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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이제훈 돌아온다 …'모범택시3', 2025년 하반기 편성 확정
등록일2025.02.06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한국형 케이퍼 드라마의 진수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 시즌3가 올 하반기에 돌아온다. 6일 SBS 새 금토드라마 '모범택시3'(극본 오상호, 연출 강보승) 측은 시청자분들께 큰 사랑을 받았던 '모범택시' 시리즈의 새로운 시즌인 '모범택시3'가 올 하반기 SBS 편성을 확정 지었다 고 밝혔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모범택시' 시리즈는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 분)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이다. 악당을 사냥하는 택시기사라는 전무후무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한 '모범택시'는 권선징악의 짜릿한 카타르시스에 케이퍼물 특유의 다이내믹한 재미를 잡으며 사이다 드라마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또한 시즌을 거듭할수록 돈독해지는 '무지개 운수' 멤버들의 케미, 주인공 김도기의 부캐 퍼레이드 등 재미 요소들을 기반으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팬심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에 가장 최신 시리즈인 '모범택시2'는 최고 시청률 25.6%(닐슨 코리아/수도권 기준)로 2023년 방영된 미니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공개 열흘 만에 전 세계 16개국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믿고 보는 메가 히트 IP'로 우뚝 섰다. 올 하반기 방영 예정인 '모범택시3'에는 '무지개 운수의 대표 기사' 김도기 역을 맡아 '갓도기 신드롬'을 불러 모은 이제훈부터 '무지개 운수 대표' 장성철 역을 맡아 중심을 잡고 있는 김의성, '무지개운수 소속 해커' 고은 역으로 '인생캐'를 경신한 표예진, '무지개 운수 엔지니어 듀오' 최주임-박주임 역을 맡아 신스틸러로 맹활약한 장혁진과 배유람까지, '무지개 운수'의 완전체가 다시 뭉쳐 빛나는 의리를 뽐낸다. '모범택시2' 종영 전부터 이제훈이 이 식구들과 함께 또 다른 이야기를 써 갔으면 좋겠다 라고 소원했을 정도로 역대급 팀케미를 자랑하는 '무지개 운수' 5인방이 '모범택시3'에서도 가족처럼 끈끈해진 케미를 자랑한다고 해 기대감이 고조된다. 이와 함께 '모범택시 세계관의 아버지' 오상호 작가와 '낭만닥터 김사부3'의 공동연출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은 강보승 감독이 손을 잡아 관심을 높인다. '모범택시3'에서는 전 시즌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 더욱 무르익은 세계관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이에 '모범택시' 시리즈의 3연타석 흥행을 이끌 제작진의 시너지에도 기대감이 고조된다. '모범택시3' 측은 앞선 시즌들을 향해 보내주신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제훈, 김의성,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 역시 최고의 팀워크를 선보일 준비를 마쳤다. '모범택시' 시리즈가 어째서 '한국형 케이퍼 드라마의 진수'인지 확인하실 수 있도록 호쾌한 재미로 찾아뵙겠다. 올 하반기에 방영될 '모범택시3'에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린다 라고 전했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모범택시2' 이제훈-'악귀' 김태리 공동 대상…우열 가릴 수 없는 2023 SBS 드라마 주역[종합]
등록일2023.12.30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모범택시2'의 이제훈과 '악귀'의 김태리가 '2023 SBS 연기대상' 영예의 대상을 공동 수상했다.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서 개그맨 신동엽과 배우 김유정의 진행으로 '2023 SBS 연기대상'이 열렸다. 이번 시상식은 故 이선균의 비보 여파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검은색 의상을 입고 시상식에 참석했고, 고인이 출연했던 '법쩐' 팀은 전원 불참을 결정했다. 최고 시청률 25.6%를 돌파하며 '갓도기 신드롬'을 일으킨 '모범택시2'의 이제훈과 1인 2역의 '메소드 연기'로 평단과 대중의 찬사가 쏟아졌던 '악귀'의 김태리,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가 대상의 수상을 안았다. 이날 방송은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 코리아 기준 최고 시청률 7.8%, 수도권 시청률 4.5%(3부 기준)를 기록했다. 대상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두 사람은 수상소감을 누가 먼저 할지 가위바위보를 하는 유쾌한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먼저 '악귀'의 김태리는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음은 끝까지 함께한 동료들 덕분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소중한 작품이었는데, 좋은 결과까지 만들어준 시청자에게 감사하다 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모범택시2'의 이제훈은 시즌2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는데 큰상을 주셔서 몸둘바 모르겠다. 좋은 감독님, 작가님, 동료 스태프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부족함을 채워가며 연기했다 며 감사함을 표했다. 최우수 연기상 시즌제 드라마 부문은 '낭만닥터 김사부3'의 두 주인공 안효섭과 이성경이 수상하여 의미를 더했으며, 미니시리즈 멜로/로코 부문 역시 '마이 데몬'의 '도원 커플' 김유정과 송강이 함께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최우수 연기상 미니시리즈 장르/액션 부문은 '국민사형투표' 박성웅과 '법쩐'의 문채원이 수상했다. 네티즌이 직접 투표한 결과로 시상하는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SBS 드라마'에는 '모범택시2'가 선정됐다. 시상자로는 이덕화가 나서 참석한 모든 배우들에게 덕담을 전하며 시상식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우수 연기상 시즌제 드라마 부문에서는 '모범택시2' 신재하와 표예진이, 미니시리즈 멜로/로코 부문에 '꽃선비 열애사'의 려운과 신예은이 함께 수상했고, 미니시리즈 장르/액션 부문에 '7인의 탈출' 이준, 이유비와 '악귀' 홍경이 상을 받았다. 베스트 커플상은 '마이 데몬'의 독설 커플로 치명적 쌍방 로맨스를 선보이고 있는 김유정과 송강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년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았던 안효섭은 김세정과 함께 시상자로 나서 2년 전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받았던 김유정에게 축하를 건네는 훈훈한 그림을 연출했다. 베스트 퍼포먼스 상은 강렬하면서 디테일한 연기로 극에 무게감을 더한 '악귀'의 진선규가 차지했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올해의 팀상은 '낭만닥터 김사부3'의 '돌담즈'가 수상했다. 조연상에서는 시즌제 드라마 부문에 '모범택시2' 배유람, 장혁진과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의 손지윤이 수상했고, 미니시리즈 멜로/로코 부문에 '트롤리', '마이데몬' 정순원과 '트롤리', '법쩐', '마이데몬'의 서정연이, 미니시리즈 장르/액션 부문에 '악귀'의 김원해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모범택시2'와 '낭만닥터 김사부3'에서 나란히 활약을 선보인 고상호와 변중희는 신스틸러상을 차지했다. 청소년 연기상은 '국민사형투표' 최현진, '낭만닥터 김사부2' 한지안, '악귀' 박소이, '모범택시2' 안채흠이 수상했다 생애 단 한 번 받을 수 있는 신인 연기상은 '법쩐' 강유석, '국민사형투표' 권아름, '7인의 탈출' 김도훈, '악귀' 양혜지, '낭만닥터 김사부3' 이신영, 이홍내, '트롤리' 정수빈이 함께 수상의 기쁨을 나눴다. 한편 축하 공연은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와 아역들, 가수 화사, 밴드 국카스텐과 신재하, '낭만닥터 김사부3'의 안효섭과 이성경을 비롯한 '돌담즈'가 맡아 풍성한 무대를 꾸몄다. 끝으로 2024년 SBS 드라마를 책임질 4개의 드라마 스페셜 티저도 미리 공개됐다. 2024년 1월 26일(금) 첫 방송되는 안보현, 박지현 주연의 '재벌X형사', 김순옥 유니버스의 부활을 알리는 '7인의 부활'과 언더독 열풍을 일으킬 김동욱 주연의 '강력하진 않지만 매력적인 강력반' 그리고 끝으로 지성, 전미도 주연의 '커넥션'이 바로 2024 SBS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소개됐다. &<이하 2023 SBS 연기대상 수상자(작)명단&> ▲대상 : 이제훈(모범택시2), 김태리(악귀) ▲최우수 연기상 시즌제 드라마 : 안효섭(낭만닥터 김사부3), 이성경 (낭만닥터 김사부3) ▲최우수 연기상 미니시리즈 멜로/로코 : 송강(마이 데몬), 김유정(마이 데몬) ▲최우수 연기상 미니시리즈 장르/액션 : 박성웅(국민사형투표), 문채원(법쩐) ▲네티즌이 뽑은 SBS 최고의 드라마 : 모범택시2 ▲우수 연기상 시즌제 드라마 : 신재하, 표예진(모범택시2) ▲우수 연기상 미니시리즈 멜로/로코 : 려운, 신예은(꽃선비 열애사) ▲우수 연기상 미니시리즈 장르/액션 : 이준, 이유비(7인의 탈출), 홍경(악귀) ▲베스트 커플상 : 김유정&&송강(마이 데몬) ▲베스트 퍼포먼스 : 진선규(악귀) ▲올해의 팀 : 돌담즈(낭만닥터 김사부3) ▲조연상 시즌제 드라마 : 배유람, 장혁진(모범택시2), 손지윤(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 ▲조연상 미니시리즈 멜로/로코 : 정순원(트롤리, 마이 데몬), 서정연(트롤리, 법쩐, 마이 데몬) ▲조연상 미니시리즈 장르/액션 : 김원해(악귀), ▲신스틸러상 : 고상호, 변중희(모범택시2, 낭만닥터 김사부3) ▲청소년 연기상 : 최현진(국민사형투표), 한지안(낭만닥터 김사부3), 박소이(악귀), 안채흠(모범택시2) ▲신인 연기상= 강유석(법쩐), 권아름(국민사형투표), 김도훈(7인의 탈출), 양혜지(악귀), 이신영, 이홍내(낭만닥터 김사부3), 정수빈(트롤리)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모범택시2' 표예진X장혁진X배유람, 대상 수상자 알아내려 SBS 잠입?…'연기대상' 코믹 예고
