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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미국서 케이팝 인기이유 묻기에 '정부가 관여 안해서' 답해
등록일2024.01.09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4 문화 예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앞으로도 저희는 힘껏 지원하되, 여러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선 일절 개입하거나 관여하지 않겠다 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문화 예술인 신년 인사회와 신년 음악회를 찾은 것은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지난해와 달리 부인 김건희 여사는 두 행사 모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격려사에서 먼저 배우 이순재, 최불암 등을 일일이 거명한 뒤 어떻게 제 마음의 양식이 만들어졌나를 생각해보면, 바로 여기 계신 여러분께서 만들어 놓은 인프라를 갖고 저도 성장한 것 같다 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지난해 4월 국빈 방미 당시 하버드대에서 간담회를 했던 일을 소개하며 첫 번째 질문이 '케이팝, 케이콘텐츠가 세계인의 엄청난 사랑을 받는데 그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가 '정부에서 관여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국빈 만찬에서 미 포크록 가수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한 일도 상기하며 미국 국민이 우리나라에 호감을 갖게 된 것에 그 많은 엄청난 행사보다 노래 한 소절이 훨씬 컸다는 것을 알았다 고 강조했습니다. '문화의 비상, 국민과 함께'를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문화예술인과 콘텐츠·후원 기업인, 대통령실 참모진 등 1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앉은 주빈석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피아니스트 신수정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국악인 유태평양, 안무가 리아킴, 장애예술인 연극배우 하지성, 프로게이머 김관우, 사진문화 발전에 기여한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민간 자문위원 임학선 성균관대 명예교수 등이 자리했습니다. 이밖에 배우 이순재, 최불암, 김흥국, 신현준, 독고영재, 이정재 씨와 가수 권인하 씨, 송승환 예술감독 등이 행사에 참석해 윤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윤 대통령 집무실에 걸린 그림 '퍼시 잭슨, 수학 드로잉' 작가인 발달장애 화가 김현우 씨도 참석해 인사를 했다고 김수경 대변인이 전했습니다. 이순재 씨는 윤 대통령에게 문화예술 지원을 요청한 뒤 용이 승천하듯 하늘을 찌르고 국민 모두가 신바람 나는 해가 되길 기원한다 며 건배를 제안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인사회를 마친 뒤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로 이동해 신년 음악회를 감상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입장하자 관중 1천여 명이 박수를 보냈고, 윤 대통령은 중간중간 손을 흔들며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했습니다. 신년음악회에는 국가유공자 및 유족, 다문화 및 한부모 가족, 자살예방활동가, 장애예술인, 장애 아동·청소년, 쪽방 상담소·고용센터 직원, 소방 현장인력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국민들이 초청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하얀 전쟁' 쓴 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 별세
등록일2023.07.01
베트남 전쟁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하얀 전쟁' 등을 쓴 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 씨가 오늘(1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유족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던 고인은 이날 오후 3시께 서울 시내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64년부터 영자 신문 '코리아 헤럴드'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가 군에 입대했습니다. 백마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코리아 타임스'에 '베트남 삽화'(Viet Vignette)를 연재하면서 베트남과 미국 신문, 잡지에도 기고했습니다. 이후 베트남전 경험을 바탕으로 1985년 계간 '실천 문학'에 '전쟁과 도시'(하얀 전쟁)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미늘' 등 24권의 소설과 다양한 수필을 남겼습니다. 고인의 대표작은 '하얀 전쟁'입니다. 이 작품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전후에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다룬 소설로, 작가 자신이 영어로 직접 다시 써서 미국에서 '화이트 배지'(White Badge)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1992년 정지영 감독의 연출로 안성기·이경영·독고영재·허준호가 출연한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하고, 작품성도 인정받았습니다. '하얀 전쟁' 외에 고인의 작품 중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도 영화화됐습니다. 소설 집필과 함께 고인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른 축은 번역입니다. 번역가로도 왕성히 활동한 고인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문학사상'에 번역 연재한 뒤로 지금까지 약 130권에 달하는 번역서를 펴냈습니다. 1982년 존 업다이크의 '토끼는 부자다'로 1회 한국 번역 문학상을 받았고, 1999∼2002년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문학 번역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최근까지도 번역에 매달려온 고인은 지난 4월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베트남 전쟁을 다룬 장편소설 '조용한 미국인'을 번역 출간하는 등 왕성한 의욕을 보여왔습니다. 고인의 한 친지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고인이 평소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열성적으로 일하시다가 뒤늦게 암을 발견했는데 이미 여기저기 퍼진 상태였던 것으로 안다 고 전했습니다. 유족은 부인 박광자 여사(충남대 명예교수)와 딸 미란, 소근 씨가 있습니다. 빈소는 은평성모장례식장 8호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3일 오전 5시입니다. ☎02-2030-4444. (사진=연합뉴스)
'영원한 맨발의 청춘' 故 신성일, 가족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
등록일2018.11.06
