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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홀린 '유니콘 남주'…'나의 완벽한 비서', 본격 이준혁 입덕 드라마 시청자 홀린 '유니콘 남주'…'나의 완벽한 비서', 본격 이준혁 입덕 드라마 등록일2025.01.09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나의 완벽한 비서'의 이준혁이 완벽하고 이상적인 '유니콘 남주'로 시청자를 홀렸다. SBS 금토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극본 지은, 연출 함준호·김재홍)에서 외모, 인성, 업무 능력, 살림 실력 등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한 은호(이준혁)가 방송 첫 주만에 모두의 이상형으로 떠올랐다. 길 가다 마주치면 무조건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비주얼부터, 완벽한 슈트핏, 햇살 같은 따스한 천성에서 비롯된 다정함까지 꽉 채운 완성형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무한 입덕'을 유발하고 있다. 이에 유은호의 '유'는 유니콘의 '유' 라는 반응을 불러 모으며 방송 첫 주부터 시청자들을 홀리고 있는 그의 유니콘 모먼트를 살펴봤다. #. 완벽한 비서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어 삐걱거리던 '피플즈' CEO 지윤(한지민)의 비서가 된 은호. 지난날의 악연은 모두 잊은 듯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이라며 해사하게 웃어 보이는 은호는 '피플즈' 첫 출근부터 시청자들의 심장을 폭격했다. 그러더니 자신을 비서로 인정하지 않는 지윤에게 헤드헌터에 대한 편견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겠습니다. 대표님이 가르쳐 주세요 라는 겸손한 자세로 비서 업무를 배워 나갔다. 언제 어디서 정보 요청이 들어와도 바로 대답할 수 있게 지윤의 고객사와 주요 후보자 리스트를 전부 파악했고, 시간 약속에 늦는 걸 싫어하는 지윤을 위해 밤새 최적의 동선도 짰다. 퇴근 후에는 비서와 헤드헌터에 대해 따로 공부하며 일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고, 그 결과 차가웠던 지윤의 인정을 조금씩 받기 시작했다. 타고난 능력에 성실한 노력까지 더해진 완벽한 비서의 등장에 시청자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난 순간이었다. #. 다정한 햇살 남주 은호는 업무적인 것 외에서도 지윤을 완벽히 밀착 케어했다. 움직일 때마다 어딘 가에 부딪히는 지윤 때문에 꼼꼼하게 전방 후방 좌우까지 주시하더니, 어느새 다가와 손쿠션을 대주며 부딪히지 않도록 미연에 막아주는 장면은 설렘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항상 대표실 문의 '밀고 당기기'를 헷갈려하는 지윤을 위해 몰래 양방향으로 열리게끔 고쳐 놓았고, 지윤이 자주 부딪히는 물체의 모서리들에는 보호대를 붙여 놓는 세심함까지 보여줬다. 지윤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집밥을 먹을 수 있는 밥집으로 데려가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채우려 노력했다. 그의 다정함은 한파도 녹이는 따스한 햇살을 내비쳤다. #. 100점짜리 아빠 무엇보다 은호는 가정적이기까지 하다. 매일 아침 장금이 버금가는 실력으로 눈과 입이 즐거운 별(기소유)이만을 위한 아침상을 뚝딱 차리고, 평범한 아빠들은 하기 힘들다는 고난도 머리 땋기 실력까지 보유하니, 전국의 엄마들까지도 환호하게 했다. 또한, 한수전자 최연소 인사팀 과장이었을 정로도 유능했던 은호가 '커리어 하이'를 앞두기 직전, 육아 휴직을 낸 이유는 아픈 딸을 케어하기 위해서였다. 1년 동안 옆에서 함께 있어준 그 노력의 시간들이 있어, 별이는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송 부장(송영규)의 미움을 사 부당한 징계 해고처리가 되었지만, 은호의 입장에선 별이의 옆에 있어주겠단 약속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은호의 깊은 부성애를 보여준 이 대목은 지윤에게도 큰 감정의 파동으로 다가왔다. 엄마 없이 자란 딸을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자신의 아버지는 어린 자신을 이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먼저 떠나버렸기 때문. 아버지의 오랜 빈자리를 은호가 채워주게 될지 설레는 기대 역시 피어난 장면이었다. 누구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유니콘 남주를 탄생시키며 '은호 앓이' 신드롬을 예고하고 있는 이준혁. 모두의 기다림을 충족시킨 완벽한 로맨스 '나의 완벽한 비서'는 매주 금요일 밤 10시, 토요일 밤 9시 50분에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이선균 유작 '행복의 나라'…조정석 다른 영화엔 없는 모습 이선균 유작 '행복의 나라'…조정석  다른 영화엔 없는 모습 등록일2024.07.22 ▲ 배우 조정석이 22일 오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행복의 나라' 제작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건에 연루자들에 대한 재판 과정을 재구성한 영화 '행복의 나라'가 다음 달 막을 올립니다. 추창민 감독의 '행복의 나라'는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배우 이선균의 유작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선균은 10·26 당시 중앙정보부장 수행 비서관으로 재판받았던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인 강직한 군인 박태주를 연기했고, 조정석이 그의 변호인 정인후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는 이 재판 과정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박태주를 변호하는 정인후와 10·26 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인 전상두의 갈등이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조정석은 22일 서울 광진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행복의 나라' 제작보고회에서 다른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이선균 배우의 묵직하고도 진중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추창민 감독은 '행복의 나라' 촬영 당시 이선균이 자신에게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게 조정석 때문이라며 영화를 함께하면서 조정석에게 배우고 싶다 고 털어놨다고 밝혔습니다. 극 중 전상두와 대립하는 육군참모총장 정진우 역은 이원종이 맡았고, 정인후와 함께 변호인단에 속한 변호사 부한명과 최용남은 각각 전배수와 송영규가 연기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영상] 이선균 빈소 앞에서 오열하는 동료들…유인촌 장관 한창 일할 나이인데, 선배로서 착잡하다 [영상] 이선균 빈소 앞에서 오열하는 동료들…유인촌 장관  한창 일할 나이인데, 선배로서 착잡하다 등록일2023.12.28 어제(27일) 돌연 생을 마감한 배우 이선균의 명복을 비는 동료들의 조문이 이틀째 이어졌습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8일 오후 고(故) 이선균의 빈소가 차려진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유 장관은 취재진에 (이선균과)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나도 배우기 때문에 선배로 (조문) 왔다 면서 한창 일할 나이고 젊은 나이인데 마음이 아프고, 비극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이날 아침 일찍 빈소를 방문에 고인을 애도했습니다. 이선균은 2019년 이 영화에서 박 사장 역을 맡아 세계 관객에게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박소담도 침통한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섰습니다. 이선균과 네 편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단짝' 정유미는 전날 밤 조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밖에도 배우 유재명, 송영규를 비롯해 정우성, 이정재, 하정우, 전도연, 조정석, 조진웅, 유연석, 이성민, 이명세 감독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장례식장 측과 소속사 직원은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3층의 취재진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매체 기자와 유튜버 등이 갑작스레 고인의 자택이나 소속사 사무실, 빈소 등지에 들이닥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소속사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발인을 포함해 이후 모든 장례 일정은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 이라고 밝혔습니다. 소속사는 유튜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장례식장을 방문해 소란이 빚어지는 등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잔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유가족과 동료, 지인 모두가 원하는 만큼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고 당부했습니다. 이날 오전 11시쯤에는 아내인 배우 전혜진을 비롯한 유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관식이 엄수됐습니다. 발인은 오는 29일 정오며 장지는 수원시연화장입니다. (영상취재 : 윤형 양지훈 / 구성 : 진상명 / 편집 : 이기은 / 제작 : 디지털뉴스제작부)
이선균 빈소, 서울대병원에 마련…장원석 대표·이원석 감독·유재명 등 조문 이선균 빈소, 서울대병원에 마련…장원석 대표·이원석 감독·유재명 등 조문 등록일2023.12.27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이선균의 빈소가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상주는 아내인 전혜진이다. 27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빈소가 마련됐으며, 조문도 시작됐다. 빈소에는 환희 웃는 이선균의 영정 사진을 볼 수 있었고, 사진 주변으로 국화들이 빼곡하게 장식됐다. 이선균의 두 형이 가장 먼저 도착해 장례 절차를 밟았고 유족과 소속사 직원들이 잇따라 도착했다. 아내 전혜진과 유족들은 슬픔을 억누른 채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것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이선균과 '끝까지 간다'를 함께 작업한 비에이 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였다. 이후 올해 4월 개봉한 영화 '킬링 로맨스'를 함께 한 이원석 감독과 이선균의 유작인 '행복한 나라'에 함께 출연한 배우 유재명, 고인과 절친한 배우 송영규 등이 빈소를 방문했다. 앞서 소속사가 '조용한 장례'를 공표한 만큼 유족 및 동료 외 사람들에게는 빈소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발인은 오는 29일 오전이며 장지는 전북 부안군에 있는 선영이다. 마약 투약 혐의로 조사를 받아온 이선균은 오늘(27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꼬꼬무 찐리뷰]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10대 자매, 실종된 부모는 어디에?…충격 사건의 전말 [꼬꼬무 찐리뷰]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10대 자매, 실종된 부모는 어디에?…충격 사건의 전말 등록일2023.12.01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월 30일 방송된 '여우고개에 묻힌 진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송영규, 댄서 모니카, 가수 정세운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전국을 누빈 방랑 부부 때는 2011년 3월, 충청북도 진천이야. 진천은 오이가 특산물이야. 그런데 한 오이농장이 비상사태야. 한창 수확철인데 일할 사람이 부족했거든.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구인광고를 봤다며 오이농장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어. 숙식이 가능하냐고 묻길래, 사장은 숙식 가능하니 당장 다음날부터 출근하라고 했어. 그리고 다음날, 그 남자가 찾아왔는데, 남자 혼자가 아니라, 젊은 부부야. 두 사람 다 인상도 좋고 싹싹해 보이길래, 사장님은 일을 하라고 했어. 부부가 젊은 사람들이라 농장 일이 힘들어 얼마 안 가 그만둘 줄 알았는데,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록 진득하니 일을 잘해. 사장은 보너스로 월급까지 올려줬어. 그런데 세 달째 월급을 받은 그날, 이 부부가 감쪽같이 사라져. 잘 지내다 갑니다. 더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라고 쓴 쪽지만 하나 남기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7월, 여름휴가철이야. 경상남도 밀양의 한 펜션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와.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했다며, 숙식이 가능하냐고 물어. 맞아, 오이농장에서 일하던 바로 그 부부야. 이번에는 펜션에서 일하게 된 부부. 청소도 척척, 손님 대응도 완벽해. 특히 아이들한테 그렇게 다정할 수 없어. 부부는 자신들에 대해 애들 유학 보내고 저희끼리 용돈 벌고 여행도 다니면서 지내는 중 이라고 설명했어. '욜로족'처럼, 번 돈으로 비싼 고기 사 먹고, 다른 펜션 직원들한테 술도 시원하게 쏴. 심지어 외출할 땐, 버스도 안 타고 무조건 택시야. 펜션 사장님 눈에는 '인생 즐기는 부부'로 보였어.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바다가 보고 싶어서 포항 쪽으로 가보려 한다 며 홀연히 또 동네를 떠나. 처음에는 충북 진천의 오이농장, 그리고 경남 밀양의 한 펜션. 이어 포항, 마산, 여수, 해남까지. 부부는 전국을 돌아다녔어. 이 부부의 다음 행선지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어. 그 뒤로 부부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8월 이후로 부부의 행적이 뚝 끊겨 버렸어. 그리고, 이 젊은 부부의 행적이 다시 발견된 건,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뀐 겨울이 되어서야. ▲ 여우고개에 추락한 차량, 아이들의 백골 시신 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포천경찰서 강력 1팀의 김중기 형사가 평소처럼 당직 근무를 서고 있어. 바로 그때, 수상한 차량을 발견했다는 제보 전화가 걸려왔어. 깊은 골짜기 절벽 끝에 차 한 대가 떨어져 있다는 거야. 그런데, 발견 장소가 예사롭지 않아. 경기도 포천의 '여우고개'라는 곳이야. 형사들은 바로 현장으로 출동했어. 한겨울에 꼬부랑길을 계속 따라가는데, 찬 바람 때문에 온몸이 서늘해. 그렇게 정신없이 도착한 여우고개 능선. 거기서 제보자를 만났어. 벼랑 아래서 차바퀴를 발견했다는 제보자의 말을 듣고 벼랑 끝을 쓱 내려다보니, 절벽 아래의 현장이 너무나 처참해. 현장을 딱 지목해 준 데 보니까, 차가 왼쪽으로 전도가 돼버린 거예요. 그런데 완전히 박살이 났더라고요. 다 녹슬고 유리도 깨지고. 앞 유리, 옆 유리… 방치된 차량이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았어요.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차량이 발견된 장소는 도로에서 30m 떨어진 거리야. 능선을 따라 쭉 이어진 가드레일이 차량이 발견된 위쪽 구간에만 없어. 아마 그 사이로 추락한 거 같아. 일단, 차적 조회부터 했어. 그리고 현장을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근처에서 백골 시신을 발견했어. 시신이 백골 상태니 오래 방치됐을 걸로 추정돼. 시신은 차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담요로 가려져 있었어. 처음에 112 신고받고 갔을 때 차량이 계곡 아래에 굴러 떨어져 있고. '차를 왜 여기다가 버렸지?' 그 생각을 했었는데, 사체가 발견됐으니까요. 너무 놀랐죠.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게다가, 좀 더 떨어진 지점에 시신 한 구가 더 있어. 그때부터 현장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해. 시신이 두 구나 나왔으니까. 이건 단순 추락 사고일 수도, 살인 사건일 수도 있어. 차량 조회 결과가 나왔어. 그 결과는, 아까 전국을 여행하던 그 젊은 부부. 그중 남편의 차였어. 두 구의 시신, 그 부부인 걸까? 단서는 분명 현장에 남아 있어. 가장 중요한 증거는 차량이야. 우선 크레인으로 이 차량부터 건져 올렸어. 고요한 골짜기에 굉음이 울려 퍼지고, 묵직한 차량이 끌어 올라와. 끌어올려보니, 차량 상태가 심각해. 폐차 수준으로 완파된 차량. 그대로 꽂혀있던 차 키. 드라이브 상태에 있던 기어를 보면, 주행 중에 떨어진 걸로 추정돼. 차량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던 안전벨트. 안전벨트는 사용하려 잡아당기면 늘어나지만, 결착 해제 시 제자리로 금방 돌아가지. 그래서 안전벨트는 사용하지 않았다면 늘어져 있을 수가 없어. 추락할 때 안전벨트를 착용했을 걸로 여겨져. 그리고 안전벨트 없이 떨어졌다면 앞쪽에 부딪힐 가능성이 많아. 그런데 핸들과 대시보드에는 충격의 흔적이 없어. 차량 상태에 비해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던 거 같아. 그럼 안전벨트를 스스로 풀고 차 밖으로 나왔을 거야. 지금까지 상황을 보자면, 예기치 못한 절벽 추락 후 차량에서 탈출했지만, 끝내 목숨을 잃은 사고로 보이지. 그런데, 차가 있던 자리에서 은색 형체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어. 돗자리 조각이었어. 은박 돗자리를 찢은 거 같은데, 돌멩이로 돗자리를 꾹 눌러 놨어. 조심스럽게 돗자리를 들어 올렸는데,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리고 무심결에 돗자리를 뒤집자, 돗자리 뒷면에 엄청난 단서가 있었어. 우리가 아직 살아 있네요. 우리는 산정호수에 빠져 죽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오늘 2월 22일 화요일이네요. 이곳의 위치를 알리고 우리 아이들의 시신이 잘 거두어지길 바라면서 마지막 길을 떠납니다. -돗자리 조각에 적힌 내용 中 아이들이 죽었다고 쓴 부모의 돗자리 편지.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백골 시신 두 구를 급히 국과수로 보냈어. 부검 결과, 두 구의 시신은 10대 여자 아이들이었어. 연령을 추정할 때는 치아의 발육 정도 뼈의 발달 상태를 보고 얘기하는데, 13세 전후와 11세 전후로 나왔습니다. 뼈들이 밖으로 노출될 정도로 부패가 좀 상당히 진행이 된 경우였습니다. 적어도 3개월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이상섭, 당시 국과수 부검의 경찰은 산정호수로 가서 주변을 수색했어. 반경 300m까지 수색 범위를 넓혀 여우고개 일대와 산정호수까지 샅샅이 뒤졌어.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어. 조사해 보니, 네 가족 모두 실종신고가 된 상태였고 다른 경찰서에서도 부부의 행적을 쫓고 있었어. 신고자는 남편의 매형. 남편의 누나 집에서 이 네 가족이 함께 살았거든. 열 달 전쯤인 2011년 2월에, 바람 좀 쐬고 온다면서 네 가족이 함께 집을 나갔다는 거야. 부부와 11살, 13살 된 딸 둘 모두. 처음에 누나 부부는, 방학이니 가족여행을 갔겠거니 생각했어. 그런데 며칠 후 누나집에 편지 하나가 도착했어. 그 편지를 읽은 매형은 온몸에 힘이 쫙 풀렸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저희를 용서하세요. 특히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하지만 남아서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저희가 데려갑니다. 죽을 각오로 살아보려 했는데 현실은 무섭군요. 이렇게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인 것 같아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아이들이 애처로워 같이 가려고 합니다… -누나 부부가 받은 편지 내용 中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편지. 그리고 열 달 만에 아이들은 백골 시신으로 발견됐어. 하지만 부부는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돗자리 편지에서 편지 쓴 날짜는 2월 22일이었어. 그런데 부부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건 8월이야. 그러니 아이들이 사망한 2월 이후에도, 부부가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야. 같이 간다고 해놓고, 부부만 사라졌다? 같이 가려 했다는 부부의 말은, 진짜였을까? 수사의 핵심은 이 부부를 찾는 것. 2012년 1월 1일, 수사팀은 부부에 대한 체포 영장을 신청했어. 혐의는 살인과 사체 유기. 단란했던 이 가족은 이렇게 피해자와 피의자 사이가 됐어. ▲ 사라진 부부의 행적 가족이 실종된 2월부터 경찰이 파악한 부부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네 가족은 2월 14일 집을 나갔어. 그리고 14일과 22일 사이에 아이들은 사망한 걸로 추정돼. 이후 부부는 사흘 뒤 2월 25일 포천에서 9만 원을 인출해. 그리고 의정부, 강릉을 돌며 돈을 조금씩 계속 뽑았어. 그러다가 예상 밖의 동선이 발견돼. 바로, 병원. 마취통증의학과에 3번이나 가서 '동상 치료'를 받았어. 특히 발이 많이 불편해 보였대. 산정호수에 빠져 죽기로 결심했다고 했었는데, 진짜 부부는 호수에 뛰어들었던 걸까? 충북 진천의 오이농장 사장님의 눈에도 부부의 발은 영 불편해 보였대. 그래서 사장님이 대전의 한 병원을 추천했어. 부부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사장님이 불편해 보이니 계속 권했대. 결국 부부는 대전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고, 이때 병원에 주민등록번호를 남겼어. 그 후 급하게, 오이농장을 떠난 게 아닐까. 그런데, 부부가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건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거잖아. 아이들과 같이 떠나겠다는 부부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느껴지지. 