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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스포츠협회, '부정행위 방지 교육 특별강사' 첫 운영
등록일2025.03.05
▲ 프로선수 대상 교육 장면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프로스포츠의 공정성 강화와 프로선수다운 자세 함양을 지원하기 위해 '부정행위 방지 교육 특별강사' 제도를 운영합니다. 전직 프로선수, 법조인, 현직 프런트로 구성된 특별강사들이 현역 프로선수들을 교육하는 것으로 이번에 처음 운영됩니다. 이택근 전 프로야구 선수, 임민혁 전 프로축구 선수, 손영배 변호사(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김수환 변호사(KPGA 고문변호사), 손민정 변호사, 이영웅 변호사(KPGA 상벌위원회 위원), 케이비엘 이혁준 경영관리팀장, 한국프로축구연맹 법무팀장 출신 김동민 변호사,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황명호 사무국장 등 총 9명이 특별강사로 나섭니다. 특별강사는 지난해 강사 역량 교육과 커리큘럼 이해 교육을 모두 이수했고, 올해 1년간 현장에 투입됩니다. 이들은 본인의 경험과 실제 사례, 징계 규정과 법적 처벌 정보를 함께 전달해 교육 효과를 높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KBO 10개 구단을 비롯한 프로축구(26개 구단), 프로농구(10개 구단), 여자프로농구(6개 구단), 프로배구(14개 구단) 총 66개 구단과 프로골프 선수(회원)를 대상으로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사진=한국프로스포츠협회 제공, 연합뉴스)
[꼬꼬무 찐리뷰]'150억' 일본 돈 탈취 성공했지만…밀정 때문에 무너진 '철혈광복단'
등록일2025.02.28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7일 방송된 '철혈광복단-역사를 뒤바꿀 비밀 작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추상미, 코미디언 신기루, 야구 해설위원 이택근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미지의 땅, 블라디보스토크 때는 1994년 7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야. 조용한 한 마을에, 작은 버스 한 대가 멈추고, 그 안에서 열댓 명 되는 사람들이 내려. 며칠 전 한국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야. 사람들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어. 누군가는 열심히 사진과 영상을 찍고, 또 누군가는 수첩과 펜을 들고 일일이 기록을 하고 있어. 당시 찍은 영상이야. 이곳에 보고 있는 이 탑은 1918년부터 1922년까지 한국인들이 투쟁하다 죽은 걸 기념하여 세운 탑입니다. 여기에 유물들이 한국의 것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들어오는 일본군에 대항하여 기관총을 놓고 지켜준 장소입니다. 이들은,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한 재단의 연구원들이야. 이 영상을 찍 사람은 사학자 박환 교수. 러시아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를 조사하고 있는 거야. 1994년 7월에 러시아 연해주에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을 한 팀은 아마 저희가 최초일 것입니다. 1990년에 한국과 러시아가 국교를 수교했거든요.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경우는 1992년이 돼서야 비로소 민간인들한테 개방이 됐습니다. 그래서 독립운동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잘 알기 위해서 답사라든가 이해가 상당히 필요했습니다. -박환, 당시 연구팀원, 한국학 박사 블라디보스토크는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금단의 구역이자 베일에 싸인 장소였어. 박환 교수는, 또 언제 이곳에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연구에 몰두했어. 유물과 유적 발굴은 물론이고, 독립운동가 묘소를 찾아다니며 그 모든 흔적들을 영상으로 남겼어. 그 중에서도, 특히 박환 교수가 조사하고 싶었던 한 독립운동가가 있었어. 그 흔적을 꼭 찾고 싶어. 해외에서 활동했다는 이 독립운동가는 국내엔 자료가 거의 없었대. 그래서 혹시나 러시아에는 그 흔적이 있을까, 찾아보기로 한 거야. ▲ 버스기사의 뜻밖의 정체 근데, 러시아가 좀 넓어?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는 이제 막 개방이 된 미지의 영역이야. 조사는 한 달 가까이 이어졌어. 박환 교수는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캠코더로 바깥 풍경을 찍었어. 그렇게 몇 시간을 이동하는데,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져. 근데 그 순간, 대뜸 누군가 말을 걸었어. 버스기사였어. 버스기사님이 함경도 말을 쓰는 고려인이라 대화가 통했어. 버스기사가 박환 교수에게 이런 걸 물었어. 혹시... 최계립이라고 아십네까? 최계립. 좀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박환 교수는 최계립이라는 이름을 너무 잘 알고 있었어. 왜인지 직접 들어봐. 저는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러시아 유적지, 독립운동 사적지를 조사하고 탐방할 때, 제가 체크한 리스트에도 들어가 있는, 만주와 러시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흔히들 저희가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거의 그런 급이다, 라고 말씀을 드려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분의 활동이라든가 이런 것은 독립운동에 있어서 대단한 그러지위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최계립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요. -박환, 당시 연구팀원, 한국학 박사 건국 훈장, 대한민국 건국에 큰 공로를 한 사람들에게 주는 훈장이지. 최계립은 우리나라 건국 훈장 중 세 번째로 높은 독립장을 받은 인물이었어. 근데 그런 이름을, 버스기사가 갑자기 툭 꺼낸 거지. 최계립 선생이요? 그럼요 잘 알지요, 아주 큰 일을 하신 분 아닙니까. 아이고, 정말 그 이름을 아십네까? 그분이 우리 아바이입니다. 엥? 이게 무슨 소리야? 이 버스기사의 아버지가, 바로 최계립이라는 거야. '우리 아바이' 뭐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셨는데, '우리 아버님이 최계립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바로 옆에 그분의 후손이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거죠. -박환, 당시 연구팀원, 한국학 박사 한국에서부터 오랫동안 그 흔적을 쫓던 인물인데. 바로 옆에, 최계립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딱! 있었던 거야. 이 버스기사의 이름은 최다니엘이야. 우선 성은 최계립과 같아. 근데, 진짜 아들이 맞을까? 박환 교수는 확인을 위해 캠코더를 세우고, 최다니엘 씨를 인터뷰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최다니엘 씨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외형이 어땠는지, 독립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아버지의 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어. 사실 이런 건 누구나 독립군에 대해 흔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지. 그래서 박환 교수가, 그에게 물었어. 혹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아버지에 대한 자료가 있냐고. 아, 사진은 지금 내한테 있지 아니한데, 집에 우리 아바이게 있는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최다니엘 씨가 이런 걸 가져왔어. '간도 15만원 사건에 대한 40주년을 맞으면서, 최계립' 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 뭉치. 이게 아버지 최계립이 직접 쓴, 41장짜리 수기래. '간도 15만원 사건' 들어봤어?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엄청난 충격을 줬던 독립군의 비밀 작전이자, 해외 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긴박했던 사건 중에 하나야. 근데 '간도 15만원 사건'에 대해 쓴 수기가 있다? 지금껏 들은 바가 전혀 없어. 게다가 독립운동가가 직접 본인의 활동을 기록한 경우는 흔치 않아. 박환 교수는 이 수기를 차근차근 읽어봤어.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내용이 장난 아니야. 지금껏 역사에 빈칸으로 남아있던 내용들이 술술 나와. 진짜 최계립의 수기인 거야. 최다니엘 씨는 최계립의 아들이 맞았어. 대단한 항일운동가가 직접 쓴 수기를 보기는 처음이거든요. 그 감동은 어마어마하지 않겠습니까. 수기가 발견이 됨으로써 간도 15만 원 의거의 내면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 독립운동계의 또 그 속살. 이런 것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독립운동가 중심의 어떤 간도 15만 원 의거를 부활시키고 복원할 수 있는… -박환, 당시 연구팀원, 한국학 박사 국내에는 남아있는 사료가 많지 않아, 그동안 단편적인 내용만 알려졌었대. 그런데 이 수기가 드러나면서, 이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진 거야. '간도 15만 원 사건'이 어떤 사건일지, 이 수기를 따라서 106년 전으로 돌아가 볼게. ▲ 독립 비밀 결사, 철혈광복단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어.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만세운동이 일어났잖아. 만세운동의 열기는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해외에 사는 동포들에게도 전해졌어. 그중 제일 분위기가 달아오른 곳이 있었어. 간도 지역에 용정이라는 곳이야. 만세운동이 시작되고 열흘 만인 3월 13일, 용정에선 독립을 기원하는 만세운동이 벌어졌어. 당시 약 2만 명의 사람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뛰쳐 나왔대. 다 같이 만세를 외치며 용정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으로 향했어. 행진의 끝이 보이던 그때, 무장을 한 군인들이 보여. 그러더니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만세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어. 바닥엔 핏자국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울부짖었어.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넘는 사람이 중상을 입었어. 그날 이후,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선 총칼을 든 왜놈에, 우리도 총칼을 들고 맞서야 한다 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어. 이런 분위기 속 무장 투쟁을 준비하는 독립운동 단체가 하나 있어. 그 단체의 이름이 뭐냐, 鐵血光復團(철혈광복단). 쇠 철, 피 혈 자를 써. 이름부터 굉장히 강렬하지? 이 철혈광복단,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게 없어. 일제에 들키지 않게 은밀하게 활동하던, 비밀결사 단체니까. 그나마 알려진 건, 민족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정도야. 그리고 용정에서 있었던 만세운동도, 바로 이 철혈광복단이 주도했던 거래.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있는 독립운동, 3.1운동을 준비하거나, 실질적으로 활동하고 그걸 이끌어 나가는 주력으로 3.1운동 이후에 어떤 모든 독립운동 과정을 철혈광복단 세력들이 주도적인 활동을 한 거죠.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 박사 근데 용정 만세운동 때, 사람들이 많이 죽고 다쳤잖아. 철혈광복단은 이제 무기를 들고, 일제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주 큰 문제가 있었어. 무기를 살 돈이 없는 거야. 일제의 수탈 때문에, 나랏돈이 없었던 거야. 특히 일제의 수탈이 심했던 1919년 한 해에만, 약 1억 2천 만원이 넘는 돈을 빼앗아 갔대. 지금으로 치면 12조원에 달하는 돈이야. 당시 노동자의 하루 임금은 1원이었어. 그러면 우리나라를 벗어나 간도나 러시아에서 지내는 한인들 사정은 어땠을까?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농사를 짓는 게 전부였어. 독립군을 위한 무장에는 엄청난 군자금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만주나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대부분 다 빈농들이에요. 한반도에서 살기가 어려워서 그냥 할 수 없이 떠난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내지만 한계가 있단 말이에요.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 박사 ▲ 일제에 빼앗긴 돈을 되찾자 이렇게 군자금 문제로 고민하던 사이, 6개월이 지났어. 1919년 9월, 북간도에 있는 한 마을이야. 철혈광복단원 최봉설의 집에 누군가 찾아왔어. 누구시오? 우죽 선생, 나요 우죽 선생은, 철혈광복단원들끼리 부르던 암호야. 최봉설을 찾아온 건, 같은 단원인 윤준희라는 남성이었어. 둘은 그 집에서, 은밀하게 대화를 나눴어. 그나저나 걱정이오. 빨리 무기를 사야 왜놈과 싸울텐데, 그 금전을 어찌하면 좋겠소? 안 그래도 얼마 전 그 문제에 대해 우죽 선생들과 얘길 나눴소. 그때 나온 방편이 하나 있긴 한데... 그가 말하는 방편, 일제가 빼앗은 우리 돈을 다시 찾아오자는 거였어. 수탈당한 돈을 되찾아, 그 돈으로 무기를 사자는 거야. 일제로부터 돈을 되찾을 방법,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이들이 떠올린 한 사람이 있었어. 전홍섭이라고, 바로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용정에 있는 조선은행. 조선은행은 일제가 식민지 통치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세운 은행이야. 전홍섭은 일본은행에서 일하는 조선인이었던 거야. 전홍섭에게 원하는 건 은행 내부 정보. 근데 아무리 조선인이라지만 일제 치하에서 일하는 사람이잖아. 이런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단원들이 전홍섭을 떠올린 이유가 있었어. 용정 만세운동 때, 다친 사람들을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때 그 일을 도와준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전홍섭이었어. 일본 은행에서 일하지만, 분명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지. 며칠 뒤, 용정에 있는 조선은행이야. 전홍섭이 자리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어. 그런데 돈 사이에서 '전홍섭 동지, 긴히 요담할 일이 있으니, 해가 지면 병원 뒤쪽 공동묘지로 나오시오'라는 서신을 발견했어. 이걸 받은 전홍섭은 고민 끝에 약속 장소로 갔어.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비췄어. 윤준희였어. 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소. 만세 시위 때부터 자네를 지켜보았소. 우리를 도와주시오. 이 말을 들은 전홍섭, 말이 없어.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어. 우린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려는 것이오. 왜놈들로부터 돈을 되찾으려면, 우린 당신의 도움이 꼭 필요하오. 한참을 망설이던 전홍섭이, 입을 열었어. 곧 우리 쪽으로 큰돈이 들어올 일이 있을 것이오 전홍섭의 말은 이랬어. 일제가 대륙 침탈에 필요한 철도 부설금을 용정 조선은행으로 보내기로 했다는 거야. 바로, 그 돈을 확보하면 되는 거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중국과의 전쟁 또는 러시아와 전쟁할 때에 일본군의 수송, 그걸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철도를 부설하는 게 제일 우선이고, 철도를 일본이 관리하는 자금의 일환이었다고 그러죠. 근데 그거를 확보를 한다는 거니 기막힌 아이디어죠. -반병률, 사학자 철도 부설금은,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조선은행에서, 간도에 있는 용정 조선은행으로 이동한대. 회령에서 용정까지는 약 120리, 지금으로 치면 50km가 거리야. 근데 차도나 철도가 없는 지역이야. 그래서 말에 실어서 이동해야 해. 호송대가 돈을 가지고 말로 이동하는 그때! 습격을 하는 거야. ▲ 목숨을 건 작전 현금 소송은, 삼엄한 경비가 필요하지. 호송대는 중무장을 할거야. 이에 맞설 철혈광복단도 최정예 멤버를 모집해야 해. 어떤 사람이 적합할까? 현장 지리도 잘 알아야 하고, 무기를 다루는 능력, 말 타는 실력, 격투 기술까지 있어야 해. 그렇게 선발된 인원이야. 전홍섭과 접촉했던 윤준희, 최봉설을 비롯해, 임국정, 한상호, 박웅세, 김준 까지. 20대 초반의 청년 6명이 모였어. 이들은 본격적으로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해. 우선 단원 몇 명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갔어. 작전에 쓸 총을 사러 간 거였어. 당시 러시아에선 독립군들도 무기 구매가 가능했대. 자기가 키우던 송아지를 팔고, 그 돈으로 총을 샀다고 해. 바로 이 총이야. 러시아제 브라우닝 권총. 안중근 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을 때 쓴 총과 같은 거래. 