등록일2023.12.21
'모범택시'의 '무지개 운수' 3인방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이 활약한 '2023 SBS 연기대상' 2차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오는 29일 생방송으로 진행될 '2023 SBS 연기대상'의 티저 예고 영상이 21일 공개됐다. 이번 영상에는 '모범택시'의 '무지개 운수' 3인방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이 등장해 '2023 SBS 연기대상'을 알린다. 올해 방송된 '모범택시2'는 최고 시청률 25.6%를 기록하며 시즌1에 이어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제훈을 수장으로 복수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지개 운수' 팀원들의 열의 넘치는 팀워크와 유쾌한 케미스트리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이런 '무지개 운수'의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이 다시 뭉쳐 특유의 코믹한 케미스트리로 '2023 SBS 연기대상'을 소개한다. 공개된 2차 티저 속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은 '2023 SBS 연기대상' 수상자 봉투를 입수하기 위해 SBS에 잠입한 연기를 펼친다. '모범택시' 속 해커 안고은 역을 맡았던 표예진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SBS 사옥 CCTV를 해킹하고 장혁진, 배유람은 '2023 SBS 연기대상'의 대상 수상자를 알아내기 위해 SBS 연기대상 제작본부로 몰래 향한다. 장혁진, 배유람이 잠입한 복도에 붙여져 있는 2023 SBS 드라마 포스터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오컬트 드라마 '악귀' 포스터에 화들짝 놀라는 둘의 모습이 큰 웃음을 선사한다. 이후 대상 수상자가 적혀 있는 봉투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는 장혁진, 배유람의 모습이 '2023 SBS 연기대상' 대상 수상자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2023년 SBS 드라마 영예의 대상 주인공이 탄생할 '2023 SBS 연기대상'은 24년 만에 한 해의 마지막인 31일이 아닌, 29일 금요일 밤 8시 40분에 개그맨 신동엽, 배우 김유정의 진행으로 생방송된다.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모범택시2' 표예진X장혁진X배유람, 대상 수상자 알아내려 SBS 잠입?…'연기대상' 코믹 예고
등록일2023.12.21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모범택시'의 '무지개 운수' 3인방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이 활약한 '2023 SBS 연기대상' 2차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오는 29일 생방송으로 진행될 '2023 SBS 연기대상'의 티저 예고 영상이 21일 공개됐다. 이번 영상에는 '모범택시'의 '무지개 운수' 3인방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이 등장해 '2023 SBS 연기대상'을 알린다. 올해 방송된 '모범택시2'는 최고 시청률 25.6%를 기록하며 시즌1에 이어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제훈을 수장으로 복수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지개 운수' 팀원들의 열의 넘치는 팀워크와 유쾌한 케미스트리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이런 '무지개 운수'의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이 다시 뭉쳐 특유의 코믹한 케미스트리로 '2023 SBS 연기대상'을 소개한다. 공개된 2차 티저 속 표예진, 장혁진, 배유람은 '2023 SBS 연기대상' 수상자 봉투를 입수하기 위해 SBS에 잠입한 연기를 펼친다. '모범택시' 속 해커 안고은 역을 맡았던 표예진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SBS 사옥 CCTV를 해킹하고 장혁진, 배유람은 '2023 SBS 연기대상'의 대상 수상자를 알아내기 위해 SBS 연기대상 제작본부로 몰래 향한다. 장혁진, 배유람이 잠입한 복도에 붙여져 있는 2023 SBS 드라마 포스터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오컬트 드라마 '악귀' 포스터에 화들짝 놀라는 둘의 모습이 큰 웃음을 선사한다. 이후 대상 수상자가 적혀 있는 봉투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는 장혁진, 배유람의 모습이 '2023 SBS 연기대상' 대상 수상자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2023년 SBS 드라마 영예의 대상 주인공이 탄생할 '2023 SBS 연기대상'은 24년 만에 한 해의 마지막인 31일이 아닌, 29일 금요일 밤 8시 40분에 개그맨 신동엽, 배우 김유정의 진행으로 생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308명 죽은 원진레이온 참사, 일본이 떠넘긴 '살인기계'가 시작이었다
등록일2023.06.30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9일 방송된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사라진 308명'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한혜진, 배유람, 정영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람이 죽어 나가는 마을 때는 1970년 여름, 경기도 남양주의 한 시골마을. 마을로 버스 한 대가 들어오고, 읍내 장터에 다녀온 정 씨 할머니가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내렸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걸어가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동네 최 씨 아저씨가 짐을 들어주겠다며 다가왔어. 그렇게 두 사람이 길을 걷는데, 갑자기 최 씨가 픽 바닥에 쓰러졌어. 심지어, 할머니도 갑자기 쓰러졌어. 동시에 두 사람이 정신을 잃었어. 이뿐만이 아니야.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아줌마도, 자전거를 타고 오던 학생도, 밭일을 하던 할아버지도,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픽 픽 쓰러져 나가. 순식간에, 무려 80명이 쓰러졌어. 그 마을에서 살았으니까 제 눈으로 봤죠. 마을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 쓰러지니까. 지나가다 쓰러지면 (버스에) 싣고 또 싣고, 버스 2, 3대로 사람들을 실어 날랐어요. -박석혼, 당시 마을 주민 순식간에 벌어진 의문의 사고. 근데 이상한 일은 이게 끝이 아니야. 마을에는 '도농역'이란 역이 하나 있었는데, 이상하게 이 역으로 전철이 들어오면 갑자기 전철이 그 자리에 멈추고 내부 불이 다 꺼졌어. 잘 다니던 전철이 꼭 이 역에만 오면 문제야. 이상한 일은 또 있어. 이 마을에 사는 동환 씨는 어느 날 이웃한테 빨리 와달라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어. 동환 씨는 서둘러 이웃집으로 뛰어갔고, 바닥에 이불이 덮인 채로 누워있는 사람을 발견했어. 어제까지만 해도 동환 씨와 대화를 나누던 이웃주민, 43세의 주부 고 씨야. 고 씨는 화장실에서 스카프로 목을 맨 채 발견됐어. 어안이 벙벙했죠.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요. 그런 일이 한 두건이 아니기 때문에. -황동환, 당시 마을 주민 그런 일이 한 두건이 아니다? 의문의 자살이 고 씨가 처음이 아니었던 거야. 얼마 전에 세 아이의 아빠였던 40대 가장도 연탄불을 피운 채 사망한 채 발견됐어. 이런 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무려 12명이야.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 나이, 성별, 사망한 시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한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어. 바로, 이 마을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대체 이 마을의 정체는 뭘까? 사건이 끊임없는 이 마을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어. ▲ 꿈의 직장에서 일어난 사고들 1979년 11월, 26살 장수 씨는 회사 면접이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정신이 없어. 이날 장수 씨가 면접을 보는 회사는 이 동네에서 제일 큰 회사야. 직원이 1500명이 넘고, 회사 대지 면적은 무려 15만 평. 이 회사에 가고 싶다고 뒷돈까지 주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어. 이 회사는 속옷이나 잠옷, 양복 안감 등을 만드는 부드러운 질감의 '인견사'라는 실을 만드는 곳이야. 장수 씨는 그토록 원하던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합격했고, 인견사를 뽑아내는 핵심 부서인 '방사과'에 배정됐어. 장수 씨가 이 회사를 다녀보니 생각보다 더 좋아. 월급은 기본, 보너스는 무려 400%나 줘. 회사 구내식당에는 고기반찬이 넘쳐나. 누구나 꿈꾸는 꿈의 직장이야.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사고가 하나 일어나. 회사 지하에 있는 배수구가 막혀서 그걸 뚫기 위해 직원 3명이 현장에 갔어. 직원들은 배수구 끝에 있는 맨홀 뚜껑을 열고 그 아래로 내려갔는데, 세 명 모두 다시 올라오지 못하고 숨을 거뒀어. 병원에 가다 죽었는지 현장에서 죽었는지 (세 사람 모두)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섬뜩했죠. -김장수, 당시 직원 장수 씨는 이 사고를 '어쩌다 일어난 사고겠거니' 하고 넘겼어.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1989년 10월, 장수 씨가 입사한 지 벌써 10년이 됐어. 어느 날 장수 씨는 같은 팀 동료의 집으로 향했어. 동료의 딸 백일잔치가 있었거든. 