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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윤 대통령의 '무속 비선' 논란…건진 법사-명태균-천공, 진짜 정체는?
등록일2025.01.05
윤석열의 법사, 도사, 스승. 그들은 멘토일까 비선일까? 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스승과 법사 - 대통령과 무속의 그림자'라는 부제로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무속 비선 논란을 추적했다.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이에 윤석열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대한민국은 충격과 혼돈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계엄과 관련해 진상들이 하나씩 밝혀지는 가운데 민간인인 노상원이 군의 선거관리위원회 투입과 요인 체포를 지시한 내란 기획자로 지목되었고, 그가 역술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윤석열을 둘러싼 무속인 비선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앞서 대통령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왔던 윤석열. 이 모습이 3차례나 포착되었고 이것이 당시 윤석열 캠프의 네트워크 본부 고문을 맡고 있던 건진법사 전성배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일었다. 또한 대통령의 스승을 자처한 '천공', 자칭 '지리산 도사'라는 명태균의 존재까지 드러나며 윤석열에 대한 의혹이 계속됐던 것. 특히 천공이 했던 말들은 윤석열의 국정 운영과 일치해 충격을 안겼던 것이다. 천공은 윤석열이 탄핵 위기에 몰리자 때를 기다리면 안전할 것이라는 말까지 해 그와 윤석열의 관계에 대한 의혹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명태균과 윤석열의 통화 녹음 파일이 공개되며 공천개입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명태균은 윤석열, 김건희와 사적인 관계라며 사적인 관계에 부탁을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명태균은 내가 감옥 들어가면 한 달 만에 이 정권 무너진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가 구속 기소된 날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일과 일치했다. 이들은 과연 윤석열의 멘토일까, 비선일까?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해서도 무속 논란이 계속됐다. 대통령 당선 3일 만에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선언했던 윤석열. 이에 관계자들도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당시 대통령실 근처 담벼락에 수백 장의 한자로 용자를 적은 종이들이 포착되었는데 이는 천공이 용산에 대해 언급했던 것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용산 집무실 이전으로 수십 년 갖춰온 방어시스템을 용산으로 전면 재배치해야 했는데 이에 안보 공백 문제들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리고 이는 우려를 넘어 현실로 닥쳤다. 그러나 윤석열은 단 하루도 청와대에 머물지 않고자 했고 이는 지리산 도사 명태균, 천공의 영향력이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했다. 그리고 대통령실 공사 업체 중 한 곳인 희림. 이곳은 김건희가 대표로 있던 곳인 코바나콘텐츠가 주관한 전시회에 협찬하고 건진 법사와 관련 있는 재단에도 후원한 바 있다. 이에 이 또한 건진 법사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용산 집무실 이전으로 막대한 이전 비용이 우려되었고, 실제로 지난해까지 800억 넘는 혈세가 들어갔는데 이는 윤석열이 밝힌 예산에 2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유튜브로 천공을 알게 되고 그에게 연락을 해 자신의 행보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는 윤석열. 그리고 이는 천공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후 윤석열은 이것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천공은 윤석열 부부가 모습을 드러낸 곳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이에 여전히 윤석열 부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았다. 이에 많은 이들은 수사로 이들에 대해 똑바로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단순히 운세를 점치는 무속인들이 아니라는 것. 공정에 대한 요구가 커지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석열. 그러나 그의 행보는 공정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우리 편의 지지만 받으면 돼 라는 생각으로 국정 운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외면했다. 결국 윤석열은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위치에서 체포 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윤석열은 이에 대해서도 외면하고 있는 상황. 이에 전문가는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죄와 외환죄 소추를 받는다. 피의자 입장에서 뭘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라고 지적했다. 탄핵안 가결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국민 모두의 안녕과 평범한 일상이었다. 일부만이 행복한 세상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세상, 그것만이 거리로 나선 국민들이 바라는 바였다. 무속이 국가와 사회 전체를 이끌어 가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수천 년 전 고대 국가의 이야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은 특정 종교나 이념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모든 권력이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무속인의 조언이나 일부 지지 세력의 말에만 귀 기울일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으로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여겨 선출된 윤석열. 그러나 믿음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적법하게 의결한 탄핵 소추는 졸속이라고 폄하하고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는 불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지금 그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성장시킨 것은 시민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지켜왔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특유의 저력으로 끝내 진정한 의미의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고 새 시대를 향해 다시 나갈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김효정 에디터)
[스브스夜] '그알' 윤석열 대통령의 '무속 비선' 논란…건진 법사-명태균-천공, 그들의 진짜 정체는?
등록일2025.01.05
[김효정 에디터] 윤석열의 법사, 도사, 스승. 그들은 멘토일까 비선일까? 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스승과 법사 - 대통령과 무속의 그림자'라는 부제로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무속 비선 논란을 추적했다.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이에 윤석열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대한민국은 충격과 혼돈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계엄과 관련해 진상들이 하나씩 밝혀지는 가운데 민간인인 노상원이 군의 선거관리위원회 투입과 요인 체포를 지시한 내란 기획자로 지목되었고, 그가 역술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윤석열을 둘러싼 무속인 비선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앞서 대통령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왔던 윤석열. 이 모습이 3차례나 포착되었고 이것이 당시 윤석열 캠프의 네트워크 본부 고문을 맡고 있던 건진법사 전성배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일었다. 또한 대통령의 스승을 자처한 '천공', 자칭 '지리산 도사'라는 명태균의 존재까지 드러나며 윤석열에 대한 의혹이 계속됐던 것. 특히 천공이 했던 말들은 윤석열의 국정 운영과 일치해 충격을 안겼던 것이다. 천공은 윤석열이 탄핵 위기에 몰리자 때를 기다리면 안전할 것이라는 말까지 해 그와 윤석열의 관계에 대한 의혹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명태균과 윤석열의 통화 녹음 파일이 공개되며 공천개입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명태균은 윤석열, 김건희와 사적인 관계라며 사적인 관계에 부탁을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명태균은 내가 감옥 들어가면 한 달 만에 이 정권 무너진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가 구속 기소된 날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일과 일치했다. 이들은 과연 윤석열의 멘토일까, 비선일까?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해서도 무속 논란이 계속됐다. 대통령 당선 3일 만에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선언했던 윤석열. 이에 관계자들도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당시 대통령실 근처 담벼락에 수백 장의 한자로 용자를 적은 종이들이 포착되었는데 이는 천공이 용산에 대해 언급했던 것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용산 집무실 이전으로 수십 년 갖춰온 방어시스템을 용산으로 전면 재배치해야 했는데 이에 안보 공백 문제들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리고 이는 우려를 넘어 현실로 닥쳤다. 그러나 윤석열은 단 하루도 청와대에 머물지 않고자 했고 이는 지리산 도사 명태균, 천공의 영향력이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했다. 그리고 대통령실 공사 업체 중 한 곳인 희림. 이곳은 김건희가 대표로 있던 곳인 코바나콘텐츠가 주관한 전시회에 협찬하고 건진 법사와 관련 있는 재단에도 후원한 바 있다. 이에 이 또한 건진 법사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용산 집무실 이전으로 막대한 이전 비용이 우려되었고, 실제로 지난해까지 800억 넘는 혈세가 들어갔는데 이는 윤석열이 밝힌 예산에 2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유튜브로 천공을 알게 되고 그에게 연락을 해 자신의 행보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는 윤석열. 그리고 이는 천공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후 윤석열은 이것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천공은 윤석열 부부가 모습을 드러낸 곳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이에 여전히 윤석열 부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았다. 이에 많은 이들은 수사로 이들에 대해 똑바로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단순히 운세를 점치는 무속인들이 아니라는 것. 공정에 대한 요구가 커지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석열. 그러나 그의 행보는 공정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우리 편의 지지만 받으면 돼 라는 생각으로 국정 운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외면했다. 결국 윤석열은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위치에서 체포 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윤석열은 이에 대해서도 외면하고 있는 상황. 이에 전문가는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죄와 외환죄 소추를 받는다. 피의자 입장에서 뭘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라고 지적했다. 탄핵안 가결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국민 모두의 안녕과 평범한 일상이었다. 일부만이 행복한 세상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세상, 그것만이 거리로 나선 국민들이 바라는 바였다. 무속이 국가와 사회 전체를 이끌어 가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수천 년 전 고대 국가의 이야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은 특정 종교나 이념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모든 권력이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무속인의 조언이나 일부 지지 세력의 말에만 귀 기울일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으로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여겨 선출된 윤석열. 그러나 믿음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적법하게 의결한 탄핵 소추는 졸속이라고 폄하하고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는 불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지금 그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성장시킨 것은 시민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지켜왔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특유의 저력으로 끝내 진정한 의미의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고 새 시대를 향해 다시 나갈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알' 영도 청학동 강도 살인 사건… 빈 집 털다가 피해자 찔렀다 고백은 진실?
