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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이수근, '이중간첩' 몰려 사형 당했는데…49년 만에 밝혀진 충격적 진실 [꼬꼬무 찐리뷰] 이수근, '이중간첩' 몰려 사형 당했는데…49년 만에 밝혀진 충격적 진실 등록일2026.02.20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9일 방송된 '붉은 첩자 : Made in 1969'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김성령, 황재열, 이주안이 출연했습니다. (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구치소 무연고자 무덤에 잠든 사람 여기는 깊은 산속.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곳에는 비석이 여러 개 세워져 있어. 여기는 바로 '재소자 공동묘지'야. 이쪽으로 유골을 수습해서 합동 분묘를 만든 상태입니다. 대부분 서울구치소 쪽에서 온 분들입니다. 276구가 여기 묻혀 계십니다. -홍기석, 묘지관리소 직원 서울구치소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공동묘지인데, 한 무덤에는 무려 276구의 유골이 묻혀있대. 연고가 없어서 합장된 이들의 무덤이거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저 무덤 안에 있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가 나타났다 하면 기자들이 바글바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 졌어. 이 사람을 보기 위해 무려 10만 명이 모인 적도 있었어. 심지어 이 사람의 이야기가 '고발'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해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차지했어. 그런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유명한 사람이, 구치소에서 연고도 없이 사망해 공동묘지에 묻혀있다는 거야.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지금부터 이 사람의 사라진 이름을 찾으러, 59년 전 과거로 시간을 돌려볼게. 이 이야기 끝엔 처음 공개되는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어. ▲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일어난 일 때는 1967년 3월 22일 오전 8시. 서울 태평로에 있는 신문회관 앞이야. 버스 한대가 서더니 30명 정도 되는 기자들이 올라타. 그리고 입구에서 누군가 기자들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고 출입증을 검문해. 그날 버스를 탔던 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 판문점 본회의가 있을 때 그걸 취재하는 기자를 '판문점 출입 기자'라고 하는데, 한 신문사에 한 사람씩 지정돼 있었어요. 맥아더 사령부에서 출입 기자 심사를 진행해서 신원 조회를 합니다. 당시 미8군 출입증이 있었어요. 그걸로 판문점을 출입합니다. 제가 신문기자 하면서 10여년 가까이 나갔습니다. 저 나름대로 터줏대감 역할을 하다시피 했죠. -신경식, 당시 판문점 출입 기자 남과 북이 직접 마주치는 유일한 공간 판문점.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야. 그곳에서 열릴 회의를 취재하러 가는 길이야. 1967년 당시 판문점을 옮겨 왔어. 지금은 남북 모두 큰 건물들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북한 측에는 판문각이, 남한측에는 자유의집이 단촐하게 있고. 그 사이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들이 있었어. 그리고 그 사이에 군사분계선이 존재했어. 절대 넘을 수 없는 남과 북의 경계선이야. 그런데 놀랍게도, 1967년 당시 이 판문점 안에서는 남북 관계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대. 59년 전 판문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이미지와 완전 다른 곳이었어. 이 사진은 남한 기자들하고 북한 기자들이 같이 의자에 앉아서 잡담하고 있는 거예요. 모자 쓰고 있는 게 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나 외에는 다 북한 기자들이에요. 그때는 음식도 나눠 먹고 또 담배도 나눠 피우고, 자주 얘기도 나누고 그랬죠. 남북 기자들 간에는 우애가 돈독했었어요. -신경식, 당시 판문점 출입 기자 신 기자가 버스를 타고 취재차 판문점에 갔던 3월 22일. 오전 10시에 판문점에 도착해 가장 먼저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로 향해. 아직 회의 시작 전이라 창문 너머로 두리번두리번 확인하고 있는데, 누가 옆에 쓱 나타나 어깨를 툭 치더래. 검은 안경에 바바리 코트를 입은 남자였어. 그때 북한 기자들도 똑 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왔어요. 그분이 나보다 한 스무살 위니까 제가 '오셨어요?' 말했습니다. -신경식, 당시 판문점 출입 기자 북한 측 기자였어. 늘 진지한 표정에 깊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어. 드디어 오전 11시 정각. 회의가 시작됐어. 회의장 내부에는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만 들어갈 수 있어서 기자들은 밖에 있어야 했어. 창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거야. 그런데 오늘 회의, 북한 측과 유엔 측의 신경전이 장난 아니야. 정전협정 위반을 주제로 끝없는 토론 중이라 결론이 안나. 그날따라 영 기삿거리도 없이 시간만 흘러. 결국 오후 4시가 지날 무렵, 남측 기자들은 철수하기로 했어. 신 기자도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어. 그렇게 신문사에 도착한 그때, 부장님이 뛰어 내려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너 뭐하는 거야! 현장에 있어야지! 지금 북한 기자 하나가 판문점에서 탈출했어! 지금 헬기 타고 용산 미군기지로 오는 중이라니까 너 빨리 가봐! 부랴부랴 신 기자가 미군기지 헬리콥터장에 도착한 그 순간, 헬리콥터가 천천히 착륙하고 누군가 내리는데, 얼굴을 본 신 기자가 깜짝 놀라. 낮에 판문점에서 같이 얘기했던 사람이 내리니까. 내가 붙잡고 반갑다고 얘기를 했더니, 내 손을 꽉 잡더라고. 캄캄한 밤에 혼자서 헬리콥터에 실려 왔을 때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다음날 신문에 사진이 크게 실렸죠. -신경식, 당시 판문점 출입 기자 오늘 아침에 인사를 주고받은 그 북한 기자야. 북한에서 넘어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그 사람은, 조선중앙통신사의 부사장, 43세 언론인 이수근 씨였어. 조선중앙통신사는 북한의 유일한 국영 통신 언론사로, 북한 뉴스를 독점하는 곳이야. 거기의 부사장이니, 북한 정책에 영향력 있는 최고위급 인물이야. 그런데 그런 인물이 탈북했다? 이건 특종이야. 근데 아무리 판문점에서 기자들의 왕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북한군 초소와 차단기, 철조망과 삼엄한 경비들을 뚫고, 어떻게 이수근은 안전지대인 유엔전진기지까지 도착했을까. '꼬꼬무'는 몇 달간 취재 끝에 미국으로 날아가서 59년 전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어. ▲ 이수근의 판문점 탈출기 테리는 군사경찰(MP) 하사였습니다. 유엔군에서 운전병으로 일했습니다. 저는 그의 동생입니다. 1967년 3월 22일 그날 모든 사건이 일어났어요. 이수근 씨가 차에 뛰어들어서 북에서 남한으로 가고 싶어 했을 때, 그들은 운전병 테리에게 최대한 빨리 출발하라고 말했고 테리는 전속력으로 도망쳤어요. 두 명의 북한군이 총을 쏘고 있었습니다. -신디 맥아넬리, 故 테리 맥아넬리 하사 여동생 다시 시간을 돌려 3월 22일 오후 4시 30분. 한국 기자들이 판문점에서 철수한 뒤야. 회의장 내부에서는 여전히 열띤 회의가 한창이야. 북한 측 대표가 언성을 높이던 그때, 유엔군 병사 한 명이 회의장으로 들어와. 그리고 유엔 대표 앞에 은밀하게 쪽지 한 장을 내밀었어. 그 쪽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어. 북한 기자 1명이 자유를 찾겠다고 요청 해 왔음. 이 쪽지 속 북한 기자가 바로 이수근 씨야. 유엔 군에게 탈출을 도와달라 요청한 거지. 회의가 끝나기 전에 수근 씨가 찍힌 당시 사진이 있어. 쪽지를 받은 유엔 측 대표는 조용히 답장을 썼어. 그 북한 기자를 남한으로 데려가라 라고. 대표의 지시를 받은 유엔군은 즉시 비밀 작전을 시작해. 본회의장 앞으로 차량 대기. 시동 걸고 뒷문은 열어둔다. 그리고 북한 기자가 올라타면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린다. 곧 고급 세단 3대가 회의장 앞으로 접근해. 그런데 갑자기 북한 측에서 경비를 강화해.