한 상 가득 차려진 잔치음식을 먹으려고, 장수 씨는 젓가락으로 먼저 인절미를 집어 들었어. 그런데 인절미를 김칫국에 툭 떨어뜨렸어. 이번엔 빈대떡을 집는데, 이번에도 젓가락질이 계속 미끄러져. 얼른 다시 집으려는데, 젓가락질이 잘 안돼.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가. 장수 씨는 피곤해서 컨디션이 안 좋아 그런가 보다 하고, 그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 그런데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장수 씨는 자신의 손과 팔이 없어졌다고 느꼈어. 손이 없는 거예요. 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내 손이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손이 없는 거예요. 팔을 찾다가 찾다가 없으니까 '여보! 여보!' 불러서 '내 팔이 없어졌으니 팔 좀 찾아보라고' 했어요. (놀라 달려온 아내가) '여보.. 팔 거기 있잖아' 하는 거예요. 보니까 팔이 이마 위에 있는데, 손을 만져보니까 내 손이 내 손 같이 않더라고. -김장수, 당시 직원 팔이 마비되어 감각조차 없었어. 놀란 아내가 장수 씨의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니 다행히 감각이 조금씩 돌아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번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안간힘을 써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 자리에 쿵 쓰러졌어. 장수 씨는 곧장 아내의 부축을 받아 병원을 갔어. 의사가 살펴보더니 병명을 모르겠다고, 큰 병원을 가보라 했어. 그런데 큰 병원을 가도 대답은 같아. 원인을 알 수 없대. ▲ 낭만닥터 김록호 그즈음, 서울 사당동, 여기에는 좀 이상한 병원이 하나 있어. '사당의원'이라는 이름의 작고 허름한 동네 의원인데, 내과, 정형외과, 산부인과까지 여러 부위를 다 보는 종합병원이야. 근데 의사는 딱 한 명이야. 그리고 이 병원은 진료비가 엄청 싸. 다른 병원에서 3,000원이면, 여기는 1,000원을 받아. 어떨 땐 무료로도 진료해줘. 현실판 '낭만닥터'야. 또 환자가 병원 시간에 맞추는 게 아니라, 여기는 환자 시간에 의사가 맞춰. 의사가 24시간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언제든 환자가 오면 진료를 해주는 거야. 이 병원의 원장은 바로 이 사람이야. 가정의학 전문의 32세 의사 김록호. 김 원장은 왜 이런 병원을 낸 걸까? 당시만 해도, 이곳 사당동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빈민촌이었어. 김 원장도 어린 시절에는 무허가 판자촌에서 자랐어. 그리고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를 절뚝거렸는데, 늘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어. 어린 록호는 '내가 살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다짐했어. 그때부터 밤이나 낮이나 공부만 했고, 몇 년 후 록호는 서울대 의대에 한 번에 합격했어. 이렇게 의사가 된 록호는 자기처럼 약자를 위한 병원을 차렸어. 아픈 데는 많고 돈은 없는 사람들을 진료하기 위해서. 이런 김록호 원장의 사당의원에 어느 날 남양주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어. 장수 씨네 회사 직원들이야. 그런데 김 원장은 이 사람들을 본 순간 이상한 점을 느꼈어. 중풍 환자들 같은 느낌이었어요. 감정표현이 안 되고, 계속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웃거나, 아니면 눈물이 주르륵 나오면서 울거나. 팔다리는 마비된 상태고, 얼굴도 마비된 경우도 있고. 사람마다 다 달라요. 어떻게 '하나로 설명이 안 되는구나' '참 이상하다' 싶었죠.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김 원장도 처음 보는 증상이야. 웬만하면 안 비우는 사당의원을 나가 김 원장은 어딘가로 향했어. 도착한 곳은 서울대 의대 도서관.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지만, 그땐 일일이 다 찾아봐야 해. 김 원장은 밤새 도서관 책을 뒤지며 증상의 원인을 찾으려 했어. 그러다 마침내, 남양주에서 온 그 환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찾아냈어. 바로 'CS2중독', 즉 이황화탄소 중독이었어. 이황화탄소는 탄소의 황화물로서 무색의 휘발성 액체로, 원목을 녹이는 데 쓰이는 화학물질이야. 장수 씨네 회사가 인견사 제조 회사잖아? 영어로는 '레이온'이라 해. 인견사를 만들려면, 천연펄프에 이황화탄소로 녹인 뒤 화학작용을 거쳐 실의 형태로 만들어. 그만큼 이황화탄소는 독성이 강한 물질이야. 이황화탄소는 급성 중독과 만성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며, 단기간에 고농도에 폭로되어 발생하는 급성 중독의 경우 즉시 혼수상태로 빠져 사망하기도 한다. 대개 심한 흥분성, 분노, 자살 경향 등의 정신과적 증상과 중추신경계장애, 말초신경계장애 등의 만성중독증도 보고되고 있다. -이황화탄소 중독에 관한 설명 中 1970년대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이황화탄소 중독. '즉시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할 수 있다'는 건, 앞서 맨홀에 빠져 사망한 직원 세 사람의 사망 원인을 설명해. 맨홀 안에는 이황화탄소를 비롯한 독성 가스가 가득했어. 그걸 맡고 즉시 사망한 거야. 그리고 두 번째 '자살 경향'이란 증상을 보면, 주부 고 씨와 12명의 사망자의 죽음이 설명되지. 그리고 세 번째 '말초신경계장애'는 장수 씨가 팔다리 신경이 마비된 걸 설명해 주지. 드디어 원인이 밝혀졌어.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같은 회사라는 거야. 모든 것의 시작점은, 대한민국 유일의 인견사 제조회사인 '원진레이온'이야. 제가 본 환자들은 빙산의 일각이어서, 그 밑에 숨겨진 많은 분이 있다는 게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요.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 이황화탄소 중독 문제가 시작된 건, 회사 밖이 먼저였어. 남양주에 원진레이온 공장이 세워진 건 1966년. 이때부터 마을엔 이상한 일이 생겨. 공장에서 밖으로 설치된 파이프가 부식되며 독성 가스가 뿜어져 나왔어. 마을 사람들 80명이 갑자기 쓰러졌던 이유가 바로 이거 때문이었어. 공장이 세워진 이후, 130년 된 느티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비롯 수십 년 된 미루나무와 각종 과일나무가 말라죽었다는 것. 가스가 바람을 타고 마을 뒷산까지 날아가는 바람에 이 일대 소나무들이 시름시름 시들어가고 있다. 가정에서는 1개월도 안된 혁대 버클, 서류집게 따위가 녹스는가 하면, TV안테나가 6개월도 안 돼 삭아버리곤 한다는 것. 도농역에서는 선로 등 각종 철도 시설물이 쉽게 부식돼 열차의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우려까지 있다. -당시 신문 기사 중 회사 밖이 이 정도인데, 회사 내부는 어떨까? 뿌연 연기로 가득한 공장 내부는 이황화탄소로 만들어진 비스코스액에 화학가스를 방사하는 작업이 이어졌어. 이때 공기 중에 발생하는 이황화탄소들. 노동자들은 근무 내내 이황화탄소에 노출됐어. 끔찍한 작업 환경이야. 어떤 때는 어찌나 눈이 아픈지. 눈을 감고 가다가 전봇대를 들이받은 적도 있어요. -김장수, 당시 직원 (눈 아픈 데는) 모유가 좋다고 그래서 (아내가) 두 홉 정도씩 줘서 눈을 닦았어요. 집에만 오면 눈이 아파 뜨질 못하니까.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박석혼, 당시 직원 사실 레이온 산업은 외국에서는 이미 유명했어. 나무가 많아 일찌감치 실을 만든 핀란드, 의류업이 발단한 이탈리아, 직물 기술이 발전한 일본. 해외에서는 1930-40년도에 활발했던 산업이야. 해외에서는 이미 이황화탄소 중독이 발현됐어. 그런데 원진레이온은 이황화탄소의 위험성에 대해 어떤 교육도 하지 않았어. 오히려 몸이 안 좋다는 직원들한테 술 마시고 담배 많이 피니까 체력이 그 모양이지 , 가족들 생각해서 건강관리 좀 하세요 라고 말하곤 했대. 안타까운 건,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 말을 믿었다는 거야.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원진을 천직으로 알고 근무했으니까요. 직장을 믿었기 때문에. 그 직장을 가진 게 그렇게 나한테는 좋았어요. -김장수, 당시 직원 장수 씨처럼 원진레이온을 천직으로 알고 다닌 건, 봉환 씨도 마찬가지였어. 바로 이 분이야. 이름은 김봉환, 나이는 39세. 남들보다 좀 늦은 나이에 입사했지만, 봉환 씨는 열정이 넘쳐. 두 살 된 늦둥이 외동딸을 둔 '딸바보' 봉환 씨는 남부러울 게 없어. 번듯한 직장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으니. 그런데 봉환 씨가 입사하고 6년 후, 그에게도 이상한 증상이 시작됐어. 소화는 안 되고 손발은 저리고 두통이 계속돼. 한두 알씩 먹기 시작한 두통약을, 언젠가부터 하루에 10알 이상 먹어야 해. 결국 봉환 씨는, 입사 6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어. 사실 봉환 씨처럼 증세가 심해져서 퇴사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어. 퇴사 후에도 점점 심해지는 증상. 병을 얻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왜 아픈지, 원인을 몰랐어. 그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사당의원의 김록호 원장이었어. 김 원장은 여러분의 병명은 이황화탄소 중독입니다. 이걸 직업병이라고 합니다 라고 알렸어. ▲ 원진레이온의 숨겨진 진실 이제 병의 원인을 알게 된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집고, 회사를 찾아갔어.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한참 벌인 끝에 우르르 사장실로 올라갔어. 텅 빈 사장실에서 이들은 뜻밖의 문서를 발견했어. 바로 이거야. 무재해 인증서 매일 재해가 발생하는 이 회사에, 노동부가 직접 무재해 기업 인증을 해준 거야. 근데 이게 전부가 아니야. 사장실에서 또 다른 문서를 발견했어. 그 문서에는 34명의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을 산재처리 하지 않고 공상처리 했다 고 적혀 있었어. 회사 관리자가 피해 노동자를 찾아가서 회사에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면, 돈을 주겠다 면서 합의를 제안해. 피해 노동자는 가족과 생계를 위해, 그 합의를 받아들이기도 하지. 