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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비서', 방송 첫 주부터 시청자 홀렸다…'오겜2' 이어 콘텐츠 통합 랭킹 2위
등록일2025.01.07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나의 완벽한 비서'가 방송 첫 주부터 시청자들의 높은 기대감을 완벽히 충족시켰다. 모두의 기대 속에 지난 3, 4일 첫 선을 보인 SBS 새 금토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 (극본 지은, 연출 함준호·김재홍)는 한순간도 눈을 떼기 어려운 한지민-이준혁의 완벽한 비주얼과 앙숙 케미 사이로 불쑥 튀어나오는 설레는 밀착 케어가 로맨스 장르의 미덕을 제대로 살렸다. 여기에 여자 대표와 남자 비서의 클리셰를 비튼 관계성은 신선하다는 호평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악연으로 시작된 지윤(한지민)과 은호(이준혁)가 '혐관(혐오관계)'에서 어떻게 달달한 사내 연애로 나아갈지, 앞으로의 전개가 더욱 궁금하다는 반응도 들끓었다. 이에 지난 2회 방송의 시청률은 전회보다 상승, 수도권 6.7%, 순간 최고 7.7%까지 올랐다.(닐슨코리아 제공) 뿐만 아니라 OTT 콘텐츠 통합 검색 플랫폼 '키노라이츠'가 6일 공개한 랭킹 차트에 따르면, '나의 완벽한 비서'가 넷플릭스와 웨이브에서 상위권에 순위를 올리며 콘텐츠 통합 랭킹 2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에서는 '오징어 게임2'에 이어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2위에 이름을 올리며, 2025년의 흥행 포문을 열 SBS의 야심찬 기대작 다운 성과를 이뤄냈다. 이와 더불어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그날 이야기'도 나란히 TOP 10에 안착하며 명실상부 SBS의 콘텐츠 파워를 입증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나의 완벽한 비서'가 방송 첫 주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좋은 기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3-4회 방송도 더욱 풍성하게 로맨스 도파민이 터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 방송에서는 자신의 비서로 채용된 은호에 대한 지윤의 감정 변화가 그려졌다. 헤드헌터라는 직업에 대해 편견을 가진 은호를 처음에는 냉대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배우겠다 는 그의 성실한 태도와 자신을 완벽하게 케어하는 모습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돌아선 것. 특히 지난 2회에서, 지윤이 '내 편'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경쟁사 '커리어웨이'에서 유일한 '내 편'으로 등장한 은호에게 기대어 쓰러진 포옹 엔딩은 밀착 케어 로맨스의 본격화를 예고했다. 제작진은 이번 주 방송되는 3-4회에서 지윤과 은호가 서로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새로운 모습을 하나씩 알아간다. 그 과정 속엔 시청자분들의 더 높아진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할 설렘 포인트가 가득하다.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린다 고 전했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매주 금요일 밤 10시, 토요일 밤 9시 50분에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신안 앞바다서 건진 3억 짜리 도자기…그곳에 700년 전 침몰된 보물선이 있다
등록일2025.01.03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일 방송된 '보물을 찾는 사람들-1976 신안 보물선'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겸 배우 이준호, 배우 김국희, 그룹 오마이걸 멤버 유빈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신안 앞바다서 건진 도자기 때는 50년 전인, 1976년 1월이야.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검산마을. 몇 명의 어부들이 사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야. 목포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최평호 씨는 오랜만에 고향인 검산마을에 갔어. 형제들이 아버지 묘를 벌초하기로 했거든. 벌초를 마친 후 고향에 있는 셋째 형님 집에 모였어.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이 모여 회포를 풀고 있는데, 갑자기 형님이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아 거시기 말여, 내가 얼마 전에 물질을 하다가 뭘 하나 건졌는데, 그것이 꽤 볼만하단 말여. 시방 함 보여줘야 쓰겄네. 그러면서 형님이 가져온 건 이거였어. 형님이 집 앞에 있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건졌다는 거야. 높이 44cm, 둘레가 65cm나 되는 큰 청자였어. 보니까 색깔도 좋고, 무늬도 너무 예뻐. 근데 최평호 씨가 가만 보니까, 이거 왠지 예사롭지가 않아. 암만 봐도, 그냥 도자기가 아닌 것 같아. 최평호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자기를 목포 집으로 가져갔어. 집에 모셔놓고 보니까, 이거 볼수록 엄청난 작품 같아. 최평호 씨는 이 도자기를 들고 목포시청으로 갔어. 시청 공보실에 가면 혹시 무슨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갔어요. 갔더니 공보실에서도 전혀 감감하더라고요. -최평호, 당시 국민학교 교사 그런데 목포 시청에도 문화재 담당자가 없대. 아쉬운 대로, 신고서라도 쓰고 가기로 했어. 그런데 신고 서식 양식이란 것도 딱히 없어. 그래서 최평호 씨가, 신고 양식을 직접 손으로 그려가며 신고서를 작성했어. 근데 직원이 신고서를 보더니, 신안에서 건진 거면 거기다가 신고해야 한다며, 기껏 가져왔는데 신안으로 다시 가져가라는 거야. 하는 수 없이 최평호 씨는, 도자기를 가지고 다시 신안군청으로 갔어. 거기선 뭐라고 했을까? 신안군청에서 하는 이야기가 신안군 안전면에서 밭갈이를 하다가 돌도끼를 하나 발견했는데, 서류가 왔다 갔다 한 것이 200매가 왔다 갔다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보상금이 얼마가 나왔냐면, 500원이 나왔대요, 그때 돈으로. 500원이 나왔는데 그 왕복 선비가 700원이래요. 그래서 안 찾아가고 포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발 좀 신고 안 했으면 쓰겠습니다' 그런 이야기예요. 신안군청에서 하는 이야기가. -최평호, 당시 국민학교 교사 최평호 씨는 포기하지 않고 사정사정했어. 그때, 신안 군청에 근무하던 남상률 씨가 그 도자기를 본 거야. 보니까, 남상률 씨도 이 도자기에 대해 궁금해져. 남상률 씨는 그 도자기를 받아서, 광주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감정을 의뢰했어. 최평호 씨가 어느 날 가져왔는데, 저것이 몇 년도 유물인지도 모르고 이제 그랬는데. 그분도 오셔서 내 기억으로는 가지도 않고. 우리보다 더 귀하게 얘기하더라고 신기하게. 그래서 달라고 해서 우리가 확인서 받아 놓고 광주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가지고 갔어요. 학예사한테 감정의뢰를 맡긴 겁니다. -남상률, 당시 신안군청 공무원 그리고 일주일 후, 이 도자기의 정체가 밝혀졌어. 감정 결과, 이건 고려청자가 아니었어. 그럼, 뭐였을까? 자, 여기에 답이 있어. 지난 1월 9일 전남 신안군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대형 청자를 하나 건져냈는데, 이 청자가 국제 시세로 10여만 달러에 상당하는 원나라 청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신문 기사 내용 中 고려청자가 아니라, 700년 전 중국 원나라 때 청자였던 거야. 한 일주일 있다가 송원대 유물이라고 판명돼서 온 거예요. 그러니까 보물이라고 해서 저희들이 깜짝 놀랐죠. 이렇게 귀한 것이 나온다고. -남상률, 당시 신안군청 공무원 무려 시가 10만 달러로 추정돼. 그 당시, 3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야. 지금으로 치면 3억 원짜리 도자기인 거야. 이걸 처음 발견한 최평호 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정말 큰일을 했다. 지금도 그런 것을 위안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영원히 파묻혔을지도 몰라요. 지금까지도. -최평호, 최초 신고자 ▲ 보물이 묻힌 마을 이 소식은 곧바로 마을 전체에 퍼졌어. 마을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 왜? 직접 들어봐. 그물에서 크고 작은 것 할 거 없이 잘 걸려 나왔죠.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이 우리 아버지도 그랬지만 '옛날 그릇 귀신 난다' 그래서 그걸 다 버린 거예요. -김정석, 당시 검산마을 주민 옛날부터 그 지역에서 많이 그 어부들이 고기잡이하면서 발견이 됐어요. 굉장히 많은 양이 걸려 나왔는데 심지어는 개밥그릇 또는 재떨이. 또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엿장수들 오면 엿장수하고 엿 바꿔먹고 그런 상황이었어요. -최평호, 최초 신고자 누구 집에 뭐가 있겠다, 누구 집에 가면 뭐가 있겠다, 그때 떠들썩했죠. 거기서 보물 나왔다고 하니까. -남상률, 당시 신안군청 공무원 아주 오래전부터 신안 앞바다에서 도자기들이 나왔대. 근데 어부들은 바다에서 그릇 같은 걸 건지면 바다에 던져 버렸대. 잡히라는 고기는 안 잡히고, 오히려 깨진 그릇 조각 때문에 그물이 찢어지기 일쑤였던 거야. 깨서 버리기도 하고, 개밥그릇으로 쓰기도 했대. 어쩌면 우리 집 앞마당에 있는 개밥그릇이, 몇 억 원짜리일 수도 있는 거야. 그런데 그 그릇들이 700년 전 유물일 수도 있다니, 가치가 억대일 수 있다니, 난리가 나겠어 안 나겠어? 작고 조용하던 이 마을에,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해. ▲ 도굴꾼의 등장 이 일이 있고 약 9개월 후인 1976년 10월. 이번엔, 목포경찰서야. 40대 조모 씨라는 사람이 조사를 받고 있어. 도자기, 접시, 이런 것들을 도굴해 비싼 값에 팔다가 검거된 거야. 근데 들어보니까, 신안 앞바다에서 도굴을 했대. 이 조 씨가 도굴했다는 유물, 한두 개가 아냐. 총 117점, 당시 돈으로 5억 원 이상이었어. 조 씨는 유물 하나에 500만 원을 넘게 받았대. 그리고 조 씨는 경찰에 이렇게 말했어. 아따, 그 최 씨 말이요. 신고하고서 포상금 쥐꼬리만큼 받았다는데, 그럼 거 팔아 재끼는 게 낫지, 누가 신고한답니까? 당시 유물 최초 신고자 최평호 씨에게 지급된 포상금 금액은, 36만 5천250원이었어. 도굴꾼이 팔던 금액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이긴 하지. 사실 원래 포상금은 100만 원이었어. 그런데, 신안 앞바다라는 국유지에서 나온 유물이라 절반은 국가에 반납해야 했던 거야. 100만 원의 절반 50만 원, 그리고 나머지는 세금이었어. 그 100만 원도 어떻게 됐냐 하면, 국가 수면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50% 본인한테 50%. 그 50만 원도 다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불로소득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세금 떼고 얼마가 나왔냐 하면 36만 5천250원. -최평호, 유물 최초 신고자 신고하면 약 36만 원, 몰래 팔면 500만 원이야. 물론, 이걸 돈으로 비교할 수는 없어. 이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니까. 이대로 도굴을 하게 둬서는 안 돼. ▲ 보물을 찾는 사람들 그래서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해. 바로 문화재관리국. 지금으로 치면 국가유산청, 얼마 전까지 문화재청으로 불리던 곳이야. 당시 문화재관리국은 이미 유물 발굴작업으로 큰 성과를 얻은 적이 있어. 5년 전인 1971년, 백제 25대 무령왕릉에서 국보급 유물을 발굴한 적이 있어. 1973년에는 경주 천마총에서 유물 11,526점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어. 유물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이지. 1976년 10월 27일, 신안 해저 유물 발굴단은 유물이 나온다는 신안 도덕도 앞바다로 갔어. 눈앞에, 넓은 신안 앞바다가 펼쳐졌어. 그런데 이거 너무 막막해. 왜였을까? 직접 들어봐. 발굴단을 문화재관리국에서 하려니까 인재가 없어요. 우리가 수중고고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책으로만 봤지. 배에 나가서 수중고고학 할 사람이 없거든 우리나라에.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아까 말한 무령왕릉, 천마총은 전부 육지에 있잖아. 바다에서 발굴작업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거야. 게다가, 잠수 장비도 없어. 조사단은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했어. 바로 SSU, 해군 해난구조대였어. SSU는 말 그대로 해상 사고 나면 처리해 주는 그런 구조대입니다. 유물 발굴요? 부대 내에서는 그런 건 없죠. 없는데 정부에서 출동 공문이 내려오면 위에서 검토해서, 저희 부대로 지시가 내려옵니다. 군인들이야 위에서 명령 내려오면 뭐 이유불문이죠. 무조건 그냥 출동, 쫓아나가는 거죠.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SSU 부대가 신안 앞바다에 도착했어. 3천톤급 함정 'TA3함'을 타고 온 해군들이 고무보트로 옮겨 탔어. 온갖 전문 잠수 장비들에, 수중에서 쓸 수 있는 카메라도 한가득 가져왔어. 그렇게 문화재 전문가, 베테랑 잠수부로 구성된 특수부대원이 한자리에 모였어. 우리나라 최초 수중유물발굴단인, '신안 해저 유물 발굴단'이 탄생했어. 이거 완전 어벤져스야. ▲ 신안 해저 유물 발굴단 근데 기대와 달리,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슈트 갈아입고 물 보면, 아이고 저거 정말..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겁이 좀 나요. 서해안 쪽은 특히 유속이 빠르다 보니까 펄이 일어나서 아무것도 안 보여서 그런 걸 걱정을 하면서 갔었어요. 시야도 없고 유속이 빠르니까, 줄 놓쳤다 하면 완전히 실종이죠. 못 찾는 거예요. 그냥 어디로 뜨는지도 모르고요. 그 당시 저도 한 6년 이상 다이빙을 한 상태인데도, 겁이 나더라고요 솔직히.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신안 앞바다는 바닥이 펄이야. 바로 코 앞도 안 보여. 손을 뻗으면 자기 손도 안 보일 정도야. 게다가 조류가 너무 세. 그래서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바뀔 때 바다가 잠깐 멈추는 단 한 시간, '정조시간'을 노려야 해. 그리고 서클라인을 이용해 수색하기로 했어. 먼저 굵은 밧줄에 큰 돌을 묶어 부표를 띄워. 그 밧줄을 잡고 천천히 물속으로 내려가. 바닥에 도착하면 또 다른 밧줄을 큰 돌에 묶고, 반대쪽을 자기 몸에 묶어. 그렇게 이 큰 돌을 중심으로 사람이 원을 그리면서 일일이 손으로 바닥을 수색하는 방법이야. 만약에 작업 도중에 밧줄을 놓치면, 그대로 떠내려 가는 거야. 큰일 나죠. 어떻게든 실수로 줄을 놓쳤다면, 유속 빠르고 떠내려가면 끝나는 겁니다.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잠수부들이 탄 고무보트 위에는 긴장감이 가득해. 한번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은 단 20분. 그 안에 반드시 보물을 찾아야 해. 드디어 첫 번째 잠수부가 바다 아래로 들어갔어.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바다 위로 올라온 잠수부는 빈 손이었어. 빠른 조류와 코 앞도 안 보이는 시야도 문제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던 거야. 저 넓은 바다에 어디에 보물이 있는지 위치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맨손으로 찾겠어. 해군이 굉장한 장비를 갖췄다고 하는 군함들이 와서 다이버들이 들어갔는데 못 찾았어요.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다들 머리를 맞대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 이들은 고민 끝에,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했어. 그리고 한참 뒤, 급하게 차 한 대가 도착했어. 차에서 한 남성이 내리는데, 그의 손엔 수갑이 채워져 있어. 앞서 잡혔던 도굴꾼, 조 씨였어. 최후의 방법으로, 도굴꾼에게 자문을 구해보자 했던 거야. 이건 안 되겠다, 그러면 도굴꾼을 데리고 와라. 그래서 현장에 데리고 왔지. 수갑 찬 채로 데리고 왔어요.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일단 유물 발굴이 최우선이니, 도굴꾼의 도움이라도 받으려 한 거야. 설득 끝에, 조 씨도 유물 발굴에 협조하기로 했어. 그렇게 최고의 문화재 전문가들과 최고의 특수부대, 그리고 전문 도굴꾼까지 한 배를 타고 다시 바다로 떠났어. ▲ 보물의 발견 도굴꾼 조 씨는 함장 옆에 서서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 해군이 가져온 최첨단 장비들은 쳐다보지도 않아. 그러면서 이리저리 가라고 지시하는 거야. 한 시간 움직였나? 갑자기 도굴꾼이 이래. 여기, 여기에 부표 띄우쇼 대충 눈짓으로 보더니, 갑자기 부표를 띄우라는 거야. 어떻게 아는 거냐 물으니, 하늘의 별을 보면 딱 알 수 있대. 이 말, 믿을 수 있겠어? 근데, 달리 방법이 없어.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도굴꾼이 짚어주는 세 곳에 부표를 내렸어. 일단 첫 번째 포인트에 해군 잠수부가 들어갔어. 그런데 실패. 못 찾았어. 이번엔 다른 부표에서, 두 번째 팀이 잠수했어. 그런데 또 실패야. 그러자 배 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어. 이래서 사기꾼 말을 믿을 수가 있나. 그놈 나중에 출소해서 또 한탕하려고 거짓말한 거 아냐? 어수선한 가운데, 마지막 부표에 세 번째 팀이 잠수를 준비했어. 이때, 이복성 중사가 들어갔어. 유속도 세고, 온통 펄밭이라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서클라인을 연결한 후 한 손으론 줄을 꽉 잡은 채, 다른 한 손의 감각에 의해서만 유물을 찾아야 해. 이복성 중사가 주변을 더듬으며 유물을 찾기 시작했어. 세 번째 팀 우리가 들어갔을 때, 안 보이니까 눈으로는 볼 수가 없고요. 눈 감은 상태죠. 손을 쭉 펄을 누르면서 훑으면서 쭉 가다 보니까, 술잔 비슷한 접시 같은 동그란 게 잡히더라고요. 이제 잡히니까 이거 같다라고 딱 감이 잡히더라고요.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곧바로 손에 든 물건과 함께, 바다 위로 올라갔어. 이복성 중사가 바다 위로 솟구치자 그 순간,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치기 시작했어. 이게 바로 그때 찍힌 사진이야. 발굴단이 최초로 발견한 유물. 연꽃무늬가 그려진 약 700년 전 원나라 접시야. 진짜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너무 기분 좋았죠. 야 내가 유물을 건졌어?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근데, 아직 놀라긴 일러. 그 이후에도 잠수부들이 들어갔는데, 들어가기만 하면 손에 도자기든 접시든 뭐든 잔뜩 들고 나오는 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 한두 점 있는 게 아니래. 다이버들이 들어가서 확인하니까 무진장이라는 거예요. 무진장.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그때는 다들 몇 개씩 들고 올라왔습니다. 두 번째 할 때는. 여기가 틀림없이 그 자리라고 하니까, 전부 다 열심히 했겠죠. 그러다 보니까 항아리도 들고 올라오고.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바닷속에서 보물들이 계속해서 올라왔어. 그렇게 발굴단은 10월부터 총 32일 동안 발굴작업을 했어. 그리고 약 2천 점의 유물을 건져 올렸어. 다이버들이 놀랬지. 도굴꾼 말을 들을 수 있나? 그래도 들어가 보자, 한 건데.. 들어가 보니, 있다…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아직도 바닷속엔 수많은 유물이 잠들어 있어. 하지만, 발굴 작업을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어. 작업하는 사이 겨울이 찾아왔거든. 겨울에 잠수하는 건 무리야. 또 다른 문제는, 작업 가능한 시간이 너무 짧아. 바다의 유속과 날씨까지 모두 고려해 보면, 신안 앞바다에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한 달 정도야. 그리고 하루 중에 작업 가능한 '정조 시간'. 정조 시간은 하루에 2번, 하지만 이것도 어두운 밤일 땐 잠수를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일 년에 약 한 달,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 남짓만 안전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야. ▲ 700년 만에 나온 보물 본격적인 유물 발굴 작업은 그다음 해인 1977년에 다시 시작했어. 신안 바다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유물들을 쏟아냈어. 바다에서 나온 유물들, 한 번 봐봐. 접시에 항아리, 장식품까지 종류도 다양해. 어떻게 이 보물들이 형태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을까. 바닷속에 있는 펄, 그 펄층에 가라앉아서 부식이 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도자기 같은 경우는 워낙 강한 불에 구워졌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강도가 세고, 특히 유약까지 입혀서 훼손되지 않고 보존이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장성욱 학예연구사, 국립중앙박물관 거기엔 청자, 그릇 말고도, 별에 별 것들이 쏟아져 나왔어. 700년 전 중국에서 쓰던 주사위, 바둑알, 장기말 등. 