되면 자오즈민 선수도 굉장히 어려움에 처할 것 같아서, 누가 물어봐도 '우정 이상은 아니다'… -양원찬, 전 탁구 국가대표팀 주치의 양 박사는 작전 방향을 바꾸기로 했어. 아주 비밀스럽게 즈민이의 가족을 만나는 거야. 재형이가 직접 중국으로 갈 수는 없으니, 탁구팀 주치의 자격으로 양 박사님이 중국에 가기로 했어. 홍콩을 거쳐 베이징, 다시 하얼빈으로. 긴 여정 끝에 양 박사님은 드디어 즈민이의 가족을 만났어. 그리고 즈민이 어머니에게 재형이 칭찬을 쏟아냈어. 그런데 어머니 표정이 심상치 않아. 따님이 한국에 시집올 수 있다면, 이렇게 허락해 주신다면, 한국에서 이렇게 살게 될 거라고 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그랬는데… 그때만 해도 중국하고 우리는 적성 국가잖아요. 굉장히 결혼에 대해서는 깜짝 놀라시더라고. -양원찬, 전 탁구 국가대표팀 주치의 한참을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뜻 밖의 질문을 하나 던져. 그 질문에 양 박사님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어. 재형이네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며 경제력은 어느 정도 되는지, 자오즈민 어머니가 사정을 묻더라고요. 그런데 물어보면서, '넉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더라고. 오히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할 텐데, 그게 아주 기억에 남고 감사하고 고맙더라고요. -양원찬, 전 탁구 국가대표팀 주치의 부자이길 바란 게 아니라, 오히려 재형이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서 그래서 결혼을 승낙하겠다는 거야. 딸이 국경을 넘어 말도 문화도 다른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하는 상황이야. 심지어 쉽게 오갈 수도 없는 나라야.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탁구 선수인 두 사람이, 평범한 부부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조건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시작된 사랑인지, 그걸 확인하고 싶으셨던 거야. 시간은 흘러 1988년 10월 2일. 서울올림픽의 마지막 날이야. 그런데 그날 기자들 사이에선 '오늘 안재형과 자오즈민이 결혼식을 올린대'는 소문이 퍼져. 기자들은 두 사람을 찾기 시작했어. 여기에서 양 박사님의 비밀작전 세 번째, 즈민이와 예비시댁 식구들의 인사자리를 성공시킨다는 거야. 그날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바로 여기. 양 박사님의 병원인데, 여기 4층이 양 박사의 집이었거든. 거기서 누군가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 바로 재형이의 부모님. 재형이의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 했었잖아? 그랬던 아버지의 첫 마디는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겠느냐 였어. 결혼을 허락하신 거야. 그 따스한 분위기에 즈민이는 막 웃음이 났대. 결혼까지 가기 위해 또 하나의 높은 벽을 넘고 있는 순간이야. 그런데 바로 그 때, 문 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 기자들이 막 쫓아다니는 거예요. 병원 입원실까지 와서 막 뒤지고. 아 불안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양원찬, 전 탁구 국가대표팀 주치의 평소 안 박사와 재형이의 관계를 알고 있던 기자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들키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야 해. 집에 뒷문이 있었어요. 뒷문에 사다리가 있었는데, 그리로 해서 내려가서… -양원찬, 전 탁구 국가대표팀 주치의 모두가 숨죽인 채 사다리를 타고 뒷문으로 빠져나와서 차에 몸을 숨기 듯 올라탔어. 그날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바로 남한산성이야. 양 박사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고, 거기로 데려 간 거야. 둘이서 뭐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일반적인 연애에서 하는 데이트 같은 걸 할 수가 없죠. 차 타고 남한산성도 갔다 오고 그 정도 밖에 없어요. 짧은 시간에 만난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죠.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함께 있는 그 시간 만큼은 두 사람에게 너무나 소중했대. 양 박사의 비밀 작전 대성공이야. 이제 남은 문제는 단 하나. 이 사랑이 과연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냐는 거야. ▲ 끝나지 않는 '사랑의 랠리' 두 사람이 결혼을 하려면 만날 수 있어야 하잖아. 방법은 단 하나야. 두 사람이 모두 갈 수 있는 제3의 나라에서 만나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어. 하지만 재형이는 이제 필사적이야. 양 박사님의 도움으로 스웨덴에 있는 한 탁구 클럽 초청을 명분 삼아 즈민이를 불렀어. 그리고 그곳의 한국대사관에서 혼인신고 준비를 해. 그런데 문제는 즈민이가 이 사실을 모르고 왔다는 거야. 사실 88년 서울올림픽을 끝으로 즈민이는 은퇴를 했어. 대표 선수가 더 이상 아니라는 건, 다시 만날 일이 없다는 거잖아. 만나서 얘기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거야. 즈민이 입장에서는 갑자기 혼인신고라니까 얼마나 겁이 났겠어. 기다리고 상상하던 순간이지만, 너무 무섭고 큰 선택이야. 자칫 망명처럼 비쳐질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가족을 영영 못 볼 수도 있는 거니까. 즈민이는 혼란스러워. 하지만 아무도 정답을 줄 수는 없어. 결국 선택은 즈민이가 해야만 해. 그리고 옆을 보니까 자신을 바라보는 재형이가 있었어. 재형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해. 즈민, 지금 당장 혼인 신고 안 해도 괜찮아. 나는 언제든 옆에서 기다릴게. 그래서 그날,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했을까? 저는 전 탁구선수, 지금은 안재형 씨 부인, 자오즈민이에요. -자오즈민(64), 전 중국 탁구선수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고 정식 부부가 됐어. 갑자기 스웨덴 가서 만나고 혼인신고를 하는 거예요. 우와… 그때 너무…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러면 나는 만약에 결혼하면 수교가 안 됐는데, 혹시 나 도망가는 거 그런 거로 간주하면, 나 나중에 중국을 못 들어가는데 나 어떻게 해야 하나… -자오즈민, 전 중국 탁구선수 사랑하는 마음만으론 쉽지 않았던 결정. 그날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냐고 물으니 그녀는 이렇게 답했어. 좋아하니까 이런 기회와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으로 도박처럼 제 인생을 걸었죠. 그래서 내 생각에 도박처럼 혼인신고하는 거라고, 잘못해도 제가 결정한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왔어요. 도박… 잘 했어요. -자오즈민, 전 중국 탁구선수 좋아하니까, 이 사람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마치 도박처럼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재형이의 손을 잡은 거야. 1989년 10월 19일 마침내 두 사람은 부부가 됐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수교도 안된 중공 사람이 혼인신고를 하러 왔는데, 한국대사관에서 문제없이 진행됐다는 게. 알고 보니, 두 사람이 도착하기 전 이미 외교부에서 대사관 쪽으로 연락이 와 있었대. 무사히 결혼시켜 한국으로 돌려보내시오 라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사실 그 무렵,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일이 벌어져. 독일의 동과 서를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거야. 냉전의 상징이었던 거대한 벽이 무너지고, 세계 곳곳에 화해 분위기가 번지기 시작해. 우리나라도 그 흐름 안에 있었어. 당시 노태우 정부는 일명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소련, 중공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조금씩 관계를 열어가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두 사람이 사랑으로 벽을 두드리는 사이, 세상도 조금씩 그 벽을 허물고 있었던 거야. 불가능한 결혼이에요. 우리 동북아 삼 개국의 외교사에서 안재형 자오즈민의 관계가 뭔가 영향을 줬다는 얘기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건 두 사람이 가졌던 서로에 대한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황덕준 기자, 당시 스포츠서울 탁구 담당, 현 미주 헤럴드 경제 대표 북방 정책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 거고, 또 실제 그것이 한중 관계를 개선하는 데 촉매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자오즈민하고 안재형의 관계는 높은 이념의 장벽을 넘어 결혼했다는 것… -염돈재, 당시 청와대 비서관 북방 정책 실무 담당 그리고 두 달 후인 1989년 12월 22일. 두 사람은 성대한 전통혼례를 올렸어. 그것도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결혼하고 저한테 너무 잘해주니까. 너무 편하게 해주니까. 그래서 한국말 지금 못하는 거예요. 당신이 책임지세요. -자오즈민, 전 중국 탁구선수 젊을 때 사랑하는 감정을 다른 분들은 콩깍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순간은 다 있다고 봐요. 우리가 서로의 어떤 것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지만, 마음 속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게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상황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안재형,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 탁구 선수라는 직업 자체가 종목 특성상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그런 직업이다 보니까, 더더욱이나 안재형 선수를 열심히 지켜보면서 이 남자가 내가 찾는 내가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그런 사람이 맞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결국 제일 중요했던 건 사랑하는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없었으면 절대 이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자오즈민, 전 중국 탁구선수 결혼을 하고 어느 덧 37년이 흘렀어. 두 사람을 이어준 편지들은 여전히 보물처럼 남아 있어. 아까 중국집에서 번역한 편지 그거 기억나지? 사랑을 고백했던 그 첫 번째 편지. 그 시절 재형이는 편지에 어떤 마음을 담았을까? 어느덧 62세가 된 재형 씨와 64세가 된 자오즈민 씨가 오랜 시간이 지나 편지를 읽어봤어. 86년 11월 7일. 그때가 아마 처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고 나서 보낸 편지니까… 재형 씨는 당시 감정이 떠올라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터뜨렸어. 탁구는 공이 네트를 넘어야 하는 경기야. 두 선수가 넘기고 받아내고 끝날 것 같은 순간에도 랠리는 계속 돼. 재형이와 즈민이의 사랑도 어쩌면 그렇지 않았을까. 두 사람 앞에 있던 국경의 벽, 언어의 벽. 마음대로 만날 수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던 시대의 벽. 하지만 두 사람은 그 벽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어. 