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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쇼팽 콩쿠르는 어떻게 '최대 콩쿠르'가 됐을까
등록일2025.10.16
지금 국회를 출입하고 있다. 국회의 말은 늘 살벌하다. 진영 양극화 한복판, 정치인도 지치겠지만 거친 말을 받아치는 기자도 기가 빨린다. 그나마 기자실에서 틈을 내 이어폰 꽂고 음악 듣는 게 치유책이라면 치유책이다. 자질 없는 기자가 고약한 하루를 버텨내는 나름의 생존 방식이랄까. 혼자 듣고 마는 내향성 취미라지만, 요즘 만큼은 누군가와 교감하고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 5년에 한 번 열리는 음악계 최대 축제, 쇼팽 콩쿠르가 열리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의 이혁·이효 형제가 3라운드에 진출했다는 소식에 신도 난다. 콩쿠르의 콩쿠르, 세계 최대 콩쿠르. 예술에 위계어를 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어떤 전문가도 이 수식어에 토를 달지 않는다. 쇼팽 콩쿠르는 음악계 최대 축제인 동시에, 명실상부 현대 피아니즘의 산파 역할을 했다. 2000년 임동민·임동혁 형제의 3위 수상을 시작으로, 2015년 조성진이 우승을 거머쥐며 한국과 인연도 깊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질문. 쇼팽 콩쿠르는 왜 '세계 최대'라고 불릴까. 피아노 잘 치는 사람 순위 매겨 솎아 내는 행사일 뿐인데, 음악계는 왜 이렇게 열광하고 환호하는가. 좀 더 본질적인 질문. 권위 있는 콩쿠르, 명망 있는 콩쿠르란 무엇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① 첫 번째 조건 : 콩쿠르 이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한다. 권위 있는 콩쿠르 그 첫 번째 조건. 유명한 작곡가 혹은 연주자 이름이 붙어 있다면, 권위가 높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농담 반 진담 반이다. 가볍게 시작하자는 취지다. 다만, 이 우스갯소리 뒤에 깔린 역사적 배경을 톺아 보면 마냥 가볍지 만은 않을 것 같다. 극단으로 치달았던 제국주의, 그렇게 발화한 참혹한 세계 대전과 식민지 해방, 전쟁의 비극이 채 식기도 전 지구를 두 동강 냈던 냉전까지, 상당수 권위 있는 음악 콩쿠르는 20세기 역사의 질곡을 숙주 삼아 탄생했고, 성장했으며, 권위를 얻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좌우 이념은 격변의 20세기를 규정하는 이데올로기 그 중심에 있었다. 예술은 이데올로기가 흐트러지지 않게 다잡는 유용한 도구가 됐다. 가령, 우리 민족, 우리 국가를 상징하는 위대한 예술가는 공동체를 똘똘 뭉치게 만드는 정치적 선각자로 승격됐다. 통치자들은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는 대규모 행사를 필요로 했고, 그의 이름을 딴 경연대회는 꽤 매력적인 정치적 기획이 됐다. 어쩌면 예술과 프로파간다는 한 끝 차일지도 모르겠다. 그 정점에 쇼팽 콩쿠르가 있었다. 프레데릭 쇼팽은 폴란드 음악 그 자체였다.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피아노 작곡가가 폴란드인이라는 민족적 자부심은 폴란드 정치가들에게 좋은 통치 수단이 됐다. 폴란드의 첫 국가원수인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쇼팽을 기리는 대규모 예술 행사의 정치적 쓰임새를 잘 알고 있었다. 폴란드 예술의 위대함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고 공동체 결속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27년 그렇게 쇼팽 콩쿠르의 막이 올랐다. 쇼팽 콩쿠르는 폴란드를 도덕적으로 치유하겠다는 피우스트스키 정권의 '사나치아' 운동과도 맞닿아 있었다. 사나치아는 권위주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어용' 이념에 가까웠다. 피우수트스키 정권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했다. 위대한 폴란드 작곡가를 홍보하고 축하하기 위한 경연대회 아이디어는 피우수트스키가 시작한 사나치아 시대 초기의 정치적 분위기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 사나치아는 좁은 의미의 정치를 넘어 '국가를 정화하고 개혁하며 강화한다'는 광범위한 지지를 통해 도덕적 쇄신과 국가 정체성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 리사 맥코믹 &<쇼팽의 포고렐리치 : 콩쿠르 스캔들의 사회학&> 60쪽, 더 쇼팽 리뷰, 2018년. 쇼팽 콩쿠르는 순수한 의미의 음악 경연대회를 넘어 국가 이데올로기 전략과 맞물려 있었고, 폴란드의 예술적 역량이 한데 모여 결집된 형태로 나타났다. 공동체의 광범위한 지지와 함께 공적인 권위를 얻었다. 행사 규모는 커졌고 미디어 발달과 맞물리며 유명세를 떨쳤다. 우승자를 배출한 국가들 역시 '자부심'으로 호응했다. 국가 대항전 올림픽처럼, 마치 국력의 척도처럼 여겨졌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역시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었다. 냉전의 그림자였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서구 연주자들이 대대적으로 보이콧하면서 빛이 바랬지만, 한때는 쇼팽 콩쿠르와 함께 20세기 콩쿠르를 양분했을 정도로 위세가 높았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군비 출혈에 그치지 않았다. 1957년 10월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 소련은 미국을 앞섰다는 기술적 우월감에 더해, 문화적 우월감으로 그 기세를 이어가고 싶어 했다. 그렇게 러시아 음악의 상징적 존재, 차이콥스키의 이름이 소환됐고, 그의 이름을 딴 콩쿠르가 기획됐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막이 오른 건 그 이듬해인 1958년이었다. 위대한 예술가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냉전의 최전선 그 선봉대가 됐다. 러시아에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있다면, 미국에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대한 반작용으로 북미 최대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탄생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2022년 임윤찬이 만장일치로 우승하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반 클라이번은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였다. 미국 피아니스트가 소련 적진 한 가운데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 메달을 걸었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을 흥분시켰다. 당시 소련 당국은 미국 연주자 우승 여부를 두고 고민이 많았지만, 관객의 열광적 지지에 우승을 주지 않고는 배겨내기 어려웠다. 그의 결선 연주가 끝난 뒤 8분 동안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당시에는 콩쿠르 입상자 발표 전 국가의 승인이 필요했다. 심사 위원들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흐루쇼프에게 미국인의 우승에 대한 의사를 묻자, 반 클라이번이 최고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고 답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19개국에서 온 50명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참가한 예선전에서, 반은 관중의 대대적 환호를 받았다. 팬들은 그를 반유샤라고 불렀다. 여성팬들이 그의 호텔까지 쫓아갔다. 소련 음반사들은 그에게 무엇이든 녹음해 달라고 청했다. 결승전에서 그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마지막 음을 터뜨렸을 때, 모스크바의 열광적인 청중들은 '우승! 우승!'을 외쳤다. - 미국 매거진 라이프(Life), 저기에 미국인들, 여기 러시아인들 1958년 4월 28일. 반 클라이번은 소련의 문화적 기획을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예술 이상의 정치적 존재로 격상됐다. 미국 타임지 1958년 10월호는 표지 기사에서 반 클라이번을 러시아를 정복한 텍사스인 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단순한 콩쿠르 우승자가 아닌, 소련을 정복한 전쟁 영웅에 가까웠다. 미국은 이 영광의 순간을 계속 기억하고 싶어했다. 4년 뒤, 이 젊은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딴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만들어졌다. 역사적인 작곡가나 거장급 연주자가 아닌, 막 커리어를 시작한 신인 연주자의 이름으로 명명한 콩쿠르는 음악사에서 반 클라이번이 유일하다. 당시 그의 나이 불과 28세였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공동체의 전격적인 지지에 힘입어 몸집을 키웠다. 거액의 기부금도 몰렸다. 특히, 세계 최대 클래식 시장인 미국은 자신을 한 수 아래로 봤던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의 시선을 불편해 했던 터라, 이에 대항하는 괜찮은 수단이 됐다. 20세기를 달궜던 제국주의와 냉전의 역사는 끝났다. 권력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정치 기획으로서의 콩쿠르 경향성은 약화됐다. 이제 콩쿠르는 대부분 사적인 재단에서 주최하고 시상한다. 다만, 그 권위의 잔재는 관성처럼 남아 대형 콩쿠르라는 상징성을 유지하고 있다. 쇼팽 콩쿠르는 여전히 폴란드 예술 담당 정부 부처 문화유산부의 지원을 받는 국가 축제다. 폴란드 대통령이 직접 나와 수상자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② 두 번째 조건 : 넉넉한 상금 콩쿠르와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의 상관 관계를 지난하게 풀어냈으니, 이제는 20세기를 규정하고 있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이야기를 할 차례다. 권위 있는 콩쿠르의 두 번째 조건. 상금이 많으면 권위 있는 콩쿠르일 가능성이 높다. 