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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국제결혼중개사 직원, 결혼중개업자 공범으로 처벌 못해 대법  국제결혼</font>중개사 직원, 결혼중개업자 공범으로 처벌 못해 등록일2026.06.01 ▲ 대법원 국제결혼중개사를 결혼중개업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때 그 직원들을 형법상 공범으로 묶을 순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결혼중개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국제결혼중개사 대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직원 B 씨, C 씨에게 각각 벌금형을 선고한 2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습니다. A 씨 등은 베트남 현지 협력사로부터 베트남 여성들의 얼굴 사진과 키, 몸무게 등 정보를 받아 이를 자사 홈페이지 회원 가입자에게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결혼중개업법 제12조와 제26조는 국가·인종·성별·연령·직업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표시·광고할 경우 처벌한다고 규정합니다. 다만 처벌 대상은 당국에 등록·신고한 '결혼중개업자'로 제한합니다. 사건의 쟁점은 A 씨를 결혼중개업법상 처벌 대상인 결혼중개업자로 볼 수 있는지, 나아가 결혼중개업자가 아닌 B 씨와 C 씨에게 형법상 공동정범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지였습니다. 1심은 A 씨를 결혼중개업자로, B 씨와 C 씨를 공범으로 판단하고 이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은 이 사건에서 결혼중개업자는 A 씨가 아닌 A 씨가 운영한 회사로 한다며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다만 B 씨, C 씨에 대해선 형법상 공동정범 규정을 적용해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들 역시 결혼중개업자 신분은 아니지만, 결혼중개업자인 회사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은 2심의 이러한 법 적용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혼중개업자가 아닌 B 씨와 C 씨를 결혼중개업자인 법인의 공범으로 묶는 것은 기존 판례에 반한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은 오히려 이들의 경우 결혼중개업법의 양벌규정인 제27조를 적용했을 때 비로소 처벌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조항은 법인 대표나 종업원이 업무와 관련한 위법행위를 했을 때 행위자뿐 아니라 법인도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결혼중개업자 신분은 아니지만 관련 업무를 실제로 하는 이들을 처벌할 근거를 마련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는 게 현행 판례상 해석입니다. 대법원은 2심이 B 씨와 C 씨에 대해 잘못 판단했을 뿐 아니라 검찰 측에 기소 취지를 명료하게 하라는 '석명권'을 행사하지 않은 오류도 범했다며 사건 전체를 파기했습니다. 검찰의 주장이 A 씨를 결혼중개업자로, B 씨와 C 씨를 공범으로 보고 처벌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A 씨를 결혼중개업자로 보지 않고 3명을 모두 양벌규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형사소송규칙에 따라 석명권을 행사하고 그에 따라 심리했어야 한다고 대법원은 지적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인생 정보 몽땅 털려 …집단소송 움직임  인생 정보 몽땅 털려 …집단소송 움직임 등록일2026.04.28 ▲ 결혼정보회사 '듀오' 내 얼굴 사진과 프로필이 AI 딥페이크 합성물이나 로맨스 스캠 사기에 무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있어요. 결혼정보회사 듀오 회원인 30대 A 씨는 이같이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A 씨는 지난 24~25일 SNS 채팅을 통한 인터뷰에서 단순한 연락처 유출을 넘어 저의 직업, 자산 규모, 사진은 물론 부모님의 정보까지 포함돼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며 개인의 신상 정보가 이토록 상세하게 노출되면 단순 스팸을 넘어 지인이나 가족을 겨냥한 정교한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두렵다 고 밝혔습니다. 국내 대표 결혼정보회사 듀오정보에서 정회원 42만 7천464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지난 23일 뒤늦게 알려지면서 차원이 다른 공포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해 입력한 키와 몸무게, 가족관계, 직업, 혈액형, 종교, 초혼·재혼 여부, 장남·장녀 여부, 학력, 직장명, 소득, 재산 등 사실상 개인의 모든 정보가 통째로 외부에 노출됐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결혼정보회사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 듀오 사태 관련 인터뷰이 모집 글을 올리자 A 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2020년 듀오에 가입했다는 김 모(39) 씨는 쿠팡·SKT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인생 정보가 몽땅 털린 게 가장 우려됐다 며 차원이 다른 개인 정보가 적나라하게 털린 만큼 로맨스 스캠 같은 범죄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 이 정도 정보라면 가족뿐만 아니라 적당한 지인과 동창까지 속아 넘어갈 것 같다 고 걱정했습니다. 2021년 듀오에 가입한 박 모(38) 씨도 일반 개인정보보다 훨씬 자세한 개인 사항이 입력돼 있어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어떻게 악용될지 걱정된다 며 상담 때 상대방이 어떤 성향이고 어떤 말을 했는지도 기록된 듯했고, 매니저가 그런 내용을 제게 이야기해준 적도 있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 밝혔습니다. A 씨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결정사(결혼정보회사)라는 서비스 자체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 며 보안이 담보되지 않는 시스템에 나의 모든 정보를 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듀오로부터 '작년 1월 말 데이터가 유출된 것은 맞지만 개인식별정보는 암호화돼 접근이 안 됐고 전문기관 협조로 유포되지 않도록 기술적 조치를 했다'는 취지의 문자를 받았다 며 그러나 과연 유포가 안 되었을까 의문스럽다 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정보 유출 사건 보도가 나온 후) 석 달이 걸린다던 서비스 환불이 한 달 앞당겨 처리됐다 고 덧붙였습니다. 피해자 C 씨는 부모님, 형제와 가족 정보까지 유출됐을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며 지방에 살다 보니 (소개 상대의) 풀이 적은 편이라 잘 성사가 되지도 않는데, 이번 사건 이후로 더 많은 사람이 이탈할 경우 탈퇴를 고려하고 있다 고 밝혔습니다. 이번 듀오 사태는 결혼정보회사 이용률이 높아지는 가운데 발생했습니다. '조건'을 미리 살피고 만나는 것이 효율성을 따지는 젊은 층의 니즈(요구)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입니다. 성평등가족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국내 및 국제결혼중개업체 공시현황'에 따르면 올해 3월 31일 기준 국내 결혼중개업체 수는 789개로 집계됐습니다. 2024년 3월 749개, 2025년 3월 760개에서 계속해 늘어난 수치입니다. 또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발표한 '2025 서울가족보고서'에서 20∼64세 비혼 서울 시민의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해 결혼 상대를 찾을 의향' 평균은 5점 만점에 2점이었지만, 20대와 30대는 각각 2.1점으로 40대(1.8점), 50대 이상(1.7점)보다 높았습니다. B 씨는 내 돈을 내고 손해를 보는 구조인 건 알지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없으니 (결혼정보) 업체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확언하기도 어렵다 고 토로했습니다. 듀오 측은 홈페이지 안내문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지난해 2025년 1월 28일에 일어난 일로, 당사는 정보 유출 인지 후 한국인터넷진흥원 및 수사기관에 신고해 더 이상 유출되지 않도록 기술적 조치를 실시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또 현재 시점까지 2차 피해 발생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개별 공지가 없거나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A 씨는 사건 발생 이후 업체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나 구제책에 대해 안내받은 바가 전혀 없다 며 유출 사실이 알려지기 전후의 행보가 매우 의심스럽다 고 밝혔습니다. A 씨에 따르면 듀오는 개인 정보 유출 관련 기사가 나오기 직전인 지난 22~23일에 1년 뒤 서비스가 종료되는 '기간형 상품'을 급하게 출시했습니다. 이용 기간 제한이 없는 기존 서비스와 달리, 해당 상품은 1년 동안 횟수 제한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1년이 지나면 계약이 종료되는 구조입니다. A 씨는 정보 유출로 인한 파장을 미리 인지하고, 기존의 무제한 (매칭) 이용 회원들을 기간이 정해진 상품으로 전환해 책임 범위를 줄이려는 사전 조치가 아니었는지 의심된다 고 주장했습니다. 