등록일2024.11.17
용의자들 중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은?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세 용의자의 진실게임 - 영도 청학동 살인 사건'이라는 부제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청학동 살인 사건을 추적했다. 지난 2005년 5월 23일, 부산 영도구 청학동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전업주부 윤경숙 씨가 자신의 집 부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것. 오전에 외출을 했다가 돌아온 경숙 씨는 오전 10시경 친구에게 화분을 가지고 가라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10시 18분 그의 친구가 경숙 씨를 찾아왔을 때 이미 경숙 씨는 사망했던 것. 범인은 날카로운 흉기로 피해자의 가슴을 두 차례 찌르고 얼굴에도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경숙 씨의 지갑에서 50만 원을 훔쳐 도주해 강도 살인으로 추측되었다. 그런데 현장에는 어떠한 단서도 없었고 목격자나 CCTV도 확인되지 않아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2년 뒤 제보자의 등장으로 수사는 다시 급물살을 탔다. 제보자 최 씨는 친구 이 씨가 손가락에 무언가 감고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다고. 그러자 이 씨는 친구 김 씨, 박 씨와 함께 청학동에서 강도질을 하다가 손을 다쳤다고 했다는 것. 경찰은 이 제보를 중요하게 여기며 수사를 재개했다. 그러나 이 씨는 장난으로 한 말이라고 말을 바꿨다는 것. 김 씨와 박 씨 또한 그런 일은 없었다며 이 씨의 거짓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사건은 다시 해결되지 못한 채 수사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부산경찰청 미제수사팀에서 재수사를 시작하게 되고 제보자는 이 씨를 다시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이 씨는 또다시 친구들 앞에서 범행에 대해 고백했던 것. 특히 그는 범행 도구를 비닐에 넣어 바다에 버렸다는 말까지 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제보자는 박 씨를 불러 이 사건에 대해 다시 물었고, 박 씨는 그런 일이 없었다며 이 씨 대문에 억울하게 조사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제작진과 만난 이 씨는 장난으로 한 이야기라며 장난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야기한 것과 범행 수법이 비슷하다는 경찰의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이에 제작진은 최면을 받아볼 수 있는지 물었고, 이 씨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작진이 최면 전문가와 함께 이 씨를 다시 찾아가자 그는 날 선 반응을 보이며 경찰까지 부르며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과거 이 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 씨. 이에 제작진은 김 씨를 추궁했다. 그러자 김 씨는 친구 이 씨가 허위 진술을 한 것이라며 그의 거짓말로 자신도 피해를 보고 시간 낭비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자신은 떳떳하다며 제작진을 직접 만났다. 김 씨는 이 씨에 대해 부산 소년원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이후 박 씨의 소개로 다시 만난 이 씨와 소년원 동기인 것을 알고 이후 본격적으로 친해졌다는 것. 그리고 김 씨는 이 씨가 과거에도 거짓말로 사람을 모함하고 그랬다며 2005년 구치소에 다녀온 후로는 다시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김 씨는 2005년에 아버지 밑에서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제 아들 걸고 그런 짓은 안 했다 라며 잔도둑질을 한 건 맞다. 배고파서 시장 가서 빵 훔쳐먹고 그랬는데 우리 그릇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 라고 범행을 부인했다. 그런데 김 씨의 전 아내의 과거 진술에 따르면 김 씨가 이 씨, 박 씨와 함께 사건 이후에도 계속 범행들을 저질렀고 이후 갑자기 큰돈이 생긴 일도 있었다고. 또한 김 씨가 인근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 그 부근에 칼을 버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전 아내가 이 씨, 박 씨와 만난 적도 없고 칼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던 김 씨. 전문가는 청학동 살인 사건에 대해 사건의 원래 목적은 강도였을 가능성 높다. 비면식범에 의한 강도 살인 사건일 가능성 높다 라고 분석했다. 또한 단독범이어도 충분히 가능한 사건이다. 하지만 공범이 많은 강도 사건의 특성상 직접 피해자를 공격하는 데 가담하지 않은 다른 역할을 맡은 공범의 가능성도 반드시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강도 경험은 있으나 행위의 계획이나 뒤처리가 능숙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사람을 해친 경험까지는 없어 보인다. 주변 지리를 잘 아는 동종 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들부터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라고 조언했다. 절도와 특수 절도 전과가 있던 세 사람. 이에 전문가는 3인조를 해당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해 볼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동종 범죄 전과자들은 경찰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로 세 사람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확신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면 해당 사건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다른 전문가는 이 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사건의 결과로 본인들이 6년, 3년, 집행유예를 받았다,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병원에서 수술을 해서 살았다든지 사건과는 객관적으로 거리가 먼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고 그렇게 기억하고 진술하는 것으로 보인다 락 분석했다. 그리고 2005년에 했던 이야기와 2016년에 했던 이야기 사이에 차이점들도 보인다며 되게 그럴싸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 씨의 말은 신뢰도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럴싸할 뿐인 것이다. 세 명이 강도짓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 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씨의 전 아내가 밝힌 김 씨가 바닷가에 칼을 버렸다는 진술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전 아내가 이런 말을 하면서도 김 씨는 사람을 해칠 사람은 아니다는 진술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나쁜 의도를 가지고 지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 씨가 전 아내의 이야기에 대해 부정할 때 칼 버린 것과 전 아내가 친구들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같이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며 칼 버린 이야기에 대해서 공범들이 같이 거론될 이유가 없다. 김 씨에게 칼 버린 장소가 다른 사람들과 연합이 돼 있기에 두 가지 이야기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라며 칼 버린 장소에 친구들이 같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하루빨리 사건의 완전히 해결될 수 있도록 해당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있거나 당시 수상한 사람을 목격한 적이 있다면 꼭 제보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효정 에디터)
[스브스夜] '그알' 영도 청학동 강도 살인 사건… 빈 집 털다가 피해자 찔렀다 고백은 진실?