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걸까? 만약에 발각돼 총격전이 벌어지면,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야. 오후 5시 20분, 양측의 마지막 발언이 끝나고, 유엔측 대표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회의장을 나와. 그리고 3대의 차 중 맨 앞 차에 올라타. 그렇게 첫번째 차량이 출발하고, 두번째 차량 뒷좌석에 또 다른 유엔측 사람이 올라 타려는데, 열려있는 뒷문으로 수근 씨가 황급히 뛰어들어. 그 순간, 북한 군사경찰인 경무원 두 명이 총을 뽑으며 달려와. 일촉즉발의 상황이야. 바로 그때 보조석에 탔던 유엔군 중령이 운전병에게 외쳐. Move! Move! Move! Rush!!!!(움직여! 움직여! 움직여! 달려!!!) 운전병 테리는 즉시 출발했어. 그 순간, 북한 경무원들이 권총을 쏘기 시작해. 테리는 힘껏 엑셀을 밟았어. 그렇게 회의장에서 300m쯤 도망쳤을까. 이번엔 북한군 초소가 보여. 막 연락을 받은 북한 초소병이 차단기를 내리고 있어. 현재 차량 속도는 시속 120km 정도야. 이대로 가면 무조건 차단기와 충돌해. 이대로 붙잡히면, 뒷자리에 탄 수근 씨의 목숨은 보장 못 해. 테리는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졌어. 보조석에 있는 중령은 계속 달려! 라고 소리쳤어. 테리는 그대로 차단기를 향해 돌진했어. 차량 앞 유리가 다 깨지고, 보조석에 있던 중령은 파편에 피를 흘렸어. 몸을 숙여 피했던 테리는 눈을 다쳤어. 다행인 건, 얼마 안가 유엔군 기지가 보여. 그렇게 이수근 씨가 탄 차가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했어. 아버지가 신문을 봤는데, 1면에 테리의 사진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그걸 집어 들고는 '이거 내 아들인데?'라고 말하고 주변을 둘러봤어요. 신문 1면에 나올 만한 일을 했을지 몰랐거든요. -신디 맥아넬리, 운전병 테리 여동생 용감한 운전병 테리는 인헌무공훈장을 수여받고 하사로 진급했어. 회의장에서 유엔군 전진기지까지 거리는 약 1km 정도였는데, 이동시간은 약 30초가 걸렸대. 최대 시속 120km 달려야 가능한 일이래. 단 2, 3초만 늦어도 차단기에 걸려서 무사하지 못했을 거래.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달린 거야. 그날 북한군이 쏜 총알의 개수만 40여발이었다고 해. 총알을 피한 사상 초유의 질주였어. 그럼 왜, 수근 씨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한 걸까. 운전병 테리는 이수근에 대한 정보는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수근 씨가 북에서 에서 남쪽으로 와서 더 나은 삶을 원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어요. -신디 맥아넬리, 운전병 테리 여동생 테리 하사는 가족들에게 수근 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대. 더 나은 삶을 원했다 라고. 나는 나 자신의 결심으로 자유를 찾았다. 나는 지식인들을 야만적으로 취급하며 사람들의 오금을 못 펴게 들볶는 북조선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 나는 이제부터 자유 세계에서 나의 여생을 보람 있게 보내겠다. -이수근이 탈출 다음날 작성한 글 中 자유를 찾아온 이수근. 한국전쟁 휴전 선언 후 14년이 안 된 시점에, 김일성의 수행기자 출신인 거물급 언론인이 북한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며 남으로 온 거야. 목숨을 걸고 넘어 온 수근 씨를, 시민들은 '자유의 용사'라며 대환영했어. 그를 보려고 10만 인파가 모이기도 했어. 이렇게 환대를 받으며 남쪽 사람들 앞에 선 이수근 씨는 첫번째 기자회견에서 북에 있는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 눈물로 호소했어. 저는 지난 3월 22일 북한을 탈출, 자유세계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나 북한 땅에 아내와 철부지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내 가족이 아버지의 품에 돌아올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이수근, 기자회견에서 그럼 수근 씨가 북에 가족을 남겨 두면서까지 목숨 걸고 남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1946년 조선노동당에 입당하였으며 이날부터 20년간 나는 하루 한 날 같이 조선노동당과 김일성을 위해 나의 모든 정력, 나의 모든 성의를 바쳐 그야말로 눈물겹도록 충성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나 잔인무도한 공산주의자들은 단 한 줄의 김일성 찬양 기사를 싣지 않았다는 죄로 사상적인 면에서 의심받기 시작했으며, 끝내는 조만간에 숙청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수근, 환영대회 연설 中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수근 씨는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 되기까지 20년 넘게 불철주야 김일성 찬양기사를 썼대. 그런데 갑자기 충성심을 의심 받으면서 숙청될 상황까지 몰리니까, 탈출을 결심한 거야. 수근 씨의 구체적인 탈북 동기를 알게 된 시민들은 북으로부터 이수근의 처자식을 데리고 오자! 라며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벌였어. 영화인 협회, 대한어머니회 같은 단체뿐만 아니라 종교계, 대학생들도 적극 참여했어. 그렇게 두 달 만에 130만 명이나 서명했어. 서울시 인구가 400만 명 정도 됐던 1967년에 어마어마한 인원이야. 그럼 수근 씨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 자유의 탈을 쓴 붉은 첩자 수근 씨가 탈북에 성공하고 1년 후인 1968년. 신문사마다 하루 수 십차례 씩 수근 씨의 생사를 확인하는 괴전화가 걸려와. 게다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묘한 소문이 돌아. 이수근이 죽었다 , 이수근이 북한으로 교신을 보낸다 며 간첩이라는 소문이 도는 거야. 남한에 와서 처음에는 대우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심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참 소문이 났습니다. '이수근이 위장 간첩이다' 라고. 시민들은 모두 이럴 수가 있느냐고 놀랐습니다. -신경식, 당시 판문점 출입 기자 수근 씨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던 그때, 그가 정말로 감쪽같이 사라졌어. 집은 텅 비어있고, 아무도 수근 씨의 행방을 몰라. 1967년 3월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에 나타났던 이수근. 1969년 2월 1일, 사라졌던 그가 이번엔 공군기를 타고 나타났어. 여권을 위조해서 북으로 뺑소니치려던 반역자는 잡히고 말았습니다. 자유의 땅 조국대한을 그리워하는 북한 동포의 한 사람인 줄 알고 설마 하던 국민의 눈을 속인 이수근은 간첩이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이수근은 위장 귀순한 이중간첩이었어. 여권까지 위조해서 다시 북으로 돌아가려 한 거야. 당시 언론 보도에 의하면 탈북 전에 김일성에게 이런 지령을 받았다고 해. 조국을 위하며 부하된 사명을 다하라. 첫째, 판문점에서 극적인 탈출 방법으로 침투하라. 둘째, 귀순 동기를 '김일성을 소홀히 다뤄 숙청 대상이 되어 탈출하였다'고 진술하라. 셋째, 한국 정부에 협조, 신임을 획득, 신분을 쟁취하라. 판문점 탈출도 자작극이고, 가족과 살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한 것도 모두 거짓이라는 거야. 시민들은 이수근을 '자유의 용사'라 칭송하며 서명운동에 동참했잖아. 배신감을 넘어 이런 이야기까지 나와. 악마의 탈을 쓴 민족 반역자인 줄 모르고 그를 환영했던 선량한 국민 모두가 격분했습니다. 그놈이 그럴 수가 있어요? 글쎄. 그 멀쩡한 놈은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저 광화문 대로에다 내놓고 총살시켜도 마땅합니다. 이수근을 극형에 처하라고 격분한 시민들. 이렇게 분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 바로 직전 해인 1968년, 북한에 대한 분노가 극에 치닫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거든.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는가 하면, 그해 10월엔 120명의 무장공비가 동해로 침투해서 게릴라전을 벌이고 어린이 등 민간인을 포함한 20명이 사망했어. 이처럼 북에 대한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유명한 이수근이 이중간첩이라니.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근 씨의 초상화를 태우는 화형식이 열렸어. 근데 판문점 탈출할 때, 진짜 총을 쏘고, 차단기를 들이 받고. 