김 씨도 듀오 측이 작년 초 유출 시점 이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개별적으로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해 공지조차 없었다 며 홈페이지에 공지를 띄웠다고 하지만 듀오는 가입 초반 정보 확인 때를 빼면 홈페이지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어 회원 입장에서는 기만으로 느껴진다 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 씨는 지난 24일 담당 매니저에게 사건 관련해 물어보니 '유출된 게 없다', '아무 문제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며 일단 새로운 프로모션 상품으로 기존 회원의 횟수를 차감해야 하니 그것부터 빨리 하자는 식으로 답변했다 고 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는 '결혼정보회사 듀오 개인정보 유출 집단소송 카페'가 개설됐습니다. A 씨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 이라며 가입비를 지불하며 믿고 맡긴 소중한 개인정보를 소홀히 관리한 점, 이후 보여준 무책임한 대응에 대해 반드시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밝혔습니다. 관련 집단소송을 준비 중인 정태원 법무법인 LKB평산 변호사·집단소송센터장은 이번 사건은 결혼정보회사라는 서비스 특성상 일반적인 플랫폼의 개인정보 유출보다 더 심각하게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습니다. 이어 신체 조건, 종교, 혼인경력, 학력, 직장 등은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평가에 직접 연결되는 '프로파일링' 정보로, 인격권 및 사생활의 비밀 침해로 확대될 수 있으며 법원 역시 위자료 산정 시 이를 중요한 요소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고 덧붙였습니다. 정 변호사는 기존 개인정보 유출 판례에서는 1인당 10만 원 정도가 인정된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사건은 쿠팡 사건보다도 민감한 정보가 유출됐고 관리 부실까지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위자료 수준이 상향될 가능성이 있다 며 우리 법무법인에서도 최소 50만 원 이상 청구할 계획 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선 자신의 정보가 실제로 유출됐는지 확인하고 계정 비밀번호를 변경해야 한다 며 유출 통지 내용, 서비스 이용 내역, 관련 공지사항을 캡처하거나 보관하고, 정보 범위가 넓은 만큼 스미싱이나 사칭 등 2차 피해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고 조언했습니다.
李대통령 베트남과 에너지 안보·공급망 강화 협력…철도차량 수출 李대통령  베트남과 에너지 안보·공급망 강화 협력…철도차량 수출 등록일2026.04.23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과 베트남 정상은 최근 중동 상황에서 비롯된 공급망 불안정성 속에 양국의 협력 필요성이 커졌다는 데 공감하고, 에너지 안보 강화 및 공급망 안정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또 럼 베트남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 하노이에 위치한 주석궁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언론발표에서 &'양국은 굳건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에너지·인프라 분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인프라 분야의 경우 &'내일 베트남의 호치민시 도시철도에 대한 한국의 철도 차량 수출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계약이 베트남의 철도 인프라 개선에 기여하길 바라며, 베트남이 추진 중인 대형 교통·물류 인프라 사업에서 양국 간의 협력 확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면서 &'베트남의 신도시·신공항 사업을 통해서도 협력 모범사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소통하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약 7억4천만 달러(1조940억원) 규모의 베트남의 동남신도시개발 1지구 사업과 7천만 달러(1천30억원) 규모의 쟈빈 신공항 운영 컨설팅 사업 등 국책 인프라 사업에도 한국 기업의 참여가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정상은 2030년까지 교역 규모 1천5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투자 협력을 늘려가기로 했고, 최초로 열처리가금육의 상호 수출에도 합의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베트남은 우리 국민의 국제결혼 1위 국가로, 10만명의 다문화 가정을 이룬 &'사돈의 나라&'&'라며 &'(양 정상은) 상대국의 국민과 다문화가정의 안정적 체류 및 권익증진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또 럼 서기장은 베트남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저도 한국 내 베트남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의 권익 증진에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부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저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함께 성장하는 한반도를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구상을 설명했다&'며 &'또 럼 당서기장은 우리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화 협력 재개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아울러 &'양국은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도 긴밀히 소통하면서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며 &'씬 캄언(베트남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이라고 언급하며 공동언론발표를 마쳤습니다.
이 대통령 베트남과 에너지·공급망 긴밀 협력…철도차량 수출 이 대통령  베트남과 에너지·공급망 긴밀 협력…철도차량 수출 등록일2026.04.22 ▲ 이재명 대통령과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이 22일(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에서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22일 한국과 베트남 정상은 최근 중동 상황에서 비롯된 공급망 불안정성 속에 양국의 협력 필요성이 커졌다는 데 공감하고, 에너지 안보 강화 및 공급망 안정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고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럼 베트남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 하노이에 위치한 주석궁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언론발표에 나서 이같이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양국은 굳건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에너지·인프라 분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이 중 인프라 분야의 경우, 이 대통령은 내일 베트남의 호치민시 도시철도에 대한 한국의 철도 차량 수출 계약이 체결될 예정 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이번 계약이 베트남의 철도 인프라 개선에 기여하길 바라며, 베트남이 추진 중인 대형 교통·물류 인프라 사업에서 양국 간의 협력 확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면서 베트남의 신도시·신공항 사업을 통해서도 협력 모범사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소통하기로 했다 고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현대로템은 호치민시의 메트로 2호선 철도 차량에 1억 1천만 달러(한화 약 1천600억 원) 상당의 수출 계약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울러 약 7억 4천만 달러(1조 940억 원) 규모의 베트남의 동남신도시개발 1지구 사업과 7천만 달러(1천30억 원) 규모의 쟈빈 신공항 운영 컨설팅 사업 등 국책 인프라 사업에도 한국 기업의 참여가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와 함께 두 정상은 2030년까지 교역 규모 1천5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투자 협력을 늘려가기로 했고, 최초로 열처리가금육의 상호 수출에도 합의했다고 이 대통령은 전했습니다. 양국 간의 인적 교류 및 문화 교류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베트남은 우리 국민의 국제결혼 1위 국가로, 10만명의 다문화 가정을 이룬 '사돈의 나라' 라며 (양 정상은) 상대국의 국민과 다문화가정의 안정적 체류 및 권익증진에 협력하기로 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더불어 또 럼 서기장은 베트남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저도 한국 내 베트남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의 권익 증진에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고 덧붙였습니다. 