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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스튜어디스 혜정'의 완벽했던 '원경왕후' 변신…차주영, 뭐든 된다
등록일2025.03.04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뭐든 처음은 쉽지 않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라 어색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배우 차주영은 달랐다. 첫 타이틀 롤, 첫 사극 도전인데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최근 종영한 tvN X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에서 주인공 원경왕후 캐릭터로 분한 차주영에게선 처음의 어설픔을 찾아볼 수 없었다. '원경'은 '남편 태종 이방원과 함께 권력을 쟁취한 원경왕후. 왕과 왕비, 남편과 아내, 그 사이 감춰진 뜨거운 이야기'라는 로그라인처럼, 원경왕후를 중심으로 태종과의 부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다. 형제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이 된 남편이 왕권을 강화시키는 과정에서, 뜨겁게 사랑하고, 강하게 부딪히며, 중전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주체적으로 산 원경왕후의 일대기를 담았다. 대중에게 차주영이라는 배우가 확실하게 각인된 건, 아마도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학폭 가해 무리 중 하나였던 '스튜어디스 혜정' 역일 것이다. 한없이 가벼웠던 혜정이가 중후한 원경왕후로 변신한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원경'을 보면, 차주영에게서 혜정의 얼굴은 찰나의 순간도 발견할 수 없다. 기품 있는 분위기, 힘 있는 말투, 깊은 눈빛 등에서 원경왕후의 위엄이 느껴졌다. 맡는 캐릭터에 맞춰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게 배우라 하지만, 혜정과 원경의 꽤나 큰 간극을 완전히 달라진 연기로 메우는 차주영의 힘이 놀랍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유학파로, 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걷던 차주영은 지난 2016년, 26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배우로 본격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에 출연했지만 배우로서 큰 인지도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 '더 글로리'가 큰 성공을 거뒀고, 비로소 차주영에게도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출연 제안이 들어온 많은 작품들 중 차주영이 선택한 건 '원경'이었다. 그가 '원경'에 끌린 이유는 사극 장르이면서도, 그동안 메인으로 다루지 않은 인물의 일대기를 조명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사극은 늘 제가 하고 싶은 장르라, 선택하는 데 일말의 고민도 없었어요. 사극이 몇 개 들어왔었는데, 그중에 가장 하고 싶은 게 '원경'이었어요. 퓨전이긴 하지만 정통 사극을 지향하면서 실존 인물과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그런 클래식한 사극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또 원경의 일대기를 다룬다는 것도 끌렸어요. 제 연기 인생 동안, 누군가의 일생을 담는 작품을 할 기회가 흔치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태조 이성계의 며느리, 태종 이방원의 아내, 세종 이도의 어머니인 원경은 그동안 한국 사극에서 여러 번 등장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항상 태조, 태종, 세종이 주인공인 작품의 조연에 불과했다. 드라마 '원경'은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고 새로 세워진 왕조의 중심에서 당당히 두 발을 딛고 서 있던 여인, 원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점이 차주영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여러 선배님들이 원경왕후를 너무 출중하게 연기해 주셨지만, 원경왕후를 내세워 만든 작품은 이게 최초잖아요. 그걸 제가 하고 싶었어요. 여성 서사라서가 아니라, 전 인물이 매력적이면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희 친할머니가 원경왕후처럼 여흥 민 씨예요. 제가 할머니 피를 물려받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더 와닿은 것도 있어요. 차주영은 '원경'을 준비하며 조선왕조실록까지 들여다봤다. 간략히 쓰인 설명만 보는 게 아니라, 원본 공부에도 도전했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다루는 만큼 정확한 공부와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역사는 기록한 사람들에 의해 쓰인 것이라는 걸. 당연히 큰 줄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지만,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걸. 저희 드라마가 '이게 역사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역사를 배우려면 따로 공부해야 하는 거고, 드라마는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 보는 거죠. 저희는 인간의 감정적인 부분들을 건드리며 해석해 보려 했어요. 실록을 그대로 옮긴 대하드라마가 아닌 이상,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사극 작품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다. 역사를 '다른 관점'으로 해석한 드라마라는 전제를 깔았으나, '원경'도 왜곡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드라마 '원경'에서는 태종 이방원(이현욱 분)과 원경(차주영 분)이 뜨겁게 사랑한 시절은 짧게 지나가고, 이견으로 대립할 때가 더 많다. 이런 강한 갈등이 마치 원경에 대한 이방원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처럼 그려졌다며 역사 왜곡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왜 그런 논란이 있을까, 아쉬웠어요. 역사 왜곡을 감안하고 봐달라는 게 아니라, 저희는 '역사적 팩트를 기반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다뤄보겠다'였거든요. 보면 많은 이야기가 나올 여지가 충분한 드라마라 각오는 했어요. 다만, 끝까지만 봐주신다면, 이 팀이 어떤 시도를 했는지 알아봐 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기다리는 것이 답이라고 여겼죠. 우려는 있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저희가 시도해 보고자 하려는 것들을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려의 목소리에) 많이 잠식되지 않으려 했어요. 거기에 자꾸 국한되면, 연기를 주어진 것에만 갇혀 할 거 같더라고요. 시도해 보는 것에 의미를 두고, 버릴 건 과감하게 버리면서 접근하려 했어요. '원경' 속 태종과 원경왕후의 관계성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애증'이다. 너무 사랑해서 상대방의 배신에 분노가 크고, 그래서 나온 가시 돋은 반응에 실망도 크다. 마음 한편에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한 나라의 왕이고 왕비라서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겉으로 내색하지 못한다. 그래도 오랫동안 품어온 서로를 향한 진심은, 죽는 그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원경'에서 두 사람의 날 선 감정선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초반 견고하게 쌓아 올린 사랑의 시간들이 과거 회상 장면으로 짧게 스치기 때문이다. 대신 TVING에 공개한 2부작 프리퀄 드라마 '원경: 단오의 인연'으로 젊은 시절 서로에게 반해 뜨겁게 사랑했던 이방원과 원경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프리퀄 드라마까지 봐야 '원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저랑 현욱 배우도 걱정한 부분이에요. 두 사람이 너무 싸우기만 하니까, 앞서 사랑하는 모습이 조금 더 나와야 하지 않겠나, 사람들이 모르면 안 될 거 같다, 그런 걱정이요. 시청자들도 맨날 싸우는 것만 보면 얼마나 피로도가 쌓이겠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프리퀄을 기대했어요. 무거웠던 본편에선 단 한 장면도 쉽게 찍은 게 없고 치열하게 고민했는데, 프리퀄에서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촬영했어요.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어떤지 감정이 어떤지, 우리가 만드는 게 기준이 되니까요. 프리퀄에선 다른 방식으로 녹여내도 시청자가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발랄하게, 거기선 퓨전 사극에서 쓰일 법한 말투도 섞어가며, 그렇게 찍었어요. 차주영은 원경이 돋보일 수 있었던 건 이방원을 연기한 배우 이현욱의 희생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차주영이 원경을 묵직하게 그려낸 것처럼, 이현욱 또한 복잡 미묘한 이방원을 훌륭하게 연기해 냈다. 이방원 캐릭터의 극 중 설정에 있어선 의견이 갈릴 수 있으나,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든 엄지를 치켜세울 것이다. 저희 드라마가 한 끗으로 방향성이 너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뒀어요. 전 모든 것의 기저에 '사랑'이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이 여인이 사랑에 배신당한 걸로 비치면 안 됐고, 한 인간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다뤄야 할 게 많았죠. 그래서 현욱 오빠가 피해를 입었어요. 원경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오빠가 많이 희생해 줬죠. 방원도 원경만큼이나 애틋하고 안쓰러운 존재인데, 원경을 설명해야 해서 방원의 매력이 덜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두 사람의 노년이 그려진) 마지막 12회 전개에서 그 아쉬움이 좀 회수가 된 거 같아 다행이에요. '원경'은 TV 버전과 OTT인 TVING 버전, 두 버전으로 시청자에게 공개됐다. TV 버전은 15금, TVING 버전은 19금으로 제작돼, TVING에서 공개된 회차에서는 수위 높은 노출신이 등장했다. '원경'의 노출 장면들은 초반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데 어느 정도 일조했으나, 이야기 전개에 꼭 필요한 장면인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지어 해당 노출 장면들이 배우들의 의사와 별개로 후반 대역배우 촬영과 CG로 입혀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선정성 논란으로 번졌다. 이에 대해 차주영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조선시대 왕실 부부의 침실 이야기라 19금으로 다룬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너무 좋은, 과감한 시도라고 생각했죠. 다만, 그 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있어요. 많이 고민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모두가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극 중 원경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한 나라의 왕비였지만,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극을 겪었다. 왕권 강화라는 절대적 명분을 앞세운 이방원이 여러 여인을 품는 걸 지켜봐야 했고, 외척 세력 견제 때문에 남동생들이 죽어 나가는 멸문지화의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차주영은 원경왕후의 내면을 섬세하고 묵직하게 연기하며, 안방극장에도 그 애통함을 고스란히 전했다. 원경의 서사는, 제가 아는 비극 중에 가장 큰 비극 같아요. 원경이 너무 안 됐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걸 제가 굳이 연기하려 하진 않았어요. 이 여인을 억지로 불쌍하게 연기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사건들이 이야기해 주니까요. 전 진심으로 연기만 하면, (원경의 마음이) 분명 전달될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정선으로 연기하자, 그런 마음이었죠. 차주영은 10대부터 노년까지 원경의 일대기를 연기했다. 촬영 후반부 흰머리 가득한 노년의 원경을 표현할 땐,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겪어온 원경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그에게도 전해져 오히려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왔다. 고된 생의 끝자락에는 지쳤을 원경처럼, 이를 연기한 차주영 또한 촬영 막바지에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원경에 모든 걸 쏟아부었기에 그러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많았어요. 옷만 해도 다섯 겹씩 입어야 해서 화장실 한번 가기 어려웠고, '왕관의 무게'라는 게 정말 있더라고요. (가체와 머리 장식 때문에)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도 없었어요. 무거운 가체에 왁스 칠한 머리로 하루 20시간씩 있었어요. 머리를 감으려면 그걸 한참 녹인 후 두세 번씩 다시 감아야 해요. 사극 장르라 각오는 했지만, 덤벼보니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촬영 종료까지 며칠 남았지'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물론, 그 순간에도 알았죠. 이게 끝나면, 전 분명히 이 현장을 그리워할 거라는 걸요. 머리 장식을 지탱할 힘조차 목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버텼어요. 첫 타이틀 롤 사극에 느낀 부담감과 책임감, 원경을 연기하며 감정 이입한 고통들, 사극 촬영에서 온 현실적인 어려움들까지. '원경'은 차주영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고,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이런 이야기하는 거 창피한데, 도망가고 싶었어요. 숨이 안 쉬어지고, 모든 몸의 기능들이 제 기능을 못 했던 거 같아요.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래요. 잇몸이 다 무너지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목디스크도 왔어요.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가 많이 무너졌어요. 하지만 '원경'을 통해 얻은 것도 많다. 인생을 배웠죠.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몰랐던 세상 물정을 이제야 알아가는 단계인데, '원경'은 제 담력을 많이 키워줬어요. 한없이 겸손해지고, 여러 생각이 많이 들게 한 작품이에요. 연기자로서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제가 고수해 온 방식들이 있다면, 앞으로는 더 여러 가지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원경'을 본 시청자는 안다. 이 작품이 초반 19금 노출 장면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그건 이 작품의 진면목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차주영, 이현욱부터 이성계 역으로 특별출연한 이성민까지, 극을 메운 배우들의 구멍 없는 연기를 보는 재미, 원경왕후를 중심으로 남편 이방원과의 사랑과 전쟁, 궁궐 암투를 상상해 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드라마 '원경'은 깊이 봐야 더 재밌는 드라마다. 차주영은 '원경'을 본 시청자들로부터 애썼다 , 고민 많이 했겠네 라는 감상평을 듣는 것에 울컥해했다. 그가 이 작품에 얼마나 마음을 많이 썼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원경'을 끝낸 차주영은 연기적으론 아쉬워도, 마음에 아쉬움은 없다. (내 모든 걸) 다 쓴 거 같다. 더 여력이 없다 고 말했다. '원경'을 촬영하며 모든 걸 쏟아낸 그는, 촬영이 끝난 후 한동안 일본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사하라 사막까지 도달했다. 파란 하늘 아래 붉은 모래만이 광활하게 깔린 그곳에서, 차주영은 비워냈던 에너지를 다시 채워 돌아왔다. 이제, 다시 달릴 차례다. 해보고 싶은 건 너무 많죠. 느와르도 해보고 싶고, 여군 캐릭터도 해보고 싶어요. 분량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한 포인트만 있으면, 잠깐 지나가는 인물이라도 좋아요. '로비'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그게 곧 개봉할 예정이에요. 다음 작품('클라이맥스') 촬영도 곧 시작되고요. [사진=고스트스튜디오 제공, '원경', '더 글로리' 스틸컷]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거짓말한다 며 발로 차 갈비뼈 16군데 골절…초2 딸 학대로 죽인 엄마의 황당한 변명