정말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자작극을 벌였을까? 이수근의 진짜 정체는 뭘까?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북한을 탈출한 자유의 용사일까, 아니면 온 국민을 기만한 자유의 탈을 쓴 붉은 첩자일까. 이제부터 하나하나 따져볼게. ▲ 이수근은 간첩이다? 이수근 씨가 변장하고 찍은 위조 여권 사진이야. 가짜 머리에 가짜 수염, 안경도 바꿨어. 그렇게 1969년 1월 27일 오후 5시, 이수근은 북으로 복귀하기 위해 그를 돕는 누군가와 비행기에 올라탔다고 해. 그를 돕는 사람, 누굴까? 아까 공군기에서 체포된 이수근이 걸어 내려올 때, 그의 뒤에서 같이 붙잡혀 온 사람이야. 바로 이수근 씨가 북한에 두고 온 아내의 조카, 31세의 배경옥 씨야. 당시 배 씨는 베트남에서 일하다 한국에 잠깐 들어왔어. 그때 이모부인 이 씨의 요청으로 위조 여권을 만들어 준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김포공항에서 홍콩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타. 이때 대한민국의 정보기관, 중앙정보부가 이중간첩 이수근을 추적하기 시작했어. 당시 중앙정보부를 책임지던 사람은,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야. 당시 김형욱 중정부장에게는 '남산의 멧돼지'라는 별명이 있었어. 중앙정보부가 남산에 있는데, 김형욱은 후진이 없고 직진만 한다는 의미야. 이수근이 홍콩행 비행기를 타고 떠난 그때, 김 부장은 저녁을 먹고 있었어. 그러다 이수근이 행방불명 됐습니다 라는 부하 요원의 전화를 받았어. 이미 그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던 중정에서 비밀리에 이 씨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놓친 거야. 이건 '남산 멧돼지' 김형욱 부장에겐 허용이 안 되는 일이야. 중앙정보부 전 조직원이 이수근을 찾는데 투입돼. 해외에 있던 요원들에게까지 명령이 내려져. 한편 홍콩행 비행기를 탔던 이수근, 배경옥 씨는, 홍콩 경찰에 붙잡힌 상태였어. 1월 29일, 체포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있어. 격렬하게 저항한 탓에 안경이 날아가고, 이수근의 팔이 탈골될 정도였대. 그렇게 홍콩 경찰서에 연행된 이수근 씨는 난 간첩이 아니다. 정치적 망명객이다 라고 호소했어. 이 말이 홍콩 경찰에게 통했고, 두 사람은 풀려났어. 이후 두 사람은 홍콩에서 베트남행 비행기에 탑승했어. 김형욱 부장은 이수근이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했어. 그리고 다급하게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베트남에 근무하고 있던 이대용 공사에게 연락했어. 그리고 이수근이 베트남을 떠나기 전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어. 김 부장에게 전화가 온 시점에, 이수근이 탄 비행기는 출발하기 직전이었어. 그때 이대용 공사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당시 베트남 대통령 응우옌반티에우에게 비행기 이륙을 막아달라 한 거야.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하려는 순간, 관제탑에서 정지 명령이 내려왔어. 그리고 이대용 공사는 승객들 사이에서 가발과 콧수염으로 변장한 이 씨를 찾았어. 그렇게 4일간 이어진 추격전이 끝나고, 이수근과 배경옥 씨는 검거됐어. 이수근이 탈북한 지 2년째 되던 1969년 3월 22일. 이수근 씨와 처조카 배경옥 씨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돼. 두 사람에 대한 첫 공판에는, 배신자의 얼굴을 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700명이 넘었대. 도피 중에는 체포되자 강하게 저항했던 이수근 씨. 그런데 법정에서는 달랐어. 거국적으로 저를 환영해 준 남한에서 본인의 여생을 보내고 편안하게 지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후회합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에 나가서 국가에 협조할 수 있는 가능한 길을 열어주시기만 한다면, 보다 본격적으로 보다 열성적으로 반공 전선에서 또 국가를 위해서 일하려 하는 각오는 돼 있습니다. -이수근의 법정 진술 中 이수근은 당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말했어. 하지만 1969년 5월 10일.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그는, 두 달도 지나지 않은 그해 7월 3일.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돼. 사형 선고 후 54일 만에 이뤄진 거야. 이수근 씨에게 위조여권을 만들어 준 처조카 배경옥 씨. 그는 1심에서 함께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10월 항소심에서 감형돼서 무기징역을 최종 선고 받았어. 이렇게 이수근의 정체는 진짜 간첩으로 결론 났어. 여기까지가 당시 알려진 결말이야. 그런데, 간첩으로 사형까지 당한 이수근이, 만약에 간첩이 아니었다면? 지금부터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볼 거야. ▲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다? 이수근의 사형 집행 후 17년이 지난 1986년. 여의도의 한 사무실이야. 이대용 공사가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어. 이대용 공사는, 김형욱 중정부장의 연락을 받고 베트남에서 수근 씨가 탄 비행기를 멈춰 세운 그 사람이야. 당시 이대용 공사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야. 1971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55년째 하고 있습니다. 이수근이라고 하면 우리 세대에서는 영화배우 이름처럼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수근이 탈출했을 때, 북한 최고위직이 탈출을 했다 해서, 반공 선전에 많이 등장했던 사람인데. 우연한 기회에 취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취재 중 가장 중요했던 분은 이대용 공사였고, 이분은 아주 유명한 군인입니다. 6.25 났을 때 춘천에서 북한군을 3일 동안 막아냈습니다. 군인으로서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고, 항상 반공 노선을 유지하면서 싸웠던 사람입니다. 이분을 제가 인터뷰하러 갔습니다. -조갑제 신문기자 당시 이대용 공사를 취재한 조 기자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기사를 써. &<조갑제의 심층 취재&>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이수근이 간첩이 아님을 최초 보도한 기사야. 조 기자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1986년 1월로 기억합니다. 이대용 공사가 저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나 던졌어요. '조 기자는 이수근이 간첩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수근이 간첩으로 몰려서 이중간첩으로 사형 집행됐는데 간첩 아닙니까?'라고 말했더니, '간첩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취재에 들어가게 되었죠. 그다음 이대용 공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뒤에 만났던 중요한 분이 바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밑에서 국장을 한 사람입니다. 귀순한 이수근을 맡아서 거의 1년 동안 곁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이니까 이수근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어요. 이 분이 말하는 이수근은 '진짜로 귀순한 게 맞다'. 간첩이 아니었다는 말이 더 신뢰가 갔다는 이야기죠. -조갑제 신문기자 과거 중앙정보부 소속이었던 2명의 내부 증언자가 나타난 거야.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이수근 씨가 이중간첩이 아니라면, 변장하고 위조 여권까지 만들어 목숨 걸고 탈출한 진짜 이유가 뭘까.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걸 알려면, 탈북 직후의 수근 씨 삶을 살펴봐야 해. 1967년 3월, 자유의 용사로 불리던 수근 씨. 북쪽에서 언론인이었던 그에게, 남쪽에서 새로운 직업이 생겨. 바로 '반공 강연' 1타 강사야.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강연에 수근 씨만한 인물이 없어. 그러니 수많은 반공 강연과 행사에서 맹활약 중이야. 그런데 반공 강연 때마다 그가 하는 고민이 있어. 강연에서 김일성을 욕하고 북한 체제를 강하게 비판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아. 