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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어른들 학대에 밤무대까지 섰던 서커스 소녀…최종 빌런은 친모였다
등록일2024.02.16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방송된 '서커스 소녀,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홍지윤, 배우 홍종현, 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미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경찰서에 온 소녀 때는 1991년 10월 13일 새벽, 당직을 서다 깜빡 잠이 든 경찰서 출입기자 최기자의 귀에 남대문 경찰서에 사건이 터졌다 는 솔깃한 얘기가 들려왔어. 최기자는 한달음에 서울 남대문 경찰서로 달려갔는데, 경찰서 안은 이미 기자들로 바글바글해. 그날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 바로 이 사람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야. 아! 입 아파 정말! 이놈의 기자! 5살 때 애들 빨래하는 거 못 봤어요? 아이 시끄러워! 괴성을 지르고 말을 험하게 내뱉는 아이. 경찰서에서 만나기엔 좀 뜻밖의 인물이지. 한눈에 봐도 어린 여자아이가 강력계 형사들을 쥐락펴락해. 기자에게도 막 '이놈의 기자'라고 불러. 이 아이, 도대체 누구일까? 당시 이 아이를 취재한 최 기자를 '꼬꼬무'가 만났어. 근데 사실 이 최 기자, 좀 유명한 분이야. 안녕하세요. 제가 그때 그 '기자놈' 최일구입니다. 최일구 앵커. 어록이 많은 걸로 유명하지. 사실 최 기자는 '꼬꼬무'에 나왔던 '서진룸싸롱 사건', '식품업체 독극물 테러사건'을 취재했던 기자야. '꼬꼬무' 세계관과 연관이 깊지. 이런 최 기자가 30년 기자생활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이 작은 꼬마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대. 형사계 또 형사과장 방에 갔더니 그 아이가 보였어요. 키가 일단 작고 특히 하체가 발육이 좀 비정상적으로 보였고. 뭔가 그 단어 선택 어휘 선택이라든가 이런 게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여자아이 같구나. 뭔가 첫눈에 봐도 문제가 있는 아이구나, 그런 생각을 그때 가졌어요. 경찰들이 이제 하는 얘기가 '아니 이 아기를 왜 형사계에 데리고 있느냐' 그랬더니 얘를 잡아온 게 아니고, 이 어린애가 탈출해 가지고 신고를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여기서 보호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최일구, 당시 사건 취재기자 탈출을 해서 신고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아이가 왜 경찰서에 왔는지 알기 위해, 시간을 이틀 전으로 돌려볼게. 이틀 전 늦은 밤, 서울 북창동의 한 봉제공장.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만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데, 갑자기 다다다닥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문이 열려.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자신을 숨겨 달라 부탁해. 이쪽 공장으로 해서 들어온 거예요. 누가 자기를 찾는데, 없다고 해달라 그러라고 그러더라고요. -당시 봉제공장 직원 느낌이 좀 이상했어. 게다가 이 아이의 모습도 특이했어. 언뜻 보기엔 일곱 살쯤 보이는데, 어린아이가 진한 화장을 했어. 그리고 체조선수들이 입는 쫄쫄이 옷 같은 걸 입고 있어. 이를 어쩌나, 공장 직원들이 당혹해하는 그때. 벌컥 또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여기 조그만 애 하나 안 왔소? 라고 물어. 그리고 내부를 막 뒤지기 시작해. 이상한 낌새를 느낀 공장 직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여기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 고 둘러대며 아이를 숨겨주려 했어. 구석에 숨은 아이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는데, 그 작은 몸짓에서 두려움을 읽은 거야. 직원들의 말에 남자는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나갔어. 남자가 떠난 후 직원들은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야. 일단 아이를 여기서 재우기로 해. 그런데 아이가 잠은 안 자고, 자꾸 밥을 달라고 보채.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밥을 먹고도 또 달라 그래. 얘가 밥 구경을 못한 아이 같아요. 먹고 한 2시간 있으면 '또 줘 또 줘' 그럼 여기서는 밥을 계속 줘서, 데리고 있었던 거예요. 완전히 인간이 로봇이지, 인간이 아니야. 그건. -당시 봉제공장 직원 다음 날, 서울 남대문 경찰서 형사들이 아이를 경찰서로 데려왔어. 근데 조용히 따라오던 아이가 막상 경찰서로 데려오니 180도 태도가 달라져. 집이 어디냐 물어도, 어디서 도망쳤냐고 물어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고 대답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면서 도와 달라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다 모른대. 답답한 마음을 누르고, 형사들은 아직 어린애니까 텔레비전과 먹을 걸로 달래기로 했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 텔레비전만 보던 아이가 질문에 조금씩 답하기 시작해. ▲ 서커스 소녀 심주희 아이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아이의 이름은 심주희. 키가 작아 어려 보이지만 열한 살이야. 놀랍게도 이 나이에 직업이 있었는데, 뭔지 알아? 아이는 서커스 단원이야. 1991년 당시 서커스는 텔레비전에 밀려나서 몇 개 남지 않은 단체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어. 주희는 그중 한 단체에 속해 있었어. 도망친 그날, 유흥업소에서 강제로 서커스 공연을 하다가 도망쳤대. 더 놀라운 건 이렇게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래. 이런 얘길 들은 형사들은 일단 강제로 공연을 시켰다는 서커스단의 단장을 데려왔어. 맞아. 봉제공장으로 주희를 쫓아왔던 바로 그 남자야. 단장은 경찰서에 와서 자신이 주희의 할아버지라고 주장했어. 그리고 형사들 앞에 스윽 종이 두 장을 내미는데,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이었어. 서류상 주희와 남자는 부녀 관계로 되어있어. 근데 왜 손녀라고 했을까? 단장의 말에 따르면 주희는 딸이 낳은 아이라는 거야. 결혼도 안 한 딸이 낳은 자식이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딸로 호적에 올렸다는 거지. 단장은 주희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며, 툭하면 사고를 쳐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고 주장했어. 자기는 서커스단을 꾸려 전국을 돌아다니는 평범한 가장이라는 거야. 단장은 당시 유명 코미디언의 친형인 데다가 신원도 확실해. 아무리 경찰이라도 아이의 얘기만으로 신원이 분명한 사람을 오래 붙잡고 있긴 힘들어. 형사들이 난감해하며 고민에 빠진 그때, 형사들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포착됐어. 단장이 경찰서에 온 뒤로 주희가 너무 조용해진 거야. 경찰서를 뒤집어 놓던 주희가, 단장이 온 후로 기가 팍 죽어서 계속 눈치만 살펴. 그리고 단장과 함께 온 아내가 주희야, 이제 그만 집에 가야지? 라며 아이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순간, 형사들은 봤어. 주희의 눈에 서린 공포를. 아이가 말하자면 주눅이 들어서 있었던 거지. 주눅이 들어가지고.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서 불안하고 자유롭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로 아무튼 긴장된 그런 모습을 봤을 때. '정상적이지 않는 가족 관계구나'를 그때 짐작을 한 거죠.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형사들은 주희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어. 그리고 주희야, 아저씨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줄래? 무슨 일이 있었니?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어. 자, 이제부터 주희 기억의 문을 열어볼게. 1.5평 남짓한 골방. 주변을 둘러보면 조그만 책상 하나와 소파만 놓여 있어. 자물쇠로 굳게 잠긴 문 때문에 안에선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바깥엔 큰 개 세 마리가 지키고 서있어. 운 좋게 나가더라도 들키는 건 시간문제야. 화장실도 못 가. 그냥 방 안에서 대충 봐야 해. 이곳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여긴 주희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야. 거기에 갔더니 일반 작은 단독주택인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놀랍게도 아이를 도망가지 못하게 그 그레이하운드 같은 맹견이 무려 세 마리나. 그 좁은 마당 같은 데서 막 우글우글하고 있었고.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에도 뭔가 이 시건장치, 자물통 같은 걸 채워 가지고 형사들이 이제 문 따고 들어가서 주희 양이 살던 데를 한번 구경을 기자들한테 시켜줬는데. 여기는 그 어린애한테 침대다운, 내 어디서 잤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거기서 11살까지 거기서 생존을 했는지. 정말 기가 막힐 지경이었어요. -최일구 기자, 당시 사건 취재 주희는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당시 주희의 말을 토대로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봤어. 아마 아이돌 연습생도 이렇게 까진 안 할 거야. 주희는 하루 네 번,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갔어. 지하실이 연습실이었거든. 하루 열두 시간 서커스 훈련을 했어. 그리고 밤이 되면 유흥업소 밤무대에 섰어. 어른들은 주희의 무대에 열광했어. 어린아이가 늦은 밤까지 공연을 하는데 그걸 안쓰럽게 여기거나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어. 오히려 팁이 막 쏟아져. 주희가 왜 어른 같은 말투를 썼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있었는지 좀 알겠지? 그렇게 파김치가 돼서 집에 돌아오면? 다음 스케줄은 어김없이 지하 연습실 행이야. 오로지 연습만이 살 길이야. 겨우 잠드는 시간은 새벽 두 시. 근데 새벽 네 시면 다시 일어나야 해. 서커스 훈련을 해야 하니까. 힘든 일과 중에도 주희가 좋아하는 시간은 있었어. 바로 밥 먹는 시간. 주희는 늘 배가 고팠거든. 그런데 식사는 하루 두 끼에 반찬은 김치뿐이야. 밥도 적어. 일고여덟 숟갈 정도 뜨면 없대. 그래선지 주희는 또래보다 작았어. 키는 120cm, 몸무게는 20kg야. 당시 열한 살 아이 평균 키가 145cm, 몸무게가 38kg 정도 됐는데, 평균에 한참 못 미치지. 단장이 주희를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밥도 조금만 먹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 몸집이 작아야 어려운 묘기를 해낼 수 있으니까. 또 어린아이로 보일수록 관객들이 더 신기해하니까. 학교? 당연히 말도 안 돼. 주희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한글도 몰랐어. 주희에겐 오로지 서커스, 연습뿐이야. 주희는 이런 생활을 네 살 때부터 했어. 기저귀를 막 뗄 무렵부터 고된 훈련을 한 거야. 주희는 무려 7년 동안 이렇게 살았어. 꼭 저렇게까지 해가면서 공연을 하면서 돈벌이를 해야 되느냐. 안쓰러움이 많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 처참하더라고요 보니까. 불안, 초조해하는 그런 내색. 천진난만한 아이가 저렇게 자라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지옥의 서커스 주희가 탈출하면서 자물쇠로 꾹 잠겨있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났어. 지난 11일 새벽 야간업소를 탈출한 주희 양의 몸에는 아직도 멍자국이 군데군데 남아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내용 中 잠도 두 시간밖에 못 자고요. 밥도 두 끼 밖에 못 먹고. 맨날 하루에 한 번씩 때리고 그러니까 그냥 나왔어요. -심주희 양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익숙하게 묘기를 선보이는 주희. 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어. 주희는 늘 긴장 상태였어. 특히 공연할 땐 더 그랬어. 이런 이유 때문에. 단장은 실제로 주희 양을 서커스단의 원숭이 정도로 길러왔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길이 63㎝, 직경 2㎝짜리 나무몽둥이가 온몸 어디라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날아든다. 특히 전날 업소공연 중에 실수를 했을 경우의 몽둥이찜질은 끔찍할 정도이다. -당시 신문 기사 내용 중 심지어 이 몽둥이를 감싼 붕대는 주희가 직접 감은거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붕대를 감으면서 주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사를 받던 단장은 억울함을 호소했어.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 죄 밖에 없고 결백하대. 어찌나 억울했는지, 단장 부인은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도 했어. 방문에 자물쇠를 채운 건 이웃공장 남자애들의 흑심으로부터 주희를 지키기 위해서라 주장했어. 형사들은 계속해서 단장을 강하게 추궁했어. 형사: 지금 이 막대기가 그 현장에서 왔고 주희는 이걸로 맞았다는데 이 막대기가 당신이 때린 건 맞아? 단장: 그건 뭐, 그 막대기로 더러 뭐… 형사: 때린 사실은 있지? 이 막대기로? 단장: 뭐 잘하라고 해서 그런 적은 더러 있습니다.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죠.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어. 단장은 주희의 친할아버지가 아니야. 혈연관계가 아예 없어. 딸 얘긴 다 거짓말이었던 거지. 알고 봤더니 단장이 오갈 데 없는 주희를 데려다 서커스를 시킨 거야.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주희와 같은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거야. 서커스 소년 민우가 경찰서를 찾아왔어. 열일곱 살인 민우는 어린 시절 단장의 양자로 입적돼서 주희와 함께 서커스 훈련을 했대. 민우 역시 심한 매질과 욕설을 견디지 못하고 2년 전 도망 나온 상태였어. 어떤 여자도 연락을 해왔어. 자기 딸한테 서커스를 시킨 적이 있는데, 단장이 성폭행을 했다는 거야.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딸은 3년 동안 수십 번 넘게 끔찍한 일을 겪었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공연 가면 여관방을 하나 구하고 그 단원들이 자고 그러잖아. 그러면 쉬는 시간에 부른다는 거야 걔를. 수도 없이 당했다고. 말 안 들으면 욕하고 막 그냥 구박을 해서, 차라리 그냥 그러느니 가서 한 번 당하는 게 낫다… 그렇게 수도 없이 당했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김남구,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단장은 왕처럼 군림했어. 서커스의 인기가 떨어지고 수입이 줄자 자구책을 하나 떠올렸어. 어린아이들을 유흥업소에 출연시키는 거야. 그렇게 갈취한 출연료만 당시 액수로 5억 여 원. 아이들은 좁은 방에 가둬두고 자신은 번듯한 집에 살며 호의호식해 왔던 거야. 놀라운 건 이렇게 사는 걸 이웃들은 아무도 몰랐대. 만약 주희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이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거야. 뒤늦게야 진실은 밝혀졌어. 단장은 아동복지법 위반과 강간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됐어. 이제 주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부모를 찾아줘야겠지. ▲ 형사 아빠들 형사들도 주희의 친부모를 찾아주고 싶었지만,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어. 주희는 어릴 때라 자기 부모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해. 그래도 희망이 완전 없진 않아. 대대적으로 텔레비전에 보도됐으니 그걸 본 부모가 주희를 찾아올지도 몰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주희의 부모라고 하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아.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당장 급한 문제는 따로 있어. 당장 주희를 맡아줄 데가 없는 거야. 당시에는 아동보호시설이 부족했거든. 이 어린아이를 경찰서에 혼자 놔두고 퇴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감해하며 머리를 싸맨 형사들은 이런 결정을 내려.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주희를 집에서 재우기로 한 거야. 이제 오랫동안 아이를 데리고 있다 보니까. 잘못하면 아이를 또 잃어버려도 안 되고. 그러면 이제 어떻게 보호를 해야 되느냐. 자 오늘은 우리 김 형사, 내일은 뭐 우리 이 형사님, 내일은 뭐 또 무슨 형사님… 해가지고 집에 데려와서 잠도 재우고 먹이고 그렇게 했었어요 자유롭게. 예뻐요 아이가. 아주 귀엽고 상냥하면서 붙임성도 있으면서 아주 애가. 나는 내가 막 안아주고 집에 가서 데려다주고 집에 가서 잠재우고. 우리 아이들이랑 같이 놀고 그랬거든요.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렇게 주희의 이중생활이 시작돼. 낮엔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형사아저씨들의 집으로 가서 잤어. 주희는 이제 이 구역의 '핵인싸'야. 나쁜 놈들 때려잡는 강력계 형사들도 주희에겐 속수무책이야. 범인 잡으랴 애 보랴 업무는 두 배가 됐어. 그래도 주희를 보는 눈엔 꿀이 뚝뚝 떨어져. 주희는 최 형사를 '큰아빠'라고 불렀어. 임 형사는 '아빠'라고 불러. 편안하게 하니까 '아빠라고 불러도 돼?' 하면서 어리광도 부르고 여기다 볼에다 뽀뽀도 하면서 그냥 막. 아유 갖은 아양을 다 부리면서 뭐 그런 거죠. 자기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마음을 내색을 한 거지 말하자면.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시간이 지날수록, 주희는 형사 아빠들한테 더 마음을 열었어. 사실, 형사분들이 별로 잘해준 것도 없었대. 그냥 때 되면 밥 챙겨주고, 과자 사다 주고, 놀아달라고 하면 잠깐 놀아주고. 그게 다였대. 그런데, 주희에게는 처음이었던 거야. 자기를 때리지 않는 어른이. 형사님들은 '어서 빨리 진짜 집을 찾아줘야겠다' 생각했대. 언제까지나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주희의 친부모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아. 대신, 주희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의 입양 의사를 밝히는 연락들이 많았어. 그중 진지하게 온 입양 문의만 열 건 정도였대. 형사 아빠들 사이에서 입양 대책회의가 열렸어. 주희의 첫 번째 부모후보, 서울에 사는 가정주부 김 모 씨야. 뉴스를 보고 며칠 밤을 설쳤대.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했어. 인정 많은 김 씨라면 엄마의 마음으로 주희를 보듬어주지 않을까? 그리고,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 모 씨도 후보에 이름을 올렸어.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키우는 아빠래. 그는 주희를 자기 자식과 함께 키우고 싶어 했어. 또래 아이가 있다고 하니 주희가 외롭지 않을 것 같아. 근데, 아이가 없는 집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어. 물론 입양한 아이를 자기 자식과 똑같이 사랑으로 키우는 분들도 많지만, 지금 주희에겐 절대적인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그렇게 떠오른 세 번째 후보는 아이가 없는 최 씨 부부야. 최 씨 부부는 직접 경찰서까지 찾아오며 적극적인 입양 의사를 밝혔어. 어느 집으로 주희를 보내는 게 좋을까? 가장 중요한 건, 주희의 의견이야. 근데 주희는, 다 싫대. 이유를 물어봐도 말하지 않아. 계속 형사 아빠들만 찾아. 사실 형사들도 고민이 많았어. 마음에 걸리는 게 있거든. 아유, 참나! 아 되게 그러네 참! 아저씨는 나이가 어려. 할아버지 나이가 더 많아. (이거 염색인데?) 아니라니까!! 말투가 거칠고, 익숙하게 머리 손질과 화장을 하는 주희. '아이답다'는 표현과는 좀 거리가 멀어. 