등록일2024.11.29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8일 방송된 '아무도 몰랐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정이랑, 서효림, 최진혁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한 아이의 죽음 때는 2013년 10월 24일. 119로 한 통의 신고전화가 들어와. 저희 아이가 호흡이 없고 얼굴색이 변하고 있어요. 제발 빨리 좀 와 주세요! 다급한 아이 엄마의 신고 전화였어. 아이가 욕조에서 목욕을 하다가 빠졌는데 호흡이 없다는 거야.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어. 안타깝게도 하늘나라로 간 아이가 바로 이 아이야. 당시 초등학교 2학년, 만 일곱 살 이아린(가명). 너무나 예쁘고 고운 아이가 세상을 떠난 거야. 부모 심정이 어땠겠어? 장례식장은 그야말로 비통한 분위기야. 특히, 엄마는 아린아~ 엄마도 곧 따라갈게. 아린아~ 라고 아이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어. 아이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던 엄마는 끝내 실신까지 하고 말아. 실신한 엄마는 병원에 실려간 뒤 치료를 받았어. 그런데, 실신한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어. 바로, 경찰이야. 당신을 상해치사 혐의로 체포합니다. 사람의 신체에 상해를 가해 사망하게 했다는 거야. 체포된 엄마는 완전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어. 엄마를 체포하자 주변에서도 난리가 났어. 담당 형사에게 당시 상황을 들어볼게. 불난 집에 부채질 한다는 그런 반응이었어요. 안 그래도 아이도 사망했고, 그것 때문에 화장장에서 실신해서 응급실에서 진료 받고 나오는 피의자를 그렇게 저희가 체포해 간다는 거에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한 행동을 하느냐'라며…. -고성원 경위, 당시 담당 형사 아린이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사진을 보여줄게. 그냥 평범한 모습이야. 그런데 사실, 아린이 엄마는 친모가 아니었어. 아이 아빠와 사실혼 관계로 4년 전부터 아린이를 돌봐왔던 거야. 근데 새엄마라는 이유를 아이의 죽음과 연관 지을 순 없지. 이건 친엄마냐 새엄마냐의 문제가 아니니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엄마와 아린이는 사이좋은 모녀였대. 엄마는 학부모 대표를 맡을 정도로 아린이 일에 적극적이었어. 아이의 일기장 속엔 부모의 말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정성스레 글을 썼대. 학교, 학원 선생님들도 잘 챙기고, 주변 지인들까지 살뜰히 챙기는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거야. 그런 엄마가 상해치사 혐의로 체포된 거야. 그럼, 이런 상황에서 아이 아빠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빠는 아이는 사고로 죽은 겁니다. 이거 과잉수사예요. 나 변호사 부를 거예요 라며, 아린이는 안타깝지만 사고로 죽은 것인데 경찰이 과잉수사를 한다고 펄쩍 뛰었어. 근데, 지금까지 이야기 중에 이상한 거 없었어? 아린이가 욕조에서 익사했다고 했잖아. 당시 아린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야. 영유아도 아닌데 욕조에서 익사를 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지. 체포된 새엄마는 사고가 난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 지금부터 그녀가 말하는 그날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봐. ▲ 엄마의 진술 다시 2013년 10월 24일, 이날은 아이의 소풍날이었어. 아쿠아리움으로 체험학습을 가기로 되어 있었어. 아이는 이 소풍을 너무너무 기대하고 있었다고 해. 며칠 뒤 다른 곳으로 이사할 예정이라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거든. 엄마는 음식을 준비하고,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 가방을 쌌어. 그 후, 아린이를 깨웠는데 아이가 이런 말을 했대. 엄마~ 나 좀 어지러워요. 미열도 있고, 얼굴도 창백해 보이고 해서 엄마는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어. 상의 끝에 선생님은 아린이를 소풍에 안 보내는 게 좋겠다고 대답을 했다는 거야. 엄마도 아린이가 소풍을 너무 가고 싶어 했지만, 아이의 컨디션 때문에 소풍은 보내지 않기로 한 거야. 그 후, 아이가 반신욕을 하고 싶다고 했고, 이삿짐을 싸다가 욕실로 들어가 보니 아이가 이미 욕조에 빠져 있었다는 거야. 엄마는 얼른 아린이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했대. 하지만 미동이 없자 다급히 119에 신고를 했고, 그 후에도 119의 지시에 따라 계속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형사들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아이가 사망한 욕실 쪽에서 좀 이상한 게 발견이 됐거든. 직접 들어볼게. 상당히 의문점이 많은 사건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욕조에 빠져 죽었다고 119 신고를 했었는데, 현장에 갔었을 때는 욕실 바닥도 청소된 것처럼 깔끔했고, 보통의 사건은 아니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성원 경위, 당시 담당 형사 사건이 일어난 욕실 사진을 보면, 아주 깨끗하지? 그런데 이걸 봐. 같은 곳을 찍은 사진이야. 혈흔 반응을 보기 위해 검사를 했더니 혈흔이 있었던 흔적들이 나타난 거야. 이걸로 뭘 알 수 있을까? 아린이가 피를 흘렸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가 있지.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에 신고하는 와중에, 엄마가 이 피를 닦았다는 사실. 아이가 욕조에 빠져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그럴 정신이 있었을까? 물에 빠져 죽었다는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형사들은 새엄마에게 물었어. 아린이가 욕실에서 정확하게 어떤 상태였는지, 아이가 반신욕을 하면 중간에 확인을 안 하는지, 집 청소를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등 꼼꼼히 당시 상황을 물었어. 또 새엄마의 손, 발 상태를 확인해 봤는데, 발가락에서 멍이 발견됐어. 발가락에 왜 멍이 들었는지 묻자, 새엄마는 하이힐을 신어서 멍이 들었다고 대답했어. 형사가 엄마에게 다시 물었어. 아린이가 왜 그렇게 된 것 같냐고. 새엄마의 대답은 이거야. 정말 저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사실, 형사들이 새엄마에게 이렇게 집요하게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있었어. 바로, 부검결과 때문이야. 그 내용을 알려줄게. 아린이는 키 123cm에 몸무게 20kg로 마른 편이었어. 엄마는 아이가 익사한 거라고 했어. 그런데, 아린이의 기관지 내에서 거품, 포말이 발견되지 않았고, 폐에도 물이 찬 흔적이 없었어. 이건, 사인이 익사가 아니라는 거야. 그뿐만이 아니야. 아이의 우측 치아는 탈구된 상태였어. 머리에도 여러 군데 두피하출혈이 발견돼. 그리고, 양쪽 24개의 갈비뼈 중 16군데가 부러져 있었어. 부러진 갈비뼈에 의해 양쪽 폐도 파열된 상태였어. 작은 아이의 몸에는 너무나 많은 상처들이 남아있었어. 그렇게 신문은 10시간 넘게 진행돼. 피의자를 신문하면서 자백을 받아야 하는 게 중요했고요. 폭행했다는 말은 일절 입밖에 꺼내지 않았었으니까, 태연하게 거짓말을 잘하고 있다,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고성원 경위, 당시 담당 형사 ▲ 그날의 진실 형사들을 계속해서 물었어. 전에 했던 진술에서 틀린 부분이 있냐고. 그런데 갑자기 새엄마는,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기 시작해. 아린이가 도벽이 조금 있었습니다. 식탁에 돈을 가져갔냐고 하니까 거짓말을 해서 홧김에 발로 옆구리를 때렸습니다. 진술이 바뀌었어. 소풍날 폭행이 있었다고 말한 거야. 아린이가 '엄마 저 진짜 안 훔쳤어요'라는 말을 듣고 그때 당시 눈이 뒤집혀서 보이는 대로 때린 것 같습니다. 그런 뒤 아린이보고 '보기 싫으니깐 네 방에 들어가'라며 소리를 지르며 여러 번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아린이 아빠에게 전화를 하여 사실을 이야기하면 걱정할까봐 아린이가 소풍을 갔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새엄마 진술 내용 中 그 후 새엄마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TV를 켜놓고 커피를 마셨대. 새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훔쳐갔다는 돈은 2,300원이었어. 설사, 아이가 그 돈을 훔쳤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새엄마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아이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는 거야. 그럼, 이렇게 아이가 사망한 걸까? 20~30여 분이 흐른 뒤, 아린이는 방에서 나와 엄마에게 다가갔어. 엄마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엄마 소풍 가고 싶어요. 이 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은 핏기가 없고 창백해 보였대. 그럼 이 말에 새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다시 아이를 발로 차기 시작했어. 미안하다는 말이 소풍이 가고 싶어서 한 말로 느껴졌다는 거야. 2차 폭행이 한동안 이어지고, 아이는 거실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고 해. 그 후, 새엄마는 '애한테 멍이 들었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대. 그래서 멍이 빠지라고 아이에게 반신욕을 시켰다는 거야. 아이는 엄마의 말에 일어나 휘청거리며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고 해. 형사는 새엄마에게 아린이가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내버려 둔 것이 아니냐 라고 물었어. 엄마는 그건 말도 안 된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는 엄마가 어디에 있냐 라고 항변했어. 형사들은 또다시 물었어.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어떻게 갈비뼈를 16개나 부러뜨리냐 고. 그러자 새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나 라며, 발로 세게 때린 건 맞지만 엄마가 어떻게 애를 죽이려고 때렸겠냐는 거야. 새엄마에게 평소 아린이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니 이런 말도 했어. 이렇게 말씀드리면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우린 정말 친구 사이 같았어요. ▲ 학대의 증거들 형사들은 아이의 장례기간 동안 숨 가쁘게 뛰어다니며 수사를 하고 증거를 모았어. 사실, 아이의 몸에는 소풍날 입은 상처가 아닌 것도 있었거든. 부검에서 엉덩이 부위의 만성 출혈, 조직의 섬유화도 발견이 됐어. 조직의 섬유화는 굳은살 생긴 것처럼 됐다는 거야. 형사들은 지속적인 학대의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아린이의 진료기록에서 확인된 내용들이 있어. 사망사건 1년 전인 2012년도에 찍은 아이의 다리 엑스레이야. 대퇴골이 골절된 거야. 금이 간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부러진 상태야. 당연히 새엄마에게 이 상처에 대해 물어봤지. 학원 계단을 뛰어 내려오다 넘어져 부러진 거래. 이 상태로 아이가 깨금발을 해서 집까지 왔다는 거야. 이게 끝이 아니야. 2012년도 진료기록은 더 있었어. 화상을 입은 거야. 아이의 양손, 다리, 발까지. 이식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심한 상처였어. 새엄마는 이 상처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을까? 아이 아빠가 뜨거운 물로 해놓은 걸 아이가 모르고 샤워기를 틀어서 화상을 입었다는 거야. 새엄마는 소풍날 폭행은 인정했지만, 골절과 화상에 대해서는 절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 지속적인 학대는 부인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반복되는 신문 과정에서 결국 새엄마는 골절과 화상 또한 자신이 한 일임을 시인해. 골절의 이유는, 아이가 학원을 갔다가 집에 30분 늦게 들어왔기 때문이래. 약속을 어겼다고 다리를 발로 찼다는 거야. 화상은, 아이 문제로 아이 아빠와 싸우게 되자 화가 나서 아이를 잡고 샤워기 뜨거운 물을 뿌렸다는 거였어. 이게 말이 되는 일이니?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새엄마는 학대 정황들이 추가 확인되며 상해치사가 아닌 학대치사로 검찰에 송치돼.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40살 박 모 여인이 1시간 가량의 현장 검증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 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흥분한 일부 주민들의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그리고, 이 사건으로 큰 고민에 휩싸인 한 사람이 있어. 직접 만나볼게. 사건 당시에는 울산지방검찰청 강력사건 담당 검사였습니다. 이 사건은 그냥 흉기로 인한 살인이나 이런 것과 달리 사망에 이를 정도의 폭력이 행사된 사건이고, 결과가 너무 참혹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다', '법리적으로 다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박 검사도 쌍둥이 딸을 키우는 아빠야. 심정적으론 충격적이고 화가 나는 사건이지만, 증거로 죄를 물어야 하는 만큼 객관적으로 사건을 보기로 한 거야. 새엄마는 아린이를 때려서 사망하게 했어. 그럼, 살인죄가 적용될까?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무조건 살인죄가 되는 건 아니래. 죽일 의도로 때렸다는 고의성이 있거나, 최소한 죽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하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야 하는 거야. 고의성이 굉장히 중요하죠. 고의가 있다면 살인죄로 의율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고의를 판단할 수 없다면 살인죄로 의율할 수 없고 상해치사나 학대치사로 의율할 수밖에 없고. 