만날 수 없다면 편지를 보내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마음을 배웠고,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순간에도 다시 서로를 향해 돌아왔어. 만약 누가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 두 사람의 랠리가 떠오를 거 같아. 끝날 것 같은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끝내 받아내는 것. 그리고 다시 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보내는 것. 넘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벽이었지만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마음은 끝내 그걸 뛰어넘었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나이트라인 초대석] '데뷔 첫 악역' 제대로 눈도장…배우 주상욱 [나이트라인 초대석] '데뷔 첫 악역' 제대로 눈도장…배우 주상욱 등록일2026.07.23 &<앵커&> 빠른 전개와 세련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로 요즘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입니다. 드라마 '김부장'이 종영을 앞두고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나이트라인 초대석 오늘(23일)은 드라마 '김부장'에서 악역으로 이미지 변신을 한 배우 주상욱 씨와 함께하겠습니다. Q. 드라마 '김부장' 안방극장 장악…소감은? [주상욱/배우 : 우선 김부장을 이 정도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너무나 많이 사랑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리고, 그리고 주강찬은 참 나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악역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이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Q. SBS와 인연 깊어…이미지 변신한 작품 많았는데? [주상욱/배우 : 맞습니다. '자이언트'가 지금도 재방송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아까 이렇게 찾아보니까 벌써 한 15~16년 정도 됐거든요. 아마 그때도 자이언트라는 작품을 통해서 제가 이제 연기자 생활에, 배우 생활에 아마 터닝 포인트가 됐었고. 그 뒤로도 많은 작품을 했지만, 이번에 또 이 김부장을 통해서 아마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SBS 감사합니다.] Q. '대놓고 잔혹한 악역' 첫 도전…어떻게 선택했나? [주상욱/배우 : 배우분들은 누구나 다 그런 것 같아요. 이렇게 이미지 변신, 그리고 새로운 도전 이런 거를 굉장히 생각을 좀 많이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이번에 주강찬 역할은 너무나도 좀 머릿속에 그리고 생각했던 그런 악역이 아니었나, 그런 배역이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이 되고. 그리고 또 이렇게 결과까지 너무 좋아서 감사합니다.] Q. 자기 관리 돋보였던 '사우나 장면'…냉탕이었다고? [주상욱/배우 : 카메라랑 이렇게 세팅을 다 해놓고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해서 딱 들어갔는데 냉탕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신이 엄청 길었거든요. 엄청 길어서, 컷 하면 다시 온탕에 들어가고. 너무 추워서 떨면서 한 3시간 정도 촬영을 냉탕 온탕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촬영을 했던 것 같습니다.] Q. 배우 소지섭과 액션 장면 많아…호흡 어땠나? [주상욱/배우 : 소지섭 형님은 대한민국 최고의 액션 배우십니다. 그래서 매번 촬영을 할 때마다 이렇게 많이 가르쳐주신 것 같아요. 액션을 이렇게 때리면 이렇게 하고. 그래서 굉장히 웃으면서 좀 수월하게 촬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하루 종일 찍었습니다.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계속 맞기는 했는데요. 그런데 우리 김 부장님이 도와주신 덕에 굉장히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Q. '주강찬'이 맞는 장면…시청자 쾌감이 큰데? [주상욱/배우 : 사실 그 장면에서 저희도 찍으면서도 그랬고, 저도 그랬고. 제가 더 맞을수록 아마 시청자분들은 쾌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예상대로 좋아하시더라고요.] Q. '김부장'의 명장면·명대사 꼽아본다면? [주상욱/배우 : 드라마 전체로 봤을 때 7부의 김 부장이 주강찬을 통쾌하게 참교육하는, 아마 그때가 가장 또 명장면인 것 같고. 주강찬의 명대사로는 저는 기억나는 게 제 딸한테 이렇게 둘이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때 이제 귓속말로 괜찮아 이렇게 뭔가 다독여줄 것 같았는데 전혀, 죽은 건 확인했니 이런 얘기할 때 그게 굉장히 기억에 남습니다.] Q. 28년차 배우…본인에게 '연기'는 어떤 의미인가? [주상욱/배우 : 물론 연기는 제 직업이기도 하지만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에너지,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삶의 활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에너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게 이런 촬영 현장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받아서 그런 게 아닌가. 그래서 제 인생에 활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마지막 2회 남은 '김부장'…관전 포인트는? [주상욱/배우 : 7화에서 그렇게 이제 통쾌하게 맞는 장면을 보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잖아요. 아직 2회 남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한 발 더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남은 2회도 많이 기대해 주시고 끝까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Q.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주상욱/배우 : 물론 계속 앞으로도 배우 활동을 하겠지만 항상 좋은 배우다, 칭찬받는 그런 좋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저도 계속 노력할 거고요. 응원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스브스夜] '김부장' 소지섭, 특임국에 잡힌 서수민에 아빠 왔다, 이제 집에 가자 [스브스夜] '김부장' 소지섭, 특임국에 잡힌 서수민에  아빠 왔다, 이제 집에 가자 등록일2026.07.12 소지섭이 드디어 서수민과 만났다. 11일 방송된 SBS 금토 드라마 '김부장'에서는 민지를 찾기 위해 특임국 본부로 온 김부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주강찬은 민지에게 왜 그곳에 있었냐며 추궁했다. 이에 민지는 정신을 차려보니 냉동창고였고 왜 거기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주강찬은 냉동창고에서 무엇을 보았냐며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냐고 물었다. 민지는 처음 보는 깡패 같은 아저씨를 봤다 라고 했고 이야기를 나눴냐는 질문에 아니요 갑자기 칼을 들고 쫓아오길래 도망쳤거든요. 뒤에서 뭐라고 소리쳤는데 빗소리 때문에 못 들었어요 라고 했다. 그리고 민지는 저 혹시 휴대폰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빠한테 데리러 오라고 할게요 라고 했다. 이에 주강찬은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왜냐고 묻는 민지에게 주강찬은 우리 혜리가 널 죽이려고 했으니까. 그럼 아빠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말해 민지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며 기억이 안 난다는 민지. 하지만 주강찬은 아직 학생이라 그런지 감정을 감추는 게 어설퍼, 기억이 잃은 척 거짓말하는 것도 어설프고 라고 민지를 모두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주강찬은 다 알고 있었어. 네가 차에 타자마자 잠든 척했을 때부터 라고 했다. 또한 그는 난 우리 혜리를 아주 많이 아끼고 사랑해, 그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다 덮어주고 싶으니까.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딱히 큰 잘못도 아니잖아 라고 섬뜩하게 말했다. 이어 주강찬은 그래서 난 이렇게 정리할 거야. 어떤 깡패가 김민지라는 여고생을 납치해서 함께 실종된 사건. 깡패는 실종됐으니 그럼 이제 김민지 학생만 세상에서 사라지면 되겠네 라고 말해 민지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싫다며 발버둥 치는 민지. 그런데 이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특임국 요원들이 민지를 찾기 위해 찾아온 것. 이에 주강찬은 민지를 지하실에 가두었다. 땅강아지와 주강찬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웠고, 이에 땅강아지는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주강찬의 별장을 떠났다. 그런데 잠시 후 정상아와 임 씨가 민지와 함께 땅강아지 앞에 등장했다. 앞서 땅강아지는 그들에게 민지를 빼내라고 지시했던 것. 그리고 땅강아지는 민지를 데리고 이동했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민지는 두려움에 떨며 저기 감사합니다. 근데 누구세요? 지금 이거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빠한테 연락하게 해 주세요. 안 그러면 저 내릴 거예요 라고 했다. 이에 요원은 민지 학생 진정하고. 우리 지금 안전한 곳으로 가는 거니까 라며 민지를 잠들게 했다. 그때 민지와 특임국 요원들이 이동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김부장은 무전으로 그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김부장은 민지야. 아빠 목소리 들리지? 괜찮아 금방 데리러 갈게 라고 했다. 또한 김부장은 땅강아지에게 내 딸 털 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너희들 전부 죽어 라며 내 딸 찾으면 내 발로 들어간다고 했어. 내 딸 찾는 게 먼저야. 선물 미리 보내놓을게 기다려 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특임국 본부로 이동한 민지. 이에 김부장은 친구들과 함께 민지를 추적했다. 그리고 자신 대신 친구들을 먼저 보내 민지를 구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특임국의 방해에 민지와 성한수, 박진철은 특임국 본부를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안보차관이 그들을 향해 겨누고 있는 총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했다. 공포에 떠는 모습으로 등장한 안보차관. 그리고 그가 공포에 떠는 이유가 공개됐다. 김부장은 낚싯줄 같이 가느다란 실로 안보차관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민지에게 김부장은 민지야 아빠 왔다, 이제 집에 가자 라고 말해 그가 민지와 함께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최민식이 유일하게 밥 먹자 제안했다?…'맨 끝줄 소년', 최현욱 캐스팅 뒷이야기 최민식이 유일하게 밥 먹자 제안했다?…'맨 끝줄 소년', 최현욱 캐스팅 뒷이야기 등록일2026.06.24 '맨 끝줄 소년' 최민식이 최현욱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혔다.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제작발표회에는 배우 최민식, 최현욱과 연출을 맡은 김규태 감독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당부했다.