이렇게 한 번의 보상을 주고 합의하는 걸 '공상처리'라고 해. 회사 입장에서는 이 방식이 훨씬 유리해.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산재 없는 '무재해' 기업이 되는 거야. 그렇게 회사는 은밀하게 34명이나 처리한 거야. 사실 원진레이온의 설립 배경에는 엄청난 게 숨겨져 있어. 원진레이온이 설립되기 전인 1962년. 당시 우리나라의 목표, 박정희 대통령의 소원은 '경제성장'이었어. 그러려면 경제자금이 필요했지.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을 조용히 일본으로 보냈어. 식민 지배 배상 협상을 위해서. 한국의 중앙정보부장과 일본의 외무장관이 만나 협상을 진행했고, 그때 얘기된 보상금은 '무상 보상액 3억 달러'에, '경제차관 2억 달러'였어. 이 돈을 줄 테니 더 이상 식민지배에 문제 삼지 말라는 거야. 그렇게 사과 한마디 없이 '한일협정'이 체결됐어. 근데 그 협상 이후, 일본에서 '배상금에 이 기계값도 포함되어 있다'며 뜬금없이 자기들이 가진 중고 레이온 제조 기계를 한국에 넘겼어. 그럼 기계값은 얼마였냐? 당시 36억 엔, 지금으로 따지면, 900억 원 정도야. 그때 한국 정부는 이 기계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 당시 정부의 결정을 보챈 유명한 사업가가 있어. 바로 이 사람이야. 우리나라 대표 친일파 1호. 한국 최초의 백화점을 세운, 화신 그룹 총수 박흥식. 이 사람은 친일파 중에 친일파야. 일제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고, 태평양전쟁 때 일본을 돕기 위해 비행기 공장도 지었어. 이런 사람이, 이 기계의 위험성을 몰랐을까? 이미 일본에선 1930년대부터 이 기계로 인한 직업병 환자가 대거 발생하며, 큰 사회문제였어. 일본 입장에선 이 기계가 골칫덩어리지. 이걸 한국으로 쉽게 처리했으니 얼마나 편해. 박흥식은 그 유해한 기계를 들여오고, 곧바로 회사를 팔아 버렸어. 그 이후로 20년 넘게, 죄 없는 우리 노동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 거야. 피해자들은 1988년이 되어서야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그런데 회사와 노동부는 계속 시간만 끌어.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 그러는 사이, 노동자들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져. (환자들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숨을 쉬고 있었어요. 완전히 뇌졸중 환자 쓰러진 것처럼 병실에 누워 있었고요. -박상봉, 당시 직원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는 늘어나. 피해 노동자들은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해. 그때,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어. '88 올림픽'을 이용하자는 거야. 88 올림픽은 그 해 정부의 가장 큰 이벤트야. 근데, 올림픽 성화가 원진레이온 근처를 지난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노동자들은 성화봉송로를 막는 시위를 해서, 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어. 이 소식은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어. 올림픽을 한 달 앞둔 상황, 드디어 반응이 왔어. 올림픽 개막식을 3일 남기고, 회사와 협상 자리가 마련됐어. 하지만 이제 시작이야. 협상 자리가 마련된 것뿐이야.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이 병이 직업병인 걸 인정하고 산재처리를 해달라는 것. 그리고, 직업병 판정단에 반드시 노동자 측 의사도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었어. 노동자 측 의사로는 김록호 원장을 추천했어. 빼도 박도 못하는 의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원진) 환자들에 대해서 잘 알고, 가장 많이 공부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해야겠다는 비장함이 있었던 거죠.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이제부터는 의사들의 싸움이야. 직업병 판정을 위한, 진짜 투쟁이 시작된 거야. ▲ 직업병 판정단 1988년 겨울. 6명의 의사가 한자리에 모였어. 회사 측을 대표하는 의사는 국내 유명 대학의 의대 교수 3명.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3명은, 동네 가정의학과 의사들이었어.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당신은 개인의원 원장, 나 같은 교수가 아니고' 이게 그냥, 딱, 단정 짓는 거죠. 그 틀에서…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의사들 한가운데 놓인 진단서를 보며 김 원장은 이 환자는 원진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고혈압, 신경계 장애 증상을 보입니다. 역학적으로 봤을 때 직업병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라고 주장했어. 그러자 회사 측 의사는 이거 술, 담배 많이 하는 40대 남자들 흔한 증상이잖아요 라고 받아쳤어. 김 원장이 의학적인 근거, 문헌, 해외 사례까지 가져와 증명해도, 회사 측 의사들은 '개인질환'이라 고 주장했어. 이 팽팽한 줄다리기는 몇 달 동안이나 계속 됐어. 그러던 어느 날, 회사쪽 의사가 지나가듯 환자들이 단백뇨가 많긴 하네 라고 말했어. 소변에 정상수치 이상의 단백질이 섞여 나온다는 거야. 김원장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어. 돌파구가 열렸던 게, 여러 가지 만성 질환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고 보기에는 신장에 단백뇨가 나오고. 이렇다는 게 '개인 질환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전체적인 상황과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회사 측 의사는 단백뇨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신장 조직 검사를 하자고 제안했어. 그런데 김원장은 오히려 망설였어.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거나, 판정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야.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못 했어요. 왜냐하면, 조직검사는 잘못 건드려서 신장동맥이 파열하면, 급히 응급실로 옮겨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하게 돼요. 그렇지 않아도 의식이 좋지 않고 마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견딜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만약에 '정상'으로 나와버리면, 모든 질병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장 조직 검사에서 정상이 나왔다는 것 하나만으로 다 문제없다는 걸로 판정될 수 있겠죠.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김 원장은 고심 끝에 조직검사를 진행했어.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신장 사구체 혈관의 기저막 비후가 발견됨'. '기저막 비후'는 근육, 신경 조직이 맞닿는 곳에 있는 경계막이 부어서 두꺼워지는 증상을 말해. 드디어 회사 측 의사가 설명할 수 없는, 이황화탄소 중독의 특이한 증상이 검증된 거야. 6명의 의사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눈앞의 결과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마침내, 장수 씨를 포함해서 40명 넘는 환자가 '직업병' 인정을 받았어. 드디어 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받게 된 거야. 판정받고 그래도, 내가 지금 애들하고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참 고맙다.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겠습니까. -김장수, 당시 직원 ▲ 안타까운 죽음, 모두가 직업병 인정받기 위한 투쟁 아직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남아있어. 딸바보 봉환 씨. 안타깝게도 이 모든 상황은, 봉환 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몇 년 후에 일어난 거야. 봉환 씨는 회사를 그만둔 뒤 경비원 일을 했어. 그러다 또 몸이 아파 앓아누워. 원진레이온 퇴사 후에도 증상은 점점 심해졌어. 그때 봉환 씨를 병문안 온 동료가, 얼마 전에 사람들이 직업병 판정받고 보상을 받았다며 사당의원에 가보라고 했어. 봉환 씨는 곧장 사당의원으로 가서 김록호 원장을 만나 진료를 받고 약도 타왔어. 소견서도 받았어. 봉환 씨는 그때 희망을 느꼈대. 그렇게 오랫동안 아팠는데, 병명이 적힌 소견서가 그때가 처음이었거든. 봉환 씨는 그 소견서를 들고 곧바로 원진레이온으로 달려가 요양 신청을 냈어. 근데 회사가 거절했어. '비유해 부서'에 근무했기 때문에 신청 대상이 아니래. 회사가 이황화탄소 노출이 많은 일부 부서만 유해부서로 지정하고, 나머지 2/3는 비유해 부서로 정한 거야. 회사 밖 마을 사람들도 피해를 보는 상황인데, 회사 내부에 '비유해' 부서가 있긴 한 걸까? 보상 인원을 줄이려는 회사의 꼼수였어. 봉환 씨는 몇 번을 회사와 노동부를 찾아가 애원했어. 3개월 만에 노동부에서 예외적인 경우지만, 해드릴 테니 요양 신청하러 서류 들고 오라 는 연락을 받았어. 근데 연락을 받은 그날, 봉환 씨는 요양 신청을 끝내 못했어. 사랑하는 외동딸의 입학금을 내고 오는 길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거야. 그리고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어. 봉환 씨의 소식은 다른 노동자들에게 전해졌어. 회사와 노동부가 좀 더 책임감을 가졌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안타까움, 이대로라면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공감대가 형성됐어.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어. 봉환 씨의 유해를 회사 정문에 두고 장례투쟁을 시작했어. 제가 그때 정말 독이 올라서, 병원을 다른 의사분에게 맡겨두고 장례투쟁에 상주했어요. 