특히 엽전만 무려 800만 개, 28톤이나 되는 양이 나왔대. 이 외에도 온갖 향신료, 비싼 목재 이런 것들이 쉴 새 없이 나왔어. 자, 그럼 궁금하지 않아? 대체 이 신안 앞바다에서 왜 이런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까? 그때, 발굴 현장에 있던 이호관 발굴부장이 해군잠수부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어. 웬 유물이 이렇게 많이 나오냐는 의심은 했지만 이렇게 한 군데서 많이 나올 수가 없단 말이야. 이게 뭔가 좀 이상하다 했는데. 다이버들이 '배가 있습니다' 놀랐지 우리는. 배가 있다니. 그 펄 바닥에 배가 아직 살아있다니. 이게 믿어지질 않지. 몇 백 년이 지났는데. 펄에 묻혀있는 바람에 배가 남았어.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부장 바다 아래에, 배가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전설로만 들었던 보물선이, 대한민국 바다에 실존하고 있었던 거야. ▲ 바닷속 보물선 대체 이 배의 정체가 뭘까? 바다 아래서 건진 것 중에, 이런 게 있었어. 청동 저울추. 배에 걸어놓는 저울 추래. 잘 보면, 한자로 '경원로'라고 적혀있어. '경원'은 중국 저장성의 '닝보'라는 지역이야. 당시 원나라의 주요 무역도시였어. 이 배가 중국 닝보에서 출발한 무역선이었던 거야. 이건 뭘 것 같아? 종이가 없던 시절, 나무에 글씨를 쓴 건데, 이걸 '목간'이라고 해. 첫 번째 목간을 보면, 한자로 '지치 3년'이라고 쓰여있어. 이건 중국 원나라 연호로, 서기 1323년이라는 뜻이야. 그리고 다른 목간을 보면, 한자로 '동복사', 그리고 '조적암'이라고 적혀있어. 바로 일본에 있는 절 이름이야. 이 배가, 일본을 오가던 무역선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 바다에서 나온 도자기와 그릇들, 모두 일본으로 보낼 무역품이었던 거야. 당시 일본에서 중국 도자기가 인기가 많았대. 그럼 일본으로 가던 배가, 왜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일본으로 가던 중 태풍을 피하려다 신안 앞바다에서 좌초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대. 정리를 해보자면 이래. 1323년, 중국 닝보에서 도자기, 청자 등 무역품들을 싣고 가던 원나라 무역선이 일본으로 가던 중,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거야. 게다가 어느 날 동네 주민이 허겁지겁 오더니 이런 걸 보여주더래. 배가 정박할 때 쓰는 닻. 4년 전 그 어부가 닻을 건져 올렸는데, 어장의 그물추로 사용하다가 발굴단에 신고한 거야. 근데 이 닻의 크기가 엄청 커. 길이만 2m 20cm, 무게는 300kg. 이걸로 볼 때, 배의 길이만 최대 34m, 당시 적재량 200톤이 넘었을 거라 추정돼. 엄청 큰 배야. 발굴단은 유물을 찾으면서, 배를 인양할 계획을 세웠어. 먼저 유물이 나오는 포인트에 철제로 만든 그리드라는 걸 설치해. 그리드에 번호를 매겨서 유물들의 위치를 기록한 뒤, 부서진 배의 조각을 하나씩 연결하는 거야. 그렇게 발굴단의 발굴작업은 1984년까지, 9년에 걸쳐 이뤄졌어. 힘들었던 발굴 과정.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뱃멀미였다고 해. 사람이 노래져요. 멀미 때문에. 그 파도가 넘실거리는 데서 작업을 하는 거예요.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부장 또 펄과 조개껍데기 투성이었던 유물들을 일일이 손으로 씻어내느라 항상 온몸이 지저분했대. 저 같은 경우는 이제 그 유물을 펄이 묻었으니까 펄을 먼저 세척한 다음에 유물을 분리하고 하는 작업을 하는 거죠. 유물 발굴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상당히 청자가 빛깔이 좋아요. 그래서 그걸 보고 상당히 감탄을 했죠.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그 배에서 무려 2만 4천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어. 한 장소에서, 이렇게 많이 유물이 발견된 건 세계적으로 이례적이래. 세기의 발견이자, 엄청난 성과를 이룬, 최초 해저 유물 발굴인 거지. 그 당시에는 정말 꿈같은 일을 해냈구나 라는 생각 들고. 내가 근무하던 그 부대에서 이렇게 큰 일을 했기 때문에 부대도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없으면 이건 할 수가 없어요.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공무원으로서 학예직으로서 내게 놓인 일을 한 것뿐이죠. 유문 있으면 됐지 뭐. 그냥 그것뿐이지. 추억이지.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부장 ▲ 보물을 훔치는 사람들 그렇게 발굴이 마무리되던 1984년, 강신태 반장에게 긴급하게 연락이 한 통 왔어. 전화가 온 곳은 문화재관리국 사범단속반. 문화재 도난이나 도굴 사건을 수사하는 전담 부서야. 누군가 문화재를 암거래하려고 한다는 첩보였어. 근데 그 문화재가, 바로 신안 유물이라는 거야. 강신태 반장이 신안 유물 발굴을 담당했으니, 감정 요원으로 함께 가 달라는 거야. 밀매꾼들, 어떻게 잡아야 할까? 강신태 반장은, 덫을 놨어. 구매자인 척, 밀매꾼에게 접근한 거야. 종로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약속한 날,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남성 두 명이 두리번 두리번 대며 걸어오는 거야. 딱 봐도, 그놈들이야. 광주에서 판매책 2명이 올라온 거였어. 이들과 대면한 강신태 반장이 입을 열었어. 아이고, 식사는 하셨고? 그래서 어떻게... 물건은? 그랬더니 남성 한 명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쓱 꺼냈어. 신안 유물, 맞았을까? 사진을 보여주는데 보니까 이제 신안 유물이 맞아. 그래서 이건 얼마나 요구를 하느냐 몇 점 있냐니까, 한 30점 있는데 한 1억 5천만 원 된다는 거야.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30점을 1억 5천 만원에 팔겠대. 강신태 반장은 유물을 직접 보고 사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그 유물들, 광주에 있대. 곧바로 강신태 반장은 밀매꾼들과 함께 광주로 내려갔어. 일당들은 강신태 반장을 광주의 한 호텔로 데려갔어. 밤 9시쯤 됐나? 호텔 방문이 열리더니, 한 남성이 들어와. 딱 보니까 이놈이 바로 주범 같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놨어. 가방에서 꺼낸 건 신안 유물 3점. 그걸 본 강신태 반장은 범인들에게 이거 가지고는 택도 없다. 이건 뭐 돈 안 나가는 거다. 1억 5천만 원짜리 거래를 하면서 장난할 수가 있느냐 라며 화를 냈어. 그러자 범인들이 내일 아침에 만나자며 자리를 떠났어. 그리고 다음 날 아침 10시. 근처에서 다시 주범을 만나기로 했어. 강신태 반장이 일당들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차를 타고 주변을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거야. 누가 주변에 있나, 따라오는 사람이 있나, 감시하는 거지. 이윽고, 이들은 또 다른 호텔에 들어갔어. 근데 이 주범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안 나타나. 강신태 반장,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해.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던 그때, 문이 탁 열리더니, 주범이 모습을 드러냈어. 그 순간! 꼼짝 마, 경찰이다! 근처에 있던 경찰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어. 강신태 반장은 딱 주범만 노렸어. 딱 들이닥치니까 후닥딱 이제 튀는 거지. 그래서 나는 안 되겠다 그래가지고 주범, 유물 가져온 놈만 딱 잡 은 거지. 난 오직 이 친구만 잡으면 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일을 한 거죠. 그래서 머리 뒤를 잡고 뒤에 허리띠를 잡은 거예요. 잡고는 얼마나 힘이 센지, 나도 힘이 세지만. 5층부터 1층까지 같이 굴렀어요.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강신태 반장은 주범을 향해 몸을 던졌어. 그리고 주범의 손에 드디어 수갑을 채웠어. 그렇게 일당 세 명을 체포하고, 이들이 가지고 있던 신안 유물 32점을 회수했어. 이건 전부, 신안 유물을 훔쳐서 팔다가 검거된 '신안 유물 도굴 사건'을 정리한 거야. 그런데 날짜를 보면, 좀 묘해. 모두 국가가 발굴 작업을 하던 그 기간에 일어난 일이야. 바다에 발굴단과 특수부대 요원까지 있었는데도 도굴을 했던 거야. 처음에 유물을 신고했던 최평호 씨, 기억나? 신고한 뒤부터 근무지로 그를 찾는 전화가 계속 왔대. 돈을 줄 테니, 유물이 나오는 위치만 알려달라면서. ▲ 발굴단 vs 도굴꾼 당시 문화재관리국에선 발굴 지역 2km 반경을 항해 금지구역으로 정했어. 인근에는 감시 초소까지 설치됐어. 초소에서 교대로 24시간 동안 감시를 했어. 바다 위에서 발굴단이 파도와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육지에서는 도굴꾼들과 전쟁을 하고 있었던 거야. 도굴꾼은 팀을 어떻게 꾸릴까? 먼저 물주가 팀원을 모집해. 바닷길을 잘 아는 주민, 경력이 많은 잠수부 등으로. 그럼 감시를 피해 바다로는 어떻게 나갈까? 이들은 모터 소리가 나지 않는 배까지 직접 만들었어. 처음에 발굴단은 유물이 가라앉은 위치를 알아내려고 애를 먹었잖아. 그럼 도굴꾼들은 유물을 어떻게 찾았을 것 같아? 사실 이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발굴단이 표시해 놓은 그리드 부표가 딱 있었거든. 고생할 필요도 없이 그것만 딱 들어가면 바로 유물 위치가 나오니깐. 그냥 장님이 눈 감고 들어가 건지다시피 했죠.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부장 부표에 도착하면, 은밀하게 잠수를 시작해. 신안 바다 물속은 유속도 빠르고, 도굴하는 시간이 밤이라 앞은 더 깜깜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악으로 깡으로 도굴하는 거야. 그렇게 목숨을 걸고 훔친 도굴품을 누군가는 비싼 값에 팔았고, 누군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은밀하게 숨겨놨어. 그 뒤로 문화재 사범단속반에서 쭉 일하게 된 강신태 반장은 경찰 검찰과 합동 수사를 하며, 신안 유물 도굴꾼들을 잡는 데 사활을 걸었어. 근데, 그의 수사방법이 대단했어. 그에게 이런 전화가 와. 아유 반장님, 접니다. 왜 그때 광주에서 잡혔다가 얼마 전에 나온 놈 있잖아요. 걔 이번에 또 작업 들어간다네? 강신태 반장이 잡았던 밀매꾼 중 한 명이 이렇게 정보를 알려주는 거야. 어떻게 된 일일까? 직접 들어봐. 그 친구와 차 타고 가면서 대화를 해보니까 대화가 통하는 친구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이걸 없애야 되지 않느냐' 했더니, 자기도 이번 기회에 많은 걸 느꼈다, 수사에 또 협조하겠다 그래. 그래 검사하고 약속을 해서 구속을 안 하고 불구속했죠. 그다음에 정보를 주기 시작한 거죠. 내가 단속반에 갔더니 정보가 오는 거예요. 이런 정보가 없으면 안 되죠. 그게 수사의 기법이에요.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이게 보니까, 서로 다 연결이 돼 있어. 그래서 한 명을 잡으면 줄줄이 잡혀. 그런데, 아무리 일망타진을 해도, 암거래한다는 첩보가 계속 들려와. 도굴꾼들의 일종의 '보험' 때문이야. 1980년, 광주에서 수상한 소문이 하나 돌았어. 2년 전, 신안 유물을 도굴해서 팔다가 검거된 이 씨 형제가 있는데, 그 형이 출소한 뒤부터, 동생의 장인 집, 그러니까 사돈집을 매일 들락날락한다는 거야. 사돈집에 매일 갈 이유가 뭐가 있을까? 뭔가 일을 꾸미는 것 같지? 그래서 형사들이 사돈집에 온 이 씨를 덮쳤어. 그런데 이 씨가, 형사들을 보자 오히려 하소연을 하는 거야. 형사님, 제발 저 좀 도와주십쇼, 내가 이놈의 유물인지 고물인지 때문에 아주 돌아가시겄소. 들어보니까 이래. 같이 도굴하다 잡힌 동생이 먼저 출소했는데, 그때 형한테 훔친 유물들을 잘 숨겨놨다고 말했대. 그리고 몇 달 뒤 형이 출소를 했는데, 큰 문제가 생겼어. 글쎄 동생이 사망한 거야. 팔아넘긴 유물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화병으로 사망했대. 그럼 형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그걸 찾아야지.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동생이 숨겼다는 유물을 못 찾은 거야. 결국 찾다 찾다, 동생의 장인 집까지 왔던 거지. 그때부터 형사들이, 이 형과 함께 동생의 처갓집을 뒤지기 시작했어. 경찰은 집을 샅샅이 뒤지기로 했다. 유물이 상하지 않도록 도굴꾼들이 사용하는 쇠꼬창이로 땅속을 찔러갔다. 6시간에 걸친 수색 끝에 여기다 하는 함성이 터졌다. 헛간 잿더미 밑바닥에서 청자접시 90점 등 2백40점의 송원대 유물이 가마니에 싸인 채 묻혀 있었다. -당시 기사 내용 中 이뿐만이 아니야. 근처 유채밭 한복판에 묻힌 220점의 유물을 또 발견했어. 이때 회수한 유물만 460점이 넘었대. 이런 식으로 도굴꾼들은, 도굴한 유물을 여러 군데 묻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서 팔아먹은 거야. 마치 적금이나 보험처럼. 이런 식으로 검거된 도굴꾼은 300여 명이었어. ▲ 모두의 보물 도굴범으로부터 회수한 유물만, 무려 2천 점이 넘는대. 발굴품과 도굴품까지, 신안 앞바다에서 모두 2만 6천여 점의 유물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어. 그 보물들, 지금은 어디 있을까? 박물관의 철통보안 속에, 잘 보관돼 있어. 현재는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대. 신안해저유물은 발굴 이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왔고요.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서 전시, 보존, 관리 중에 있습니다. -장성욱,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신안해저유물은 수중고고학의 처음, 효시가 되었는데요. 이 효시를 기반으로 해서 그다음부터 우리나라의 수중고고학의 발전, 그리고 조사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고요. 내 눈앞에 있는 손도 식별이 안되는 곳에서 잠수하는 기술은 우리나라가 제일 뛰어난 수준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성욱,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모두가 힘쓴 덕분에,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유물들은 이제 우리가 원하면 언제나 볼 수 있는 소중한 보물로 빛나고 있어. 아마 이건 그 어떤 화폐로도 값을 매길 수 없을 거야. 1984년도, 신안 발굴작업이 끝나고도 도굴한 신안 유물을 밀매하는 사건은 계속 발생했어. 언제까지 사건이 있었을 것 같아? 마지막 사건이, 바로 2019년. 불과 6년 전이야. 30년이 넘게 신안 유물 57점을 보관하다가, 일본에 반출하려던 남성이 또 검거된 거야. 피의자는 30여 년 동안 자택과 친척 집에서 유물들을 보관하다가 사회적으로 신안 유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판단되자 지난해 8월부터 국내와 일본에서 밀매를 시도했습니다. -2019년 뉴스 보도 中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재가 살아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도 있는 걸 거야. 그런 문화재를 소중히 보호하는 건,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권리이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신안 앞바다서 건진 3억 짜리 도자기…그곳에 700년 전 침몰된 보물선이 있다
등록일2025.01.03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일 방송된 '보물을 찾는 사람들-1976 신안 보물선'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겸 배우 이준호, 배우 김국희, 그룹 오마이걸 멤버 유빈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신안 앞바다서 건진 도자기 때는 50년 전인, 1976년 1월이야.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검산마을. 몇 명의 어부들이 사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야. 목포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최평호 씨는 오랜만에 고향인 검산마을에 갔어. 형제들이 아버지 묘를 벌초하기로 했거든. 벌초를 마친 후 고향에 있는 셋째 형님 집에 모였어.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이 모여 회포를 풀고 있는데, 갑자기 형님이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아 거시기 말여, 내가 얼마 전에 물질을 하다가 뭘 하나 건졌는데, 그것이 꽤 볼만하단 말여. 시방 함 보여줘야 쓰겄네. 그러면서 형님이 가져온 건 이거였어. 형님이 집 앞에 있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건졌다는 거야. 높이 44cm, 둘레가 65cm나 되는 큰 청자였어. 보니까 색깔도 좋고, 무늬도 너무 예뻐. 근데 최평호 씨가 가만 보니까, 이거 왠지 예사롭지가 않아. 암만 봐도, 그냥 도자기가 아닌 것 같아. 최평호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자기를 목포 집으로 가져갔어. 집에 모셔놓고 보니까, 이거 볼수록 엄청난 작품 같아. 최평호 씨는 이 도자기를 들고 목포시청으로 갔어. 시청 공보실에 가면 혹시 무슨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갔어요. 갔더니 공보실에서도 전혀 감감하더라고요. -최평호, 당시 국민학교 교사 그런데 목포 시청에도 문화재 담당자가 없대. 아쉬운 대로, 신고서라도 쓰고 가기로 했어. 그런데 신고 서식 양식이란 것도 딱히 없어. 그래서 최평호 씨가, 신고 양식을 직접 손으로 그려가며 신고서를 작성했어. 근데 직원이 신고서를 보더니, 신안에서 건진 거면 거기다가 신고해야 한다며, 기껏 가져왔는데 신안으로 다시 가져가라는 거야. 하는 수 없이 최평호 씨는, 도자기를 가지고 다시 신안군청으로 갔어. 거기선 뭐라고 했을까? 신안군청에서 하는 이야기가 신안군 안전면에서 밭갈이를 하다가 돌도끼를 하나 발견했는데, 서류가 왔다 갔다 한 것이 200매가 왔다 갔다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보상금이 얼마가 나왔냐면, 500원이 나왔대요, 그때 돈으로. 500원이 나왔는데 그 왕복 선비가 700원이래요. 그래서 안 찾아가고 포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발 좀 신고 안 했으면 쓰겠습니다' 그런 이야기예요. 신안군청에서 하는 이야기가. -최평호, 당시 국민학교 교사 최평호 씨는 포기하지 않고 사정사정했어. 그때, 신안 군청에 근무하던 남상률 씨가 그 도자기를 본 거야. 보니까, 남상률 씨도 이 도자기에 대해 궁금해져. 남상률 씨는 그 도자기를 받아서, 광주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감정을 의뢰했어. 최평호 씨가 어느 날 가져왔는데, 저것이 몇 년도 유물인지도 모르고 이제 그랬는데. 그분도 오셔서 내 기억으로는 가지도 않고. 우리보다 더 귀하게 얘기하더라고 신기하게. 그래서 달라고 해서 우리가 확인서 받아 놓고 광주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가지고 갔어요. 학예사한테 감정의뢰를 맡긴 겁니다. -남상률, 당시 신안군청 공무원 그리고 일주일 후, 이 도자기의 정체가 밝혀졌어. 감정 결과, 이건 고려청자가 아니었어. 그럼, 뭐였을까? 자, 여기에 답이 있어. 지난 1월 9일 전남 신안군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대형 청자를 하나 건져냈는데, 이 청자가 국제 시세로 10여만 달러에 상당하는 원나라 청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신문 기사 내용 中 고려청자가 아니라, 700년 전 중국 원나라 때 청자였던 거야. 한 일주일 있다가 송원대 유물이라고 판명돼서 온 거예요. 그러니까 보물이라고 해서 저희들이 깜짝 놀랐죠. 이렇게 귀한 것이 나온다고. -남상률, 당시 신안군청 공무원 무려 시가 10만 달러로 추정돼. 그 당시, 3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야. 지금으로 치면 3억 원짜리 도자기인 거야. 이걸 처음 발견한 최평호 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정말 큰일을 했다. 지금도 그런 것을 위안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영원히 파묻혔을지도 몰라요. 지금까지도. -최평호, 최초 신고자 ▲ 보물이 묻힌 마을 이 소식은 곧바로 마을 전체에 퍼졌어. 마을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 왜? 직접 들어봐. 그물에서 크고 작은 것 할 거 없이 잘 걸려 나왔죠.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이 우리 아버지도 그랬지만 '옛날 그릇 귀신 난다' 그래서 그걸 다 버린 거예요. -김정석, 당시 검산마을 주민 옛날부터 그 지역에서 많이 그 어부들이 고기잡이하면서 발견이 됐어요. 굉장히 많은 양이 걸려 나왔는데 심지어는 개밥그릇 또는 재떨이. 또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엿장수들 오면 엿장수하고 엿 바꿔먹고 그런 상황이었어요. -최평호, 최초 신고자 누구 집에 뭐가 있겠다, 누구 집에 가면 뭐가 있겠다, 그때 떠들썩했죠. 거기서 보물 나왔다고 하니까. -남상률, 당시 신안군청 공무원 아주 오래전부터 신안 앞바다에서 도자기들이 나왔대. 근데 어부들은 바다에서 그릇 같은 걸 건지면 바다에 던져 버렸대. 잡히라는 고기는 안 잡히고, 오히려 깨진 그릇 조각 때문에 그물이 찢어지기 일쑤였던 거야. 깨서 버리기도 하고, 개밥그릇으로 쓰기도 했대. 어쩌면 우리 집 앞마당에 있는 개밥그릇이, 몇 억 원짜리일 수도 있는 거야. 그런데 그 그릇들이 700년 전 유물일 수도 있다니, 가치가 억대일 수 있다니, 난리가 나겠어 안 나겠어? 작고 조용하던 이 마을에,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해. ▲ 도굴꾼의 등장 이 일이 있고 약 9개월 후인 1976년 10월. 