북한에 남겨진 가족의 안위 때문이야. 하지만 반대로, 반공 강연을 주최하는 남측 입장에선, 북한을 비난하는 수위가 크면 클수록 행사 열기가 더 뜨거워져. 수근 씨가 대중 앞에 나서는 반공 행사에는, 중앙정보부 김형욱 부장도 참석했다고 해. 북한에 대한 수근 씨의 태도가 불확실할 수록 정부기관 내에서는 의심하는 시선이 생겨났어. 그리고 중앙정보부 감찰실에서 수근 씨를 감시하기 시작해. 이수근의 집 맞은편 2층 건물에 전세를 얻어 수사관을 상주하게 하였다. 전화국 직원으로 가장한 수사관이 이수근의 집 안으로 들어가 전화기 속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놓았다. 이수근의 승용차 안에는 특수 소형 마이크를 설치했다. -당시 중정 요원의 글 中 중정은 이수근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청하고 미행했어. 게다가 중정 감찰실 요원은 수근 씨를 수시로 불러서 북측과 내통하는 거 아니냐며 때리고 총을 쏘며 위협까지 했어. 그렇게 감시와 폭행에 시달리던 수근 씨는 북도 남도 아닌, 제3국으로 탈출을 결심했어. 사실, 홍콩과 베트남을 경유하며 간 수근 씨와 경옥 씨의 최종 목적지는, 북한이 아닌 중립국이었어. 두 사람은 중립국에 가서, 북한에 있던 가족을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수근 씨는 베트남에서 체포된 직후에, 이대용 공사에게 이런 말을 했대. 북쪽이 싫어 내려왔는데, 남쪽에도 자유가 없더군요. 처음에 수근 씨가 남한에 온 이유는 '자유'를 찾아서야. 하지만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는 남북, 어디에도 없었어. 전문가와 조 기자는 수근 씨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으로 떠날 결심을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 이수근 씨는 북한에서 자신의 지위와 가족들을 다 포기하고 내려온 거잖아요. 평생을 충성해 온 북한 체제에서 (신념이) 무너져서 남한으로 온 건 정말 트라우마였을 거고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두번째 세상인 남한에서도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상황은 트라우마의 재경험을 한 거거든요. 진짜 자유를 찾고 싶다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을 거고요. 세번째 새로운 나라로 떠나는 건, 이런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서 굉장히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심리이기도 해요. -김지용, 정신의학과 전문의 이수근이 왜 이런 삶의 역경을 겪게 되었느냐 하면, 그 사람이 지식인이라는 게 중요해요. 지식인. 지식인은 권력에 무조건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지식인의 운명이라고 보여집니다. -조갑제 신문기자 북한 사람들이 지식인들에 대한 박해, 지식인들에 대한 모욕과 천대가 참을 수 없는 그러한 충격을 자아냅니다. -이수근의 탈북 직후 기자회견 中 수근 씨는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직후 항소 의사를 밝혔지만, 만료 기일을 넘겨 사형이 확정돼. 항소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사형 선고인데 항소를 안했다? 이상하지 않아? 교도관이 관찰한 당시 이수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그 이유기 또한 이수근이 간첩이 아니었다는 저의 판단을 강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교도소까지 중앙정보부 직원이 따라와서 그 앞을 지켰다는 거 아닙니까. 그때의 중앙정보부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때의 중앙정보부는 대통령 다음으로 권력이 세요. 그러니까 왜 이수근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항소를 포기했느냐. 비밀이 바로 그런데 있는 거죠. -조갑제 신문기자 조갑제 기자가 만난 당시 교도관의 말에 의하면, 항소를 안한 게 아니라, 못 하게 막은 거야. 그럼 왜 중앙정보부는 이렇게까지 한 걸까. 수근 씨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을 취재한 조 기자는 당시 중앙정보부와 김형욱 부장이 처한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을 거라 설명해. 중앙정보부에서 요원을 붙여 감시하고 있던 이수근이 출국한 것을 뒤늦게 알고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내는 데는 이틀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보기관으로서 치명적 실수죠. 정보기관은 잘한 것도 알릴 수가 없고 잘못한 것도 알릴 수가 없는데, 이 경우에는 어마어마한 실수를 했다는 사실이 폭로되게 생겼거든요. 김형욱이 정보부장인데 완전히 위기에 몰렸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살기 위해서, 김형욱이 살기 위해서, 이수근을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만들었다고 봐야죠. -조갑제 신문기자 중앙정보부 감찰실은 감시자를 놓친 실수를 감추기 위해서, 김형욱 부장은 자신의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수근 씨를 간첩으로 만들어야 했어. 수근 씨가 간첩으로 죽어야지만, 중앙정보부가 사는 거야. ▲ 사형 집행 후 37년…간첩 조작 의혹 조사 자, 이제 수근 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진실을 밝혀내야 해. 그 첫 걸음은, 수근 씨의 사형이 집행된 지 무려 37년 만에 내딛었어. 국가 기관에서 '간첩 조작 의혹 사건' 조사 대상에 선정된 거야. 그런데 수근 씨 가족은 북한에 있잖아? 본인은 사형 당해서 세상에 없고. 그럼 누가 이걸 신청해서 선정된 걸까? 이중간첩 혹은 위장 귀순, 이 이야기는 몇 건 없거든요. 우리나라 역사상. 그게 사실이냐,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 실제로 저하고 만났던, 배경옥이라는 수근 씨와 인척뻘 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분이 신청했어요. -이명춘,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국장 수근 씨와 동반 출국 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처조카 배경옥 씨. 복역 중에 감형 받아서 수감 당시 31세였던 경옥 씨는 1989년 12월, 51세의 나이로 출소했어. 억울하게 20년 간 수감됐던 경옥 씨. 수근 씨가 간첩으로 만들어졌던 것처럼, 경옥 씨도 중앙정보부에게 강제로 고문을 당했다고 해. 출소 후 1999년 경옥 씨의 증언이야. 조사관들 얘기가 중앙정보부가 최고 우위다. 그렇게까지 얘기를 했고, 또 수사 과정을 보면 알잖아요. (진술서를) 불러주는 대로 받아 썼으니까요. 그게 무슨 조사예요. 오랫동안 고초를 받아서, 다른 거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거죠. 조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진실이든 아니든 빨리 끝나서, 빨리 일이 처리돼서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 후에 몸이 계속 아파서 뼈가 다 안 좋아진 건가 봐요. -배경옥, 1999년 인터뷰 中 수근 씨와 경옥 씨는 비행기에서 체포돼 돌아온 순간, 남산의 중정에 끌려가. 중정은 두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이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 그곳에서 전기, 물, 몽둥이로 끔찍한 고문을 당했대. 1기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김일성의 지령을 받았다는 것도, 북한에 가기 위해 탈출했다는 것도, 모두 조작이었어. 이제 바로 잡으려면 '재심'을 해야 해. 요즘은 '재심'이란 게 좀 익숙하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신청조차 어려운 일이었어. 게다가 경옥 씨의 재심을 맡았던 재판장은 심적으로 더 부담감이 컸대. 억울한 사람이 사형당하고 또 억울한 사람이 2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나중에 드러난 바에 의하면 중앙정보부가 잘못을 회피하려고 뒤집어 씌운 거였잖아요. 그러면 이게 당시 우리나라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의 결정을 부정해야 하고요. 과거 선배들의 또 사법부의 잘못을 더 나아가서는 국가 권력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건의 무게감은 엄중한 것이죠. -박형남, 재심 당시 재판장 판사 재심을 담당한 재판장은 경옥 씨에게 이 한마디를 꼭 전하고 싶었대. 