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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U-20 축구, 아시안컵 조 1위 놓고 내일 '남북 대결'
등록일2026.04.07
▲ 김민서가 요르단과의 AFC U-20 여자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드리블하는 모습. 한국 20세 이하(U-20) 여자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 조 1위 자리를 놓고 '디펜딩 챔피언' 북한과 맞붙습니다. 박윤정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우리 시간으로 내일(8일) 오후 10시 태국 빠툼타니의 빠툼타니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U-20 여자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북한과 격돌합니다. 이미 2연승으로 8강 진출을 확정 지은 두 팀이 조 1위 자리를 놓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게 됐습니다. 한국은 지난 2일 우즈베키스탄과 첫 경기에서 진혜린, 조헤영(이상 고려대)의 연속골로 2대 0으로 승리한 뒤 5일 요르단을 상대로 진혜린의 선제골과 이하은(울산과학대)의 결승 골을 엮어 2대 1로 이겼습니다. 북한은 요르단을 8대 0, 우즈베키스탄을 6대 0으로 대파했습니다. 두 팀이 나란히 승점 6을 쌓은 가운데 북한이 골 득실에 앞서 조 1위에 올라 있습니다. 2년 간격으로 열리는 AFC U-20 여자 아시안컵은 이전까지 8개국이 참가했지만 이번 대회부터 12개국으로 규모가 확대됐습니다. 4개국씩 3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른 뒤 각 조 1, 2위 6개 팀에 3위 중 상위 2개 팀을 더해 총 8개 팀이 토너먼트로 우승국을 가립니다. 이번 대회는 오는 9월 폴란드에서 개최되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겸합니다. 이번 대회 상위 4개국이 월드컵 출전권을 손에 쥡니다. 우리나라는 2002년 시작한 이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2004, 2013년)을 차지했습니다. 직전 2024년 우즈베키스탄 대회에서는 4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준결승 상대가 북한이었는데 3대 0으로 완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북한도 2007년과 2024년, 두 번 정상에 올랐습니다. U-20 여자 대표팀 간 남북 대결에서 한국은 직전 대회 준결승전 패배를 포함해 1승 6패로 열세입니다. 2013년 중국 대회(당시는 AFC U-19 여자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 준결승에서 북한을 만나 이금민, 장슬기의 득점으로 2대 1로 이긴 게 유일한 승리입니다. 게다가 이번 북한 대표팀은 2년 전 세계를 제패했던 멤버들이 주축을 이룹니다. 북한은 2024년 AFC U-17 여자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뒤 그해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린 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 8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U-17 아시안컵에서 6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한 데 이어 월드컵에서는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골든볼을 품었던 미드필더 전일청을 비롯해 골키퍼 박주경, 미드필더 리국향, 수비수 정복영 등 당시 우승 주역들이 이번 대회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요르단전에서 슈팅 수 44-0(유효슈팅 수 20-0),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슈팅 수 38-1(유효슈팅 수 18-0)을 기록하는 등 이번 대회에서도 압도적 기량을 보여줬습니다. 2년 전 우즈베키스탄 대회에서 북한에 완패했을 때도 한국 대표팀을 지휘했던 박윤정 감독은 북한과 재대결을 앞두고 AFC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힘든 경기가 될 것 이라면서 북한은 강팀이고, 그들의 정신력은 남다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강점 이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우리는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계속하면서 동시에 요르단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드러난 약점에 집중해야 한다 고 밝혔습니다. 이어 마무리 슈팅을 보완해야 하고 포백 수비는 우리가 공격할 때 상대 역습에 더 잘 대비해야 한다 고 덧붙였습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연합뉴스)
[인터뷰] 김부겸 홍준표 지지, 짐 무거워져…민주, 교만하면 험지 후보들에 피해
등록일2026.04.02
[주영진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 뉴스브리핑&> 월~금 (14:00~15:2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김부겸 전 국무총리 -------------------------------------------- ● 김부겸 전 국무총리 인터뷰 김부겸 / 전 국무총리 선친, 생전에 꽁초 주워가며 선거운동 도와 대구시장 출마 정말 피하고 싶었다 제가 다시 출마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해 고 이해찬 전 총리 상가에서 선배들이 출마 압박 대구, 심각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 국힘, 30년 동안 대구에서 묻지마 지지 받아와 대구, 15년 만에 인구 15만 명 줄어 몰락 직전인 소상공인에 체계적 지원해야 AI 엮어서 청년세대 위한 일자리 만들어야 공항 이전에 국가 부담 몫 대폭 상향해야 당 지도부가 대구 위해 최선 다하겠다 약속 홍준표, 전임 시장으로 대구 잘 알고 노하우 있어 만나고 싶어 홍준표 지지 선언으로 더 많은 책임감 느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보면서 안주하는 데 부끄러움 느껴 2014년 대구시장 선거, 낙선했지만 지역구에선 이겨 대구 시민들이 마음 열어주시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 대구서 출마 선언 때 만난 시민들 절박해 보여 시민들께 받은 문자 메시지 보며 짐 무겁구나 느껴 한국 정치, 보수·진보 양 날개로 같이 가야 보수, 회초리 맞아야 건강한 보수로 다시 설 것 한국 정치 바꾸는 심정으로 국힘 혼내달라 요청한 것 가족들에게 출마 동의 받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 -------------------------------------------- ▷ 주영진 / 앵커 :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추경 예산안 시정연설 마무리됐고요. 이제 이번 지방선거 현재 시점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 가운데 한 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안녕하십니까. ▷ 주영진 / 앵커 :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대구에서 출마 선언하고 계속해서 언론 인터뷰 좀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어제가 마침 부친 또 기일이어서 어제 올라왔습니다. 올라와서 또 그동안 약속했던 언론 인터뷰 정리하고 내일 저녁쯤에 내려가야 될 것 같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내일 저녁쯤에.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내려가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제 아마 표밭을 누벼야 할 것 같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선친 기일이었다라고 아까 말씀을 하시는데 그게 어제 아마 SNS에 또 사진이 올라와서 많은 분들이 좀 보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번에 또 선친기일은 그 어느 때보다 좀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저 개인적으로야 참 부친에 대한 여러 가지 고마움. 또 여러 가지 제가 부족했던 거 이런 것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지금 사진에 나가고 있는, 화면에 나가고 있는 저 사진 속 모습이.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네. 제 선거운동을 도와주면서 특별히 드러난 게 아니라 그냥 어디 가면 마을에 꽁초 줍고 휴지 줍고 그러면서 한, 두 달을 계속 보내는 거예요. 그러다 선거 때 이제 아들 말하자면 그거를 매고 어깨띠를 매고 그러니까 주변 분들이 말하자면 신뢰를 하실 거 아닙니까. 저 할아버지 아 그런 분이었구나. 그런 저런 걸로 해서 제가 정치하는 지금까지 한 20여 년간 아버님이 늘 저의 후견자로서 계셨죠. ▷ 주영진 / 앵커 : 저는 그 부분이 눈에 들어오던데 군복을 입고 또 도와주기 시작하셨는데 군인 출신이지 않으셨습니까.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예비역 공군 중령이셨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내 아들 빨갱이 아니다. 이런 대한민국 군인의 아들이다. '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네 제가 12년 전에 대구에서 시장 출마를 할 때 출마를 하고 바로 대구 현충원에 참배를 하는데 아버님께서 예비역의 군복을 입고 같이 가주셨죠. ▷ 주영진 / 앵커 : 군복을 입고. 