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OH MY GIRL YOOA Signs Exclusive Contract with Saram Entertainment, Sets Sights on Acting Career
등록일2025.06.02
YOOA of the group OH MY GIRL has inked an exclusive contract with Saram Entertainment. On the 2nd, Saram Entertainment announced, We have signed an exclusive contract with YOOA, adding, YOOA is an artist brimming with endless potential and talent. We are thrilled to embark on the start of her acting career together with Saram Entertainment. We will fully support YOOA so she can actively engage in various fields. Since debuting with the idol group 'OH MY GIRL' in 2015, YOOA has won the hearts of the public with hit songs like 'Secret Garden', 'Dolphin', and 'Dun Dun Dance'. Not only that, but she also ventured into a solo singing career, being the first member to do so, releasing her first solo mini-album 'Bon Voyage' in 2020, followed by her second mini-album 'SELFISH', and her single album 'Borderline', showcasing her active presence in the music scene. Having made her mark as a singer, YOOA is now joining hands with Saram Entertainment to dive into her acting career. YOOA is set to make her acting debut in the crime drama film 'Project Y (working title)', where she plays one of two characters, Miseon and Dokyung, who, having nothing but each other, attempt to escape their dire circumstances by stealing hidden black money and gold bars. (SBS Entertainment News | Kim Ji-hye)
[꼬꼬무 찐리뷰] '임산부 신분' 이용해 유괴·살인 저지른 전현주…경악스러운 실체와 근황
등록일2025.05.16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방송된 '내 아이가 사라졌다' 특집 3부작 중 첫 번째 '만삭의 유괴범, 전현주'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개그맨 정성호, 배우 홍화연, 그룹 오마이걸 멤버 미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6평짜리 고향 오늘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아이는 어릴 때 아주 특별한 집에 살았어. 이 집의 크기는 약 6평 정도. 방 한쪽엔 기저귀와 분유가 쌓여 있고, 빨랫줄엔 이제 막 손빨래를 마친 자그마한 배냇저고리가 걸려 있어. 장난감과 책, 그리고 벽에 붙은 숫자 포스터까지, 누가 봐도 평범한 아기방 같아. 그런데, 이 집엔 몇 가지 규칙이 있어. 첫째, 외출은 하루 딱 한 시간. 둘째, 나이 제한이 있어. 생후 18개월이 되면, 무조건 이 집을 떠나야 해. 그리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어. 아니 돌아와서도 안 돼. 이 집, 어딘지 알겠어? 바깥세상으로부터 격리된 공간. 범죄를 저지르고 그 죗값을 치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는 젖먹이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교도소야. 올해 3월 기준으로, 전국 교도소에 생후 18개월 미만의 아이가 11명 정도 있대. 그럼 이런 아기가 들어올 때, 다른 수용자들 반응은 어떨까? 난리가 나. 서로 안아보겠다고 줄을 설 정도야. 여긴 서울구치소야. 한 아이가 입소 절차를 밟고 있어. 솜털이 보송보송한 게, 탯줄을 뗀 지 얼마 안 된 젖먹이 신생아야. 그런데, 오늘따라 수용자들 반응이 이상하리만치 싸늘해. 바로 아이의 엄마 때문에. 그녀는 얼마 전,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로 대한민국 전체를 대혼돈에 빠뜨린 최악의 범죄자야.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오늘 검거된 박나리 양 유괴 용의자 중 한 명인 전현주 씨가 지금 서초경찰서로 압송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만삭의 유괴범' 전현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 그녀는 뱃속에 아이를 품은 임신 8개월 차에 다른 집 아이를 유괴했어. 지금껏 그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는 전현주의 근황이 방송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야. 궁금하지? 지금 바로, 28년 전 그날로 돌아가 볼게. ▲ 돌아오지 않는 아이 때는 1997년 8월 30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야. 한 여자가 초조한 듯 거실을 서성이고 있어. 여자는 학원에 간 딸을 기다리고 있어. 바로 이 아이야. 나이는 8살, 이름은 박초롱초롱빛나리. 실명이야. 혹시 이 이름, 들어본 적 있어? 당시 아이는 이 특이한 이름 때문에 더 주목을 받았다고 해. 나리는 아빠가 지은 이름이야. 늦은 장가에 어렵게 얻은 첫딸이라,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긴 이름을 선물해 주고 싶었대. 나리는 이날 하늘거리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섰어. 학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도보 5분. 오후 2시 40분에 수업이 끝나는데 벌써 오후 3시야. 평소라면 오고도 남아야 할 시간인데 아무래도 이상해. 그래서 엄마는 학원에 전화를 걸었어. 학원 선생님이 말하길, 나리가 수업 끝나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쌍둥이 동생들이랑 함께 갔다는 거야. 엄마가 이번엔 쌍둥이 집에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수화기를 든 엄마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당시 쌍둥이가 엄마에게 전한 이야기야. 그 언니가 와 가지고요. '우리 조카도 여기(학원) 다니는데, 너도 다니니?' 했는데 나리 언니가 아무 말도 안 했고요. 엘리베이터 탔어요. 그 모르는 언니가 계속 걸어가자고 해가지고요.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한테 '안녕' 하고요, 우리도 '안녕'하고요. 초등학교 있는 쪽으로 갔어요. -쌍둥이가 엄마에게 전한 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했어. 나리가 어떤 '모르는 언니'를 따라서 집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걸 봤다는 거야. 나리가 평소 언니라고 부르며 따를 사람? 없어. 그럼 이거 무슨 상황이야? 유괴야. 그로부터 10분 뒤. 누군가의 삐삐가 울렸어. 삐삐 사용법 알아? 상대방이 내 삐삐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음성메시지를 남기거나 숫자로 번호를 남길 수 있어. 그럼 내가 다시 내 삐삐로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는 시스템이야. 당시 삐삐에는 '533-0330-8282'라는 번호가 찍혀 있었어. '8282'는 '빨리빨리'라는 의미야. 뭔진 몰라도 급한 일이 있다는 거야. 당시 이 삐삐 주인을 직접 만났어. 97년 사건 당시 서초경찰서 막내 형사였습니다. 서초경찰서 형사계 전화번호가 533에 0330. 그래서 533에 0330 8282 하면 그거는 비상, 빨리 사무실 집결, 이런 표시였었습니다.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그 당시에는 강남이나 서초에 유괴 사건이 굉장히 많이 일어날 때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애가 들어오지 않는다 하는 얘기를 듣고 직감으로 '어? 이거는 유괴다!' 감을 잡았지.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결국 엄마가 신고를 했어. 토요일 오후, 긴급 호출을 받은 형사들은 곧장 나리 집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감청 장치를 설치했어. 유괴가 되면 돈을 요구하거든. 그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 집 전화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우리가 전화기에 발신자 추적을 다 걸어놨죠.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통신사를 통해 바로 발신지 추적이 가능해. 유괴범의 전화가 오면, 잡히는 건 시간 문제야. ▲ 유괴범의 협박 전화 잠시 후, 오후 6시. 나리가 사라진 지 3시간 째야. 나리네 집 전화벨이 울렸고, 엄마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어. 범인: 나리는 잘 있어요. 설마 신고한 건 아니겠지? 엄마: 그럼요, 원하시는 게 뭔지 얘기해 주시면 내가 다 들어드리고. 범인: 2천만 원을 준비해.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어. 이제 발신지를 추적해야지. 그런데, 안돼. 통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추적 불가야. 아무런 단서가 없어.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형사들은 주변 탐문을 시작했어. 목격자는 없는지, 피해자 가족과 원한 관계는 없는지 확인에 나선 거야. 근데 이걸 대놓고 할 수는 없어. 유괴 사건은 극비수사가 원칙이야. 만약 신고한 게 범인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다급해진 범인이 나리를 해칠 수도 있잖아. 만약에 신고를 하면 범인이 다급해진다고. 그러면 아이를 해할 수가 있지. 유괴 사건은 시간 다툼이잖아요. 골든타임이라는 건 우리가 최고로 볼 땐 6시간 본다고요.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이제, 다음 전화를 기다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한 달이든 몇 개월이든 기다려야지. 전화가 올 때까지. 단서는 그거잖아요.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나고, 일요일 오후 3시. 범인은 첫 번째 전화 이후 소식이 없는 상태야. 그때였어. 드디어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어. 