예술과 돈,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앞서 말한 대로 콩쿠르 사적 재단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들어가야 할 돈이 한 두 푼이 아니다. 경연장 대관하고, 심사위원 섭외하고, 꽤 높은 사례비도 줘야 한다. 연주 잘 한 수상자에게는 상금도 지급해야 한다. 이 뿐 아니다. 좋은 인재들 많이 참여 시키려면 부담을 낮춰야 하니 숙박비를 제공하기도 한다. 쇼팽 콩쿠르는 참가자들에게 숙박비는 물론 여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콩쿠르는 이윤을 창출하는 수익 사업이 아니다. 부가가치 없는 비용들 투성이다. 그렇다면, 그 돈을 어떻게 충당할까. 바로 스폰서다. 쇼팽 콩쿠르는 그야말로 스폰서의 향연이 펼쳐진다. 폴란드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협찬 올림픽 같다고나 할까. 동유럽 최대 석유 회사인 PKN 올렌(PKN Orlen)을 비롯해, 복권회사인 토탈라이저 스포토비(Totalizator Sportowy), 폴란드 국적항공사인 LOT 폴란드 항공 등 동유럽 유명 대기업이 포진해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쇼팽 콩쿠르의 기술 파트너는 구글이다.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 유명 피아노 제작사들도 협찬에 열심히다. 기업들은 바보가 아니다. 쇼팽 콩쿠르 주목도가 높으니, 그만큼 홍보 효과가 크다는 계산이 깔렸다. 권위 있는 콩쿠르일 수록 후원이나 협찬이 많아지고 덩달아 씀씀이가 커진다. 큰 시장에 사람들이 많이 꼬이듯 돈이 몰리고 수상자의 상금은 높아진다. 결국, 상금은 콩쿠르의 규모와 권위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다. 권위 있다고 알려진 콩쿠르의 상금을 정리했다. 입상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피아노 콩쿠르만 따로 뗐다. 정부에서 나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영향력 있는 콩쿠르를 꼽아 혜택을 주는 것이니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이들 콩쿠르의 우승 상금은 적게는 우리 돈으로 수천 만 원, 많게는 1억 원을 넘나든다. 쇼팽 콩쿠르, 그 호화로운 협찬의 상징적 장면은 피아노 회사들의 치열한 스폰서 경쟁이다. 대회 참가자들이 연주하는 피아노를 제공해주는 협찬이다. 언뜻 보면 피아노 한 두 대 대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가 싶지만, 참가자 입장에서는 어떤 피아노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연주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피아니스트의 이름 옆에는 연주자의 국적과 함께 연주하는 피아노 상표가 소개되는데, 피아니스트의 이름과 국적 만큼이나 중요한 정보란 의미다. 이혁, 대한민국, 스타인웨이 이런 식으로. 쇼팽 콩쿠르 규정을 보면 주최 측의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가늠이 된다. 피아노만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그 외 들어가는 비용 모두 너희가 알아서 대라는 식. 마치, 너희 아니라도 협찬해 줄 곳 많다는 으름장같달까. &<제19대 쇼팽 콩쿠르 규정&> 11항 피아노 회사들은 피아노를 자비로 제공하고, 서비스해야 한다. 이는 콩쿠르 연주 도중에 사용될 때는 물론, 콩쿠르 주최 측이 진행하는 모든 절차 모두에 적용된다. (자료 : 쇼팽 콩쿠르 홈페이지) 올해 콩쿠르에서는 미국과 독일에 거점을 둔 피아노 회사 스타인웨이(Steinway) 두 대를 비롯해, 일본의 야마하(Yamaha), 시게루 가와이(Sigeru Kawai), 이탈리아의 파지올리(Fazioli), 그리고 독일의 C. 베히슈타인(C. Bechstein)이 협찬 브랜드로 나섰다. C. 베히슈타인 피아노는 한동안 쇼팽 콩쿠르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수십 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참가자들은 콩쿠르 시작 전 자신이 연주할 피아노를 선택한다. 쇼팽 콩쿠르 규정상 주어진 시간은 딱 15분. 음색을 꼼꼼히 확인하라는 취지인데, 당초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를 정해 두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피아노 브랜드들은 콩쿠르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피아노로 연주시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 특히, 요즘 같이 유튜브 생중계로 쇼팽 콩쿠르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시대, 그런 경향성은 더 커졌다. 자신들의 피아노를 선택하면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매장 연습실은 물론, 호텔에서 이동할 차량 픽업 서비스, 식사까지 제공해 준다는 식이다.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환영받는 브랜드 스타인웨이는 상대적으로 그 혜택이 덜하다. 지난 18회 쇼팽 콩쿠르에서는 75%가 스타인웨이를 택했다. 많은 피아니스트가 선택하다 보니 혜택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스타인웨이의 독주가 깨진 건 지난 2010년이었다. 당시 우승자 러시아의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는 일본 야마하 피아노로 우승한 첫 피아니스트였다. 스타인웨이가 아니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졌다. 야마하의 몸값은 치솟았고, 대단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2015년에는 조성진이 다시 스타인웨이로 우승했지만, 코로나로 1년이 연기된 2021년 콩쿠르에서는 캐나다의 브루스 리우가 파지올리 피아노로 포디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다른 피아노 브랜드에 비해 역사도 짧았던 파지올리는 상상 이상의 주목을 받았다. 파지올리가 우승했다 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당시 결선 무대에 시게루 가와이 연주자도 3명이나 있었다. 반면, 당시 2010년 우승자를 배출했던 야마하는 단 한 명의 결선 연주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올해 쇼팽 콩쿠르는 84명의 참가자 가운데 스타인웨이를 선택한 연주자가 43명으로 가장 많았다. 51% 수준으로 지난 콩쿠르 75%에 비해 크게 줄었다. 반면, 22명이 시게루 가와이를, 10명이 파지올리를 골랐다. 야마하는 7명에 불과했다. 간만에 협찬 브랜드로 나선 C. 베히슈타인는 딱 2명이 선택했다. 이렇게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치열한 협찬 경쟁을 펼치는 비즈니스 공간, 이게 쇼팽 콩쿠르다. ③ 세 번째 조건 : 화려한 부상 대회 나가서 잘 하면 상금과 부상이 주어진다. 상금에 대해 말했으니 이젠 부상을 말할 차례. 권위 있는 콩쿠르의 세 번째 조건. 화려한 부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부상은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현물이 아니다. 콩쿠르 부상은 보통 입상 이후 주어지는 '연주 기회'를 칭할 때가 많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입장에서는 거액의 상금보다, 이 기회가 천금보다 소중하다. 콩쿠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콩쿠르를 올림픽과 비유하기도 하지만, 커리어의 종착역이 금메달인 스포츠와는 또 다르다. 치열한 콩쿠르 경쟁을 통과하고 나면, 프로 세계의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 경쟁은 훨씬 치열하다. 콩쿠르는 또래 연주자들과 자웅을 겨루지만, 프로의 세계는 예프게니 키신, 다닐 트리포노프, 랑랑과 같은 정상급 연주자들과 비교 당하고 평가 당해야 한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나 블라디미로 호로비츠처럼 역사가 기억하는 거장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칠순, 팔순까지 분투 연습하고 갈고 닦아야 한다. 예술은 그래서 끝이 없다. 하지만,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연주 기회가 자동적으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제 아무리 콩쿠르 우승자라도 기회를 별로 얻지 못하는 연주자들도 즐비하다. 콩쿠르 우승으로 화려하게 데뷔하고 이내 사그라지는 연주자가 어디 한 둘인가. 이런 면에서 권위 있는 콩쿠르는 충분한 연주 기회로 연주자들의 걱정과 불안을 덜어준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게 해주는 콩쿠르라면 출중한 연주자들 사이에 입 소문이 나고, 참가율이 높아지며 콩쿠르의 권위는 올라간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음악계에서 격이 다른 대접을 받는다. 전 세계 음악계가 쇼팽 콩쿠르 우승자 연주 한 번 들어 보겠다며 섭외에 공을 들인다. 먼저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 입상자 갈라 콘서트로 포문을 연다. 주목도가 더 높아지면 뉴욕 카네기홀이나 영국 위그모어홀 같은 유명 공연장의 리사이틀 요청이 잇따르고,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의 협연 요청도 들어온다. 메이저 음반사와의 계약도 수월해진다. 그렇게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이 딱 그런 사례다.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몇 년 치 연주 일정이 빼곡히 찼다. 세계 최대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쇼팽 콩쿠르 실황 음반을 발매한 데 이어, 이듬해 아예 전속 계약을 맺었다. 그 다음 해에는 미국 카네기홀에 데뷔했다.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의 부름을 받더니, 오케스트라 양대 산맥 베를린 필과 빈 필과 협연했고, 지금은 아예 베를린 필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클래식 통계 웹사이트인 바흐트랙(bachtrack.com)은 조성진을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수위에 올려놓고 있다. 2023년 3위, 2024년에는 5위였다. 