마음이 달라진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는 당장 너무 아프고 그래서 일단 치료부터 받지 않았겠느냐 그렇게 생각하고…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이렇게 흔적이 나올 때마다 경찰은 뒤를 쫓았는데, 늘 간발의 차로 사라진 뒤였대. 설상가상 2011년 8월 이후로는 행적이 뚝 끊겼어. 이제 부부를 찾을 단서가 전혀 없어. 작정한 듯 잠적해버렸거든. 부부는 엄청난 비밀을 감춘 채 도피를 이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어디에선가 이미 사망한 걸까. 백골 시신이 발견되고 1년이 지났어. 의문만 남긴 채 수사는 난항이야. 부부의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보여. 김 형사는 이 수사의 끈을 놓을 수 없었어. 간절했죠. 그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사망했을까. 그거를 풀어야 하잖아요.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형사들은 다 그렇습니다. '잡아야겠다' 신념이 없으면 못 잡거든요. 그냥 잡히는 것 같아도 그냥 안 잡히거든요 범인들이. '잡아야겠다'라고 할 때 잡히는 것이지. -강구명, 당시 포천경찰서 수사과장 김 형사는 공개수배 카드를 꺼내 들었어. 범인 인적사항을 경찰 전산망에 올리고 전국 주요 기관과 공공장소에 수배 전단을 게시하는 거야. 그런데 하고 싶다고 다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수배자 중에서도 엄선된 사람만 전단에 오를 수 있어. 공개수배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그해 수배 대상자를 정한대. 상반기, 하반기 일 년에 기회는 딱 두 번, 전단에 오를 수 있는 것도 20명뿐이야. 이때 범행의 시급성, 범행 정도에 따라 전단에 올리는 순서도 정해져. 그래서 전단 맨 윗줄에는 도피 중인 강력범들을 배치해. 2009년부터 현재까지, 계속 수배 중인 범죄자도 있어. 김 형사는 예외적으로 이 부부를 1번, 2번에 올려달라고 요청했어. 저희가 부탁을 사실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8월 21일까지 생활반응이 있었고, 더군다나 전과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수배하면 반드시 잡힌다. 그러니 제발 1번, 2번에 좀 해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김 형사의 요청은 받아들여졌어. 수배 명단 1순위, 2순위로 부부를 올렸어. 이제 반드시 잡힌다는 믿음을 갖고 제보를 기다릴 수밖에. ▲ 영원한 비밀은 없다 전국 곳곳에 부부의 수배 전단이 뿌려졌을 즈음, 이번엔 부산이야. 부산의 한 카페에서 수다꽃을 피우던 부산토박이 정숙 씨와 영희 씨는 절친한 언니 동생 사이야. 영희 씨는 몇 달 전 자신이 일하는 농장에 젊은 부부가 새로 왔는데 느낌이 뭔가 싸하다고 언니 정숙 씨에게 털어놨어. 함께 농장 밥을 먹은 지가 몇 달인데, 쳐다보면 자꾸 눈을 피하더래. 처음엔 낯설어서 그런가 했는데, 6개월이 넘도록 낯을 가린다는 거야. 영희 씨는 부부가 서울말을 쓰던데, 여기 부산까지 내려와서 농장에서 일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말했어. 정숙 씨는 사람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리고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영희 씨가 볼일 보러 은행에 갔다가 무심코 벽을 쳐다봤는데, 종합공개수배 전단지를 발견했어. N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가면은 그거 있잖아요. 지명수배 전단지 같은 거. 딱 지나가는데, 어렴풋이 비슷하게 닮았더라고요 부부가. '뭐지? 좀 닮았는데…' 좀 눈썰미는 좋은 편이에요 제가. 한두 번 본 사람은 '저 사람 어디서 봤는데 누구였더라?' 할 정도로. '진짜 닮았긴 닮았는데 어쩌지…' 하다가 '그래 언니한테 전화 한 번 해보자'… -김영희(가명), 부부를 의심한 농장 직원 영희 씨는 경찰에 곧장 신고하지 않고, 정숙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어. 그동안 수배범과 한솥밥을 먹었다니 소름 끼치기도 하고, 내가 신고한 게 이들한테 알려지면 해코지당할까 봐 두렵고, 만약에 잘못 본 거라면 그 뒷감당은 어떡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믿을만한 언니한테 전화를 건 거야. 본인들은 절대 못하죠.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고. 또 긴가민가… 잘 모르겠는데 확실하지는 않은데, '언니가 전화해서 한 번 확인을 해봐라' 그래서 제가 전화했어요. 제가 아는 형사가 우리 학교 후배거든요. 그래서 제가, 혹시나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사람이. 그래서 거기로 전화를 한 거예요. -한정숙, 당시 사건 제보자 정숙 씨가 아는 사람이 또 잘 나가는 형사였어. 강력반 20년 경력의 장영권 형사. 영화 '범죄도시'에서 배우 마동석이 연기한 마석도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야. 마침 서울에서 여러 범죄조직을 싹 소탕하고 6개월 전부터 고향 부산에 내려와 있었어. 이렇게 장 형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농장으로 향했어. 저녁에 오후 늦게 제보가 들어왔는데 혹시나 밤에 검거하게 되면 직원들이 다칠 수도 있고 아침 일찍 검거하러 가게 됐습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갈 때는, 혹시나 살인범일 수도 있고 강도일 수도 있고, 저희가 직원들한테 이야기했죠. 준비를 단단해해야 된다고… -장영권, 제보받고 출동한 형사 베테랑 형사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야. 농장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어. 새싹채소를 재배하는 곳인데 직원 외에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야. 그래서 분위기가 더 스산해. 장 형사는 은밀히 차를 세우고 농장을 관찰했어. 다행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 대부분 고령의 근무자들이어서, 젊은 부부가 눈에 딱 보였어. 이때가 2013년 4월, 사건 발생 2년이 지난 후야. 부부는 행적이 끊겼던 2011년 8월부터 조용히 이곳에 숨어들었어. 1년 반 넘게 이곳에서 일하고 있던 거야. 경찰이 부부를 쫓은 지 무려 2년 2개월째였어. 형사들은 농장을 은밀히 포위했어. 장 형사는 한걸음 한걸음 부부를 향해 다가갔어. 바로 그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남편이 움찔해. 그리고 그대로 몸을 휙 돌리더니 저 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라고 말했어. 당시 신랑이 우리가 가니까 먼저 형사가 온 걸 알고 있더라고요. 자기 마음속으로 형사들이 가니까 먼저 '형사구나'라고 생각해서, 먼저 옆으로 가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이야기해서. 자기네들은 '언젠가는 경찰관이 올 것이다'… -장영권, 검거 당시 형사 마치 이런 날이 언젠가 올 줄 알았다는 눈치야. 장 형사가 추궁을 하기도 전에 남편은 전 죽어 마땅한 사람입니다 라며 모든 잘못을 인정해. 도주 시도는커녕, 부부는 순순히 연행됐어. 놀란 건 오히려 농장 쪽이었어.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성실하고 착한 부부 왜 잡아가냐 며 장 형사를 말린 거야.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저씨도 순해 보이고 사람들은 다 착하더라고요 보니까… -김영희(가명), 부부를 경찰에 제보 부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울기만 해. 눈은 퉁퉁 붓고 우느라 말도 잘 못해. 굉장히 울면서 많은 후회를 하면서 언제든지 자기가 처벌받을 각오가 돼있다는 식으로,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더라고요. 꿈에서도 자식이 많이 나타나고 그렇게 하면서 매일 자식들도 꿈에서 울고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더라고요. -장영권, 검거 당시 형사 ▲ 비극의 그날 장 형사는 곧장 포천서로 전화를 걸었어. 수사팀은 완전 비상이야. 부부의 검거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이 떠들썩했어. 자식을 죽인 비정한 부모, 뻔뻔하게 부모만 살아있다며 온갖 비난이 쏟아졌어. 두 사람은 분리돼서 한 명씩 조사를 받았어. 처음에는 남편이 '내가 다 했고, 아내는 가담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어. 이후 아내의 진술은 또 달랐어. 아내는 '아니다. 남편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같이 했다'라고 했어. 부부는 서로, 자기 혼자 저지른 범죄라고 했어.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선처를 바랐어. 이제 사건의 진실을 들여다볼 때야. 여우고개에 묻혀있던 진실은 좀 충격적이야. 남편이 직접 딸들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말했어. 차 사고가 아니었어. 차를 타고 함께 떨어진 건 맞지만, 그때 딸들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거야. 부부의 진술을 따라, 그날로 돌아가 볼게. 네 가족은, 여느 가족보다도 더 단란했대. 결혼 안 한 지인들도 이 가족을 보면 결혼하고 싶다고 할 만큼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가족이었어. 문제가 생긴 건, 돈 때문이었어. 남편의 사업이 잘못되며 집안이 휘청대기 시작했어. 남편은 일용직으로, 아내는 학습지 판매에 뛰어들었어. 그런데 학습지를 무리하게 팔려다가 아내가 빚을 지게 돼. 다른 사람의 명의로 학습지를 사고, 그걸 아내가 메우는 형식으로 매출을 올렸는데, 판매 대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야. 결국 부부는 살던 집도 팔고 친척집을 전전했어. 이맘때부터 남편의 누나 집에서 함께 살게 됐어. 하지만 얹혀살던 누나네 형편도 어려워지자, 당장 살 집을 구해 나가야 하는데, 더 이상 미래가 안 보이더래. 궁지에 몰린 아내는, 해서는 안 될 생각에 사로잡혀.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이제 다 끝낼 거라고. 남편이 말려도 아내는 이미 결심을 굳힌 뒤였어. 남편은 더 말릴 수가 없자, 일단 머리도 식힐 겸 여행을 떠나자고 했어. 두 아이도 함께. 네 가족은 포천으로 갔어. 온천도 가고 갈비도 먹으며, 아이들은 신이 났지. 하지만 이 포천 여행은, 이별 여행이 되고 말아. 아내를 설득하는데 실패했거든. 심지어 홀로 남겨질 두 딸이 눈에 밟혀서 부부는 아이들까지 함께 데려가겠다는 잘못된 결심을 해. 모두 잠든 밤, 남편은 조용히 번개탄에 불을 피웠어. 그리고 눈을 감았어. 그런데, 매캐한 연기에 잠들었던 첫째 딸이 기침을 하며 깼어. 그 소리에 남편도 눈을 떴어. 딸이 괴로워하자 정신이 번쩍 들더래. 곧바로 창문을 열고 번개탄을 모두 내다 버렸어. 하지만, 비극은 막을 수 없었어. 부부는 엉엉 울면서 두 딸을 껴안았어. 그리고, 너무나 잔인한 고백을 했어.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먼저 하늘나라에 가기로 했어. 우리는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는 거야. 그 어린아이들이 뭘 알겠어. 아이들은 눈물을 펑펑 쏟았어. 고작, 11살, 13살이야.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을 거야. 당시에 대해 남편은 그 순간에 그 아이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렇게 못난 부모도 부모라고… 라고 진술했어. 부부는 아이들도 같은 생각을 한다고 느꼈대. 잘못된 합리화지. 이 때라도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경로를 이탈한 질주는 멈추지 않았고, 두 번째 극단적 시도를 했어. 이번엔 차 안에서. 그런데 아이가 또다시 깨어나. 이번엔 작은 딸이야. 돌이킬 수 있는 또 한 번의 이 기회를, 부부는 잡지 않았어. 남편은 괴로워하는 막내를 향해 손을 뻗었어. 고통을 줄여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아이가 살겠다고 다리를 버둥거리는데, 이번엔 아내가 그 다리를 꽉 감싸 안았어. 부모는 아이들의 간절한 몸부림을 외면했어. 아이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그 다리를 잡았다. 저는 제3자인데도, 속으로 눈물이 나는데. 이 사람들 무슨 생각이었지? 어린 자기 자녀를 직접 목을 조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너무나 슬픈 이야기죠. -김중기,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부부는 곧장 아이들을 따라갈 생각이었대. 차를 타고 달리며 방법을 고민하다가 여우고개에 들어선 순간, 여기다 싶더래. 가드레일이 뚫린 구간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고, 정신을 잃었어. 그런데 얼마 후, 부부는 차 안에서 다시 눈을 뜬 거야.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으니까. 죽겠다는 사람이 안전벨트를 왜 맸냐고 추궁하자 남편은 차에 탔을 때부터 습관적으로 매고 있었다 고 말했어. 정말 극단적인 시도를 한 게 맞냐고 묻자, 부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고 주장했어. 딱 눈을 떴는데 자기들은 죽지 않아서 계곡에 돌이 많이 있거든요. 돌로 서로 치고 각자 치고, 머리를. 피만 났지 죽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때도 2월이니까 굉장히 춥거든요. '그냥 여기 있으면서 얼어 죽자' 해서 22일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거기 있었다는 거예요. -김중기,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 뒤로도 여러 번 죽으려고 했지만, 늘 한쪽이 깨어나더라는 거야. 부부에게는 죽는다는 게 너무 힘들었대. 부부는 일단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기회를 보자고, 암묵적인 약속을 했대. 두 사람은 아이들을 우의와 담요로 덮어줬어. 그리고 돗자리를 찢어 메모를 남긴 채 그곳을 떠났어. 아이들만 여우고개에 남기고. 정처 없이 움직이기 시작한 부부. 도중에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공중화장실에서 꽁꽁 언 발도 녹였대. 살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자기네들은. 항상 자살이라는 단어는 마음속에 두 부부가 새기고 살았다, 그 안에 넣고 살았다, 언제든지 우리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상 몸은 따로니까. 아이러니하죠. -김중기,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죽지 않은 부부, 왜 자수하지 않았나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부의 말과 행동. 이해하기 힘든 이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은 분들이 있어. 구치소에서 부부를 면담했던 변호인. 마침 부부 변호사가 두 사람의 변호를 맡았는데, 두 변호인에게도 참 어려운 사건이었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딸들만 죽이려고 작정했던 게 아닌가'라는 시각이 있었고, 그리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대체 뭐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는… 그래서 이제 파렴치, 뻔뻔, 부모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나쁜 사람들이라는 시각이 있었고.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옆에서 볼 때는 이 사람이 어마어마한 연기자가 아니면, 나랑 둘이 교도소에 있는데 이렇게까지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진짜로 애들을 보고 싶어 하고. 자기가 진짜 미친 짓을 했다는 자책감이 확실하니까. 이렇게 바보 같은 생각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는 것 같은, 그런 심리 상태였던 것 같아요. 대화를 해보면. 객관적으로 증명할 만한 것들이 사실 없어서 변론은 굉장히 어려웠던 사건이에요. -최미라,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사건의 쟁점은, 부부가 정말 죽을 계획이었는가야. 처음부터 아이들만 보내려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부부는 2년이 넘도록 도망 다녔어. 자수하지 않고. 두 사람의 말로는, 자기들은 잡힐 때까지 자기들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계속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가끔 시도를 하고 다시 또 시도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됐는데. 자수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자살을 할 수가 없잖아요. 구속이 되니까. 자수를 한다는 것은 자기들만 살겠다는 거고 자살하는 것을 단념하는 것이어서 자수를 할 수가 없었다…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자수가 곧 살겠다는 선언 같았다는 부부. 아이들을 따라가는 길만이 유일한 속죄라고 생각했대. 다만, 말 그대로 죽는 게 사는 것만큼 참 어려웠대.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저희는 죽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내 하지만 죽는 걸 실패할 때마다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엔 죽는다는 게 정말 무서워졌어요. -남편 전문가에 따르면, 극단적인 마음을 결심해도 죽음의 공포는 똑같이 다가온대. 죽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야. 게다가 눈앞에서 누군가 죽는 걸 보게 되면, 죽음의 공포가 더 크게 밀려온다는 거야. 2013년 9월 2일,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어. 부모는 딸들을 살해한 피고인으로 7명의 배심원 앞에 섰어. 남편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최후 진술을 했어. 자식을 죽인 부모 입장에서 모두 잘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정말 사랑했다 ,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저 자신이 원망스럽다. 속죄하고 참회하며 살겠다 고. 죽어 마땅하다며 모든 죄를 달게 받겠다던 부부는, 딱 한 가지 부탁을 했대. 부탁이라고 말을 하면서 했던 게 두 사람에 대한 형이 똑같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한 명이 먼저 출소하고 한 명이 교도소에 조금 더 오래 있게 되면 먼저 출소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걱정된다. 자기가 형을 조금 더 세게 맞아도 좋으니 나머지 한 명과 똑같은 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었어요.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이 부부는 아이들에게만큼이나 서로에 대해서도 큰 죄책감을 갖고 있었어. 한쪽이 먼저 출소하면 또다시 잘못된 생각을 할까 걱정돼서 같은 날 출소하고 싶다는 거야. 이날 배심원석과 방청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대. 부부에 대한 동정이었을까, 아니면 떠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까. 혹은 이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 자체가 너무 슬펐기 때문일까. 재판 결과는, 배심원 7명 모두 '유죄 의견'이었어. 그럼 재판부의 최종 판결은 어떻게 내려졌을까? 만 12세 10세에 불과한 아직 인생을 꽃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피해자들이 믿고 따르던 피고인들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빼앗기게 된 점 등에 미루어 피고인들을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 다만 피고인들이 자백하고 속죄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 앞으로 평생 친딸인 피해자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잃게 하였다는 죄책감에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하여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함. -판결문 내용 中 ▲ 뒤늦은 후회 사회가 내린 형량과 별개로, 부부는 마음의 벌을 평생 받으며 살게 되겠지. 변호인도 부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을 보며 두 변호인은 같은 걸 느꼈대. 어렵게나마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야.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사건 중에 이분들이 제일 후회가 컸어요. 범행을 반성하고 뉘우친다 이런 말 하잖아요. 근데 이분들은 확실하게 후회를 했어요. 그거는 명확한 거 같아요. -최미라,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저희가 담당했던 그 사건의 피고인들인 엄마랑 아빠도, 다시는 이 땅의 어떤 부모도 자기들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오히려 한 번쯤 그런 선택을 하려고 망설이는 최소한 고민을 하는 그런 부모들이 혹시 있다면, 당신들과 비슷한 생각을 해서 그걸 미련하게 실천에 옮겼던 사람들이 굉장히 후회를 많이 했다고 꼭 알려주고 싶어요.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부부는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아이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어.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책임감이 강했던 큰 딸. 발랄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개구쟁이 작은 딸. 두 아이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을 거야. 아이들은 아주 짧은 생을 살다가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세상을 떠났어. 이 비극의 곳곳에, 안타까운 지점들이 많지. 특히 남편의 진술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었어. 그동안 아이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못난 모습 안 보이게 잘 키웠습니다. 근데 당장 아내가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사채업자들이 올 수도 있고, 이러다 아이들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았어요. 