어릴 적부터 또래와 격리된 삶을 살았잖아. 게다가 밤무대 공연을 다니면서 어른들의 세계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어. 그래선지 행동이나 말투가 당돌해. 조금 안 좋게 말하면 버르장머리가 없어 보일 수 있어. 이런 주희가 일반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혹시나 파양이라도 당하면, 정말 큰일이지. 그래서 결국 형사 아빠들은 이곳에 주희를 보내기로 해. 때마침 명동 가톨릭 회관 쪽에서도 연락이 왔어. 신도 중에 좋은 입양자를 골라 입양을 시키고 싶다고 했어. 당장 일반 가정으로 입양을 보내는 것보단 수녀님들과 함께 지내면서 안정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임시 입양처가 정해지고, 헤어질 날이 하루, 이틀 다가왔어. 형사 아빠들은 돈을 모아 주희에게 새 원피스와 안경을 사줬어. 다행히 주희는 기분이 괜찮아 보였어. 주희는 편지도 썼어. 한글을 모르는 주희의 말을 막내 형사가 받아 적어준 거야. 여기 계신 아저씨들은 저의 친아빠 같으시며 제가 버릇없이 한 것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겠습니다. 주희 드림. 1991년 10월 22일, 경찰서 생활 11일째 되던 날. 이제 정말 형사들이 주희와 헤어질 시간이 왔어. 안 갈래, 안 갈 거야. 엄마나 찾아줘, 엄마만 찾아줘. 아빠가 엄마 찾아줘 빨리. 찾아준다고 약속했잖아. 주희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형사 아빠들한테 안 가겠다고 막 떼를 쓰면서 울어. 정들었던 아이를 데리고 간다니까 많이 아무튼… 저도 눈물 나고 좀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보니까. 정상적으로 편안하니 잘 학교도 다니면서 성장을 제대로 해야 될 텐데… 그런 염려 등 여러 가지로 많이 아무튼 맘이 안 좋더라고.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형사 아빠들의 마음도 찢어져. 주희가 진짜 바라는 게 뭔지 알고 있었거든. 주희는 심리 상담에서 이런 말을 했어. 의사: 너한테 제일 큰 소원이 뭐야? 그것만 한번 대답해 봐. 주희: 엄마요. 찾고 싶다고요. 의사: 엄마가 어떠신 분인 것 같아? 주희: 내가 예쁘니까 엄마도 예쁘죠. 거짓말 안 시킬 것 같아요. 몰라요~ 자꾸 왜 물어봐요. 엄마도 없는데…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주희는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그리웠나 봐. 하지만 친부모를 찾지 못했잖아. 주희를 위해서라도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해. 그렇게 주희는 천주교 자매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보내졌어. 거기서 한글 공부도 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어. 이따금 형사 아빠들을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긴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야. 차근차근 좋은 가정에 입양될 준비를 해 나갔어. ▲ 폐쇄병동 환자의 비밀 그로부터 6년이 흐른 1997년, 경기도 오산. 박경신 원장은 요즘 폐쇄병동에 있는 어떤 환자 때문에 머리가 아파. 벌써 2년째 이 정신병원을 떠나지 않는 환자가 있었거든. 이 환자가 처음 병원에 왔을 당시의 얘길 좀 들어볼게. 치료하기 힘든 환자였어요 협조가 안 되니까. 예를 들어서 식사도 잘 못하는데 수액을 놓아주면 다 빼버린다든가. 모든 치료를 거부를 한다든가. 약 투여도 거부한다든가.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았었어요. 이 친구의 가장 특징적인 게 사람을 믿지를 않았었어요. -박경신 박사, 당시 오산 정신병원 원장 이 환자에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박 원장이 특히 이 환자에게 마음이 쓰였던 이유가 있어. 보호자도 없이 오갈 데 없는 신세였거든. 오랜 입원기간 동안 면회 오는 사람도 없어. 박 원장은 계속해서 환자의 마음을 두드렸대. 얼마나 두드렸을까. 드디어 이 환자가 입을 떼. 제가 어릴 적에 서커스를 탈출한 적이 있어요. 그래, 이 환자의 정체는 주희야. 이제 열여덟 살이 된 주희는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었어. 좋은 가정에 입양돼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주희는 천주교 단체에 보내졌잖아. 사실 처음부터 잘 적응하지 못했대. 당시 주희의 건강진단 보고서에는 심한 학대로 인해 공격적이고 대인기피증 불신증이 심해 시급한 입양이 요구된다 라는 글이 적혀 있어. 주희는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렸어. 눈을 뜨면 다시 자신이 학대받았던 곳으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나 봐. 겨우 잠에 들면 매 맞는 꿈을 꾸곤 했대. 이건 주희가 쓴 일기야. 저는 여기 있기 싫고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겠습니다. 또는 고아원으로 보내주십시오. 1994년 3월 13일 심주희. 당시 주희의 나이는 열네 살. 한참 사춘기를 겪을 예민한 시기지. 주희는 유난히 집을 답답해했어. 그래서 툭하면 집을 나가곤 했대. 겨우 찾아오면 다시 나가고, 찾아오면 또 나가고. 그렇게 방황의 시간은 계속 됐어. 그러다 주희가 들어간 곳이 있어. 경기여자기술학원. 가출소녀, 고아 등을 데려와서 직업훈련을 시켜주는 시설이야. 집 밖을 헤매던 주희도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입소했어. 스스로 정한 첫 번째 집이었어. 거기서 또래들과 같이 꿈을 키워 나갔어. 그러다 그 사건이 벌어져.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 '꼬꼬무'에서도 다뤘던 사건이야. 기숙사 건물에서 불이 난 것은 오늘 새벽 2시쯤이었습니다. 소방관들이 바깥 쇠창살을 뜯어내고 화장실 안으로 진입했을 때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내용 中 1995년 8월 21일 새벽. 학원의 운영방침이 강압적이라고 느낀 일부 원생들이 탈출을 위해 불을 질렀어. 불을 지르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138명 원생 중 마흔 명이 숨지고 스무 명이 중상을 입은 대형화재였어. 처음 불길이 시작된 2층에서 특히 사상자가 많이 나왔는데, 주희도 바로 여기, 2층에 있었어. 불이 났을 당시 주희는 옷장 안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어. 친구들의 몸이 새까맣게 불타가는 사이 주희는 옷장 안에서 의식을 잃어갔어. 밤에요. 이제 친구가요. 애들이 그런다고 그래서 장난을 잘하니까요. 그래서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잤는데 눈떠보니까 병원이었어요. -심주희, 1997년 인터뷰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 중환자실이었어. 열흘 만에 깨어났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친구들도 꿈도 모두 잃어버렸어. 내과적인 치료를 다 한 다음에 정신과로 치료를 의뢰했던 케이스예요. 이 친구는 뭐 그 사람들만 세상을 다 원망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는 왜 이렇게 기구한가' 하면서 세상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경신 원장, 당시 심주희 주치의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상처는 조금씩 회복됐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어. 그래서 폐쇄병동까지 오게 된 거야. 주희는 매일 밤이면 불이 나던 그날 밤으로 되돌아가. 살려달라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아. 악몽은 2년째 주희를 괴롭혔어. ▲ 엄마를 찾고 싶어요 그러던 어느 날, 주희가 마음 깊숙한 곳에 품고 있던 얘길 꺼내. 엄마를 찾고 싶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커졌어. 당시 주희의 마음을 들어볼게. 보고만 싶어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도 싶고. 일단은 나 낳은 엄마잖아요. 그래도 뭐 버렸다고 해도요. 원망은 되지만 또 일단은 난 우리 엄마잖아. 친엄마인데 원망해 봤자… 또 원망한 적도 없고요. 그냥 만나면… 그냥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아요. -심주희, 1997년 당시 인터뷰 정신병원에서 실시한 연극 심리 치료에서 주희는 엄마 역할을 한 상대한테 안 미워했어요 라며 눈물을 흘렸어. 치료가 끝나고도 한참을 울었어. 주희는 부모가 없는 게 '나를 지지해 주는 뿌리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대. 서커스 소녀 심주희는 아무것도 없는 빈 토양에 혼자 뿌리를 내리고 힘겹게 버텨왔던 거야. 그런데, 이런 간절한 마음을 누군가 듣기라도 한 걸까.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어. 방송국에서 주희를 돕겠다고 나선 거야. 그리고, 이 분도 힘을 보태기로 했어. 주희가 큰아빠라고 불렀던 최 형사. 주희의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했던 최 형사도 힘을 보태기로 했어. 앞서 얘기했지만 주희는 어린 시절 기억이 없어. 유일한 기억은 할머니 친구 집으로 보내졌다는 거야. 그러면 그 '할머니의 친구'를 찾아야지. 그리고 그 사람을 알 만한 사람이 있어. 바로, 서커스단 단장 부부. 처음 걔를 받고 안 받고도 없고요. 모르셔서 그러는데, 저희는 걔를 어디서 받고 누구한테 인수받고 그런 것도 없어요. 걔가 원래 곡마단으로 흘러들어온 애죠. 걔를 데리고 다니는 어느 곡예사가 하나 있었답니다. 그런데 곡예사가 걔를 놓고 어디로 가버렸어요. 곡예사들이요. 그렇게 해서 집 양반이 걔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었어요. 데리고 들어오고 나니 걔가 아무것도 모르죠. 어디 걔가 뭐가 사는 것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고 지 이름 성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더라고요. 얘가요. 그래서 그 주희라는 이름은 하도 얘가 하도 천방지축이라 내가 '주의, 주의해라' 한 것이 그게 이름이 돼버린 거예요. -단장 부인, 1997년 당시 전화 인터뷰 '심주희'는 주희의 진짜 이름이 아냐. 서커스단 단장은 떠돌이 곡예사로부터 주희를 데려온 거야. 이제 그 곡예사를 찾아야지. 수소문 끝에 바로 그 곡예사를 찾았어. 아~ 그 애요? 저희 어머님 아는 분 통해서 데려왔는데.. 강원도 어디였다더라...? 여기서 또 단서가 추가 돼. 주희가 기억하는 할머니 친구는 바로 이 곡예사의 어머니야. 그리고 이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소득이 있었어. '심주희' 말고, 주희의 진짜 이름을 찾은 거야. 지현주. 이게 주희의 진짜 이름이야. 어질 현(賢) 자에, 구슬 주(珠) 자를 써. '주의해라' 해서 아무렇게나 막 지은 이름이 아니라 정성껏 지은 이름인 게 느껴져. 진짜 이름을 찾았으니깐 이제부턴 현주라고 할게. 현주는 곧바로 곡예사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어. 그녀의 엄마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단서야. 곡예사의 어머니는 현주를 단번에 알아봤어. 자기 할머니가 나한테 맡겼어요. 어디 좋은 데 있으면 자기 몸이 불안하고 어디 벌어먹을 수가 없다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들이 서커스에 있으니까 내가 '서커스에 보내자' 내가 그랬지. -곡예사의 어머니 그 할머니도 여기서 일을 하기 때문에 어딘가에 방을 사글셋방을 얻어 놓고 있다 그랬거든요. 그러는데 뭐 얘 놔두고서는 그 길로 행방도 묘하고 아는 사람 편으로 하니까 돌아가셨다 그러더라고. 오래전에… -곡예사의 누나 곡예사의 어머니가 할머니의 행방을 알 거라 믿었는데, 아마 돌아가신 거 같대.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어. 이대로 엄마는 못 찾는 걸까. ▲ 드디어 만난 엄마 현주는 계속 방송에 나가 엄마를 찾았어. 보고 싶고요. 그리고 만약에 텔레비전 보면 연락 달라고요. 애타게 엄마를 찾는 열여덟 살 소녀. 현주의 사연은 전국에 알려졌어. 근데 엄마는 감감무소식이야. 방송국에 제보를 내고, 때론 직접 찾아다니며 그렇게 계속 엄마를 찾았어.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경찰서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와. 드디어 현주의 엄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증거라며 사진 두 장을 가져왔어. 또랑또랑한 눈매가 어릴 때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해. 최 형사는 현주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어. 소식을 들은 현주는 바로 경찰서로 달려왔어. 꿈에서만 그리던 엄마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된 거야. 1998년 5월. 극적인 모녀 상봉이 이루어졌어. 엄마는 현주를 만나자마자 껴안고 오열했어. 만약에 얘가 아니면 나는 여기서 그냥 쓰러지는데 '아니면 어떡하나'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오는데 보니까 그냥 어렸던 모습 그대로니까. 그냥 그때서부터 막 이렇게 정신이 막 저거 되고 막 이렇게 없던 힘도 솟는 것 같고… -현주 엄마 그렇게 어렵게 찾았는데 안 됐는데 막상 갑자기 딱 찾으니까 좀 그렇죠 안 믿겨질 때도 있고… -현주 얼굴도 모른 채 그리워만 했던 엄마를 드디어 만났는데, 막상 엄마를 찾으니까 얼떨떨해. 알고 보니 현주에겐 오빠도 둘 있었어. 그럼 이들은 왜 헤어지게 된 걸까? 자, 이제부터 현주 엄마, 미숙 씨의 얘길 들려줄게. 17년 전, 미숙 씨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어.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도망쳤는데, 남편이 칼을 들고 쫓아왔어. 그날 미숙 씨는 그 칼에 찔리고 말았대. 남편은 구속됐고, 미숙 씨는 병원신세를 져야 했어. 이후 친정 엄마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돈을 벌러 외지로 나갔어. 얼마 후, 남편이 출소했는데, 친정 언니가 '아이는 아빠 밑에서 커야 한다'며 삼 남매를 아빠에게 돌려보냈어. 그런데, 1년 만에 애들 아빠가 사고로 사망한 거야. 뒤늦게 소식을 듣게 된 미숙 씨가 아이들을 찾았지만, 그땐 이미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남의 집에 보내버린 후였대. 엄마는 너무 괴로워서, 극단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었대.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대. '어쩌면, 다른 집에서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이 부잣집으로 입양 간 걸로 알고 있었거든. 현실은 곡예사와 떠돌고 있던 건데. 그 사실을 모르는 미숙 씨는 꿋꿋하게 살아갔어. 먼 훗날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꿈꾸며. 그리고 먼 세월을 돌아 현주와 재회한 거야. 이제 현주에겐 새 가족이 생겼어. 엄마 말고도 새아빠와 오빠, 그리고 동생들까지. 굉장히 많은 가족들이 한꺼번에 생겼어. 그리고 1년 뒤, 또 기쁜 소식이 들려왔어. 현주가 결혼을 한 거야. 이제 현주는 행복하게 살았을까.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야. 상상도 못 할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최악의 빌런'이 등장해. 바로, 현주의 엄마야. ▲ 알고 보니 '최악의 빌런' 엄마 현주가 엄마를 만나고 13년 후인 2011년, 현주는 TV에 또 출연해. 그것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얼굴을 가린 채로.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많이 맞다 보니까 맞는 게 이골이 나서 그건 아무렇지가 않았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 그래도 그렇게 떨어졌다가 지금 이렇게 만났는데… 나는 이게 십몇 년이 지났잖아요.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것보다 더 길고 더 힘들고 더 아팠던 것 같아요. 차라리 서커스단에 있었을 때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해요) -2011년 당시 인터뷰 열한 살 때 극적으로 서커스단을 탈출해서 우여곡절 끝에 엄마를 만났잖아. 전 국민이 지켜본 그 감동적인 재회. 그런데, 방송 카메라가 떠나자 갑자기 엄마가 돌변해. 틈만 나면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흉기로 다치게 한 적도 있대. 결국, 엄마를 만난 지 두 달 만에 현주는 또다시 집을 나왔어. 하지만 도망가면 쫓아오고, 도망가면 또 쫓아오고.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의 반복이었어. 현주가 결혼을 했다고 했잖아? 그렇게 어린 신부가 된 것 역시 엄마의 강요로 이뤄진 일이었어. 그토록 찾고 싶었다던 딸을, 왜 그렇게 빨리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 했을까. 현주는 그 이유를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 도중 듣게 됐어. 현주는 어릴 적 돌봐주던 천주교 측 분들을 찾아갔어. 주희야. 너 그때 당시에 있었던 재산은 다 갖고 있니? 돈은? 우리 집에서 나갈 때 돈이 얼마 있었거든. 교회에서도 줬고 계산은 안 했지만. 한 3~4천만 원 있었는데. (화재 보상금으로) 돈이 나왔대. 5천만 원인가 4천만 원인가 나왔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얘 있는데 이야기를 하려니까 (생모가) 못하게 하더라고. 이렇게 쉿 (하면서) 그 아줌마가 이야기하지 말래. 주희가 모른다고. 그래서 내가 가고 나서 '이상하다. 참' (생각했어) 천주교 측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진실을 알게 된 현주. 그분들과 헤어지자마자 현주는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어. 알고 봤더니 심주희였던 시절 받았던 후원금과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모두 엄마란 사람이 가로챘던 거야. 그 엄마가 현주를 찾은 건, 결국 돈 때문이었을까. 현주 엄마는 2007년 세상을 떠났어. 이제 엄마라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얼마 후 법원에서 서류 한 장이 날아왔어. 죽은 엄마 대신 빚을 갚으라는 내용이야. 카드빚만 수천만 원이었어. 현주는 또다시 벼랑 끝에 내몰렸어.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커스 소녀 이야기는 이미 해피엔딩을 맞이했거든. 이미 엄마 찾았다고 떠들썩하게 다 나왔는데. 내가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 순간에는 내가 누구한테 전화할 데도 없고… 하고 싶은 거요? 없어요. 난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았어요. 진짜 이것저것. 공부해 가지고 간호사라도 되어볼까. 하고 싶은 건 되게 많았는데 그런 꿈들이 한순간에 그냥 한순간에 그냥 없어졌어요. 한순간에. -지현주, 2011년 당시 인터뷰 ▲ 현주의 새 이름, 그리고 33년 만의 만남 차라리 서커스단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는 현주. '그알'에 출연하고 13년이 흘렀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지만 형사 아빠들도, 천주교 관계자들도 모두 현주와 연락이 끊겼대. 근데 '꼬꼬무'가 힘들게 찾았어. 알고 보니, 현주가 이름을 또 바꿨더라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걸까. 묻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아. 마흔넷이 된 서커스 소녀를 만나볼게. 안녕하세요? 저는 서커스 소녀 심주희입니다. (이름을 바꾸게 된 건) 그때 제가 좀 힘든 상황도 있었고, 그리고 너무 안 풀리고 너무 힘들다 보니까, 개명이라도 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 솔직히 '꼬꼬무' 보면서 있잖아요. 이렇게 나오는 거 보고 전에 그 생각은 했었어요. '나도 저 방송은 한 번 나오고 싶다' 했는데 연락이 온 거예요. 그리고 진짜 거짓말 안 하고 그 경기여자기술학원 나올 때 있잖아요. 그 얘기했어요. 저 방송에서 나한테 연락 오겠다… 이름 개명하고 나서도 그러고 나서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니. 지금은 잘 살고 있죠. 심주희, 지현주, 그리고 세 번째 이름을 갖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흘렀어. 이번엔 스스로 지은 자신의 이름이야. 그 이름은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지금은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살고 있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었대. 외롭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었대.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쁜 소식, 지금은 혼자가 아니야. 새로 가정도 꾸렸대.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남편 분하고 힘을 합쳐서 잘 극복했대. 저도 사실 처음에 만났을 때, 사실 저도 그때 당시 마음이 안 좋은 상태였고. 계속 살아야 할까 용기가 없는 상태였거든요. 이 사람 만나고 나서, '내 삶은 힘든 삶도 아니구나' 그런 용기를 얻었었고요. 그러다 보니, 누가 힘든 게 있으면 서로 보듬어주며, 그렇게 생활하고 있죠. -남편 첫 만남 때, 제작진이 이런 질문을 했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라고. 그녀의 답은, 형사 아빠들과 함께 했던 그 짧은 순간이야.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걸로 꼽는다면 그때. 그 어렸을 때 조금? (형사님들이) 맨날 그냥 이렇게 업고 다니고. 어디 가서 사고 치고 있으면 가서 이렇게 데리고 오고. 일찍 내려가 가지고 어디 가서 막 저기 하겠으면 와서 손을 끌고 가고. 제가 자다가 이게 깜짝깜짝 놀란대요. 그러면 옆에서 형사님들이 그걸 보고 이렇게 토닥토닥 해주면서 나중에는 이제 본인들이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야. 이제 걱정이 돼서 얘기를 하시고. 그런 거 보면 나를 진짜 좀 진심으로 저기를 해줬구나. 그냥 고맙죠. 감사하죠. 진짜 감사하죠. 왜냐면 어떻게 보면, 쉽게 말하면 진흙탕에 있는 나를 이렇게 꺼내준 거잖아요. 꺼내서 예쁘게 이렇게 만들어준 거니까 고맙죠. 되게 감사해요. 고작 11일. 경찰서에서 지냈던 시간이야. 당시 형사 아빠들하고 지냈던 시간은 살면서 큰 힘이 됐대. 뒤에는 형사 아빠들이 든든하게 지키고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대. 그 형사 아빠들 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 무려 33년이 흘렀어. 너무 보고 싶었지만, 그동안 기회가 없었대. 그 기회, '꼬꼬무'가 만들어줬어. 서커스 소녀와 형사 아빠들의 33년 만의 만남이 성사됐어. 아이고 내 새끼 반가워라. 전 형사님들 만나면 그 말씀은 해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하다고… 서커스 소녀와 형사 아빠들은 앞으로 계속 연락하며 삶을 공유하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어릴 적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 물었어. 어릴 적 심주희한테 그 말은 해주고 싶어요. 대견해요. 저한테 박수 많이 쳐주고 싶어요. 되게 힘들었잖아요. 진짜 힘들었는데, 나쁜 쪽으로 빠질 수도 있는데 안 빠지고. 그런 걸 다 이겨내고 잘 살았잖아요.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어른들 학대에 밤무대까지 섰던 서커스 소녀…최종 빌런은 친모였다