상해치사나 학대치사 또는 살인죄로 의율함에 따라서, 법정형이 달라지기 때문에 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이 뭔지 알겠지? 바로,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거야. 만약에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상해치사, 학대치사의 형량은 3년 이상의 징역이야. 경우에 따라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도 있어. ▲ 치사냐 살인이냐 하지만, 고의성을 입증하는 게 시작부터 쉽지가 않아. 이 사건과 같이 폭력을 행사해서 그 폭력으로 인해서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 살인의 고의가 있느냐라는 부분을 입증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찾았던 게 유사 판례가 있는지를 저희 입장에서는 제일 먼저 찾았던 것이고. 아동에 대한 흉기가 없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살인죄로 의율된 것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흉기가 사용되지 않은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경우, 지금까지 살인죄로 처벌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는 거야. 가정에서 벌어진 일에 목격자가 있을 리도, CCTV 같은 증거가 있을 리도 없어. 당연히 피해자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없어. 새엄마의 자백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녀 스스로 진실을 이야기하게 만들어야 해. 그렇게 검찰 측의 신문이 시작돼. 검사: 아린이가 사망한 직접적인 원인이 좌, 우측 늑골 16개가 골절되고 그로 인해 허파 파열들의 출혈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새엄마: 제가 때려서 아린이가 죽은 것은 맞지만, 제가 처음부터 아린이를 죽일 의사로 때린 것은 아닙니다. 검사: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서 부러뜨리면 아린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나요? 새엄마: 제가 아린이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지만 아린이가 죽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몇 차례의 신문에도 새엄마는 죽일 의도도 없었고, 죽을지도 전혀 몰랐다는 거야. 새엄마는 끝내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아. 이 와중에 새엄마가 아이 아빠에게 보낸 편지가 있거든. 그 내용을 보여줄게. 남편이라 부르기에 염치없지만 습관으로 생각해 주기 바라요. 변호사는 5년은 징역을 살 것 같다 하셨어요. 저의 죄명이 중개사 시험에 결격사유가 안 된다면 들어와 있는 동안 공부해서 취득할까 합니다. 아이도 엄마의 당당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할 거니까요. 여보, 비록 세상은 동거녀고 의붓딸이지만, 진실로 저는 반려자이고 친딸입니다. -새엄마가 아린이 아빠에게 보낸 편지 中 아이는 날벼락같은 사고를 당한 게 아니야. 새엄마는 아이의 소풍날, 1차 폭행을 무려 35분 동안 했고, 또다시 2차 폭행을 20분간 이어갔어. 거의 1시간 동안 아이를 폭행한 거야. 그 결과, 아이가 사망했어. 이미 35분 동안의 폭력 행사가 이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일반인이라도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창백한 표정이 있다고 하면, 당장 119에 신고하거나 들쳐메고 응급실로 가야 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인데.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폭행을 행사했다는 것은 적어도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다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결국,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검찰은 새엄마를 '살인죄'로 기소했어. 이제부터 이 사건을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는 아주 치열한 법정 싸움이 시작될 거야. 아린이 사건을 위해 검찰에선 '공판대응팀'이 만들어져. 박 검사를 비롯해 여러 명의 검사가 함께 재판에 나서는 거야. 그리고 이 울산 지역 아동학대 사건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 그들을 소개해 줄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자문위원으로 있으면서 또 저는 아동학대 사건 정말 많이 해오고 있었는데요. 그 학대의 정도가 정말 여느 사건을 다 합한 것보다 더 심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혼자서 그렇게 온전히 학대를 당하면서 죽어간 그 아이가 너무 마음이 아팠고요. 이 어머니에 대해서 엄히 처벌을 해야 될 텐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 회의를 하게 됐었죠. 우리 여성 변호사들이 앞으로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이모 같은 마음으로, 이 아이를 위해서 우리가 공동변호인단을 만들어서 함께 지원해 보자…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여성변호사회 165명의 변호사들이 무료 소송지원에 나선 거야.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이 나섰을까? 바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이야. 아린이를 위한 인터넷 카페가 개설됐어. 저는 겨레와 누리의 엄마 공혜정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하늘소풍'이라는 자발적 시민 모임에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서 활동했습니다. -공혜정, 겨례-누리 엄마 혜정 씨는 아린이 사건을 알게 된 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고 해. 아이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학대를 당했는지 어떻게 사망했는지, 좀 알려야 되겠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 마음이었었어요. -공혜정, 겨례, 누리 엄마 저는 성은이, 성광이 엄마. 예전에 '하늘소풍' 카페에서 활동했던 한미영입니다. -한미영, 성은-성광이 엄마 미영 씨도 우연히 아린이 사건에 대해 서명을 받는다는 글을 보고 커피 한 잔 가져다주려고 갔다가 함께하게 된 거래. 그때 저희 애들이 어렸었거든요. 3살, 6살이었거든요. 이런 같은 시간대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있구나 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 사건도 조금 서명이 필요하면 나도 나가서 서명을 받아줘야 하겠다… -한미영, 성은, 성광 엄마 두 사람 모두, 그전까지는 시민운동을 해본 적도, 아동학대 관련 일도 해본 적 없는, 단지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었어. 이명숙 변호사를 포함한 165명의 변호사들은 사건기록을 확인하고 엄중한 처벌을 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해. 아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카페에는 한 달 만에 무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누가 시킨 사람도 없는데 자발적으로 부모들이, 국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 치열한 법정 공방 그렇게 2013년 12월, 재판이 시작됐어. 그날 재판 현장에는 아린이를 위해 나선 사람들도 함께했어. 모두 엄중한 판결이 내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인 거야. 박 검사를 비롯한 공판대응팀은 해외 아동학대 판례들을 분석해 법정에서 발표를 하고, 부검의 증언 등을 통해 살인의 증거들을 제시했어. 비장한 각오였다고 하면 될까요? 일단은 국민들의 관심이 굉장히 많이 집중되어 있던 사건이고, 저희가 살인죄로 기소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살인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재판에서 새엄마는 뭐라고 증언했을까? 여전히 죽일 생각은 없었다라고 주장해. 그런데 너무나 어이없는 사실이 또 하나 있었어. 이 새엄마에게 살인 말고 또 다른 혐의가 있었어. 도둑질했다고 그 버릇을 고쳐야 된다고 훈육 차원에서 이렇게 내가 폭행을 했다라고 하는데요. 자기는 이전에, 이웃집에서 명품 반지 420만 원 상당을 훔쳐 온 적이 있어요. 이건 절도로 처벌받았거든요.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검사는 신문 때 새엄마에게 이 부분에 대해 물어봤어. 남의 물건을 훔쳤는데 불구하고, 피의자가 아린이의 도벽을 문제행동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면서. 그러자 새엄마는 묵묵부답이었어. 할 말이 없었겠지. 2300원을 훔쳤다는 것도 엄마의 주장이지만, 설사 아린이에게 문제행동이 보였어도 엄마의 행동은 용납되지 않아. 아린이가 새엄마와 함께 산 기간은 만 4세부터 7세까지야. 너무 어린 나이였지. 심지어 새엄마는 아이가 도벽이 있고 거짓말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하고 다녔다고 해.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닌 걸까? 그럼, 실제 아린이는 어떤 아이였을까? 아린이 사진들을 좀 더 보여줄게. 아린이는 말이야. 미소가 너무 예쁘고 인사도 잘하는 밝은 아이였대. 공부도 아주 잘했어. 최근 시험에서는 전 과목 100점을 맞았다고 해. 아이는 늘 집에 안 가고 싶어 했었거든요. 학교에 있는 걸 좋아했었고 굉장히 학교에서는 밝고 쾌활하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그런 아이였어요.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그리고 아린이는 친구의 작은 부탁도 소홀히 하지 않는 착한 아이였어. 어린이날 '모범 어린이'로 표창도 받았고, 책도 많이 읽어서 독서왕으로 통했어. 아이가 쓴 독서 감상문이 있어. 제목: 무지개 물고기 무지개 물고기는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고기이다. 하지만 무지개 물고기는 자기가 가장 아름답다고 욕심을 부린다.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 어떤 내가 아끼는 물건이라도 나눠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곤 했대. 우리 엄마 참 예뻐요. 우리 엄마 요리를 참 잘해줘요.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까? 이쯤에서 우리가 꼭 짚고 가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어. 엄마의 행위만큼 중요한 부분이야. 바로, 아이의 아빠. 직업상 떨어져 살고 있고 한 달에 몇 번만 집에 가는 상황이라 학대에 대해 몰랐다는 입장이야.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 소풍을 갔다고 했던 애가 왜 욕조에서 익사했다고 하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강력하게 의문을 갖고 있어야 되잖아요. 보통 왜 계모의 말이 다른지.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어느 것 하나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저도 애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신랑이 군인이다 보니까 어쩌다 한 번씩 한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올 때도 사나흘에 한 번 올 때도 있지만, 새로 생긴 상처는 귀신같이 아빠들이 알아채거든요. 그래서 저는 하나도 이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 거예요. 왜 몰라? 왜 아빠가 가만히 있지? -한미영, 성은, 성광이 엄마 아린이는 이런 사실들을 아빠에게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정황상 아빠에게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그럼, 왜 말하지 않았을까? 아린이의 마음에 대해 전문가에게 물어봤어.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는 관계일 수밖에 없어 보이고 그런 아이에게 '우리 엄마가 나를 아프게 했어요'라고 말하는 건 꽤 쉽지 않은 일이에요. 이 얘기를 하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뿐만 아니라, '이 얘기를 하면 넌 나쁜 아이가 될 거야', '이 얘기를 하면 우리 가정이 파탄날 거야', '이 얘기를 하면 너네 아빠가 슬퍼하실 거야' 이 말만으로도 아이는 폭로하지 않거든요. -김태경, 우석대 심리상담학과 교수 아린이는 이미 친모와 이별한 경험이 있고 또다시 가정에 문제가 생기길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대. 새엄마 또한 이렇게 진술을 했어. 아린이가 아빠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저와 아빠의 관계가 안 좋아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어요. 새엄마는 이걸 알면서 때렸어. 그리고 학대에 대해서 몰랐다는 아빠는 새엄마의 학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가 된 적이 있거든. 당시 아린이의 유치원 교사가 신고를 한 거였어. 아이에게 유독 멍이 많고 상처가 많자, 유치원 교사가 관찰일지를 썼대. 관찰일지의 일부 내용을 보여줄게. -2010년 9월 6일 엄마의 이야기로는 모기가 잘 타는 체질이며 넘어져 난 상처로 다리에 밴드를 붙여 놨으니 떼지 말아 달라고 함. 여자아이 치고 치마를 입고 오지 않음. 다리의 많은 상처가 신경 쓰임. -2010년 10월 13일 검도학원에서 1학년 오빠에게 머리를 맞았다고 이야기함. 오빠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니 말하지 못함. 거짓말은 나쁘다고 이야기하니 엄마에게 맞았다고 함. -2011년 5월 13일 배와 등이 아프다고 함. 등을 보니 멍자국이 심함. 신고 후, 상담사와 아빠가 통화한 적이 있어. 아빠의 반응이 어땠을까? 아빠의 답은 이랬어. 아이가 버릇이 없고 문제행동이 심해서 엄마가 때릴 수밖에 없어요. 다른 가정들도 다 그렇잖아요? 이렇게 다른 사람이 가정사에 참견하는 건 잘못된 거 아닙니까? 법적인 조치를 하더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런 아빠가, 새엄마의 학대 사실을 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었음에도, 방관한 거야. 방임인 거죠. 모를 리가 없잖아요, 한 집에 살면서. 어쩌다 한 번이면 거짓말하거나 적당히 변명해서 넘어가지만, 지속적이라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고요. 그 아버지는 그렇게 하더라도 할 수 없다고 내버려 둔 거고, 그건 방임인 거죠.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결국 아빠 또한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게 됐어. ▲ 무죄의 의유를 뒤집어라 엄마에 대한 재판도 계속 이어졌고, 검찰은 새엄마에 대해 사형을 구형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계모 40살 박 모 씨에게 사형이 구형됐습니다. 검찰은 유일한 보호자인 계모 박 씨가 의붓딸을 살해한 것은 반인륜적 범죄라면서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정 최고형을 구형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이제 판결만이 남았어. 살인죄가 인정이 됐을까? 하지만 살인죄는, 무죄가 나왔어. 상해치사만 인정되면서 15년형이 선고돼. 그때 그 충격은 그냥 정신이 멍하니 나갔다고 할까? 그때 일어났는데 다리가 푹 꺾여요.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게 될 거야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컸던 거고.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왜? 