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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내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 …영화 '너는 내 운명' 실제 주인공의 엔딩은?
등록일2024.12.28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6일 방송된 '너는 내 운명'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하이라이트 리더 윤두준, 배우 신소율, 개그맨 정성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여수 에이즈 확산 논란 때는 2005년의 어느 날. 한 남자가 보건소 검사실에서 채혈을 하고 있어. 이 남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주삿바늘을 쳐다봐. 필요한 혈액은 단 5cc, 적은 양이지만 이건 아주 중요한 피야. 주사기에 점점 붉은 피가 차오르기 시작해. 그런데 바로 그때, 컷! 좋습니다! 오케이! 라는 우렁찬 소리가 들려와. 지금 여기는, 영화 촬영장이야. 주사기 앞에서 채혈하는 장면을 찍은 남자는, 배우 황정민이야. 피 한 방울의 의미가 정말 중요했던, 어떤 사람의 실화를 다룬 영화를 촬영 중이야. 촬영 장소는 여수 보건소. 그즈음에 여수 일대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었어. 그날에 대해 알기 위해,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려볼게. 때는 2002년 6월. 부산에 있는 어느 식당 안이야. 구석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식당 출입문을 주시하고 있어. 그때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와. 앉아있던 사람들의 눈이 번쩍 해. 저 여자 맞지? 사람들이 여자를 향해 다가가. 그리고 여자 앞을 쓱 가로막았어. 선아(가명) 씨, 잘 지냈어요? 선아라고 불린 여자는 당황한 듯 깜짝 놀라. 선아 씨를 찾은 사람들은 보건소 직원들이야. 직원들은 그녀를 경찰서로 인계했어. 그리고 선아 씨가 경찰서에 간 후, 그 소식은 전국에 알려졌어. 당시 상황을 전한 뉴스야. 에이즈에 걸린 20대 여성이 윤락 행위를 해오다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스물여덟 살 구 모 씨가 에이즈 환자로 판명된 것은 98년 3월. 2000년부터는 1년 7개월 동안 전남 여수의 윤락가에서 윤락행위를 해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선아 씨의 병명은 에이즈. 근데 윤락행위를 했다는 거야. 에이즈 환자가 윤락행위를 하는 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따라 처벌 대상이야. 성매매도 당연히 범죄지만, 에이즈가 걸린 환자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 매개 행위를 해서는 안돼.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의 징역을 받아. 이 뉴스가 보도되자, 특히 더 발칵 뒤집힌 지역이 있어. 바로, 선아 씨가 윤락행위를 했다는 전남 여수야. '에이즈를 퍼트린 마녀다', '에이즈 테러다', '복수극이다'라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여수는 에이즈로 공포의 도시가 되어 버렸어. 그런데 이렇게 난리가 난 상황에, 한마디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진짜 국민들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감이 최고였어요 그때가. 누구 하나 나왔다 그러면, 정말 난리가 나는 그런 시기였거든요. 그리고 이 질환은 어쨌든, 그 당시에 만약에 보건소에 와서 이 검사를 받는다면, 내가 윤락가에 가서 돈을 주고 성매매 행위를 한 걸 누군가 알게 되잖아요. 윤락가에 갔었는데 차마 검사를 할 용기는 안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고 또 '언제쯤 검사를 해야 하냐', '한 번만 해도 되냐' 궁금은 한데 용기가 없어서 전화로 계속 질의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저희들이 계속 설득을 해요. 전화가 오면. '검사 안 받고 계속 걱정만 하시면 평생을 이렇게 걱정 속에서 살게 될 거다' 저희가 기억하기로는 가장 검사를 많이 했던 날이, 한 200명까지 검사를 하긴 했었어요. -신미숙, 당시 여수 보건사업과 임상병리실 근무 그렇게 수천 명의 남자들이 검사를 받으러 왔어. 근데 윤락가를 직접 다녀온 사람 말고도,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또 있어. 남편을 의심하는 아내들, 유흥 업소 종사자들, 심지어 인근 고등학생들까지. 그렇게 보건소에는 두려움을 떨다가 겨우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이어졌어. 그런데 이 사람들의 행동에 공통점이 있어.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은 절대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 사람이 없을 때 맞춰 오거든.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검사를 받은 게 소문이라도 날까 두려운 거야. 그리고 한결같이 '진짜 에이즈에 걸리면 죽나요?'라는 질문을 했대. 에이즈에 감염됐다고 곧바로 죽는 게 아니야. 그런데 '에이즈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는 오해가 만연했던 때야. 에이즈에 걸려도 약을 잘 먹으며 관리하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당시 에이즈는 죽음의 병, 공포 그 자체였어. ▲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 그런데, 세상의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로, 선아 씨의 뉴스가 반가운 사람이 있어. 바로, 선아 씨의 남편 박부현 씨. 선아 씨를 찾았다는 소식은 남편에게도 전달됐어. 이 분이 황정민이 연기했던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이야. 2005년 개봉했던 황정민,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 당시 국내 멜로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이었어. 에이즈에 걸린 여자를 사랑한 한 남자의 순애보를 그렸지. 이 영화가 박부현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야. 영화 속 시골 노총각 석중(황정민 분)과 다방 종업원 은하(전도연 분)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에이즈란 병을 극복했을까? 영화의 결말 이후로 알려지지 않은 실제 이야기는 어떨까? 그래서 '꼬꼬무'가 직접, 남편 부현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어. 김해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제일 처음 알았죠. 얼른 전화 받았죠. 전화 받아보니까 '김해 경찰서로 빨리 오시오'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보니까 진짜 거기 있더라고요. 에이즈 때문에 잡혀 들어갔다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충격을 얼마나 받았겠습니까 제가.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는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던 걸까. 그리고 영화 속 사랑은 현실에도 존재했을까. 한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그 순간으로 가볼게. 때는 1999년 봄. 김해의 어느 시골 마을이야. 부현 씨는 부지런한 농사꾼이야. 자기 농사도 짓고, 소작도 하고, 가축도 키우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장가가 늦어졌어. 서른아홉 살, 나이 꽉 찬 노총각이야. 이런 부현 씨에게 후배 하나가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어. 얼마 후, 하얀 탱자나무 아래 버스정류장에 부현 씨가 서있어.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이야. 버스에서 한 여자가 내렸어. 그때 아마 봄날이었지. 꽃 피고 새 우는 봄인가 싶어. 버스를 내려서 거기서 두리번두리번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저게 누구고' '저게 맞는가' 하고 보니까 맞더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눈부신 햇살 속 그녀가 한 발자국씩 다가와. 점점 얼굴이 보이는데, 갑자기 세상이 슬로비디오처럼 바뀌는 마법이 펼쳐졌어. 두 사람의 핑크빛 첫 만남이었어. 사람이 귀엽게 생겼더라고 예쁘고. '설마 이런 여자가 나한테 오겠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어요. 그래서 첫눈에 내가 반했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는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어.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부현 씨. 대뜸 날 좋아할 수 있겠나? 라며 그녀에게 직진했어. 첫 만남 뒤 선아 씨가 부현 씨네 시골집에 놀러 왔다가, 그대로 같이 살게 됐어. 주위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지. 여자가 너무 급하게 눌러앉는 게 수상하다고. 나이차도 큰데, 여자가 다른 거 노리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기우였어. 두 사람은 냉수 한 그릇 떠 놓고, 그릇 옆에 초 하나를 세우고, 나란히 앉았어. 지금은 이렇게 소박하게 하지만, 나중에 돈 벌어서 멋진 결혼식을 하자고 약속하며, 그렇게 둘만의 작은 결혼식을 올렸어. 다 해주고 싶데요 막.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 여자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한창 농사일을 하다 보면, 저 멀리서 선아 씨가 새참을 들고 왔어. 아내는 김밥을 잘 쌌어. 집에 있는 나물, 갖가지 반찬들을 넣어 만든 아내표 김밥이 그렇게 맛있었어. 사람이 활발하고 좀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동생이 없다 보니까, 항상 내 동생 같기도 하고, 아내 같기도 하고… 내가 제일 기억나는 게 김밥. 김밥을 제일 많이 먹은 것 같아. 내가 그래서 항상 '너 김밥 장사해라' 그랬어.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봄에는 오토바이 타고 벚꽃놀이 가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 끼얹으며 꺄르르 웃고, 가을에는 같이 단풍구경 다니며, 두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 내가 등허리 업고 막 쫓아다니고 그랬습니다. 내가 많이 업고 다녔습니다. '그래 좋나? 좋다' 이러면서 손바닥을 팍팍 치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아내가 좋아했던 꽃은 들국화였어. 뒷산에 올라가면 들국화로 화관을 만들어서 머리에 씌워주곤 했어. 산에 올라가면 들국화가 있잖아요. 들국화를 모자같이 만들어서 탁 끼워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생일이면 근사한 케이크는 없어도, 초코파이면 충분했어. 서로의 마음은 누구보다 서로가 잘 아니까. 비싼 옷, 값나가는 보석은 못해줘도, 오순도순 함께 있는 것만으로 큰 기쁨이야. 그때는 참 저한테는 완전 봄날이고. 서로 이렇게 뽀뽀도 하고. 그냥 이렇게 안으면서 뽀뽀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가끔씩, 아내가 남모르게 눈물을 훔쳐. 뭔가 고민이 있는 거 같아.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결혼을 후회하나?' 부현 씨는 아내 걱정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사실은 자기가 전에 한번 결혼한 적이 있었고, 딸도 하나 있다는 거야. 그 딸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는 거야. 아내의 고백에도 부현 씨는 괜찮다, 다 지난 일 아니냐 며 감쌌어. 그런 거는 신경 안 썼어요. 집에 있으니까, 나는 있으면 행복한 거예요 그냥.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오히려 부현 씨는 조금씩 돈이 생기면 아내에게 건넸어. 그러면 아내는 그 돈을 가지고 어딘가에 갔다가 돌아왔어. 부현 씨는 그저, '딸 보러 갔겠거니' 생각하며 묵묵히 기다렸어. 자기가 낳은 딸이니까 보고 싶겠지 아마. '그래서 아마 왔다 갔다 안 했겠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갔다 하면 일주일은 있다가 오더라고. 그냥 '갔다 왔나, 잘 갔다 왔나' 이렇게 하고 말았어요. 그냥 '너만 돌아오면 됐다' 그렇게 말했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어. 남자는 부현 씨를 향해 대뜸 고함을 지르더니 욕설을 내뱉어. 선아 씨의 전남편이었어. 부현 씨는 그에게 차분히 원하는 게 뭐냐 고 물었어. 