등록일2024.11.17
[김효정 에디터] 용의자들 중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은?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세 용의자의 진실게임 - 영도 청학동 살인 사건'이라는 부제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청학동 살인 사건을 추적했다. 지난 2005년 5월 23일, 부산 영도구 청학동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전업주부 윤경숙 씨가 자신의 집 부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것. 오전에 외출을 했다가 돌아온 경숙 씨는 오전 10시경 친구에게 화분을 가지고 가라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10시 18분 그의 친구가 경숙 씨를 찾아왔을 때 이미 경숙 씨는 사망했던 것. 범인은 날카로운 흉기로 피해자의 가슴을 두 차례 찌르고 얼굴에도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경숙 씨의 지갑에서 50만 원을 훔쳐 도주해 강도 살인으로 추측되었다. 그런데 현장에는 어떠한 단서도 없었고 목격자나 CCTV도 확인되지 않아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2년 뒤 제보자의 등장으로 수사는 다시 급물살을 탔다. 제보자 최 씨는 친구 이 씨가 손가락에 무언가 감고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다고. 그러자 이 씨는 친구 김 씨, 박 씨와 함께 청학동에서 강도질을 하다가 손을 다쳤다고 했다는 것. 경찰은 이 제보를 중요하게 여기며 수사를 재개했다. 그러나 이 씨는 장난으로 한 말이라고 말을 바꿨다는 것. 김 씨와 박 씨 또한 그런 일은 없었다며 이 씨의 거짓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사건은 다시 해결되지 못한 채 수사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부산경찰청 미제수사팀에서 재수사를 시작하게 되고 제보자는 이 씨를 다시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이 씨는 또다시 친구들 앞에서 범행에 대해 고백했던 것. 특히 그는 범행 도구를 비닐에 넣어 바다에 버렸다는 말까지 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제보자는 박 씨를 불러 이 사건에 대해 다시 물었고, 박 씨는 그런 일이 없었다며 이 씨 대문에 억울하게 조사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제작진과 만난 이 씨는 장난으로 한 이야기라며 장난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야기한 것과 범행 수법이 비슷하다는 경찰의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이에 제작진은 최면을 받아볼 수 있는지 물었고, 이 씨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작진이 최면 전문가와 함께 이 씨를 다시 찾아가자 그는 날 선 반응을 보이며 경찰까지 부르며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과거 이 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 씨. 이에 제작진은 김 씨를 추궁했다. 그러자 김 씨는 친구 이 씨가 허위 진술을 한 것이라며 그의 거짓말로 자신도 피해를 보고 시간 낭비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자신은 떳떳하다며 제작진을 직접 만났다. 김 씨는 이 씨에 대해 부산 소년원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이후 박 씨의 소개로 다시 만난 이 씨와 소년원 동기인 것을 알고 이후 본격적으로 친해졌다는 것. 그리고 김 씨는 이 씨가 과거에도 거짓말로 사람을 모함하고 그랬다며 2005년 구치소에 다녀온 후로는 다시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김 씨는 2005년에 아버지 밑에서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제 아들 걸고 그런 짓은 안 했다 라며 잔도둑질을 한 건 맞다. 배고파서 시장 가서 빵 훔쳐먹고 그랬는데 우리 그릇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 라고 범행을 부인했다. 그런데 김 씨의 전 아내의 과거 진술에 따르면 김 씨가 이 씨, 박 씨와 함께 사건 이후에도 계속 범행들을 저질렀고 이후 갑자기 큰돈이 생긴 일도 있었다고. 또한 김 씨가 인근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 그 부근에 칼을 버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전 아내가 이 씨, 박 씨와 만난 적도 없고 칼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던 김 씨. 전문가는 청학동 살인 사건에 대해 사건의 원래 목적은 강도였을 가능성 높다. 비면식범에 의한 강도 살인 사건일 가능성 높다 라고 분석했다. 또한 단독범이어도 충분히 가능한 사건이다. 하지만 공범이 많은 강도 사건의 특성상 직접 피해자를 공격하는 데 가담하지 않은 다른 역할을 맡은 공범의 가능성도 반드시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강도 경험은 있으나 행위의 계획이나 뒤처리가 능숙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사람을 해친 경험까지는 없어 보인다. 주변 지리를 잘 아는 동종 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들부터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라고 조언했다. 절도와 특수 절도 전과가 있던 세 사람. 이에 전문가는 3인조를 해당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해 볼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동종 범죄 전과자들은 경찰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로 세 사람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확신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면 해당 사건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다른 전문가는 이 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사건의 결과로 본인들이 6년, 3년, 집행유예를 받았다,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병원에서 수술을 해서 살았다든지 사건과는 객관적으로 거리가 먼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고 그렇게 기억하고 진술하는 것으로 보인다 락 분석했다. 그리고 2005년에 했던 이야기와 2016년에 했던 이야기 사이에 차이점들도 보인다며 되게 그럴싸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 씨의 말은 신뢰도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럴싸할 뿐인 것이다. 세 명이 강도짓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 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씨의 전 아내가 밝힌 김 씨가 바닷가에 칼을 버렸다는 진술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전 아내가 이런 말을 하면서도 김 씨는 사람을 해칠 사람은 아니다는 진술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나쁜 의도를 가지고 지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 씨가 전 아내의 이야기에 대해 부정할 때 칼 버린 것과 전 아내가 친구들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같이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며 칼 버린 이야기에 대해서 공범들이 같이 거론될 이유가 없다. 김 씨에게 칼 버린 장소가 다른 사람들과 연합이 돼 있기에 두 가지 이야기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라며 칼 버린 장소에 친구들이 같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하루빨리 사건의 완전히 해결될 수 있도록 해당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있거나 당시 수상한 사람을 목격한 적이 있다면 꼭 제보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알' 재일한국인 아내 살인사건,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 …그가 무죄 주장하는 이유는?