부침 없는 조성진의 안정적 피아니즘이 그 중심에 있겠지만, 이 화려한 커리어의 시작이 쇼팽 콩쿠르 우승임을 부인할 수 없다.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소감은 이제 더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아도 돼 기쁘다 였다. 2022년 임윤찬이 우승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현란한 부상으로 유명하다. 일단, 3위 입상자까지 전미투어의 기회를 주고, 심지어 입상 이후 3년 동안 맞춤형 관리를 해준다. 마치 연습생이 대형 기획사로 직행하는 과정과 같다고 할까. 여기에는 보도자료 배포나 홍보 영상 제작 등이 포함된다. 레코드 라이브 앨범 발매, 우승자에게는 연주회에서 입을 의상까지 제공한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선호도가 유독 높은 이유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부상&> - 미국 및 세계 콘서트 투어를 포함한 3년간의 개인 맞춤형 경력 매니지먼트 - 플래툰 레코드 라이브 앨범 - 보도자료, 영상, 웹사이트를 포함한 홍보 - 니만 마커스에서 제공하는 연주회 의상 (자료 : 반 클라이번 콩쿠르 홈페이지) 물론, 콩쿠르 우승 이후 현란한 부상을 포기한 연주자도 있었다. 196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탈리아의 마우리치오 폴리니다. 그는 우승 직후 공연을 자제하고 학습의 시간을 가졌다. 20세기 최대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달리 생긴 건 아니겠지만, 물 들어왔을 때 노 젓지 않겠다는 다짐은 젊은 폴리니에게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아니,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악보 그 자체를 치밀하게 포착하며 단 한 순간의 이완도 허용하지 않는 그의 완벽함은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쇼팽의 시대를 열었다. 마치, 차은우를 보면,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하찮은지 알게 됐다는 밈이 생각나는 피아니즘이랄까. 그는 그렇게 자신의 시대가 개막하기 전 숨 고르기를 했다. 그가 우승했을 때, 심사위원장이었던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기술적으로는 그의 연주가 여기 있는 그 어떤 심사위원들보다 낫다 고 말했을 정도니까. ④ 네 번째 조건 : 힘 있는 심사위원 예술은 주관적이다. 수학처럼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 좋은 연주가, 또 누구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콩쿠르는 경쟁이다. 결국, 순위를 매겨야 하고 잘 한 사람에게 상을 줘야 한다. 이런 까닭에 권위 있는 콩쿠르라면, 가능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훌륭한 연주자를 잘 골라야 한다. 여기서 네 번째 조건이 나온다. 좋은 연주자를 선별해 내는, 혜안 있는 심사 위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상은 현실은 다르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 조건을 좀 노골적으로 말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음악계 힘 있는 심사 위원이 포진해 있다면, 그 권위도 덩달아 높아진다는 것. 쇼팽 콩쿠르 심사 위원들의 면면은 올스타에 가깝다. 올해 쇼팽 콩쿠르 심사 위원장은 1970년 콩쿠르 우승자인 미국의 게릭 올슨이다. 1980년 콩쿠르 우승자인 베트남의 당 타이손, 1970년 3위에 입상했던 폴란드의 피오트르 팔레치니, 1990년 1위 없는 2위 입상자인 미국의 케빈 케너, 폴란드 쇼팽 음악의 대모 카타르지나 포포바-지드론 등이 심사 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지드론은 지난 대회와 지지난 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팔레츠키는 폴란드 음악계 중심에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피아노의 여제로 불리는 1960년 우승자 마르타 아르헤리치, 1955년 우승자인 아담 하라셰비치 등도 역대 쇼팽 콩쿠르 심사를 했다. 작게는 폴란드 음악계, 크게는 세계 음악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이다. 힘 있는 사람 앞에는 욕망이 고이는 법. 예술이라고 다르지 않다. 참가자들도 힘 있는 사람들에게 눈 도장이 찍히면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초대형 시장인 쇼팽 콩쿠르, 여기에 엄청난 구매력을 자랑하는 큰 손인 심사 위원들은, 자신의 연주를 판매하는 젊은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영업 대상이다.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스승은 훌륭한 제자를 발굴하고, 제자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 나서는 건 당연지사니까.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자신에게 기회를 줄 버팀목이 없다면, 그 과정은 고될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런 까닭에 쇼팽 콩쿠르 심사 위원들에 대한 섭외 경쟁도 치열하다. 자신의 콩쿠르에 쇼팽 콩쿠르 심사 위원이 있다는 점을 홍보하고, 그렇게 콩쿠르의 위상을 올리기 위해 애를 쓴다. 실제로, 쇼팽 콩쿠르 심사 위원들이 자주 모습을 보이는 콩쿠르들은 이른바 '프리(pre) 쇼팽 콩쿠르'로 알려질 정도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하마마쓰 콩쿠르, 같은 폴란드에서 열리는 페데로프스키 콩쿠르, 이스라엘의 루빈스타인 콩쿠르 등이다. 올해 쇼팽 콩쿠르 심사 위원인 지드론은 2023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당 타이손은 2024년 하마마쓰 콩쿠르, 팔레치니와 에바 포블로츠카는 2025년 페데로프스키 콩쿠르 심사 위원이었다. 자연히, 연주자들은 쇼팽 콩쿠르에 참가하기 전, 이들 콩쿠르에 거의 의무처럼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 덕에 이들 콩쿠르의 권위도 올라간다. 물론, 이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쇼팽 콩쿠르 본선 출전권을 얻어낼 수 있다는 이점이 가장 크다. 하지만, 같은 심사 위원이 여럿 있다는 점은 쇼팽 콩쿠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2005년 우승자 라팔 블레하츠는 2004년 하마마쓰 콩쿠르와 루빈스타인 콩쿠르 2위 입상자였고, 2010년 우승자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는 2007년 페데로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했다. 2015년 우승자 조성진은 2009년 하마마쓰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이자 2015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3위, 2021년 우승자 브루스 리우는 2017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파이널리스트였다. ⑤ 다섯 번째 조건 : 콩쿠르를 거쳐간 거장 지금까지 조건들이 상관 관계였다면, 이번 조건은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직접적이다. 권위 있는 콩쿠르의 마지막이자, 가장 결정적인 조건. 훌륭한 연주자를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것. 인재를 많이 내보내야 좋은 교육기관이 되는 것처럼, 좋은 연주자를 많이 배출한 콩쿠르는 그만큼 권위가 높아진다. 다만, 그냥 훌륭한 연주자에 머물지 않는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이 거쳐간 콩쿠르라면 위상은 치솟는다. 특히, 우승자가 잘 돼야 한다. 우승자는 해당 콩쿠르를 상징하는 인물이니까. 이런 면에서 쇼팽 콩쿠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60년 우승자는 마우리치오 폴리니, 1965년은 마르타 아르헤리치, 1975년은 크리스티안 짐머만이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들이다. 폴리니는 위대한 족적을 남기고 지난해 노환으로 별세했지만, 아르헤리치와 짐머만은 여전히 현장에서 위대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티켓 파워가 엄청나다. 쇼팽 콩쿠르 우승은 이들에게 무려 60여년 전의 이력이지만 우승자 꼬리표는 여전히 그들을 상징하는 수식어다. 이는 단순히 거장의 영광스러운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쇼팽 콩쿠르 입장에서도 대단한 영광이다. 우리 콩쿠르 입상자를 보라, 한 세기를 상징하는 대표하는 연주자들이 우리 출신이다 이런 자부심으로 충만하다. 쇼팽 콩쿠르는 아르헤리치의 스펙이자, 동시에 아르헤리치는 쇼팽 콩쿠르의 스펙이다. 위대한 연주자를 많이 배출해 낸 다른 콩쿠르로는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꼽을 수 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와 그레고리 소콜로프, 미하엘 플레트네프, 그리고 우리 시대 막강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다닐 트레프뇨프가 우승자 출신이다. 앞서 말했듯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세계 콩쿠르 연맹에서 퇴출되면서 그 권위는 예전 같지 않지만, 그 화려한 역사와 전통을 부정할 수는 없다. 20세기 피아노 음악의 중심 자리를 꿰찼던 러시아 피아니즘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바이올린에서는 기돈 크레머와 빅토리아 뮬로바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자 출신이다. 퀸 엘리자케스 콩쿠르는 피아노 분야에서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와 에밀 길렐스를 배출했다. 바이올린 면면이 특히나 화려하다. 