왜? 왜? 정말 왜? 왜? 왜? 뭔데? 살인죄가 아니면 뭔데? 상해치사가 뭐고 치사가 도대체 뭔데? -한미영, 성은, 성광 엄마 왜 살인죄가 적용되지 못했는지, 이유 중 몇 가지를 함께 볼게. 먼저, '피고인이 일관되게 살인의 고의를 부인하여 온 점'. 새엄마는 경찰 수사부터 법정까지 일관되게 살인의 고의를 부인했어. 그러니까 진술에 일관성이 있다는 거야. '갑자기 살해의 고의가 생겼다고 볼 정황이 없는 점'. 새엄마는 훈육이란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했고, 사건 당일도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아서 갑자기 살해의 고의가 생겼다고 볼 수 없다는 거지. '흉기를 사용하지 않은 점'. 사건이 집에서 발생했잖아. 마음만 먹으면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거야. '머리와 몸통을 가격하는 방법이 달랐다는 점'. 새엄마가 머리는 주먹으로, 몸통은 발로 구분해서 때렸다는 거야. 무의식적으로라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발로 머리는 가격하지 않았다는 거지. 사실, 15년형이면 당시 아동학대 사망사건으로는 높은 형량이었대.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안 되겠지? 때려서 죽인 게 확실한데 왜 살인죄가 아닐까? 검찰은 즉시 항소를 했어.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사실은 검사 입장에서는 저희가 좀 더 입증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 부분을 저희들이 입증을 하지 못하면 또 항소심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라고 생각을 해서. 아예 백지상태에서 다시 한번 이 사건을 살펴보자…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피고인 측도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어. 이제 다시 시작이야. 박 검사를 비롯한 검사들은 1심에서 왜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검토했어. 법리적으로 살인죄를 입증해야 하니까. 그리고 박 검사는 이런 생각을 했대. 현재 부검결과는 새엄마의 진술을 듣기 전 결과잖아. 그녀의 진술을 들은 지금, 다시 한번 부검 결과를 체크해본다면, 혹시 진술과 부검 결과 사이에 다른 지점이 있지 않을까? 했어. 그렇게 아린이에 대한 부검 결과를 재감정 의뢰했어. 재감정은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가 진행했어. 이 교수는 처음 이 사건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해. 부검 사진을 한번 쭈르르르륵 먼저 보는데, 여기 속에서부터 쫙 올라오는 거예요. 엉덩이를 맞았는데 하도 맞아가지고. 맞으면 피가 나요. 어디 상처받았을 때 보면 나중에 나으면 단단하게 되잖아요. 방석 하나가 엉덩이 쪽에 들어있는 것 같아요. 하얗게 쫙 깔려 있어요. 이게 얼마나 맞으면 이렇게 엉덩이를 맞을 수 있을까. 여태까지 내가 맞은 거 많이 봤지만 이렇게 맞은 아이는 처음 본다… -이정빈 교수, 법의학자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폭행의 흔적이 너무 뚜렷한 거야. 그리고, 갈비뼈 골절과 폐 손상 외에 심장에도 손상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 1심에서 치명적인 부위를 구분해서 발로 찼다고 했잖아? 폐에 이어 심장까지 손상을 입었다면, 몸통 부위를 발로 찬 것이 머리만큼 충분히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좀 더 강조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새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욕실로 가서 욕조에 들어간 거라고 계속 진술했어. 그래서 아이의 통증 수준과 자력 보행 가능성에 대해 검토도 의뢰했어. 이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볼게. 나 자신이 (갈비뼈) 6~7개를 부러져 봤어요. 일어나려고 그러면 이걸(의자 손잡이를) 누르면서 일어나야 해요. 으악~ 소리가 나요. 침대에 눕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해요. 근데 얘는, 목욕탕을 가는 게 때리는 거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에요. 전쟁영화를 보면 총 맞고 다 그런데도 그냥 기어가잖아요. 애도 마찬가지예요. 아파도 갔을 거야, 살려고. 이제 그다음이 문제인데, 목욕탕 욕조를 넘어갈 수 있느냐. 이것(갈비뼈) 때문에 못 넘어갑니다. 겨우 욕조 턱에 앉았다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물로 떨어졌을 거예요. 그게 더 맞는 설명이라고 봐요. -이정빈 교수, 법의학자 욕실까지는 초인적인 힘으로 걸어갔을 수 있지만, 욕조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을 거래. 법의학적 소견으로는, 새엄마의 진술 중 거짓된 부분이 있는 거야. 그리고, 앞에서 몸통 멍사진 봤잖아. 근데, 팔에는 멍이 없었대. 이게 무슨 뜻일까? 누군가 네 옆구리를 발로 차면 어떻게 하겠어? 본능적으로 팔로 몸 쪽을 막게 된다는 거야. 근데 팔에 멍이 없었다는 건,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거나, 아이의 상태가 막을 수 없는 상황일 수 있다는 거야. 마지막으로 중요한 의문점이 있어. 새엄마는 이 상황에서 아이가 위험한 상태라는 걸 인식할 수 없었을까?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정말 알지 못했을까? 얼굴이 상당히 창백했을 겁니다. 심장이 다쳤기 때문에 산소 공급이 안 돼요. 그래서 청색증같이 시퍼렇게 되면 '이거 큰일 났다' 금방 알지. 얘 문제 있네, 금방 알지. -이정빈 교수,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가 작성한 감정서의 일부야. 아이들의 늑골은 아주 유연하여 잘 부러지지 않는다. 가해자의 발길질은 고수의 경지라고 볼 수 있다. 가벼운 기침만 하여도 악 소리가 날만큼 골절 부위가 아프다. 발길질 때마다 통증은 골절 수만큼 배가될 것이다. 늑골 골절이 일어나는 발길질 때마다 변사자는 단말마의 소리를 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검 감정서 中 감정서 쓴 게 상당히 좀 격하게 써 놓았어요. 탁 부러져 있는데 몇 개 부러져 있는데 딱 치면, 으악 소리를 지르려다가 못 지르고. 그거는 옆에서 그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아프니까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또 아프니까. 그걸 생각해 보라고. 나 그거 하면서, 진짜 눈물이 나더라고. -이정빈 교수,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는 항소심 법정에서 이 내용들을 증언했어. 법정 안 모두가 숨을 죽이고 증언에 집중했어. 마치 내가 옆에서 이 아이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에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그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 내가 걔랑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 현관문이라도 내가 그 순간에 두드려줬으면 그거를 멈출 수는 있었을 건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너무 미안해요. -한미영, 성은-성광이 엄마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가 항소심에서 공개가 돼. 새엄마의 휴대폰에서 지워졌던 녹음 파일이 복구가 됐어. 그 녹음파일에는 아린이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어. 아린이: 제가 수학 시험지를 선생님께 받아서 점수를 받는 데 90점이어서. 실수를 2개 해서 엄마한테 혼이 날까 봐 틀린 문제를… 엄마: (퍽! 때리는 소리) 말 똑바로 못해? 아린이: 틀린 문제를 고쳤습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거짓말 안 하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엄마: 시험지 고치는 것만 거짓말 안 하면 되나 보지? 아린이: 아니요. 엄마: (퍽!) 또 뭘 잘못해서 혼이 났을까? 아린이: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한테 거짓말하지 않고 시험 칠 때는 실수하지 않도록 어려운 시험 문제와 여러 가지 문제를 확인하면서 시험 치겠습니다. 엄마: 시험을 (퍽!) 못 쳐서 지금 벌 받은 거야? 아린이: 아니요. 엄마: 지금 (퍽!) 시험을 못 쳐서 벌 받았어? 아린이: 아빠나 다른 사람이 왜 다쳤냐고 물어보면, 책상에 부딪혔거나 엄마에게 혼났다는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돼요. 엄마가 집에 없을 때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께서 전화를 안 받으시면 제가 참고 있어야 돼요. -녹음 파일 내용 中 폭행을 당하는 듯한 소리가 나는데 아이는 울음은커녕 비명,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아. 기계처럼 자신의 잘못을 얘기하고 있어. 녹음파일 안에 담긴 아린이의 마음과 상태는 어떤 것일까? 이건 덫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폭언하고 집요하게 말꼬리 잡고 그냥 속된 표현으로 '시비터는' 거잖아요. 여성의 태도는 시종일관 그래요. 그러니까 아이는 최대한 노력을 해서 엄마가 듣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자 애를 써요. 이 상황에서 그녀는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근데 그건 객관적인 상황에 맞는 게 아니라 그녀의 머릿속에서 듣고 싶다고 그날 그 당시에 그 상황에서 욕구에 맞춰서 아이가 그 말을 해주길 기대해요. 이게 말이 돼요? 말이 될 수 없는 상황인데 그게 항상 충족이 되어야만 이 학대가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 입장에서는 온통 엄마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만 하는, 그게 굉장히 가슴 아픈 지점이었어요. -김태경, 우석대 심리상담학과 교수 이 녹음파일은 지속적인 아동학대의 확실한 증거가 됐어. 근데, 이게 왜 녹음이 되어 있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문가는 새엄마가 나중에 넌 전에도 이랬어 이렇게 아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기 위해 녹음한 것으로 추정해. 도대체 이 엄마에게 아이는 어떤 존재였을까?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때리고 싶었는데 때려도 되는 대상의 아이였던 거죠. 그래서 그녀는 4년 동안 아이를 훈육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녀는 4년 동안 아이를 가스라이팅한 것.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남들에게 꽤 멋진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 하고 멋진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서 아이가 필요한 거고. 그냥 아이가 아니라 자기가 말하면 척척 해대는 로봇 같은 아이가 필요했던 거예요. 이 아이를 로봇으로 만들기 위해서 계속 지배하고 통제하고 했던 거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면 하나의 가설일 뿐이긴 하지만, 아이가 엄마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여지도 있어요. 그 대신 필연적으로 자기는 나쁜 아이였을 거예요. 왜냐하면 엄마가 늘 그런 식의 프레임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거든요. 나는 좋은 엄마, 너는 나쁜 아이.. -김태경, 우석대 심리상담학과 교수 ▲ 살인죄 판결, 그 이후 1심에서 살인죄는 무죄, 상해치사만 인정이 됐어. 그럼 항소심에선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소풍을 가고 싶다던 7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박 모 씨에 대한 항소심이 열린 부산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박 씨에게 1심보다 형량이 3년 늘어난 징역 18년을 선고했습니다. 가장 큰 쟁점이 됐던 적용 죄형에 대해서 항소심은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1심과 달리 살인죄를 적용했습니다. 국내에서 훈육 등의 이유로 아동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살인죄로 인정받은 첫 판결로, 지난달 시행된 특례법과 국민의 법 감정도 영향을 줬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흉기가 사용되지 않은, 때려져 숨지게 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처음으로 살인죄가 인정된 거야. 피고인 측이 상고를 하지 않아서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이 됐어. 드디어 그토록 바랐던 선례를 남기게 된 거야. 아이 아빠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4년 형을 받았어. 참 다행이다… 이제 피해자의 한을 좀 풀어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살인죄 인정 여부 이런 부분보다는, 피해자의 한을 풀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한 사람이 외치면 미친 사람 소리 같지만, 백 사람이 외치면 '무슨 일이야?' 하고 궁금해하고, 천 사람이 외치면 만 사람이 참여한다라는 그런 진리를 이 활동을 통해서 깨닫게 됐습니다. 그 모든 힘의 중심에는 한 아이가 있었던 거예요. 저는 그 아이의 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2013년도는 '꼬꼬무'에서도 다룬 적 있는 칠곡 아동학대 사망 사건, 서울에서 친부와 계모에 의해 아이가 사망한 사건, 그리고 이번 울산 사건까지 아동학대사망 사건이 연이어 터졌어. 그 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됐어. 기존에 학대치사죄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집행유예도 가능했지만, 특례법 시행 후는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이 가능해졌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동학대에 관한 소식들을 듣고 있어. 지금부터 아동학대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줄게. 너나 나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야. 잘 들어봐. 여전히 아동학대는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빙산의 일각만이 드러날 뿐인 거고요. 이 아동학대가 정말 없어지기 위해서는 이웃들 신고 열심히 해야 돼요. 그리고 유치원이나 학교나 학원이나, 정말 누구든지 아동학대로 의심되면 신고해야 되고요. 적극적인 신고만이 학대받는 아이들 보호해 줄 수 있고, 학대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아이에게 일어난 일을 '아무도 모른다'가 아니라, '누구나 안다'가 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 그랬다면, 아린이도 그날 너무나 가고 싶었던 소풍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부터 눈을 감고 상상을 한 번 해보자. 바람은 솔솔 불고 날씨도 너무 화창해. 아린이는 김밥과 음료수, 과자가 가득 든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열고 나와. 학교를 향해 콩콩 뛰어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 그리고 친구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했을 거야. 아린아 과자 뭐 가져왔어? 우리 맨날맨날 소풍날이면 좋겠다. 그치? 그렇게 도착한 아쿠아리움에는 신기한 물고기가 가득해. 친구들과 손을 꼭 잡고 수족관을 바라봐. 이사를 가면 다시 보지 못할 친구들과의 이 순간이 아린이는 너무나 소중해. 집에 돌아온 아린이는 책상에 앉아 일기를 써. 바다거북이가 엄청 컸다. 친구들과 김밥을 먹는데 너무 맛있었다. 소풍을 가서 정말 정말 행복했다.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한 소풍이었겠지? 일곱 살 아린이가 그렇게 무럭무럭 자랐다면, 올해 대학교에 입학해서 미팅도 하고 알바도 했겠지.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시 11월 19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야. 아동학대의 예방과 방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날이야. 가슴 아프고 한편으로 보기 힘들 수도 있지만, 오늘 아동학대사건을 다룬 이유이기도 해. 이번 기회로 우리 모두 아동학대에 대해, 부모라는 이름의 의미와 무게,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새엄마였어. 어쩌면 우리도 '새엄마, 새아빠'가 아이들을 더 학대할 거라는 편견이 있을 수도 있어. 2014년도에 발표된 보건복지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학대 피해 아동 중 77%는 친부모에 의한 학대였어. 앞에서 아동학대를 근절하는 방법 중 하나가 신고라고 했잖아. 이런 편견이 없어야 암수범죄처럼 감춰진 아동학대,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좀 더 잘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거짓말한다 며 발로 차 갈비뼈 16군데 골절…초2 딸 학대로 죽인 엄마의 황당한 변명
