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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국세청 [인사] 국세청 등록일2024.12.31 ◇ 복수직서기관 전보 ▲ 인공지능세정혁신팀 홍영표 ▲ 세원정보과 김유신 ▲ 장려세제과 박규동 ◇ 행정사무관 전보 ▲ 혁신정책담당관실 오수빈 ▲ 국세데이터담당관실 이종민 ▲ 빅데이터센터 김용보 ▲ 빅데이터센터 심은진 ▲ 정보화운영담당관실 송지은 ▲ 정보보호담당관실 김동윤 ▲ 감사담당관실 신동익 ▲ 감찰담당관실 김명수 ▲ 감찰담당관실 노유경 ▲ 감찰담당관실 이준영 ▲ 국제세원담당관실 박진우 ▲ 역외정보담당관실 권재욱 ▲ 국제협력담당관실 김지우 ▲ 국제협력담당관실 엄태현 ▲ 국제협력담당관실 장지훈 ▲ 상호합의담당관실 박주원 ▲ 글로벌과세기준추진반 한윤구 ▲ 징세과 백지선 ▲ 징세과 신지명 ▲ 법규과 박소영 ▲ 부가가치세과 김종현 ▲ 부가가치세과 노태천 ▲ 소득세과 김주강 ▲ 법인세과 김이준 ▲ 법인세과 이희범 ▲ 공익중소법인지원팀 김경철 ▲ 원천세과 박상준 ▲ 원천세과 한민희 ▲ 소비세과 김도영 ▲ 소비세과 김진현 ▲ 부동산납세과 문도연 ▲ 상속증여세과 백지은 ▲ 자본거래관리과 김상민 ▲ 조사기획과 서주원 ▲ 조사1과 이성호 ▲ 조사2과 손태빈 ▲ 국제조사과 조명완 ▲ 조사분석과 엄태선 ▲ 소득자료관리과 조재규 ▲ 학자금상환과 최해욱 ▲ 대변인실 김봉승 ◇ 전산사무관 전보 ▲ 정보화기획담당관실 장창렬 ▲ 빅데이터센터 김경아 ▲ 정보화운영담당관실 손재락 ▲ 정보화운영담당관실 정기환 ▲ 홈택스1담당관실 김경선 ▲ 홈택스1담당관실 김미경 ▲ 홈택스1담당관실 김희재 ▲ 홈택스1담당관실 염준호 ▲ 홈택스2담당관실 배인순 ▲ 홈택스2담당관실 서지영 ▲ 홈택스2담당관실 임동욱 ▲ 정보보호담당관실 이현진 ▲ 인공지능세정혁신팀 김태형 ◇ 직무대리 발령 ▲ 장려세제과 장은경 &<서울지방국세청&> ◇ 복수직서기관 전보 ▲ 징세관실 고광덕 ▲ 법인세과 류승중 ▲ 법인세과 이병주 ▲ 조사1국 조사1과 이예진 ▲ 조사1국 조사2과 안경민 ▲ 조사1국 조사2과 전정영 ▲ 조사1국 조사3과 정민기 ▲ 조사3국 조사관리과 김덕은 ▲ 조사4국 조사1과 한세온 ▲ 조사4국 조사2과 손창호 ▲ 국제조사1과 이범석 ◇ 행정사무관 전보 ▲ 감사관실 이원우 ▲ 징세관실 전영의 ▲ 납세자보호담당관실 전동호 ▲ 과학조사담당관실 김현경 ▲ 과학조사담당관실 노주현 ▲ 과학조사담당관실 조병준 ▲ 운영지원과 홍정은 ▲ 부가가치세과 문권주 ▲ 소득재산세과 유승환 ▲ 소득재산세과 추근식 ▲ 법인세과 김기태 ▲ 정보화관리팀 이길형 ▲ 송무1과 권민정 ▲ 송무1과 이윤석 ▲ 송무1과 이은규 ▲ 송무1과 정성영 ▲ 송무2과 이진혁 ▲ 송무3과 나민수 ▲ 송무3과 박애자 ▲ 조사1국 조사1과 강우진 ▲ 조사1국 조사1과 김내리 ▲ 조사1국 조사1과 옥창의 ▲ 조사1국 조사1과 이민창 ▲ 조사1국 조사2과 고재국 ▲ 조사1국 조사2과 김윤 ▲ 조사1국 조사2과 노충모 ▲ 조사1국 조사2과 양다희 ▲ 조사1국 조사3과 한성호 ▲ 조사2국 조사관리과 노동렬 ▲ 조사2국 조사관리과 박경은 ▲ 조사2국 조사관리과 박창용 ▲ 조사2국 조사관리과 조인찬 ▲ 조사2국 조사1과 김영근 ▲ 조사2국 조사1과 박재광 ▲ 조사2국 조사1과 염세영 ▲ 조사2국 조사1과 조성훈 ▲ 조사2국 조사1과 조재량 ▲ 조사2국 조사2과 오은경 ▲ 조사3국 조사관리과 문민규 ▲ 조사3국 조사관리과 이성필 ▲ 조사3국 조사관리과 장경화 ▲ 조사3국 조사1과 김대철 ▲ 조사3국 조사1과 김태섭 ▲ 조사3국 조사1과 이호 ▲ 조사3국 조사2과 고완병 ▲ 조사3국 조사3과 김봉기 ▲ 조사3국 조사3과 이수빈 ▲ 조사3국 조사3과 전왕기 ▲ 조사4국 조사관리과 권석주 ▲ 조사4국 조사관리과 기태경 ▲ 조사4국 조사관리과 문서영 ▲ 조사4국 조사관리과 정광륜 ▲ 조사4국 조사1과 고명수 ▲ 조사4국 조사1과 정진욱 ▲ 조사4국 조사2과 강대선 ▲ 조사4국 조사2과 박진원 ▲ 조사4국 조사3과 이방원 ▲ 국제조사관리과 김석제 ▲ 국제조사관리과 오지윤 ▲ 국제조사관리과 윤성중 ▲ 국제조사관리과 황승화 ▲ 국제조사1과 김정미 ▲ 국제조사1과 박영건 ▲ 국제조사1과 손은희 ▲ 국제조사1과 이상필 ▲ 국제조사2과 여성훈 ▲ 종로세무서 징세과장 조구영 ▲ 종로세무서 소득세과장 서문교 ▲ 종로세무서 재산세과장 정소영 ▲ 종로세무서 법인세과장 홍영국 ▲ 종로세무서 조사과장 서영미 ▲ 종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승종 ▲ 중부세무서 징세과장 이명기 ▲ 중부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서영일 ▲ 용산세무서 징세과장 최병태 ▲ 용산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조진희 ▲ 용산세무서 재산세과장 정승환 ▲ 용산세무서 조사과장 김미경 ▲ 성북세무서 징세과장 임준빈 ▲ 성북세무서 소득세과장 조미희 ▲ 성북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황영남 ▲ 성북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정승원 ▲ 서대문세무서 조사과장 손상현 ▲ 은평세무서 징세과장 하수현 ▲ 은평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김종두 ▲ 은평세무서 소득세과장 이병준 ▲ 마포세무서 법인세과장 김성진 ▲ 영등포세무서 부가가치세2과장 박종무 ▲ 영등포세무서 소득세과장 권오현 ▲ 영등포세무서 재산세과장 박희도 ▲ 강서세무서 징세과장 이호준 ▲ 강서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고정선 ▲ 강서세무서 소득세과장 윤동환 ▲ 강서세무서 재산세과장 하정권 ▲ 강서세무서 법인세과장 홍순영 ▲ 강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변영희 ▲ 양천세무서 재산세과장 이용식 ▲ 양천세무서 법인세과장 김성준 ▲ 양천세무서 조사과장 신세용 ▲ 구로세무서 소득세과장 이정걸 ▲ 구로세무서 재산세과장 신미순 ▲ 구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장기웅 ▲ 동작세무서 징세과장 강석구 ▲ 동작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심재걸 ▲ 동작세무서 재산세과장 김태형 ▲ 동작세무서 조사과장 강은호 ▲ 동작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영동 ▲ 금천세무서 소득세과장 박찬만 ▲ 관악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노병현 ▲ 관악세무서 조사과장 어기선 ▲ 강남세무서 소득세과장 윤종상 ▲ 강남세무서 재산세1과장 신혜숙 ▲ 강남세무서 법인세1과장 김태석 ▲ 강남세무서 법인세2과장 조대현 ▲ 강남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신우교 ▲ 삼성세무서 징세과장 원종일 ▲ 삼성세무서 소득세과장 김희정 ▲ 삼성세무서 재산세1과장 문형민 ▲ 삼성세무서 재산세2과장 이주석 ▲ 삼성세무서 조사과장 염귀남 ▲ 반포세무서 징세과장 신영주 ▲ 반포세무서 재산세1과장 임종수 ▲ 서초세무서 징세과장 임정숙 ▲ 서초세무서 소득세과장 류오진 ▲ 서초세무서 재산세2과장 윤광현 ▲ 서초세무서 법인세1과장 김승욱 ▲ 서초세무서 법인세2과장 정진혁 ▲ 서초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우재 ▲ 역삼세무서 소득세과장 고은정 ▲ 성동세무서 부가가치세1과장 정홍석 ▲ 성동세무서 재산세1과장 유원재 ▲ 성동세무서 법인세과장 박재성 ▲ 성동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춘경 ▲ 동대문세무서 징세과장 박종주 ▲ 동대문세무서 법인세과장 전종상 ▲ 동대문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오성철 ▲ 중랑세무서 징세과장 김영정 ▲ 중랑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민진기 ▲ 중랑세무서 조사과장 조성식 ▲ 중랑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상원 ▲ 도봉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윤만식 ▲ 강동세무서 소득세과장 이귀병 ▲ 강동세무서 재산세과장 황연실 ▲ 강동세무서 법인세과장 박주열 ▲ 송파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박성신 ▲ 송파세무서 소득세과장 양한철 ▲ 송파세무서 재산세과장 최용근 ▲ 송파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노수현 ▲ 잠실세무서 징세과장 이성복 ▲ 잠실세무서 소득세과장 이성종 ▲ 잠실세무서 재산세과장 이의태 ▲ 잠실세무서 법인세과장 유탁균 ▲ 노원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강연성 ▲ 노원세무서 조사과장 김영근 ▲ 노원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신성철 ◇ 전산사무관 전보 ▲ 정보화관리팀 권현옥 ▲ 반포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조성희 ▲ 서초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성승용 ◇ 공업사무관 전보 ▲ 강동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정지용 &<중부지방국세청&> ◇ 복수직서기관 전보 ▲ 납세자보호담당관실 남용우 ▲ 체납추적과 장영일 ▲ 조사1국 국제거래조사과 최찬민 ▲ 조사2국 조사관리과 정성우 ▲ 조사2국 조사1과 임상헌 ▲ 조사3국 조사관리과 이승규 ▲ 경기광주세무서 하남지서장 김진숙 ◇ 행정사무관 전보 ▲ 감사관실 김웅 ▲ 감사관실 이남진 ▲ 감사관실 임재규 ▲ 납세자보호담당관실 최현주 ▲ 부가가치세과 함은정 ▲ 정보화관리팀 이영주 ▲ 송무과 김보윤 ▲ 체납추적과 이영재 ▲ 조사1국 조사1과 김동조 ▲ 조사1국 조사1과 김윤용 ▲ 조사1국 조사1과 김형준 ▲ 조사1국 조사1과 문창전 ▲ 조사1국 조사1과 변유솔 ▲ 조사1국 조사2과 박선열 ▲ 조사1국 국제거래조사과 박흥현 ▲ 조사1국 국제거래조사과 최찬규 ▲ 조사2국 조사관리과 김종민 ▲ 조사2국 조사관리과 박중기 ▲ 조사2국 조사관리과 양구철 ▲ 조사2국 조사관리과 임재승 ▲ 조사2국 조사관리과 전동철 ▲ 조사2국 조사1과 노정민 ▲ 조사2국 조사2과 유한진 ▲ 조사3국 조사관리과 서유미 ▲ 조사3국 조사관리과 신효경 ▲ 조사3국 조사1과 이주형 ▲ 조사3국 조사1과 정국일 ▲ 조사3국 조사2과 정용수 ▲ 조사3국 조사2과 최정희 ▲ 안양세무서 징세과장 용환희 ▲ 안양세무서 소득세과장 박봉철 ▲ 안양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윤영진 ▲ 안양세무서 조사과장 정태경 ▲ 안양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삼기 ▲ 동안양세무서 소득세과장 김국현 ▲ 동안양세무서 재산세과장 윤기철 ▲ 동안양세무서 조사과장 함상봉 ▲ 안산세무서 징세과장 이성호 ▲ 안산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박수용 ▲ 안산세무서 재산세과장 조성수 ▲ 안산세무서 법인세과장 심희준 ▲ 동안산세무서 소득세과장 서인창 ▲ 수원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오항우 ▲ 수원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김용환 ▲ 수원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민철 ▲ 동수원세무서 징세과장 박길대 ▲ 동수원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정명순 ▲ 화성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조영수 ▲ 화성세무서 재산세과장 이낙영 ▲ 동화성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오승찬 ▲ 동화성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박진영 ▲ 동화성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양정주 ▲ 평택세무서 소득세과장 고병덕 ▲ 평택세무서 재산세과장 박정훈 ▲ 평택세무서 조사과장 최태형 ▲ 분당세무서 조사과장 이수형 ▲ 이천세무서 소득세과장 김태진 ▲ 이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조영규 ▲ 경기광주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이정원 ▲ 경기광주세무서 조사과장 전정호 ▲ 경기광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조일훈 ▲ 남양주세무서 징세과장 고윤하 ▲ 남양주세무서 소득세과장 김정남 ▲ 남양주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양동구 ▲ 남양주세무서 조사과장 박성배 ▲ 구리세무서 소득세과장 홍필성 ▲ 시흥세무서 소득세과장 김영선 ▲ 시흥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전기석 ▲ 용인세무서 징세과장 박요철 ▲ 용인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함명자 ▲ 용인세무서 법인세과장 조숙연 ▲ 기흥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황순영 ▲ 기흥세무서 조사과장 양동석 ▲ 춘천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노수진 ▲ 춘천세무서 조사과장 박대현 ▲ 홍천세무서 세원관리과장 최경화 ▲ 홍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춘호 ▲ 원주세무서 징세과장 김혜랑 ▲ 원주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김재준 ▲ 원주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윤영순 ▲ 원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임태일 ▲ 영월세무서 징세과장 신상희 ▲ 영월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원진희 ▲ 삼척세무서 징세과장 홍학봉 ▲ 강릉세무서 징세과장 강양구 ▲ 강릉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정국교 ▲ 속초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양희석 ◇ 전산사무관 전보 ▲ 삼척세무서 태백지서장 김선희 ◇ 직무대리 발령 ▲ 정보화관리팀 황신영 ▲ 징세과 김시욱 ▲ 조사2국 조사관리과 정경화 ▲ 화성세무서 징세과장 조원희 &<인천지방국세청&> ◇ 복수직서기관 전보 ▲ 조사1국 조사관리과장 우철윤 ◇ 행정사무관 전보 ▲ 법인세과장 김홍식 ▲ 조사1국 조사2과장 이지훈 ▲ 조사1국 조사3과장 김동진 ▲ 조사2국 조사관리과장 유경원 ▲ 조사2국 조사2과장 배호기 ▲ 인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선주 ▲ 부평세무서 소득세과장 전경옥 ▲ 부평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도경 ▲ 계양세무서 소득세과장 정철 ▲ 서인천세무서 징세과장 김민완 ▲ 서인천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유현인 ▲ 서인천세무서 조사과장 오태진 ▲ 서인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경모 ▲ 남동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채지현 ▲ 남동세무서 소득세과장 김영노 ▲ 연수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김승임 ▲ 연수세무서 소득세과장 박정준 ▲ 연수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오흥수 ▲ 연수세무서 조사과장 장필효 ▲ 연수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박인수 ▲ 김포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판준 ▲ 부천세무서 징세과장 표석진 ▲ 부천세무서 소득세과장 박동찬 ▲ 부천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이철우 ▲ 부천세무서 조사과장 안미경 ▲ 남부천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이동출 ▲ 