근데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막혀. 선아 씨를 데려가겠다는 거야. 속이 뒤집어지는 입장이지. 오장육부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더라고.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니, 돈이라는 거예요. '그럼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했더니 '소 한 마리 값을 줘야겠다'고 그러더라고. 차라리 여자를 포기할까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래도 나하고 같이 만났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고. 그 돈을 다 줘버렸어요. 다 가져가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결국 부현 씨는 애써 키운 소를 팔아 그 돈을 전남편에게 건넸어. ▲ 에이즈의 공포 그즈음 김해 보건소는 부산 보건소에서 전화를 받았어. 자기들 쪽에서 에이즈 검사를 한 분이 김해로 주소 이전을 했는데,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는 거야. 당시엔 보건당국이 에이즈 환자를 의무적으로 관리했어. 환자의 주거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지. 부현 씨가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못 보던 사람들이 집에 와있어. 보건소 직원들이야. 아내에게 알려줄 게 있어서 집을 찾아왔대. 부현 씨는 무슨 일이지 짐작도 안가. 그런데 그때, 아내와 이야기를 마친 직원들이 부현 씨를 따로 불러 조심스레 말을 건네. 아내 선아 씨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약을 갖다가 한 봉지를 주고 가더라고. 그리고 나보고 콘돔 같은 걸 한가득 주고 가고. 그래서 '이걸 왜 주고 가냐' 했더니, 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왜 안되느냐' 물어보니까, 그래서 그때 얘기를 하더라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우린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이게 무슨 이런 궤변이 있나' 내가 그랬어요. 그리고 멱살도 잡았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부현 씨는 너무 화가 나. 내 아내가 에이즈라고? 에이즈라는 병이 뭔지, 부현 씨도 TV에서 본 적이 있어. 몸에 반점이 생기고, 불치병이라 알려졌던 병. 내 아내가 그런 병에 걸렸다고? 매일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깨끗하게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누구보다 밝고 활발한 이 사람이? 나도 우리 선아도 건강하기만 한데 무슨 에이즈야! 화가 나서 당장 채혈을 했어. 검사 결과, 부현 씨는 음성이었어. 근데 선아 씨는, 재검 결과도 양성이 나왔어. 이젠 사랑하는 사람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럼 선아 씨는 어쩌다가 에이즈에 걸린 걸까. 질문조차도 상처가 될 수 있기에, 부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어떤 이유로 병에 걸렸든 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 이야기를 내가 물어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상대방이 싫어하는 건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넘어간 거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럼 에이즈는 인류 역사에서 언제부터 발병한 걸까. 인류가 에이즈란 병을 알게 된 건 1981년. 뉴욕의 한 신문에, '무서운 미지의 병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처음 보도됐어. 동성애자 41명에게서 발견된 희귀 암 진단 후 24개월이 채 되지 않아 8명이 사망했다 발병원인은 알려지지도, 밝혀지지도 않았다 에이즈 하면 떠오르는 증상인 피부 반점. 이 반점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피부에 발병하는 악성 종양이야. 어떤 약도 효과가 없어. 면역 기능이 떨어지며, 사소한 감염에도 죽음에 이를 수 있어. 그야말로 미지의 질병의 출현이었어. 인류는 공포에 휩싸였어. 시기도 20세기가 끝날 무렵이라, 세기말 징조라는 말까지 나와. 인류문명은 그동안 수많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러왔어. 가장 가까운 최근 바이러스는 코로나19. 모두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었지. 그전에는 조류독감, 메르스, 에볼라, 신종플루, 사스, 그리고 좀 더 옛날로 가면 흑사병까지. 이렇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 수많은 바이러스가 있었어. 그런데 그중 에이즈는 '현대판 흑사병'이라 불리며, 사형 선고로 여겨진 거야. 프레디 머큐리, 매직존슨 같은 유명인도 에이즈 감염자였지. 에이즈 발병 초기에는 주로 동성애자와 마약중독자가 감염됐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차가웠어. 그냥 병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차별과 냉대를 받았지.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숨겨야만 하는 병이 된 거야. 우리나라에 에이즈의 공포가 드리운 건, 1985년이야. 에이즈 감염자와 사망자의 수가 마구 늘어가는 가운데,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어. 병원에서 수혈로 인한 감염자도 나왔어.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 전직 교사가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잘못 알고, 3살 난 딸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자신과 딸의 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반점이 생기자 에이즈 감염 증세로 착각하고 고민 끝에 동반자살을 결심했다. 결혼 전에 문란했던 과거로 인해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만 앞섰지, 정확한 지식이 부족한 데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정밀조사 결과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뉴스 보도 中 ▲ 내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에이즈는 무서운 병이지만, 부현 씨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어. 아내가 감염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 아내가 집을 나가는 일이 잦아지더니, 아예 사라진 거야. 김해 바닥 온 곳을 다 돌아다녔어요. 그랬는데 이거 뭐 만날 수가 있나. 가보면 없고, 여기도 가보면 없고. 저기도 가보면 없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주변 사람들은 이제 잊으라고 모두 말렸지만. 부현 씨는 사라진 아내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그때는 내가 많이 기다렸죠. 오직 그 사람 생각 밖에 없었으니까.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렇게 시간은 1년 반이 지났고, 경찰서에서 드디어 선아 씨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거야. 부현 씨는 허둥지둥 경찰서로 달려갔어.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가출 직후 일자리를 구하던 아내는, 어떤 남자에게 속아 차에 탔다가, 여수 윤락가에 팔려갔다는 거야. 도망 나오고 싶어도, 촘촘한 감시망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대. 담당 보건소는 선아 씨가 연락이 닿지 않자 행방불명자로 처리해서 질병당국에 보고했어. 그러던 중 방역 당국의 추적망에 걸린 거야. 그럼 선아 씨는, 애초에 왜 부현 씨를 떠난 걸까. 남편에게 병을 옮길까 싶어, 그게 두려웠대. 모르겠어요. 왜 떠났는지… 그냥 갑자기 떠나고 싶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남편에게 에이즈를) 옮길까 싶어서. 나한테 옮을까 싶어서… 나도 이 사람한테 옮기기 싫은 거야. 병도, 내가 덮어쓰고 가지. -선아(가명), 박부현 씨의 아내 하지만 선아 씨가 법을 어긴 건 사실이야. 그 후 유치장에 수감된 선아 씨. 여기서 담당검사가 불편한 건 없는지 물었는데, 이 질문에 대한 선아 씨의 대답 때문에 유치장 안이 난리가 났어. 모기가 많아서 불편해요. 선아 씨를 문 모기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모든 수감자들이 공포에 질려버린 거야. 그럼 에이즈는 모기를 통해 감염될까? 그럼 침, 땀, 눈물로는? 악수나 포옹은 어떨까? 정답은, 전부 '아니요'야. 모기가 흡입하는 혈액의 양이 매우 적고, 모기의 체내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가 없대. 그래서 전파가능성이 없어. 침, 땀, 눈물에도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긴 하지만 전염시킬만한 양이 아니야. 피부 접촉으로도 전염이 안돼. 에이즈 바이러스는 상처를 통해 혈액이 몸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감염이 안돼. 하지만 잘못된 인식으로, 에이즈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꺼려했어. 결국 선아 씨는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수감됐어. 아내가 에이즈 판정을 받고 감옥까지 갔어. 그런데도 부현 씨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어. 묵묵히 농사를 지었어.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했어. 그 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아내에게 면회 가기 위해서. 면회도 내가 한 번도 안 빠졌어요. 그때는 힘든 것도 없어요. 그게 낙인 데요 뭐. 집에서 교도소까지 2시간이야. 왕복으로 하면 4시간을 오토바이로 오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도 선아 씨의 얼굴을 봐야 했어. 에이즈 환자가 가장 고통받는 게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외로움이래. 그런데 선아 씨는 그런 걱정이 없었어. 면회실 칸막이 사이로 두 사람은 미래를 꿈꾸며 대화를 나눴어. 마치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과 전도연이 면회실에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절절하게 대화하던 그 명장면처럼. 헤어진다는 생각은 꿈도 못 꾸죠. '널 사랑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몸 열심히 돌보고'. (출소하면) '우리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안 가본 데도 가보고 그렇게 한번 해보자' 그랬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리고 두 사람은 편지도 주고받았어. 잘 지내고 있지? 생각이 많이 나. 당신하고 나하고 처음 만났을 때, 절에 놀러 가 사진 찍고 할 때, 당신이 나한테 김밥 재료 사 왔을 때가 많이 생각나.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어. 그리고 당신이 내 옥바라지한다고 고생하고 있는 것 다 알아. 사랑하는 부현 씨, 내가 좀 더 당신 신경 썼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 참 후회하고 있어. 만약에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어. 내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해줘. -남편에게 쓴 선아 씨의 편지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8개월. 시간이 지나 추운 겨울, 부현 씨는 밤새 한숨도 못 잤어. 8개월이 지나 선아 씨가 출소하는 날이거든. 교도소의 철문이 열리고, 드디어 아내의 모습이 보여. 이젠 꼭 안아줄 수 있고, 손을 잡아줄 수 있어. 바로 안았죠. 그리고 울었죠 둘이. '우리 열심히 살자, 남 의식하지 말고'. '우리끼리만 얼굴 보고 살자'...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문제가 있어. 선아 씨가 집으로 들어오기를 주저해.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온 동네에 소문이 나서, 그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가 너무 두려운 거야. 부현 씨는 농사일과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도시에 방 한 칸을 잡았어. 두 사람을 모르는 곳으로 간 거야. 하지만 도시 생활은 녹록지 않았어. 