등록일2024.11.29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8일 방송된 '아무도 몰랐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정이랑, 서효림, 최진혁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한 아이의 죽음 때는 2013년 10월 24일. 119로 한 통의 신고전화가 들어와. 저희 아이가 호흡이 없고 얼굴색이 변하고 있어요. 제발 빨리 좀 와 주세요! 다급한 아이 엄마의 신고 전화였어. 아이가 욕조에서 목욕을 하다가 빠졌는데 호흡이 없다는 거야.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어. 안타깝게도 하늘나라로 간 아이가 바로 이 아이야. 당시 초등학교 2학년, 만 일곱 살 이아린(가명). 너무나 예쁘고 고운 아이가 세상을 떠난 거야. 부모 심정이 어땠겠어? 장례식장은 그야말로 비통한 분위기야. 특히, 엄마는 아린아~ 엄마도 곧 따라갈게. 아린아~ 라고 아이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어. 아이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던 엄마는 끝내 실신까지 하고 말아. 실신한 엄마는 병원에 실려간 뒤 치료를 받았어. 그런데, 실신한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어. 바로, 경찰이야. 당신을 상해치사 혐의로 체포합니다. 사람의 신체에 상해를 가해 사망하게 했다는 거야. 체포된 엄마는 완전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어. 엄마를 체포하자 주변에서도 난리가 났어. 담당 형사에게 당시 상황을 들어볼게. 불난 집에 부채질 한다는 그런 반응이었어요. 안 그래도 아이도 사망했고, 그것 때문에 화장장에서 실신해서 응급실에서 진료 받고 나오는 피의자를 그렇게 저희가 체포해 간다는 거에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한 행동을 하느냐'라며…. -고성원 경위, 당시 담당 형사 아린이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사진을 보여줄게. 그냥 평범한 모습이야. 그런데 사실, 아린이 엄마는 친모가 아니었어. 아이 아빠와 사실혼 관계로 4년 전부터 아린이를 돌봐왔던 거야. 근데 새엄마라는 이유를 아이의 죽음과 연관 지을 순 없지. 이건 친엄마냐 새엄마냐의 문제가 아니니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엄마와 아린이는 사이좋은 모녀였대. 엄마는 학부모 대표를 맡을 정도로 아린이 일에 적극적이었어. 아이의 일기장 속엔 부모의 말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정성스레 글을 썼대. 학교, 학원 선생님들도 잘 챙기고, 주변 지인들까지 살뜰히 챙기는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거야. 그런 엄마가 상해치사 혐의로 체포된 거야. 그럼, 이런 상황에서 아이 아빠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빠는 아이는 사고로 죽은 겁니다. 이거 과잉수사예요. 나 변호사 부를 거예요 라며, 아린이는 안타깝지만 사고로 죽은 것인데 경찰이 과잉수사를 한다고 펄쩍 뛰었어. 근데, 지금까지 이야기 중에 이상한 거 없었어? 아린이가 욕조에서 익사했다고 했잖아. 당시 아린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야. 영유아도 아닌데 욕조에서 익사를 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지. 체포된 새엄마는 사고가 난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 지금부터 그녀가 말하는 그날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봐. ▲ 엄마의 진술 다시 2013년 10월 24일, 이날은 아이의 소풍날이었어. 아쿠아리움으로 체험학습을 가기로 되어 있었어. 아이는 이 소풍을 너무너무 기대하고 있었다고 해. 며칠 뒤 다른 곳으로 이사할 예정이라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거든. 엄마는 음식을 준비하고,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 가방을 쌌어. 그 후, 아린이를 깨웠는데 아이가 이런 말을 했대. 엄마~ 나 좀 어지러워요. 미열도 있고, 얼굴도 창백해 보이고 해서 엄마는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어. 상의 끝에 선생님은 아린이를 소풍에 안 보내는 게 좋겠다고 대답을 했다는 거야. 엄마도 아린이가 소풍을 너무 가고 싶어 했지만, 아이의 컨디션 때문에 소풍은 보내지 않기로 한 거야. 그 후, 아이가 반신욕을 하고 싶다고 했고, 이삿짐을 싸다가 욕실로 들어가 보니 아이가 이미 욕조에 빠져 있었다는 거야. 엄마는 얼른 아린이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했대. 하지만 미동이 없자 다급히 119에 신고를 했고, 그 후에도 119의 지시에 따라 계속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형사들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아이가 사망한 욕실 쪽에서 좀 이상한 게 발견이 됐거든. 직접 들어볼게. 상당히 의문점이 많은 사건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욕조에 빠져 죽었다고 119 신고를 했었는데, 현장에 갔었을 때는 욕실 바닥도 청소된 것처럼 깔끔했고, 보통의 사건은 아니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성원 경위, 당시 담당 형사 사건이 일어난 욕실 사진을 보면, 아주 깨끗하지? 그런데 이걸 봐. 같은 곳을 찍은 사진이야. 혈흔 반응을 보기 위해 검사를 했더니 혈흔이 있었던 흔적들이 나타난 거야. 이걸로 뭘 알 수 있을까? 아린이가 피를 흘렸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가 있지.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에 신고하는 와중에, 엄마가 이 피를 닦았다는 사실. 아이가 욕조에 빠져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그럴 정신이 있었을까? 물에 빠져 죽었다는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형사들은 새엄마에게 물었어. 아린이가 욕실에서 정확하게 어떤 상태였는지, 아이가 반신욕을 하면 중간에 확인을 안 하는지, 집 청소를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등 꼼꼼히 당시 상황을 물었어. 또 새엄마의 손, 발 상태를 확인해 봤는데, 발가락에서 멍이 발견됐어. 발가락에 왜 멍이 들었는지 묻자, 새엄마는 하이힐을 신어서 멍이 들었다고 대답했어. 형사가 엄마에게 다시 물었어. 아린이가 왜 그렇게 된 것 같냐고. 새엄마의 대답은 이거야. 정말 저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사실, 형사들이 새엄마에게 이렇게 집요하게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있었어. 바로, 부검결과 때문이야. 그 내용을 알려줄게. 아린이는 키 123cm에 몸무게 20kg로 마른 편이었어. 엄마는 아이가 익사한 거라고 했어. 그런데, 아린이의 기관지 내에서 거품, 포말이 발견되지 않았고, 폐에도 물이 찬 흔적이 없었어. 이건, 사인이 익사가 아니라는 거야. 그뿐만이 아니야. 아이의 우측 치아는 탈구된 상태였어. 머리에도 여러 군데 두피하출혈이 발견돼. 그리고, 양쪽 24개의 갈비뼈 중 16군데가 부러져 있었어. 부러진 갈비뼈에 의해 양쪽 폐도 파열된 상태였어. 작은 아이의 몸에는 너무나 많은 상처들이 남아있었어. 그렇게 신문은 10시간 넘게 진행돼. 피의자를 신문하면서 자백을 받아야 하는 게 중요했고요. 폭행했다는 말은 일절 입밖에 꺼내지 않았었으니까, 태연하게 거짓말을 잘하고 있다,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고성원 경위, 당시 담당 형사 ▲ 그날의 진실 형사들을 계속해서 물었어. 전에 했던 진술에서 틀린 부분이 있냐고. 그런데 갑자기 새엄마는,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기 시작해. 아린이가 도벽이 조금 있었습니다. 식탁에 돈을 가져갔냐고 하니까 거짓말을 해서 홧김에 발로 옆구리를 때렸습니다. 진술이 바뀌었어. 소풍날 폭행이 있었다고 말한 거야. 아린이가 '엄마 저 진짜 안 훔쳤어요'라는 말을 듣고 그때 당시 눈이 뒤집혀서 보이는 대로 때린 것 같습니다. 그런 뒤 아린이보고 '보기 싫으니깐 네 방에 들어가'라며 소리를 지르며 여러 번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아린이 아빠에게 전화를 하여 사실을 이야기하면 걱정할까봐 아린이가 소풍을 갔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새엄마 진술 내용 中 그 후 새엄마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TV를 켜놓고 커피를 마셨대. 새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훔쳐갔다는 돈은 2,300원이었어. 설사, 아이가 그 돈을 훔쳤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새엄마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아이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는 거야. 그럼, 이렇게 아이가 사망한 걸까? 20~30여 분이 흐른 뒤, 아린이는 방에서 나와 엄마에게 다가갔어. 엄마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엄마 소풍 가고 싶어요. 이 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은 핏기가 없고 창백해 보였대. 그럼 이 말에 새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다시 아이를 발로 차기 시작했어. 미안하다는 말이 소풍이 가고 싶어서 한 말로 느껴졌다는 거야. 2차 폭행이 한동안 이어지고, 아이는 거실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고 해. 그 후, 새엄마는 '애한테 멍이 들었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대. 그래서 멍이 빠지라고 아이에게 반신욕을 시켰다는 거야. 아이는 엄마의 말에 일어나 휘청거리며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고 해. 형사는 새엄마에게 아린이가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내버려 둔 것이 아니냐 라고 물었어. 엄마는 그건 말도 안 된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는 엄마가 어디에 있냐 라고 항변했어. 형사들은 또다시 물었어.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어떻게 갈비뼈를 16개나 부러뜨리냐 고. 그러자 새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나 라며, 발로 세게 때린 건 맞지만 엄마가 어떻게 애를 죽이려고 때렸겠냐는 거야. 새엄마에게 평소 아린이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니 이런 말도 했어. 이렇게 말씀드리면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우린 정말 친구 사이 같았어요. ▲ 학대의 증거들 형사들은 아이의 장례기간 동안 숨 가쁘게 뛰어다니며 수사를 하고 증거를 모았어. 사실, 아이의 몸에는 소풍날 입은 상처가 아닌 것도 있었거든. 부검에서 엉덩이 부위의 만성 출혈, 조직의 섬유화도 발견이 됐어. 조직의 섬유화는 굳은살 생긴 것처럼 됐다는 거야. 형사들은 지속적인 학대의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아린이의 진료기록에서 확인된 내용들이 있어. 사망사건 1년 전인 2012년도에 찍은 아이의 다리 엑스레이야. 대퇴골이 골절된 거야. 금이 간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부러진 상태야. 당연히 새엄마에게 이 상처에 대해 물어봤지. 학원 계단을 뛰어 내려오다 넘어져 부러진 거래. 이 상태로 아이가 깨금발을 해서 집까지 왔다는 거야. 이게 끝이 아니야. 2012년도 진료기록은 더 있었어. 화상을 입은 거야. 아이의 양손, 다리, 발까지. 이식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심한 상처였어. 새엄마는 이 상처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을까? 아이 아빠가 뜨거운 물로 해놓은 걸 아이가 모르고 샤워기를 틀어서 화상을 입었다는 거야. 새엄마는 소풍날 폭행은 인정했지만, 골절과 화상에 대해서는 절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 지속적인 학대는 부인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반복되는 신문 과정에서 결국 새엄마는 골절과 화상 또한 자신이 한 일임을 시인해. 골절의 이유는, 아이가 학원을 갔다가 집에 30분 늦게 들어왔기 때문이래. 약속을 어겼다고 다리를 발로 찼다는 거야. 화상은, 아이문제로 아이 아빠와 싸우게 되자 화가 나서 아이를 잡고 샤워기 뜨거운 물을 뿌렸다는 거였어. 이게 말이 되는 일이니?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새엄마는 학대 정황들이 추가 확인되며 상해치사가 아닌 학대치사로 검찰에 송치돼.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40살 박 모 여인이 1시간 가량의 현장 검증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 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흥분한 일부 주민들의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그리고, 이 사건으로 큰 고민에 휩싸인 한 사람이 있어. 직접 만나볼게. 사건 당시에는 울산지방검찰청 강력사건 담당 검사였습니다. 이 사건은 그냥 흉기로 인한 살인이나 이런 것과 달리 사망에 이를 정도의 폭력이 행사된 사건이고, 결과가 너무 참혹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다', '법리적으로 다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박 검사도 쌍둥이 딸을 키우는 아빠야. 심정적으론 충격적이고 화가 나는 사건이지만, 증거로 죄를 물어야 하는 만큼 객관적으로 사건을 보기로 한 거야. 새엄마는 아린이를 때려서 사망하게 했어. 그럼, 살인죄가 적용될까?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무조건 살인죄가 되는 건 아니래. 죽일 의도로 때렸다는 고의성이 있거나, 최소한 죽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하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야 하는 거야. 고의성이 굉장히 중요하죠. 고의가 있다면 살인죄로 의율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고의를 판단할 수 없다면 살인죄로 의율할 수 없고 상해치사나 학대치사로 의율할 수밖에 없고. 상해치사나 학대치사 또는 살인죄로 의율함에 따라서, 법정형이 달라지기 때문에 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이 뭔지 알겠지? 