이번엔, 목포경찰서야. 40대 조모 씨라는 사람이 조사를 받고 있어. 도자기, 접시, 이런 것들을 도굴해 비싼 값에 팔다가 검거된 거야. 근데 들어보니까, 신안 앞바다에서 도굴을 했대. 이 조 씨가 도굴했다는 유물, 한두 개가 아냐. 총 117점, 당시 돈으로 5억 원 이상이었어. 조 씨는 유물 하나에 500만 원을 넘게 받았대. 그리고 조 씨는 경찰에 이렇게 말했어. 아따, 그 최 씨 말이요. 신고하고서 포상금 쥐꼬리만큼 받았다는데, 그럼 거 팔아 재끼는 게 낫지, 누가 신고한답니까? 당시 유물 최초 신고자 최평호 씨에게 지급된 포상금 금액은, 36만 5천 250원이었어. 도굴꾼이 팔던 금액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이긴 하지. 사실 원래 포상금은 100만 원이었어. 그런데, 신안 앞바다라는 국유지에서 나온 유물이라 절반은 국가에 반납해야 했던 거야. 100만 원의 절반 50만 원, 그리고 나머지는 세금이었어. 그 100만 원도 어떻게 됐냐 하면, 국가 수면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50% 본인한테 50%. 그 50만 원도 다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불로소득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세금 떼고 얼마가 나왔냐 하면 36만 5천 250원. -최평호, 유물 최초 신고자 신고하면 약 36만 원, 몰래 팔면 500만 원이야. 물론, 이걸 돈으로 비교할 수는 없어. 이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니까. 이대로 도굴을 하게 둬서는 안 돼. ▲ 보물을 찾는 사람들 그래서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해. 바로 문화재관리국. 지금으로 치면 국가유산청, 얼마 전까지 문화재청으로 불리던 곳이야. 당시 문화재관리국은 이미 유물 발굴작업으로 큰 성과를 얻은 적이 있어. 5년 전인 1971년, 백제 25대 무령왕릉에서 국보급 유물을 발굴한 적이 있어. 1973년에는 경주 천마총에서 유물 11,526점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어. 유물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이지. 1976년 10월 27일, 신안 해저 유물 발굴단은 유물이 나온다는 신안 도덕도 앞바다로 갔어. 눈앞에, 넓은 신안 앞바다가 펼쳐졌어. 그런데 이거 너무 막막해. 왜였을까? 직접 들어봐. 발굴단을 문화재관리국에서 하려니까 인재가 없어요. 우리가 수중고고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책으로만 봤지. 배에 나가서 수중고고학 할 사람이 없거든 우리나라에.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아까 말한 무령왕릉, 천마총은 전부 육지에 있잖아. 바다에서 발굴작업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거야. 게다가, 잠수 장비도 없어. 조사단은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했어. 바로 SSU, 해군 해난구조대였어. SSU는 말 그대로 해상 사고 나면 처리해 주는 그런 구조대입니다. 유물 발굴요? 부대 내에서는 그런 건 없죠. 없는데 정부에서 출동 공문이 내려오면 위에서 검토해서, 저희 부대로 지시가 내려옵니다. 군인들이야 위에서 명령 내려오면 뭐 이유불문이죠. 무조건 그냥 출동, 쫓아나가는 거죠.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SSU 부대가 신안 앞바다에 도착했어. 3천톤급 함정 'TA3함'을 타고 온 해군들이 고무보트로 옮겨 탔어. 온갖 전문 잠수 장비들에, 수중에서 쓸 수 있는 카메라도 한가득 가져왔어. 그렇게 문화재 전문가, 베테랑 잠수부로 구성된 특수부대원이 한자리에 모였어. 우리나라 최초 수중유물발굴단인, '신안 해저 유물 발굴단'이 탄생했어. 이거 완전 어벤져스야. ▲ 신안 해저 유물 발굴단 근데 기대와 달리,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슈트 갈아입고 물 보면, 아이고 저거 정말..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겁이 좀 나요. 서해안 쪽은 특히 유속이 빠르다 보니까 펄이 일어나서 아무것도 안 보여서 그런 걸 걱정을 하면서 갔었어요. 시야도 없고 유속이 빠르니까, 줄 놓쳤다 하면 완전히 실종이죠. 못 찾는 거예요. 그냥 어디로 뜨는지도 모르고요. 그 당시 저도 한 6년 이상 다이빙을 한 상태인데도, 겁이 나더라고요 솔직히.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신안 앞바다는 바닥이 펄이야. 바로 코 앞도 안 보여. 손을 뻗으면 자기 손도 안 보일 정도야. 게다가 조류가 너무 세. 그래서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바뀔 때 바다가 잠깐 멈추는 단 한 시간, '정조시간'을 노려야 해. 그리고 서클라인을 이용해 수색하기로 했어. 먼저 굵은 밧줄에 큰 돌을 묶어 부표를 띄워. 그 밧줄을 잡고 천천히 물속으로 내려가. 바닥에 도착하면 또 다른 밧줄을 큰 돌에 묶고, 반대쪽을 자기 몸에 묶어. 그렇게 이 큰 돌을 중심으로 사람이 원을 그리면서 일일이 손으로 바닥을 수색하는 방법이야. 만약에 작업 도중에 밧줄을 놓치면, 그대로 떠내려 가는 거야. 큰일 나죠. 어떻게든 실수로 줄을 놓쳤다면, 유속 빠르고 떠내려가면 끝나는 겁니다.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잠수부들이 탄 고무보트 위에는 긴장감이 가득해. 한번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은 단 20분. 그 안에 반드시 보물을 찾아야 해. 드디어 첫 번째 잠수부가 바다 아래로 들어갔어.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바다 위로 올라온 잠수부는 빈 손이었어. 빠른 조류와 코 앞도 안 보이는 시야도 문제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던 거야. 저 넓은 바다에 어디에 보물이 있는지 위치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맨손으로 찾겠어. 해군이 굉장한 장비를 갖췄다고 하는 군함들이 와서 다이버들이 들어갔는데 못 찾았어요.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다들 머리를 맞대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 이들은 고민 끝에,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했어. 그리고 한참 뒤, 급하게 차 한 대가 도착했어. 차에서 한 남성이 내리는데, 그의 손엔 수갑이 채워져 있어. 앞서 잡혔던 도굴꾼, 조 씨였어. 최후의 방법으로, 도굴꾼에게 자문을 구해보자 했던 거야. 이건 안 되겠다, 그러면 도굴꾼을 데리고 와라. 그래서 현장에 데리고 왔지. 수갑 찬 채로 데리고 왔어요.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일단 유물 발굴이 최우선이니, 도굴꾼의 도움이라도 받으려 한 거야. 설득 끝에, 조 씨도 유물 발굴에 협조하기로 했어. 그렇게 최고의 문화재 전문가들과 최고의 특수부대, 그리고 전문 도굴꾼까지 한 배를 타고 다시 바다로 떠났어. ▲ 보물의 발견 도굴꾼 조 씨는 함장 옆에 서서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 해군이 가져온 최첨단 장비들은 쳐다보지도 않아. 그러면서 이리저리 가라고 지시하는 거야. 한 시간 움직였나? 갑자기 도굴꾼이 이래. 여기, 여기에 부표 띄우쇼 대충 눈짓으로 보더니, 갑자기 부표를 띄우라는 거야. 어떻게 아는 거냐 물으니, 하늘의 별을 보면 딱 알 수 있대. 이 말, 믿을 수 있겠어? 근데, 달리 방법이 없어.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도굴꾼이 짚어주는 세 곳에 부표를 내렸어. 일단 첫 번째 포인트에 해군 잠수부가 들어갔어. 그런데 실패. 못 찾았어. 이번엔 다른 부표에서, 두 번째 팀이 잠수했어. 그런데 또 실패야. 그러자 배 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어. 이래서 사기꾼 말을 믿을 수가 있나. 그놈 나중에 출소해서 또 한탕하려고 거짓말한 거 아냐? 어수선한 가운데, 마지막 부표에 세 번째 팀이 잠수를 준비했어. 이때, 이복성 중사가 들어갔어. 유속도 세고, 온통 펄밭이라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서클라인을 연결한 후 한 손으론 줄을 꽉 잡은 채, 다른 한 손의 감각에 의해서만 유물을 찾아야 해. 이복성 중사가 주변을 더듬으며 유물을 찾기 시작했어. 세 번째 팀 우리가 들어갔을 때, 안 보이니까 눈으로는 볼 수가 없고요. 눈 감은 상태죠. 손을 쭉 펄을 누르면서 훑으면서 쭉 가다 보니까, 술잔 비슷한 접시 같은 동그란 게 잡히더라고요. 이제 잡히니까 이거 같다라고 딱 감이 잡히더라고요.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곧바로 손에 든 물건과 함께, 바다 위로 올라갔어. 이복성 중사가 바다 위로 솟구치자 그 순간,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치기 시작했어. 이게 바로 그때 찍힌 사진이야. 발굴단이 최초로 발견한 유물. 연꽃무늬가 그려진 약 700년 전 원나라 접시야. 진짜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너무 기분 좋았죠. 야 내가 유물을 건졌어?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근데, 아직 놀라긴 일러. 그 이후에도 잠수부들이 들어갔는데, 들어가기만 하면 손에 도자기든 접시든 뭐든 잔뜩 들고 나오는 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 한두 점 있는 게 아니래. 다이버들이 들어가서 확인하니까 무진장이라는 거예요. 무진장.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그때는 다들 몇 개씩 들고 올라왔습니다. 두 번째 할 때는. 여기가 틀림없이 그 자리라고 하니까, 전부 다 열심히 했겠죠. 그러다 보니까 항아리도 들고 올라오고.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바닷속에서 보물들이 계속해서 올라왔어. 그렇게 발굴단은 10월부터 총 32일 동안 발굴작업을 했어. 그리고 약 2천 점의 유물을 건져 올렸어. 다이버들이 놀랬지. 도굴꾼 말을 들을 수 있나? 그래도 들어가 보자, 한건데.. 들어가 보니, 있다…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 부장 아직도 바닷속엔 수많은 유물이 잠들어 있어. 하지만, 발굴 작업을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어. 작업하는 사이 겨울이 찾아왔거든. 겨울에 잠수하는 건 무리야. 또 다른 문제는, 작업 가능한 시간이 너무 짧아. 바다의 유속과 날씨까지 모두 고려해 보면, 신안 앞바다에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한 달 정도야. 그리고 하루 중에 작업 가능한 '정조 시간'. 정조 시간은 하루에 2번, 하지만 이것도 어두운 밤일 땐 잠수를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일 년에 약 한 달,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 남짓만 안전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야. ▲ 700년 만에 나온 보물 본격적인 유물 발굴 작업은 그다음 해인 1977년에 다시 시작했어. 신안 바다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유물들을 쏟아냈어. 바다에서 나온 유물들, 한 번 봐봐. 접시에 항아리, 장식품까지 종류도 다양해. 어떻게 이 보물들이 형태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을까. 바닷속에 있는 펄, 그 펄층에 가라앉아서 부식이 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도자기 같은 경우는 워낙 강한 불에 구워졌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강도가 세고, 특히 유약까지 입혀서 훼손되지 않고 보존이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장성욱 학예연구사, 국립중앙박물관 거기엔 청자, 그릇 말고도, 별에 별 것들이 쏟아져 나왔어. 700년 전 중국에서 쓰던 주사위, 바둑알, 장기말 등. 특히 엽전만 무려 800만 개, 28톤이나 되는 양이 나왔대. 이 외에도 온갖 향신료, 비싼 목재 이런 것들이 쉴 새 없이 나왔어. 자, 그럼 궁금하지 않아? 대체 이 신안 앞바다에서 왜 이런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까? 그때, 발굴 현장에 있던 이호관 발굴부장이 해군잠수부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어. 웬 유물이 이렇게 많이 나오냐는 의심은 했지만 이렇게 한군데서 많이 나올 수가 없단 말이야. 이게 뭔가 좀 이상하다 했는데. 다이버들이 '배가 있습니다' 놀랐지 우리는. 배가 있다니. 그 펄 바닥에 배가 아직 살아있다니. 이게 믿어지질 않지. 몇 백 년이 지났는데. 펄에 묻혀있는 바람에 배가 남았어.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부장 바다 아래에, 배가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전설로만 들었던 보물선이, 대한민국 바다에 실존하고 있었던 거야. ▲ 바닷속 보물선 대체 이 배의 정체가 뭘까? 바다 아래서 건진 것 중에, 이런 게 있었어. 청동 저울추. 배에 걸어놓는 저울 추래. 잘 보면, 한자로 '경원로'라고 적혀있어. '경원'은 중국 저장성의 '닝보'라는 지역이야. 당시 원나라의 주요 무역도시였어. 이 배가 중국 닝보에서 출발한 무역선이었던 거야. 이건 뭘 것 같아? 종이가 없던 시절, 나무에 글씨를 쓴 건데, 이걸 '목간'이라고 해. 첫 번째 목간을 보면, 한자로 '지치 3년'이라고 쓰여있어. 이건 중국 원나라 연호로, 서기 1323년이라는 뜻이야. 그리고 다른 목간을 보면, 한자로 '동복사', 그리고 '조적암'이라고 적혀있어. 바로 일본에 있는 절 이름이야. 이 배가, 일본을 오가던 무역선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 바다에서 나온 도자기와 그릇들, 모두 일본으로 보낼 무역품이었던 거야. 당시 일본에서 중국 도자기가 인기가 많았대. 그럼 일본으로 가던 배가, 왜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일본으로 가던 중 태풍을 피하려다 신안 앞바다에서 좌초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대. 정리를 해보자면 이래. 1323년, 중국 닝보에서 도자기, 청자 등 무역품들을 싣고 가던 원나라 무역선이 일본으로 가던 중,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거야. 게다가 어느 날 동네 주민이 허겁지겁 오더니 이런 걸 보여주더래. 배가 정박할 때 쓰는 닻. 4년 전 그 어부가 닻을 건져 올렸는데, 어장의 그물추로 사용하다가 발굴단에 신고한 거야. 근데 이 닻의 크기가 엄청 커. 길이만 2m 20cm, 무게는 300kg. 이걸로 볼 때, 배의 길이만 최대 34m, 당시 적재량 200톤이 넘었을 거라 추정돼. 엄청 큰 배야. 발굴단은 유물을 찾으면서, 배를 인양할 계획을 세웠어. 먼저 유물이 나오는 포인트에 철제로 만든 그리드라는 걸 설치해. 그리드에 번호를 매겨서 유물들의 위치를 기록한 뒤, 부서진 배의 조각을 하나씩 연결하는 거야. 그렇게 발굴단의 발굴작업은 1984년까지, 9년에 걸쳐 이뤄졌어. 힘들었던 발굴 과정.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뱃멀미였다고 해. 사람이 노래져요. 멀미 때문에. 그 파도가 넘실거리는 데서 작업을 하는 거예요.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부장 또 펄과 조개껍데기 투성이었던 유물들을 일일이 손으로 씻어내느라 항상 온몸이 지저분했대. 저 같은 경우는 이제 그 유물을 펄이 묻었으니까 펄을 먼저 세척한 다음에 유물을 분리하고 하는 작업을 하는 거죠. 유물 발굴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상당히 청자가 빛깔이 좋아요. 그래서 그걸 보고 상당히 감탄을 했죠.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그 배에서 무려 2만 4천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어. 한 장소에서, 이렇게 많이 유물이 발견된 건 세계적으로 이례적이래. 세기의 발견이자, 엄청난 성과를 이룬, 최초 해저 유물 발굴인 거지. 그 당시에는 정말 꿈같은 일을 해냈구나 라는 생각 들고. 내가 근무하던 그 부대에서 이렇게 큰 일을 했기 때문에 부대도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이복성, 당시 SSU 잠수부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없으면 이건 할 수가 없어요.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공무원으로서 학예직으로서 내게 놓인 일을 한 것뿐이죠. 유문 있으면 됐지 뭐. 그냥 그것뿐이지. 추억이지.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부장 ▲ 보물을 훔치는 사람들 그렇게 발굴이 마무리되던 1984년, 강신태 반장에게 긴급하게 연락이 한 통 왔어. 전화가 온 곳은 문화재관리국 사범단속반. 문화재 도난이나 도굴 사건을 수사하는 전담 부서야. 누군가 문화재를 암거래하려고 한다는 첩보였어. 근데 그 문화재가, 바로 신안 유물이라는 거야. 강신태 반장이 신안 유물 발굴을 담당했으니, 감정 요원으로 함께 가 달라는 거야. 밀매꾼들, 어떻게 잡아야 할까? 강신태 반장은, 덫을 놨어. 구매자인 척, 밀매꾼에게 접근한 거야. 종로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약속한 날,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남성 두 명이 두리번 두리번 대며 걸어오는 거야. 딱 봐도, 그놈들이야. 광주에서 판매책 2명이 올라온 거였어. 이들과 대면한 강신태 반장이 입을 열었어. 아이고, 식사는 하셨고? 그래서 어떻게... 물건은? 그랬더니 남성 한 명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쓱 꺼냈어. 신안 유물, 맞았을까? 사진을 보여주는데 보니까 이제 신안 유물이 맞아. 그래서 이건 얼마나 요구를 하느냐 몇 점 있냐니까, 한 30점 있는데 한 1억 5천만 원 된다는 거야.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30점을 1억 5천 만원에 팔겠대. 강신태 반장은 유물을 직접 보고 사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그 유물들, 광주에 있대. 곧바로 강신태 반장은 밀매꾼들과 함께 광주로 내려갔어. 일당들은 강신태 반장을 광주의 한 호텔로 데려갔어. 밤 9시쯤 됐나? 호텔 방문이 열리더니, 한 남성이 들어와. 딱 보니까 이놈이 바로 주범 같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놨어. 가방에서 꺼낸 건 신안 유물 3점. 그걸 본 강신태 반장은 범인들에게 이거 가지고는 택도 없다. 이건 뭐 돈 안 나가는 거다. 1억 5천만 원짜리 거래를 하면서 장난할 수가 있느냐 라며 화를 냈어. 그러자 범인들이 내일 아침에 만나자며 자리를 떠났어. 그리고 다음 날 아침 10시. 근처에서 다시 주범을 만나기로 했어. 강신태 반장이 일당들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차를 타고 주변을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거야. 누가 주변에 있나, 따라오는 사람이 있나, 감시하는 거지. 이윽고, 이들은 또 다른 호텔에 들어갔어. 근데 이 주범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안 나타나. 강신태 반장,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해.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던 그때, 문이 탁 열리더니, 주범이 모습을 드러냈어. 그 순간! 꼼짝 마, 경찰이다! 근처에 있던 경찰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어. 강신태 반장은 딱 주범만 노렸어. 딱 들이닥치니까 후닥딱 이제 튀는 거지. 그래서 나는 안 되겠다 그래가지고 주범, 유물 가져온 놈만 딱 잡 은 거지. 난 오직 이 친구만 잡으면 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일을 한 거죠. 그래서 머리 뒤를 잡고 뒤에 허리띠를 잡은 거예요. 잡고는 얼마나 힘이 센지, 나도 힘이 세지만. 5층부터 1층까지 같이 굴렀어요.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강신태 반장은 주범을 향해 몸을 던졌어. 그리고 주범의 손에 드디어 수갑을 채웠어. 그렇게 일당 세 명을 체포하고, 이들이 가지고 있던 신안 유물 32점을 회수했어. 이건 전부, 신안 유물을 훔쳐서 팔다가 검거된 '신안 유물 도굴 사건'을 정리한 거야. 그런데 날짜를 보면, 좀 묘해. 모두 국가가 발굴 작업을 하던 그 기간에 일어난 일이야. 바다에 발굴단과 특수부대 요원까지 있었는데도 도굴을 했던 거야. 처음에 유물을 신고했던 최평호 씨, 기억나? 신고한 뒤부터 근무지로 그를 찾는 전화가 계속 왔대. 돈을 줄 테니, 유물이 나오는 위치만 알려달라면서. ▲ 발굴단 vs 도굴꾼 당시 문화재관리국에선 발굴 지역 2km 반경을 항해 금지구역으로 정했어. 인근에는 감시 초소까지 설치됐어. 초소에서 교대로 24시간 동안 감시를 했어. 바다 위에서 발굴단이 파도와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육지에서는 도굴꾼들과 전쟁을 하고 있었던 거야. 도굴꾼은 팀을 어떻게 꾸릴까? 먼저 물주가 팀원을 모집해. 바닷길을 잘 아는 주민, 경력이 많은 잠수부 등으로. 그럼 감시를 피해 바다로는 어떻게 나갈까? 이들은 모터 소리가 나지 않는 배까지 직접 만들었어. 처음에 발굴단은 유물이 가라앉은 위치를 알아내려고 애를 먹었잖아. 그럼 도굴꾼들은 유물을 어떻게 찾았을 것 같아? 사실 이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발굴단이 표시해 놓은 그리드 부표가 딱 있었거든. 고생할 필요도 없이 그것만 딱 들어가면 바로 유물 위치가 나오니깐. 그냥 장님이 눈 감고 들어가 건지다시피 했죠. -이호관,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부장 부표에 도착하면, 은밀하게 잠수를 시작해. 신안 바다 물속은 유속도 빠르고, 도굴하는 시간이 밤이라 앞은 더 깜깜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악으로 깡으로 도굴하는 거야. 