양 정상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대통령은 저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함께 성장하는 한반도를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구상을 설명했다 며 또 럼 당서기장은 우리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화 협력 재개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했다 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양국은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도 긴밀히 소통하면서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며 씬 캄언(베트남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뜻) 이라고 언급하며 공동언론발표를 마쳤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꼬꼬무 찐리뷰] '동일본 대지진' 15주기…1만 6천명 사망한 재앙, 살아남은 한국인들 눈물의 생존기 [꼬꼬무 찐리뷰] '동일본 대지진' 15주기…1만 6천명 사망한 재앙, 살아남은 한국인들 눈물의 생존기 등록일2026.03.13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2일 방송된 '2011 사라진 도시-동일본 대지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고우림, 배우 최진혁, 그룹 빌리 멤버 츠키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2011년 3월 11일 그날 때는 2011년 3월 11일. 서울 노원구 불암산이야. 한 무리의 남성들이 촌각을 다투며 움직이고 있었어. 이들은 구조대원이야. 중앙119구조대 소속 백근흠 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산악 인명 구조 훈련 중이었어. 날이 따뜻해지면서 등산객이 늘어나는 봄은, 산악사고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시기거든. 그런데, 훈련이 한창이던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와. 이제 인명구조 훈련을 하고 있는데, 4시 조금 넘어서 사무실에 전화가 온 겁니다. '여기 지금 난리다, 중국 쓰촨성이나 아이티 같이 출동할지 모르니까 인원과 장비를 한 번 점검해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그 전화받고 즉시 제가 귀대했던 생각이 납니다. - 백근흠, 당시 중앙119구조 팀장 백 팀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같은 국내 재난현장은 물론,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도 현지에 파견됐던 30년의 경력의 베테랑이야. 그런 그에게, 그것도 훈련 중에 연락이 왔다는 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겠지? 백 팀장은, 부랴부랴 구조대로 복귀해서 TV를 켰어. 그리고는 턱 하고 말문이 막혔어. 오늘 오후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초대형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강진 직후 일본 연안에는 최대 10미터 높이의 대형 지진 해일이 강타했습니다. 사람이 떠내려오고 있습니다. 트럭 위에 있던 사람이 쓸려 내려갑니다. 아, 지금 제방이 터져 무너져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2011년 3월 11일에 벌어진 동일본 대지진이야. 일본 관측 사상 최대, 최악의 이 흔들림은, 5분 남짓한 새, 일본 열도를 동쪽으로 약 5cm 이동시키고, 지구 자전축까지 움직였어. 건물이 파괴된 건 물론이고, 일본 해안선 지도가 달라졌어. 무수한 사람들이 숨지고, 실종됐지. 그리고 그중엔, 한국인들도 있었어. 국제결혼을 한 교민, 유학생, 직장인을 포함해 이 무렵 동일본에 있었던 한국인들은, 만 2천여 명이었거든. 일본인들을, 아니 전 세계인을 공포에 떨게 만든 충격적인 대재앙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시간을 조금 되돌려볼게. ▲ 대재앙의 서막 지진 발생 이틀 전인, 2011년 3월 9일 오전 11시 45분. 서른다섯 살의 한국인 김일광 씨는 일본의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어. 근데, 기분이 이상해. 전봇대가 휘청하고, 차가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해. '이게 뭐지?' 싶었던 그때, 휴대폰이 울려. 여보 괜찮아요? 지진이 왔다는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내 마유코 씨야. 일본에 어학연수를 왔다가 취업까지 하게 된 일광 씨는, 직장에서 만난 마유코 씨와 사랑에 빠졌어. 그리고 2004년, 두 사람은 연인에서 부부가 됐지. 결혼 1년 뒤엔, 첫째 딸 미래가, 4년 뒤엔 이란성쌍둥이가 선물처럼 찾아왔어. 그리고 2010년 8월, 일광 씨는 마침내 내 집 마련에 성공했어. 동네는 미야기노구의 가모 지구. 바로, 여기야. 미야기현 최대 갯벌인 이곳은,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자 철새들의 휴식처인 해안마을이야. 바로 옆에는 강이고. 조금만 더 가면 바다하고 만나서, 연어 같은 생선도 있고. 지상낙원처럼 굉장히 살기 좋은 동네였죠.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한편, 일광 씨의 동네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오시카 반도엔, 또 다른 한국인이 살고 있어. 11년 전 국제결혼을 한 홍경임 씨야. 경임 씨의 가족 사진을 보여줄게. 이분은 남편 유우키 씨고, 왼쪽이 여덟 살 리나, 오른쪽이 여섯 살 리사, 가운데는 네 살 유지로. 하지만 이 사진엔 없는 넷째가 있어. 경임 씨는 임신 33주였거든. 경임 씨네 대가족이 사는 오시카 반도도, 일광 씨네 동네 못지않게 아름다웠대. 그런데 일광 씨와 경임 씨가 사는 미야기현엔 딱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어. 바로 지진. 지진이 잦아도 너무 잦은 거야. 지진은 지각판이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땅의 움직임을 말해. 일본은 4개의 지각판이 맞물리는 곳에 있어. 특히, 미야기현 앞바다는, 북미판과 태평양판의 경계야. 규모 4.0의 지진이 발생하면 선반에서 물건이 떨어지고, 창문이 흔들리는 정도야. 지난 10년간 이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4.0 이상의 지진은 무려 3,008건. 연평균 약 300건이야. 다시 말해 이곳 주민들은 거의 매일, 땅의 흔들림을 느끼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일광 씨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던 3월 9일에도, 미야기현 앞바다에선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어. 규모 7.3 지진은 어느 정도일까? 오늘 새벽 5시 46분. 강력한 지진이 일본 서부 간사이 지방인 오사카와 고베 일대를 뒤흔들고 엄청난 피해를 냈습니다. 고베시 NHK방송사에서 야근을 하던 기자들은 잠자던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 도로가 옆으로 누워버린 현장입니다. 오사카와 고베를 잇는 한신고속도로의 고가도 허리가 끊어졌습니다. 질주하던 승용차들은 끊어진 고가 아래로 떨어져 타고 있던 사람들이 숨졌고. 행방불명된 사람이 500명을 넘어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규모가 워낙 커 구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단 20초 만에 6천여 명의 사망자와 4만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 이때의 지진 규모가 바로, 7.3이었어. 그럼, 2011년 3월 9일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지진이 났을 때 일광 씨와 경임 씨는 대피를 했을까? 안 했어.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대. 이 지역은 지진이 너무 잦고, 심지어 이번엔 진앙지가 해역이었으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던 거야. 이게, 끔찍한 대재앙의 서막이란 걸. ▲ 모든 걸 빼앗아 간 재앙의 날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저녁 근무였던 일광 씨는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있었고, 아내는 걸어서 5분 거리 커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선반에 올려둔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더니 냉장고까지 쾅하고 쓰러져. 얼마 뒤엔 TV까지 팍 하고 떨어져. 깜짝 놀라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고 보니, 먹통이야. 인터넷도 안 돼. 창 밖을 내다보니 건물이며 전신주며, 모든 게 다 흔들려. 지금 도쿄 시부야의 스튜디오가 매우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조금 전 오후 2시 46분경, 매우 강력한 흔들림을 느꼈습니다. 미야기 TV 스튜디오, 다시 흔들림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진입니다. 여진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책꽂이의 책들이 다 쏟아지고, 도로는 갈라졌어. 강력한 지진이야. 일광 씨는 지진이 멈추길 기다렸다가 아내를 찾으러 밖으로 뛰어나왔어. 아이들이 있는 어린이집은 다행히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거든. 그런데 나와보니, 상황이 더 심각해. 아까 규모 7.3의 지진이 어느 정도인지 얘기했지? 그런데 이날 지진의 규모는 무려 9.0이야. 숫자로만 보면 별 차이가 안 느껴지지만, 지진의 방출 에너지는 규모 1.0이 커질 때마다 32배씩 증가해. 그러니까 이건 32X32, 한신 아와지 대지진의 1000배 이상 강력한 초대형 재난이야. 진앙지에서 400km, 서울에서 부산 거리에 있는 요코하마 야구장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으니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겠지? 문제는 이 날의 비극이,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란 거야. ▲ 공포의 쓰나미 일광 씨는 전력질주를 하고 있어. 