바로,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거야. 만약에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상해치사, 학대치사의 형량은 3년 이상의 징역이야. 경우에 따라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도 있어. ▲ 치사냐 살인이냐 하지만, 고의성을 입증하는 게 시작부터 쉽지가 않아. 이 사건과 같이 폭력을 행사해서 그 폭력으로 인해서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 살인의 고의가 있느냐라는 부분을 입증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찾았던 게 유사 판례가 있는지를 저희 입장에서는 제일 먼저 찾았던 것이고. 아동에 대한 흉기가 없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살인죄로 의율된 것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흉기가 사용되지 않은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경우, 지금까지 살인죄로 처벌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는 거야. 가정에서 벌어진 일에 목격자가 있을 리도, CCTV 같은 증거가 있을 리도 없어. 당연히 피해자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없어. 새엄마의 자백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녀 스스로 진실을 이야기하게 만들어야 해. 그렇게 검찰 측의 신문이 시작돼. 검사: 아린이가 사망한 직접적인 원인이 좌, 우측 늑골 16개가 골절되고 그로 인해 허파 파열들의 출혈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새엄마: 제가 때려서 아린이가 죽은 것은 맞지만, 제가 처음부터 아린이를 죽일 의사로 때린 것은 아닙니다. 검사: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서 부러뜨리면 아린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나요? 새엄마: 제가 아린이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지만 아린이가 죽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몇 차례의 신문에도 새엄마는 죽일 의도도 없었고, 죽을지도 전혀 몰랐다는 거야. 새엄마는 끝내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아. 이와중에 새엄마가 아이 아빠에게 보낸 편지가 있거든. 그 내용을 보여줄게. 남편이라 부르기에 염치없지만 습관으로 생각해 주기 바라요. 변호사는 5년은 징역을 살 것 같다 하셨어요. 저의 죄명이 중개사 시험에 결격사유가 안 된다면 들어와 있는 동안 공부해서 취득할까 합니다. 아이도 엄마의 당당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할 거니까요. 여보, 비록 세상은 동거녀고 의붓딸이지만, 진실로 저는 반려자이고 친딸입니다. -새엄마가 아린이 아빠에게 보낸 편지 中 아이는 날벼락같은 사고를 당한 게 아니야. 새엄마는 아이의 소풍날, 1차 폭행을 무려 35분 동안 했고, 또다시 2차 폭행을 20분간 이어갔어. 거의 1시간 동안 아이를 폭행한 거야. 그 결과, 아이가 사망했어. 이미 35분 동안의 폭력 행사가 이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일반인이라도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창백한 표정이 있다고 하면, 당장 119에 신고하거나 들쳐메고 응급실로 가야 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인데.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폭행을 행사했다는 것은 적어도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다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결국,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검찰은 새엄마를 '살인죄'로 기소했어. 이제부터 이 사건을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는 아주 치열한 법정 싸움이 시작될 거야. 아린이 사건을 위해 검찰에선 '공판대응팀'이 만들어져. 박 검사를 비롯해 여러 명의 검사가 함께 재판에 나서는 거야. 그리고 이 울산 지역 아동학대 사건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 그들을 소개해 줄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자문위원으로 있으면서 또 저는 아동학대 사건 정말 많이 해오고 있었는데요. 그 학대의 정도가 정말 여느 사건을 다 합한 것보다 더 심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혼자서 그렇게 온전히 학대를 당하면서 죽어간 그 아이가 너무 마음이 아팠고요. 이 어머니에 대해서 엄히 처벌을 해야 될 텐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 회의를 하게 됐었죠. 우리 여성 변호사들이 앞으로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이모 같은 마음으로, 이 아이를 위해서 우리가 공동변호인단을 만들어서 함께 지원해 보자…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여성변호사회 165명의 변호사들이 무료 소송지원에 나선 거야.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이 나섰을까? 바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이야. 아린이를 위한 인터넷 카페가 개설됐어. 저는 겨레와 누리의 엄마 공혜정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하늘소풍'이라는 자발적 시민 모임에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서 활동했습니다. -공혜정, 겨례-누리 엄마 혜정 씨는 아린이 사건을 알게 된 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고 해. 아이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학대를 당했는지 어떻게 사망했는지, 좀 알려야 되겠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 마음이었었어요. -공혜정, 겨례, 누리 엄마 저는 성은이, 성광이 엄마. 예전에 '하늘소풍' 카페에서 활동했던 한미영입니다. -한미영, 성은-성광이 엄마 미영 씨도 우연히 아린이 사건에 대해 서명을 받는다는 글을 보고 커피 한 잔 가져다주려고 갔다가 함께하게 된 거래. 그때 저희 애들이 어렸었거든요. 3살, 6살이었거든요. 이런 같은 시간대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있구나 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 사건도 조금 서명이 필요하면 나도 나가서 서명을 받아줘야 하겠다… -한미영, 성은, 성광 엄마 두 사람 모두, 그전까지는 시민운동을 해본 적도, 아동학대 관련 일도 해본 적 없는, 단지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었어. 이명숙 변호사를 포함한 165명의 변호사들은 사건기록을 확인하고 엄중한 처벌을 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해. 아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카페에는 한 달 만에 무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누가 시킨 사람도 없는데 자발적으로 부모들이, 국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 치열한 법정 공방 그렇게 2013년 12월, 재판이 시작됐어. 그날 재판 현장에는 아린이를 위해 나선 사람들도 함께했어. 모두 엄중한 판결이 내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인 거야. 박 검사를 비롯한 공판대응팀은 해외 아동학대 판례들을 분석해 법정에서 발표를 하고, 부검의 증언 등을 통해 살인의 증거들을 제시했어. 비장한 각오였다고 하면 될까요? 일단은 국민들의 관심이 굉장히 많이 집중되어 있던 사건이고, 저희가 살인죄로 기소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살인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재판에서 새엄마는 뭐라고 증언했을까? 여전히 죽일 생각은 없었다라고 주장해. 그런데 너무나 어이없는 사실이 또 하나 있었어. 이 새엄마에게 살인 말고 또 다른 혐의가 있었어. 도둑질했다고 그 버릇을 고쳐야 된다고 훈육 차원에서 이렇게 내가 폭행을 했다라고 하는데요. 자기는 이전에, 이웃집에서 명품 반지 420만원 상당을 훔쳐 온 적이 있어요. 이건 절도로 처벌받았거든요.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검사는 신문 때 새엄마에게 이 부분에 대해 물어봤어. 남의 물건을 훔쳤는데 불구하고, 피의자가 아린이의 도벽을 문제행동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면서. 그러자 새엄마는 묵묵부답이었어. 할 말이 없었겠지. 2300원을 훔쳤다는 것도 엄마의 주장이지만, 설사 아린이에게 문제행동이 보였어도 엄마의 행동은 용납되지 않아. 아린이가 새엄마와 함께 산 기간은 만 4세부터 7세까지야. 너무 어린 나이였지. 심지어 새엄마는 아이가 도벽이 있고 거짓말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하고 다녔다고 해.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닌 걸까? 그럼, 실제 아린이는 어떤 아이였을까? 아린이 사진들을 좀 더 보여줄게. 아린이는 말이야. 미소가 너무 예쁘고 인사도 잘하는 밝은 아이였대. 공부도 아주 잘했어. 최근 시험에서는 전 과목 100점을 맞았다고 해. 아이는 늘 집에 안 가고 싶어 했었거든요. 학교에 있는 걸 좋아했었고 굉장히 학교에서는 밝고 쾌활하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그런 아이였어요.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그리고 아린이는 친구의 작은 부탁도 소홀히 하지 않는 착한 아이였어. 어린이날 '모범 어린이'로 표창도 받았고, 책도 많이 읽어서 독서왕으로 통했어. 아이가 쓴 독서 감상문이 있어. 제목: 무지개 물고기 무지개 물고기는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고기이다. 하지만 무지개 물고기는 자기가 가장 아름답다고 욕심을 부린다.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 어떤 내가 아끼는 물건이라도 나눠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곤 했대. 우리 엄마 참 예뻐요. 우리 엄마 요리를 참 잘해줘요.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까? 이쯤에서 우리가 꼭 짚고 가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어. 엄마의 행위만큼 중요한 부분이야. 바로, 아이의 아빠. 직업상 떨어져 살고 있고 한 달에 몇 번만 집에 가는 상황이라 학대에 대해 몰랐다는 입장이야.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 소풍을 갔다고 했던 애가 왜 욕조에서 익사했다고 하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강력하게 의문을 갖고 있어야 되잖아요. 보통 왜 계모의 말이 다른지.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어느 것 하나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저도 애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신랑이 군인이다 보니까 어쩌다 한 번씩 한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올 때도 사나흘에 한 번 올 때도 있지만, 새로 생긴 상처는 귀신같이 아빠들이 알아채거든요. 그래서 저는 하나도 이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 거예요. 왜 몰라? 왜 아빠가 가만히 있지? -한미영, 성은, 성광이 엄마 아린이는 이런 사실들을 아빠에게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정황상 아빠에게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그럼, 왜 말하지 않았을까? 아린이의 마음에 대해 전문가에게 물어봤어.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는 관계일 수밖에 없어 보이고 그런 아이에게 '우리 엄마가 나를 아프게 했어요'라고 말하는 건 꽤 쉽지 않은 일이에요. 이 얘기를 하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뿐만 아니라, '이 얘기를 하면 넌 나쁜 아이가 될 거야', '이 얘기를 하면 우리 가정이 파탄날 거야', '이 얘기를 하면 너네 아빠가 슬퍼하실 거야' 이 말만으로도 아이는 폭로하지 않거든요. -김태경, 우석대 심리상담학과 교수 아린이는 이미 친모와 이별한 경험이 있고 또다시 가정에 문제가 생기길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대. 새엄마 또한 이렇게 진술을 했어. 아린이가 아빠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저와 아빠의 관계가 안 좋아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어요. 새엄마는 이걸 알면서 때렸어. 그리고 학대에 대해서 몰랐다는 아빠는 새엄마의 학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가 된 적이 있거든. 당시 아린이의 유치원 교사가 신고를 한 거였어. 아이에게 유독 멍이 많고 상처가 많자, 유치원 교사가 관찰일지를 썼대. 관찰일지의 일부 내용을 보여줄게. -2010년 9월 6일 엄마의 이야기로는 모기가 잘 타는 체질이며 넘어져 난 상처로 다리에 밴드를 붙여 놨으니 떼지 말아 달라고 함. 여자아이 치고 치마를 입고 오지 않음. 다리의 많은 상처가 신경 쓰임. -2010년 10월 13일 검도학원에서 1학년 오빠에게 머리를 맞았다고 이야기함. 오빠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니 말하지 못함. 거짓말은 나쁘다고 이야기하니 엄마에게 맞았다고 함. -2011년 5월 13일 배와 등이 아프다고 함. 등을 보니 멍자국이 심함. 신고 후, 상담사와 아빠가 통화한 적이 있어. 아빠의 반응이 어땠을까? 아빠의 답은 이랬어. 아이가 버릇이 없고 문제행동이 심해서 엄마가 때릴 수밖에 없어요. 다른 가정들도 다 그렇잖아요? 이렇게 다른 사람이 가정사에 참견하는 건 잘못된 거 아닙니까? 법적인 조치를 하더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런 아빠가, 새엄마의 학대 사실을 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었음에도, 방관한 거야. 방임인 거죠. 모를 리가 없잖아요, 한 집에 살면서. 어쩌다 한 번이면 거짓말하거나 적당히 변명해서 넘어가지만, 지속적이라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고요. 그 아버지는 그렇게 하더라도 할 수 없다고 내버려 둔 거고, 그건 방임인 거죠.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결국 아빠 또한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게 됐어. ▲ 무죄의 의유를 뒤집어라 엄마에 대한 재판도 계속 이어졌고, 검찰은 새엄마에 대해 사형을 구형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계모 40살 박 모 씨에게 사형이 구형됐습니다. 검찰은 유일한 보호자인 계모 박 씨가 의붓딸을 살해한 것은 반인륜적 범죄라면서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정 최고형을 구형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이제 판결만이 남았어. 살인죄가 인정이 됐을까? 하지만 살인죄는, 무죄가 나왔어. 상해치사만 인정되면서 15년형이 선고돼. 그때 그 충격은 그냥 정신이 멍하니 나갔다고 할까? 그때 일어났는데 다리가 푹 꺾여요.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게 될 거야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컸던 거고.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왜? 왜? 왜? 정말 왜? 왜? 왜? 뭔데? 살인죄가 아니면 뭔데? 