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인 허문오(최민식 분)가 강의실 맨 끝줄에 앉는 소년 이강(최현욱 분)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점차 집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다. 이 작품은 명불허전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최민식과 라이징 스타 최현욱의 만남으로 기대가 큰데, 이강 캐릭터의 오디션 현장에 최민식이 함께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최민식이 유일하게 끝나고 같이 밥 먹자 고 제안한 배우가 최현욱이었다는 에피소드가 알려지며, 최현욱은 '최민식의 선택을 받은 후배'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민식은 이강 캐릭터 오디션에 직접 참여한 이유에 대해 (이강 역을 맡을 배우의) 실물이 보고 싶었다. 어떤 느낌의 소년일까 궁금했다. 프로필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감이 안 오니까, 오디션 현장에 제가 궁금해 나간 거다 라며 요즘 젊은 배우들을 잘 모르니, 있는 그대로 날것의 느낌을 보고 싶어 '같이 옆에 있으면 안되냐' 해서 참여하게 됐다 라고 설명했다. 이어 항간에 소문이 '최현욱을 최민식이 캐스팅했다'고 하는데, 그건 어불성설이다. 감독님이 하신 거다 라며 감독님이 '어떤 친구가 괜찮냐'고 제게 상의는 해주셨다. 감독님과 프로듀서와 다같이 의견을 좁힌 것 이라고 최현욱이 이강 역에 낙점된 과정에 대해 밝혔다. 당시 최현욱과 같이 식사를 했던 상황에 대해 최민식은 다 오디션 보고 가고, 현욱이 밖에 없었다 라고 너스레를 떨며, 식사비는 최현욱의 회사에서 지불했다는 세세한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최민식은 최현욱의 눈빛,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이 굉장히 호감이 갔다. 그래서 같이 밥 먹자고 했던 것 이라며 식사 제안이 호감의 표시였음을 인정했다. 최현욱도 오디션 당시를 떠올렸다. 최현욱은 제 또래 배우들은 최민식 선배님의 영화를 보고 자라 안 본 영화가 없을 정도다. 그렇게 스크린에서만 봤던 선배님 앞에서 연기를 한다고 하니, 많이 떨렸다. 그래도 열심히 준비한 대로 했다 라고 설명했다. '맨 끝줄 소년'의 공개를 앞둔 현재, 최민식은 최현욱에게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최민식은 다시 복기해 보면, 아주 만족스럽다. 후배 최현욱 배우한테 고맙고, 흐뭇하다 라며 뿌듯해했다. '맨 끝줄 소년'은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괜찮아, 사랑이야' 등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낸 김규태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다. 열등감과 패배감에 갇힌 교수와 그를 뒤흔드는 의문의 학생이 펼치는 서스펜스를 최민식과 최현욱, 그리고 김규태 감독이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 '맨 끝줄 소년'은 총 6부작으로, 오는 26일 금요일 오후 5시 넷플릭스에서 전편 공개된다. [사진=백승철 기자]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온 세상을 울릴 때까지'…BTS 맞는 광화문 글판 '온 세상을 울릴 때까지'…BTS 맞는 광화문 글판 등록일2026.03.17 [교보생명 본사 사옥 래핑(사진=교보생명)] 교보생명이 빅히트 뮤직과 협업해 서울 종로구 본사 사옥 외벽에 시민들의 도전과 노력을 응원하는 초대형 래핑을 선보였습니다. 이번에 설치한 래핑은 가로 90m, 세로 21m에 총면적은 1890㎡입니다. 문구는 &'나에게서 시작한 이야기가 온 세상을 울릴 때까지&', &'Born in Korea, Play for the World&'입니다. 세계를 무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방탄소년단처럼,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우고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디자인은 태극기 사괘인 건곤감리에서 모양을 따왔습니다. 여기에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디자인 요소를 서체와 색상에 반영했습니다. 교보생명 광화문글판과 방탄소년단의 만남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교보생명은 방탄소년단이 음악으로 이야기한 희망, 위로, 연대의 가치가 광화문글판을 통해 교보생명이 추구해 온 역경극복과 희망, 격려와 응원이라는 가치와 일맥상통한다고 밝혔습니다.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은 1991년부터 36년 동안 총 120편의 문안을 내걸며 시민들의 곁에서 희망과 위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8월에도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를 활용한 광화문글판을 두 차례 선보인 바 있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는 취지에서 &'다시 런(Run) 런 런 넘어져도 괜찮아, 또 런 런 런 좀 다쳐도 괜찮아&', &'때론 지치고 아파도 괜찮아 니 곁이니까 너와 나 함께라면 웃을 수 있으니까&'라는 문안을 게시했습니다. 이듬해 11월에는 방탄소년단이 100번째 광화문글판을 기념해 문안을 썼습니다. &'[춤] 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허락은 필요 없어&'란 글귀로 교보생명 본사 사옥 외벽에 래핑이 장식됐습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광화문글판과 방탄소년단의 세 번째 만남은 희망과 격려라는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는 두 문화 아이콘의 결합&'이라며 &'앞으로도 광화문글판은 시민의 벗으로 남아 희망과 위로를 전할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빅히트 뮤직 관계자는 &'광화문을 대표하는 문화 헤리티지인 광화문글판은 방탄소년단이 새 앨범을 통해 우리 국민들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협업 추진의 배경을 밝혔습니다. 이어 &'이번 협업에 담긴 희망의 에너지가 시민 분들에게도 잘 전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꼬꼬무 찐리뷰] '동일본 대지진' 15주기…1만 6천명 사망한 재앙, 살아남은 한국인들 눈물의 생존기 [꼬꼬무 찐리뷰] '동일본 대지진' 15주기…1만 6천명 사망한 재앙, 살아남은 한국인들 눈물의 생존기 등록일2026.03.13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2일 방송된 '2011 사라진 도시-동일본 대지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고우림, 배우 최진혁, 그룹 빌리 멤버 츠키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2011년 3월 11일 그날 때는 2011년 3월 11일. 서울 노원구 불암산이야. 한 무리의 남성들이 촌각을 다투며 움직이고 있었어. 이들은 구조대원이야. 중앙119구조대 소속 백근흠 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산악 인명 구조 훈련 중이었어. 날이 따뜻해지면서 등산객이 늘어나는 봄은, 산악사고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시기거든. 그런데, 훈련이 한창이던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와. 이제 인명구조 훈련을 하고 있는데, 4시 조금 넘어서 사무실에 전화가 온 겁니다. '여기 지금 난리다, 중국 쓰촨성이나 아이티 같이 출동할지 모르니까 인원과 장비를 한 번 점검해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그 전화받고 즉시 제가 귀대했던 생각이 납니다. - 백근흠, 당시 중앙119구조 팀장 백 팀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같은 국내 재난현장은 물론,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도 현지에 파견됐던 30년의 경력의 베테랑이야. 그런 그에게, 그것도 훈련 중에 연락이 왔다는 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겠지? 백 팀장은, 부랴부랴 구조대로 복귀해서 TV를 켰어. 그리고는 턱 하고 말문이 막혔어. 오늘 오후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초대형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강진 직후 일본 연안에는 최대 10미터 높이의 대형 지진 해일이 강타했습니다. 사람이 떠내려오고 있습니다. 트럭 위에 있던 사람이 쓸려 내려갑니다. 아, 지금 제방이 터져 무너져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2011년 3월 11일에 벌어진 동일본 대지진이야. 일본 관측 사상 최대, 최악의 이 흔들림은, 5분 남짓한 새, 일본 열도를 동쪽으로 약 5cm 이동시키고, 지구 자전축까지 움직였어. 건물이 파괴된 건 물론이고, 일본 해안선 지도가 달라졌어. 무수한 사람들이 숨지고, 실종됐지. 그리고 그중엔, 한국인들도 있었어. 국제결혼을 한 교민, 유학생, 직장인을 포함해 이 무렵 동일본에 있었던 한국인들은, 만 2천여 명이었거든. 일본인들을, 아니 전 세계인을 공포에 떨게 만든 충격적인 대재앙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시간을 조금 되돌려볼게. ▲ 대재앙의 서막 지진 발생 이틀 전인, 2011년 3월 9일 오전 11시 45분. 서른다섯 살의 한국인 김일광 씨는 일본의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어. 근데, 기분이 이상해. 전봇대가 휘청하고, 차가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해. '이게 뭐지?' 싶었던 그때, 휴대폰이 울려. 여보 괜찮아요? 지진이 왔다는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내 마유코 씨야. 일본에 어학연수를 왔다가 취업까지 하게 된 일광 씨는, 직장에서 만난 마유코 씨와 사랑에 빠졌어. 그리고 2004년, 두 사람은 연인에서 부부가 됐지. 결혼 1년 뒤엔, 첫째 딸 미래가, 4년 뒤엔 이란성쌍둥이가 선물처럼 찾아왔어. 그리고 2010년 8월, 일광 씨는 마침내 내 집 마련에 성공했어. 동네는 미야기노구의 가모 지구. 바로, 여기야. 미야기현 최대 갯벌인 이곳은,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자 철새들의 휴식처인 해안마을이야. 바로 옆에는 강이고. 조금만 더 가면 바다하고 만나서, 연어 같은 생선도 있고. 지상낙원처럼 굉장히 살기 좋은 동네였죠.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한편, 일광 씨의 동네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오시카 반도엔, 또 다른 한국인이 살고 있어. 11년 전 국제결혼을 한 홍경임 씨야. 경임 씨의 가족 사진을 보여줄게. 이분은 남편 유우키 씨고, 왼쪽이 여덟 살 리나, 오른쪽이 여섯 살 리사, 가운데는 네 살 유지로. 하지만 이 사진엔 없는 넷째가 있어. 경임 씨는 임신 33주였거든. 경임 씨네 대가족이 사는 오시카 반도도, 일광 씨네 동네 못지않게 아름다웠대. 그런데 일광 씨와 경임 씨가 사는 미야기현엔 딱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어. 바로 지진. 지진이 잦아도 너무 잦은 거야. 지진은 지각판이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땅의 움직임을 말해. 일본은 4개의 지각판이 맞물리는 곳에 있어. 특히, 미야기현 앞바다는, 북미판과 태평양판의 경계야. 규모 4.0의 지진이 발생하면 선반에서 물건이 떨어지고, 창문이 흔들리는 정도야. 지난 10년간 이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4.0 이상의 지진은 무려 3,008건. 연평균 약 300건이야. 다시 말해 이곳 주민들은 거의 매일, 땅의 흔들림을 느끼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일광 씨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던 3월 9일에도, 미야기현 앞바다에선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어. 규모 7.3 지진은 어느 정도일까? 오늘 새벽 5시 46분. 강력한 지진이 일본 서부 간사이 지방인 오사카와 고베 일대를 뒤흔들고 엄청난 피해를 냈습니다. 