남부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배성심 ▲ 의정부세무서 징세과장 이민규 ▲ 의정부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윤상섭 ▲ 포천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류현수 ▲ 포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오희준 ▲ 고양세무서 소득세과장 조대규 ▲ 고양세무서 재산세과장 오민철 ▲ 고양세무서 법인세과장 이미진 ▲ 고양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성종만 ▲ 동고양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정문현 ▲ 동고양세무서 조사과장 김근수 ▲ 파주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황재선 ▲ 광명세무서 징세과장 오승연 ▲ 광명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이광 ▲ 광명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고종관 ◇ 전산사무관 전보 ▲ 정보화관리팀장 최윤미 ◇ 직무대리 발령 ▲ 인천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황경숙 ▲ 계양세무서 징세과장 공용성 ▲ 의정부세무서 소득세과장 정태민 ▲ 고양세무서 조사과장 임인정 &<대전지방국세청&> ◇ 복수직서기관 전보 ▲ 정보화관리팀장 왕성국 ▲ 체납추적과장 김완구 ▲ 조사1국 조사3과장 김성민 ▲ 예산세무서 당진지서장 김장년 ◇ 행정사무관 전보 ▲ 감사관 강덕성 ▲ 부가가치세과장 신혜선 ▲ 소득재산세과장 김윤용 ▲ 법인세과장 윤동규 ▲ 징세과장 유은영 ▲ 송무과장 이상현 ▲ 조사1국 조사관리과장 이창수 ▲ 조사1국 조사1과장 장훈 ▲ 조사1국 조사2과장 김진술 ▲ 조사2국 조사1과장 신승태 ▲ 대전세무서 징세과장 신현국 ▲ 대전세무서 소득세과장 정인숙 ▲ 대전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차은규 ▲ 서대전세무서 소득세과장 신동우 ▲ 서대전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최수종 ▲ 북대전세무서 징세과장 김신흥 ▲ 북대전세무서 소득세과장 안승호 ▲ 북대전세무서 재산세과장 김병식 ▲ 북대전세무서 법인세과장 서문석 ▲ 세종세무서 징세과장 최은미 ▲ 세종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김종문 ▲ 세종세무서 소득세과장 김민규 ▲ 세종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신영 ▲ 청주세무서 징세과장 김창미 ▲ 청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유은빈 ▲ 동청주세무서 징세과장 김용주 ▲ 동청주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류성돈 ▲ 동청주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이완표 ▲ 동청주세무서 조사과장 이상우 ▲ 충주세무서 징세과장 유선우 ▲ 충주세무서 조사과장 임종찬 ▲ 충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영호 ▲ 영동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황규용 ▲ 제천세무서 세원관리과장 김원호 ▲ 공주세무서 징세과장 이정선 ▲ 논산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조종연 ▲ 논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석영일 ▲ 보령세무서 징세과장 정필영 ▲ 보령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동형 ▲ 서산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최익수 ▲ 홍성세무서 세원관리과장 김우성 ▲ 예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안주훈 ▲ 천안세무서 소득세과장 마삼호 ▲ 천안세무서 법인세과장 조병길 ▲ 천안세무서 조사과장 박종영 ▲ 천안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박종빈 ▲ 아산세무서 징세과장 공원택 ▲ 아산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김순복 ▲ 아산세무서 조사과장 김영두 ◇ 전산사무관 전보 ▲ 개발지원1팀장 김명원 ▲ 개발지원2팀장 정기숙 ▲ 대전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박재근 ▲ 북대전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정현철 ◇ 방재안전사무관 전보 ▲ 제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최재균 &<광주지방국세청&> ◇ 행정사무관 전보 ▲ 운영지원과장 민준기 ▲ 감사관 김덕호 ▲ 부가가치세과장 박정국 ▲ 소득재산세과장 김현성 ▲ 법인세과장 채규일 ▲ 정보화관리팀장 김민철 ▲ 징세과장 정찬성 ▲ 체납추적과장 양석범 ▲ 조사1국 조사관리과장 김창현 ▲ 조사1국 조사1과장 정완기 ▲ 조사1국 조사2과장 송창호 ▲ 조사2국 조사관리과장 박진찬 ▲ 조사2국 조사1과장 문미선 ▲ 조사2국 조사2과장 유태정 ▲ 광주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김형국 ▲ 광주세무서 소득세과장 김형숙 ▲ 광주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장성재 ▲ 광주세무서 조사과장 김대학 ▲ 북광주세무서 징세과장 진중기 ▲ 북광주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김성수 ▲ 북광주세무서 법인세과장 손오석 ▲ 북광주세무서 조사과장 오금탁 ▲ 서광주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박권진 ▲ 서광주세무서 소득세과장 장동규 ▲ 서광주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김희봉 ▲ 서광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철웅 ▲ 군산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오기범 ▲ 군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고진수 ▲ 전주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양천일 ▲ 전주세무서 조사과장 변승철 ▲ 북전주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정명수 ▲ 북전주세무서 진안지서장 홍기석 ▲ 익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권혁준 ▲ 익산세무서 김제지서장 장영철 ▲ 정읍세무서 징세과장 김 현 ▲ 남원세무서 징세과장 이경섭 ▲ 남원세무서 세원관리과장 기연희 ▲ 목포세무서 징세과장 김은미 ▲ 목포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강용구 ▲ 목포세무서 조사과장 강채업 ▲ 목포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박정환 ▲ 나주세무서 징세과장 김창오 ▲ 나주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조호형 ▲ 나주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박숙희 ▲ 나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남애숙 ▲ 해남세무서 세원관리과장 문동호 ▲ 해남세무서 강진지서장 백홍교 ▲ 순천세무서 징세과장 김행곤 ▲ 순천세무서 소득세과장 배삼동 ▲ 순천세무서 조사과장 염삼열 ▲ 여수세무서 징세과장 송형희 ▲ 여수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김경민 ▲ 여수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강경진 ▲ 여수세무서 조사과장 이용혁 ▲ 여수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장민석 ◇ 전산사무관 전보 ▲ 익산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지승환 ◇ 직무대리 발령 ▲ 남원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신명숙 ▲ 순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진규 &<대구지방국세청&> ◇ 행정사무관 전보 ▲ 운영지원과장 최종기 ▲ 감사관 김상섭 ▲ 부가가치세과장 최은호 ▲ 소득재산세과장 이병주 ▲ 법인세과장 이동일 ▲ 정보화관리팀장 정영순 ▲ 체납추적과장 유종호 ▲ 조사1국 조사관리과장 권병일 ▲ 조사1국 조사1과장 김성호 ▲ 조사1국 조사2과장 이동원 ▲ 동대구세무서 소득세과장 이춘희 ▲ 서대구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최병달 ▲ 서대구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김종근 ▲ 서대구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선민 ▲ 남대구세무서 징세과장 전찬범 ▲ 남대구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이대희 ▲ 남대구세무서 소득세과장 홍경란 ▲ 남대구세무서 재산세과장 이현종 ▲ 남대구세무서 법인세과장 이창규 ▲ 남대구세무서 조사과장 이승괄 ▲ 남대구세무서 달성지서장 김경식 ▲ 북대구세무서 징세과장 최지안 ▲ 북대구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이충형 ▲ 북대구세무서 재산세과장 권성구 ▲ 북대구세무서 법인세과장 박성학 ▲ 북대구세무서 조사과장 강정석▲ 수성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지재홍 ▲ 경주세무서 징세과장 우병옥 ▲ 경주세무서 영천지서장 이광오 ▲ 포항세무서 징세과장 김복성 ▲ 포항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이문태 ▲ 포항세무서 울릉지서장 김창신 ▲ 구미세무서 징세과장 남정근 ▲ 구미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김영중 ▲ 경산세무서 징세과장 권호경 ▲ 경산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이동훈 ▲ 경산세무서 조사과장 김순석 ▲ 경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종훈 ▲ 안동세무서 징세과장 황하늘 ▲ 안동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일우 ▲ 안동세무서 의성지서장 송명철 ▲ 김천세무서 세원관리과장 이강훈 ▲ 상주세무서 징세과장 이미숙 ▲ 상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안병수 ▲ 영주세무서 징세과장 이훈희 ▲ 영주세무서 세원관리과장 류재무 ▲ 영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윤윤오 ▲ 영덕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혁준 ▲ 영덕세무서 울진지서장 최남숙 &<부산지방국세청&> ◇ 복수직서기관 전보 ▲ 조사1국 조사관리과 정상봉 ▲ 조사1국 조사2과 주종기 ▲ 조사2국 조사관리과 윤상봉 ▲ 통영세무서 거제지서장 성병규 ◇ 행정사무관 전보 ▲ 감사관실 백주현 ▲ 납세자보호담당관실 진유신 ▲ 운영지원과 장영호 ▲ 부가가치세과 노영일 ▲ 부가가치세과 조현진 ▲ 소득재산세과 박경민 ▲ 법인세과 차무환 ▲ 정보화관리팀 김형걸 ▲ 송무과 김분숙 ▲ 송무과 배영호 ▲ 송무과 우미라 ▲ 체납추적과 김대옥 ▲ 조사1국 조사관리과 류용운 ▲ 조사1국 조사관리과 박주현 ▲ 조사1국 조사관리과 차상진 ▲ 조사1국 조사1과 조준호 ▲ 조사1국 조사1과 황규석 ▲ 조사1국 조사2과 강동희 ▲ 조사1국 조사2과 김창일 ▲ 조사1국 조사2과 윤현아 ▲ 조사1국 조사2과 한현국 ▲ 조사1국 조사3과 문효상 ▲ 조사1국 조사3과 유승명 ▲ 조사2국 조사관리과 김동업 ▲ 조사2국 조사관리과 김환중 ▲ 조사2국 조사관리과 조민래 ▲ 조사2국 조사1과 이창렬 ▲ 조사2국 조사1과 임정환 ▲ 조사2국 조사1과 정승우 ▲ 조사2국 조사2과 김호 ▲ 조사2국 조사2과 임지은 ▲ 조사2국 조사3과 권익근 ▲ 조사2국 조사3과 손희영 ▲ 조사2국 조사3과 이영재 ▲ 중부산세무서 징세과장 권오식 ▲ 중부산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정경주 ▲ 중부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민주 ▲ 서부산세무서 소득세과장 구경식 ▲ 서부산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하치석 ▲ 부산진세무서 소득세과장 이상곤 ▲ 부산진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차규상 ▲ 수영세무서 조사과장 이승준 ▲ 수영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종호 ▲ 해운대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조선제 ▲ 해운대세무서 소득세과장 강헌구 ▲ 해운대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정창원 ▲ 북부산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조형나 ▲ 부산강서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김병수 ▲ 부산강서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김동원 ▲ 부산강서세무서 조사과장 김수영 ▲ 동래세무서 징세과장 백영상 ▲ 동래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성인섭 ▲ 동래세무서 소득세과장 김홍기 ▲ 동래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기중 ▲ 금정세무서 재산법인세과장 감경탁 ▲ 금정세무서 조사과장 윤광철 ▲ 울산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백선기 ▲ 울산세무서 재산세과장 윤종식 ▲ 울산세무서 법인세과장 남관길 ▲ 동울산세무서 조사과장 한정홍 ▲ 동울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이재춘 ▲ 마산세무서 조사과장 이진환 ▲ 창원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김태경 ▲ 창원세무서 재산세과장 신승환 ▲ 창원세무서 법인세과장 손성주 ▲ 창원세무서 조사과장 김도암 ▲ 창원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강경보 ▲ 김해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서재균 ▲ 김해세무서 소득세과장 권성호 ▲ 양산세무서 재산세과장 임정섭 ▲ 양산세무서 법인세과장 양기화 ▲ 통영세무서 부가소득세과장 송인범 ▲ 진주세무서 조사과장 박해근 ▲ 진주세무서 하동지서장 신웅기 ▲ 진주세무서 사천지서장 이우석 ▲ 제주세무서 재산세과장 김영창 ▲ 제주세무서 법인세과장 김지훈 ▲ 제주세무서 서귀포지서장 강승구 ◇ 직무대리 발령 ▲ 소득재산세과 배은주 ▲ 소득재산세과 신옥미 ▲ 징세과 이기병 ▲ 체납추적과 홍후진 ▲ 조사1국 조사관리과 이용재 ▲ 조사1국 조사1과 김종각 ▲ 조사1국 조사3과 강성태 ▲ 조사2국 조사관리과 김경무 ▲ 조사2국 조사2과 김경철 ▲ 서부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묘성 ▲ 동울산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안수만 ▲ 동울산세무서 울주지서장 이선영 ▲ 마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헌국 ▲ 거창세무서 세원관리과장 김명경 ▲ 진주세무서 징세과장 정현대 ▲ 진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김병성 ▲ 제주세무서 소득세과장 최경수 ▲ 제주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양용선 &<국세공무원교육원&> ◇ 행정사무관 전보 ▲ 국세공무원교육원 교육지원과 이정남 ▲ 교육운영과 고택수 &<주류면허지원센터&> ◇ 공업사무관 전보 ▲ 주류면허지원센터 분석감정과장 장영진 ▲ 기술지원과장 조호철 &<국세상담센터&> ◇ 행정사무관 전보 ▲ 국세상담센터 전화상담1팀장 최천식 &<타부처 파견 등&> ◇ 행정사무관 전보 ▲ 기획재정부 정윤재 ▲ 기획재정부 권승민 ▲ 기획재정부 유선정 ▲ 기획재정부 김서윤 ▲ 기획재정부 김철현 ▲ 기획재정부 권재효 ▲ 행정안전부 이영휘 ▲ 국토교통부 김미애 ▲ 금융위원회 윤나영 ▲ 금융위원회 김은경 ▲ 조세심판원 이주연 ◇ 전산사무관 전보 ▲ 행정안전부 박미숙