상해치사가 뭐고 치사가 도대체 뭔데? -한미영, 성은, 성광 엄마 왜 살인죄가 적용되지 못했는지, 이유 중 몇 가지를 함께 볼게. 먼저, '피고인이 일관되게 살인의 고의를 부인하여 온 점'. 새엄마는 경찰 수사부터 법정까지 일관되게 살인의 고의를 부인했어. 그러니까 진술에 일관성이 있다는 거야. '갑자기 살해의 고의가 생겼다고 볼 정황이 없는 점'. 새엄마는 훈육이란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했고, 사건 당일도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아서 갑자기 살해의 고의가 생겼다고 볼 수 없다는 거지. '흉기를 사용하지 않은 점'. 사건이 집에서 발생했잖아. 마음만 먹으면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거야. '머리와 몸통을 가격하는 방법이 달랐다는 점'. 새엄마가 머리는 주먹으로, 몸통은 발로 구분해서 때렸다는 거야. 무의식적으로라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발로 머리는 가격하지 않았다는 거지. 사실, 15년형이면 당시 아동학대 사망사건으로는 높은 형량이었대.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안 되겠지? 때려서 죽인 게 확실한데 왜 살인죄가 아닐까? 검찰은 즉시 항소를 했어.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사실은 검사 입장에서는 저희가 좀 더 입증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 부분을 저희들이 입증을 하지 못하면 또 항소심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라고 생각을 해서. 아예 백지상태에서 다시 한번 이 사건을 살펴보자…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피고인 측도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어. 이제 다시 시작이야. 박 검사를 비롯한 검사들은 1심에서 왜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검토했어. 법리적으로 살인죄를 입증해야 하니까. 그리고 박 검사는 이런 생각을 했대. 현재 부검결과는 새엄마의 진술을 듣기 전 결과잖아. 그녀의 진술을 들은 지금, 다시 한번 부검 결과를 체크해본다면, 혹시 진술과 부검 결과 사이에 다른 지점이 있지 않을까? 했어. 그렇게 아린이에 대한 부검 결과를 재감정 의뢰했어. 재감정은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가 진행했어. 이 교수는 처음 이 사건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해. 부검 사진을 한번 쭈르르르륵 먼저 보는데, 여기 속에서부터 쫙 올라오는 거예요. 엉덩이를 맞았는데 하도 맞아가지고. 맞으면 피가 나요. 어디 상처받았을 때 보면 나중에 나으면 단단하게 되잖아요. 방석 하나가 엉덩이 쪽에 들어있는 것 같아요. 하얗게 쫙 깔려 있어요. 이게 얼마나 맞으면 이렇게 엉덩이를 맞을 수 있을까. 여태까지 내가 맞은 거 많이 봤지만 이렇게 맞은 아이는 처음 본다… -이정빈 교수, 법의학자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폭행의 흔적이 너무 뚜렷한 거야. 그리고, 갈비뼈 골절과 폐 손상 외에 심장에도 손상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 1심에서 치명적인 부위를 구분해서 발로 찼다고 했잖아? 폐에 이어 심장까지 손상을 입었다면, 몸통 부위를 발로 찬 것이 머리만큼 충분히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좀 더 강조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새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욕실로 가서 욕조에 들어간 거라고 계속 진술했어. 그래서 아이의 통증 수준과 자력 보행 가능성에 대해 검토도 의뢰했어. 이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볼게. 나 자신이 (갈비뼈) 6~7개를 부러져 봤어요. 일어나려고 그러면 이걸(의자 손잡이를) 누르면서 일어나야 해요. 으악~ 소리가 나요. 침대에 눕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해요. 근데 얘는, 목욕탕을 가는 게 때리는 거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에요. 전쟁영화를 보면 총 맞고 다 그런데도 그냥 기어가잖아요. 애도 마찬가지예요. 아파도 갔을 거야, 살려고. 이제 그다음이 문제인데, 목욕탕 욕조를 넘어갈 수 있느냐. 이것(갈비뼈) 때문에 못 넘어갑니다. 겨우 욕조 턱에 앉았다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물로 떨어졌을 거예요. 그게 더 맞는 설명이라고 봐요. -이정빈 교수, 법의학자 욕실까지는 초인적인 힘으로 걸어갔을 수 있지만, 욕조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을 거래. 법의학적 소견으로는, 새엄마의 진술 중 거짓된 부분이 있는 거야. 그리고, 앞에서 몸통 멍사진 봤잖아. 근데, 팔에는 멍이 없었대. 이게 무슨 뜻일까? 누군가 네 옆구리를 발로 차면 어떻게 하겠어? 본능적으로 팔로 몸 쪽을 막게 된다는 거야. 근데 팔에 멍이 없었다는 건,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거나, 아이의 상태가 막을 수 없는 상황일 수 있다는 거야. 마지막으로 중요한 의문점이 있어. 새엄마는 이 상황에서 아이가 위험한 상태라는 걸 인식할 수 없었을까?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정말 알지 못했을까? 얼굴이 상당히 창백했을 겁니다. 심장이 다쳤기 때문에 산소 공급이 안 돼요. 그래서 청색증같이 시퍼렇게 되면 '이거 큰일 났다' 금방 알지. 얘 문제 있네, 금방 알지. -이정빈 교수,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가 작성한 감정서의 일부야. 아이들의 늑골은 아주 유연하여 잘 부러지지 않는다. 가해자의 발길질은 고수의 경지라고 볼 수 있다. 가벼운 기침만 하여도 악 소리가 날만큼 골절 부위가 아프다. 발길질 때마다 통증은 골절 수만큼 배가될 것이다. 늑골 골절이 일어나는 발길질 때마다 변사자는 단말마의 소리를 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검 감정서 中 감정서 쓴 게 상당히 좀 격하게 써 놓았어요. 탁 부러져 있는데 몇 개 부러져 있는데 딱 치면, 으악 소리를 지르려다가 못 지르고. 그거는 옆에서 그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아프니까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또 아프니까. 그걸 생각해 보라고. 나 그거 하면서, 진짜 눈물이 나더라고. -이정빈 교수,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는 항소심 법정에서 이 내용들을 증언했어. 법정 안 모두가 숨을 죽이고 증언에 집중했어. 마치 내가 옆에서 이 아이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에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그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 내가 걔랑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 현관문이라도 내가 그 순간에 두드려줬으면 그거를 멈출 수는 있었을 건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너무 미안해요. -한미영, 성은-성광이 엄마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가 항소심에서 공개가 돼. 새엄마의 휴대폰에서 지워졌던 녹음 파일이 복구가 됐어. 그 녹음파일에는 아린이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어. 아린이: 제가 수학 시험지를 선생님께 받아서 점수를 받는 데 90점이어서. 실수를 2개 해서 엄마한테 혼이 날까 봐 틀린 문제를… 엄마: (퍽! 때리는 소리) 말 똑바로 못해? 아린이: 틀린 문제를 고쳤습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거짓말 안 하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엄마: 시험지 고치는 것만 거짓말 안 하면 되나 보지? 아린이: 아니요. 엄마: (퍽!) 또 뭘 잘못해서 혼이 났을까? 아린이: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한테 거짓말하지 않고 시험 칠 때는 실수하지 않도록 어려운 시험 문제와 여러 가지 문제를 확인하면서 시험 치겠습니다. 엄마: 시험을 (퍽!) 못 쳐서 지금 벌 받은 거야? 아린이: 아니요. 엄마: 지금 (퍽!) 시험을 못 쳐서 벌 받았어? 아린이: 아빠나 다른 사람이 왜 다쳤냐고 물어보면, 책상에 부딪혔거나 엄마에게 혼났다는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돼요. 엄마가 집에 없을 때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께서 전화를 안 받으시면 제가 참고 있어야 돼요. -녹음 파일 내용 中 폭행을 당하는 듯한 소리가 나는데 아이는 울음은커녕 비명,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아. 기계처럼 자신의 잘못을 얘기하고 있어. 녹음파일 안에 담긴 아린이의 마음과 상태는 어떤 것일까? 이건 덫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폭언하고 집요하게 말꼬리 잡고 그냥 속된 표현으로 '시비터는' 거잖아요. 여성의 태도는 시종일관 그래요. 그러니까 아이는 최대한 노력을 해서 엄마가 듣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자 애를 써요. 이 상황에서 그녀는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근데 그건 객관적인 상황에 맞는 게 아니라 그녀의 머릿속에서 듣고 싶다고 그날 그 당시에 그 상황에서 욕구에 맞춰서 아이가 그 말을 해주길 기대해요. 이게 말이 돼요? 말이 될 수 없는 상황인데 그게 항상 충족이 되어야만 이 학대가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 입장에서는 온통 엄마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만 하는, 그게 굉장히 가슴 아픈 지점이었어요. -김태경, 우석대 심리상담학과 교수 이 녹음파일은 지속적인 아동학대의 확실한 증거가 됐어. 근데, 이게 왜 녹음이 되어 있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문가는 새엄마가 나중에 넌 전에도 이랬어 이렇게 아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기 위해 녹음한 것으로 추정해. 도대체 이 엄마에게 아이는 어떤 존재였을까?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때리고 싶었는데 때려도 되는 대상의 아이였던 거죠. 그래서 그녀는 4년 동안 아이를 훈육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녀는 4년 동안 아이를 가스라이팅한 것.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남들에게 꽤 멋진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 하고 멋진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서 아이가 필요한 거고. 그냥 아이가 아니라 자기가 말하면 척척 해대는 로봇 같은 아이가 필요했던 거예요. 이 아이를 로봇으로 만들기 위해서 계속 지배하고 통제하고 했던 거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면 하나의 가설일 뿐이긴 하지만, 아이가 엄마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여지도 있어요. 그 대신 필연적으로 자기는 나쁜 아이였을 거예요. 왜냐하면 엄마가 늘 그런 식의 프레임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거든요. 나는 좋은 엄마, 너는 나쁜 아이.. -김태경, 우석대 심리상담학과 교수 ▲ 살인죄 판결, 그 이후 1심에서 살인죄는 무죄, 상해치사만 인정이 됐어. 그럼 항소심에선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소풍을 가고 싶다던 7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박 모 씨에 대한 항소심이 열린 부산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박 씨에게 1심보다 형량이 3년 늘어난 징역 18년을 선고했습니다. 가장 큰 쟁점이 됐던 적용 죄형에 대해서 항소심은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1심과 달리 살인죄를 적용했습니다. 국내에서 훈육 등의 이유로 아동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살인죄로 인정받은 첫 판결로, 지난달 시행된 특례법과 국민의 법 감정도 영향을 줬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흉기가 사용되지 않은, 때려져 숨지게 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처음으로 살인죄가 인정된 거야. 피고인 측이 상고를 하지 않아서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이 됐어. 드디어 그토록 바랐던 선례를 남기게 된 거야. 아이 아빠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4년 형을 받았어. 참 다행이다… 이제 피해자의 한을 좀 풀어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살인죄 인정 여부 이런 부분보다는, 피해자의 한을 풀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양호 변호사, 당시 담당 검사 한 사람이 외치면 미친 사람 소리 같지만, 백 사람이 외치면 '무슨 일이야?' 하고 궁금해하고, 천 사람이 외치면 만 사람이 참여한다라는 그런 진리를 이 활동을 통해서 깨닫게 됐습니다. 그 모든 힘의 중심에는 한 아이가 있었던 거예요. 저는 그 아이의 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2013년도는 '꼬꼬무'에서도 다룬 적 있는 칠곡 아동학대 사망 사건, 서울에서 친부와 계모에 의해 아이가 사망한 사건, 그리고 이번 울산 사건까지 아동학대사망 사건이 연이어 터졌어. 그 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됐어. 기존에 학대치사죄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집행유예도 가능했지만, 특례법 시행 후는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이 가능해졌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동학대에 관한 소식들을 듣고 있어. 지금부터 아동학대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줄게. 너나 나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야. 잘 들어봐. 여전히 아동학대는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빙산의 일각만이 드러날 뿐인 거고요. 이 아동학대가 정말 없어지기 위해서는 이웃들 신고 열심히 해야 돼요. 그리고 유치원이나 학교나 학원이나, 정말 누구든지 아동학대로 의심되면 신고해야 되고요. 적극적인 신고만이 학대받는 아이들 보호해 줄 수 있고, 학대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이명숙 변호사,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아이에게 일어난 일을 '아무도 모른다'가 아니라, '누구나 안다'가 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 그랬다면, 아린이도 그날 너무나 가고 싶었던 소풍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부터 눈을 감고 상상을 한 번 해보자. 바람은 솔솔 불고 날씨도 너무 화창해. 아린이는 김밥과 음료수, 과자가 가득 든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열고 나와. 학교를 향해 콩콩 뛰어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 그리고 친구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했을 거야. 아린아 과자 뭐 가져왔어? 우리 맨날맨날 소풍날이면 좋겠다. 그치? 그렇게 도착한 아쿠아리움에는 신기한 물고기가 가득해. 친구들과 손을 꼭 잡고 수족관을 바라봐. 이사를 가면 다시 보지 못할 친구들과의 이 순간이 아린이는 너무나 소중해. 집에 돌아온 아린이는 책상에 앉아 일기를 써. 바다거북이가 엄청 컸다. 친구들과 김밥을 먹는데 너무 맛있었다. 소풍을 가서 정말 정말 행복했다.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한 소풍이었겠지? 일곱 살 아린이가 그렇게 무럭무럭 자랐다면, 올해 대학교에 입학해서 미팅도 하고 알바도 했겠지.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시 11월 19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야. 아동학대의 예방과 방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날이야. 가슴 아프고 한편으로 보기 힘들 수도 있지만, 오늘 아동학대사건을 다룬 이유이기도 해. 이번 기회로 우리 모두 아동학대에 대해, 부모라는 이름의 의미와 무게,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새엄마였어. 어쩌면 우리도 '새엄마, 새아빠'가 아이들을 더 학대할 거라는 편견이 있을 수도 있어. 2014년도에 발표된 보건복지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학대 피해 아동 중 77%는 친부모에 의한 학대였어. 앞에서 아동학대를 근절하는 방법 중 하나가 신고라고 했잖아. 이런 편견이 없어야 암수범죄처럼 감춰진 아동학대,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좀 더 잘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씨네멘터리] 쓸쓸한 너와 나의 아파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록일2023.08.13