고베시 NHK방송사에서 야근을 하던 기자들은 잠자던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 도로가 옆으로 누워버린 현장입니다. 오사카와 고베를 잇는 한신고속도로의 고가도 허리가 끊어졌습니다. 질주하던 승용차들은 끊어진 고가 아래로 떨어져 타고 있던 사람들이 숨졌고. 행방불명된 사람이 500명을 넘어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규모가 워낙 커 구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단 20초 만에 6천여 명의 사망자와 4만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 이때의 지진 규모가 바로, 7.3이었어. 그럼, 2011년 3월 9일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지진이 났을 때 일광 씨와 경임 씨는 대피를 했을까? 안 했어.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대. 이 지역은 지진이 너무 잦고, 심지어 이번엔 진앙지가 해역이었으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던 거야. 이게, 끔찍한 대재앙의 서막이란 걸. ▲ 모든 걸 빼앗아 간 재앙의 날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저녁 근무였던 일광 씨는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있었고, 아내는 걸어서 5분 거리 커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선반에 올려둔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더니 냉장고까지 쾅하고 쓰러져. 얼마 뒤엔 TV까지 팍 하고 떨어져. 깜짝 놀라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고 보니, 먹통이야. 인터넷도 안 돼. 창 밖을 내다보니 건물이며 전신주며, 모든 게 다 흔들려. 지금 도쿄 시부야의 스튜디오가 매우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조금 전 오후 2시 46분경, 매우 강력한 흔들림을 느꼈습니다. 미야기 TV 스튜디오, 다시 흔들림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진입니다. 여진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책꽂이의 책들이 다 쏟아지고, 도로는 갈라졌어. 강력한 지진이야. 일광 씨는 지진이 멈추길 기다렸다가 아내를 찾으러 밖으로 뛰어나왔어. 아이들이 있는 어린이집은 다행히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거든. 그런데 나와보니, 상황이 더 심각해. 아까 규모 7.3의 지진이 어느 정도인지 얘기했지? 그런데 이날 지진의 규모는 무려 9.0이야. 숫자로만 보면 별 차이가 안 느껴지지만, 지진의 방출 에너지는 규모 1.0이 커질 때마다 32배씩 증가해. 그러니까 이건 32X32, 한신 아와지 대지진의 1000배 이상 강력한 초대형 재난이야. 진앙지에서 400km, 서울에서 부산 거리에 있는 요코하마 야구장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으니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겠지? 문제는 이 날의 비극이,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란 거야. ▲ 공포의 쓰나미 일광 씨는 전력질주를 하고 있어. 동네에 사이렌과 함께 울려 퍼지는 소리 때문이야. 연안에 대형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예상되는 쓰나미의 높이는 6m입니다!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는 거야. 무려 6미터. 아파트 3층 높이야. 아내의 직장 앞에서 일광 씨는 목이 터져라 아내의 이름을 외쳤어. 그런데 없어. 창문엔 사람 그림자도 안 보여. 30분 넘게 발만 동동 구르며 건물 주변을 맴도는데, 어? 저편에서 아내와 동료들이 걸어와. 알고 보니 건물 옥상에서 대피를 하고 있다가 해산을 하는 거래.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일광 씨는 내심 '오늘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대. 그렇게 아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해.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난생처음 듣는 기이한 소리가 들려. 그때였어요. '미래 데리러 가자. 유치원에 있는 애들 데리러 가자' 라고 하는데, 무슨 기분 나쁜 소리가 막 들리더라고요. 쏴아아아 소리. 그때 봤을 때는 뭐 늦었어요. 그 쓰나미라고 그러는 해일이, 산 높이 같은 게 바로 눈앞에 있는 거예요.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쓰나미가 밀려오고 도망가는 사람들. 이건, 언뜻 봐도 6미터가 아냐. 빌딩 같은 파도가 밀려오는데 동네 사람들이 거기에 휩쓸려.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에, 일광 씨와 아내는 대피소를 향해 뛰기 시작해. 하지만 쓰나미의 속도는 그보다 더 빨라. 결국, '이제 끝이다' 생각한 순간! 아내를 꽈악 끌어안고 눈을 감은 일광 씨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어. 같은 시각. 이제 막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경임 씨는, 창문 너머로 방파제를 바라보고 있었대. '제발...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하면서. 남편은 불과 10분 전, 여긴 지대가 높아서 괜찮을 거야. 금방 다녀올게. 걱정하지 마 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어. 남편 유우키 씨는, 마을 의용 소방대원이었거든. 일본의 재난 시스템은 소방관이 오기 전에, 주민들이 먼저 움직이도록 짜여 있어.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재해가 너무 자주 발생하니까 골든타임 동안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버텨야 하거든. 남편은 이제 수문 잠그러 간다고, 그리고 마을 사람들 피난시켜야 되니까. 우리 집은 높은 데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바다와 같은 높이에 있으니까 피난시키고 온다고.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그렇게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산 위에까지 물이 굉장히 높았어요. 고오오오오 하는 소리. 시커먼 물이 고오오오오 하면서 와서 그다음에 싹 부숴서 가는데, 그 큰 배를 그 둑을 그냥 가볍게 넘겨 가지고 그 큰 배를 길 건너 쪽에 도로에 올려놓을 정도로.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지진 발생 1시간 뒤인, 오후 3시 45분 무렵. 경임 씨네 집 창 밖으로 자동차며, 수백톤의 배까지 떠내려 가. 이런 상황에 챙겨야 할 아이는 셋에, 뱃속엔 아기까지 있어. 저 배가 우리 집을 치면 우리 그냥 떠내려가겠구나 싶으니까. 이제 애들을 침대에 묶어놓아야 되나, 우리 죽어도 같이 다 시체가 따로따로 흩어지지 않고 같이 죽어야 되는데. 이제 어떻게 묶어놓아야 되나…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모든 것을 삼킬 듯한 검은 물. 이제 경임 씨의 집 안, 2층 계단에도 차오르고 있어. ▲ 혼돈 속의 사람들 그 사이, 일광 씨는 어떻게 됐을까. 쓰나미에 휩쓸렸던 일광 씨가 정신을 차린 건, 물속에서였어. 눈을 감아도 깜깜, 떠도 암흑인 상황에서, 발은 떠밀려온 뻘과 쓰레기 안에 박혀서 꿈쩍도 안 해. 눈을 뜨니까 뭐 물속이고 금붕어처럼 물속인데 새카매요. 진짜 새카매요. 바로 올라갈 수도 없고요. 밑에 뭐 여기 옷에 끼고 뭐...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겨우겨우 장화 안에서 간신히 발을 빼고, 물에 젖은 패딩 점퍼도 벗은 다음에,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버둥거리는데, 손 끝에 그물 같은 게 잡혀. 바로 농구 골대였어. 농구 골대가 어느 정도 높이인지 알지? 약 3m. 무지하게 높잖아. 이걸 한 번 봐. 일광 씨가 눈을 떴던 실내 체육관 내부 사진이야. 이 높이에 있는 농구대가 손에 잡혔으니, 이 안에 물이 얼마나 많이 차 있었단 건지 알겠지? 일광 씨는 간신히 난간에 매달려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위층으로 넘어갈 수 있었대. 드디어 살았구나,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건 뭐 슬픔을 넘어, 차라리 혼돈이야. 거기 농구 골대에서 물 빠져서 걸어 나가는데, 둥둥 떠 있는 할아버지 시신도 엎드려서 있었고... 전쟁 난 줄 알았어요. 그리고 거기 체육관 옆에 우리 집인데, 봐도 집이 없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동서남북 헷갈리는 줄 알았어요. 이상한데? 다시 한번 봐도 (우리 집이) 없어요.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근데 무엇보다 절망적인 게 있었어. 아내 마유코 씨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목이 다 쉬도록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하늘에선 야속하게 눈발까지 흩날려. 맨발은 꽁꽁 얼어서 감각도 없고, 몸 곳곳은 다 베이고 찢어져서 피가 철철 나. 결국 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일광 씨는, 이후 영사관에서 제공한 임시 대피소에 머무르게 됐어. 하지만 일광 씬 지금, 미칠 지경이야. 아내는 생사도 모르고, 마을은 송두리째 사라졌어. 그저 첫째 딸 미래와 쌍둥이, 세 아이들이라도 안전하게 대피했길 기도할 뿐이야. 과연 아이들은 무사했을까? '꼬꼬무' 제작진이 이번에 일본에 가서 취재한 이야기를 들어봐. 저는, 구지 미래입니다. 지금 대학교 3학년이고 아르바이트를 세 개 하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의 기억을 묻자) 지진이 나서 다 같이 중학교로 대피했어요. -구지 미래/ 당시 6세, 현재 21세 (2011년 3월 11일 몇 살이셨는지 묻자) 1살이었어요. -구지 희로나/16세 1살. (정확히) 8개월이었어요. -구지 켄세이/16세 미래와 동생들은, 무사했어. 정말 다행이지? 알고 보니, 어린이집 가까이에 살고 있었던 처가 식구들이 대피소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 보호하고 있었던 거야. 영사관에 찾아온 처남에게 그 소식을 들은 일광 씨는, 그제야 기적을 꿈꿔. 이제 아내를 찾아야지. 일광 씨는 처남과 함께 다시 마을로 향해. 지진에 끊어진 다리를 피하고 물에 잠긴 길을 돌아서 간신히 동네에 도착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벌어져. 실종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야. 저마다의 간절한 사연이 벽이며, 게시판에 빼곡하고, 실종자 사진을 꼭 쥔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마을을 가득 채워. 돌아올 곳이 없으니까 제가 어디에 있을지 모를 것 같아요. 살아만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광 씬 아내를 만났을까. 절망 속에서도 기적을 꿈꾸는 일광 씨의 이야기는 잠시 뒤에 다시 이어갈게. ▲ 끝나지 않은 재앙 그 무렵 경임 씨의 동네에도 마침내 쓰나미가 멈췄어. 우는 아이들을 달래 보지만 누구보다 울고 싶은 심정인 건, 경임 씨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멀리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깨진 1층 창문 너머로 누군가 들어와. 남편이길 바라며 후다닥 뛰어가 보는데, 낯선 육상 자위대원이 서 있어. 경임 씨가 임신 33주잖아. 임부와 아이들의 대피를 도우러 자위대원이 온 거야. 그렇게 자위대 헬기를 타고 마을을 내려다보던 경임 씨는, 세 아이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대. 왜냐하면 몰랐거든요. 우리 마을만 그런 줄 알았지. 다른 데가 그런 줄은 모르고. 근데 신랑도 다른 데 피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안 오고. 다 나와 같이 이렇게 됐구나 싶으니까. 너무 슬프더라고요. 음.. 그래서 그냥 막 한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전기와 통신은 진작 끊겼어. 뉴스? 당연히 못 보지. 