이 총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사거리가 짧고 명중률이 낮아. 심지어 불발하는 경우도 있어. 그야말로 목숨을 건 계획이야. 완벽하게 준비해야 해. 호송대가 밤에는 대응하기 힘들 것이니 해가 떨어진 후 습격하기로 했어. 그럼 아침에 출발한 호송대가 동량어구 쯤을 지날 거야. 그렇게 매복 장소는, 동량어구로 정해졌어. 매복 해서 급습하려면 호송대와 가까워야해. 용정으로 진입하는 좁은 길이자 유일한 길목이야. 그리고 인원 배치는 세 명씩 두 조로 나눴어. 윤준희, 박웅세, 김준이 한 조가 되고, 최봉설, 임국정, 한상호가 한 조가 됐어. 윤준희 조가 앞쪽에 있다가, 호송대가 오는 걸 확인하면 최봉설 조에게 신호를 보내. 그리고 호송대가 그곳을 지나갈 때, 6명이 앞뒤에서 동시에 습격하기로 했어. 탈취에 성공하면 박웅세와 김준은 마을로 도주해 숨고, 최소 인원만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했어. 계획을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목적지는, 일제에 대항할 무기를 살 수 있는 곳.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야. 근데 아직 파악을 하지 못한 정보가 있어. 바로 현금 호송 날짜. 철혈광복단원들은 애타게 전홍섭의 연락을 기다렸어. 단원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그때, 은밀하게 서신이 하나 전달됐어. 붓에 먹물을 묻혀 문지르니, 비밀서신에서 글씨가 나왔어. 一月 四日. 거사 날은 1월 4일이야. ▲ 운명의 그날 드디어 1920년 1월 4일.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조선은행이야. 아침 이른 시간부터, 호송대가 돈이 든 궤짝을 말에 실었어. 호송대는 일본 순사와 은행원, 우편물 호송인 등 총 6명. 호송대는 허리에 도검을 차고, 장총에 권총까지 장착했어. 완전 철통 보안인 거지. 그날 오후, 동량어구야. 길목 아래 언덕에는, 철혈광복단원들이 매복했어. 손에는 총을 들고, 호송대가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숨죽여 있다가, 호송대가 이 길을 지나갈 때, 정확히 덮쳐야 해. 기회는 단 한 번이야.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호송대는 오질 않았어. 해는 졌고 날은 추워. 단원들은 하나 둘 지쳐가기 시작했어. 다들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하던 그때, 멀리서 말굽 소리가 들려와. 잠시 후, 말굽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어렴풋이 일본어가 들려. 호송대가 드디어 동량어구에 온 거야. 호송대원들은 목적지에 거의 도착해 안심한 듯 했어. 그 순간! 사격!! 신호와 함께, 철혈광복단 여섯명이 동시에 뛰어올랐어. 탕! 탕! 총소리와 함께, 말에 탄 순사와 호송 대원이 굴러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도 혼비백산이 돼서 여기저기 도망가기 바빴어. 예상치 못한 습격에, 호송대가 손도 쓰지 못하고 순식간에 당한 거야. 윤준희와 최봉설은 궤짝이 실린 말에 올라탔어. 단원들은 약속한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박웅세, 김준은 재빠르게 마을로 숨고, 나머지 넷은 산 깊은 곳으로 향했어. 한 10리쯤 달려왔을까? 산 중턱이야. 주변을 확인하고 궤짝을 내렸어. 어두운 산속, 유일한 빛인 달빛에 비춰 둘은 짐을 풀었어. 10원권 100장씩 묶여서 50개, 5만 원 이야. 5원권 200장씩 묶여서 100개, 10만 원이야. 총 15만 원이야. 1920년에 15만 원, 지금으로 치면 얼마나 될 것 같아? 15만 원은 학자들마다 여러 견해가 있는데 현재 금액으로는 학자들에 따라서는 한 150억 정도 된다, 라고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돈이었어요. 1919년에 4인 가족 기준으로 해서 한 25원 정도면 됐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게 15만 원이니까요. 어마어마한 어떤 무장을 할 수 있는. 그 당시에 북로군정서가 이제 대원이 한 500명 정도 됐는데 그런 게 한 9개 부대 정도가 편성될 수 있는, 그러한 정도의 화력 무장력을 갖추는 그 정도의 어마어마한 돈이 그 당시에 의거로 갖고 온 것이죠. -박환, 사학자 지금으로 치면 150억, 엄청난 금액이었던 거야. 그때 러시아에서 총과 탄환 세트가 35원에 거래됐어. 그럼 이거 4천 개 이상을 살 수 있는 돈이야. 이제 서둘러 이 돈을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야 해. 그런데 임국정이 말에 올라타더니, 정반대 방향인 백두산 쪽으로 향했어. 이것도 작전이었어. 겨울이라 발자국이 남으니, 추적에 혼선을 주려 한 거야. ▲ 최종 목적지, 블라디보스토크 그 무렵, 일제 측에서 현금을 수송하던 호송대가 습격당했다는 걸 알게 됐어. 현장에서 두 명이 사망했고, 돈 15만 원까지 빼앗긴 상황이야. 일제는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고 일본 경찰 11명을 현장에 급파시켰어. 이건 분명 현금 수송 일을 아는 자의 짓이라고, 은행 안에 범인과 내통한 자가 있을 거라 여겼어. 내부자 색출에 나선 일본 경찰은, 평소 한인과 교류가 잦다는 전홍섭을 의심하기 시작해. 사건 당일 밤, 전홍섭은 체포되고 말아. 그리고 강도 높은 고문을 받아.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용정지점으로 15만원의 현금을 운송하던 도중 십여 명의 무기를 가진 자들이 달려들어 두명을 살해하고 현금 15만원 전부를 빼앗아 가지고 달아났다는 데 범인은 아직 잡지 못한다더라. -매일신보, 1920년 1월 8일 기사 中 사건 나흘 후의 기사야.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내용이야. 그리고 범인을 10여 명이라고 추정하고 있지? 범인의 숫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단 거지. 왜였겠어? 이때까지, 전홍섭이 입을 열지 않았다는 얘기야. 같은 시각, 철혈광복단원들 역시 한시가 급해. 체포된 전홍섭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빨리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에 올라타야 하거든. 견대에 싼 돈을 몸에 묶고, 두루마기를 겉에 두른 채, 일제의 눈을 피해 3일을 쉬지 않고 걸었어. 그렇게 항구에 도착한 네 사람은, 무사히 블라디보스토크행 배에 탔어. 캄캄한 망망대해를 지나 다음날 이른 새벽. 저 멀리 어두운 항구에 번쩍번쩍 불빛이 가득해. 드디어 러시아에 도착한 거야. 배에서 내려 러시아 땅을 밟는 순간, 단원 한 명이 말해. 잠깐만, 아직 긴장을 풀지 마시오. 지금 왜놈들이 여기저기 깔려있소 보니까, 여기저기 일본군들이 깔려있어. 당시 일본은 러시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어. 근데 러시아 내에서 정부군과 혁명군이 내전을 벌인 거야. 그동안 러시아 정부군과 협력했던 일본은, 러시아 정권이 바뀌면 손해야. 그래서 러시아 정부군을 도우려고, 일본군이 이곳에 상주하고 있었던 거지. 다행히 단원들은, 일본군들의 눈을 피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갔어. 한인들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이자, 독립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어. 다행히 신한촌 한인들은 이들을 반겼어. 그중 한 한인이, 이들에게 도움을 줬어. 그의 도움으로 은신처에 몸을 숨길 수 있었어. 몸을 녹인 이들은 곧 비밀회의를 열었어. 돈은 윤준희 동지가 관리하고, 무기는 임국정 동지가 사는 걸로 하지요. 그 사이, 사건이 일어난 용정에서 일본 경찰은 아직도 헤매고 있어. 게다가 러시아 내전에서 혁명군이 승기를 잡았어. 그리고 점점 동진해 오고 있어. 일본 입장에선 발 등에 불이 붙었어. 상황에 따라, 되려 일본군이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일본 경찰은 4-50명씩 나서서 간도 전역을 수색했어. 조선은행 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체포한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입을 열게 하라! 조선은행권을 쓰는 모든 사람을 다 잡아들이기로 한 거야. 죄 없는 조선인 농민들을 무작정 체포해서 악행을 가한 거야. 그리고 이런 걸 배포하기도 했어. 포고 제2호.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5원권과 10원 권을 사용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보고할 것. 신고자에겐 대가를 지불하겠음. 이들을 잡으려고, 현상금까지 걸은 거야. 무기를 살 때 조선은행권을 쓰면, 일제의 레이더에 걸릴 거야. 그러니 환전을 해야 해. 이 환전도 암암리에 해야 해. 그리고 은밀하게 무기를 구매해야 하는 거지. 이걸 안 들키고 하려면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마침 무기 구매를 맡은 임국정이 이렇게 말했어. 내가 우리 일을 도와줄 적합한 자를 알고 있소. 아마 그 자라면 가능할 거요. 그가 말한 자의 이름은, 엄인섭이었어. ▲ 마지막 임무의 적임자, 엄인섭 엄인섭, 바로 이 사람이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홍범도 장군이야. 그 옆에 있는 자가, 바로 엄인섭. 어떤 인물일 것 같아?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한 안중근의 의형제였다는 거죠. 안중근 의사가 1907년에 가거든요. 러시아 연해주로. 그래서 연해주로 갔을 때, 자기가 만난 의기투합 된 두 사람을 딱 뽑는데 한 사람이 엄인섭이고요. 안중근 의사와 같이 동의회 의병의 국내진공작전 때 같이 들어왔던 사람, 러시아 지역의 3.1운동을 이끌고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로까지 지명될 정도로, 애국자로서 알려진 사람이에요. -반병률, 사학자 엄인섭은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이었어. 안중근 의사와 함께 단지 동맹을 맺고 의형제처럼 지냈다고 알려졌어. 1908년 안중근 의사와 함께 의병부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기도 한 자야. 게다가 러시아어도 잘했어. 임국정은 무기를 살 돈을 들고 엄인섭을 만나러 떠났어. 거래가 성사될 때까지 며칠이 걸릴 거야. 1분 1초가 급하지만, 이 거래만 잘 끝나면 모든 게 술술 풀리는 거야.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설 연휴야. 집마다 새해를 맞이하는 들뜬 분위기 속에서, 남은 세 청년만 초초한 마음이었어. 무기를 사러 떠난 임국정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당최 올 때가 됐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고 있어. 며칠이 더 지나, 1월 30일이야. 기다리던 임국정이 돌아왔어. 근데 한 명이 아니야. 임국정 옆에, 처음 보는 얼굴이 있어. 바로 무기 구매를 도와준, 엄인섭이었어. 둘의 표정이, 아주 좋아. 일은 잘 치렀소. 내일 저녁 총과 탄환, 기관총을 거래하기로 했소. 이게 다 엄인섭 동지 덕분이오. 이제 가서 돈을 주고 무기만 받아오면 된다는 거야. 날만 밝으면, 무기를 받고 그렇게 염원하던 독립투쟁을 할 수 있는 거야. 단원들은 간만에 소박하게나마 국수에 술 한잔을 먹고 잠을 청했어. 다음 날인 1월 31일,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이 기사를 한 번 봐봐. 31일 오전 3시쯤 되어 잠복하고 있는 신한촌을 격한 결과 범인을 체포…도적질 한 돈과 혈포 탄약 가방 등을 발견하여 압수하였다. -매일신보, 1920.02.06 기사 단원들은 체포되고 탈취한 돈도 다시 빼앗겼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날 새벽, 3시로 돌아가볼게. ▲ 수포로 돌아간 계획 철혈광복단원은 은신처에 모여서, 다 같이 잠을 자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이들의 은신처를 찾아와 문을 두드렸어. 그리고 문을 박차고선, 단원들이 자고있는 방으로 들이닥쳤어. 일본 헌병대였어. 잠에서 깬 이들은, 손 쓸 새도 없이 헌병대에게 제압당했어. 헌병대는 포승줄로 이들을 결박하기 시작했어. 그 순간, 최봉설이 주먹으로 헌병대의 얼굴을 가격했어. 그리곤 밖으로 재빠르게 도망쳤어. 그때 헌병대가 쏜 총에, 최봉설이 오른쪽 어깨를 맞았어. 최봉설은 총에 맞은 어깨를 부여잡은 채 무작정 뛰어갔어. 하지만 최봉설을 제외한 나머지 단원들은 꼼짝 못 하고 그 자리에서 모두 체포됐어. 일제가 어떻게 알고 온 걸까? 이들의 체포 과정에서, 아주 큰 공을 세운 일본 경찰이 있었어. 이름은 기토 가쓰미.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통역관으로 활동했는데, 사실은 비밀리에 경찰로 일하고 있었어. 주로 비밀결사, 독립운동가를 사찰하고, 체포하는 일을 했대. 기토 가쓰미는,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는 능력이 뛰어났대. 그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었거든. 일본 영사관 직원들이 자기가 관리하는 밀정들이 몇 명씩 있었던 모양이에요. '기토'라는 사람이 제일 유명한 한인 밀정을 관리했던 한국어 통역이었죠.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소속됐던 사람인데요. 첩보 보고서나 일본 외무성 기록을 보면 기토 이름이 많이 나와요. -반병률, 사학자 바로, 밀정을 이용하는 거였어. 그럼 이 사건, 어떻게 된 거겠어? 내부에, 기토에게 보고한 밀정이 있었다는 얘기지. 누가 밀정이었을까? 이 밀정, 아주 오래전부터, 밀정으로 활약한 걸로 보여. 한국어 신문의 간행을 막으려 활자 15000개를 훔치기도 했고, 을사늑약을 체결시킨 일본 외교관을 암살하려 한다는 내용도 일제에 일러바쳤대. 고급 정보를 전부 넘겨주던, 어마어마한 밀정이었던 거야. 그게 누구냐, 일제가 쓴 명단에, 그 이름이 나와 있어. 밀정의 정체는 엄인섭. 철혈광복단 무기 구매를 도운 자, 안중근과 단지 동맹을 맺고, 의형제처럼 지냈던 자. 독립군이 그토록 신뢰했던 엄인섭이, 바로 밀정이었던 거야. ▲ 변절자 엄인섭 이 사람의 애국심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에요. 1910년대 내내. 러시아 지역의 3.1운동을 이끌어갈 지도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로까지 지명될 정도로 1919년까지는 몰랐던 거죠. 그러니까 1920년 이 15만 원 사건 주역들이 갔을 때, 엄인섭이라는 사람을 누가 의심을 했겠어요? -반병률, 사학자 항일독립 운동에 있어서는 거물 중에 이제 거물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 엄인섭을 믿었던 거죠. 그렇게 대단한 항일운동가가 밀정이었을까? 라는 데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 있는 정보 보고에 엄인섭이 밀정이고,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던 의암 유인석 체포에 있어서도 기여를 했고. 그런 기록들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그럼으로써 그게 이제 알려진 것이 몇 년 되지 않습니다. -박환, 사학자 게다가 그는, 일본 경찰 중에서도 한 사람과 아주 긴밀한 사이였던 걸로 보여. 바로 기토 가쓰미였어. 1911년 6월 1일. 홍범도가 흑룡강 철도 공사에 인부를 보낼 계획인데, 노동의 대가로 무기 구입을 약속했다. -기토 가쓰미가 엄인섭으로부터 얻은 정보- 홍범도 장군이 무기를 사려 한다는 걸 엄인섭이 보고했단 내용이야. 아까 홍범도 장군이랑 같이 찍은 사진, 기억나? 뒤에선 홍범도 장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고 있었던 거야. 근데 엄인섭은 처음부터 밀정이었던 건 아니야. 그가 변절한 이유가 뭘까? 그가 밀정 행각을 한 기록은, 근 10년 전인 1911년부터 등장해. 1년 전인 1910년은,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해야. 그게 영향을 미친 걸까. 결국 밀정의 보고로, 철혈광복단원들은 체포됐어. 체포된 세 사람은, 경찰에 끌려가던 그제야, 엄인섭이 밀정이었다는 걸 눈치챘대. 다른 이유도 아닌, 믿었던 사람의 배신 때문에,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거사가 물거품이 된 거야. 기분이 어땠을까? 더 안타까운 일이 있어. 이들이 체포되고 몇 시간 뒤, 러시아 정부군과 싸우던 혁명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진입했어. 이게 무슨 얘기야? 만약 몇 시간만 늦어졌더라면, 일제가 힘을 못 쓰고, 체포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야.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혁명 세력에 의해서 다 완전히 보호받고, 또 자금도 있는 데다가 충분히 그 후 지원을 받아서 군수품들을 다 마련을 해가지고, 북간도로 가서. 이미 청년들은 엄청나게 몰려 있는 상태고 독립군이 되려고 하는 그런 인적 자원이 있는 상태에서 독립전쟁을 제대로 멋있게 크게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다 물거품이 된 거잖아요. 그것이 남긴 후유증이라는 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죠. -반병률, 사학자 체포 당한 단원들은 끔찍한 고문을 당했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경북도 청진, 서울을 다니며 재판은 3심까지 이어졌어. 1년 넘게 이어진 최종 재판 결과는 이렇게 나왔어. &<주문&> 피고 준희, 국정, 상호를 각각 사형에 처한다. 피고 홍섭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1921년 8월, 이들의 사형이 집행되고, 이렇게 간도 15만 원 사건은 끝이 났어. 임국정, 윤준희, 한상호 세 동무가 사형장에 나가면서 '일본강도놈들이 자그마한 우리 육체는 죽이지만 조선 독립할 정신과 강경심은 점점 살아있다. 조선은 해방될 것이다, 일본은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하였다. -최계립 수기 中 만약 밀정이 고발하지 않아, 예정대로 무기를 샀다면, 그래서 계획대로 독립운동을 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무래도 북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국내 진공 작전이 활발히 벌어졌을 것이고요. -박환, 사학자 독립전쟁 독립 무장투쟁의 양상이 크게 달라졌겠죠. 군사력이 크게 훨씬 더 강화됐을 거고, 우리 독립군들의 군사력 수준이 엄청 달라졌겠죠. -반병률, 사학자 ▲ 유일한 생존자, 최봉설 그럼 체포되지 않았던, 최봉설은 어떻게 됐을까? 