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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최대 10㎝ 눈 더 내릴 듯…10일 영하 12도
등록일2025.01.09
▲ 눈 내리는 광주 광주·전남 지역에 최대 11㎝가량의 많은 눈이 쌓이고 바람도 강하게 불면서 교통편에 차질이 생기거나 크고 작은 눈길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광주기상청에 따르면 오후 4시 기준 적설량은 전남 영광군 11.9㎝, 장성군 상무대 9.2㎝, 함평군 8.9㎝, 진도군 8.1㎝, 나주시 7.4㎝, 무안군 해제면 6.6㎝, 광주 과기원 5.7㎝ 등으로 기록됐습니다. 지난 6일 밤부터 시작해 어제(8일)까지 내린 눈보다 오늘 하루 내린 눈의 양이 더 많은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현재 함평·영광 등 2곳에는 대설경보가, 광주·나주·담양·곡성·구례·장성·화순·보성·장흥·강진·해남·영암·무안·목포·신안·진도 등 16곳에는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상태입니다. 눈은 오늘 밤까지 시간당 3㎝ 이상 강하게 내리며 지역에 따라 3~8㎝가량 더 쌓인 뒤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전남 서해안의 경우 내일까지 계속 이어져 최대 10㎝ 이상 더 내리는 곳이 있겠습니다. 영하권 추위도 이어집니다. 내일 아침 최저기온은 내륙 지역 영하 12도, 그 외 지역 영하 5도 내외로 올겨울 들어 가장 춥겠고, 낮 기온도 영하권에 머물 것으로 예보됐습니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내린 많은 눈과 강한 바람으로 하늘길과 바닷길, 산간 도로 운행이 통제되거나 차질이 생겼습니다. 광주공항에서는 오늘 오전 제주로 향하는 첫 비행기를 제외한 모든 운항이 취소됐습니다. 전남 각 섬을 연결하는 39항로 52척의 여객선 운항이 중단됐고, 구례 노고단 도로와 목포 유달산 일주 도로 화순 돗재 등 산간 도로 5곳의 통행이 금지됐습니다. 지리산과 내장산, 월출산, 무등산 등 국립공원 출입도 제한됐습니다. 크고 작은 눈길 피해도 잇따랐습니다. 광주·전남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보행자 8명이 병원으로 이송됐고, 눈길 교통사고는 11건 발생했습니다. 전남 장성군 필암 서원에서는 소나무가 전도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고로 생명에 지장이 있는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광주기상청 관계자는 차량 미끄러짐과 보행자 낙상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가급적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등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며 농작물 피해와 축사 무너짐 등도 유의해야 한다 고 당부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나도, 아들도 밟히고 찢긴 민들레 같은 삶 …원폭 투하 80년의 상흔 [스프]
등록일2025.01.09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저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원폭에 피폭을 당한 한국 원폭 피해자를 어머니로 모시고 있고, '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증'이라는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0여 차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자주 반복되는 폐렴으로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현재 폐 기능은 30%만 기능을 하고 나머지 70%는 기능이 상실되어 있습니다. 한국에 나와 같이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 2세 환우가, 한국 정부 발표에 의하면 2천300여 명이 있습니다. 전체 한국 원폭 2세는 8천~1만여 명이 있다고 추정됩니다. 위 내용은 한국에서 '원폭 피해자 2세'의 존재와 그 의미를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故 김형률 씨의 2003년 5월 22일 글입니다. 1970년생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잦은 병치레와 거듭된 생사의 고비들이 '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증'이라는 병 때문이며, 그 원인이 원폭 피해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부터 원폭 피해 2세 환우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남은 생을 바쳤습니다. 김 씨는 2002년 3월 22일, '한국청년연합회(KYC)' 대구지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어머니의 아들로서,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이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여 한국 원폭 피해자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도 제출해 2004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원폭 피해자 2세에 대한 실태 조사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는 또한 '한국 원자폭탄 피해자와 원자폭탄 2세 환우의 진상 규명 및 인권과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병약한 몸을 이끌며 한국과 일본을 오갔던 김 씨는, 만 서른다섯을 앞뒀던 지난 2005년 5월 지병 악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80년째, 故 김형률 씨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0년째가 됐습니다. 