'한동훈' 이름으로 대통령 부부 비방글…경찰, 수사 착수 '한동훈' 이름으로 대통령 부부 비방글…경찰, 수사 착수 등록일2024.11.13 &<앵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한동훈 대표와 가족들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 대표 측은 허위사실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당 안에서는 진상 규명 요구가 끊이질 않고 있고 경찰도 수사에 나섰습니다. 안희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입니다. 실명 인증을 거친 당원만 글을 올릴 수 있는데, 이곳에 게시된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방글 다수를 한동훈 대표와 그 가족이 작성했단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유튜브 채널 '이병준TV' (지난 5일) : 글 검색 방법에 작성자가 있어요. 한동훈이 쓴 글이 쫙 나오는 겁니다. '윤석열 책임 73% 한동훈 책임 10%', '보수 권력과 지지층이 한동훈으로 거의 다 이동하고 있다', 정말 우연의 일치네요.] 한 대표 측은 허위사실이라며 유포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장동혁/국민의힘 최고위원(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 그런 비방의 글을 올리려면 한동훈 대표가 실명으로 하기야 했겠습니까.] 한 대표는 비공개회의에서 게시판에 글을 쓴 사실이 없단 취지로 말한 걸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의혹 제기 직후 작성자 검색 기능을 없앤 걸 놓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당 관계자는 익명 게시판 성격을 고려해 시스템을 정비한 거라고 해명했습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추경호 원내대표는 당 차원의 진상조사를 주문했습니다. [추경호/국민의힘 원내대표 : 여러 이해하기 어려운 게시글들이 올라와 있고, 의문점에 대해서 빨리 해소하는 것이 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조사에 착수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서범수 사무총장은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친윤계에선 신속한 의혹 규명을 촉구했습니다. [권성동/국민의힘 의원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 : 한동훈 대표에 대해서 욕설이 있었다고 그런다면 당 지도부가 이렇게 미온적으로 대처했을까요? 본인이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이 부분을 빨리 밝히는 것이 맞다….] 경찰이 해당 의혹을 고발한 시민단체 대표를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게시판 논란이 계파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단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전경배·김세경, 영상편집 : 우기정, 화면제공 : 유튜브 '이병준TV')
생애 첫 주연 영화 개봉 앞두고 자필 편지 쓴 한 중년 배우 생애 첫 주연 영화 개봉 앞두고 자필 편지 쓴 한 중년 배우 등록일2024.10.15 ▲ 배우 이병준이 쓴 자필 편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가 개봉합니다. 영화 '카인의 도시' 주연으로 출연하는 배우 이병준이 기자 실명까지 언급하며 기자들에게 보낸 자필 편지 홍보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 씨는 넷플릭스 '더 글로리', JTBC '재벌집 막내아들'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중년 배우입니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주연을 맡게 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자필 편지까지 썼습니다. 이 씨는 편지에서 1995년부터 배우 생활을 하면서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많았다 며 그래도 한결같이 제 길을 계속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고마우신 분들의 따뜻한 지원 덕분이다 고 말했습니다. 이어 육십간지가 한 바퀴 돌아 지금 나이에 이르러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를 완성했다 며 개봉을 앞두고 기자님의 참석을 간청드린다 고 덧붙였습니다. 그가 이번에 직접 쓴 편지는 50여 편입니다. '영화제' 등 영화 관련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해 나오는 기자들에게 모두 편지를 보냈습니다. 송창수 감독은 14일 언론 통화에서 이 씨와 함께 색다른 영화 홍보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며 어떻게 하면 진심이 더 잘 전달될까 하는 생각에 직접 편지를 쓰게 됐다 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씨를 제외하고는 신인 배우들 위주로 영화를 제작했다 며 한 분의 관객이라도 더 찾아와 줬으면 한다 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카인의 도시'는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가짜 뉴스와 학폭, 청소년 마약 등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입니다. 이 씨는 가짜 제보에 의한 보도로 검찰의 조사까지 받는 기자 강현수 역할을 맡았습니다. 다음 달 20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 점에서 시사회 및 관객과의 대회(GV)가 열릴 예정입니다. (사진=송창수 감독 제공, 연합뉴스)
'돌싱포맨' 한채영, 남편 '돌싱' 루머 해명 조카와 찍힌 사진 때문에 오해 '돌싱포맨' 한채영, 남편 '돌싱' 루머 해명  조카와 찍힌 사진 때문에 오해 등록일2024.06.11 배우 한채영이 남편이 돌싱이라는 루머를 해명한다. 11일 방송될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 배우 이병준, 한채영, 개그맨 임우일이 게스트로 등장해 '돌싱포맨'과 반전 케미를 선사한다. 앞서 진행된 촬영에서 타고난 황금비율 '인간 바비인형' 한채영이 등장하자, 그녀의 다리 길이가 무려 112cm라는 사실에 김준호가 용감하게 옆자리에 섰다가 대굴욕을 맛봐 시작부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또한 하루종일 유튜브를 본다는 이병준은 탁재훈 채널도 보시냐 는 질문에 보지 않는다 고 단호하게 말해 천하의 탁재훈마저 굴욕에 빠트렸다. 이어 억 소리 나는 프러포즈를 받은 후 18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한채영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한채영은 결혼생활을 이어온 비결로 부부만의 독특한 '부부싸움 룰'을 공개했다. 아이에게 들키지 않고 다투기 위해 말이 아닌 '문자'로만 부부싸움을 한다는 것. 한채영은 한창 싸우다가도 아이가 나타나면 180도 바뀌어 세상 다정한 미소를 띤다며 상황을 직접 재연해 현장을 폭소케 했다. 또한, 한채영은 남편이 돌싱이라는 루머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한채영은 조카와 찍힌 사진 때문에 오해를 받아 조카에게 너 때문에 (남편이) 결혼 두 번 한 사람 됐다 우스갯소리로 말한다고 하자, 이에 '돌싱포맨'은 결혼 두 번 할 수 있지 않냐 , 우리의 꿈이다 라며 뜬금없이 재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쳐 한채영을 당황시켰다. 한편, 팔색조 배우 이병준은 에어로빅 댄스부터 특유의 저음으로 '밤양갱 챌린지'까지 완벽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몸을 바친 이병준의 코믹 기세에 위기의식을 느낀 '돌싱포맨'과 개그맨 임우일은 이에 질세라 온갖 댄스와 각종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역대급 폭소를 유발했다는 후문이다. 이병준 X 한채영 X 임우일과 '돌싱포맨'의 역대급 폭소 유발 티키타카는 11일 화요일 밤 9시 방송될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서 공개된다.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돌싱포맨' 한채영, 남편 '돌싱' 루머 해명 조카와 찍힌 사진 때문에 오해 '돌싱포맨' 한채영, 남편 '돌싱' 루머 해명  조카와 찍힌 사진 때문에 오해 등록일2024.06.11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배우 한채영이 남편이 돌싱이라는 루머를 해명한다. 11일 방송될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 배우 이병준, 한채영, 개그맨 임우일이 게스트로 등장해 '돌싱포맨'과 반전 케미를 선사한다. 앞서 진행된 촬영에서 타고난 황금비율 '인간 바비인형' 한채영이 등장하자, 그녀의 다리 길이가 무려 112cm라는 사실에 김준호가 용감하게 옆자리에 섰다가 대굴욕을 맛봐 시작부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또한 하루종일 유튜브를 본다는 이병준은 탁재훈 채널도 보시냐 는 질문에 보지 않는다 고 단호하게 말해 천하의 탁재훈마저 굴욕에 빠트렸다. 이어 억 소리 나는 프러포즈를 받은 후 18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한채영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한채영은 결혼생활을 이어온 비결로 부부만의 독특한 '부부싸움 룰'을 공개했다. 아이에게 들키지 않고 다투기 위해 말이 아닌 '문자'로만 부부싸움을 한다는 것. 한채영은 한창 싸우다가도 아이가 나타나면 180도 바뀌어 세상 다정한 미소를 띤다며 상황을 직접 재연해 현장을 폭소케 했다. 또한, 한채영은 남편이 돌싱이라는 루머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한채영은 조카와 찍힌 사진 때문에 오해를 받아 조카에게 너 때문에 (남편이) 결혼 두 번 한 사람 됐다 우스갯소리로 말한다고 하자, 이에 '돌싱포맨'은 결혼 두 번 할 수 있지 않냐 , 우리의 꿈이다 라며 뜬금없이 재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쳐 한채영을 당황시켰다. 한편, 팔색조 배우 이병준은 에어로빅 댄스부터 특유의 저음으로 '밤양갱 챌린지'까지 완벽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몸을 바친 이병준의 코믹 기세에 위기의식을 느낀 '돌싱포맨'과 개그맨 임우일은 이에 질세라 온갖 댄스와 각종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역대급 폭소를 유발했다는 후문이다. 이병준 X 한채영 X 임우일과 '돌싱포맨'의 역대급 폭소 유발 티키타카는 11일 화요일 밤 9시 방송될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서 공개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베트남 가족여행 소방관, 물에 빠진 심정지 환자 생명 구해 베트남 가족여행 소방관, 물에 빠진 심정지 환자 생명 구해 등록일2024.05.10 ▲ 공주소방서 이병준 소방장 베트남으로 가족여행을 떠난 소방관이 현지에서 물에 빠져 심정지가 온 환자의 생명을 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오늘(10일) 충남소방본부에 따르면 공주소방서 이병준 소방장은 지난달 23일 가족과 함께 찾은 베트남의 한 리조트 수영장에서 리조트 관계자가 30대 한국인 여성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이 여성은 수영장 물에 빠져 호흡과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 소방장은 자신이 소방관임을 밝히고 리조트 관계자를 대신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2분 정도가 지나자 환자가 물을 토해내며 서서히 호흡을 되찾았습니다. 환자가 어느 정도 의식을 되찾고 곧 인근에 있던 환자 가족이 현장에 도착하자 이 소방장은 심정지 상태에서 회복했기 때문에 꼭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고 안내한 뒤 자리를 떴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도움을 준 사람이 소방관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던 환자 가족이 여행 후기 카페에 글을 남기면서 알려졌습니다. 이 소방장은 건강을 회복했다는 환자의 감사 문자를 받았을 때 더없이 행복하고 기뻤다 며 소중한 가족과 이웃을 위한 심폐소생술에 더 많은 분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고 말했습니다. (사진=충남소방본부 제공, 연합뉴스)