피고인 배경옥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 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 배경옥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피고인은 법정 밖으로 세상 속으로 나가도 좋습니다. -박형남, 재심 당시 재판장 판사 박형남 재판장의 마지막 한마디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어. 법의 사슬에서 풀려나 밝은 태양 아래 당당한 한 인간으로 살아가길. 그렇게 2008년 12월 19일, 경옥 씨에게 무죄가 선고됐어.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모부 수근 씨는 기록상 간첩으로 남아있거든. 어떻게든 돌아가신 분에 대한 명예를 내가 회복시켜야 한다, 이런 각오를 갖게 되고 삶의 의지를 갖게 되는 거죠. 저는 이제 이모부의 명예를 회복하고 이모부님의 이름을 영원히 남겨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배경옥, 무죄 판결 후 인터뷰 그렇게 또 10년의 세월이 흘러 2018년. 이수근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재심 결과가 나와. 피고인 이수근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아울러 피고인은 위법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낙인찍힌 채 사형 집행에 의하여 생명을 박탈당하기에 이르렀는 바, 이에 암울했던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하여 피고인과 그 유가족들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다. -판결문 중 드디어 대한민국 법원이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판단했어. 무려 49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어. 경옥 씨는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이 곳을 찾았어.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며 찾았던 무덤. 이 곳에는 연고가 없는 시신들이 함께 합장돼 있어. 그래서 유해를 분리할 수도, 개인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놓을 수도 없다고 해. ▲ 피해자 배경옥을 찾아서 그럼 현재 경옥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꼬꼬무' 제작진은 그와 인연을 이어온 조갑제 기자를 통해 경옥 씨에게 연락을 취해봤어. 2025년 11월, 조 기자가 오랜만에 경옥 씨에게 전화를 걸어봤어. 하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어. 메시지를 남겼지만, 역시 답이 없었어. 경옥 씨에 대해 아는 정보는, 받지 않는 전화번호와 예전에 살던 동네 정도야. '꼬꼬무' 제작진은 그를 찾아 나섰어. 경옥 씨의 행적을 찾아 동네 주민들에게 물었어. 그렇게 몇 주째 탐문이 이어졌고, 드디어 경옥 씨를 아는 주민을 만났어. 하지만 경옥 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라고 해. (배경옥 형님께서) 집에서 주무시다가 심정지로 돌아가셨습니다… 형님 생각하면 진짜 가슴이 메는 거죠. 평생을 순탄하게 못 살고 돌아가셨으니까. 그게 마음이 아픈 거예요. 순탄하게 산 인생이 아니니까. 참 힘들게 살았으니까. (형님이 그곳에서는) 그런 일 겪지 않고, 좋은 일만 있었으면 그런 마음이죠. -배경수, 경옥 씨와 꼭 닮은 동생 안타깝게도 경옥 씨는 이모부 수근 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재심 판결이 나오고 1년 만인 지난 2019년 세상을 떠났어. '꼬꼬무'도 이번에 취재를 하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야. 조갑제 기자는 경옥 씨를 떠올릴 때마다, 그가 짊어지고 다니던 배낭이 눈에 걸렸대. 각종 민원 서류와 재심 자료로 무거워 보였거든. 그리고 또 하나, 안타깝게도 '꼬꼬무'가 이번 방송을 준비하며 만난 사람들 가운데, 여전히 이수근을 위장 간첩으로 믿는 사람이 많았어. 지금은 묘비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수근'이라는 이름을, 진정한 자유를 꿈꿨던 한 인간으로 기억해주는 것이, 어쩌면 그가 진짜 원했던 게 아닐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지옥의 인간 열차…고2 맞고소한 사립고 담임 결국 지옥의 인간</font> 열차…고2 맞고소한 사립고 담임 결국 등록일2026.02.20 ▲ 인간열차 체벌 경남 창원지역 한 사립고등학교 담임교사가 제자를 수 개월간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오늘(20일) 법조계와 교육당국에 따르면 창원지검은 지난달 15일 교사 A 씨를 아동학대 및 폭행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공소장에는 아동학대와 폭행 등 15건의 혐의가 기재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A 씨는 2024년 4월부터 9월까지 자신이 담임을 맡은 당시 고교 2학년 B 군 등을 상대로 상습적인 체벌과 물리적 폭력을 가한 혐의를 받습니다. 그는 숙제 미제출 등을 이유로 뒷사람 어깨에 발을 올리고 버티게 하는 일명 '인간열차' 체벌을 강요하고, 주먹과 무릎으로 학생의 복부와 허벅지를 강하게 가격하는 등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를 견디다 못한 B 군이 2024년 9월 A 씨를 고소하자, A 씨는 오히려 해당 학생을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며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명예훼손과 관련해 B 군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년 넘는 수사와 법정 공방으로 인한 논란이 알려지자 A 씨는 뒤늦게 사과의 뜻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B 군 측 법률대리인인 박인욱 변호사는 A 씨 행위는 교육적 목적을 벗어난 명백한 신체적 학대 라며 인간열차 등 가혹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가 명확히 남아있어 기소에 이르게 됐다 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립고는 재판 결과에 따라 A 씨를 인사 조처할 방침입니다. (사진=독자 제공, 연합뉴스)
[직설] 李대통령, 새해 노동개혁 추진한다…이번에야 말로 성과 낼까? [직설] 李대통령, 새해 노동개혁 추진한다…이번에야 말로 성과 낼까? 등록일2026.02.19 ■ 용감한 토크쇼 &'직설&' - 손석우 앵커 경제평론가 및 건국대 겸임교수,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배태준 한양대 산업융합학부 교수,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이재명 대통령이 새해 6대 구조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노동개혁인데요. 사실 매 정부마다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했지만, 번번이 흐지부지됐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변화에 AI로 인한 산업 대전환까지 지금 대한민국은 격변기에 접어들었는데요. 여기에 선제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후퇴할 수 있단 위기감이 돌고 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된 노동개혁이 이번에야 말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보겠습니다. 그럼 오늘(19일) 함께 해주실 세 분을 모셨습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 한양대 산업융합학부 배태준 교수, 정치발전소 조성주 상임이사 나오셨습니다. Q. 첫 번째로 꼽은 노동 개혁은 하청 근로자의 원청 교섭권을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란봉투법입니다. 오는 3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요. 정부가 지난해 말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속도조절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정대로 다음 달에 시행해도 무리가 없을까요? Q.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포스코 등 주요 기업들의 하청 노조들이 &'노조 연대&'를 띄우면서 원청과 교섭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경영계에선 1년 내내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사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요? Q.