동네에 사이렌과 함께 울려 퍼지는 소리 때문이야. 연안에 대형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예상되는 쓰나미의 높이는 6m입니다!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는 거야. 무려 6미터. 아파트 3층 높이야. 아내의 직장 앞에서 일광 씨는 목이 터져라 아내의 이름을 외쳤어. 그런데 없어. 창문엔 사람 그림자도 안 보여. 30분 넘게 발만 동동 구르며 건물 주변을 맴도는데, 어? 저편에서 아내와 동료들이 걸어와. 알고 보니 건물 옥상에서 대피를 하고 있다가 해산을 하는 거래.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일광 씨는 내심 '오늘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대. 그렇게 아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해.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난생처음 듣는 기이한 소리가 들려. 그때였어요. '미래 데리러 가자. 유치원에 있는 애들 데리러 가자' 라고 하는데, 무슨 기분 나쁜 소리가 막 들리더라고요. 쏴아아아 소리. 그때 봤을 때는 뭐 늦었어요. 그 쓰나미라고 그러는 해일이, 산 높이 같은 게 바로 눈앞에 있는 거예요.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쓰나미가 밀려오고 도망가는 사람들. 이건, 언뜻 봐도 6미터가 아냐. 빌딩 같은 파도가 밀려오는데 동네 사람들이 거기에 휩쓸려.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에, 일광 씨와 아내는 대피소를 향해 뛰기 시작해. 하지만 쓰나미의 속도는 그보다 더 빨라. 결국, '이제 끝이다' 생각한 순간! 아내를 꽈악 끌어안고 눈을 감은 일광 씨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어. 같은 시각. 이제 막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경임 씨는, 창문 너머로 방파제를 바라보고 있었대. '제발...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하면서. 남편은 불과 10분 전, 여긴 지대가 높아서 괜찮을 거야. 금방 다녀올게. 걱정하지 마 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어. 남편 유우키 씨는, 마을 의용 소방대원이었거든. 일본의 재난 시스템은 소방관이 오기 전에, 주민들이 먼저 움직이도록 짜여 있어.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재해가 너무 자주 발생하니까 골든타임 동안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버텨야 하거든. 남편은 이제 수문 잠그러 간다고, 그리고 마을 사람들 피난시켜야 되니까. 우리 집은 높은 데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바다와 같은 높이에 있으니까 피난시키고 온다고.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그렇게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산 위에까지 물이 굉장히 높았어요. 고오오오오 하는 소리. 시커먼 물이 고오오오오 하면서 와서 그다음에 싹 부숴서 가는데, 그 큰 배를 그 둑을 그냥 가볍게 넘겨 가지고 그 큰 배를 길 건너 쪽에 도로에 올려놓을 정도로.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지진 발생 1시간 뒤인, 오후 3시 45분 무렵. 경임 씨네 집 창 밖으로 자동차며, 수백톤의 배까지 떠내려 가. 이런 상황에 챙겨야 할 아이는 셋에, 뱃속엔 아기까지 있어. 저 배가 우리 집을 치면 우리 그냥 떠내려가겠구나 싶으니까. 이제 애들을 침대에 묶어놓아야 되나, 우리 죽어도 같이 다 시체가 따로따로 흩어지지 않고 같이 죽어야 되는데. 이제 어떻게 묶어놓아야 되나…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모든 것을 삼킬 듯한 검은 물. 이제 경임 씨의 집 안, 2층 계단에도 차오르고 있어. ▲ 혼돈 속의 사람들 그 사이, 일광 씨는 어떻게 됐을까. 쓰나미에 휩쓸렸던 일광 씨가 정신을 차린 건, 물속에서였어. 눈을 감아도 깜깜, 떠도 암흑인 상황에서, 발은 떠밀려온 뻘과 쓰레기 안에 박혀서 꿈쩍도 안 해. 눈을 뜨니까 뭐 물속이고 금붕어처럼 물속인데 새카매요. 진짜 새카매요. 바로 올라갈 수도 없고요. 밑에 뭐 여기 옷에 끼고 뭐...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겨우겨우 장화 안에서 간신히 발을 빼고, 물에 젖은 패딩 점퍼도 벗은 다음에,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버둥거리는데, 손 끝에 그물 같은 게 잡혀. 바로 농구 골대였어. 농구 골대가 어느 정도 높이인지 알지? 약 3m. 무지하게 높잖아. 이걸 한 번 봐. 일광 씨가 눈을 떴던 실내 체육관 내부 사진이야. 이 높이에 있는 농구대가 손에 잡혔으니, 이 안에 물이 얼마나 많이 차 있었단 건지 알겠지? 일광 씨는 간신히 난간에 매달려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위층으로 넘어갈 수 있었대. 드디어 살았구나,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건 뭐 슬픔을 넘어, 차라리 혼돈이야. 거기 농구 골대에서 물 빠져서 걸어 나가는데, 둥둥 떠 있는 할아버지 시신도 엎드려서 있었고... 전쟁 난 줄 알았어요. 그리고 거기 체육관 옆에 우리 집인데, 봐도 집이 없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동서남북 헷갈리는 줄 알았어요. 이상한데? 다시 한번 봐도 (우리 집이) 없어요.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근데 무엇보다 절망적인 게 있었어. 아내 마유코 씨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목이 다 쉬도록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하늘에선 야속하게 눈발까지 흩날려. 맨발은 꽁꽁 얼어서 감각도 없고, 몸 곳곳은 다 베이고 찢어져서 피가 철철 나. 결국 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일광 씨는, 이후 영사관에서 제공한 임시 대피소에 머무르게 됐어. 하지만 일광 씬 지금, 미칠 지경이야. 아내는 생사도 모르고, 마을은 송두리째 사라졌어. 그저 첫째 딸 미래와 쌍둥이, 세 아이들이라도 안전하게 대피했길 기도할 뿐이야. 과연 아이들은 무사했을까? '꼬꼬무' 제작진이 이번에 일본에 가서 취재한 이야기를 들어봐. 저는, 구지 미래입니다. 지금 대학교 3학년이고 아르바이트를 세 개 하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의 기억을 묻자) 지진이 나서 다 같이 중학교로 대피했어요. -구지 미래/ 당시 6세, 현재 21세 (2011년 3월 11일 몇 살이셨는지 묻자) 1살이었어요. -구지 희로나/16세 1살. (정확히) 8개월이었어요. -구지 켄세이/16세 미래와 동생들은, 무사했어. 정말 다행이지? 알고 보니, 어린이집 가까이에 살고 있었던 처가 식구들이 대피소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 보호하고 있었던 거야. 영사관에 찾아온 처남에게 그 소식을 들은 일광 씨는, 그제야 기적을 꿈꿔. 이제 아내를 찾아야지. 일광 씨는 처남과 함께 다시 마을로 향해. 지진에 끊어진 다리를 피하고 물에 잠긴 길을 돌아서 간신히 동네에 도착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벌어져. 실종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야. 저마다의 간절한 사연이 벽이며, 게시판에 빼곡하고, 실종자 사진을 꼭 쥔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마을을 가득 채워. 돌아올 곳이 없으니까 제가 어디에 있을지 모를 것 같아요. 살아만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광 씬 아내를 만났을까. 절망 속에서도 기적을 꿈꾸는 일광 씨의 이야기는 잠시 뒤에 다시 이어갈게. ▲ 끝나지 않은 재앙 그 무렵 경임 씨의 동네에도 마침내 쓰나미가 멈췄어. 우는 아이들을 달래 보지만 누구보다 울고 싶은 심정인 건, 경임 씨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멀리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깨진 1층 창문 너머로 누군가 들어와. 남편이길 바라며 후다닥 뛰어가 보는데, 낯선 육상 자위대원이 서 있어. 경임 씨가 임신 33주잖아. 임부와 아이들의 대피를 도우러 자위대원이 온 거야. 그렇게 자위대 헬기를 타고 마을을 내려다보던 경임 씨는, 세 아이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대. 왜냐하면 몰랐거든요. 우리 마을만 그런 줄 알았지. 다른 데가 그런 줄은 모르고. 근데 신랑도 다른 데 피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안 오고. 다 나와 같이 이렇게 됐구나 싶으니까. 너무 슬프더라고요. 음.. 그래서 그냥 막 한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전기와 통신은 진작 끊겼어. 뉴스? 당연히 못 보지. 그래서 경임 씨는, 이런 광경을 상상조차 못 했대. 남편이 서 있었을 방파제는 잠겼고, 공항은 물바다에, 열차는 탈선을 했어. 더 슬픈 건 3월 11일, 이 잔인한 하루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거야. 그날, 오후 5시를 넘겼을 무렵. 쉰여덟 살의 나오코 씨는 주민 수백 명과 함께 미야기현 게센누마의 한 대피소 옥상에 고립되어 있었어. 이미 쓰나미가 휩쓸고 간 대피소 건물엔 2층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거든. 오도가도 못한 채 추위에 덜덜 떨며, 먼바다를 바라보는데. 이상해. 바다에서 연기가 나. 불이다! 바다에 불이 붙었다! 이번에 불이야. 전화가 안 되는 상황에서, 나오코 씨는 가족에게 다급히 문자메시지를 보냈어. 통신사 자체 서버에서 관리하는 문자메시지는, 늦더라도 결국엔 전송이 됐거든. &<3월 11일 오후 5시 45분&> 대피소 옥상. 주변은 바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음. 부두 쪽은 화재. 춥다. 괜찮아 다행히 나오코 씨는 침착해 보여. 하지만 불과 14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3월 11일 오후 5시 59분&> 불바다. 죽을지도 몰라. 버텨볼게 &<3월 11일 오후 6시&> 대피소 3층. 