그래서 경임 씨는, 이런 광경을 상상조차 못 했대. 남편이 서 있었을 방파제는 잠겼고, 공항은 물바다에, 열차는 탈선을 했어. 더 슬픈 건 3월 11일, 이 잔인한 하루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거야. 그날, 오후 5시를 넘겼을 무렵. 쉰여덟 살의 나오코 씨는 주민 수백 명과 함께 미야기현 게센누마의 한 대피소 옥상에 고립되어 있었어. 이미 쓰나미가 휩쓸고 간 대피소 건물엔 2층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거든. 오도가도 못한 채 추위에 덜덜 떨며, 먼바다를 바라보는데. 이상해. 바다에서 연기가 나. 불이다! 바다에 불이 붙었다! 이번에 불이야. 전화가 안 되는 상황에서, 나오코 씨는 가족에게 다급히 문자메시지를 보냈어. 통신사 자체 서버에서 관리하는 문자메시지는, 늦더라도 결국엔 전송이 됐거든. &<3월 11일 오후 5시 45분&> 대피소 옥상. 주변은 바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음. 부두 쪽은 화재. 춥다. 괜찮아 다행히 나오코 씨는 침착해 보여. 하지만 불과 14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3월 11일 오후 5시 59분&> 불바다. 죽을지도 몰라. 버텨볼게 &<3월 11일 오후 6시&> 대피소 3층. 주변은 바다. 무슨 이유에선지 어두워졌고, 불이 보여. 무서워 파괴적인 지진, 초대형 쓰나미, 어마어마한 화재, 이 모든 게 불과 3시간 만에 연달아 벌어진 거야. 그런데 미야기현 게센누마에서 유독 화재가 커진 이유가 뭘까. 일본 수산 가공의 중심지인 이곳은, 선박이며 연료 저장 시설이 항만에 집중돼 있었어. 강진으로 파손된 연료 탱크에서 유출된 기름만 해도 200리터짜리 드럼통, 6만 4천여 개 분량.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되겠어? 여긴, 불지옥이야. 진원지에서 95km 떨어진 일본 미야기현의 게센누마시 모습입니다. 7만 4천여 명이 사는 도시 전체가 불바다로 변했습니다. 피해지역이 광범위해 현지 당국은 화재 진화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유류 화재야. 물로는 진화가 안 돼. 그렇다고 이 불타는 도시에, 소방대원이 접근할 수도 없어. 구조대가 온다 해도 고립된 채 도움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이 도시에만 7만 명이 넘는 상황이야. 그렇게 나오코 씨 인생에서 가장 두렵고 긴 밤이 지나가고 있었어. ▲ 생사의 갈림길 다음날이 밝았어.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낮 12시. 여긴 인천국제공항이야. 오직 구조를 위해 출국 수속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이미 너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 맞아. 중앙119구조대 백근흠 팀장. 구조대원들이 향한 곳은, 미야기현 가모지구였어. 그런데 현장을 본 백 팀장은, 불안감이 밀려왔대. 아무것도 없어요. 중국 쓰촨성 같은 경우에는 건물 잔재 내에서 생존자를 구할 수가 있어요. 그 틈에 이렇게 있으니까. 아이티 (지진 때)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일본 그 동북부 대지진만큼은 뭐 그런 게 없었어요. 현장에 갔을 때, 물이 서서 들어온다고 하죠. 쓰나미가 들어와서 다 끌고 나가버리니까. -백근흠 / 당시 중앙119구조 팀장 동일본의 상황은 지금까지의 해외 구조 현장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어.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어. 눈보라에 떨고, 뻘밭에 발이 빠지면서도 혹시 모를 기적을 찾아 수색을 계속해. 그렇게 한참이 지났는데… 여기요 여기! 다들 빨리 좀 와보세요!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사람 손이 보여. 나무판자를 하나하나 치우고, 차가운 물속에 빠져 있던 몸을 조심스레 꺼내.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숨진 희생자는, 30대 여성이었어. 경례를 하고, 잠깐 묵념해서 고인에 대한 예의를,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해 추모를 하자… 수습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 (희생자가) 한국 사람의 아내였다… -백근흠 / 당시 중앙119구조 팀장 아니기를 바랐지만, 숨진 이는 일광 씨의 아내 마유코 씨야. 소식은 곧, 마을에서 아내를 찾던 일광 씨에게도 전해졌어. 일광 씨는 '에이 설마. 아니겠지' 반신반의하면서도 시신이 안치된 센다이 종합체육관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대. 그리고 건물 입구에서 숨진 이들의 사진 수백 장을 보는데, 유독 예쁜 사람이 있더래. 아내 마유코 씨였어. 그때 아내가 맞는데 예쁘게 화장을 했더라고요. 옷 깨끗하게 입히고 화장까지 깨끗하게 해서... 아내한테 미안하죠, 못 지켜줘서. 사랑하는 상태에서 그렇게 됐으니까 항상 미안해요. - 김일광 / 미야기현 한인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어요. 다정하고, 음식을 자주 만들어 주셨어요. 엄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슬펐어요. - 구지 미래 / 일광 씨 큰 딸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했던 엄마야. 마유코 씨가 우리 돈으로 시급 8천 원을 받는 커튼 공장에 나간 건, 쌍둥이들 기저귀 값이라도 벌기 위해서였어. 마유코 씨는 남편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음식을 연습했던 사랑스러운 아내이기도 했어. 그야말로 가족들에게 햇살 같은 존재였던 마유코 씨가, 세상을 떠난 거야. 그럼 불바다가 된 도시 건물에 고립돼 있었던 나오코 씨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밤사이 불길은 잡혔어. 아니, 더는 태울 연료가 없어서, 불길은 스스로 잦아 들었어. 하지만 아직도 대피소 건물엔 뻘이 가득 차 있어서 1층으론 내려갈 수 없어. 음식은커녕, 물도 없어. 수백 명이 좁은 공간에 있다 보니 잠을 잘 수도 없고, 앉는 것조차 돌아가며 앉아야 돼. 모두 절망에 빠져 있던 그때였어.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 여기예요! 여기 사람 있어요! 나오코 씨는 물론, 구조를 기다리는 모두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 이윽고 헬기가 대피소 상공에 멈췄어. 그러더니 레펠을 타고 내려온 소방청 대원이, 나오코 씨를 찾아. 여기 나오코 씨 계시나요? 아드님의 요청으로 왔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길까. 영문도 모른 채, 나오코 씨는 주민들 대피부터 도왔어. 그런 그가 건물에서 탈출하 건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리고 사정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야. 그러니까 지진 발생 한 달쯤 지나서였습니다. 나중에 (영국에 있던) 아들이 일본에 왔을 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진 발생 당시 아들이) 30분 정도 공들여 글을 써서 (SNS에) 올렸더니 운 좋게 (구조로) 연결이 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쓰미 나오코 / 당시 미야기현 거주 알고 보니 나오코 씨를 구한 건, 그녀의 아들이었어. 당시 영국에 근무하고 있었던 나오코 씨의 첫째 아들은 간절한 맘으로 자신의 SNS에 글을 하나 적었대. 바로 이거야. 장애아동 시설의 원장인 어머니가 아이들 10여 명과 함께 미야기현 게센누마 대피소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아이들만이라도 구해주실 수 없을까요. -아들의 SNS 나오코 씨는 장애 아동 시설의 원장이야. 지진이 왔을 때 나오코 씨가 운영하던 시설의 아이들은 다행히, 모두 하원을 한 상태였지만, 맞은편 보육원의 사정은 달랐대. 두 명의 보육 교사가 수십 명의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있었거든. 나오코 씨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보육원으로 달려갔어. 그리곤 아이들을 안고 업고, 몇몇은 차에 태워 대피소로 향했어. 처음 나오코 씨가 가족들에게 보냈던 문자 기억나? '아이들을 돌보고 있음'이라던 문자. 대피소에서도 나오코 씨는, 보육원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던 거야.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지구 반대편에 있던 아들이 써 내려간 SNS는, 순식간에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건 물론 일본 방송에까지 다뤄져. 덕분에 엄마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주민들 모두 무사히 건물을 빠져 나올 수 있었지. 정말 재난 속에서 피어난 인류애야. 하지만 사실 나오키 씨 아들에겐,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도 있었대. 이건 아들이 나중에 자신의 블로그에 적은 글이야. 어머니는 계속 복지 시설에서 근무했습니다. 아직 어렸던 자식을 뒤로하고서라도 시설의 아이들에게 곁잠을 재워주던 분. 분명 이번에도 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평온함을 주었겠지요. 솔직히 말해 제 속마음은 이랬습니다. '수많은 아이의 어머니'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전부 내팽개치고 한 명의 어머니로서 무사히 웃으며 돌아와 줘... 왠지 좀 한심하죠? -아들의 블로그 아들의 마음, 이해 돼? 세상 어느 자식이, 엄마를 잃고 싶겠어. 영웅 같은 엄마를 둔 아들이 진심으로 바란 건 그냥 내 엄마가 평범히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던 거야. 그렇게 내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는 사람은 또 있어. 바로 경임 씨야. 마을 사람들의 대피를 돕고,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 유우키 씨는 소식이 없어.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아무리 기다려도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경임 씨의 집엔 이게 도착했어. 마을을 위해 헌신한 유우키 씨를 위한 감사패야. 남편을 포옹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하고 보낸 게 속도 상하고. (남편을) 왜 보냈나 싶기도 하고. 내가 일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나를 지켜야지 왜 남들 지키려고 가냐고 하지 못한 게. 가지 말라고 내가 아무것도 못 한다고 가지 말라고 부탁도 했어야 되는데 못한 것도 많이 속상하고…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남편 하나만 바라보고 일본에 왔던 경임 씨는 그때까지 일본말도 서툴렀대. 그래서 집안의 대소사며, 아이들의 교육을 챙겼던 것도 남편이었어. 그날, 방파제의 수문을 닫으러 가지 않았다면 남편 유우키 씨도 분명 무사했을 거야. 하지만 그는, 의용 소방대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했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희생된 사람은 무려, 1만 6천여 명이었어. 사인은 대부분 익사. 물에 잠긴 면적만 해도 서울의 약 93% 정도야. 피해가 왜 이렇게 컸을까? 그날 미야기현 앞바다에선 해저 산사태가 동시에 벌어졌어. 무려 네 곳에서. 그러니 그 위의 해수면 곳곳은 요동칠 수밖에 없었겠지. 게다가 이곳의 지형도 한 몫했어. '리아스식 해안' 들어봤어? 해안선이 들쑥날쑥 톱처럼 생긴 곳이야. 강력한 파도가 해안의 좁은 곳에 밀려들면 높이가 높아질 수 밖에 없어. 이 날 밀려온 쓰나미의 최대 높이는, 약 40미터. 무려 아파트 15층 높이야. 그 높이에서 강력한 힘으로 떨어진 물은 그야말로 지상의 모든 걸 다 휩쓸고 지나갔어. 그런데 지금까지의 재난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끔찍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때? 재앙은 끝나지 않았어. 일본 최악의 날에서, 지구 최악의 날이 된 그 순간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있어. ▲ 지구 최악의 날 다시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3시 20분으로 돌아가 볼게. 