알겠습니다. 대구시장에 왜 출마를 하기로 했느냐라고 하는 질문은 워낙 많이 받으셨고 이미 출마 선언에도 담겨는 있었습니다마는 이번에 대구시장, 사실상 정계를 떠나 있다시피 했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다시 정치 현장으로 돌아와서 대구시장에 출마하겠다. 그것도 민주당 후보로. 이건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른 어떤 결단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정말 피하고 싶었죠. 또 도저히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다. 왜, 이미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간 셈인데 한 3년 가까이. 물론 중간에 당의 부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의 선대위원장을 한다든가 이런 역할은 있었지만 제가 다시 출마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죠. 그런 데다가 또다시 어떤 대구시장이라는 공직의 무게를 생각해 볼 때 그건 오히려 저희보다는 조금 젊은 세대들이 조금 새로운, 다가오는 어떤 미래의 기술, 문명 이런 데 대한 이해도가 높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게 좋다. 또 마침 또 민주당만으로 하더라도 대구시장 후보로 홍의락 전 의원이 열심히 하고 계셨고 이래서 사실은 이건 뭐 내 몫이 아니다라고 계속 부인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참 쪼이고 쪼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제 인생에. 재야라든가 이런 제 인생의 선배님들이 고 이해찬 총리 이제 장례식 하는데 거기에 오셔서 제가 이제 상주 노릇을 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거기 오셔서 그렇게 혼을 내시는 거예요. 같이 고생하던 동지들이 저렇게 한번 해보겠다고 몸부림치는데 자네만 편하게 이 상황을 넘어가겠다는 게 그게 말이 되냐. 아니, 누구나 나가도 쉽게 될 것 같다면 왜 자네를 부르겠느냐. 어려우니까, 다들 힘들어하니까 옆에서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뛰어주는 그런 결단을 내리라고 압박을 계속하셔서 이게 참 피하기 어렵겠구나 하는데 이제 그때부터 그동안 띄엄띄엄하던 당에서 막 계속 쪼아대는 거예요. 그래서 참 이렇게까지 여기까지 왔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국민의힘의 그 대구시장 후보 경선 둘러싼 내부 잡음이라고 할까요, 혼란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상황들도 혹시 출마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국민의힘이 여전히 대구 시민을 누가 후보가 되든 찍어준다라고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또 김부겸 전 총리의 출마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글쎄 뭐 일부 그렇게 또 평가하시는 분들이 있던데 주 앵커님 잘 알다시피 제가 뭐 정치를 그렇게 잔계산을 하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그것보다는 제 스스로가 어떤 결단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죠. 일단 하고 나면 상대편이 누가 나오든 구도가 어떻게 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뭐 중간에 한다고 그랬다가 그러면 불리하면 또 안 한다 이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한 번 하겠다고 했으면 적어도 대구 시민과 굳은 약속을 지키도록 제 몸을 던져야 한다라는 그런 의무감이 강했죠. ▷ 주영진 / 앵커 : 이번에 대구 시민에게 가장 진정성을 갖고 호소할 핵심적인 주제, 이게 뭐가 될까요? 이번에 민주당 한 번 찍어 주이소 이게 전부는 아닐 것 같다는 말이죠.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어느 도시든 지금 현재 여러 가지 한국 경제 사정 자체가 녹록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대구가 너무 심각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진단을 대구를 이대로 내팽개치면 저절로 시간이 지나면 잘 되느냐. 저는 그건 아니라고 봤거든요. 무언가 산업에 큰 전환이 일어나고 그동안 대구가 잘하던 자원들을 어떻게든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나 이런 데 대비할 수 있도록 뭔가를 도와줘야 되고 그리고 대구시의 힘으로만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인프라, 공항이라든가 이런 거는 국가가 도와줘야 되고 이런 게 이제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점에 있어서 지금 집권 여당이니까 민주당이. 그분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나눌 수, 또 함께 져야 되죠. 그런 측면이 강했던 것 같고 또 국민의힘이 조금 저로서는 화가 나는 게 그동안 사실은 한 30년 동안 '묻지마' 지지를 받았잖아요. 그런데 그 결과가 이렇게 되고, 또 무엇보다도 대구 시민들의 자제분들, 자식들 아들, 딸들이 임금 수준이 낮고 또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 없고 하니까 이들이 매년 몇천 명씩 떠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2011년에 처음 대구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보다 지금 인구가 한 15만 이상이 줄었습니다. 15년 만에. ▷ 주영진 / 앵커 : 오히려. 15년이 지났는데.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지났는데. 이 이야기는 뭔가 저도 어떤 책임을 느껴야죠. 그리고 또 어떻게든 도시가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는 데에 저도 기여를 해야 한다는 그런 의무감도 들었고요. ▷ 주영진 / 앵커 : 성장할 때 김부겸 전 총리가 대구에서 성장할 때 대구는 자부심의 대상이었는데.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시 우리가 제일 수출이 제일 앞서갔던 게 섬유업이죠. ▷ 주영진 / 앵커 : 섬유였죠.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그리고 거기에는 정말 대한민국 최고의 일류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방직, 제일모직 이런 엄청난 정도의 있었죠. 생산시설이. 거기에는 또 일하는 또 많은, 정말 젊은 노동자들이 있었고 그리고 도시가 늘 활기 넘쳤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이제 저희 세대들이 마지막 기억하고 그 뒤로 이제 90년대 이후에 자라난 세대들은 그런 기억 자체가 없는 거예요. 오늘 태어나고 보니까 '우리에게는 좋은,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좋은 직장이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려운 조건에 주거 환경도 힘들고 한 이 수도권으로 또 올라와야 되잖아요. 그 청춘들한테 그 아들 딸들한테 우리 부모로서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되는 거 아니냐. 책임을 느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런 호소를 드린 겁니다. ▷ 주영진 / 앵커 : 출마 결심하고 이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공약이나 약속들을 준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은 듭니다마는 그래도 이 시점에서 내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대구 시민에게 이것만큼은 대구 시민과 대구 경제를 위해서 이것만큼 내가 꼭 하겠다라고 생각하신 부분은 있을 것 같거든요. 어떤 부분 한번 얘기하실 수 있겠습니까.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대구뿐 아니라 다른 지역 공통적으로 있는 지금 현재 거의 정말 몰락해 가기 직전인 자영업, 이제 소상공인에 대한 어떤 형태로든지 좀 체계적 지원이 마련돼야 되고 이건 뭐 대구시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만 국가에 아까 대통령 시정연설에도 나왔습니다만 그런 국가의 지원하고 이 프로그램을 엮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그러면 결국은 이 젊은 아이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미래에 대한 이들이 일할 만한 일자리를 만드는 게 그만큼 중요한 게 없잖아요. 그것이 대구가 지금 잘하고 있는 기계공업, 로봇 산업 이런 등등과 또 메디컬. 여기에다가 인공지능이라는 어떤 새로운 시대의 어떤 기술 문명을 엮어야 되거든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AX, 인공지능으로 가는 대전환이라고 이렇게 표현하던데 그렇게 해서 전통적인 제조업이 이렇게 업그레이드 돼서 계속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 그다음에는 이건 조금 힘든 겁니다마는 결국은 인프라입니다. ▷ 주영진 / 앵커 : 인프라.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이 대구시 스스로가 또 혹은 대구권에 있는 여러 기업들이 정말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인프라가 있었는데 그게 공항이거든요. 