주변은 바다. 무슨 이유에선지 어두워졌고, 불이 보여. 무서워 파괴적인 지진, 초대형 쓰나미, 어마어마한 화재, 이 모든 게 불과 3시간 만에 연달아 벌어진 거야. 그런데 미야기현 게센누마에서 유독 화재가 커진 이유가 뭘까. 일본 수산 가공의 중심지인 이곳은, 선박이며 연료 저장 시설이 항만에 집중돼 있었어. 강진으로 파손된 연료 탱크에서 유출된 기름만 해도 200리터짜리 드럼통, 6만 4천여 개 분량.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되겠어? 여긴, 불지옥이야. 진원지에서 95km 떨어진 일본 미야기현의 게센누마시 모습입니다. 7만 4천여 명이 사는 도시 전체가 불바다로 변했습니다. 피해지역이 광범위해 현지 당국은 화재 진화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유류 화재야. 물로는 진화가 안 돼. 그렇다고 이 불타는 도시에, 소방대원이 접근할 수도 없어. 구조대가 온다 해도 고립된 채 도움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이 도시에만 7만 명이 넘는 상황이야. 그렇게 나오코 씨 인생에서 가장 두렵고 긴 밤이 지나가고 있었어. ▲ 생사의 갈림길 다음날이 밝았어.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낮 12시. 여긴 인천국제공항이야. 오직 구조를 위해 출국 수속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이미 너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 맞아. 중앙119구조대 백근흠 팀장. 구조대원들이 향한 곳은, 미야기현 가모지구였어. 그런데 현장을 본 백 팀장은, 불안감이 밀려왔대. 아무것도 없어요. 중국 쓰촨성 같은 경우에는 건물 잔재 내에서 생존자를 구할 수가 있어요. 그 틈에 이렇게 있으니까. 아이티 (지진 때)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일본 그 동북부 대지진만큼은 뭐 그런 게 없었어요. 현장에 갔을 때, 물이 서서 들어온다고 하죠. 쓰나미가 들어와서 다 끌고 나가버리니까. -백근흠 / 당시 중앙119구조 팀장 동일본의 상황은 지금까지의 해외 구조 현장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어.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어. 눈보라에 떨고, 뻘밭에 발이 빠지면서도 혹시 모를 기적을 찾아 수색을 계속해. 그렇게 한참이 지났는데… 여기요 여기! 다들 빨리 좀 와보세요!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사람 손이 보여. 나무판자를 하나하나 치우고, 차가운 물속에 빠져 있던 몸을 조심스레 꺼내.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숨진 희생자는, 30대 여성이었어. 경례를 하고, 잠깐 묵념해서 고인에 대한 예의를,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해 추모를 하자… 수습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 (희생자가) 한국 사람의 아내였다… -백근흠 / 당시 중앙119구조 팀장 아니기를 바랐지만, 숨진 이는 일광 씨의 아내 마유코 씨야. 소식은 곧, 마을에서 아내를 찾던 일광 씨에게도 전해졌어. 일광 씨는 '에이 설마. 아니겠지' 반신반의하면서도 시신이 안치된 센다이 종합체육관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대. 그리고 건물 입구에서 숨진 이들의 사진 수백 장을 보는데, 유독 예쁜 사람이 있더래. 아내 마유코 씨였어. 그때 아내가 맞는데 예쁘게 화장을 했더라고요. 옷 깨끗하게 입히고 화장까지 깨끗하게 해서... 아내한테 미안하죠, 못 지켜줘서. 사랑하는 상태에서 그렇게 됐으니까 항상 미안해요. - 김일광 / 미야기현 한인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어요. 다정하고, 음식을 자주 만들어 주셨어요. 엄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슬펐어요. - 구지 미래 / 일광 씨 큰 딸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했던 엄마야. 마유코 씨가 우리 돈으로 시급 8천 원을 받는 커튼 공장에 나간 건, 쌍둥이들 기저귀 값이라도 벌기 위해서였어. 마유코 씨는 남편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음식을 연습했던 사랑스러운 아내이기도 했어. 그야말로 가족들에게 햇살 같은 존재였던 마유코 씨가, 세상을 떠난 거야. 그럼 불바다가 된 도시 건물에 고립돼 있었던 나오코 씨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밤사이 불길은 잡혔어. 아니, 더는 태울 연료가 없어서, 불길은 스스로 잦아 들었어. 하지만 아직도 대피소 건물엔 뻘이 가득 차 있어서 1층으론 내려갈 수 없어. 음식은커녕, 물도 없어. 수백 명이 좁은 공간에 있다 보니 잠을 잘 수도 없고, 앉는 것조차 돌아가며 앉아야 돼. 모두 절망에 빠져 있던 그때였어.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 여기예요! 여기 사람 있어요! 나오코 씨는 물론, 구조를 기다리는 모두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 이윽고 헬기가 대피소 상공에 멈췄어. 그러더니 레펠을 타고 내려온 소방청 대원이, 나오코 씨를 찾아. 여기 나오코 씨 계시나요? 아드님의 요청으로 왔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길까. 영문도 모른 채, 나오코 씨는 주민들 대피부터 도왔어. 그런 그가 건물에서 탈출하 건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리고 사정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야. 그러니까 지진 발생 한 달쯤 지나서였습니다. 나중에 (영국에 있던) 아들이 일본에 왔을 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진 발생 당시 아들이) 30분 정도 공들여 글을 써서 (SNS에) 올렸더니 운 좋게 (구조로) 연결이 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쓰미 나오코 / 당시 미야기현 거주 알고 보니 나오코 씨를 구한 건, 그녀의 아들이었어. 당시 영국에 근무하고 있었던 나오코 씨의 첫째 아들은 간절한 맘으로 자신의 SNS에 글을 하나 적었대. 바로 이거야. 장애아동 시설의 원장인 어머니가 아이들 10여 명과 함께 미야기현 게센누마 대피소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아이들만이라도 구해주실 수 없을까요. -아들의 SNS 나오코 씨는 장애 아동 시설의 원장이야. 지진이 왔을 때 나오코 씨가 운영하던 시설의 아이들은 다행히, 모두 하원을 한 상태였지만, 맞은편 보육원의 사정은 달랐대. 두 명의 보육 교사가 수십 명의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있었거든. 나오코 씨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보육원으로 달려갔어. 그리곤 아이들을 안고 업고, 몇몇은 차에 태워 대피소로 향했어. 처음 나오코 씨가 가족들에게 보냈던 문자 기억나? '아이들을 돌보고 있음'이라던 문자. 대피소에서도 나오코 씨는, 보육원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던 거야.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지구 반대편에 있던 아들이 써 내려간 SNS는, 순식간에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건 물론 일본 방송에까지 다뤄져. 덕분에 엄마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주민들 모두 무사히 건물을 빠져 나올 수 있었지. 정말 재난 속에서 피어난 인류애야. 하지만 사실 나오키 씨 아들에겐,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도 있었대. 이건 아들이 나중에 자신의 블로그에 적은 글이야. 어머니는 계속 복지 시설에서 근무했습니다. 아직 어렸던 자식을 뒤로하고서라도 시설의 아이들에게 곁잠을 재워주던 분. 분명 이번에도 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평온함을 주었겠지요. 솔직히 말해 제 속마음은 이랬습니다. '수많은 아이의 어머니'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전부 내팽개치고 한 명의 어머니로서 무사히 웃으며 돌아와 줘... 왠지 좀 한심하죠? -아들의 블로그 아들의 마음, 이해 돼? 세상 어느 자식이, 엄마를 잃고 싶겠어. 영웅 같은 엄마를 둔 아들이 진심으로 바란 건 그냥 내 엄마가 평범히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던 거야. 그렇게 내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는 사람은 또 있어. 바로 경임 씨야. 마을 사람들의 대피를 돕고,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 유우키 씨는 소식이 없어.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아무리 기다려도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경임 씨의 집엔 이게 도착했어. 마을을 위해 헌신한 유우키 씨를 위한 감사패야. 남편을 포옹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하고 보낸 게 속도 상하고. (남편을) 왜 보냈나 싶기도 하고. 내가 일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나를 지켜야지 왜 남들 지키려고 가냐고 하지 못한 게. 가지 말라고 내가 아무것도 못 한다고 가지 말라고 부탁도 했어야 되는데 못한 것도 많이 속상하고…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남편 하나만 바라보고 일본에 왔던 경임 씨는 그때까지 일본말도 서툴렀대. 그래서 집안의 대소사며, 아이들의 교육을 챙겼던 것도 남편이었어. 그날, 방파제의 수문을 닫으러 가지 않았다면 남편 유우키 씨도 분명 무사했을 거야. 하지만 그는, 의용 소방대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했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희생된 사람은 무려, 1만 6천여 명이었어. 사인은 대부분 익사. 물에 잠긴 면적만 해도 서울의 약 93% 정도야. 피해가 왜 이렇게 컸을까? 그날 미야기현 앞바다에선 해저 산사태가 동시에 벌어졌어. 