힘든 꼴 어려운 꼴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말고 차라리 죽자… -남편의 피의자 신문조서 中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마음이겠지만, 부모라고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어. 아이들이 10살쯤이면 대화도 가능할 나이인데. 차라리 부부도 아이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눴으면 어땠을까. 그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이 비극에서 더 안타까웠던 건, 사건을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은 이 부부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는 거야. 티를 전혀 안 냈대. 진심으로 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부부에게 없었던 거지. 이런 부부에게 버팀목이 되기로 한 사람이 있어. 바로 부산에서 만난 장영권 형사님이야. 여러 가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죠. 잘 사는 사람은 몇 백만 원이 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어렵게 사는 사람은 몇 백만 원에 대해서 자기 생명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사연인 것 같고. 검거가 되면 모든 범죄자들이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기가 범죄를 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혹시나 이 방송이 나가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장영권 형사 언젠가 이 사회로 돌아올 부부가 또다시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이 돼주고 싶었대. 그 마음이 닿았던 건지, 부부는 수감 중에 장 형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남은 생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해 왔대. 이 두 사람이 그 약속과 다짐을 꼭 지키라는 의미에서, 장 형사는 '꼬꼬무'에 편지 내용을 조금 공유해 줬어. 지나간 시간을 후회해도 자책해도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자꾸만 후회하고 자책하게 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음의 이유를 생각하면서 지내는 중입니다. -2016. 8. 편지 내용 中 죽는다는 게 산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란 사실을 알기에 남은 시간은 정말 의미 있게 잘 살아가겠다 약속드립니다. 그것이 진정한 참회고 속죄란 생각이 듭니다. -2021.10. 편지 내용 中 부부가 편지에 쓴 이런 마음을 그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장 형사는 이 부부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며 살 거라고 믿는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으나, 부모가 자녀들을 죽이고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간간이 들려오지. 여전히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부모들이 있어. 삶은 누구에게나 귀한 것이고, 본능적으로 삶을 살아내려는 꺾이지 않는 의지가 있어. 아이들의 생명은 아이들 것이지, 부모의 것이 아니야. 그걸 부모라고 해서 마음대로 빼앗을 수는 없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10대 자매, 실종된 부모는 어디에?…충격 사건의 전말 [꼬꼬무 찐리뷰]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10대 자매, 실종된 부모는 어디에?…충격 사건의 전말 등록일2023.12.01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월 30일 방송된 '여우고개에 묻힌 진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송영규, 댄서 모니카, 가수 정세운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전국을 누빈 방랑 부부 때는 2011년 3월, 충청북도 진천이야. 진천은 오이가 특산물이야. 그런데 한 오이농장이 비상사태야. 한창 수확철인데 일할 사람이 부족했거든.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구인광고를 봤다며 오이농장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어. 숙식이 가능하냐고 묻길래, 사장은 숙식 가능하니 당장 다음날부터 출근하라고 했어. 그리고 다음날, 그 남자가 찾아왔는데, 남자 혼자가 아니라, 젊은 부부야. 두 사람 다 인상도 좋고 싹싹해 보이길래, 사장님은 일을 하라고 했어. 부부가 젊은 사람들이라 농장 일이 힘들어 얼마 안 가 그만둘 줄 알았는데,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록 진득하니 일을 잘해. 사장은 보너스로 월급까지 올려줬어. 그런데 세 달째 월급을 받은 그날, 이 부부가 감쪽같이 사라져. 잘 지내다 갑니다. 더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라고 쓴 쪽지만 하나 남기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7월, 여름 휴가철이야. 경상남도 밀양의 한 펜션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와.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했다며, 숙식이 가능하냐고 물어. 맞아, 오이농장에서 일하던 바로 그 부부야. 이번에는 펜션에서 일하게 된 부부. 청소도 척척, 손님 대응도 완벽해. 특히 아이들한테 그렇게 다정할 수 없어. 부부는 자신들에 대해 애들 유학 보내고 저희끼리 용돈 벌고 여행도 다니면서 지내는 중 이라고 설명했어. '욜로족'처럼, 번 돈으로 비싼 고기 사 먹고, 다른 펜션 직원들한테 술도 시원하게 쏴. 심지어 외출할 땐, 버스도 안 타고 무조건 택시야. 펜션 사장님 눈에는 '인생 즐기는 부부'로 보였어.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바다가 보고 싶어서 포항 쪽으로 가보려 한다 며 홀연히 또 동네를 떠나. 처음에는 충북 진천의 오이농장, 그리고 경남 밀양의 한 펜션. 이어 포항, 마산, 여수, 해남까지. 부부는 전국을 돌아다녔어. 이 부부의 다음 행선지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어. 그 뒤로 부부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8월 이후로 부부의 행적이 뚝 끊겨 버렸어. 그리고, 이 젊은 부부의 행적이 다시 발견된 건,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뀐 겨울이 되어서야. ▲ 여우고개에 추락한 차량, 아이들의 백골 시신 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포천경찰서 강력 1팀의 김중기 형사가 평소처럼 당직 근무를 서고 있어. 바로 그때, 수상한 차량을 발견했다는 제보 전화가 걸려왔어. 깊은 골짜기 절벽 끝에 차 한 대가 떨어져 있다는 거야. 그런데, 발견 장소가 예사롭지 않아. 경기도 포천의 '여우고개'라는 곳이야. 형사들은 바로 현장으로 출동했어. 한겨울에 꼬부랑길을 계속 따라가는데, 찬 바람 때문에 온몸이 서늘해. 그렇게 정신없이 도착한 여우고개 능선. 거기서 제보자를 만났어. 벼랑 아래서 차 바퀴를 발견했다는 제보자의 말을 듣고 벼랑 끝을 쓱 내려다보니, 절벽 아래의 현장이 너무나 처참해. 현장을 딱 지목해 준 데 보니까, 차가 왼쪽으로 전도가 돼버린 거예요. 그런데 완전히 박살이 났더라고요. 다 녹슬고 유리도 깨지고. 앞 유리, 옆 유리… 방치된 차량이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았어요.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차량이 발견된 장소는 도로에서 30m 떨어진 거리야. 능선을 따라 쭉 이어진 가드레일이 차량이 발견된 위쪽 구간에만 없어. 아마 그 사이로 추락한 거 같아. 일단, 차적 조회부터 했어. 그리고 현장을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근처에서 백골 시신을 발견했어. 시신이 백골 상태니 오래 방치됐을 걸로 추정돼. 시신은 차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담요로 가려져 있었어. 처음에 112 신고 받고 갔을 때 차량이 계곡 아래에 굴러 떨어져 있고. '차를 왜 여기다가 버렸지?' 그 생각을 했었는데, 사체가 발견됐으니까요. 너무 놀랐죠.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게다가, 좀 더 떨어진 지점에 시신 한 구가 더 있어. 그때부터 현장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해. 시신이 두 구나 나왔으니까. 이건 단순 추락 사고일 수도, 살인 사건일 수도 있어. 차량 조회 결과가 나왔어. 그 결과는, 아까 전국을 여행하던 그 젊은 부부. 그중 남편의 차였어. 두 구의 시신, 그 부부인 걸까? 단서는 분명 현장에 남아 있어. 가장 중요한 증거는 차량이야. 우선 크레인으로 이 차량부터 건져 올렸어. 고요한 골짜기에 굉음이 울려 퍼지고, 묵직한 차량이 끌어 올라와. 끌어올려보니, 차량 상태가 심각해. 폐차 수준으로 완파된 차량. 그대로 꽂혀있던 차 키. 드라이브 상태에 있던 기어를 보면, 주행 중에 떨어진 걸로 추정돼. 차량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던 안전벨트. 안전벨트는 사용하려 잡아당기면 늘어나지만, 결착 해제 시 제자리로 금방 돌아가지. 그래서 안전벨트는 사용하지 않았다면 늘어져 있을 수가 없어. 추락할 때 안전벨트를 착용했을 걸로 여겨져. 그리고 안전벨트 없이 떨어졌다면 앞쪽에 부딪힐 가능성이 많아. 그런데 핸들과 대시보드에는 충격의 흔적이 없어. 차량 상태에 비해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던 거 같아. 그럼 안전벨트를 스스로 풀고 차 밖으로 나왔을 거야. 지금까지 상황을 보자면, 예기치 못한 절벽 추락 후 차량에서 탈출했지만, 끝내 목숨을 잃은 사고로 보이지. 그런데, 차가 있던 자리에서 은색 형체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어. 돗자리 조각이었어. 은박 돗자리를 찢은 거 같은데, 돌멩이로 돗자리를 꾹 눌러 놨어. 조심스럽게 돗자리를 들어 올렸는데,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리고 무심결에 돗자리를 뒤집자, 돗자리 뒷면에 엄청난 단서가 있었어. 우리가 아직 살아 있네요. 우리는 산정호수에 빠져 죽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오늘 2월 22일 화요일이네요. 이곳의 위치를 알리고 우리 아이들의 시신이 잘 거두어지길 바라면서 마지막 길을 떠납니다. -돗자리 조각에 적힌 내용 中 아이들이 죽었다고 쓴 부모의 돗자리 편지.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백골 시신 두 구를 급히 국과수로 보냈어. 부검 결과, 두 구의 시신은 10대 여자 아이들이었어. 연령을 추정할 때는 치아의 발육 정도 뼈의 발달 상태를 보고 얘기하는데, 13세 전후와 11세 전후로 나왔습니다. 뼈들이 밖으로 노출될 정도로 부패가 좀 상당히 진행이 된 경우였습니다. 적어도 3개월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이상섭, 당시 국과수 부검의 경찰은 산정호수로 가서 주변을 수색했어. 반경 300m까지 수색 범위를 넓혀 여우고개 일대와 산정호수까지 샅샅이 뒤졌어.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어. 조사해 보니, 네 가족 모두 실종신고가 된 상태였고 다른 경찰서에서도 부부의 행적을 쫓고 있었어. 신고자는 남편의 매형. 남편의 누나 집에서 이 네 가족이 함께 살았거든. 열 달 전쯤인 2011년 2월에, 바람 좀 쐬고 온다면서 네 가족이 함께 집을 나갔다는 거야. 부부와 11살, 13살 된 딸 둘 모두. 처음에 누나 부부는, 방학이니 가족여행을 갔겠거니 생각했어. 그런데 며칠 후 누나집에 편지 하나가 도착했어. 그 편지를 읽은 매형은 온몸에 힘이 쫙 풀렸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저희를 용서하세요. 특히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하지만 남아서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저희가 데려갑니다. 죽을 각오로 살아보려 했는데 현실은 무섭군요. 이렇게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인 것 같아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아이들이 애처로워 같이 가려고 합니다… -누나 부부가 받은 편지 내용 中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편지. 그리고 열 달 만에 아이들은 백골 시신으로 발견됐어. 하지만 부부는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돗자리 편지에서 편지 쓴 날짜는 2월 22일었어. 그런데 부부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건 8월이야. 그러니 아이들이 사망한 2월 이후에도, 부부가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야. 같이 간다고 해놓고, 부부만 사라졌다? 같이 가려 했다는 부부의 말은, 진짜였을까? 수사의 핵심은 이 부부를 찾는 것. 2012년 1월 1일, 수사팀은 부부에 대한 체포 영장을 신청했어. 혐의는 살인과 사체 유기. 단란했던 이 가족은 이렇게 피해자와 피의자 사이가 됐어. ▲ 사라진 부부의 행적 가족이 실종된 2월부터 경찰이 파악한 부부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네 가족은 2월 14일 집을 나갔어. 그리고 14일과 22일 사이에 아이들은 사망한 걸로 추정돼. 이후 부부는 사흘 뒤 2월 25일 포천에서 9만원을 인출해. 그리고 의정부, 강릉을 돌며 돈을 조금씩 계속 뽑았어. 그러다가 예상 밖의 동선이 발견돼. 바로, 병원. 마취통증의학과에 3번이나 가서 '동상 치료'를 받았어. 특히 발이 많이 불편해 보였대. 산정호수에 빠져 죽기로 결심했다고 했었는데, 진짜 부부는 호수에 뛰어들었던 걸까? 충북 진천의 오이농장 사장님의 눈에도 부부의 발은 영 불편해 보였대. 그래서 사장님이 대전의 한 병원을 추천했어. 부부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사장님이 불편해 보이니 계속 권했대. 결국 부부는 대전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고, 이때 병원에 주민등록번호를 남겼어. 그 후 급하게, 오이농장을 떠난 게 아닐까. 그런데, 부부가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건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거잖아. 아이들과 같이 떠나겠다는 부부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느껴지지. 마음이 달라진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는 당장 너무 아프고 그래서 일단 치료부터 받지 않았겠느냐 그렇게 생각하고…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이렇게 흔적이 나올 때마다 경찰은 뒤를 쫓았는데, 늘 간발의 차로 사라진 뒤였대. 설상가상 2011년 8월 이후로는 행적이 뚝 끊겼어. 이제 부부를 찾을 단서가 전혀 없어. 작정한 듯 잠적해 버렸거든. 부부는 엄청난 비밀을 감춘 채 도피를 이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어디에선가 이미 사망한 걸까. 백골 시신이 발견되고 1년이 지났어. 의문만 남긴 채 수사는 난항이야. 부부의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보여. 김 형사는 이 수사의 끈을 놓을 수 없었어. 간절했죠. 그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사망했을까. 그거를 풀어야 하잖아요.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형사들은 다 그렇습니다. '잡아야겠다' 신념이 없으면 못 잡거든요. 그냥 잡히는 것 같아도 그냥 안 잡히거든요 범인들이. '잡아야겠다'라고 할 때 잡히는 것이지. -강구명, 당시 포천경찰서 수사과장 김 형사는 공개수배 카드를 꺼내 들었어. 범인 인적사항을 경찰 전산망에 올리고 전국 주요 기관과 공공장소에 수배 전단을 게시하는 거야. 그런데 하고 싶다고 다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수배자 중에서도 엄선된 사람만 전단에 오를 수 있어. 공개수배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그해 수배 대상자를 정한대. 상반기, 하반기 일 년에 기회는 딱 두 번, 전단에 오를 수 있는 것도 20명뿐이야. 이때 범행의 시급성, 범행 정도에 따라 전단에 올리는 순서도 정해져. 그래서 전단 맨 윗줄에는 도피 중인 강력범들을 배치해. 2009년부터 현재까지, 계속 수배 중인 범죄자도 있어. 김 형사는 예외적으로 이 부부를 1번, 2번에 올려달라고 요청했어. 저희가 부탁을 사실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8월 21일까지 생활반응이 있었고, 더군다나 전과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수배하면 반드시 잡힌다. 그러니 제발 1번, 2번에 좀 해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김 형사의 요청은 받아들여졌어. 수배 명단 1순위, 2순위로 부부를 올렸어. 이제 반드시 잡힌다는 믿음을 갖고 제보를 기다릴 수밖에. ▲ 영원한 비밀은 없다 전국 곳곳에 부부의 수배 전단이 뿌려졌을 즈음, 이번엔 부산이야. 부산의 한 카페에서 수다꽃을 피우던 부산토박이 정숙 씨와 영희 씨는 절친한 언니 동생 사이야. 영희 씨는 몇 달 전 자신이 일하는 농장에 젊은 부부가 새로 왔는데 느낌이 뭔가 싸하다고 언니 정숙 씨에게 털어놨어. 함께 농장 밥을 먹은 지가 몇 달인데, 쳐다보면 자꾸 눈을 피하더래. 처음엔 낯설어서 그런가 했는데, 6개월이 넘도록 낯을 가린다는 거야. 영희 씨는 부부가 서울말을 쓰던데, 여기 부산까지 내려와서 농장에서 일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말했어. 정숙 씨는 사람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리고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영희 씨가 볼일 보러 은행에 갔다가 무심코 벽을 쳐다봤는데, 종합공개수배 전단지를 발견했어. N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가면은 그거 있잖아요. 지명수배 전단지 같은 거. 딱 지나가는데, 어렴풋이 비슷하게 닮았더라고요 부부가. '뭐지? 좀 닮았는데…' 좀 눈썰미는 좋은 편이에요 제가. 한두 번 본 사람은 '저 사람 어디서 봤는데 누구였더라?' 할 정도로. '진짜 닮았긴 닮았는데 어쩌지…' 하다가 '그래 언니한테 전화 한 번 해보자'… -김영희(가명), 부부를 의심한 농장 직원 영희 씨는 경찰에 곧장 신고하지 않고, 정숙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어. 그동안 수배범과 한솥밥을 먹었다니 소름 끼치기도 하고, 내가 신고한 게 이들한테 알려지면 해코지당할까 봐 두렵고, 만약에 잘못 본 거라면 그 뒷감당은 어떡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믿을만한 언니한테 전화를 건 거야. 본인들은 절대 못하죠.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고. 또 긴가민가… 잘 모르겠는데 확실하지는 않은데, '언니가 전화해서 한 번 확인을 해봐라' 그래서 제가 전화했어요. 제가 아는 형사가 우리 학교 후배거든요. 그래서 제가, 혹시나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사람이. 그래서 거기로 전화를 한 거예요. -한정숙, 당시 사건 제보자 정숙 씨가 아는 사람이 또 잘 나가는 형사였어. 강력반 20년 경력의 장영권 형사. 영화 '범죄도시'에서 배우 마동석이 연기한 마석도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야. 마침 서울에서 여러 범죄 조직을 싹 소탕하고 6개월 전부터 고향 부산에 내려와 있었어. 이렇게 장 형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농장으로 향했어. 저녁에 오후 늦게 제보가 들어왔는데 혹시나 밤에 검거하게 되면 직원들이 다칠 수도 있고 아침 일찍 검거하러 가게 됐습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갈 때는, 혹시나 살인범일 수도 있고 강도일 수도 있고, 저희가 직원들한테 이야기했죠.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된다고… -장영권, 제보받고 출동한 형사 베테랑 형사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야. 농장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어. 새싹채소를 재배하는 곳인데 직원 외에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야. 그래서 분위기가 더 스산해. 장 형사는 은밀히 차를 세우고 농장을 관찰했어. 다행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 대부분 고령의 근무자들이어서, 젊은 부부가 눈에 딱 보였어. 이때가 2013년 4월, 사건 발생 2년이 지난 후야. 부부는 행적이 끊겼던 2011년 8월부터 조용히 이곳에 숨어들었어. 1년 반 넘게 이곳에서 일하고 있던 거야. 경찰이 부부를 쫓은 지 무려 2년 2개월째였어. 형사들은 농장을 은밀히 포위했어. 장 형사는 한걸음 한걸음 부부를 향해 다가갔어. 바로 그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남편이 움찔해. 그리고 그대로 몸을 휙 돌리더니 저 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라고 말했어. 당시 신랑이 우리가 가니까 먼저 형사가 온 걸 알고 있더라고요. 자기 마음속으로 형사들이 가니까 먼저 '형사구나'라고 생각해서, 먼저 옆으로 가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이야기해서. 자기네들은 '언젠가는 경찰관이 올 것이다'… -장영권, 검거 당시 형사 마치 이런 날이 언젠가 올 줄 알았다는 눈치야. 장 형사가 추궁을 하기도 전에 남편은 전 죽어 마땅한 사람입니다 라며 모든 잘못을 인정해. 도주 시도는커녕, 부부는 순순히 연행됐어. 놀란 건 오히려 농장 쪽이었어.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성실하고 착한 부부 왜 잡아가냐 며 장 형사를 말린 거야.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저씨도 순해 보이고 사람들은 다 착하더라고요 보니까… -김영희(가명), 부부를 경찰에 제보 부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울기만 해. 눈은 퉁퉁 붓고 우느라 말도 잘 못해. 굉장히 울면서 많은 후회를 하면서 언제든지 자기가 처벌받을 각오가 돼있다는 식으로,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더라고요. 꿈에서도 자식이 많이 나타나고 그렇게 하면서 매일 자식들도 꿈에서 울고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더라고요. -장영권, 검거 당시 형사 ▲ 비극의 그날 장 형사는 곧장 포천서로 전화를 걸었어. 