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원칙적으로 유지되지만, 수정된 시행령에서는 하청 노조가 원청 노조나 다른 하청노조와 함께 교섭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경우, 원청 기업과 따로 교섭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각 노조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노노 갈등이 커질 우려는 없습니까? Q. 두 번째로 꼽은 노동개혁 과제는 정년연장입니다. 노사가 정년연장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했지만, 법정 정년연장이냐 퇴직 후 재고용이냐를 이견에 막혀서 논의가 앞으로 못 나가고 있는데요. 올해에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Q. 지난해 &'쉬었음&'을 택한 2030 청년층이 71만 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원하는 일자리가 없다&'가 주요 이유였는데요. 정년연장이 &'쉬었음&' 청년을 더 많이 만들 우려는 없을까요? Q. 세 번째로 꼽은 노동개혁 과제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입니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위해서 근로자 추정제를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임금 노동자 870만 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인데요. 실효성이 있을까요? Q. 플랫폼 노동자가 특수고용직의 근로자성이 인정될 경우, 결국 사업주의 비용 부담 증가가 불가피합니다. 이럴 경우, 일자리가 축소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진 않을까요? Q. 올해 노동계 최대 화두는 &'AI 시대로 대전환&'이 아닐까 싶은데요. AI가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AI가 인간의 조력자를 뛰어넘어서 경쟁하는 위치로 올라설까요?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LG AI연구원, 책임·포용 담은 AI 윤리 책무성 보고서 발간 LG AI연구원, 책임·포용 담은 AI 윤리 책무성 보고서 발간 등록일2026.02.19 이홍락_임우형 LG AI연구원 공동 연구원장 (사진=LG) LG AI연구원이 오늘(19일) 인공지능(AI) 윤리 책무성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지난 2023년부터 매년 발간하고 있는 이 리포트는 LG전자와 LG유플러스 등 LG 주요 계열사의 AI 윤리 실천 사례를 보고서에 담아 계열사로 확산 중인 AI 윤리 실천 노력을 담았습니다. 특히 LG는 전 세계 기업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의 AI 윤리 권고 이행 현황을 매년 체계적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올해 리포트는 &'책임 있는 AI(Responsible AI)&'와 &'포용적 AI(Inclusive AI)&' 실현을 위한 LG의 노력을 소개했습니다. 이홍락 LG AI연구원 공동 연구원장은 &'AI 기본법 시행 등 시시각각 변하는 규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사회가 안심하고 모두가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기술의 안전(Safety)과 신뢰(Trust)를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LG가 AI로 추구하려는 본질적인 가치&'라고 말했습니다. 임우형 LG AI연구원 공동 연구원장은 &'LG AI연구원은 기술 혁신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AI가 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신뢰의 가치를 증명해 나가겠다&'라고 했습니다. LG는 앞서 2022년 인간존중, 공정성, 안전성, 책임성, 투명성 등 5대 핵심가치를 기반으로 한 LG AI 윤리원칙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런 윤리 원칙의 기반엔 구광모 LG 대표의 철학이 녹아 있다고 회사는 설명했습니다. 단순한 위험 관리 차원을 넘어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컴플라이언스 경영을 기업 생존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신뢰할 수 있는 기술 개발로 경쟁력을 높인다는 겁니다. 구광모 LG 대표는 &'컴플라이언스를 기업의 성장과 발전의 핵심 인프라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 있어 LG 구성원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라면서 &'LG는 컴플라이언스가 최고경영진에서부터 사업의 일선까지 단단히 뿌리내리도록 각별히 노력해 왔고, LG의 컴플라이언스 체계가 시대와 사회 변화를 적시에 반영하도록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겠다&'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윤 내란 선고 D-1…12·3 계엄 윤 443일 만에 법적 판단 받는다 윤 내란 선고 D-1…12·3 계엄 윤 443일 만에 법적 판단 받는다 등록일2026.02.18 ▲ 윤석열 전 대통령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가 내일(19일) 나옵니다. 비상계엄 선포 443일 만에 계엄 '정점'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집니다. 오늘(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내일 오후 3시 417호 대법정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공판을 진행합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군·경찰 지휘부 7명도 함께 선고받습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13일 결심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김 전 장관에는 무기징역, 조 전 청장에는 징역 20년을 각각 요청했습니다. ◇ '아닌 밤중에 홍두깨' 계엄…초유 현직 대통령 체포·구속 윤 전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5분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담화 내용은 '대한민국은 야당의 탄핵과 특검, 예산삭감으로 국정이 마비된 상태이며,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엄군은 지휘부 명령에 따라 국회로 출동해 망치와 소총으로 유리창을 깨고 본청으로 진입했습니다. 경찰은 국회를 봉쇄했습니다. 이를 뚫고 모여든 국회의원들은 새벽 1시 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계엄군이 빠져나간 뒤로도 한동안 침묵하던 윤 전 대통령은 새벽 4시 27분 계엄을 해제했습니다. 이후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로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수사와 기소, 형사재판도 이뤄졌습니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찰이 수사 경쟁을 벌이며 '중복수사'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이후 공수처가 사건 이첩 요청권을 행사해 수사는 일원화됐습니다. 작년 1월 3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첫 체포영장 집행 시도는 경호처 '인간띠'에 막혀 불발됐습니다. 이후 15일 두 번째 시도 끝에 영장을 집행해 헌정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체포했습니다. 법원은 같은 달 19일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다만, 공수처는 지속적인 진술 거부에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채 1차 구속기간 만료일 닷새 전 검찰에 사건을 넘겼습니다. 당시 검찰과 공수처는 최대 20일인 수사 구속기간을 열흘씩 나눠 쓰는 방안도 협의했으나 공수처에서 시간이 더 소요습니됐다. '구속기간 배분'이라는 규정 없는 초유의 상황에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구속 연장을 불허했고, 이에 검찰은 1월 26일 윤 전 대통령을 바로 기소했습니다. 헌재는 4월 4일 윤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은 4월 14일에 첫 정식 공판이 열렸고, 1월 13일까지 총 43차례 진행됐습니다. ◇ 특검 국헌문란 목적 폭동 사형 구형… 尹 경고·상징적 계엄 내란죄를 규정한 형법 87조는 대한민국 영토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를 처벌한다고 명시합니다. 