[꼬꼬무 찐리뷰] 나이 50에 美 첩보국 최초 한인 공작원 활동…유한양행 회장님의 비밀 [꼬꼬무 찐리뷰] 나이 50에 美 첩보국 최초 한인 공작원 활동…유한양행 회장님의 비밀 등록일2023.12.22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1일 방송된 'Only one - 요원 A의 비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최예나, 배우 이병준, 래퍼 겸 음악프로듀서 라이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수상한 외지인들 먼저,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을 할아버지로 둔 손녀딸 일링 씨의 이야기부터 들어볼게. 할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는데, 할아버지한테 이런 엄청난 비밀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대.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 되는 게, 할아버지가 가족과 떨어져 지낸 적이 많긴 했지만 특히 그 해는 떨어져 지낸 것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자주 연락할 수 없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 합류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죠. 왜 그걸 하셨을까 묻는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은 별로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오히려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로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손녀 유일링 할아버지에게 어떤 비밀이 있었다는 걸까. 그 모든 비밀은 바로 이 '탑 시크릿'이라 적힌 문서에 적혀있어. 할아버지는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길래, 그 내용이 담긴 문서는 '탑 시크릿'인 걸까. 때는, 1945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안에 있는 외딴섬 산타 카탈리나. 지금은 휴양지로 유명하지만, 이때만 해도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았어. 그런데 조용한 이 섬에,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해. 섬 곳곳에서 짐승들의 사체가 발견된 거야. 어느 날에는 목이 잘린 짐승 사체가 무더기로 나왔어. 섬 주민들은 이 모든 게 얼마 전 이 섬에 들어온 외지인들의 짓이라 생각했어. 그들이 들어온 후, 섬에서는 총소리, 폭탄소리가 끊이질 않았어. 짐승들의 사체도 그들의 소행이야. 그리고 섬 해변에서는 이런 게 목격돼. 소형 잠수정이야. 그 외지인들은 한 번씩 이걸 타고 나갔다가 며칠이 지나 돌아오곤 했어. 처음엔 그 사람들이 미군인가 싶었어. 인근 섬에 군사 기지가 많았거든. 그런데 좀 수상해. 부대 마크, 계급장 같은 게 없어. 한마디로, 정식 부대가 아닌 거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김새가 낯설어. 전부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야. 그것도 조선에서 온 사람들. 이들은 대체 이 섬에서 뭘 하는 걸까? 이들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진 건, 무려 50년 후인 1993년이야. 바로 그 '탑 시크릿' 보고서가 세상에 공개된 후야. 그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어. B는 평양 출신으로 체육을 전공했으며, 이후 미국 비행사 양성소에 들어가 조종 기술을 익혔다. F는 일본 항해 학교를 졸업한 항해사로 일본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미국 하버드 대학을 졸업해 영어 실력도 뛰어나다. G는 금속 화학기술자로 비행기 제조회사에서 일했으며 지질학, 물리화학 기술 방면으로 뛰어나다. 보고서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알파벳 암호명으로 표시돼 있어. 알파벳 순서상 첫 번째인 'A'. 암호명 'A' 인물에 관한 설명은 이렇게 쓰여있어. A는 50세이며, 그는 자신의 사업체 직원들을 모두 투철한 한인 애국자들로 선발했다. 회사의 존망을 무릅쓰고 그의 사업체를 작전에 이용하는데 기꺼이 동의했다. 암호명 A의 정체. 그가 바로 유일링 씨의 할아버지야. 바로, 이 사람. 이런 엘리트들이 왜 미국의 외딴섬에 모였을까. 사실 이들에게도 소속이 있어. 바로 '탑 시크릿' 보고서의 진짜 이름은 이거야. NAPKO PROJECT(냅코 프로젝트) OF OSS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정보기관이야. 우리가 잘 아는 CIA의 전신이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공식 참전한 미국은, OSS에 한반도 비밀 침투 작전을 지시해.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전에, 한반도에 있는 일본군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거야. 워싱턴 OSS 본부에서는 수중 작전을 계획했어. 아까 그 소형 잠수정 기억나지? 바다로 잠수함을 통해 한반도에 침투하는 작전이야. 이 작전이 바로 '냅코 프로젝트'야. 산타 카탈리나 섬의 외지인들은 냅코 프로젝트에 동원된 조선인 공작원들이었어. 미국 첩보국 최초의 한인 요원들이야. ▲ 냅코 프로젝트의 요원 A 근데 왜, 미국인이 아닌 조선인으로 꾸려졌을까? 냅코 프로젝트는 요원 70%가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을 정도로, 위험한 프로젝트였어. 그래서 조선인들을 작전에 투입하기로 한 거야.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 걸고 싸울 테니까. 냅코 프로젝트는 극비 프로젝트라 공작원 모집도 비밀리에 진행됐어. 먼저 OSS 모집팀이 향한 곳은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포로수용소였어. 이곳에는 태평양 전쟁 중에 잡혀온 포로들이 있어. OSS 모집팀의 요원 한 명이 수용소 소장을 만나 이걸 내밀었어. 이름 이종흥 -일본군이 아니라는 이유로 포로복 착용을 거부했을 정도로 반일적. 평양과 서울 지형을 잘 알고 있는 인물. 이름 김현일 -황해도 출신의 농부로 지형을 잘 알며 미혼. 이름 김필영 -황해도 송화군 출생으로 구월산 지리를 잘 알고 반일적.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들의 신상이 적힌 개인기록 카드야. 하나같이 한반도 지형을 잘 아는 반일적인 인물들이야. 당시 수용소에는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많았어. 일본군 신분으로 싸우다가 포로까지 됐으니, 반일감정이 극에 달했겠지. 게다가 이미 군사훈련까지 받은 병사들이야. OSS 입장에서는 공작원으로 더할 나위가 없지. 그리고 OSS 모집팀이 향한 또 한 곳, 이번에는 LA 한인타운 인근의 호텔이야. 동양인 남성이 301호로 들어가. 잠시 후, 웬 남자들이 302호로 조용히 들어가. 그리고 헤드폰을 쓴 채 뭔가를 받아 적기 시작해. 301호에 들어간 남자를 도청하는 거야. 302호의 정체는, OSS 모집팀이야. 냅코 프로젝트의 공작원을 뽑기 위해, 재미 한인들을 미행하고 도청한 거야. 그리고 철저한 검증을 통과한 사람들만 접촉해. 이들이 만난 재미 한인들은 대부분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야. 이들이 그 모든 걸 버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냅코 프로젝트 작전에 참여할까? 만나보는데 흔쾌히 승낙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승낙을 안 하는 이유는 그저 미국 생활이 뭣하고 그런데 한국은 어련히 돼 가려니 하고 자기 생명은 아끼는 셈이죠. -장석윤, 당시 OSS 한인 요원 쉽게 정할 수 없는 결정. 이틀 뒤, 한 사람한테 연락이 왔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 필요하다면 조선에 있는 제 회사를 사용해도 좋다 는 이 사람. 바로 일링의 할아버지, 요원 A야. 요원 A는 재미한인들 중 가장 먼저 프로젝트에 참여했어. 근데 요원 A의 나이는 50세야. 실전에 투입되기 너무 고령이지. 그래서 실전 투입이 아닌 고문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어. 그의 회사 지점이 조선 전역에 있었는데, 그곳의 직원과 시설을 비밀조직으로 활용해도 좋대. 그 뒤로, 다른 한인들에게도 연락이 왔어. 아무래도 가족들이 위험할 것 같으니, 위장 이혼을 하고 참여하겠다 는 사람, 난 미간에 큰 사마귀가 있어 쉽게 눈에 띌 거다. 성형수술을 하고 참여하겠다 는 사람. 그렇게 요원 A를 시작으로, 8명의 한인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대. 행여 피해가 갈까, 가족들에게는 철저히 숨겼어. 1945년 5월, 미국 각지에서 19명의 요원들이 산타 카탈리나 섬에 모였어. 명문대를 졸업한 기술자부터 포로수용소에서 차출된 사람까지, 그야말로 지옥의 외인구단이야. 그런데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19명 중에 20대는 단 3명, 대부분 30, 40대였어. 게다가 절반은,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민간인이야. 군사 훈련은커녕, 총 쏘는 법도 잘 몰라. 심지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개월이야. 그 시간 안에, 미군 특수부대 수준의 인간병기가 되어야 해. 요원들은 침투 작전에 필요한 A부터 Z까지 모든 걸 배우기 시작해. 첫 번째로 사격. 처음에는 총알을 과녁에 맞히는 것조차 불가능했어. 그런데 매일 사격훈련을 한 결과, 움직이는 멧돼지도 단번에 맞추는 실력을 갖췄어. 두 번째로 무선통신. 빠른 암호 송신과 해독 능력이 필요해. 피나는 훈련 끝에 웬만한 미군들보다 2배 이상 빨랐대. 세 번째, 생존훈련. 바다 한가운데서 고무보트를 조립해 나오는 전투 수영 훈련, 선인장 군락 위에 착지하는 낙하산 훈련까지. 매일 지옥훈련이 이어졌어.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 요원들. 이 지옥훈련을 받는 요원들 중 뜻밖의 얼굴이 있어. 바로 요원 A야. 분명 요원 A는 고령이라, 실전이 아닌 고문 역할을 하기로 했는데. 다른 요원들과 함께 훈련을 받은 거야. 그 이유는 뭘까. 할아버지는 그 프로젝트를 위한 완벽한 리더 요원이었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 네브래스카에서 한인 청년 군인들과 함께 훈련받은 적이 있어요. 냅코 프로젝트에 필요한 총기와 도구를 사용하는 데 능숙할 수 있었죠. -유일링, 요원 A의 손녀 요원 A는 14살에 군사학교에 입학해서 3년간 미육군사관학교와 똑같은 훈련을 받았어. 성인이 된 후에는 미국에 있는 한일 청년들을 모아서 항일 민병대를 조직했어. 리더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췄지. 그는 팀의 조장까지 맡으며 요원들을 이끌었대. 근데 이 요원 A의 얼굴, 어디서 본 적 없어? 암호명 A의 진짜 정체는, 대한민국 기업 총수 중에 전무후무한 이력을 가진 '유일한 회장'이야. 요즘 세대에겐 생소한 이름인지 모르지만, 이 버드나무 그림의 로고로 유명한 '유한양행'은 알지? 매출액 약 1조 8천억 원의 국내 유명 제약회사. 이 회사의 창업주 유일한이 바로, 냅코 프로젝트의 요원 A야. ▲ 천재 사업가 유일한 때는 1895년, 유일한은 청일전쟁이 한창일 때 태어났어. 아버지가 평양에서 장사를 했는데, 당시 세계적인 재봉틀 브랜드의 대리점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어. 그런데 1904년, 한반도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았어. 유일한의 아버지는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기로 결심해. 더 넓은 세계로 가서 나라에 보탬되는 사람이 되라고. 당시 유일한의 나이 9살이었어. 그렇게 미국에 간 유일한은 25세가 되던 해, 에디슨이 설립한 글로벌 기업에 입사해. 당시 전기가 들어가는 제품은 전부 이 회사가 만들었다고 봐도 돼. 유일한은 이 회사에서 최초의 동양인 회계사로 뽑혀 일했어. 그러던 어느 날, 유일한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겠대. 회사에서 아시아 시장 총책임자 자리도 제안했는데, 그것도 거절해. 그렇게 대기업을 퇴사한 유일한은 작은 사업을 시작했어. 그가 시작한 사업 아이템은, 지금까지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숙주나물'이었어. 당시 숙주나물은 인기 음식이었던 만두에 꼭 들어가야만 하는 필수 식재료였어. 유일한은 금방 상해버리는 숙주나물을 어떻게 오래 보관해 유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 그러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통조림'이야. 통조림을 활용해 숙주나물을 훨씬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만들었어. 근데 이름 없는 작은 회사다 보니, 홍보가 쉽지 않아. 게다가 통조림을 싣고 가던 트럭이 교통사고까지 났어. 도로에 수백 개의 통조림이 나뒹굴고, 일대 교통이 마비됐어. 지역 신문기자까지 와서 사고 현장을 찍을 정도였어. 유일한은 이걸 기회라고 생각했어. 곧바로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어. 이후, 통조림 주문이 폭주해. 숙주나물 통조림 트럭이 교통사고가 나서 한때 교통이 마비됐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는데, 기사 내용에 통조림으로 숙주나물을 장기 보관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며 홍보가 된 거야. 이 일을 계기로 사업은 번창해. 회사를 설립한 지 6년 만에 자산이 당시 2백만 불. 지금 돈으로 약 250억 원을 번 거야. 주문량이 급증하며 유일한은 좋은 녹두를 구하기 위해 중국과 조선을 방문하기로 했어. 1926년, 그렇게 유일한은 21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어. 그런데 기대와 설렘도 잠시, 조국에 도착한 유일한은 경악을 금치 못했어. 전조선에 결핵환자 작년 중 만 천구백여 폐결핵과 기타 결핵 환자는 조선인 8,238명 그중 사망한 자는 3,102명. 20세기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스페인 독감'. 1918년에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 세계 약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유행 전염병이야. 그 스페인 독감이 한반도를 덮쳤어. 4달 만에 760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사망했어. 게다가 기생충, 결핵, 피부병, 성병 등 제때 약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인데도 죽는 사람이 허다한 거야. 이런 한반도의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은 유일한은 이렇게 생각했어. 미국의 값싸고 좋은 약을 우리나라로 가져오자 잘 나가는 미국 회사를 접고 조선에서 의약품 사업을 하겠다는 거야. 이 말을 들은 미국 동료들은 유일한을 말렸어. 그런 동료들에게 유일한은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 고 말했어. 어린 나이에 조선을 떠났지만,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이 없대. 유일한은 자신의 모든 지분을 정리하고, 조선에 시급한 의약품을 구입하는데 전부 투자했어. 그렇게 귀국길에 오른 유일한에게 응원을 보낸 한 사람이 있어. 바로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 유일한이 미국에 있는 동안 정신적 지주 같은 분이었대. 서재필 선생은 떠나는 그에게 그림 하나를 선물해. 바로 이 버드나무 그림. 유일한의 유 씨가 '버들 유(柳)'였거든. 조선사람들에게 버드나무 그늘 같은 존재가 되라는 의미였대. 유일한은 이 그림을 회사의 상징으로 삼고, 종로에 사무실을 개업해. 그 회사가 바로 '유한양행'. 미국에서 온 31살의 천재 사업가의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어. ▲ 쪽박 사업이 대박으로, 굽히지 않은 신념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의약품 사업이 처음에는 완전 쪽박이었어. 약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많은 시간이 지나고 1926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할아버지는 또 아웃사이더였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미국식 옷을 입고, 다르게 움직이고, 다르게 행동했을 거예요. 언어도 달랐겠죠. 당시 할아버지의 한국어 실력은 일반 30대 남성의 한국어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래서 항상 아웃사이더였어요. -유일링, 유일한의 손녀 조국을 위해 모든 걸 걸었지만, 현실은 '검은 머리 이방인'이었어. 게다가 이 때는 일제강점기 시절이야. 일본 제약회사들이 국내 의약품 시장을 꽉 잡고 있어. 유통되는 건 대부분 일제 의약품이야. 근데 미국에서도 성공한 천재 사업가가, 여기서 포기했겠어? 짐을 싸서 약을 들고 길을 나선 유일한. 그가 향한 곳은, 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이야. 그들이라면 미국 의약품에 관심을 가질지도 몰라. 유일한은 직접 차를 몰며 전국을 돌았어.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은, 당나귀에 약을 싣고 들어갔대. 그 결과, 주문 전화가 폭주해. 조선 내 외국인을 공략하자는 유일한의 전략이 먹힌 거야. 다음 타깃은 일반 소비자야. 그들에게 회사를 알리기 위해, '광고'를 신문에 싣기로 했어. 