무려 네 곳에서. 그러니 그 위의 해수면 곳곳은 요동칠 수밖에 없었겠지. 게다가 이곳의 지형도 한 몫했어. '리아스식 해안' 들어봤어? 해안선이 들쑥날쑥 톱처럼 생긴 곳이야. 강력한 파도가 해안의 좁은 곳에 밀려들면 높이가 높아질 수 밖에 없어. 이 날 밀려온 쓰나미의 최대 높이는, 약 40미터. 무려 아파트 15층 높이야. 그 높이에서 강력한 힘으로 떨어진 물은 그야말로 지상의 모든 걸 다 휩쓸고 지나갔어. 그런데 지금까지의 재난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끔찍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때? 재앙은 끝나지 않았어. 일본 최악의 날에서, 지구 최악의 날이 된 그 순간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있어. ▲ 지구 최악의 날 다시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3시 20분으로 돌아가 볼게. 스물일곱 살의 류타 씨는, 다급히 회사로 향하고 있었어. 비번이었지만, 강진의 규모를 봤을 때, 분명 일손이 더 필요할 것 같았거든. 지진의 강도에 따라 '긴급정지'라는 것이 경보로 있는데요. 긴급정지를 하면 꽤 혼잡하고 여러모로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도와주러 가야겠다 싶어서 회사로 향했습니다. - 이도가와 류타 서둘러 도착한 회사 내부는, 이미 엉망이야. 집기는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고, 경보는 연신 울리고 있어. 동료들의 안부를 묻던 그때였어. 쓰나미가 건물을 강타해서 전기가 끊어진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는 아니었어. 비상발전기가 가동돼서 금세 전기가 돌아왔거든.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건, 8분 뒤야. 또 쓰나미가 건물을 덮친 거야. 모니터 표시등이 타다다다다닥 꺼지더니, SBO다! 외치는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 SBO는 Station Black Out(스테이션 블랙 아웃). 모든 전력이 상실됐다는 의미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류타 씨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 왜냐면 그의 직장인 이곳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였거든. 이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축소해 만든 모형이야. 1971년 가동을 시작한 도호쿠 지방 최대의 원자력 발전소. 무려 1100만 가구가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이곳엔, 총 여섯 동의 원자로가 설치돼 있었어. 해안 바로 옆에 있는 1,2,3,4호기, 조금 떨어져 있는 5,6호기야. 그런데 이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가 끊긴다는 게 어떤 의미일 거 같아? 이곳의 원리는, 간단해. 핵분열을 하면, 대략 2000도 정도의 열이 발생하는데, 이걸 냉각하지 않으면 연료봉을 감싸고 있는 금속이 녹으면서, 물과 반응해 수소가 만들어져. 그렇게 되면 끔찍한 대폭발로도 이어질 수 있어. 그러니 전력 상실로 펌프가 멈추고 물 순환이 안 되는 지금. 류타 씨의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 지금 제일 필요한 건, 물 순환을 도울 전력, 아님 물이라도 있어야 돼. 직원들은 도쿄전력 본사에 지원을 요청했어. 하지만 비상용 발전차가 오지 않아. 도로 상황 봤지? 곳곳은 이미 침수되고 끊어졌어. 그나마 온전한 길 위엔 대피하는 사람들로 가득해. 결국 저녁 7시 30분 무렵, 원자로 안에 있던 물이 증발해. 냉각이 안되니 연료봉이 녹기 시작해. 그리고 3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 36분. 결국 1호기가 폭발했어. 그때도 중앙제어실에 있었습니다. 지진인가 싶었는데 '이건 지진 아니야, 폭발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여기에 있다가는 확실히 죽겠구나, 그런 공포감이 있었습니다. - 이도가와 류타/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 운전원 근데 이 얘기에서 이상한 거 없어? 폭발을 막기 위해서는 물로 원자로의 열을 식혀야 해. 그런데 여긴 바다 앞이잖아. 보이는 건 다 물이야. 왜 바닷물을 냉각수로 쓰지 않은 걸까? 그 이유가 충격적이야. 1호기가 폭발한 다음날인 3월 13일 오후 8시. 원전의 운영사인 도쿄전력 본사 관계자와 현장 소장이 화상회의를 해. 도쿄본사: 최대한 버티면서 담수 지원을 기다리는 건 어때요? 소장: 안됩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됩니다. 도쿄본사: 하지만 담수를 쓰는 편이 부식이 안되잖아요? 바닷물을 원자로에 집어넣는 순간, 거액을 들여 만든 원자로는 폐기해야 되거든. 그러니까 담수를 기다리자는 거야.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다음날인 3월 14일. 3호기가 폭발해. 15일에는 2호기가 손상되고, 점검 중이었던 4호기 마저 폭발해. 전 지구적인 재앙이 시작된 거야.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은 대기로, 토양으로, 바다로 퍼져갔어. 이제 원전 주변에 사람이 살아선 안돼. 애초에 비상 전력이 가동돼, 냉각수 순환이 멈추지 않았다면? 비극은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문제는 더 있었어. 원전 주변을 둘러싼 이 방파제의 높이는 5.7미터.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으로 밀려온 쓰나미 높이는 15미터가 넘어. 무엇보다 유감스러운 건, 지진 발생 3년 전인 2008년 도쿄전력 내부에서도, 대형 쓰나미가 올 가능성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한 적이 있다는 거야. 시뮬레이션 결론은 '쓰나미가 올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최소 8미터에서 최대 15.7미터가 예측됐어. 실제와 유사하지? 그렇다면 조치가 있었을까? 아니. 조치는 없었어. 시뮬레이션은 시뮬레이션일 뿐, 진짜로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봤거든. 2012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조사위원회에서는 이런 결론을 내렸어. '이 사고는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현상에서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명백히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이다.' 그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도쿄전력 전 경영진 세 명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어. 그리고 지난 2025년 3월 5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선고공판이 열렸지.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본 사고의 결과가 매우 중대하고, 되돌릴 수 없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 통념을 반영했을 것으로 보이는 법령상의 규제와 그에 따른 국가의 지침, 심사 기준 등의 체계가, 절대적 안전성의 확보까지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상의 이유로, 피고인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판결문 모두, 무죄야. 원전을 설계할 당시의 기준으로 봤을 때, 위법이 아니고, 천재지변을 완벽하게 예측해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니, 개인의 책임이 아니란 거야. ▲ 마을 촌장의 선택 그렇다면, 도쿄전력의 선택과는 달랐던, 또 다른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일본 이와테현 해안에 자리한 소도시, 후다이 마을이야. 1947년, 이곳엔 새로운 촌장이 부임하게 돼. 그의 이름은 와무라 고토쿠. 바로 이 분이야. 고토쿠 촌장은 35억 6천만 엔, 당시 한국돈으로 약 120억 원을 들여서 마을 해안에 수문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해. 주민들 반응은 안 좋았어. 주민들의 반대와 분노가 하늘을 찔렀대. 예산낭비라는 거야. 하지만 그 후에도 주민들과 지자체를 끈질기게 설득한 고토쿠 촌장은 1984년 결국, 높이 15.5미터, 길이 205미터의 수문을 완공해. 그는 왜 이토록 고집스레 수문 건설을 강행한 걸까? 후다이 마을은 1896년과 1933년에도 지진과 쓰나미로 수백 명이 숨졌던 곳이야. 그런데 1933년의 대형 쓰나미에서, 한 청년이 극적으로 살아남았어. 바로 고토쿠 촌장이었어.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대재난의 그날. 후다이 마을에도 거대한 쓰나미가 닥쳐. 이곳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꼬꼬무'가 후다이 마을을 직접 다녀와 봤어. 저쪽에 돌들이 있는데 지금은 정돈돼 있지만 실은 이게 쓰나미가 가져온 거예요. 보시는 것처럼 이 방조제 높이는 해발이 15.5미터인데 8미터 추가해서 23.6미터라고 돼 있죠? 저기까지 쓰나미가 왔어요. -다치우스 마사루/ 후다이 마을 총무과 소방 방재 계장 그럼,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다이 마을의 사망자는 몇 명이었을까? 어선을 살피러 방파제 밖으로 나갔던 주민 한 명이 안타깝게도 실종됐지만, 나머지 주민들 중에 사망자는 0명. 수문 안쪽의 건물들도 전혀 피해가 없었어. 후다이 마을 남쪽에 요다 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궤멸 상태가 됐어요. 인근 마을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후다이 마을만은 정말 기적이었다고 많이들 말하죠. -다치우스 마사루/ 후다이 마을 총무과 소방 방재 계장 1997년, 고토쿠 촌장은 수문의 쓰임새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 그리고 대지진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촌장의 뜻을 알게 된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그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대. 