그런데 그 공항을 그냥 군 공항 이전이라는 작은 그런 차원에서 보니까 기부 대 양여. 대구시 보고 다 책임지라는데 대구시가 1년 재정이 11조인데 공항 이전하는 비용이 15조 원이 넘습니다. 그걸 어떻게 대구시 책임집니까. 거기에서 국가가 부담할 몫을 지금보다는 대폭 상향을 해서 적어도 이 일이 쭉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야 되고 그런 것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결심과 지원, 이런 것들이 우선 제일 시급한 것 같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이번에 대구시장에 당선이 돼서 임기를 하면은 아마도 이재명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거의.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같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같이 한다. 그래서 여당 후보인 김부겸 후보가 만약에 대구시장이 된다면 지금 약속했던 부분들을 힘 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뭔가 좀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물론 당연하죠. 아무래도 여당하고 또 정부를 설득하는 데 좀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다가 좋든 싫든 당 지도부도 그렇게 이 지역을 소외된 지역으로 남겨두지 않고 자기들도 정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셨으니까 이제 저는 그걸 믿고 약속을 해야죠. ▷ 주영진 / 앵커 : 정청래 대표가 다 해드림 센터장이라도 하고 싶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데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그거는 정 대표께서 또 의외로 대구시장을 통해서 올라온 대구의 이제 현안에 대해서 공부가 잘 되어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문제, 이런 문제는 이렇게 우리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정당이니까 언제까지 뭘 어떻게 하고 이렇게는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후보가 약속을 하면 뒷받침을 하겠다는 그런 어떤 굳은 결의는 보여주셨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조금 전에 군공항 이전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군공항 이전과 관련해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얼마 전에 SNS에 글을 썼었어요. 이 군공항 이전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과연 어떤 후보가 대구시장이 돼야 하는가. 여당 후보. 여당이 또 정부가 도와줘야 되는 일 아닌가 해서 김부겸 전 총리를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언론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썼는데 그전까지는 홍준표 전 시장이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고 얘기하다가 오늘 얘기 들으셨죠?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SNS에 올린 글을 보았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SNS에 홍준표 전 시장이 올린 글 한번 보겠습니다.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언급한 겁니다.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했다고 봐주시면. 대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을 떠나 정치권이 아닌 역량 있는 행정가를 뽑아야 합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김부겸이라는 사람에 대한 지지 선언입니다. 김부겸 전 총리 어떻습니까? 이게 만나겠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만나야할 것 같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만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지 선언을 했어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그래서 만나지는 않되 내가 자네를 도와주기는 하겠네. 뭐 이런 뜻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둘은 오래된, 홍 대표께서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부터 모래시계 검사 시대 때부터 우리가 세교가 있고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제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지금 홍 시장처럼 추진력이 강하신 분이 분명히 대구시정에서 중점을 둔, 역점을 둔 사업이 있을 것이고 중간에 좌절된 사업이 있을 것이고 또 계속 이어가야 할 어떤 그런 잠재력이 있는 사업이 있을 거라고요. 이걸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알지 않겠습니까. 그건 또 일반 실무자들이 보는 안목하고 다른 노하우가 있을 거거든요. 그리고 그걸 조금 듣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아마 직접 만나기보다도 우선 저렇게 저를 도와주신 것 같은데 조금 여러 가지로 제 책임이 무겁네요. ▷ 주영진 / 앵커 : 홍준표 전 시장의 지지 선언이 김부겸 전 총리에게 어쨌든 현 상황에서 큰 힘이 되고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면 한편으로 더 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구 시민을 만나고 대하고 해야겠다는 생각도 또 같이 드실 것 같아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당연히 들죠. 당연히 들죠. 어쨌든 현재는 이제, 진영이라고 제가 표현하면 죄송합니다만, 대구시장의 역할은 결국은 정치 싸움이 아니고 대구라는 이 공동체의 어떤 살림을 어떻게 끌고 갈 거냐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규정을 하시면서 저분이나 저는 정치를 한 사람이지만 우리는 둘 다 행정을 해 본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대구시를 살리는 데 헌신하라는, 어찌 보면 저한테 대한 일종의 충고이기도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더 제 짐이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김부겸 전 총리 하면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국민의힘 전신 계열 정당에 있다가 열린우리당 시절인가요? 그때 같이.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열린우리당을 만들 때. 원래 제가 김대중, 이기택 두 분 대표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다가. ▷ 주영진 / 앵커 : 그렇죠.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그러니까 우리 김대중 총재께서 그 민주당을 가르시는 바람에. ▷ 주영진 / 앵커 : 새정치국민회의 만들 때인가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우리 그걸 만드시는 바람에 우리가 이제 결국은 민주당으로 잠시 갈라졌다가 다시 됐는데 그렇다고 해도 제가 처음 국회의원을 하게 된 것은 바로 한나라당. ▷ 주영진 / 앵커 : 그렇죠.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쳐졌던 한나라당에서 제가 처음 국회의원이 됐으니까 늘 어떤 그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그러나 덕분에 제가 혼도 많이 났잖아요. ▷ 주영진 / 앵커 : 그러니까요. 제가 이 말씀드리려고 하는 게 국민의힘 전신 계열 정당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라고 한다면 대구에서 정치를 한다고 하는 것은 공천만 받으면 지금까지 김부겸 전 총리가 이번에도 얘기한 것처럼 쉽게 될 수 있는 것인데 이 민주당 소속, 민주당에 몸을 담은 후보로서 대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고 대구시장 선거에 도전한다고 하는 것은 이게 완전히 차원이 다르잖아요. 경기도 군포라고 하는 지역에서 3선 의원하고 대구로 가겠다고 하는 이 결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데 어떻습니까? 지금 와서 다시 돌이켜보면 후회가 전혀 안 된다, 잘했다?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결국 저희들이 김대중 총재님이 가시고 남아 있었던 사람들이 우리 주로 '통추' 국민통합추진위원회라고 있었는데 김원기 전 의장님, 노무현, 제정구, 여기도 가끔 나오시는. ▷ 주영진 / 앵커 : 유인태.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김정길, 이철 이런 선배들이 계셨잖아요. 그분들하고 어려웠지만, 그때는 우리 정치를 한번 우리가 바로 잡아보겠다는 그런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 그 선배들이 저를 아껴주시고 저도 존경하고 사랑했거든요. 그 노무현이라는 분이 그렇게 우리 한국 정치의 큰 벽을 넘기 위해서 자기 몸을 던지는 걸 봤기 때문에 어느 순간 3선 의원이 됐지만, 좀 부끄럽더라고요. 현실에 자꾸 안주하고 하는 모습. 그래서 한번 새로운 정치를 시작한다는, 또 선배들한테 빚을 갚는다. 