등록일2024.02.16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방송된 '서커스 소녀,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홍지윤, 배우 홍종현, 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미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경찰서에 온 소녀 때는 1991년 10월 13일 새벽, 당직을 서다 깜빡 잠이 든 경찰서 출입기자 최기자의 귀에 남대문 경찰서에 사건이 터졌다 는 솔깃한 얘기가 들려왔어. 최기자는 한달음에 서울 남대문 경찰서로 달려갔는데, 경찰서 안은 이미 기자들로 바글바글해. 그날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 바로 이 사람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야. 아! 입 아파 정말! 이놈의 기자! 5살 때 애들 빨래하는 거 못 봤어요? 아이 시끄러워! 괴성을 지르고 말을 험하게 내뱉는 아이. 경찰서에서 만나기엔 좀 뜻밖의 인물이지. 한눈에 봐도 어린 여자아이가 강력계 형사들을 쥐락펴락해. 기자에게도 막 '이놈의 기자'라고 불러. 이 아이, 도대체 누구일까? 당시 이 아이를 취재한 최 기자를 '꼬꼬무'가 만났어. 근데 사실 이 최 기자, 좀 유명한 분이야. 안녕하세요. 제가 그때 그 '기자놈' 최일구입니다. 최일구 앵커. 어록이 많은 걸로 유명하지. 사실 최 기자는 '꼬꼬무'에 나왔던 '서진룸싸롱 사건', '식품업체 독극물 테러사건'을 취재했던 기자야. '꼬꼬무' 세계관과 연관이 깊지. 이런 최 기자가 30년 기자생활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이 작은 꼬마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대. 형사계 또 형사과장 방에 갔더니 그 아이가 보였어요. 키가 일단 작고 특히 하체가 발육이 좀 비정상적으로 보였고. 뭔가 그 단어 선택 어휘 선택이라든가 이런 게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여자아이 같구나. 뭔가 첫눈에 봐도 문제가 있는 아이구나, 그런 생각을 그때 가졌어요. 경찰들이 이제 하는 얘기가 '아니 이 아기를 왜 형사계에 데리고 있느냐' 그랬더니 얘를 잡아온 게 아니고, 이 어린애가 탈출해 가지고 신고를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여기서 보호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최일구, 당시 사건 취재기자 탈출을 해서 신고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아이가 왜 경찰서에 왔는지 알기 위해, 시간을 이틀 전으로 돌려볼게. 이틀 전 늦은 밤, 서울 북창동의 한 봉제공장.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만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데, 갑자기 다다다닥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문이 열려.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자신을 숨겨 달라 부탁해. 이쪽 공장으로 해서 들어온 거예요. 누가 자기를 찾는데, 없다고 해달라 그러라고 그러더라고요. -당시 봉제공장 직원 느낌이 좀 이상했어. 게다가 이 아이의 모습도 특이했어. 언뜻 보기엔 일곱 살쯤 보이는데, 어린아이가 진한 화장을 했어. 그리고 체조선수들이 입는 쫄쫄이 옷 같은 걸 입고 있어. 이를 어쩌나, 공장 직원들이 당혹해하는 그때. 벌컥 또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여기 조그만 애 하나 안 왔소? 라고 물어. 그리고 내부를 막 뒤지기 시작해. 이상한 낌새를 느낀 공장 직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여기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 고 둘러대며 아이를 숨겨주려 했어. 구석에 숨은 아이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는데, 그 작은 몸짓에서 두려움을 읽은 거야. 직원들의 말에 남자는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나갔어. 남자가 떠난 후 직원들은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야. 일단 아이를 여기서 재우기로 해. 그런데 아이가 잠은 안 자고, 자꾸 밥을 달라고 보채.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밥을 먹고도 또 달라 그래. 얘가 밥 구경을 못한 아이 같아요. 먹고 한 2시간 있으면 '또 줘 또 줘' 그럼 여기서는 밥을 계속 줘서, 데리고 있었던 거예요. 완전히 인간이 로봇이지, 인간이 아니야. 그건. -당시 봉제공장 직원 다음 날, 서울 남대문 경찰서 형사들이 아이를 경찰서로 데려왔어. 근데 조용히 따라오던 아이가 막상 경찰서로 데려오니 180도 태도가 달라져. 집이 어디냐 물어도, 어디서 도망쳤냐고 물어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고 대답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면서 도와 달라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다 모른대. 답답한 마음을 누르고, 형사들은 아직 어린애니까 텔레비전과 먹을 걸로 달래기로 했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 텔레비전만 보던 아이가 질문에 조금씩 답하기 시작해. ▲ 서커스 소녀 심주희 아이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아이의 이름은 심주희. 키가 작아 어려 보이지만 열한 살이야. 놀랍게도 이 나이에 직업이 있었는데, 뭔지 알아? 아이는 서커스 단원이야. 1991년 당시 서커스는 텔레비전에 밀려나서 몇 개 남지 않은 단체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어. 주희는 그중 한 단체에 속해 있었어. 도망친 그날, 유흥업소에서 강제로 서커스 공연을 하다가 도망쳤대. 더 놀라운 건 이렇게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래. 이런 얘길 들은 형사들은 일단 강제로 공연을 시켰다는 서커스단의 단장을 데려왔어. 맞아. 봉제공장으로 주희를 쫓아왔던 바로 그 남자야. 단장은 경찰서에 와서 자신이 주희의 할아버지라고 주장했어. 그리고 형사들 앞에 스윽 종이 두 장을 내미는데,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이었어. 서류상 주희와 남자는 부녀 관계로 되어있어. 근데 왜 손녀라고 했을까? 단장의 말에 따르면 주희는 딸이 낳은 아이라는 거야. 결혼도 안 한 딸이 낳은 자식이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딸로 호적에 올렸다는 거지. 단장은 주희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며, 툭하면 사고를 쳐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고 주장했어. 자기는 서커스단을 꾸려 전국을 돌아다니는 평범한 가장이라는 거야. 단장은 당시 유명 코미디언의 친형인 데다가 신원도 확실해. 아무리 경찰이라도 아이의 얘기만으로 신원이 분명한 사람을 오래 붙잡고 있긴 힘들어. 형사들이 난감해하며 고민에 빠진 그때, 형사들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포착됐어. 단장이 경찰서에 온 뒤로 주희가 너무 조용해진 거야. 경찰서를 뒤집어 놓던 주희가, 단장이 온 후로 기가 팍 죽어서 계속 눈치만 살펴. 그리고 단장과 함께 온 아내가 주희야, 이제 그만 집에 가야지? 라며 아이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순간, 형사들은 봤어. 주희의 눈에 서린 공포를. 아이가 말하자면 주눅이 들어서 있었던 거지. 주눅이 들어가지고.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서 불안하고 자유롭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로 아무튼 긴장된 그런 모습을 봤을 때. '정상적이지 않는 가족 관계구나'를 그때 짐작을 한 거죠.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형사들은 주희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어. 그리고 주희야, 아저씨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줄래? 무슨 일이 있었니?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어. 자, 이제부터 주희 기억의 문을 열어볼게. 1.5평 남짓한 골방. 주변을 둘러보면 조그만 책상 하나와 소파만 놓여 있어. 자물쇠로 굳게 잠긴 문 때문에 안에선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바깥엔 큰 개 세 마리가 지키고 서있어. 운 좋게 나가더라도 들키는 건 시간 문제야. 화장실도 못 가. 그냥 방 안에서 대충 봐야 해. 이곳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여긴 주희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야. 거기에 갔더니 일반 작은 단독주택인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놀랍게도 아이를 도망가지 못하게 그 그레이하운드 같은 맹견이 무려 세 마리나. 그 좁은 마당 같은 데서 막 우글우글하고 있었고.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에도 뭔가 이 시건 장치, 자물통 같은 걸 채워 가지고 형사들이 이제 문 따고 들어가서 주희 양이 살던 데를 한번 구경을 기자들한테 시켜줬는데. 여기는 그 어린애한테 침대다운, 내 어디서 잤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거기서 11살까지 거기서 생존을 했는지. 정말 기가 막힐 지경이었어요. -최일구 기자, 당시 사건 취재 주희는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당시 주희의 말을 토대로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봤어. 아마 아이돌 연습생도 이렇게 까진 안 할 거야. 주희는 하루 네 번,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갔어. 지하실이 연습실이었거든. 하루 열두 시간 서커스 훈련을 했어. 그리고 밤이 되면 유흥업소 밤무대에 섰어. 어른들은 주희의 무대에 열광했어. 어린아이가 늦은 밤까지 공연을 하는데 그걸 안쓰럽게 여기거나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어. 오히려 팁이 막 쏟아져. 주희가 왜 어른 같은 말투를 썼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있었는지 좀 알겠지? 그렇게 파김치가 돼서 집에 돌아오면? 다음 스케줄은 어김없이 지하 연습실 행이야. 오로지 연습만이 살 길이야. 겨우 잠드는 시간은 새벽 두 시. 근데 새벽 네 시면 다시 일어나야 해. 서커스 훈련을 해야 하니까. 힘든 일과 중에도 주희가 좋아하는 시간은 있었어. 바로 밥 먹는 시간. 주희는 늘 배가 고팠거든. 그런데 식사는 하루 두 끼에 반찬은 김치뿐이야. 밥도 적어. 일고여덟 숟갈 정도 뜨면 없대. 그래선지 주희는 또래보다 작았어. 키는 120cm, 몸무게는 20kg야. 당시 열한 살 아이 평균 키가 145cm, 몸무게가 38kg 정도 됐는데, 평균에 한참 못 미치지. 단장이 주희를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밥도 조금만 먹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 몸집이 작아야 어려운 묘기를 해낼 수 있으니까. 또 어린아이로 보일수록 관객들이 더 신기해하니까. 학교? 당연히 말도 안 돼. 주희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한글도 몰랐어. 주희에겐 오로지 서커스, 연습뿐이야. 주희는 이런 생활을 네 살 때부터 했어. 기저귀를 막 뗄 무렵부터 고된 훈련을 한 거야. 주희는 무려 7년 동안 이렇게 살았어. 꼭 저렇게까지 해가면서 공연을 하면서 돈벌이를 해야 되느냐. 안쓰러움이 많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 처참하더라고요 보니까. 불안, 초조해하는 그런 내색. 천진난만한 아이가 저렇게 자라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지옥의 서커스 주희가 탈출하면서 자물쇠로 꾹 잠겨있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났어. 지난 11일 새벽 야간업소를 탈출한 주희 양의 몸에는 아직도 멍자국이 군데군데 남아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내용 中 잠도 두 시간밖에 못 자고요. 밥도 두 끼 밖에 못 먹고. 맨날 하루에 한 번씩 때리고 그러니까 그냥 나왔어요. -심주희 양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익숙하게 묘기를 선보이는 주희. 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어. 주희는 늘 긴장 상태였어. 특히 공연할 땐 더 그랬어. 이런 이유 때문에. 단장은 실제로 주희 양을 서커스단의 원숭이 정도로 길러왔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길이 63㎝, 직경 2㎝짜리 나무몽둥이가 온몸 어디라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날아든다. 특히 전날 업소공연 중에 실수를 했을 경우의 몽둥이찜질은 끔찍할 정도이다. -당시 신문 기사 내용 중 심지어 이 몽둥이를 감싼 붕대는 주희가 직접 감은거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붕대를 감으면서 주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사를 받던 단장은 억울함을 호소했어.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 죄 밖에 없고 결백하대. 어찌나 억울했는지, 단장 부인은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도 했어. 방문에 자물쇠를 채운 건 이웃공장 남자애들의 흑심으로부터 주희를 지키기 위해서라 주장했어. 형사들은 계속해서 단장을 강하게 추궁했어. 형사: 지금 이 막대기가 그 현장에서 왔고 주희는 이걸로 맞았다는데 이 막대기가 당신이 때린 건 맞아? 단장: 그건 뭐, 그 막대기로 더러 뭐… 형사: 때린 사실은 있지? 이 막대기로? 단장: 뭐 잘하라고 해서 그런 적은 더러 있습니다.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죠.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어. 단장은 주희의 친할아버지가 아니야. 혈연관계가 아예 없어. 딸 얘긴 다 거짓말이었던 거지. 알고 봤더니 단장이 오갈 데 없는 주희를 데려다 서커스를 시킨 거야.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주희와 같은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거야. 서커스 소년 민우가 경찰서를 찾아왔어. 열일곱 살인 민우는 어린 시절 단장의 양자로 입적돼서 주희와 함께 서커스 훈련을 했대. 민우 역시 심한 매질과 욕설을 견디지 못하고 2년 전 도망 나온 상태였어. 어떤 여자도 연락을 해왔어. 자기 딸한테 서커스를 시킨 적이 있는데, 단장이 성폭행을 했다는 거야.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딸은 3년 동안 수십 번 넘게 끔찍한 일을 겪었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공연 가면 여관방을 하나 구하고 그 단원들이 자고 그러잖아. 그러면 쉬는 시간에 부른다는 거야 걔를. 수도 없이 당했다고. 말 안 들으면 욕하고 막 그냥 구박을 해서, 차라리 그냥 그러느니 가서 한 번 당하는 게 낫다… 그렇게 수도 없이 당했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김남구,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단장은 왕처럼 군림했어. 서커스의 인기가 떨어지고 수입이 줄자 자구책을 하나 떠올렸어. 어린아이들을 유흥업소에 출연시키는 거야. 그렇게 갈취한 출연료만 당시 액수로 5억 여 원. 아이들은 좁은 방에 가둬두고 자신은 번듯한 집에 살며 호의호식해 왔던 거야. 놀라운 건 이렇게 사는 걸 이웃들은 아무도 몰랐대. 만약 주희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이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거야. 뒤늦게야 진실은 밝혀졌어. 단장은 아동복지법 위반과 강간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됐어. 이제 주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부모를 찾아줘야겠지. ▲ 형사 아빠들 형사들도 주희의 친부모를 찾아주고 싶었지만,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어. 주희는 어릴 때라 자기 부모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해. 그래도 희망이 완전 없진 않아. 대대적으로 텔레비전에 보도됐으니 그걸 본 부모가 주희를 찾아올지도 몰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주희의 부모라고 하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아.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당장 급한 문제는 따로 있어. 당장 주희를 맡아줄 데가 없는 거야. 당시에는 아동보호시설이 부족했거든. 이 어린아이를 경찰서에 혼자 놔두고 퇴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감해하며 머리를 싸맨 형사들은 이런 결정을 내려.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주희를 집에서 재우기로 한 거야. 이제 오랫동안 아이를 데리고 있다 보니까. 잘못하면 아이를 또 잃어버려도 안 되고. 그러면 이제 어떻게 보호를 해야 되느냐. 자 오늘은 우리 김 형사, 내일은 뭐 우리 이 형사님, 내일은 뭐 또 무슨 형사님… 해가지고 집에 데려와서 잠도 재우고 먹이고 그렇게 했었어요 자유롭게. 예뻐요 아이가. 아주 귀엽고 상냥하면서 붙임성도 있으면서 아주 애가. 나는 내가 막 안아주고 집에 가서 데려다주고 집에 가서 잠재우고. 우리 아이들이랑 같이 놀고 그랬거든요.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렇게 주희의 이중생활이 시작돼. 낮엔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형사아저씨들의 집으로 가서 잤어. 주희는 이제 이 구역의 '핵인싸'야. 나쁜 놈들 때려잡는 강력계 형사들도 주희에겐 속수무책이야. 범인 잡으랴 애 보랴 업무는 두 배가 됐어. 그래도 주희를 보는 눈엔 꿀이 뚝뚝 떨어져. 주희는 최 형사를 '큰아빠'라고 불렀어. 임 형사는 '아빠'라고 불러. 편안하게 하니까 '아빠라고 불러도 돼?' 하면서 어리광도 부르고 여기다 볼에다 뽀뽀도 하면서 그냥 막. 