당초 퀸 엘리자세브 콩쿠르는 벨기에가 배출한 바이올린 거장 외젠 이자이를 기리기 위해 1937년부터 시작된 '이자이 콩쿠르'에서 유래했다. 1937년 다이드 오이스트라흐, 1951년은 레오니드 코간이 우승했다. 오이스트라흐와 코간은, 야사 하이페츠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바이올린 거장이다. 이들 콩쿠르는 보통 '3대 음악 콩쿠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음악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자주 쓰이지는 않는 말이다. 쇼팽 피아노 음악만 다루는 쇼팽 콩쿠르와, 기악은 물론 성악까지 두루 다루는 두 콩쿠르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 말 자체가 '3대'라는 말을 좋아하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게 정설인 만큼 불편한 시선도 있다. 다만, 그 불편함 때문에 이들 콩쿠르의 업적을 과소 평가할 필요는 없다. 시대를 대표하는 이 거장들을 설명할 때, 쇼팽과 차이콥스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이름은 늘 소환될 수밖에 없으니까. 영국의 리즈 콩쿠르는 머레이 페라이어와 라두 루푸, 스위스 제네바 콩쿠르는 아르투로 베네디티 미켈란젤리와 프리드리히 굴다, 미국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역시 라두 루푸가 콩쿠르 우승자 출신 임을 늘 자랑 거리로 여기고 있다. 콩쿠르, 그리고 예술의 공론장 이제껏 지난하게 풀어낸 것들은 콩쿠르의 권위를 구성하는 요건일 뿐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요건이란 적어도 이 질문 앞에서 부스러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콩쿠르 때마다 인이 박이게 나오는 이 질문. 과연 콩쿠르는 예술의 목적에 부합하는가. 위계와 예술은 공존 가능한가. 되레 예술을 망가뜨리는 건 아닌가. 예술은 다양성을 통해 진보했다. 보편 타당한 예술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주류 예술 곁에는 비주류 예술이 반작용처럼 맴돌았고 그 긴장을 통해 예술은 살을 찌웠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추앙하는 상당수의 예술가는 살아 생전 배척 받았지만, 다양성의 다이내믹 덕분에 그 위대함을 증명해 냈다. 다소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연주자의 예술을 우위와 열위로 나누는 콩쿠르는 예술의 다양성에 반한다. 콩쿠르가 예술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애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런 우려는 충분히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진리란 무엇인가' 고민하듯,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 역시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물론, 진정한 예술 그 언저리라도 가기 위해 애 쓸 뿐, 이 추상적 질문에 대한 적확한 답은 내릴 수 없다. 어쩌면 콩쿠르는 이런 물음에 대한 최소한의 가처분 결정일지도 모른다. 가령, 쇼팽 콩쿠르는 오로지 쇼팽의 음악 만으로 자웅을 가린다. 연주자들이 자신 만의 쇼팽다움을 제시하면, 우리 시대 최고의 쇼팽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떤 쇼팽다움이 우리 시대 미학에 부합하는지 일시적 판정을 내린다. 우리가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쇼팽다움이 협의되고 합의되며, 발표될 뿐이다. 점수와 순위라는 콩쿠르의 위계어를 통해. 당연히 콩쿠르 결과는 진정한 예술의 정답지가 아니다. 이 가처분 결정은 다시 평가 대상이 된다. 그는 콩쿠르 우승자 자격이 있는가 혹은 그는 출중한 실력에도 왜 수상하지 못했는가 라는 식의 즉각적인 반응들이 나온다. 누구는 불편해 하고 심지어 반발한다. 콩쿠르의 공정성 논란이다. 콩쿠르는 숙명처럼 공정성의 부담을 이고 간다. 쇼팽 콩쿠르 역시 때마다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평가자인 심사 위원과 피평가자인 참가자들의 사적 관계가 늘 구설에 올랐다. 발 빠른 음악 애호가들은 콩쿠르 전부터 참가자 가운데 심사 위원 제자가 누가 있는지 솎아내려 애쓴다. 물론, 쇼팽 콩쿠르는 스승이 제자의 연주 실력을 채점할 수 없도록 명문화 돼 있지만, 내 제자 밀어주면 너 제자도 밀어주겠다는 식의 '짬짜미 의혹'이 동시에 나왔다. 이번 콩쿠르에도 쇼팽 콩쿠르 심사 위원 터줏대감인 당 타이손과 팔레치니, 지드론의 제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이미 공정성 논란은 시작된 셈이다. 지금이야 모두 훌륭한 커리어를 쌓고 있는 피아니스트들이지만, 2005년 우승자 라팔 블레하츠는 지드론, 2021년 우승자 브루스 리우는 당 타이손의 제자였다. 2010년 우승자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역시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중국계 영국 피아니스트 푸총의 교육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식의 의심이 없지는 않다. 이번 콩쿠르에서 인상 깊었던 연주자 가운데 한 명이 불가리아 출신의 하산 이그나토프였다. 음과 음 사이 간격에 심혈을 기울여 호흡하며, 이렇게 감미롭게 완급 조절을 해 내는 젊은 연주자를 최근 보지 못했다. 루바토나 프레이징이 특이하다 싶으면서도 결코 불편하지 않게 들리는 비범한 재주가 있었다. 그간 보기 어려웠던 나름 신선한 쇼팽이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보기 좋게 탈락했다. 쇼팽 콩쿠르 심사 위원 중에 그의 스승은 없었다. 그가 공부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 음악원은 쇼팽 콩쿠르와 별 인연이 없는 학교다. 적어도 내 기준에 그를 떨어뜨린 건 공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의심조차도 진정한 쇼팽다움을 찾기 위한 '비공식적' 협의 과정의 일부일 수도 있다. 애호가들은 연주가 한 명 한 명 떨궈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가진 예술 철학을 총동원해 사유하고, 판단한다. 심사 위원 입장에서는 그게 또 신경이 쓰일 거다. 콩쿠르 모든 일정이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시대, 이런 비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은 보다 적나라해졌다. 협의와 합의의 결과물, 여기에 더해 그 반작용까지 아우르며, 5년에 한 번 씩 쇼팽 예술에 대한 공론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콩쿠르의 공정성 논란 역시 진정한 예술을 탐색하는 여정에 복속되는 것은 아닐까. 쇼팽다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공간이 자주 마련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우리가 차마 답을 내리지 못하고, 내릴 수도 없는 '진정한 쇼팽다움'에 대한 질문. 그래도 여기에 한 발짝 다가가기 위한 별 수 없는 성장통이라면, 기꺼이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 또 아닐까. 예술을 우위와 열위로 나눈다는 경박함에 불구하고 말이다. 무르익는 쇼팽의 계절, 그 공론장에 참여해보는 건 어떨까. 쇼팽 콩쿠르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c/chopininstitute)에서는 참가자의 연주가 생중계된다. 채팅창을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우리는 임윤찬과 이하느리의 시대에 살고 있다 [스프]
등록일2025.04.07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매년 3월 마지막 주말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립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내면으로의 여행'을 주제로 3월 28일부터 4월 6일까지 진행됐습니다. 좋은 공연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상주 연주자 임윤찬의 공연에 관심이 집중됐죠. 저는 개막일 심야 버스로 통영에 갔다가 셋째 날 임윤찬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 리사이틀까지 보고 다시 새벽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작곡한, 건반 악기를 위한 작품으로 1741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주제곡인 아리아에 30개의 변주곡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며 마무리되는 구조입니다. 이 작품을 처음 연주한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의 이름을 따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불립니다. 이 곡은 카이저링크 백작의 제안으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작은 자신의 집에 상주하던 쳄발로 주자 골드베르크에게 불면증을 달래주는 음악을 연주하게 했고, 바흐에게는 골드베르크가 칠 수 있도록 수면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써달라고 의뢰했다는 것입니다. 백작은 바흐가 써준 이 곡의 연주를 즐겨 들으면서 잠을 청했다고 하는데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만, 포르켈이 쓴 바흐의 전기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유명해지면서 이 곡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윤찬이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은 후라면, 이 곡이 수면에 좋은 음악이라는 이야기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는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과연 이 곡이 내가 알던 그 곡이 맞나?' 