일단 일본 제약사들이 어떤 광고를 하는지, 시장분석을 했어. 그런데 일본 광고들이 아주 기가 막혀. 당시 실제 일본 의약품 광고야. 구토, 현기증, 멀미, 우울증, 심지어 각종 전염병에도 효과가 있대. 이 약의 정체는, 소화제야. 단순 소화제를 만병통치약처럼 홍보한 거야. 이렇게 당시 일제의 의약품은 과대광고가 빈번했어. 그럼 유일한은 어떻게 했을까? 유한양행은 버드나무 그림만 달랑 그려 넣고 '개업'이라 적었어. 과감하게 티저 광고를 내며, 제품이 아닌 브랜드를 홍보한 거야. 결과는 대성공. 기업 이미지를 강조한 광고 덕에, 회사 이미지도 수직상승했어. 유일한은 그 후 자체 공장을 설립하고 제품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어. 그중 하나가 자양강장제 개발이야. 근데 당시 자양강장제도 일본 제품의 인기가 높았어. 유난히 약발이 좋았거든. 그런데 일본 자양강장제가 약발이 좋았던 이유는 따로 있어. 아편, 모르핀 등의 마약 성분을 넣었기 때문이야. 자양강장제에 마약이라니,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지. 유한양행 직원들 중에는 '우리도 일본과 비슷한 자양강장제 제품을 만들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 유일한 회장은 그런 직원들을 엄하게 혼냈어. '건강한 국민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 유일한인데, 약에 마약을 넣는다? 절대 용납할 수 없지. 그렇게 마약성분 없는 자양강장제 '네오톤토닉'이 출시됐어. 마약성분 없는 자양강장제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만주에서도 주문이 빗발쳐. 시장에는 유사품이 넘쳐날 정도였어. 미국에서 온 천재 장사꾼이 마침내 일본 제약사를 누르고, 업계 탑을 차지했어. ▲ 냅코 프로젝트의 폐기 그 후 유 회장은 해외로 눈을 돌려, 해외수출 계약을 위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갔어. 그런데 뜻밖의 제안을 받아. 바로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는 OSS의 제안이야. 해외 진출을 앞두고 중요한 계약이 줄줄이 남아있는데, 그런 시기에 그 회사의 회장님이 자리를 비운다? 게다가 미국에는 가족들도 함께 와있어. 당시 딸이 16살, 아들은 10살이야. 어린 자녀들을 남겨둔 채 죽을 수도 있어. 이런 상황인데도, 유일한 회장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거야. 조국을 위한 일이니까. 1945년 8월. 냅코 프로젝트의 작전 개시가 임박했어. 3개월간 고된 훈련을 마친 유일한과 요원들은 D-DAY가 잡히길 기다렸어. 그리고 마침내, 상부의 연락이 왔어. 그런데, 작전 개시 명령이 아닌,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다 는 내용이었어.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정부가 항복을 선언했어. 4년간 이어진 태평양전쟁이 갑자기 종결됐어. 이 소식을 들은 유일한과 요원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 일본의 패망은 곧, 냅코 프로젝트의 폐기를 의미해. 이들이 목숨을 걸고 미국의 비밀작전에 참여했던 건, 이 전쟁에 조선인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래야 전쟁이 끝나고 독립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주권을 주장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일본으로부터는 해방됐지만, 주권을 찾지 못했지. 독립 정부 대신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끝내 분단의 비극으로 이어졌어. 그렇게 역사에서 묻힌 냅코 프로젝트. 냅코 프로젝트가 실행됐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몰라. ▲ 정권과의 악연 1948년 8월 15일. 한반도 남쪽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어. 유일한도 귀국 준비를 서둘러. 그런데 입국이 불가능해. 한국 정부에서 입국을 거절한 거야. 사실 유일한은 얼마 전 한 통의 편지를 받았어. 발신인은 이승만 대통령이야. 편지는 유 회장에게 초대 상공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내용이었어. 유 회장은 이 편지에 한국말도 서툰 제가 어떻게 한국 국민을 이끌겠습니까. 전 그저 사업가일 뿐입니다 라며 정중히 거절했어. 이 일로 유일한은 미운털이 박힌 건지 계속 입국 거부를 당하다가 무려 7년 뒤에나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대. 그런데 돌아와 보니, 회사 꼴이 말이 아니야. 이번엔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됐거든. 게다가 휴전이 되면서, 중국과 이북 쪽에 있던 회사 재산을 전부 잃었어. 그게 무려 기업 자산의 80%였어. 회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선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야. 유 회장이 선택한 한국전쟁 후 새로운 사업 아이템, 자동차 사업이야. 전쟁 피해가 복구되고 나면, 한국도 미국처럼 자동차 시대가 열릴 거라 생각한 거야. 그래서 미국산 자동차 수입 회사를 설립해. 반응은 좋았어.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국회에 고급 승용차를 납품했어. 이제 좀 살았구나, 안심하려던 무렵, '그곳'에서 또 연락이 왔어. 유한양행은 3억 환 정도 내면 되겠소.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선거로 꼽히는 3.15 부정선거. 이승만 정부와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깡패들을 동원해서 상대 후보를 방해하고 고무신, 막걸리, 돈봉투로 표를 사다시피 했어. 그러니 부정선거에 돈이 필요하지. 훗날 알려진 바로는, 56개 기업체로부터 63억 환 정도를 받았대. 지금으로 따지면 약 415억 원 정도야. 유 회장은 이 요구를 거절했어. 그런데 얼마 후, 자동차 회사에 다급한 전갈이 도착해. 수입한 물건들이 전부 세관에 묶여 있다는 거야. 정부에서 갑자기 자동차와 부속품 수입을 금지했어. 유 회장은 결국 10만 달러 이상의 피해액을 떠안았고, 자동차 사업은 폐업했어. 그런데 정권과의 악연은 이게 끝이 아니야. 박정희 정권 때도 정치자금을 또 요구받아. 한번 크게 손해 본 적 있는 유 회장. 이번에는 어떻게 했을까? 역시나 거절이야. 당연히 박정희 정권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 당시 기업들이 가장 무서워했다는 세무조사. 특별사찰반 24명이 한 달 동안 유한양행 장부를 탈탈 털었어. 근데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이상이 없어. 너무 깨끗해. 하다 하다 안되니까 판매 중인 약품 전체를 과학기술처로 보내서 함량 및 제품 조사까지 실시했어. 그렇게 탈탈 턴 결과, 유 회장은 오히려 상을 받았어. 두 번째 세금의 날을 맞아 서울 시민 회관에서는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이날 세금을 제때 많이 낸 사람들에게는 그 공덕을 치하하는 훈장과 표창장 등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날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유일한 씨의 경우를 보면 각종 의약품을 생산해서 국민 보건에 이바지한 것 외에 세금 납부에 모범을 보여 국가산업 신장에 크게 도움을 준 바 있어 영예 최고 훈장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당시 뉴스 中 과학기술처에 보낸 약품 모두, 함량 미달은 없었어. 이 세무조사로 유 회장은 처벌은커녕, 업계 최초로 동탑산업훈장을 받아. 거기에 국세청 홍보모델까지 됐어. 유 회장은 항상 회사의 주인은 개인이 아니다. 그 회사를 키워준 사회다 라고 말했어. 그에게 세금은 기업이 마땅히 사회에 돌려줘야 할 돈이었던 거야. ▲ 유일한다웠던, 은퇴 후 행보 세월이 흘러 유 회장도 백발의 일흔 노인이 됐어. 임원들은 슬슬 후계 문제를 걱정했어. 그러면서 후계자로 이 사람이 거론돼. 유 회장의 아들 유일선. 아들은 당시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어. 근데 유 회장은 못마땅해하는 눈치야. 변호사가 무슨 사업을 이끄냐며, 말도 안 된대. 그런데도 임원들이 계속 매달리니, 한 가지 조건을 달았어. 아들에게 부사장 직을 맡기고, 경영 능력을 테스트 해보기로 한 거야. 그런데 출근 첫날, 아들을 본 직원들은 깜짝 놀랐어. 부사장이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한 거야. 게다가 미국에서 자라서 한국말도 서툴러. 그래서 비서도 백인으로 뽑고, 자신에게 오는 서류도 모두 영문으로 번역해 달라 했어. 근데 이 미국스타일이 도움이 되기도 했어. 당시 국내 기업 최초로 컴퓨터를 도입하고, 전자 자료처리실도 만들었어. 그리고 미국에서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화장지를 쓴다며, 화장지 사업을 제안했어.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물자가 귀할 때라, 신문지나 달력으로 뒤처리하던 시절이야. 근데 화장지라니. 그건 사치품이라고 다들 말렸어.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이 정도 사업수완이면 아버지 유 회장이 아들을 인정해 줬을까? 그렇게 3년 후인 1969년 10월 30일.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한 유 회장은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어. 그리고 차기 회장한테 자신이 받은 동탑산업훈장을 물려줬어. 차기 회장은 아들이 아니였어. 3년간 부사장으로 일한 아들 대신, 당시 전무에게 사장직을 넘겼어. 그러면서 아들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 몇 안 되는 친인척도 고심 끝에 전부 해고했어. 이 조직 속에 우리 친척이 있으면 자네들이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주위에서 '장손자의 아들이다, 조카다', 그러면서 파벌이 형성되면 회사 발전에 지장을 받으니까 안된다고… '내가 살아있을 동안 일가친척들 다 내보내야 해' 그래서 조카고 뭐고, 다 내보냈어요. '내가 죽은 다음에 회사가 우리 가족 중에 우수한 사람이 있어서 회사에 플러스가 된다고 해서 채용하는 건 내가 아무 말 안 한다'… -연만희, 당시 유한양행 고문 '총수 일가', '재벌 2세', 이런 말 많이 들어봤지? 지금이나 그때나 경영권 대물림은 흔한 일이었어. 근데 유일한은 전문 경영인 제도를 선택한 거야. 국내 기업 최초로. 유일한은 최고 경영자의 임기도 제한했어. 한 번에 3년씩, 최대 한 번만 연임할 수 있도록. 본인이 사망한 후에도 회사가 누군가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야. 유일한은 은퇴 후에도 한국에 남았어. 아내와 아들은 미국으로 떠나고, 출가한 딸과 여동생이 가끔 찾아오는 정도였대. 하지만 외롭지 않았어. 은퇴 후 유일한 회장은 이곳에 가는 걸 좋아했대. 유한공업고등학교. 유일한이 사비를 들여 세운 학교야. 한국전쟁 후 유일한이 결심한 게 있었거든. 한국 와서 보니까 참 제일 불쌍한 것이 한국 청년들이에요. 왜인고 하니,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변변치 못하고. 또 고등학교라든지 그런데 가면 또 비용이 많아서, 머리는 좋지만 해도 여유가 없어서 못 가는 사람도 많고… -유일한 그의 결심은, 조국에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어. 한국전쟁 후에 폐허가 된 나라를 복구하는 데는 전문 기술자 육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야. 그 덕에 이 학교의 학생들은 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대. 전교생 전액 장학금이 지원됐어. 전국에서 온 우수한 학생들이 한 11대 1 정도 되고 공부는 잘하지만 지금 살기 힘들었던 학생들을 모집해서 전액 장학생, 전원 장학생으로 키운 것이 우리들한테는 아주 큰 은인이고 롤모델이 된 것 같아요. -조성갑, 유한공고 3회 졸업생 유일한은 학교를 세우기만 했을 뿐, 운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어. 공식적으로 학교를 방문한 것도 딱 한 번뿐이야. 그 외엔 멀리서 학생들 공부하는 것만 보고 갔대. 그럼에도 그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전 몇 번 갔거든요. 유일한 박사님 집을. 형광등이 끊어졌다든지 전구 콘센트가 고장 나면 저희도 공구는 있으니까. 그러면 일부러 불러서 저희한테 고쳐달라고 하시는데, 사실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밥 먹고 가라. 너희들 밥 먹고 가라' 과일도 주고 특히 달걀도 포함해서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이게 황금, 정말 맛있는 음식이죠. 옛날에는 밥을 제대로 먹느냐 마느냐 하던 시기였으니까. -조우장, 유한공고 2회 졸업생 1971년 3월. 노환으로 입원 생활을 하던 유일한은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런 부탁을 하셨대. 내 묘소와 주변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며주길 바란다. 단 유한동산에는 절대 울타리를 치지 말고,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해다오. 어린 학생들의 티 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느끼고 싶다. 유일한의 마지막 바람은, 그가 세운 학교에 잠드는 것이었어. ▲ 회장님의 유언 그 후 온 국민의 관심은, 회장님의 유언장에 집중됐어. 당시 언론은, 유일한이 기업활동을 하며 번 재산이 최소 50억 원에 달할 거라 계산했어. 현재 가치로 약 1,070억 원이야. 가족들이 둘러앉은 채, 유언장이 낭독됐어. 유언장에는 그의 아내, 아들과 딸, 그리고 손녀 이름이 언급됐어. 회장님은 이 재산을 어떻게 나눠 갖길 바라셨을까. 손녀인 유일링에게 대학 졸업 시까지 학자금 1만 달러를 준다. 내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아내 호미리는 재라(딸)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 주길 바란다.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손녀의 대학 자금을 제외하고, 모두 공익 재단에 기부했어.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할아버지의 유언장이 낭독될 때 가족 중에 누구도 놀란 사람은 없었어요. 사실 저는 그전까지 매번 들어왔던 말이 있는데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넌 아무것도 받지 않을 거야, 그런 건 우리 가족 스타일이 아니야' 그래서 대학 등록금으로 1만 달러를 받았을 때 놀랐어요. 아무것도 안 받는 게 제 가족 스타일이었으니까요. 우리 가족에게 내려오는 한 가지 가르침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일링, 유일한 손녀 이 유언장으로 공익 재단은 유한양행의 최대 주주가 됐어.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소유권은 공익 재단에게. 기업의 경영권과 소유권을 완벽히 분리한 거야. 이게 왜 대단한 일이냐면, 유한양행의 주가가 오르면 공익 재단은 그 주식으로 수익을 얻고, 따로 기부하지 않아도 사회에 이익을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거야. 이런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오로지 나라를 위한 그의 발자취.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이야기. 