아유 갖은 아양을 다 부리면서 뭐 그런 거죠. 자기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마음을 내색을 한 거지 말하자면.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시간이 지날수록, 주희는 형사 아빠들한테 더 마음을 열었어. 사실, 형사분들이 별로 잘해준 것도 없었대. 그냥 때 되면 밥 챙겨주고, 과자 사다 주고, 놀아달라고 하면 잠깐 놀아주고. 그게 다였대. 그런데, 주희에게는 처음이었던 거야. 자기를 때리지 않는 어른이. 형사님들은 '어서 빨리 진짜 집을 찾아줘야겠다' 생각했대. 언제까지나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주희의 친부모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아. 대신, 주희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의 입양 의사를 밝히는 연락들이 많았어. 그중 진지하게 온 입양 문의만 열 건 정도였대. 형사 아빠들 사이에서 입양 대책회의가 열렸어. 주희의 첫 번째 부모후보, 서울에 사는 가정주부 김 모 씨야. 뉴스를 보고 며칠 밤을 설쳤대.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했어. 인정 많은 김 씨라면 엄마의 마음으로 주희를 보듬어주지 않을까? 그리고,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 모 씨도 후보에 이름을 올렸어.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키우는 아빠래. 그는 주희를 자기 자식과 함께 키우고 싶어 했어. 또래 아이가 있다고 하니 주희가 외롭지 않을 것 같아. 근데, 아이가 없는 집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어. 물론 입양한 아이를 자기 자식과 똑같이 사랑으로 키우는 분들도 많지만, 지금 주희에겐 절대적인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그렇게 떠오른 세 번째 후보는 아이가 없는 최 씨 부부야. 최 씨 부부는 직접 경찰서까지 찾아오며 적극적인 입양 의사를 밝혔어. 어느 집으로 주희를 보내는 게 좋을까? 가장 중요한 건, 주희의 의견이야. 근데 주희는, 다 싫대. 이유를 물어봐도 말하지 않아. 계속 형사 아빠들만 찾아. 사실 형사들도 고민이 많았어. 마음에 걸리는 게 있거든. 아유, 참나! 아 되게 그러네 참! 아저씨는 나이가 어려. 할아버지 나이가 더 많아. (이거 염색인데?) 아니라니까!! 말투가 거칠고, 익숙하게 머리 손질과 화장을 하는 주희. '아이답다'는 표현과는 좀 거리가 멀어. 어릴 적부터 또래와 격리된 삶을 살았잖아. 게다가 밤무대 공연을 다니면서 어른들의 세계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어. 그래선지 행동이나 말투가 당돌해. 조금 안 좋게 말하면 버르장머리가 없어 보일 수 있어. 이런 주희가 일반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혹시나 파양이라도 당하면, 정말 큰일이지. 그래서 결국 형사 아빠들은 이곳에 주희를 보내기로 해. 때마침 명동 가톨릭 회관 쪽에서도 연락이 왔어. 신도 중에 좋은 입양자를 골라 입양을 시키고 싶다고 했어. 당장 일반 가정으로 입양을 보내는 것보단 수녀님들과 함께 지내면서 안정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임시 입양처가 정해지고, 헤어질 날이 하루, 이틀 다가왔어. 형사 아빠들은 돈을 모아 주희에게 새 원피스와 안경을 사줬어. 다행히 주희는 기분이 괜찮아 보였어. 주희는 편지도 썼어. 한글을 모르는 주희의 말을 막내 형사가 받아 적어준 거야. 여기 계신 아저씨들은 저의 친아빠 같으시며 제가 버릇없이 한 것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겠습니다. 주희 드림. 1991년 10월 22일, 경찰서 생활 11일째 되던 날. 이제 정말 형사들이 주희와 헤어질 시간이 왔어. 안 갈래, 안 갈 거야. 엄마나 찾아줘, 엄마만 찾아줘. 아빠가 엄마 찾아줘 빨리. 찾아준다고 약속했잖아. 주희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형사 아빠들한테 안 가겠다고 막 떼를 쓰면서 울어. 정들었던 아이를 데리고 간다니까 많이 아무튼… 저도 눈물 나고 좀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보니까. 정상적으로 편안하니 잘 학교도 다니면서 성장을 제대로 해야 될 텐데… 그런 염려 등 여러 가지로 많이 아무튼 맘이 안 좋더라고.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형사 아빠들의 마음도 찢어져. 주희가 진짜 바라는 게 뭔지 알고 있었거든. 주희는 심리 상담에서 이런 말을 했어. 의사: 너한테 제일 큰 소원이 뭐야? 그것만 한번 대답해 봐. 주희: 엄마요. 찾고 싶다고요. 의사: 엄마가 어떠신 분인 것 같아? 주희: 내가 예쁘니까 엄마도 예쁘죠. 거짓말 안 시킬 것 같아요. 몰라요~ 자꾸 왜 물어봐요. 엄마도 없는데…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주희는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그리웠나 봐. 하지만 친부모를 찾지 못했잖아. 주희를 위해서라도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해. 그렇게 주희는 천주교 자매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보내졌어. 거기서 한글 공부도 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어. 이따금 형사 아빠들을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긴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야. 차근차근 좋은 가정에 입양될 준비를 해 나갔어. ▲ 폐쇄병동 환자의 비밀 그로부터 6년이 흐른 1997년, 경기도 오산. 박경신 원장은 요즘 폐쇄병동에 있는 어떤 환자 때문에 머리가 아파. 벌써 2년째 이 정신병원을 떠나지 않는 환자가 있었거든. 이 환자가 처음 병원에 왔을 당시의 얘길 좀 들어볼게. 치료하기 힘든 환자였어요 협조가 안 되니까. 예를 들어서 식사도 잘 못하는데 수액을 놓아주면 다 빼버린다든가. 모든 치료를 거부를 한다든가. 약 투여도 거부한다든가.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았었어요. 이 친구의 가장 특징적인 게 사람을 믿지를 않았었어요. -박경신 박사, 당시 오산 정신병원 원장 이 환자에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박 원장이 특히 이 환자에게 마음이 쓰였던 이유가 있어. 보호자도 없이 오갈 데 없는 신세였거든. 오랜 입원기간 동안 면회 오는 사람도 없어. 박 원장은 계속해서 환자의 마음을 두드렸대. 얼마나 두드렸을까. 드디어 이 환자가 입을 떼. 제가 어릴 적에 서커스를 탈출한 적이 있어요. 그래, 이 환자의 정체는 주희야. 이제 열여덟 살이 된 주희는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었어. 좋은 가정에 입양돼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주희는 천주교 단체에 보내졌잖아. 사실 처음부터 잘 적응하지 못했대. 당시 주희의 건강진단 보고서에는 심한 학대로 인해 공격적이고 대인기피증 불신증이 심해 시급한 입양이 요구된다 라는 글이 적혀 있어. 주희는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렸어. 눈을 뜨면 다시 자신이 학대받았던 곳으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나 봐. 겨우 잠에 들면 매 맞는 꿈을 꾸곤 했대. 이건 주희가 쓴 일기야. 저는 여기 있기 싫고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겠습니다. 또는 고아원으로 보내주십시오. 1994년 3월 13일 심주희. 당시 주희의 나이는 열네 살. 한참 사춘기를 겪을 예민한 시기지. 주희는 유난히 집을 답답해했어. 그래서 툭하면 집을 나가곤 했대. 겨우 찾아오면 다시 나가고, 찾아오면 또 나가고. 그렇게 방황의 시간은 계속 됐어. 그러다 주희가 들어간 곳이 있어. 경기여자기술학원. 가출소녀, 고아 등을 데려와서 직업훈련을 시켜주는 시설이야. 집 밖을 헤매던 주희도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입소했어. 스스로 정한 첫 번째 집이었어. 거기서 또래들과 같이 꿈을 키워 나갔어. 그러다 그 사건이 벌어져.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 '꼬꼬무'에서도 다뤘던 사건이야. 기숙사 건물에서 불이 난 것은 오늘 새벽 2시쯤이었습니다. 소방관들이 바깥 쇠창살을 뜯어내고 화장실 안으로 진입했을 때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내용 中 1995년 8월 21일 새벽. 학원의 운영방침이 강압적이라고 느낀 일부 원생들이 탈출을 위해 불을 질렀어. 불을 지르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138명 원생 중 마흔 명이 숨지고 스무 명이 중상을 입은 대형화재였어. 처음 불길이 시작된 2층에서 특히 사상자가 많이 나왔는데, 주희도 바로 여기, 2층에 있었어. 불이 났을 당시 주희는 옷장 안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어. 친구들의 몸이 새까맣게 불타가는 사이 주희는 옷장 안에서 의식을 잃어갔어. 밤에요. 이제 친구가요. 애들이 그런다고 그래서 장난을 잘하니까요. 그래서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잤는데 눈떠보니까 병원이었어요. -심주희, 1997년 인터뷰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 중환자실이었어. 열흘 만에 깨어났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친구들도 꿈도 모두 잃어버렸어. 내과적인 치료를 다 한 다음에 정신과로 치료를 의뢰했던 케이스예요. 이 친구는 뭐 그 사람들만 세상을 다 원망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는 왜 이렇게 기구한가' 하면서 세상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경신 원장, 당시 심주희 주치의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상처는 조금씩 회복됐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어. 그래서 폐쇄병동까지 오게 된 거야. 주희는 매일 밤이면 불이 나던 그날 밤으로 되돌아가. 살려달라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아. 악몽은 2년째 주희를 괴롭혔어. ▲ 엄마를 찾고 싶어요 그러던 어느 날, 주희가 마음 깊숙한 곳에 품고 있던 얘길 꺼내. 엄마를 찾고 싶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커졌어. 당시 주희의 마음을 들어볼게. 보고만 싶어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도 싶고. 일단은 나 낳은 엄마잖아요. 그래도 뭐 버렸다고 해도요. 원망은 되지만 또 일단은 난 우리 엄마잖아. 친엄마인데 원망해 봤자… 또 원망한 적도 없고요. 그냥 만나면… 그냥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아요. -심주희, 1997년 당시 인터뷰 정신병원에서 실시한 연극 심리 치료에서 주희는 엄마 역할을 한 상대한테 안 미워했어요 라며 눈물을 흘렸어. 치료가 끝나고도 한참을 울었어. 주희는 부모가 없는 게 '나를 지지해 주는 뿌리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대. 서커스 소녀 심주희는 아무것도 없는 빈 토양에 혼자 뿌리를 내리고 힘겹게 버텨왔던 거야. 그런데, 이런 간절한 마음을 누군가 듣기라도 한 걸까.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어. 방송국에서 주희를 돕겠다고 나선 거야. 그리고, 이 분도 힘을 보태기로 했어. 주희가 큰아빠라고 불렀던 최 형사. 주희의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했던 최 형사도 힘을 보태기로 했어. 앞서 얘기했지만 주희는 어린 시절 기억이 없어. 유일한 기억은 할머니 친구 집으로 보내졌다는 거야. 그러면 그 '할머니의 친구'를 찾아야지. 그리고 그 사람을 알 만한 사람이 있어. 바로, 서커스단 단장 부부. 처음 걔를 받고 안 받고도 없고요. 모르셔서 그러는데, 저희는 걔를 어디서 받고 누구한테 인수받고 그런 것도 없어요. 걔가 원래 곡마단으로 흘러들어온 애죠. 걔를 데리고 다니는 어느 곡예사가 하나 있었답니다. 그런데 곡예사가 걔를 놓고 어디로 가버렸어요. 곡예사들이요. 그렇게 해서 집 양반이 걔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었어요. 데리고 들어오고 나니 걔가 아무것도 모르죠. 어디 걔가 뭐가 사는 것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고 지 이름 성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더라고요. 얘가요. 그래서 그 주희라는 이름은 하도 얘가 하도 천방지축이라 내가 '주의, 주의해라' 한 것이 그게 이름이 돼버린 거예요. -단장 부인, 1997년 당시 전화 인터뷰 '심주희'는 주희의 진짜 이름이 아냐. 서커스단 단장은 떠돌이 곡예사로부터 주희를 데려온 거야. 이제 그 곡예사를 찾아야지. 수소문 끝에 바로 그 곡예사를 찾았어. 아~ 그 애요? 저희 어머님 아는 분 통해서 데려왔는데.. 강원도 어디였다더라...? 여기서 또 단서가 추가 돼. 주희가 기억하는 할머니 친구는 바로 이 곡예사의 어머니야. 그리고 이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소득이 있었어. '심주희' 말고, 주희의 진짜 이름을 찾은 거야. 지현주. 이게 주희의 진짜 이름이야. 어질 현(賢) 자에, 구슬 주(珠) 자를 써. '주의해라' 해서 아무렇게나 막 지은 이름이 아니라 정성껏 지은 이름인 게 느껴져. 진짜 이름을 찾았으니깐 이제부턴 현주라고 할게. 현주는 곧바로 곡예사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어. 그녀의 엄마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단서야. 곡예사의 어머니는 현주를 단번에 알아봤어. 자기 할머니가 나한테 맡겼어요. 어디 좋은 데 있으면 자기 몸이 불안하고 어디 벌어먹을 수가 없다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들이 서커스에 있으니까 내가 '서커스에 보내자' 내가 그랬지. -곡예사의 어머니 그 할머니도 여기서 일을 하기 때문에 어딘가에 방을 사글셋방을 얻어 놓고 있다 그랬거든요. 그러는데 뭐 얘 놔두고서는 그 길로 행방도 묘하고 아는 사람 편으로 하니까 돌아가셨다 그러더라고. 오래전에… -곡예사의 누나 곡예사의 어머니가 할머니의 행방을 알 거라 믿었는데, 아마 돌아가신 거 같대.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어. 이대로 엄마는 못 찾는 걸까. ▲ 드디어 만난 엄마 현주는 계속 방송에 나가 엄마를 찾았어. 보고 싶고요. 그리고 만약에 텔레비전 보면 연락 달라고요. 애타게 엄마를 찾는 열여덟 살 소녀. 현주의 사연은 전국에 알려졌어. 근데 엄마는 감감무소식이야. 방송국에 제보를 내고, 때론 직접 찾아다니며 그렇게 계속 엄마를 찾았어.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경찰서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와. 드디어 현주의 엄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증거라며 사진 두 장을 가져왔어. 또랑또랑한 눈매가 어릴 때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해. 최 형사는 현주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어. 소식을 들은 현주는 바로 경찰서로 달려왔어. 꿈에서만 그리던 엄마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된 거야. 1998년 5월. 극적인 모녀 상봉이 이루어졌어. 엄마는 현주를 만나자마자 껴안고 오열했어. 만약에 얘가 아니면 나는 여기서 그냥 쓰러지는데 '아니면 어떡하나'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오는데 보니까 그냥 어렸던 모습 그대로니까. 그냥 그때서부터 막 이렇게 정신이 막 저거 되고 막 이렇게 없던 힘도 솟는 것 같고… -현주 엄마 그렇게 어렵게 찾았는데 안 됐는데 막상 갑자기 딱 찾으니까 좀 그렇죠 안 믿겨질 때도 있고… -현주 얼굴도 모른 채 그리워만 했던 엄마를 드디어 만났는데, 막상 엄마를 찾으니까 얼떨떨해. 알고 보니 현주에겐 오빠도 둘 있었어. 그럼 이들은 왜 헤어지게 된 걸까? 자, 이제부터 현주 엄마, 미숙 씨의 얘길 들려줄게. 17년 전, 미숙 씨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어.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도망쳤는데, 남편이 칼을 들고 쫓아왔어. 그날 미숙 씨는 그 칼에 찔리고 말았대. 남편은 구속됐고, 미숙 씨는 병원신세를 져야 했어. 이후 친정 엄마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돈을 벌러 외지로 나갔어. 얼마 후, 남편이 출소했는데, 친정 언니가 '아이는 아빠 밑에서 커야 한다'며 삼 남매를 아빠에게 돌려보냈어. 그런데, 1년 만에 애들 아빠가 사고로 사망한 거야. 뒤늦게 소식을 듣게 된 미숙 씨가 아이들을 찾았지만, 그땐 이미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남의 집에 보내버린 후였대. 엄마는 너무 괴로워서, 극단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었대.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대. '어쩌면, 다른 집에서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이 부잣집으로 입양 간 걸로 알고 있었거든. 현실은 곡예사와 떠돌고 있던 건데. 그 사실을 모르는 미숙 씨는 꿋꿋하게 살아갔어. 먼 훗날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꿈꾸며. 그리고 먼 세월을 돌아 현주와 재회한 거야. 이제 현주에겐 새 가족이 생겼어. 엄마 말고도 새아빠와 오빠, 그리고 동생들까지. 굉장히 많은 가족들이 한꺼번에 생겼어. 그리고 1년 뒤, 또 기쁜 소식이 들려왔어. 현주가 결혼을 한 거야. 이제 현주는 행복하게 살았을까.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야. 상상도 못 할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최악의 빌런'이 등장해. 바로, 현주의 엄마야. ▲ 알고 보니 '최악의 빌런' 엄마 현주가 엄마를 만나고 13년 후인 2011년, 현주는 TV에 또 출연해. 그것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얼굴을 가린 채로.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많이 맞다 보니까 맞는 게 이골이 나서 그건 아무렇지가 않았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 그래도 그렇게 떨어졌다가 지금 이렇게 만났는데… 나는 이게 십몇 년이 지났잖아요.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것보다 더 길고 더 힘들고 더 아팠던 것 같아요. 차라리 서커스단에 있었을 때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해요) -2011년 당시 인터뷰 열한 살 때 극적으로 서커스단을 탈출해서 우여곡절 끝에 엄마를 만났잖아. 전 국민이 지켜본 그 감동적인 재회. 그런데, 방송 카메라가 떠나자 갑자기 엄마가 돌변해. 틈만 나면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흉기로 다치게 한 적도 있대. 결국, 엄마를 만난 지 두 달 만에 현주는 또다시 집을 나왔어. 하지만 도망가면 쫓아오고, 도망가면 또 쫓아오고.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의 반복이었어. 현주가 결혼을 했다고 했잖아? 그렇게 어린 신부가 된 것 역시 엄마의 강요로 이뤄진 일이었어. 그토록 찾고 싶었다던 딸을, 왜 그렇게 빨리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 했을까. 현주는 그 이유를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 도중 듣게 됐어. 현주는 어릴 적 돌봐주던 천주교 측 분들을 찾아갔어. 주희야. 너 그때 당시에 있었던 재산은 다 갖고 있니? 돈은? 우리 집에서 나갈 때 돈이 얼마 있었거든. 교회에서도 줬고 계산은 안 했지만. 한 3~4천만 원 있었는데. (화재 보상금으로) 돈이 나왔대. 5천만 원인가 4천만 원인가 나왔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얘 있는데 이야기를 하려니까 (생모가) 못하게 하더라고. 이렇게 쉿 (하면서) 그 아줌마가 이야기하지 말래. 주희가 모른다고. 그래서 내가 가고 나서 '이상하다. 참' (생각했어) 천주교 측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진실을 알게 된 현주. 그분들과 헤어지자마자 현주는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어. 알고 봤더니 심주희였던 시절 받았던 후원금과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모두 엄마란 사람이 가로챘던 거야. 그 엄마가 현주를 찾은 건, 결국 돈 때문이었을까. 현주 엄마는 2007년 세상을 떠났어. 이제 엄마라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얼마 후 법원에서 서류 한 장이 날아왔어. 죽은 엄마 대신 빚을 갚으라는 내용이야. 카드빚만 수천만 원이었어. 현주는 또 다시 벼랑 끝에 내몰렸어.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커스 소녀 이야기는 이미 해피엔딩을 맞이했거든. 이미 엄마 찾았다고 떠들썩하게 다 나왔는데. 