등록일2024.11.10
그는 억울한 사법 피해자일까? 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계단과 삭흔 -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라는 부제로 아내 살인죄로 8년째 복역중인 재일한국인 박 씨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지난 2016년 8월, 만화 '진격의 거인'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에서 편집차장으로 일하던 재일한국인 박 씨의 아내가 사망했다. 7년 연애 끝에 일본인 가나코 씨와 결혼해 슬하에 4남매를 두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박 씨.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가장이었다. 그런데 넷째를 낳고 산후 우울증을 앓던 박 씨의 아내 상태가 악화되었던 것. 사건 당일인 8월 9일 새벽 1시경 귀가한 박 씨에게 아내는 다짜고짜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며 칼을 들고 위협했고, 이에 박 씨는 아내에게서 칼을 빼앗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고, 이후 아이를 안고 2층의 아이들 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30여 분 뒤 나와 보니 아내가 계단 손잡이에 자신이 벗어둔 재킷으로 목을 매고 숨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씨는 아이들이 아내의 자살을 아는 것이 두려워 구급대원과 경찰에 아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걸로 해 달라 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수사 기관은 이를 수상하게 여겼고 사건 발생 5개월 뒤 박 씨를 아내 가나코를 살해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검찰은 1층 침실 매트리스에서 나온 소변 자국과 침 등을 근거로 박 씨가 가나코를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그 후 박 씨가 가나코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가 떨어뜨려 사고처럼 위장했다는 것. 이에 검찰은 계단에선 소변 자국이나 묶인 재킷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박 씨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이에 1심과 2심은 박 씨를 유죄라 판명하며 그에게 11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사건 발생 6년 만에,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사실오인에 따른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제작진은 박 씨에게 연락을 해 방송 제작을 의뢰했다. 그러나 박 씨는 자신의 무죄 판결을 확신하며 만약에 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그때 다시 방송 제작을 검토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뒤집기 힘든 일본 사법부에서 환송심은 몹시 드문 일이기 때문에 박 씨는 자신의 억울함이 증명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올해 열린 환송심에서 다시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피고의 진술은 전체적으로 신뢰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유죄를 판결하며 재차 징역 11년을 선고한 재판부. 이미 1심에서 선고된 11년 중 8년이 지난 현재 박 씨는 아직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을까? 그는 제작진에게 저는 결코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의 법률 대리인도 그의 죄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라고 생각해 재상고를 신청한 상태. 법률 대리인은 심리한 증거를 토대로 유죄 판결이 난 것이 아니다. 심리한 부분에서는 피고 측이 이겼다. 이긴 부분을 제외하고도 유죄가 성립된다면 법의학 의견은 거의 무시하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라며 부검 결과와 증거들이 모두 자살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유죄 판결을 냈다고 착잡한 얼굴을 했다. 한꺼번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이별하게 된 4남매.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믿기 힘들 정도로 아이들은 건강하고 밝게 자라 있었다. 특히 아이들과 박 씨의 어머니는 8년 전 사건이 일어난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사건 하루 전날인 2016년 8월 8일, 박 씨의 아내 가나코는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여러 차례 제목뿐인 메일을 보냈다. 여러 통의 부재중 통화 이후 오후 7시 30분경 박 씨는 전화를 통해 가나코와 육아에 대한 고민과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8월 9일 새벽 1시경 집에 도착한 박 씨. 그는 물을 마시기 위해 재킷을 난간에 걸어두고 2층의 냉장고로 향했다. 이때 2층 거실에 있던 아내 가나코를 발견했다. 가나코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고, 이에 박 씨는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가나코는 아기랑 같이 죽겠다며 칼을 들고 아이에게 가고 이를 본 박 씨가 가나코가 아이를 해치지 못하게 밀친 뒤 칼을 떨어뜨린 아내를 눌러 진정시켰다는 것. 그러나 검경은 이때 박 씨가 고의로 가나코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안고 아이들의 방으로 피신했다가 30분 뒤 밖으로 나와보니 아내가 계단 손잡이에 재킷으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주장한 박 씨. 하지만 검경은 아내를 살해한 박 씨가 곧바로 아내의 시신을 계단으로 끌고 올라가 추락사로 위장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아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것으로 해달라고 말한 박 씨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박 씨가 아이들에게 아내의 자살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했던 행동들을 증거 인멸을 위한 행동이라 여겼다. 사건 당시 가나코는 구급대가 현장에 갔을 때 이미 심폐정지가 확인된 상태였다. 이에 응급처치를 계속했지만 심장 박동이 돌아오지 않았고 박 씨를 불러 사망 선고를 했던 것. 가나코의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 신체에 일체의 골절은 없었고 사인과 관련된 어떤 상처도 남지 않았다. 부검의는 목에 남은 흔적에 대해 팔과 옷이라면 구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가나코처럼 목에 흔적이 거의 없을 때는 자살과 타살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침실 매트리스에 묻은 소변 자국이 박 씨가 가나코를 꽉 누르는 행동으로 나온 것이고 그에 따른 사망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없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매트리스의 소변 자국과 침 자국이 엎드린 가나코의 신체 비율과 일치한다며 바로 제압당하며 질식해 숨졌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재판부는 사건을 담당한 부검의가 아닌 검찰 측의 법의학자 측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 법의학자는 이마의 상처가 박 씨가 아내를 계단에서 떨어뜨린 증거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사망하기 전인 사전기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턱 아래 남은 표피 박탈에 대해서도 아내를 계단으로 끌고 간 증거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박 씨가 체포되기 1주일 전부터 집 앞에 들이닥쳤던 취재진들. 이에 이웃들이 함께 아이들을 보호해 줬다. 그리고 이웃들은 지금도 하루빨리 박 씨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의 성품을 알기에 그를 믿었던 것. 박 씨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무죄를 믿고 응원하고 있었다. 항상 육아를 염두에 두었던 이였기에 남겨진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그가 그런 행동들을 했다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 그렇기에 박 씨의 동료는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박 씨의 부탁대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박 씨는 8년째 거르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아빠 학교라는 이름으로 4남매 각각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보내면 박 씨는 감상평을 편지로 써서 보내고 그리고 매번 다양한 주제로 편지를 썼다. 이에 아이들에게 아빠는 여전히 그립고 사랑하는 존재였다. 사건 당시 열 살이었던 첫째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엄마가 돌아가신 날 아빠가 후우타를 안고 아이방 문 앞에서 서 있었던 것이 살짝 기억난다. 후우타를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 라며 박 씨의 주장과 일치하는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에 첫째는 그날에 대해 증언하고 싶었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증거는 또 있었다. 사건 당시 칼로 2층 방문을 두드린 가나코. 이에 문에 식칼의 파편이 끼어 있었다고. 그리고 이것은 현장 검증에서 밝혀진 것이었다. 그것을 검찰이 증거로 압수까지 했지만 재판에서는 중요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었다. 또한 가나코가 넷째 낳고 보건소에서도 우울증이 있다는 진단이 있었다. 그러나 가나코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을 거부했고 이후 아이의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크게 자책했었다는 것. 