생각하며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보통은 좋아하는 곡이라도 긴 시간 쭉 듣다 보면 중간에 딴생각을 하거나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임윤찬의 연주는 그런 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바흐를 비롯해 바로크 시대 건반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는, 당시의 악기인 쳄발로의 음색을 재현하기 위해 논 레가토(non-legato, 음을 부드럽게 연결해 연주하는 레가토 주법을 사용하지 않고 음표를 살짝 끊어 치는 것. 스타카토와는 다름)로 연주하고 페달 사용을 최소화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임윤찬의 접근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치 극적인 낭만주의 시대 곡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페달을 많이 써서 잔향에 새로운 음이 어우러지는 효과를 의도하기도 했고, 템포에 변화를 주는 루바토(rubato)를 과감하게 사용했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연주해 새로운 효과를 낸 곡들도 있었고, 느린 단조곡인 25번 변주는 깊은 탄식 같은 처연함에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피아노에 온몸을 내던지는 듯 강렬한 타건으로 라흐마니노프의 느낌을 주는 곡도 있었습니다. 임윤찬의 연주는 왼손 저음부의 표현이 두드러지고 주 멜로디 뒤에 숨어 있던 내성을 뽑아내는 게 특징인데, 이번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일반적으로는 오른손이 멜로디를 연주하고 왼손이 이를 뒷받침하는 반주를 맡지만, 바흐의 다성음악에서는 왼손도 오른손과 동등한 비중을 갖게 되죠. 원래도 왼손 연주가 중요한 곡이지만, 임윤찬은 이를 더욱 부각해 곡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듯 새로운 멜로디를 뽑아냈습니다. 그의 연주는 낯설면서도 매혹적이었고, '교과서적인' 연주에 익숙했던 관객도 설득할 만큼 강한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처연한 슬픔으로 흐느끼고, 때로는 발랄한 리듬으로 춤추다가, 때로는 뜨거운 격정으로 몰아치다가, 문자 그대로 천변만화(千變萬化)였습니다. 임윤찬이 피아노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 하는 '모험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30번 변주까지 끝내고 다시 아리아가 연주되는데, 마치 긴 여정을 마치고, 혹은 온갖 인생의 경험을 겪은 뒤 집으로 돌아온 듯했습니다.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아리아였습니다.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제공: 통영국제음악재단) 기립박수 속 커튼콜 끝에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앙코르곡으로 뭘 연주해 주려나 했더니, 음표 몇 개만 치고 들어갔습니다. 다름 아닌 아리아의 베이스라인 음표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출발점이었어요.'라고 일깨워주는 느낌이었죠. 여행의 출발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마침표! 천변만화 연주의 뿌리는 결국 여기에 있었던 겁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앞서, 19살 작곡가 이하느리의 신곡 '라운드 앤드 벨버티-스무드 블렌드… (Round and velvety-smooth blend…)가 먼저 연주되었습니다. 이하느리는 임윤찬이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 한 명'이라고 말하는 젊은 작곡가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함께 다닌 음악적 벗입니다. 그는 지난해 저명한 작곡가 토마스 아데가 심사위원장을 맡은 버르토크 작곡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임윤찬은 이전에도 공연에서 이하느리의 곡을 연주한 적이 있고,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 직접 신곡을 위촉했습니다. 작곡가 이하느리 (제공: 목프로덕션) 이하느리는 얼음조각이 유리잔에 부딪치는 이미지로 이 작품을 설명했습니다. '얼음을 넣어 드시길 권장합니다. 얼음을 사용하실 경우에는 천천히 녹는 큰 얼음조각을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했네요. 그는 작품명과 음악에 연관성을 두지는 않는 편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 곡은 피아노 고음부의 청아한 소리로 시작해서, 건반 위를 종횡무진하다가 폭발하고, 다시 고요해지면서 고음부와 저음부로 나뉘어져 소멸하는 듯 마무리되는 곡이었어요. 마치 오묘하게 블렌딩한 위스키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다채로운 음향이 명멸하는 이 곡은 이어진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의 훌륭한 예고편이었습니다. 임윤찬은 이 곡의 연주를 마치고 객석에 있던 작곡가 이하느리에게 손짓해 일으켜 세우고, 무대로 불러 함께 인사했는데요. 훤칠한 키에 비니를 눌러쓴 '요즘 젊은이' 이하느리는 임윤찬이 리드하는 대로 객석 전면과 합창석을 향해 함께 인사했습니다. 무대에 함께 선 2006년생 작곡가와 2004년생 피아니스트. 연주 못지않게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현대음악, 그것도 젊은 한국인 작곡가의 곡을 매칭한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시도였습니다. 임윤찬은 '우리 모두의 음악적 뿌리인 바흐의 가장 위대한 작품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리고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 한 명인 이하느리의 곡을 연주합니다. 크게 대조되는 두 곡을 통해 음악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그 뿌리는 어떤 음악이었는지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고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 (제공: 통영국제음악재단) 공연 리뷰가 이미 많이 나왔는데 뭘 더 보탤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공연을 글로 설명하려 할수록 제가 온몸으로 느꼈던 그 음악의 생생함과는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기도 했고요. 다만 이하느리의 현대음악과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며 수많은 거장의 명연주를 낳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나란히 배치하고, 마음껏 자신만의 해석을 펼쳐낸 그 자유로움과 담대함에 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는 기존 해석들과 크게 달라서 보수적인 청자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치열하게 음악과 대면하고 온몸을 던져 결국 음악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임윤찬의 연주에 설득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여러 번 들었다는 지인은 '처음 들었을 때도 놀라웠지만, 이후 연주할 때마다 계속 달라져서 더욱 놀랍다'고 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취재파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만나다 ①…그가 잘하는 것들
등록일2019.04.30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드디어' 인터뷰했다. 나는 문화부에 오래 근무하면서 조성진이 연주한 공연을 여러 차례 취재했고, 조성진이 3위를 차지했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소식도 보도했지만, 인터뷰 기회는 없었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2015년 나는 중국에 있었다. 직접 취재해 기사를 쓰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지난해 말, 6년 만에 다시 취재부서로 돌아오면서 기회 닿는 대로 조성진을 인터뷰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원음악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고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조성진은 정말 '소문대로' 진지했다.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신중하면서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진지한 중에 뜻밖에 재미있는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대상 수상 얘기부터 시작한 인터뷰는 조성진이 '상은 다 좋다, 못하는 거 1등 이런 거 빼고는' 하는 바람에 '그럼 조성진이 못하는 것은 뭐냐?로 갔다가 '못하는 거 꼽는 것보다 잘하는 거 꼽는 게 빠르다'는 바람에 '멍 때리기'가 특기로 등장해 버렸고, '멍 때리기 대회'까지 화제가 이어졌다. 방송 뉴스를 위한 인터뷰는 어떤 내용이어야 할지 항상 고민스럽다. 뉴스 시청자들 중 일부만이 클래식 음악 애호가다. 일반 대중의 관심사와, 조성진이라는 음악가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관심사가 같을 수는 없다. 이번에는 특히 비디오머그팀과 공동 인터뷰로 진행했기 때문에 더욱 '수위 조절'이 어려웠다. 비디오머그팀에서 톡톡 튀는 인터뷰 질문을 별도로 준비해왔지만, 내가 진행하는 인터뷰 역시 비디오머그에 활용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진행했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올려본다. 문답을 거의 그대로 살려 적었고, 필요한 부분엔 설명을 달았다. 음악과 관련 없어 보이는 얘기들도 있지만, 이 역시 조성진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용이 많아 2편으로 나눠 게재한다. -------------------------------------------------------------------------------------------------------- Q. 