내가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 순간에는 내가 누구한테 전화할 데도 없고… 하고 싶은 거요? 없어요. 난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았어요. 진짜 이것저것. 공부해 가지고 간호사라도 되어볼까. 하고 싶은 건 되게 많았는데 그런 꿈들이 한순간에 그냥 한순간에 그냥 없어졌어요. 한순간에. -지현주, 2011년 당시 인터뷰 ▲ 현주의 새 이름, 그리고 33년 만의 만남 차라리 서커스단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는 현주. '그알'에 출연하고 13년이 흘렀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지만 형사 아빠들도, 천주교 관계자들도 모두 현주와 연락이 끊겼대. 근데 '꼬꼬무'가 힘들게 찾았어. 알고 보니, 현주가 이름을 또 바꿨더라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걸까. 묻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아. 마흔넷이 된 서커스 소녀를 만나볼게. 안녕하세요? 저는 서커스 소녀 심주희입니다. (이름을 바꾸게 된 건) 그때 제가 좀 힘든 상황도 있었고, 그리고 너무 안 풀리고 너무 힘들다 보니까, 개명이라도 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 솔직히 '꼬꼬무' 보면서 있잖아요. 이렇게 나오는 거 보고 전에 그 생각은 했었어요. '나도 저 방송은 한 번 나오고 싶다' 했는데 연락이 온 거예요. 그리고 진짜 거짓말 안 하고 그 경기여자기술학원 나올 때 있잖아요. 그 얘기했어요. 저 방송에서 나한테 연락 오겠다… 이름 개명하고 나서도 그러고 나서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니. 지금은 잘 살고 있죠. 심주희, 지현주, 그리고 세 번째 이름을 갖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흘렀어. 이번엔 스스로 지은 자신의 이름이야. 그 이름은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지금은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살고 있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었대. 외롭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었대.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쁜 소식, 지금은 혼자가 아니야. 새로 가정도 꾸렸대.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남편 분하고 힘을 합쳐서 잘 극복했대. 저도 사실 처음에 만났을 때, 사실 저도 그때 당시 마음이 안 좋은 상태였고. 계속 살아야 할까 용기가 없는 상태였거든요. 이 사람 만나고 나서, '내 삶은 힘든 삶도 아니구나' 그런 용기를 얻었었고요. 그러다 보니, 누가 힘든 게 있으면 서로 보듬어주며, 그렇게 생활하고 있죠. -남편 첫 만남 때, 제작진이 이런 질문을 했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라고. 그녀의 답은, 형사 아빠들과 함께 했던 그 짧은 순간이야.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걸로 꼽는다면 그때. 그 어렸을 때 조금? (형사님들이) 맨날 그냥 이렇게 업고 다니고. 어디 가서 사고 치고 있으면 가서 이렇게 데리고 오고. 일찍 내려가 가지고 어디 가서 막 저기 하겠으면 와서 손을 끌고 가고. 제가 자다가 이게 깜짝깜짝 놀란대요. 그러면 옆에서 형사님들이 그걸 보고 이렇게 토닥토닥해주면서 나중에는 이제 본인들이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야. 이제 걱정이 돼서 얘기를 하시고. 그런 거 보면 나를 진짜 좀 진심으로 저기를 해줬구나. 그냥 고맙죠. 감사하죠. 진짜 감사하죠. 왜냐면 어떻게 보면, 쉽게 말하면 진흙탕에 있는 나를 이렇게 꺼내준 거잖아요. 꺼내서 예쁘게 이렇게 만들어준 거니까 고맙죠. 되게 감사해요. 고작 11일. 경찰서에서 지냈던 시간이야. 당시 형사 아빠들하고 지냈던 시간은 살면서 큰 힘이 됐대. 뒤에는 형사 아빠들이 든든하게 지키고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대. 그 형사 아빠들 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 무려 33년이 흘렀어. 너무 보고 싶었지만, 그동안 기회가 없었대. 그 기회, '꼬꼬무'가 만들어줬어. 서커스 소녀와 형사 아빠들의 33년 만의 만남이 성사됐어. 아이고 내 새끼 반가워라. 전 형사님들 만나면 그 말씀은 해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하다고… 서커스 소녀와 형사 아빠들은 앞으로 계속 연락하며 삶을 공유하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어릴 적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 물었어. 어릴 적 심주희한테 그 말은 해주고 싶어요. 대견해요. 저한테 박수 많이 쳐주고 싶어요. 되게 힘들었잖아요. 진짜 힘들었는데, 나쁜 쪽으로 빠질 수도 있는데 안 빠지고. 그런 걸 다 이겨내고 잘 살았잖아요.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유흥업소서 서커스 공연 하다가 도망친 소녀, 어쩌다 정신병원까지…'꼬꼬무' 조명
등록일2024.02.15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서커스단에서 탈출한 소녀가 진짜 자신의 이름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소개한다. 15일 방송될 '꼬꼬무'는 '서커스 소녀,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편이다. 때는 1991년, 늦은 밤 서울 북창동의 한 봉제공장. 짙은 화장에 수상한 차림새를 한 여자아이가 다짜고짜 자신을 숨겨 달라고 부탁한다. 곧이어 한 남자가 아이를 찾으러 오고, 봉제공장 직원들은 겁에 질린 아이를 숨겨준다. 그런데 남자가 떠난 뒤, 아이가 보인 로봇 같은 행동에 직원들은 당황하게 된다. 다음 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남대문 경찰서 형사들이 아이를 경찰서로 데려온다. 아이의 태도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묻는 말에 대답 대신 짜증만 내던 아이는 형사들의 노력에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아이의 이름은 심주희였다. 열 한 살 주희는 시내의 유흥업소에서 강제로 서커스 공연을 하다가 도망쳤다고 주장한다. 곧장 경찰서로 소환된 단장은 자신이 주희의 할아버지라면서 주희를 다시 데려가려 한다. 그런데 단장과 단장 아내를 보는 주희의 눈에서 공포가 느껴진다. 1.5평 남짓의 골방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고 바깥엔 맹견 세 마리가 지키고 있다. 놀랍게도 여긴 주희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주희가 지냈던 곳은 당시 취재기자도 경악했을 만한 처참한 환경이었다. 하루 열두 시간 서커스 훈련 후 밤이 되면 유흥업소 밤무대에 섰다. 식사는 하루 두 끼,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단 두 시간이다. 이렇게 가혹한 생활을 얼마나 해왔던 것인지 주희가 탈출하고 나서야 서커스 단장의 만행은 세상에 드러난다. 이후 주희는 열흘 남짓의 경찰서 생활을 정리하고, 정든 형사들과 눈물의 이별을 하게 된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아이는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을까. 그로부터 6년 뒤, 어느 정신병원 폐쇄병동. 이곳엔 벌써 2년째 병원을 떠나지 않는 환자가 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주희였다. 열 일곱 살이 된 주희는 어쩌다 마음의 병을 얻고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주희가 마음 한 곳에 품고 있던 얘기를 꺼낸다. 엄마를 찾고 싶다 는 것이었다.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와 방송국이 주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 과정에서 진짜 이름을 찾게 된 주희의 사연은 전국에 퍼져나갔다. 과연 서커스 소녀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홍지윤, 배우 홍종현, 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미연이 나선다.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는 홍지윤이 함께했다. 평소 '꼬꼬무' 애청자임을 밝힌 홍지윤은 첫 출연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공감 능력과 추리력으로 '프로 리스너'의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장현성이 질문하는 족족 정답 행진을 이어가며 '행사 여왕'에서 '정답 여왕'으로 등극했다. 홍종현은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자리했다. '꼬꼬무'에 첫 방문한 홍종현은 군대에서도 '꼬꼬무'를 챙겨봤을 정도로 애청자임을 어필했다. 또한, 이야기를 듣는 내내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와 충격적인 장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는 '꼬꼬무' 최다 출연자 자리를 넘보는 (여자)아이들 미연이 등장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야기 친구로 함께하며 3년 연속 출연의 영애를 안게 된 미연은 무려 네 번이나 호흡을 맞춘 장성규와 남다른 케미를 자랑했다. 이야기를 듣던 미연은 예상치 못한 만남에 눈물을 흘렸다. 서커스를 탈출한 소녀의 파란만장 인생사를 이야기할 '꼬꼬무'의 '서커스 소녀?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편은 15일 목요일 밤 10시 20분에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사라진 약혼녀, 이름만 4개에 존속살해 피의자…10년 넘게 지명수배 중
등록일2023.11.10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9일 방송된 '완벽한 타인'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댄스크루 라치카의 리더 가비, 배우 김민재, 박효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라진 예비 신부 때는 2011년 8월, 인천의 한 나이트클럽.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 30대 회사원 수찬(가명) 씨가 쭈뼛쭈뼛 서있어. 나이트클럽에 처음 와 봤는지, 영 어색해. 그때, 수찬 씨 테이블로 두 여성이 다가와. 시큰둥했던 수찬 씨도 점점 흥이 올라. 둘 중 한 여성한테 마음이 갔거든. 수찬 씨는 그녀의 참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어. 그리고 대화도 너무 잘 통해. 술도 못 마신다고, 억지로 끌려왔다고 하더라고요. L* 다닌다고, 업체들 매장 관리하는 거 사무실에서. 그런 일을 한다고 처음에 소개했죠. 그때 당시에는 술을 별로 안 먹고 자리에 좀 있다가 일어서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김수찬(가명), 대역 재연 그녀의 얼굴을 보여줄게. 이름은 김세아(가명), 34살 직장인이야. 수찬 씨는 세아 씨의 연락처를 용기를 내서 물었고, 세아 씨는 연락처를 줬어.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됐어. 세아 씨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었어. 취미로 봉사 활동을 다닐 만큼 마음씨가 고왔거든. 그리고 집안도 좋았어. 세아 씨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는데, 마치 주말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대. 화목하고 다복한 집안 그 자체야. 인사를 다녀온 수찬 씨는 결심했어.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만나지 6개월 만의 일이었어. 아무리 사이좋은 커플이라도, 결혼 준비를 할 땐 싸운다고 하잖아? 수찬 씨 커플도 그랬어. 특히 신혼집 때문에 싸웠어. 세아 씨가 유독 고집한 아파트가 있었는데, 두 사람 형편에는 좀 과했거든. 세아 씨는 계속 수찬 씨를 설득했고, 심지어 카드 대출까지 받자고 했어. 이 일로 두 사람은 크게 싸웠지만, 결국 수찬 씨는 신혼집을 위해 어렵게 돈을 마련했어. 그런데 수찬 씨가 송금을 하려는 그 찰나, 세아 씨가 특이한 요구를 하나 했어. 신혼집 대금을 친구 계좌로 보내달라는 거야. 본인 통장은 아버지가 다 관리를 해서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친구라는 '박은지' 계좌로 돈을 보내달래. 수찬 씨는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예비 신부를 믿으니까, 친구 박은지의 계좌로 돈을 입금했어. 금액은 무려 1억 5천만 원. 그런데 얼마 후, 세아 씨의 휴대폰이 꺼져있어.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안 돼. 수찬 씨는 뒤통수가 서늘했어. 그래서 한 가지를 확인해 보기로 해. 바로, 세아 씨가 샀다는 아파트의 등기부등본. 그런데 거기엔 '김세아'라는 소유주는 없었어. 설마 하는 마음에 아버지 소유라던 본가도 확인했는데, 다른 사람의 집이야. 완전 멘붕이야. 예비신부와 수찬 씨의 전재산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거야. 수찬 씨는 경찰에 신고부터 했어. 이 사건을 맡은 곳은 일산 경찰서. 수사팀은 곧바로 세아 씨를 찾기 시작했고, 곧 세아 씨를 찾았어. 경찰의 연락을 받은 수찬 씨는 한달음에 경찰서로 달려갔어. 그런데 눈앞에 난생처음 보는 여자가 '김세아'라면서 조사를 받고 있었어. 신분증을 확인해 보니, 이름이 '김세아'가 맞아. 심지어 생년월일도 똑같아. 하지만 수찬 씨가 만나온 그 사람이 아니야. 이름, 나이, 그리고 집 주소까지 모든 게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그때 당시에 처음에는 멘붕이었지 뭐. 일단은 사람이 돈도 문제지만 저는 진심으로 그 사람을 대했는데, 모든 한마디 한마디가 다 거짓이었다는 게 6개월 동안. 만나거나 커피 마시거나 밥 먹었다든가 이런 것들이 하나도 진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너무 진짜… 이렇게 사람이 바보가 될 수 있구나. -김수찬(가명), 대역 재연 그렇게 수찬 씨가 상심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머릿속에 단서 하나가 번뜩 떠올랐어. 바로, 신혼집 대금을 보내달라고 했던 친구 '박은지' 계좌의 입금내역. 혹시 그녀의 진짜 이름이 박은지인 걸 아닐까? ▲ 세 개의 '가짜' 이름 일산서 형사들은 '박은지'를 추적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아주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어. 박은지를 찾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거야. 바로 30대 남성 안준우(가명) 씨. 준우 씨는 작년 여름 나이트클럽에서 박은지를 처음 만났대. 수찬 씨가 김세아를 만났던 시기, 방식, 모든 게 비슷해. 형사는 준우 씨에게 김세아의 사진을 보여줬어. 그랬더니, 맞대. 이 여자가 박은지래. 그런데 준우 씨한테는, 결혼해서 아들이 하나 있는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했대. 그렇게 준우 씨는 나이트클럽에서 박은지를 처음 본 이후 몇 번 만났는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요구를 하더래. 얼굴은 두세 번 봤는데, 차 한잔 마시자고 해서 만났죠. 이것저것 힘드니까, 뭐 가정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안 빌려줬죠. 제가 회사 비밀을 유출한다면서 제 회사에 전화해서 뭐 그런 식으로 회사 비밀을 얘기해 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안준우(가명), 당시 통화 박은지가 준우 씨를 협박했던 거야. 심지어 준우 씨의 회사까지 연락해서, 직원 비위를 제보할 테니 500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대. 이 일로 준우 씨는 직장까지 잃을 뻔했어. 그래서 준우 씨가 박은지를 신고한 거야. 수찬 씨의 사라진 예비 신부 김세아, 그리고 준우 씨를 협박한 박은지. 모두 동일인물이야. 며칠이 지나, 수찬 씨가 다시 일산 경찰서를 찾아갔어. 박은지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거든. 그런데 경찰이 말하길, 박은지의 주소지를 추적해 찾아갔더니 비슷한 나이의 여성이 있긴 한데, 사진 속 얼굴과는 달랐대. 하지만 이름이 똑같아서, 경찰은 긴가민가하며 일단 경찰서로 데려왔어. 수찬 씨가 확인해보니, 그 여성은 자신이 만났던 예비신부와 얼굴이 완전히 달랐어.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야. 결국, '박은지'라는 이름도 가짜였던 거야. 경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짜 박은지 씨한테 사진을 보여주며 이 여자를 아냐고 물었어. 은지 씨는 사진을 보더니,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거야. 은지 씨가 기억하는 그녀의 이름은 '최수진'. 일하던 가게에 새로 온 종업원이었대. 자기는 애가 두 명 있고 딸 하나 아들 하나 있고, 자기가 큰 화장품 사업을 했대요. 그걸 망했대요. 그래서 시댁에서 쫓겨났다고 하더라고요. -박은지(가명), 대역 재연 은지 씨는 최수진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며 살뜰히 챙겼어. 심지어, 갈 곳 없는 수진 씨를 자기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줬대. 그렇게 한 달 정도 같이 지내다가 나갔는데, 그 후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해. 자신의 신분이 이곳저곳에서 도용되고 있던 거야. 특히 수상한 계좌 거래 내역이 포착됐어. 가는 은행마다 자꾸 제 통장이 만들어져 있었죠. 남자가 한 두 명이 아니야, 입출금이 다 남자 이름이에요. 통장 내역을 보면 알잖아요. 200만 원을 빌려요. 한 3일 뒤에 갚아요. 또 빌려요, 또 갚아요. 이걸 일주일 내내 하다가 한방에 확 더 큰 금액을 빌리는 거죠. -박은지(가명) 그 수상한 거래 내역에, 수찬 씨의 이름도 있었어. 신혼집 대금을 박은지 계좌로 달라고 했잖아. 바로 이 계좌였던 거야. 최수진이 은지 씨한테, 자신이 '나쁜 엄마'라고 말한 적이 있대. 시댁에서 쫓겨나 애들 얼굴도 못 보고 있다며, 학원비라도 보내주고 싶은데 자신이 신용불량자라 통장도 못 만든다는 거야. 이 이야기를 들은 은지 씨는, 자기 명의로 휴대폰도 개통해주고, 은행 통장도 만들어줬어. 최수진을 믿고 호의를 베푼 건데, 그 호의를 이용해서 은지 씨의 명의를 도용하고 다닌 거지. 경찰이 발견한 그녀의 이름만 3개야. 수찬 씨의 예비 신부 '김세아', 준우 씨를 협박한 '박은지', 은지 씨의 명의를 도용한 '최수진'. 이 세 여자가 모두 한 사람이라는 거잖아. 그럼 이제 누구를 찾아야 할까? 바로 최수진. 형사들은 은지 씨가 알려준 정보대로, 77년생 최수진을 찾기 시작했어. 그런데 못 찾았어. 비슷한 나이대의 최수진을 전부 조사했는데, 사진 속 여성은 어디에도 없어. 그런데, 의외의 장소에서 실마리가 잡혔어. ▲ 그녀의 진짜 정체 어느 날, 한 여성이 급히 구조요청을 해. 경찰이 급히 출동해 봤더니, 신고를 한 여성의 온몸엔 멍이 가득하고 옷이 막 여기저기 찢겨있어. 일단 여자를 진정시키고, 경찰서로 향했어. 2012년 8월, 경기도 동두천 경찰서야. 그때 당시 내연남한테 폭행을 당해서 안면부 쪽에 멍이 좀 많이 들어있었고 머리 부분도 헝클어진 상태로 울고 있었던 상황으로 기억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수 회에 걸쳐서 피해가 발생됐다고 진술했었습니다. -이영진, 신고 당시 동두천 경찰서 근무 경찰서에 가면, 신원 조회부터 하잖아. 신분증을 달라고 했더니, 그 폭행 피해 여성이 신분증을 안 가져왔다며, 갑자기 신고를 취소하겠대. 그래도 신원을 확인해야 하니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라도 불러달라 했어. 그랬더니 그 여자, 자신의 이름이 '박은지'라고 말했어. 그래 맞아. 이 여자가 바로, '김세아', '박은지', '최수진'으로 신분을 숨겨온, 그 사람이야. 수상함을 느낀 경찰은 바로 이 사람의 지문 조회에 들어갔어. 그리고 드디어, 이 여자의 진짜 이름을 알아냈어. 바로, 장서희(가명). 나이는 34살이야.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해 어린 딸과 아들을 둔 두 아이의 엄마야. 장서희는 은지 씨 집에서 나온 뒤, 내연남 고 씨를 만났어. 그러다 동거를 하게 됐는데, 장서희가 고 씨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해. 이 일로 두 사람의 싸움이 격해졌고, 폭행으로까지 이어진 거야. 참다못한 장서희가 신고를 했는데, 자기가 덜미를 잡혀버린 거야. 장서희의 사기행각은 생각보다 더 치밀했어. 이 신분증 속 사진의 얼굴은 장서희. 그런데 이름은 박은지야. 은지 씨 이름으로, 운전면허증까지 발급받은 거야. 한마디로 위조 신분증이야. 장서희는 그야말로 완벽한 타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어. 그러면 대체 왜, 이러고 산 걸까? 장서희에게 진짜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있었던 걸까? 결정적인 단서는 신고 여성이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했을 때 눈동자가 흐려지고 진술의 신빙성에 좀 의심이 가서 지문 조회를 했던 거죠. 