원폭 피폭의 참화를 목도한 국제 사회가 반성의 의미를 담아 '핵 비확산' 체계를 만들었지만, 최근 핵 강국들은 보란 듯이 핵무기를 현대화하며 비확산 기조에 정확히 역행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지난해 노벨위원회가 핵무기 확산과 사용에 대해 경고함으로써 핵무기의 위험성을 전 세계적으로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 공로 로 일본의 원폭 생존자 단체(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니혼 히단쿄)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는데, 이 자체가 핵 확산 세태에 대한 '엄중 경고'로 해석됐습니다.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한국인 원폭 피해자 한국인 피폭자들의 규모는 기관마다 추산치가 다릅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피폭된 한국인 수는 약 1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같은 해 일본 내무성 경보국 발표 자료인데, 협회 측에서는 이 수치를 한국인 피폭자 통계로 공식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원폭 투하 당시 두 지역에서 발생한 피폭자는 74만 명으로 한국인 피폭자가 전체의 약 13%를 차지합니다. 한국인 피폭자 약 10만 명 가운데 5만 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생존자 5만 명 중 약 4만 3천 명이 해방 후 귀국했으며 7천 명이 일본에 잔류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일본 내무성 경보국 자료보다는 피폭 규모를 적게 추정합니다. 한국인 피폭자 수를 7만 명으로 추산하면서 사망자는 4만 명, 생존자는 3만 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일본 시민단체 '한국원폭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모임'에서 활동하는 이치바 준코 씨의 저서 '한국의 히로시마'에 수록된 내용 등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측이 추산하는 것보다 3만 명가량 적은 규모입니다. 한국인 피폭자 수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고, 피폭자들 상당수가 고인이 됐기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원폭 피해자로 등록된 인원 가운데 생존자는 1천662명으로 이 중 일본 정부가 원폭 피해를 봤다고 인정해 교부하는 이른바 '피폭자 건강수첩' 소지자는 1천628명에 불과합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린 추정치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숫자입니다. 원폭 피해자 등록은 일본 정부가 나서서 발굴하는 게 아닌 당사자 등록주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데다 한국인이 일본 정부의 피폭자 건강수첩을 받기 위한 과정이 까다로워 피해를 인정받는 경우가 실제보다 적습니다. 원폭 피해 72년만에 시행된 지원 법안... 피폭 2세는 제외 한국에서 원폭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첫 지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시민단체인 핵병기금지평화건국민회의의 지원을 받아 1973년 합천에 설치한 원폭 피해자 진료소입니다. 1979년 6월 한일 양국 간 합의로, 한국인 피폭자들이 일본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만, 그마저도 중증 환자나 고령자는 대상에서 제외되고, 매년 60명씩 2개월간 치료만으로 한정된 매우 제한적인 수준으로 시행됐습니다. 결국 그 실효성에 이견이 있어 사업은 1986년 11월에 중단됐습니다. 그 뒤 1989년 정부가 피폭자에 대해서 본인 부담금 중 절반을 정부가 부담하는 조치를 시행한 바 있고, 1990년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면서 한일 양국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위해 40억 엔 규모의 지원금 갹출에 합의하긴 했습니다. 다만, 이 역시 한계가 명확했던 것은, 일본 정부가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지원'일 뿐이란 입장을 보였고, 그 결과 원폭 피해자 복지 사업의 주체도 한국 정부가 아닌 대한적십자사가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 원폭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국내에서 시행된 것은 원폭 피해가 발생한 지 72년이 지난 2017년이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정부 차원의 원폭 피해자 실태 조사도 비교적 최근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1957년 원폭의료법이 제정됐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원폭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피해자 1세와 피폭 당시 태아만을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어 피해자 2세, 3세에 대한 지원은 제외되었습니다. 