이러한 사실들을 아는 가나코의 아버지도 박 씨의 무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사건 담당 부검의는 검찰 측 법의학자가 말했던 사전기에 대해 사전 기라는 법의학 용어는 있다. 죽음과 싸우는 시기라는 뜻이다. 아직 심장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지만 멈추기 직전인 시간인 것. 그런데 이것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라며 소변 자국으로 질식사 시점을 판단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그는 목을 조르면 반드시 소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조금 억지스럽다고 할까? 저는 박 씨가 범인일까 아닐까 법의학적으로 관심이 없다. 다만 검찰이 너무 객관성이 없는 증거를 많이 내놓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라고 덧붙였다. 법정에서도 이런 내용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 부검의. 그는 물론 일본이 한국보다 법의학을 먼저 도입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현에 법의학 연구실이 하나밖에 없다. 그러면 선생님 이 사람이 죽였다고 말씀해 주세요라고 검찰에게 부탁받으면 거절 못하는 사람이 나온다. 결국 일본의 법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영향이 꽤 크고 그런 검찰 측에 치우친 감정을 해주는 사람이 생겨나기 쉬운 환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라며 일본 법의학계의 아쉬운 현실을 지적했다. 박 씨의 대학 친구들은 재판이 길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결정적인 증거가 적기 때문이다. 검찰 측 시나리오조차도 별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며 공정한 재판을 해달라 요구하는 서명 활동을 시작한 게 2심이 끝났을 때였다 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1165명이 서명하고 일본 주요 언론 집중 보도되며 최고 재판소에서 파기 환송이 결정 났다. 그러나 환송심 결과는 예상과 너무 달랐다. 또한 대학 친구는 환송심 중에 법의학자 시미즈 선생님이 법정에서 부검 사진을 봤을 때 삭흔이라고 불리는 목을 매고 돌아가신 분들 특유의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분은 살해된 게 아니라 자살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 라며 재판부를 지적했다. 또한 이 법의학자는 이마의 상처가 정상적으로 살아있을 때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침실에서는 소변과 침 외에 다른 혈흔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고 이마의 상처가 사전기에 생긴 것이 아닌 생활하던 중 생긴 상처라고 한다면 침실에서 사망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환송심 재판부는 직접 부검하지 않고 부검 사진만 본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가족과 변호사는 환송심 유죄 판결 후 기자회견으로 재판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박 씨 측은 가나코의 많은 자살 증거, 박 씨가 억울하다는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시당했다며 새로운 유죄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는데 유죄가 되었다고 했다. 전직 고등법원 피나는 파기 환송 후 2심 판결문을 읽고 든 생각인데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결국 처음 1심과 같은 이유로 유죄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소송 경과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 굉장히 문제라고 생각했다 라는 견해를 밝혔다. 국내 법의학자들은 소변 자국을 증거로 타살을 단정한 건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소변 자국이 질식사의 절대적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목을 맨 계단에서 소변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마의 상처는 생활 반응이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또한 목에 남은 흔적에 대해서는 타살의 가능성은 매우 적은 목의 손상 소견이다. 손상이 거의 없다는 것 자체가 목맴에서 아주 흔하게 보는 소견 이라고 설명했다. 목 졸려 살해당한 것 치고 손상이 없다는 것. 보통 살해를 당하면 격렬한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순수하게 깔끔하게 다른 손상이 없이 경부압박 질식사한 것을 타살을 당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드문 예라고 말했다. 그리고 삭흔에 대해서도 변호사 측 법의학자와 같은 소견을 밝혔다. 맨 팔로 목에 압박을 가했을 때는 주름이 안 생긴다는 것. 턱 아래 상처와 이마의 상처가 박 씨가 아내를 끌고 갈 때 생긴 상처라고 주장한 검찰. 이에 제작진은 시뮬레이션을 통과 실험을 진행해 검찰의 주장이 타당한지 확인했다. 그 결과 다리를 끄는 순간 목이 돌아가며 턱이 아니라 얼굴 한쪽 부위와 마찰하게 되어 턱 아래는 전혀 계단과 닿지 않아 찰과상이 생길 수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리를 끄는 것이 아니라 상체를 안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어느 경우든 밀었을 때 후두부가 계단과 부딪혀 두개골 골절이 예상되고 경우에 따라 경추 골절도 예측되어 얼굴 전면부에 충격이 가해지는 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문가는 상당히 의심할 점이 많이 남는 행동을 박 씨가 했다고 볼 수 있다. 발견한 이후 신고까지 상당 부분 시간이 흐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거짓으로 진술할 수 없는 부분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라며 계획적으로 살인하고 사고로 위장하려는 사람이 계단에서 떨어진 것으로 해주세요 라고 말하겠는가 라고 되물었다. 산후 우울증 검사 결과와 사건 당일 박 씨와 나눈 가나코의 이메일 내용을 본 정신과 전문의는 자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너무 정신과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전문의는 어떤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면 짧은 시기에 착란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우울증 증세가 있었으면 아마도 자살 기도를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라고 말했다. 1심 2심 환송심의 유죄 근거가 판사마다 달랐던 것에 대해 전문가는 결국은 법의 일관성이 좀 없어 보이고 이렇게 각자 주관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유죄로 갔으면 이게 확실한가라는 의문을 근본적으로 남기는 구조이다. 타살설에 부합하지 않는 자살일 가능성이 있는 정황이나 증거들도 꽤 있어 보인다. 그런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유죄로 인정하지 않는다 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본 형사 재판 유죄 선고 비율 99.8%. 이에 일본 전직 판사는 검찰이 무죄를 두려워해서 위험한 사건은 잘 기소하지 않는다. 검찰관의 기소에 대해 재판관도 검찰의 기소는 기본적으로 옳을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 그런 게 크기 때문에 피고 측이 무언가를 말하더라도 좀처럼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라며 일본 사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근 들어 일본에는 엔자이(억울하게 뒤집어쓴 죄) 사건들이 큰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입증되지 않은 살인 혐의로 구금된 채 재판을 받아온 지 8년째가 된 박 씨. 그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아내의 자살을 막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저는 결코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는 분명 아내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고 제게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끈질기게 아내에게 부탁해서 병원에 데려갔다면 아내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제가 한심하게 두려움에 떨며 아이들 방에 피신해 있지 않았다면 아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소중한 아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를 떠올린 첫째 하나는 저는 아이이긴 했지만 엄마가 불안한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고 뭔가 정말 막연한데 엄마가 죽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 매일 밤마다 엄마가 죽지 않게 해달라고 무심코 생각해서 기도하면서 자기도 했다 라며 지금도 여전히 엄마와 아빠 모두 사랑하고 있다며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법의학을 전수했지만 형사 사건에 대한 부검을 완전히 민영화시키면서 공신력 확보에 어려움 겪고 있는 일본. 일본인들은 근대화 초기 검찰과 법원이 같은 소속으로 출발한 역사가 지금까지 사법 체계 독립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확증편향으로 인한 오판과 그걸 깨닫고도 스스로 바로 잡지 않으려는 권위주의가 비단 일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법 분위기로 인해 박 씨 사건에 필요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일 것. 이에 방송은 박 씨의 남은 재판에서는 과학적 사실들이 부디 충분히 고려되고 입증되길 바랐다. 11년 중 8년을 복역한 박 씨,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온전한 아버지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효정 에디터)
[스브스夜] '그알' 재일한국인 아내 살인사건,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 …그가 무죄 주장하는 이유는?