깜짝 놀랐죠. 존속살해 피의자로 지명수배 돼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일반적으로 살인 피의자 지명 수배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흔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도 존속 살해 피의자 A수배로 밝혀지기는 거의 힘든 부분이기 때문에 깜짝 놀랐죠. -이영진, 신고 당시 동두천 경찰서 근무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었어. 장서희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진짜 정체는, 무려 1년째 도주 중인 지명수배자였어. 그것도 존속 살해 혐의로. 동두천서 형사들은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어. 장서희를 애타게 찾고 있었던 또 한 사람이 있었거든.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통틀어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장서희래. 바로, 이 사람이야. 잊어버릴 수가 없죠. 왜냐하면, 제가 지금 경찰 생활 한지 35년 차인데요. 많은 범죄자들을 검거해 봤지만, 이런 여성은 진짜 처음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여인이다. 그 여성과 관련된 사람들은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는 거죠. 안 좋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미스터리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 미스터리한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 거죠. -이대우 경정, 당시 서대문경찰서 강력팀장 이대우 형사. 별명이 '범죄 사냥꾼'이야. 절도단, 마약단, 조직 전체를 일망타진하기로 유명해. 지금까지 잡은 범죄자들만 1000명 이상이야. 강력계의 레전드야. 바로 이 형사가 1년 전, 장서희를 존속살해 혐의로 수배한 경찰이야. 두 사람의 길고 긴 악연, 그 끝엔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어. ▲ 악연의 그림자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10년 9월 서울 수유동. 한 골목 끝에 있는 2층 집에서 불이 났어. 집을 다 삼켜버릴 기세로 불길이 활활 타올라. 그때, 불난 집 창문에서 엄마와 어린 딸이 살려달라고 소리쳤어. 다행히 그 방은 불길이 번지지 않아서, 이웃들이 창문을 통해 모녀를 구출했어.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겨우 불을 진압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안방에서 시신을 발견했어. 먼저 구출된 아이 엄마의 친어머니야. 불에 완전히 탄 상태야. 화재에서 구출된 아이 엄마, 바로 우리가 아는 그 장서희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장서희와 딸은 살고, 어머니만 사망한 걸까? 장 씨의 진술에 따르면, 사건 전날 밤 장 씨는 딸과 함께 어머니의 집을 방문했어. 안방에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려고 했다는 거야. 자기는 딸이 있으니, 딸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가서 잤대. 그러고 나서 새벽에 불이 났다는 거야. 현장에서는 이게 발견돼. 담배처럼 생긴 라이터. 초기 조사에서는 이 라이터, 혹은 담배꽁초가 화재의 원인이라고 판단했어. 그런데 장 씨와 딸은 탈출했잖아? 장 씨의 어머니는 왜 탈출하지 못했을까? 혈액 및 위내용물에서 졸피뎀이 검출되고 혈중 농도가 1.1mg/L로서 독성농도를 상회하며… -어머니 사망 부검 감정 결과 中 어머니의 부검 감정서야.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이 시신에서 다량 검출됐어. '독성농도'는 치사량에 가까운 수치야. 이에 대해 장 씨는 이렇게 진술했어. 엄마가 평소 수면제를 복용하셨어요. 수면제를 먹고 하루 종일 자는 것도 봤어요. -어머니 사망 관련 장 씨의 2차 진술 中 당시 경찰은 장 씨의 진술대로, 어머니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어 차마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단순 화재사로 마무리지었어. 그런데, 또 다른 사건이 벌어져. 화재 사고 5개월 뒤인 2011년 2월, 고양시의 한 아파트야. 해도 뜨지 않은 새벽, 경비원이 순찰을 돌다가 누가 화단에서 잠들어 있는 걸 발견해. 술에 취했겠거니 싶어, 몸을 흔들어 깨우는데,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질 않아. 심지어 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어. 잠든 게 아니라,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시신이었어. 사인은 추락사. 특히 머리 부분이 크게 손상되어 있었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고층에서 추락한 거라 추측하고 변사자의 집을 찾아 나섰어. 그렇게 찾은 변사자의 집. 죽은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람, 바로 장서희였어. 어머니 사망 5개월 만에, 아버지도 시신으로 발견된 거야.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했어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균형을 잃고 떨어진 것 같습니다. -추락사고 당시 장 씨의 1차 진술 中 장 씨의 진술에 따르면, 아버지가 폐암으로 입원 중이셨는데 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집으로 모셔왔대. 그날 혼자 거실에서 주무셨는데, 새벽에 베란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변을 당하신 것 같다는 거야. 당시 장 씨의 집 베란다에선, 실제로 담배꽁초가 여러 개 발견됐어. 유족 진술, 현장 증거가 모두 일치하고, 외부인 침입이나 타살 정황도 없어. 이 사고도, 단순 추락사로 마무리 됐어. 정리하면, 5개월 간격으로 장 씨 부모님이 연달아 사망했어. 공교롭게도, 현장에 모두 장 씨가 있었어. 하지만 당시 조사에서는 장 씨에게 별다른 혐의점이 없다고 봤어. 두 사건 모두 다. 그런데 이 사건을 지나치지 못한 한 사람이 있어. 바로 '범죄 사냥꾼' 이대우 형사. 단순하게 생각해도 어머니 사건에도 그 여인이 관여돼 있고, 아버지 사건에도 그 여인이 관여돼 있고. 왜 그 여인이 있을 때마다 부모가 희생이 되느냐. 의문이 들잖아요. 우연치고는 너무 겹치는 거잖아요. -이대우, 당시 서대문 경찰서 강력팀장 이 형사의 눈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어. 바로 보험. 장 씨의 아버지 앞으로 암 보험이 하나 있었어. 그런데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 장서희가 보험사에 3차례 전화를 걸었어. 그리고 '상해 사망'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는 거야. 아버지는 암환자인데, 이 보험에 '상해사망 특약'이 있었던 거야. 사고로 죽으면 보험금이 나온다는 거지. 이건 계약변경 승인신청서, 보험금 수익자를 변경한다는 서류야. 이 보험의 수익자는 원래 아버지의 동거녀였어. 그런데 그게 장서희로 바뀐 거야. 그것도, 사고 보름 전에. 아버지의 동거녀는 딸이 집요하게 날 괴롭혔다. 하루에도 전화를 수십 통 씩 하고, 우리집 문까지 따고 들어왔다 라고 말했어. 이렇게 집요하게 괴롭히니까, 결국 수익자를 장 씨로 바꿨다는 거야. 화재사고로 사망한 어머니. 어머니한테는 사망보험이 없었어. 다만 운전자 보험이 하나 있었는데, 공교롭게 여기에도 상해사망 특약이 걸려 있었어. 사고로 사망할 경우, 보험금이 1억이야. 그런데 장 씨가 보험금을 받아간 상황이 좀 묘해. 보험금을 청구한 지 겨우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빨리 보험금을 달라고 보험사를 재촉했어. 사고 경위를 조사해야 하니 한 달만 기다려달라 했더니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했어. 그러더니, 1억이 아닌 7천만 원만 받을 테니, 당장 돈을 보내라고 했어. 보험금을 깎아서라도 얼른 받겠다는 거야.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죠. 누구나 봤을 때 이거 좀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리고 그 사건마다 보험이 관련되어 있고, 그 사건 때마다 함께 있었다는 것. 그런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그런 강력사건으로 판단이 되다 보니까, 이런 건 수사를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이대우, 당시 서대문 경찰서 강력팀장 이대우 형사는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2011년 4월, 장 씨를 존속 살해 혐의 피의자로 특정하고 본격 재수사에 돌입했어. 그런데, 조사를 받던 장 씨가 갑자기 사라졌어. 잠적해 버린 거야. 바로 전국으로 수배를 내렸어. 그런데 머리카락 한 올도 찾지 못해. 왜? 계속 다른 이름으로 살았으니까. 수배자 신분을 감추려고 가짜 이름을 썼던 거야. 심지어 이 기간에 사기 행각까지 벌였어. ▲ 진술의 모순을 찾아라 다시 2012년 8월로 돌아와, 폭행 신고로 덜미가 잡힌 장서희. 이대우 형사팀은 장 씨를 긴급 체포했어. 도주한 지 1년 만이었어. 존속살해 혐의를 조사해야지. 그런데, 장 씨는 경찰서를 유유히 걸어 나가. 왜? 구속영장이 안 나왔거든. 범죄혐의점도 있고 도주의 우려도 있었어. 그래서 당연히 나올 줄 알았는데, 구속영장이 기각된 거야. 검찰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는, '장 씨 부모님 사망사건을 보험 살인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거야. 보통의 보험사기는, 여러 개의 보험에 중복 가입하고, 과도한 보험료를 납부하는 경우가 많대. 그런데 이 사건은 안 그랬어. 보험도 하나였고, 보험료도 많지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보험에 가입한 것도 보험료를 낸 것도 모두 장 씨가 아니야. 그래서 장 씨가 아무리 수익자를 무리하게 바꿨어도, 보험금을 아무리 독촉했어도, 이걸 살인의 직접적인 증거로는 볼 수 없다는 거야. 하지만, 구속을 하지 말라는 거지, 장 씨를 조사하지 말라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이 형사 팀은 장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어. 그런데 조사가 쉽지 않아. 당시 막내였던 홍종현 형사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장 여인의 말투를 보면 굉장히 공격적이고 말이 굉장히 빠릅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해서 말을 잘 꾸며서, 미리 상황을 다 짜놓고 얘기하듯 이야기를 해서. 여태까지 경찰 활동을 하면서 많은 나쁜 사람들을 봤지만, 모든 것을 대비하고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홍종현 형사, 당시 소환 조사 담당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 보통 사람들은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 해. 죄가 있든 없든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거든. 그런데 장 씨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어. 마치 미리 대본을 짜놓은 것 같았대. 게다가, 조사를 받다가 아이가 운다고 나가고, 바쁘다며 안 오고. 이건 뭐, 피의자가 아니라 거의 상전이야.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어서 조금 세게 나갔더니, 강압수사를 받았다며 수사관을 교체해달라 민원까지 넣어. 수사가 힘든 이유는 또 있어. 이미 1년도 지난 사건들이니, 현장 주변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찾기 힘들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장 씨의 진술서에서 찾았어. 이대우 형사 팀은 초동 수사 당시 장 씨의 진술들을 다시 하나하나 분석하기 시작했어. 분명 허점이 있을 거라 믿으며. 먼저, 아버지 사망에 대한 장 씨의 진술을 확인해보면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했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균형을 잃고 떨어진 것 같다 라고 말했어. 아버지의 건강 상태, 폐암으로 입원 중이었다고 했잖아? 게다가 사고 보름 전에 두개골을 절개하는 대수술을 받았어. 그때 (아버지) 외출 허락을 안 해줬었거든요. 혼자서 이렇게 걸을 수가 없는 상태였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부축이라든지 아니면 휠체어 정도 타고 겨우 이제 이동하실 수 있는 정도. 이렇게 보내도 되나 싶어서, 사실은 한번 거동해보시라 했거든요. 근데 겨우 부축해서 겨우 발걸음을 때는 정도의… -우광무, 당시 아버지 주치의 거동조차 불편했다는 장 씨의 아버지가, 베란다로 혼자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이대우 형사는 사건 현장을 다시 찾아갔어. 그리고 이 형사는 진술을 재연해보기로 했어. 이건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난간을 똑같은 크기로 구현한 거야. 아버지의 키는 172센티미터 정도. 이 높이에서 균형을 잃고 떨어질 수 있을까. 실수로 균형을 잃고 떨어지기에는, 난간 높이가 꽤 높아. 장 씨의 아버지, 정말 사고사일까? 이번엔 어머니 사망에 대한 진술을 검토해볼 차례야. 이 사건은 현장이 이미 불타 없어진지 오래라 더 막막해. 다행히 사진이 몇 장 남아 있어서 보고 또 보는데, 한 사진 앞에서 형사들의 눈빛이 달라져. 바로 이 사진. 사진 속 창문. 사고 당시, 창문도 방문도 모두 닫힌 밀폐된 공간이었어. 그렇다면 밀폐된 공간에서 담뱃불로 그렇게 큰 불이 날 수 있을까? 이걸 실험하기 위해, 수사팀은 현장을 다시 만들기로 해. 사고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실험을 하기로 했어. 당시 상황과 동일하게 완전히 공간을 밀폐한 후, 전소된 침구류와 동일한 이불을 준비해 불이 붙은 담배를 이불 위에 올려뒀어. 담배는 점점 타들어 갔어. 하지만 다 탄 담배는 그대로 꺼져버렸어. 담배에서 나오는 열 대부분이 가연물(이불)에 전달이 안 되고 그냥 허공으로 열이 다 방사가 되어 버리고 극히 일부분만 가연물에 전달이 되기 때문에 그 열로는 이 조건이라면 이불에 불이 붙을 확률은 적죠. -김흥렬, 당시 건설기술연구원 박사 타고 있는 담배 위에 다른 물건을 올린 조건으로도 실험을 진행했어. 이번에도 불씨는 살아나지 않았어. 반면, 라이터로 불을 붙여 이불에 던지는 경우에는 불길이 치솟았어. 라이터 불로는 큰 불이 나는 게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어. 그래서 이대우 형사는 이 화재는 '방화'일 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확인해야 할 또 한 가지. 어머니가 복용했다는 '수면제'. 장 씨는 어머니가 우울증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해 왔다고 진술했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치사량에 가까운 수면제를 한꺼번에 먹었다는 게 이상해. 일단 어머니가 수면제를 처방받은 기록이 있는지 찾아봤어. 어머니는 수면제를 처방받은 적도,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도 없어. 그런데 뜻밖의 이름이 진료 기록에서 발견돼. 바로 장서희. 심지어 시신에서 검출된 성분과 똑같은 성분의 수면제를 처방받았어. 그것도 사고 전날에. 이대우 형사 팀은 이제 거의 확신했어. 장 씨를 당장 소환해서 물어봤지. 그러자 장 씨는 본인이 먹으려고 처방받았다고 진술했어. 엄마가 수면제 먹는 걸 보고 저도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어요. 2006년이었나. 우울증 때문에요. -어머니 사망 관련 장 씨의 3차 진술 수사팀은 각종 실험, 진술을 종합해서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어. 하지만, 이번에도 기각이야. 도대체 왜 자꾸 기각되는 걸까. 검사출신 변호사한테 그 이유를 직접 들어볼게. (검사가) 되게 고민이 깊었을 거 같아요. 왜냐면 범죄 소명은 좀 부족한데 도망의 우려는 되게 높잖아요. 근데 여기서는 라이터를 구매한 내역이라든지 들고 들어갔다라든지, 범행을 사전에 모의했다는 CCTV나 범행 도구 구입 내역이나 그런 거에 대한 입증이 없잖아요. 일단은 '죄를 저지른 거 같아' 거기다가 '구속하지 않으면 도망가거나 증거를 없앨 거 같아'가 두 번째인 거지, 소명조차 되지 않는 사람을 도망갈 거 같으니까 구속시킬 수 없는 거잖아요. 검사 입장에서, 형사소송법도 그러하고. -이고은 변호사 도주의 우려가 있다 할지라도, 범죄 소명이 부족한 피의자를 구속할 수 없다는 거야. 형사들의 입장은 어땠을까? 정황증거만으로도 구속되고 유죄까지 받는 경우가 있었대. 이번 사건은 왜 이리 기준이 높은 건지, 답답하고 아쉬웠대. 그리고 무엇보다, 장 씨가 또 도망갈까 초조했어. ▲ 억울하다는 사람의 이상한 한마디 그런데 장 씨가 이번엔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해. 바로 TV출연. 한 지상파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해. 어떻게 불이 났는지 저도 모르겠는데 그냥 저는 소방서에서 나온 결과가 '담뱃불로 추정됨'이었으니까 '아 그래요?' 그런 줄 알았고. 아빠 조사 결과도 일산경찰서에서 '사고사로 추정됨' 이렇게 나왔으니까 그런 줄 알았고 믿었으니까. 경찰관분들을 그때는. 서대문 경찰서에서는 제가 던졌대요. 아빠를 번쩍 들어서. 말이 되냐고요. 그렇게 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영장도 기각 안 됐을 거고. 수배 중인 사람이 영장이 기각되지는 않잖아요. -2012. 10. 19. 장 씨의 '궁금한 이야기Y' 출연 영상 中 장 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어. 담뱃불 때문에 불났다고 말한 적도 없고, 아버지가 담배 피우다 떨어졌다는 것도 경찰의 추측에 동의했을 뿐이래. 심지어는 이런 하소연도 했어. 엄마 아빠가 정말 이혼뿐만이 아니라 되게 비정상적인 가정이었어요. 엄마는 우울증에다가 의부증이 좀 심했던 것 같아요 남자들한테. 몇 번은 재혼했을 때는 잘 살려고 노력했었는데 되게 두들겨 맞은 적도 있나 봐요. 폭행을 당한 적도. 정말 마음에 병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2012. 10. 19. 장 씨의 '궁금한 이야기Y' 출연 영상 中 이런 가정사 때문에 경찰이 자신을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는 거야. 비록 평범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을 죽일 이유는 전혀 없다는 거야. 이 방송을 본 형사들은 어땠을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지, 정황 증거로는 구속영장도 안 나와. 게다가 방송까지 나와서 억울하다고 해.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포기할 '범죄사냥꾼'이 아니지. 당장 장 씨를 구속할 수는 없지만, 기소의견('범죄 혐의가 인정된다는 의견'을 검찰에 전달하는 것)으로 검찰에 송치할 수는 있어. 보험사기, 존속살해 혐의에 대해 다시 한번 장 씨를 철저하게 조사했어. 그리고 새로운 게 더 발견됐어. 조사를 하면 할수록, 장 씨의 사기 행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나. 동생, 시어머니, 친인척한테 갈취한 금액만 4억 5천만 원이야. 장 씨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던 걸까.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돈에 집착한 걸까. 장 씨의 내연남 고 씨가 한 진술이 있어. 주식에 환장을 하는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막말로 마약에 금단현상 있는 사람이 마약을 봤을 때 환장하고 진짜 미친다 그러잖아요. 돈을 보면 그렇게 사람이 변해요 -장 씨의 내연남 고 씨의 진술 中 주식으로 생긴 빚이 많았는데, 돈이 생겨도 빚을 갚기는커녕 또다시 주식에 올인. 중독이 엄청 심했대. 어머니 사망 전 3억 4천만 원이었던 빚이, 아버지 사망 후에 4억 2천만 원으로 늘어나 있었어. 장 씨는 돈이 필요했던 건 맞지만, 부모님 죽음과는 무관하다고 끝까지 주장했어. 하지만 경찰이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마지막 결정적 이유가 있었어. '네가 엄마 아빠를 그렇게 했을 거라는 거는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 안 믿겨지는데?' 그러니까 자기가 갑자기 장난인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했는데?' 그렇게 하고 그냥 넘어가더라고요. -내연남 고 씨(가명), 당시 통화 장 씨가 본인이 직접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는 거야. 물론 이건 고 씨의 주장일 뿐이야. 통상적으로 범행을 한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은 그런 심리가 있는데요. 무의식 중에 발현된 것이 아닌가… -홍종현, 당시 소환 담당 형사 이런 고 씨의 주장이 증거로 효력이 있을까. 다행히 대질신문을 통해서 진술이 서로 일치만 한다면, 상당히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대. 