재판 결과를 보면, 최봉설은 궐석 재판으로 사형을 받았어.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단 뜻이야. 이게 무슨 뜻이야? 끝까지 그를 잡지 못했던 거야. 철혈광복단원들이 체포되던 날, 총상을 입고 달아난 최봉설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어. 그 뒤로도, 항일무장투장 단체에 들어가 독립을 위해 싸웠어. 하지만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갔어. 그곳에서, 남은 여생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대. 그는 자신이 겪은 일, 독립을 위해 모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후손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줬대. 그리고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쳤던 시절, 함께 싸웠던 동료들을 기억하며, 눈을 감았대. 최봉설의 후손들은, 그의 독립을 위한 마음, 희생정신을 계속 기억하고 있어. 그중 한 명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 저는 증손이고요. 독립운동가 최봉설의 후손입니다. 최계립 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요, 진짜 이름은 최봉설입니다. 이모할머니가 저한테 최봉설이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어떻게 싸우셨는지 얘기해주셨습니다. 첫 느낌.. 처음에는 정말 영웅 같았고, 한국의 영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뻤죠. 말로는 감정을 설명을 못할 정도네요. -최 알렉산드르, 최봉설의 증손자 최봉설의 다른 이름, 뭐라고? 최계립. 사형당한 최봉설은 죽었고, 새로 태어나 다시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의미로 이름을 최계립이라고 바꾼 거야. 자필로 쓴 수기를 통해, 간도 15만 원 사건의 전말을 우리에게 전해준, 바로 그 사람이야. 그가 쓴 수기, 다시 한번 볼게. 임국정이는 순사놈들이 언덕 위에 나란히 하고 오는 것을 보고 사격 소리를 쳤다. 사격 소리와 같이 여섯 청년은 언덕 위에 뛰어오르며 순사놈들을 사격하여 말 위에서 뒹글뒹굴 굴러 떨어진다. 오백리 길을 삼일동안 왔다. 음력 동짓달 19일 저녁 아홉시에 해상 위로 떠나가는 륜선(배)은 고동소리를 크게 친다. 륜선에 앉은 네 청년은 세상만사를 성공한 줄로 생각했다. 십오만원 사건이 일시적으로 실패한 듯 하나 조선 해방 투쟁은 날이 갈수록 점점 강경해지고 승리하고야 말 것이다. 이 판결과 같이 최봉설이 이름을 고쳐 계립이라고 하였다. -최계립 수기 中 간도 15만 원 의거 같은 경우는 단순하게 보면 러시아에 가서 무기를 구입해서 무장투쟁한다, 라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민주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한민국의 건설을 앞당기려고 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한 점이었다, 라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환, 사학자 사회나 민족에 대해서 아주 강렬한 책임의식, 내가 그거를 해야 된다고 하는 그 희생 정신. 이런 것들이 아주 체질화된 사람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 목숨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던 그런 분들이었죠. 별 볼 일 없는 미미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엄청난 그런 대사건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고.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그런 활동, 사건이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반병률, 사학자 사형당한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선생은 서울 형무소 수인 묘지에 암장됐다가, 1966년이 되어서야 현충원에 안치됐어. 최봉설의 묘는, 마지막으로 생활한 카자흐스탄에 모시고 있대. 지금도 후손들은 독립을 위한 희생정신을 기리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 곧 있으면, 3.1절이야. 단순히 우리가 독립을 위해 싸운 날이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목숨 바쳐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그 덕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걸. 한번쯤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150억 자금을 탈취하라 …'꼬꼬무', 20대 독립 무장단체 '철혈광복단' 조명
등록일2025.02.27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일제강점기 시절의 비밀결사단 '철혈광복단'의 베일을 벗긴다. 27일 방송될 '꼬꼬무'는 '철혈광복단-역사를 뒤바꿀 비밀 작전' 편으로, 일제강점기 때 현 시세 약 150억 규모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탈취하려 했던 비밀 결사단 '철혈광복단'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특히 영화 '놈놈놈'을 연상시키는 3인의 독립군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최계립의 친필 수기가 방송 사상 처음으로 공개된다. 리스너로는 배우 추상미, 코미디언 신기루, 야구 해설위원 이택근이 출격한다. 일제 침략 당시 대한독립을 위해 20대 초반의 나이로 목숨을 바친 독립 무장단체 '철혈광복단'. 당시 '철혈광복단'은 일제가 우리나라 국민으로부터 수탈했던 15만 원, 현 시세로 150억에 준하는 일본-간도 철도 자금을 탈취하는 작전을 벌였다. 특히 주요 멤버 독립운동가 중 생존자였던 최계립이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해 후세에게 남긴 친필 수기가 '꼬꼬무'를 통해 방송 사상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라 관심을 집중시킨다. '철혈 광복단' 단원 중 윤준희, 박웅세, 김준, 최봉설, 임국정, 한상호 등 20대 초반의 최정예 멤버들은 독립 무장 운동을 위해 일본의 돈을 수탈하기로 결심하고, 간도 철도 자금을 위해 조선은행으로 향하던 당시 돈 15만 원, 현 시세 150억 원을 탈취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은 무려 150억 원에 달하는 자금으로 총, 탄환, 기관총뿐 아니라 언론사를 세우고, 군사학교를 만들어 대한 독립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지니고 있었다. 치밀한 작전 끝에 의거는 성공했지만 뜻하지 않게 모두 일본 경찰에 잡히고 만다. 일본 경찰이 기습했을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후 최봉설은 새로 태어나 싸운다는 의미로 최계립으로 개명한 후 독립운동을 이어가며 당시 사건을 친필 수기로 남겼다. 이 같은 이야기에 신기루는 어떤 마음으로 이 수기를 썼을까 너무 간절했을 것 같다 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추상미 역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라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번 '꼬꼬무'에서는 최계립의 수기를 통해 공개되는 당시의 생생한 현장 모습과 함께 이 모든 계획을 일본에 알린 밀정이 누구였을지, 또한 최계립의 후손이 직접 인터뷰에 응해 증조부의 활약에 대해 증언한다. 이에 대해 '꼬꼬무' 제작진은 이번 주는 삼일절을 앞두고 일제강점기 독립 무장 운동을 펼친 '철혈광복단'의 주요 단원 최계립의 수기를 방송 사상 최초 공개한다 라며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20대 초반 청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대해 달라 라고 밝혔다. '꼬꼬무'의 '철혈광복단-역사를 뒤바꿀 비밀 작전' 편은 27일 밤 10시 20분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이승엽 눈물·강민호 퇴장…이제야 밝힌 '베이징 올림픽 야구金' 뒷이야기
등록일2025.01.10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9일 방송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세븐틴 멤버 도겸, 배우 하도권, SBS 주시은 아나운서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때는 2008년 7월. 연습이 끝난 야구선수들이 줄줄이 버스에 타. 이때, 코치가 올라와서 선수 몇 명에게 이렇게 말을 해. 축하한다! 최종 엔트리 결과 나왔더라. 가서 잘하고 와... 이 소리를 들은 선수들이 너무 기뻐해. 선수라면 모두 꿈꾸는 무대, 꼭 한번 서길 원하는 그곳에 갈 수 있게 됐거든. 반면, 버스 가장 끝자리에 앉아서 이 모습을 보던 한 선수는 깊은 실망감을 느껴. 난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한 거니까.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 이 선수에게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져.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게. 저는 사실 기회가 앞으론 없을 줄 알았어요. 사실 엔트리가 바뀌는 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조금 실망을 했던 거 같고. 제가 알기로는 구단한테 먼저 연락이 온 것 같고요. 구단에서 이제 '엔트리가 변경이 됐다. 빨리 대표팀에 합류하라' 그래서 짐을 싸서 저녁 늦게 쯤에 서울로 이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윤석민, 당시 기아타이거즈 투수 최종 엔트리가 바뀌며 윤석민 선수가 극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됐어. 그럼 대표팀은, 어떤 대회를 준비하고 있던 걸까? 운동선수라면 모두 꿈에 그리는 무대, 바로 올림픽이야. 이번 '그날'의 이야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 관한 거야. 당시 출전했던 많은 선수들이 직접 그날의 뒷이야기를 전해줄 거야. 윤석민 선수가 마지막으로 합류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4명의 야구 대표팀이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게 돼. 베이징에 도착한 야구 대표팀은 선수촌에 입촌했어. 근데 이때, 특별한 느낌을 받은 한 선수가 있어. 베이징 선수촌에 딱 입촌을 했는데. 느낌이 그냥 너무 좋은 거야. 이 걸어가는 길 자체가, 처음 가는 베이징인데 자주 와봤던 느낌인 거고. '(택근이) 형, 느낌이 너무 좋은데요?' 이번 올림픽 동메달 이상에 대한 느낌이 왔어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 1차전 한국 vs 미국 선수촌에 입촌하고 며칠 뒤, 드디어 첫 경기가 열려. 그런데 첫 상대가 야구종주국 미국이야. 미국은 최강이었고, 1차전에 우리를 붙인 것은 이건 정말 불리한 대진이고. 우리를 우승 못하게 하려는 거 아니냐, 그런 분개한 마음까지 갖고 갔어요. 그래서 경기를 불안하게 보면서 중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캐스터 2008년 8월 13일, 세계 최강 미국과 대한민국의 경기가 시작돼. 우리나라 선발 투수는 봉중근 선수야. 역시 미국인 걸까? 1회 초부터 미국에 선취점을 뺏겨. 그리고 2회 말 우리의 공격. 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한국 관중들의 응원소리가 높아져. 바로 이대호 선수야. 이대호 선수가 2점 홈런을 때렸어. 그렇게 우리나라가 2대 1로 역전을 했어. 8회까지 점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6대 4로 우리나라가 두 점 차 리드를 하고 있어. 그리고 9회 초, 한기주 선수가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이번 회만 막으면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첫 번째 승리를 거두게 돼. 그런데, 홈런을 맞은 거야. 솔로 홈런으로 점수는 이제 6대 5. 한점 차로 따라 잡혔어. 게다가, 연이어 다음 타자 안타, 또 2루타까지 내주며 노 아웃 주자 2, 3루 최대 위기상황을 맞아. 엉망진창이었죠. 완전 이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강속구를 뿌리는 한기주였기 때문에. 와… 한기주 볼이 저렇게 맞아 나간다고?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결국 김경문 감독은 투수교체를 선택했어. 이 위기를 막을 막중한 책임은 투수 윤석민 선수에게 돌아가. 그날 '이제 경기가 없다'라고 통보를 받고 불펜에서 더그아웃으로 들어왔어요. 신발도 갈아 신고, 땀이 났으니 옷도 갈아입고 좀 편하게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한기주 선수가 마무리 등판하고 상황이 되게 급박하게 돌아간 거예요. 갑자기 조계현 코치님이 저를 찾으면서, 불펜에 나가서 몸을 풀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유니폼 입고 스파이크를 신고 몸 풀 시간도 없이 불펜으로 뛰어나갔는데, 불펜에 도착하자마자 마운드에 올라오라 그러더라고요. 제가 공을 하나도 안 던졌어요 불펜에서. 그러고 마운드에 올라가는데 사실 얼마나 떨리겠어요. 이게 마음의 준비가 안 되니까.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노 아웃 주자 2, 3루 상황에 마운드에 오른 윤석민 선수. 이 상황에서 윤석민 선수는 두 명의 타자를 연이어 잡아내. 그리고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에서 슬라이더로 투 스트라이크를 먼저 만들어. 그때부터 이제 많이 설레더라고요. 투 스트라이크 노 볼에는 투수가 이길 확률이 90%가 넘기 때문에.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윤석민 선수가 공을 던졌어. 그런데 안타를 맞은 거야. 3루 주자에 이어 2루 주자까지 들어오며, 7대 6으로 역전당했어. 그 후 윤석민 선수는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내. 이제 9회 말, 우리 대표팀의 마지막 공격이 남았어. 이때, 대표팀 감독인 김경문 감독이 결단을 내려. 근우아. 니가 나가라. 대타를 세운 거야. 9회 말 선두 타자로 진갑용 선수 대신 정근우 선수가 타석에 서. 정 선수는 일단 초구를 보자는 마음으로 기다렸어. 미국의 마무리 투수가 던진 공의 구속이 154km를 찍어. 정근우 선수는 이 공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대. '만만한데?' 자신감이 붙은 정근우 선수는 2루타를 치고 나갔어. 대타 성공이야. 이어 대타로 나선 김현수 선수는 땅볼로 아웃됐지만 정근우 선수는 3루까지 진루해. 그리고, 이어서 역시 대타로 이택근 선수가 타석에 서. 제가 들어갔던 상황은 삼진 빼고는 다 괜찮아. 삼진 빼고 뭐 평범한 내야플레이 빼고는 다 괜찮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근우가 3루에서, 리그에서 가장 발 빠른 주자가 3루에 있고. 나는 무조건 방망이에 걸리게 하면 된다…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택근 선수가 친 땅볼에 발 빠른 정근우 선수가 홈에 들어왔어. 이택근 선수 또한 내야안타로 1루 출루. 7대 7 동점이야. 근데, 이 동점 상황에는 아주 놀랄만한 일이 있었다고 해. 당시 경기를 본 사람들도 알아채지 못했을 수 있어. 이택근 선수가, 앞서 고영민 선수의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 대타로 나선 거야. 원 스트라이크에 주자 3루에, 그만큼 나는 부담감을 안고…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대타가 나오는 건 아주 이례적인 결정이야. 그런데, 김경문 감독의 혜안이었을까? 이 작전이 제대로 먹혔고 동점이 됐어. 다음 타자는 이종욱 선수. 그런데 미국 투수가 1루에 있던 이택근 선수를 견제하다 악송구를 한 거야. 이택근 선수는 그 사이 젖 먹던 힘을 다해 1루에서 3루까지 뛰어. 결과는 세이프. 조금만 더 하면 역전을 할 수도 있어. 과연 역전했을까? 이종욱 선수가 친 외야 플라이에 3루에 있던 이택근 선수가 홈에 들어왔어. 한국의 승리. 세계 최강 미국을 꺾었어. 야구에서 8 대 7이 우리가 흔히 '케네디 스코어'라고 하잖아요. 그게 가장 재미있는 최고의 스코어거든요. '야 이거 뭐지, 뭔가 새로운데?' 이런 생각을, 희망을 그때부터 갖기 시작한 거죠.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중계 캐스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 3차전 한국 vs 캐나다 8월 14일에 열려야 했던 중국과의 경기는 비로 인해 서스펜디드 게임(경기를 계속 진행할 수 없을 때 경기를 중단하고 추후 경기를 재개하도록 하는 규정)으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우리는 캐나다를 만나. 캐나다는 불과 몇 개월 전에 만난 적이 있어.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캐나다와 경기했는데, 우리가 3대 4 역전패를 당했어. 이 경기에서 유난히 쓰린 기억을 가진 선수가 있어. 바로 선발투수였던 류현진 선수야. 당시 1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강판당하고 패전 투수가 됐거든. 그리고 2008년 8월 15일, 올림픽 무대에서 다시 캐나다를 만났어. 이 경기의 선발 투수는 또 류현진이야. 안녕하세요. 류현진입니다. 캐나다전, 저한테 있어서는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고요. 제가 올림픽 예선전 할 때도 캐나다전에 선발 등판을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는 그 전날 한 이틀 전에 음식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났었어요. 그래서 좀 부진했었거든요. 근데 본선에서 똑같은 팀을 상대로, 그 중심에 제가 있었다는 거에. 