스물일곱 살의 류타 씨는, 다급히 회사로 향하고 있었어. 비번이었지만, 강진의 규모를 봤을 때, 분명 일손이 더 필요할 것 같았거든. 지진의 강도에 따라 '긴급정지'라는 것이 경보로 있는데요. 긴급정지를 하면 꽤 혼잡하고 여러모로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도와주러 가야겠다 싶어서 회사로 향했습니다. - 이도가와 류타 서둘러 도착한 회사 내부는, 이미 엉망이야. 집기는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고, 경보는 연신 울리고 있어. 동료들의 안부를 묻던 그때였어. 쓰나미가 건물을 강타해서 전기가 끊어진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는 아니었어. 비상발전기가 가동돼서 금세 전기가 돌아왔거든.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건, 8분 뒤야. 또 쓰나미가 건물을 덮친 거야. 모니터 표시등이 타다다다다닥 꺼지더니, SBO다! 외치는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 SBO는 Station Black Out(스테이션 블랙 아웃). 모든 전력이 상실됐다는 의미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류타 씨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 왜냐면 그의 직장인 이곳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였거든. 이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축소해 만든 모형이야. 1971년 가동을 시작한 도호쿠 지방 최대의 원자력 발전소. 무려 1100만 가구가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이곳엔, 총 여섯 동의 원자로가 설치돼 있었어. 해안 바로 옆에 있는 1,2,3,4호기, 조금 떨어져 있는 5,6호기야. 그런데 이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가 끊긴다는 게 어떤 의미일 거 같아? 이곳의 원리는, 간단해. 핵분열을 하면, 대략 2000도 정도의 열이 발생하는데, 이걸 냉각하지 않으면 연료봉을 감싸고 있는 금속이 녹으면서, 물과 반응해 수소가 만들어져. 그렇게 되면 끔찍한 대폭발로도 이어질 수 있어. 그러니 전력 상실로 펌프가 멈추고 물 순환이 안 되는 지금. 류타 씨의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 지금 제일 필요한 건, 물 순환을 도울 전력, 아님 물이라도 있어야 돼. 직원들은 도쿄전력 본사에 지원을 요청했어. 하지만 비상용 발전차가 오지 않아. 도로 상황 봤지? 곳곳은 이미 침수되고 끊어졌어. 그나마 온전한 길 위엔 대피하는 사람들로 가득해. 결국 저녁 7시 30분 무렵, 원자로 안에 있던 물이 증발해. 냉각이 안되니 연료봉이 녹기 시작해. 그리고 3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 36분. 결국 1호기가 폭발했어. 그때도 중앙제어실에 있었습니다. 지진인가 싶었는데 '이건 지진 아니야, 폭발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여기에 있다가는 확실히 죽겠구나, 그런 공포감이 있었습니다. - 이도가와 류타/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 운전원 근데 이 얘기에서 이상한 거 없어? 폭발을 막기 위해서는 물로 원자로의 열을 식혀야 해. 그런데 여긴 바다 앞이잖아. 보이는 건 다 물이야. 왜 바닷물을 냉각수로 쓰지 않은 걸까? 그 이유가 충격적이야. 1호기가 폭발한 다음날인 3월 13일 오후 8시. 원전의 운영사인 도쿄전력 본사 관계자와 현장 소장이 화상회의를 해. 도쿄본사: 최대한 버티면서 담수 지원을 기다리는 건 어때요? 소장: 안됩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됩니다. 도쿄본사: 하지만 담수를 쓰는 편이 부식이 안되잖아요? 바닷물을 원자로에 집어넣는 순간, 거액을 들여 만든 원자로는 폐기해야 되거든. 그러니까 담수를 기다리자는 거야.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다음날인 3월 14일. 3호기가 폭발해. 15일에는 2호기가 손상되고, 점검 중이었던 4호기 마저 폭발해. 전 지구적인 재앙이 시작된 거야.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은 대기로, 토양으로, 바다로 퍼져갔어. 이제 원전 주변에 사람이 살아선 안돼. 애초에 비상 전력이 가동돼, 냉각수 순환이 멈추지 않았다면? 비극은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문제는 더 있었어. 원전 주변을 둘러싼 이 방파제의 높이는 5.7미터.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으로 밀려온 쓰나미 높이는 15미터가 넘어. 무엇보다 유감스러운 건, 지진 발생 3년 전인 2008년 도쿄전력 내부에서도, 대형 쓰나미가 올 가능성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한 적이 있다는 거야. 시뮬레이션 결론은 '쓰나미가 올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최소 8미터에서 최대 15.7미터가 예측됐어. 실제와 유사하지? 그렇다면 조치가 있었을까? 아니. 조치는 없었어. 시뮬레이션은 시뮬레이션일 뿐, 진짜로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봤거든. 2012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조사위원회에서는 이런 결론을 내렸어. '이 사고는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현상에서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명백히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이다.' 그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도쿄전력 전 경영진 세 명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어. 그리고 지난 2025년 3월 5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선고공판이 열렸지.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본 사고의 결과가 매우 중대하고, 되돌릴 수 없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 통념을 반영했을 것으로 보이는 법령상의 규제와 그에 따른 국가의 지침, 심사 기준 등의 체계가, 절대적 안전성의 확보까지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상의 이유로, 피고인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판결문 모두, 무죄야. 원전을 설계할 당시의 기준으로 봤을 때, 위법이 아니고, 천재지변을 완벽하게 예측해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니, 개인의 책임이 아니란 거야. ▲ 마을 촌장의 선택 그렇다면, 도쿄전력의 선택과는 달랐던, 또 다른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일본 이와테현 해안에 자리한 소도시, 후다이 마을이야. 1947년, 이곳엔 새로운 촌장이 부임하게 돼. 그의 이름은 와무라 고토쿠. 바로 이 분이야. 고토쿠 촌장은 35억 6천만 엔, 당시 한국돈으로 약 120억 원을 들여서 마을 해안에 수문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해. 주민들 반응은 안 좋았어. 주민들의 반대와 분노가 하늘을 찔렀대. 예산낭비라는 거야. 하지만 그 후에도 주민들과 지자체를 끈질기게 설득한 고토쿠 촌장은 1984년 결국, 높이 15.5미터, 길이 205미터의 수문을 완공해. 그는 왜 이토록 고집스레 수문 건설을 강행한 걸까? 후다이 마을은 1896년과 1933년에도 지진과 쓰나미로 수백 명이 숨졌던 곳이야. 그런데 1933년의 대형 쓰나미에서, 한 청년이 극적으로 살아남았어. 바로 고토쿠 촌장이었어.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대재난의 그날. 후다이 마을에도 거대한 쓰나미가 닥쳐. 이곳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꼬꼬무'가 후다이 마을을 직접 다녀와 봤어. 저쪽에 돌들이 있는데 지금은 정돈돼 있지만 실은 이게 쓰나미가 가져온 거예요. 보시는 것처럼 이 방조제 높이는 해발이 15.5미터인데 8미터 추가해서 23.6미터라고 돼 있죠? 저기까지 쓰나미가 왔어요. -다치우스 마사루/ 후다이 마을 총무과 소방 방재 계장 그럼,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다이 마을의 사망자는 몇 명이었을까? 어선을 살피러 방파제 밖으로 나갔던 주민 한 명이 안타깝게도 실종됐지만, 나머지 주민들 중에 사망자는 0명. 수문 안쪽의 건물들도 전혀 피해가 없었어. 후다이 마을 남쪽에 요다 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궤멸 상태가 됐어요. 인근 마을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후다이 마을만은 정말 기적이었다고 많이들 말하죠. -다치우스 마사루/ 후다이 마을 총무과 소방 방재 계장 1997년, 고토쿠 촌장은 수문의 쓰임새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 그리고 대지진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촌장의 뜻을 알게 된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그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대. 바로 이거야. &<두 번 있었던 재해는 세 번 있어서는 안 된다&> 안전에 있어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고토쿠 촌장의 신념을 적은 거야. 천재지변의 가능성을 대비하지 않았던 도쿄전력의 판단과 비교하면 어때?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동일본 대지진 한 달 뒤, 경임 씨는 여전히 영사관에서 제공한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었어. 그런데 아랫배가 뭉치듯이 아프더니 다리 사이에서 주르륵 흐르는 건 피야. 경임 씨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어. 다행히 아기는 좀 작긴 하지만 건강하대. 얼마 뒤 경임 씨는 병원에 입원을 했어. 출산일이 가까워졌거든. 그리고 다음날, 넷째 에리카가 태어났어.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잘 견뎌준 아기가 대견하면서도, 경임 씨는 마음 한구석이 아리기만 했대. 애 낳고 나면은 바로 남편이 오고, 먼저 태어난 아기들이 오고 그러는데. 이번은 없었기 때문에 병실에서 굉장히 많이 울었던 거 기억이 나요. 애 낳고 나서 이제 큰애들도 다 따로 있고 남편도 없고. 이제 아기랑 저만 있어서 많이 아기한테도 미안하고 그래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곁에 있었다면, 한달음에 달려와 새 생명을 안아줬을 남편이야. 커다란 나무 같았던 유우키 씨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대. 자꾸만 아빠를 찾는 아이들에게, 뭐라 답해줘야 할지 몰랐던 그 해 크리스마스 무렵. 경임 씨에게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와. 홍경임 씨, 남편을 찾았습니다. 집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해안에서, 남편 유우키 씨의 유해가 발견된 거야. 마침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나 한없이 슬프면서도, 늦게라도 가족 곁으로 돌아온 남편이 경임 씨는 참 고마웠대. 남편한테는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고 제가 했었어요. 살아 있을 때도. 저랑 결혼해 줘서 감사하다고 저한테 예쁜 애들 낳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많이… (울컥) 지금도 아빠 닮은 애들 넷씩이나 있어서 제가... 항상 고맙고 지금도 사랑해…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바로, 15년 전 어제였어. 해마다 일본에서는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이 되면 묵념을 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야. 하지만 그만큼이나 더 중요한 게 있어. 기억이야. 피해가 컸던 지역 곳곳을 지나다 보면 눈에 띄는 게 있어. 