자, 이제 마지막 단계야. ▲ 또 사라졌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끝까지 수사력을 모았던 이대우 형사팀은 최종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어. 범죄혐의가 있다는 의견을 마지막까지 피력한 거야.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혀내려 했던 서대문의 장 씨 재수사팀은 그렇게 각자 다른 부서로 뿔뿔이 흩어졌어. 그럼, 장 씨는 어떻게 됐을까? 기소가 돼서 재판을 받았을까? 유죄는 인정받았을까? 피의자 소재 불명으로 기소중지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어. 검찰조사를 앞두고 장 씨가 또 종적을 감춰버린 거야.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는데, 찾을 수가 없어.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야.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장 씨는 지명수배 상태야. 장 여인에 대한 수사를 엄청 방대하게 진행했는데 계속 잡았다가 놓치고 잡았다가 놓치고 이런 상황들이 너무 허탈하고. 당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면, 재판하는 과정 중에 충분히 자백을 받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아서 사실 원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홍종현, 당시 소환 조사 담당 형사 이게 제가 강력팀장으로 재직하면서 맡은 마지막 사건이거든요. 사건을 시작하고 뼈대까지 세워놨지만 마무리를 못했어요. 하나의 사건을 종결을 했어야 됐는데 그걸 못하고 떠났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그게 아직도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당사자인 그 여인이 도망 중이라는 거에 깜짝 놀랐습니다.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이대우, 당시 서대문 경찰서 강력팀장 차라리 무죄를 받았다면, 그래서 혐의를 벗고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면. 지금까지 이런 악연으론 남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리고 2023년 현재까지도, 이 장서희를 추적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바로 이대우 형사. 이 형사는 아직 이 사건을 놓지 않았어. 이미 검찰로 넘어갔지만, 조사가 가능한 선에서 생활반응을 계속 추적 중이래.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나온 건 없어. 수사 기관에서 추적하고 있다는 걸 100%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의 신분으로 된 모든 것을 차단해 놓고 제3자의 명의로 생활하고 있다는 거죠. 그동안의 범죄 형태를 봤을 때, 또 다른 피해자는 분명히 누군가는 지금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저는 확신해요. 그래서 그걸 예방도 하고 빨리 조기검거를 해서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냥 법정에 세우고 싶어요. 그래서 정말 진실이 뭔지 밝여야겠죠. -이대우, 당시 서대문 경찰서 강력팀장 사실 '꼬꼬무'가 인터뷰를 처음 제안했을 때, 많이 망설이셨어. 형사 입장에서는 피의자를 놓친 오점일 수 있잖아. 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건 막아야 하니까, 어렵게 결심을 하신 거야. 형사들의 용기로 만들어진 오늘의 이야기가, 부디 또 다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길 바랄 뿐이야. '꼬꼬무'가 오늘의 이야기를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어. '무죄 추정의 원칙' 알지? 형사사건의 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것. 장 씨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의심이 가더라도, 아무리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장 씨를 존속살해범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돼. 그럼에도 '꼬꼬무'가 오늘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장 씨가 수사기관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숨어버렸기 때문이야. 끔찍한 존속살해 혐의를 벗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는데도 말이지. 이 잔혹한 미스터리의 진실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 장서희. 그녀가 하루빨리, 진실의 입을 열어주길 바랄 뿐이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사라진 약혼녀, 이름만 4개에 존속살해 피의자…10년 넘게 지명수배 중
등록일2023.11.10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9일 방송된 '완벽한 타인'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댄스크루 라치카의 리더 가비, 배우 김민재, 박효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라진 예비 신부 때는 2011년 8월, 인천의 한 나이트클럽.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 30대 회사원 수찬(가명) 씨가 쭈뼛쭈뼛 서있어. 나이트클럽에 처음 와 봤는지, 영 어색해. 그 때, 수찬 씨 테이블로 두 여성이 다가와. 시큰둥했던 수찬 씨도 점점 흥이 올라. 둘 중 한 여성한테 마음이 갔거든. 수찬 씨는 그녀의 참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어. 그리고 대화도 너무 잘 통해. 술도 못 마신다고, 억지로 끌려왔다고 하더라고요. L* 다닌다고, 업체들 매장 관리하는 거 사무실에서. 그런 일을 한다고 처음에 소개했죠. 그때 당시에는 술을 별로 안 먹고 자리에 좀 있다가 일어서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김수찬(가명), 대역 재연 그녀의 얼굴을 보여줄게. 이름은 김세아(가명), 34살 직장인이야. 수찬 씨는 세아 씨의 연락처를 용기를 내서 물었고, 세아 씨는 연락처를 줬어.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됐어. 세아 씨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었어. 취미로 봉사 활동을 다닐 만큼 마음씨가 고왔거든. 그리고 집안도 좋았어. 세아 씨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는데, 마치 주말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대. 화목하고 다복한 집안 그 자체야. 인사를 다녀온 수찬 씨는 결심했어.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만나지 6개월 만의 일이었어. 아무리 사이 좋은 커플이라도, 결혼 준비를 할 땐 싸운다고 하잖아? 수찬 씨 커플도 그랬어. 특히 신혼집 때문에 싸웠어. 세아 씨가 유독 고집한 아파트가 있었는데, 두 사람 형편에는 좀 과했거든. 세아 씨는 계속 수찬 씨를 설득했고, 심지어 카드 대출까지 받자고 했어. 이 일로 두 사람은 크게 싸웠지만, 결국 수찬 씨는 신혼집을 위해 어렵게 돈을 마련했어. 그런데 수찬 씨가 송금을 하려는 그 찰나, 세아 씨가 특이한 요구를 하나 했어. 신혼집 대금을 친구 계좌로 보내달라는 거야. 본인 통장은 아버지가 다 관리를 해서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친구라는 '박은지' 계좌로 돈을 보내달래. 수찬 씨는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예비 신부를 믿으니까, 친구 박은지의 계좌로 돈을 입금했어. 금액은 무려 1억 5천만원. 그런데 얼마 후, 세아 씨의 휴대폰이 꺼져있어.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안 돼. 수찬 씨는 뒤통수가 서늘했어. 그래서 한가지를 확인해보기로 해. 바로, 세아 씨가 샀다는 아파트의 등기부등본. 그런데 거기엔 '김세아'라는 소유주는 없었어. 설마 하는 마음에 아버지 소유라던 본가도 확인했는데, 다른 사람의 집이야. 완전 멘붕이야. 예비신부와 수찬 씨의 전재산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거야. 수찬 씨는 경찰에 신고부터 했어. 이 사건을 맡은 곳은 일산 경찰서. 수사팀은 곧바로 세아 씨를 찾기 시작했고, 곧 세아 씨를 찾았어. 경찰의 연락을 받은 수찬 씨는 한달음에 경찰서로 달려갔어. 그런데 눈 앞에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김세아'라면서 조사를 받고 있었어. 신분증을 확인해 보니, 이름이 '김세아'가 맞아. 심지어 생년월일도 똑같아. 하지만 수찬 씨가 만나온 그 사람이 아니야. 이름, 나이, 그리고 집 주소까지 모든 게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그때 당시에 처음에는 멘붕이었지 뭐. 일단은 사람이 돈도 문제지만 저는 진심으로 그 사람을 대했는데, 모든 한마디 한마디가 다 거짓이었다는 게 6개월 동안. 만나거나 커피 마시거나 밥 먹었다든가 이런 것들이 하나도 진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너무 진짜… 이렇게 사람이 바보가 될 수 있구나. -김수찬(가명), 대역 재연 그렇게 수찬 씨가 상심에 빠져 지내던 어느날, 머릿속에 단서 하나가 번뜩 떠올랐어. 바로, 신혼집 대금을 보내달라고 했던 친구 '박은지' 계좌의 입금내역. 혹시 그녀의 진짜 이름이 박은지인 걸 아닐까? ▲ 세 개의 '가짜' 이름 일산서 형사들은 '박은지'를 추적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아주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어. 박은지를 찾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거야. 바로 30대 남성 안준우(가명) 씨. 준우 씨는 작년 여름 나이트클럽에서 박은지를 처음 만났대. 수찬 씨가 김세아를 만났던 시기, 방식, 모든 게 비슷해. 형사는 준우 씨에게 김세아의 사진을 보여줬어. 그랬더니, 맞대. 이 여자가 박은지래. 그런데 준우 씨한테는, 결혼해서 아들이 하나 있는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했대. 그렇게 준우 씨는 나이트클럽에서 박은지를 처음 본 이후 몇 번 만났는데, 어느날부터 이상한 요구를 하더래. 얼굴은 두 세번 봤는데, 차 한잔 마시자고 해서 만났죠. 이것저것 힘드니까, 뭐 가정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안 빌려줬죠. 제가 회사 비밀을 유출한다면서 제 회사에 전화해서 뭐 그런 식으로 회사 비밀을 얘기해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안준우(가명), 당시 통화 박은지가 준우 씨를 협박했던 거야. 심지어 준우 씨의 회사까지 연락해서, 직원 비위를 제보할 테니 5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대. 이 일로 준우 씨는 직장까지 잃을 뻔했어. 그래서 준우 씨가 박은지를 신고한 거야. 수찬 씨의 사라진 예비 신부 김세아, 그리고 준우 씨를 협박한 박은지. 모두 동일인물이야. 며칠이 지나, 수찬 씨가 다시 일산 경찰서를 찾아갔어. 박은지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거든. 그런데 경찰이 말하길, 박은지의 주소지를 추적해 찾아갔더니 비슷한 나이의 여성이 있긴 한데, 사진 속 얼굴과는 달랐대. 하지만 이름이 똑같아서, 경찰은 긴가민가하며 일단 경찰서로 데려왔어. 수찬 씨가 확인해보니, 그 여성은 자신이 만났던 예비신부와 얼굴이 완전히 달랐어.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야. 결국, '박은지'라는 이름도 가짜였던 거야. 경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짜 박은지 씨한테 사진을 보여주며 이 여자를 아냐고 물었어. 은지 씨는 사진을 보더니,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거야. 은지 씨가 기억하는 그녀의 이름은 '최수진'. 일하던 가게에 새로 온 종업원이었대. 자기는 애가 두 명 있고 딸 하나 아들 하나 있고, 자기가 큰 화장품 사업을 했대요. 그걸 망했대요. 그래서 시댁에서 쫓겨났다고 하더라고요. -박은지(가명), 대역 재연 은지 씨는 최수진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며 살뜰히 챙겼어. 심지어, 갈 곳 없는 수진 씨를 자기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줬대. 그렇게 한달 정도 같이 지내다가 나갔는데, 그 후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해. 자신의 신분이 이곳저곳에서 도용되고 있던 거야. 특히 수상한 계좌 거래 내역이 포착됐어. 가는 은행마다 자꾸 제 통장이 만들어져 있었죠. 남자가 한 두 명이 아니야, 입출금이 다 남자 이름이에요. 통장 내역을 보면 알잖아요. 200만원을 빌려요. 한 3일 뒤에 갚아요. 또 빌려요, 또 갚아요. 이걸 일주일 내내 하다가 한방에 확 더 큰 금액을 빌리는 거죠. -박은지(가명) 그 수상한 거래 내역에, 수찬 씨의 이름도 있었어. 신혼집 대금을 박은지 계좌로 달라고 했잖아. 바로 이 계좌였던 거야. 최수진이 은지 씨한테, 자신이 '나쁜 엄마'라고 말한 적이 있대. 시댁에서 쫓겨나 애들 얼굴도 못 보고 있다며, 학원비라도 보내주고 싶은데 자신이 신용불량자라 통장도 못 만든다는 거야. 이 이야기를 들은 은지 씨는, 자기 명의로 휴대폰도 개통해주고, 은행 통장도 만들어줬어. 최수진을 믿고 호의를 베푼 건데, 그 호의를 이용해서 은지 씨의 명의를 도용하고 다닌 거지. 경찰이 발견한 그녀의 이름만 3개야. 수찬 씨의 예비 신부 '김세아', 준우 씨를 협박한 '박은지', 은지 씨의 명의를 도용한 '최수진'. 이 세 여자가 모두 한 사람이라는 거잖아. 그럼 이제 누구를 찾아야 할까? 바로 최수진. 형사들은 은지 씨가 알려준 정보대로, 77년생 최수진을 찾기 시작했어. 그런데 못 찾았어. 비슷한 나이대의 최수진을 전부 조사했는데, 사진 속 여성은 어디에도 없어. 그런데, 의외의 장소에서 실마리가 잡혔어. ▲ 그녀의 진짜 정체 어느날, 한 여성이 급히 구조요청을 해. 경찰이 급히 출동해 봤더니, 신고를 한 여성의 온 몸엔 멍이 가득하고 옷이 막 여기저기 찢겨있어. 일단 여자를 진정시키고, 경찰서로 향했어. 2012년 8월, 경기도 동두천 경찰서야. 그때 당시 내연남한테 폭행을 당해서 안면부 쪽에 멍이 좀 많이 들어있었고 머리 부분도 헝클어진 상태로 울고 있었던 상황으로 기억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수 회에 걸쳐서 피해가 발생됐다고 진술했었습니다. -이영진, 신고 당시 동두천 경찰서 근무 경찰서에 가면, 신원 조회부터 하잖아. 신분증을 달라고 했더니, 그 폭행 피해 여성이 신분증을 안 가져왔다며, 갑자기 신고를 취소하겠대. 그래도 신원을 확인해야 하니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라도 불러달라 했어. 그랬더니 그 여자, 자신의 이름이 '박은지'라고 말했어. 그래 맞아. 이 여자가 바로, '김세아', '박은지', '최수진'으로 신분을 숨겨온, 그 사람이야. 수상함을 느낀 경찰은 바로 이 사람의 지문 조회에 들어갔어. 그리고 드디어, 이 여자의 진짜 이름을 알아냈어. 바로, 장서희(가명). 나이는 34살이야.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해 어린 딸과 아들을 둔 두 아이의 엄마야. 장서희는 은지 씨 집에서 나온 뒤, 내연남 고 씨를 만났어. 그러다 동거를 하게 됐는데, 장서희가 고 씨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해. 이 일로 두 사람의 싸움이 격해졌고, 폭행으로까지 이어진 거야. 참다못한 장서희가 신고를 했는데, 자기가 덜미를 잡혀버린 거야. 장서희의 사기행각은 생각보다 더 치밀했어. 이 신분증 속 사진의 얼굴은 장서희. 그런데 이름은 박은지야. 은지 씨 이름으로, 운전면허증까지 발급받은 거야. 한마디로 위조 신분증이야. 장서희는 그야말로 완벽한 타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어. 그러면 대체 왜, 이러고 산 걸까? 장서희에게 진짜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있었던 걸까? 결정적인 단서는 신고 여성이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했을 때 눈동자가 흐려지고 진술의 신빙성에 좀 의심이 가서 지문 조회를 했던 거죠. 깜짝 놀랐죠. 존속살해 피의자로 지명수배 돼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일반적으로 살인 피의자 지명 수배되어있는 경우는 거의 흔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도 존속 살해 피의자 A수배로 밝혀지기는 거의 힘든 부분이기 때문에 깜짝 놀랐죠. -이영진, 신고 당시 동두천 경찰서 근무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었어. 장서희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진짜 정체는, 무려 1년 째 도주 중인 지명수배자였어. 그것도 존속 살해 혐의로. 동두천서 형사들은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어. 장서희를 애타게 찾고 있었던 또 한 사람이 있었거든.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통틀어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장서희래. 바로, 이 사람이야. 잊어버릴 수가 없죠. 왜냐하면, 제가 지금 경찰 생활 한지 35년차인데요. 많은 범죄자들을 검거해 봤지만, 이런 여성은 진짜 처음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여인이다. 그 여성과 관련된 사람들은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는 거죠. 안 좋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미스터리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 미스터리한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 거죠. -이대우 경정, 당시 서대문경찰서 강력팀장 이대우 형사. 별명이 '범죄 사냥꾼'이야. 절도단, 마약단, 조직 전체를 일망타진하기로 유명해. 지금까지 잡은 범죄자들만 1000명 이상이야. 강력계의 레전드야. 바로 이 형사가 1년 전, 장서희를 존속살해 혐의로 수배한 경찰이야. 두 사람의 길고 긴 악연, 그 끝엔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어. ▲ 악연의 그림자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10년 9월 서울 수유동. 한 골목 끝에 있는 2층 집에서 불이 났어. 집을 다 삼켜버릴 기세로 불길이 활활 타올라. 그때, 불난 집 창문에서 엄마와 어린 딸이 살려달라고 소리쳤어. 다행히 그 방은 불길이 번지지 않아서, 이웃들이 창문을 통해 모녀를 구출했어.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겨우 불을 진압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안방에서 시신을 발견했어. 먼저 구출된 아이 엄마의 친어머니야. 불에 완전히 탄 상태야. 화재에서 구출된 아이 엄마, 바로 우리가 아는 그 장서희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장서희와 딸은 살고, 어머니만 사망한 걸까? 장 씨의 진술에 따르면, 사건 전날 밤 장 씨는 딸과 함께 어머니의 집을 방문했어. 안방에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려고 했다는 거야. 자기는 딸이 있으니, 딸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가서 잤대. 그러고 나서 새벽에 불이 났다는 거야. 현장에서는 이게 발견돼. 담배처럼 생긴 라이터. 초기 조사에서는 이 라이터, 혹은 담배꽁초가 화재의 원인이라고 판단했어. 그런데 장 씨와 딸은 탈출했잖아? 장 씨의 어머니는 왜 탈출하지 못했을까? 혈액 및 위내용물에서 졸피뎀이 검출되고 혈중 농도가 1.1mg/L로서 독성농도를 상회하며… -어머니 사망 부검 감정 결과 中 어머니의 부검 감정서야.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이 시신에서 다량 검출됐어. '독성농도'는 치사량에 가까운 수치야. 이에 대해 장 씨는 이렇게 진술했어. 엄마가 평소 수면제를 복용하셨어요. 수면제를 먹고 하루 종일 자는 것도 봤어요. -어머니 사망 관련 장 씨의 2차 진술 中 당시 경찰은 장 씨의 진술대로, 어머니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어 차마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단순 화재사로 마무리지었어. 그런데, 또 다른 사건이 벌어져. 화재 사고 5개월 뒤인 2011년 2월, 고양시의 한 아파트야. 해도 뜨지 않은 새벽, 경비원이 순찰을 돌다가 누가 화단에서 잠들어 있는 걸 발견해. 술에 취했겠거니 싶어, 몸을 흔들어 깨우는데,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질 않아. 심지어 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어. 잠든 게 아니라,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시신이었어. 사인은 추락사. 특히 머리 부분이 크게 손상되어 있었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고층에서 추락한거라 추측하고 변사자의 집을 찾아 나섰어. 