그때 노 대통령 돌아가시고 한 2년 지났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제 시작을 했는데 그때는 50대니까 겁 없이 시작했던 것 같고요. 지금 그렇다면 못할 것 같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저희가 그래서 김부겸 전 총리의 대구에 대한 도전. 도전이라고 표현을 할 수밖에 없겠죠. 그동안 어떤 선거에 출마했었고 그래서 과연 당선이 된 적이 있었는지 한번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상기시켜드리겠습니다. 2012년 총선에 이제 도전을 했는데 낙선했습니다. 수성갑에서. 보면 낙선할 때도 김부겸 전 총리의 득표율은 40%대는 항상 기록을 했어요. 2014년 지방선거, 꼭 12년 전에 대구시장 선거죠. 그때도 도전했습니다만, 권영진 후보에게 그때 지신 거죠. 지금 권영진 의원. 40.33% 득표했고 그로부터 2년 뒤에 대구 수성갑 선거에서는 대구 시민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62.3%면 엄청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그로부터 4년 뒤 총선에서는 대구 수성갑에서는 다시 40% 조금 못 미치는 39.29%의 득표율로 낙선했고 그 당시 상대가 주호영 의원이죠? 저 기록을 보니까, 어떻습니까. 그 한순간 한순간이 다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말이죠. 어떤 선거가, 당선됐을 때 선거가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가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선거들이 또 다 기억에 남을까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12년 전 두 번째 선거 저는 떨어졌지만 저게 40.33%인가 하는 게 대구시 전체에서 얻은 표예요. ▷ 주영진 / 앵커 : 그렇죠, 한 지역구가 아니라.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아니고.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제 해당 지역구인 수성갑에서는 제가 이겼어요. ▷ 주영진 / 앵커 : 오, 그때도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그때 그래서 이건 역시 정성을 기울이고 호소드리면 마음을 열어주시는구나. 물론 그러다가 이제 선거 얼마 안 두고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오시는 바람에 이건 뭐 진짜로 양쪽의 큰 혈투가 되었죠. 결국, 대구 시민들께서 결국 저의 눈물겨운 노력 자체를 인정해 주시더라고요. 저도 이번에 내려가면서 힘들겠지만, 대구 시민들이 마음을 열어주시면, 열어주시면 이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늘 마치 무슨 큰 빚을 진 것처럼 국민의힘을 그동안 감싸주고 어지간한 허물은 다 덮어주고 그러셨잖아요. 그런데 그 덕분에 대구는 지역내총생산이 지금 전국 꼴찌입니다. 그것도 30년째 꼴찌니까 그러다 보니까 우리 젊은 아이들한테 이런 엄청난 부담을 준 거거든요. ▷ 주영진 / 앵커 : 제가 성장할 때만 해도 대구는 대한민국 3대 도시였는데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3대 도시일 뿐만 아니라 역내 총생산액 자체가 항상 상위권이었죠. 그게 조금씩 조금씩 추락해서 이렇게 됐으니까 그러면 이번에도 이것을 한번 살려보자. 그래서 이번에는 김 모라는 친구를 한번 써먹어 보시자. 그렇게 호소를 드린 거고 그걸 대구 시민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줄지 그건 이제 해봐야 알겠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출마 선언 역대 네번의 도전이 있었는데 출마 선언할 때마다 그 분위기라는 게 감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첫 도전할 때 분위기, 두 번째 도전할 때 분위기 또 당선됐을 때 분위기, 그다음에 낙선됐을 때 분위기. 이번에 출마 선언 또 2·28 기념공원에서 하셨는데 비가 오고 그때 어땠습니까?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글쎄. 제가 이제 이번에는 워낙 막 급작스럽게 사전 준비가 부족한 가운데서 시작됐기 때문에 분위기를 다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날 그 비가 오는데도 오신 분들 뭐 등등을 보니까 좀 절박하기는 절박하신 것 같아요. 화도 나 계시고. 그리고 제가 이제 그날 제 핸드폰 모바일 폰을 번호를. ▷ 주영진 / 앵커 : 기사 봤습니다.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그냥 엄청난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는데 어떤 것들은 정말 못 읽겠어요. 그 정도로 절절한 이야기들. 그래 얼마나 그동안 답답하셨으면 이런 작은 계기에 이렇게 분출해 주실까. 그래서 정말 짐이 무겁구나. 이거야말로 정말 제가 져야 될 짐이라면 단단히 준비하고 해야 되겠다라는 그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 주영진 / 앵커 : 역대 대구에서의 도전, 김부겸의 도전 관련한 저희가 사진들을 한번 준비를 해 봤습니다. 그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기억에 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가 SNS도 찾아보고 그랬는데 이번 이 사진은 말이죠. SNS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좋아하는 분들이 김부겸이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라고 지금 저 사진을 많이 꼽더라고요. 기억나십니까. 누군가, 저게 아마 총선 지원 유세 때 지난해, 지난 총선 지원 유세 때 같다고 하는데.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아 그런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제 번호가, 번호하고 이름이 없는 걸 보니까 제가 지원 유세에 간 것 같아요. 아마 저기 조금 힘든 아마 야채를 놓고 파시는 어느 할머니 앞에서 할머니가 무슨 한 말씀 하는 걸 보고 제가 이렇게 반응한 것 같은데요. ▷ 주영진 / 앵커 : 네 저 사진 많이들 얘기하고 또 그다음 사진도 한번 볼까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이거는 이제 처음 떨어지던 해. ▷ 주영진 / 앵커 : 2012년?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2012년 처음 내려갔을 때. 그때는 정말 그해에 또 유난히 비가 많이 왔어요. 그래서 저래 비를 맞고 유세하는 장면이 많이 찍혔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정말 지금 보니까 많이 젊네요. 14년 전?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저거는 14년 전. ▷ 주영진 / 앵커 : 14년 전, 이제 대구로 다시 돌아가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그때 김부겸 전 총리의 모습이고요. 다음 사진은 아마도 대구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마는 아마 장관 시절 아닐까 싶은데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행안부 장관 시절에 그 당시 우리나라도 지진의 예외 지대가 아니다 그래서 지진 대피 훈련을 서울에 있는 모 여고생들하고 같이 지진 대피 훈련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이런 요령으로 이런 방식으로 신속하게 기존 건물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이런 걸 아마 같이 여고생들하고 같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김부겸 전 총리를 보면 저 사진처럼 좀 둥글둥글하고 원만하기도 하고, 그런데 대구에서 선거할 때 사진을 보면 어쨌든 간에 울컥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고, 때로는 거의 비어 있는 허공을 향해서 유세를 하면서도 '내 말을 한번 들어보이소' 하면서 이렇게 '그대로 매일 똑같은 선택을 해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라고 얘기하는 장면도 제가 봤던 기억이 나거든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사실은 도시 유권자들이 선거에 그렇게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옛날처럼 무슨 유세장에 모인다든가 이런 거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만나요. 만나는 방법은 그분들의 일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아파트 안이란 말이죠. 그 아파트 안에 계시는 분들에게 뭐라고 고함을 쳐서 '이러이러한 생각인데 어떠세요'라고 호소할 수 있는 방법밖에, 이른바 벽치기 유세밖에 없습니다. 물론 뭐 사실은 듣기도 하고 안 듣기도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지만, 그래도 그렇게 몇 번 이제 한 선거구에 한 서너 번 돌 거 아닙니까. 계속 유세차를 타고. 한 세 번째 돌면 '저 양반 또 왔네. 그리고 지난번에 이런 이야기 하던데 오늘은 무슨 소리를 하는가 들어볼까?' 또 그럴 때마다 그 지역의 주요 관심 사항에 대한 제 나름대로 이야기를 할 거 아닙니까? 작은 공약이죠. 그래서 그러면 분명히 변화가 옵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걸 제일 처음 하면 참 싱거워요. 아무도 없잖아요. 심지어 뭐 정말 초등학생 한두 명 이렇게 쳐다보고 있거나 이런 장면도 사진이 가끔 찍히고 그러죠. 그렇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이 정성이 전달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도시에서 출마하는 후보자들한테 저 방법을 많이 권하죠. 