한 이닝 한 이닝 실점 없이 나가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처음부터 마운드에 올랐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당시 나이 22세, 캐나다를 다시 만난 류현진 선수는 1회, 2회, 자신의 결심대로 실점 없이 좋은 투구를 보였어. 0대 0 상황에 3회 초 우리나라의 공격이야. 2사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정근우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그리고 거기서 홈런을 쳐버려. 입맛 딱 좋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높이의 코스로 공이 왔어요.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했던 타구를 날렸던 것 같습니다.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정근우의 홈런으로 1점을 획득해. 그리고 4회, 5회... 8회까지 양 팀 모두 점수가 나지 않아. 양 팀 투수 모두 점수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어. 완전 투수전이야. 우리 류현진 선수는 8회까지 5개의 탈삼진을 잡으며 호투를 하고 있어. 1대 0, 점수는 단 1점 차. 투수의 부담감이 어마어마하겠지. 9회 말, 캐나다의 마지막 공격이야. 그런데, 9회 말 캐나다 타선이 하필 가장 강력한 3, 4, 5번 클린업 트리오야.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1루에 출루해. 하지만 이어 올라온 4번 타자는 삼진 아웃. 이제 아웃카운트 두 개가 남았어. 다음 타자가 우측 안타를 쳤는데, 그 틈에 1루 주자가 3루까지 뛰었어. 그래서 3루로 공을 던졌는데, 그만 악송구가 나왔어. 그 순간, 투수인 류현진 선수가 3루 백업 수비를 들어갔어. 근데 저도 아직까지 모르겠어요. 1루 쪽으로 안타가 나면 자연스럽게 1루 쪽으로 스타트를 끊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제가 어느 순간 그쪽에 가 있더라고요. 정말 운이 좋았다, 그거밖에 없는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자기로 모르게 3루 쪽으로 가서 백업 수비를 했다는 거야. 다행히 더 이상의 진루는 막았지만, 현재 상황 아주 좋지 않아. 9회 말 원 아웃 1, 3루가 된 거잖아. 안타가 아니라도 점수가 날 수 있는 상황인 거지. 류현진 선수의 심정 어땠을까? ' 아 이제 나는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좀 바꿔주시지'라는 생각도 속으로는 했었던 것 같고. 충분히 교체를 해주실 만했거든요. 그때 이미 투구 수도 어느 정도 됐었고, 더그아웃을 살짝 봤는데, 아무 움직임이 없으시더라고요. '아직까지 감독님이 나를 믿고 계시구나…'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손에 땀을 쥐는 상황에서 류현진 선수의 투구가 이어져. 다음 타자가 류현진 선수의 4구를 쳤는데, 공이 높이 떴어. 그 공을 우익수가 잡았어. 이제 투 아웃, 아웃카운트 하나만 더 잡으면 돼. 여기서 류현진 선수는 다음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고, 주자 만루 상황이 됐어. 그 볼넷 준 타자가 예선전부터 제 공을 좀 잘 쳤었던 타자여서, 위기가 더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일부러 볼넷을 줬었던 것 같아요. 안타 하나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포수 글러브만 보고 거기다만 던지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다음 타석에 선 캐나다 타자. 투 스트라이크 원 볼 상황에서 그가 친 공이 높이 떴어. 그리고 그 공을 외야수 이종욱 선수가 잡았어. 딱 치는 순간 '아 끝났다 해냈다... -류현진 그렇게 대한민국이 캐나다를 스코어 1대 0으로 이겼어. 당시 22살의 류현진 선수가, 그 힘들다는 완봉승을 거뒀어. 본선에서 똑같은 팀을 상대로 완봉승을 거둬서, 조금 더 뜻깊었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쾌조의 2연승을 거둔 우리 야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이를 악물다고 해. 2003년에 '삿포로 참사'라고 있는데, 그 당시 아시아 야구 선수권인데, 이게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을 겸한 대회였는데, 우리가 대만에게 져요. 그래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삿포로 참사가 있었고. 그리고 2006년에는 도하 아시안게임 때 금메달을 목표로 했는데, 첫 경기 대만에게 패하고 맙니다. 두 개의 참사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야구가 좀 움츠러드는, 계기가 생겨서 한 단계 올라가야 하는 그런 절박한 순간에 베이징 올림픽이 시작된 거죠.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중계 캐스터 야구의 인기가 떨어졌을 때였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야구의 붐을 일으켜야 된다, 책임감을 전부 다 가지고 있었어요.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야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 좋은 성적이 절실했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는 8개국이 출전했어.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모두 7번의 경기를 해야 해. 첫 경기는 8월 13일 미국을 상대로 8대 7로 승리, 14일 중국전은 비로 연기가 됐어. 8월 15일 캐나다를 상대로 1:0 승리. 그리고 8월 16일 펼쳐진 일본과의 경기 또한 5대 3으로 승리를 해. 연기됐던 중국전은 17일 날 1:0으로 승리를 하며 마무리해. 지금까지 4전 4승이야. 대단하지 않아? 그리고 대만, 쿠바, 네덜란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어. ▲ 5차전 한국 vs 대만 8월 18일, 대만과의 경기가 시작돼.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 우리나라 주전포수 진갑용 선수가 부상을 당해. 당시 대표팀 포수는 두 명이었어. 진갑용 포수를 대신해 누가 투입이 됐을까? 직접 만나볼게. 안녕하세요. 23살이었던 포수 강민호입니다. 주전 포수는 진갑용 선배님이셨고 저는 백업 포수로 그 대회를 참가했는데. 약체 팀은 제가 나가야 하는 게 맞는 거고, 정말 잡아야 하는 팀은 진갑용 선배님이 나가는 게 맞는데. 대만이 좀 강한 팀이었어요. 그래서 진갑용 선배님께서 나가셨는데, 그날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제가 이제 나가게 됐는데. 한편으로는 '오케이. 대만 경기는 내가 뛸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준결승이나 결승은 선배님이 꼭 뛰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렇게 대만전 안방을 지키게 된 강민호 선수.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만을 상대로 1, 2회 무려 8점을 뽑아내. 어때? 이번 경기는 좀 수월할까? 아니. 대만팀에게 2회에 2점, 5회에 4점, 6회에 2점을 내주면서 6회에 8대 8 동점이 됐어. 저희가 추가 실점을 계속 하면서 결국엔 8대 8이 되고. '쉽겠다'라고 생각했던 경기가 어떻게 보면 엄청난 박빙의 경기가 된 거예요. 전부 다 이제 안 된다 집중하자 이겨야 된다…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7회 초, 우리나라의 공격이야. 이대호 선수가 볼넷으로 출루를 하고, 발이 빠른 이용규 선수를 대주자로 내세워. 이어 이진영 선수가 안타를 치며 노 아웃 1, 2루 상황을 만들었어.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다가 동점까지 추격을 당했잖아. 이때 필요한 건 점수. 한 점이 절실해. 그리고 다음 타자 강민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노 아웃 1, 2루 상황, 한 점을 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은 번트 작전을 펼치지. 과연 그랬을까? 한 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저는 당연히 번트를 댈 줄 알았는데 김경문 감독님께서 번트 사인을 안 내셨어요. 번트 사인 안 내서 '나한테 치라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고. 이제 방망이 중심에 한번 맞춰보자라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했는데… 치는 순간에 '아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유격수의 글러브를 맞고 외야로 빠진 안타가 되면서 결승타가 됐죠.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강민호 선수가 거기서 안타를 쳤고 이용규 선수가 홈에 들어왔어. 김경문 감독의 강공 지시가 통한 거야. 그런데, 이때 내려진 지시가 강공 지시만이 아니었대. 그 상황은 런 앤드 히트(주자가 먼저 달린 후 타자가 공을 칠지 말지 결정하는 것)라고.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상황에서 보통, 노아웃 1, 2루에는 런 앤 히트가 잘 안 나요. 라인드라이브가 되면 트리플 플레이가 나오기 때문에. 더블 아웃에 대한 방지를 해야 하는 건데. 보통 번트 아니면 투 쓰리에서는 그냥 히팅. 주자는 그냥 가만히 있어 스테이가 나오는데. 그 사이에서 1, 2루 주자가 또 뛰었어요…. 김경문 감독님 운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뭔가 그때 야구 기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거지. 그리고, 이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을 했어. 대만과의 경기는 극적으로 9대 8, 승리를 하게 돼. 이렇게 5전 5승을 한 대한민국. 여기서 끝이 아니야. 쿠바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하며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무려 7전 전승으로 베이징 올림픽 4강에 진출을 하게 돼. ▲ 영원한 숙적 일본 이제 준결승이야. 이 경기에서 이기면 은메달 확보야. 상대는, 영원한 숙적 일본이야. 그냥 '무조건 이긴다' 한일전 하면 그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고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우리나라의 명예를 걸고 나가는 거기 때문에, 내 몸이 하나가 부서지더라도 여기에다가 모든 걸 넣어야겠다.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근데, 이 한일전을 앞두고 유난히 더 긴장하고 안절부절 못 하는 선수가 있어. 바로 포수 강민호 선수야. 부상당한 진갑용 선수가 오늘 뛸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인 거야. 하지만 우려대로, 진갑용 선수는 도저히 경기를 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경기장에 도착한 선수들이 워밍업을 하고 있는데, 김경문 감독이 강민호 선수를 불러 오늘 선발 포수는 너다 라고 말했어. 준결승 하는 날 야구장에 나가서 진갑용 선배님께서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부터 엄청난 긴장이 저한테 몰려오기 시작했죠.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강민호 선수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배가 너무 아프더래. 긴장한 강민호 포수와 호흡을 맞출 선발 투수는 김광현 선수야. 금메달을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산. 준결승 한일전이 지금 시작돼. 근데 김광현 선수가 초반에 제구가 안 잡히고 계속 볼을 던져. 김광현 선수가 21세, 제가 23세였어요. 한 3회까지 관중들이 엄청 시끄러웠는데 아무 소리도 듣지도 못했어요. 벤치에서도 막 '민호야 민호야' 부르는데도 옆을 쳐다봐야 되거든요 벤치를, 어떤 지시가 내려올 수 있으니까. 근데 제가 그것도 못 들을 만큼. '아 큰일 났다. 여기서 내가 역적이 될 수 있겠는데. 좀 정신 차리자' 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덩달아 내야 수비까지 흔들리며 1회 초 일본에게 선취점을 뺏겨. 그리고 3회에도 1점을 주며 2대 0 상황이 돼. 순간 선수들은 심정은 어땠을까? 뭐 말이 필요 있겠습니까? 이야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상은 아니야. 이건 아니야. 아 이게 뭐 막 앉아 있지도 못하겠고 막 이거 그냥 죽겠는 거야 이거.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냥 발만 동동동 구르죠.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초반에 2점을 뺏겼을 때는 '경기 힘들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다행히 4회 말, 우리나라가 1점을 만회해. 그리고 7회 말, 대한민국의 공격이 시작돼. 김동주 선수가 삼진 아웃되고 다음 타자는 이대호 선수야. 이대호 선수가 볼넷으로 나가. 이때, 김경문 감독이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려. 대주자로 정근우를 내세운 거야. 정근우 선수는 이 상황이 좀 의아했다고 해. 이대호 선수는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타자인데, 뒤에 한 번 더 타순이 올 수 있는데 7회에 빼니까. 바뀐 이대호 선수는 이번 경기에 다시 못 나오거든. 7회 말이었고 이대호였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아직까지 9회 말의 공격이 한 번 더 남아있는데. 그래도 타격감이 좋은 이대호한테 홈런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7회 말에 뭔가 승부를 건다고? 그런데 과감하게 바로 또 대주자 기용을 하시더라고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래서 정근우 선수는 대주자로 나가며 마음을 먹었대. '웬만한 타구에는 무조건 달리자. 목숨 걸고 달리자'라고. 과연, 김경문 감독이 던진 승부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고영민 선수의 안타에 정근우 선수는 2루까지 진루하고, 이어진 이진영 선수의 안타에 정근우 선수가 빠른 발로 홈을 밟았어. 동점!!! 김경문 감독의 승부수가 제대로 먹혔어. 심지어 정근우 선수가 여기서 보여준 슬라이딩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슬라이딩이었대. 일명 '회뜨기 슬라이딩'. 포수의 태그를 피해서 홈플레이트를 싹 스치는 아주 기술적인 슬라이딩이었어. ▲ 믿음의 야구, 4번 타자의 홈런 2대 2 동점에, 8회 초 일본은 점수를 내지 못했고 또다시 우리의 공격 차례가 돌아와. 타순은 2번 이용규, 3번 김현수, 4번 이승엽 선수 순이야. 투수는 일본의 특급 마무리 '사신'이라고 불리는 이와세 선수야. 첫 번째 타자 이용규 선수가 좌측에 안타를 치고 1루에 출루했어. 다음 타자 김현수 선수는 안타깝게 삼진 아웃이야. 그리고 4번 타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그런데, 이승엽 선수의 표정이 좋지 않아.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 경기장에는 긴장감이 가득해. 왜일까? 후배들에게 정말 미안해했었어요. 예선전부터 너무 좀 성적이 안 좋으셨고.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많이 부진하고 계셨었어요. 저희가 봤을 때는 정말 이 야구의 영웅이었던 분이 한 타석을 치고 벤치에 들어와서 혼자 눈 감고 이렇게 벽에 머리를 기대가지고 아쉬워하는 그런 모습들을 봤을 때.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뭐 '힘내세요'라는 말도 못 하고 그냥 눈치만 보고 있었던…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승엽 선수는 당시 7차전을 하는 동안 22타수 3안타. 타율은 1할 대야. 이승엽을 향한 팬들의 반응도 싸늘해. 부진한 이승엽 선수를 계속 기용하고 있는 김경문 감독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어. 심지어, 일본 감독은 경기 전 이런 인터뷰도 했대. 이 인터뷰에서 호시노 감독은 '4번(이승엽)이 이대로 잠들어 있기를 바라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게 누구냐?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있는 타자를 4번에 계속 두고 있다니 대단하다'며 한국 측을 도발했다. -당시 신문 기사 中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승엽 선수를 정말 몰라서 이렇게 말 할리는 없잖아? 경기를 앞두고 심리전을 한 거겠지. 그럼, 당시 이승엽 선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담감 가지고는 표현이 안될 것 같습니다. 정말 제 야구 인생에서 그렇게 힘든 적이 있었을까. 해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기대를 하시고 뽑아주신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밖에 없었죠. 너무나 답답했었고, 후배들 보기에 민망했고. 그 당시 계셨던 김경문 감독님이 계속 보내주셨는데, 그 믿음에 보답을 못 하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함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날 한일전에서도 이승엽 선수는 이미 병살타에 두 번의 삼진을 기록했어. 이런 상황에서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오른 거야. 초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2구째에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파울. 벌써 투 스트라이크야. 이대로 끝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지만, 정작 동료 선수들은 이승엽 선수를 믿고 있었어. 왜일까? 