수사팀은 완전 비상이야. 부부의 검거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이 떠들썩했어. 자식을 죽인 비정한 부모, 뻔뻔하게 부모만 살아있다며 온갖 비난이 쏟아졌어. 두 사람은 분리돼서 한 명씩 조사를 받았어. 처음에는 남편이 '내가 다 했고, 아내는 가담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어. 이후 아내의 진술은 또 달랐어. 아내는 '아니다. 남편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같이 했다'라고 했어. 부부는 서로, 자기 혼자 저지른 범죄라고 했어.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선처를 바랐어. 이제 사건의 진실을 들여다볼 때야. 여우고개에 묻혀있던 진실은 좀 충격적이야. 남편이 직접 딸들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말했어. 차 사고가 아니었어. 차를 타고 함께 떨어진 건 맞지만, 그때 딸들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거야. 부부의 진술을 따라, 그날로 돌아가 볼게. 네 가족은, 여느 가족보다도 더 단란했대. 결혼 안 한 지인들도 이 가족을 보면 결혼하고 싶다고 할 만큼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가족이었어. 문제가 생긴 건, 돈 때문이었어. 남편의 사업이 잘못되며 집안이 휘청대기 시작했어. 남편은 일용직으로, 아내는 학습지 판매에 뛰어들었어. 그런데 학습지를 무리하게 팔려다가 아내가 빚을 지게 돼. 다른 사람의 명의로 학습지를 사고, 그걸 아내가 메우는 형식으로 매출을 올렸는데, 판매 대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야. 결국 부부는 살던 집도 팔고 친척집을 전전했어. 이맘때부터 남편의 누나 집에서 함께 살게 됐어. 하지만 얹혀살던 누나네 형편도 어려워지자, 당장 살 집을 구해 나가야 하는데, 더 이상 미래가 안 보이더래. 궁지에 몰린 아내는, 해서는 안 될 생각에 사로잡혀.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이제 다 끝낼 거라고. 남편이 말려도 아내는 이미 결심을 굳힌 뒤였어. 남편은 더 말릴 수가 없자, 일단 머리도 식힐 겸 여행을 떠나자고 했어. 두 아이도 함께. 네 가족은 포천으로 갔어. 온천도 가고 갈비도 먹으며, 아이들은 신이 났지. 하지만 이 포천 여행은, 이별 여행이 되고 말아. 아내를 설득하는데 실패했거든. 심지어 홀로 남겨질 두 딸이 눈에 밟혀서 부부는 아이들까지 함께 데려가겠다는 잘못된 결심을 해. 모두 잠든 밤, 남편은 조용히 번개탄에 불을 피웠어. 그리고 눈을 감았어. 그런데, 매캐한 연기에 잠들었던 첫째 딸이 기침을 하며 깼어. 그 소리에 남편도 눈을 떴어. 딸이 괴로워하자 정신이 번쩍 들더래. 곧바로 창문을 열고 번개탄을 모두 내다 버렸어. 하지만, 비극은 막을 수 없었어. 부부는 엉엉 울면서 두 딸을 껴안았어. 그리고, 너무나 잔인한 고백을 했어.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먼저 하늘나라에 가기로 했어. 우리는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는 거야. 그 어린아이들이 뭘 알겠어. 아이들은 눈물을 펑펑 쏟았어. 고작, 11살, 13살이야.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을 거야. 당시에 대해 남편은 그 순간에 그 아이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렇게 못난 부모도 부모라고… 라고 진술했어. 부부는 아이들도 같은 생각을 한다고 느꼈대. 잘못된 합리화지. 이 때라도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경로를 이탈한 질주는 멈추지 않았고, 두 번째 극단적 시도를 했어. 이번엔 차 안에서. 그런데 아이가 또다시 깨어나. 이번엔 작은 딸이야. 돌이킬 수 있는 또 한 번의 이 기회를, 부부는 잡지 않았어. 남편은 괴로워하는 막내를 향해 손을 뻗었어. 고통을 줄여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아이가 살겠다고 다리를 버둥거리는데, 이번엔 아내가 그 다리를 꽉 감싸 안았어. 부모는 아이들의 간절한 몸부림을 외면했어. 아이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그 다리를 잡았다. 저는 제3자인데도, 속으로 눈물이 나는데. 이 사람들 무슨 생각이었지? 어린 자기 자녀를 직접 목을 조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너무나 슬픈 이야기죠. -김중기,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부부는 곧장 아이들을 따라갈 생각이었대. 차를 타고 달리며 방법을 고민하다가 여우고개에 들어선 순간, 여기다 싶더래. 가드레일이 뚫린 구간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고, 정신을 잃었어. 그런데 얼마 후, 부부는 차 안에서 다시 눈을 뜬 거야.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으니까. 죽겠다는 사람이 안전벨트를 왜 맸냐고 추궁하자 남편은 차에 탔을 때부터 습관적으로 매고 있었다 고 말했어. 정말 극단적인 시도를 한 게 맞냐고 묻자, 부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고 주장했어. 딱 눈을 떴는데 자기들은 죽지 않아서 계곡에 돌이 많이 있거든요. 돌로 서로 치고 각자 치고, 머리를. 피만 났지 죽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때도 2월이니까 굉장히 춥거든요. '그냥 여기 있으면서 얼어 죽자' 해서 22일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거기 있었다는 거예요. -김중기,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 뒤로도 여러 번 죽으려고 했지만, 늘 한쪽이 깨어나더라는 거야. 부부에게는 죽는다는 게 너무 힘들었대. 부부는 일단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기회를 보자고, 암묵적인 약속을 했대. 두 사람은 아이들을 우의와 담요로 덮어줬어. 그리고 돗자리를 찢어 메모를 남긴 채 그곳을 떠났어. 아이들만 여우고개에 남기고. 정처 없이 움직이기 시작한 부부. 도중에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공중화장실에서 꽁꽁 언 발도 녹였대. 살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자기네들은. 항상 자살이라는 단어는 마음속에 두 부부가 새기고 살았다, 그 안에 넣고 살았다, 언제든지 우리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상 몸은 따로니까. 아이러니하죠. -김중기,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죽지 않은 부부, 왜 자수하지 않았나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부의 말과 행동. 이해하기 힘든 이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은 분들이 있어. 구치소에서 부부를 면담했던 변호인. 마침 부부 변호사가 두 사람의 변호를 맡았는데, 두 변호인에게도 참 어려운 사건이었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딸들만 죽이려고 작정했던 게 아닌가'라는 시각이 있었고, 그리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대체 뭐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는… 그래서 이제 파렴치, 뻔뻔, 부모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나쁜 사람들이라는 시각이 있었고.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옆에서 볼 때는 이 사람이 어마어마한 연기자가 아니면, 나랑 둘이 교도소에 있는데 이렇게까지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진짜로 애들을 보고 싶어 하고. 자기가 진짜 미친 짓을 했다는 자책감이 확실하니까. 이렇게 바보 같은 생각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는 것 같은, 그런 심리 상태였던 것 같아요. 대화를 해보면. 객관적으로 증명할 만한 것들이 사실 없어서 변론은 굉장히 어려웠던 사건이에요. -최미라,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사건의 쟁점은, 부부가 정말 죽을 계획이었는지야. 처음부터 아이들만 보내려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부부는 2년이 넘도록 도망 다녔어. 자수하지 않고. 두 사람의 말로는, 자기들은 잡힐 때까지 자기들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계속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가끔 시도를 하고 다시 또 시도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됐는데. 자수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자살을 할 수가 없잖아요. 구속이 되니까. 자수를 한다는 것은 자기들만 살겠다는 거고 자살하는 것을 단념하는 것이어서 자수를 할 수가 없었다…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자수가 곧 살겠다는 선언 같았다는 부부. 아이들을 따라가는 길만이 유일한 속죄라고 생각했대. 다만, 말 그대로 죽는게 사는 것만큼 참 어려웠대.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저희는 죽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내 하지만 죽는 걸 실패할 때마다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엔 죽는다는 게 정말 무서워졌어요. -남편 전문가에 따르면, 극단적인 마음을 결심해도 죽음의 공포는 똑같이 다가온대. 죽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야. 게다가 눈앞에서 누군가 죽는 걸 보게 되면, 죽음의 공포가 더 크게 밀려온다는 거야. 2013년 9월 2일,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어. 부모는 딸들을 살해한 피고인으로 7명의 배심원 앞에 섰어. 남편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최후 진술을 했어. 자식을 죽인 부모 입장에서 모두 잘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정말 사랑했다 ,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저 자신이 원망스럽다. 속죄하고 참회하며 살겠다 고. 죽어 마땅하다며 모든 죄를 달게 받겠다던 부부는, 딱 한 가지 부탁을 했대. 부탁이라고 말을 하면서 했던 게 두 사람에 대한 형이 똑같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한 명이 먼저 출소하고 한 명이 교도소에 조금 더 오래 있게 되면 먼저 출소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걱정된다. 자기가 형을 조금 더 세게 맞아도 좋으니 나머지 한 명과 똑같은 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었어요.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이 부부는 아이들에게만큼이나 서로에 대해서도 큰 죄책감을 갖고 있었어. 한쪽이 먼저 출소하면 또다시 잘못된 생각을 할까 걱정돼서 같은 날 출소하고 싶다는 거야. 이날 배심원석과 방청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대. 부부에 대한 동정이었을까, 아니면 떠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까. 혹은 이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 자체가 너무 슬펐기 때문일까. 재판 결과는, 배심원 7명 모두 '유죄 의견'이었어. 그럼 재판부의 최종 판결은 어떻게 내려졌을까? 만 12세, 10세에 불과한 아직 인생을 꽃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피해자들이 믿고 따르던 피고인들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빼앗기게 된 점 등에 미루어 피고인들을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 다만 피고인들이 자백하고 속죄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 앞으로 평생 친딸인 피해자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잃게 하였다는 죄책감에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하여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함. -판결문 내용 中 ▲ 뒤늦은 후회 사회가 내린 형량과 별개로, 부부는 마음의 벌을 평생 받으며 살게 되겠지. 변호인도 부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을 보며 두 변호인은 같은 걸 느꼈대. 어렵게나마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야.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사건 중에 이분들이 제일 후회가 컸어요. 범행을 반성하고 뉘우친다 이런 말 하잖아요. 근데 이분들은 확실하게 후회를 했어요. 그거는 명확한 거 같아요. -최미라,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저희가 담당했던 그 사건의 피고인들인 엄마랑 아빠도, 다시는 이 땅의 어떤 부모도 자기들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오히려 한 번쯤 그런 선택을 하려고 망설이는 최소한 고민을 하는 그런 부모들이 혹시 있다면, 당신들과 비슷한 생각을 해서 그걸 미련하게 실천에 옮겼던 사람들이 굉장히 후회를 많이 했다고 꼭 알려주고 싶어요.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부부는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아이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어.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책임감이 강했던 큰 딸. 발랄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개구쟁이 작은 딸. 두 아이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을 거야. 아이들은 아주 짧은 생을 살다가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세상을 떠났어. 이 비극의 곳곳에, 안타까운 지점들이 많지. 특히 남편의 진술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었어. 그동안 아이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못난 모습 안 보이게 잘 키웠습니다. 근데 당장 아내가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사채업자들이 올 수도 있고, 이러다 아이들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았어요. 힘든 꼴 어려운 꼴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말고 차라리 죽자… -남편의 피의자 신문조서 中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마음이겠지만, 부모라고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어. 아이들이 10살쯤이면 대화도 가능할 나이인데. 차라리 부부도 아이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눴으면 어땠을까. 그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이 비극에서 더 안타까웠던 건, 사건을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은 이 부부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는 거야. 티를 전혀 안 냈대. 진심으로 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부부에게 없었던 거지. 이런 부부에게 버팀목이 되기로 한 사람이 있어. 바로 부산에서 만난 장영권 형사님이야. 여러 가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죠. 잘 사는 사람은 몇백만원이 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어렵게 사는 사람은 몇백만원에 대해서 자기 생명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사연인 것 같고. 검거가 되면 모든 범죄자들이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기가 범죄를 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혹시나 이 방송이 나가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장영권 형사 언젠가 이 사회로 돌아올 부부가 또다시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이 돼주고 싶었대. 그 마음이 닿았던 건지, 부부는 수감 중에 장 형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남은 생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해 왔대. 이 두 사람이 그 약속과 다짐을 꼭 지키라는 의미에서, 장 형사는 '꼬꼬무'에 편지 내용을 조금 공유해 줬어. 지나간 시간을 후회해도 자책해도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자꾸만 후회하고 자책하게 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음의 이유를 생각하면서 지내는 중입니다. -2016. 8. 편지 내용 中 죽는다는 게 산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란 사실을 알기에 남은 시간은 정말 의미 있게 잘 살아가겠다 약속드립니다. 그것이 진정한 참회고 속죄란 생각이 듭니다. -2021.10. 편지 내용 中 부부가 편지에 쓴 이런 마음을 그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장 형사는 이 부부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며 살 거라고 믿는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으나, 부모가 자녀들을 죽이고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간간이 들려오지. 여전히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부모들이 있어. 삶은 누구에게나 귀한 것이고, 본능적으로 삶을 살아내려는 꺾이지 않는 의지가 있어. 아이들의 생명은 아이들 것이지, 부모의 것이 아니야. 그걸 부모라고 해서 마음대로 빼앗을 수는 없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근무결재
[스브스夜] '꼬꼬무' 모니카, 너무나 잘 이해되는 마음, 하지만 삶은 귀중해 …포천 자매 살인사건 조명 [스브스夜] '꼬꼬무' 모니카,  너무나 잘 이해되는 마음, 하지만 삶은 귀중해 …포천 자매 살인사건 조명 등록일2023.12.01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모니카가 그날의 이야기에 눈물을 보였다. 3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여우고개에 묻힌 진실'이라는 부제로 포천 자매 살인사건의 그날을 조명했다. 포천 경찰서 강력 1팀의 연말은 다른 곳과 달리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수상한 차량을 발견했다는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이에 김중기 형사는 팀원들과 함께 경기도 포천 여우고개로 향했다. 이어 이들은 현장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했다. 여우고개 골짜기 아래로 차량 한 대가 큰 훼손을 입고 쓰러져 있었고, 차량 주변에서는 백골이 된 시신 두 구가 발견됐던 것. 그리고 이는 사고 현장이 아닌 시신 유기 현장이었다. 해당 차량의 차적 조회 결과, 한 부부의 차량으로 밝혀졌는데 이들은 이미 1년 전 실종 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특히 이 부부는 바람을 쐬러 간다며 어린 두 딸과 함께 떠났는데 사고 차량과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장에는 더욱 충격적인 단서가 남겨져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은박 돗자리 조각에는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 산정 호수에 빠져 죽기로 결심. 오늘 2월 22일 화요일 이곳의 위치를 알리고 우리 아이들의 시신이 잘 거둬지길 바라면서 마지막 길을 떠납니다 라는 내용의 편지가 남아있었다. 이에 경찰들은 곧바로 시신 두 구의 부검을 의뢰했고, 조사 결과 해당 시신은 11세, 13세 전후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었다. 이는 바로 실종된 부부의 두 딸이었다. 여우고개 일대와 산정호수까지 대대적인 수색이 진행됐으나 부부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부부는 아이들만 여우고개에 두고 사라진 것. 아이들을 따라가겠다는 말과 다른 내용의 편지에 부부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 결과 부부는 아이들이 사망한 후에도 전국을 돌아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그 과정 중에 부상을 입은 발까지 치료하는 모습을 보여 삶에 대한 의지가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게 완벽하게 사라진 부부. 이에 경찰들은 반드시 부부를 잡아야겠다는 신념으로 수사를 지속했고, 종합 공개 수배를 결정했다. 해당 사건의 김중기 형사는 생활 반응이 있고 전과가 없는 두 사람을 수배하면 반드시 잡는다는 확신이 있었고, 이에 일 년에 두 번 20명만 전단에 오를 수 있는 상황에 부부를 1, 2번에 올려달라고 요청했고 이는 수락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제보 전화가 온 것. 한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부부를 목격한 영희 씨는 자신의 언니에게 이를 상담했고, 영희 씨의 언니 정숙 씨는 친한 형사 후배인 장 후배에게 이를 제보했다. 이에 정숙 씨의 후배이자 영화 범죄도시의 주인공 마석도 형사의 실제 모델인 장 형사는 부부가 일하고 있다는 농장을 포위하고 틈을 노렸다. 그리고 남편에게 다가가자 남편은 단번에 그가 형사인 걸 알아채고 저쪽에 가서 이야기를 해도 되겠냐 라며 순순히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언제든 처벌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 부부. 장 형사는 포천 경찰서에 연락을 했고, 그렇게 자식을 죽인 비정한 부모는 체포되었다. 현장 검증 내내 고개를 들지 못하던 부부는 서로의 선처를 바라며 자기 혼자 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유난할 정도로 단란했던 이들 가족에게 비극이 시작된 것은 돈이 원인이었다. 