그렇게 목숨을 걸고 훔친 도굴품을 누군가는 비싼 값에 팔았고, 누군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은밀하게 숨겨놨어. 그 뒤로 문화재 사범단속반에서 쭉 일하게 된 강신태 반장은 경찰 검찰과 합동 수사를 하며, 신안 유물 도굴꾼들을 잡는 데 사활을 걸었어. 근데, 그의 수사방법이 대단했어. 그에게 이런 전화가 와. 아유 반장님, 접니다. 왜 그때 광주에서 잡혔다가 얼마 전에 나온 놈 있잖아요. 걔 이번에 또 작업 들어간다네? 강신태 반장이 잡았던 밀매꾼 중 한 명이 이렇게 정보를 알려주는 거야. 어떻게 된 일일까? 직접 들어봐. 그 친구와 차 타고 가면서 대화를 해보니까 대화가 통하는 친구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이걸 없애야 되지 않느냐' 했더니, 자기도 이번 기회에 많은 걸 느꼈다, 수사에 또 협조하겠다 그래. 그래 검사하고 약속을 해서 구속을 안 하고 불구속했죠. 그다음에 정보를 주기 시작한 거죠. 내가 단속반에 갔더니 정보가 오는 거예요. 이런 정보가 없으면 안 되죠. 그게 수사의 기법이에요. -강신태, 당시 문화재관리국 소속 직원 이게 보니까, 서로 다 연결이 돼 있어. 그래서 한 명을 잡으면 줄줄이 잡혀. 그런데, 아무리 일망타진을 해도, 암거래한다는 첩보가 계속 들려와. 도굴꾼들의 일종의 '보험' 때문이야. 1980년, 광주에서 수상한 소문이 하나 돌았어. 2년 전, 신안 유물을 도굴해서 팔다가 검거된 이 씨 형제가 있는데, 그 형이 출소한 뒤부터, 동생의 장인 집, 그러니까 사돈집을 매일 들락날락한다는 거야. 사돈집에 매일 갈 이유가 뭐가 있을까? 뭔가 일을 꾸미는 것 같지? 그래서 형사들이 사돈집에 온 이 씨를 덮쳤어. 그런데 이 씨가, 형사들을 보자 오히려 하소연을 하는 거야. 형사님, 제발 저 좀 도와주십쇼, 내가 이놈의 유물인지 고물인지 때문에 아주 돌아가시겄소. 들어보니까 이래. 같이 도굴하다 잡힌 동생이 먼저 출소했는데, 그때 형한테 훔친 유물들을 잘 숨겨놨다고 말했대. 그리고 몇 달 뒤 형이 출소를 했는데, 큰 문제가 생겼어. 글쎄 동생이 사망한 거야. 팔아넘긴 유물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홧병으로 사망했대. 그럼 형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그걸 찾아야지.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동생이 숨겼다는 유물을 못 찾은 거야. 결국 찾다 찾다, 동생의 장인 집까지 왔던 거지. 그때부터 형사들이, 이 형과 함께 동생의 처갓집을 뒤지기 시작했어. 경찰은 집을 샅샅이 뒤지기로 했다. 유물이 상하지 않도록 도굴꾼들이 사용하는 쇠꼬창이로 땅속을 찔러갔다. 6시간에 걸친 수색 끝에 여기다 하는 함성이 터졌다. 헛간 잿더미 밑바닥에서 청자접시 90점 등 2백 40점의 송원대 유물이 가마니에 싸인 채 묻혀 있었다. -당시 기사 내용 中 이뿐만이 아니야. 근처 유채밭 한복판에 묻힌 220점의 유물을 또 발견했어. 이때 회수한 유물만 460점이 넘었대. 이런 식으로 도굴꾼들은, 도굴한 유물을 여러 군데 묻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서 팔아먹은 거야. 마치 적금이나 보험처럼. 이런 식으로 검거된 도굴꾼은 300여 명이었어. ▲ 모두의 보물 도굴범으로부터 회수한 유물만, 무려 2천 점이 넘는대. 발굴품과 도굴품까지, 신안 앞바다에서 모두 2만 6천여 점의 유물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어. 그 보물들, 지금은 어디 있을까? 박물관의 철통보안 속에, 잘 보관돼 있어. 현재는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대. 신안해저유물은 발굴 이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왔고요.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서 전시, 보존, 관리 중에 있습니다. -장성욱,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신안해저유물은 수중고고학의 처음, 효시가 되었는데요. 이 효시를 기반으로 해서 그다음부터 우리나라의 수중고고학의 발전, 그리고 조사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고요. 내 눈앞에 있는 손도 식별이 안되는 곳에서 잠수하는 기술은 우리나라가 제일 뛰어난 수준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성욱,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모두가 힘쓴 덕분에,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유물들은 이제 우리가 원하면 언제나 볼 수 있는 소중한 보물로 빛나고 있어. 아마 이건 그 어떤 화폐로도 값을 매길 수 없을 거야. 1984년도, 신안 발굴작업이 끝나고도 도굴한 신안 유물을 밀매하는 사건은 계속 발생했어. 언제까지 사건이 있었을 것 같아? 마지막 사건이, 바로 2019년. 불과 6년 전이야. 30년이 넘게 신안 유물 57점을 보관하다가, 일본에 반출하려던 남성이 또 검거된 거야. 피의자는 30여 년 동안 자택과 친척 집에서 유물들을 보관하다가 사회적으로 신안 유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판단되자 지난해 8월부터 국내와 일본에서 밀매를 시도했습니다. -2019년 뉴스 보도 中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재가 살아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도 있는 걸 거야. 그런 문화재를 소중히 보호하는 건,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권리이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어부가 건진 도자기, 무려 3억 원 …'꼬꼬무',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 조명
등록일2025.01.02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조용한 마을을 뒤흔든 신안 바닷속 유물의 정체와 유물들이 세상 밖으로 빛을 보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공개한다. 2일 방송될 '꼬꼬무'는 '보물을 찾는 사람들-1976 신안 보물선' 편이다. 때는 1976년 1월, 전라남도 신안군 검산마을. 이곳은 몇 명의 어부들이 사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목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 일을 하던 최평호 씨는 벌초를 하러 막 고향 신안으로 내려온 참이었다. 벌초가 끝나고, 형제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던 그는 형님에게서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어업을 하던 형님이, 얼마 전 뭔가를 건졌다는 것이다. 형님이 신안 앞바다에서 건진 건, 높이 44cm, 둘레가 65cm나 되는 큰 청자였다. 오묘하고 예쁜 자태에 보통 물건이 아니라 예상한 최평호 씨는 도자기를 신고하기로 한다. 군청 공무원의 도움으로 감정을 맡기고, 며칠 뒤 감정 결과가 나오자 최평호 씨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무려 700년 전, 중국 원나라 때 만들어진 청자였던 것. 당시 10만 달러, 한화 3천만 원짜리로, 지금으로 치면 3억 원 상당의 도자기였던 셈이다. 알고 보니 마을에선 청자를 건져 올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마을에 굴러다니던 개밥 그릇과 재떨이가 3천만 원짜리 보물일 수도 있다는 것. 마을 앞바다가 비밀을 품은 거대한 보물 창고였던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마을에 은밀히 찾아온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도굴꾼. 그들은 신안 앞바다에서 무려 117점을 도굴해, 한 점당 최대 500만 원에 팔다 검거됐다. 이 소식에 문화재관리국은 발칵 뒤집혔다. 도굴꾼으로부터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관리국 직원과 문화재 전문 교수들이 나섰다. 하지만 문화재 발굴에 일가견이 있는 그들도 신안 앞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얼어붙고 말았다. 당시 해저에서 유물을 발굴한 사례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조사단은 해군 해난구조대, SSU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유속이 험한 서해 바다, 망망대해에서 유물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발굴단은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특별한(?) 방법을 동원해, 대한민국 최초 해양 유물 발굴단은 바다로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모습을 드러낸 첫 유물. 그런데,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해군들이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유물이 무진장 많다는 것. 도자기에 엄청난 양의 엽전까지, 대체 신안 앞바다에서 유물이 잔뜩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실을 안 전국의 도굴꾼들은 신안 앞바다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유물을 지키려는 발굴단과 훔치려는 도굴꾼의 전쟁에 대해, '꼬꼬무'의 장트리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이 전한다.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에는 가수 겸 배우 이준호, 배우 김국희, 그룹 오마이걸 멤버 유빈이 리스너로 함께 했다. 이준호는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등장했다. '만약 오늘 이야기가 영화로 나오면 어떤 배역을 맡고 싶은지' 묻는 장현성에게 이준호는 줄곧 한 역할만을 답해 모두를 포복절도하게 했다. 캐스팅만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준호가 일찌감치 찜한 등장인물의 정체는 누구일지 관심이 모인다. 김국희는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자리했다. 등장부터 장도연과의 85년생 동갑내기 케미를 선보인 그녀는 녹화 말미, 돈보다 귀한 가치를 알게 되었다며 인상적인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야기의 전말이 공개된다.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는 유빈이다. 풋풋하고 밝은 모습으로 단숨에 '리액션의 여왕'으로 등극한 유빈은 장성규를 놀라게 할 정도로 엄청난 추리력까지 선보이며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최초였기에 험난했지만, 최초여서 가슴 벅찬 이야기 '보물을 찾는 사람들-1976 신안 보물선' 편은 2일 목요일 밤 10시 10분 방송될 '꼬꼬무'에서 공개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내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 …영화 '너는 내 운명' 실제 주인공의 엔딩은?
등록일2024.12.28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6일 방송된 '너는 내 운명'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하이라이트 리더 윤두준, 배우 신소율, 개그맨 정성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여수 에이즈 확산 논란 때는 2005년의 어느 날. 한 남자가 보건소 검사실에서 채혈을 하고 있어. 이 남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주삿바늘을 쳐다봐. 필요한 혈액은 단 5cc, 적은 양이지만 이건 아주 중요한 피야. 주사기에 점점 붉은 피가 차오르기 시작해. 그런데 바로 그때, 컷! 좋습니다! 오케이! 라는 우렁찬 소리가 들려와. 지금 여기는, 영화 촬영장이야. 주사기 앞에서 채혈하는 장면을 찍은 남자는, 배우 황정민이야. 피 한 방울의 의미가 정말 중요했던, 어떤 사람의 실화를 다룬 영화를 촬영 중이야. 촬영 장소는 여수 보건소. 그즈음에 여수 일대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었어. 그날에 대해 알기 위해,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려볼게. 때는 2002년 6월. 부산에 있는 어느 식당 안이야. 구석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식당 출입문을 주시하고 있어. 그때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와. 앉아있던 사람들의 눈이 번쩍 해. 저 여자 맞지? 사람들이 여자를 향해 다가가. 그리고 여자 앞을 쓱 가로막았어. 선아(가명) 씨, 잘 지냈어요? 선아라고 불린 여자는 당황한 듯 깜짝 놀라. 선아 씨를 찾은 사람들은 보건소 직원들이야. 직원들은 그녀를 경찰서로 인계했어. 그리고 선아 씨가 경찰서에 간 후, 그 소식은 전국에 알려졌어. 당시 상황을 전한 뉴스야. 에이즈에 걸린 20대 여성이 윤락 행위를 해오다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스물여덟 살 구 모 씨가 에이즈 환자로 판명된 것은 98년 3월. 2000년부터는 1년 7개월 동안 전남 여수의 윤락가에서 윤락행위를 해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선아 씨의 병명은 에이즈. 근데 윤락행위를 했다는 거야. 에이즈 환자가 윤락행위를 하는 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따라 처벌 대상이야. 성매매도 당연히 범죄지만, 에이즈가 걸린 환자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 매개 행위를 해서는 안돼.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의 징역을 받아. 이 뉴스가 보도되자, 특히 더 발칵 뒤집힌 지역이 있어. 바로, 선아 씨가 윤락행위를 했다는 전남 여수야. '에이즈를 퍼트린 마녀다', '에이즈 테러다', '복수극이다'라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여수는 에이즈로 공포의 도시가 되어 버렸어. 그런데 이렇게 난리가 난 상황에, 한마디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진짜 국민들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감이 최고였어요 그때가. 누구 하나 나왔다 그러면, 정말 난리가 나는 그런 시기였거든요. 그리고 이 질환은 어쨌든, 그 당시에 만약에 보건소에 와서 이 검사를 받는다면, 내가 윤락가에 가서 돈을 주고 성매매 행위를 한 걸 누군가 알게 되잖아요. 윤락가에 갔었는데 차마 검사를 할 용기는 안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고 또 '언제쯤 검사를 해야 하냐', '한 번만 해도 되냐' 궁금은 한데 용기가 없어서 전화로 계속 질의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저희들이 계속 설득을 해요. 전화가 오면. '검사 안 받고 계속 걱정만 하시면 평생을 이렇게 걱정 속에서 살게 될 거다' 저희가 기억하기로는 가장 검사를 많이 했던 날이, 한 200명까지 검사를 하긴 했었어요. -신미숙, 당시 여수 보건사업과 임상병리실 근무 그렇게 수천 명의 남자들이 검사를 받으러 왔어. 근데 윤락가를 직접 다녀온 사람 말고도,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또 있어. 남편을 의심하는 아내들, 유흥 업소 종사자들, 심지어 인근 고등학생들까지. 그렇게 보건소에는 두려움을 떨다가 겨우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이어졌어. 그런데 이 사람들의 행동에 공통점이 있어.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은 절대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 사람이 없을 때 맞춰 오거든.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검사를 받은 게 소문이라도 날까 두려운 거야. 그리고 한결같이 '진짜 에이즈에 걸리면 죽나요?'라는 질문을 했대. 에이즈에 감염됐다고 곧바로 죽는 게 아니야. 그런데 '에이즈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는 오해가 만연했던 때야. 에이즈에 걸려도 약을 잘 먹으며 관리하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당시 에이즈는 죽음의 병, 공포 그 자체였어. ▲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 그런데, 세상의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로, 선아 씨의 뉴스가 반가운 사람이 있어. 바로, 선아 씨의 남편 박부현 씨. 선아 씨를 찾았다는 소식은 남편에게도 전달됐어. 이 분이 황정민이 연기했던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이야. 2005년 개봉했던 황정민,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 당시 국내 멜로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이었어. 에이즈에 걸린 여자를 사랑한 한 남자의 순애보를 그렸지. 이 영화가 박부현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야. 영화 속 시골 노총각 석중(황정민 분)과 다방 종업원 은하(전도연 분)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에이즈란 병을 극복했을까? 영화의 결말 이후로 알려지지 않은 실제 이야기는 어떨까? 그래서 '꼬꼬무'가 직접, 남편 부현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어. 김해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제일 처음 알았죠. 얼른 전화 받았죠. 전화 받아보니까 '김해 경찰서로 빨리 오시오'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보니까 진짜 거기 있더라고요. 에이즈 때문에 잡혀 들어갔다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충격을 얼마나 받았겠습니까 제가.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는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던 걸까. 그리고 영화 속 사랑은 현실에도 존재했을까. 한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그 순간으로 가볼게. 때는 1999년 봄. 김해의 어느 시골 마을이야. 부현 씨는 부지런한 농사꾼이야. 자기 농사도 짓고, 소작도 하고, 가축도 키우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장가가 늦어졌어. 서른아홉 살, 나이 꽉 찬 노총각이야. 이런 부현 씨에게 후배 하나가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어. 얼마 후, 하얀 탱자나무 아래 버스정류장에 부현 씨가 서있어.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이야. 버스에서 한 여자가 내렸어. 그때 아마 봄날이었지. 꽃 피고 새 우는 봄인가 싶어. 버스를 내려서 거기서 두리번두리번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저게 누구고' '저게 맞는가' 하고 보니까 맞더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눈부신 햇살 속 그녀가 한 발자국씩 다가와. 점점 얼굴이 보이는데, 갑자기 세상이 슬로비디오처럼 바뀌는 마법이 펼쳐졌어. 두 사람의 핑크빛 첫 만남이었어. 사람이 귀엽게 생겼더라고 예쁘고. '설마 이런 여자가 나한테 오겠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어요. 그래서 첫눈에 내가 반했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는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어.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부현 씨. 대뜸 날 좋아할 수 있겠나? 라며 그녀에게 직진했어. 첫 만남 뒤 선아 씨가 부현 씨네 시골집에 놀러 왔다가, 그대로 같이 살게 됐어. 주위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지. 여자가 너무 급하게 눌러앉는 게 수상하다고. 나이차도 큰데, 여자가 다른 거 노리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기우였어. 두 사람은 냉수 한 그릇 떠 놓고, 그릇 옆에 초 하나를 세우고, 나란히 앉았어. 지금은 이렇게 소박하게 하지만, 나중에 돈 벌어서 멋진 결혼식을 하자고 약속하며, 그렇게 둘만의 작은 결혼식을 올렸어. 다 해주고 싶데요 막.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 여자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한창 농사일을 하다 보면, 저 멀리서 선아 씨가 새참을 들고 왔어. 아내는 김밥을 잘 쌌어. 집에 있는 나물, 갖가지 반찬들을 넣어 만든 아내표 김밥이 그렇게 맛있었어. 사람이 활발하고 좀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동생이 없다 보니까, 항상 내 동생 같기도 하고, 아내 같기도 하고… 내가 제일 기억나는 게 김밥. 김밥을 제일 많이 먹은 것 같아. 내가 그래서 항상 '너 김밥 장사해라' 그랬어.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봄에는 오토바이 타고 벚꽃놀이 가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 끼얹으며 꺄르르 웃고, 가을에는 같이 단풍구경 다니며, 두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 내가 등허리 업고 막 쫓아다니고 그랬습니다. 내가 많이 업고 다녔습니다. '그래 좋나? 좋다' 이러면서 손바닥을 팍팍 치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아내가 좋아했던 꽃은 들국화였어. 뒷산에 올라가면 들국화로 화관을 만들어서 머리에 씌워주곤 했어. 산에 올라가면 들국화가 있잖아요. 