우리의 역사 안에서 시대를 이겨낸 사업가. 그는 떠났지만, 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유한공고 졸업생들은 후배를 위해 기부하며 든든한 선배가 되어주고 있고, 유한양행 출신들도 늘 남을 위했던 유일한의 따뜻한 철학을 본받아 또 다른 나눔을 실천하고 있어. 유일한 손녀 일링 씨는 유일한 정신을 이어갈 연구재단을 설립했어. 할아버지가 여전히 우리 안에 조금씩 살아계시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의 정신이 가족들에게 영감이 되기 때문에요. 확실히 할아버지는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지금도 나의 영웅입니다. -유일링, 유일한 손녀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나이 50에 美 첩보국 최초 한인 공작원 활동…유한양행 회장님의 비밀 [꼬꼬무 찐리뷰] 나이 50에 美 첩보국 최초 한인 공작원 활동…유한양행 회장님의 비밀 등록일2023.12.22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1일 방송된 'Only one - 요원 A의 비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최예나, 배우 이병준, 래퍼 겸 음악프로듀서 라이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수상한 외지인들 먼저,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을 할아버지로 둔 손녀딸 일링 씨의 이야기부터 들어볼게. 할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는데, 할아버지한테 이런 엄청난 비밀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대.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 되는 게, 할아버지가 가족과 떨어져 지낸 적이 많긴 했지만 특히 그 해는 떨어져 지낸 것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자주 연락할 수 없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 합류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죠. 왜 그걸 하셨을까 묻는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은 별로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오히려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로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손녀 유일링 할아버지에게 어떤 비밀이 있었다는 걸까. 그 모든 비밀은 바로 이 '탑 시크릿'이라 적힌 문서에 적혀있어. 할아버지는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길래, 그 내용이 담긴 문서는 '탑 시크릿'인 걸까. 때는, 1945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안에 있는 외딴섬 산타 카탈리나. 지금은 휴양지로 유명하지만, 이때만 해도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았어. 그런데 조용한 이 섬에,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해. 섬 곳곳에서 짐승들의 사체가 발견된 거야. 어느 날에는 목이 잘린 짐승 사체가 무더기로 나왔어. 섬 주민들은 이 모든 게 얼마 전 이 섬에 들어온 외지인들의 짓이라 생각했어. 그들이 들어온 후, 섬에서는 총소리, 폭탄소리가 끊이질 않았어. 짐승들의 사체도 그들의 소행이야. 그리고 섬 해변에서는 이런 게 목격돼. 소형 잠수정이야. 그 외지인들은 한 번씩 이걸 타고 나갔다가 며칠이 지나 돌아오곤 했어. 처음엔 그 사람들이 미군인가 싶었어. 인근 섬에 군사 기지가 많았거든. 그런데 좀 수상해. 부대 마크, 계급장 같은 게 없어. 한마디로, 정식 부대가 아닌 거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김새가 낯설어. 전부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야. 그것도 조선에서 온 사람들. 이들은 대체 이 섬에서 뭘 하는 걸까? 이들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진 건, 무려 50년 후인 1993년이야. 바로 그 '탑 시크릿' 보고서가 세상에 공개된 후야. 그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어. B는 평양 출신으로 체육을 전공했으며, 이후 미국 비행사 양성소에 들어가 조종 기술을 익혔다. F는 일본 항해 학교를 졸업한 항해사로 일본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미국 하버드 대학을 졸업해 영어 실력도 뛰어나다. G는 금속 화학기술자로 비행기 제조회사에서 일했으며 지질학, 물리화학 기술 방면으로 뛰어나다. 보고서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알파벳 암호명으로 표시돼 있어. 알파벳 순서상 첫 번째인 'A'. 암호명 'A' 인물에 관한 설명은 이렇게 쓰여있어. A는 50세이며, 그는 자신의 사업체 직원들을 모두 투철한 한인 애국자들로 선발했다. 회사의 존망을 무릅쓰고 그의 사업체를 작전에 이용하는데 기꺼이 동의했다. 암호명 A의 정체. 그가 바로 유일링 씨의 할아버지야. 바로, 이 사람. 이런 엘리트들이 왜 미국의 외딴섬에 모였을까. 사실 이들에게도 소속이 있어. 바로 '탑 시크릿' 보고서의 진짜 이름은 이거야. NAPKO PROJECT(냅코 프로젝트) OF OSS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정보기관이야. 우리가 잘 아는 CIA의 전신이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공식 참전한 미국은, OSS에 한반도 비밀 침투 작전을 지시해.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전에, 한반도에 있는 일본군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거야. 워싱턴 OSS 본부에서는 수중 작전을 계획했어. 아까 그 소형 잠수정 기억나지? 바다로 잠수함을 통해 한반도에 침투하는 작전이야. 이 작전이 바로 '냅코 프로젝트'야. 산타 카탈리나 섬의 외지인들은 냅코 프로젝트에 동원된 조선인 공작원들이었어. 미국 첩보국 최초의 한인 요원들이야. ▲ 냅코 프로젝트의 요원 A 근데 왜, 미국인이 아닌 조선인으로 꾸려졌을까? 냅코 프로젝트는 요원 70%가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을 정도로, 위험한 프로젝트였어. 그래서 조선인들을 작전에 투입하기로 한 거야.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 걸고 싸울 테니까. 냅코 프로젝트는 극비 프로젝트라 공작원 모집도 비밀리에 진행됐어. 먼저 OSS 모집팀이 향한 곳은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포로 수용소였어. 이곳에는 태평양 전쟁 중에 잡혀온 포로들이 있어. OSS 모집팀의 요원 한 명이 수용소 소장을 만나 이걸 내밀었어. 이름 이종흥 -일본군이 아니라는 이유로 포로복 착용을 거부했을 정도로 반일적. 평양과 서울 지형을 잘 알고 있는 인물. 이름 김현일 -황해도 출신의 농부로 지형을 잘 알며 미혼. 이름 김필영 -황해도 송화군 출생으로 구월산 지리를 잘 알고 반일적.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들의 신상이 적힌 개인기록 카드야. 하나같이 한반도 지형을 잘 아는 반일적인 인물들이야. 당시 수용소에는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많았어. 일본군 신분으로 싸우다가 포로까지 됐으니, 반일감정이 극에 달했겠지. 게다가 이미 군사훈련까지 받은 병사들이야. OSS 입장에서는 공작원으로 더할 나위가 없지. 그리고 OSS 모집팀이 향한 또 한 곳, 이번에는 LA 한인타운 인근의 호텔이야. 동양인 남성이 301호로 들어가. 잠시 후, 웬 남자들이 302호로 조용히 들어가. 그리고 헤드폰을 쓴 채 뭔가를 받아 적기 시작해. 301호에 들어간 남자를 도청하는 거야. 302호의 정체는, OSS 모집팀이야. 냅코 프로젝트의 공작원을 뽑기 위해, 재미 한인들을 미행하고 도청한 거야. 그리고 철저한 검증을 통과한 사람들만 접촉해. 이들이 만난 재미 한인들은 대부분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야. 이들이 그 모든 걸 버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냅코 프로젝트 작전에 참여할까? 만나보는데 흔쾌히 승낙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승낙을 안 하는 이유는 그저 미국 생활이 뭣하고 그런데 한국은 어련히 가려니 하고 자기 생명은 아끼는 셈이죠. -장석윤, 당시 OSS 한인 요원 쉽게 정할 수 없는 결정. 이틀 뒤, 한 사람한테 연락이 왔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 필요하다면 조선에 있는 제 회사를 사용해도 좋다 는 이 사람. 바로 일링의 할아버지, 요원 A야. 요원 A는 재미한인들 중 가장 먼저 프로젝트에 참여했어. 근데 요원 A의 나이는 50세야. 실전에 투입되기 너무 고령이지. 그래서 실전 투입이 아닌 고문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어. 그의 회사 지점이 조선 전역에 있었는데, 그곳의 직원과 시설을 비밀조직으로 활용해도 좋대. 그 뒤로, 다른 한인들에게도 연락이 왔어. 아무래도 가족들이 위험할 것 같으니, 위장 이혼을 하고 참여하겠다 는 사람, 난 미간에 큰 사마귀가 있어 쉽게 눈에 띌 거다. 성형수술을 하고 참여하겠다 는 사람. 그렇게 요원A를 시작으로, 8명의 한인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대. 행여 피해가 갈까, 가족들에게는 철저히 숨겼어. 1945년 5월, 미국 각지에서 19명의 요원들이 산타 카탈리나 섬에 모였어. 명문대를 졸업한 기술자부터 포로 수용소에서 차출된 사람까지, 그야말로 지옥의 외인구단이야. 그런데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19명 중에 20대는 단 3명, 대부분 30, 40대였어. 게다가 절반은,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민간인이야. 군사 훈련은커녕, 총 쏘는 법도 잘 몰라. 심지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개월이야. 그 시간 안에, 미군 특수부대 수준의 인간병기가 되어야 해. 요원들은 침투 작전에 필요한 A부터 Z까지 모든 걸 배우기 시작해. 첫 번째로 사격. 처음에는 총알을 과녁에 맞히는 것조차 불가능했어. 그런데 매일 사격훈련을 한 결과, 움직이는 멧돼지도 단번에 맞추는 실력을 갖췄어. 두 번째로 무선통신. 빠른 암호 송신과 해독 능력이 필요해. 피나는 훈련 끝에 웬만한 미군들보다 2배 이상 빨랐대. 세 번째, 생존훈련. 바다 한가운데서 고무보트를 조립해 나오는 전투 수영 훈련, 선인장 군락 위에 착지하는 낙하산 훈련까지. 매일 지옥훈련이 이어졌어.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 요원들. 이 지옥훈련을 받는 요원들 중 뜻밖의 얼굴이 있어. 바로 요원 A야. 분명 요원 A는 고령이라, 실전이 아닌 고문 역할을 하기로 했는데. 다른 요원들과 함께 훈련을 받은 거야. 그 이유는 뭘까. 할아버지는 그 프로젝트를 위한 완벽한 리더 요원이었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 네브래스카에서 한인 청년 군인들과 함께 훈련받은 적이 있어요. 냅코 프로젝트에 필요한 총기와 도구를 사용하는 데 능숙할 수 있었죠. -유일링, 요원 A의 손녀 요원 A는 14살에 군사학교에 입학해서 3년간 미육군사관학교와 똑같은 훈련을 받았어. 성인이 된 후에는 미국에 있는 한일 청년들을 모아서 항일 민병대를 조직했어. 리더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췄지. 그는 팀의 조장까지 맡으며 요원들을 이끌었대. 근데 이 요원 A의 얼굴, 어디서 본 적 없어? 암호명 A의 진짜 정체는, 대한민국 기업 총수 중에 전무후무한 이력을 가진 '유일한 회장'이야. 요즘 세대에겐 생소한 이름인지 모르지만, 이 버드나무 그림의 로고로 유명한 '유한양행'은 알지? 매출액 약 1조 8천억 원의 국내 유명 제약회사. 이 회사의 창업주 유일한이 바로, 냅코 프로젝트의 요원 A야. ▲ 천재 사업가 유일한 때는 1895년, 유일한은 청일전쟁이 한창일 때 태어났어. 아버지가 평양에서 장사를 했는데, 당시 세계적인 재봉틀 브랜드의 대리점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어. 그런데 1904년, 한반도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았어. 유일한의 아버지는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기로 결심해. 더 넓은 세계로 가서 나라에 보탬되는 사람이 되라고. 당시 유일한의 나이 9살이었어. 그렇게 미국에 간 유일한은 25세가 되던 해, 에디슨이 설립한 글로벌 기업에 입사해. 당시 전기가 들어가는 제품은 전부 이 회사가 만들었다고 봐도 돼. 유일한은 이 회사에서 최초의 동양인 회계사로 뽑혀 일했어. 그러던 어느 날, 유일한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겠대. 회사에서 아시아 시장 총책임자 자리도 제안했는데, 그것도 거절해. 그렇게 대기업을 퇴사한 유일한은 작은 사업을 시작했어. 그가 시작한 사업 아이템은, 지금까지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숙주나물'이었어. 당시 숙주나물은 인기 음식이었던 만두에 꼭 들어가야만 하는 필수 식재료였어. 유일한은 금방 상해버리는 숙주나물을 어떻게 오래 보관해 유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 그러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통조림'이야. 통조림을 활용해 숙주나물을 훨씬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만들었어. 근데 이름 없는 작은 회사다 보니, 홍보가 쉽지 않아. 게다가 통조림을 싣고 가던 트럭이 교통사고까지 났어. 도로에 수백 개의 통조림이 나뒹굴고, 일대 교통이 마비됐어. 지역 신문기자까지 와서 사고 현장을 찍을 정도였어. 유일한은 이걸 기회라고 생각했어. 곧바로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어. 이후, 통조림 주문이 폭주해. 숙주나물 통조림 트럭이 교통사고가 나서 한때 교통이 마비됐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는데, 기사 내용에 통조림으로 숙주나물을 장기 보관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며 홍보가 된 거야. 이 일을 계기로 사업은 번창해. 회사를 설립한 지 6년 만에 자산이 당시 2백만불. 지금 돈으로 약 250억 원을 번 거야. 주문량이 급증하며 유일한은 좋은 녹두를 구하기 위해 중국과 조선을 방문하기로 했어. 1926년, 그렇게 유일한은 21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어. 그런데 기대와 설렘도 잠시, 조국에 도착한 유일한은 경악을 금치 못했어. 전 조선에 결핵환자 작년 중 만천구백여 폐결핵과 기타 결핵 환자는 조선인 8,238명 그중 사망한 자는 3,102명. 20세기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스페인 독감'. 1918년에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 세계 약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유행 전염병이야. 그 스페인 독감이 한반도를 덮쳤어. 4달 만에 760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사망했어. 