참 힘들고 뭐라 그럴까. 좀 씁쓸하더라도 해라. 하다 보면 당신도 모르게 몰입이 되고, 몰입이 되면 분명히 당신의 진정성이 전달이 된다. 그렇게 후배들한테 이야기를 하고 있죠. ▷ 주영진 / 앵커 : 지금 민주당에서 공천장을 받은 건 아니죠, 아직?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다음 주에 내일 제가 공천 심사를 들어가서 면접을 봐야되고요. 아마 다음 주에 주실 것 같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국민의힘 후보가 누가 될지는 아직까지 정해지지는 않았는데, 국민의힘의 공천 과정, 경선 과정, 이번에 출마 선언 때 보니까 국민의힘을 향해서, 대구 시민을 향해서 '왜 저 당이 대구 시민과 대구를 지켜야 하는데, 왜 자꾸 대구와 대구 시민들이 즈그 당을 지켜달라고 하느냐?' 이렇게 상당히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봤거든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그거는 저는 분명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같이 가야 하는 게 맞다. ▷ 주영진 / 앵커 : 그렇죠.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그런데 그러려면 보수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수에 기대해 왔던 애국심, 공정성, 자기희생 내지는 또 지역 발전. 이런 어떤 당당한 어떤 비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최근에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은 거기에서 거리가 좀 멀다. 그렇다면 이번에 혼을 내고 회초리를 쳐야만 이게 건강한 보수가 서고, 그래야 지금 많은 분이 또 '민주당이 너무 힘이 세서 지금 막 폭주를 한다' 이렇게 비판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말하자면 그런 건강한 보수가 서면 진보도 여러 가지 의식을 안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이번에 한번 대구 시민들께서 한국 정치를 바꾸는 그런 심정으로 그 정당한테 혼 좀 내달라. 제가 그렇게 요청드렸던 거죠. ▷ 주영진 / 앵커 : 6년 전 선거를 치르고 그때 아마 떠나면서 도와주셨던 분들에게 했던 이야기가 이번에 아마 출마 선언하기 하루 전에 유튜브에 올리셨던 것 같은데 그 장면 한 번 다시 한번 보고 나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 대목을 많은 분들이 얘기하더라고요. '내 인생에서 가끔씩 엎어진 적은 있지만 쓰러져서 못 일어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라고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국무총리직을 끝내고는 사실상 우리 가족들하고 약속을 했죠.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가자. 우리들한테 가족들끼리 같이 오붓하게 사는 그런 인생의 맛도 보자고 했고. 또 저도 거기 잘 있는데 갑자기 2년 전 총선 때부터 제가 당시 고인이 되신 이해찬 전 총리가 '이 사람아, 자네가 그러면 안 돼'라고 저를 끌고 나가셔서 이제 이해찬, 우리 이재명 대통령, 저, 3인 공동선대위원장을 했었잖아요. 그때 국민들한테 정계를 떠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사실은 나중에는 결과적으로 총선 결과가 좋았지만, 그때는 당이 좀 공천 파동도 있고 이래서 흔들거렸잖아요. 그래서 이해찬 전 총리께서 저를 부르셔서 같이 어려운 고비를 같이 넘자라고 하셔서 그때 제가 이른바 발을 다시 담그기는 했지만, 그러나 제가 직접 이렇게 다시 선수를 뛰리라고는 생각을 안 했었죠. ▷ 주영진 / 앵커 : 대구시장 모든 광역단체장 선거가 그렇습니다만 그곳 자체의 현안과 그 분위기 변수라는 게 있지만, 또 전국 단위에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구시장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그렇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이번에 김관영 전북지사와 관련해서 민주당에서 긴급하게 또 제명 결정을 내렸는데 그 어제 사안을 보면서 하루 종일 뉴스가 나왔어요. 이런저런 걱정도 하시고 생각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결국은 늘 우리 박지원 선배가 이야기를 합니다. 선거와 골프는 머리를 쳐드는 순간 바로 죽는다. ▷ 주영진 / 앵커 : 박 전 의원 만나면 늘 그 이야기를 하시죠.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정말 이제 겸손해야 합니다. 지금 국민들이 고민이 많으실 거예요. 이렇게 좀 한쪽이 무너지는 듯한 보수 정치에 대한 걱정도 있을 거고, 이러다가 민주당이 너무 힘이 세지는 거 아닌가에 대한 또 걱정도 있으실 거예요. 그러려면 끝까지 우리 후보자들이 결국은 뭘 그게 대단한 권력이 아닙니다. 그 지역민의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종의 자기가 정말 봉사하겠다는 그런 어떤 자리잖아요. 그게 무슨 대단한 권력이라고 마치 전부 이른바 거들먹거린다든가 '선거 끝났다. 우리 다 된다. 전국을 휩쓸 것이다' 이런 교만은 국민들이 저희들이 제가 선거도 수십 번 해 봤습니다만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만큼은 제발 그런 좀 촉 빠른 이야기 그리고 국민들 마음에 또 상처를 남기는 이야기 이런 것들은 자제해 달라 호소드리고 싶고. 이런 심정을 한번 정청래 대표도 어제도 이야기를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저도 기회 날 때마다 여러분 지역이 선거가 좀 쉽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조금 거들먹거리거나 교만을 떨면 나머지 어려운 지역에서 지금 말이 뭐 여론조사 의미 없잖아요. 마지막에 가면 또 팽팽하게 서로 간에 그렇게 경쟁을 할 텐데 그런 지역은 전부 피해로 돌아간다. 제발 조심해 달라하고 때만 되면 저도 호소하려고 그래요. ▷ 주영진 / 앵커 : 가족분들은 이번에 적극 선뜻 동의를 했습니까?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힘들었죠. 마지막 고비였는데 정말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또 집사람한테 그렇게 동의를 받는 과정 자체가 쉽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정말, 그게 오히려 정말 힘들었습니다. ▷ 주영진 / 앵커 : 그게 오히려. 어쨌든 동의를 받아낸 거죠? 그러니까 출마 선언을 하셨겠죠.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어차피 저희 내외가 같이 아버님이 사시다 돌아가신 그 집으로. 집이 팔리지는 않았고 그래서. 거기에 또 주소 이전을 했으니까 제가 또다시 애를 먹여야죠. ▷ 주영진 / 앵커 : 알겠습니다. 김부겸의 마지막 도전이 될지 어떨지는 아직까지는 알 길은 없습니다만, 마지막 도전을 앞둔 김부겸 전 총리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찾아주셨는데.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는 오늘 꼭 하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못 했다고 하시는 얘기가 있을까요?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존경하는 우리 대구 시민 여러분, 참 어찌 보면 많은 분들이 기대도 하고 또 그러면서도 말하자면 정계를 떠났던 친구가 왜 돌아오느냐라고 저한테 지적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정말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 여러분들이 키워주신 그런 여러 가지 제 경력들이 마지막으로 한번 쓰임새가 있기를. 어려운 대구 시민 여러분 곁에서 대구를 살리고 대구의 청년들이, 우리의 아들, 딸들이 희망을 갖게 하는 데 저를 꼭 써주십사. 지금은 대구에 꼭 필요한 사람 저 김부겸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 주영진 / 앵커 : 김부겸 전 국무총리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민주당 후보로 김부겸 전 총리와의 인터뷰였고요. 나중에 국민의힘 후보가 확정이 된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도 같은 시간만큼 인터뷰를 해보겠다는 말씀을 여러분께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김 전 총리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김부겸 / 전 국무총리 : 고맙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디지털뉴스부)
90kg 거구의 친부가 행한 짓…이렇게까지 죽여야 했을까 [스프]
등록일2026.03.26