들국화를 모자같이 만들어서 탁 끼워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생일이면 근사한 케이크는 없어도, 초코파이면 충분했어. 서로의 마음은 누구보다 서로가 잘 아니까. 비싼 옷, 값나가는 보석은 못해줘도, 오순도순 함께 있는 것만으로 큰 기쁨이야. 그때는 참 저한테는 완전 봄날이고. 서로 이렇게 뽀뽀도 하고. 그냥 이렇게 안으면서 뽀뽀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가끔씩, 아내가 남모르게 눈물을 훔쳐. 뭔가 고민이 있는 거 같아.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결혼을 후회하나?' 부현 씨는 아내 걱정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사실은 자기가 전에 한번 결혼한 적이 있었고, 딸도 하나 있다는 거야. 그 딸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는 거야. 아내의 고백에도 부현 씨는 괜찮다, 다 지난 일 아니냐 며 감쌌어. 그런 거는 신경 안 썼어요. 집에 있으니까, 나는 있으면 행복한 거예요 그냥.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오히려 부현 씨는 조금씩 돈이 생기면 아내에게 건넸어. 그러면 아내는 그 돈을 가지고 어딘가에 갔다가 돌아왔어. 부현 씨는 그저, '딸 보러 갔겠거니' 생각하며 묵묵히 기다렸어. 자기가 낳은 딸이니까 보고 싶겠지 아마. '그래서 아마 왔다 갔다 안 했겠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갔다 하면 일주일은 있다가 오더라고. 그냥 '갔다 왔나, 잘 갔다 왔나' 이렇게 하고 말았어요. 그냥 '너만 돌아오면 됐다' 그렇게 말했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어. 남자는 부현 씨를 향해 대뜸 고함을 지르더니 욕설을 내뱉어. 선아 씨의 전남편이었어. 부현 씨는 그에게 차분히 원하는 게 뭐냐 고 물었어. 근데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막혀. 선아 씨를 데려가겠다는 거야. 속이 뒤집어지는 입장이지. 오장육부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더라고.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니, 돈이라는 거예요. '그럼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했더니 '소 한 마리 값을 줘야겠다'고 그러더라고. 차라리 여자를 포기할까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래도 나하고 같이 만났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고. 그 돈을 다 줘버렸어요. 다 가져가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결국 부현 씨는 애써 키운 소를 팔아 그 돈을 전남편에게 건넸어. ▲ 에이즈의 공포 그즈음 김해 보건소는 부산 보건소에서 전화를 받았어. 자기들 쪽에서 에이즈 검사를 한 분이 김해로 주소 이전을 했는데,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는 거야. 당시엔 보건당국이 에이즈 환자를 의무적으로 관리했어. 환자의 주거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지. 부현 씨가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못 보던 사람들이 집에 와있어. 보건소 직원들이야. 아내에게 알려줄 게 있어서 집을 찾아왔대. 부현 씨는 무슨 일이지 짐작도 안가. 그런데 그때, 아내와 이야기를 마친 직원들이 부현 씨를 따로 불러 조심스레 말을 건네. 아내 선아 씨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약을 갖다가 한 봉지를 주고 가더라고. 그리고 나보고 콘돔 같은 걸 한가득 주고 가고. 그래서 '이걸 왜 주고 가냐' 했더니, 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왜 안되느냐' 물어보니까, 그래서 그때 얘기를 하더라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우린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이게 무슨 이런 궤변이 있나' 내가 그랬어요. 그리고 멱살도 잡았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부현 씨는 너무 화가 나. 내 아내가 에이즈라고? 에이즈라는 병이 뭔지, 부현 씨도 TV에서 본 적이 있어. 몸에 반점이 생기고, 불치병이라 알려졌던 병. 내 아내가 그런 병에 걸렸다고? 매일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깨끗하게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누구보다 밝고 활발한 이 사람이? 나도 우리 선아도 건강하기만 한데 무슨 에이즈야! 화가 나서 당장 채혈을 했어. 검사 결과, 부현 씨는 음성이었어. 근데 선아 씨는, 재검 결과도 양성이 나왔어. 이젠 사랑하는 사람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럼 선아 씨는 어쩌다가 에이즈에 걸린 걸까. 질문조차도 상처가 될 수 있기에, 부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어떤 이유로 병에 걸렸든 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 이야기를 내가 물어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상대방이 싫어하는 건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넘어간 거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럼 에이즈는 인류 역사에서 언제부터 발병한 걸까. 인류가 에이즈란 병을 알게 된 건 1981년. 뉴욕의 한 신문에, '무서운 미지의 병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처음 보도됐어. 동성애자 41명에게서 발견된 희귀 암 진단 후 24개월이 채 되지 않아 8명이 사망했다 발병원인은 알려지지도, 밝혀지지도 않았다 에이즈 하면 떠오르는 증상인 피부 반점. 이 반점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피부에 발병하는 악성 종양이야. 어떤 약도 효과가 없어. 면역 기능이 떨어지며, 사소한 감염에도 죽음에 이를 수 있어. 그야말로 미지의 질병의 출현이었어. 인류는 공포에 휩싸였어. 시기도 20세기가 끝날 무렵이라, 세기말 징조라는 말까지 나와. 인류문명은 그동안 수많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러왔어. 가장 가까운 최근 바이러스는 코로나19. 모두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었지. 그전에는 조류독감, 메르스, 에볼라, 신종플루, 사스, 그리고 좀 더 옛날로 가면 흑사병까지. 이렇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 수많은 바이러스가 있었어. 그런데 그중 에이즈는 '현대판 흑사병'이라 불리며, 사형 선고로 여겨진 거야. 프레디 머큐리, 매직존슨 같은 유명인도 에이즈 감염자였지. 에이즈 발병 초기에는 주로 동성애자와 마약중독자가 감염됐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차가웠어. 그냥 병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차별과 냉대를 받았지.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숨겨야만 하는 병이 된 거야. 우리나라에 에이즈의 공포가 드리운 건, 1985년이야. 에이즈 감염자와 사망자의 수가 마구 늘어가는 가운데,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어. 병원에서 수혈로 인한 감염자도 나왔어.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 전직 교사가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잘못 알고, 3살 난 딸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자신과 딸의 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반점이 생기자 에이즈 감염 증세로 착각하고 고민 끝에 동반자살을 결심했다. 결혼 전에 문란했던 과거로 인해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만 앞섰지, 정확한 지식이 부족한 데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정밀조사 결과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뉴스 보도 中 ▲ 내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에이즈는 무서운 병이지만, 부현 씨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어. 아내가 감염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 아내가 집을 나가는 일이 잦아지더니, 아예 사라진 거야. 김해 바닥 온 곳을 다 돌아다녔어요. 그랬는데 이거 뭐 만날 수가 있나. 가보면 없고, 여기도 가보면 없고. 저기도 가보면 없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주변 사람들은 이제 잊으라고 모두 말렸지만. 부현 씨는 사라진 아내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그때는 내가 많이 기다렸죠. 오직 그 사람 생각 밖에 없었으니까.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렇게 시간은 1년 반이 지났고, 경찰서에서 드디어 선아 씨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거야. 부현 씨는 허둥지둥 경찰서로 달려갔어.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가출 직후 일자리를 구하던 아내는, 어떤 남자에게 속아 차에 탔다가, 여수 윤락가에 팔려갔다는 거야. 도망 나오고 싶어도, 촘촘한 감시망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대. 담당 보건소는 선아 씨가 연락이 닿지 않자 행방불명자로 처리해서 질병당국에 보고했어. 그러던 중 방역 당국의 추적망에 걸린 거야. 그럼 선아 씨는, 애초에 왜 부현 씨를 떠난 걸까. 남편에게 병을 옮길까 싶어, 그게 두려웠대. 모르겠어요. 왜 떠났는지… 그냥 갑자기 떠나고 싶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남편에게 에이즈를) 옮길까 싶어서. 나한테 옮을까 싶어서… 나도 이 사람한테 옮기기 싫은 거야. 병도, 내가 덮어쓰고 가지. -선아(가명), 박부현 씨의 아내 하지만 선아 씨가 법을 어긴 건 사실이야. 그 후 유치장에 수감된 선아 씨. 여기서 담당검사가 불편한 건 없는지 물었는데, 이 질문에 대한 선아 씨의 대답 때문에 유치장 안이 난리가 났어. 모기가 많아서 불편해요. 선아 씨를 문 모기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모든 수감자들이 공포에 질려버린 거야. 그럼 에이즈는 모기를 통해 감염될까? 그럼 침, 땀, 눈물로는? 악수나 포옹은 어떨까? 정답은, 전부 '아니요'야. 모기가 흡입하는 혈액의 양이 매우 적고, 모기의 체내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가 없대. 그래서 전파가능성이 없어. 침, 땀, 눈물에도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긴 하지만 전염시킬만한 양이 아니야. 피부 접촉으로도 전염이 안돼. 에이즈 바이러스는 상처를 통해 혈액이 몸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감염이 안돼. 하지만 잘못된 인식으로, 에이즈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꺼려했어. 결국 선아 씨는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수감됐어. 아내가 에이즈 판정을 받고 감옥까지 갔어. 그런데도 부현 씨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어. 묵묵히 농사를 지었어.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했어. 그 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아내에게 면회 가기 위해서. 면회도 내가 한 번도 안 빠졌어요. 그때는 힘든 것도 없어요. 그게 낙인 데요 뭐. 집에서 교도소까지 2시간이야. 왕복으로 하면 4시간을 오토바이로 오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도 선아 씨의 얼굴을 봐야 했어. 에이즈 환자가 가장 고통받는 게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외로움이래. 그런데 선아 씨는 그런 걱정이 없었어. 면회실 칸막이 사이로 두 사람은 미래를 꿈꾸며 대화를 나눴어. 마치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과 전도연이 면회실에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절절하게 대화하던 그 명장면처럼. 헤어진다는 생각은 꿈도 못 꾸죠. '널 사랑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몸 열심히 돌보고'. (출소하면) '우리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안 가본 데도 가보고 그렇게 한번 해보자' 그랬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리고 두 사람은 편지도 주고받았어. 잘 지내고 있지? 생각이 많이 나. 당신하고 나하고 처음 만났을 때, 절에 놀러 가 사진 찍고 할 때, 당신이 나한테 김밥 재료 사 왔을 때가 많이 생각나.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어. 그리고 당신이 내 옥바라지한다고 고생하고 있는 것 다 알아. 사랑하는 부현 씨, 내가 좀 더 당신 신경 썼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 참 후회하고 있어. 만약에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어. 내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해줘. -남편에게 쓴 선아 씨의 편지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8개월. 시간이 지나 추운 겨울, 부현 씨는 밤새 한숨도 못 잤어. 8개월이 지나 선아 씨가 출소하는 날이거든. 교도소의 철문이 열리고, 드디어 아내의 모습이 보여. 이젠 꼭 안아줄 수 있고, 손을 잡아줄 수 있어. 바로 안았죠. 그리고 울었죠 둘이. '우리 열심히 살자, 남 의식하지 말고'. '우리끼리만 얼굴 보고 살자'...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문제가 있어. 선아 씨가 집으로 들어오기를 주저해.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온 동네에 소문이 나서, 그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가 너무 두려운 거야. 부현 씨는 농사일과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도시에 방 한 칸을 잡았어. 두 사람을 모르는 곳으로 간 거야. 하지만 도시 생활은 녹록지 않았어. 에이즈 가족이라는 딱지를 단 채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거든. 그래도 박스 줍는 일과 작은 장사를 시작했어. 소박한 시작이지만,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대. ▲ 영화가 아닌 현실의 엔딩 시간이 흘러 2009년. 선아 씨가 출소한 지 6년이 지났어. 두 사람은 특별한 장소로 갔어. 사진관에서 웨딩촬영을 하기로 했거든. 함께 꿈꿔왔던 결혼식을 준비하게 된 거야. 돌고 돌아서 만난 지 10년 만에 드디어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어. 가족, 친구들의 축복 속, 선아 씨는 에이즈 환자가 아닌, 신부로 축하를 받았어. 늘 꿈에 그리던 순간이야.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제주도로 신혼여행도 갔어. 그리고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어. 그럼 이 두 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지나간 이야기는 다 잊어버리고, '우리 새 마음, 새 뜻으로 살자' 이랬는데. 자꾸 아이 때문에 찾아오고 또 가고, 또 왔다 갔다 하고 이러니까. 집을 나가서 그 뒤로 행방불명돼서 못 찾겠는 거예요. 이거 뭐 만날 수가 있나. 가보면 없고, 여기도 가보면 없고, 저기도 가보면 없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가 마음을 못 잡았는지, 또 집을 나갔다는 거야. 부현 씨는 이번에도 역시 돌아오기만을 묵묵히 기다렸어. 많이 기다렸습니다. 그때도 오기만을 기다렸죠. '그 애가 내 아이였으면 얼마나 좋겠나' 싶은 마음이 드는 거야.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어느 날, 부현 씨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어. 그때가 아마 번개가 엄청나게 친 날이에요. 비도 오고 밤에. 그런데 누가 왔는지, 막 문을 두드리고 이러는데 내가 나가보니까. 아내가 왔는가 싶어서 문을 몇 번을 열어봐도 없어요. 그랬는데 그날따라 자꾸 이상한 번호가 뜨더라고. 그래서 '이게 무슨 번호고. 모르는 번호인데 받아서 뭐 하겠느냐'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냥 내버려 뒀는데, 계속 전화가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받아보니까, '김해 경찰서 누구 경찰관입니다' 이러더라고. 저보고 '어디 병원 빨리 가보세요' '선아 씨가 죽었습니다' 이러는 거야. 나는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갔는데, 가보니까 처량하게…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납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눈물 밖에 안 납니다.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가 세상을 떠났어. 결혼식을 올리고 불과 다섯 달만의 일이야. 결혼식 때만 해도, 선아 씨가 건강했었는데,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었나 봐. 에이즈에 감염됐어도 약을 잘 복용하고 관리만 잘하면, 문제없이 살 수 있는데. 아마도 약을 잘 챙겨 먹지 않았던 거 같아. 부현 씨는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선아 씨가 생각난대. 그녀와 함께 한 벚꽃구경, 물놀이, 단풍구경.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선아 씨가 가장 좋아했던 들국화. 그 꽃을 보면 항상 아내가 떠올랐대. 이걸 가져다가 뭉쳐서 목에다 걸어주고, 귀에도 꽂아주고 했는데.. 부현 씨가 들국화 꽃다발을 안고, 아내가 잠든 곳을 찾았어. 잘 지냈나. 보고 싶었다…열심히 살자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 마지막 선물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어. 이젠 너무 늙어버려서 아내가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도 돼. 그동안 못 해준 게 많아서 후회도 돼. 그래서 부현 씨는 아내한테, 생전에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으시대. 이젠 직접 전할 수 없는 선물, 부현 씨가 직접 고른 머리띠야. 예뻤지. 머리가 이랬던 게, 머리띠를 하면 이렇게 올라갑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얼굴이 훤하게 보이는 거죠. 이 얼굴이 조그마하니 동글동글하게 보여요. 그게 사랑스럽고 예쁘게 보여요. 지금도 보듬고 싶고 안고 싶고 그래요. 뽀뽀해주고 싶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부현 씨가 선아 씨와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보단 이렇게 되물었대. 아내가 이런데도 여전히 사랑하시나요? 라고. 그런데 누군가의 사랑이 꼭 남들에게 이해받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걸까. 부현 씨에겐 이런 질문이 모두 무의미했어. 오직 그에게 의미 있는 건 선아 씨의 웃음뿐이었어. 나중에 선아 씨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냐 는 질문에 부현 씨는 이렇게 대답했어. 당신을 사랑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느라, 여수 지역이 난리 났던 거 기억나지? 그런데 그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에이즈 감염인과 1번 성접촉을 했을 때 전염될 확률은, 0.04~1.38% 정도래. 또 콘돔을 사용하면 이 가능성마저 거의 없어져. 그리고 선아 씨와 함께 생활했던 부현 씨도 결국엔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어. 물론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막연한 공포에 휩싸였던 당시 생각과는 다른 결과지. 에이즈가 세상에 등장한 지 40여 년이 지났어.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매년 천여 명의 신규 감염인이 발생하고 있대. 아직 에이즈 치료제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정상적인 수명대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대. '죽음의 병'이 아닌, 고혈압, 당뇨 수준으로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 중 하나인 거지. 사실 질환보다 무서운 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일 거야. 앞으로도 바이러스에 대한 전쟁은 계속될 거야. 그때마다 잘못된 편견으로 비난을 보내기보단, 질환 자체에 대해 의학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내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 …영화 '너는 내 운명' 실제 주인공의 엔딩은?