남편의 사업이 잘못되면서 집안이 휘청했고 이에 남편은 일용직, 아내는 학습지 판매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내가 학습지 판매량을 무리하게 늘리다가 빚을 지게 되었고 급기야 살던 집도 팔고 친척집을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더 이상 미래가 안 보이는 현실에 좌절하며 여보 나 더 이상 못 살겠어. 우리 그 빚 절대 못 갚아. 이제 끝이야 다 끝낼 거야 라며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 이에 남편은 아내를 말렸지만 아내의 생각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급기야 이들은 머리를 식힐 겸 아이들과 함께 포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이는 이별 여행이었다. 아내 설득에 실패한 남편은 직접 번개탄에 불을 피우고 아이들 옆에 누웠다. 그런데 이때 매캐한 냄새에 답답해진 첫째 딸이 눈을 떴고, 남편도 정신을 차렸다. 부부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먼저 하늘나라에 가기로 했어. 우리는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는 거야 라고 했다. 이에 아이들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엄마 아빠 가지 마 나도 따라갈 거야 라고 했다. 11살, 13살. 부모와 떨어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했고, 부부는 아이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느꼈다. 이에 결국 두 번째 극단적 시도를 한다. 이번에는 차 안에 번개탄을 피우고 잠이 든 것. 그런데 이번에는 둘째 딸이 깨어나고, 이에 남편은 괴로워하는 딸의 목을 조르고 아내는 살려고 버둥거리는 딸의 다리를 감싸 안았다. 아이의 고통을 줄여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부부. 그렇게 두 아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후 정신을 차린 부부는 죽으려고 여우고개의 가드레일이 뚫린 구간으로 돌진했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런데 곧 이들은 정신을 차렸다. 안전벨트 덕에 사고를 면한 것이다. 경찰은 여기서부터 부부의 저의를 의심했다. 죽겠다는 사람들이 안전벨트를 맸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 이에 부부는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후 수차례 죽을 시도를 하였으나 늘 한쪽이 깨어나 다른 한쪽을 살렸고, 죽는다는 게 사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했다. 결국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기회를 보자고 생각한 부부는 아이들을 시신을 우의와 담요로 덮어주고 돗자리에 메모를 남긴 채 떠났던 것이다. 하지만 삶의 욕구가 강했던 부부는 이후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공중 화장실에서 발을 녹였다. 이 사건의 쟁점은 명확했다. 부부는 죽을 계획이 있었는가. 아이들만 보내려고 계획했을 수도 있었던 것. 또한 2년 넘도록 도망 다닌 부부 왜 자수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잡힐 때까지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수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자수를 하면 자살할 수가 없어서 자수하지 않았다는 것. 이들은 자수는 자기들만 살려는 것, 자살을 단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죽지 못해 미안했다는 부부는 죽는 걸 실패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점점 죽는다는 게 정말 무서워졌다. 2013년 9월 2일 국민참여재판에 딸을 살해한 피고인으로 선 두 사람. 이들은 자신들의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아이들을 사랑했다. 속죄하고 참회하며 살겠다 라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누구라도 나쁜 생각을 할 것이 두려워 반드시 나머지 한 명과 똑같은 형을 받게 해 달라는 부탁도 했다. 이들의 재판은 배심원 전원 유죄 의견을 냈고, 최종 판결은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혐의 인정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괴로워하며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참작하여 이러한 결론을 낸 것이었다. 두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던 부부의 변호인. 하지만 이들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 누구보다 후회가 가장 컸다는 것. 또한 그들은 이 땅의 어떤 부모도 자기들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이에 두 사람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인은 부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이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굉장히 후회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이야기 친구 모니카는 후회를 한다고 해도 그들이 한 선택은 분명 잘못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절대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대로 부부는 자신들의 과오를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리고 부모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이들은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죽자고 생각을 했었다는 부부. 이에 이야기 친구 송영규는 나쁜 생각을 하더라도 아이들이 있어서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참고 살아온 건데 라며 부부를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정세운은 남편이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 건 알겠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내만큼 사랑하나? 아이들에게도 책임보다 사랑을 먼저 생각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라고 안타까워했다. 부부를 체포했던 장 형사, 그는 부부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 후에 사회에 나오더라도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말고 후회하지 않게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이라며 진심을 전했다.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정세운은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괘씸한 마음은 지울 수 없다. 부부의 행복을 바라고 응원하진 못해도 열심히 사셨으면 좋겠다 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빌었다. 그리고 송영규는 다시 한번 아이들의 생명은 아이들의 것이라며 최근에도 부부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날 방송 내내 부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던 모니카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도망을 가버렸던 적이 있다더라. 생활고에 빠진 어머니는 갓난아기였던 나를 업고 죽기 위해 스스로 목을 매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업고 있던 내 심장이 뛰었다더라. 그리고 어머니는 다음날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여기까지 오게 됐다 라며 부부와 같은 고민을 했음에도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모니카는 난 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은 너무 귀중한 것이다 라며 단 한 번뿐인 귀한 삶을 모두가 찬란하게 살아가길 기도했다.
여우고개에 추락한 차, 백골 시신 두 구 발견…'꼬꼬무', 숨겨진 그날의 비밀은? 여우고개에 추락한 차, 백골 시신 두 구 발견…'꼬꼬무', 숨겨진 그날의 비밀은? 등록일2023.11.30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포천 자매 살인사건'을 조명한다. 30일 방송될 '꼬꼬무'는 '여우고개에 묻힌 진실' 편으로, 사라진 부부의 수상한 흔적을 쫓는다. 연말이라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과는 다르게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 있었다. 바로 포천경찰서 강력1팀이다. 정적을 깨고 경찰서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절벽에 차가 한 대 떨어져 있다는, 수상한 차량을 발견했다는 제보였다. 김중기 형사는 제보 차량이 있다는 경기도 포천의 여우고개로 향했다. 도착한 현장은 예상보다도 처참했다. 여우고개의 깊은 골짜기 아래에 차 한 대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현장을 수색하던 동료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를 따라가 보니 백골이 된 시신 두 구가 있었다. 현장은 단순히 차량이 방치된 사건이 아닌, 시신을 유기한 현장이 되었다. 차적 조회 결과, 한 부부의 차량으로 밝혀졌다. 조사해 보니 이미 1년 전 실종 신고가 되어 있던 부부.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떠났다는 부부의 차량이 시신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부부는 여우고개에서 예기치 못 한 사고를 당한 걸까. 하지만 시신의 부검 결과,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갔다. 부부의 시신으로 예상했던 바와 달리 국과수 감정 결과, 백골 시신은 11세, 13세 전후로 보이는 아이들로 판명났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찢어진 은박 돗자리에 아이들의 시신이 잘 거두어지길 바라며 마지막 길을 떠납니다 라는 메모가 발견됐다. 더 수색해 보았지만 부부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부부는 아이들의 시신을 잘 부탁한다는 메모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경찰 수사결과 부부의 생활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부부는 ATM기에서 현금을 인출했고, 병원에 가기도 했다. 그 행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부부의 행방과 여우고개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부산의 베테랑 형사에게 제보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바로, 지명수배 전단 1번, 강력 범죄 용의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제보였다. 형사는 곧장 용의자가 있다는 부산의 한 농장으로 출동했다. 한창 근무 중인 농장 직원들 사이에서 젊은 부부가 한눈에 띄었다. 부부는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자 며 마치 이런 날이 언젠가 올 줄 알았다는 눈치로 몸을 휙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과연 부부의 정체는 무엇인지, 부부가 쉽사리 이야기하지 못했던 여우고개의 진실을 '꼬꼬무'에서 집중 조명한다.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에는 배우 송영규, 댄서 모니카, 가수 정세운이 친구로 나선다. 송영규가 오랜만에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았다. 배우계 절친답게 둘의 케미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이야기에 엄청난 몰입을 보여주던 송영규는 속이 답답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고, 안타까운 마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 모니카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냉철한 사건 분석 능력을 보여줬고, 단호하면서도 절제된 분노를 표했다.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는데, 모니카가 이토록 확고하게 말할 수 있던 그녀의 이야기가 '꼬꼬무'에서 처음 공개된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 정세운은 오프닝때 장난끼 넘치는 엉뚱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 사랑의 의미에 대한 이번 회차에 착잡한 많은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꼬꼬무'의 백 네번째 이야기 '여우고개에 묻힌 진실' 편은 30일 목요일 밤 10시 20분에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단 9분 만에 32명 사망 끔찍한 캠퍼스 총기 난사…조승희는 왜 괴물이 됐나 [꼬꼬무 찐리뷰]  단 9분 만에 32명 사망  끔찍한 캠퍼스 총기 난사…조승희는 왜 괴물이 됐나 등록일2023.08.04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3일 방송된 '외톨이가 보낸 소포-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딘딘, 배우 공승연, 송영규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평화로운 대학교에서 일어난 살인 때는 2007년 4월, 대학교 캠퍼스야. 여기는 캠퍼스가 예쁘기로 유명한 학교야. 사진을 보여줄게. 이국적인 건물과 짙은 녹음, 여긴 한국이 아닌 미국에 있는 대학교야. 이날은 일요일인데, 캠퍼스가 축제로 북새통이야. 인터내셔널 스트리트 페어(International Street Fair)라고, 각 나라 학생들이 모국의 전통음식이나 문화, 놀이를 소개하는 행사야. 한국인 부스도 있어. 한국 유학생인 승우와 규민이도 손님맞이로 정신이 없어. 정말 (축제를) 1년 내내 준비해요. 각각의 부스를 설치해서 자기네 나라를 홍보해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 한복도 입고 와서 하고, 제기차기 놀이도 해보게 하고. 아침 일찍부터 가서 준비를 다 했죠. -이규민, 당시 유학생 같은 시각, 모두가 축제를 즐기고 있는데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도 있어. 한국인 유학생 승희야. 영문과 4학년 남학생인데, 기숙사에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어. 바로 시나리오야. 몇 달 동안 아주 열심히 썼어.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엄청난 스토리야. 승희가 쓴 그 시나리오는, 내일 공개될 거야. 기숙사 밖, 축제는 마무리 됐어.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규민이는, 밀린 과제를 하느라 열람실에서 밤을 새웠어. 그리고 다음날인 2007년 4월 16일 월요일 아침, 규민이가 밤새워 준비한 과제를 제출하려 가려는데, 누군가가 열람실로 다급히 들어와. 누군가가 딱 들어오는데, '여기 누구 있어?' 하더라고요. '나 여기 있어, 무슨 일이야?'라고 했더니 '규민, 절대 나가지 마'라며, 지금 학교 안에서 문을 다 잠가버렸대요. 건물 안에서. 무섭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이규민, 당시 유학생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며,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일단 건물 내에서 대기하라는 말 뿐이야. 같은 시각, 승우도 심상치 않은 상황을 목격해. 승우는 학교 근처에 차를 수리하려고 나왔던 상황이야. 저쪽 끝에서부터 '웨엥'거리며 경찰차가 달려오는 게, 제가 본 적 없는 속도였어요. 거의 F1급? 웽웽 소리가 계속 들려요. 사이렌 소리가 쉬지 않고. 경찰차가 오는 숫자를 보니, 뭔 일이 생기긴 했구나… -이승우, 당시 유학생 경찰차들이 지나가고, 하늘에는 헬기도 떴어. 경찰차와 헬기가 향하는 곳은 바로 이 대학교였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 아침 7시. 기숙사 건물 4층에 사는 몰리는 알람 소리에 힘들게 눈을 떴어. 비몽사몽 침대 위에서 뒤척이는데, 갑자기 밖에서 날카로운 여자 비명 소리가 들려. 순식간에 온몸에 소름이 끼쳐. 불길한 마음으로 방에서 나왔는데, 피 묻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어. 핏자국을 따라간 곳은 4040호. 친구 에밀리의 방이야. 숨을 꾹 참고 문고리를 돌리는데, 잘 안 열려. 꼭 뭔가에 막힌 듯 열리지 않아. 힘을 줘 문을 연 몰리는 아악! 깜짝 놀라. 문 바로 뒤로 사람이 쓰러져 있었거든. 그것도 두 사람이나. 쓰러진 두 사람은 방 주인 에밀리와 기숙사 사감이야. 둘 다 총에 맞은 상태야. 학생들이 대부분 자고 있을 이른 아침에, 기숙사 안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진 거야. 기숙사 사감은 현장에서 즉사, 에밀리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넌 이미 범인을 알고 있어. 아까 홀로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던 그 남학생. 범인은 당시 영문학과 4학년이던, 조승희야.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희대의 살인마이자, 아주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야. 이 기숙사 사건은, 프롤로그에 불과해. 지금부터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거야. ▲ 무자비한 총격의 시작 두 사람을 살해한 조승희는 기숙사 자기 방으로 돌아갔어.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럼 방에선 뭘 했을까? 노래를 들었어. 신나게 가사까지 적으면서.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가르쳐줘(Teach me how to speak)/내가 어떻게 나눠야 할지 가르쳐줘(Teach me how to share)/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가르쳐줘(Teach me where to go) 이런 가사의 노래야. 조승희가 매일매일 들어온,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대. 이 노래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숙사에서 사람 둘이 죽었는데, 학교 분위기는 생각보다 평온해. 사건이 캠퍼스 외곽인 기숙사에서 발생한 데다, 범인을 외부인으로 생각해서 학교 전체에 소식을 알리지 않았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은 평화롭게 등교 중이야. 이날 강의가 가장 많은 곳이 있어. '노리스 홀'이라는 3층짜리 건물이야. 수업하는 강의실은 2층에 총 7개가 있어. 많은 학생들이 노리스 홀로 등교 중이야. 그 사이에는 스무 살, 케빈 스턴도 있어. 콧노래를 부르며 잔디밭을 가로지른 케빈은 노리스 홀 207호에 도착해. 독일어 수업이 있는 곳이야. 그리고 크리스티나 앤더슨과 콜린 고다드도 노리스 홀로 가고 있어. 9시 수업인데, 시간이 좀 간당간당해. 수업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오늘이 학기 마지막이니 수업에 가기로 결정했어. 그땐 몰랐어. 이 선택이 그렇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줄은. 콜린과 크리스티나가 간 곳은 211호 프랑스어 수업이야. 그리고 또 한 사람, 커다란 검은 배낭을 멘 한 남학생이 노리스 홀을 향해 가고 있어. 조승희야. 느긋한 걸음으로 건물에 들어서는데, 걸을 때마다 배낭 안에서 쇳소리가 들려. 이 소리의 정체, 바로 쇠사슬이야. 건물에 들어선 조승희는 먼저 문을 닫고, 쇠사슬을 꺼내 문에 감더니 자물쇠를 채웠어.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반대쪽 문과 비상구까지 전부 봉쇄했어. 마지막으로 잠긴 문에 이런 쪽지를 붙여. Bomb will go off if you open door(문을 열면 폭탄이 터질 것이다) 노리스 홀 안의 사람들은 모두 안에 갇혔어. 이날 이 시간, 총 5개의 강의실에서 수업이 진행 중이었어. 케빈이 있는 207호 강의실에서 수업이 한창인 바로 그때, 강의실 문이 열리고 조승희가 들어와. 근데 조승희가 다시 나가. 학생들은 그가 강의실을 잘못 들어왔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잠시 후, 또다시 문이 철컥 열려. 또 조승희야. 이번엔 강의실을 쓱 훑어봐. 그러더니 또 밖으로 나가. 독일어 수업 시간이었는데 그가 강의실을 두 번이나 기웃거렸어요. 작은 강의였고 평소에 지각하는 사람이 없는데 매우 이상했죠. -당시 207호 학생 그리고 밖에서 '쿵쿵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 수업이 힘들 정도의 큰 소리였는데, 30초쯤 지나니 금새 멈췄어. 다들 '건물 근처에서 공사를 하나보다' 하며 넘겼어. 근데 쿵쿵거리는 소리가 또다시 시작돼. 그리고 207호 강의실 문이 또다시 벌컥 열렸어. 이번에도 조승희야. 근데, 좀 전과는 표정이 완전히 달라. 눈에 초점이 없고 서늘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눈앞이 번쩍 하더니, 교단에 서있던 교수님이 그대로 고꾸라져. 케빈은 혼비백산해서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어. 탕탕탕! 학생들을 향해 무자비한 총격이 시작됐어. 총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어느덧 케빈이 숨어있는 곳까지 왔어. 그대로 탕! 케빈은 다리뼈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갑자기 확 뜨거웠다가 시원했다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숨이 가빠와. 강의실은 연기로 차오르기 시작해. 화약 냄새,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해. 그 사이에도 총성은 끊이지 않았고, 여기저기 학생들이 쓰러져. 한 20발 정도 총을 쐈을 거예요. 그 누구도 움직이거나 소리 지르지 못했어요. 교실 안은 그저 화약 냄새로 가득했고, 어둠이 깔린 듯했죠. -데렉 오델, 당시 207호 학생 그는 문을 열고 강의실로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가 한 일은 계속해서 총을 쏘는 것뿐이었어요. 그는 걸어 다니면서 총을 난사했어요. 