특히 그분이 살아계실 때 진단했던 의사가 직접 신뢰할 수 있는 증인으로서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 거기에 상주했어요.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내가 짓밟히고 피멍이 들어도 끝까지 싸워서 승리해야겠다는 마음 밖에 없었어요. 다른 생각은 가질 수 없었어요. -박상봉, 당시 직원 투쟁이 시작된 지 어느덧 4개월. 처음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어. 결국 국회가 뒤늦게 현장 조사에 나섰어. 그리고 이런 결과를 발표했어. '원진의 비유해 부서 직원들도 이황화탄소에 중독될 개연성이 충분해 보인다' 그 후 137일 만에 치러진 봉환 씨의 장례식.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뒤에야 전-현직 원진레이온 노동자 모두 직업병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됐어. 1993년 원진레이온은 폐업했어. 그런데 폐업 후, 그 레이온 제조 기계는 어떻게 됐을까? 중국으로 수출됐어. 원진 노동자들은 중국 대사관에 쫓아가서 실상을 알렸어.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그 기계를 가져갔어. 위험성을 알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면서. 이런 참사는 또다시 반복될 수 있어. 원진레이온 사태가 '최악의 직업병 참사'라고 불리는 이유야. ▲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의 외침 피해 노동자 950여 명, 그중 308명이 세상을 떠났어. 원진의 살인 기계는 수많은 동료와 가족을 잃게 했어. 사망한 피해자들은 생전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어. 밥을 시원하게 한 숟갈 먹을 수나 있나. 아주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고 지금… 돌아버린 사람 같아. 꼭 돌아버린 거 같다니까. -故고정자, 화장실에서 자살. 팔다리만 괜찮으면 속이 아주 시원하겠는데. 이렇게 말도 잘 안 되니까 죽겠다고요. -故박영덕, 직업병으로 사망 몸도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전신이 다 마비 증세야.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어요. -직업병 피해자, 당시 47세 가정이 편안하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어요… 내 가정도 중요하면 남의 가정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나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들도 그렇고 몸져누워 있는 사람들도 그래요… -故최상철, 직업병으로 사망 원진레이온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어. 부지를 판 금액의 일부는 노동자들에게 보상금으로 돌아왔어. 그 보상금으로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을 설립하는 거였어. 산업재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잖아. 이들 편에 서 줄 병원이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병원을 만들었대. 병원의 이름은, 원진 '녹색병원'. 초대 병원장은 김록호 원장이야.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김록호 원장님과 원진 노동자들은 그날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대. 서로를 위했던 마음도 기억하고 있고. 김록호 원장 선생님이라고 하면 우리의 '주치의'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선생님이다 느꼈죠. -박상봉, 당시 직원 제 기억에는 헌신적으로 진료를 봐주시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직업병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주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황동환, 원진산업재해자협회 이사장 항상 좋은 이야기, 이로운 이야기만 해주시지. 우리에게 대해준 그 마음은 무엇을 해도 갚지 못해요. -박석혼, 당시 직원 저한테는 가족만큼 끈끈한 애정과 연대감을 느끼는 그런 인연입니다. 제가 약간의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앞장서서 투쟁하고 그 심한 직업병 증상을 앓아가면서 본인의 권리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까지도.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놀라울 만큼, 괴력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거든요.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김록호 원장님은, 지금은 병원장이 아니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세계보건기구에서 근무하고 계셔. 이제는 전 세계인의 보건과 안전을 위해서 일하는 거야. 김록호 원장님이 생각하는 의사의 역할은 좀 달랐던 거 같아. 질병을 낫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질병을 갖게 한 환경까지 고쳐서 나아지게 하는 것. 의사의 몫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308명 죽은 원진레이온 참사, 일본이 떠넘긴 '살인기계'가 시작이었다
등록일2023.06.30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9일 방송된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사라진 308명'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한혜진, 배유람, 정영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람이 죽어 나가는 마을 때는 1970년 여름, 경기도 남양주의 한 시골마을. 마을로 버스 한 대가 들어오고, 읍내 장터에 다녀온 양손에 정 씨 할머니가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내렸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걸어가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동네 최 씨 아저씨가 짐을 들어주겠다며 다가왔어. 그렇게 두 사람이 길을 걷는데, 갑자기 최 씨가 픽 바닥에 쓰러졌어. 심지어, 할머니도 갑자기 쓰러졌어. 동시에 두 사람이 정신을 잃었어. 이 뿐만이 아니야.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아줌마도, 자전거를 타고 오던 학생도, 밭일을 하던 할아버지도,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픽 픽 쓰러져 나가. 순식간에, 무려 80명이 쓰러졌어. 그 마을에서 살았으니까 제 눈으로 봤죠. 마을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 쓰러지니까. 지나가다 쓰러지면 (버스에) 싣고 또 싣고, 버스 2, 3대로 사람들을 실어 날랐어요. -박석혼, 당시 마을 주민 순식간에 벌어진 의문의 사고. 근데 이상한 일은 이게 끝이 아니야. 마을에는 '도농역'이란 역이 하나 있었는데, 이상하게 이 역으로 전철이 들어오면 갑자기 전철이 그 자리에 멈추고 내부 불이 다 꺼졌어. 잘 다니던 전철이 꼭 이 역에만 오면 문제야. 이상한 일을 또 있어. 이 마을에 사는 동환 씨는 어느날 이웃한테 빨리 와달라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어. 동환 씨는 서둘러 이웃 집으로 뛰어갔고, 바닥에 이불이 덮인 채로 누워있는 사람을 발견했어. 어제까지만 해도 동환 씨와 대화를 나누던 이웃주민, 43세의 주부 고 씨야. 고 씨는 화장실에서 스카프로 목을 맨 채 발견됐어. 어안이 벙벙했죠.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요. 그런 일이 한 두건이 아니기 때문에. -황동환, 당시 마을 주민 그런 일이 한 두건이 아니다? 의문의 자살이 고 씨가 처음이 아니었던 거야. 얼마전에 세 아이의 아빠였던 40대 가장도 연탄불을 피운 채 사망한 채 발견됐어. 이런 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무려 12명이야.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 나이, 성별, 사망한 시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한테는 공통점이 한가지 있었어. 바로, 이 마을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대체 이 마을의 정체는 뭘까? 사건이 끊임없는 이 마을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어. ▲ 꿈의 직장에서 일어난 사고들 1979년 11월, 26살 장수 씨는 회사 면접이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정신이 없어. 이날 장수 씨가 면접을 보는 회사는 이 동네에서 제일 큰 회사야. 직원이 1500명이 넘고, 회사 대지 면적은 무려 15만평. 이 회사에 가고 싶다고 뒷돈까지 주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어. 이 회사는 속옷이나 잠옷, 양복 안감 등을 만드는 부드러운 질감의 '인견사' 라는 실을 만드는 곳이야. 장수 씨는 그토록 원하던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합격했고, 인견사를 뽑아내는 핵심 부서인 '방사과'에 배정됐어. 장수 씨가 이 회사를 다녀보니 생각보다 더 좋아. 월급은 기본, 보너스는 무려 400%나 줘. 회사 구내식당에는 고기반찬이 넘쳐나. 누구나 꿈꾸는 꿈의 직장이야.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사고가 하나 일어나. 회사 지하에 있는 배수구가 막혀서 그걸 뚫기 위해 직원 3명이 현장에 갔어. 직원들은 배수구 끝에 있는 맨홀 뚜껑을 열고 그 아래로 내려갔는데, 세 명 모두 다시 올라오지 못하고 숨을 거뒀어. 병원에 가다 죽었는지 현장에서 죽었는지 (세 사람 모두)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섬뜩했죠. -김장수, 당시 직원 장수 씨는 이 사고를 '어쩌다 일어난 사고겠거니' 하고 넘겼어.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1989년 10월, 장수 씨가 입사한지 벌써 10년이 됐어. 어느 날 장수 씨는 같은 팀 동료의 집으로 향했어. 동료의 딸 백일잔치가 있었거든. 한 상 가득 차려진 잔치음식을 먹으려고, 장수 씨는 젓가락으로 먼저 인절미를 집어 들었어. 