에이즈 가족이라는 딱지를 단 채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거든. 그래도 박스 줍는 일과 작은 장사를 시작했어. 소박한 시작이지만,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대. ▲ 영화가 아닌 현실의 엔딩 시간이 흘러 2009년. 선아 씨가 출소한 지 6년이 지났어. 두 사람은 특별한 장소로 갔어. 사진관에서 웨딩촬영을 하기로 했거든. 함께 꿈꿔왔던 결혼식을 준비하게 된 거야. 돌고 돌아서 만난 지 10년 만에 드디어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어. 가족, 친구들의 축복 속, 선아 씨는 에이즈 환자가 아닌, 신부로 축하를 받았어. 늘 꿈에 그리던 순간이야.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제주도로 신혼여행도 갔어. 그리고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어. 그럼 이 두 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지나간 이야기는 다 잊어버리고, '우리 새 마음, 새 뜻으로 살자' 이랬는데. 자꾸 아이 때문에 찾아오고 또 가고, 또 왔다 갔다 하고 이러니까. 집을 나가서 그 뒤로 행방불명돼서 못 찾겠는 거예요. 이거 뭐 만날 수가 있나. 가보면 없고, 여기도 가보면 없고, 저기도 가보면 없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가 마음을 못 잡았는지, 또 집을 나갔다는 거야. 부현 씨는 이번에도 역시 돌아오기만을 묵묵히 기다렸어. 많이 기다렸습니다. 그때도 오기만을 기다렸죠. '그 애가 내 아이였으면 얼마나 좋겠나' 싶은 마음이 드는 거야.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어느 날, 부현 씨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어. 그때가 아마 번개가 엄청나게 친 날이에요. 비도 오고 밤에. 그런데 누가 왔는지, 막 문을 두드리고 이러는데 내가 나가보니까. 아내가 왔는가 싶어서 문을 몇 번을 열어봐도 없어요. 그랬는데 그날따라 자꾸 이상한 번호가 뜨더라고. 그래서 '이게 무슨 번호고. 모르는 번호인데 받아서 뭐 하겠느냐'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냥 내버려 뒀는데, 계속 전화가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받아보니까, '김해 경찰서 누구 경찰관입니다' 이러더라고. 저보고 '어디 병원 빨리 가보세요' '선아 씨가 죽었습니다' 이러는 거야. 나는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갔는데, 가보니까 처량하게…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납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눈물 밖에 안 납니다.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가 세상을 떠났어. 결혼식을 올리고 불과 다섯 달만의 일이야. 결혼식 때만 해도, 선아 씨가 건강했었는데,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었나 봐. 에이즈에 감염됐어도 약을 잘 복용하고 관리만 잘하면, 문제없이 살 수 있는데. 아마도 약을 잘 챙겨 먹지 않았던 거 같아. 부현 씨는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선아 씨가 생각난대. 그녀와 함께 한 벚꽃구경, 물놀이, 단풍구경.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선아 씨가 가장 좋아했던 들국화. 그 꽃을 보면 항상 아내가 떠올랐대. 이걸 가져다가 뭉쳐서 목에다 걸어주고, 귀에도 꽂아주고 했는데.. 부현 씨가 들국화 꽃다발을 안고, 아내가 잠든 곳을 찾았어. 잘 지냈나. 보고 싶었다…열심히 살자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 마지막 선물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어. 이젠 너무 늙어버려서 아내가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도 돼. 그동안 못 해준 게 많아서 후회도 돼. 그래서 부현 씨는 아내한테, 생전에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으시대. 이젠 직접 전할 수 없는 선물, 부현 씨가 직접 고른 머리띠야. 예뻤지. 머리가 이랬던 게, 머리띠를 하면 이렇게 올라갑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얼굴이 훤하게 보이는 거죠. 이 얼굴이 조그마하니 동글동글하게 보여요. 그게 사랑스럽고 예쁘게 보여요. 지금도 보듬고 싶고 안고 싶고 그래요. 뽀뽀해주고 싶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부현 씨가 선아 씨와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보단 이렇게 되물었대. 아내가 이런데도 여전히 사랑하시나요? 라고. 그런데 누군가의 사랑이 꼭 남들에게 이해받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걸까. 부현 씨에겐 이런 질문이 모두 무의미했어. 오직 그에게 의미 있는 건 선아 씨의 웃음뿐이었어. 나중에 선아 씨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냐 는 질문에 부현 씨는 이렇게 대답했어. 당신을 사랑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느라, 여수 지역이 난리 났던 거 기억나지? 그런데 그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에이즈 감염인과 1번 성접촉을 했을 때 전염될 확률은, 0.04~1.38% 정도래. 또 콘돔을 사용하면 이 가능성마저 거의 없어져. 그리고 선아 씨와 함께 생활했던 부현 씨도 결국엔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어. 물론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막연한 공포에 휩싸였던 당시 생각과는 다른 결과지. 에이즈가 세상에 등장한 지 40여 년이 지났어.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매년 천여 명의 신규 감염인이 발생하고 있대. 아직 에이즈 치료제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정상적인 수명대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대. '죽음의 병'이 아닌, 고혈압, 당뇨 수준으로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 중 하나인 거지. 사실 질환보다 무서운 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일 거야. 앞으로도 바이러스에 대한 전쟁은 계속될 거야. 그때마다 잘못된 편견으로 비난을 보내기보단, 질환 자체에 대해 의학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내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 …영화 '너는 내 운명' 실제 주인공의 엔딩은?
등록일2024.12.27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6일 방송된 '너는 내 운명'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하이라이트 리더 윤두준, 배우 신소율, 개그맨 정성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여수 에이즈 확산 논란 때는 2005년의 어느 날. 한 남자가 보건소 검사실에서 채혈을 하고 있어. 이 남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주삿바늘을 쳐다봐. 필요한 혈액은 단 5cc, 적은 양이지만 이건 아주 중요한 피야. 주사기에 점점 붉은 피가 차오르기 시작해. 그런데 바로 그때, 컷! 좋습니다! 오케이! 라는 우렁찬 소리가 들려와. 지금 여기는, 영화 촬영장이야. 주사기 앞에서 채혈하는 장면을 찍은 남자는, 배우 황정민이야. 피 한 방울의 의미가 정말 중요했던, 어떤 사람의 실화를 다룬 영화를 촬영 중이야. 촬영 장소는 여수 보건소. 그즈음에 여주 일대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었어. 그날에 대해 알기 위해,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려볼게. 때는 2002년 6월. 부산에 있는 어느 식당 안이야. 구석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식당 출입문을 주시하고 있어. 그때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와. 앉아있던 사람들의 눈이 번쩍 해. 저 여자 맞지? 사람들이 여자를 향해 다가가. 그리고 여자 앞을 쓱 가로막았어. 선아(가명) 씨, 잘 지냈어요? 선아라고 불린 여자는 당황한 듯 깜짝 놀라. 선아 씨를 찾은 사람들은 보건소 직원들이야. 직원들은 그녀를 경찰서로 인계했어. 그리고 선아 씨가 경찰서에 간 후, 그 소식은 전국에 알려졌어. 당시 상황을 전한 뉴스야. 에이즈에 걸린 20대 여성이 윤락 행위를 해오다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스물여덟 살 구 모 씨가 에이즈 환자로 판명된 것은 98년 3월. 2000년부터는 1년 7개월 동안 전남 여수의 윤락가에서 윤락행위를 해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선아 씨의 병명은 에이즈. 근데 윤락행위를 했다는 거야. 에이즈 환자가 윤락행위를 하는 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따라 처벌 대상이야. 성매매도 당연히 범죄지만, 에이즈가 걸린 환자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 매개 행위를 해서는 안돼.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의 징역을 받아. 이 뉴스가 보도되자, 특히 더 발칵 뒤집힌 지역이 있어. 바로, 선아 씨가 윤락행위를 했다는 전남 여수야. '에이즈를 퍼트린 마녀다', '에이즈 테러다', '복수극이다'라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여수는 에이즈로 공포의 도시가 되어 버렸어. 그런데 이렇게 난리가 난 상황에, 한마디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진짜 국민들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감이 최고였어요 그때가. 누구 하나 나왔다 그러면, 정말 난리가 나는 그런 시기였거든요. 그리고 이 질환은 어쨌든, 그 당시에 만약에 보건소에 와서 이 검사를 받는다면, 내가 윤락가에 가서 돈을 주고 성매매 행위를 한 걸 누군가 알게 되잖아요. 윤락가에 갔었는데 차마 검사를 할 용기는 안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고 또 '언제쯤 검사를 해야 하냐', '한 번만 해도 되냐' 궁금은 한데 용기가 없어서 전화로 계속 질의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저희들이 계속 설득을 해요. 전화가 오면. '검사 안 받고 계속 걱정만 하시면 평생을 이렇게 걱정 속에서 살게 될 거다' 저희가 기억하기로는 가장 검사를 많이 했던 날이, 한 200명까지 검사를 하긴 했었어요. -신미숙, 당시 여수 보건사업과 임상병리실 근무 그렇게 수천 명의 남자들이 검사를 받으러 왔어. 근데 윤락가를 직접 다녀온 사람 말고도,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또 있어. 남편을 의심하는 아내들, 유흥 업소 종사자들, 심지어 인근 고등학생들까지. 그렇게 보건소에는 두려움을 떨다가 겨우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이어졌어. 그런데 이 사람들의 행동에 공통점이 있어.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은 절대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 사람이 없을 때 맞춰 오거든.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검사를 받은 게 소문이라도 날까 두려운 거야. 그리고 한결같이 '진짜 에이즈에 걸리면 죽나요?'라는 질문을 했대. 에이즈에 감염됐다고 곧바로 죽는 게 아니야. 그런데 '에이즈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는 오해가 만연했던 때야. 에이즈에 걸려도 약을 잘 먹으며 관리하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당시 에이즈는 죽음의 병, 공포 그 자체였어. ▲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 그런데, 세상의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로, 선아 씨의 뉴스가 반가운 사람이 있어. 바로, 선아 씨의 남편 박부현 씨. 선아 씨를 찾았다는 소식은 남편에게도 전달됐어. 이 분이 황정민이 연기했던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이야. 2005년 개봉했던 황정민,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 당시 국내 멜로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이었어. 에이즈에 걸린 여자를 사랑한 한 남자의 순애보를 그렸지. 이 영화가 박부현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야. 