도중에 그는 총알이 다 떨어졌고, 새 탄창을 갈아 끼웠는데, 갈아 끼우는데 약 2초밖에 걸리지 않았고 곧바로 다시 쏘기 시작했어요. -생존 학생 조승희는 총을 쏘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강의실에는 '딸깍' 재장전하는 소리와, 끔찍한 총소리만 울려 퍼졌어. 강의실에 있던 한 여학생은 눈을 질끈 감고, 쓰러진 한 학생을 들어 올렸어. 그리고 그 밑으로 얼굴을 파묻어. 살기 위해, 죽은 척하기로 한 거야.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어. '제발 제가 살아있다는 걸 모르게 해 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수 백번 되뇌며, 그 끔찍하고 잔인한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어. 찰나의 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흘러. 한바탕 총을 난사한 조승희는 드디어 강의실을 나갔어. 놀랍게도 207호에 머문 시간은, 채 1분도 안 돼. ▲ 쓰러져간 학생들 아까 밖에서 '쿵쿵쿵쿵' 거렸던 소리. 공사하는 소리인 줄 알았던 그 소리는 알고 보니 총소리였어. 207호가 조승희의 첫 번째 타깃이 아니었던 거야. 첫 번째 공격은, 맞은편 206호였어. 206호는 이미 초토화된 상태야. 서 있거나 앉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모두 쓰러진 상태야. 심지어 쓰러진 학생 위로, 또 다른 학생이 겹겹이 쌓여 있기까지 해. 206호엔 한국인 유학생도 한 명 있었어. 이곳에서 유일한 한국인 피해자야. 그 끔찍한 곳에서 생존한 그에게 그날의 기억을 물어봤어. 지금 돌이켜봐도 너무 힘든 끔찍한 시간이었대. 제일 먼저 제가 있던 강의실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총격을 가했습니다. 처음에는 총격인지도 구분이 안 됐으며, 소리에 의해 압도됐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강의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총알이 오른쪽 옆구리 쪽을 스치면서 그때부터 큰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감지하였고, 앞에 학생이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생존한 한국인 유학생 그럼 다른 강의실의 상황은 어땠을까? 205호 강의실은,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들려서 조교가 확인해 보려 문을 살짝 열었다가 겁에 질려 문을 닫았어. 밖에 총을 든 남자를 발견했거든. 이 상황을 알리자, 맨 앞에 있던 한 학생이 빨리 입구부터 막아야 한다 고 말했어. 그리고는 책상을 들고 문으로 돌진했어. 다른 학생들도 캐비닛, 의자, 책상 닥치는 대로 끌고 와 문을 막았어. 그리고 그 위에 몸을 기대서 필사의 바리게이트를 완성했어. 다들 눈빛엔 긴장감이 가득해. 잠시 후, 덜컥거리며 거칠게 문을 여는 힘이 느껴져. 조승희야. 아주 살짝 문이 밀리는 듯싶더니 다시 닫혔어. 조승희는 문에다 총을 쏘기 시작했어. 문에 구멍이 뚫려. 놀란 학생들이 몸을 바짝 낮추자, 끼익 거리며 책상이 밀려. 다시 학생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문을 막았어. 그러자 범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힘을 모아 강의실을 지키는 데 성공한 거야. 그럼 이 끔찍한 악몽은 이제 끝난 걸까? 또다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조승희가 다른 목표를 찾아간 거야. 바로, 211호. 아까 강의를 갈까 말까 고민했던, 콜린과 크리스티나가 있던 그 강의실이야. 당시 시각은 오전 9시 41분. 첫 총격이 시작된 지 불과 2분 정도 지났어. 저는 있어야 할 곳에 있었어요. 수업을 듣고 있었으니까요. 갑자기 강의실 밖에서 크게 쾅쾅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교수님이 복도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열었는데, 열자마자 다시 닫아 버리시더니 '다들 책상 아래로 들어가고 911에 신고 좀 해'라고 하셨어요. 휴대전화를 꺼내 911에 전화해서 '노라스 홀인데 총격 사건이 일어난 거 같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말을 하자마자 총탄이 문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다들 바닥으로, 책상 밑으로 들어갔죠. -콜린 고다드, 당시 211호 학생 콜린은 곧장 휴대폰을 열고 911에 전화를 걸었어. 총격사건 이후 첫 신고였어. 잔뜩 웅크린 채로 911에 신고하고 있는데, 강의실 문이 천천히 열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는데, 방금 신고하라고 소리치던 교수님이 눈앞에서 쓰러져. 콜린은 총격에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렸어. 곧장 책상 아래로 몸을 낮췄는데, 숨이 멎을 거 같아. 눈을 질끈 감고 누워있는데, 총소리가 강의실에 계속 울려 퍼져. 또다시 조승희의 총기 난사가 시작된 거야. 뚜벅뚜벅, 학생들의 신음소리 사이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제발 나한테 오지 마라' 속으로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콜린은 엄청난 고통을 느꼈어. 다리 아래로 피 웅덩이가 고이기 시작해. 흐르는 피와 함께 정신이 혼미해져. 아직 제대로 신고를 못했는데, 떨어뜨린 휴대폰은 어디로 간지 모르겠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온몸이 점점 마비되는 거 같아. 크리스티나도 비극을 피하지 못했어. 총성이 들리자 비명과 소리를 질렀어요. 저는 몇 발의 총을 맞았고 첫 번째 총알을 맞은 뒤로는 (기억이) 희미해요. -크리스티나 앤더슨, 당시 211호 학생 범인은 뭘 요구하거나 소리치지도 않고, 침묵 속에서 학살이 계속 됐어. 근데, 이 고요한 강의실에, 적막을 깨는 아주 낮은 음성이 들려. 콜린의 휴대폰이 아직 꺼지지 않은 거야. 모든 상황이 911에 그대로 중계되고 있었어. 여기가 정확히 어디고 무슨 상황인지 911에 알려야 해. 그때 한 여학생이 나섰어. 죽은 척 누워있다가 필사적으로 휴대폰 쪽으로 기어가서 본인의 머리카락으로 휴대폰을 덮었어. 그리고 잠시 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총성이 드디어 멈췄어. 조승희가 강의실을 나간 거야. 여학생은 참았던 숨을 몰아 쉬면서, 신고를 이어갔어. 노리스 홀 2층 강의실에서 아시아계 남성이 총을 난사하고 있다고 전하자, 경찰은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어. 여학생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강의실을 훑어봤어. 강의실의 풍경은 끔찍해. 대부분 이미 사망했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야. 그중엔 이 학생도 있었어. 이름은 매튜 라 포트. ROTC 공군 생도야. 이미 사망한 상태였는데, 범인 쪽으로 한 손을 뻗은 상태였대. 총 든 범인을 제압하려고 다가갔는데, 확 덮치려는 순간 발각이 된 거야. 발각이 된 그 뒤, 매튜는 아주 근거리에서 총을 여러 발 맞고 사망했어. 매튜의 가족을, '꼬꼬무'가 만나봤어. (소식을 들었을 때) 갑자기 배에 볼링공이 떨어진 기분이더라고요. 토할 것 같았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어', '그건 너무 말도 안 되잖아'라고 생각했어요. 오빠는 손을 앞으로 뻗은 채로 발견됐어요. 상대방을 쓰러뜨리려고 하는 자세로요. 다른 학생들은 교실 뒤에 모여서 발견된 경우가 많았어요. 사실 처음에는 오빠한테 화가 났어요. '자기부터 챙길 것이지!' 하고요. 하지만 교실에 있던 한 생존자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았어요. 오빠가 딸의 생명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고요. 오빠가 나서줘서, 딸이 살 방법을 찾을 시간을 벌었다고 하더라고요. -프리실라 라 포트, 매튜 동생 매튜가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본인은 살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더 큰 희생을 막겠다는 마음으로 주저 없이 나섰어. 그런 매튜 덕분이었을까, 아직 살아있는 학생들이 있었어. 크리스티나야. 크리스티나는 자기도 총에 맞았지만, 의식을 잃은 콜린을 계속 깨우고 있어. 이 순간 학생들이 제일 두려워한 건, 범인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이야. 그럼 범인이 다시 올 걸 대비해 문부터 닫아야지. 케빈이 있던 207호 강의실부터 움직이기 시작했어. 부상이 심하지 않은 학생들이 움직이는데, 입구까지 가는 길이 너무 처참해. 사망한 학생들이 책상과 뒤엉켜 있고, 바닥은 피바다야. 그 시각, 조승희는 204호로 향했어. 204호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 76세로, 루마니아 출신인데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분이야. 평생을 공학 연구에 매진해 온 존경받는 학자야. 교수님은 처음부터 밖에서 나는 총소리를 알아차렸고, 재빨리 달려가 창문을 깨뜨리기 시작했어. 몸으로 힘껏 창문을 밀치고, 창문을 의자에 집어던졌어. 그리고 학생들에게 빨리 밖으로 뛰어내려! 라고 소리쳤어. 그런데 학생들이 주저해. 바닥까지 6m를 뛰어내려야 하는 데다가, 바깥 상황을 정확히 모르니까, 우왕좌왕할 뿐이야. 바로 그때, 교수님은 강의실 입구 쪽으로 뛰었어. 학생들이 뛰어내릴 시간을 벌어주려고, 본인이 몸으로 문을 막은 거야. 마침내 한 학생이 창문을 뛰어넘어. 그 뒤로 줄줄이 학생들이 뛰어내려. 그리고 그때, 조승희도 문 앞에 도착해. 교수님과 조승희가 문 하나를 두고 대치한 상황. 문 너머에서 총알이 빗발쳐. 교수님은 온몸으로 문을 막았어. 창문 쪽을 봤는데, 아직도 뛰어내리지 못한 학생들이 있어. 교수님은 엄청난 고통을 참아내며, 그 문을 놓지 않았어. 하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했어. 강의실 문이 열리고, 범인이 들어와. 그리고 총을 난사해. 다섯 발의 총을 맞은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셨어. 그래도 교수님이 버텨낸 덕분에, 미처 뛰지 못한 한 학생을 빼고, 이곳에서 더 이상의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어. ▲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9분 그 사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노리스 홀을 에워쌌어. 학교 전체가 완전히 통제됐어. 당시 출동한 경찰들은 바로 건물에 들어가지 못했어. 범인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잖아. 급할수록 신중을 기해야 해. 콜린과 크리스티나가 있던 211호. 다행히 콜린은 간신히 의식을 되찾았어. 근데 저벅저벅 발소리가 또 들려. 조승희가 다시 강의실을 찾아온 거야. 학생들의 공포가 현실이 됐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조승희는 이미 쓰러진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또 쏴. 콜린은 눈을 질끈 감았어. '이제 다음 차례는 나구나' '제발 아프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얼마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낯선 발 하나가 콜린의 눈앞에 멈춰 섰어. 그때 두 번째로 왼쪽 엉덩이에 총을 맞았어요.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 세 번째 총을 맞았고, 그다음에 제 몸을 뒤집더니 오른쪽 엉덩이를 한 번 더 쐈어요. 그 뒤로 총성이 몇 번 더 들리더니 모두 조용해졌어요. 시작될 때처럼 갑자기 다 조용해졌어요. -콜린 고다드, 당시 211호 학생 콜린은 무려 4발이나 맞고 정신을 잃었어. 그 시각, 마침내 무장한 경찰들이 노리스 홀에 진입해. 근데 조승희가 문을 쇠사슬로 봉쇄했잖아? 그래서 진입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어. 경찰이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지만, 현장은 너무 참혹해. 어떻게 그 정도 인원의 사람이 죽었는지. 사건의 규모와 성격만으로도 정말 충격이었죠. 2층으로 올라가니 시체 2구가 있었는데, 거기서 계단으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복도를 따라 내려오는데 바닥은 전부 피로 흥건했고, 그때 정말 숨이 턱 막혔어요. -매트 브로닉, 현장 출동 경찰관 전쟁터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겠구나, 생각했대.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이 터져 나와. 빨리 범인부터 진압해야 해. 바로 그때 팔 하나가 올라와서, 저 사람이 범인이다 라고 가리켰어. 학생이 가리킨 곳으로 다가갔는데, 한 남자가 쓰러져 있어. 조끼를 입은 아시아계 남자인데, 주변엔 빈 탄창과 권총이 놓여있어. 조승희는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범인은 죽었지만 사건은 끝난 게 아니야. 부상자 수습이 우선이야. 이 사진 속 주인공, 207호 케빈과, 211호 크리스티나야. 불과 30분 전만 해도 이렇게 강의실을 나가게 될지 전혀 몰랐어. 간신히 살아남은 학생들은, 현장을 '피날레가 없는 불꽃놀이가 계속되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라고 기억했어. 그렇게 긴 시간이었을까? 조승희가 범행을 저지른 시간은, 단 9분이었어. 그 9분 동안 조승희가 쏜 총탄은, 무려 174발. 3초에 한 발씩 쏜 거야. 이날 총 32명이 죽고, 29명이 다쳤어. 이렇게 집요하고 잔인한 살인마는 처음이었어. 이 사건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라 불려. 온 세계를 경악시킨 최악의 사건이야. 이 최악의 총기 난사범이 한국인 유학생으로 밝혀지면서 파장이 컸어. 노리스 홀 총격 사건의 범인은 조승희로 밝혀졌습니다. 나이는 23세이고, 한국 국적의 미 영주권자입니다. 전 세계의 관심은 범인 조승희에게 쏠렸어. 그는 누구이고,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 조승희는 왜 괴물이 되었나 경찰은 학교 친구들부터 조사했어. 근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쏟아져. (많은 학생이) 그의 사진을 봤는데, 그가 누군지 몰랐어요. 이름과 사진을 같이 놓고 봐도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조승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 3년이 넘는 학교 생활이었는데, 친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 조승희는 '그림자', '외톨이', 그렇게 불렸대. 하도 주변이랑 안 어울리니까. '그냥 혼자 있고 싶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대. 조승희는 미국 영주권자였어. 국적은 한국이야. 혹시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나 따돌림이 있었나 물으니, 주변에선 제가 여러 번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어요 라고 대답했어. 오히려 소통을 거부한 건 조승희 쪽이었대. 심지어 방을 함께 쓴 룸메이트랑도 말을 안 하고 지냈다는 거야. 처음에 같이 어울리려고 친구들에게 소개했지만 전혀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고… 학기 초에는 우리 모두 함께 모여서 저녁을 먹으러 가니까 조승희를 초대한 적이 있어요. 한두 번 오다가 다음에는 거절했어요. -기숙사 룸메이트들 조승희가 미국에 이민을 온 건 1992년, 조승희가 8살 때였어. 자식들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려고 부모님이 큰 결심을 하신 거야. 근데 중학생이 되면서 문제가 좀 생겨. 부모님이 묻는 것에 조승희는 묵묵부답, 대답이 없어. 원래 내성적이긴 했는데, 언젠가부터 말을 아예 안 하기 시작했어. 걱정이 된 부모님은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 그리고 '선택적 함구증'(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증상. 불안장애의 범주에 속하며 아동기에 주로 나타난다)이란 진단을 받아.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선택에 따라 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병이야. 부모님은 승희의 치료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 중고등학교 내내 약물, 심리치료를 받으며 큰 문제없이 학교를 졸업했어. 성적도 꽤 좋았어. 그렇게 명문대인 버지니아 공대에 진학한 거야.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그런데 사건 이틀 후, 아주 경악할 일이 벌어졌어. 미국의 한 방송국으로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어. 조승희가 직접 보낸 것이었어. 이 우편물에는, 선언문과 조승희가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들이 들어 있었어. 사진 속 조승희는 총, 망치 같은 무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어. 스스로가 테러범이라는 걸 증명하듯이. 그리고 DVD도 있었어. 이 DVD 안에는 여러 개의 영상이 담겨 있었는데, 조승희는 다양한 메시지를 남겼어. 시간이 됐을 때 나는 그걸 했고, 그래야만 했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어. 그냥 떠날 수도 있었고 도망칠 수도 있었어. 그러나 그러지 못했어. 내가 이걸 정말 원해서 했다고 생각하나? 난 진정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 -영상 속 조승희의 이야기 中 이런 조승희의 이야기는 자신을 과시하는 것 같기도, 범행 이유를 알리는 것 같기도 해. 또 하나 충격적인 게 있어. 이 우편물, 언제 보낸 걸까? 범행 당일, 오전 9시 1분에 보냈어. 기숙사에서 두 명을 살해한 후, 노리스 홀로 가기 직전이야. 아주 계획적으로 움직인 거야. 조승희가 소지했던 권총 두 자루. 미국에선 범죄 이력이 없는 성인이면 누구나 총을 살 수 있어. 그런데 이 버지니아주에서는 총기를 한 달에 한 자루만 살 수 있어. 그 이야기는, 조승희가 최소 한 달 이상 범행을 준비했다는 거야. 행적을 따라갈수록, 모든 건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걸 알 수 있어. 조승희의 동선을 정리해 보면, 총을 구입한 건 사건 두 달 전인 2월 2일이야. 권총을 구입한 후 조승희는 연습을 했어. 학교 근처 사격장에서 자주 목격이 됐대. 그리고 범행 직전 머리를 바짝 깎고, 범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샀어. 그리고 영상과 사진을 남겼어. 방송국에 보낸 사진과 영상을 잘 보면, 배경과 옷차림이 다 달라. 수일에 걸쳐서 촬영을 했다는 증거야. 마치 하나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듯, 이 범죄를 기획한 거야. 영상 속에는 또 다른 단서들이 있어. 누군가 너의 얼굴에 침을 뱉고, 쓰레기를 목구멍에 쑤셔 넣고, 너의 무덤을 파는 느낌이 어떤지 알아? 너희들은 오늘을 피할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피를 흘리게 했어. 너희는 나를 궁지로 몰았고 나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 결정은 너희가 한 거고, 이제 너희 손엔 절대로 씻을 수 없는 피가 묻을 거야. -영상 속 조승희의 이야기 中 평소엔 말이 없었다고 했는데, 마치 분노에 찬 듯 쏟아내는 말들. 주변을 더 자세히 조사하다 보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 괴롭힘이 있긴 했대. 조승희의 발음이 좀 어눌하고 목소리도 이상하다면서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거야. 이런 경험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걸까. 그렇다고 해도, 이게 이런 잔혹한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어. 영상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어. 금목걸이로는 부족했냐 이 속물들아. 신탁자금으로는 부족했냐. 보드카와 코냑으로는 부족했냐. 온갖 타락행위로는 부족했냐. 그런 것들로도 너희의 쾌락주의적 니즈를 채울 수 없었던 거냐. 너넨 모든 걸 갖고 있었잖아. -영상 속 조승희의 이야기 中 영상에서 보이는, 가진 자에 대한 분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승희의 내면에는 큰 좌절과 분노가 차있었어. 이런 조승희의 심리를 알아챈 사람도 있었어. 조승희와 함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동양인이 범인이라고 했을 때, 그 학생일 거라 생각했다 , 언젠가 무슨 일을 저지를 거 같았다 고 말했어. 조승희에겐 남다른 모습이 있었대. 항상 깊게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수업에 들어왔어. 수업시간엔 선글라스를 벗으라는 교수님의 말에도 대꾸가 없어. 수업에 관계된 걸 물어도 마찬가지야. 어떤 날에는 수업 중에 갑자기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했대. 그래도 수업엔 꼬박꼬박 들어왔어. 글 쓰는데 관심이 아주 많았거든. 조승희는 소설을 출간하고 싶어 했어. 실제로 출판사에 글을 몇 번 보내기도 했는데, 번번이 퇴짜를 맞았어. 글 내용이 조금 문제가 있었거든. 인류의 망신인 비열한 인간들. 너희들은 다 역겨워. 대량 학살과 어린 동물들을 먹은 죄로 너희들 모두 지옥에서 불타길 바라 -조승희가 쓴 '동물 학살 정육점' 中 검은색 조끼와 짙은 선글라스를 쓴 버드는 내 삶이 혐오스러워 이제 됐어 지금이 너희와 나와 함께 죽어야 할 때야 나는 구제 불능이야. 이 빌어먹을 학교에 있는 빌어먹을 사람들을 다 죽일 생각이었어. 근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 버드와 고스족 소녀는 훔친 차에 권총을 싣고 달린다. - 조승희가 쓴 '버드' 中 조승희가 쓴 글인데, 마치 자기 이야기를 써 놓은 느낌이지? 인간 혐오가 느껴지는 내용. 이걸 작문 수업에 써서 서로의 글을 돌려보는 일이 많았는데, 학생들은 조승희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 힘들었대. 대부분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는 내용이었거든. 조승희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단지 제가 원하는 것은 그가 제 수업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으니까요. -니키 지오바니, 영문학과 교수 반면에 조승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사람도 있었어. 학과장 루신다 로이 교수야. 그가 매우 외로워 보여서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외로워요. 친구가 전혀 없어요'라고 했어요. '네가 정말 슬플 때 아무도 옆에 없으면 얼마나 힘드니'라고 물었어요. 그가 달라지기를 바랐고 가족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말하기를 꺼려했어요. -루신다 로이, 버지니아 공대 전 영문학과 학과장 조승희는 로이 교수에게는 마음을 좀 열었어. 