엄마: 여보세요? 얘기를 하세요. 원하는 게 뭔지. 범인: 돈이 들어있는 은행 카드를 가지고. 엄마: 예. 은행 카드요? 범인: 명동 전철역. 엄마: 잠깐만요, 제가 연필 갖고 적어볼게요. 범인: 빨리해 엄마: 명..동..전..철..역.. 범인: (뚝) 범인 입에서 장소가 나왔어. 명동 전철역. 게다가 나리 엄마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이번엔 발신지 추적에도 성공했어. 위치는 명동의 한 대형 쇼핑몰 앞 공중전화야. 형사들은 명동으로 갔어. 발붙일 틈이 없었어요 명동에. 그러니까 범인을 식별하기가 힘들죠. 도주도 쉽고. 범인은 그걸 노렸을 겁니다. 여자가 한 60~70% 될 거예요. 명동에. 찾을 수가 없어요.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지금 범인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젊은 여자'와 '목소리' 뿐이야. 막막해도 너무 막막해. 구 형사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공중전화 수화기를 잘랐어. 그게 잘 잘리지도 않아요. 근데 뭐 잘라야지. 뽑아버리고 막 부서지든 말든 우리는 빨리 범인 잡아줘야 되니까. 한국통신에서 전화기 잘라갔다고 뭐라 하더라고.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한편 그 시각, 조상복 형사는 명동에서 잠복을 시작해. 범인이 명동 주변에 있을 거다, 연고지가 있는 사람이다. 명동 주변으로 우리가 많은 경찰을 투입했어요.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명동 일대 모든 공중전화 위치를 확보하고, 인근 경찰서에 공조도 요청했어. 만약 명동에서 또 한 번 협박 전화가 걸려 오면, 곧바로 달려가 현장을 덮칠 계획이야. '제발, 딱 한 통화만 더 와라. 딱 한 통화만' 하는 마음이야. ▲ 유괴범은 명동에 있다 어느덧 밤 9시. 세 번째 전화가 걸려왔어. 범인: 메시지 건물. 엄마: 메시지? 메시지 건물? 몇 층짜리예요? 범인: 10층. 엄마: 10층 어떻게? 범인: 8층에 가서 기다려. 엄마: 8층 어디예요? 잠깐만요. 제가 그걸 정확히 알아야지 찾아갈 수 있죠. 돈은 2천만 원이에요? 범인: (뚝) 그래도 다행히 구체적인 장소가 나왔어. 어디? 메시지 건물. 아까 발신지 추적했을 때 쇼핑몰 앞에 있는 공중전화라고 했잖아? 그 쇼핑몰이, 바로 메시지 건물이야. 그런데 1분 뒤, 네 번째 협박 전화가 걸려왔어. 범인: 돈으로 말고 카드로. 엄마: 카드로 어떻게? 나 카드도 없는데? 난 지금 현금만 갖고 있어요. 범인: 그렇다면 나리는 못 보는 거지. 엄마: 돈 드리는 건 2천만 원이 아니라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우리 빛나리가 잘 있는지, 난 그게 가장 중요해요. 범인: 카드 받는 즉시 빛나리하고 통화할 수 있게 해 줄게. 지금부터 40분이야. 엄마: 예? 지금부터 40분에 내가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범인: (뚝) 범인은 이런 식으로 전화를 네 차례나 끊어가며 통화를 걸어 애간장을 태웠대. 그런데 말야, 40분 만에 명동까지 엄마는 못 가도 조 형사는 갈 수 있잖아? 지금 조 형사가 명동에서 잠복 중이니까. 그럼 조 형사가 메시지 건물로 가면 되겠지? 그런데, 조 형사는 지금, 메시지 건물이 아닌 커피숍에 있어.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3분 전, 조 형사에게 다급히 무전이 와. 조 형사, 잘 들어. 지금 나리 엄마가 범인과 통화 중인데, 발신지가 떴어. 명동에 있는 SE 커피숍! 나리 엄마가 납치범과 통화하는 사이에, 범인의 위치가 확인된 거야. 무전을 받은 조 형사는 그 길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어. 같은 시각, 범인은 이런 상황을 꿈에도 모른 채 계속 통화 중이야. 그리고 드디어 조 형사가 커피숍에 도착했어. 그의 시선이 다급히 전화기가 있는 카운터를 향해. 그런데, 거기 있어야 할 범인이 없어. 아주 간발의 차로 엇갈린 거야. 직원에게 물으니 5분 내에 커피숍을 나간 사람이 없대. 이 얘긴 뭐야? 범인은 지금, 이 안에 있다는 거야. 일단 커피숍 문부터 걸어 잠갔어. 현재 시각, 일요일 밤 9시. 유괴된 지 벌써 30시간째야. 조 형사가 침착하게 커피숍 안을 둘러봐. 커피숍엔 남자 1명, 그리고 여자 12명, 총 13명의 손님이 있어. 지금부턴 이들 모두가, 용의자야. 조 형사가 한 명 한 명 신분증을 확인해. 그러면서 동시에 '목소리'를 체크했어. 형사들은 녹음기에 일일이 목소리를 녹음하고, 통화 목소리도 확인했어. 하나하나 다 범인이라 생각하고 인적사항을 꼼꼼히 다 적었죠. 그러고 목소리를 전부 다 우리가 하나하나 해가지고 목소리를 녹음을 해놓고 대조하기 위해서 다 했어요. 목소리를 또 (범인이) 가성으로 했기 때문에, (손님들의) 진짜 목소리만 녹음했으니까, 그 가성이 어떻게 나오는지 분석을 다 하고. 또 하나하나 보내고 하나하나 보냈는데. 안 나왔지.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범인이, 없어. 목소리가 일치하는 사람도, 의심 가는 인물도 없어. ▲ 공개수사 전환, 폭발한 관심 어느덧 유괴 4일째. 결국 나리의 부모님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돼. 초등학생 어린이가 대낮에 20대 여자에게 유괴된 지 나흘이 지나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섰습니다. 부모님은 나리를 찾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뉴스 中 나리 유괴 사건 공개되자 전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어. 신문사와 경찰서로 무려 8천 건이 넘는 제보가 쏟아지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수사 지시를 내렸어. 전부 다 그냥 나리 사건이었어요. 도배를 했어요 그 당시에는. 어린애잖아요. 어린애가 그랬다고 하니까, 무게감이 다르죠.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이제 공개수사로 전환되니까 막 무속인들도 전화 오고. (나리가) '김포에 있다', '저기 어디 산속에 살아있다' 수백 통 수천 통 전국에서 다 전화 오니까.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하지만 온 나라가 이렇게나 간절히 무사 귀환을 바라는데도, 여전히 나리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아. 어느덧 나리가 사라진 지도 열흘이 지났어. 이른 아침, 몸을 가눌 기운조차 없는 나리 엄마가 하나 둘, 벽에 풍선을 붙이기 시작해. 오늘은, 나리의 생일이야. 이사 오고 맞는 첫 생일이라,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해주기로 약속했대. 비록 나리는 없지만 엄만, 그 약속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해. 나리방을 풍선과 친구들의 축하 카드로 꾸몄어. 엄마는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도 준비했어. 엄마는 딸 나리에게 편지도 썼어. 사랑하는 내 딸 박초롱초롱빛나리야. 지금 어디서 어떻게 있는지, 나리 생각으로 이 엄마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나리가 지금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은 믿음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단다. 지금 어디에 있든지 데리고 있는 사람 말 잘 듣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라.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살아있을 거란 희망에 버티다가도, 헛된 희망이면 어쩌나, 또 두려움이 앞서.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생일파티가 열렸던 이날.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돼. 범인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 내 딸이 유괴범입니다 나리의 생일파티가 열리던 그 시각. 구준회 형사는 서초서에 있다가 전화를 받았어. 황당한 거짓 제보 전화들에 구 형사도 슬슬 지쳐가던, 그때였어.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어. 근데 이번 전화는 달랐어. 전화를 받은 구 형사는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어. 그때 저희 강력 2팀으로 전화가 왔어요. 딱 목소리가 이건 뭔가 다른 목소리야. 그냥 일반인이 제보하는 목소리가 아니고 엄청나게 그 미안한 감정이 뚜렷한 그런 통화 내용이었어요. 이제 딱 받으니까.. '제 딸이 범인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 차분하게.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놀랍게도, 유괴범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이거, 믿을 수 있는 제보일까? 일단 확인부터 해 봐야지. 형사들은 곧바로 제보자를 만나기로 했어. 약속 장소로 한 중년의 남성이 걸어와. 형사는 녹음해 뒀던 범인의 목소리를 들려줬어. 그러자 이 남자는 체념한 듯 말했어. 죄송합니다. 제 딸이.... 맞습니다. 부모라서 내 딸의 목소리를 알 수 있다는 거야. 곧바로 형사가 물었지. 딸의 이름이 뭐냐고. 그런데, 대답을 들은 형사가 깜짝 놀라. 사실 형사들은 이미 그녀를 만난 적이 있거든. 시간을 다시 8일 전으로 돌려 볼게. 나리가 납치된 지 이틀째 되던 날. 명동의 커피숍을 덮친 조 형사가 한 명 한 명, 신분증 검사를 시작하던 그때였어. 갑자기 한 여자가 쓰윽 다가오더니 굉장히 난처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해. 저, 형사님. 근처에 후배들 있는 곳에 가방을 두고 와서요. 신분증이 그 안에 있는데, 후배에게 호출을 좀 해도 될까요? 여자의 설명은 이랬어. 인근에 일행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데 삐삐가 와서 전화기를 찾다가 우연히 커피숍에 들어왔다는 거야. 조 형사는 확인을 해야 하니, 그 후배를 이쪽으로 오게 하라 했어. 잠시 후, 여자의 호출을 받은 후배 김 씨가 커피숍으로 들어와. 그런데 형사들을 본 김 씨가,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해. 아니, 사람을 이렇게 오래 세워두면 어떡합니까! 이러다 문제라도 생기면, 형사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예? 신분증이 없다던 이 여자, 사실 만삭의 임산부였어. 임산부가 설마 어떻게 범인이 되겠어요. 그리고 또 전혀 불안해하는 게 없었어요. 얼굴이 붉어진다든지 초조해지든지. 그런 기색이 없었어요. 그냥 태연했어요. 그러니까 추궁도 추궁만큼 하지도 못하고, 빨리 가라고 한 거죠. 그러니까 안이한 생각을 한 거죠. -조상복,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결국 조 형사는 간단한 인적 사항만 확인하고 그녀를 풀어줘야 했어. 이 사람이 바로, 나리를 유괴한 만삭의 임산부 전현주야. 