영화 속 시골 노총각 석중(황정민 분)과 다방 종업원 은하(전도연 분)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에이즈란 병을 극복했을까? 영화의 결말 이후로 알려지지 않은 실제 이야기는 어떨까? 그래서 '꼬꼬무'가 직접, 남편 부현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어. 김해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제일 처음 알았죠. 얼른 전화 받았죠. 전화 받아보니까 '김해 경찰서로 빨리 오시오'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보니까 진짜 거기 있더라고요. 에이즈 때문에 잡혀 들어갔다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충격을 얼마나 받았겠습니까 제가.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는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던 걸까. 그리고 영화 속 사랑은 현실에도 존재했을까. 한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그 순간으로 가볼게. 때는 1999년 봄. 김해의 어느 시골 마을이야. 부현 씨는 부지런한 농사꾼이야. 자기 농사도 짓고, 소작도 하고, 가축도 키우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장가가 늦어졌어. 서른아홉 살, 나이 꽉 찬 노총각이야. 이런 부현 씨에게 후배 하나가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어. 얼마 후, 하얀 탱자나무 아래 버스정류장에 부현 씨가 서있어.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이야. 버스에서 한 여자가 내렸어. 그때 아마 봄날이었지. 꽃 피고 새 우는 봄인가 싶어. 버스를 내려서 거기서 두리번두리번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저게 누구고' '저게 맞는가' 하고 보니까 맞더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눈부신 햇살 속 그녀가 한 발자국씩 다가와. 점점 얼굴이 보이는데, 갑자기 세상이 슬로비디오처럼 바뀌는 마법이 펼쳐졌어. 두 사람의 핑크빛 첫 만남이었어. 사람이 귀엽게 생겼더라고 예쁘고. '설마 이런 여자가 나한테 오겠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어요. 그래서 첫눈에 내가 반했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는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어.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부현 씨. 대뜸 날 좋아할 수 있겠나? 라며 그녀에게 직진했어. 첫 만남 뒤 선아 씨가 부현 씨네 시골집에 놀러 왔다가, 그대로 같이 살게 됐어. 주위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지. 여자가 너무 급하게 눌러앉는 게 수상하다고. 나이차도 큰데, 여자가 다른 거 노리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기우였어. 두 사람은 냉수 한 그릇 떠 놓고, 그릇 옆에 초 하나를 세우고, 나란히 앉았어. 지금은 이렇게 소박하게 하지만, 나중에 돈 벌어서 멋진 결혼식을 하자고 약속하며, 그렇게 둘만의 작은 결혼식을 올렸어. 다 해주고 싶데요 막.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 여자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한창 농사일을 하다 보면, 저 멀리서 선아 씨가 새참을 들고 왔어. 아내는 김밥을 잘 쌌어. 집에 있는 나물, 갖가지 반찬들을 넣어 만든 아내표 김밥이 그렇게 맛있었어. 사람이 활발하고 좀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동생이 없다 보니까, 항상 내 동생 같기도 하고, 아내 같기도 하고… 내가 제일 기억나는 게 김밥. 김밥을 제일 많이 먹은 것 같아. 내가 그래서 항상 '너 김밥 장사해라' 그랬어.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봄에는 오토바이 타고 벚꽃놀이 가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 끼얹으며 꺄르르 웃고, 가을에는 같이 단풍구경 다니며, 두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 내가 등허리 업고 막 쫓아다니고 그랬습니다. 내가 많이 업고 다녔습니다. '그래 좋나? 좋다' 이러면서 손바닥을 팍팍 치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아내가 좋아했던 꽃은 들국화였어. 뒷산에 올라가면 들국화로 화관을 만들어서 머리에 씌워주곤 했어. 산에 올라가면 들국화가 있잖아요. 들국화를 모자같이 만들어서 탁 끼워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생일이면 근사한 케이크는 없어도, 초코파이면 충분했어. 서로의 마음은 누구보다 서로가 잘 아니까. 비싼 옷, 값나가는 보석은 못해줘도, 오순도순 함께 있는 것만으로 큰 기쁨이야. 그때는 참 저한테는 완전 봄날이고. 서로 이렇게 뽀뽀도 하고. 그냥 이렇게 안으면서 뽀뽀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가끔씩, 아내가 남모르게 눈물을 훔쳐. 뭔가 고민이 있는 거 같아.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결혼을 후회하나?' 부현 씨는 아내 걱정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사실은 자기가 전에 한번 결혼한 적이 있었고, 딸도 하나 있다는 거야. 그 딸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는 거야. 아내의 고백에도 부현 씨는 괜찮다, 다 지난 일 아니냐 며 감쌌어. 그런 거는 신경 안 썼어요. 집에 있으니까, 나는 있으면 행복한 거예요 그냥.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오히려 부현 씨는 조금씩 돈이 생기면 아내에게 건넸어. 그러면 아내는 그 돈을 가지고 어딘가에 갔다가 돌아왔어. 부현 씨는 그저, '딸 보러 갔겠거니' 생각하며 묵묵히 기다렸어. 자기가 낳은 딸이니까 보고 싶겠지 아마. '그래서 아마 왔다 갔다 안 했겠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갔다 하면 일주일은 있다가 오더라고. 그냥 '갔다 왔나, 잘 갔다 왔나' 이렇게 하고 말았어요. 그냥 '너만 돌아오면 됐다' 그렇게 말했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어. 남자는 부현 씨를 향해 대뜸 고함을 지르더니 욕설을 내뱉어. 선아 씨의 전남편이었어. 부현 씨는 그에게 차분히 원하는 게 뭐냐 고 물었어. 근데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막혀. 선아 씨를 데려가겠다는 거야. 속이 뒤집어지는 입장이지. 오장육부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더라고.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니, 돈이라는 거예요. '그럼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했더니 '소 한 마리 값을 줘야겠다'고 그러더라고. 차라리 여자를 포기할까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래도 나하고 같이 만났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고. 그 돈을 다 줘버렸어요. 다 가져가라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결국 부현 씨는 애써 키운 소를 팔아 그 돈을 전남편에게 건넸어. ▲ 에이즈의 공포 그즈음 김해 보건소는 부산 보건소에서 전화를 받았어. 자기들 쪽에서 에이즈 검사를 한 분이 김해로 주소 이전을 했는데,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는 거야. 당시엔 보건당국이 에이즈 환자를 의무적으로 관리했어. 환자의 주거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지. 부현 씨가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못 보던 사람들이 집에 와있어. 보건소 직원들이야. 아내에게 알려줄 게 있어서 집을 찾아왔대. 부현 씨는 무슨 일이지 짐작도 안가. 그런데 그때, 아내와 이야기를 마친 직원들이 부현 씨를 따로 불러 조심스레 말을 건네. 아내 선아 씨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약을 갖다가 한 봉지를 주고 가더라고. 그리고 나보고 콘돔 같은 걸 한가득 주고 가고. 그래서 '이걸 왜 주고 가냐' 했더니, 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왜 안되느냐' 물어보니까, 그래서 그때 얘기를 하더라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우린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이게 무슨 이런 궤변이 있나' 내가 그랬어요. 그리고 멱살도 잡았어요.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부현 씨는 너무 화가 나. 내 아내가 에이즈라고? 에이즈라는 병이 뭔지, 부현 씨도 TV에서 본 적이 있어. 몸에 반점이 생기고, 불치병이라 알려졌던 병. 내 아내가 그런 병에 걸렸다고? 매일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깨끗하게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누구보다 밝고 활발한 이 사람이? 나도 우리 선아도 건강하기만 한데 무슨 에이즈야! 화가 나서 당장 채혈을 했어. 검사 결과, 부현 씨는 음성이었어. 근데 선아 씨는, 재검 결과도 양성이 나왔어. 이젠 사랑하는 사람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럼 선아 씨는 어쩌다가 에이즈에 걸린 걸까. 질문조차도 상처가 될 수 있기에, 부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어떤 이유로 병에 걸렸든 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 이야기를 내가 물어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상대방이 싫어하는 건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넘어간 거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럼 에이즈는 인류 역사에서 언제부터 발병한 걸까. 인류가 에이즈란 병을 알게 된 건 1981년. 뉴욕의 한 신문에, '무서운 미지의 병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처음 보도됐어. 동성애자 41명에게서 발견된 희귀 암 진단 후 24개월이 채 되지 않아 8명이 사망했다 발병원인은 알려지지도, 밝혀지지도 않았다 에이즈 하면 떠오르는 증상인 피부 반점. 이 반점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피부에 발병하는 악성 종양이야. 어떤 약도 효과가 없어. 면역 기능이 떨어지며, 사소한 감염에도 죽음에 이를 수 있어. 그야말로 미지의 질병의 출현이었어. 인류는 공포에 휩싸였어. 시기도 20세기가 끝날 무렵이라, 세기말 징조라는 말까지 나와. 인류문명은 그동안 수많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러왔어. 가장 가까운 최근 바이러스는 코로나19. 모두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었지. 그전에는 조류독감, 메르스, 에볼라, 신종플루, 사스, 그리고 좀 더 옛날로 가면 흑사병까지. 이렇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 수많은 바이러스가 있었어. 그런데 그중 에이즈는 '현대판 흑사병'이라 불리며, 사형 선고로 여겨진 거야. 프레디 머큐리, 매직존슨 같은 유명인도 에이즈 감염자였지. 에이즈 발병 초기에는 주로 동성애자와 마약중독자가 감염됐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차가웠어. 그냥 병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차별과 냉대를 받았지.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숨겨야만 하는 병이 된 거야. 우리나라에 에이즈의 공포가 드리운 건, 1985년이야. 에이즈 감염자와 사망자의 수가 마구 늘어가는 가운데,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어. 병원에서 수혈로 인한 감염자도 나왔어.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 전직 교사가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잘못 알고, 3살 난 딸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자신과 딸의 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반점이 생기자 에이즈 감염 증세로 착각하고 고민 끝에 동반자살을 결심했다. 결혼 전에 문란했던 과거로 인해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만 앞섰지, 정확한 지식이 부족한 데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정밀조사 결과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뉴스 보도 中 ▲ 내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에이즈는 무서운 병이지만, 부현 씨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어. 