등록일2024.11.10
[김효정 에디터] 그는 억울한 사법 피해자일까? 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계단과 삭흔 -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라는 부제로 아내 살인죄로 8년째 복역중인 재일한국인 박 씨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지난 2016년 8월, 만화 &&'진격의 거인&&'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에서 편집차장으로 일하던 재일한국인 박 씨의 아내가 사망했다. 7년 연애 끝에 일본인 가나코 씨와 결혼해 슬하에 4남매를 두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박 씨.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가장이었다. 그런데 넷째를 낳고 산후 우울증을 앓던 박 씨의 아내 상태가 악화되었던 것. 사건 당일인 8월 9일 새벽 1시경 귀가한 박 씨에게 아내는 다짜고짜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며 칼을 들고 위협했고, 이에 박 씨는 아내에게서 칼을 빼앗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고, 이후 아이를 안고 2층의 아이들 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30여 분 뒤 나와 보니 아내가 계단 손잡이에 자신이 벗어둔 재킷으로 목을 매고 숨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씨는 아이들이 아내의 자살을 아는 것이 두려워 구급대원과 경찰에 아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걸로 해 달라 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수사 기관은 이를 수상하게 여겼고 사건 발생 5개월 뒤 박 씨를 아내 가나코를 살해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검찰은 1층 침실 매트리스에서 나온 소변 자국과 침 등을 근거로 박 씨가 가나코를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그 후 박 씨가 가나코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가 떨어뜨려 사고처럼 위장했다는 것. 이에 검찰은 계단에선 소변 자국이나 묶인 재킷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박 씨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이에 1심과 2심은 박 씨를 유죄라 판명하며 그에게 11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사건 발생 6년 만에,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사실오인에 따른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제작진은 박 씨에게 연락을 해 방송 제작을 의뢰했다. 그러나 박 씨는 자신의 무죄 판결을 확신하며 만약에 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그때 다시 방송 제작을 검토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뒤집기 힘든 일본 사법부에서 환송심은 몹시 드문 일이기 때문에 박 씨는 자신의 억울함이 증명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올해 열린 환송심에서 다시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피고의 진술은 전체적으로 신뢰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유죄를 판결하며 재차 징역 11년을 선고한 재판부. 이미 1심에서 선고된 11년 중 8년이 지난 현재 박 씨는 아직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을까? 그는 제작진에게 저는 결코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의 법률 대리인도 그의 죄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라고 생각해 재상고를 신청한 상태. 법률 대리인은 심리한 증거를 토대로 유죄 판결이 난 것이 아니다. 심리한 부분에서는 피고 측이 이겼다. 이긴 부분을 제외하고도 유죄가 성립된다면 법의학 의견은 거의 무시하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라며 부검 결과와 증거들이 모두 자살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유죄 판결을 냈다고 착잡한 얼굴을 했다. 한꺼번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이별하게 된 4남매.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믿기 힘들 정도로 아이들은 건강하고 밝게 자라 있었다. 특히 아이들과 박 씨의 어머니는 8년 전 사건이 일어난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사건 하루 전날인 2016년 8월 8일, 박 씨의 아내 가나코는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여러 차례 제목뿐인 메일을 보냈다. 여러 통의 부재중 통화 이후 오후 7시 30분경 박 씨는 전화를 통해 가나코와 육아에 대한 고민과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8월 9일 새벽 1시경 집에 도착한 박 씨. 그는 물을 마시기 위해 재킷을 난간에 걸어두고 2층의 냉장고로 향했다. 이때 2층 거실에 있던 아내 가나코를 발견했다. 가나코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고, 이에 박 씨는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가나코는 아기랑 같이 죽겠다며 칼을 들고 아이에게 가고 이를 본 박 씨가 가나코가 아이를 해치지 못하게 밀친 뒤 칼을 떨어뜨린 아내를 눌러 진정시켰다는 것. 그러나 검경은 이때 박 씨가 고의로 가나코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안고 아이들의 방으로 피신했다가 30분 뒤 밖으로 나와보니 아내가 계단 손잡이에 재킷으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주장한 박 씨. 하지만 검경은 아내를 살해한 박 씨가 곧바로 아내의 시신을 계단으로 끌고 올라가 추락사로 위장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아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것으로 해달라고 말한 박 씨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박 씨가 아이들에게 아내의 자살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했던 행동들을 증거 인멸을 위한 행동이라 여겼다. 사건 당시 가나코는 구급대가 현장에 갔을 때 이미 심폐정지가 확인된 상태였다. 이에 응급처치를 계속했지만 심장 박동이 돌아오지 않았고 박 씨를 불러 사망 선고를 했던 것. 가나코의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 신체에 일체의 골절은 없었고 사인과 관련된 어떤 상처도 남지 않았다. 부검의는 목에 남은 흔적에 대해 팔과 옷이라면 구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가나코처럼 목에 흔적이 거의 없을 때는 자살과 타살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침실 매트리스에 묻은 소변 자국이 박 씨가 가나코를 꽉 누르는 행동으로 나온 것이고 그에 따른 사망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없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매트리스의 소변 자국과 침 자국이 엎드린 가나코의 신체 비율과 일치한다며 바로 제압당하며 질식해 숨졌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재판부는 사건을 담당한 부검의가 아닌 검찰 측의 법의학자 측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 법의학자는 이마의 상처가 박 씨가 아내를 계단에서 떨어뜨린 증거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사망하기 전인 사전기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턱 아래 남은 표피 박탈에 대해서도 아내를 계단으로 끌고 간 증거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박 씨가 체포되기 1주일 전부터 집 앞에 들이닥쳤던 취재진들. 이에 이웃들이 함께 아이들을 보호해 줬다. 그리고 이웃들은 지금도 하루빨리 박 씨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의 성품을 알기에 그를 믿었던 것. 박 씨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무죄를 믿고 응원하고 있었다. 항상 육아를 염두에 두었던 이였기에 남겨진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그가 그런 행동들을 했다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 그렇기에 박 씨의 동료는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박 씨의 부탁대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박 씨는 8년째 거르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아빠 학교라는 이름으로 4남매 각각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보내면 박 씨는 감상평을 편지로 써서 보내고 그리고 매번 다양한 주제로 편지를 썼다. 이에 아이들에게 아빠는 여전히 그립고 사랑하는 존재였다. 