항상 선배가 중요한 순간에 칠 거라고 항상 얘기를 했었는데, 그것만큼 중요한 순간은 없었던 거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저희는 항상 그런 게 있었습니다. '해줄 거야' 중요한 순간에는 승엽이 형이 해줄 거야 라는 그런 믿음. 또 이상하게 전광판을 보니 또 8회더라고요. 저희가 더그아웃에서 '야 8회에 승엽이 형이야' 막 이랬었는데.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우리가 일본이라고 하면 '약속의 8회' 해 가지고 8회 여러 가지 상황이 이렇게 만들어지는데.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약속의 8회'라고 들어봤어? 때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상대는 이번처럼 일본이야. 8회 이승엽 선수가 금쪽같은 2타점을 터뜨려. 야구 대표팀은 이 점수에 힘입어 동메달을 획득했어. 그리고 2006년 WBC 1라운드. 이때도 역시 한일전이었어. 2: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8회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서. 그리고 이승엽 선수의 배트가 가볍게 휘둘러지는 순간 짜릿한 투런 홈런이 나왔고, 역시 승리를 거뒀어. 그리고 이승엽 선수가 또 한 번 한일전 8회에 타석에 선 거야. 모두의 바람이 이승엽에게 모아지고 있어. 그 순간 이승엽 선수의 기분은 어땠을까? 사실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제가 마음먹은 대로 너무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쳐다보지 않으신 건지, 사실 저는 계속 (더그아웃을) 힐끔힐끔 봤었거든요. 8회 마지막 타석인데 나를 바꿔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약간 좀 소심한 마음은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던 상태였고… 어떻게 해서 들어가게 됐습니다. 공을 겁내지 말고 붙어 보자, 이런 마음으로 타석에 임했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타석에 선 이상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어. 그 순간 지켜보던 우리도 그렇지만 이승엽 선수 자신은 누구보다 간절했을 거야. 과연 약속의 8회가 다시 한번 이뤄졌을까? 이승엽 선수는 그 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쳤어. 속 시원한 투런 홈런. 진짜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아. 지금까지의 부진을 이 한 방으로 싹 씻어낸 거야. 그때 3사가 모두 동시 중계를 했는데, 3사 캐스터들이나 해설자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막 의자가 넘어지고 막 난리가 났었어요. 서로 방송사는 다르지만 함께 하이파이브를 했던 그런 최고의 순간, 절정의 순간이 바로 이승엽의 홈런 8회였습니다.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중계 캐스터 이게 단지 운일까? 경기가 계속 이어지는 힘든 일정 속에서도 숙소로 돌아가면 누구보다 먼저 배트를 들고 선수촌 앞 공터로 향하는 사람이 이승엽 선수였다고 해. 경기 전날에 선수촌 아파트 앞에서 스윙을 한 분 하고 계셨는데 그게 이승엽 선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거를 아파트에서 보고 몇몇 선수들이 따라 내려가서 '같이 우리도 하자' 그래서…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배트 안 맞는데 뭐 하는데? 스윙 안 하나?' 이렇게 하면 또 나가는 거예요. 선수촌 안에서는 야구 얘기, 스윙, 이렇게 밖에 안 했던 거 같아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가장 솔선수범에서 가장 많은 연습을 한 사람이 이승엽 선수였다고 해. 심지어, 올림픽 기간 동안 이승엽 선수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해. 지난해 수술을 받은 손가락에 통증이 심했거든. 그럼에도 이승엽 선수는 약속의 8회를 지켰어. 그렇게 분위기가 살아난 우리나라는 2점을 더 획득하며 6대 2로 8회 말 공격을 마무리 해. 이제 일본의 공격을 단 한 번만 막으면 결승 진출이야. 9회 마무리 투수로 윤석민 선수가 올라와. 윤석민 선수는 호투했고, 외야수 이용규 선수가 마지막 뜬공을 잡으며 경기가 끝났어. 대한민국이 준결승 한일전에서 승리했어. 그 어떤 경기보다 꼭 이기고 싶었던 한일전.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승리를 쟁취한 거야. 경기를 마친 이승엽 선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보여주듯, 이승엽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어. 너무 미안해서요… 내가 4번 타자인데 너무 부진해서. 너무나 미안했어요. 감독님이나.. 너무나 중요한 경기였는데 후배들한테 미안했는데. 이 홈런 하나로 만회한 것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당시 이승엽 인터뷰 제가 인터뷰를 하고 선수촌으로 돌아가면서 감독님한테 한번 여쭤봤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 저는 바꿔주시기를 바랐다, 왜 안 바꿔주셨냐'라고. 제가 여쭤봤던 기억이 있고 감독님이 '너를 바꾸면 대한민국이 지는 거야. 4번 타자를 바꾸게 되면 그냥 축이 무너지는 거기 때문에 그냥 지는 거야. 그래서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죄송하고 감사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이승엽 선수가 후배들에게 던진 한 마디가 있어. 뭐였을까? '선배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전부 다 막 가서 안고 막 이렇게 했는데. 선배님께서 딱 첫마디가 '야 야 라면 끓여라. 배고프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라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고, 그냥 환상적인 기분이었기 때문에. 다른 감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한일전을 승리하며 우리나라는 최소 은메달을 확보해.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이 일군 최고의 성적이야. 올림픽에 출전하며 예상조차 하지 않았던 야구 금메달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 거야. ▲ 마지막 게임, 한국 vs 쿠바 8월 23일. 대망의 결승전 날이 밝았어. 결승전 상대는 쿠바야. 명실상부 아마야구 최강의 팀이야. 야구가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된 후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은 결승에 다섯 번을 올랐고 그중 세 번, 금메달을 획득했어. 쿠바 선수들이 필딩이라고 해서 수비 연습을 하는 걸 봤는데, 동네 야구처럼 해요. 정말 기본기 없이 대충 잡아서 대충 던지는데, 모든 게 정확하고 모든 게 깔끔한 거예요. 아 신체 능력이 다르구나, 동체 시력 자체가 동양인과는 다르구나…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어마무시하더라고요. 야수들 스피드도 그렇고 타격도 그렇고 투수들도 그렇고. 어디 하나 빠질 게 없는 팀이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우리나라의 공격으로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돼. 준결승 한일전 이승엽의 투런 홈런 기억나지? 이때, 앞서 출루한 선수가 바로 이용규 선수였어. 그런데, 이번에도 이승엽 앞에서 이용규 선수가 안타를 치며 출루를 했어. 그리고 4번 타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섰어. 혹시 준결승과 같은 일이 일어날까? 자, 볼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투 볼. 이승엽 선수. 4구째 쳤습니다. 좌익수 쪽 뒤로 뒤로 뒤로 뒤로 볼~! 넘어갔어요. 투런입니다. 이승엽 투런 홈런! 슬라이더를 노렸는데 때마침 슬라이더가 왔었고. 사실 전날 이제 홈런 치고 기분적으로 멘탈적으로 좀 안정이 되다 보니까, 그 공이 배트에 잘 맞아서. 사실 반대쪽 이제 밀어서 레프트 쪽으로 홈런이 나왔던 그런 장면이 생생하네요. 이제 돌아왔구나... 이승엽이 돌아왔구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1회 말 쿠바의 공격. 우리나라 선발 투수는 류현진 선수야. 쿠바는 곧바로 솔로 홈런을 날리며 1점 따라붙었어. 이후 류현진 선수의 호투와 함께 7회 초 한 점을 추가하며 우리나라는 3:1로 앞서 나가게 돼. 하지만 쿠바 역시 만만치 않아. 바로 7회 말 한 점을 내며 3대 2 상황에서 9회 말을 맞게 돼. 우리나라가 1점 앞선 상황에서 쿠바의 마지막 공격이야. 정말 쫄깃한 경기야. 사실 1점 차이면 불안하죠. 주자 하나 깔리고 장타가 나오면 1점, 홈런이 나오면 역전이 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저희가 유리한 입장이었지만 좀 불안불안한 리드를 가지고 가면서 경기가 후반전으로 흘러갔었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지금까지 거의 120개의 공을 뿌린 류현진 선수가 9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와. 이제 금메달을 따냐 못 따냐는 류현진 선수한테 달렸어. 대한민국의 마지막 수비, 류현진 선수가 혼신의 힘을 내. 근데 쿠바의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며 출루했어. 다음 타자의 번트로 원 아웃 주자 2루가 돼. 그런데 이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져. 류현진 선수가 던지는 스트라이크성 공을 심판이 안 잡아주는 거야. 결국 볼넷으로 타자가 1루에 출루했어. 다음 타자도 볼넷 출루. 순식간에 주자 만루가 됐어.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 같은 걸 볼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연히 심판도 사람이고 하니까 놓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한 이닝에 몇 개가 되니까 솔직히 '뭐지?' 그때 이제 '큰일 났다', 이제 그 느낌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위기가 됐으니까.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 전까지 8회까지 잡아줬던 스트라이크존을 갑자기 안 잡아주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마지막 포볼, 주자가 만루가 되는 마지막 공은 솔직히 볼이에요. 그건 제가 인정하는데, 그 전에 한 3, 4개 정도가 스트라이크였는데 스트라이크 콜을 안 했어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억울한 강민호 선수는 심판에게 어필했어. 그러자 심판은 강민호 선수를 퇴장시켰어. 퇴장당할 줄은 몰랐었어요. 그렇게 심하게 안 했었거든요. 그냥 이렇게 얘기하면서 하길래 '그냥 항의하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퇴장을 하더라고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제가 몇 번 리액션을 했었어요. 스트라이크 콜을 듣고 제가 항상 투수한테 공을 던져주는데, 투수한테 던지려고 할 때 스트라이크 콜을 해야 하는데 안 하길래 제가 심판을 두세 번 이렇게 쳐다봤었거든요. 이게 왜 볼이냐 라는 식으로. 근데 이제 결국 마지막에 주자 만루까지 되는 상황에서, 순간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들듯이 물어봤죠. 로우볼이냐고. 한국 말로는 '이 공이 낮아?' 제가 이제 격앙된 상태에서 물어보니까, '어? 심판한테 대들어?' 그냥 퇴장시켰던 거 같아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퇴장 명령을 받은 강민호 선수는 포수 미트를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어. 그 심판의 그런 판정에 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고 순순히 퇴장당한다고 그냥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뭔가 제 분노 표출을 좀 하고 싶었어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퇴장을 당하는 순간, 강민호 선수의 머릿속에는 '진갑용 선배님 아프신데 어떡하지' 이 생각뿐이었대. 대표팀에 포수가 단 두 명뿐이었다고 했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죠. 포수가 없으니까. 제가 퇴장을 당하고 더그아웃에 있다가 라커룸으로 들어가려고 보는데, 뒤에서 진갑용 코치님께서 다리를 약간 절뚝이시면서 나오고 계시더라고요. 다행이다…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부상을 당한 진갑용 선수가 퇴장당한 강민호 선수 대신 올라와. 부상 투혼이지. 투수 또한 류현진 선수에서 정대현 선수로 교체가 돼. 3대 2, 원 아웃 만루 상황. 안타 하나면 동점 혹은 역전이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야. 퇴장을 당한 강민호 선수는 경기장이 아닌 라커룸에서 기도를 하며 경기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 17년 전 그날,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도를 했던 순간이야. 9회 말 1사 만루. 정대현 선수가 두 개의 공을 모두 스트라이크로 던져. 그리고 세 번째 공을 뿌리는데, 타자가 그 공을 방망이로 쳤어. 타자가 친 공은 유격수가 잡아 2루를 거쳐 다시 1루로. 그렇게 병살타가 돼. 순식간에 투아웃을 잡아내고 경기는 끝났어. 대한민국의 기적 같은 우승이야! 대한민국의 금메달. 우리나라 야구 대표팀이 9전 전승을 하며 금메달을 획득한 거야. 올림픽 남자 단체 구기 종목에서는 첫 금메달이야. ▲ 9전 9승, 대한민국 금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는 정말 영화로 만들어도, 정말 첫 경기서부터 마지막 결승까지 아무나 못 만들 수 있는 경기가 매 경기마다 그렇게 나왔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런데 이 감격적인 승리 뒤에도 아찔한 뒷이야기가 있대. 그러니까 전형적인 외유내강. 대현이 형이, 저 뒤 불펜에서 '날 내보내 달라'고 막 그랬어요. 다 보고 있었죠. 나는 시야가 엄청 넓으니까. '으아악~' 막 이러고 있는데. 그러더니 대현이 형이 나가서 이 결과를 만든 거예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보통 기본적인 타구가 땅볼이 나왔을 때, 스텝을 밟고 던지는데. 이때 마지막에 고영민 선수가 러닝 스로(공을 야수가 잡은 후 달리거나 뛰면서 연속된 동작으로 던지는 일) 했잖아요. 저도 2루수잖아요. '뭐 해? 아니야!' 공이 날아오는데 주자가 뛰는 게 막 보이는 거야. 그 순간이 엄청 길게 느껴지더라고.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본인은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텝을 해서 공을 던지는 것보다 '러닝 스로가 더 편했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감각적으로 너무 좋은 선수지. 그래도 그 상황에서 그건 아니잖아.(웃음) 거기서 공을 악송구를 했다 그러면, 그 진짜 영원한 죽을 때까지 역적이 되는 거죠.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렇게 2008년 뜨거웠던 여름, 통쾌하고 짜릿했던 드라마가 완성된 거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올림픽 야구 금메달. 야구하기를 잘했구나. 우리가 해냈구나.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몇십 년이 지나도 그때 얘기를 하면은 아마 다 기억해 주시지 않을까.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국대가 안 됐더라면, 아니면 그 시즌을 내가 못 했더라면... 그냥 다다닥 스쳐 지나가는 것 같고.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내가 왜 야구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느끼게 해 줬던 올림픽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금메달을 딴 심정을 물었을 때, 이택근 선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한 번 따보십시오 라고 했어. 우리가 금메달을 딸 순 없잖아. 그래서 가져와봤어. 이것이 바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이야. 이택근 선수가 빌려준 거야. 그런데, 대한민국의 금메달을 결정지은 공. 마지막 병살타에서 1루수 이승엽 선수가 잡았던 그 공. 그 공은 어디로 갔을까? 경기 영상을 자세히 보면 이승엽 선수가 뒷주머니에 뭔가를 넣는 듯한 장면이 있거든. 그래서 물어봤어. 이승엽 선수가 챙긴 게 맞다고 해. 혹시라도 이 경기 마지막 공이, 이제 27번째 아웃카운트가 끝나면 공을 던지지 말고 가지고 있어 달라는, 아마 KBO 쪽에서 요청을 했었습니다. 저도 그걸 생각했었고. 경기를 마무리 짓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공을 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아주 한국 야구에 큰 일을 한 거는, 그 홈런보다 그 공을 보관하고 KBO에 전달했던 게 더 큰 일인 것 같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승엽 선수가 전달한 공은 현재 KBO 아카이브 센터에 잘 보관되어 있다고 해. 우리는 스포츠를 보며 참 많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아. 이렇게 세계 정상을 제패할 때는 뿌듯함을 느끼고, 힘든 고비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용기와 희망을 갖기도 해.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과 기쁨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 2025년 한 해 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말을 기억하며 한 해를 보낸다면, 1년을 마무리할 때쯤, 우리 모두 빛나는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이승엽 눈물·강민호 퇴장…이제야 밝힌 '베이징 올림픽 야구金' 뒷이야기