이는 유전적 영향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역사적, 사회적 책임성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해 정부가 선지원을 하고, 원폭 피해 인과관계를 지속적인 연구로 입증해 가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한마디로, 특별법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를 읽다 보면 체감하실 수 있겠지만, 원폭 피해자분들, 특히 2세대 등 후손분들은 오랜 기간 고통을 받으면서도 철저히 소외되고 사각지대에 방치돼 왔습니다. 이에 지난해 원폭 피해자 2세와 관련한 실태 조사가 이뤄지도록 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습니다. &<※ 참고 : 신성범(국민의힘·산청함양거창합천) 국회의원, 이용선(더불어민주당·서울양천을)·차규근(조국혁신당·비례) 국회의원 대표 발의&>. 원폭 피해자분들은 이 개정안이 최대한 빨리 통과돼 더 폭넓은 피해자 지원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더 스피커&>에서는 원폭 피해자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다음은 원폭 피해자 1세대 정원술 씨와 2세대 한정순 씨와 각각 진행한 인터뷰 일문일답입니다. 밟히고 찢긴 민들레 같은 삶... 나도, 아들도 피해자 인정 못 받아 원폭 피해자 2세대 한정순 씨 인터뷰 (한국원폭피해자2세 환우회 회장) Q. 한국원폭피해자2세 환우회 회장을 맡고 계시지요. 환우회에 계신 회원님들의 사정에 대해 여쭸을 때 '정말 우리가 하루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정확히 어떤 사정인지 궁금합니다. A.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저희는. 우리 환우들은 방사능으로 인해서 유전성 후유증으로 태어나면서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어나서 또 온갖 질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결국 아파서 지원조차도 받지 못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지적장애인이라든지 정신질환을 앓는 분들이라든지, 이런 분들은 사실 지적장애인들도 나이는 50대, 60대 넘어가지만 정신연령은 3세, 4세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장애우들이 태어났을 때는 어리고 또 부모님도 다 젊고 해서 케어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 부모님마저 세월을 비켜가지 못하니 자기 몸 하나도 가누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이 장애인 자녀들을 또 이렇게 케어를 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전혀 우리 정부에서는 지원도 없습니다. 원래 한국에는 합천복지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법적으로 이곳에 들어갈 근거가 전혀 없다는 이유로, 들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Q. 110명이 정원인 곳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60명 남짓만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A. 네, 그 현장에서 직접 피해를 본 분들에 한해서만 그 복지관에 들어갈 수 있게 인정이 되는 거고요. 지금 복지관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기 들어갈 수도 없고, 못 들어오게 하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해서 거기에 일단 입주를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법을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건가요? 그 법은 정부에서 만들어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Q. 지난해 국민의힘 신성범 의원과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 민주당 이용선 의원이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공동 발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A. 예, 그렇죠. 그리고 지금 이번에 처음으로 한 게 아니에요. 2016년도 법도 범위가 없었잖아요. 그때부터 우리가 국회를 그렇게 드나들고, 사정을 하고, 부탁을 하고,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갈 곳을 잃고 있고요. 우리 장애인분들이 사실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법이 개정되어서 우리가 법적 근거만 있다면 합천복지관이라도 좀 들어갈 수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지금 어차피 그곳이 다 비어 있고, 1세 어르신분들이 나중에 다 돌아가시면 그걸 어떻게 운용할지 그에 대한 계획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안 된다라는 거죠. 