아내가 감염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 아내가 집을 나가는 일이 잦아지더니, 아예 사라진 거야. 김해 바닥 온 곳을 다 돌아다녔어요. 그랬는데 이거 뭐 만날 수가 있나. 가보면 없고, 여기도 가보면 없고. 저기도 가보면 없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주변 사람들은 이제 잊으라고 모두 말렸지만. 부현 씨는 사라진 아내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그때는 내가 많이 기다렸죠. 오직 그 사람 생각 밖에 없었으니까.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렇게 시간은 1년 반이 지났고, 경찰서에서 드디어 선아 씨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거야. 부현 씨는 허둥지둥 경찰서로 달려갔어.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가출 직후 일자리를 구하던 아내는, 어떤 남자에게 속아 차에 탔다가, 여수 윤락가에 팔려갔다는 거야. 도망 나오고 싶어도, 촘촘한 감시망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대. 담당 보건소는 선아 씨가 연락이 닿지 않자 행방불명자로 처리해서 질병당국에 보고했어. 그러던 중 방역 당국의 추적망에 걸린 거야. 그럼 선아 씨는, 애초에 왜 부현 씨를 떠난 걸까. 남편에게 병을 옮길까 싶어, 그게 두려웠대. 모르겠어요. 왜 떠났는지… 그냥 갑자기 떠나고 싶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남편에게 에이즈를) 옮길까 싶어서. 나한테 옮을까 싶어서… 나도 이 사람한테 옮기기 싫은 거야. 병도, 내가 덮어쓰고 가지. -선아(가명), 박부현 씨의 아내 하지만 선아 씨가 법을 어긴 건 사실이야. 그 후 유치장에 수감된 선아 씨. 여기서 담당검사가 불편한 건 없는지 물었는데, 이 질문에 대한 선아 씨의 대답 때문에 유치장 안이 난리가 났어. 모기가 많아서 불편해요. 선아 씨를 문 모기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모든 수감자들이 공포에 질려버린 거야. 그럼 에이즈는 모기를 통해 감염될까? 그럼 침, 땀, 눈물로는? 악수나 포옹은 어떨까? 정답은, 전부 '아니요'야. 모기가 흡입하는 혈액의 양이 매우 적고, 모기의 체내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가 없대. 그래서 전파가능성이 없어. 침, 땀, 눈물에도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긴 하지만 전염시킬만한 양이 아니야. 피부 접촉으로도 전염이 안돼. 에이즈 바이러스는 상처를 통해 혈액이 몸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감염이 안돼. 하지만 잘못된 인식으로, 에이즈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꺼려했어. 결국 선아 씨는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수감됐어. 아내가 에이즈 판정을 받고 감옥까지 갔어. 그런데도 부현 씨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어. 묵묵히 농사를 지었어.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했어. 그 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아내에게 면회 가기 위해서. 면회도 내가 한 번도 안 빠졌어요. 그때는 힘든 것도 없어요. 그게 낙인 데요 뭐. 집에서 교도소까지 2시간이야. 왕복으로 하면 4시간을 오토바이로 오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도 선아 씨의 얼굴을 봐야 했어. 에이즈 환자가 가장 고통받는 게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외로움이래. 그런데 선아 씨는 그런 걱정이 없었어. 면회실 칸막이 사이로 두 사람은 미래를 꿈꾸며 대화를 나눴어. 마치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과 전도연이 면회실에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절절하게 대화하던 그 명장면처럼. 헤어진다는 생각은 꿈도 못 꾸죠. '널 사랑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몸 열심히 돌보고'. (출소하면) '우리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안 가본 데도 가보고 그렇게 한번 해보자' 그랬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리고 두 사람은 편지도 주고받았어. 잘 지내고 있지? 생각이 많이 나. 당신하고 나하고 처음 만났을 때, 절에 놀러 가 사진 찍고 할 때, 당신이 나한테 김밥 재료 사 왔을 때가 많이 생각나.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어. 그리고 당신이 내 옥바라지한다고 고생하고 있는 것 다 알아. 사랑하는 부현 씨, 내가 좀 더 당신 신경 썼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 참 후회하고 있어. 만약에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어. 내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해줘. -남편에게 쓴 선아 씨의 편지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8개월. 시간이 지나 추운 겨울, 부현 씨는 밤새 한숨도 못 잤어. 8개월이 지나 선아 씨가 출소하는 날이거든. 교도소의 철문이 열리고, 드디어 아내의 모습이 보여. 이젠 꼭 안아줄 수 있고, 손을 잡아줄 수 있어. 바로 안았죠. 그리고 울었죠 둘이. '우리 열심히 살자, 남 의식하지 말고'. '우리끼리만 얼굴 보고 살자'...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문제가 있어. 선아 씨가 집으로 들어오기를 주저해.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온 동네에 소문이 나서, 그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가 너무 두려운 거야. 부현 씨는 농사일과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도시에 방 한 칸을 잡았어. 두 사람을 모르는 곳으로 간 거야. 하지만 도시 생활은 녹록지 않았어. 에이즈 가족이라는 딱지를 단 채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거든. 그래도 박스 줍는 일과 작은 장사를 시작했어. 소박한 시작이지만,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대. ▲ 영화가 아닌 현실의 엔딩 시간이 흘러 2009년. 선아 씨가 출소한 지 6년이 지났어. 두 사람은 특별한 장소로 갔어. 사진관에서 웨딩촬영을 하기로 했거든. 함께 꿈꿔왔던 결혼식을 준비하게 된 거야. 돌고 돌아서 만난 지 10년 만에 드디어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어. 가족, 친구들의 축복 속, 선아 씨는 에이즈 환자가 아닌, 신부로 축하를 받았어. 늘 꿈에 그리던 순간이야.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제주도로 신혼여행도 갔어. 그리고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어. 그럼 이 두 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지나간 이야기는 다 잊어버리고, '우리 새 마음, 새 뜻으로 살자' 이랬는데. 자꾸 아이 때문에 찾아오고 또 가고, 또 왔다 갔다 하고 이러니까. 집을 나가서 그 뒤로 행방불명돼서 못 찾겠는 거예요. 이거 뭐 만날 수가 있나. 가보면 없고, 여기도 가보면 없고, 저기도 가보면 없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가 마음을 못 잡았는지, 또 집을 나갔다는 거야. 부현 씨는 이번에도 역시 돌아오기만을 묵묵히 기다렸어. 많이 기다렸습니다. 그때도 오기만을 기다렸죠. '그 애가 내 아이였으면 얼마나 좋겠나' 싶은 마음이 드는 거야. -박부현, 선아 씨 남편 그런데 어느 날, 부현 씨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어. 그때가 아마 번개가 엄청나게 친 날이에요. 비도 오고 밤에. 그런데 누가 왔는지, 막 문을 두드리고 이러는데 내가 나가보니까. 아내가 왔는가 싶어서 문을 몇 번을 열어봐도 없어요. 그랬는데 그날따라 자꾸 이상한 번호가 뜨더라고. 그래서 '이게 무슨 번호고. 모르는 번호인데 받아서 뭐 하겠느냐'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냥 내버려 뒀는데, 계속 전화가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받아보니까, '김해 경찰서 누구 경찰관입니다' 이러더라고. 저보고 '어디 병원 빨리 가보세요' '선아 씨가 죽었습니다' 이러는 거야. 나는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갔는데, 가보니까 처량하게…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납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눈물 밖에 안 납니다. -박부현, 선아 씨 남편 선아 씨가 세상을 떠났어. 결혼식을 올리고 불과 다섯 달만의 일이야. 결혼식 때만 해도, 선아 씨가 건강했었는데,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었나 봐. 에이즈에 감염됐어도 약을 잘 복용하고 관리만 잘하면, 문제없이 살 수 있는데. 아마도 약을 잘 챙겨 먹지 않았던 거 같아. 부현 씨는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선아 씨가 생각난대. 그녀와 함께 한 벚꽃구경, 물놀이, 단풍구경.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선아 씨가 가장 좋아했던 들국화. 그 꽃을 보면 항상 아내가 떠올랐대. 이걸 가져다가 뭉쳐서 목에다 걸어주고, 귀에도 꽂아주고 했는데.. 부현 씨가 들국화 꽃다발을 안고, 아내가 잠든 곳을 찾았어. 잘 지냈나. 보고 싶었다…열심히 살자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 마지막 선물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어. 이젠 너무 늙어버려서 아내가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도 돼. 그동안 못 해준 게 많아서 후회도 돼. 그래서 부현 씨는 아내한테, 생전에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으시대. 이젠 직접 전할 수 없는 선물, 부현 씨가 직접 고른 머리띠야. 예뻤지. 머리가 이랬던 게, 머리띠를 하면 이렇게 올라갑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얼굴이 훤하게 보이는 거죠. 이 얼굴이 조그마하니 동글동글하게 보여요. 그게 사랑스럽고 예쁘게 보여요. 지금도 보듬고 싶고 안고 싶고 그래요. 뽀뽀해주고 싶고. -박부현, 선아 씨 남편 부현 씨가 선아 씨와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보단 이렇게 되물었대. 아내가 이런데도 여전히 사랑하시나요? 라고. 그런데 누군가의 사랑이 꼭 남들에게 이해받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걸까. 부현 씨에겐 이런 질문이 모두 무의미했어. 오직 그에게 의미 있는 건 선아 씨의 웃음뿐이었어. 나중에 선아 씨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냐 는 질문에 부현 씨는 이렇게 대답했어. 당신을 사랑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느라, 여수 지역이 난리 났던 거 기억나지? 그런데 그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에이즈 감염인과 1번 성접촉을 했을 때 전염될 확률은, 0.04~1.38% 정도래. 또 콘돔을 사용하면 이 가능성마저 거의 없어져. 그리고 선아 씨와 함께 생활했던 부현 씨도 결국엔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어. 물론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막연한 공포에 휩싸였던 당시 생각과는 다른 결과지. 에이즈가 세상에 등장한 지 40여 년이 지났어.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매년 천여 명의 신규 감염인이 발생하고 있대. 아직 에이즈 치료제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정상적인 수명대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대. '죽음의 병'이 아닌, 고혈압, 당뇨 수준으로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 중 하나인 거지. 사실 질환보다 무서운 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일 거야. 앞으로도 바이러스에 대한 전쟁은 계속될 거야. 그때마다 잘못된 편견으로 비난을 보내기보단, 질환 자체에 대해 의학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에이즈 걸린 아내 향한 남편의 순애보 …'꼬꼬무', '너는 내 운명' 실제 주인공 근황 공개