당시 나이는 28세였어. ▲ 만삭의 유괴범 전현주 그런데 말야, 대체 어쩌다 임산부가, 그것도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는 예비 엄마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집 아이를 유괴할 생각을 했을까? 이 미스터리를 풀려면, 먼저 그녀에 대해 알아야 해. 전현주는 대학 시절, 문예 창작을 전공했어. 원래는 무역학과를 다녔는데 작가가 되고 싶다며 뒤늦게 문창과로 다시 입학을 한 거야.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라며 그 시절 그 어렵다는 유학도 다녀왔어. 가정은 아주 정상적인 그야말로 보수적이고 조용하고. 뭐 괜찮게 살았죠.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성격도 화통해서 인기가 꽤 많았다고 해. 그러던 어느 날, 전현주가 연애를 시작했어. 상대는 같은 과를 졸업한 이 씨. 그는 아동극을 만드는 연출가야. 둘은 곧 결혼도 약속하게 돼. 뱃속에 아기가 생겼거든. 근데 이 소식을 들은 전현주의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했어. 결국 두 사람은 부모님 없이 결혼식을 올려. 그 이후 그녀의 인생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해. 연애 결혼했는데 돈을 못 벌어. 그러니까 한 달에 평균 한 30만 원 벌어오는 셈인데. 쓰는 거는 한 달에 100만 원 쓴대요. 담뱃값만 해도 힘들다네요. 너무 절실했던 거죠. 돈 한 푼도. 범행할 때 통장 잔고가 8,500원이 있었어요. 어쨌든 아기 출산 준비도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너무 나가버린 거죠 사실은.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내 아이를 위해, 다른 아이를 유괴하자는 위험한 생각. 전현주는 나리를 유괴하고도 열흘동안 수사망을 피해 다녔어. 하지만 아버지의 신고로 정체가 밝혀진 거지. 형사들은 아버지를 붙잡고 딸의 행방을 캐물었어. 그런데 아버지도 모른대. 아무래도 딸이 범인인 거 같아 연락했는데, 답이 없더라는 거야. 불안한 마음에 아버진 전현주의 남편에게 연락을 했대. 그랬더니, 남편도 아내랑 연락이 안 된다는 거야. 알고 보니 며칠 전, 돈 문제로 부부싸움을 했는데 그 길로 아내가 집을 나간 뒤, 연락이 안 되고 있다는 거야.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만삭인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신고도 안 하고 기다린다고? 남편도 이상하지 않아? 공범인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야. 유괴 당일, 지방에서 아동극을 공연한 남편의 알리바이가 확인됐거든. 하지만 그래도 형사들은 여전히 공범의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 만삭의 임산부가 혼자서 애를 납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그런데 그때, 남편의 삐삐에 한 통의 음성메시지가 들어와. 맞아. 전현주였어. 그런데, 이 음성메시지를 확인한 형사들이 하얗게 질려. 남편 이 씨의 삐삐 음성녹음. '나 죽을 거야, 내가 사실은 범인이 아니야. 누가 시켜서 한 거야'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전현주가 목숨을 끊겠다고 선언한 거야. 그 여자가 죽으면 영영 나리를 못 찾아. 곧바로 발신지 역추적이 시작됐어. 그리고 지금 전현주가 신림동의 한 여관에 있다는 걸 확인했어. 나리가 유괴된 지 14일째인 오전 9시. 신림동 여관 앞뒤로 형사들이 쫙 깔렸어.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몇 명 있는지도 모르고. 일부는 뛰어내릴 수도 있으니까 차단을 하고, 그다음에 노크하고. '프론트입니다' 그러니까 문을 열었죠.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잠시 후, 끼이익 문이 열리더니 검은 원피스를 입은 초췌한 몰골의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 그 순간, 구 형사의 시선이 배로 향했어. 출산을 얼마 앞두지 않은 만삭의 몸이야. 드디어, 전현주를 찾았어. 3명 정도가 들어간 거 같아요. 디스 담배 한 갑하고 농약병 하나 있더라고. 자결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검거를 했죠 거기서.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유괴 14일째, 용의자 전현주를 드디어 검거했어. 경찰서 앞에 기자들이 몰렸어. 전현주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해. 결국 형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전현주는 경찰서에 들어갔어. ▲ 드디어 찾은 나리 형사들이 그녀를 조사실로 데려가. 지금 나리가 어딨냐고 묻는데, 전현주가 죽어도 입을 안 열어. 형사들은 애원도 했다가, 협박도 했다가. 너도 애기 엄만데, 나리 엄마를 봐서라도 제발 어딨는지만 알려달라, 사정사정했어. 제가 담배 많이 줬습니다. 밝혀내려고. 임산부를 저희들이 그렇게까지 추궁하고 이럴 부분은 아니고, 충분히 네 마음 안다, 설득하고, 회유하고.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동안 줄담배를 태우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어. 사당동... 남편.... 사무실이요. 아동극을 하던 남편이 소품실로 쓰던 지하 창고야. 형사들은 곧바로 사당동으로 향했어. 도착해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계단을 내려가자 굳게 닫힌 철문 하나가 보여. 끼익 문을 여는데 완전 암흑이야. 랜턴 불빛을 비추자 그제야 내부가 보이는데, 느낌이 싸해. 여기저기 인형 탈들이 널려있고 바닥은 알 수 없는 액체로 흥건해. 그리고, 어지럽게 놓인 소품들 사이에서 뭔가가 눈에 띄어. 골목길인데 지하였었어요. 문을 열고 딱 들어가는데 내가 미끄러질 뻔했어. 핏물 이런 게 흥건해가지고. 보니까 저 옆에 등산용 가방이 있더라고. 거기서 물이 샌 거야. 핏물이.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나리는 결국, 등산용 배낭 안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어. 학원을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 지 14일 만의 일이야. 나리가 무사히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길, 모두가 한마음으로 빌었는데. 나리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바다 같은 슬픔이 되어, 부모의 가슴을 적시며 그 속에 영원히 묻혔어. ▲ 유괴범의 공범 주장 나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그 시각. 취조실에선 형사들과 전현주의 실랑이가 한창이야. 저는 몰라요. 그냥 그 남자들이 시켜서 한 것뿐이라니까요. 그 남자들이 시켰다는 게 무슨 말일까? 사실 전현주는, 검거 당시 손에 이런 걸 들고 있었어. 남편에게 쓴 편지야. 일부러 명동 쪽으로 가자고 했어. 그래야 좀 덜 무서울 것 같아서.... 그랬더니 사ㅇㅇ 호텔을 아냐고 했어. 그래서 그렇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 뒤로 가면 SE라는 카페가 있댔어. 그러면서 거기 가서 종이에 적힌 대로 전화를 하랬어.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필름을 보여주면서 그걸 준댔어. 그래서 카페 2층에 가서 전화를 했어. 그녀의 주장은 이랬어. 보름 전, 웬 남자들이 집에 들이닥치더니 자신을 성폭행하고 사진을 찍었대. 그러면서 아이를 유괴해 돈을 받아 오면, 필름을 돌려주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거야. 이 말이 사실일까?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전현주는 피해자일 수도 있어. 근데... 좀 이상해. 조사를 하면 할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야. 그 상황에 아주 극한 상황인데 내가 누구한테 사주를 받고 지시를 받았다 하면 당연히 대야 되는 거지... 그런데 '밝힐 수가 없습니다', '담배 한 개비만 주세요', '커피 한 잔만 주세요'.... 못 대지.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진범을 대라는 질문에, 입을 닫아버려. 그래서 형사들은 일단 전현주의 주변 인물을 조사하기로 했어. 왜 커피숍에서 형사들에게 강하게 항의했던 사람 기억나지? 후배 김 씨. 형사들은 제일 먼저 김 씨를 소환했어. 근데 김 씨는 공범이 아니었어. 나리가 유괴되던 날, 김 씨의 알리바이가 명확했거든. 같이 어울리다가 집을 나왔다고 부부싸움을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저는 그냥 집에 들어가라고. 임신 8개월 차 아줌마가 뭐하냐. 근데 안 들어가겠대요. -후배 김 씨 형사들이 다시 전현주를 추궁해. 형사: 너도 피해자라며. 그럼 너랑 나리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대야 우리가 도와줄 거 아냐, 어? 전현주: 그 남자들이요... 나리를 죽일 때, 거기서 담배를 피웠어요. 담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나왔어. 실제로 범행 현장인 지하 창고에서 담배꽁초 12개비가 발견됐거든. 곧바로 DNA를 확인했지. 그런데, 12개비 모두, 100% 전현주 일치. 이건, 전현주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야. 다 전현주 타액, 전현주 DNA만 나왔어요. 다 전현주가 혼자서 피운 거예요.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하지만 전현주는 여전히 공범을 주장해. 전현주는 나리를 유괴하자마자 학원 앞으로 온 남자들에게 나리를 넘겼다고 주장했어. 그런데, 나리가 납치되고 약 30분 뒤 한 은행 CCTV화면에 이런 장면이 찍혔어. 은행에 들어오는 나리와 전현주. 전현주를 따라 들어오면서 나리는 전현주가 돈 뽑는 동안 옆에서 해맑게 놀고 있어. 그리고 둘이 같이 나가는 모습이야. 분명 남자들이 나리를 데려갔다고 했는데 영상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 이건 전현주 집에서 찾아낸 수첩이야. '물색(2시간)', '실행', '계좌개설'. 그리고 여기서 'C'는, 나리 엄마에게 카드를 가져오라고 했잖아? 그 카드를 의미하는 걸로 추정돼. 또 '숙소'라고 되어 있는데, 이건 남편의 극단 사무실 같아. 게다가 수첩 여기저기에서 '2천만 원'이라고 쓴 메모도 확인됐어. 모든 증거는 전현주의 단독범행을 가리키고 있어. CCTV 다 확인하고 동선 확인하고, 이 정도면 혼자 충분히 범행이 가능하다. 이거 단독범행이다. 결론을 내렸죠.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이제 그녀의 입에서 진실을 들어야 할 때야. 강 검사는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이 전현주가 지어낸 소설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어릴 때부터 글짓기를 잘했대요. 그러니까 그 글짓기를 잘하고 문예 창작반에 있었으면 얼마든지 논리적으로는 몰라도 감정적으로는 비슷하게 꾸며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계속 말을 하게 해서, 그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끄집어내서 심문을 하라. 