등록일2025.01.10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9일 방송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세븐틴 멤버 도겸, 배우 하도권, SBS 주시은 아나운서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때는 2008년 7월. 연습이 끝난 야구선수들이 줄줄이 버스에 타. 이때, 코치가 올라와서 선수 몇 명에게 이렇게 말을 해. 축하한다! 최종 엔트리 결과 나왔더라. 가서 잘하고 와... 이 소리를 들은 선수들이 너무 기뻐해. 선수라면 모두 꿈꾸는 무대, 꼭 한번 서길 원하는 그곳에 갈 수 있게 됐거든. 반면, 버스 가장 끝자리에 앉아서 이 모습을 보던 한 선수는 깊은 실망감을 느껴. 난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한 거니까.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 이 선수에게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져.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게. 저는 사실 기회가 앞으론 없을 줄 알았어요. 사실 엔트리가 바뀌는 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조금 실망을 했던 거 같고. 제가 알기로는 구단한테 먼저 연락이 온 것 같고요. 구단에서 이제 '엔트리가 변경이 됐다. 빨리 대표팀에 합류하라' 그래서 짐을 싸서 저녁 늦게 쯤에 서울로 이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윤석민, 당시 기아타이거즈 투수 최종 엔트리가 바뀌며 윤석민 선수가 극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됐어. 그럼 대표팀은, 어떤 대회를 준비하고 있던 걸까? 운동선수라면 모두 꿈에 그리는 무대, 바로 올림픽이야. 이번 '그날'의 이야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 관한 거야. 당시 출전했던 많은 선수들이 직접 그날의 뒷이야기를 전해줄 거야. 윤석민 선수가 마지막으로 합류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4명의 야구 대표팀이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게 돼. 베이징에 도착한 야구 대표팀은 선수촌에 입촌했어. 근데 이때, 특별한 느낌을 받은 한 선수가 있어. 베이징 선수촌에 딱 입촌을 했는데. 느낌이 그냥 너무 좋은 거야. 이 걸어가는 길 자체가, 처음 가는 베이징인데 자주 와봤던 느낌인 거고. '(택근이) 형, 느낌이 너무 좋은데요?' 이번 올림픽 동메달 이상에 대한 느낌이 왔어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 1차전 한국 vs 미국 선수촌에 입촌하고 며칠 뒤, 드디어 첫 경기가 열려. 그런데 첫 상대가 야구종주국 미국이야. 미국은 최강이었고, 1차전에 우리를 붙인 것은 이건 정말 불리한 대진이고. 우리를 우승 못하게 하려는 거 아니냐, 그런 분개한 마음까지 갖고 갔어요. 그래서 경기를 불안하게 보면서 중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캐스터 2008년 8월 13일, 세계 최강 미국과 대한민국의 경기가 시작돼. 우리나라 선발 투수는 봉중근 선수야. 역시 미국인 걸까? 1회 초부터 미국에게 선취점을 뺏겨. 그리고 2회 말 우리의 공격. 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한국 관중들의 응원소리가 높아져. 바로 이대호 선수야. 이대호 선수가 2점 홈런을 때렸어. 그렇게 우리나라가 2대 1로 역전을 했어. 8회까지 점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6대 4로 우리나라가 두 점 차 리드를 하고 있어. 그리고 9회 초, 한기주 선수가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이번 회만 막으면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첫 번째 승리를 거두게 돼. 그런데, 홈런을 맞은 거야. 솔로 홈런으로 점수는 이제 6대 5. 한점 차로 따라 잡혔어. 게다가, 연이어 다음 타자 안타, 또 2루타까지 내주며 노 아웃 주자 2, 3루 최대 위기상황을 맞아. 엉망진창이었죠. 완전 이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강속구를 뿌리는 한기주였기 때문에. 와… 한기주 볼이 저렇게 맞아 나간다고?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결국 김경문 감독은 투수교체를 선택했어. 이 위기를 막을 막중한 책임은 투수 윤석민 선수에게 돌아가. 그날 '이제 경기가 없다'라고 통보를 받고 불펜에서 더그아웃으로 들어왔어요. 신발도 갈아 신고, 땀이 났으니 옷도 갈아입고 좀 편하게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한기주 선수가 마무리 등판하고 상황이 되게 급박하게 돌아간 거예요. 갑자기 조계현 코치님이 저를 찾으면서, 불펜에 나가서 몸을 풀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유니폼 입고 스파이크를 신고 몸 풀 시간도 없이 불펜으로 뛰어나갔는데, 불펜에 도착하자마자 마운드에 올라오라 그러더라고요. 제가 공을 하나도 안 던졌어요 불펜에서. 그러고 마운드에 올라가는데 사실 얼마나 떨리겠어요. 이게 마음의 준비가 안 되니까.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노 아웃 주자 2, 3루 상황에 마운드에 오른 윤석민 선수. 이 상황에서 윤석민 선수는 두 명의 타자를 연이어 잡아내. 그리고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에서 슬라이더로 투 스트라이크를 먼저 만들어. 그때부터 이제 많이 설레더라고요. 투 스트라이크 노 볼에는 투수가 이길 확률이 90%가 넘기 때문에.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윤석민 선수가 공을 던졌어. 그런데 안타를 맞은 거야. 3루 주자에 이어 2루 주자까지 들어오며, 7대 6으로 역전당했어. 그 후 윤석민 선수는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내. 이제 9회 말, 우리 대표팀의 마지막 공격이 남았어. 이때, 대표팀 감독인 김경문 감독이 결단을 내려. 근우아. 니가 나가라. 대타를 세운 거야. 9회 말 선두 타자로 진갑용 선수 대신 정근우 선수가 타석에 서. 정 선수는 일단 초구를 보자는 마음으로 기다렸어. 미국의 마무리 투수가 던진 공의 구속이 154km를 찍어. 정근우 선수는 이 공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대. '만만한데?' 자신감이 붙은 정근우 선수는 2루타를 치고 나갔어. 대타 성공이야. 이어 대타로 나선 김현수 선수는 땅볼로 아웃됐지만 정근우 선수는 3루까지 진루해. 그리고, 이어서 역시 대타로 이택근 선수가 타석에 서. 제가 들어갔던 상황은 삼진 빼고는 다 괜찮아. 삼진 빼고 뭐 평범한 내야플레이 빼고는 다 괜찮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근우가 3루에서, 리그에서 가장 발 빠른 주자가 3루에 있고. 나는 무조건 방망이에 걸리게 하면 된다…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택근 선수가 친 땅볼에 발 빠른 정근우 선수가 홈에 들어왔어. 이택근 선수 또한 내야안타로 1루 출루. 7대 7 동점이야. 근데, 이 동점 상황에는 아주 놀랄만한 일이 있었다고 해. 당시 경기를 본 사람들도 알아채지 못했을 수 있어. 이택근 선수가, 앞서 고영민 선수의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 대타로 나선 거야. 원 스트라이크에 주자 3루에, 그만큼 나는 부담감을 안고…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대타가 나오는 건 아주 이례적인 결정이야. 그런데, 김경문 감독의 혜안이었을까? 이 작전이 제대로 먹혔고 동점이 됐어. 다음 타자는 이종욱 선수. 그런데 미국 투수가 1루에 있던 이택근 선수를 견제하다 악송구를 한 거야. 이택근 선수는 그 사이 젖 먹던 힘을 다해 1루에서 3루까지 뛰어. 결과는 세이프. 조금만 더 하면 역전을 할 수도 있어. 과연 역전했을까? 이종욱 선수가 친 외야 플라이에 3루에 있던 이택근 선수가 홈에 들어왔어. 한국의 승리. 세계 최강 미국을 꺾었어. 야구에서 8 대 7이 우리가 흔히 '케네디 스코어'라고 하잖아요. 그게 가장 재미있는 최고의 스코어거든요. '야 이거 뭐지, 뭔가 새로운데?' 이런 생각을, 희망을 그때부터 갖기 시작한 거죠.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중계 캐스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 3차전 한국 vs 캐나다 8월 14일에 열려야 했던 중국과의 경기는 비로 인해 서스펜디드 게임(경기를 계속 진행할 수 없을 때 경기를 중단하고 추후 경기를 재개하도록 하는 규정)으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우리는 캐나다를 만나. 캐나다는 불과 몇 개월 전에 만난 적이 있어.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캐나다와 경기했는데, 우리가 3대 4 역전패를 당했어. 이 경기에서 유난히 쓰린 기억을 가진 선수가 있어. 바로 선발투수였던 류현진 선수야. 당시 1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강판당하고 패전 투수가 됐거든. 그리고 2008년 8월 15일, 올림픽 무대에서 다시 캐나다를 만났어. 이 경기의 선발 투수는 또 류현진이야. 안녕하세요. 류현진입니다. 캐나다전, 저한테 있어서는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고요. 제가 올림픽 예선전 할 때도 캐나다전에 선발 등판을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는 그 전날 한 이틀 전에 음식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났었어요. 그래서 좀 부진했었거든요. 근데 본선에서 똑같은 팀을 상대로, 그 중심에 제가 있었다는 거에. 한 이닝 한 이닝 실점 없이 나가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처음부터 마운드에 올랐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당시 나이 22세, 캐나다를 다시 만난 류현진 선수는 1회, 2회, 자신의 결심대로 실점 없이 좋은 투구를 보였어. 0대 0 상황에 3회 초 우리나라의 공격이야. 2사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정근우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그리고 거기서 홈런을 쳐버려. 입맛 딱 좋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높이의 코스로 공이 왔어요.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했던 타구를 날렸던 것 같습니다.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정근우의 홈런으로 1점을 획득해. 그리고 4회, 5회... 8회까지 양 팀 모두 점수가 나지 않아. 양 팀 투수 모두 점수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어. 완전 투수전이야. 우리 류현진 선수는 8회까지 5개의 탈삼진을 잡으며 호투를 하고 있어. 1대 0, 점수는 단 1점 차. 투수의 부담감이 어마어마하겠지. 9회 말, 캐나다의 마지막 공격이야. 그런데, 9회 말 캐나다 타선이 하필 가장 강력한 3, 4, 5번 클린업 트리오야.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1루에 출루해. 하지만 이어 올라온 4번 타자는 삼진 아웃. 이제 아웃카운트 두 개가 남았어. 다음 타자가 우측 안타를 쳤는데, 그 틈에 1루 주자가 3루까지 뛰었어. 그래서 3루로 공을 던졌는데, 그만 악송구가 나왔어. 그 순간, 투수인 류현진 선수가 3루 백업 수비를 들어갔어. 근데 저도 아직까지 모르겠어요. 1루 쪽으로 안타가 나면 자연스럽게 1루 쪽으로 스타트를 끊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제가 어느 순간 그쪽에 가 있더라고요. 정말 운이 좋았다, 그거밖에 없는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자기로 모르게 3루 쪽으로 가서 백업 수비를 했다는 거야. 다행히 더 이상의 진루는 막았지만, 현재 상황 아주 좋지 않아. 9회 말 원 아웃 1, 3루가 된 거잖아. 안타가 아니라도 점수가 날 수 있는 상황인 거지. 류현진 선수의 심정 어땠을까? ' 아 이제 나는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좀 바꿔주시지'라는 생각도 속으로는 했었던 것 같고. 충분히 교체를 해주실 만했거든요. 그때 이미 투구 수도 어느 정도 됐었고, 더그아웃을 살짝 봤는데, 아무 움직임이 없으시더라고요. '아직까지 감독님이 나를 믿고 계시구나…'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손에 땀을 쥐는 상황에서 류현진 선수의 투구가 이어져. 다음 타자가 류현진 선수의 4구를 쳤는데, 공이 높이 떴어. 그 공을 우익수가 잡았어. 이제 투 아웃, 아웃카운트 하나만 더 잡으면 돼. 여기서 류현진 선수는 다음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고, 주자 만루 상황이 됐어. 그 볼넷 준 타자가 예선전부터 제 공을 좀 잘 쳤었던 타자여서, 위기가 더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일부러 볼넷을 줬었던 것 같아요. 안타 하나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포수 글러브만 보고 거기다만 던지자' 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다음 타석에 선 캐나다 타자. 투 스트라이크 원 볼 상황에서 그가 친 공이 높이 떴어. 그리고 그 공을 외야수 이종욱 선수가 잡았어. 딱 치는 순간 '아 끝났다 해냈다... -류현진 그렇게 대한민국이 캐나다를 스코어 1대 0으로 이겼어. 당시 22살의 류현진 선수가, 그 힘들다는 완봉승을 거뒀어. 본선에서 똑같은 팀을 상대로 완봉승을 거둬서, 조금 더 뜻깊었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쾌조의 2연승을 거둔 우리 야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이를 악물다고 해. 2003년에 '삿포로 참사'라고 있는데, 그 당시 아시아 야구 선수권인데, 이게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을 겸한 대회였는데, 우리가 대만에게 져요. 그래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삿포로 참사가 있었고. 그리고 2006년에는 도하 아시안게임 때 금메달을 목표로 했는데, 첫 경기 대만에게 패하고 맙니다. 두 개의 참사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야구가 좀 움츠러드는, 계기가 생겨서 한 단계 올라가야 하는 그런 절박한 순간에 베이징 올림픽이 시작된 거죠.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중계 캐스터 야구의 인기가 떨어졌을 때였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야구의 붐을 일으켜야 된다, 책임감을 전부 다 가지고 있었어요.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야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 좋은 성적이 절실했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는 8개국이 출전했어.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모두 7번의 경기를 해야 해. 첫 경기는 8월 13일 미국을 상대로 8대 7로 승리, 14일 중국전은 비로 연기가 됐어. 8월 15일 캐나다를 상대로 1:0 승리. 그리고 8월 16일 펼쳐진 일본과의 경기 또한 5대 3으로 승리를 해. 연기됐던 중국전은 17일 날 1:0으로 승리를 하며 마무리해. 지금까지 4전 4승이야. 대단하지 않아? 그리고 대만, 쿠바, 네덜란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어. ▲ 5차전 한국 vs 대만 8월 18일, 대만과의 경기가 시작돼.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 우리나라 주전포수 진갑용 선수가 부상을 당해. 당시 대표팀 포수는 두 명이었어. 진갑용 포수를 대신해 누가 투입이 됐을까? 직접 만나볼게. 안녕하세요. 23살이었던 포수 강민호입니다. 주전 포수는 진갑용 선배님이셨고 저는 백업 포수로 그 대회를 참가했는데. 약체 팀은 제가 나가야 하는 게 맞는 거고, 정말 잡아야 하는 팀은 진갑용 선배님이 나가는 게 맞는데. 대만이 좀 강한 팀이었어요. 그래서 진갑용 선배님께서 나가셨는데, 그날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제가 이제 나가게 됐는데. 한편으로는 '오케이. 대만 경기는 내가 뛸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준결승이나 결승은 선배님이 꼭 뛰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렇게 대만전 안방을 지키게 된 강민호 선수.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만을 상대로 1, 2회 무려 8점을 뽑아내. 어때? 이번 경기는 좀 수월할까? 아니. 대만팀에게 2회에 2점, 5회에 4점, 6회에 2점을 내주면서 6회에 8대 8 동점이 됐어. 저희가 추가 실점을 계속 하면서 결국엔 8대 8이 되고. '쉽겠다'라고 생각했던 경기가 어떻게 보면 엄청난 박빙의 경기가 된 거예요. 전부 다 이제 안 된다 집중하자 이겨야 된다…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7회 초, 우리나라의 공격이야. 이대호 선수가 볼넷으로 출루를 하고, 발이 빠른 이용규 선수를 대주자로 내세워. 이어 이진영 선수가 안타를 치며 노 아웃 1, 2루 상황을 만들었어.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다가 동점까지 추격을 당했잖아. 이때 필요한 건 점수. 한 점이 절실해. 그리고 다음 타자 강민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노 아웃 1, 2루 상황, 한 점을 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은 번트 작전을 펼치지. 