그렇게 찾은 변사자의 집. 죽은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람, 바로 장서희였어. 어머니 사망 5개월 만에, 아버지도 시신으로 발견된 거야.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했어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균형을 잃고 떨어진 것 같습니다. -추락사고 당시 장 씨의 1차 진술 中 장 씨의 진술에 따르면, 아버지가 폐암으로 입원 중이셨는데 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집으로 모셔왔대. 그날 혼자 거실에서 주무셨는데, 새벽에 베란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변을 당하신 것 같다는 거야. 당시 장 씨의 집 베란다에선, 실제로 담배꽁초가 여러 개 발견됐어. 유족 진술, 현장 증거가 모두 일치하고, 외부인 침입이나 타살 정황도 없어. 이 사고도, 단순 추락사로 마무리 됐어. 정리하면, 5개월 간격으로 장 씨 부모님이 연달아 사망했어. 공교롭게도, 현장에 모두 장 씨가 있었어. 하지만 당시 조사에서는 장 씨에게 별다른 혐의점이 없다고 봤어. 두 사건 모두 다. 그런데 이 사건을 지나치지 못한 한 사람이 있어. 바로 '범죄 사냥꾼' 이대우 형사. 단순하게 생각해도 어머니 사건에도 그 여인이 관여돼 있고, 아버지 사건에도 그 여인이 관여돼 있고. 왜 그 여인이 있을 때마다 부모가 희생이 되느냐. 의문이 들잖아요. 우연치고는 너무 겹치는 거잖아요. -이대우, 당시 서대문 경찰서 강력팀장 이 형사의 눈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어. 바로 보험. 장 씨의 아버지 앞으로 암 보험이 하나 있었어. 그런데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 장서희가 보험사에 3차례 전화를 걸었어. 그리고 '상해 사망'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는 거야. 아버지는 암환자인데, 이 보험에 '상해사망 특약'이 있었던 거야. 사고로 죽으면 보험금이 나온다는 거지. 이건 계약변경 승인신청서, 보험금 수익자를 변경한다는 서류야. 이 보험의 수익자는 원래 아버지의 동거녀였어. 그런데 그게 장서희로 바뀐 거야. 그것도, 사고 보름 전에. 아버지의 동거녀는 딸이 집요하게 날 괴롭혔다. 하루에도 전화를 수십 통 씩 하고, 우리집 문까지 따고 들어왔다 라고 말했어. 이렇게 집요하게 괴롭히니까, 결국 수익자를 장 씨로 바꿨다는 거야. 화재사고로 사망한 어머니. 어머니한테는 사망보험이 없었어. 다만 운전자 보험이 하나 있었는데, 공교롭게 여기에도 상해사망 특약이 걸려 있었어. 사고로 사망할 경우, 보험금이 1억이야. 그런데 장 씨가 보험금을 받아간 상황이 좀 묘해. 보험금을 청구한 지 겨우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빨리 보험금을 달라고 보험사를 재촉했어. 사고 경위를 조사해야 하니 한 달만 기다려달라 했더니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했어. 그러더니, 1억이 아닌 7천만원만 받을 테니, 당장 돈을 보내라고 했어. 보험금을 깎아서라도 얼른 받겠다는 거야.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죠. 누구나 봤을 때 이거 좀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리고 그 사건마다 보험이 관련되어 있고, 그 사건 때마다 함께 있었다는 것. 그런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그런 강력사건으로 판단이 되다 보니까, 이런 건 수사를 안할 수가 없는 거죠. -이대우, 당시 서대문 경찰서 강력팀장 이대우 형사는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2011년 4월, 장 씨를 존속 살해 혐의 피의자로 특정하고 본격 재수사에 돌입했어. 그런데, 조사를 받던 장 씨가 갑자기 사라졌어. 잠적해버린거야. 바로 전국으로 수배를 내렸어. 그런데 머리카락 한 올도 찾지 못해. 왜? 계속 다른 이름으로 살았으니까. 수배자 신분을 감추려고 가짜 이름을 썼던 거야. 심지어 이 기간에 사기 행각까지 벌였어. ▲ 진술의 모순을 찾아라 다시 2012년 8월로 돌아와, 폭행 신고로 덜미가 잡힌 장서희. 이대우 형사팀은 장 씨를 긴급 체포했어. 도주한 지 1년 만이었어. 존속살해 혐의를 조사해야지. 그런데, 장 씨는 경찰서를 유유히 걸어나가. 왜? 구속영장이 안 나왔거든. 범죄혐의점도 있고 도주의 우려도 있었어. 그래서 당연히 나올 줄 알았는데, 구속영장이 기각된 거야. 검찰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는, '장 씨 부모님 사망사건을 보험 살인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거야. 보통의 보험사기는, 여러 개의 보험에 중복 가입하고, 과도한 보험료를 납부하는 경우가 많대. 그런데 이 사건은 안 그랬어. 보험도 하나였고, 보험료도 많지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보험에 가입한 것도 보험료를 낸 것도 모두 장 씨가 아니야. 그래서 장 씨가 아무리 수익자를 무리하게 바꿨어도, 보험금을 아무리 독촉했어도, 이걸 살인의 직접적인 증거로는 볼 수 없다는 거야. 하지만, 구속을 하지 말라는 거지, 장 씨를 조사하지 말라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이 형사 팀은 장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어. 그런데 조사가 쉽지 않아. 당시 막내였던 홍종현 형사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장 여인의 말투를 보면 굉장히 공격적이고 말이 굉장히 빠릅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해서 말을 잘 꾸며서, 미리 상황을 다 짜놓고 얘기하듯 이야기를 해서. 여태까지 경찰 활동을 하면서 많은 나쁜 사람들을 봤지만, 모든 것을 대비하고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홍종현 형사, 당시 소환 조사 담당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 보통 사람들은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해. 죄가 있든 없든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거든. 그런데 장 씨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어. 마치 미리 대본을 짜놓은 것 같았대. 게다가, 조사를 받다가 아이가 운다고 나가고, 바쁘다며 안 오고. 이건 뭐, 피의자가 아니라 거의 상전이야.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어서 조금 세게 나갔더니, 강압수사를 받았다며 수사관을 교체해달라 민원까지 넣어. 수사가 힘든 이유는 또 있어. 이미 1년도 지난 사건들이니, 현장 주변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찾기 힘들어.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장 씨의 진술서에서 찾았어. 이대우 형사 팀은 초동 수사 당시 장 씨의 진술들을 다시 하나하나 분석하기 시작했어. 분명 허점이 있을 거라 믿으며. 먼저, 아버지 사망에 대한 장 씨의 진술을 확인해보면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했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균형을 잃고 떨어진 것 같다 라고 말했어. 아버지의 건강 상태, 폐암으로 입원 중이었다고 했잖아? 게다가 사고 보름 전에 두개골을 절개하는 대수술을 받았어. 그때 (아버지) 외출 허락을 안해줬었거든요. 혼자서 이렇게 걸을 수가 없는 상태였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부축이라든지 아니면 휠체어 정도 타고 겨우 이제 이동하실 수 있는 정도. 이렇게 보내도 되나 싶어서, 사실은 한번 거동해보시라 했거든요. 근데 겨우 부축해서 겨우 발걸음을 때는 정도의… -우광무, 당시 아버지 주치의 거동조차 불편했다는 장 씨의 아버지가, 베란다로 혼자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이대우 형사는 사건 현장을 다시 찾아갔어. 그리고 이 형사는 진술을 재연해보기로 했어. 이건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난간을 똑 같은 크기로 구현한 거야. 아버지의 키는 172센티미터 정도. 이 높이에서 균형을 잃고 떨어질 수 있을까. 실수로 균형을 잃고 떨어지기에는, 난간 높이가 꽤 높아. 장 씨의 아버지, 정말 사고사일까? 이번엔 어머니 사망에 대한 진술을 검토해볼 차례야. 이 사건은 현장이 이미 불타 없어진지 오래라 더 막막해. 다행히 사진이 몇 장 남아 있어서 보고 또 보는데, 한 사진 앞에서 형사들의 눈빛이 달라져. 바로 이 사진. 사진 속 창문. 사고 당시, 창문도 방문도 모두 닫힌 밀폐된 공간이었어. 그렇다면 밀폐된 공간에서 담뱃불로 그렇게 큰 불이 날 수 있을까? 이걸 실험하기 위해, 수사팀은 현장을 다시 만들기로 해. 사고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실험을 하기로 했어. 당시 상황과 동일하게 완전히 공간을 밀폐한 후, 전소된 침구류와 동일한 이불을 준비해 불이 붙은 담배를 이불 위에 올려뒀어. 담배는 점점 타들어 갔어. 하지만 다 탄 담배는 그대로 꺼져버렸어. 담배에서 나오는 열 대부분이 가연물(이불)에 전달이 안 되고 그냥 허공으로 열이 다 방사가 되어 버리고 극히 일부분만 가연물에 전달이 되기 때문에 그 열로는 이 조건이라면 이불에 불이 붙을 확률은 적죠. -김흥렬, 당시 건설기술연구원 박사 타고 있는 담배 위에 다른 물건을 올린 조건으로도 실험을 진행했어. 이번에도 불씨는 살아나지 않았어. 반면, 라이터로 불을 붙여 이불에 던지는 경우에는 불길이 치솟았어. 라이터 불로는 큰 불이 나는 게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어. 그래서 이대우 형사는 이 화재는 '방화'일 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확인해야 할 또 한가지. 어머니가 복용했다는 '수면제'. 장 씨는 어머니가 우울증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해 왔다고 진술했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치사량에 가까운 수면제를 한꺼번에 먹었다는 게 이상해. 일단 어머니가 수면제를 처방 받은 기록이 있는지 찾아봤어. 어머니는 수면제를 처방받은 적도,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도 없어. 그런데 뜻밖의 이름이 진료 기록에서 발견돼. 바로 장서희. 심지어 시신에서 검출된 성분과 똑 같은 성분의 수면제를 처방받았어. 그것도 사고 전날에. 이대우 형사 팀은 이제 거의 확신했어. 장 씨를 당장 소환해서 물어봤지. 그러자 장 씨는 본인이 먹으려고 처방 받았다고 진술했어. 엄마가 수면제 먹는 걸 보고 저도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어요. 2006년이었나. 우울증 때문에요. -어머니 사망 관련 장 씨의 3차 진술 수사팀은 각종 실험, 진술을 종합해서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어. 하지만, 이번에도 기각이야. 도대체 왜 자꾸 기각되는 걸까. 검사출신 변호사한테 그 이유를 직접 들어볼게. (검사가) 되게 고민이 깊었을 거 같아요. 왜냐면 범죄 소명은 좀 부족한데 도망의 우려는 되게 높잖아요. 근데 여기서는 라이터를 구매한 내역이라든지 들고 들어갔다라든지, 범행을 사전에 모의했다는 CCTV나 범행 도구 구입 내역이나 그런 거에 대한 입증이 없잖아요. 일단은 '죄를 저지른 거 같아' 거기다가 '구속하지 않으면 도망가거나 증거를 없앨 거 같아'가 두번째인 거지, 소명조차 되지 않는 사람을 도망갈 거 같으니까 구속시킬 수 없는 거잖아요. 검사 입장에서, 형사소송법도 그러하고. -이고은 변호사 도주의 우려가 있다 할지라도, 범죄 소명이 부족한 피의자를 구속할 수 없다는 거야. 형사들의 입장은 어땠을까? 정황증거만으로도 구속되고 유죄까지 받는 경우가 있었대. 이번 사건은 왜 이리 기준이 높은 건지, 답답하고 아쉬웠대. 그리고 무엇보다, 장 씨가 또 도망갈까 초조했어. ▲ 억울하다는 사람의 이상한 한마디 그런데 장 씨가 이번엔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해. 바로 TV출연. 한 지상파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해. 어떻게 불이 났는지 저도 모르겠는데 그냥 저는 소방서에서 나온 결과가 '담뱃불로 추정됨'이었으니까 '아 그래요?' 그런 줄 알았고. 아빠 조사 결과도 일산경찰서에서 '사고사로 추정됨' 이렇게 나왔으니까 그런 줄 알았고 믿었으니까. 경찰관분들을 그 때는. 서대문 경찰서에서는 제가 던졌대요. 아빠를 번쩍 들어서. 말이 되냐고요. 그렇게 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영장도 기각 안 됐을 거고. 수배중인 사람이 영장이 기각되지는 않잖아요. -2012. 10. 19. 장 씨의 '궁금한 이야기Y' 출연 영상 中 장 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어. 담뱃불 때문에 불났다고 말한 적도 없고, 아버지가 담배 피우다 떨어졌다는 것도 경찰의 추측에 동의했을 뿐이래. 심지어는 이런 하소연도 했어. 엄마 아빠가 정말 이혼뿐만이 아니라 되게 비정상적인 가정이었어요. 엄마는 우울증에다가 의부증이 좀 심했던 것 같아요 남자들한테. 몇 번은 재혼했을 때는 잘 살려고 노력했었는데 되게 두들겨 맞은 적도 있나 봐요. 폭행을 당한 적도. 정말 마음에 병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2012. 10. 19. 장 씨의 '궁금한 이야기Y' 출연 영상 中 이런 가정사 때문에 경찰이 자신을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는 거야. 비록 평범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을 죽일 이유는 전혀 없다는 거야. 이 방송을 본 형사들은 어땠을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지, 정황 증거로는 구속영장도 안 나와. 게다가 방송까지 나와서 억울하다고 해.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야.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이대로 포기할 '범죄사냥꾼'이 아니지. 당장 장 씨를 구속할 수는 없지만, 기소의견('범죄 혐의가 인정된다는 의견'을 검찰에 전달하는 것)으로 검찰에 송치할 수는 있어. 보험사기, 존속살해 혐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장 씨를 철저하게 조사했어. 그리고 새로운 게 더 발견됐어. 조사를 하면 할수록, 장 씨의 사기 행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나. 동생, 시어머니, 친인척한테 갈취한 금액만 4억 5천만원이야. 장 씨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던 걸까.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돈에 집착한 걸까. 장 씨의 내연남 고 씨가 한 진술이 있어. 주식에 환장을 하는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막말로 마약에 금단현상 있는 사람이 마약을 봤을 때 환장하고 진짜 미친다 그러잖아요. 돈을 보면 그렇게 사람이 변해요 -장 씨의 내연남 고 씨의 진술 中 주식으로 생긴 빚이 많았는데, 돈이 생겨도 빚을 갚기는커녕 또 다시 주식에 올인. 중독이 엄청 심했대. 어머니 사망 전 3억 4천만원이었던 빚이, 아버지 사망 후에 4억 2천만원으로 늘어나 있었어. 장 씨는 돈이 필요했던 건 맞지만, 부모님 죽음과는 무관하다고 끝까지 주장했어. 하지만 경찰이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마지막 결정적 이유가 있었어. '네가 엄마 아빠를 그렇게 했을 거라는 거는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 안 믿겨지는데?' 그러니까 자기가 갑자기 장난인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했는데?' 그렇게 하고 그냥 넘어가더라고요. -내연남 고 씨(가명), 당시 통화 장 씨가 본인이 직접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는 거야. 물론 이건 고 씨의 주장일 뿐이야. 통상적으로 범행을 한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은 그런 심리가 있는데요. 무의식 중에 발현된 것이 아닌가… -홍종현, 당시 소환 담당 형사 이런 고 씨의 주장이 증거로 효력이 있을까. 다행히 대질신문을 통해서 진술이 서로 일치만 한다면, 상당히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대. 자, 이제 마지막 단계야. ▲ 또 사라졌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끝까지 수사력을 모았던 이대우 형사팀은 최종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어. 범죄혐의가 있다는 의견을 마지막까지 피력한 거야.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혀내려 했던 서대문의 장 씨 재수사팀은 그렇게 각자 다른 부서로 뿔뿔이 흩어졌어. 그럼, 장 씨는 어떻게 됐을까? 기소가 돼서 재판을 받았을까? 유죄는 인정 받았을까? 피의자 소재 불명으로 기소중지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어. 검찰조사를 앞두고 장 씨가 또 종적을 감춰버린 거야.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는데, 찾을 수가 없어.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야.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장 씨는 지명수배 상태야. 장 여인에 대한 수사를 엄청 방대하게 진행했는데 계속 잡았다가 놓치고 잡았다가 놓치고 이런 상황들이 너무 허탈하고. 당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면, 재판하는 과정 중에 충분히 자백을 받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아서 사실 원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홍종현, 당시 소환 조사 담당 형사 이게 제가 강력팀장으로 재직하면서 맡은 마지막 사건이거든요. 사건을 시작하고 뼈대까지 세워놨지만 마무리를 못했어요. 하나의 사건을 종결을 했어야 됐는데 그걸 못하고 떠났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그게 아직도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당사자인 그 여인이 도망 중이라는 거에 깜짝 놀랐습니다.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이대우, 당시 서대문 경찰서 강력팀장 차라리 무죄를 받았다면, 그래서 혐의를 벗고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면. 지금까지 이런 악연으론 남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리고 2023년 현재까지도, 이 장서희를 추적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바로 이대우 형사. 이 형사는 아직 이 사건을 놓지 않았어. 이미 검찰로 넘어갔지만, 조사가 가능한 선에서 생활반응을 계속 추적 중이래.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나온 건 없어. 수사 기관에서 추적하고 있다는 걸 100%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의 신분으로 된 모든 것을 차단해 놓고 제3자의 명의로 생활하고 있다는 거죠. 그 동안의 범죄 형태를 봤을 때, 또 다른 피해자는 분명히 누군가는 지금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저는 확신해요. 그래서 그걸 예방도 하고 빨리 조기검거를 해서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냥 법정에 세우고 싶어요. 그래서 정말 진실이 뭔지 밝여야겠죠. -이대우, 당시 서대문 경찰서 강력팀장 사실 '꼬꼬무'가 인터뷰를 처음 제안했을 때, 많이 망설이셨어. 형사 입장에서는 피의자를 놓친 오점일 수 있잖아. 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건 막아야 하니까, 어렵게 결심을 하신 거야. 형사들의 용기로 만들어진 오늘의 이야기가, 부디 또 다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길 바랄 뿐이야. '꼬꼬무'가 오늘의 이야기를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어. '무죄 추정의 원칙' 알지? 형사사건의 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엔 무죄로 추정해야한다는 것. 장 씨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의심이 가더라도, 아무리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장 씨를 존속살해범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돼. 그럼에도 '꼬꼬무'가 오늘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장 씨가 수사기관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숨어버렸기 때문이야. 끔찍한 존속살해 혐의를 벗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는데도 말이지. 이 잔혹한 미스터리의 진실을 알고있는 단 한 사람, 장서희. 그녀가 하루 빨리, 진실의 입을 열어주길 바랄 뿐이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