이렇게 이제 전문가들이 얘기를 해주더라고. 그래서 계속 말을 시켰던 거죠.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계속 말을 시켜서 모순을 찾아내려고 한 거야. 검사는 계획대로 전현주에게 계속 말을 시켰어. 그렇게 신경전을 벌이길 몇 시간. 드디어, 전현주가 입을 열었어. 맞아요.... 다... 제가 혼자 한 짓이에요. 마침내, 자백을 받아냈어. 지금부턴 전현주의 진술서를 토대로 그날의 진실을 되짚어 볼 거야. ▲ 그날의 진실 사건 당일인 8월 30일 오전 10시. 전현주는 서울 버스터미널 지하상가를 찾았어. 임부복을 사야 했거든. 하지만 주머니엔 15,000원이 전부야. 옷 한 벌 사기도 빠듯했어.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려는데 그때, 횡단보도 앞에서 한 아이를 만나게 돼. 하늘하늘한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예쁜 아이, 나리야. 그때 나리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걸어왔습니다. 그러더니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껍질을 버리냐'고 물었더니 웃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휴지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나리가 '언니는 왜 휴지를 버리냐'고 물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데리고 가서 돈을 요구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현주 진술서 中 전현주는 붙임성 좋은 나리를 슈퍼에 데려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사줬다고 해. 잠시 후, 영어 학원에 가야 한다며 나리가 떠나자, 전현주는 영어학원으로 쫓아갔어. 거기서 있지도 않은 조카를 들먹이며 거짓으로 진학 상담까지 받았대. 그러면서 나리를 기다린 거야. 얼마나 지났을까. 수업을 마치고 나온 나리가 아는 체를 해. 어머, 학원이 여기었어? 언니도 조카 상담 때문에 왔거든. 또 만나니 반갑다, 언니가 집에 데려다줄까? 그렇게 나리는 전현주를 따라갔던 거야.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나리가 만으로 8살. 초등학교 2학년생이야. 그럼 학교에서 유괴 예방 교육도 받았을 테고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아무런 경계심 없이 전현주를 따라갔던 걸까? 전문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어. 배가 8개월이면 많이 나왔을 거거든요. 임산부인 아주머니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건 되게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학원 선생님도 비슷한 맥락에서 뭔가 임산부가 학원까지 찾아와서 조카를 위해서 학원을 다니게 하려고 노력한다 라는 그런 것 때문에, 의구심을 안 가졌을 수도 있어요. 임산부라는 거, 여성이라는 거. 안타깝지만 범죄를 이행하는 범의를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굉장히 유리했을 거예요. -김태경,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나리의 환심을 산 전현주는, 이번엔 놀이공원에 가자며 꼬드겼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가 3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캄캄해지자 나리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칭얼댔습니다. 그래서 수면제 두 알을 배고픈 데 먹는 약이라고 하고 먹였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도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리집에 전화를 하러 나가려고 하는데 나리가 다시 깨서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팔과 다리를 묶었습니다. 입에 청테이프도 붙였습니다. 나리가 잠꼬대 소리를 막 했습니다. 그래서 나리를 목 졸랐습니다. 정말이지 처음부터 죽이려는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닙니다. -전현주 진술서 中 그렇게 죽일 생각만큼은 없었다고 주장하던 전현주. 하지만 나리는 유괴 당일 살해됐어. 그녀는 죽은 나리를 지하실에 혼자 둔 채 밖으로 나갔어. 이후 나리 엄마에게 돈을 요구한 거야. 그리고 다음날 밤 12시, 다시 지하실을 찾아와. 한 손엔 촛불을, 또 한 손엔 등산 가방을 든 채로. 보통 남자들도 겁날 거 아니에요. 내가 죽였던 시체가 있고. 불이 안 들어오면. 보통 같으면 금방 못 들어갈 것 같은데, 촛불을 사서 촛불 켜고 그 작업을 했다고. 아마 그 당시에 등산 가방을 안고 한강 가서 버리거나 그럴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한 번은 검사가 전현주에게 이런 질문을 했대. 돈이 필요하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애를 밴 몸으로 어떻게 애를 유괴할 생각을 했냐고. 그랬더니, 전현주 대답이 가관이야. 검사님, 이 몸으로 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강도짓을 하겠어요? 아님 은행을 털겠어요? 유괴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범죄의 계획부터 실행, 체포 이후까지도 전현주는 자신이 임산부라는 걸 적극 이용했어. 힘들다며 미루는 통에 현장검증도 5일이 지나 겨우 할 수 있었다고 해. 형사들 부축 속에 걸어가고, 현장검증 인형도 제대로 못 쳐다봐. 지친 표정의 전현주는 눈물을 흘렸어. 그리고 실신했어. 전현주는 멀쩡히 잘 있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실신을 했다고 해. 전현주는 약취유인살해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됐어. ▲ 유괴범의 아이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0월 15일. 경찰병원 분만실로 한 여성이 실려와. 맞아, 전현주야. 구속 상태에 있는 임산부의 출산일이 다가오면 검사가 형집행정지를 내려 외부 병원에서 분만을 하도록 한대. 전현주는 15일간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어. 그리고 이날 2.79kg의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고 해. 한편 같은 시각. 여긴 또 다른 병원의 산후조리원이야. 한 남자가, 생후 2주 된 신생아를 품에 안고 재롱을 부리고 있어. 이 애기 아빠, 바로 이 분이야. 전현주 출산하기 보름 전에 저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만큼은 제가 잊을 수가 없죠. 와이프한테 미안한 것도 많고. 한 20여 일 동안 집을 못 들어갔으니까.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타이밍 한번 얄궂지? 그러니까, 만삭의 유괴범 전현주를 수사할 당시에 구 형사님 아내 분은 임신 9개월 차였던 거야. 그동안엔 서에 살다시피 했지만, 이제 소홀했던 남편 노릇 좀 해야지 싶었는데. 또 삐삐가 울렸어. 보니까 역시나 '8282'야.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 저희한테 요청을 해서 저희들이 가서 뭐 한 11일 정도 계속 근무를 했던 것 같아요. 외부인들 출입 금지시키고, 도망 못 가게 하고. 의경, 의무경찰들 이렇게 앞에 세우고 했던 것 같아. 누가 테러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구준회,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출산한 전현주의 병실을 지키라는 지시야. 결국 구 형사는 갓 태어난 아들과 산후조리 중인 아내를 두고, 전현주의 수발을 들어야 했대. 그 와중에 전현주는 빵이 먹고 싶다는 둥, 별별 걸 다 요구했대. 어쨌든 출산을 마친 전현주는 형 집행 정지 기간인 15일이 끝나면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야 해. 그럼 전현주의 아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보통은 다른 가족에게 인계를 한대. 하지만, 상황이 안될 땐 아까 말한 대로 교도소에서 18개월 동안 엄마와 있다가, 시설에 맡겨지거나 입양을 간다고 해. 왜 기간이 18개월인 걸까? 일부 전문가들에 따르면, 18개월 무렵부터 기억력과 상상력이 발달한대. 또 활동도 많아지고 사회화 과정도 필요하니까. 그래서 아이를 위해 법적으로 18개월을 정해둔 거야. (일반적으로) 아기가 들어오면, 그 일반 수용자 방이 아닌 양육 유아방을 조금 더 크게 한 6평 정도 크기의 방에, 아기 엄마들을 따로 그 방에 모아서. 또 서로 도와가면서 아기 우유도 먹여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또 거기는 따뜻하게 온돌도 해주고. 그러다 보니까 훨씬 일반 수용실보다는 환경이 좋은 거죠. -김응분, 전 교도관 출산을 한 부모들은 국가에서 양육 수당이란 걸 받아. 교도소 수용자도 마찬가지야. 그 수당으로 교도소에서 아이의 분유나 기저귀를 구매하게 해 준 거지. 또 국가에서 지정한 무료 예방접종도 도와주고, 소아과 진료도 해줘. 예방접종이라든가 목욕시키는 것이라든가, 후에 또 약 먹이는 거. 뭐 이런 것들을 일일이 다 직원들이 입회해서 아기가 수용생활 동안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죠. -김응분, 전 교도관 사실 엄마가 범죄자라고 해서, 아이에게까지 죄를 물을 순 없잖아. 전현주는 아이를 서울 구치소로 데려왔어. ▲ 유괴범의 진술 번복 그리고 한 달 뒤, 대한민국은 전현주로 인해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져. 박초롱초롱빛나리 양을 유괴,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현주 피고인이 27일 열린 이 사건 첫 공판에서 또다시 '공범론'을 제기하면서 나리 양 살인 혐의까지 전면 부인해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전현주가 진술을 번복한 거야. 그 이유가 진짜 기가 막혀. 검사님 얘길 들어봐. 전현주가 저보고 '사형 선고가 나겠죠?' 그러는데 '당연히 이제까지 100% 사형이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감방에서 평생을 무기징역 받아 사는 것보다는 사형당하는 게 백 번 낫다고 생각했다, 밖에 있을 때는. 그런데 교도소 들어가 보니까 '아, 거기도 인간이 살만한 곳입디다' 이래요. 교도소에서 나중에 애 낳고 나서 혐의를 부인하더라고요. 온 죄수가 그냥 아기 보고 싶어서 난리가 나고 전쟁이 터지는 거야 막. 스타가 된 거야. 교도소 내에서. 삶의 생존 의지가 생겨버린 거죠. '내가 살아서 애를 키워야겠다'고 얘기하더라니까.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죠. 이게 남의 집 아이 죽여 놓고 자기 아기는 키우겠다고.