'스크린의 영원한 청춘' 故 신성일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6일 오전 10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신성일의 영결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부인 엄앵란과 아들 강석현, 딸 강수화, 딸 강경아 씨 등의 직계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참석했다. 영결식의 사회는 배우 독고영재가 맡았다. 개식사에 이어 묵념, 그리고 약력보고 후 추모영상 상영순으로 진행됐다. 지상학 장례위원장의 조사에 이어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의 추도사가 진행됐다. 유가족과 장례위원들의 분향 및 헌화가 이어졌고, 유가족을 대표해 엄앵란이 인사를 전했다. 영결식이 끝난 후 고인의 시신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돼 장지인 경북 영천의 선영으로 옮겨졌다. 고인은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한국 배우 전문학원'에 등록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1957년 故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신필름이 제작한 '로맨스 빠빠'(1960)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신성일이라는 가명(본명은 강신영)은 신상옥 감독이 '뉴 스타 넘버원'이라는 의미를 담아지어 준 이름이다. 1962년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를 통해 첫 주연을 맡았으며, 1964년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맨발의 청춘'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 작품에서 만난 배우 엄앵란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배우 인생 58년간 총 524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대부로 자리매김 했다. 대표작으로는 '길소뜸'(임권택 감독), '내시'(신상옥 감독), '맨발의 청춘'(김기덕 감독), '별들의 고향'(이장호 감독), '안개'(김수용 감독), '장군의 수염'(이성구 감독), '초우'(정진우 감독), '휴일'(이만희 감독) 등이 있다. 정치인의 길을 걷기도 했다. 강신성일로 개명한 뒤 1981년 11대 총선, 1996년 15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했으나,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동구에서 당선돼 의정활동을 했다. 2001년에는 한나라당 총재 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치료를 이어왔다. 지난 10월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참석했지만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지난 4일 오전 2시 30분께 생을 마감했다. 향년 81세. 2013년 '야관문:욕망의 꽃' 출연 이후 직접 기획과 각색, 주연을 맡은 신작 영화 '소확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성되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했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3일간 영화인은 물론 각계 각층의 인사들의 조문이 끊이질 않았다. 이순재, 최불암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송해, 양택조, 김형일, 김창숙,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정지영 감독, 이창동 감독, 김수미, 문성근, 박상원, 안성기, 임하룡, 조인성 등이 빈소를 찾았고 박찬욱 감독, 강우석 감독, 강제규 감독, 송강호, 김혜수, 박중훈, 송혜교 등의 영화인들이 근조화환을 보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고인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배우 이순재는 빈소를 찾아 &'신성일은 지난 1960년대 한국 영화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막대한 기여를 한 사람이다. 신성일 작품은 많은 자료가 남아 있어 후학들에게 좋은 교본이 될 것&'이라며 &'영화 중흥에 큰 역할을 했다. 제일 바쁠 때는 동시에 스무 작품 이상을 했다. 정말 애를 많이 쓴 사람&'이라고 애도했다. 최불암은 &'반짝이는 별이 사라졌다. 우리 또래의 연기자로서 조금 더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조금 더 건강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고인이 남긴 업적이 길이 오랫동안 빛나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이장호 감독은 &'미완성 유작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안타깝다.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서라도 완성하고 싶다&'며 고인의 열정을 잇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는 7일 오전 11시에는 고인의 장지인 경북 영천에서 고 신성일 추모제가 열린다. (SBS funE 김지혜 기자)
'하늘의 별'이 된 신성일…엄앵란 울며 보내지 않을 것
등록일2018.11.06
▲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배우 신성일의 발인식에서 배우 엄앵란이 운구차 안을 바라보고 있다. 1960년 데뷔 이후 반세기 넘게 우리를 웃고 울린 '영원한 스타' 신성일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지난 4일 새벽 타계한 고(故) 신성일의 영결식이 6일 오전 10시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됐다. 영결식에는 부인 엄앵란을 비롯한 유가족·친지를 비롯해 원로배우 신영균,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이장호 감독,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 배우 이덕화·독고영재·김형일 등 1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엄앵란은 오전 10시 6분 사위 손을 잡고 영결식장에 입장했다. 영정은 오전 10시 9분 영결식장에 들어섰고, 공동장례위원장인 배우 안성기와 부위원장을 맡은 이덕화가 맨 앞에서 운구했다. 이어 고인의 대표작을 망라한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맨발의 청춘', '초우', '안개', 장군의 수염', '내시', '휴일', '별들의 고향', '길소뜸' 등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화를 보며 추모객들은 그를 추억했다. 엄앵란은 &'가만히 앉아서 사진을 이렇게 보니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왜 안 우느냐'고 하는데 울면 망자가 마음이 아파서 걸음을 못 걷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억지로 안 울고 있는데 집에 가서 밤 12시에 불 끄고 이불 덮고 실컷 울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또 &'우리가 희로애락도 많지만, 그간 엉망진창으로 살았다&'며 &'남편이 다시 태어나 또다시 산다면 정말 선녀같이 공경하고 싶은 마음&'라며 &'댁에 계신 부인께 잘하시라. 그러면 기쁨이 온다&'고 당부했다.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장은 추도사에서 &'선배님처럼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린 대스타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만인의 연인으로 살아보셨으니 이 세상에 미련은 버려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당신이 있었기에 행복했고, 같은 시대에 산 것이 행운이었다&'며 &'이제 하늘의 별이 되셨으니 사랑하는 지상의 가족을 잘 보살피고 우리 영화의 앞날을 잘 밝혀달라&'고 덧붙였다.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은 &'선생님은 정말 많은 추억을 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며 &'500편이 넘는 수많은 영화로 사람들의 가슴에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됐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아울러 &'오직 영화를 위해 살아간 선생님의 진정과 열정을 절대 잊지 않겠다&'며 &'선생님이 그토록 사랑한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의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 하늘에서 행복하고 평안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추도사 후 분향과 헌화가 이어졌다. 엄앵란이 먼저 담담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인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바쳤고, 조문객들이 뒤를 따랐다. 영결식을 마친 후 영정과 고인이 누운 관은 운구차로 옮겨졌다. 손자가 영정을 들었고 안성기·이덕화·김형일·독고영재 등이 관을 옮겼다. 관이 운구차에 실리자 엄앵란은 고개 숙여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고인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되며 이후 생전 자택이 있는 경북 영천의 선영에서 안식에 들어간다. (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