바로 이거야. &<두 번 있었던 재해는 세 번 있어서는 안 된다&> 안전에 있어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고토쿠 촌장의 신념을 적은 거야. 천재지변의 가능성을 대비하지 않았던 도쿄전력의 판단과 비교하면 어때?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동일본 대지진 한 달 뒤, 경임 씨는 여전히 영사관에서 제공한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었어. 그런데 아랫배가 뭉치듯이 아프더니 다리 사이에서 주르륵 흐르는 건 피야. 경임 씨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어. 다행히 아기는 좀 작긴 하지만 건강하대. 얼마 뒤 경임 씨는 병원에 입원을 했어. 출산일이 가까워졌거든. 그리고 다음날, 넷째 에리카가 태어났어.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잘 견뎌준 아기가 대견하면서도, 경임 씨는 마음 한구석이 아리기만 했대. 애 낳고 나면은 바로 남편이 오고, 먼저 태어난 아기들이 오고 그러는데. 이번은 없었기 때문에 병실에서 굉장히 많이 울었던 거 기억이 나요. 애 낳고 나서 이제 큰애들도 다 따로 있고 남편도 없고. 이제 아기랑 저만 있어서 많이 아기한테도 미안하고 그래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곁에 있었다면, 한달음에 달려와 새 생명을 안아줬을 남편이야. 커다란 나무 같았던 유우키 씨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대. 자꾸만 아빠를 찾는 아이들에게, 뭐라 답해줘야 할지 몰랐던 그 해 크리스마스 무렵. 경임 씨에게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와. 홍경임 씨, 남편을 찾았습니다. 집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해안에서, 남편 유우키 씨의 유해가 발견된 거야. 마침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나 한없이 슬프면서도, 늦게라도 가족 곁으로 돌아온 남편이 경임 씨는 참 고마웠대. 남편한테는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고 제가 했었어요. 살아 있을 때도. 저랑 결혼해 줘서 감사하다고 저한테 예쁜 애들 낳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많이… (울컥) 지금도 아빠 닮은 애들 넷씩이나 있어서 제가... 항상 고맙고 지금도 사랑해…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바로, 15년 전 어제였어. 해마다 일본에서는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이 되면 묵념을 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야. 하지만 그만큼이나 더 중요한 게 있어. 기억이야. 피해가 컸던 지역 곳곳을 지나다 보면 눈에 띄는 게 있어. 바로 이거야. 이것의 목적은 뭘까? 쓰나미가 밀려왔을 당시 침수됐던 높이를 기억하고, 혹시 모를 다음 재난의 기준으로 삼는 거야. 참 끔찍했던 그때의 참사를 잊어가고 있고 그 당시를 모르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살아남은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고 계속 전해 가야 하는 일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다치우치 마사루 / 후다이 마을 총무과 소방 장재 계장 경임 씨는 아직도 빗물에 물웅덩이가 흔들리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대. 그럼에도 '꼬꼬무'와의 인터뷰에 응한 데는, 이유가 있어. 개인의 경험은 쓰라린 고통일 뿐이지만, 그 기억을 공유하는 건, 사람을 구하는 가치가 된다는 거야. 생존자들은 그게, 자신들이 살아남은 이유라고 믿는대. 얼마 전, 일광 씨가 다시 가모지구를 찾았어.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마을엔 이제, 추모비만이 남아 있어. 아내이자 엄마인 마유코 씨. 그녀가 가족들에게 잊혀진 순간은 없었어. 아이들 몇 학년 됐다, 잘 크고 잘 있다, 아들 인기 많다, 여자 친구 많다… 그런 식으로. 입학식, 졸업식, 시합에서 우승했을 때, 쟤들 세 명 다 운동을 잘해가지고. 그때 (아내가) 옆에서 같이 응원했으면, 같이 보러 왔었으면, 졸업식에도 옆에 같이 사진 찍어줬으면 좋죠. 그런데 옆에 없다는 빈자리가 그때가 제일 많이 생각나죠.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생각났어요.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다른 애들은 엄마가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지 미래/ 마유코 씨의 첫째 딸 저도 운동회 같은 걸 하면 엄마가 없어서 슬프고 외로웠어요. -구지 희로나/마유코 씨의 막내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빈자리. 2011년 3월, 쓰나미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아내를 찾아다녔던 일광 씨는, 딱 하나만을 상상했대. 그냥… 가족 다섯이서 그냥 밥이나 한 끼... 그냥 행복한 가족이라 그럴까. 평범하게...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가족들이 함께 식탁에 모여 밥을 먹는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하루야. 우린 종종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고 살곤 하지. 그날, 어디선가는 졸업식이 진행 중이었고, 누군가는 장을 보고 있었을 거고, 또 다른 이는, 퇴근을 앞두고 약속을 잡고 있었을지도 몰라. 2011년 3월 11일은, 그런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의 안녕이 무너진 날이었어. 2만여 명의 사람들은 아직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고, 2천여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야. 그런데 지난해, 할머니댁에 갔다가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진 여섯 살, 나쓰메의 유해가 14년 만에 가족들에게 전해졌어. 나쓰메의 부모님은 무슨 얘길 했을까. 지난 시간 동안 너무도 하고 싶었다는 그 평범한 한마디를 끝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칠까 해. 잘 왔어. 돌아와줘서 고마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알베르토, 일방적인 침략 역사에 '양비론'이 웬 말… 한일 모두 아픔 사과문 논란 알베르토, 일방적인 침략 역사에 '양비론'이 웬 말… 한일 모두 아픔  사과문 논란 등록일2025.11.26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41)가 한일 역사 문제를 언급하며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 고 말한 뒤 사과했지만, 해당 해명 역시 '역사 왜곡을 양비론적으로 접근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논란은 유튜브 채널 '354 삼오사'의 최근 영상에서 시작됐다. 해당 콘텐츠에는 독일 출신 다니엘 린데만, 인도 출신 럭키, 알베르토, 배우 송진우(40)가 출연해 국제결혼과 다문화 가정의 현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배우 송진우는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의 학교생활을 언급하며 아이들에게 역사를 설명할 때 '옛날에 둘이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고 말했다. 이어 양쪽의 입장도 생각해봐야 한다 고 덧붙여, 일제강점기를 '양국 간 싸움'처럼 표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영상이 공개되자 온라인에서는 일본의 침략을 분쟁처럼 축소했다 , 나치와 유대인을 '옛날에 싸웠다'고 말할 수 있느냐 는 강한 비판이 이어졌다. 송진우는 이후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상처와 실망을 드렸다 며 역사를 왜곡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겪는 혐오와 폭력을 이야기하며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취지를 전하고 싶었다 고 사과했다. 알베르토 역시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그는 영상에서 송진우의 발언에 아들이 한국사 책을 읽다가 '일본 사람들이 진짜 나빴다'고 말하면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모도 일본인이다'라고 설명해 준다 며 양쪽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서 침략 역사를 마치 분쟁처럼 묘사한 방식이 양비론적인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알베르토는 26일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려 역사 문제는 한국과 일본 모두 아픔과 기억 깃든 무거운 주제지만, 그 무게를 고려하지 못한 채 경솔한 발언을 했다 며 역사와 맥락을 깊이 공부하겠다. 상처받은 분들께 사과드린다 고 밝혔다. 이 사과문이 공개된 뒤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네티즌들은 침략의 역사에서 한국과 일본 모두 아픔과 기억이 있다. 는 식의 해석이 문제라는 것. 앞서 유튜브 채널 '354 삼오사' 측은 문제의 영상을 비공개 전환하고 '한국과 일본이 싸웠다'는 표현은 침략 사실을 왜곡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나, 편집 흐름상 단순 분쟁처럼 들리게 된 것이 제작진의 실수 라고 설명했다. 또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발언 역시 양비론적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자는 취지였지만,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 며 제작·검수 과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SBS연예뉴스 강경윤 기자)