바로 이거야. 이것의 목적은 뭘까? 쓰나미가 밀려왔을 당시 침수됐던 높이를 기억하고, 혹시 모를 다음 재난의 기준으로 삼는 거야. 참 끔찍했던 그때의 참사를 잊어가고 있고 그 당시를 모르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살아남은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고 계속 전해 가야 하는 일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다치우치 마사루 / 후다이 마을 총무과 소방 장재 계장 경임 씨는 아직도 빗물에 물웅덩이가 흔들리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대. 그럼에도 '꼬꼬무'와의 인터뷰에 응한 데는, 이유가 있어. 개인의 경험은 쓰라린 고통일 뿐이지만, 그 기억을 공유하는 건, 사람을 구하는 가치가 된다는 거야. 생존자들은 그게, 자신들이 살아남은 이유라고 믿는대. 얼마 전, 일광 씨가 다시 가모지구를 찾았어.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마을엔 이제, 추모비만이 남아 있어. 아내이자 엄마인 마유코 씨. 그녀가 가족들에게 잊혀진 순간은 없었어. 아이들 몇 학년 됐다, 잘 크고 잘 있다, 아들 인기 많다, 여자 친구 많다… 그런 식으로. 입학식, 졸업식, 시합에서 우승했을 때, 쟤들 세 명 다 운동을 잘해가지고. 그때 (아내가) 옆에서 같이 응원했으면, 같이 보러 왔었으면, 졸업식에도 옆에 같이 사진 찍어줬으면 좋죠. 그런데 옆에 없다는 빈자리가 그때가 제일 많이 생각나죠.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생각났어요.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다른 애들은 엄마가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지 미래/ 마유코 씨의 첫째 딸 저도 운동회 같은 걸 하면 엄마가 없어서 슬프고 외로웠어요. -구지 희로나/마유코 씨의 막내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빈자리. 2011년 3월, 쓰나미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아내를 찾아다녔던 일광 씨는, 딱 하나만을 상상했대. 그냥… 가족 다섯이서 그냥 밥이나 한 끼... 그냥 행복한 가족이라 그럴까. 평범하게...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가족들이 함께 식탁에 모여 밥을 먹는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하루야. 우린 종종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고 살곤 하지. 그날, 어디선가는 졸업식이 진행 중이었고, 누군가는 장을 보고 있었을 거고, 또 다른 이는, 퇴근을 앞두고 약속을 잡고 있었을지도 몰라. 2011년 3월 11일은, 그런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의 안녕이 무너진 날이었어. 2만여 명의 사람들은 아직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고, 2천여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야. 그런데 지난해, 할머니댁에 갔다가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진 여섯 살, 나쓰메의 유해가 14년 만에 가족들에게 전해졌어. 나쓰메의 부모님은 무슨 얘길 했을까. 지난 시간 동안 너무도 하고 싶었다는 그 평범한 한마디를 끝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칠까 해. 잘 왔어. 돌아와줘서 고마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도경수, '하이앤드' 스타 라운지 오픈…팬과 '1:1 DM' 밀착 소통 도경수, '하이앤드' 스타 라운지 오픈…팬과 '1:1 DM' 밀착 소통 등록일2026.01.06 배우 도경수가 팬들과의 1:1 직접 소통을 새로운 공간에서 시작한다. 도경수는 오는 1월 6일, 배우 전용 팬 소통 플랫폼 하이앤드(HI&&)를 통해 전용 라운지와 DM(다이렉트 메시지) 서비스를 오픈하고 팬들과 보다 가까운 교감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오픈은 도경수가 팬들과의 소통 방식을 확장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보다 밀도 있는 교감을 이어가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하이앤드 DM 오픈을 통해 도경수는 팬들과 직접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와 감정을 보다 편안한 방식으로 나눌 계획이다. 2014년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시작으로 영화 '카트', '형', '스윙키즈', '신과 함께' 시리즈와 KBS2 드라마 '진검승부' 등 다양한 작품에서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 온 도경수는 최근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를 통해 데뷔 이후 첫 본격 악역에 도전하며, 색다른 연기 변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뿐만 아니라 그룹 엑소(EXO) 활동과 더불어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이어왔다. 지난해 첫 솔로 정규 앨범 'BLISS'를 발매하고 아시아 투어를 진행하며 팬들과 만난 도경수는 최근 시상식 무대를 통해 그룹 엑소의 저력을 또 한번 입증함으로써 팬들에게 선물 같은 무대를 선사한 바 있다. 이어 오는 19일 발매되는 엑소 정규 8집 'REVERXE' 로 그룹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도경수의 DM 서비스 및 전용 라운지 공간은 1월 6일부터 하이앤드 앱을 통해 이용 가능하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추영우X신시아, 멜로로 성탄절 흥행 도전…'오세이사', 12월 24일 개봉 추영우X신시아, 멜로로 성탄절 흥행 도전…'오세이사', 12월 24일 개봉 등록일2025.11.25 전 세계에서 130만 부 이상 판매된 이치조 미사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12월 24일(수) 크리스마스 이브 개봉을 확정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매일 하루의 기억을 잃는 서윤(신시아)과 매일 그녀의 기억을 채워주는 재원(추영우)이 서로를 지키며 기억해 가는 청춘 멜로. 전 세계 130만 부 판매 신화이자 로맨스 소설 베스트셀러의 새로운 역사를 쓴 동명의 일본 소설을 한국 감성으로 완벽하게 영화화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오는 12월 24일(수) 크리스마스 이브 극장 개봉을 확정했다. 함께 공개된 첫 번째 포스터와 첫 번째 예고편은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만의 설레면서도 아련한 감성을 제대로 담아내어 기대감을 더한다. 노을이 지는 바닷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재원(추영우)과 서윤(신시아)의 모습은 비주얼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매일 기억을 잃는 서윤과 그녀의 기억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재원의 상황은 내일의 너도 다시 사랑할 거야 라는 포스터 속 문구와 어우러져 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하면서도 설레는 감정을 동시에 전한다. 함께 공개된 예고편 역시 두 사람의 첫 시작부터 두 사람이 함께 쌓아 가는 다정한 추억의 장면들을 담고 있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더한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로 2025년 청룡영화상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김혜영 감독의 신작이다. 추영우, 신시아 대세 배우들의 캐스팅과 장편 영화 데뷔와 동시에 2024년 제74회 베를린영화제 수정곰상 제너레이션 K플러스 작품상, 46회 청룡영화상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며 국내외에서 모두 인정받은 김혜영 감독의 조합으로 올겨울 단 하나의 청춘 멜로로 예비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12월 24일(수)부터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청룡영화상 휩쓴 '어쩔수가없다'…최우수작품상 등 6관왕 청룡영화상 휩쓴 '어쩔수가없다'…최우수작품상 등 6관왕 등록일2025.11.20 ▲ 배우 손예진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KBS홀에서 열리는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에 올랐습니다. '어쩔수가없다'는 19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손예진), 감독상, 남우조연상(이성민) 등 6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습니다. 현재 이병헌과 함께 미국 LA 아메리칸 시네마테크에서 열리는 회고전에 참석 중인 박 감독의 수상소감은 이성민이 대리 낭독했습니다. 박 감독은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제가 처음 소설 원작을 읽었던 20년 전부터 줄곧 품어온 꿈이 이뤄진 결과 라면서 결국 이 이야기를 한국 영화로 만들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고 전했습니다. 이어 처음 볼 때는 단순하고 코믹하고, 되풀이해 볼 때마다 점점 더 복잡하고 비극적으로 느끼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면서 청룡상 심사위원분들이 이 점을 알아봐 주셨다고 믿고 고마운 마음으로 상을 받겠다 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박 감독이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받은 건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3년 '올드보이', 2022년 '헤어질 결심' 이후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손예진·현빈 부부는 나란히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부부가 함께 주연상을 받은 건 46회를 맞은 청룡영화상 역사상 처음입니다. '어쩔수가없다'에서 실직한 가장 만수의 아내 미리 역을 연기한 손예진은 2008년 '아내가 결혼했다'에 이어 두 번째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손예진은 제가 27살에 청룡 여우주연상을 처음 수상했다 며 지금 마흔 중반이 넘어가기 직전인데, 10년이 훌쩍 지나서 이렇게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어 결혼하고 아이 엄마가 되면서 많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며 좋은 어른이 되고 싶고, 계속 발전하면서 좋은 배우가 되겠다 고 덧붙였습니다. 남우주연상은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역을 맡은 현빈이 수상했습니다. 현빈은 제가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것, 이런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수많은 분 덕분 이라며 이 상에 대한 감사를 먼저 그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수상소감을 통해 서로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습니다. 현빈은 존재만으로도 너무 힘이 되는 와이프 예진 씨와 우리 아들, 너무 사랑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고 말했고, 손예진은 제가 너무 사랑하는 두 남자, 김태평 씨와 우리 아기 김우진과 이 상의 기쁨을 나누겠다 고 화답했습니다. '어쩔수가없다'에서 주인공 만수(이병헌)의 재취업 경쟁자이자 제거 대상이 되는 구범모 역을 맡은 이성민은 남우조연상을 가져갔습니다. 여우조연상은 '히든페이스'의 박지현이 받았습니다. 박지현은 첼리스트이자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인 미주 역을 맡아 송승헌과 조여정 사이에서 열연을 펼쳤습니다. 신인남우상은 '악마가 이사왔다'의 안보현이, 신인여우상은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의 김도연에게 각각 돌아갔습니다. 손예진·현빈 부부는 박진영, 임윤아와 함께 나란히 청정원 인기스타상도 수상했습니다. 올해 시상식은 뮤지컬 무대를 떠오르게 하는 가수 이찬혁의 축하공연으로 시작됐습니다. 시상식 진행은 지난해에 이어 한지민과 이제훈이 맡았습니다. 다음은 제46회 청룡영화상 수상자·수상작 명단입니다. ▲ 최우수작품상 = 어쩔수가없다 ▲ 여우주연상 = 손예진(어쩔수가없다) ▲ 남우주연상 = 현빈(하얼빈) ▲ 감독상 = 박찬욱(어쩔수가없다) ▲ 여우조연상 = 박지현(히든페이스) ▲ 남우조연상 = 이성민(어쩔수가없다) ▲ 청정원 인기스타상 = 박진영, 현빈, 손예진, 임윤아 ▲ 청정원 단편영화상 = 김소연(로타리의 한철) ▲ 음악상 = 조영욱(어쩔수가없다) ▲ 미술상 = 이나겸(전,란) ▲ 기술상 = 조상경(어쩔수가없다) ▲ 편집상 = 남나영(하이파이브) ▲ 촬영조명상 = 홍경표, 박정우(하얼빈) ▲ 각본상 = 김형주, 윤종빈(승부) ▲ 최다관객상 = 좀비딸 ▲ 신인감독상 = 김혜영(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신인여우상 = 김도연(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 신인남우상 = 안보현(악마가 이사왔다) (사진=연합뉴스)