대원음악상 대상 받은 소감부터? =제가 2011년에 대원음악상 신인상을 받았었는데, 이렇게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상을 너무 빨리, 너무 어린 나이에 받게 되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Q. 2010년에 시상식에서 축하 연주했는데, 앞으로 나도 큰 상 받아야지, 이런 생각 해봤나요? =안 했어요. 저는 상상도 못 했죠. 왜냐하면 대원음악상 받으신 선생님들은 다 거장들이시고, 저는 아직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기대 같은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Q. 역대 최연소 수상인데요? (정명훈, 백건우, 강동석, 강효, 조수미, 정경화, 연광철, 김민, 김대진이 역대 수상자) =이제까지 대상을 받으신 분들처럼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나은 음악가가 되도록 정진해야 될 것 같아요. Q. 상은 음악가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콩쿠르에서는 다른 참가자와 경쟁을 하기도 했는데. =시상식에서나 콩쿠르에서나 동료 음악가들이나 선배 음악가들을 한 번도 경쟁자라고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상을 받으면 기분 좋고 감사하고 그렇죠. 예를 들어 못하는 것 1등, 이런 것만 아니라면 어느 상이든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Q. 못하는 것 1등? 조성진이 제일 못하는 것은? =제일 못하는 거요? 잘하는 걸 찾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아요. 못하는 게 너무 많아서. Q. 그럼 조성진이 잘하는 것? =피아노. 제가 피아노를 잘했으니까 피아니스트가 됐겠죠?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골똘히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멍 때리기 대회'라는 게 있다고 하자, '몇 시간 동안 멍을 때려야 1등을 하는 거냐'며 궁금해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제대로 멍 때리는 상태인지 보기 위해 심박수의 안정도를 측정한다고 알려줬다. 공교롭게도 올해 멍 때리기 대회는 인터뷰 며칠 뒤였던 21일 열렸다) 어떤 사람들은 서너 시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되게 지루해하는데, 저는 그냥 서너 시간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을 수 있어요. 생각하면서. 또 잘하는 게 뭐가 있을까요? 걷는 것? Q. 평소에 많이 걸으시나요? =여행 다닐 때에는 항상 걸어 다니고, 공원 산책 같은 것도 좋아하고. Q. 연주가의 삶이라는 게 계속 여행인데, 이런 삶은 어떤지 궁금해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잘하는 게 또 있네요. 어디서든 잠을 잘 자요. 그래서 여행 갔을 때 호텔에서도 잘 자고. 계속 돌아다니는 생활에 딱히 어려운 점은 못 느껴요. 제가 베를린에 사는데, 베를린에 왔을 때에 편안함을 느끼기는 하는 것 같아요. 비록 1년에 베를린에 있는 시간이 서너 달밖에 안되지만, 내 집이라는 느낌이 있고, 집에 있는 시간이 좋고 편안해요. 여행하는 건 재미있어요. 연주 외에 시간 조금이라도 나면 박물관, 미술관에 가보고. 제일 재미있는 건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른 관객의 특색, 홀, 피아노, 이런 거 비교하는 거예요. Q. 가는 곳마다 같은 곡을 연주해도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나라별로 비교해 주신다면? =먼저 한국 관객들은 정말 열정적이신 것 같고. 일본 관객들은 굉장히 차분한 편인 것 같아요. 연주할 때에도 되게 조용하고. 그리고 이탈리아 관객들도 굉장히 조용한 편이에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연주회에 많이 오세요.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는데, 밀라노 같은 곳에서 연주를 하면, 물론 연주가 좋으면 막 환호를 크게 해 주시거든요.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굉장히 패셔너블하고 화려해서, 반지를 굉장히 많이 낀대요. 그래서 박수소리를 굉장히 작게, 반지가 다치지 않아야 하니까, 박수를 안 친다는 거예요. 그런 우스갯소리도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독일에서 연주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정직한 관객이라는 생각이 들고. 피아노도 독일, 스위스에 좋은 것이 많고. 홀도 좋은 것이 많고…… 미국 관객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연주를 잘했는지 못 했는지. 왜냐하면 항상 반응이 좋고, 기립박수도 많이 나와서, 내가 잘해서 기립박수를 치는 건지, 아니면 빨리 나가고 싶어서 그런 건지. Q. 미국 공연에선 항상 기립박수가 나왔나요? =거의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주자 입장에서 기분은 굉장히 좋죠. 그런데 뭔가, 너무 붕 뜰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미국에서 하면 항상 기분은 좋아요. 정말 음악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 나라는 러시아였던 것 같아요. 러시아 관객들 요즘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2008년도에 모스크바를 처음 갔었는데, 그 때만 해도 제가 길거리 지나가면 약간 인종차별 같은 얘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길거리에서 할머니들이 오이 하나 가져와서 팔고 그랬는데, 오이 판돈으로 연주회 티켓 사서 온다는 얘기를 들었었어요. 그만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작년에 모스크바 갔더니 정말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뭔가 밝아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사람들도 좀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는 느낌? 좀 더 많이 웃는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연주회 관객들은 똑같더라고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 이런 걸 많이 느꼈어요. Q. 한국은 유럽에 비해 젊은 관객들이 많은데? =확실히 한국 관객 분들이 젊고요. 한국하고 홍콩 관객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 클래식 공연계 미래는 굉장히 밝은 것 같아요. 그런데 2012년에 제가 파리에 갔잖아요. 그때마다 연세 드신 관객분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 하는 사람 입장에서, 진짜 이러다가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이 너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걱정을 했는데요,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는데,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 연세가 드시면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하시는 것 같아요. 그게 차이점인 것 같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신기한 것이, 젊은 분들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연주하면 에너지도 많이 받고 그래요. Q. 열광적인 젊은 팬들이 많고, '클래식 아이돌'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별로 신경 안 써요. 어차피 이게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물론 공연 매진이 되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이죠. 그런데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젠 '아이돌'이라는 얘기 듣는 게 싫어요. 제가 유명하다고 해서 연주회를 오시는 분들에게도 물론 감사드리지만, 나중에는 음악 자체를 들으러 와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더 잘 쳐야겠죠. 더 노력해야 하고. Q. 명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제가 예전에 '한 도시의 콘서트홀을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사람들만 저를 알면, 제 음악을 알면 된다'고 얘기한 적 있어요. 그래야 저도 연주를 계속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정말 아무도 모르면 음악가로 살아갈 수 없으니까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슈퍼스타, 유명인, 이런 게 되고 싶은 생각은 정말 없어요. Q.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행복하게 사는 것이죠! 예전에도 이런 얘기 한 적 있는데,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한 것 같고요. 남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행복하다고 느끼고. 크리스티안 짐머만(폴란드 출신의 유명 피아니스트로 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 쇼팽 콩쿠르 끝나자마자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해줬어요. '앞으로 네가 선택을 많이 해야 할 텐데, 선택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두지 말아야 할 것이 돈이다'라고요. 그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선택을 해왔던 것 같아요. 결정할 때 내가 뭘 하면 행복할까 가장 먼저 생각했어요. 물론 좋은 악단과, 좋은 홀에서 연주하는 것도 저한테 행복감을 주지만, 다른 소소한 것에서도 행복감을 많이 느끼니까요 요즘은 가치관 같은 게 좀 바뀐 것 같기도 해요. Q. 