등록일2024.12.26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을 조명한다. 26일 방송될 '꼬꼬무'는 '너는 내 운명' 편으로 배우 황정민,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 남편을 만나 2024년 현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때는 2002년 6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모두가 들떠 있을 무렵. 부산의 한 식당 구석에 앉은 네 사람이 출입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여자. 네 사람은 재빨리 여자에게 다가갔다. 선아(가명) 씨 잘 지냈어요? 여자를 부르며 다가간 사람들은 바로 보건소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선아 씨를 경찰서로 인계했다. 선아 씨의 죄목은 '에이즈 예방법' 위반이었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여수는 발칵 뒤집혔다. 수많은 남성들이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에이즈 검사를 받기 위해 보건소를 찾으며 여수는 에이즈 공포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약을 먹으며 꾸준한 관리를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지만, 당시엔 정보도 부족하고, 이러한 사실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었다. 병명을 말할 수 없는, 숨기고 싶은 병이라는 인식. 그리고 여기에 편견까지 더해져 에이즈에 대한 공포, '포비아'가 만연해졌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로 선아 씨를 찾았다는 소식이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출한 선아 씨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녀의 남편 부현 씨였다. 황정민,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 결혼 후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변치 않는 순애보를 보여줬던 극 중 석중(황정민 분)의 모습은 현실에도 존재했을까. 석중의 실존 인물, 남편 박부현 씨가 직접 이야기해 주는 두 사람의 운명같은 사랑 이야기, 그리고 두 사람의 현재 모습이 '꼬꼬무'에서 공개된다. 1999년 봄. 후배의 소개로 선아 씨를 처음 본 순간, 부현 씨는 선아 씨에게 첫눈에 반했다. 부현 씨의 적극적인 고백으로 두 사람은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의 집으로 보건소 직원이 찾아와 선아 씨가 에이즈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검사 결과 부현 씨는 음성이었지만, 선아 씨는 재검 결과도 양성. 남들에게는 큰 공포였던 에이즈였지만 부현 씨에게는 이 검사 결과가, 아내 선아 씨를 향한 사랑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선아 씨가 집을 나가는 일이 잦아지더니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집을 완전히 나가버렸다. 그렇게 묵묵히 선아 씨만을 기다리던 부현 씨. 그러다 1년 반 만에 들은 소식이 바로 선아 씨의 체포 소식이었던 것.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선아 씨는 독방에 수감됐다. 하지만 매일 교도소로 면회를 갈 정도로 아내를 향한 부현 씨의 마음은 여전했다. 그리고 15년 뒤 부현 씨를 찾은 '꼬꼬무' 팀. 출소하는 아내를 맞이하는 남편의 모습으로 끝난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엔딩처럼, 현실에서도 두 사람은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까. 과연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꼬꼬무'의 장트리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이 이야기한다.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에는 그룹 하이라이트 리더 윤두준, 배우 신소율, 개그맨 정성호가 친구로 함께 한다. 윤두준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아왔다. 윤두준은 폭풍 공감 모드로 올라운더 리스너의 면모를 선보였다. 그리고 부현 씨의 아이같은 웃음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신소율은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았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꼬꼬무'에서 준비한 소박한 선물을 확인하고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 신소율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순애보에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러다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성호는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았다. 영화 '너는 내 운명' 속 남편의 모습 그 이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던 정성호. 그는 아내와의 설레는 첫 만남, 아내를 향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팔불출 면모를 보였다. 여기에 장현성의 '아내를 향한 사랑'에 대한 어필까지 끼어들며, 처음부터 끝까지 장현성과 끝내주는 케미를 보여줬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화, 크리스마스의 선물 같은 따뜻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꼬꼬무'의 '너는 내 운명' 편은 26일 목요일 밤 10시 20분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한채아·신소율 소속사, 단테엔터테인먼트에 흡수합병
등록일2024.11.13
[SBS연예뉴스 ㅣ 강경윤 기자] 배우 한채아, 신소율이 소속되어 있는 매니지먼트 봄이 단테미디어랩의 자회사 단테엔터테인먼트에 흡수됐다. 13일 단테엔터테인먼트는 매니지먼트 봄의 연기자는 물론 기존 조직까지 모두 흡수하는 방식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단테엔터테인먼트에는 매니지먼트 봄 소속 배우 한채아, 신소율 등이 대거 합류하며 소속 아티스트들의 면면이 더욱 탄탄해졌다. 기존 단테엔터테인먼트는 김기두, 윤지욱, 하요셉 등이 소속되어 운영 중이었다. 이번 합병으로 한채아, 신소율, 김사권, 배우희, 김예은, 고호정 등 연기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배우들이 함께하게 되면서, 단테엔터테인먼트의 스타 파워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한편 이번 합병을 통해 단테엔터테인먼트는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과 탄탄한 배우 라인업을 갖추고,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입지를 넓혀갈 계획 이라고 전했다. ky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지옥 같던 18연패…만년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는 이유
등록일2024.07.12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방송된 '영원한 나의 슈퍼맨-운명을 건 세 번의 승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신소율, 개그맨 지상렬, 골프 해설위원 이보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야구장의 사진사 때는 1982년 3월, 서울이야. 커다란 건물 앞에, 한 남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어. 건물로 들어간 남자는 성큼성큼, 계단을 하나씩 올랐어. 끝까지 오르자, 와아아!!!!! 하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 뜨거운 햇살, 날리는 흙먼지. 그 안에 광활한 풍경이 펼쳐졌어. 남자가 간 곳은 바로, 서울 동대문 야구장이야. 지금 DDP 자리가 예전엔 동대문 야구장이었어. 그날 야구장에선, 한 프로야구팀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어. 경기에 푹 빠져 있는 관중들 사이로, 남자가 들어섰어. 그리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어. 남자의 이름은 이광진. 사진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야. 광진 씨는 이 야구장에서 꿈을 펼치려고 해. 무슨 꿈일까? 직접 들어봐. 아버님이 교육자이셨는데, 역사적인 걸 굉장히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셨어요.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프로야구가 한국에서 처음이고 그래서, 그거를 한번 욕심을 냈죠. 프로야구 선수들이 갖고 있는 어떤 감성이라든지, 주제넘지만 내면의 세계를 담고 싶었죠. -이광진, 야구장을 찍는 대학생 1982년, 이때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출범했어. 광진 씨는 그해 첫 출범한 프로야구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었던 거야. 광진 씨는 선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어. 그때는 지금처럼 S석, A석, B석이 없었고, 앉는 게 임자고, 넘버링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내야도 갔다가 외야도 갔다가 그랬어요. 근데 옆에 중년 신사가 계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나를 힐끔힐끔 봐요. 그분이 이제 저한테… -이광진, 야구장을 찍는 대학생 한 중년 남자가 광진 씨에게 무슨 사진을 찍냐며 말을 걸었어. 광진 씨는 응원하는 팀을 찍고 있다고 대답했어. 그러자 그 남자가 광진 씨에게 명함을 내밀어. 그럼, 그 사진들 좀 가지고 언제 한번 우리 회사로 올 수 있습니까? 이 남자의 이름은 이혁근. 한 대기업 상무이사래. 대기업 상무가, 광진 씨를 왜 불렀을까? 며칠 뒤, 광진 씨는 사진 몇 장을 인화해서 명함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어. 종로에 있는 삼일빌딩 31층이야. 고층건물이 거의 없던 그때, 삼일빌딩은 서울의 시그니처 건물이었어. 광진 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건물에 들어갔어. 그리고 사무실 문을 열었어.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쫙 앉아있고, 저 끝에 앉아있는 남자, 이혁근 상무가 광진 씨를 맞이해. 아, 왔는가? 자자 다들 모여봐. 이 친구가 아주 재밌는 걸 가져왔다고 직원들이 모이고, 광진 씨가 사진을 꺼내기 시작했어. 다들 보고는 깜짝 놀라더니, 칭찬 일색이야. 어떤 사진일지, 궁금하지? 어때? 너무 잘 찍었지? 그동안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따라다니면서 찍은 거야.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봐봐. 선수들 유니폼에 있는 마크. 광진 씨가 찍은 야구팀, 뭔지 알겠어? 바로, 인천 '삼미 슈퍼스타즈'야. 삼일빌딩은, 삼미 슈퍼스타즈 모기업인 삼미 그룹의 본사였어. 이혁근 상무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단장이었던 거야. 자기 팀 사진을 멋있게 찍어주니까, 단장이 너무 고마웠나 봐. 이 단장은 광진 씨에게 뭐 도와줄 게 없냐고 물었어. 제가 학생이고 돈도 없고 그런데. 매일 경기 가서 사진 찍는 것도 다 돈이고. 그리고 지방 한 번 가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요… 그랬더니, 직원을 부르더라고요. -이광진, 삼미 사진을 찍던 대학생 이 단장이 직원을 불러 뭔가를 가져오게 했어. 그리고 그걸 광진 씨에게 건넸어. 삼미 비표였어. 지금으로 치면 구단 직원들이 들고 다니는 ID카드야. 이것만 있으면, 삼미 슈퍼스타즈의 모든 경기를 공짜로 볼 수 있는 거야. 그것도 특석에서. 거기에 한가지 더, 원정경기 갈 때 구단 버스를 탈 수 있게 해준대. 선수들과 같이 이동할 수 있는 거야. 같이 이동하고, 같이 밥을 먹고. 그때부터 광진 씨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전담 사진사가 된 거야. 경기하는 선수들 뿐만 아니라, 버스에서 자는 모습, 관중과 만나는 모습, 삼미 슈퍼스타즈의 모든 풍경을 사진에 담았어. 그런데 어느 날, 광진 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대. '아 그게 없다, 딱 그것만 나오면 좋겠다'라고. 최초의 프로야구 다큐멘터리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장면이 없다는 거야. 