게다가 기생충, 결핵, 피부병, 성병 등 제때 약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인데도 죽는 사람이 허다한 거야. 이런 한반도의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은 유일한은 이렇게 생각했어. 미국의 값싸고 좋은 약을 우리나라로 가져오자 잘 나가는 미국 회사를 접고 조선에서 의약품 사업을 하겠다는 거야. 이 말을 들은 미국 동료들은 유일한을 말렸어. 그런 동료들에게 유일한은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 고 말했어. 어린 나이에 조선을 떠났지만,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이 없대. 유일한은 자신의 모든 지분을 정리하고, 조선에 시급한 의약품을 구입하는데 전부 투자했어. 그렇게 귀국길에 오른 유일한에게 응원을 보낸 한 사람이 있어. 바로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 유일한이 미국에 있는 동안 정신적 지주 같은 분이었대. 서재필 선생은 떠나는 그에게 그림 하나를 선물해. 바로 이 버드나무 그림. 유일한의 유 씨가 '버들 유(柳)'였거든. 조선사람들에게 버드나무 그늘 같은 존재가 되라는 의미였대. 유일한은 이 그림을 회사의 상징으로 삼고, 종로에 사무실을 개업해. 그 회사가 바로 '유한양행'. 미국에서 온 31살의 천재 사업가의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어. ▲ 쪽박 사업이 대박으로, 굽히지 않은 신념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의약품 사업이 처음에는 완전 쪽박이었어. 약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많은 시간이 지나고 1926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할아버지는 또 아웃사이더였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미국식 옷을 입고, 다르게 움직이고, 다르게 행동했을 거예요. 언어도 달랐겠죠. 당시 할아버지의 한국어 실력은 일반 30대 남성의 한국어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래서 항상 아웃사이더였어요. -유일링, 유일한의 손녀 조국을 위해 모든 걸 걸었지만, 현실은 '검은 머리 이방인'이었어. 게다가 이 때는 일제강점기 시절이야. 일본 제약회사들이 국내 의약품 시장을 꽉 잡고 있어. 유통되는 건 대부분 일제 의약품이야. 근데 미국에서도 성공한 천재 사업가가, 여기서 포기했겠어? 짐을 싸서 약을 들고 길을 나선 유일한. 그가 향한 곳은, 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이야. 그들이라면 미국 의약품에 관심을 가질지도 몰라. 유일한은 직접 차를 몰며 전국을 돌았어.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은, 당나귀에 약을 싣고 들어갔대. 그 결과, 주문 전화가 폭주해. 조선 내 외국인을 공략하자는 유일한의 전략이 먹힌 거야. 다음 타깃은 일반 소비자야. 그들에게 회사를 알리기 위해, '광고'를 신문에 싣기로 했어. 일단 일본 제약사들이 어떤 광고를 하는지, 시장 분석을 했어. 그런데 일본 광고들이 아주 기가 막혀. 당시 실제 일본 의약품 광고야. 구토, 현기증, 멀미, 우울증, 심지어 각종 전염병에도 효과가 있대. 이 약의 정체는, 소화제야. 단순 소화제를 만병통치약처럼 홍보한 거야. 이렇게 당시 일제의 의약품은 과대광고가 빈번했어. 그럼 유일한은 어떻게 했을까? 유한양행은 버드나무 그림만 달랑 그려 넣고 '개업'이라 적었어. 과감하게 티저 광고를 내며, 제품이 아닌 브랜드를 홍보한 거야. 결과는 대성공. 기업 이미지를 강조한 광고 덕에, 회사 이미지도 수직상승했어. 유일한은 그 후 자체 공장을 설립하고 제품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어. 그중 하나가 자양강장제 개발이야. 근데 당시 자양강장제도 일본 제품의 인기가 높았어. 유난히 약발이 좋았거든. 그런데 일본 자양강장제가 약발이 좋았던 이유는 따로 있어. 아편, 모르핀 등의 마약 성분을 넣었기 때문이야. 자양강장제에 마약이라니,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지. 유한양행 직원들 중에는 '우리도 일본과 비슷한 자양강장제 제품을 만들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 유일한 회장은 그런 직원들을 엄하게 혼냈어. '건강한 국민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 유일한인데, 약에 마약을 넣는다? 절대 용납할 수 없지. 그렇게 마약성분 없는 자양강장제 '네오톤토닉'이 출시됐어. 마약성분 없는 자양강장제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만주에서도 주문이 빗발쳐. 시장에는 유사품이 넘쳐날 정도였어. 미국에서 온 천재 장사꾼이 마침내 일본 제약사를 누르고, 업계 탑을 차지했어. ▲ 냅코 프로젝트의 폐기 그 후 유 회장은 해외로 눈을 돌려, 해외수출 계약을 위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갔어. 그런데 뜻밖의 제안을 받아. 바로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는 OSS의 제안이야. 해외 진출을 앞두고 중요한 계약이 줄줄이 남아있는데, 그런 시기에 그 회사의 회장님이 자리를 비운다? 게다가 미국에는 가족들도 함께 와있어. 당시 딸이 16살, 아들은 10살이야. 어린 자녀들을 남겨둔 채 죽을 수도 있어. 이런 상황인데도, 유일한 회장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거야. 조국을 위한 일이니까. 1945년 8월. 냅코 프로젝트의 작전 개시가 임박했어. 3개월간 고된 훈련을 마친 유일한과 요원들은 D-DAY가 잡히길 기다렸어. 그리고 마침내, 상부의 연락이 왔어. 그런데, 작전 개시 명령이 아닌,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다 는 내용이었어.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정부가 항복을 선언했어. 4년간 이어진 태평양전쟁이 갑자기 종결됐어. 이 소식을 들은 유일한과 요원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 일본의 패망은 곧, 냅코 프로젝트의 폐기를 의미해. 이들이 목숨을 걸고 미국의 비밀작전에 참여했던 건, 이 전쟁에 조선인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래야 전쟁이 끝나고 독립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주권을 주장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일본으로부터는 해방됐지만, 주권을 찾지 못했지. 독립 정부 대신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끝내 분단의 비극으로 이어졌어. 그렇게 역사에서 묻힌 냅코 프로젝트. 냅코 프로젝트가 실행됐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몰라. ▲ 정권과의 악연 1948년 8월 15일. 한반도 남쪽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어. 유일한도 귀국 준비를 서둘러. 그런데 입국이 불가능해. 한국 정부에서 입국을 거절한 거야. 사실 유일한은 얼마 전 한 통의 편지를 받았어. 발신인은 이승만 대통령이야. 편지는 유 회장에게 초대 상공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내용이었어. 유 회장은 이 편지에 한국말도 서툰 제가 어떻게 한국 국민을 이끌겠습니까. 전 그저 사업가일 뿐입니다 라며 정중히 거절했어. 이 일로 유일한은 미운털이 박힌 건지 계속 입국 거부를 당하다가 무려 7년 뒤에나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대. 그런데 돌아와 보니, 회사 꼴이 말이 아니야. 이번엔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됐거든. 게다가 휴전이 되면서, 중국과 이북 쪽에 있던 회사 재산을 전부 잃었어. 그게 무려 기업 자산의 80%였어. 회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선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야. 유 회장이 선택한 한국전쟁 후 새로운 사업 아이템, 자동차 사업이야. 전쟁 피해가 복구되고 나면, 한국도 미국처럼 자동차 시대가 열릴 거라 생각한 거야. 그래서 미국산 자동차 수입 회사를 설립해. 반응은 좋았어.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국회에 고급 승용차를 납품했어. 이제 좀 살았구나, 안심하려던 무렵, '그곳'에서 또 연락이 왔어. 유한양행은 3억환 정도 내면 되겠소.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선거로 꼽히는 3.15 부정선거. 이승만 정부와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깡패들을 동원해서 상대 후보를 방해하고 고무신, 막걸리, 돈봉투로 표를 사다시피 했어. 그러니 부정선거에 돈이 필요하지. 훗날 알려진 바로는, 56개 기업체로부터 63억 환 정도를 받았대. 지금으로 따지면 약 415억원 정도야. 유 회장은 이 요구를 거절했어. 그런데 얼마 후, 자동차 회사에 다급한 전갈이 도착해. 수입한 물건들이 전부 세관에 묶여 있다는 거야. 정부에서 갑자기 자동차와 부속품 수입을 금지했어. 유 회장은 결국 10만 달러 이상의 피해액을 떠안았고, 자동차 사업은 폐업했어. 그런데 정권과의 악연은 이게 끝이 아니야. 박정희 정권 때도 정치자금을 또 요구받아. 한번 크게 손해 본 적 있는 유 회장. 이번에는 어떻게 했을까? 역시나 거절이야. 당연히 박정희 정권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 당시 기업들이 가장 무서워했다는 세무조사. 특별사찰반 24명이 한 달 동안 유한양행 장부를 탈탈 털었어. 근데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이상이 없어. 너무 깨끗해. 하다 하다 안되니까 판매 중인 약품 전체를 과학기술처로 보내서 함량 및 제품 조사까지 실시했어. 그렇게 탈탈 턴 결과, 유 회장은 오히려 상을 받았어. 두 번째 세금의 날을 맞아 서울 시민 회관에서는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이날 세금을 제때 많이 낸 사람들에게는 그 공덕을 치하하는 훈장과 표창장 등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날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유일한 씨의 경우를 보면 각종 의약품을 생산해서 국민 보건에 이바지한 것 외에 세금 납부에 모범을 보여 국가산업 신장에 크게 도움을 준 바 있어 영예 최고 훈장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당시 뉴스 中 과학기술처에 보낸 약품 모두, 함량 미달은 없었어. 이 세무조사로 유 회장은 처벌은커녕, 업계 최초로 동탑산업훈장을 받아. 거기에 국세청 홍보모델까지 됐어. 유 회장은 항상 회사의 주인은 개인이 아니다. 그 회사를 키워준 사회다 라고 말했어. 그에게 세금은 기업이 마땅히 사회에 돌려줘야 할 돈이었던 거야. ▲ 유일한다웠던, 은퇴 후 행보 세월이 흘러 유 회장도 백발의 일흔 노인이 됐어. 임원들은 슬슬 후계 문제를 걱정했어. 그러면서 후계자로 이 사람이 거론돼. 유 회장의 아들 유일선. 아들은 당시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어. 근데 유 회장은 못마땅해하는 눈치야. 변호사가 무슨 사업을 이끄냐며, 말도 안 된대. 그런데도 임원들이 계속 매달리니, 한 가지 조건을 달았어. 아들에게 부사장 직을 맡기고, 경영 능력을 테스트해보기로 한 거야. 그런데 출근 첫날, 아들을 본 직원들은 깜짝 놀랐어. 부사장이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한 거야. 게다가 미국에서 자라서 한국말도 서툴러. 그래서 비서도 백인으로 뽑고, 자신에게 오는 서류도 모두 영문으로 번역해 달라 했어. 근데 이 미국스타일이 도움이 되기도 했어. 당시 국내 기업 최초로 컴퓨터를 도입하고, 전자 자료처리실도 만들었어. 그리고 미국에서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화장지를 쓴다며, 화장지 사업을 제안했어.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물자가 귀할 때라, 신문지나 달력으로 뒤처리하던 시절이야. 근데 화장지라니. 그건 사치품이라고 다들 말렸어.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이 정도 사업수완이면 아버지 유 회장이 아들을 인정해 줬을까? 그렇게 3년 후인 1969년 10월 30일.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한 유 회장은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어. 그리고 차기 회장한테 자신이 받은 동탑산업훈장을 물려줬어. 차기 회장은 아들이 아니었어. 3년간 부사장으로 일한 아들 대신, 당시 전무에게 사장직을 넘겼어. 그러면서 아들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 몇 안 되는 친인척도 고심 끝에 전부 해고했어. 이 조직 속에 우리 친척이 있으면 자네들이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주위에서 '장손자의 아들이다, 조카다', 그러면서 파벌이 형성되면 회사 발전에 지장을 받으니까 안된다고… '내가 살아있을 동안 일가친척들 다 내보내야 해' 그래서 조카고 뭐고, 다 내보냈어요. '내가 죽은 다음에 회사가 우리 가족 중에 우수한 사람이 있어서 회사에 플러스가 된다고 해서 채용하는 건 내가 아무 말 안 한다'… -연만희, 당시 유한양행 고문 '총수 일가', '재벌 2세', 이런 말 많이 들어봤지? 지금이나 그때나 경영권 대물림은 흔한 일이었어. 근데 유일한은 전문 경영인 제도를 선택한 거야. 국내 기업 최초로. 유일한은 최고 경영자의 임기도 제한했어. 한 번에 3년씩, 최대 한 번만 연임할 수 있도록. 본인이 사망한 후에도 회사가 누군가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야. 유일한은 은퇴 후에도 한국에 남았어. 아내와 아들은 미국으로 떠나고, 출가한 딸과 여동생이 가끔 찾아오는 정도였대. 하지만 외롭지 않았어. 은퇴 후 유일한 회장은 이곳에 가는 걸 좋아했대. 유한공업고등학교. 유일한이 사비를 들여 세운 학교야. 한국전쟁 후 유일한이 결심한 게 있었거든. 한국 와서 보니까 참 제일 불쌍한 것이 한국 청년들이에요. 왜인고 하니,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변변치 못하고. 또 고등학교라든지 그런데 가면 또 비용이 많아서, 머리는 좋지만 해도 여유가 없어서 못 가는 사람도 많고… -유일한 그의 결심은, 조국에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어. 한국전쟁 후에 폐허가 된 나라를 복구하는 데는 전문 기술자 육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야. 그 덕에 이 학교의 학생들은 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대. 전교생 전액 장학금이 지원됐어. 전국에서 온 우수한 학생들이 한 11대 1 정도 되고 공부는 잘하지만 지금 살기 힘들었던 학생들을 모집해서 전액 장학생, 전원 장학생으로 키운 것이 우리들한테는 아주 큰 은인이고 롤모델이 된 것 같아요. -조성갑, 유한공고 3회 졸업생 유일한은 학교를 세우기만 했을 뿐, 운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어. 공식적으로 학교를 방문한 것도 딱 한 번뿐이야. 그 외엔 멀리서 학생들 공부하는 것만 보고 갔대. 그럼에도 그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전 몇 번 갔거든요. 유일한 박사님 집을. 형광등이 끊어졌다든지 전구 콘센트가 고장 나면 저희도 공구는 있으니까. 그러면 일부러 불러서 저희한테 고쳐달라고 하시는데, 사실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밥 먹고 가라. 