조성진을 행복하게 해주는 '소소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시간 보내는 것.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아니면 자유로운 시간. 그게 무대 위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할 때일 수도 있고. 그런 소소한 것이 저한테는 소중해요. Q. 크리스티안 짐머만 얘기 방금 해주셨는데, 짐머만은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라고 불리기도 하잖아요. 조성진 씨가 바라는 피아니스트 상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음악가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관객의 몫인 것 같고. 그리고 어떤 음악가가 되어야지, 이렇게 의식하면서 연주를 하는 것도 저는 별로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자연스러워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개성은 그냥 제 몸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만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꼭 괴짜같이 연주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개성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사람마다 다 가진 목소리가 다르듯이 개성도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겠다, 이런 것은 없어요. 그냥 제가 맞다고 생각하면, 음악적 해석에 확신을 갖고 있으면 그대로 연주하는 것뿐이에요. Q. 연습은 얼마나 하시는지? =평상시에는 아무리 해야 될 곡이 많고 바빠도 하루 네 시간 정도만 연습하려고 해요. 그런데 연습을 한 1주일 정도 안 했는데, 그게 음악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좀 프레쉬(fresh)해지기도 하고. 매일 똑같은 곡이나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일이 많잖아요.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어떤 부분에서 루바토(독주자나 지휘자의 재량에 따라서, 의도적으로 템포를 조금 빠르게 혹은 조금 느리게 연주하는 것)를 하거나 타이밍을 잡고. 그다음 연주에서 또 잡고, 또 잡고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버릇이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피아노 연습을 좀 쉬고 있으면 그런 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피아노를 안 칠 때 음악을 많이 듣는데 피아노는 잘 안 들어요. 요즘에는 현악 4중주 많이 들어요. 베토벤 후기 현악 4중주 빠져서 많이 듣고 있어요. Q. 피아노 음악은 일부러 안 듣는 건가요? =굳이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다른 음악 듣는 거예요. 현악 4중주에는 피아노가 없고, 심포니나 오페라 같은 건 제가 할 수 없는 음악이기 때문에 그런 걸 들으면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피아노 안에서도 현악 4중주나 성악 같은 사운드도 낼 수 있고. Q. 얘기 들으니 지휘를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 많은데? =제가 피아노를 치면서 협주곡 지휘도 같이 해보고 있고요. 앞으로 할 계획도 조금씩 있고. 그런데 지휘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업으로 삼기에는 제 성격에 너무 안 맞는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지휘자 포디움에 올라가서 '이렇게 연주해 주세요' 그랬는데, 단원들이 반대하는 말을 하면 저는 속상해서 그냥 도망칠 것 같아요. Q. 지휘 잘하실 것 같은데요? =아뇨. 저는 그런 걸 잘 못해요. 실내악도 그래서 저는 연주 전에 사람 먼저 만나보고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사람하고 갑자기 같이 연주하게 되면, 제가 원하는 게 있어도 얘기를 잘 못 할 때가 많아요. 제 성격상. 그런데 오케스트라는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해야 되잖아요. 저한테는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Q. 마티아스 괴르네(독일 가곡의 권위자로 꼽히는 바리톤)하고 함께 연주하신 건 어떠셨는지? =너무 재미있었어요. 마티아스 괴르네는 연주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어요. 파리에서 처음 만났었고, 생일 파티 같은 데에 초대받아서 가기도 했었고. 또 베를린에 살거든요. 괴르네는 정말 훌륭한 음악가인 것 같아요. 제가 가곡 처음 해봤는데, 많이 배웠어요. 왜 사람들이 괴르네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가까이에서 보니까 알게 되었고. Q. 한국에서도 마티아스 괴르네와 공연하시죠? =네, 9월에 해요. 그때는 슈베르트 프로그램을 해요. 저도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조성진은 이 밖에도 올해 한국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협연자로 나서며,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통영 국제음악당에서 나흘간 실내악, 리사이틀,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협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2편에 계속됩니다. ▶ [취재파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만나다 ②…타이틀보다 음악으로 기억되기를
[취재파일] 3인의 전문가가 본 피아니스트 조성진 첫 독주회
등록일2017.01.05
지난 3일과 4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리사이틀은 여러 면에서 화제를 낳았다. 우선, 재작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 조성진의 국내 첫 독주회란 점에서. 그리고 이틀 동안 두 차례 공연 3,800석이 순식간에 팔려 나가며(9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롯데콘서트홀 개관 이래 가장 높은 유료 티켓 판매를 기록했다는 점에서도[1,984매(3일 기준) 1,937(4일 기준), 총 3,921매] 공연을 마치고 가졌던 아이돌 사인회를 방불케 했던 팬들과 만남의 자리도 마찬가지. 기자는 어제(4일) 있었던 두 번째 연주회를 감상했다. 전날 연주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보고, 듣고 간 자리라 여러 모로 냉정해지려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다짐처럼 저항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후광 효과를 분리하지 못했다. 내 눈 앞의 저 이가 그 대단한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사실을 지운 채 오롯이 연주에만 집중하긴 어려웠다. (고백컨대 &'지금 이렇게 좋게 들리는 게 정말 좋아서 좋은 걸까, 좋다고 하니 좋은 걸까?&' 계속 자기와의 투쟁을 해야 했다) 시종일관 공연장에 감돈 긴장과 설렘의 기운도 한 몫 했다. 청중들은 내내 진지했고, 단 1초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듯 보였다. 고요한 가운데에서도 연주를 듣는 모두의 머리 위로 마치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안타깝게도 기자의 감상은 객관성과 전문성을 잃었다. 대신 전문가들을 모셨다. 저명한 클래식 평론가 세 분의 감상기이다. 세 평론가 모두 양일 연주회 가운데 첫날인 3일 공연을 감상했다는 점을 미리 알려둔다. 공연을 다녀온 사람은 다녀온 사람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대로 조성진 첫 독주회에 대한 정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류태형 평론가와 한정호 평론가에겐 &'공연의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 &'롯데콘서트홀의 음향&'에 대한 평가를 구체적으로 요청했다) &<능란한 연주, 탁월한 곡 선정…쇼팽의 발라드는 &'기대 이상&'&> -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 前 월간 &<객석&> 기자 및 편집장) 재작년 쇼팽 콩쿠르 우승한 뒤 최초의 단독 리사이틀이었습니다. 지난해 2월에 예술의전당에서 갈라 콘서트를 가졌지만, 다른 입상자들도 함께했던 공연이었죠. 당시의 열기나 오늘의 열기나 그 온도 차는 크지 않았습니다. 금의환향으로서의 열기도 식지 않은 상황에 새 앨범도 발매돼 조성진 콘서트다운 모습을 보여줬죠. 여성 팬들이 90퍼센트 이상 압도적으로 많은 모습도 전례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곡 선정은 1부의 알반 베르크 소나타와 슈베르트 소나타를 양일 간 같게 하고 2부에서만 각각 발라드와 전주곡으로 변화를 줌으로써 하루만 볼 것이냐 이틀 다 볼 것이냐의 선택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게 짰다고 생각합니다. 열성 팬들은 이틀 다 볼 이유가 충분하고, 부득이 하루만 보더라도 놓치는 곡들이 상대적으로 적었죠. 조성진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는 피아니스트 중 하나입니다. 티를 잘 안 내고 얼굴에도 드러나지 않죠. 요즘은 능란해짐에 따라 예전에 있었던 기복도 적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전례 없었던 &'조성진 현상&'을 의식하느라 이것저것 생각하며 힘들게 공연을 봤다면, 이번 공연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동시대에 가까운 20세기 작곡가인 알반 베르크의 소나타는 고전과 낭만시대 작품들에 비해 아무래도 생경한데요, 조성진은 방금 작곡된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자기 안에 녹여 신선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부분에서도 피아노의 음색에 집중하며 조성진이 건반의 소리를 얼마나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내는지 감탄했죠. 