스포츠 사진은 이제 어떻게 보면 환희잖아요 환희. 이겼을 때의 그 환희. 근데 저는 갈등 사진이 너무 많았죠. 환희보다는 갈등 사진이 많고, 극적인 것보다는 침울한 거. 그런 게 많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죠. -이광진, 슈퍼스타즈 전담 사진사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는 꼴찌의 대명사였어. 득점보다는 실점이 많고, 승리보다 패배에 익숙했던 만년 꼴찌팀. 불꽃처럼 짧은 역사를 남기고 바로 사라진 팀.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아직도 빛나고 있는 '슈퍼맨' 같은 존재야. 그 이유가 뭘까? 오늘의 이야기는, 이 팀이 왜 이토록 오래도록 빛을 내고 있는지,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이야기야. ▲ 삼미 슈퍼스타즈의 탄생 1981년, 정부에선 국민들의 정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를 만들기로 해. 당시 프로야구 창립 계획은 이랬어.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 민간 기업에 운영을 맡겨. 민간 기업은 홍보를 위해 야구단을 이용했어. 지역에 연고가 있는 민간 기업이 해당 지역 출신 선수들을 모아 6개의 팀을 만들기로 했어. 서울엔 MBC청룡, 충청도엔 OB베어스, 대구에 삼성 라이온즈, 부산엔 롯데 자이언트, 광주엔 해태 타이거즈. 이렇게 다섯 지역의 팀이 정해졌어. 이제 한 곳만 정하면 돼. 인천, 경기, 강원을 맡을 기업이 필요했어. KBO 관계자들은 다급해. 프로야구 출범 발표일은 이제 보름 밖에 안 남았어. 먼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에게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어. 왜? 88올림픽 유치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대. 그 뒤에 제안한 건, 대한항공이었어. 다행히 처음엔 반겼어. 그런데 지금 회사가 적자라, 내년에 창단하면 안 되겠냐는 거야. 프로야구 출범을 내년으로 미룬다고 하면 정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그냥 다섯 팀으로 할까 했지만, 그럼 홀수라 경기수가 안 맞잖아. 프로야구 창립 관계자들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그때, 창립위원회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와. 그 프로야구팀 말이요. 내가 한번 만들어보겠소 전화를 건 사람은, 김현철 삼미 그룹 회장이었어. 창립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어. 삼미는 생각도 안 했던 회사였거든. 그때 삼미 그룹은 무역업, 해운업, 특수강을 취급하는 회사였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인데, 출범 발표 보름 전에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한 거야. 알고 보니까, 김현철 회장이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리그 야구를 그렇게 좋아했대. 그런데 어느 날, 인천 지역 야구팀을 맡을 기업이 없다는 뉴스를 본 거야. 그리고 바로 전화해서, 출사표를 낸 거지. 그때 김현철 회장 나이가, 서른 살이었대. 젊은 CEO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인천 연고의 프로야구팀이 턱! 생긴 거야. 프로야구가 창단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너무 기뻤죠. '내가 인천이니까 슈퍼스타즈를 응원해야 되는구나' 그 생각으로 슈퍼스타즈를 응원하기 시작했죠.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 팬 기쁘기만 한 팬들 마음과는 다르게, 삼미 측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 예정된 프로야구 개막은 82년 3월이야. 넉 달밖에 안 남은 거야. 넉 달만에 프로야구 한 팀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먼저 정해진 기업들은 진작에 팀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어. 하지만 삼미는 시간이 없어. 우선 팀 이름부터 '삼미 슈퍼스타즈'라고 지었어. 왜 슈퍼스타즈였을까? 김현철 회장의 아이디어였어. 미국 유학 당시 봤던 한 농구팀의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팀 이름이 '시애틀 슈퍼소닉스'였어. 거기서 '슈퍼'를 따와서 '슈퍼스타즈'라 지은 거야. 마스코트는 팀 이름이랑 어울리게, 슈퍼맨과 원더우먼으로 정했어. 일사천리로 마스코트까지 만들고, 이제 팀을 이끌어줄 사령탑, 감독을 찾을 차례야. 김혈철 회장이 감독으로 점찍은 사람은, 박현식. 1세대 홈런왕. 아시아의 철인이라 불리던, 야구계의 슈퍼스타였어. 이젠 삼미 유니폼을 입을 선수들, 슈퍼맨들을 찾아야 해. 지금부터 네가 삼미 스카우터라 생각하고, 프로필을 한번 봐봐. 먼저, 이 선수야. 이 양승관 선수는 어때? 대학야구 타격왕, 홈런왕을 석권했고,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외야 수비가 일품이야. 네가 스카우터라며 뽑을 거 같아? 이 선수는 삼미에 합격했어. 삼미 슈퍼스타즈 중견수를 보던 양승관입니다. 한국에 프로야구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프로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많이 설레더라고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이번엔 이 프로필을 봐봐. 김무관 선수야. 29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가 좀 걸리긴 한데, 건국대, 실업팀 한일은행 시절 각광받던 타격의 달인이야. 이 선수는 어떻게 됐을까? 저는 삼미 슈퍼스타즈 출신 야구선수 김무관이라고 합니다. (당시) 서른 정도 됐습니다. 실업팀에 있었으면 은퇴할 나이인데 프로가 생기는 바람에 그런 희망이 좀 생겼다고 할까요?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그리고, 인호봉, 금광옥, 조흥운, 김재현 등 인천 출신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하나 둘 영입했어. 이렇게 23명의 슈퍼맨이 삼미 슈퍼스타즈에 모였어. 근데 모인 선수들은, 걱정이 많았다고 해. 팀의 전력이 너무 약하다고 느꼈거든. 훈련하면서도 하루하루가 걱정이 많았었죠. 우리 팀이 이게,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있을까? 할 정도의, 한숨이 날 정도로. 진짜 선수층이 얕았으니까요. 전혀 모르던 선수들도 왔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갓 들어온 선수들도 있었어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삼성 라이온즈나 OB베어스나 이런 팀은, 굵직굵직한 선수들이 많았어요. 투수력이나 야수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조금 약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다른 구단들은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영입했어. 해태 김봉연, MBC 백인천, 삼성 황규봉, 이만수 등의 선수들을. OB베어스 구단주는, 직접 미국까지 가서 마이너리그 투수를 데려왔어. 그게 OB의 영원한 에이스, 불사조 박철순이야. 근데 삼미 슈퍼스타즈는 시간도 없고, 데려올 만한 스타급 선수도 없었던 거지. 그렇게 82년 2월, 삼미 슈퍼스타즈는 슈퍼스타 없이 창단했어. 창단식이 끝나고, 삼미 선수들은 경남 진해로 전지훈련을 갔어. 막상 훈련을 시작했더니, 감독은 한숨만 쉬어. 이건 도저히, 프로에 낄 실력이 아니야. 근데 그 와중에, 누군가 한 명이 감독 눈에 들어와. 배팅볼 투수였어. 타자들이 타격 연습을 할 때, 앞에서 공을 던져주는 투수야. 근데 보니까, 공을 왼손으로 던져. 예나 지금이나 왼손 투수는 별로 없어서, 귀하거든. 게다가 곧잘 던지는 게 실력도 괜찮아 보여. 감독이 그 배팅볼 투수를 슬쩍 불러 야구를 했었냐고 물었어. 알고 보니까, 고등학교 때 선수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삼미 특수강에서 근무하고 있는 회사원이래. 실업 야구팀에 못 가서 일반 회사에 취직했는데,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직장인 야구를 하고 있던 거야. 그걸 알고 있는 회사 상사가, 삼미 선수들이 진해로 전지훈련을 온다고 하니 가서 도와주라고 보내준 거야. 전지훈련 내내 감독이 지켜보니, 성실하고 우직해. 감독은 그 배팅볼 투수에게 '마침 우리 팀에 왼손 투수가 필요하니,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어. 이 선수의 이름은 '감사용'이야. 삼미 슈퍼스타즈 왼손 투수 감사용입니다. 45일 동안 합숙을 하고, 감독님 말씀이 '감사용이는 합류해' 그래서 인천으로 올라가는 그 길에, 진해에 우리 집으로 가서 가방 하나 더 들었죠. 이불을 가지고 합류하게 되었죠. 사실 그때는 파견 근무죠. 회사 출근 안 하고 야구장에 출근했죠. 너무 좋았죠.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실제 주인공, 감사용 선수야. 그렇게 감사용까지 합류하며, 슈퍼스타즈 팀이 완성된 거야. ▲ 프로야구 개막, 슈퍼스타즈의 첫 경기 82년 3월 27일. 드디어, 대한민국 최초 프로야구 개막식이 열렸어. 삼미 슈퍼스타즈의 첫 경기는 개막식 다음 날인 3월 28일에 열렸어. 상대는, 당시 우승 후보로 꼽혔던 강팀, 삼성 라이온즈야. 삼성의 선발 투수는 국내 에이스 중 에이스라 불리는 국가대표 출신 황규봉. 그리고, 4번 타자 이만수. 바로 어제 개막전 경기에서 시즌 제1호 홈런을 쳤어. (삼성이) 그때는 막강한 우승 후보죠. 이선희, 배대웅 등,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을 갖다 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게다가 그날 경기는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렸어. 삼성팬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프로로서 첫 경기. 게다가 상대는 우승 후보야. 삼미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삼미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아마. 저희 자신들도 이길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경기장에 들어갔으니까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드디어, 삼미의 첫 경기가 시작됐어. 1회는 양 팀 득점 없이 마무리되고, 2회초 삼미의 공격. 2루에 주자 금광옥이 있고, 타석엔 양승관이 들어섰어. 양승관은 안타를 때렸고, 2루 주자 금광옥이 홈을 밟았어. 삼미 슈퍼스타즈가 1점 앞서 나갔어. 의외의 변수가 생긴 거죠. 저희한테 일격을 당하니까, 이게 이런 경우가 있구나…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어느덧 경기는 4회 말, 삼성의 공격이야. 삼미의 투수는 선발 인호봉. 삼성 타석엔 바로 어제 홈런을 쳤던, 공포의 4번 타자 이만수야. 이때 이만수는 솔로 홈런을 쳐서 동점을 만들었어. 이 한 방으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삼성으로 넘어갔어. 근데, 시작할 땐 너무 긴장에서 공도 안 보일 정도였는데, 이제 슬슬 집중력이 돌아와. 삼미는 5회초에 곧바로 점수를 냈어. 스코어 2대 1로 다시 리드를 잡았어. 그리고 6회초, 삼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와. 무사 주자 만루의 기회가. 타석엔 5번 타자 김호인이 들어섰어. 김호인이 휘두른 방망이에 맞은 공은, 3유간으로 빠지는 안타로 이어졌어. 3루와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왔어. 스코어는 4대 1. 무사 만루의 기회는 계속 이어졌어. 타석엔 오늘 2타수 2안타를 기록 중인 양승관이 들어섰어. 양승관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추가했어. 스코어 5대 1. 최약체로 꼽혔던 팀이, 우승 후보팀을 상대로 팽팽한 경기를 펼치고 있어. 하지만 삼성은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야. 7회말 삼성의 공격. 2아웃 주자 1루 상황에, 4번 타자 이만수가 타석에 섰어. 투수 인호봉의 공을 받아친 이만수. 이만수는 2점 홈런을 쳤어. 연타석 홈런이야. 엎치락뒤치락,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해. 마침내 경기 종료야.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2만 2천여 야구팬이 지켜본 가운데 열린 오늘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 팀은 삼미 슈퍼스타즈 팀에게 5대 3으로 패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창단도 급하고 준비도 어설펐지만, 첫 경기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를 이겼어. 삼미 선수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우승 후보였던 삼성을 이겨서, '어? 