그런데 인절미를 김칫국에 툭 떨어뜨렸어. 이번엔 빈대떡을 집는데, 이번에도 젓가락질이 계속 미끄러져. 얼른 다시 집으려는데, 젓가락질이 잘 안돼.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가. 장수 씨는 피곤해서 컨디션이 안 좋아 그런가 보다 하고, 그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 그런데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장수 씨는 자신의 손과 팔이 없어졌다고 느꼈어. 손이 없는 거예요. 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내 손이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손이 없는 거예요. 팔을 찾다가 찾다가 없으니까 '여보! 여보!' 불러서 '내 팔이 없어졌으니 팔 좀 찾아보라고' 했어요. (놀라 달려온 아내가) '여보.. 팔 거기 있잖아' 하는 거예요. 보니까 팔이 이마 위에 있는데, 손을 만져보니까 내 손이 내 손 같이 않더라고. -김장수, 당시 직원 팔이 마비되어 감각조차 없었어. 놀란 아내가 장수 씨의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니 다행히 감각이 조금씩 돌아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번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안간힘을 써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 자리에 쿵 쓰러졌어. 장수 씨는 곧장 아내의 부축을 받아 병원을 갔어. 의사가 살펴보더니 병명을 모르겠다고, 큰 병원을 가보라 했어. 그런데 큰 병원을 가도 대답은 같아. 원인을 알 수 없대. ▲ 낭만닥터 김록호 그 즈음, 서울 사당동, 여기에는 좀 이상한 병원이 하나 있어. '사당의원'이라는 이름의 작고 허름한 동네 의원인데, 내과, 정형외과, 산부인과까지 여러 부위를 다 보는 종합병원이야. 근데 의사는 딱 한 명이야. 그리고 이 병원은 진료비가 엄청 싸. 다른 병원에서 3,000원이면, 여기는 1,000원을 받아. 어떨 땐 무료로도 진료해줘. 현실판 '낭만닥터'야. 또 환자가 병원 시간에 맞추는 게 아니라, 여기는 환자 시간에 의사가 맞춰. 의사가 24시간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언제든 환자가 오면 진료를 해주는 거야. 이 병원의 원장은 바로 이 사람이야. 가정의학 전문의 32세 의사 김록호. 김 원장은 왜 이런 병원을 낸 걸까? 당시만 해도, 이 곳 사당동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빈민촌이었어. 김 원장도 어린 시절에는 무허가 판자촌에서 자랐어. 그리고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를 절뚝거렸는데, 늘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어. 어린 록호는 '내가 살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다짐했어. 그 때부터 밤이나 낮이나 공부만 했고, 몇 년 후 록호는 서울대 의대에 한번에 합격했어. 이렇게 의사가 된 록호는 자기처럼 약자를 위한 병원을 차렸어. 아픈 데는 많고 돈은 없는 사람들을 진료하기 위해서. 이런 김록호 원장의 사당의원에 어느날 남양주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어. 장수 씨네 회사 직원들이야. 그런데 김 원장은 이 사람들을 본 순간 이상한 점을 느꼈어. 중풍 환자들 같은 느낌이었어요. 감정표현이 안 되고, 계속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웃거나, 아니면 눈물이 주르륵 나오면서 울거나. 팔다리는 마비된 상태고, 얼굴도 마비된 경우도 있고. 사람마다 다 달라요. 어떻게 '하나로 설명이 안 되는 구나' '참 이상하다' 싶었죠.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김 원장도 처음 보는 증상이야. 웬만하면 안 비우는 사당의원을 나가 김 원장은 어딘가로 향했어. 도착한 곳은 서울대 의대 도서관.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지만, 그땐 일일이 다 찾아봐야 해. 김 원장은 밤새 도서관 책을 뒤지며 증상의 원인을 찾으려 했어. 그러다 마침내, 남양주에서 온 그 환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찾아냈어. 바로 'CS2중독', 즉 이황화탄소 중독이었어. 이황화탄소는 탄소의 황화물로서 무색의 휘발성 액체로, 원목을 녹이는 데 쓰이는 화학물질이야. 장수 씨네 회사가 인견사 제조 회사잖아? 영어로는 '레이온'이라 해. 인견사를 만들려면, 천연펄프에 이황화탄소로 녹인 뒤 화학작용을 거쳐 실의 형태로 만들어. 그만큼 이황화탄소는 독성이 강한 물질이야. 이황화탄소는 급성 중독과 만성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며, 단기간에 고농도에 폭로되어 발생하는 급성 중독의 경우 즉시 혼수상태로 빠져 사망하기도 한다. 대개 심한 흥분성, 분노, 자살 경향 등의 정신과적 증상과 중추신경계장애, 말초신경계장애 등의 만성중독증도 보고되고 있다. -이황화탄소 중독에 관한 설명 中 1970년대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이황화탄소 중독. '즉시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할 수 있다'는 건, 앞서 맨홀에 빠져 사망한 직원 세 사람의 사망 원인을 설명해. 맨홀 안에는 이황화탄소를 비롯한 독성 가스가 가득했어. 그걸 맡고 즉시 사망한 거야. 그리고 두번째 '자살 경향'이란 증상을 보면, 주부 고 씨와 12명의 사망자의 죽음이 설명되지. 그리고 세번째 '말초신경계장애'는 장수 씨가 팔다리 신경이 마비된 걸 설명해주지. 드디어 원인이 밝혀졌어.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같은 회사라는 거야. 모든 것의 시작점은, 대한민국 유일의 인견사 제조회사인 '원진레이온'이야. 제가 본 환자들은 빙산의 일각이어서, 그 밑에 숨겨진 많은 분이 있다는 게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요.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 이황화탄소 중독 문제가 시작된 건, 회사 밖이 먼저였어. 남양주에 원진레이온 공장이 세워진 건 1966년. 이때부터 마을엔 이상한 일이 생겨. 공장에서 밖으로 설치된 파이프가 부식되며 독성 가스가 뿜어져 나왔어. 마을 사람들 80명이 갑자기 쓰러졌던 이유가 바로 이거 때문이었어. 공장이 세워진 이후, 130년 된 느티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비롯 수십년 된 미루나무와 각종 과일나무가 말라 죽었다는 것. 가스가 바람을 타고 마을 뒷산까지 날아가는 바람에 이 일대 소나무들이 시름시름 시들어가고 있다. 가정에서는 1개월도 안된 혁대 버클, 서류집게 따위가 녹스는가 하면, TV안테나가 6개월도 안 돼 삭아버리곤 한다는 것. 도농역에서는 선로 등 각종 철도 시설물이 쉽게 부식돼 열차의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우려까지 있다. -당시 신문 기사 중 회사 밖이 이 정도인데, 회사 내부는 어떨까? 뿌연 연기로 가득한 공장 내부는 이황화탄소로 만들어진 비스코스액에 화학가스를 방사하는 작업이 이어졌어. 이때 공기중에 발생하는 이황화탄소들. 노동자들은 근무 내내 이황화탄소에 노출됐어. 끔찍한 작업 환경이야. 어떤 때는 어찌나 눈이 아픈지. 눈을 감고 가다가 전봇대를 들이받은 적도 있어요. -김장수, 당시 직원 (눈 아픈 데는) 모유가 좋다고 그래서 (아내가) 두 홉 정도씩 줘서 눈을 닦았어요. 집에만 오면 눈이 아파 뜨질 못하니까.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박석혼, 당시 직원 사실 레이온 산업은 외국에서는 이미 유명했어. 나무가 많아 일찌감치 실을 만든 핀란드, 의류업이 발단한 이탈리아, 직물 기술이 발전한 일본. 해외에서는 1930-40년도에 활발했던 산업이야. 해외에서는 이미 이황화탄소 중독이 발현됐어. 그런데 원진레이온은 이황화탄소의 위험성에 대해 어떤 교육도 하지 않았어. 오히려 몸이 안 좋다는 직원들한테 술 마시고 담배 많이 피니까 체력이 그 모양이지 , 가족들 생각해서 건강관리 좀 하세요 라고 말하곤 했대. 안타까운 건,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 말을 믿었다는 거야.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원진을 천직으로 알고 근무했으니까요. 직장을 믿었기 때문에. 그 직장을 가진 게 그렇게 나한테는 좋았어요. -김장수, 당시 직원 장수 씨처럼 원진레이온을 천직으로 알고 다닌 건, 봉환 씨도 마찬가지였어. 바로 이 분이야. 이름은 김봉환, 나이는 39세. 남들보다 좀 늦은 나이에 입사했지만, 봉환 씨는 열정이 넘쳐. 두 살 된 늦둥이 외동딸을 둔 '딸바보' 봉환 씨는 남부러울 게 없어. 번듯한 직장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으니. 그런데 봉환 씨가 입사하고 6년 후, 그에게도 이상한 증상이 시작됐어. 소화는 안 되고 손발은 저리고 두통이 계속돼. 한 두 알씩 먹기 시작한 두통약을, 언젠가부터 하루에 10알 이상 먹어야 해. 결국 봉황 씨는, 입사 6년만에 회사를 그만뒀어. 사실 봉환 씨처럼 증세가 심해져서 퇴사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어. 퇴사 후에도 점점 심해지는 증상. 병을 얻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왜 아픈지, 원인을 몰랐어. 그 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사당의원의 김록호 원장이었어. 김 원장은 여러분의 병명은 이황화탄소 중독입니다. 이걸 직업병이라고 합니다 라고 알렸어. ▲ 원진레이온의 숨겨진 진실 이제 병의 원인을 알게 된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집고, 회사를 찾아갔어.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한참 벌인 끝에 우르르 사장실로 올라 갔어. 텅 빈 사장실에서 이들은 뜻밖의 문서를 발견했어. 바로 이거야. 무재해 인증서 매일 재해가 발생하는 이 회사에, 노동부가 직접 무재해 기업 인증을 해준 거야. 근데 이게 전부가 아니야. 사장실에서 또 다른 문서를 발견했어. 그 문서에는 34명의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을 산재처리 하지 않고 공상처리 했다 고 적혀 있었어. 회사 관리자가 피해 노동자를 찾아가서 회사에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면, 돈을 주겠다 면서 합의를 제안해. 피해 노동자는 가족과 생계를 위해, 그 합의를 받아들이기도 하지. 이렇게 한 번의 보상을 주고 합의하는 걸 '공상처리'라고 해. 회사 입장에서는 이 방식이 훨씬 유리해.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산재 없는 '무재해' 기업이 되는 거야. 