너희들 밥 먹고 가라' 과일도 주고 특히 달걀도 포함해서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이게 황금, 정말 맛있는 음식이죠. 옛날에는 밥을 제대로 먹느냐 마느냐 하던 시기였으니까. -조우장, 유한공고 2회 졸업생 1971년 3월. 노환으로 입원 생활을 하던 유일한은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런 부탁을 하셨대. 내 묘소와 주변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며주길 바란다. 단 유한동산에는 절대 울타리를 치지 말고,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해 다오. 어린 학생들의 티 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느끼고 싶다. 유일한의 마지막 바람은, 그가 세운 학교에 잠드는 것이었어. ▲ 회장님의 유언 그 후 온 국민의 관심은, 회장님의 유언장에 집중됐어. 당시 언론은, 유일한이 기업활동을 하며 번 재산이 최소 50억 원에 달할 거라 계산했어. 현재 가치로 약 1,070억 원이야. 가족들이 둘러앉은 채, 유언장이 낭독됐어. 유언장에는 그의 아내, 아들과 딸, 그리고 손녀 이름이 언급됐어. 회장님은 이 재산을 어떻게 나눠 갖길 바라셨을까. 손녀인 유일링에게 대학 졸업 시까지 학자금 1만 달러를 준다. 내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아내 호미리는 재라(딸)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 주길 바란다.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손녀의 대학 자금을 제외하고, 모두 공익 재단에 기부했어.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할아버지의 유언장이 낭독될 때 가족 중에 누구도 놀란 사람은 없었어요. 사실 저는 그전까지 매번 들어왔던 말이 있는데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넌 아무것도 받지 않을 거야, 그런 건 우리 가족 스타일이 아니야' 그래서 대학 등록금으로 1만 달러를 받았을 때 놀랐어요. 아무것도 안 받는 게 제 가족 스타일이었으니까요. 우리 가족에게 내려오는 한 가지 가르침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일링, 유일한 손녀 이 유언장으로 공익 재단은 유한양행의 최대 주주가 됐어.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소유권은 공익 재단에게. 기업의 경영권과 소유권을 완벽히 분리한 거야. 이게 왜 대단한 일이냐면, 유한양행의 주가가 오르면 공익 재단은 그 주식으로 수익을 얻고, 따로 기부하지 않아도 사회에 이익을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거야. 이런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오로지 나라를 위한 그의 발자취.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이야기. 우리의 역사 안에서 시대를 이겨낸 사업가. 그는 떠났지만, 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유한공고 졸업생들은 후배를 위해 기부하며 든든한 선배가 되어주고 있고, 유한양행 출신들도 늘 남을 위했던 유일한의 따뜻한 철학을 본받아 또 다른 나눔을 실천하고 있어. 유일한 손녀 일링 씨는 유일한 정신을 이어갈 연구재단을 설립했어. 할아버지가 여전히 우리 안에 조금씩 살아계시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의 정신이 가족들에게 영감이 되기 때문에요. 확실히 할아버지는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지금도 나의 영웅입니다. -유일링, 유일한 손녀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美 첩보국 최초의 한인 공작원 중에 기업 총수가 있다?…'꼬꼬무', 유일한 박사 조명 美 첩보국 최초의 한인 공작원 중에 기업 총수가 있다?…'꼬꼬무', 유일한 박사 조명 등록일2023.12.21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를 조명한다. 21일 방송될 '꼬꼬무'는 'Only one - 요원 A의 비밀' 편으로, 미국 첩보국 최초의 한인 공작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때는 1945년 8월 미국의 산타 카탈리나섬. 인적이 드물어 조용하기만 하던 그곳에서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섬 곳곳에서 짐승들의 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은 입을 모아 얼마 전 입도한 외지인들이 범인이라 말했다. 그들이 온 뒤로 섬에서 총소리, 폭탄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는 것이다. 외지인들은 날마다 사격 연습을 하고, 잠수정을 타고 나갔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오곤 했다. 주민들은 그들을 미군으로 추측했지만, 군인이라기엔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로 정식 부대라면 있어야 할 부대 마크, 계급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낯선 외모의 조선인들이었다. 도대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그들은 머나먼 미국에서 수상한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일까. 당시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때로, 일본의 선제공격을 받은 미국은 그에 반격할 계획을 세웠다. 이름하여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였다. 일본이 점령한 조선 땅에 최정예 특수요원을 잠입시켜 일본군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미국은 요원으로 애국심이 투철한 조선인을 선발하기로 했다. 좋은 직장에 명문대를 졸업한 기술자부터, 일본군에 강제 징용된 포로까지 미국 첩보국 최초의 한인 공작원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그들은 무선통신, 사격, 생존 훈련 등 첩보활동에 필요한 모든 것을 훈련받기 시작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요원 한 명은 에이전트 A였다. 요원 A는 50세로,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함은 물론 그의 사업체를 작전에 이용하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고령임에도 어려운 훈련을 모두 소화해 내고, 조선에서 유명한 사업체를 운영하던 요원 A. 바로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였다. 의약품 회사를 이끌던 그가 어떻게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창업자로만 알려져 있다. 종로의 작은 사무실에서부터 시작해 굴지의 제약사가 되기까지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간 주역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그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의 첫 사업은 미국에서의 숙주나물 장사였다. 유일한은 이름도 없던 작은 회사를 6개월 만에 수백억 매출 기업으로 키운다. 이후 유일한은 고국으로 건너와 의약품 사업을 시작한다. 전염병이 들끓던 조국에 제대로 된 의약품을 보급하기 위함이었다. 잘나가던 숙주나물 회사까지 모두 정리하고 조국을 위해 돌아온 천재 사업가. 하지만 조선 사람들에게 그의 약은 그저 '검은 머리 이방인이 파는 이름 모를 약'일 뿐이었다. 시장에는 수상할 정도로 효과가 좋은 일본 약들이 넘쳐나고, 유일한의 약 창고에는 나날이 먼지만 쌓여가던 어느 날, 유일한은 또 한 번 운명을 바꿀 선택을 한다. 과연 조국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온 그의 진심은 통할 수 있을 것인지, 유일한의 허를 찌르는 기지가 '꼬꼬무'에서 공개된다.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최예나, 배우 이병준, 래퍼 겸 음악프로듀서 라이머가 함께 한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 최예나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꼬꼬무가 1순위'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녹화 내내 통통 튀는 리액션으로 모두를 웃음 짓게 한 최예나는 녹화가 끝나고 어린 MZ세대 친구들에게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병준은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첫 걸음을 했다. 이탈리아 예술 고등학교 교장(?) 성대모사를 하며 등장한 그는 '꼬꼬무' 최고령 게스트 대열에 합류해 기막힌 연륜으로 정답 행진을 보였다. 하지만 그조차 녹화 중 공개된 유일한의 천재적인 아이디어에 나랑은 수준 차이가 크게 난다 라며 혀를 내둘렀다.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 라이머는 '브랜뉴뮤직'을 설립해 대표로 있는 만큼 누구보다 오늘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유일한의 행보에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며 존경을 표했다. 그는 이야기가 끝나고 자신도 '유일한 정신'을 이어 사회적인 활동들을 해나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능한 사업가이자, 존경받는 독립운동가, 교육자였던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가 담길 '꼬꼬무'의'Only one - 요원 A의 비밀' 편은 21일 목요일 밤 10시 20분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불공정행위 찾아낸다…금감원, '공정 금융 추진위' 설치 불공정행위 찾아낸다…금감원, '공정 금융 추진위' 설치 등록일2023.12.05 금융감독원이 불공정 행위를 찾고 개선하는 전담 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정한 금융거래 질서 확립에 속도를 냅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처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정 금융 추진위원회&'를 설치한다고 오늘(5일) 밝혔습니다. 금감원은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에 금융회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소비자 권익보다 회사 이익 추구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보다 공정한거래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추진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금융의 디지털화 등으로 플랫폼의 지배력이 점차 확대되는 데다, 회사 편의적 보험금 부지급 결정이나 부당한 채권추심 등 금융회사가 이익을 우선하는 영업관행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또 불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이 곳곳에 녹아 있어, 법규상 규율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해소하는데 한계가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금융관행 전격 재검토&' 금감원은 우선 금리나 수수료 산정 시 소비자에게 부당하게 비용을 전가하거나 합리적 근거 없이 소비자를 차별하는 행위를 적극 발굴·개선하고, 금융플랫폼 업체들이 우월적 지위를 기반으로 협상력이 낮은 상대방에게 수수료를 차별하거나 거래조건을 강요하는 등의 불공정행위가 있는지도 적극적으로 살펴 개선해 나갈 계획입니다. 금감원은 과제 발굴, 개선방안 마련·실행, 사후관리 3단계로 불공정 금융관행 개선 등 필요한 조치를 할 방침입니다. 이를 위한 총괄·조정기구인 &'공정 금융 추진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지원하는 전담 조직으로 공정금융팀도 신설해 내일(6일)부터 내년 12월 말까지 운영합니다. 위원회에서 추진 상황을 점검하며, 월 1회 회의를 개최합니다. 금융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이 주재하고 금소처 소속 부원장보와 안건별 감독·검사 소관 부원장보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며, 외부위원으로 이병준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박종훈 KBS 기자를 위촉할 계획입니다. [자료=금융감독원] 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된 개선방안의 경우 즉시개선 과제, 추가검토 과제, 법규개정 등 필요과제로 나뉩니다. 즉시 개선이 가능한 사안의 경우 각 감독국이 업권별 협회 등과의 협의를 거쳐 불공정 관행 개선 조치를 신속히 하고 현장에서 즉시 적용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추가검토 과제는 면밀한 사실관계 확인,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시스템 개편 등이 필요한 사안으로 소관부서가 현장점검 등을 포함한 개선계획을 수립해 추진하며, 법규 개정 등이 필요한 경우 금융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제도 개선할 방침입니다. 금감원은 이달 위원회 1차 회의를 열어 향후위원회 운영방향과 운영절차 등을 논의할 예정이며, 금리·수수료 등 우선 추진과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다음 달 중으로 발표할 계획입니다. 내일부터 온라인 신고센터 운영 금감원은 내일(6일)부터 &'불공정 금융관행 신고센터&'를 운영합니다. 소비자는 금융회사나 금융플랫폼 등의 불공정 금융관행을 금감원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금감원 홈페이지의 민원·신고를 누르면 신고센터에 접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집중적인 제보 접수와 실효성 있는 개선을 위해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며 상설화 여부는 추후 결정합니다. 공정 금융 추진위원회는 현장과 소비자를 찾아가는 의견수렴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공정한 금융 관행을 개선할 계획입니다. 이에 금융소비자보호처 내 전담조직이 금융소비자(단체) 등과 찾아가는 간담회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또 금융민원센터, 중소기업 금융애로 상담센터의 민원 등을 통해 제기된 제도개선 사항도 적극 발굴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처의 민원·상담 업무 수행 시 개별 민원 해결에 그치지 않고 민원에 내재된 불공정 관행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적극 발굴하여 추진&'하겠다며 &'특히, 관계 법규 등에 비춰 불법·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불공정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는 경우 적극적으로과제화하여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