교수님이 책을 여러 권 출간한 작가이기도 했거든. 로이 교수는 개인 교습까지 해주며 면담을 이어갔어.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를 하면서, 조승희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바꾸려 노력해 본 거야.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승희는 면담에 나오지 않았고, 다시 혼자만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어. 조승희가 쓴 마지막 글은 이거야. 축하한다. 너는 내 삶을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어. 너 때문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약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 내 형제자매 자식들 같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죽을 거야. 너희는 결코 우리가 어디서 공격할지 너희를 어떻게 죽일지도 모를 거야. 너희는 항상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거야. 내 인생을 파괴해 버리고 나니 행복해? 이제 행복해?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찬 글의 내용. 이것만 봐도 완전히 망상에 빠져있어. 전문가는 당시 조승희의 상태를 이렇게 진단해. 결정적인 트리거는 주위로부터의 거부라고 봅니다. 조승희는 그 책임을 외부로 돌렸다는 거죠. 이거는 '나의 잘못이 아니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것이 자꾸 쌓이게 되면 (분노의) 게이지가 점차 올라가게 되고, 세상을 향한 증오, 분노, 공격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거죠. -오윤성 교수,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 또 다른 비극을 막으려면 조승희의 이런 모습에 가장 충격받은 사람들은 누굴까. 가족들이겠지. 부모님께서는 그제야 아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 알게 됐어. 사건 전날인 일요일에도 어머니는 아들과 통화했대. 마지막 대화는, 승희야, 사랑해 였어. 엄마는 눈물을 펑펑 쏟았어. 하지만 이미 늦었지. 조승희 누나는 가족을 대신해 사죄의 성명서를 냈어. 저희 가족은 희망도 없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방향을 잃었습니다. 승희는 제가 함께 자라고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저는 승희를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동생의 말할 수 없는 행동에 저희 가족은 큰 유감을 느낍니다. -조승희 누나의 성명서 中 가족들도 몰랐던 낯선 모습. 끔찍한 사건의 범인이 아들이고, 동생이야. 그 사건 이후, 가족들도 편안하게 살지 못할 테지. 그런데 희생자 가족인 매튜의 동생은, 조승희의 가족이 그렇게 고통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어. (조승희를) 미워하지 않아요. 용서했어요. 그때 일어난 일들이 싫을 뿐이에요. (가족이) 지금까지 얼마나 큰 아픔을 겪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가족들이 그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요. 앞으로 계속 그렇게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프리실라 라 포트, 희생자 가족 스물셋 조승희는 꿈 많던 서른두 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고, 생존자들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을 안겼어. 총을 네 발이나 맞고 생존한 콜린은, 총기규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어. 지금도 잊을 만하면 미국에서 한 번씩 총기사고가 일어나잖아? 결국 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문제라는 거야. 크리스티나도 폭력 예방 재단을 운영하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일하고 있어. 안타깝게 사망한 매튜의 유가족도, 총기사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 큰 일을 겪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어떻게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 늘 생각하며 살고 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심을 말하고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해요. 우리는 누구나 감정이 있고 어떤 이유로든 괴롭게 되니까요. 괴롭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앞으로 생길 비극과 고통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고요. -프리실라 라 포트, 희생자 가족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던 참극.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이 있어. 1999년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가해자의 어머니가 쓴 책이야. 이 사건의 범인은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고 있었대. 그런데 아동심리를 전공한 어머니조차, 아들의 문제를 전혀 몰랐다는 거야. 책의 한 구절이야. 아들은 햇살이라고 불릴 만큼 밝고 애정 넘치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햇살처럼 빛나던 아들이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서 괴물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보일 때도 뭔가 심각하게,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악은 왜 자라고, 그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이야. 무엇이 조승희를 그렇게까지 분노하게 했고, 왜 다른 곳에서 당한 아픔을 죄 없는 사람들한테 풀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 다만, 어떤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유를 찾는다 해도, 이런 끔찍한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어.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인 건 분명해. 하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해. 그래야 같은 비극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단 9분 만에 32명 사망 끔찍한 캠퍼스 총기 난사…조승희는 왜 괴물이 됐나 [꼬꼬무 찐리뷰]  단 9분 만에 32명 사망  끔찍한 캠퍼스 총기 난사…조승희는 왜 괴물이 됐나 등록일2023.08.04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3일 방송된 '외톨이가 보낸 소포-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딘딘, 배우 공승연, 송영규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평화로운 대학교에서 일어난 살인 때는 2007년 4월, 대학교 캠퍼스야. 여기는 캠퍼스가 예쁘기로 유명한 학교야. 사진을 보여줄게. 이국적인 건물과 짙은 녹음, 여긴 한국이 아닌 미국에 있는 대학교야. 이날은 일요일인데, 캠퍼스가 축제로 북새통이야. 인터네셔널 스트리트 페어(International Street Fair)라고, 각 나라 학생들이 모국의 전통음식이나 문화, 놀이를 소개하는 행사야. 한국인 부스도 있어. 한국 유학생인 승우와 규민이도 손님맞이로 정신이 없어. 정말 (축제를) 1년 내내 준비해요. 각각의 부스를 설치해서 자기네 나라를 홍보해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 한복도 입고 와서 하고, 제기차기 놀이도 해보게 하고. 아침 일찍부터 가서 준비를 다 했죠. -이규민, 당시 유학생 같은 시각, 모두가 축제를 즐기고 있는데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도 있어. 한국인 유학생 승희야. 영문과 4학년 남학생인데, 기숙사에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어. 바로 시나리오야. 몇 달 동안 아주 열심히 썼어.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엄청난 스토리야. 승희가 쓴 그 시나리오는, 내일 공개될 거야. 기숙사 밖, 축제는 마무리 됐어.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규민이는, 밀린 과제를 하느라 열람실에서 밤을 새웠어. 그리고 다음날인 2007년 4월 16일 월요일 아침, 규민이가 밤새워 준비한 과제를 제출하려 가려는데, 누군가가 열람실로 다급히 들어와. 누군가가 딱 들어오는데, '여기 누구 있어?' 하더라고요. '나 여기 있어, 무슨 일이야?'라고 했더니 '규민, 절대 나가지마'라며, 지금 학교 안에서 문을 다 잠가버렸대요. 건물 안에서. 무섭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이규민, 당시 유학생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며,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일단 건물 내에서 대기하라는 말 뿐이야. 같은 시각, 승우도 심상치 않은 상황을 목격해. 승우는 학교 근처에 차를 수리하려고 나왔던 상황이야. 저쪽 끝에서부터 '웨엥'거리며 경찰차가 달려오는게, 제가 본 적 없는 속도였어요. 거의 F1급? 웽웽 소리가 계속 들려요. 사이렌 소리가 쉬지 않고. 경찰차가 오는 숫자를 보니, 뭔 일이 생기긴 했구나… -이승우, 당시 유학생 경찰차들이 지나가고, 하늘에는 헬기도 떴어. 경찰차와 헬기가 향하는 곳은 바로 이 대학교였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 아침 7시. 기숙사 건물 4층에 사는 몰리는 알람 소리에 힘들게 눈을 떴어. 비몽사몽 침대 위에서 뒤척이는데, 갑자기 밖에서 날카로운 여자 비명 소리가 들려. 순식간에 온몸에 소름이 끼쳐. 불길한 마음으로 방에서 나왔는데, 피 묻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어. 핏자국을 따라간 곳은 4040호. 친구 에밀리의 방이야. 숨을 꾹 참고 문고리를 돌리는데, 잘 안 열려. 꼭 뭔가에 막힌 듯 열리지 않아. 힘을 줘 문을 연 몰리는 아악! 깜짝 놀라. 문 바로 뒤로 사람이 쓰러져 있었거든. 그것도 두 사람이나. 쓰러진 두 사람은 방 주인 에밀리와 기숙사 사감이야. 둘 다 총에 맞은 상태야. 학생들이 대부분 자고 있을 이른 아침에, 기숙사 안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진 거야. 기숙사 사감은 현장에서 즉사, 에밀리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넌 이미 범인을 알고 있어. 아까 홀로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던 그 남학생. 범인은 당시 영문학과 4학년이던, 조승희야.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희대의 살인마이자, 아주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야. 이 기숙사 사건은, 프롤로그에 불과해. 지금부터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거야. ▲ 무자비한 총격의 시작 두 사람을 살해한 조승희는 기숙사 자기방으로 돌아갔어.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그럼 방에선 뭘 했을까? 노래를 들었어. 신나게 가사까지 적으면서.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가르쳐줘(Teach me how to speak)/내가 어떻게 나눠야 할지 가르쳐줘(Teach me how to share)/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가르쳐줘(Teach me where to go) 이런 가사의 노래야. 조승희가 매일매일 들어온,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대. 이 노래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숙사에서 사람 둘이 죽었는데, 학교 분위기는 생각보다 평온해. 사건이 캠퍼스 외곽인 기숙사에서 발생한데다, 범인을 외부인으로 생각해서 학교 전체에 소식을 알리지 않았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은 평화롭게 등교 중이야. 이날 강의가 가장 많은 곳이 있어. '노리스 홀'이라는 3층짜리 건물이야. 수업하는 강의실은 2층에 총 7개가 있어. 많은 학생들이 노리스 홀로 등교 중이야. 그 사이에는 스무살, 케빈 스턴도 있어. 콧노래를 부르며 잔디밭을 가로지른 케빈은 노리스 홀 207호에 도착해. 독일어 수업이 있는 곳이야. 그리고 크리스티나 앤더스과 콜린 고다드도 노리스 홀로 가고 있어. 9시 수업인데, 시간이 좀 간당간당해. 수업에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오늘이 학기 마지막이니 수업에 가기로 결정했어. 그땐 몰랐어. 이 선택이 그렇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줄은. 콜린과 크리스티나가 간 곳은 211호 프랑스어 수업이야. 그리고 또 한 사람, 커다란 검은 배낭을 멘 한 남학생이 노리스 홀을 향해 가고 있어. 조승희야. 느긋한 걸음으로 건물에 들어서는데, 걸을 때마다 배낭 안에서 쇳소리가 들려. 이 소리의 정체, 바로 쇠사슬이야. 건물에 들어선 조승희는 먼저 문을 닫고, 쇠사슬을 꺼내 문에 감더니 자물쇠를 채웠어.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반대쪽 문과 비상구까지 전부 봉쇄했어. 마지막으로 잠긴 문에 이런 쪽지를 붙여. Bomb will go off if you open door(문을 열면 폭탄이 터질 것이다) 노리스 홀 안의 사람들은 모두 안에 갇혔어. 이날 이 시간, 총 5개의 강의실에서 수업이 진행 중이었어. 케빈이 있는 207호 강의실에서 수업이 한창인 바로 그때, 강의실 문이 열리고 조승희가 들어와. 근데 조승희가 다시 나가. 학생들은 그가 강의실을 잘못 들어왔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잠시 후, 또 다시 문이 철컥 열려. 또 조승희야. 이번엔 강의실을 쓱 훑어봐. 그러더니 또 밖으로 나가. 독일어 수업 시간이었는데 그가 강의실을 두 번이나 기웃거렸어요. 작은 강의였고 평소에 지각하는 사람이 없는데 매우 이상했죠. -당시 207호 학생 그리고 밖에서 '쿵쿵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 수업이 힘들 정도의 큰 소리였는데, 30초쯤 지나니 금새 멈췄어. 다들 '건물 근처에서 공사를 하나보다' 하며 넘겼어. 근데 쿵쿵거리는 소리가 또 다시 시작돼. 그리고 207호 강의실 문이 또 다시 벌컥 열렸어. 이번에도 조승희야. 근데, 좀 전과는 표정이 완전히 달라. 눈에 초점이 없고 서늘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눈앞이 번쩍 하더니, 교단에 서있던 교수님이 그대로 고꾸라져. 케빈은 혼비백산해서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어. 탕탕탕! 학생들을 향해 무자비한 총격이 시작됐어. 총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어느덧 케빈이 숨어있는 곳까지 왔어. 그대로 탕! 케빈은 다리뼈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갑자기 확 뜨거웠다가 시원했다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숨이 가빠와. 강의실은 연기로 차오르기 시작해. 화약 냄새,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해. 그 사이에도 총성은 끊이지 않았고, 여기저기 학생들이 쓰러져. 한 20발 정도 총을 쐈을 거예요. 그 누구도 움직이거나 소리 지르지 못했어요. 교실 안은 그저 화약 냄새로 가득했고, 어둠이 깔린 듯했죠. -데렉 오델, 당시 207호 학생 그는 문을 열고 강의실로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가 한 일은 계속해서 총을 쏘는 것뿐이었어요. 그는 걸어 다니면서 총을 난사했어요. 도중에 그는 총알이 다 떨어졌고, 새 탄창을 갈아 끼웠는데, 갈아 끼우는데 약 2초 밖에 걸리지 않았고 곧바로 다시 쏘기 시작했어요. -생존 학생 조승희는 총을 쏘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강의실에는 '딸깍' 재장전하는 소리와, 끔찍한 총소리만 울려 퍼졌어. 강의실에 있던 한 여학생은 눈을 질끈 감고, 쓰러진 한 학생을 들어 올렸어. 그리고 그 밑으로 얼굴을 파묻어. 살기 위해, 죽은 척 하기로 한 거야.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어. '제발 제가 살아있다는 걸 모르게 해주세요'라고 마음 속으로 수 백번 되뇌며, 그 끔찍하고 잔인한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어. 찰나의 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흘러. 한바탕 총을 난사한 조승희는 드디어 강의실을 나갔어. 놀랍게도 207호에 머문 시간은, 채 1분도 안 돼. ▲ 쓰러져간 학생들 아까 밖에서 '쿵쿵쿵쿵' 거렸던 소리. 공사하는 소리인 줄 알았던 그 소리는 알고보니 총소리였어. 207호가 조승희의 첫번째 타깃이 아니었던 거야. 첫번째 공격은, 맞은편 206호였어. 206호는 이미 초토화된 상태야. 서 있거나 앉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모두 쓰러진 상태야. 심지어 쓰러진 학생 위로, 또 다른 학생이 겹겹이 쌓여 있기까지 해. 206호엔 한국인 유학생도 한 명 있었어. 이 곳에서 유일한 한국인 피해자야. 그 끔찍한 곳에서 생존한 그에게 그날의 기억을 물어봤어. 지금 돌이켜봐도 너무 힘든 끔찍한 시간이었대. 제일 먼저 제가 있던 강의실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총격을 가했습니다. 처음에는 총격인지도 구분이 안 됐으며, 소리에 의해 압도됐던 것 같습니다. 첫번째 강의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총알이 오른쪽 옆구리 쪽을 스치면서 그때부터 큰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감지하였고, 앞에 학생이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생존한 한국인 유학생 그럼 다른 강의실의 상황은 어땠을까? 205호 강의실은,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들려서 조교가 확인해보려 문을 살짝 열었다가 겁에 질려 문을 닫았어. 밖에 총을 든 남자를 발견했거든. 이 상황을 알리자, 맨 앞에 있던 한 학생이 빨리 입구부터 막아야 한다 고 말했어. 그리고는 책상을 들고 문으로 돌진했어. 다른 학생들도 캐비닛, 의자, 책상 닥치는 대로 끌고 와 문을 막았어. 그리고 그 위에 몸을 기대서 필사의 바리게이트를 완성했어. 다들 눈빛엔 긴장감이 가득해. 잠시 후, 덜컥거리며 거칠게 문을 여는 힘이 느껴져. 조승희야. 아주 살짝 문이 밀리는 듯 싶더니 다시 닫혔어. 조승희는 문에다 총을 쏘기 시작했어. 문에 구멍이 뚫려. 놀란 학생들이 몸을 바짝 낮추자, 끼익거리며 책상이 밀려. 다시 학생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문을 막았어. 그러자 범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힘을 모아 강의실을 지키는데 성공한 거야. 그럼 이 끔찍한 악몽은 이제 끝난 걸까? 또 다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조승희가 다른 목표를 찾아간 거야. 바로, 211호. 아까 강의를 갈까말까 고민했던, 콜린과 크리스티나가 있던 그 강의실이야. 당시 시각은 오전 9시 41분. 첫 총격이 시작된 지 불과 2분 정도 지났어. 저는 있어야 할 곳에 있었어요. 수업을 듣고 있었으니까요. 갑자기 강의실 밖에서 크게 쾅쾅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교수님이 복도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열었는데, 열자마자 다시 닫아 버리시더니 '다들 책상 아래로 들어가고 911에 신고 좀 해'라고 하셨어요. 휴대전화를 꺼내 911에 전화해서 '노라스 홀인데 총격 사건이 일어난 거 같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말을 하자마자 총탄이 문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다들 바닥으로, 책상 밑으로 들어갔죠. -콜린 고다드, 당시 211호 학생 콜린은 곧장 휴대폰을 열고 911에 전화를 걸었어. 총격사건 이후 첫 신고였어. 잔뜩 웅크린 채로 911에 신고하고 있는데, 강의실 문이 천천히 열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는데, 방금 신고하라고 소리치던 교수님이 눈 앞에서 쓰러져. 콜린은 총격에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렸어. 곧장 책상 아래로 몸을 낮췄는데, 숨이 멎을 거 같아. 눈을 질끈 감고 누워있는데, 총소리가 강의실에 계속 울려 퍼져. 또 다시 조승희의 총기 난사가 시작된 거야. 뚜벅뚜벅, 학생들의 신음소리 사이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제발 나한테 오지 마라' 속으로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콜린은 엄청난 고통을 느꼈어. 다리 아래로 피 웅덩이가 고이기 시작해. 흐르는 피와 함께 정신이 혼미해져. 아직 제대로 신고를 못했는데, 떨어뜨린 휴대폰은 어디로 간지 모르겠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온몸이 점점 마비되는 거 같아. 크리스티나도 비극을 피하지 못했어. 총성이 들리자 비명과 소리를 질렀어요. 저는 몇 발의 총을 맞았고 첫번째 총알을 맞은 뒤로는 (기억이) 희미해요. -크리스티나 앤더슨, 당시 211호 학생 범인은 뭘 요구하거나 소리 치지도 않고, 침묵 속에서 학살이 계속 됐어. 근데, 이 고요한 강의실에, 적막을 깨는 아주 낮은 음성이 들려. 콜린의 휴대폰이 아직 꺼지지 않은 거야. 모든 상황이 911에 그대로 중계되고 있었어. 여기가 정확히 어디고 무슨 상황인지 911에 알려야 해. 그때 한 여학생이 나섰어. 죽은 척 누워있다가 필사적으로 휴대폰 쪽으로 기어가서 본인의 머리카락으로 휴대폰을 덮었어. 그리고 잠시 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총성이 드디어 멈췄어. 조승희가 강의실을 나간 거야. 여학생은 참았던 숨을 몰아 쉬면서, 신고를 이어갔어. 노리스 홀 2층 강의실에서 아시아계 남성이 총을 난사하고 있다고 전하자, 경찰은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어. 여학생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강의실을 훑어봤어. 강의실의 풍경은 끔찍해. 대부분 이미 사망했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야. 그 중엔 이 학생도 있었어. 이름은 매튜 라 포트. ROTC 공군 생도야. 이미 사망한 상태였는데, 범인 쪽으로 한 손을 뻗은 상태였대. 