그렇게 회사는 은밀하게 34명이나 처리한 거야. 사실 원진레이온의 설립 배경에는 엄청난 게 숨겨져 있어. 원진레이온이 설립되기 전인 1962년. 당시 우리나라의 목표, 박정희 대통령의 소원은 '경제성장'이었어. 그러려면 경제자금이 필요했지.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을 조용히 일본으로 보냈어. 식민 지배 배상 협상을 위해서. 한국의 중앙정보부장과 일본의 외무장관이 만나 협상을 진행했고, 그 때 얘기된 보상금은 '무상 보상액 3억 달러'에, '경제차관 2억 달러'였어. 이 돈을 줄 테니 더 이상 식민지배에 문제 삼지 말라는 거야. 그렇게 사과 한마디 없이 '한일협정'이 체결됐어. 근데 그 협상 이후, 일본에서 '배상금에 이 기곗값도 포함되어 있다'며 뜬금없이 자기들이 가진 중고 레이온 제조 기계를 한국에 넘겼어. 그럼 기곗값은 얼마였냐? 당시 36억엔, 지금으로 따지면, 900억 원 정도야. 그때 한국 정부는 이 기계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제안을 받아 들였어. 당시 정부의 결정을 보챈 유명한 사업가가 있어. 바로 이 사람이야. 우리나라 대표 친일파 1호. 한국 최초의 백화점을 세운, 화신 그룹 총수 박흥식. 이 사람은 친일파 중에 친일파야. 일제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고, 태평양전쟁 때 일본을 돕기 위해 비행기 공장도 지었어. 이런 사람이, 이 기계의 위험성을 몰랐을까? 이미 일본에선 1930년대부터 이 기계로 인한 직업병 환자가 대거 발생하며, 큰 사회문제였어. 일본 입장에선 이 기계가 골칫덩어리지. 이걸 한국으로 쉽게 처리했으니 얼마나 편해. 박흥식은 그 유해한 기계를 들여오고, 곧바로 회사를 팔아 버렸어. 그 이후로 20년 넘게, 죄없는 우리 노동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 거야. 피해자들은 1988년이 되어서야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그런데 회사와 노동부는 계속 시간만 끌어.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 그러는 사이, 노동자들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져. (환자들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숨을 쉬고 있었어요. 완전히 뇌졸중 환자 쓰러진 것처럼 병실에 누워 있었고요. -박상봉, 당시 직원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는 늘어나. 피해 노동자들은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해. 그때,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어. '88올림픽'을 이용하자는 거야. 88올림픽은 그 해 정부의 가장 큰 이벤트야. 근데, 올림픽 성화가 원진레이온 근처를 지난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노동자들은 성화봉송로를 막는 시위를 해서, 이 사건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했어. 이 소식은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어. 올림픽을 한 달 앞둔 상황, 드디어 반응이 왔어. 올림픽 개막식을 3일 남기고, 회사와 협상 자리가 마련됐어. 하지만 이제 시작이야. 협상 자리가 마련된 것 뿐이야.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이 병이 직업병인 걸 인정하고 산재처리를 해달라는 것. 그리고, 직업병 판정단에 반드시 노동자 측 의사도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었어. 노동자 측 의사로는 김록호 원장을 추천했어. 빼도 박도 못하는 의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원진) 환자들에 대해서 잘 알고, 가장 많이 공부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해야겠다는 비장함이 있었던 거죠.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이제부터는 의사들의 싸움이야. 직업병 판정을 위한, 진짜 투쟁이 시작된 거야. ▲ 직업병 판정단 1988년 겨울. 6명의 의사가 한자리에 모였어. 회사측을 대표하는 의사는 국내 유명 대학의 의대 교수 3명.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3명은, 동네 가정의학과 의사들이였어.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당신은 개인의원 원장, 나 같은 교수가 아니고' 이게 그냥, 딱, 단정 짓는 거죠. 그 틀에서…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의사들 한가운데 놓인 진단서를 보며 김 원장은 이 환자는 원진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고혈압, 신경계 장애 증상을 보입니다. 역학적으로 봤을 때 직업병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라고 주장했어. 그러자 회사측 의사는 이거 술, 담배 많이 하는 40대 남자들 흔한 증상이잖아요 라고 받아쳤어. 김 원장이 의학적인 근거, 문헌, 해외 사례까지 가져와 증명해도, 회사측 의사들은 '개인질환'이라 고 주장했어. 이 팽팽한 줄다리기는 몇 달 동안이나 계속 됐어. 그러던 어느날, 회사쪽 의사가 지나가듯 환자들이 단백뇨가 많긴 하네 라고 말했어. 소변에 정상수치 이상의 단백질이 섞여 나온다는 거야. 김원장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어. 돌파구가 열렸던 게, 여러가지 만성 질환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고 보기에는 신장에 단백뇨가 나오고. 이렇다는 게 '개인 질환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전체적인 상황과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회사측 의사는 단백뇨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신장 조직 검사를 하자고 제안했어. 그런데 김원장은 오히려 망설였어.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거나, 판정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야.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못 했어요. 왜냐하면, 조직검사는 잘못 건드려서 신장동맥이 파열하면, 급히 응급실로 옮겨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하게 돼요. 그렇지 않아도 의식이 좋지 않고 마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견딜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만약에 '정상'으로 나와버리면, 모든 질병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장 조직 검사에서 정상이 나왔다는 것 하나만으로 다 문제없다는 걸로 판정될 수 있겠죠.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김 원장은 고심 끝에 조직검사를 진행했어.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신장 사구체 혈관의 기저막 비후가 발견됨'. '기저막 비후'는 근육, 신경 조직이 맞닿는 곳에 있는 경계막이 부어서 두꺼워지는 증상을 말해. 드디어 회사측 의사가 설명할 수 없는, 이황화탄소 중독의 특이한 증상이 검증된 거야. 6명의 의사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눈 앞의 결과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마침내, 장수 씨를 포함해서 40명 넘는 환자가 '직업병' 인정을 받았어. 드디어 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받게 된 거야. 판정 받고 그래도, 내가 지금 애들하고 살수 있는 것만 해도 참 고맙다.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겠습니까. -김장수, 당시 직원 ▲ 안타까운 죽음, 모두가 직업병 인정 받기 위한 투쟁 아직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남아있어. 딸바보 봉환 씨. 안타깝게도 이 모든 상황은, 봉환 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몇 년 후에 일어난 거야. 봉환 씨는 회사를 그만둔 뒤 경비원 일을 했어. 그러다 또 몸이 아파 앓아 누워. 원진레이온 퇴사 후에도 증상은 점점 심해졌어. 그때 봉환 씨를 병문안 온 동료가, 얼마전에 사람들이 직업병 판정 받고 보상을 받았다며 사당의원에 가보라고 했어. 봉환 씨는 곧장 사당의원으로 가서 김록호 원장을 만나 진료를 받고 약도 타왔어. 소견서도 받았어. 봉환 씨는 그때 희망을 느꼈대. 그렇게 오랫동안 아팠는데, 병명이 적힌 소견서가 그때가 처음이었거든. 봉환 씨는 그 소견서를 들고 곧바로 원진레이온으로 달려가 요양 신청을 냈어. 근데 회사가 거절했어. '비유해 부서'에 근무했기 때문에 신청 대상이 아니래. 회사가 이황화탄소 노출이 많은 일부 부서만 유해부서로 지정하고, 나머지 2/3는 비유해 부서로 정한 거야. 회사 밖 마을 사람들도 피해를 보는 상황인데, 회사 내부에 '비유해' 부서가 있긴 한 걸까? 보상 인원을 줄이려는 회사의 꼼수였어. 봉환 씨는 몇 번을 회사와 노동부를 찾아가 애원했어. 3개월 만에 노동부에서 예외적인 경우지만, 해드릴 테니 요양 신청하러 서류 들고 오라 는 연락을 받았어. 근데 연락을 받은 그날, 봉환 씨는 요양 신청을 끝내 못했어. 사랑하는 외동딸의 입학금을 내고 오는 길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거야. 그리고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어. 봉환 씨의 소식은 다른 노동자들에게 전해졌어. 회사와 노동부가 좀 더 책임감을 가졌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안타까움, 이대로라면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공감대가 형성됐어.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어. 봉환 씨의 유해를 회사 정문에 두고 장례투쟁을 시작했어. 제가 그때 정말 독이 올라서, 병원을 다른 의사분에게 맡겨두고 장례투쟁에 상주했어요. 특히 그 분이 살아계실 때 진단했던 의사가 직접 신뢰할 수 있는 증인으로서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 거기에 상주했어요.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내가 짓밟히고 피멍이 들어도 끝까지 싸워서 승리해야겠다는 마음 밖에 없었어요. 