? 스프 핵심요약 90kg 거구의 아버지가 8살 아들을 '복싱하듯' 폭행해 살해하고, 어머니는 이를 방치·묵인한 채 시신을 훼손해 냉동 보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교 측의 신고로 4년 만에 드러난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를 실시해 아동학대 의심 및 행방불명 아동을 추가 발견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현재도 아동학대의 84%는 부모에 의해 자행되고 있으나, 강제 조사 권한 부재 등 제도적 한계가 여전합니다. 1. '살해한 8살 아들' 냉동고에서 발견 [2016/1/16 8뉴스 : 8살짜리 아들의 시신을 훼손해서 냉동실에 보관하다 체포된 부모에 대한 수사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폭행한 뒤에 방치해서 숨지게 했고, 어머니도 이 모든 과정을 알고 있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10년 전인 2016년 1월 15일, 인천의 어느 주택가. 한 남자가 골목을 뛰어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 경찰에 붙들려 나옵니다. 8살짜리 친아들을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한 이 남성의 이름은 최경원, 당시 서른네 살이었습니다. [(아드님 살해하신 것 맞습니까? 현재 심경이 어떠세요?) …] 사건의 발단은 체포 4년 전인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천의 한 초등학교 1학년 생이었던 최경원의 아들 최모 군이 그해 4월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교무부장 (2016년 1월 17일) : 그 뒤로 아마 엄마가 학생을 학교를 안 보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때가 4월 말이나 될 거예요. 만나주지 않고 집 가면 피해버리고 이러니까 상당히 담임도 힘들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당시 장기결석 아동들을 전수조사하던 학교의 전화 한 통으로 지옥 같은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느낀 교사가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겁니다. 경찰은 바로 다음날 최군 엄마를, 그다음 날인 2016년 1월 15일, 아빠 최경원을 긴급체포한 뒤, 최경원 지인의 집에서 최군 시신이 담긴 가방을 발견했습니다. [지인 (2016년 1월 16일) : 박스 같은 거 몇 개랑, 가방 같은 거… 이삿짐 문제로 와서 며칠 맡길 수 없느냐고 해서. 황당하죠. 오래전부터 알던 동생이 갑자기 그런 일을 해가지고. 그런 일에 또 저희를.] 체포된 최경원은 3년여 전인 2012년 10월 아이가 다쳤는데 치료 조치를 하지 않아 숨졌다 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쳤습니다. 2. 아들 죽기 전날 복싱하듯 때렸다 교묘한 거짓말 뒤에 숨겨진 실체는 훨씬 더 참혹했습니다. 당시 최군은 아빠의 폭행으로 기력을 잃고 용변도 누운 채 이불에 볼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진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2012년 11월 7일, 한 달간 누워만 있던 최군이 오랜만에 일어나자, 술에 취한 최경원은 갑자기 아들을 의자에 앉히고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었습니다. 체중이 16kg에 불과한, 사실상 기아 상태의 아들을 '복싱하듯'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이용희 / 당시 형사과장 (2016년 1월 22일) : 체중 약 90kg의 거구인 부(父)가 뼈밖에 남지 않은 상태의 피해자를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는 복부 옆구리 등을 발로 걷어차는 등…] 최군은 결국 그날 밤 8살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이 모든 걸 보고만 있었던 최군 엄마는 최군을 그대로 방치했고, 술 취해 자고 있던 최경원은 다음날 오후 5시에야 아들의 죽음을 알아챘습니다. 아내와 함께 최군이 숨진 걸 확인한 최경원은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진 아들 얼굴에 테이프를 붙여 억지로 눈을 감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시신을 처리하자 고 했습니다. 3. 시신 훼손한 그날, 부모는 치킨을 시켜 먹었다 소름 돋는 건 아이 엄마의 반응이었습니다. 그 얘길 듣고도 남편과 함께 단골 치킨집에서 치킨을 시켜 먹은 겁니다. 곧이어 시신을 훼손하기로 결심한 부부가 도구를 사러 마트에 갔을 때, 장바구니에 같이 담은 건 자신들이 먹을 김밥과 커피, 과자였습니다. 부부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상상 이상의 잔혹한 수법으로 아이의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최군 엄마는 시신 훼손 작업을 하는 남편에게 직접 고글을 씌워주고, 혹시 냄새가 밖으로 새나갈까 봐 집안에서 하루 종일 청국장을 끓이면서 이 끔찍한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훼손한 시신은 그대로 비닐과 신문지 등으로 싸 집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당시 변호를 맡았던 국선 변호인은 그 참혹함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정다훈/당시 국선변호사 : 같은 집에 살면서 냉동실에 보관을 하고 저는 그거에 대해서 좀 물어봤고… 되게 덤덤하게 그냥 처음에는 자기도 조금 그랬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까 조금 무뎌졌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던 걸로 기억을 해요.] 최경원은 아들이 두 살 때부터 '편식을 한다, 식탐을 부린다'는 이유로 때리기 시작했고, 아내가 자주 '아들이 당신을 닮아 말을 안 듣는다'고 핀잔을 주자 점점 더 화가 나서 아들을 때렸다 고 진술했습니다. 최경원은 체포된 뒤 자신의 변호인에게 사형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다훈 변호사/ 당시 국선변호사 : 밝혀져서 조금 후련하다 이런 것들도 있었고 그런 감정들도 좀 표현했던 것 같고. 일반적인 강력 사건과 비교했을 때 성격이 세거나 그런 점이 없었고, 오히려 직업을 얻지 못하고 약간 은둔형 외톨이 약간 이런 경향이 조금 오히려 있어서.] 하지만 사형도 받아들인다는 말과 달리, 최경원은 살인죄로 징역 30년을 선고한 1,2심 판결에 모두 불복했습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듬해인 2017년 1월, 징역 30년형이 확정됐습니다. 최군의 엄마에겐 징역 20년형이 확정됐습니다. 4. 사건 후 10년, 아동학대 가해자 84%는 부모 친부모에 의해 이렇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이준식 당시 사회부총리] (2016년 1월 17일) : 정당한 사유 없이 장기결석한 초등학생에 대해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1월 27일까지 종료할 예정입니다.] 정부의 전수조사 사흘 만에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아동학대 의심 아동이 8명, 행방 묘연 아동은 12명이나 되는 거로 나타났습니다. 7살 아들을 계모와 친부가 잔혹한 학대 끝에 숨지게 한 '원영이 사건',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4살 딸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청주 안 모 양' 사건까지, 자칫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이 비극적인 사건들은 최군 사건 이후 실시된 전수조사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 전말이 밝혀졌습니다. 정부는 아동학대 방지책으로 사흘 넘게 무단결석하는 아동에 대해 담임교사가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부모가 사생활 침해나 홈스쿨링을 주장하면 이를 강제로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5만 건을 넘어섰고, 실제 지자체에서 아동학대로 판단된 건수만 2만 4천 건이 넘었는데, 이 가운데 84%가 부모에 의해 자행된 것들이었습니다. [정효정 중원대 교수/영유아보육학회 회장 : 강제성이 없고 집에 간다 그래도 문 잠가놓고 안 열어주면 못 보는 거예요. (학대 징후가) 뭔가 있다라고 봤을 때 이들 부모에 대한 게 강제성이 있어야 된다는 거야. 그래서 이게 지자체나 모든 게 함께 움직여야 된다.] 형식적인 가정 방문이 아닌 학대 징후를 면밀히 살필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교육청과 지자체, 경찰이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건데, 이런 제도적 안전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최군은 언제든 또 나타날지 모릅니다. (취재 : 이현영,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주용진, 영상편집 : 권나연, 디자인 : 육도현, 제작 : 디지털뉴스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초기암 진단…트럼프 치료받으며 근무
등록일2026.03.17