과연 그랬을까? 한 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저는 당연히 번트를 댈 줄 알았는데 김경문 감독님께서 번트 사인을 안 내셨어요. 번트 사인 안 내서 '나한테 치라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고. 이제 방망이 중심에 한번 맞춰보자라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했는데… 치는 순간에 '아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유격수의 글러브를 맞고 외야로 빠진 안타가 되면서 결승타가 됐죠.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강민호 선수가 거기서 안타를 쳤고 이용규 선수가 홈에 들어왔어. 김경문 감독의 강공 지시가 통한 거야. 그런데, 이때 내려진 지시가 강공 지시만이 아니었대. 그 상황은 런 앤드 히트(주자가 먼저 달린 후 타자가 공을 칠지 말지 결정하는 것)라고.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상황에서 보통, 노아웃 1, 2루에는 런 앤 히트가 잘 안 나요. 라인드라이브가 되면 트리플 플레이가 나오기 때문에. 더블 아웃에 대한 방지를 해야 하는 건데. 보통 번트 아니면 투 쓰리에서는 그냥 히팅. 주자는 그냥 가만히 있어 스테이가 나오는데. 그 사이에서 1, 2루 주자가 또 뛰었어요…. 김경문 감독님 운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뭔가 그때 야구 기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거지. 그리고, 이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을 했어. 대만과의 경기는 극적으로 9대 8, 승리를 하게 돼. 이렇게 5전 5승을 한 대한민국. 여기서 끝이 아니야. 쿠바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하며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무려 7전 전승으로 베이징 올림픽 4강에 진출을 하게 돼. ▲ 영원한 숙적 일본 이제 준결승이야. 이 경기에서 이기면 은메달 확보야. 상대는, 영원한 숙적 일본이야. 그냥 '무조건 이긴다' 한일전 하면 그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고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우리나라의 명예를 걸고 나가는 거기 때문에, 내 몸이 하나가 부서지더라도 여기에다가 모든 걸 넣어야겠다.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근데, 이 한일전을 앞두고 유난히 더 긴장하고 안절부절 못 하는 선수가 있어. 바로 포수 강민호 선수야. 부상당한 진갑용 선수가 오늘 뛸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인 거야. 하지만 우려대로, 진갑용 선수는 도저히 경기를 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경기장에 도착한 선수들이 워밍업을 하고 있는데, 김경문 감독이 강민호 선수를 불러 오늘 선발 포수는 너다 라고 말했어. 준결승 하는 날 야구장에 나가서 진갑용 선배님께서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부터 엄청난 긴장이 저한테 몰려오기 시작했죠.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강민호 선수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배가 너무 아프더래. 긴장한 강민호 포수와 호흡을 맞출 선발 투수는 김광현 선수야. 금메달을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산. 준결승 한일전이 지금 시작돼. 근데 김광현 선수가 초반에 제구가 안 잡히고 계속 볼을 던져. 김광현 선수가 21세, 제가 23세였어요. 한 3회까지 관중들이 엄청 시끄러웠는데 아무 소리도 듣지도 못했어요. 벤치에서도 막 '민호야 민호야' 부르는데도 옆을 쳐다봐야 되거든요 벤치를, 어떤 지시가 내려올 수 있으니까. 근데 제가 그것도 못 들을 만큼. '아 큰일 났다. 여기서 내가 역적이 될 수 있겠는데. 좀 정신 차리자' 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덩달아 내야 수비까지 흔들리며 1회 초 일본에게 선취점을 뺏겨. 그리고 3회에도 1점을 주며 2대 0 상황이 돼. 순간 선수들은 심정은 어땠을까? 뭐 말이 필요 있겠습니까? 이야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상은 아니야. 이건 아니야. 아 이게 뭐 막 앉아 있지도 못하겠고 막 이거 그냥 죽겠는 거야 이거.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냥 발만 동동동 구르죠.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초반에 2점을 뺏겼을 때는 '경기 힘들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다행히 4회 말, 우리나라가 1점을 만회해. 그리고 7회 말, 대한민국의 공격이 시작돼. 김동주 선수가 삼진 아웃되고 다음 타자는 이대호 선수야. 이대호 선수가 볼넷으로 나가. 이때, 김경문 감독이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려. 대주자로 정근우를 내세운 거야. 정근우 선수는 이 상황이 좀 의아했다고 해. 이대호 선수는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타자인데, 뒤에 한 번 더 타순이 올 수 있는데 7회에 빼니까. 바뀐 이대호 선수는 이번 경기에 다시 못 나오거든. 7회 말이었고 이대호였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아직까지 9회 말의 공격이 한 번 더 남아있는데. 그래도 타격감이 좋은 이대호한테 홈런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7회 말에 뭔가 승부를 건다고? 그런데 과감하게 바로 또 대주자 기용을 하시더라고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래서 정근우 선수는 대주자로 나가며 마음을 먹었대. '웬만한 타구에는 무조건 달리자. 목숨 걸고 달리자'라고. 과연, 김경문 감독이 던진 승부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고영민 선수의 안타에 정근우 선수는 2루까지 진루하고, 이어진 이진영 선수의 안타에 정근우 선수가 빠른 발로 홈을 밟았어. 동점!!! 김경문 감독의 승부수가 제대로 먹혔어. 심지어 정근우 선수가 여기서 보여준 슬라이딩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슬라이딩이었대. 일명 '회뜨기 슬라이딩'. 포수의 태그를 피해서 홈플레이트를 싹 스치는 아주 기술적인 슬라이딩이었어. ▲ 믿음의 야구, 4번 타자의 홈런 2대 2 동점에, 8회 초 일본은 점수를 내지 못했고 또다시 우리의 공격 차례가 돌아와. 타순은 2번 이용규, 3번 김현수, 4번 이승엽 선수 순이야. 투수는 일본의 특급 마무리 '사신'이라고 불리는 이와세 선수야. 첫 번째 타자 이용규 선수가 좌측에 안타를 치고 1루에 출루했어. 다음 타자 김현수 선수는 안타깝게 삼진 아웃이야. 그리고 4번 타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그런데, 이승엽 선수의 표정이 좋지 않아.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 경기장에는 긴장감이 가득해. 왜일까? 후배들에게 정말 미안해했었어요. 예선전부터 너무 좀 성적이 안 좋으셨고.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많이 부진하고 계셨었어요. 저희가 봤을 때는 정말 이 야구의 영웅이었던 분이 한 타석을 치고 벤치에 들어와서 혼자 눈 감고 이렇게 벽에 머리를 기대가지고 아쉬워하는 그런 모습들을 봤을 때.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뭐 '힘내세요'라는 말도 못 하고 그냥 눈치만 보고 있었던…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승엽 선수는 당시 7차전을 하는 동안 22타수 3안타. 타율은 1할 대야. 이승엽을 향한 팬들의 반응도 싸늘해. 부진한 이승엽 선수를 계속 기용하고 있는 김경문 감독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어. 심지어, 일본 감독은 경기 전 이런 인터뷰도 했대. 이 인터뷰에서 호시노 감독은 '4번(이승엽)이 이대로 잠들어 있기를 바라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게 누구냐?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있는 타자를 4번에 계속 두고 있다니 대단하다'며 한국 측을 도발했다. -당시 신문 기사 中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승엽 선수를 정말 몰라서 이렇게 말 할리는 없잖아? 경기를 앞두고 심리전을 한 거겠지. 그럼, 당시 이승엽 선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담감 가지고는 표현이 안될 것 같습니다. 정말 제 야구 인생에서 그렇게 힘든 적이 있었을까. 해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기대를 하시고 뽑아주신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밖에 없었죠. 너무나 답답했었고, 후배들 보기에 민망했고. 그 당시 계셨던 김경문 감독님이 계속 보내주셨는데, 그 믿음에 보답을 못 하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함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날 한일전에서도 이승엽 선수는 이미 병살타에 두 번의 삼진을 기록했어. 이런 상황에서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오른 거야. 초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2구째에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파울. 벌써 투 스트라이크야. 이대로 끝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지만, 정작 동료 선수들은 이승엽 선수를 믿고 있었어. 왜일까? 항상 선배가 중요한 순간에 칠 거라고 항상 얘기를 했었는데, 그것만큼 중요한 순간은 없었던 거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저희는 항상 그런 게 있었습니다. '해줄 거야' 중요한 순간에는 승엽이 형이 해줄 거야 라는 그런 믿음. 또 이상하게 전광판을 보니 또 8회더라고요. 저희가 더그아웃에서 '야 8회에 승엽이 형이야' 막 이랬었는데.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우리가 일본이라고 하면 '약속의 8회' 해 가지고 8회 여러 가지 상황이 이렇게 만들어지는데.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약속의 8회'라고 들어봤어? 때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상대는 이번처럼 일본이야. 8회 이승엽 선수가 금쪽같은 2타점을 터뜨려. 야구 대표팀은 이 점수에 힘입어 동메달을 획득했어. 그리고 2006년 WBC 1라운드. 이때도 역시 한일전이었어. 2: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8회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서. 그리고 이승엽 선수의 배트가 가볍게 휘둘러지는 순간 짜릿한 투런 홈런이 나왔고, 역시 승리를 거뒀어. 그리고 이승엽 선수가 또 한 번 한일전 8회에 타석에 선 거야. 모두의 바람이 이승엽에게 모아지고 있어. 그 순간 이승엽 선수의 기분은 어땠을까? 사실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제가 마음먹은 대로 너무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쳐다보지 않으신 건지, 사실 저는 계속 (더그아웃을) 힐끔힐끔 봤었거든요. 8회 마지막 타석인데 나를 바꿔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약간 좀 소심한 마음은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던 상태였고… 어떻게 해서 들어가게 됐습니다. 공을 겁내지 말고 붙어 보자, 이런 마음으로 타석에 임했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타석에 선 이상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어. 그 순간 지켜보던 우리도 그렇지만 이승엽 선수 자신은 누구보다 간절했을 거야. 과연 약속의 8회가 다시 한번 이뤄졌을까? 이승엽 선수는 그 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쳤어. 속 시원한 투런 홈런. 진짜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아. 지금까지의 부진을 이 한 방으로 싹 씻어낸 거야. 그때 3사가 모두 동시 중계를 했는데, 3사 캐스터들이나 해설자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막 의자가 넘어지고 막 난리가 났었어요. 서로 방송사는 다르지만 함께 하이파이브를 했던 그런 최고의 순간, 절정의 순간이 바로 이승엽의 홈런 8회였습니다.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중계 캐스터 이게 단지 운일까? 경기가 계속 이어지는 힘든 일정 속에서도 숙소로 돌아가면 누구보다 먼저 배트를 들고 선수촌 앞 공터로 향하는 사람이 이승엽 선수였다고 해. 경기 전날에 선수촌 아파트 앞에서 스윙을 한 분 하고 계셨는데 그게 이승엽 선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거를 아파트에서 보고 몇몇 선수들이 따라 내려가서 '같이 우리도 하자' 그래서…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배트 안 맞는데 뭐 하는데? 스윙 안 하나?' 이렇게 하면 또 나가는 거예요. 선수촌 안에서는 야구 얘기, 스윙, 이렇게 밖에 안 했던 거 같아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가장 솔선수범에서 가장 많은 연습을 한 사람이 이승엽 선수였다고 해. 심지어, 올림픽 기간 동안 이승엽 선수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해. 지난해 수술을 받은 손가락에 통증이 심했거든. 그럼에도 이승엽 선수는 약속의 8회를 지켰어. 그렇게 분위기가 살아난 우리나라는 2점을 더 획득하며 6대 2로 8회 말 공격을 마무리 해. 이제 일본의 공격을 단 한 번만 막으면 결승 진출이야. 9회 마무리 투수로 윤석민 선수가 올라와. 윤석민 선수는 호투했고, 외야수 이용규 선수가 마지막 뜬공을 잡으며 경기가 끝났어. 대한민국이 준결승 한일전에서 승리했어. 그 어떤 경기보다 꼭 이기고 싶었던 한일전.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승리를 쟁취한 거야. 경기를 마친 이승엽 선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보여주듯, 이승엽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어. 너무 미안해서요… 내가 4번 타자인데 너무 부진해서. 너무나 미안했어요. 감독님이나.. 너무나 중요한 경기였는데 후배들한테 미안했는데. 이 홈런 하나로 만회한 것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당시 이승엽 인터뷰 제가 인터뷰를 하고 선수촌으로 돌아가면서 감독님한테 한번 여쭤봤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 저는 바꿔주시기를 바랐다, 왜 안 바꿔주셨냐'라고. 제가 여쭤봤던 기억이 있고 감독님이 '너를 바꾸면 대한민국이 지는 거야. 4번 타자를 바꾸게 되면 그냥 축이 무너지는 거기 때문에 그냥 지는 거야. 그래서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죄송하고 감사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이승엽 선수가 후배들에게 던진 한 마디가 있어. 뭐였을까? '선배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전부 다 막 가서 안고 막 이렇게 했는데. 선배님께서 딱 첫마디가 '야 야 라면 끓여라. 배고프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라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고, 그냥 환상적인 기분이었기 때문에. 다른 감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한일전을 승리하며 우리나라는 최소 은메달을 확보해.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이 일군 최고의 성적이야. 올림픽에 출전하며 예상조차 하지 않았던 야구 금메달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 거야. ▲ 마지막 게임, 한국 vs 쿠바 8월 23일. 대망의 결승전 날이 밝았어. 결승전 상대는 쿠바야. 명실상부 아마야구 최강의 팀이야. 야구가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된 후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은 결승에 다섯 번을 올랐고 그중 세 번, 금메달을 획득했어. 쿠바 선수들이 필딩이라고 해서 수비 연습을 하는 걸 봤는데, 동네 야구처럼 해요. 정말 기본기 없이 대충 잡아서 대충 던지는데, 모든 게 정확하고 모든 게 깔끔한 거예요. 아 신체 능력이 다르구나, 동체 시력 자체가 동양인과는 다르구나…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어마무시하더라고요. 야수들 스피드도 그렇고 타격도 그렇고 투수들도 그렇고. 어디 하나 빠질 게 없는 팀이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우리나라의 공격으로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돼. 준결승 한일전 이승엽의 투런 홈런 기억나지? 이때, 앞서 출루한 선수가 바로 이용규 선수였어. 그런데, 이번에도 이승엽 앞에서 이용규 선수가 안타를 치며 출루를 했어. 그리고 4번 타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섰어. 혹시 준결승과 같은 일이 일어날까? 자, 볼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투 볼. 이승엽 선수. 4구째 쳤습니다. 좌익수 쪽 뒤로 뒤로 뒤로 뒤로 볼~! 넘어갔어요. 투런입니다. 이승엽 투런 홈런! 슬라이더를 노렸는데 때마침 슬라이더가 왔었고. 