그리고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원폭 피해자 후유증과 관련한 연구를 의뢰해서 진행하고 있는 게 있는데요. 지적장애가 있는 분들은 가서 설문조사를 작성하라고 해도 작성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피폭 3세인 우리 아들은 지금 83년생입니다. 40년 동안 누워만 있어요. 뇌병변 장애입니다.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저만 아픈 게 아니라, 3세인 아들도 그러고 있어요. 그 아들을 제가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게 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저도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기 때문에 아들 데리고 가서 검사 못해요. 이렇게 누워있는 사람, 진짜 검사가 필요한 사람들은 (검사를 받으러)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검사를 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연구를 담당하는 교수님께 수없이 전화하고, 울기도 하고 매달려 보기도 하고 별짓을 다 했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그거는 장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제는 기운이 다 빠집니다. 정말 이렇게 내가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자로 인정도 못 받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앞으로 살길도 결국 이렇게 묻히고 마는 건가라고 생각을 하면 정말 너무 억울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너무 억울하고 분합니다. (...) 저는 다리 쪽으로 수술을 12번 했고, 담석 수술, 자궁 근종 수술까지 정말 수없이 많은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내가 죽어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장애인 아들을 두고 죽을 수가 없어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걔를 두고 갈 수도 없어요. 눈을 제대로 감을 수는 있겠어요? 그래서 나보다는, 내가 아픈 것보다는 아들의 갈 곳이라도 좀 마련해 놓고 가고자,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네요. (...)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제가 피해자의 자녀로 태어난 건, 제 잘못도 부모님의 잘못도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기 인도 블록 사이에 하나의 민들레 꽃씨가 떨어지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밟히고 찢기고 그렇게 해서 다시 일어나고, 다시 살아나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나지만, 그래서 그 꽃을 피우지만 그 꽃마저도, 우리 아들을 보면, 그 꽃잎이 사람들에게 다 밟히고 짓이겨서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구부러진 채 밟히면 구부러진 채로, 꽃잎이 떨어지면 떨어진 채로 그냥 사는 그 민들레 한 포기가,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랑 너무 똑같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Q. 노벨평화상을 일본의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니혼 히단쿄)가 받은 데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A. 노벨평화상을 물론 일본에서 받긴 했지만, '노벨평화상 원폭 피해자'라는 문구 하나에도 정말 저는 가슴이 벅찼어요. 그동안 우리한테 이렇게 하늘에 대고, 정부에 대고 호소를 했지만 아직까지 들어주는 이 없이 살아왔는데, 이제는 우리가 좀 더 알릴 기회가 되고, 이 원폭, 핵무기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를 좀 더 알릴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원폭 피해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아프게 살아가는 현실을 좀 더 알릴 수 있는 기회다라고, 그것밖에는 제가 생각할 수가 없어요. 한국 정부는 무조건 '무관심'... 연락하면 답조차 없어 원폭 피해자 1세대 정원술 씨 인터뷰 Q.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니혼 히단쿄가 결정되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A. 일본 히단쿄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 소감은 동병상련이라 합니까? 예, 같은 원폭 피해자로서 일본 히단쿄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우리 한국 원폭 피해자들도 그 어렵고 참 고통스러운 생활을 같이했다는 데 대해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발표하니까 일본 피해자에게만 상을 주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의 원폭 피해자에 대해서 상을 주는 것이다 해서 한없이 기쁘고 좋았죠. Q. 