[TV랩]처절한 지창욱·악인이 된 '절친' 도경수X이광수…'조각도시', 강렬 복수극의 탄생 [TV랩]처절한 지창욱·악인이 된 '절친' 도경수X이광수…'조각도시', 강렬 복수극의 탄생 등록일2025.11.03 '디즈니의 아들' 지창욱이 다시 한번 디즈니+와 손잡고 돌아왔다. 그가 '조각도시'에서 '악인' 도경수, 이광수에 맞서 처절한 복수극을 펼친다. 디즈니+ 새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극본 오상호, 연출 박신우) 제작발표회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배우 지창욱, 도경수, 김종수, 조윤수, 이광수와 연출을 맡은 박신우 감독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당부했다. '조각도시'는 평범한 삶을 살던 태중(지창욱)이 어느 날 억울하게 흉악한 범죄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고, 모든 것은 요한(도경수)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향한 복수를 실행하는 액션 드라마를 그린 작품이다. 오상호 작가가 집필한 영화 '조작된 도시'가 시리즈로 새롭게 만들어지며 확장된 세계관을 공유하는데, 지창욱은 영화 '조작된 도시'의 권유 역에 이어 '조각도시'의 태중 캐릭터로 두 작품 모두에서 주연으로 활약한다. 박신우 감독은 지창욱을 시리즈에서도 주연으로 섭외한 것에 대해 지창욱은 이 작품이 드라마화 된다고 했을 때, 대본이 나오기도 전부터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오랜 기간 대본이 나오고 투자가 결정되기까지 끝까지 기다려줬고 이 작품에 애정을 보여줬다 며 지창욱의 주연 캐스팅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창욱은 '조작된 도시'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다른 배우는 생각나지 않았다 라고 믿음을 드러냈다. 지창욱은 두 작품이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만 굳이 염두에 두고 연기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전에 제가 했던 '조작된 도시'의 권유라는 인물과 '조각도시'의 태중이란 인물을 매칭시키지 않고 연기했기 때문에, 또 다른 캐릭터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라며 주변에 구성된 인물들이 아예 다른 새로운 매력의 인물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와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라고 설명했다. 지창욱은 그동안 디즈니+가 선보인 '최악의 악', '강남 비-사이드' 등에서 활약하며 '디즈니의 아들'로 불려 온 배우다. 그가 다시 한번 디즈니+의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그가 '조각도시'에서 연기한 평범한 청년 박태중은 어느 날 갑자기 살인 누명을 쓴 후 교도소에 가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뒤바뀐 인물이다. 지창욱은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의 내면을 밀도 있게 연기하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고, 맨몸 액션부터 오토바이, 카 레이싱까지 다채로운 액션들을 직접 소화해 냈다. 감정의 낙폭이 커서 연기로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터. 지창욱은 이번에는 캐릭터보다는, 상황에 빠져있는 감정들을 표현하는게 목표였다. 태중이란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기보단, 태중이가 처한 상황 안에 놓여서 그 감정들을 온전히 잘 표현해 내는 거, 그걸 시청자분들이 잘 따라올 수 있게끔 만드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라고 말했다. 도경수는 극 중 상위 1%만을 위한 특별한 경호 서비스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 안요한 역을 맡았다. 증거를 조작해 사건의 진범을 새롭게 설계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악한 인물로, 도경수는 요한의 냉혹하고 무자비한 매력을 실감 나게 열연하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얼굴을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 캐릭터를 통해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도경수는 어떻게 하면 요한이 섬뜩해 보일까 생각을 많이 했다 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헤어, 의상 등에 신경 썼다며 머리를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하고,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한 머리다. 머리 하는데 4시간 이상이 항상 걸렸다. 의상팀과 많이 얘기해서 요한의 캐릭터가 잘 보이기 위해 깔끔한 수트, 화려한 걸 많이 입었다 라고 설명했다. 이어 요한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직접적으로 경험을 해볼 수가 없으니 예전부터 봐왔던 영화나 다큐를 보며, 그런 성향이 있으신 분들을 상상하며 연기했다 라고 덧붙였다. 지창욱은 도경수가 연기한 요한 캐릭터에 대해 목표이자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굉장히 나쁜 사람 이라고 평했다. 반대로 도경수는 지창욱의 태중 캐릭터에 대해 바퀴벌레 같은 존재다. 생명력도 길고 끈질기고, 계속 밟는데도 살아서 기어 올라오는 존재 라고 전했다. '조각도시'는 인생을 조각당한 남자 태중과 사건을 설계하는 조각가 요한, 이런 두 사람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과정 속 짜릿한 복수극을 담는다. 이 작품이 이목을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연예계 절친으로 유명한 도경수와 이광수가 함께 악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광수는 극 중 권력과 돈, 모든 것을 가진 요한의 VIP 고객 중 하나인 백도경 역을 맡았다. 이광수는 이번 악역에 대해 대본을 보면서 제 캐릭터의 부분을 보고, 대본에 침을 뱉을 정도로 최악의 인물이 아닌가 싶다. 제가 대본을 보면서도 너무 싫었다 며 볼 때마다 짜증 나고 화가 나는 포인트들을, 보시는 분들께 잘 전달하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라고 역대급 악역의 탄생을 예고했다. 도경수는 이광수와의 연기 호흡에 대해 묻자 평소에 광수 형이 자기주장이 강하고 동생들을 힘들게 하는 그런 입장 이라고 몰아가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도경수는 이내 작품 할 땐 많이 다르다. 광수 형이 현장에 있을 때 엄청 많이 의지가 됐다 라며 진심을 전했다. 이어 형을 보며 저도 많이 배웠다. 그건 '괜찮아, 사랑이야' 할 때부터 형이 현장에서 연기하는 거나, 주변 분들 대하는 태도나, 그런 걸 보며 저도 많이 배웠다 라고 설명했다. 이광수는 도경수와의 연기 호흡에 대해 워낙 친해서 현장에서 같이 연기할 때 내가 쑥스럽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현장에서 만나니 너무 좋았다 며 그런 걱정 전혀 없이, 경수랑 창욱 씨 덕에 제가 하고 싶은 거 다 했다. 정말 편했다. 어떻게 하든 잘 받아주고 좋아해 주고 하니까, 현장에 놀러가듯 가서, 제가 준비한 걸 다 하고 돌아왔다 라고 말했다. 특히 이광수는 악역에 처음 도전한 도경수의 집중력을 칭찬했다. 이광수는 평상시에 편하게 만나고, 같이 밥도 먹고 그러다가, 현장에서 경수 씨랑 처음 만나는 장면을 찍는데 '얘가 도경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소 보던 모습과 너무 달랐다. 현장에서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많이 배웠다 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어 그런 모습 때문에 많은 분들이 경수 씨를 좋아하지 않나 싶다. 일할 때와 아닐 때가 정말 다른 게, 현장에서 보면서 이게 경수 씨의 큰 힘이구나 생각했다 라고 감탄했다. 도경수 역시 이광수와의 연기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친하니까 같이 눈을 보고 연기하면 조금 오글거릴 수도 있는데, 광수 형이 진짜 백도경이란 인물 자체를 너무 표현을 잘해줘서 오히려 오글거리지 않고 몰입이 잘 됐다 라고 전했다. 김종수는 태중의 생명의 은인 노용식 역을 소화한다. 교도소 복역 중에 만난 태중에게 묘한 연민을 느끼고, 그의 복수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인물이다. 김종수는 다양한 장르가 '조각도시' 안에 많이 섞여 있다.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고, 전작을 함께 했던 지창욱 배우가 한다고 해서 믿고 하게 됐다 며 작품과 지창욱에 신뢰감을 드러냈다. 그는 촬영장에서 지창욱의 '정신적 지주'로 통했다. 김종수는 태중이란 인물이 가진 감정의 폭이 상당히 크다. 워낙 열심히 하는 배우라 고민도 많았을 텐데,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서 들어줬다 며 지창욱을 격려했다. 노용식의 딸로 야생초처럼 자라 까칠하지만, 태중의 복수라는 목표에 흥미를 느끼고 그를 돕는 조력자 노은비는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배우 조윤수가 맡았다. 조윤수는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부터, 몰입력도 좋았고 속도감도 빨라서 재밌게 봤다. 특히 은비 역할이 매력적이어서 꼭 합류하고 싶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함께 해서 좋았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대해 조윤수는 제가 생각했을 때 은비는 사람을 좋아한다. 상처받았던 기억도 있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트러블도 있어서 겉으론 가시를 세우고 있는데, 속은 여리고 아이 같은 인물이다. 감정의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오랜만에 만나고, 특히 태중을 만나면서 처음엔 까칠하기만 했던 사람이 점점 여려지고 순해지는 모습을 담기 위해 고민 많이 했다 라고 설명했다. '조각도시'는 '모범택시' 시리즈로 통쾌한 범죄오락 복수극의 대명사로 불리는 오상호 작가의 집필로, 탄탄한 서사와 함께 뜨거운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시원한 액션신이 기대를 모은다. 박신우 감독은 수많은 컨셉의 액션신이 나오는데, 무술감독, 배우들과 상의를 많이 해서 현장감을 잘 느낄 수 있도록 카메라의 종류도 다양하게 많이 썼다. 또 태중은 몸을 사리지 않으며 직접 액션을 많이 소화해 줘 훨씬 리얼한 액션이 나왔다. 매 챕터, 매 회마다 새로운 액션들을 보며 감상할 수 있을 거다 라고 자신했다. 통쾌한 복수극을 예고하고 있는 '조각도시'는 오는 5일(수) 4개의 에피소드를 공개한 후, 매주 2개씩 공개되며 총 12개의 에피소드로 만나볼 수 있다. [사진=백승철 기자]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