사건 당시 열 살이었던 첫째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엄마가 돌아가신 날 아빠가 후우타를 안고 아이방 문 앞에서 서 있었던 것이 살짝 기억난다. 후우타를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 라며 박 씨의 주장과 일치하는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에 첫째는 그날에 대해 증언하고 싶었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증거는 또 있었다. 사건 당시 칼로 2층 방문을 두드린 가나코. 이에 문에 식칼의 파편이 끼어 있었다고. 그리고 이것은 현장 검증에서 밝혀진 것이었다. 그것을 검찰이 증거로 압수까지 했지만 재판에서는 중요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었다. 또한 가나코가 넷째 낳고 보건소에서도 우울증이 있다는 진단이 있었다. 그러나 가나코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을 거부했고 이후 아이의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크게 자책했었다는 것. 이러한 사실들을 아는 가나코의 아버지도 박 씨의 무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사건 담당 부검의는 검찰 측 법의학자가 말했던 사전기에 대해 사전 기라는 법의학 용어는 있다. 죽음과 싸우는 시기라는 뜻이다. 아직 심장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지만 멈추기 직전인 시간인 것. 그런데 이것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라며 소변 자국으로 질식사 시점을 판단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그는 목을 조르면 반드시 소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조금 억지스럽다고 할까? 저는 박 씨가 범인일까 아닐까 법의학적으로 관심이 없다. 다만 검찰이 너무 객관성이 없는 증거를 많이 내놓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라고 덧붙였다. 법정에서도 이런 내용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 부검의. 그는 물론 일본이 한국보다 법의학을 먼저 도입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현에 법의학 연구실이 하나밖에 없다. 그러면 선생님 이 사람이 죽였다고 말씀해 주세요라고 검찰에게 부탁받으면 거절 못하는 사람이 나온다. 결국 일본의 법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영향이 꽤 크고 그런 검찰 측에 치우친 감정을 해주는 사람이 생겨나기 쉬운 환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라며 일본 법의학계의 아쉬운 현실을 지적했다. 박 씨의 대학 친구들은 재판이 길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결정적인 증거가 적기 때문이다. 검찰 측 시나리오조차도 별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며 공정한 재판을 해달라 요구하는 서명 활동을 시작한 게 2심이 끝났을 때였다 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1165명이 서명하고 일본 주요 언론 집중 보도되며 최고 재판소에서 파기 환송이 결정 났다. 그러나 환송심 결과는 예상과 너무 달랐다. 또한 대학 친구는 환송심 중에 법의학자 시미즈 선생님이 법정에서 부검 사진을 봤을 때 삭흔이라고 불리는 목을 매고 돌아가신 분들 특유의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분은 살해된 게 아니라 자살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 라며 재판부를 지적했다. 또한 이 법의학자는 이마의 상처가 정상적으로 살아있을 때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침실에서는 소변과 침 외에 다른 혈흔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고 이마의 상처가 사전기에 생긴 것이 아닌 생활하던 중 생긴 상처라고 한다면 침실에서 사망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환송심 재판부는 직접 부검하지 않고 부검 사진만 본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가족과 변호사는 환송심 유죄 판결 후 기자회견으로 재판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박 씨 측은 가나코의 많은 자살 증거, 박 씨가 억울하다는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시당했다며 새로운 유죄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는데 유죄가 되었다고 했다. 전직 고등법원 피나는 파기 환송 후 2심 판결문을 읽고 든 생각인데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결국 처음 1심과 같은 이유로 유죄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소송 경과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 굉장히 문제라고 생각했다 라는 견해를 밝혔다. 국내 법의학자들은 소변 자국을 증거로 타살을 단정한 건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소변 자국이 질식사의 절대적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목을 맨 계단에서 소변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마의 상처는 생활 반응이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또한 목에 남은 흔적에 대해서는 타살의 가능성은 매우 적은 목의 손상 소견이다. 손상이 거의 없다는 것 자체가 목맴에서 아주 흔하게 보는 소견 이라고 설명했다. 목 졸려 살해당한 것 치고 손상이 없다는 것. 보통 살해를 당하면 격렬한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순수하게 깔끔하게 다른 손상이 없이 경부압박 질식사한 것을 타살을 당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드문 예라고 말했다. 그리고 삭흔에 대해서도 변호사 측 법의학자와 같은 소견을 밝혔다. 맨 팔로 목에 압박을 가했을 때는 주름이 안 생긴다는 것. 턱 아래 상처와 이마의 상처가 박 씨가 아내를 끌고 갈 때 생긴 상처라고 주장한 검찰. 이에 제작진은 시뮬레이션을 통과 실험을 진행해 검찰의 주장이 타당한지 확인했다. 그 결과 다리를 끄는 순간 목이 돌아가며 턱이 아니라 얼굴 한쪽 부위와 마찰하게 되어 턱 아래는 전혀 계단과 닿지 않아 찰과상이 생길 수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리를 끄는 것이 아니라 상체를 안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어느 경우든 밀었을 때 후두부가 계단과 부딪혀 두개골 골절이 예상되고 경우에 따라 경추 골절도 예측되어 얼굴 전면부에 충격이 가해지는 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문가는 상당히 의심할 점이 많이 남는 행동을 박 씨가 했다고 볼 수 있다. 발견한 이후 신고까지 상당 부분 시간이 흐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거짓으로 진술할 수 없는 부분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라며 계획적으로 살인하고 사고로 위장하려는 사람이 계단에서 떨어진 것으로 해주세요 라고 말하겠는가 라고 되물었다. 산후 우울증 검사 결과와 사건 당일 박 씨와 나눈 가나코의 이메일 내용을 본 정신과 전문의는 자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너무 정신과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전문의는 어떤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면 짧은 시기에 착란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우울증 증세가 있었으면 아마도 자살 기도를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라고 말했다. 1심 2심 환송심의 유죄 근거가 판사마다 달랐던 것에 대해 전문가는 결국은 법의 일관성이 좀 없어 보이고 이렇게 각자 주관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유죄로 갔으면 이게 확실한가라는 의문을 근본적으로 남기는 구조이다. 타살설에 부합하지 않는 자살일 가능성이 있는 정황이나 증거들도 꽤 있어 보인다. 그런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유죄로 인정하지 않는다 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본 형사 재판 유죄 선고 비율 99.8%. 이에 일본 전직 판사는 검찰이 무죄를 두려워해서 위험한 사건은 잘 기소하지 않는다. 검찰관의 기소에 대해 재판관도 검찰의 기소는 기본적으로 옳을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 그런 게 크기 때문에 피고 측이 무언가를 말하더라도 좀처럼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라며 일본 사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근 들어 일본에는 엔자이(억울하게 뒤집어쓴 죄) 사건들이 큰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입증되지 않은 살인 혐의로 구금된 채 재판을 받아온 지 8년째가 된 박 씨. 