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재판정에서 전현주는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재판 내내 공범 시나리오를 읊었어. 재판에 들어갔더니, 내가 있는데도 내 눈을 안 봐요.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무조건 부인하더라고요. 아 괘씸하더라고. 자기가 그 큰 범죄를 저질러놓고, 갑자기 반성하는 것도 없이 '내가 죽인 게 아니다' 떳떳하게 나와버리니까. -강신엽,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심지어 2차 공판 땐, 나리 엄마가 방청석에 와 있는데도, 눈물까지 흘리며 열연을 펼쳤다고 해. 키 큰 남자가 갑자기 칼을 들이댔어요. 난 죽고 싶지 않아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요. -전현주 전현주는 최후진술까지도 '나는 결코 나리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어. 재판부도 전현주의 공범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살해만큼은 우발적으로 일어났고 전과가 없다는 점이 참작돼 최종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고 해. 어느덧 28년이 흘렀어. 20대 임산부였던 전현주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어. 무기수 전현주,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전현주가) 처음에 신입 교육을 받고는 이제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머리도 있고 일도 잘하고 하다 보니까, 그 작업장에서 봉사원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고. 워낙 또 조용한 성격이고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까. 존재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저는 잘 몰랐습니다. 일반 무기수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 징역을 살면 한두 번 정도는 귀휴를 나갈 수 있거든요. 근데 전현주는 한 번도 안 나간 걸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김응분, 전 교도관 교도소에서 전현주는 말수도 없이 정말 조용하게 지낸다고 해. 따로 사건 이야기를 전해 듣지 않으면, 유괴살인범인 줄 모를 정도래. 그녀는 진짜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는 걸까? 아니면, 오로지 본인만을 생각했던 그 마음 그대로, 지금도 가석방을 기대하며 지내는 걸까. (예전에는) 무기수도 16년이면, 가석방을 나갔었거든요. (요즘에는) 무기수들이 살아야 되는 기간도 많이 늘어났어요. 징벌을 하나라도 받으면 가석방을 내보낼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들은 가석방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수용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약취 유인, 성폭력 관계 범죄, 조직폭력 등 그런 범죄들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저희들이 가석방을 신청하기가 어렵습니다. -김응분, 전 교도관 사실 '꼬꼬무' 제작진은 오늘 방송을 준비하면서 나리 아버님께 허락을 구했어. 아버님은, 더 이상 나리처럼 희생되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송을 허락해 주셨어. 자신의 아이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부모, 그리고 그 행복을 빼앗아 끝내 자신의 아이를 지켜낸 엄마.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기억한다'라고. 우린 언제쯤 잘못한 사람만 벌을 받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살인으로 세계 제일 되겠다 …황당한 꿈꿨던 온보현, 충격적인 살인일지
등록일2025.05.09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8일 방송된 '죽음의 드라이브-그 남자의 살인일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김광규, 그룹 오마이걸 멤버 유빈, 배우 이미도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세계 제일의 살인마를 꿈꾼 남자 오늘 다룰 이 사건에 대해 듣기 위해 '꼬꼬무' 제작진이 꽤 많은 형사님들께 연락을 드렸는데,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하셨어. 거절의 이유는, '그 사건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하지만 제작진이 오랜 기간 설득한 끝에, 몇 분의 형사님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형사들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 이야기. 지난 30년 간 형사들도 어디서도 한 적 없는 이야기야. 대체 어떤 사건이길래 그런 걸까? 모든 건, 바로 이 수첩 한 권에서 시작됐어. 1994년 9월 23일 금요일 오후 4시 2분. 어쩌면 이 글로 인하여 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범행일지를 작성한다. 기다려라. 꼭 나의 목적을 달성하여 이 부분 세계 제일이 되리라. 살해목표 인원 38명. 목표인원 초과될 수 있음. 50명으로 변경될 수 있음. -누군가의 범행일지 中 이 범행일지의 주인, 어떤 사람 같아? 오늘의 이야기는, 세계 제일의 살인마를 꿈꾼 한 남자. 그리고 30년간 그를 잊지 못한 형사들의 이야기야. ▲ 이상한 자수 때는 1994년 9월, 서울 서초경찰서 유치장이야. 건장한 남자들 열댓 명이 좁은 유치장을 가득 채웠어. 근데 다 같은 범죄자라기엔 분위기가 좀 요상해. 그래서 다이너마이트는 어디서 구했어? 아 진짜. 어제 다 말씀드렸잖아요! 질문을 하는 남자들은 서초서 강력4반 형사들. 그리고 대답을 하는 남자들은, 얼마 전 검거된 범죄조직이야. 형사들이 유치장 안에서 범죄자들을 심문하고 있는 거야. 강력4반이 검거한 이 조직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사무실로 쉴 새 없이 들이닥쳐서 완전 아수라장이야. 그래서 형사들이 기자들을 피해 유치장으로 들어간 거야. 대체 어떤 조직이었길래, 이 난리가 난 걸까? 인간이길 포기하려고 인육 먹었다. 이렇게 빨리 잡혀서. 돈 많고 사람 무시하는 것들 못 잡아서 한이 맺힐 뿐이야. '꼬꼬무'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지존파'야. 살인공장을 짓고, 인육을 먹는 등 인면수심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조직이지. 이런 놈들을 상대하느라 강력4반 형사들은 벌써 일주일째 유치장에서 합숙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 그런데 그때, 경찰서 앞으로 택시 한 대가 서더니, 사무실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어. 여기가 지존파 검거한 경찰서 맞나요? 자수하러 왔습니다. 지존파랑 같은 유치장을 쓰고 싶은데요. 다짜고짜 자수를 할 테니 지존파와 같은 유치장에 넣어달래. 이 남자, 왜 이러는 걸까. 당시 형사님의 이야길 직접 들어볼게. 거의 그 지존파 사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있을 시점에, 여기가 지존파 잡은 곳이 맞냐, 자기가 지존파보다 좀 더 흉악하고 더 낫다, 그걸 비교하기 위해서 왔다, 그래서 걔들과 같이 유치장이 되든 뭐 구치소에 됐든 같이 넣어줘라, 그렇게 요구를 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기수,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이 남자가 주장한 혐의는 다름 아닌, 연쇄살인. 심지어 공범도 없이 혼자 범행을 저질렀대. 그러니 6명이서 범행을 저지른 지존파보다 본인이 더 대단한 범죄자라는 거야. 심지어, 정식 조사를 받기 전에 기자회견부터 하겠대. 한 형사는 당연히 안 된다고 했지. 근데 경찰서를 맴돌던 기자들이 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구름떼처럼 모여들었어. 제 나이(38세)대로 죽이고 싶었습니다. 38명 죽이려고 했다가 내가 50명까지도 초과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죠. 정신병력? 없습니다. 수십 명을 살해하려 했다는 그의 주장에 기자들도 황당해했어. 한 형사도 처음엔 남자의 말을 믿지 않았어. ▲ 살인마의 범행일지 그런데 남자에게서 한 수첩을 건네받은 후, 한 형사의 표정이 달라져. 94년 9월 11일 저녁 8시 30분경. 독산동 입구에서 여자 1명. 12일 새벽 5시 30분경 산속으로 데리고 들어감. 테이프, 끈 이용하여 온몸 묶음. 94년 9월 14일 오후 9시경. 가락동에서 여자 1명. 허벅지, 배, 목 등 약 5차례 찔러 죽임. -살인마의 범행일지 中 수첩엔 22페이지에 걸쳐서 그가 주장한 살인의 구체적인 과정이 적혀 있었어. 이 일지의 내용들, 정말 다 사실일까? 처음에 들을 때는 사실상 뭐 믿기지도 않고, 더군다나 지존파 사건을 하고 있는 판에 그런 황당한 얘기를 하면서 자수를 하니까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 그러면 어떠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증거 자료나 그 상황을 얘기하다 보니까. '아 이건 범행인 것이 맞구나'… -한기수,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일지엔 피해자들의 이름과 나이도 기록돼 있었어. 한 형사는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 거짓말로 꾸며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남자의 일지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피기 시작해. 그랬더니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어. 94년 9월 12일 저녁 8시 30분경. 양재동 사거리 부근에서 여자 1명. 죽음 확인 못 함. -살인마의 범행일지 中 다른 피해자들은 범행 이후 처리 과정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데 이 여성만 '죽음 확인 못 함'이라고 적혀있는 거야.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한 형사는 곧바로 남자에게 이 내용을 물었어. 아, 산에 묶어두고 왔는데. 아마 죽었을걸요? 피해자는 20대 중반의 홍 씨. 수첩에는 여성의 이름과 나이까지 적혀 있었어. 서초서 형사들은 서둘러 이 여성의 신원을 조회했어. 그리고 9월 13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실종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어. 대체 이 여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실종신고가 접수됐던 그날로 돌아가볼게. ▲ '죽음 확인 못 함' 홍 씨를 찾아라 때는 남자가 서초경찰서를 찾기 보름 전, 서울 용산경찰서야. 