다른 생각은 가질 수 없었어요. -박상봉, 당시 직원 투쟁이 시작된 지 어느덧 4개월. 처음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어. 결국 국회가 뒤늦게 현장 조사에 나섰어. 그리고 이런 결과를 발표했어. '원진의 비유해 부서 직원들도 이황화탄소에 중독될 개연성이 충분해 보인다' 그 후 137일 만에 치러진 봉환 씨의 장례식.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뒤에야 전-현직 원진레이온 노동자 모두 직업병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됐어. 1993년 원진레이온은 폐업했어. 그런데 폐업 후, 그 레이온 제조 기계는 어떻게 됐을까? 중국으로 수출됐어. 원진 노동자들은 중국 대사관에 쫓아가서 실상을 알렸어.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그 기계를 가져갔어. 위험성을 알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면서. 이런 참사는 또 다시 반복될 수 있어. 원진레이온 사태가 '최악의 직업병 참사'라고 불리는 이유야. ▲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의 외침 피해 노동자 950여명, 그 중 308명이 세상을 떠났어. 원진의 살인 기계는 수많은 동료와 가족을 잃게 했어. 사망한 피해자들은 생전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어. 밥을 시원하게 한 숟갈 먹을 수나 있나. 아주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고 지금… 돌아버린 사람 같아. 꼭 돌아버린 거 같다니까. -故고정자, 화장실에서 자살. 팔다리만 괜찮으면 속이 아주 시원하겠는데. 이렇게 말도 잘 안 되니까 죽겠다고요. -故박영덕, 직업병으로 사망 몸도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전신이 다 마비 증세야.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어요. -직업병 피해자, 당시 47세 가정이 편안하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어요… 내 가정도 중요하면 남의 가정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나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들도 그렇고 몸져누워 있는 사람들도 그래요… -故최상철, 직업병으로 사망 원진레이온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어. 부지를 판 금액의 일부는 노동자들에게 보상금으로 돌아왔어. 그 보상금으로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을 설립하는 거였어. 산업재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잖아. 이들 편에 서 줄 병원이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병원을 만들었대. 병원의 이름은, 원진 '녹색병원'. 초대 병원장은 김록호 원장이야.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김록호 원장님과 원진 노동자들은 그날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대. 서로를 위했던 마음도 기억하고 있고. 김록호 원장 선생님이라고 하면 우리의 '주치의'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선생님이다 느꼈죠. -박상봉, 당시 직원 제 기억에는 헌신적으로 진료를 봐주시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직업병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주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황동환, 원진산업재해자협회 이사장 항상 좋은 이야기, 이로운 이야기만 해주시지. 우리에게 대해준 그 마음은 무엇을 해도 갚지 못해요. -박석혼, 당시 직원 저한테는 가족만큼 끈끈한 애정과 연대감을 느끼는 그런 인연입니다. 제가 약간의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앞장서서 투쟁하고 그 심한 직업병 증상을 앓아가면서 본인의 권리 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까지도.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놀라울 만큼, 괴력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거든요. -김록호, 당시 사당의원 원장 김록호 원장님은, 지금은 병원장이 아니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세계보건기구에서 근무하고 계셔. 이제는 전세계인의 보건과 안전을 위해서 일하는 거야. 김록호 원장님이 생각하는 의사의 역할은 좀 달랐던 거 같아. 질병을 낫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질병을 갖게 한 환경까지 고쳐서 나아지게 하는 것. 의사의 몫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 사라진 308명…'꼬꼬무', 원진레이온 사태 조명
등록일2023.06.29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최악의 산재 사건인 원진레이온 사태를 다룬다. 29일 방송될 '꼬꼬무'는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사라진 308명' 편으로, 40여 년 전 경기도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을 다룬다. 사망자가 무려 300여 명, 피해자는 무려 900여 명에 이르렀지만 오랜 시간 동안 원인을 몰라 '보이지 않는 살인'으로만 알려졌던 그 사건은 바로, 남양주 최대의 인견사 공장 원진레이온에서 일어난 최악의 산재 사건이다. '꼬꼬무'에서는 원진레이온에서 일어난 끔찍한 인재,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낭만닥터와 노동자들의 눈물겹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한다. 때는 1970년 여름, 남양주의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집단으로 기절했다. 지나가다가, 밭일하다가, 앉아 쉬다가, 순식간에 쓰러진 사람 수만 80여 명이었다. 그런가 하면 같은 마을, 꽉 막힌 배수구를 뚫으러 맨홀에 들어간 세 사람이 갑자기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마을 주민 동환 씨는 급한 연락을 받고 새벽에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충격적인 상황을 맞닥뜨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눴던 40대 주부 고 씨가 화장실 수도꼭지에 스카프로 목을 맨 채 발견된 것이다. 이 마을에서 고 씨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은 무려 12명이었다. 이런 비극적인 일들은 1966년 이 마을에 원진레이온 공장이 세워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직원 수 1,500명에 면적은 무려 15만 평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꿈의 직장'이라고 불렸던 원진레이온은 당시 국내 유일의 인견사(레이온) 제조업체로 부드러운 양복 안감, 속옷에 쓰이는 실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서 심상찮은 증상이 나타났다. 극심한 두통, 손발 마비, 정신 이상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수십 명, 수백 명까지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당동에서 작은 의원을 운영하며 아픈 덴 많고 돈은 없는 빈민층 환자들을 진료해주던 김록호 원장. 어느 날 원진레이온을 다니던 환자들이 찾아오는데, 김원장은 그들의 증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말은 어눌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데, 도무지 원인은 몰라 답답해하던 김원장은 혼자서 고군분투한 결과 신체마비, 자살경향, 심지어 즉사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레이온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황화탄소 때문임을 알아냈다. 이후, 노동자들은 힘을 합쳐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기업을 상대로 긴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의 '든든한 주치의'로 끝까지 함께 한 낭만닥터 김록호 원장과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살인자'와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들의 이야기를 '꼬꼬무' 장트리오가 전한다. 이번 이야기에 함께 할 친구는 배우 한혜진, 배유람, 정영주다. 한혜진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자리했다. 장성규는 학창 시절 한혜진이 '강남 4대 천왕'에 전국구였다며 한혜진을 향한 팬심을 잔뜩 표출했다. 한혜진은 장성규의 칭찬 폭탄에 부끄러워하기도 잠시, 이야기에 몰입하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끝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는 배유람이다. 배유람은 이날 초면인 장도연과 반말 모드로 진행되는 녹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예능감을 발휘하며 오히려 장도연을 당황하게 했다. 아빠와 딸의 이야기에 약하다는 배유람은 '그날'의 이야기를 듣고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는 정영주가 등장했다. 신나게 노래하며 '꼬꼬무' 스튜디오에 등장한 정영주는 장현성과 뮤지컬 케미를 보여줬다. 정영주는 '그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낭만닥터 김록호의 열혈 팬이 되어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또한 그녀 역시 안타까운 노동자들의 현실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남양주 한 마을을 둘러싼 괴담과 사라진 사람들, '꼬꼬무'의 '마을의 숨겨진 살인마- 사라진 308명' 편은 29일 목요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