이번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여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게 참 오래전 역사가 있습니다. 저게 1979년도부터... 아, 그 계기가 된 것은 일본 히단쿄하고 오래전부터 1994년 8월 6일 한국 원폭 피해자 추도식에 전 회장이신 신영수 씨가 초대를 했어요. 그때부터 매년 우리 추도식에 참여하고, 또 우리가 저기 의료비라든가 치료비 관계, 또 저기 건강 관리 수당 관계, 이것을 전부 소송을 하면서 우리가 일본에서 받아냈거든요. 그 소송 과정에서 일본 히단쿄에서 우리를 갖다가 지원도 많이, 금전적인 경제적인 지원도 하고, 인적 동원도 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한테 도움을 많이 줘가지고 현재까지 우리 진료 수당이라든가 건강 관리 수당, 우리 인권이 많이 향상됐죠. 오래전부터 그런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단체입니다. 경제적으로도, 법률 지식적으로도 참 여러 가지 도움을 줘서 저희가 승소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줬죠. 그래서 함께 초청이 되어 가게 된 겁니다. Q. 시상식에 참여하시면서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A. 제가 그 시상식에 가보니까 일반 평화상 시상식하고 다른 거는 하나도 없고 그냥 각국 대사님들도 참석을 한 것 같더라고요. 우리나라 서민정 대사님(주노르웨이 대사)도 그날 참석해가지고 식을 마치고 나오면서 인사도 하고 사진 촬영도 하고 이랬습니다. 가서 뭐 특별하게 축하라든가 축사라든가 이런 건 없었고 단 시상식에 참여를 한 거죠. 참여를 했는데 거기에서 느낀 것은 참 '평화다' 하는 생각이 들고, 한국에서 멀리 와 북유럽 노르웨이에서 일본 피폭자라든가 현지 주민 외국인, 특별히 보니까 일본 고등학생하고 노르웨이 고등학생하고 우리 원폭 피해자에 대한 증언을 듣고자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서 참 세상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고, 저는 또 그것도 보았습니다. 보았고, 노벨 시상식을 보면서 전쟁은 없어야 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공존하면서 화해하면서 살아가야 안 되겠나 하는 그런 생각이 머리에 계속 남고 있습니다. Q. 협회를 이끌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제가 70살까지만 해도 원폭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고 이랬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70이 되고 보니까 우리 1세대 사람들이 자꾸 사라져 가고 없어져 가니까 저도 이제 이런 사람을 위해서 협회에서 한번 일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어서... 70이 넘어서 2017년도인가부터 협회에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Q. 본인의 사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저는 일본에서 2살 때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만 있지 직접적인 경험은 없었습니다. 제 부친도 보면은 기관지 계통이라든가 특별히 호흡기 계통이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래가지고 계속 시름시름 하시다가 60이 안 돼서 세상을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한번 모시고 가자 싶어도, 옛날에 참 못 살면서도 식구는 많았습니다. 제가 장자입니다. 장자 생활에 지장이 줄까 싶어서 병원에 한번 못 모셔 왔어요. 그게 참 안타깝고, 또 모친은 원폭 떨어지는 날 그 섬광 번쩍거리는 그 불빛하고 그 굉음에 청각을 잃었어요. 청각을 잃어가지고 청각 2급 장애로서 계속 생활을 해왔고... 저도 그렇습니다. 직장에 있을 때 계속 시름시름 몸이 안 좋고. 백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지고 빈혈 현상이 있다 해서 어지럼증을 많이 느껴서 오래 직장생활을 못 했죠. 그래가지고 직장을 그만두고 2005년도인가 원폭 수첩을 제가 받았습니다. Q. 부모님들께서 겪으셨던 원폭 피해 당일의 상황에 대해서 들으신 바가 있으실까요? A. 그날 이제 막 불빛이 번쩍하면서 굉음이 확 울리더라. 그래서 모친은 청각을 잃은 것 같아요. 부친께서는 군수 공장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늦게 나가셔서 그 당시에 집에 계셨기 때문에 피해를 모면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집에 있었습니다. 그때가 채 2살이 안 됐을 때였습니다. Q. 한국 정부의 원폭 피해자 지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A. 한국 정부는 무조건 무관심이죠. 나 몰라라는 식이죠. 지금도 그렇습니다. 원폭 피해자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없고, 우리가 참 많은 노력에 의해가지고 평화공원 조성을 하기 위해서 당초 566억 원의 예산으로 추모공원을 만들려고 했는데... 용역 결과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래가지고 보사부(구 보건사회부, 현 보건복지부)에서 내용을 검토하니까 313억 정도를 가지고 추모공원을 하면 어떻겠느냐 하고. 이제 그 기획재정부입니까? 기획재정부에 가니까 100억 이하로 사업을 하라 해가지고 최종 결정 난 것이 현재 59억인가 이렇게 돼 있는데... 