쇼팽의 발라드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기존의 연주 패턴이나 자기 자신이 음반에서 보여줬던 해석에도 얽매이지 않고 청중들 앞에서 피아노로 자기의 말을 하고 노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발라드 4번이 좋았습니다. 말미의 휴지부에서는 어떤 강렬한 타건도 없었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걸 느꼈다는 분들이 저 말고도 있더군요. 쇼팽의 피아니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비현실적인 낭만성, 밤이 주는 알 수 없는 어둠의 깊이, 티 없이 맑은 사슴의 눈동자 같은 고음, 밀고 당기는 템포 루바토에서 우러나오는 절묘하고도 인간적인 감성...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쇼팽 연주에서 찾아볼 수 있더군요. 다만 슈베르트 소나타는 V라이브의 쇼케이스에서 4악장만 들었을 때는 정말 좋았는데요. 이번 공연에서는 그때는 알 수 없었던 1~3악장의 연결고리가 다소 단순하게 축소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암호를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의 벽을 베토벤 같은 저돌성으로 돌파한 부분도 느껴졌습니다. 사실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그의 나이가 한두 살 더 많아질수록 좋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앙코르인 드뷔시 &'달빛&'은 언제 들어도 좋았고요. 맑고 신선한 타건으로 그야말로 차가운 강물에 비친 달을 그린 것 같았습니다. 그의 성향에는 드뷔시의 작품들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본인도 좋아하는 것 같고요. 두 번째 앙코르인 헝가리 춤곡은 다분히 대중성을 의식한 선곡이 아닐까 합니다. 롯데콘서트홀은 자리에 따라서 음향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처음 롯데콘서트홀 객석에 앉아봤다는 사람 중에는 소리가 뭉개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요. 피아노의 경우 울림이 과도할 정도로 풍부한 홀에서 녹음한 음반의 소리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현재까지 들어본 바로는 성악을 제외한 기악곡들을 풍부한 울림으로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현악이 피아노보다 좀 더 나은 것 같고요. 사람에 따라 풍부한 울림이 고급스럽게 들릴 수도, 혹은 소리가 뭉치거나 엉기듯 들릴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많이 들어서인지 롯데콘서트홀 음향이 익숙한 쪽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느릿한, 그리고 단단한 조성진을 응원한다&> - 장일범 (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진행/ 경희대학교 겸임교수)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만큼 많은 공연 기회, 그리고 요청이 빗발쳤을 텐데도 스타덤에 연연하지 않고 1년에 한번 연주를 골라서 하는 조성진의 느릿한, 그리고 단단한 준비 자세를 칭찬하고 싶다. 빨리 소진하기 보다는 천천히 공부하고 연마해서 공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가 요즘 젊은 연주자에게서 매우 보기 드문 모습이다. 아주 바람직한 길을 조성진 스스로가 택했다. 3일 공연에서 연주한 첫 곡 &'베르크 소나타&'는 제2 빈악파의 곡으로 이지적인 조성진의 해석과 잘 어울렸다. 역시 빈에서 낭만주의 초기에 활약한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앞으로 연륜을 쌓으면서 더욱 깊이 있는 해석과 연주를 들려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곡이었다. 2부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운 쇼팽 발라드 4곡을 연주했다.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깨끗한 터치로 약음에도 주의를 기울이면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앙코르로 들려준 드뷔시의 달빛에서는 고요하면서도 그림을 그려낸 듯한 연주가 청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으로 흥겹게 독주회를 마친 조성진. 1년 후에 많은 사고와 경험을 통해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를 기대하는 건 무척 흐뭇하고 행복한 일이다.(다만 빨리 싸인을 받기위해서 앙코르도 듣지 않고 뛰쳐나가는 일부 팬들의 모습은 매우 아쉬웠다. 뭣이 중헌디! 음악을 들으러 콘서트홀에 온 것이 아닌가?) &<시그니처가 된 쇼팽 발라드... 대회와는 다른 공격적인 접근 &> - 한정호 (前 월간 &<객석&> 기자 및 공연기획사 &'빈체로&' 기획 담당/ 음악 평론가)현대음악의 여러 사조 가운데에서도 초기 음악에 속하는 베르크는 조성진이 파리 음악원 시절에 크게 흥미를 가진 작곡가이다. 기본적으로 고전과 낭만주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피아노의 건반을 고전식, 정석으로 다루는 작품의 자장 안에 있는 현대음악 곡을 소화하는 것이 자신의 컬러에 맞다는 주장인데 메시앙이나 여러 후기 20세기 음악 사조에 몰두하다 보면, 고전주의의 터치감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을 감안한 선곡이다. 아이돌을 대하듯 환호성으로 조성진을 맞은 관객들이 조용하게 음악에 침잠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오프너를 차분하게 가져간 것으로 본다. 슈베르트 일련의 작품군들은 조성진의 나이 10대 후반, 2013년 경부터 연구가 본격화된 작품이다. 불과 3~4년의 탐구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빛나는 성과를 맺었다. 슈베르트가 건반 주자로서 조성진이 가진 독특함과 강점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난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어떠해야 한다, 악보상의 기보는 무엇이다, 라는 규범에 대해 조성진이 큰 강박이 없는 건 프랑스에서 독자적으로 얻은 깨달음으로 본다. 조성진은 과거 거장의 기록이나 조언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누구의 후예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라두 루푸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을 찾아가 조언을 취하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얻는 충언도 극히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구조 안의 음악이지만 그것을 벗어나려는 욕구가 꿈틀대던 슈베르트야 말로, 쇼팽을 잘 치면서 콩쿠르 위너의 틀에 갖히지 않기 위해 다른 작곡가도 잘 소화해야 하는 조성진이 가장 전략적으로 세공해야 할 작곡가다. 개인적으로 조성진은 쇼팽보다 슈베르트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본다. 향후 독일어 학습이 이어진다면 자신의 힘으로 음악에 큰 획을 남기고 싶어하는 조성진의 큰 뜻이 독일 피아니즘에서부터 개화할 것이다. 쇼팽 발라드는 대회와는 다른 공격적인 접근이었지만, 쇼팽 작품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연구한 작품이기에 더 높은 기대 수준을 가져도 좋을 선곡이다. 호연이 명연으로 이어지기 위해 이번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투어가 끝나면 조성진 나름의 분석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한 번의 노히트노런보다 평균 자책점이 낮은 투수가 높은 평가를 받듯, 수연이 꾸준하게 이어지는 피아니스트가 투어 연주자로 살아 남는다. 2월 카네기홀 공연에서 쇼팽 24개 프렐류드가 예정됐지만 음반처럼 공연장에서의 조성진 쇼팽 발라드가 현재 그의 시그니처다. 화음을 자신의 페이스로 순하게 진행시키는 태연작약함은 신수정에게 어린 시절 익힌 탄탄한 기본기를 돌아보게 한다. 쇼팽 발라드를 대회에서 이렇게 쳤다면, 심사위원들이 결정을 내리는 대회의 특성상 우승을 장담하기 어렵다.달관을 노래하는 노련함이 묻어나는 연주가 경연에서 불리하다는 건 상식에 준한다. 쇼팽에선 그런 연주를 보였다. 슈베르트에서의 독창성이 조성진이 가진 의외성과 잠재력의 실체다. 보통 나이가 들어 전성기가 온다고 믿지만 조성진은 마치 전성기는 누가 평가하냐고 대답할 것 같다. 베르크에 대한 판단은 유보. 비슷한 시대 비슷한 사조의 다른 작품들을 들어봐야 한다 피아니스트 리사이틀로는 안스네스, 랑랑, 조성진의 공연을 롯데콘서트홀에서 들었다. 안스네스와 조성진의 공연은 청명하고 또렷하게 음상을 맺는 편으로 들었고 랑랑의 경우 굉음의 잔치였다. 레퍼토리의 차이에 기인할 수 있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을 배려하는 아티스트의 자세에 따라 객석에 퍼지는 음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본다. 공연전 리허설때 관객이 들어찬 것을 감안해서 음량을 조절하려고 하지만 랑랑이나 조성진의 공연처럼 만석일 경우, 그런 리허설이 무색해진다. 특히 음향에 대한 평가가 국내에선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기획자 등이 내리고 있는데 보통 해외에서 홀의 어쿠스틱을 말하고 평가하는 주요 주체는 연주가이다. 보통 국내에선 잘 울리는 것이 좋은 홀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독주자에게 그 효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건 상당한 고역이다. 연주가가 느끼기에 어떻다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관객의 감각이다. 공식 개장 전 시연 연주를 가져본 김선욱의 코멘트에 따르면 소리가 잘 퍼지는, 서울에서 아주 괜찮은 홀이다. 피아노 이외에 체임버 공연에서 보다 입체적인 소리를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NHK 교향악단 공연을 기준으로 할때 관현악에 어울리는 홀인지는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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