▲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초기 암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와일스 비서실장이 안타깝게도 초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치료를) 미루는 게 아니라 즉시 이 도전에 맞서기로 결정했다 고 전했습니다. 이어 그녀는 환상적인 의료진을 두고 있으며, 예후는 훌륭하다 며 치료 기간 그녀는 사실상 풀타임으로 백악관에 있을 것이며, 이는 대통령으로서 나를 매우 기쁘게 한다 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치료 중에도 그녀가 사랑하고 아주 잘하는 업무를 계속하겠다는 강인함과 헌신은 그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준다 며 나와 가장 가깝고 중요한 참모 중 한 명인 수지는 터프하며 미국인을 위해 봉사하는데 깊은 사명감을 지녔다 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영부인) 멜라니아와 나는 모든 면에서 그녀와 함께하며, 우리는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일어날 수많은 크고 멋진 일들을 위해 수지와 함께 일하기를 고대한다 고 적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게시글을 올린 직후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케네디센터 이사회와의 오찬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와일스 실장을 자신의 바로 왼편에 앉혔습니다. 와일스 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행사에서 바로 옆에 앉은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바로 오른쪽에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자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와일스 실장을 소개하면서 놀라운 투사 라고 치켜세운 뒤 그녀가 자그마한 어려움을 발표했는데, 곧 좋아질 것 이라면서 와일스 실장을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습니다. 그는 또 예후가 훌륭하고, 훌륭한 정도를 넘어선다 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누가 그걸 원하겠나 라고 안타까워했고, 와일스 실장은 고맙습니다. 대통령님 이라고 답했습니다. 와일스 실장은 뉴욕타임스(NYT)에 보낸 성명에서 조만간 워싱턴DC 지역에서 수주에 걸친 치료 과정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미국 여성 8명 중 1명이 이 진단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여성들은 매일 강인함과 결단력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일터로 나가며 지역 사회에 봉사한다. 나는 이제 합류한다 고 했습니다. 와일스 실장은 또 치료를 받으면서 현 직책을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와 격려에 깊이 감사하다 고 밝혔습니다. 와일스 실장은 트럼프 집권 2기 첫 백악관 비서실장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1월 대선 승리 직후 미국 역사상 첫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해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승리에 크게 기여한 그는 전면에 나서길 꺼리며 대통령을 묵묵히 보좌하는 업무 스타일로 유명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와일스 실장을 얼음 아가씨 라고 불러왔습니다. 와일스 실장은 지난해 12월 공개된 미 대중문화 월간지 베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알코올중독자의 성격을 가졌다 고 말한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기도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에 대한 신임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사실은] 과거의 트럼프 vs 현재의 트럼프
등록일2026.03.14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작전을 시작하면서 이란의 정권 교체, 즉,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가 목표임을 밝혔습니다. 개전 첫날 공습으로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습니다. 이란의 신정 체제를 바꾸겠다는 전략으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트럼프의 말은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이란 내 봉기를 부추기며 정권 교체에 직접 개입하는 데에는 거리를 뒀다가, 베네수엘라처럼 후계 구도에 개입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의 해석도 분분합니다. 이번 이란 군사작전은 미국 국익을 위해 외국 사정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외교 기조, 이른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와는 대척점에 있습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를 대통령에 올려놨던 주요 정치 자산입니다. 트럼프의 과거 발언은 어땠을까요. 트럼프가 이란 정권 교체와 관련해 지금껏 어떻게 말했는지, 트럼프 정부 1기 때부터 10년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45대 미국 대선을 넉 달 앞둔 2016년 7월,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는 경쟁자였던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이렇게 쏘아 붙였습니다. 오바마 정부 당시 외교 정책을 총괄했던 클린턴이 중동 국가들의 정권 교체를 추진했던 건 '재앙'이라고 말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중동 지역에 민주주의를 이식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테러 직후 아프간 전쟁을 시작으로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오바마 집권기에도 전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희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2021년 미국 브라운대 '전쟁 비용 프로젝트'(the Costs of War project)는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으로 8조 달러, 우리 돈으로 1경 1천947조 원을 썼다고 추산하기도 했습니다. 반전 여론과 함께 이 엄청난 돈을 미국을 위해 써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트럼프는 이 지점을 파고 들었습니다. 외국의 정권 교체에 국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이런 외교 정책 펼치지 않겠다는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며 '아메리카 퍼스트' 캠페인을 벌였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에도 이런 기조는 계속 유지됐습니다. 2019년 7월 백악관 국무회의 당시 이런 발언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음 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당시 열린, 미국-이집트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럼프는 같은 해 11월 미시시피 연설에서도 트럼프 정부는 국내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고 딱 잘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 1월,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가셈 솔레이마니 2020년 1월,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란 군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가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했습니다. 솔레이마니는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가장 신임했던 최측근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란의 보복과 함께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란의 정권 교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4년 뒤인 2024년, 다시 대선 도전장을 내민 트럼프. 이란 문제에 대해선 일관됐습니다. 정권 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그해 5월 워싱턴 유세에서 우리 미군이 해야 할 일은 (다른 나라의) 정권 교체를 위해 무의미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지난해 6월, 트럼프의 개인 SNS였습니다. 이란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면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는 말은, 그간 이란의 정권 교체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기조와 정반대였습니다. 미국 언론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고, 이틀 뒤, 미국 기자들은 트럼프와 만난 자리에서 그 의미를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트럼프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이란의 정권 교체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틀 만에 다시 말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올해 2월, 또 달라졌습니다. 트럼프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의 정권 교체 필요성을 말했습니다. 그렇게 2월 28일 이란을 향한 대대적인 군사작전이 시작됐습니다. 왜 전쟁을 하는지, 여전히 트럼프의 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있습니다. 도무지 가늠이 어렵습니다. 전쟁 목표가 10가지가 넘는다는 미국 언론의 비아냥까지 나왔습니다. 지도자의 잦은 말 바꾸기는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비판과 동시에, 융통성 있는 실용주의적 태도라는 평가가 교차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급격한 입장 변화에는 명분이 필요합니다. 이란의 위협 수준이 최근 들어 급격히 올라갔고, 그게 미국인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됐다면, 미국인 입장에서 트럼프의 태도 변화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명분이 없다는 말이 트럼프 핵심 지지층 안에서도 나왔습니다. 구독자 2천100만의 보수 유튜버 조 로건은 트럼프는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랬는지 이유조차 정의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고 비판에 나섰습니다. 트럼프의 말이 계속 바뀌는 사이에도 희생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3월 14일 현재, 트럼프의 이란 전쟁 사망자는 적게는 1천300명, 많게는 4천300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자료 조사 : 작가 김효진, 인턴 박근호)