그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아내의 자살을 막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저는 결코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는 분명 아내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고 제게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끈질기게 아내에게 부탁해서 병원에 데려갔다면 아내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제가 한심하게 두려움에 떨며 아이들 방에 피신해 있지 않았다면 아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소중한 아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를 떠올린 첫째 하나는 저는 아이이긴 했지만 엄마가 불안한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고 뭔가 정말 막연한데 엄마가 죽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 매일 밤마다 엄마가 죽지 않게 해달라고 무심코 생각해서 기도하면서 자기도 했다 라며 지금도 여전히 엄마와 아빠 모두 사랑하고 있다며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법의학을 전수했지만 형사 사건에 대한 부검을 완전히 민영화시키면서 공신력 확보에 어려움 겪고 있는 일본. 일본인들은 근대화 초기 검찰과 법원이 같은 소속으로 출발한 역사가 지금까지 사법 체계 독립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확증편향으로 인한 오판과 그걸 깨닫고도 스스로 바로 잡지 않으려는 권위주의가 비단 일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법 분위기로 인해 박 씨 사건에 필요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일 것. 이에 방송은 박 씨의 남은 재판에서는 과학적 사실들이 부디 충분히 고려되고 입증되길 바랐다. 11년 중 8년을 복역한 박 씨,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온전한 아버지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알' 출신 도준우PD, 힙합 래퍼가 범죄 전문 PD로 살아남는 방법
등록일2024.10.02
[SBS연예뉴스 ㅣ 강경윤 기자] SBS 도준우 PD는 SBS 시상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신정동 엽기토끼 살인사건' 편을 연출했다. 이 회차는 '그것이 알고싶다'가 다룬 굵직한 미제사건 편들 중에서도 단연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과 사회적 파장을 선사했던 레전드 오브 레전드 회차로 평가받는다. 이밖에도 도준우 PD는 〈토끼굴로 사라진 여인―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또 다른 퍼즐인가&> 등 다양한 편을 통해 사건 해결의 작은 실마리라도 건지기 위해 자료와 사람에 끈덕지게 매달리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도준우 PD의 인상은, 떠오른 의심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떠도는 의혹으로부터 분명한 사실만을 추려내는 날카로운 면모였다. 규모가 크든 작든, 그 결과물로서 경이로움을 만들어낸 작품을 볼 때면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연출가의 맨얼굴을 궁금해한다. '뭔가 남다르지 않을까' 하는 시청자들의 근거 없는 호기심과 크게 다르지 않게, 아니 어쩌면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도준우 PD가 그동안 밟아온 삶의 궤적은 상당히 변화무쌍했다. 먼저 놀라움을 주는 지점은 도준우 PD가 정통 힙합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십 대 초반 힙합에 빠져 반골 정신을 온몸으로 익혔다. 랩에 빠져서 교내 힙합 동아리 '바운스 팩토리'를 창설했으며 직접 만든 〈훈민정음랩〉 〈용비어천가랩〉을 포털 사이트에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도준우 PD는 2008년 예능국으로 입사했다. 여기까지는 흔히들 '평생직장'에 취업하기 전, 한 때 도전정신이 남달랐던 20대 청년의 치기 어린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도준우 PD의 '남다름'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그는 얼마 안 가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이후 오랜 기간 이어진 동료들의 만류로 교양국으로 자리를 옮겼고, 「SBS 스페셜」 「짝」 「궁금한 이야기 Y」 등 교양 프로그램을 거쳐 2015년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 합류했다. 도준우 PD가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 합류한 이유는 어쩌면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도 PD는 「그알」을 무사히 졸업한 피디들에게만 주어지는 프로그램 기획의 기회를 잡기 위해 기꺼이 「그알」 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 관한 호언장담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듯 탐사 보도 프로그램의 매력에 금세 감화됐다. 두 발로 뛰어다니며 모르던 것을 알아내고, 닫혀 있던 누군가를 걸어 나오게 하고, 막막했던 사건의 밑그림을 조금씩 그려내면서 얻는 보람과 쾌감을 아주 살짝 알게 된 것이었다. 도준우PD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일한 '8년'은 무언가를 딱 1년만 해보겠다 던 다짐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그는 보이스 피싱 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위장 잠입을 시도하기도, 경찰 협조가 어렵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다루지 않았던 '신정동 사건'을 맡기도, 무모함과 실천력을 무기로 끝내 협조를 얻어내기도, 범죄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신정동 사건'과 '노들길 사건'의 연관성을 제기하기도, 배산 대학생 피살사건의 범인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알」의 오랜 시청자라면 기억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엽기토끼와 신발장―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퍼즐&> 편, 〈토끼굴로 사라진 여인―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또 다른 퍼즐인가&> 편이 탄생한 것이었다. 도준우 PD가 출간한 에세이 &<스릴 너머&>는 치열한 파고듦의 기록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강력 범죄자의 이름과 그들의 범행을 다루고 또 다루는, 범죄자의 자극적인 언행만을 부각하는 방송들을 볼 때마다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는 도준우 PD는 그 이유를 내 뇌리에 줄곧 도사리고 있는 불온함에 대한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한 기분이 들어서 라 설명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불온이란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높은 조회수나 시청률을 위해 '볼 만한' 무언가로 만들어야 하는 일 그 자체다. 이 불온한 숙명을 의식하는 그가 소재를 정하고, 취재하고, 영상을 촬영해 편집?송출하는 전 과정에서 제작 명분을 끊임없이 되뇌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범죄 콘텐츠가 많은 이에게 닿되 가벼이 닿아선 안 된다고 믿는 그가 지키는 것이 있다. 흥미와 스릴이 콘텐츠 제일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것. 그가 말하는 '스릴 너머'에는 경각심 제고, 예방법 공유, '증거는 반드시 찍히고 발각된다'는 경고의 전달 과 같은 목적이 있다. 그는 언제나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일하려 노력한다. 그의 고뇌를 통해 우리는 '교양 피디란 어떤 무게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가' '교양 프로그램은 어때야 하는가'라는 비교적 먼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에 앞서 '직업인의 책무란 무엇인가' 그리고 '범죄 콘텐츠를 소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하는가'라는 일상적인 물음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또 「그알」이 어떻게 지금의 「그알」이 되었는지, 피디들이 그간 어떤 싸움을 통해 지금의 「그알」을 만들었는지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책에 자신이 직접 쓴 랩의 가사를 실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학 시절 적은 그의 랩 가사와 교양 프로그램에까지 활용된 그의 랩 가사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만드는 콘텐츠를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형식상의 유쾌, 내용상의 진지眞摯!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도준우를 딱 이 맥락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정체성을 '범죄 전문 피디 도준우'라는 단 한 줄로 기술하는 건 태만이다. 이제는 우리가 아는, 또 모르는 범죄 전문 피디의 면면을 부지런히 발견할 시간이다. 도준우 · 발행일 : 2024년 9월 2일 · 분 야 : 에세이 · 쪽 수 : 424쪽 · 값 : 18,000원 ky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