사실 전날 이제 홈런 치고 기분적으로 멘탈적으로 좀 안정이 되다 보니까, 그 공이 배트에 잘 맞아서. 사실 반대쪽 이제 밀어서 레프트 쪽으로 홈런이 나왔던 그런 장면이 생생하네요. 이제 돌아왔구나... 이승엽이 돌아왔구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1회 말 쿠바의 공격. 우리나라 선발 투수는 류현진 선수야. 쿠바는 곧바로 솔로 홈런을 날리며 1점 따라붙었어. 이후 류현진 선수의 호투와 함께 7회 초 한 점을 추가하며 우리나라는 3:1로 앞서 나가게 돼. 하지만 쿠바 역시 만만치 않아. 바로 7회 말 한 점을 내며 3대 2 상황에서 9회 말을 맞게 돼. 우리나라가 1점 앞선 상황에서 쿠바의 마지막 공격이야. 정말 쫄깃한 경기야. 사실 1점 차이면 불안하죠. 주자 하나 깔리고 장타가 나오면 1점, 홈런이 나오면 역전이 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저희가 유리한 입장이었지만 좀 불안불안한 리드를 가지고 가면서 경기가 후반전으로 흘러갔었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지금까지 거의 120개의 공을 뿌린 류현진 선수가 9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와. 이제 금메달을 따냐 못 따냐는 류현진 선수한테 달렸어. 대한민국의 마지막 수비, 류현진 선수가 혼신의 힘을 내. 근데 쿠바의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며 출루했어. 다음 타자의 번트로 원 아웃 주자 2루가 돼. 그런데 이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져. 류현진 선수가 던지는 스트라이크성 공을 심판이 안 잡아주는 거야. 결국 볼넷으로 타자가 1루에 출루했어. 다음 타자도 볼넷 출루. 순식간에 주자 만루가 됐어.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 같은 걸 볼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연히 심판도 사람이고 하니까 놓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한 이닝에 몇 개가 되니까 솔직히 '뭐지?' 그때 이제 '큰일 났다', 이제 그 느낌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위기가 됐으니까.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 전까지 8회까지 잡아줬던 스트라이크존을 갑자기 안 잡아주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마지막 포볼, 주자가 만루가 되는 마지막 공은 솔직히 볼이에요. 그건 제가 인정하는데, 그 전에 한 3, 4개 정도가 스트라이크였는데 스트라이크 콜을 안 했어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억울한 강민호 선수는 심판에게 어필했어. 그러자 심판은 강민호 선수를 퇴장시켰어. 퇴장당할 줄은 몰랐었어요. 그렇게 심하게 안 했었거든요. 그냥 이렇게 얘기하면서 하길래 '그냥 항의하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퇴장을 하더라고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제가 몇 번 리액션을 했었어요. 스트라이크 콜을 듣고 제가 항상 투수한테 공을 던져주는데, 투수한테 던지려고 할 때 스트라이크 콜을 해야 하는데 안 하길래 제가 심판을 두세 번 이렇게 쳐다봤었거든요. 이게 왜 볼이냐 라는 식으로. 근데 이제 결국 마지막에 주자 만루까지 되는 상황에서, 순간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들듯이 물어봤죠. 로우볼이냐고. 한국 말로는 '이 공이 낮아?' 제가 이제 격앙된 상태에서 물어보니까, '어? 심판한테 대들어?' 그냥 퇴장시켰던 거 같아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퇴장 명령을 받은 강민호 선수는 포수 미트를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어. 그 심판의 그런 판정에 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고 순순히 퇴장당한다고 그냥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뭔가 제 분노 표출을 좀 하고 싶었어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퇴장을 당하는 순간, 강민호 선수의 머릿속에는 '진갑용 선배님 아프신데 어떡하지' 이 생각뿐이었대. 대표팀에 포수가 단 두 명뿐이었다고 했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죠. 포수가 없으니까. 제가 퇴장을 당하고 더그아웃에 있다가 라커룸으로 들어가려고 보는데, 뒤에서 진갑용 코치님께서 다리를 약간 절뚝이시면서 나오고 계시더라고요. 다행이다…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부상을 당한 진갑용 선수가 퇴장당한 강민호 선수 대신 올라와. 부상 투혼이지. 투수 또한 류현진 선수에서 정대현 선수로 교체가 돼. 3대 2, 원 아웃 만루 상황. 안타 하나면 동점 혹은 역전이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야. 퇴장을 당한 강민호 선수는 경기장이 아닌 라커룸에서 기도를 하며 경기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 17년 전 그날,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도를 했던 순간이야. 9회 말 1사 만루. 정대현 선수가 두 개의 공을 모두 스트라이크로 던져. 그리고 세 번째 공을 뿌리는데, 타자가 그 공을 방망이로 쳤어. 타자가 친 공은 유격수가 잡아 2루를 거쳐 다시 1루로. 그렇게 병살타가 돼. 순식간에 투아웃을 잡아내고 경기는 끝났어. 대한민국의 기적 같은 우승이야! 대한민국의 금메달. 우리나라 야구 대표팀이 9전 전승을 하며 금메달을 획득한 거야. 올림픽 남자 단체 구기 종목에서는 첫 금메달이야. ▲ 9전 9승, 대한민국 금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는 정말 영화로 만들어도, 정말 첫 경기서부터 마지막 결승까지 아무나 못 만들 수 있는 경기가 매 경기마다 그렇게 나왔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런데 이 감격적인 승리 뒤에도 아찔한 뒷이야기가 있대. 그러니까 전형적인 외유내강. 대현이 형이, 저 뒤 불펜에서 '날 내보내 달라'고 막 그랬어요. 다 보고 있었죠. 나는 시야가 엄청 넓으니까. '으아악~' 막 이러고 있는데. 그러더니 대현이 형이 나가서 이 결과를 만든 거예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보통 기본적인 타구가 땅볼이 나왔을 때, 스텝을 밟고 던지는데. 이때 마지막에 고영민 선수가 러닝 스로(공을 야수가 잡은 후 달리거나 뛰면서 연속된 동작으로 던지는 일) 했잖아요. 저도 2루수잖아요. '뭐 해? 아니야!' 공이 날아오는데 주자가 뛰는 게 막 보이는 거야. 그 순간이 엄청 길게 느껴지더라고.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본인은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텝을 해서 공을 던지는 것보다 '러닝 스로가 더 편했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감각적으로 너무 좋은 선수지. 그래도 그 상황에서 그건 아니잖아.(웃음) 거기서 공을 악송구를 했다 그러면, 그 진짜 영원한 죽을 때까지 역적이 되는 거죠.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렇게 2008년 뜨거웠던 여름, 통쾌하고 짜릿했던 드라마가 완성된 거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올림픽 야구 금메달. 야구하기를 잘했구나. 우리가 해냈구나.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몇십 년이 지나도 그때 얘기를 하면은 아마 다 기억해 주시지 않을까.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국대가 안 됐더라면, 아니면 그 시즌을 내가 못 했더라면... 그냥 다다닥 스쳐 지나가는 것 같고.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내가 왜 야구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느끼게 해 줬던 올림픽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금메달을 딴 심정을 물었을 때, 이택근 선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한 번 따보십시오 라고 했어. 우리가 금메달을 딸 순 없잖아. 그래서 가져와봤어. 이것이 바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이야. 이택근 선수가 빌려준 거야. 그런데, 대한민국의 금메달을 결정지은 공. 마지막 병살타에서 1루수 이승엽 선수가 잡았던 그 공. 그 공은 어디로 갔을까? 경기 영상을 자세히 보면 이승엽 선수가 뒷주머니에 뭔가를 넣는 듯한 장면이 있거든. 그래서 물어봤어. 이승엽 선수가 챙긴 게 맞다고 해. 혹시라도 이 경기 마지막 공이, 이제 27번째 아웃카운트가 끝나면 공을 던지지 말고 가지고 있어 달라는, 아마 KBO 쪽에서 요청을 했었습니다. 저도 그걸 생각했었고. 경기를 마무리 짓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공을 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아주 한국 야구에 큰 일을 한 거는, 그 홈런보다 그 공을 보관하고 KBO에 전달했던 게 더 큰 일인 것 같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승엽 선수가 전달한 공은 현재 KBO 아카이브 센터에 잘 보관되어 있다고 해. 우리는 스포츠를 보며 참 많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아. 이렇게 세계 정상을 제패할 때는 뿌듯함을 느끼고, 힘든 고비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용기와 희망을 갖기도 해.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과 기쁨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 2025년 한 해 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말을 기억하며 한 해를 보낸다면, 1년을 마무리할 때쯤, 우리 모두 빛나는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스프] '최원태 트레이드'는 얼마나 희귀한 사건인가?
등록일2023.08.03
지난달 29일, LG와 키움은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키움이 주축 선발투수 최원태를 LG에 내주고, 유망주 야수 이주형과 투수 김동규, 올해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 지명권을 받아온 것. 최원태가 바로 다음 날 6이닝 무실점의 눈부신 호투를 펼쳐 승리투수가 되면서 LG는 트레이드의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하기 시작했다. 반면 '미래에 베팅'한 키움은 몇 년이 지나야 이 트레이드의 성적표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 트레이드는 아주 오랫동안 화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들여다볼수록 생각할 여지가 많은, 다음의 이유들 때문이다. 1. 한국에는 없던 트레이드 올 시즌과 가까운 미래의 성적을 포기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탱킹'은 북미 프로스포츠에서는 흔한 일이다. 가령 하위권에 처져 가을야구 가능성이 희박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비싼 주축 선수를 보내고 유망주를 받아온다. 이유는 이렇다. - 주축 선수를 팔아 꼴찌권으로 처져도 강등되지 않는다. 승강제가 없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MLB 팀들은 독립적인 기업이다. 모기업의 도움 없이 혼자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모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KBO리그 팀들보다 돈 문제에 훨씬 민감하다. 가령, 가망이 없는 시즌에 노장 스타 선수에게 거액의 연봉을 계속 지불하는 건 팀 재정, 혹은 구단주의 주머니 사정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스타의 '확실한 현재'를 팔아 유망주의 '불확실한 미래'를 사면서 지출을 줄인다. KBO리그의 대부분 팀들은 이렇게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팀들이 '모기업의 홍보단'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업의 이미지에 도움이 안 될 행동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구단들보다 여론에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가 벌어질 빌미는 가능하면 만들지 않아야 한다. 하위권 팀이 주축 선수를 트레이드해 '올 시즌 포기'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면?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일이다. 그래서 '최원태 트레이드'는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유형의 사건이다. (스탯티즈 기준으로 8월 3일 현재) 최원태의 올 시즌 승리기여도는 3.29. 전체 선수들 중 14위이고, 투수들 중에서는 7위, 토종 투수 중에서는 안우진-고영표에 이어 3위이다. 한 마디로 리그 최고 수준의 토종 선발 투수다. 이런 선수는 특히 시즌 중에는 절대로 트레이드되지 않는다. WAR 20위 이내의 주축 선수가 시즌 중에 트레이드된 사례를 찾으려면 무려 19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2005년 7월 11일, 두산은 좌완 유망주 전병두를 KIA에 넘겨주고 평균자책점 5점대의 부진에 빠져있던 다니엘 리오스를 영입했다. 잠실로 옮긴 뒤 거짓말처럼 부활한 리오스는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고 2007년 MVP를 차지했다. 그 뒤로는 어떤 팀도 주축 선수를 시즌 중에 다른 팀으로 넘기지 않았다. 히어로즈가 자금난 때문에 이택근과 장원삼을 트레이드한 건 2009년 시즌이 끝난 뒤였다. 2010년의 황재균과 2011년의 박병호는 아직 잠재력을 꽃피우기 전의 '유망주'들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려 19년 만에 스타급 선수가 시즌 중에 팀을 옮기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2. LG가 트레이드에 나선 명확한 이유 여러 매체가 이미 보도한 것처럼, LG가 트레이드를 한 이유는 명확하다. 우승을 노리는 팀치고는 선발진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에이스 플럿코를 제외하고 포스트시즌 한 경기를 믿고 맡길 만한 투수가 없었던 LG는, 올 시즌 선발투수들의 WAR이 4.83에 불과하다. 10개 구단 중 8위다. 2015년 시작된 '10구단 시대'에서, 선발 WAR 8위 팀이 우승한 경우는? 당연히 한 번도 없다. 올해 가을야구에서는 선발이 약하면 위험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위 표에서 보듯, 가을 야구를 노리는 중위권 팀들의 선발진이 LG(와 SSG)보다 좋았다. 가령 LG가 포스트시즌에서 NC를 상대한다면? 역대 최고 수준의 위력을 뽐내고 있는 에릭 페디, 가을에는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구창모 등을 만나야 한다. 두산의 알칸타라-브랜든-곽빈, KT의 고영표-벤자민-쿠에바스, KIA의 파노니-양현종-이의리, 한화의 페냐-문동주-산체스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존재들이다. 즉 지금의 선발진으로는 '이변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어느 해보다 높았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선발진을 대폭 강화해야, '올해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맞았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수창-이택근, '펀펀투데이' 출연… 은퇴 경기, 마지막인 줄 몰랐다 뒷이야기 공개
등록일2023.07.12
프로야구 선수 출신 이택근, 심수창이 야구 예능 프로그램 기획의 시초와 자신들의 은퇴 경기에 얽힌 뒷이야기를 밝혔다. 이택근과 심수창은 12일 방송된 SBS 파워FM(107.7Mhz) '조정식의 펀펀투데이'의 '꼭 짱이 돼야지' 특집에 출연했다. 이날 방송은 야구 예능 프로그램과 해설위원 등 방송과 스포츠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택근, 심수창에게 조정식 DJ가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 배우는 형식으로 꾸려졌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콘텐츠 제작자로서 심수창의 역량이 돋보였다. 심수창은 야구 예능 프로그램의 초기 기획과 섭외를 한 당사자로, 방송국을 돌며 기획서를 전달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다녔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이에 이택근은 본인을 프로그램에 섭외한 것도 심수창이라며 그의 기획력을 인정했다. 3부 코너 '프로의 법칙'에서는 두 선수의 마지막 경기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이택근은 자신은 마지막 경기가 언제였는지 곱씹어보게 된다며, 사실 어떤 경기가 은퇴 경기였는지 쉽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러 문제로 인해 흐지부지 선수 생활이 끝이 났기에, 자신이 마지막 경기임을 알고 뛴 적이 없었다며, 은퇴식도 구단이 아닌 동료, 후배들이 마련해 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은퇴 경기를 알고 뛰는 선수는 축복받은 선수라며 덤덤히 말을 이어 나갔다. 한편 '조정식의 펀펀투데이'는 매일 아침 5시부터 7시까지 SBS 파워FM 107.7Mhz에서 청취할 수 있다. 이택근, 심수창이 출연한 12일 방송분은 SBS 공식 유튜브 채널 '에라오'를 통해 보는 라디오로 즐길 수 있다.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