세계 경제의 아킬레스건 '호르무즈', 진짜 끊겼다 [이브닝 브리핑]
등록일2026.03.05
1. 중동 위기 때마다 소환되는 지명 '호르무즈' 기억 나실 지 모르겠습니다. 과거부터 중동에 위기가 닥치면 어른들은, 언론은 자동적으로 한 지역을 입에 올렸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괜찮나? 그래서 꽤 어린 나이부터 각인됐습니다. 세계에, 적어도 우리나라에 호르무즈 해협은 매우 중요한 곳이구나. 그럴 만도 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경제의 진정한 아킬레스건입니다. 중동 주요 산유국들로 둘러싸인 페르시아만에서 대양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바닷길입니다. 길이 약 160㎞, 좁은 곳은 폭이 50㎞에도 못 미칩니다. 이 해협을 통해 2024년 기준 하루 평균 2천만 배럴, 전 세계 소비량의 약 20%에 달하는 석유가 운송됩니다. 액화천연가스, LNG도 전 세계 해상 운송량의 5분의 1에 달합니다.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대부분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시장을 향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원유 수입량의 많게는 80%가 이 해협을 지납니다. 우리 에너지 공급의 목줄이라 불러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런 호르무즈 해협은 지리적 특성상 이란이 봉쇄 작전을 펼치기에 매우 용이합니다. 수심이 비교적 얕아 대형 유조선이 지나갈 수 있는 해로가 한정돼 있습니다. 곳에 따라서는 해로의 폭이 수 킬로미터에 불과해 대형 유조선 2척이 겨우 교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대형 선박은 대부분 이란 영해를 지나야 합니다. 게다가 수로가 이란 해안선에 바짝 붙어 있습니다. 이란이 소형 순찰정이나 헬리콥터, 육지에서 발사하는 유도탄 등으로 쉽게 공격할 수 있습니다. 2. 끊임없이 위협 받아온 호르무즈 해협 통행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란은 서방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을 인질 삼아왔습니다. '수 틀리면 확 세계 에너지 공급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릴 수 있어. 그래도 버틸 수 있겠어?' 그리고 실제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공격과 기뢰 설치 등으로 통행을 위협하거나 군사적 행동에 나선 사례가 다수 있습니다. 굵직한 사건들만 정리해봤습니다. ① 유조선 전쟁 (1984~1988) :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양국이 서로의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해 상대국 유조선을 공격했습니다. 이때 미국은 유조선에 성조기를 달고 호위하는 '어니스트 윌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② 프레잉 맨티스 작전 (1988) : 미 군함이 이란의 기뢰에 피해를 입자, 미 해군이 다수의 이란 함정을 침몰시키며 대규모 보복 작전을 벌였습니다. ③ 이란 항공 655편 격추 (1988) : 긴장이 최고조였던 당시, 미 군함 빈센즈호가 이란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 격추해 290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발생했습니다. ④ 무력 충돌 위기와 긴장 고조(2000년대) : 2008년과 2011~2012년 미국과 이란 해군이 이곳에서 일촉즉발의 긴장을 고조시키며 대치했습니다. 2018년, 19년에도 이란혁명수비대가 해협을 폐쇄하겠다며 위협한 바 있습니다. ⑤ 이란의 잇단 선박 나포, 공격(2019년 이후) 2019년 이후 이란은 정치적 문제로 다양한 선박을 공격하고 나포했습니다. 2019년 6월 유조선 프론트 알테어호와 코쿠카 쿠라주어스호가 비행체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이란군의 공격이라며 비난했지만 이란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그해 7월, 영국 국적의 벌크 유조선 스타나 임페로가, 2021년 1월에는 대한민국 국적 유조선이 해양 오염을 이유로 이란군에 의해 나포됐습니다. 2024년 4월 이란 이슬람 혁명 수비대 해군이 포르투갈 국적 컨테이너선을 나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란 혁명 이후 이렇게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은 끊임없이 위협 받고 불안정해졌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완전 봉쇄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내 핵·미사일 시설 타격에 이어 이번 전면 공습까지 발생하자 이란 혁명수비대는 해협 통과 불가를 선언했습니다. 민간 선박을 공격하며 실질적으로 해협 통행을 막아섰습니다. 세계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실제로 끊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3. 이란의 봉쇄에 대한 주요국 대응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작전은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형 유조선의 이 지역 노선 운임은 지난달 이맘때보다 약 3.3배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민간 선박에 이란 미사일이 날아들자 국제 해상 보험사들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인근 해역에서의 보상 보험을 중단했습니다. 이란이 실제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지와 상관 없이 해상 보험사가 막아버린 셈입니다. 봉쇄 이틀 만에 유가는 10% 이상 뛰었습니다.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악영향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입니다. 그러자 미국은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을 직접 호위함으로써 이란의 봉쇄 작전을 군사적으로 무력화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은 강경합니다. 미 해군 함정이 상업용 유조선을 직접 근거리에서 보호하는 작전을 전개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아울러 민간 선사들이 위험 때문에 운항을 포기하지 않도록 미 정부가 정치적 위험 보험을 직접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이란의 기뢰 부설함이나 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하여 봉쇄 능력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들 국제 연합군을 구성하고 함정을 파견해 공동 감시 및 호위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주변 아랍국들의 사정은 더 다급합니다. 원유 수출길이 막히면서 당장 경제가 굴러가지 않습니다. 육상 송유관을 통한 물동량을 늘리고 있지만 한계가 뚜렷합니다.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4. 단 하나의 희망 모두가 조기종식을 바란다 호르무즈를 봉쇄하겠다는 이란이나, 해군 함정을 이용해 민간 선박을 호위하겠다는 미국이나 모두 허장성세에 가깝습니다. 이란이 실질적으로 해협을 봉쇄할 만한 능력을 보유했는지를 떠나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려 고립을 자초하는 행위를 언제까지나 지속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거꾸로 미 해군 전력이 수많은 기뢰와 자폭형 드론 공격을 모두 막아 주기도 불가능합니다. 희망은 이스라엘 외의 모든 당사국들이 이 상황의 조기종식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전쟁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정이 부담입니다. 좋지 않은 자국 여론도 걸림돌입니다. '결사항전'을 외치는 이란 역시 정치와 군부 수뇌부가 대거 제거된 상황에서 내부 정리할 시간이 절실합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자체가 '이 전쟁을 끝내달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사국들이 파괴적인 적대행위에서 벗어나 합리적 절충점을 찾을 수 있는 상식과 판단력을 회복하는 것만이 남은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