등록일2024.12.27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6일 방송된 '너는 내 운명'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하이라이트 리더 윤두준, 배우 신소율, 개그맨 정성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여수 에이즈 확산 논란 때는 2005년의 어느 날. 한 남자가 보건소 검사실에서 채혈을 하고 있어. 이 남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주삿바늘을 쳐다봐. 필요한 혈액은 단 5cc, 적은 양이지만 이건 아주 중요한 피야. 주사기에 점점 붉은 피가 차오르기 시작해. 그런데 바로 그때, 컷! 좋습니다! 오케이! 라는 우렁찬 소리가 들려와. 지금 여기는, 영화 촬영장이야. 주사기 앞에서 채혈하는 장면을 찍은 남자는, 배우 황정민이야. 피 한 방울의 의미가 정말 중요했던, 어떤 사람의 실화를 다룬 영화를 촬영 중이야. 촬영 장소는 여수 보건소. 그즈음에 여주 일대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었어. 그날에 대해 알기 위해,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려볼게. 때는 2002년 6월. 부산에 있는 어느 식당 안이야. 구석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식당 출입문을 주시하고 있어. 그때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와. 앉아있던 사람들의 눈이 번쩍 해. 저 여자 맞지? 사람들이 여자를 향해 다가가. 그리고 여자 앞을 쓱 가로막았어. 선아(가명) 씨, 잘 지냈어요? 선아라고 불린 여자는 당황한 듯 깜짝 놀라. 선아 씨를 찾은 사람들은 보건소 직원들이야. 직원들은 그녀를 경찰서로 인계했어. 그리고 선아 씨가 경찰서에 간 후, 그 소식은 전국에 알려졌어. 당시 상황을 전한 뉴스야. 에이즈에 걸린 20대 여성이 윤락 행위를 해오다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스물여덟 살 구 모 씨가 에이즈 환자로 판명된 것은 98년 3월. 2000년부터는 1년 7개월 동안 전남 여수의 윤락가에서 윤락행위를 해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선아 씨의 병명은 에이즈. 근데 윤락행위를 했다는 거야. 에이즈 환자가 윤락행위를 하는 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따라 처벌 대상이야. 성매매도 당연히 범죄지만, 에이즈가 걸린 환자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 매개 행위를 해서는 안돼.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의 징역을 받아. 이 뉴스가 보도되자, 특히 더 발칵 뒤집힌 지역이 있어. 바로, 선아 씨가 윤락행위를 했다는 전남 여수야. '에이즈를 퍼트린 마녀다', '에이즈 테러다', '복수극이다'라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여수는 에이즈로 공포의 도시가 되어 버렸어. 그런데 이렇게 난리가 난 상황에, 한마디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진짜 국민들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감이 최고였어요 그때가. 누구 하나 나왔다 그러면, 정말 난리가 나는 그런 시기였거든요. 그리고 이 질환은 어쨌든, 그 당시에 만약에 보건소에 와서 이 검사를 받는다면, 내가 윤락가에 가서 돈을 주고 성매매 행위를 한 걸 누군가 알게 되잖아요. 윤락가에 갔었는데 차마 검사를 할 용기는 안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고 또 '언제쯤 검사를 해야 하냐', '한 번만 해도 되냐' 궁금은 한데 용기가 없어서 전화로 계속 질의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저희들이 계속 설득을 해요. 전화가 오면. '검사 안 받고 계속 걱정만 하시면 평생을 이렇게 걱정 속에서 살게 될 거다' 저희가 기억하기로는 가장 검사를 많이 했던 날이, 한 200명까지 검사를 하긴 했었어요. -신미숙, 당시 여수 보건사업과 임상병리실 근무 그렇게 수천 명의 남자들이 검사를 받으러 왔어. 근데 윤락가를 직접 다녀온 사람 말고도,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또 있어. 남편을 의심하는 아내들, 유흥 업소 종사자들, 심지어 인근 고등학생들까지. 그렇게 보건소에는 두려움을 떨다가 겨우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이어졌어. 그런데 이 사람들의 행동에 공통점이 있어.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은 절대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 사람이 없을 때 맞춰 오거든.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검사를 받은 게 소문이라도 날까 두려운 거야. 그리고 한결같이 '진짜 에이즈에 걸리면 죽나요?'라는 질문을 했대. 에이즈에 감염됐다고 곧바로 죽는 게 아니야. 그런데 '에이즈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는 오해가 만연했던 때야. 에이즈에 걸려도 약을 잘 먹으며 관리하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당시 에이즈는 죽음의 병, 공포 그 자체였어. ▲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 그런데, 세상의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로, 선아 씨의 뉴스가 반가운 사람이 있어. 바로, 선아 씨의 남편 박부현 씨. 선아 씨를 찾았다는 소식은 남편에게도 전달됐어. 이 분이 황정민이 연기했던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이야. 2005년 개봉했던 황정민,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 당시 국내 멜로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이었어. 에이즈에 걸린 여자를 사랑한 한 남자의 순애보를 그렸지. 이 영화가 박부현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야. 영화 속 시골 노총각 석중(황정민 분)과 다방 종업원 은하(전도연 분)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에이즈란 병을 극복했을까? 영화의 결말 이후로 알려지지 않은 실제 이야기는 어떨까? 그래서 '꼬꼬무'가 직접, 남편 부현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어. 김해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제일 처음 알았죠. 얼른 전화 받았죠. 전화 받아보니까 '김해 경찰서로 빨리 오시오'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보니까 진짜 거기 있더라고요. 에이즈 때문에 잡혀 들어갔다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충격을 얼마나 받았겠습니까 제가.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는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던 걸까. 그리고 영화 속 사랑은 현실에도 존재했을까. 한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그 순간으로 가볼게. 때는 1999년 봄. 김해의 어느 시골 마을이야. 부현 씨는 부지런한 농사꾼이야. 자기 농사도 짓고, 소작도 하고, 가축도 키우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장가가 늦어졌어. 서른아홉 살, 나이 꽉 찬 노총각이야. 이런 부현 씨에게 후배 하나가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어. 얼마 후, 하얀 탱자나무 아래 버스정류장에 부현 씨가 서있어.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이야. 버스에서 한 여자가 내렸어. 그때 아마 봄날이었지. 꽃 피고 새 우는 봄인가 싶어. 버스를 내려서 거기서 두리번두리번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저게 누구고' '저게 맞는가' 하고 보니까 맞더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눈부신 햇살 속 그녀가 한 발자국씩 다가와. 점점 얼굴이 보이는데, 갑자기 세상이 슬로비디오처럼 바뀌는 마법이 펼쳐졌어. 두 사람의 핑크빛 첫 만남이었어. 사람이 귀엽게 생겼더라고 예쁘고. '설마 이런 여자가 나한테 오겠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어요. 그래서 첫눈에 내가 반했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는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어.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부현 씨. 대뜸 날 좋아할 수 있겠나? 라며 그녀에게 직진했어. 첫 만남 뒤 선아 씨가 부현 씨네 시골집에 놀러 왔다가, 그대로 같이 살게 됐어. 주위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지. 여자가 너무 급하게 눌러앉는 게 수상하다고. 나이차도 큰데, 여자가 다른 거 노리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기우였어. 두 사람은 냉수 한 그릇 떠 놓고, 그릇 옆에 초 하나를 세우고, 나란히 앉았어. 지금은 이렇게 소박하게 하지만, 나중에 돈 벌어서 멋진 결혼식을 하자고 약속하며, 그렇게 둘만의 작은 결혼식을 올렸어. 다 해주고 싶데요 막.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 여자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한창 농사일을 하다 보면, 저 멀리서 선아 씨가 새참을 들고 왔어. 아내는 김밥을 잘 쌌어. 집에 있는 나물, 갖가지 반찬들을 넣어 만든 아내표 김밥이 그렇게 맛있었어. 사람이 활발하고 좀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동생이 없다 보니까, 항상 내 동생 같기도 하고, 아내 같기도 하고… 내가 제일 기억나는 게 김밥. 김밥을 제일 많이 먹은 것 같아. 내가 그래서 항상 '너 김밥 장사해라' 그랬어.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봄에는 오토바이 타고 벚꽃놀이 가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 끼얹으며 꺄르르 웃고, 가을에는 같이 단풍구경 다니며, 두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 내가 등허리 업고 막 쫓아다니고 그랬습니다. 내가 많이 업고 다녔습니다. '그래 좋나? 좋다' 이러면서 손바닥을 팍팍 치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아내가 좋아했던 꽃은 들국화였어. 뒷산에 올라가면 들국화로 화관을 만들어서 머리에 씌워주곤 했어. 산에 올라가면 들국화가 있잖아요. 들국화를 모자같이 만들어서 탁 끼워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생일이면 근사한 케이크는 없어도, 초코파이면 충분했어. 서로의 마음은 누구보다 서로가 잘 아니까. 비싼 옷, 값나가는 보석은 못해줘도, 오순도순 함께 있는 것만으로 큰 기쁨이야. 그때는 참 저한테는 완전 봄날이고. 서로 이렇게 뽀뽀도 하고. 그냥 이렇게 안으면서 뽀뽀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가끔씩, 아내가 남모르게 눈물을 훔쳐. 뭔가 고민이 있는 거 같아.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결혼을 후회하나?' 부현 씨는 아내 걱정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사실은 자기가 전에 한번 결혼한 적이 있었고, 딸도 하나 있다는 거야. 그 딸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는 거야. 아내의 고백에도 부현 씨는 괜찮다, 다 지난 일 아니냐 며 감쌌어. 그런 거는 신경 안 썼어요. 집에 있으니까, 나는 있으면 행복한 거예요 그냥.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오히려 부현 씨는 조금씩 돈이 생기면 아내에게 건넸어. 그러면 아내는 그 돈을 가지고 어딘가에 갔다가 돌아왔어. 부현 씨는 그저, '딸 보러 갔겠거니' 생각하며 묵묵히 기다렸어. 자기가 낳은 딸이니까 보고 싶겠지 아마. '그래서 아마 왔다 갔다 안 했겠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갔다 하면 일주일은 있다가 오더라고. 그냥 '갔다 왔나, 잘 갔다 왔나' 이렇게 하고 말았어요. 그냥 '너만 돌아오면 됐다' 그렇게 말했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어. 남자는 부현 씨를 향해 대뜸 고함을 지르더니 욕설을 내뱉어. 선아 씨의 전남편이었어. 부현 씨는 그에게 차분히 원하는 게 뭐냐 고 물었어. 근데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막혀. 선아 씨를 데려가겠다는 거야. 속이 뒤집어지는 입장이지. 오장육부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더라고.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니, 돈이라는 거예요. '그럼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했더니 '소 한 마리 값을 줘야겠다'고 그러더라고. 차라리 여자를 포기할까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래도 나하고 같이 만났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고. 그 돈을 다 줘버렸어요. 다 가져가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결국 부현 씨는 애써 키운 소를 팔아 그 돈을 전남편에게 건넸어. ▲ 에이즈의 공포 그즈음 김해 보건소는 부산 보건소에서 전화를 받았어. 자기들 쪽에서 에이즈 검사를 한 분이 김해로 주소 이전을 했는데,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는 거야. 당시엔 보건당국이 에이즈 환자를 의무적으로 관리했어. 환자의 주거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지. 부현 씨가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못 보던 사람들이 집에 와있어. 보건소 직원들이야. 아내에게 알려줄 게 있어서 집을 찾아왔대. 부현 씨는 무슨 일이지 짐작도 안가. 그런데 그때, 아내와 이야기를 마친 직원들이 부현 씨를 따로 불러 조심스레 말을 건네. 아내 선아 씨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약을 갖다가 한 봉지를 주고 가더라고. 그리고 나보고 콘돔 같은 걸 한가득 주고 가고. 그래서 '이걸 왜 주고 가냐' 했더니, 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왜 안되느냐' 물어보니까, 그래서 그때 얘기를 하더라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우린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이게 무슨 이런 궤변이 있나' 내가 그랬어요. 그리고 멱살도 잡았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부현 씨는 너무 화가 나. 내 아내가 에이즈라고? 에이즈라는 병이 뭔지, 부현 씨도 TV에서 본 적이 있어. 몸에 반점이 생기고, 불치병이라 알려졌던 병. 내 아내가 그런 병에 걸렸다고? 매일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깨끗하게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누구보다 밝고 활발한 이 사람이? 나도 우리 선아도 건강하기만 한데 무슨 에이즈야! 화가 나서 당장 채혈을 했어. 검사 결과, 부현 씨는 음성이었어. 근데 선아 씨는, 재검 결과도 양성이 나왔어. 이젠 사랑하는 사람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럼 선아 씨는 어쩌다가 에이즈에 걸린 걸까. 질문조차도 상처가 될 수 있기에, 부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어떤 이유로 병에 걸렸든 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 이야기를 내가 물어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상대방이 싫어하는 건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넘어간 거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럼 에이즈는 인류 역사에서 언제부터 발병한 걸까. 인류가 에이즈란 병을 알게 된 건 1981년. 뉴욕의 한 신문에, '무서운 미지의 병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처음 보도됐어. 동성애자 41명에게서 발견된 희귀 암 진단 후 24개월이 채 되지 않아 8명이 사망했다 발병원인은 알려지지도, 밝혀지지도 않았다 에이즈 하면 떠오르는 증상인 피부 반점. 이 반점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피부에 발병하는 악성 종양이야. 어떤 약도 효과가 없어. 면역 기능이 떨어지며, 사소한 감염에도 죽음에 이를 수 있어. 그야말로 미지의 질병의 출현이었어. 인류는 공포에 휩싸였어. 시기도 20세기가 끝날 무렵이라, 세기말 징조라는 말까지 나와. 인류문명은 그동안 수많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러왔어. 가장 가까운 최근 바이러스는 코로나19. 모두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었지. 그전에는 조류독감, 메르스, 에볼라, 신종플루, 사스, 그리고 좀 더 옛날로 가면 흑사병까지. 이렇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 수많은 바이러스가 있었어. 그런데 그중 에이즈는 '현대판 흑사병'이라 불리며, 사형 선고로 여겨진 거야. 프레디 머큐리, 매직존슨 같은 유명인도 에이즈 감염자였지. 에이즈 발병 초기에는 주로 동성애자와 마약중독자가 감염됐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차가웠어. 그냥 병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차별과 냉대를 받았지.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숨겨야만 하는 병이 된 거야. 우리나라에 에이즈의 공포가 드리운 건, 1985년이야. 에이즈 감염자와 사망자의 수가 마구 늘어가는 가운데,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어. 병원에서 수혈로 인한 감염자도 나왔어.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 전직 교사가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잘못 알고, 3살 난 딸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자신과 딸의 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반점이 생기자 에이즈 감염 증세로 착각하고 고민 끝에 동반자살을 결심했다. 결혼 전에 문란했던 과거로 인해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만 앞섰지, 정확한 지식이 부족한 데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정밀조사 결과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뉴스 보도 中 ▲ 내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에이즈는 무서운 병이지만, 부현 씨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어. 아내가 감염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 아내가 집을 나가는 일이 잦아지더니, 아예 사라진 거야. 김해 바닥 온 곳을 다 돌아다녔어요. 그랬는데 이거 뭐 만날 수가 있나. 가보면 없고, 여기도 가보면 없고. 저기도 가보면 없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주변 사람들은 이제 잊으라고 모두 말렸지만. 부현 씨는 사라진 아내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그때는 내가 많이 기다렸죠. 오직 그 사람 생각 밖에 없었으니까.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렇게 시간은 1년 반이 지났고, 경찰서에서 드디어 선아 씨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거야. 부현 씨는 허둥지둥 경찰서로 달려갔어.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가출 직후 일자리를 구하던 아내는, 어떤 남자에게 속아 차에 탔다가, 여수 윤락가에 팔려갔다는 거야. 도망 나오고 싶어도, 촘촘한 감시망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대. 담당 보건소는 선아 씨가 연락이 닿지 않자 행방불명자로 처리해서 질병당국에 보고했어. 그러던 중 방역 당국의 추적망에 걸린 거야. 그럼 선아 씨는, 애초에 왜 부현 씨를 떠난 걸까. 남편에게 병을 옮길까 싶어, 그게 두려웠대. 모르겠어요. 왜 떠났는지… 그냥 갑자기 떠나고 싶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남편에게 에이즈를) 옮길까 싶어서. 나한테 옮을까 싶어서… 나도 이 사람한테 옮기기 싫은 거야. 병도, 내가 덮어쓰고 가지. -선아(가명), 박부현 씨의 아내 하지만 선아 씨가 법을 어긴 건 사실이야. 그 후 유치장에 수감된 선아 씨. 여기서 담당검사가 불편한 건 없는지 물었는데, 이 질문에 대한 선아 씨의 대답 때문에 유치장 안이 난리가 났어. 모기가 많아서 불편해요. 선아 씨를 문 모기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모든 수감자들이 공포에 질려버린 거야. 그럼 에이즈는 모기를 통해 감염될까? 그럼 침, 땀, 눈물로는? 악수나 포옹은 어떨까? 정답은, 전부 '아니요'야. 모기가 흡입하는 혈액의 양이 매우 적고, 모기의 체내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가 없대. 그래서 전파가능성이 없어. 침, 땀, 눈물에도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긴 하지만 전염시킬만한 양이 아니야. 피부 접촉으로도 전염이 안돼. 에이즈 바이러스는 상처를 통해 혈액이 몸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감염이 안돼. 하지만 잘못된 인식으로, 에이즈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꺼려했어. 결국 선아 씨는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수감됐어. 아내가 에이즈 판정을 받고 감옥까지 갔어. 그런데도 부현 씨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어. 묵묵히 농사를 지었어.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했어. 그 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아내에게 면회 가기 위해서. 면회도 내가 한 번도 안 빠졌어요. 그때는 힘든 것도 없어요. 그게 낙인 데요 뭐. 집에서 교도소까지 2시간이야. 왕복으로 하면 4시간을 오토바이로 오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도 선아 씨의 얼굴을 봐야 했어. 에이즈 환자가 가장 고통받는 게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외로움이래. 그런데 선아 씨는 그런 걱정이 없었어. 면회실 칸막이 사이로 두 사람은 미래를 꿈꾸며 대화를 나눴어. 마치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과 전도연이 면회실에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절절하게 대화하던 그 명장면처럼. 헤어진다는 생각은 꿈도 못 꾸죠. '널 사랑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몸 열심히 돌보고'. (출소하면) '우리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안 가본 데도 가보고 그렇게 한번 해보자' 그랬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리고 두 사람은 편지도 주고받았어. 잘 지내고 있지? 생각이 많이 나. 당신하고 나하고 처음 만났을 때, 절에 놀러 가 사진 찍고 할 때, 당신이 나한테 김밥 재료 사 왔을 때가 많이 생각나.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어. 그리고 당신이 내 옥바라지한다고 고생하고 있는 것 다 알아. 사랑하는 부현 씨, 내가 좀 더 당신 신경 썼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 참 후회하고 있어. 만약에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어. 내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해줘. -남편에게 쓴 선아 씨의 편지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8개월. 시간이 지나 추운 겨울, 부현 씨는 밤새 한숨도 못 잤어. 8개월이 지나 선아 씨가 출소하는 날이거든. 교도소의 철문이 열리고, 드디어 아내의 모습이 보여. 이젠 꼭 안아줄 수 있고, 손을 잡아줄 수 있어. 바로 안았죠. 그리고 울었죠 둘이. '우리 열심히 살자, 남 의식하지 말고'. '우리끼리만 얼굴 보고 살자'...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문제가 있어. 선아 씨가 집으로 들어오기를 주저해.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온 동네에 소문이 나서, 그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가 너무 두려운 거야. 부현 씨는 농사일과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도시에 방 한 칸을 잡았어. 두 사람을 모르는 곳으로 간 거야. 하지만 도시 생활은 녹록지 않았어. 에이즈 가족이라는 딱지를 단 채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거든. 그래도 박스 줍는 일과 작은 장사를 시작했어. 소박한 시작이지만,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대. ▲ 영화가 아닌 현실의 엔딩 시간이 흘러 2009년. 선아 씨가 출소한 지 6년이 지났어. 두 사람은 특별한 장소로 갔어. 사진관에서 웨딩촬영을 하기로 했거든. 함께 꿈꿔왔던 결혼식을 준비하게 된 거야. 돌고 돌아서 만난 지 10년 만에 드디어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어. 가족, 친구들의 축복 속, 선아 씨는 에이즈 환자가 아닌, 신부로 축하를 받았어. 늘 꿈에 그리던 순간이야.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제주도로 신혼여행도 갔어. 그리고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어. 그럼 이 두 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지나간 이야기는 다 잊어버리고, '우리 새 마음, 새 뜻으로 살자' 이랬는데. 자꾸 아이 때문에 찾아오고 또 가고, 또 왔다 갔다 하고 이러니까. 