한국 최초의 아파트 단지는 1964년 최종 완공된 10개 동 642 가구의 '마포 아파트'다. 국내 처음으로 엘리베이터와 중앙 난방시스템이 들어올뻔 했으나 너무 호화롭다는 여론의 지탄을 받아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연탄 보일러 개별 난방과 수세식 화장실(일부 가구는 양변기도 설치)만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거 시설이었다. 처음에는 아파트라는 낯선 주거 형태에 좋지 않은 소문까지 돌면서 미분양이 되기도 했지만, 한국 영화사의 걸작 오발탄(1961) 을 만든 유현목 감독 등 유명인들이 하나 둘 입주하면서 장안의 명물로 부상했다. 아파트는 중상류층 이상이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마포 아파트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택 사업 중 하나로 추진된 야심찬 사업이었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자 대통령 직무대행이었던 박정희 대장은 1차 준공식 치사를 통해 현대적 시설을 완전히 갖춘 마포 '아파아트'의 준공은 생활 혁명을 가져오는 계기 이며 봉건적인 생활 양식에서 탈피하여 현대적인 집단 공동생활 양식 으로 장치 입주자들의 낙원을 이룸으로써 혁명 한국의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런데, 만일 어떤 아파트의 이름이 '황궁아파트' 또는 '드림팰리스'라면? 입주민들의 '낙원을 꿈꾼' 한국의 아파트 도입 당시 취지에 딱 부합하는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황궁'이란 단어는 너무 봉건적이긴 하지만. * 지난 5월 31일은 범죄도시3 가 개봉한 날이다. 바로 이날 드림팰리스 라는 독립 영화도 조용히 극장에 걸렸다. 범죄도시3 는 1000만 명이 봤고, 드림팰리스 는 그 1/1000인 1만 명이 봤다. 하지만 드림팰리스 같은 영화가 없는 천만 영화 시장이라면 그게 과연 유토피아일까 싶다. 드림팰리스 는 30대 중반의 가성문 감독의 야심찬 장편 데뷔작이다. 가감독이 태어난 1988년은 국내 최초의 아파트 단지인 마포 아파트의 '재건축'이 확정된 해다. 드림팰리스 는 '드림팰리스'라는 신도시 미분양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는 한 싱글맘이 겪는 일들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참사 농성장의 속살을 용기있게 드러냈고, 아파트란 한국인들에게 무엇인지, 관계와 믿음이란 게 때로는 얼마나 가벼운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 아파트 공화국의 민낯을 보여줬다는 면에서는 이번 주 개봉한 같은 80년대생 엄태화 감독의 역작 콘크리트 유토피아 의 예고편, 독립영화 버전이기도 하다(여기서 '예고편'이란 표현은 '맛보기'란 뜻으로 쓴 것은 아니다). 산업 재해로 남편을 잃고 회사 앞에서 오랫동안 농성장을 지켜오던 혜정(김선영)은 지칠대로 지쳐 회사와 타협한 뒤 합의금을 받아 신축 아파트인 '드림팰리스'에 입주한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욕실에서 녹물이 나오고 시공사는 미분양이라 당장은 하자 보수도 어렵다고 배짱을 튕긴다. 직접 미분양을 해결해보겠다며 나선 혜정은 같이 농성하던 지인을 설득해 할인 분양을 받아 입주할 수 있도록 주선하지만 기존 입주민들은 할인 분양받은 사람들은 입주가 불가하다며 바리케이드까지 치며 이사오는 사람들을 막아선다. '구별짓기'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에서 많이 발생하는 문제다. 이 영화에서 어마어마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가 있으니 바로 김선영 배우다. 이 영화에서의 열연으로 아시안필름페스티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김선영은 영화 내내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지만 특히 후반부에서 남편의 결백을 확인받고 눈물을 삼키는 장면은 연기라 부르기 미안할 정도의 디테일로 관객들의 숨을 멎게 한다. * (Cut to 콘크리트 유토피아 씬 #16. 금애의 집. 낮) 솔직히 지금 들어와 있는 외부인 태반이 저기 드림팰리스 인간들인데 거기가 평소에 우릴 얼마나 무시했어. 지들 단지에 발도 못 들이게 하고. 학군 섞인다고 데모하고 아주 지랄을 하고, 막말로 입장 바뀌었음, 단지에 발도 못 붙이게 했겠죠, 안 그래요? 콘크리트 유토피아 초반에 나오는 김선영 배우의 대사다. 김선영 씨는 황궁아파트 부녀회장 금애 역을 맡았다. 조연이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매우 흥미롭다. 본인이 주연으로 나오는 드림팰리스 와 조연으로 나오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에 나오는 아파트의 이름이 '드림팰리스'로 똑같다니. (심지어 드림팰리스 에서 입주자 대표로 나오는 김용준 배우도 콘크리트 유토피아 에서 황궁아파트 입주민으로 나온다) 한국적 시츄에이션에서 고깃집은 가든이고, 아파트는 팰리스. 드림팰리스는 명백히 타워팰리스의 빗댄 작명이다. 하지만 영화 드림팰리스 의 드림팰리스는 녹물이 나오고 미분양이 발생한 이름만 번지르르한 빛 좋은 개살구 아파트인 반면, 콘크리트 유토피아 에 나오는 드림팰리스는 어제까지만 해도 황궁아파트 앞에 멀쩡히 서있던 고급 아파트다. 그런데 서울 강남에 아파트가 마치 단층 운동에 의한 지각의 융기처럼 솟아오르던(황지우, 박해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에서 재인용) 것과는 반대로 서울을 덮친 대형 지진으로 모든 건물이 초토화되고 황궁아파트만 간신히 살아 남았다. (황궁아파트가 무량판 구조인지 벽식 구조인지 라멘 구조인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슬픔의 삼각형 에서 청소부와 호화유람선 승객들의 처지가 배가 난파하면서 180도 바뀌었듯, 드림팰리스 주민과 황궁아파트 주민들의 입장도 지진으로 완전히 역전됐다. 평소 복도식 황궁아파트 주민들을 무시하던 드림팰리스 주민들은 살기 위해 황궁아파트로 몰려 든다. 김선영의 저 대사는 지진이 발생한 뒤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모인 첫 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다. 추운 겨울, 생존 물자는 떨어져 가고 구조는 감감무소식,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파트에 모여든 드림팰리스 주민들을 포함한 외부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결국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들을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내쫓기로 결정한다. 어떻게? 민주적인 투표로. 그날 밤, 잠 못 이루는 602호 신혼 부부인 명화(박보영)는 남편 민성(박서준)에게 침대에서 말을 붙인다. 명화: 그건 어떻게 생각해? 사람들 다 내보낸다는 거. 민성: (대충) 어떻게 내보내겠지. 명화: 내보내면?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 민성: 아이 몰라. 그만 생각하고 자자. '어떻게 되겠지', '몰라, 그만 생각하자'는 딱 지금 우리 사회가 작동되는(이라기 보다 '굴러가는') 방식의 일부처럼 들린다. 그게 아니고서야 어찌 저리 무심한 말들과 무책임한 행동과 몰염치한 행태가 반복될 수 있을까. 책임이야 선출직들이 더 크지만 그렇다고 필자를 포함한 시민 개개인이 무조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폭력으로 외부인들은 몰아낸 황궁아파트 주민들. 그러나 황궁아파트 입주민만 남았다고 구별짓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황궁아파트 자율방범대의 조장들은 세입자는 안되고 자가(自家)인 사람만 맡을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생필품 배급도 기여도에 따라 차등 분배된다. '주민수칙' 제3항에 나오는 민주의 이름으로. 황궁아파트에 숨어 살거나 밖에서 황궁아파트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는 외부인들은 '바퀴벌레'로 불린다. 이 역시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피아를 식별하는 극단의 언어와 닮아있다. 황궁아파트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변해 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가 세 번째 장편 연출인 엄태화 감독은 제작비 180억 원의 부담에도 자신의 예술적 야망을 다 내려놓지 않고 밀어 붙였다. 제작사인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의 변승민 대표는 엄 감독이 자분자분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더라고 농반진반으로 뒷얘기를 전했다. 재난 환경을 묘사한 CG는 조금 아쉽지만, 아파트 세트 같은 미술은 현실감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시퀀스에서 시퀀스를 넘기는 비주얼과 편집이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지며 잦은 플래시 백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해치지 않는다. 특히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를 가르는 이병헌의 아파트 노래 씬은 조명과 카메라 프레이밍, 연기 등 모든 것이 잘 맞아 떨어진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다만 영화 오프닝과 중반, 엔딩의 핵심 장면 모두를 긴 줌 아웃 씬으로 처리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김선영 배우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에서는 조연이라,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드러낼 만한 분량까지는 부여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파트 부녀회장 역을 그녀가 아니면 누가 더 잘했을까 싶은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한국의 아파트(문화)를 소재로 영화를 기획 중인 감독이나 제작사는 반드시 김선영을 캐스팅 하시라. 아파트 이슈에 관한 한 가장 준비된 배우일지니. 기왕 이렇게 된 마당에 김선영 배우도 본인만의 아파트 트릴로지를 완성해줬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를 찐하게 축소한 두 편의 아파트 역작을 찍었으니 다음 편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많이들 콘크리트 유토피아 는 이병헌의 영화라고 하던데 이 글에서는 왜 별 말이 없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할 말은 많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 에서 이병헌은 그냥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얼떨결에 황궁아파트 주민대표가 되는 영탁이라는 단순하고도 복잡한 인물을, 어리숙하고도 영악한 인물을, 선악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어쩌면 동물에 가까운 캐릭터를, 배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표현해냈다. 호흡 하나, 자세 하나, 돼지털 같이 뻣뻣한 모발 한올 한올로도 연기한다. 지난해 여름시장 비상선언 에 이어, 재난 영화의 외피를 두른 한국 사회 톺아보기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며 같은 세대의 스타 배우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이 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로 자신의 현재 위치가 스스로 쟁취한 것이며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제 발로 내려올 의사는 없다고 선언한다. 고사성어 애드립(대본과 다르기 때문에 애드립이리라 추정해본다)과 윤수일의 아파트 를 부르는 씬에서처럼 능청스런 유머로 여유도 잃지 않은 채. * 한국을 방문한 외국의 어느 유명 건축가가 올림픽대로를 지나며 했다는 말이 있다. '이런 멋진 한강 뷰를 서민들에게 양보하다니, 한국은 참 민주적인 나라같군요.' 귀족 문화 영향이 큰 유럽에서는 불특정한 수백 수천 세대가 다닥다닥 붙어사는 아파트 문화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파트에는 주로 서민층이 살고, 오래된 아파트는 빈민가로 전락하기 일쑤다(지난해 말 개봉했던 가가린 이란 프랑스 영화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는 엄태화 감독이 읽었던 책 콘크리트 유토피아(2011) 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 책의 저자인 박해천 교수는 의인화한 아파트 시점에서 서술한 1부 2장 '아파트의 자서전'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나(아파트)는 설계자들의 의도를 넘어서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인간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최적화된 세계를 상상하며 기회가 오길 기다렸다. 나는 내 몽상이 직조해낸 세계에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구절을 읽다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에 써 있는 글귀가 떠올랐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군사 정권의 정치경제적 필요에 의해 탄생한 주거 문화 양식인 아파트는 오늘날 설계자들의 의도를 훨씬 뛰어 넘어 스스로 생물처럼 움직인다. 사람은 아파트를 만들고 아파트는 사람을 만든다. 지난 1991년, 평촌 신도시 아파트 불량 레미콘 시공이 큰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건설사들은 재시공에 들어갔다. 데쟈뷰. 부실 시공은 오늘날 '순살 아파트'로 반복된다. 와우 아파트가 무너진 게 50년 전인데 아직도 '철근 빼먹기'가 반복되고 노동자도 죽어 나간다. 부실 시공과 영끌 투자, 집값 폭등과 집값 폭락 등으로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디스토피아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가 던지는 질문들도 과거, 현재,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질문들이다. 입추를 넘어 바람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저런 상황에서 과연 나라면 어떻게 할까'하고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아파트에 살든 안 살든 간에.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면 '씨네멘터리' 구독 버튼과 지난 에피소드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