특검팀은 비상계엄의 목적과 구체적인 실행 양상이 모두 내란 요건을 충족한다고 봅니다. 계엄을 선포한 데는 국회를 무력화하고 별도의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해 헌법상 국민주권, 의회, 정당, 선거관리 제도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할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계엄 선포 후 무장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점거해 출입을 통제하고 정치인을 체포하려 하는 등 실제로 폭동을 일으켰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은 야당의 정부 주요 인사 줄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 조치였을 뿐 실제로 군정을 실시해 국헌을 문란케 할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했습니다. 국회가 해제 요구를 의결하자마자 군을 철수시키고 계엄을 해제한 게 '경고성 계엄'이었음을 뒷받침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특검팀은 공직 엘리트들이 자행한 헌법질서 파괴행위를 전두환·노태우 세력에 대한 단죄보다 더 엄정하게 단죄함으로써 대한민국이 형사사법시스템을 통해 헌정질서를 수호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비상계엄은 '망국적 패악'에 대해 국민들이 감시와 견제를 해달라는 호소였다 며 이른바 '계몽령'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비상계엄 후폭풍을 감내해야 했던 국민에 대한 사과는 없었습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적법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어 수사가 위법하고 이에 터 잡은 검찰의 기소는 위법하며 특검팀이 넘겨받은 것도 무효라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특검은 법원이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을 발부한 만큼 내란죄 수사에 문제가 없고, 사건 인계도 법률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AI 인재 더 나간다…한국 인재 영입 매력도 30위권 머물러 AI 인재 더 나간다…한국 인재 영입 매력도 30위권 머물러 등록일2026.02.16 인공지능(AI) 분야 고급 인재 확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는 가운데 한국이 AI 인재 순유출 흐름을 끊고 순유입국으로 전환하려면 보상 체계와 연구 환경 전반의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오늘(16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월간 웹진 &'소프트웨어 중심사회&'의 주요국 AI 인재 양성 및 유치 정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재 유치 매력도는 2020년대 들어서도 세계 30∼40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지수는 AI 분야에 한정한 것이 아닌 전반적인 분야의 고급 인력 유치·유출에 관한 지표이기는 하지만, AI 분야 인재에 적용해 보더라도 단기간에 상위권 진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AI 분야 인재 이동을 분석하는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 작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국 AI 인재 이동 지수는 -0.36(10만 명당 0.36명 순유출)으로 2023년 -0.30에서 유출 폭이 더 커진 상황입니다. 보고서는 한국이 최근 들어 &'AI 고급인재 모시기&'에 나서면서 대학 중심 인재 양성에 집중해 왔지만 석·박사급 풀 규모가 선도국 대비 작고, 해외 인재 유치·귀환·활용과 국제 공동연구 측면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빅테크나 해외 연구기관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전문가의 국내 복귀를 촉진할 제도적 유인도 부족하다고 진단했습니다. 보고서는 AI 인재 순유입국 지위를 유지 중인 일본과 영국의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영국은 글로벌 재능 비자, 세계 상위권 대학 졸업생을 위한 HPI 비자, 스케일업 비자 등 다양한 비자 제도를 통해 브렉시트 이후 해외 AI 인재 유치에 힘쓴 결과 안정적인 AI 인재 순유입국 지위를 유지 중입니다. 일본은 특별고도인재제도(J-Skip) 도입, 유럽연합(EU)과 AI 인재 상호 유학 촉진 프로그램 및 대상국 확장 등을 통해 해외 인재 유치와 함께 해외 우수 일본인 과학자 귀국에도 힘쓴 끝에 2020년 순유출국에서 순유입국으로 전환하기도 했습니다. 보고서는 국내 석·박사급 고급 인재에 대한 파격적인 보상 체계와 혁신 연구 클러스터 조성, 외국인 인재의 안정적인 정주 환경을 마련하는 한편 물리적 이주 없이도 국내·외 AI 고급 인재가 국내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원격 협업 및 인재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6년 뒤 '꿈의 배터리' 28조 시장 열린다…K배터리 전고체 상용화 경쟁 치열 6년 뒤 '꿈의 배터리' 28조 시장 열린다…K배터리 전고체 상용화 경쟁 치열 등록일2026.02.16 [삼성SDI 전고체 배터리 모형 (삼성SDI 제공=연합뉴스)] 전 세계 전고체 배터리 시장이 6년 뒤, 현재의 10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오늘(16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코히런트 마켓 인사이트(CMI)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전고체 배터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9억 7천180만달러(2조 8천400억 원)에서 오는 2032년 약 199억 6천810만달러(28조 8천억 원)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이 기간 연평균 성장률(CAGR)은 39.2%에 달합니다. CMI는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 측면에서 기술 잠재력이 높은 차세대 배터리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이 액체인 리튬 이온 배터리와 달리 전해질이 고체라 에너지 밀도가 높고 열과 압력에 강해 화재·폭발 위험이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초기 전고체 배터리 시장 수요는 가전·웨어러블·의료기기 등 소형 제품 중심으로 형성될 전망입니다. 이후 기술 발전과 산업 수요 증가에 따라 전기차, 로봇 분야로 그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입니다. 다만 높은 제조 비용과 복잡한 공정은 전고체 배터리의 대량 생산과 전기차 등으로의 적용 확대를 제한하는 요인이라고 CMI는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글로벌 전고체 업계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미국 솔베이, 심벳, 솔리드파워와 일본 파나소닉 등을 지목했으며,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삼성SDI를 포함했습니다. 국내 배터리 3사 가운데 상용화 시점 목표는 삼성SDI가 내년으로 가장 빠릅니다.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기업 최초로 지난 2023년 전고체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며 테스트를 진행해왔습니다. 삼성SDI는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는 내년 양산 목표로 사업 기회를 확대하는 동시에 연내 라인 증설 투자를 진행하는 등 계획한 일정에 맞춰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역시 전고체 배터리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는 2029년 전기차용 흑연계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하고, 2030년에는 무음극계 전고체 배터리를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용으로 우선 적용하기 위해 관련 공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SK온도 2029년 상용화를 목표로 대전 미래기술원 내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를 구축해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와 리튬 메탈 배터리 등을 개발 중입니다.