집을 나가서 그 뒤로 행방불명돼서 못 찾겠는 거예요. 이거 뭐 만날 수가 있나. 가보면 없고, 여기도 가보면 없고, 저기도 가보면 없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가 마음을 못 잡았는지, 또 집을 나갔다는 거야. 부현 씨는 이번에도 역시 돌아오기만을 묵묵히 기다렸어. 많이 기다렸습니다. 그때도 오기만을 기다렸죠. '그 애가 내 아이였으면 얼마나 좋겠나' 싶은 마음이 드는 거야.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어느 날, 부현 씨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어. 그때가 아마 번개가 엄청나게 친 날이에요. 비도 오고 밤에. 그런데 누가 왔는지, 막 문을 두드리고 이러는데 내가 나가보니까. 아내가 왔는가 싶어서 문을 몇 번을 열어봐도 없어요. 그랬는데 그날따라 자꾸 이상한 번호가 뜨더라고. 그래서 '이게 무슨 번호고. 모르는 번호인데 받아서 뭐 하겠느냐'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냥 내버려 뒀는데, 계속 전화가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받아보니까, '김해 경찰서 누구 경찰관입니다' 이러더라고. 저보고 '어디 병원 빨리 가보세요' '선아 씨가 죽었습니다' 이러는 거야. 나는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갔는데, 가보니까 처량하게…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납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눈물 밖에 안 납니다.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가 세상을 떠났어. 결혼식을 올리고 불과 다섯 달만의 일이야. 결혼식 때만 해도, 선아 씨가 건강했었는데,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었나 봐. 에이즈에 감염됐어도 약을 잘 복용하고 관리만 잘하면, 문제없이 살 수 있는데. 아마도 약을 잘 챙겨 먹지 않았던 거 같아. 부현 씨는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선아 씨가 생각난대. 그녀와 함께 한 벚꽃구경, 물놀이, 단풍구경.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선아 씨가 가장 좋아했던 들국화. 그 꽃을 보면 항상 아내가 떠올랐대. 이걸 가져다가 뭉쳐서 목에다 걸어주고, 귀에도 꽂아주고 했는데.. 부현 씨가 들국화 꽃다발을 안고, 아내가 잠든 곳을 찾았어. 잘 지냈나. 보고 싶었다…열심히 살자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 마지막 선물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어. 이젠 너무 늙어버려서 아내가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도 돼. 그동안 못 해준 게 많아서 후회도 돼. 그래서 부현 씨는 아내한테, 생전에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으시대. 이젠 직접 전할 수 없는 선물, 부현 씨가 직접 고른 머리띠야. 예뻤지. 머리가 이랬던 게, 머리띠를 하면 이렇게 올라갑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얼굴이 훤하게 보이는 거죠. 이 얼굴이 조그마하니 동글동글하게 보여요. 그게 사랑스럽고 예쁘게 보여요. 지금도 보듬고 싶고 안고 싶고 그래요. 뽀뽀해주고 싶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부현 씨가 선아 씨와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보단 이렇게 되물었대. 아내가 이런데도 여전히 사랑하시나요? 라고. 그런데 누군가의 사랑이 꼭 남들에게 이해받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걸까. 부현 씨에겐 이런 질문이 모두 무의미했어. 오직 그에게 의미 있는 건 선아 씨의 웃음뿐이었어. 나중에 선아 씨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냐 는 질문에 부현 씨는 이렇게 대답했어. 당신을 사랑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느라, 여수 지역이 난리 났던 거 기억나지? 그런데 그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에이즈 감염인과 1번 성접촉을 했을 때 전염될 확률은, 0.04~1.38% 정도래. 또 콘돔을 사용하면 이 가능성마저 거의 없어져. 그리고 선아 씨와 함께 생활했던 부현 씨도 결국엔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어. 물론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막연한 공포에 휩싸였던 당시 생각과는 다른 결과지. 에이즈가 세상에 등장한 지 40여 년이 지났어.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매년 천여 명의 신규 감염인이 발생하고 있대. 아직 에이즈 치료제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정상적인 수명대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대. '죽음의 병'이 아닌, 고혈압, 당뇨 수준으로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 중 하나인 거지. 사실 질환보다 무서운 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일 거야. 앞으로도 바이러스에 대한 전쟁은 계속될 거야. 그때마다 잘못된 편견으로 비난을 보내기보단, 질환 자체에 대해 의학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에이즈 걸린 아내 향한 남편의 순애보 …'꼬꼬무', '너는 내 운명' 실제 주인공 근황 공개
등록일2024.12.26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을 조명한다. 26일 방송될 '꼬꼬무'는 '너는 내 운명' 편으로 배우 황정민,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 남편을 만나 2024년 현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때는 2002년 6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모두가 들떠 있을 무렵. 부산의 한 식당 구석에 앉은 네 사람이 출입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여자. 네 사람은 재빨리 여자에게 다가갔다. 선아(가명) 씨 잘 지냈어요? 여자를 부르며 다가간 사람들은 바로 보건소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선아 씨를 경찰서로 인계했다. 선아 씨의 죄목은 '에이즈 예방법' 위반이었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여수는 발칵 뒤집혔다. 수많은 남성들이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에이즈 검사를 받기 위해 보건소를 찾으며 여수는 에이즈 공포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약을 먹으며 꾸준한 관리를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지만, 당시엔 정보도 부족하고, 이러한 사실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었다. 병명을 말할 수 없는, 숨기고 싶은 병이라는 인식. 그리고 여기에 편견까지 더해져 에이즈에 대한 공포, '포비아'가 만연해졌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로 선아 씨를 찾았다는 소식이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출한 선아 씨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녀의 남편 부현 씨였다. 황정민,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 결혼 후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변치 않는 순애보를 보여줬던 극 중 석중(황정민 분)의 모습은 현실에도 존재했을까. 석중의 실존 인물, 남편 박부현 씨가 직접 이야기해 주는 두 사람의 운명같은 사랑 이야기, 그리고 두 사람의 현재 모습이 '꼬꼬무'에서 공개된다. 1999년 봄. 후배의 소개로 선아 씨를 처음 본 순간, 부현 씨는 선아 씨에게 첫눈에 반했다. 부현 씨의 적극적인 고백으로 두 사람은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의 집으로 보건소 직원이 찾아와 선아 씨가 에이즈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검사 결과 부현 씨는 음성이었지만, 선아 씨는 재검 결과도 양성. 남들에게는 큰 공포였던 에이즈였지만 부현 씨에게는 이 검사 결과가, 아내 선아 씨를 향한 사랑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선아 씨가 집을 나가는 일이 잦아지더니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집을 완전히 나가버렸다. 그렇게 묵묵히 선아 씨만을 기다리던 부현 씨. 그러다 1년 반 만에 들은 소식이 바로 선아 씨의 체포 소식이었던 것.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선아 씨는 독방에 수감됐다. 하지만 매일 교도소로 면회를 갈 정도로 아내를 향한 부현 씨의 마음은 여전했다. 그리고 15년 뒤 부현 씨를 찾은 '꼬꼬무' 팀. 출소하는 아내를 맞이하는 남편의 모습으로 끝난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엔딩처럼, 현실에서도 두 사람은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까. 과연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꼬꼬무'의 장트리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이 이야기한다.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에는 그룹 하이라이트 리더 윤두준, 배우 신소율, 개그맨 정성호가 친구로 함께 한다. 윤두준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아왔다. 윤두준은 폭풍 공감 모드로 올라운더 리스너의 면모를 선보였다. 그리고 부현 씨의 아이같은 웃음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신소율은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았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꼬꼬무'에서 준비한 소박한 선물을 확인하고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 신소율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순애보에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러다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성호는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았다. 영화 '너는 내 운명' 속 남편의 모습 그 이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던 정성호. 그는 아내와의 설레는 첫 만남, 아내를 향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팔불출 면모를 보였다. 여기에 장현성의 '아내를 향한 사랑'에 대한 어필까지 끼어들며, 처음부터 끝까지 장현성과 끝내주는 케미를 보여줬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화, 크리스마스의 선물 같은 따뜻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꼬꼬무'의 '너는 내 운명' 편은 26일 목요일 밤 10시 20분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상관 없으니 그냥 까 …어린 자식까지 차로 치려 한 '보험살인' 설계자
등록일2024.12.20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9일 방송된 '살인 설계자'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주현영, 임주환, 슈퍼주니어 신동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신혼부부에게 생긴 일 때는 1999년 10월, 대전의 어느 가정집이야. 수연 씨는 남편 경태 씨를 기다리며 맛있는 저녁을 준비 중이야. 둘은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혼부부야. 경태 씨는 인쇄소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누가 신혼 아니랄까 근무 중에도 전화기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아내와 통화를 해. 아내 수연 씨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애교쟁이야. 나이도 경태 씨보다 무려 11살이나 어려. 수연 씨가 스물셋, 경태 씨는 서른넷이야. 지인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만난 지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결혼했어. 그런 경태 씨를 보며 주변에선 하나같이 신기해했어. 이제껏 경태 씨가 연애하는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그러던 어느 날, 수연 씨는 경찰로부터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어. 무슨 일인지, 경찰한테 직접 들어볼게. 그 당시에 1999년 11월 초순경쯤 되는데, 아침에 이제 도로변에 안내면 인포리라고. 그쪽에 '차량 안에 사람이 죽어 있다'고. 대청호 주변에 낚시하는 사람들이 아침에 철수하면서 주변에 있는 차량에서 그 사체를 발견하고 신고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차량이 경차인데 차적 조회하니까 변사자 신원이 특정되고 수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남편 경태 씨가 차 안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거야. 평소 경태 씨는 낚시가 취미였는데 나흘 전, 밤낚시를 간다며 집을 나선 후 연락이 두절됐대. 걱정이 된 수연 씨는 남편이 갈 만한 곳은 죄다 전화를 돌렸어. 시댁, 인쇄소 동료들, 친구들까지. 그런데 다들 별일 있겠냐,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반응이었어. 그러다 생각지도 못했던 비보를 듣게 된 거지. 대체 경태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게 당시 현장 사진들이야. 차량은 충북 옥천의 한 낚시터 근처에서 발견됐어. 사이드미러는 부서져 있었고, 경태 씨는 운전석에서 조수석을 향해 비스듬히 쓰러져 있었어. 신발은 한 짝만 벗겨져 있어. 그리고 차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었어. 바로 차 키. 운전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차 키가 꽂혀 있지 않았던 거야. 경태 씨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던 휴대폰, 그리고 지갑도 발견되지 않았어. 대신에 조수석 손잡이와 뒷좌석에서 경태 씨의 혈흔이 발견돼. 이건 누군가 피를 흘린 경태 씨를 뒷좌석에 태우고 옮겨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야. 그걸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는 이거야. 안에 사체가 보니까 조수석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이제 시반이. 시반이라고 하는 거는 사람이 누워 있으면 아래쪽으로 피가 쏠리게 돼 있습니다. 시반이 이제 오른쪽으로 누워 있으면 오른쪽에 있어야 되는데, 왼쪽으로 시반이 형성돼 있어 가지고, 이거는 타살이다... -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한동안 왼쪽으로 눕혀 놨던 시신을 이곳에 옮기면서 오른쪽으로 눕힌 흔적이라는 거지. 그럼 대체 누가 왜, 경태 씨를 살해한 걸까? 형사들은 낚시를 왔다가 근처에서 강도 살인을 당한 거라고 추정했어. 하지만 차 안에선 경태 씨의 지문 외에 다른 사람의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어. CCTV, 블랙박스도 흔치 않던 시대야. 목격자도 없어. 범인을 특정할 증거가 없는 거야. 그럼, 피해자 경태 씨의 시신엔 뭔가 남아있었을까? 형사들은 부검을 의뢰했어. 결과는, '사인불명'.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거야. ▲ 수상한 결혼 형사들은 경태 씨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해. 평소 원한을 가질만한 사람이 있는지, 누구랑 갈등을 빚은 적이 있는지 알아보는 거지. 그런데, 이상한 이야기가 나와. 주변 인물을 탐문하니까 '이 사람들이 결혼할 정도의 그게 아닌데'라며 결혼한 걸 자꾸 의심을 해요. 가끔 '야 너 부부관계 했어?' 이렇게 물으니까 '하지 않았다'라고… 탐문 과정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거는 뭔가 있다...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형사들은 경태 씨의 형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돼. 갑자기 혼인신고부터 할 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제수씨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도 모르거든요. -피해자 임경태의 형 알고 보니 상견례나 결혼식도 없었고, 만난 지 서너 달 만에 혼인신고만 한 채 동거를 시작했다는 거야. 어때? 뭔가 좀 의심스럽지? 하지만 피해자 가족이고, 무엇보다 결혼 한 달 만에 남편을 잃은 새신부야. 주변의 말만 듣고 섣불리 용의선상에 올릴 순 없어. 조사할 명분이 필요했던 형사들은, '이것'부터 확인해 보기로 해. 바로 '보험'이야. 제가 경찰 수사관을 한 4년 했었습니다. 96년도부터 이제 보험범죄 쪽으로 하게 됐죠. 옥천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제가 그거를 조사를 했었죠. 보험 조회를 해보니까 한 6개 정도 나오더라고요. 그게 의심스러운 거예요 남자분이. 근데 이제 실질적으로 둘이 해서, 그 수입에 비해서 3분의 1 이상이 보험료로 들어간다는 거는 의심의 여지가 많은 거죠. -박한석, 당시 S생명 보험조사관 이분이 우리나라 보험범죄 조사관 1호야. 얘기를 들어보니까 어때? 자, 이걸 한번 봐봐.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날짜는 10월 2일이야. 토요일이지. 이때는 주 5일제 시행 전이라, 토요일에도 관공서 다 열고, 학교 가고 그런 시절이었어. 혼인신고 약 보름 후부터 두 사람은 신혼생활을 시작했어. 그러면서 아내 수연 씨는 당장 그 주부터 2주에 걸쳐 남편 경태 씨 앞으로 6개의 생명보험을 가입해. 그 며칠 후 남편이 사라졌고, 결국 사망한 채 발견됐어. 혼인신고부터 남편 사망까지, 한 달 사이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어.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경우, 상속자가 받게 되는 보험금이 최대 9억 원이었어. 1999년에 9억 원이면 어느 정도 금액일까. 당시 대전에 있는 아파트 한 채 값이 약 5천만 원이었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단 거지. 보험은 보통 갑자기 큰일이 나와 가족에게 닥쳤을 때 도움을 받으려고 드는 거잖아. 그래서 대부분 손해보험 위주로 드는데, 경태 씨네는 생명보험의 비중이 너무 큰 거야. 게다가 보험료로 경태 씨 월급의 3분의 1을 냈어. 이 정도면 아내 수연 씨가 좀 수상하지? 형사들은 수연 씨를 참고인 조사로 불렀어. 보험에 대해 물으니 수연 씨는 이렇게 대답했어. 신혼 초에 다들 보험 들잖아요? 남편 것만 든 게 아니라, 저도 똑같이 들었는데.. 지금 저 의심하시는 거예요? 이런 아내의 말, 과연 사실이었을까? 그 부인도 보험이 많이 들어 있더라고요. 이럴 경우는 보통 사망자만 많이 들고 그 부인은 보험이 평상시에 그냥 기본적으로 드는 걸로만 들어 있어야 되는데, 그 부인도 남편하고 똑같이 보험이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이거 이상하다, 범죄 혐의점이 조금 이게 약하다… -박한석, 당시 S생명 보험조사관 확인해 보니, 아내도 배우자가 수익자로 된 보험이 5개나 됐던 거야. 보통 보험범죄는 피해자 중심으로 보험가입이 이뤄지는데, 이 경우는 달랐던 거지. 형사들은 수연 씨가 의심스러웠지만, 돌려보내야만 했어. 부인은 완강하게 '장례 치르게 보내달라' 이거를 강조를 했어요. 그 당시에 이제 영장도 없고, 우리가 임의동행 해가지고 6시간 이상을 데리고 있을 수가 없어서. 이제 또 이 사람이 의심은 가지만 일단 장례 치르고 다시 한번 부르겠다, 그렇게 해서 귀가시켰는데. 장례를 지내고 부르니까 연락 두절입니다. 그다음부터 이제 출석도 안 하고 연락도 안 되고. 집에 가도 없고. 완전히 사라진 겁니다.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그제야 알게 된 거야. 그 새신부가 커다란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는 걸. ▲ 계곡살인 이은해와의 평행이론 '계곡살인 이은해' 들어본 적 있어? 이은해는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남편을 계곡에서 다이빙하도록 부추겨 숨지게 만든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어. 판사도 보험금을 노린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본 거지. 백 형사님은 이은해 사건을 보며 25년 전 이수연이 떠올랐대. 너무 똑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 기억을 떠올린 거 아닙니까. 결혼도 안 하고 혼인신고 하고, 오로지 보험 가입 수도 많고 한 게. 제가 한 사건하고 너무 닮아 있었거든.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이수연은 상견례도 결혼식도 없이 바로 혼인신고부터 했잖아. 이은해도 그랬어. 그리고 임경태와 이수연의 나이 차이는 열한 살. 이은해도 남편과의 나이 차이가 열한 살이었어. 물론 우연이겠지만, 20대 초반의 여성과 30대 초중반의 남자인 것도 비슷해. 결정적으로 혼인신고 한지 얼마 안 돼 사고가 난 점, 수입에 비해 많은 보험을 가입한 것도 비슷해. 그런데, 확인이 안 된 한 가지가 있어. 이은해는 남편이 사망한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이수연은 남편이 사망할 당시 함께 있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더 미스터리하지. 형사들은 답답해졌어. 범인을 특정할 단서는 없고 유력한 용의자였던 아내는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그때, 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와. 그 전화 한 통에 형사들은 말문이 막혔대. 무슨 내용이었을까? 부산 영도경찰서에서 저희한테 연락한 거죠. 여관방에서 소주 몇 병 있고 유서 써 놓고 자살했다... 이렇게 이제 연락이 온 거죠.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애타게 찾고 있던 이수연이 죽은 채 발견됐다는 거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인대. 형사들은 다시 한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어. 단순하게 그냥 '보험 가입해서 보험금을 노린다' 이 정도만 이제 생각을 했는데, 거기서 이수연까지 딱 이렇게 돼 버리니까. 이제 이거는 보통 사건이 아니다… 하는 걸 딱 느낀 거지.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그녀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까. 죽어서라도 자신의 결백을 알리고 싶었던 걸까? 아님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 두려웠던 걸까? ▲ 제3의 인물 그때, 현장 감식에서 묘한 단서 하나가 발견돼. 여관 주인은 투숙객이 이수연 하나였고 다른 사람은 못 봤다고 했는데, 방에 있던 소주병에서 다른 사람의 지문이 나온 거야. 그 지문을 대조해 보니 한 사람이 떠. 이제껏 등장하지 않은 제3의 인물이야.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이 지문과 똑같은 지문이 다른 곳에서도 발견됐다는 거야. 바로 남편의 차에서. 이 떡밥은, 사망한 경태 씨의 차 트렁크 안에서 발견된 거야. 떡밥에서 나온 지문이, 이수연 사망 현장의 소주병 지문과 일치했던 거야. 이 지문의 주인은, 두 현장에 다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지. 범인일 확률이 높아. 그 남자의 정체는, 스물여덟 살 강영민. 이 사람은 대전에서 인쇄소를 운영했어. 경태 씨도 인쇄소에서 일을 했다고 했잖아. 몇 년 전, 강영민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경태 씨가 일을 했다는 거야. 둘 사이는 어땠을까? 당시 인쇄소 동료들은 이렇게 말해. 강 사장이 경태 씨를 잘 챙겨줬어요. 경태 씨 중매 서준 것도 강 사장이라고 하던데요? 경태 씨에게 이수연을 소개해 준 게 바로 강영민이라는 거야. 스토리가 묘하게 흘러가지? 이제 형사들은, 강영민을 찾아야겠지. 그런데, 강영민을 만날 수가 없어. 강영민은 이미 수배자고, 집은 옥천인데 집에서 '연락 안 된 지 오래됐다' 하고. 그리고 대전에 있는 처하고 이혼소송 중인데, 자기도 안 본 지 오래됐다고...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강영민은 사기혐의 두 건으로 지명수배 중이었어. 최근 인쇄소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사채도 쓰고 지인들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소송을 당한 거야. 빚쟁이와 사채업자, 형사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였던 거지. 어머니가 있는 옥천 집에서도, 아내가 있는 대전 집에서도, 강영민과 연락이 안 된대. ▲ 두 개의 유서, 하나의 시신 그런데 이수연이 사망한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돼. 형사들은 이 유서를 읽다가 또 충격에 빠져. 우선 우리도 피해자임을 밝힙니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무성한 소문과 따가운 시선, 누군지 모르는 협박에 못 이겨 여기까지 오긴 했으나. 우리의 잘못이라면 잠시 스친 인연 그것밖에 없는데. 왜 우리가 그 많은 입들에 올라가야 하는지. 정말 억울하지만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후에라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3명의 인생을 망친 그 사람 꼭 잡아주세요. 꼭. 같은 곳에 쉬게 해 주세요. -유서 첫 번째 페이지 만약 여기에 한 사람밖에 없다면, 태종대 절벽 및 바닷물에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긴 하지만 행복했다고 생각할게요. 그리고 또 태어나게 된다면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날게요. 강준호 신미자 강준배 강준식 이희라 강태수 강태화. 사랑했어요! 