한 중년 부부가 딸이 사라졌다 고 신고를 했어. 20대 중반의 딸이 어제저녁 외출한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대. 이 분이 바로 사라진 예비신부 홍 씨야. 홍 씨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어.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가출을 했을 리도 없고, 갑자기 연락두절이 될 이유가 없다는 거야. 그녀의 마지막 행적은 서초동에 있는 문화센터였어. 9월 12일 밤 8시 30분경 수업이 끝나고 센터를 나선 뒤로 행방이 묘연해. 용산서 형사들은 곧바로 홍 씨의 행적을 추적했어. 그리고 실종 다음 날, 그녀의 카드에서 현금 41만원이 인출된 내역을 확인해. 홍 씨의 카드에서 돈을 뽑은 사람의 얼굴이, 은행 CCTV에 찍혔어. 이 남자, 누군지 알겠어? 아까 자수하겠다며 서초경찰서를 찾아온 그 남자야. 근데 이상한 점 없어? 다른 사람의 카드에서 돈을 뽑으면서 모자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긴커녕, 아주 여유로운 표정이야. 형사들은 곧바로 홍 씨의 가족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줬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래. 그렇다면 이건,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 강력사건일 확률이 커. 그런데도 용의자는, 자신의 얼굴을 보란 듯이 노출했어. 왜 그런 걸까? 저희 수사하는 입장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다 노출하고 이렇게 현금을 인출했을까 상당한 의문점을 가지게 됐던 것이죠. 범인도 그것까지 다 본인이 (의도적으로) 노출을 해가면서 범행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 얼굴이 나와도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대담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한 마디로 '잡을 테면 잡아봐라'야. 조 형사도 형사생활 하면서 이렇게 대범한, 아니 오만한 놈은 처음이었대. 근데 지금 용의자를 추적할 단서는 달랑 이 사진 한 장뿐이야. 용산서 형사들은 사진을 들고 은행과 문화센터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 그야말로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야.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어. 형사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야.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을 납치하는데 어떻게 목격자 한 명이 없을 수가 있을까? 일단 강력반에 투입되는 형사들 모두 그 많은 시간 동안 범인의 소재를 찾지 못하니 피를 마르는 그런 심정이었죠.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야속한 시간만 흐르고 홍 씨가 사라진 지 열흘이 지났어. 그러다 은행 인근 다방에서, 사진 속 남자를 안다는 주민을 만났어. 전 직장동료인데, 급한 사정이 있다며 본인 집에서 며칠 머물다 갔다는 거야. 자, 드디어 용의자의 신원이 나왔어. 이름은 온보현. 나이는 38세. 범죄기록을 확인해 보니, 무려 전과 13범이야. 근데 온보현의 범죄기록을 확인하던 후배 형사가 깜짝 놀라. 온보현이 이미 지명수배된 수배자라는 거야.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 홍 씨를 납치한 걸로 보여. 온보현은 어떤 혐의로 지명 수배가 된 걸까? ▲ '전과 13범' 온보현이 또 지명수배된 이유 홍 씨가 실종되기 열흘 전쯤, 서울 잠실에서 사라진 여성이 있었어. 노래방을 운영하는 40대 김 씨야. 근데 이 사건, 관할서가 전북 김제경찰서야. 여성이 사라진 건 서울인데, 왜 김제서에서 수사를 했을까? 당시 김제서 형사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서울 쪽에서 이렇게 납치를 당해서 김제로 와서 그 피해를 당하고 거기서 탈출해서 신고한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기억으로는 거의 반나체, 반라에 가까웠고 온몸에 상처가 있는 상태였었고. 참 육안으로 볼 때도 굉장히 황급히 어디에서 탈출한 그런 상태였습니다. -김성수, 당시 김제경찰서 형사 노래방 주인 김 씨는 서울에서 납치된 뒤, 전북 김제까지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어. 김 씨는 서울에서 김제까지 무려 3시간이 넘도록 '택시'에 갇혀 있었다고 해. 김 씨가 탈출한 현장에서 버려진 택시가 발견됐어. 김 씨가 노래방 문을 닫고 이 택시에 탄 건 새벽 1시경이었어. 그런데 택시가 목적지를 그냥 지나치는 거야. 당황한 김 씨가 차문을 열려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열리지가 않아. 그 순간, 택시기사가 조수석에 앉은 김 씨에게 흉기를 들이대더니 순식간에 김 씨를 결박했어. 그리고는 이걸 내밀어. 김 씨가 소리를 지르거나 구조요청을 못 하게 하려고, 놈은 이 사탕을 김 씨의 입에 가득 채워 넣었어. 테이프로 입을 막으면 밖에서 누군가 수상하게 볼 수도 있으니까, 머리를 쓴 거지. 이후 택시는 한참을 달려 김제의 한 야산에 도착해. 놈에게 이끌려 험한 산길을 오르던 김 씨가 뭔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어. 현장엔 1미터가 넘는 깊이의 구덩이가 있었는데 눈에 띄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 위장까지 해놨대. 거기 가보니 구덩이가 딱 파여 있는 거예요. 사람이 행방불명되는 거 알지 않느냐고, 그게 다 암매장시켜서 없어지는 거래요. 그러니까 완전하게 범죄를 하기 위해서는 암매장을 시킨대요. 근데 영원히 여기서 내가 잠들 자리라고 그러더라고요 여기서. -노래방 주인 김 씨 구덩이에 도착한 뒤 놈은 김 씨를 성폭행했어. 그리고 빨랫줄과 테이프로 김 씨를 결박하고, 머리에 비닐봉지까지 씌워 구덩이로 밀어 넣었어. 이렇게 모든 게 끝이구나 싶던 그 순간,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주변이 조용해졌어.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납치범이 자리를 비운 거야. 김 씨는 죽을힘을 다 해 발버둥 쳤고, 그러다 빨랫줄을 풀었어. 그렇게 겨우 결박을 푼 김 씨가 무작정 산길을 내달려 신고를 했던 거야. 사건을 접수한 김제서 형사들은 현장에서 발견된 택시부터 조사했어. 근데 이것도 뭔가 이상해. 어디가 이상한지 알겠어? 숫자 7을 잘 봐봐. 위조된 번호판이야. 원래 숫자 '1'을 '7'로 바꾼 거야. 택시 회사에 확인해보니, 도난 택시야. 새벽 시간에 차고지에 있던 택시를 훔친 거라 목격자도 없대. 김 형사는 지난 5년간 이 택시회사에서 근무했던 기사들의 이력서를 한 장도 빠짐없이 수거했어. 뭔가 짚이는 게 있었거든. 택시를 훔칠 때는 거의 범죄 수법을 보면, 거기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절도 행각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회사에 몸 담고 있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 가지고 그 이력서를 다 보니까, 사진이 다 첨부가 돼 있기 때문에. 확인을 시켜보니까, 피해자가 그중에 한 사람을 지목을 했어요. 인상착의가 비슷하다고. -김성수, 당시 김제경찰서 형사 피해자가 지목한 사람이 바로 온보현. 온보현은 1년 전 이 택시회사에서 근무했던 전직 택시 기사야. 근데 근무 태도가 불성실해서 세 달 만에 쫓겨났대. 이후 범행을 결심한 온보현이 이곳에서 택시를 훔쳐 김 씨를 납치했던 거야. 자, 용의자 특정도 됐으니 이제 검거만 하면 돼. 김제서 형사들은 바로 온보현의 집을 급습했어. 하지만 집안 어디에도 온보현이 없어. 이미 도주한 거야. 형사들은 온보현 주변 인물부터 고향, 전 직장까지 전부 뒤졌어.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어. 그래서 지명수배를 했던 거야. ▲ 범인을 잡을 단서 자, 지금까지의 내용을 한 번 정리해 볼게. 9월 1일. 서울에서 노래방 주인 김 씨가 택시로 납치됐어. 김 씨를 전북 김제로 끌고 간 용의자는 온보현이야. 그리고 약 열흘이 지난 9월 12일. 서울 서초에서 예비신부 홍 씨가 사라졌어. 그런데 그녀의 카드로 돈을 뽑은 사람 역시 온보현이야. 아까 예비신부 홍 씨가 강남 한복판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했던 거 기억하지? 혹시 이번에도 온보현이 택시를 이용해 홍 씨를 납치한 걸까? 이 사건 피해자 홍 씨도 집으로 귀가하기 위해서는 택시를 탔을 거다, 같은 동일 사건으로 저희들은 추정을 했던 것이죠. 그 사건 연관성으로 봐서 (피해자 김 씨가) 살아 있기 때문에. 홍 씨도 살아 있지 않겠냐… 그런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범인을 찾는데 최선을 노력을 다 했죠.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용산서 조 형사는 김제서 사건을 확인하고 오히려 안도했어. 어찌 됐든 노래방 주인 김 씨가 생존했잖아. 홍 씨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최후의 카드를 꺼내. 바로 공개수배. 하지만 반대가 만만치 않아. 자칫 공개수배를 했다가 궁지에 몰린 온보현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최악의 경우 홍 씨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이 점 때문에 홍 씨의 가족들이 공개수배를 반대했어. 그런데 조 형사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던 그 무렵, 또 다른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와. 경북 김천의 고속도로 인근 배수로에서 젊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거야. 경찰 조사 결과, 날카로운 흉기로 복부를 여러 차례 찔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어. 곧이어 시신의 신원도 확인이 됐어. 피해자는 20대 중반의 여성, 배 씨였어. 배 씨는 9월 14일 서울 가락동 인근에서 귀가하던 중 실종됐어. 그리고 다음 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북 김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거야. 김천경찰서에선 용의자 특정조차 못 하고 있었어. 늦은 밤, 서울에서 실종된 여성이 수백 km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됐어. 앞서 발생한 노래방 주인 김 씨 사건과 유사한 지점이 있지? 이번에도 범행에 택시가 사용된 거라면, 서울에서 김천까지의 이동 과정이 설명이 돼. 그리고 또 한 가지. 아까 온보현이 은행 CCTV에 버젓이 얼굴을 노출했던 거 기억나? 배 씨의 시신은 공개된 장소에 보란 듯이 유기됐어. 한 마디로 잡을 테면 잡아 봐라. 배 씨 살인사건의 범인 역시 자기과시형의 범죄자로 보여. 그렇다면 이 사건도, 온보현의 짓일까? 만약 배 씨를 죽인 범인이 온보현이 맞다면, 이거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커. 