김혜윤♥로몬,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결방 아쉬움 달랠 미공개 커플 스틸 대방출 김혜윤♥로몬, '오늘부터</font> 인간입니다만</font>' 결방 아쉬움 달랠 미공개 커플 스틸 대방출 등록일2026.02.13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의 결방 아쉬움을 달랠 미공개 커플 스틸이 공개됐다. 13일 SBS 금토드라마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극본 박찬영·조아영, 연출 김정권) 측은 은호(김혜윤 분), 강시열(로몬 분)의 미공개 커플 스틸을 공개했다. 카메라 안팎을 오가는 이들의 유쾌하고 설레는 케미스트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난 방송에서 강시열은 은호의 일방적인 통보에 어쩌다(?)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강시열은 은호의 바람대로 '진부하고 전형적인' 첫 데이트에 나섰고, 손을 잡아도 두근거리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원래대로 돌아간 후에는 자신의 기억을 지울 거라는 은호의 말에 네가 네 멋대로 내 기억을 지우고, 너만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할 거라고 하면, 나도 이 정도는 내 맘대로 해봐도 되는 거 아냐? 라며, 기습 입맞춤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런 가운데 드디어 본격 쌍방 로맨스를 예고한 '호강커플' 은호, 강시열의 미공개 커플 스틸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서서히 도력을 잃어가던 은호와 그가 구미호라는 정체를 알게 된 강시열이 신묘한 인연으로 얽힌 순간, 강시열과 현우석(장동주 분)의 운명을 뒤바꾼 채 인간이 된 은호의 '망생' 탈출 공조의 시작, 그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로 엮이며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이 한눈에 담긴다. 무엇보다 '혐관'이 '구원'이 되기까지 관계 변화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게 만들며, 뒤엉킨 운명의 향방에 대한 궁금증을 더한다. 이와 함께 촬영장 뒷모습을 포착한 비하인드 사진도 눈길을 끈다. 강시열을 향한 은호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보육원 화재 구조 현장과 그 이후 설레는 변화가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유발했던 장면이다. 김혜윤과 로몬이 검은 그을음 분장을 한 얼굴에도 밝은 미소로 현장 분위기를 환하게 밝힌다. 특히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향해 장난스러운 브이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눈만 마주쳐도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은 회를 거듭하며 더욱 물오른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김혜윤은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은호'의 복잡다단한 서사에 과몰입을 유발하는 열연으로 다시금 진가를 입증했다. 인간이 되지도 인간을 사랑하지도 않겠다던 은호가 강시열에게 처음 느낀 설렘을 섬세한 연기로 담아내며 시청자들의 감정 동기화를 일으켰다. 로몬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능청스러운 '강시열'을 완벽한 완급 조절로 그려내며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 다정다감한 스윗한 매력을 장착하고 새로운 여심 스틸러로 등극했다. 한편,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은 설 연휴 편성으로 13일과 14일은 결방된다. 오는 20일(금) 밤 9시 50분에 9회가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크래프톤,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게임 트레일러 첫 공개 크래프톤,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게임 트레일러 첫 공개 등록일2026.02.13 ▲ 크래프톤 '프로젝트 윈드리스' 크래프톤이 판타지 소설 거장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 세계관에 기반해 개발 중인 트리플A급 액션 게임 트레일러를 깜짝 공개했습니다. 크래프톤은 우리 시간으로 오늘(13일) 오전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의 온라인 신작 발표회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State of Play) 자리에서 '프로젝트 윈드리스'를 공개했습니다. 2021년 처음 발표된 '프로젝트 윈드리스'는 크래프톤의 캐나다 소재 자회사 '크래프톤 몬트리올 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신작입니다. 이날 공개된 3분 가량의 트레일러에는 시네마틱 영상과 함께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조류 형태의 거인 종족 '레콘' 주인공이 쌍검, 창 등 다양한 무기를 활용해 전투를 펼치는 인게임 장면이 담겼습니다. 트레일러는 원작 소설 시점으로부터 약 1500년 전을 배경으로 대륙의 웅장한 풍경과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을 통해 작품의 스케일과 분위기를 담아냈습니다. 주인공은 레콘 종족의 신화적 존재 '영웅왕'으로,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충격파를 발산하는 울음소리 인 '계명성(鷄鳴聲)'을 내지르며 전장을 압도합니다. 파충류 인간 '나가'와 맞서는 인간 군대의 대규모 전투, 공중을 떠다니는 거대 생물 '하늘치', 불을 뿜는 도깨비 종족 등 '눈물을 마시는 새' 고유의 세계관 요소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만 '개발 중'이라는 정보 외에 출시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크래프톤이 '윈드리스' 라이브 트레일러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크래프톤은 이날 트레일러 외에도 개발 여정을 다룬 개발 일지 영상을 새롭게 공개했습니다 게임 개발은 캐나다에 있는 크래프톤 몬트리올 스튜디오에서 주도하되, 판교 소재 제작진과도 협력을 통해 개발되고 있습니다. 북미의 트리플A 게임 개발 역량으로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원작의 문화적 고증과 서사적 깊이를 녹여내기 위함입니다. 게임에는 수천 명의 전사와 거대 생물이 실시간으로 격돌하는 압도적 스케일의 전장을 구현하는 '매스 테크놀로지'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패트릭 메테 크래프톤 몬트리올 스튜디오 대표는 오랜 시간 소설 속 문장으로만 존재했던 환상적인 세계가 비로소 게이머들과 만나는 뜻깊은 순간 이라며 20년 이상 사랑받아온 IP의 깊이를 온전히 계승하는 동시에 원작 팬들이 기대하는 깊이와 게이머들이 경험할 게임으로서의 재미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고자 한다 고 밝혔습니다. (사진=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영상 캡처, 연합뉴스)
JW중외제약, 탈모치료제 'JW0061' 임상 1상 승인 JW중외제약, 탈모치료제 'JW0061' 임상 1상 승인 등록일2026.02.13 JW중외제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탈모치료제 후보물질 &'JW0061&'의 임상 1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고 오늘(13일) 밝혔습니다. JW0061은 모낭 줄기세포의 GFRA1 수용체에 직접 결합해 모발 성장을 유도하는 혁신 신약 후보물질입니다. 남성 호르몬 억제나 혈관 확장에 의존하던 기존 치료제와 달리 발모 경로를 생리적으로 활성화하는 새로운 기전을 갖춰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외용제로 개발 중입니다. 이 약은 인간 피부 오가노이드(장기유사체) 모델에서 표준 치료제 대비 7.2배에 달하는 모낭 생성 효과가 확인됐고 동물모델 시험에서도 모발 성장 속도를 최대 39% 개선했습니다. 이번 승인에 따라 JW중외제약은 서울대병원에서 한국인 및 코카시안 건강한 성인 104명을 대상으로 JW0061의 임상 1상 연구에 착수합니다. 임상은 JW0061을 두피에 직접 바르는 국소 도포 방식을 통해 약물의 안전성과 내약성을 확인하고 체내 흡수 및 대사 과정을 확인하는 약동학적 특성을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