엄마 잘 부탁드릴께요. -유서 두 번째 페이지 이 유서, 누가 쓴 거 같아? 형사들은 앞부분은 이수연이, 뒷부분은 강영민이 쓴 거라고 판단했어. 두 장의 유서가 필체도 다르고 내용도 달랐거든. 그거 말고도 알 수 있는 게 있어. 바로 두 사람 관계. '꼭 같은 곳에 쉬게 해 주세요'라며, 죽어서도 같이 있게 해 달라잖아. 이수연과 강영민은 사실 연인 사이였던 거야. 이수연이 커피숍에서 일할 때 강영민과 연인이 됐어. 강영민은 애가 둘인 유부남이었지만 이수연을 만난 거지. 그런데도 내연녀 이수연을 자기가 알고 있던 임경태에게 소개한 거야. 이 상황, 이해가 안 되지.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해. 그런데 유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어. '3명의 인생을 망친 그 사람'을 꼭 잡아달래. 먼저 사망한 임경태와 범인으로 몰린 이수연, 그리고 강영민까지. 셋 다 억울한 피해자라는 주장이야. 정말 임경태를 죽인 진짜 범인이 따로 있는 걸까? 형사들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유서는 두 장인데, 시신은 하나야. 그리고 형사들은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해. 강영민이 사체는 없고 이제 이수연만 있고. 변사 기록을 보니까 동맥을 끊은 걸로 돼 있어요. 근데 동맥을 끊으면 피가 팍 튀어야 되는데, 비산된 흔적이 없어 방 안에.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이를 뒷받침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견도 나왔어. 만약 손목 동맥을 끊고 죽었다면 사인은 동맥절단으로 인한 과다출혈이야. 그런데 부검결과는, 사인불명. 경태 씨 때와 똑같았어. 그렇다면, 강영민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유서대로 태종대로 갔을까? 남은 건 유서뿐이니, 강영민이 정말 태종대에 가서 자살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어. 태종대는 부산 해안가 관광지로,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이 유명해. 이렇게 생겼어. 여기서 뛰어내리면 즉사야. 과거엔 한 해에 여럿이 여기서 세상을 등지기도 했대. 강영민은 정말 그곳에서 뛰어내렸을까? 진짜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태종대에 한 2~3일간 사체가 뜨는지 안 뜨는지 확인한 걸로 알고 있어요. -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곧장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어. 하루, 이틀, 삼일.. 11월 말,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태종대를 샅샅이 뒤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뭔가 발견됐어. 바로 한 구의 남자 시신. 그런데 강영민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 결국 그렇게 수색은 마무리됐고, 강영민의 생사는 확인 불가능해. 그러자 형사들은 강영민 생존 가능성에 더 확신을 갖게 됐어. 강영민은 없고 소주병에 자기 지문까지 나왔는데. 죽으려면 여관에서 죽지 왜 태종대에 빠져 죽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전 끝까지 강영민은 살아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 의문의 교통사고 형사들은 강영민 주변을 본격적으로 캐기 시작해. 먼저 대전에 있는 강영민의 집부터 찾아갔어. 그런데 강영민의 아내를 만난 형사들은 소름이 쫙 끼쳤대. 강영민의 아내가 이런 말을 했어. 제가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거든요. 집에 걸어오는데 갑자기 차가 달려와서. 정말 죽을 뻔했어요. 강영민의 행방을 알아보러 갔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 거야. 아내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 건 5월 말 이래. 이수연의 사체가 발견되기 6개월 전이야. 평소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던 남편이, 오랜만에 집에 와선 이러더라는 거야. 오랜만에 애들이랑 맛있는 거나 먹을까? 자, 이 돈 갖고 가서 고기 좀 사 와봐. 웬일인가 싶으면서도 아내는 얼른 동네 정육점에 가서 삼겹살을 사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뒤에서 뭔가가 쾅! 아내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어. 천만다행으로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전치 16주의 다리 골절상을 입게 됐어. 영구 장애까지 남을 수 있는 상황이래. 강영민의 아내까지 조회를 했는데, 그분이 그때까지 치료를 하고 있더라고요. 16주 진단 나와가지고 1800만 원인가 일단 수령을 S화재에서 했었고. - 박한석, 당시 S생명 보험조사관 확인해 보니 사고 나기 한 달 전 강영민이 아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둔 게 있었던 거야. 보험 종류도 정확히, 교통사고 안전보험으로 가입했어. 교통사고로 상해를 입을 경우 최고 5천만 원을 받을 수 있어. 근데 이 보험의 특징이 있어. 주말이나 휴일에 사고가 나면 보험금이 두 배라는 거야. 아내가 사고 난 날, 언제였을까? 사고 난 날은 바로 5월 30일, 정확히 주말이었어. 여기서 끝이 아니야. 강영민은 그해 2월에 이미, 아내 앞으로 가입한 또 다른 보험도 있었어. 아내가 사망하면 1억 2천만 원을 받는 건데, 이것도 교통사고 안전보험이야. 아내는 운전자의 과실로 인한 단순 사고라고 알고 있었어. 사고가 나던 그 순간, 강영민은 집에 있었어. 적어도 강영민이 낸 사고는 아니라는 거지. 사고 이후, 강영민은 단 한 번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내 교통사고 보험금만 모두 챙기고 사라졌어. 형사들은 아내 사고도 강영민이 설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어. 이게 사실이라면 또 다른 범죄가 벌어지기 전에, 얼른 강영민을 검거해야 해. ▲ 인쇄소 화재 사고 형사들이 이번에 인쇄소로 갔어. 그런다 또 다른 얘기를 듣게 돼. 한밤중에 인쇄소에 불 나서 완전히 싹 타버렸잖아요. 아내가 사고 나기 6개월 전, 강영민의 인쇄소에 화재가 났던 거야. 사고 기록을 확인해 보니 화재는 원인불명으로 마무리됐어. 이것도 냄새가 나지? 강영민과 관련된 사건들은 어떻게 된 게 죄다 '원인불명'이야. 그 화재로 강영민은 약 5천만 원의 보험금을 탔어. 당시 대전에선 아파트 한 채 값이지. 이제 보험과 강영민은 떼고 생각할 수가 없지. 그런데 당시 불이 난 인쇄소에는 안 씨라는 사람이 있었어. 형사들은 일단 그 안 씨를 만나보기로 해. 근데 그를 만난 형사들은 또 깜짝 놀라. 안 씨라는 사람이 현장에 있다가 전신에 화상을 입은 거예요. 안 씨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고 화상 입을 이유도 없고. 그런데 얘가 현장에 있다가 화상을 입은 거예요. -류덕희, 당시 옥천경찰서 형사 안 씨는 인쇄소 직원이 아닌,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인데 거기서 화상을 입었어. 뭔가 의심스럽지. 형사들은 안 씨를 추궁했어. 그래서 안 씨를 잡아서 '너 그때 방화했느냐'라고 하니까, 안 씨가 방화했다고 자백을 해요. (강영민이) 내가 불을 질러주면 얼마를 주겠다고 해서, 자기가 방화를 하게 됐다는 거예요. -류덕희, 당시 옥천경찰서 형사 형사들의 끈질긴 추적 끝에, 드디어 강영민의 꼬리를 잡게 됐어. 안 씨가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임경태 사망 약 1년 전인 1998년 9월. 빚 독촉에 시달리던 강영민은 친구 안 씨와 유 씨에게 이런 제안을 했어. 내 인쇄소에 아무도 모르게 불만 내주면 보험금 나오는 대로 두 사람에게 각각 천만 원씩 줄게. 실업자였던 두 사람에겐 솔깃한 제안이었어. 아무도 없는 인쇄소에 기름 붓고 불 붙이면 끝이니까. 강영민은 공장 안에 미리 경유를 뿌려놓고 휘발유 1통과 방화범들이 입을 옷, 운동화까지 준비해 놓고 퇴근해. 그날 밤 12시쯤, 안 씨와 유 씨가 인쇄서에 들어가서 라이터로 불을 붙인 거야. 그러다 잘못해서 그만, 안 씨 몸에 불이 옮겨 붙은 거지. 전신화상을 입긴 했지만 그만하길 다행이지. 자칫하다 또 한 사람 죽을 뻔한 거야. 그로부터 약 4개월 뒤인 99년 1월, 강영민은 거액의 보험금을 받게 됐어. 화재 사고로 위장된 방화 보험사기는 그렇게 조용히 묻혔어. 형사들은 안 씨와 유 씨를 즉각 검거했어. 이 두 사람이 경태 씨 살인사건에 개입했을까? 그건 아니었어. 그런데 조사를 받던 유 씨가 수사에 기름을 붓는 한마디를 던졌어. 강영민을 최근에 본 적 있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 거야. 제가 12월 중순쯤, 동네 버스정류장에서 한번 봤어요. 강영민의 유서가 발견된 게 11월 말이었어. 근데 12월에 강영민을 봤대. 드디어, 강영민이 살아있다는 단서를 찾은 거야. 이 사람이 살아서 생활하고 있다, 카드 쓴 흔적이 있다, 통화 내역이 있다, 차를 운전한 적이 있다, 이런 반응이 있어야 살았다는 걸 알거든요. 몇 달 뭐 해도 흔적이 없으니까 '진짜 강영민이 죽었나?' 이런 찰나에 강영민이 버스 기다리고 있는 것을 인쇄소에 불 지른 공범이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때부터 더 이제 확신을 가지고 '이거 진짜 잡아야 되겠다' 그런 느낌이 이제 들은 거죠.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형사들의 수사 의지는 활활 타올랐어. 이 모든 범행의 설계자, 강영민을 꼭 잡아야 해. ▲ 강영민을 잡아라 지금 상황에서 보면 강영민은 자기 어머니와 어떻게든 연락할 가능성이 커 보여. 사실 형사들은 강영민이 사라진 직후부터 이미 그의 가족들을 추적해 왔어. 다만 그동안은 수사망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던 것뿐이야. 소위 말하면 감청, 정식 영장 발부받아서 통신제한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11월, 12월 한 통화도 없고, 1월에도 한 통화도 없고. 강영민이 엄마가 영도경찰서에 전화해서 '우리 아들 찾았느냐' 확인하는 전화 몇 통화 오고.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강영민이 가족들한테 반드시 연락할 거라 생각하고, 수사는 더 은밀히 진행됐어. 하루 종일 돌아가며 강영민 집 전화에 귀를 기울였어. 하루, 이틀, 1주일, 2주일.. 그러던 어느 날, 심상찮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와.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강영민 아내는 아닌데, 강영민 어머니한테 살갑게 안부를 묻는 한 젊은 여성. 일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 분위기가 묘해. 발신 번호를 추적해 보니, 20대 여성 한 씨야. 대전에서 인쇄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이었어. 강영민과 연관이 있어 보이긴 해. 형사들은 한 씨를 미행하기 시작했어. 지금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한 씨다. 그래서 형사들이 미행을 한 거지. 미행을 한 달 두 달 해도 별 접촉이 없는 거죠. 한동안 미행 몇 번 했는데 실패한 거죠.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며칠 후, 한 씨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와. 이번엔 한 씨가 강영민 형과 약속을 잡는 거야. 그럼 내일 그곳에서 뵐게요. 혹시 모르니까 일찍 나와서 주변을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게, 수상해. 형사들은 미리 약속 장소로 나가서 잠복하고 있었어. 잠시 후에 강영민의 형과 한 씨가 들어와. 강영민이 나타날지 모르니 초긴장 상태야. 그런데 두 사람은 다방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고는 헤어졌고, 강영민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어. 계속 의심스러운 정황이 이어지는데, 강영민은 모습도, 목소리도 드러내지 않아. 어느덧 4월이 됐어. 도대체 강영민과 한 씨, 무슨 사이일까. 탐문해보니 한 씨는 강영민의 또 다른 연인이었어. 그럼 강영민이 어디 있는지 알 지도 몰라. 하지만 언제까지 잠복하며 기다릴 수만은 없어. 이미 강영민 아내의 교통사고와 이수연의 미심쩍은 죽음을 통해, 강영민은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란 걸 충분히 확인했잖아. 도주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 씨마저 위험해질지 몰라. 형사들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려. 형사들은 한 씨에게 지금까지 밝혀진 강영민의 모든 범죄들에 대해 이야기해 줬어. 지금까지 강영민 주변 여자들은 죽거나 다쳤습니다. 당신도 그의 범죄 대상이 될 수 있어요. 한 씨는 큰 충격을 받아 넋이 나간 듯했대. 강영민이 수배 중인 건 알았지만, 이런 범행들까지 저질렀는 줄은 몰랐던 거야. 한참 고민하던 한 씨는 형사들에게 이걸 건네면서 얘기해. 지금 태성아파트에 있어요. 강영민 은신처의 아파트 열쇠였던 거야. 형사들은 당장 그 아파트로 갔어. 모두가 초긴장 상태였어. 만약을 대비해서 이제 상황실에 가서 권총을 7정을 대여받아 가지고 출동을 한 거죠. 밤에 한 11시경에 경찰서 나간 거죠. 가서 3층에 있는데 저쪽으로 뛰어내릴지 모르니까 베란다에 그때 3명 배치하고…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형사들은 한 씨가 건네준 열쇠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어. 한 씨가 들어오는 줄 알고 거실에 태연하게 앉아있던 강영민이, 들이닥친 형사를 보고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도망가려다가 이내 상황 판단이 됐는지, 체념한 듯 체포에 응해. 무려 6개월에 걸친 추적 끝에, 드디어 강영민이 잡힌 거야. 강영민이 취재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어. 우연찮게 텔레비전이나 이런 데서도 많이 봤고. 뭐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빚만 좀 갚았으면… -강영민 ▲ 줄줄이 나오는 공범들 그럼 이제 다 끝난 걸까? 아니, 진짜 수사는 이제부터야. 과연 강영민은 자백을 했을까? 형사들은 사건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대. 이 끔찍한 범행에 연루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거든. 까도 까도 또 나오는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처럼. 모든 사건의 중심에 용의자 강영민이 있고, 사망한 임경태와, 이수연이 있지. 그리고 매우 의심스러운 사건, 아내의 교통사고. 본인이 운영하던 인쇄소의 방화 사건까지. 이 중에 인쇄소 방화범 안 씨와 유 씨는 이미 체포가 된 상황이야. 그럼 먼저, 경태 씨는 누가 살해했을까? 맞아. 강영민이야. 강영민은 화재를 위장한 방화를 저지르고도 아무 문제 없이 보험금을 타게 되자, 내연녀 이수연과 더 큰 범행을 계획한 거야. 이수연을 경태 씨에게 위장결혼 시키고 여러 보험에도 가입해. 그리고 한 번 더 머리를 굴려. 혹시나 의심받게 될까 봐 이수연 앞으로도 보험을 여러 개 든 거야. 여기까진 예상한 대로였어. 하지만 경태 씨를 살해한 그날 그곳엔, 예상 밖의 인물들이 있었어. 바로 공범 최 씨. 강영민은 평소 알고 지내던 최 씨를 만나 이렇게 말해. 요즘 힘들지? 사람 한 명만 없애주면 내가 1억 줄게. 같이 할래? 이 섬뜩한 제안을 최 씨는 받아들였어. 더 어이없는 건, 최 씨는 자신의 또 다른 지인 장 씨를 찾아간 거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사람 하나 죽이고 보험금 타낼 건데... 너도 할래? 내가 3천만 원 줄게. 살인 의뢰를 하청에 하청한 거야. 그렇게 범인은 넷으로 늘었어. 11월 6일 밤, 이수연은 남편이 혼자 낚시를 갔다고 했지만, 아니었어. 본인이 남편 경태 씨를 꼬셔서 낚시를 가자고 한 거야. 손수 낚시 가방까지 준비한 채로 말이지. 그 낚시 가방, 강영민이 챙겨준 거야. 그래서 그 차량 안 떡밥에서 강영민 지문이 나왔던 거야. 새신부와 낚시 데이트를 즐기기도 전에 경태 씨는, 세 남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어. 차에서 내리니까 바로 양팔을 잡고 다리를 잡고, 한 사람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우는 방법으로 해가지고 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수연은 직접 그 가담은 안 하고 죽인 행동은 안 하고 망만 보고 있었고.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물리적인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부검 기술로는 사인불명이 나온 거야. 형사들은 강영민의 이 자백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대. 두 공범의 존재는 전혀 몰랐으니까. 지금 그들이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거잖아. 그런데, 잡아야 할 범인이 그 둘 뿐만이 아니야. 또 있지. 바로, 강영민의 아내를 차로 친 사람. 형사들이 보험내역을 증거로 들이밀자, 강영민은 이 범행도 자백했어. 이번엔 아는 선배 황 씨에게 가서 제안을 했다는 거야. 형님, 내 마누라를 차로 쳐서 죽여주면 3억 보험금 중에, 딱, 절반! 1억 5천 줄게. 다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살인을 부탁한 거지. 그래야 큰돈을 받게 되니까. 백수였던 황 씨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그럼 황 씨가 강영민 아내를 차로 친 걸까? 아니. 황 씨는 또 다른 지인 서 씨를 범행에 가담시켜. 차로 여자 하나 쳐서 죽이면, 내가 3천만 원 줄게. 나중에 내 후배가 변호사 써서 다 알아서 해줄 거야. 강영민은 아내의 사진과 주거지 위치, 주변 지리 등을 꼼꼼하게 알려줬어. 그리고 강영민의 뜻대로 공범들이 고기를 사서 돌아오는 아내를, 전속력으로 들이받은 거지. 아직 못 들은 자백이 하나 더 있지? 바로 임경태 살해 공범인, 이수연 죽음에 대한 진실이야. 이번에도 공범이 있을까? 아니. 강영민은 이렇게 주장했어. 제 손으로 죽였습니다. 하지만, 수연이가 꼭 먼저 자기를 죽여달라고 했어요. 자기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라는 거야. 이런 걸 승낙에 의한 살인, 또는 촉탁살인이라고 해. 단순 살인과는 전혀 다르지. 같이 자살하고자 하는 꼬임에 넘어가서 그러면 승낙 살해로 죽여달라고 하니까. 수건으로 이제 이렇게 한 거지. 보통 우리가 줄로 감으면 이게 흔적이 형성되는데, 이제 이 수건으로 하면 이게 바로 안 되잖아요. 이 폭이 넓으니까 사인 미상으로 나왔어요.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강영민 증언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이수연 사망 사건은 이대로 수사가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이수연을 살해한 후 강영민은 태종대가 아니라, 또 다른 연인, 한 씨를 만나러 간 거야. 완전범죄가 되려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건 누군가의 도움 없인 불가능하니까. 강영민의 조사가 끝나자마자, 형사들은 바로 공범들 검거에 나섰어. 공범 네 명, 다 잡을 수 있을까? 우선 임경태 살인에 가담한 공범 최 씨가 공주의 어느 가게에 자주 나타난다고 해서, 당장 들이닥쳤어. 그런데 마침, 최 씨가 딱, 그 가게에 있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검거에 성공해. 또 다른 공범, 장 씨도 잡아야지? 최 씨를 추궁하자 이렇게 말해. 대전 서천동 외곽 거기 산 쪽에 있는 동네 어디 산다고만 들었어요. 다른 건 모르겠고... 걔 차가 소나타인데 핸들커버가 빨간색이거든요. 그게 끝이야. 이 정보만 갖고 장 씨를 찾을 수 있을까? 그 일대 서천동에 있는 차를 한 대, 한 대 다 뒤져서 소나타에 빨간 커버, 찾으니까 딱 한 대 있더라고. 그래서 그 세워놓은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려서 장 씨를 나오게 해서 잡았죠. -류덕희, 당시 옥천경찰서 형사 그렇게 이틀 만에 임경태 살인 용의자들을 모두 검거했어. 하지만 끝이 아니지. 강영민 아내에 대한 살인미수 공범 두 명, 황 씨와 서 씨. 이들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가 있었어. 형사들은 강영민 검거 후 단 4일 만에 모든 공범들을 일망타진해. 1999년 당시는 CCTV나 블랙박스를 보기 드문 시절이야. 과학수사를 하고 싶어도 현실은 열악했어. 그럼에도 형사들은 주범 강영민과 공범들까지 싹 다 검거하면서, 하마터면 미제가 될 뻔한 사건들을 해결했어. 형사의 머리와 몸보다 더 훌륭한 과학수사 장비는 없었어. 그만큼 형사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달린 결과인 거지. ▲ 섬뜩한 진실 공범들은 강영민의 진술에 대해 대부분 인정했어. 그런데 공범들 진술 중엔, 강영민이 하지 않았던 이야기도 있었어. 첫 번째는 이거야. 새신랑 임경태를 살해하던 날, 바짝 긴장한 최 씨와 장 씨에게, 강영민이 뭔가를 건넸다는 거야. 바로, 우황청심환. 최 씨와 장 씨는 숨진 임경태의 사체 유기까지 맡았는데, 처음엔 교통사고로 위장하려고 했어. 차에 태운 채 강으로 밀어버릴 계획이었던 거야. 그래야 보험금이 더 나오니까. 그런데 이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어. 왜일까? 교통사고 난 것처럼 추락한 것처럼 사고를 위장을 해야 하는데. 강에 밀어야 하는데 가다가 걸린 거예요. 겁나서 걔네들도 밀다가 안 밀었다고 해요. 그래서 더 이상 그렇게 못하고 조금 사고 난 것처럼 백미러 부수고 그렇게 해서 그냥 위장만 해놓고 온 거예요. -류덕희, 당시 옥천경찰서 형사 상황이 계획대로 되지 않자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온 모양이야. 두 사람은 그냥 강가에 차를 방치해 두고 간 거지. 겁이 나서. 덕분에 증거가 남았고 범인들을 검거할 수 있었어. 그리고 강영민이 말하지 않은 두 번째, 이건 좀 충격적이야. 강영민의 아내를 차로 살해하려던 날, 공범들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아침부터 차에서 대기 중이었거든. 그러다가 아내가 집에서 나오는 걸 봤는데, 두 사람은 엄청 당황했어. 왜 그랬을까? 강영민의 부인이 밖으로 나왔잖아요. 그런데 마침 애를 업고 있었어요. 얘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강영민한테 '야, 오늘은 하지 말자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라고. 강영민이 '왜?'라 물어서 '애가 있지 않느냐 애를 데리고 있다' 그러니까 강영민이 뭐라고 했냐면 '그냥 상관없으니까 까'… -류덕희, 당시 옥천경찰서 형사 어쩌면 공범들은 강영민만큼 잔인하진 못했던 것 같아. 그래서 천만다행으로 아이는 화를 면하고 엄마만 전치 16주에 그쳤던 게 아닐까. 강영민이 썼던 가짜 유서에서 이름을 거론하며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 중 마지막 세 이름이 바로, 강영민의 아내와 두 아이의 이름이야.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소름 끼치지 않아? 자기가 버리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던 가족이면서, 평범한 가장인 척한 게 가증스럽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이 돈 때문에 막 갈 수가 있는가. 소위 말해서 돈에 환장한 사람이지. 모든 게 돈으로 귀결되잖아요. 방화부터 시작해서 계속 사람 하나하나 살인하는 게 전부. 모든 일이 오로지 돈이잖아요. -백경흠, 당시 옥천경찰서 수사과장 ▲ 소리 없는 대재앙 당시로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연쇄 보험 살인 사건이야. 강영민의 혐의는, 살인, 살인미수, 위계승낙살인, 일반건조물방화, 사기, 사체유기까지. 죄목만 무려 6개야. 재판 결과는 어땠을까? 법정 판결이 있기 전에 그를 만난 기자가 있어.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해. 기자: 지금 심경이 어떤가요? 강영민: 죽을죄를 져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기자: 감옥 생활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강영민: 취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도소에서 열심히 공부하려고 합니다. 출소하면 좋은 사람 만나서 작은 식당이라도 하나 열고 싶어요. 기자는 당시 그의 얼굴에 보였던 웃음기와 태연자약함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해. 임경태 살해 공범인 최 씨와 장 씨는 징역 10년. 강영민 아내 살인미수 공범인 황 씨와 서 씨는 징역 4년을 받았어. 그럼 강영민은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이런 판결이 나왔어. 위 피고인은 애정으로 아끼고 보호해야 할 자신의 부인을 대상으로, 지극히 무책임하고 무자비하게 행동한 사실, 선량한 소시민인 피해자 임경태를 대상으로 범행을 실행에 옮긴 사실, 만 23세에 불과한 이수연의 삶의 의지를 꺾어 버리고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약간의 돈을 얻기 위해서 인간의 생명이나 인간관계에서의 기본적인 신뢰와 사랑이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고 별다른 의미도 없다는, 지극히 물질중심적인 사고에 경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데다, 제3자들의 잠재적 범행의지를 부추겨 이용한 치밀함, 범행 후의 정황을 함께 놓고 볼 때, 피고인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 주문. 피고인 강영민을 사형에 처한다. -강영민 재판 판결문 中 강영민은 끝까지 항소했지만 결국 사형이 확정됐고 지금 25년째 사형수로 살아가고 있어. 미국에선 보험사기를 '소리 없는 대재앙'이라고 부른대. 우리나라도 매년 1조 원 가량의 보험사기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돼. 하지만 전보다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고, 더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지면서, 살해, 상해 적발 건수는 줄어든 편이래. 보험범죄 수사관들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대. '보험범죄는 언젠간 반드시 적발된다'고. 강영민의 범죄를 도운 공범들. 아무리 돈이 간절하다고 해도, 어떻게 이 잔인한 범행에 동조할 수 있었을까? 몇 년 전 우리나라 청소년 정직 지수를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대. '만약 10억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질문에 몇 퍼센트가 괜찮다고 했을까? 초중고 학생 43%가 '괜찮다'고 답을 했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야. 어떻게 생각해? 우리 흔히들 '돈'을 지상최대의 목표처럼 얘기하곤 하잖아. '돈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게 하는 그런 사회가, 또 다른 공범들을 만드는 건 아닐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