온보현이 노래방 주인 김 씨를 납치했을 때 이런 얘길 했었거든. 전국에다가 암매장시킬 구덩이 다섯 군데 파놨대요. (제가) 처음이 아니라 엄청 많이 했대요 자기 말로. 엄청 많이 해서 완전범죄를 위해서 구덩이를 파서 많이 했대요. 그게 완전범죄라고. -노래방 주인 김 씨 이 정도의 수법 같으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다발성으로 할 수 있는, 제2의 제3의 범행이 또 저지를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그렇게 판단했죠. -김성수, 당시 김제경찰서 형사 만약 온보현이 배 씨를 죽인 거라면, 예비신부 홍 씨는 물론 또 다른 피해자가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몰라. 그렇게 94년 9월 27일, 온보현에 대한 공개수사가 시작됐어. ▲ 공개수배 20대 회사 여사원이 택시 운전사에게 납치된 뒤 보름이 지나도록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은행 폐쇄회로TV에 잡힌 20대 여사원 납치 용의자 온보현 씨입니다. 경찰은 오늘 온보현 씨를 전국에 공개 수배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서울 전역에서는 택시를 대상으로 불심검문이 이뤄졌어. 이때 동원된 사람 중엔, 우리가 잘 아는 사람도 있어. 이 사건이 발생하던 당시에 저는 경찰서에서 CSI 요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택시를 이용한 범죄이기 때문에 가스 충전소에서 잠복을 한다든지 이런 사건 수사에 동원이 됐습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 전직 형사 우리가 잘 아는 '프로파일러 권일용' 이전, '형사 권일용'이던 시절에 이 수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대. 그럼 뭐가 나왔을까? 수사는 답보 상태야. 온보현은 도대체 어디 있고, 무슨 생각인 걸까? 모든 비밀은 그 수첩 안에 담겨있어. 지금부터 권일용 프로파일러와 함께, 30년 전 풀지 못한 그날의 수수께끼를 풀어볼게. 노래방 주인 김 씨가 김제 구덩이에서 탈출한 9월 1일 새벽. 온보현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거 기억나? 사실 그가 자리를 비운 건 산 아래 세워둔 택시에서 김 씨의 금품과 흉기를 챙기기 위해서였어. 이후 구덩이에 돌아간 온보현은 김 씨가 탈출한 걸 확인해. 그 후 온보현은 어떻게 했을까? 소지품 검사 후 산 속 현장으로 가 보니 도망가고 없음. 차를 그곳에 두고 숨어 지켜보니 김제 경찰서에서 현장조사. 나 자신 스스로 자수하기 전까지는 절대 잡지 못 한다. 김제 경찰서 바보 녀석들. -온보현의 범행일지 中 온보현은 일부러 현장에 택시를 버렸어. 그리고 경찰이 택시를 조사하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봤어. 지금 이 온보현이의 범죄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이동성입니다. 순식간에 자기가 이동할 수 있다라고 하는 이 자신감과 오만함 때문에 그 증거들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나를 추적하는 데 쉽지는 않을 거야'라고 하는 자기 확신에 빠지는 거죠. 그래서 그 증거가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을 해요. -권일용, 프로파일러, 전직 형사 가짜택시를 이용하면, 범행과 동시에 도주가 가능하고, 여러 지역에 걸쳐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경찰의 추적도 쉽지 않아. 게다가 택시는 대중교통이야. 강제로 태워 납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증거나 목격자를 남기지 않아. 그렇게 온보현은 자신의 범행도구로 '가짜택시'를 선택했어. 온보현은 김제 현장에 택시를 버린 후 곧바로 다음 범행을 준비해. 3~4일 놀면서 다음 범행 생각하다 지나가는 택시 세워 운전 연수 좀 시켜달라 하여 미사리에서 5시간 연수받고, 기회가 와 차량 몰고 도주함. -온보현의 범행일지 中 온보현이 두 번째 택시를 훔친 거야. 이후 아예 이 택시에서 생활했어. 그의 범행주기도 '단 하루'로 급격히 짧아져. 일지에 보면 이때부터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해. ▲ 피해자 홍 씨의 행방 9월 12일 밤 8시 30분. 그의 가짜택시가 향한 곳은 서울 서초동이야. 거리의 사람들이 그의 택시를 향해 손짓해. 온보현은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사람들을 살폈어. 그러다, 홀로 택시를 잡는 젊은 여성을 발견했어. 온보현은 단지 제압하기 쉽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여성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어. 피해자들 입장에선 그날, 그 시간,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타깃이 된 거야. 이날도 또 한 명의 젊은 여성이 그의 가짜택시에 탑승해. 이 여성 누군지 알겠어? 사라진 예비신부 홍 씨. 홍 씨를 납치한 온보현은 그녀의 신용카드를 빼앗고 경기도의 한 야산까지 끌고 가. 그리고는 노래방 주인 김 씨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손과 발을 묶고 머리에 비닐봉지까지 씌웠어. 그런데 잠시 후, 온보현이 뜻밖의 얘길 꺼내.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알았지? 한 명 더 데려올 테니까. 정확한 의도를 알 순 없지만 온보현은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어. 온보현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가. 홍 씨에게도 기회가 온 거야. 당장 이 지옥을 벗어나야 해. 홍 씨는 탈출에 성공했을까? 자, 다시 홍 씨 납치사건을 수사 중인 용산경찰서야. 공개수사가 시작되고 수사 인력도 40여 명으로 늘었어. 대규모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던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여기 서초서인데요. 온보현이 자수를 했습니다. 아까 맨 처음, 온보현이 지존파를 검거한 서초경찰서를 찾아갔던 거 기억나지? 그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태연히 범행을 이어오던 온보현이 갑자기 자수를 한 거야. 용산서 형사들 심정이 어땠을까? 범인을 그렇게 애타게 찾는 그런 속에서, 그나마 다행히 범인이 자수를 했다니까. 용산에서 발생된 홍 씨를 찾는데 모든 것이 수사의 목표가 됐었죠. 실낱 같이 혹시라도 살아 있지 않겠나, 가족 입장이나 형사 입장이나 그런 마음이었었죠.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온보현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지금은 당장 홍 씨를 찾는 게 우선이야. 용산서 형사들은 온보현의 신병을 인계받아 곧장 홍 씨를 두고 왔다는 사건 현장으로 향했어. 가는 동안에도 온보현은 서초서에서 했던 것과 같은 주장을 했어. 확인을 못 했는데, 죽었을 거라니까요. 하지만 조형사의 생각은 달랐어. '제발 살아만 있어라' 간절한 마음으로 산길을 올랐어. 잠시 후, 수많은 기자와 경찰 그리고 온보현이 사건현장에 도착해. 그리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어. 9월 28일 새벽 4시. 홍 씨가 시신으로 발견됐어. 그녀가 실종된 지 15일 만이야. 실종 당시 입었던 검푸른 바지와 하늘색 남방을 입은 홍 씨는 머리에 검은색 비닐봉지가 씌워진 채 발견됐어. 사인은 뇌실질손상. 둔기 등으로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은 거야. 사건 당일, 온보현이 자리를 비우자 홍 씨는 결박을 풀기 위해 몸부림쳤어. 그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근데, 몸부림을 칠수록 숨쉬기가 쉽지 않아. 얼굴을 덮은 비닐봉지 때문에 호흡도 힘들어. 그래도 홍 씨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힘을 냈어. 그러자 아주 조금씩 손목을 묶은 끈이 느슨해져. 그렇게 겨우 한쪽 손을 뺀 그 순간, 아, 그렇게 한 거구나? 바로 온보현이었어. 그가 산을 내려간 게 아니었어. 사실 이전 김제 사건에서 온보현은 꽤나 분노했어. 완전범죄를 자신했는데, 노래방 주인 김 씨가 탈출해 버렸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납치한 홍 씨에게 의도적으로 자리를 비운다며 거짓말을 한 뒤,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어떻게 결박을 푸는지 관찰한 거야. 이날 홍 씨가 결박을 푸는 걸 확인한 온보현은 삽으로 홍 씨를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그대로 방치한 채 현장을 떠났어. 마지막까지 딸의 무사귀환을 빌었던 예비신부 홍 씨의 가족들. 외부와의 연락을 모두 끊은 채 깊은 슬픔에 잠겼어. 홍 씨가 문화센터 앞에서 납치됐던 거 기억나? 문화센터에서 연극수업을 듣고 나오던 길이었대. 회사원이었던 그녀가 연극수업을 듣기 시작한 건, 자원봉사로 만난 아이들 때문이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극공연을 직접 보여주려고. 홍 씨가 시신으로 발견되고 그녀의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있어.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딸아이 생각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 애가 쓰던 방의 물건들도 모두 치우고 하루빨리 잊으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악몽이 더욱 뚜렷하게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택시 한 번 잘못 타 목숨을 잃는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피해자 홍 씨의 부모 홍 씨가 살아있기만 바랐던 조 형사는 현장을 보고 망연자실했어. 그리고 또 한 번, 깜짝 놀라. 그 현장을 봤을 때는 진짜 섬뜩했거든요. 어떤 의식을 치른 것처럼 양손을 한 나무에 묶고 다리도 나무에 묶어놓고.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섬뜩한 현장이었는데, 온보현은 거기에 대한 죄의식이라든지 전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속죄하는 마음에라도 머리 숙여 용서를 비는 게 좋지 않겠냐 (물었지만) 전혀 그런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온보현은 피해자에게 사죄하기는커녕, 기자들에게 이걸 물었대. 오늘 신문에 제가 탑입니까? 지존파가 탑입니까? 도저히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놈이야. ▲ 살인마를 꿈꾼 남자의 민낯 용산서 형사들도 단단히 각오를 하고, 그의 범행일지를 토대로 질문을 시작했어. 가장 먼저 그의 범행 동기를 물었어. 제가 사실 우리 아버지를 싫어합니다. 제가 그냥 죽으면 우리 아버지 계속 시골에 갑니다. 