이것도 지방비 50%, 국비 50% 해가지고 추진될지 안 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푸대접하고 우리 회원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어요. 혜택은 예를 들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월 5만 원의 요양생활수당을 줍니다. 서울이나 인천, 경기, 부산같이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는 조례를 만들어 가지고 지원을 하고 있는데 제주, 세종, 강원, 충남 이런 데는 그런 사람이 몇 명 안 사니까 지금 혜택을 못 받고 있습니다. 5만 원이요. 사람만 하면 한 열몇 명 이렇게 되는 거 그것마저도 지금 이제 지원을 안 해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협회 운영비 지원에 대해서 공문을 올려도 답도 없고. 해준다는 이런 말도 없고. 공문을 올렸으면 답이 있어야 될 텐데... 아무런, 일절 답이 없어요. 이렇게 무응답입니다. 우리 원폭 회원들, 나이 많은 사람이 데모할 수도 없고 공문을... 어쨌든 간에 우리 원폭 회원에 대해서는 무조건 무응답입니다. 크게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크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저기 지방자치단체에서 1인당 5만 원 지원해 주니까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못 받는 그 회원들을 위해서 한 5만 원 정도 지원을 해줘라... 그건 제 생각입니다. (국비로) 50%만 지원해 주면, 얼마든지면 우리가 지방에 가서 (지방비를) 요구하겠고 이 운영비에 대해서도 또 몇 번 이야기하고 이래도 해준다, 안 해준다 일절 답이 없어요. 안 해주면 안 해준다는 답이 있어야 되는데 안 해준다는 답도 없고 해준다는 답도 없고.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Q. 현재 원폭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A. 현재 살아가는... 현재 이제 사시는 분들은 일본에서 의료비가 나오고 또 건강 관리 수당이 나오니까 그런대로 아프면 치료를 받기 때문에 살아갑니다. 살아가는데, 이제 2세들이 조금 문제가 돼요. 왜 그러냐 하면 2세들은 빈곤하고... 제때 치료를 안 받으면 병이 발생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병이 났을 때 치료 안 받으면 병이 악화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내 세대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다음 세대까지 물려주고 있다. 그에 대한 정부 대책이 서야 된다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 보건부에서 예산 받아서 대학교에서 유전체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원폭 피해자에 대한 유전체 조사를, 1년에 5억씩 들여서 25억 원으로 전체 조사를 합니다. 하려고 하면, 원폭을 당한 즉시 하든지 안 그러면 50년 전이나. 지금 원폭 80년이나 지났는데, 82년까지 1천653명 정도만 살고 다 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건강한 사람만 80세까지 살지, 그 이전에 다 세상을 버린 사람... 지금에 와가지고 유전체 분석을 해서 뭐 할 거냐 이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사항은 지금 하나도 안 들어주고 있어요. 추모공원이라든가, 지방자치단체에서 돈 5만 원 주는 그걸 갖다가 50% 지원해달라고 해도, 협회 운영비 이런 걸 몇 번 요구를 해도 아무런 답도 없습니다. 답도 없고. 안 해준다면 안 해준다고 답해버리면 속이 다 시원할 텐데, 아무런 답이 없으니까 답답한 그런 심정입니다. Q. 원폭 피해자 1세분들 중 현재 생존자분들의 상황은 어떤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저희 합천에 있는 복지관에 와서 한번 보시면 지금 한 60명이 삽니다. 보면은 아무런 낙이 없어요. 낙이 없고 그냥 그냥 연명하는, 노쇠한 삶을 살고 있는 그런 현상입니다. 아무런 낙이 없어요. 일찍 치료를 해가지고 정부에서 도움을 줬으면 그래도 인간다운 삶을 살았을 텐데. 지금 80이 지나니까 이게 아주 고통 속에서 살다 보니까. 일본에서 치료를 받고 건강 관리 수당이 나오니까 그런 연명은 합니다. 연명은 하는데 삶의 활력이 없어요. 그걸 참 바라봤을 때 참 안타깝습니다. 제가 노벨평화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그냥 멍하게 쳐다보시고... 노벨평화상이 어떤 것인지 뭐 한두 사람만 아는 것이지 그 외 사람은 거의 모르는 그런 것도 안타깝죠. 못 살고, 교육의 기회를 못 받았으니까 노벨평화상 자체도 잘 모르시는 것이죠. 너무 안타깝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LA 대형 산불 통제불능 확산 중…최소 5명 사망, 수만 명 대피
등록일2025.01.09