유대인도 나치와 싸운 거냐? …송진우, 한일 싸웠다 역사 왜곡 발언에 부글부글  유대인도 나치와 싸운 거냐? …송진우,  한일 싸웠다  역사 왜곡 발언에 부글부글 등록일2025.11.26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두 아이를 둔 배우 송진우(40)가 다문화 가정의 고충을 이야기하던 중 한국과 일본이 옛날에 싸웠다 라는 발언을 해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양국 간의 싸움'처럼 표현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온라인에서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은 최근 유튜브 채널 '354 삼오사'에 공개된 영상에서 비롯됐다. 해당 콘텐츠에는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인도 출신 방송인 럭키, 이탈리아 출신 알베르토, 그리고 송진우가 출연해 국제결혼과 다문화 가정의 현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송진우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 걱정된다 며 부모 국적 때문에 돌을 맞는 아이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자녀에게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 왔다며 옛날에 둘이 싸웠다. 근데 지금은 아니야 라고 표현했다. 또 이 과정에서 양쪽의 입장도 생각해 봐야 한다 는 발언도 나와서 논란을 키웠다. 영상이 공개되자 댓글창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송진우의 발언과 관련한 비판이 이어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일본의 침략을 '싸웠다'라고 표현하다니 , 나치와 유대인을 '옛날에 싸웠다'고 말할 수 있나 등 강한 비판이 이어졌다. 또 다른 네티즌은 우리는 일본에게 사과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싸웠다'는 표현은 한국인의 역린을 건드린 것 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354 삼오사' 제작진은 해당 영상을 비공개 전환하고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제작진은 '한국과 일본이 싸웠다'는 표현은 일본의 침략 사실을 축소하거나 왜곡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며 편집 흐름상 단순 분쟁처럼 들리게 전달된 것이 제작진의 실수 라고 밝혔다. 또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발언 역시 양비론적 접근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자는 일반적 취지였지만 편집이 잘못돼 의도가 왜곡됐다 며 재차 사과했다. 송진우 역시 댓글을 통해 직접 사과했다. 그는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상처와 실망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왜곡해 가르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부모 국적 때문에 받는 혐오와 폭력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적 사실은 정확히 알고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아이의 시선에서 설명하려다 잘못된 표현을 사용했다. 어떠한 변명도 없이 제 부족함 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354 삼오사' 제작진은 출연자 발언이 왜곡돼 전달된 데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며 제작·검수 과정을 강화해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 고 덧붙였다. (SBS연예뉴스 강경윤 기자)
'동상이몽2' 오상욱, 금메달 같은 신랑감 되고파···전지현처럼 포스 있는 사람이 이상형 '동상이몽2' 오상욱,  금메달 같은 신랑감 되고파···전지현처럼 포스 있는 사람이 이상형 등록일2025.11.04 오상욱이 이상형을 공개했다. 3일 방송된 SBS '동상이몽 시즌2-너는 내 운명'(이하 '동상이몽2')에서는 펜싱 선수 오상욱이 스페셜 MC로 등장했다. 이날 방송에서 오상욱은 가정적인 남편이 로망이라며 금메달 같은 신랑감이 되고 싶다 라고 말했다. 이에 이현이는 결혼 이야기를 하는 거 보니까 핑크빛 기류가 있는 거냐? 라고 물었고, 오상욱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이어 조우종은 혹시 국제결혼을 말하는 거냐? 라며 나름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오상욱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어 오상욱은 가정적인 사람, 유흥이랑 거리가 먼 사람, 다혈질이 아닌 사람, 키가 큰 사람 을 이상형으로 꼽았다. 또한 처음에는 외모를 안 볼 수가 없다며 포스 있고 이런 분이 좋다. 전지현 이런 분 같은 스타일이 이상형이다 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에 김구라와 김숙은 진짜 포스 있는 분들은 정영주 이영자 이런 분들이다. 포스 있다 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우린 한국에서 당해도 공개 안 했는데 …캄보디아, 서운함 표출 [자막뉴스]  우린 한국에서 당해도 공개 안 했는데 …캄보디아, 서운함 표출 [자막뉴스] 등록일2025.10.21 지난 15일 캄보디아 현지를 방문한 정부 합동대응팀은 방문 첫날 훈 마네트 총리, 써소카 부총리 등 캄보디아 정부 최고위직을 만나 구금된 한국인들에 대한 조기 송환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면담 자리에서 캄보디아 정부 고위 관계자가 우리나라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낸 거로 확인됐습니다. 대응팀에 따르면 한 캄보디아 고위 인사는 양국 국민간 국제결혼도 많아서 한국을 사돈의 나라로 생각한다 며, 한국에서 캄보디아인을 상대로 범죄가 발생해도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생각해 외부에 잘 공개하지 않아 왔다 고 말한 거로 전해졌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캄보디아를 비판하는 한국 정부와 언론에 서운함을 드러낸 셈입니다. 이 고위인사는 또 중국인에 의한 한국인 상대 범죄 피해는 사실 캄보디아 입장에선 '외국인 간 범죄'지만, 자신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신속하게 검거했는데, 왜 우리가 가장 큰 비난을 받아야 하냐 며 적극 해명한 거로 전해졌습니다. 대응팀 관계자는 캄보디아측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우리측에 1시간 넘게 자세히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방문 일정 마지막날인 지난 18일 구금된 한국인 64명 송환 과정에서도 캄보디아측의 최고 책임자와 정복을 입은 인원 100여 명이 도열해 송환 과정을 관리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는데, 다만 캄보디아 정부는 현지 한인 사건을 전담하는 양국 경찰 수사공조 조직인 코리안데스크 설치 요청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양국 정부는 대신 한-캄보디아 합동대응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범죄 연루자 송환을 위한 정보 교환을 진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캄보디아측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반대한 건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 자국 반정부 인사 송환을 우리 정부가 거부한 데 대한 조치라는 해석입니다. (구성 : 이호건 / 영상편집 : 김나온 / 디자인 : 이수민 / 제작 : 디지털뉴스편집부)
환불거부 결혼중개 피해 매년 증가…5년여간 2천건 넘어 환불거부 결혼중개 피해 매년 증가…5년여간 2천건 넘어 등록일2025.10.06 환불 거부 등 결혼중개업 관련 피해구제 신청이 최근 5년여 동안 2천건을 넘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이 오늘(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5년 8개월간 결혼중개업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2천83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신청 건수는 2020년 276건에서 2021년 334건, 2022년 345건, 2023년 382건, 지난해 416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입니다. 올해도 8월까지 285건이 접수됐습니다. 사례를 보면 만남 횟수를 채우지 않고도 잔여 횟수는 서비스로 제공 예정이었다는 이유로 환급을 거부하거나 허위 프로필을 제공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체 신청 건 가운데 국내결혼중개가 1천906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국제결혼중개 관련은 132건이었습니다. 국내결혼중개에서는 허위 프로필을 제공하거나 요구 조건과 다른 상대를 소개해 계약 해지를 요구했으나 환급이 되지 않았다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국제결혼중개와 관련해서는 현지 체류 비용을 지속적으로 추가 청구하거나 과도한 위약금을 요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처리가 완료된 2천8건 중에서 환급·계약 해제 등 합의가 성립된 사례는 848건에 불과했습니다. 미합의 건은 1천160건으로, 합의가 되지 않은 사례가 더 많았습니다. 이 의원은 &'피해구제 신청 사례를 보면 기본적인 요구조건 등을 고려하지 않고 교묘한 계약 조건을 내세워 환불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인생의 중요한 결정인 결혼을 두고 피해자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