내가 범죄를 해서라도 우리 아버지를 두 번 다시 시골에 못 가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이게 무슨 말일까. 온보현은 아버지의 가정폭력 때문에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어. 그래서 아버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거야. 이게 말이 돼? 설사 그런 불우한 환경에 있었다고 해도 절대 살인을 정당화할 순 없어. 게다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아버지를 증오한다면서 정작 그가 살해한 사람들 모두 본인의 어머니처럼 힘없는 여성들이었어.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와 똑같은, 아니 더 비열한 범죄를 저지른 거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온보현은 불과 보름 만에 총 6건의 범행을 저질렀어. 두 건의 살인을 포함해 납치, 강도강간, 사체유기 등 혐의도 아주 다양해. 근데 그의 수첩을 보면, 피해자를 대하는 게 달라. 5차 피해자 옆에는 집 앞까지 태워다 줌 이라 써있고, 김천에서 발견된 6차 피해자 옆에는 즉시 살해 라고 적혀있어. 두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 온보현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어. (5차 피해자는) 죽일 생각이었는데 아버지도 동생도 없다고 하고 얘기를 해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어 풀어주었다. 그날 저녁 마지막으로 배 씨를 가락사거리 부근에서 태웠다. 내려주기 직전에 위협을 해서 성폭행을 하려고 했는데 핸들을 꺾고 반항했다. 그래서 차 속에서 칼로 5차례 찔러 살해했다. 온보현과 같은 연쇄살인마들은 피해자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하대. 본인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는 5차 피해자를 보며 현실에선 느끼지 못한 우월감을 느낀 거야. 반대로 본인을 무시하거나 반항하는 경우, 지나치게 흥분하고 과도한 폭력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열등감이지. 6차 피해자 배 씨를 잔혹하게 죽인 이유도 이 때문이야. 그런데 폭주하 듯 범행을 저지르던 온보현이 반항하는 배 씨를 죽인 이후, 갑자기 범행을 멈춰. 왜 그랬을까? 마지막 범행을 저지른 그날, 온보현은 배 씨의 저항으로 인해 손을 다쳤어. 피해자가 소리를 질렀던 것이죠. 그러니까 순간 본인이 당황했던 거죠. 이렇게 갑자기 피해자가 저돌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죠.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그리고는 폭주하던 범행을 멈췄어. 범행 중 처음으로 다쳐서, 범행 의욕을 잃은 것으로 보였대. 그렇다면 온보현이 자수를 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온보현의 대답이 정말 상상을 초월해. 처음 뉴스 (공개수배) 보고, 제가 자살해서 죽으려고 중부고속도로 가다가 보도 상에 (피해자가) 3명으로 나오더라고요. 3명으로 나와서 제가. 제 모든 범행을 제가 처음부터 공개하기 위해서… 본인은 총 6건의 범행을 저질렀는데, 공개수배에 단 3건의 혐의만 언급됐다는 거야. 게다가 세상은 여전히 지존파 사건으로 떠들썩해. 그걸 보면서 온보현이 자수를 결심했다는 거야. 온보현은 수첩을 꺼내 그간의 범행 과정을 적기 시작했어. 그게 바로 이 범행일지야. 사건이 있던 날마다 그때그때 기록을 한 게 아니라, 완전히 급조된 범행일지야. 그는 자신의 범행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범행일지를 쓰고, 자수를 했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전문가의 분석은 달라. 내가 두렵고 힘들지만, 오히려 표현은 훨씬 더 강한 것처럼 하는 반대 행동을 나타내는 이런 방어 기제를 통해서, 자기를 스스로 위로하는 전형적인 그런 반동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자수를 하게 된 과정도 보면, 이미 자신이 노출돼 가지고 형사들이 계속 자기를 추적하는데 거의 가까이 다가왔다라고 생각하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나는 통제당하는 것보다는 내가 나를 통제할 거야라고 하는 두려움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 전직 형사 사실은 두려우니까. 자기가 더 강한 척. 마치 악마인 척, 자신을 꾸민 거야. 세계 제일의 살인마를 꿈꿨던 남자의 초라한 민낯이야. 뭐 겁이 없고 대범하고 이런 자가 아니고. 소심하고 사실 사회에 대한 어떤 불만들 감정 표현들을 제대로 적절히 못 하는 자거든요. -권일용, 프로파일러, 전직 형사 지존파 사건이 막 그 언론에 엄청나게 보도되면서 나오니까. 그 순간에 자기가 과시를 하려는 걸로 생각이 된 거지. 본인 자체가 세거나 뭐 기가 세거나 그렇게 저는 느끼지는 않고. - 한기수,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온보현이 검거되고 1994년의 가짜택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어. 그런데 두 달 후인, 94년 11월.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져. 서울 서초경찰서에 또다시 비상이 걸려. 20대 중반의 회사원 유 씨가 가짜 택시기사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는 신고야. 심지어 유사한 수법으로 보이는 택시 강도강간 사건이 3건이나 더 발견됐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온보현의 범행수법을 카피한 모방범죄들이 전국에서 쏟아지기 시작했어. 수도권 일대에서 택시 강도짓을 하면서 부녀자를 납치해 성폭행해온 일당 두 명이 오늘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훔친 택시에 여자들만 골라 태워 상습적으로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을 해온 혐의로… -당시 뉴스 보도 中 훔친 택시의 번호판을 위조한 방법까지 그대로 따라 했어. 온보현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모방범죄까지 이렇게 판을 치니, 마음 놓고 택시를 탈 수 있었을까? 오죽하면 당시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리기도 했어. 심야택시 10계명 1. 뒷좌석에 앉아라 2. 창문을 열어놓으라 3. 배웅객을 활용해라 4. 연로한 운전자를 선호하라 5. 가능한 둘 이상 택시를 타라… 당시 사람들의 불안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느껴져? 온보현과 몇몇 파렴치한 범죄자들 때문에 무고한 시민과 선량한 택시기사들의 피해가 컸어. 온보현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졌어. 그리고 얼마 후 온보현의 1차 공판이 열렸어. 그런데 법정에서 누군가 이렇게 외쳤어. 이런 흉악범은 사형에 처해야 또 다른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유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마땅히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야 합니다. 이 말을 한 사람, 바로 온보현 본인이었어. 변호인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변론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마치 검사라도 된냥 스스로 사형을 구형했어. 온보현의 이 말, 정말 유가족을 위한 것이었을까? 온보현에겐 어떤 처벌이 내려졌을까? 당시 1심 판결문이야. 피고인의 범행수법은 너무나도 지능적이며 잔혹하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며 그 동기에도 아무런 참작할 만한 점이 없고 비록 피고인이 범행 후 자수하였고 개전의 정이 엿보이기는 하나 피고인을 법정 최고형에 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 할 것이다. 위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1심뿐 아니라 2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됐고 형은 그대로 확정이 됐어. 이후 1995년 11월 2일, 사형이 집행됐어. 온보현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지존파와 같은 날 생을 마감했어. 온보현 사건 이후, 경찰 시스템에는 한 가지 변화가 생겼어. '광역수사대'라고 들어봤지? 줄여서 '광수대'. 관할구역의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와 달리, 행정구역을 망라해 큰 사건을 전담하는 곳이지. 이 광역수사대가 생긴 것도 바로 온보현과 지존파가 검거된 94년 11월이었어. 오늘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많은 형사님들이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했던 거 기억나? 사실 온보현이 자수했을 당시 경찰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다고 해. 공조수사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긴 거라고. 이 때문에 징계를 받은 분도 있어. 오늘 만난 두 형사님에게도 온보현 사건은 부끄럽고 또 아픈 사건이야. 그럼에도 두 분이 카메라 앞에 선 이유가 뭐였을까? 굉장히 아쉬웠던 것이, 더 손 빠르게 더 빠른 시간에 전국적으로 같은 내용으로 공조가 됐더라면. 피해자 한 분이라도 더 줄일 수 있었고 일찍 검거했을 텐데. 공조가 그 당시에 지금처럼 빨리 안 이루어져 형사로서 참 책임감도 느껴지고 어깨가 좀 무거웠습니다. -김성수, 당시 김제경찰서 형사 그때 94년도에는 모든 수사 시스템이 많이 좀 부족했습니다. 과학수사라든지 공조수사라든지. 가족분들한테 지금도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두 분이 오랜 고민 끝에 30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꺼낸 건, 아마 저 마지막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보여줄 게 있어. 온보현이 교도소에서 쓴 편지야. 편지를 받는 사람은 용산경찰서 조형근 형사야. 그는 유일하게 조 형사 하고만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해. 왜 조 형사는 온보현과 편지를 주고받았을까? 조 형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보현을 설득했어. 떠나기 전에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라고. 온보현이 그 약속을 지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끝까지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로하고자 했던 형사님들의 진심만은 전해지길 바랄 뿐이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