▲ 캘리포니아주 이튼서 발생한 산불로 불에 타는 민가 미국 서부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 해안가에서 시작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첫 산불이 돌풍을 타고 번지는 가운데 추가로 최소 3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다른 산불까지 겹치면서 대응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바람을 탄 불씨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지역에서 지역으로, 건물에서 건물로 불을 옮기는 와중에 소방당국은 인력은 물론 소방용수마저 부족해 진화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8일(현지시간) AP통신과 CNN,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LA 산불로 현재까지 최소 5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전날 오전 LA 해안가 부촌 지역인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최근 이 일대에서 불고 있는 국지성 돌풍 '샌타 애나'로 인해 통제 불능 수준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7일 밤 캘리포니아주 이튼과 허스트에 이어 이날 아침 우들리에서도 각각 산불이 나면서 LA와 그 주변 지역에는 모두 4건의 대형 산불이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이날 저녁까지 집계에 따르면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만 임야 등 1만 5천 에이커(약 60㎢)가 불에 탔고, 3만 7천여 명이 대피했습니다.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튼 산불로는 1만 600에이커(약 43㎢)가 소실됐고 5만 2천여 명에 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허스트 화재의 범위는 505에이커(약 2㎢), 우들리는 30에이커(약 0.12㎢) 정도로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지만 강풍을 타고 세를 키우고 있습니다. 밤 사이 1천 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됐고, 150만 가구 이상에 전력 공급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NN 집계에 따르면 이번 LA 카운티 대화재로 인한 대피령 적용 인구는 현재까지 15만 5천 명에 이릅니다. 재산 피해 규모도 520억 달러(약 75조 9천억 원)에서 570억 달러(약 83조 2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블룸버그통신은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간밤에 어둠과 강풍 여파로 진화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상황이라, 정확한 피해 규모가 어디까지 불어날지는 가늠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AP통신은 주택 500여 채가 소실됐던 1961년 벨에어 화재를 넘어서 60여 년 만에 LA 역사상 최악의 화재가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타오르는 불씨들이 마치 반딧불이 떼처럼 방향성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와중에 짙은 연기가 도시의 낮과 밤을 뒤바꿔 놓은 모습이라고 NYT는 현지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현재 LA카운티의 진화율은 0%에 머물고 있습니다. 1천400여 명의 소방수들이 투입돼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화재의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앤서니 마론 LA카운티 소방서장은 1∼2건의 대형 산불에는 대비가 돼 있었지만 4건에는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며 진화 인력 부족을 호소했습니다. 소방용수 부족은 진화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마크 페스트렐라 LA카운티 공공사업국장은 다수의 소화전에서 몇 시간 동안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은 시스템이 버티기 어렵다 고 전했습니다. 이에 당국은 주민들에게 물 사용을 제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소방 인력을 지원하기 위해 주 방위군을 투입했습니다. 때마침 LA를 방문하던 중 이날 뉴섬 지사와 통화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진화에 필요한 연방 정부 차원의 지원을 제공했다 며 행정부는 대응 지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할 것 이라고 밝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나는 퍼시픽 팰리세이즈 주민들과 LA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경계심을 갖고, 지역 당국자들의 말을 들을 것을 촉구한다 고 덧붙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 재난관리청(FEMA) 재난 지원금 지급을 승인, 현재 연방 소방 장비와 인력이 LA 일대 화재 현장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당국은 화재 피해를 급속도로 확산시킨 강풍이 다소 수그러진 점에서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미 기상청(NWS)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 최고시속 100마일(약 161㎞)에 이르던 풍속은 8일 오후에는 시속 50∼60마일(약 80∼96㎞) 수준으로 누그러졌습니다. 이에 강풍으로 이륙하지 못하던 헬리콥터와 비행기도 소방 활동에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