총 든 범인을 제압하려고 다가갔는데, 확 덮치려는 순간 발각이 된 거야. 발각이 된 그 뒤, 매튜는 아주 근거리에서 총을 여러 발 맞고 사망했어. 매튜의 가족을, '꼬꼬무'가 만나봤어. (소식을 들었을 때) 갑자기 배에 볼링공이 떨어진 기분이더라고요. 토할 것 같았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어', '그건 너무 말도 안 되잖아'라고 생각했어요. 오빠는 손을 앞으로 뻗은 채로 발견됐어요. 상대방을 쓰러뜨리려고 하는 자세로요. 다른 학생들은 교실 뒤에 모여서 발견된 경우가 많았어요. 사실 처음에는 오빠한테 화가 났어요. '자기부터 챙길 것이지!' 하고요. 하지만 교실에 있던 한 생존자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았어요. 오빠가 딸의 생명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고요. 오빠가 나서줘서, 딸이 살 방법을 찾을 시간을 벌었다고 하더라고요. -프리실라 라 포트, 매튜 동생 매튜가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본인은 살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더 큰 희생을 막겠다는 마음으로 주저없이 나섰어. 그런 매튜 덕분이었을까, 아직 살아있는 학생들이 있었어. 크리스티나야. 크리스티나는 자기도 총에 맞았지만, 의식을 잃은 콜린을 계속 깨우고 있어. 이 순간 학생들이 제일 두려워한 건, 범인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이야. 그럼 범인이 다시 올 걸 대비해 문부터 닫아야지. 케빈이 있던 207호 강의실부터 움직이기 시작했어. 부상이 심하지 않은 학생들이 움직이는데, 입구까지 가는 길이 너무 처참해. 사망한 학생들이 책상과 뒤엉켜 있고, 바닥은 피바다야. 그 시각, 조승희는 204호로 향했어. 204호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 76세로, 루마니아 출신인데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분이야. 평생을 공학 연구에 매진해 온 존경받는 학자야. 교수님은 처음부터 밖에서 나는 총소리를 알아차렸고, 재빨리 달려가 창문을 깨뜨리기 시작했어. 몸으로 힘껏 창문을 밀치고, 창문을 의자에 집어 던졌어. 그리고 학생들에게 빨리 밖으로 뛰어내려! 라고 소리쳤어. 그런데 학생들이 주저해. 바닥까지 6m를 뛰어 내려야 하는데다가, 바깥 상황을 정확히 모르니까, 우왕좌왕 할 뿐이야. 바로 그때, 교수님은 강의실 입구 쪽으로 뛰었어. 학생들이 뛰어내릴 시간을 벌어주려고, 본인이 몸으로 문을 막은 거야. 마침내 한 학생이 창문을 뛰어넘어. 그 뒤로 줄줄이 학생들이 뛰어내려. 그리고 그때, 조승희도 문 앞에 도착해. 교수님과 조승희가 문 하나를 두고 대치한 상황. 문 너머에서 총알이 빗발쳐. 교수님은 온 몸으로 문을 막았어. 창문 쪽을 봤는데, 아직도 뛰어내리지 못한 학생들이 있어. 교수님은 엄청난 고통을 참아내며, 그 문을 놓지 않았어. 하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했어. 강의실 문이 열리고, 범인이 들어와. 그리고 총을 난사해. 다섯발의 총을 맞은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셨어. 그래도 교수님이 버텨낸 덕분에, 미쳐 뛰지 못한 한 학생을 빼고, 이 곳에서 더 이상의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어. ▲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9분 그 사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노리스 홀을 에워쌌어. 학교 전체가 완전히 통제됐어. 당시 출동한 경찰들은 바로 건물에 들어가지 못했어. 범인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잖아. 급할수록 신중을 기해야해. 콜린과 크리스티나가 있던 211호. 다행히 콜린은 간신히 의식을 되찾았어. 근데 저벅저벅 발소리가 또 들려. 조승희가 다시 강의실을 찾아온 거야. 학생들의 공포가 현실이 됐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조승희는 이미 쓰러진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또 쏴. 콜린은 눈을 질끈 감았어. '이제 다음 차례는 나구나' '제발 아프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얼마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낯선 발 하나가 콜린의 눈 앞에 멈춰 섰어. 그때 두번째로 왼쪽 엉덩이에 총을 맞았어요.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 세번째 총을 맞았고, 그 다음에 제 몸을 뒤집더니 오른쪽 엉덩이를 한 번 더 쐈어요. 그 뒤로 총성이 몇 번 더 들리더니 모두 조용해졌어요. 시작될 때처럼 갑자기 다 조용해졌어요. -콜린 고다드, 당시 211호 학생 콜린은 무려 4발이나 맞고 정신을 잃었어. 그 시각, 마침내 무장한 경찰들이 노리스 홀에 진입해. 근데 조승희가 문을 쇠사슬로 봉쇄했잖아? 그래서 진입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어. 경찰이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지만, 현장은 너무 참혹해. 어떻게 그 정도 인원의 사람이 죽었는지. 사건의 규모와 성격만으로도 정말 충격이었죠. 2층으로 올라가니 시체 2구가 있었는데, 거기서 계단으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복도를 따라 내려오는데 바닥은 전부 피로 흥건했고, 그때 정말 숨이 턱 막혔어요. -매트 브로닉, 현장 출동 경찰관 전쟁터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겠구나, 생각했대.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이 터져나와. 빨리 범인부터 진압해야 해. 바로 그 때 팔 하나가 올라와서, 저 사람이 범인이다 라고 가리켰어. 학생이 가리킨 곳으로 다가갔는데, 한 남자가 쓰러져 있어. 조끼를 입은 아시아계 남자인데, 주변엔 빈 탄창과 권총이 놓여있어. 조승희는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범인은 죽었지만 사건은 끝난 게 아니야. 부상자 수습이 우선이야. 이 사진 속 주인공, 207호 케빈과, 211호 크리스티나야. 불과 30분 전만 해도 이렇게 강의실을 나가게 될지 전혀 몰랐어. 간신히 살아남은 학생들은, 현장을 '피날레가 없는 불꽃놀이가 계속되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라고 기억했어. 그렇게 긴 시간이었을까? 조승희가 범행을 저지른 시간은, 단 9분이었어. 그 9분동안 조승희가 쏜 총탄은, 무려 174발. 3초에 한 발씩 쏜 거야. 이날 총 32명이 죽고, 29명이 다쳤어. 이렇게 집요하고 잔인한 살인마는 처음이었어. 이 사건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라 불려. 온 세계를 경악시킨 최악의 사건이야. 이 최악의 총기 난사범이 한국인 유학생으로 밝혀지면서 파장이 컸어. 노리스 홀 총격 사건의 범인은 조승희로 밝혀졌습니다. 나이는 23세이고, 한국 국적의 미 영주권자입니다. 전세계의 관심은 범인 조승희에게 쏠렸어. 그는 누구이고,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 조승희는 왜 괴물이 되었나 경찰은 학교 친구들부터 조사했어. 근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쏟아져. (많은 학생이) 그의 사진을 봤는데, 그가 누군지 몰랐어요. 이름과 사진을 같이 놓고 봐도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조승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 3년이 넘는 학교 생활이었는데, 친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 조승희는 '그림자', '외톨이', 그렇게 불렸대. 하도 주변이랑 안 어울리니까. '그냥 혼자 있고 싶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대. 조승희는 미국 영주권자였어. 국적은 한국이야. 혹시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나 따돌림이 있었나 물으니, 주변에선 제가 여러 번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어요 라고 대답했어. 오히려 소통을 거부한 건 조승희 쪽이었대. 심지어 방을 함께 쓴 룸메이트랑도 말을 안하고 지냈다는 거야. 처음에 같이 어울리려고 친구들에게 소개했지만 전혀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고… 학기 초에는 우리 모두 함께 모여서 저녁을 먹으러 가니까 조승희를 초대한 적이 있어요. 한 두 번 오다가 다음에는 거절했어요. -기숙사 룸메이트들 조승희가 미국에 이민을 온 건 1992년, 조승희가 8살 때였어. 자식들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려고 부모님이 큰 결심을 하신 거야. 근데 중학생이 되면서 문제가 좀 생겨. 부모님이 묻는 것에 조승희는 묵묵부답, 대답이 없어. 원래 내성적이긴 했는데, 언젠가부터 말을 아예 안하기 시작했어. 걱정이 된 부모님은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 그리고 '선택적 함구증'(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증상. 불안장애의 범주에 속하며 아동기에 주로 나타난다)이란 진단을 받아. 말을 못하는게 아니라, 자기 선택에 따라 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병이야. 부모님은 승희의 치료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 중고등학교 내내 약물, 심리치료를 받으며 큰 문제없이 학교를 졸업했어. 성적도 꽤 좋았어. 그렇게 명문대인 버지니아 공대에 진학한 거야.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그런데 사건 이틀 후, 아주 경악할 일이 벌어졌어. 미국의 한 방송국으로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어. 조승희가 직접 보낸 것이었어. 이 우편물에는, 선언문과 조승희가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들이 들어 있었어. 사진 속 조승희는 총, 망치 같은 무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어. 스스로가 테러범이라는 걸 증명하듯이. 그리고 DVD도 있었어. 이 DVD 안에는 여러 개의 영상이 담겨 있었는데, 조승희는 다양한 메시지를 남겼어. 시간이 됐을 때 나는 그걸 했고, 그래야만 했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어. 그냥 떠날 수도 있었고 도망칠 수도 있었어. 그러나 그러지 못했어. 내가 이걸 정말 원해서 했다고 생각하나? 난 진정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 -영상 속 조승희의 이야기 中 이런 조승희의 이야기는 자신을 과시하는 것 같기도, 범행 이유를 알리는 것 같기도 해. 또 하나 충격적인 게 있어. 이 우편물, 언제 보낸 걸까? 범행 당일, 오전 9시 1분에 보냈어. 기숙사에서 두 명을 살해한 후, 노리스 홀로 가기 직전이야. 아주 계획적으로 움직인 거야. 조승희가 소지했던 권총 두 자루. 미국에선 범죄 이력이 없는 성인이면 누구나 총을 살 수 있어. 그런데 이 버지니아주에서는 총기를 한 달에 한 자루만 살 수 있어. 그 이야기는, 조승희가 최소 한 달 이상 범행을 준비했다는 거야. 행적을 따라갈수록, 모든 건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걸 알 수 있어. 조승희의 동선을 정리해보면, 총을 구입한 건 사건 두 달 전인 2월 2일이야. 권총을 구입한 후 조승희는 연습을 했어. 학교 근처 사격장에서 자주 목격이 됐대. 그리고 범행 직전 머리를 바짝 깎고, 범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샀어. 그리고 영상과 사진을 남겼어. 방송국에 보낸 사진과 영상을 잘 보면, 배경과 옷차림이 다 달라. 수일에 걸쳐서 촬영을 했다는 증거야. 마치 하나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듯, 이 범죄를 기획한 거야. 영상 속에는 또 다른 단서들이 있어. 누군가 너의 얼굴에 침을 뱉고, 쓰레기를 목구멍에 쑤셔 넣고, 너의 무덤을 파는 느낌이 어떤지 알아? 너희들은 오늘을 피할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피를 흘리게 했어. 너희는 나를 궁지로 몰았고 나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 결정은 너희가 한 거고, 이제 너희 손엔 절대로 씻을 수 없는 피가 묻을 거야. -영상 속 조승희의 이야기 中 평소엔 말이 없었다고 했는데, 마치 분노에 찬 듯 쏟아내는 말들. 주변을 더 자세히 조사하다 보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 괴롭힘이 있긴 했대. 조승희의 발음이 좀 어눌하고 목소리도 이상하다면서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거야. 이런 경험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걸까. 그렇다고 해도, 이게 이런 잔혹한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어. 영상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어. 금목걸이로는 부족했냐 이 속물들아. 신탁자금으로는 부족했냐. 보드카와 코냑으로는 부족했냐. 온갖 타락행위로는 부족했냐. 그런 것들로도 너희의 쾌락주의적 니즈를 채울 수 없었던 거냐. 너넨 모든 걸 갖고 있었잖아. -영상 속 조승희의 이야기 中 영상에서 보이는, 가진 자에 대한 분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승희의 내면에는 큰 좌절과 분노가 차있었어. 이런 조승희의 심리를 알아챈 사람도 있었어. 조승희와 함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동양인이 범인이라고 했을 때, 그 학생일 거라 생각했다 , 언젠가 무슨 일을 저지를 거 같았다 고 말했어. 조승희에겐 남다른 모습이 있었대. 항상 깊게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수업에 들어왔어. 수업시간엔 선글라스를 벗으라는 교수님의 말에도 대꾸가 없어. 수업에 관계된 걸 물어도 마찬가지야. 어떤 날에는 수업 중에 갑자기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했대. 그래도 수업엔 꼬박꼬박 들어왔어. 글 쓰는데 관심이 아주 많았거든. 조승희는 소설을 출간하고 싶어 했어. 실제로 출판사에 글을 몇 번 보내기도 했는데, 번번이 퇴짜를 맞았어. 글 내용이 조금 문제가 있었거든. 인류의 망신인 비열한 인간들. 너희들은 다 역겨워. 대량 학살과 어린 동물들을 먹은 죄로 너희들 모두 지옥에서 불타길 바라 -조승희가 쓴 '동물 학살 정육점' 中 검은색 조끼와 짙은 선글라스를 쓴 버드는 내 삶이 혐오스러워 이제 됐어 지금이 너희와 나와 함께 죽어야 할 때야 나는 구제 불능이야. 이 빌어먹을 학교에 있는 빌어먹을 사람들을 다 죽일 생각이었어. 근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 버드와 고스족 소녀는 훔친 차에 권총을 싣고 달린다. - 조승희가 쓴 '버드' 中 조승희가 쓴 글인데, 마치 자기 이야기를 써 놓은 느낌이지? 인간 혐오가 느껴지는 내용. 이걸 작문 수업에 써서 서로의 글을 돌려보는 일이 많았는데, 학생들은 조승희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 힘들었대. 대부분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는 내용이었거든. 조승희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단지 제가 원하는 것은 그가 제 수업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으니까요. -니키 지오바니, 영문학과 교수 반면에 조승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사람도 있었어. 학과장 루신다 로이 교수야. 그가 매우 외로워 보여서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외로워요. 친구가 전혀 없어요' 라고 했어요. '네가 정말 슬플 때 아무도 옆에 없으면 얼마나 힘드니'라고 물었어요. 그가 달라지기를 바랐고 가족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말하기를 꺼려했어요. -루신다 로이, 버지니아 공대 전 영문학과 학과장 조승희는 로이 교수에게는 마음을 좀 열었어. 교수님이 책을 여러 권 출간한 작가이기도 했거든. 로이 교수는 개인 교습까지 해주며 면담을 이어갔어.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를 하면서, 조승희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바꾸려 노력해본 거야.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승희는 면담에 나오지 않았고, 다시 혼자만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어. 조승희가 쓴 마지막 글은 이거야. 축하한다. 너는 내 삶을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어. 너 때문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약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 내 형제자매 자식들 같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죽을 거야. 너희는 결코 우리가 어디서 공격할지 너희를 어떻게 죽일지도 모를 거야. 너희는 항상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거야. 내 인생을 파괴해 버리고 나니 행복해? 이제 행복해? 원망과 분노로 가득찬 글의 내용. 이것만 봐도 완전히 망상에 빠져있어. 전문가는 당시 조승희의 상태를 이렇게 진단해. 결정적인 트리거는 주위로부터의 거부라고 봅니다. 조승희는 그 책임을 외부로 돌렸다는 거죠. 이거는 '나의 잘못이 아니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것이 자꾸 쌓이게 되면 (분노의) 게이지가 점차 올라가게 되고, 세상을 향한 증오, 분노, 공격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거죠. -오윤성 교수,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 또 다른 비극을 막으려면 조승희의 이런 모습에 가장 충격 받은 사람들은 누굴까. 가족들이겠지. 부모님께서는 그제야 아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 알게 됐어. 사건 전날인 일요일에도 어머니는 아들과 통화했대. 마지막 대화는, 승희야, 사랑해 였어. 엄마는 눈물을 펑펑 쏟았어. 하지만 이미 늦었지. 조승희 누나는 가족을 대신해 사죄의 성명서를 냈어. 저희 가족은 희망도 없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방향을 잃었습니다. 승희는 제가 함께 자라고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저는 승희를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동생의 말할 수 없는 행동에 저희 가족은 큰 유감을 느낍니다. -조승희 누나의 성명서 中 가족들도 몰랐던 낯선 모습. 끔찍한 사건의 범인이 아들이고, 동생이야. 그 사건 이후, 가족들도 편안하게 살지 못 할 테지. 그런데 희생자 가족인 매튜의 동생은, 조승희의 가족이 그렇게 고통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어. (조승희를) 미워하지 않아요. 용서했어요. 그때 일어난 일들이 싫을 뿐이에요. (가족이) 지금까지 얼마나 큰 아픔을 겪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가족들이 그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요. 앞으로 계속 그렇게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프리실라 라 포트, 희생자 가족 스물셋 조승희는 꿈 많던 서른 두 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고, 생존자들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을 안겼어. 총을 네 발이나 맞고 생존한 콜린은, 총기규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어. 지금도 잊을 만하면 미국에서 한번씩 총기사고가 일어나잖아? 결국 총을 쉽게 구할 수 있는게 문제라는 거야. 크리스티나도 폭력 예방 재단을 운영하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일하고 있어. 안타깝게 사망한 매튜의 유가족도, 총기사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 큰 일을 겪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또 어떻게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 늘 생각하며 살고 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심을 말하고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해요. 우리는 누구나 감정이 있고 어떤 이유로든 괴롭게 되니까요. 괴롭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앞으로 생길 비극과 고통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요. 정말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고요. -프리실라 라 포트, 희생자 가족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던 참극.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이 있어. 1999년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가해자의 어머니가 쓴 책이야. 이 사건의 범인은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고 있었대. 그런데 아동심리를 전공한 어머니조차, 아들의 문제를 전혀 몰랐다는 거야. 책의 한 구절이야. 아들은 햇살이라고 불릴 만큼 밝고 애정 넘치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햇살처럼 빛나던 아들이 모르는 사이 마음 속에서 괴물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보일 때도 뭔가 심각하게,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 악은 왜 자라고, 그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이야. 무엇이 조승희를 그렇게까지 분노하게 했고, 왜 다른 곳에서 당한 아픔을 죄 없는 사람들한테 풀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 다만, 어떤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유를 찾는다 해도, 이런 끔찍한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어.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인 건 분명해. 하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생각해 봐야해. 그래야 같은 비극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