한번 해볼 만한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어우 뭐 말도 못 했죠. 축제 분위기죠. 제가 야구하면서 그렇게 희열을 느껴본 게, 몇 번 안 되는 것 같아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야구는 기세다'라는 말이 있어. 삼미는, 이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 슈퍼맨의 비애 삼성과의 경기가 끝나고, 82년 4월, 삼미는 한 달 동안 11번의 경기를 치렀어. 그중 몇 번이나 이겼을 것 같아? 한 달간 11번의 경기 결과가, 2승 9패. 완전히 무너져 내렸어. 이유는 너무 얕은 선수층 때문이야. 특히 투수가 너무 없어. 하루 전날 이선덕 코치님이 '사용아 내일 선발 나가라' 그러면, 체력이 안 좋은데 못 나간단 소리도 못하고. 공이, 공이 아니고 쇠덩어리예요. 쇳덩어리. 어제 던지고, 또 대기하고. 어제 나가서 잘 던지면, 오늘 괜찮은 줄 알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나는 그런 체력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나는 80경기에서 41경기 나간 거예요.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어제 잘 던졌다, 체력이 돼 보인다, 싶으면 계속 경기에 내보내는 거야. 오늘 선발로 출전하면, 내일은 구원투수로. 그리고 모레는 또 선발로 나가곤 했어. 완전 혹사지. 그럼 야수들은 어땠을까? 이걸 한 번 봐봐 이게 무슨 상황 같아? 타석에 서 있는 남자, 이름 보여? 이춘근, 당시 삼미의 타자 코치였어. 하도 답답하니까, 코치가 대타로 나간 거야. 오죽하면 그랬을까. 선수들 사기가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져? 슈퍼스타즈의 사진사 광진 씨가, 이겼을 때의 환희를 찍고 싶다고 했잖아. 이맘때쯤 광진 씨가 찍은 사진들을 한번 봐봐. 웃음기 하나 없이 넋이 나간 표정들에서, 그때 분위기가 느껴지지? 스포츠는 이기고 봐야 영웅이 되는 거지, 지면 다 역적이거든요. -이광진, 슈퍼스타즈 사진사 이후 삼미는 계속 패만 쌓여가. 지고 있어도 지고, 이기고 있어도 나중에는 져. 창피했죠. 어디 돌아다니다가 밥 먹으러 나가도 그렇고, 술을 한잔 먹으러 가도 '술이나 먹으러 다니는구나' 매일 손가락질 당하기 바빴어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너무 지다 보니까, 기억나는 부분들이 없어요. 그게 떠올리기 싫은 거예요. 자꾸 너무 많이 지니까. 그런 게 자꾸 삭제되지 않았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안 좋은 부분들이.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결국 그해 삼미는 6개 구단 중 6위. 이변 없이 꼴찌를 했어. 이때 사람들은, 삼미 슈퍼스타즈를 '삼미 슬퍼스타즈'로 불렀대. 최소 득점, 최소 안타, 최소 홈런, 최다 실점. 이 처참한 기록들의 주인공이 바로 삼미였어. 그해 열린 80경기 중 삼미가 이긴 횟수는 단 15번. 승률은 0.188. 이 승률은 프로야구 42년 역사상, 아직도 깨지지 않은 최저 승률 기록이야. 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때 그 시절, 옛날엔 팬들이 상당히 과격했어. 제가 야구장을 갔다 와서 정말 절실하게 느낀 게 뭐냐면, 야구장은 어린이들이 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이에요. 왜냐면, 어른들이 관중들이 욕을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철망에 매달려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그러는 게 일상다반사였죠. 옷을 다 벗고 하얀 팬티 바람으로 그물망 타고 넘어가고 그랬어요. 과격하기가 말도 못 해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선수한테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쓰레기를 던지고, 그물망을 타고 넘어가고, 경기장에 난입해 항의하고, 선수가 말리고.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아이들 사이에서 삼미 팬들은 놀림의 대상이 됐어. '꼴찌팀 팬'이라고. 삼미 어린이 팬들은 창피해서 삼미 유니폼도 못 입고 다녔대. 그래도 팬들은, 맨날 지기만 하는 이 팀을, 이 약골 슈퍼맨을 계속 응원했어.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게. 오늘도 지고 어제도 지고 했는데, 만약에 내일 내가 야구장에 안 왔는데 그날 이기면 어떡해. 이걸 봐야 되잖아. 내가 삼미가 이기는 걸 한번 봐야 되잖아. 그래 갖고 내일도 또 야구장을 찾는 거예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워낙 팬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시니까, 거기에 많이 힘을 얻은 것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 1억 황금팔 장명부의 등장 83년도 시즌을 앞둔 스토브리그가 시작됐어. 삼미는 감독부터 다시 세팅해. 새 사령탑은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 감독이야. 김진영 감독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로, 등번호도 그해 년도인 83으로 달았어. 그리고 기존 선수 중 11명을 단칼에 방출했어. 전년도 꼴찌의 혜택으로 1차 선수 지명권을 가진 삼미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고 이 선수를 데려와. 이름은, 장명부. 재일 교포 선수였어. 일본 프로야구에서 소속팀인 히로시마 도요카프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에이스 투수였어. 당시엔 일본 야구가 우리보다 먼저 시작해서, 수준이 월등히 높았어. 그래서 당초 KBO는 85년부터 재일교포 선수를 영입하려 했었어. 그런데 팀 간의 전력차이가 너무 나니까, 계획을 앞당긴 거지. 그럼, 장명부 선수를 얼마에 데려왔을까? 작년 OB 박철순의 계약금과 연봉이 합쳐서 4,400만 원이었어. 그런데 장명부는, 계약금 4천에, 연봉 4천만 원. 무려 박철순의 두 배였어. 거기에 아파트 묻고, 더블로 자동차까지. 약 1억 원을 주고 데려왔어. 당시 강남 은마아파트가 약 3천만 원이었어. 1억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와? 그렇게 1억짜리 투수 장명부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게 돼. 기대를 엄청 했죠. 어마어마한 선수가 온다는 걸 알았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저 선수가 오면 한국을 뒤집어 놓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장명부가 처음 훈련장에 나타났어. 키 182cm에 몸무게가 90kg이 넘는 거구야. 다들 몸은 훈련을 하고 있지만, 신경은 온통 장명부로 향해 있어. 장명부가 드디어 훈련을 하기 시작하는데, 선수들이 술렁이기 시작해. 운동장에 재일 교포라고 왔는데, 나가서 슬쩍 몇 바퀴 어슬렁어슬렁 다니더니, 몸 풀라는데 티 배팅을 치고 있더라고요. 이거 뭐, 몸도 안 풀고, 저런 선수가 왔냐 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막 그냥 전력을 안 하는구나, 그냥 대충대충 하는구나. 그래서 진짜 유명한 선수 안 같았지.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곧, 그의 실력을 확인해 볼 기회가 왔어. 정규 시즌에 들어가기 전, 롯데와의 시범 경기가 있었거든. 그 경기에 장명부가 중간 투수로 올라갔어. 어땠을 것 같아? 시범경기 첫날 롯데와의 경기에서 선을 뵌 삼미의 장명부는 5회에 1점 6회에 3점을 허용하는 부진을 보였다. 1억 원짜리 투수 장명부는 연습경기에다 준비 없이 갑작스런 구원 등판 탓인지 소문대로의 위력적인 투구내용을 보이지 못했다. -당시 신문 보도 中 다음 경기에선 더 심각해. MBC청룡과의 시범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는데, 타자들에게 안타를 계속 맞아. 장명부는 2경기 동안 피안타가 17개, 무려 11 실점을 했어. 모두가 장명부의 실력을 의심하는 가운데, 83년 4월, 드디어 두 번째 정규 시즌이 시작됐어. 삼미의 첫 경기는, 첫 시범경기 상대였던 롯데야. 선발 투수는, 장명부. 1회 말, 장명부가 마운드에 섰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첫 투구를 선보였어. 헛스윙 삼진! 묵직하게 날아오는 장명부의 공에 롯데 타자들이 얼어붙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장명부 선수가 1억 원짜리 황금팔의 위력을 보여주면서, 10대 4로 슈퍼스타즈를 승리로 이끕니다. 의심을 날려버린 장명부의 첫 투구. 시범경기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야. 타자를 가지고 놀아. 타자를 그냥 요리를 하는 거예요 요리를. 자기 마음대로. 이제 우리가 놀란 거예요 전부 다.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이날 삼진 7개를 기록하며 경기를 압도했어. 그럼 시범경기 때는 어떻게 된 걸까? 일부러 안타를 맞았던 거야. 공을 맞으면서, 타자들의 전력 분석을 하고 있었던 거지. 정규 시즌에 들어간 장명부는, 완벽한 최고의 투수였어. 그리고 경기에 안 나오는 날이 없어. 계속 나오는데, 지치지도 않는지, 나오기만 하면 이겨. 그때 당시에 진짜, 자기가 던지다가 뒤에 중간 투수가 마음에 안 들면, 바꾸지 말라고 내가 계속 던지겠다고. 그리고 다음날 내가 던지겠다고 또 던질 정도였으니까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장효조 선수가 그 당시 최고 타격을 자랑하는 선수인데, 장명부가 장효조는 아주 안타를 거의 안 주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투수력으로 탄력을 많이 받았죠. 성적도 좋았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장명부는 좀 잘 친다 싶은 타자에겐, 거침없이 빈볼을 던져. 일부러 타자 몸에 공을 던지는 거야. 공을 맞춰놓고, 시치미 떼는 장명부의 모습에 사람들은 '너구리'라는 별명을 붙여줬어. 속을 알 수 없다고. 지금은 그러진 않지만, 그땐 빈볼도 타자의 흐름을 빼앗는 전략 중 하나였대. 장명부는 고도의 심리전을 주무기로, 차곡차곡 승을 쌓아갔어. 그만큼 삼미도 장명부를 등에 업고 순풍에 돛을 단 듯 승리했어. 4월에만, 15경기 중 9승. 5월은 19경기 중 12승. 벌써 21승이야. 작년 꼴찌팀이 순식간에 전체 1위. 언더독의 반란이 시작된 거야. 선수들 자체적으로 사기가 충만해 있었으니까.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진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 작년 게 많이 잊혀지더라고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제일 좋아하는 건 팬들이야. 삼미 어린이 팬들은 창피해서 유니폼도 못 입었다고 했잖아?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고. 이게 웬일이냐. 삼미가 맨날 이기고 그러니까, 특히 언론에서 장명부 얘기가 나오니까. 전에는 잡지책을 봐도 슈퍼스타즈 선수가 별로 없었거든요. 근데 이제 장명부로 도배가 되는 거예요. 친구가 소풍 갔을 때 찍은 사진을 저한테 보여주더라고요. 반에, 남자아이들의 반 정도가 삼미 슈퍼스타즈 점퍼를 입고 간 거예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어린이팬 훈희 씨가 어릴 적 소풍을 갔을 때 사진이래. 삼미 모자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 보여? 친구들 사이에서, 이제 자신 있게 삼미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거야. ▲ 오래가지 못한 슈퍼맨의 반란 이제 팬들과 슈퍼맨들의 목표는 단 하나, '우승'이야. 이때는 우승을 정하는 방식이 지금과는 달랐어. 전반기 1위 팀과 후반기 1위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거야. 삼미는 5월까지 1위였고, 2위는 해태 타이거즈였어. 두 팀 간의 승수 차이가 크지 않아. 이제부터 전반기 1위를 위해 남은 경기가 매우 중요해. 그리고 6월 1일, 슈퍼맨의 운명을 바꾼 경기가 시작돼. 잠실에서 삼미와 MBC의 경기가 열렸어. 스코어 0대 1로, 삼미가 1점 뒤지고 있는 가운데, 8회 초, 삼미의 공격이 시작됐어. 2번 타자 이영구가 볼넷으로 출루했고, 3번 타자 이선웅의 안타가 터졌어. 4번 타자 김진우도 볼넷으로 출루했어. 그렇게 8회초 2아웃, 주자 만루의 기회가 왔어. 타석엔 삼미의 최홍석이 들어섭니다. 최홍석이 공을 때립니다! 때린 공이 왼쪽으로 큼지막하게 날아갑니다! 좌익수 쪽으로 떨어지는 안타!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옵니다! 삼미가 2점을 내며, 2대 1로 역전했어. 근데, 갑자기 경기장이 술렁이기 시작해. 다들 전광판에 뜬 스코어를 보고 어리둥절해. 스코어가 1대 1이야. 삼미 점수가 1점밖에 안 올라간 거야. 어떻게 된 걸까? 아까 상황이, 투아웃 만루였잖아. 땅! 공이 날아가고, 주자 세 명이 동시에 뛰었어. 3루에 있던 주자가 들어오고, 스코어는 1대 1이 됐어. 그리고 주자는 A와 B가 남았어. 근데 A가 다다다다 뛰어서 홈을 밟는 순간, 뒤에서 뛰고 있던 B가 아웃 처리된 거야. 이 상황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어. 뭐가 먼저인지 애매해. A가 먼저 홈을 밟았으면 1점 인정인데, B가 먼저 아웃된 후에 A가 홈을 밟은 거라면, 점수 인정이 안 돼. 삼미 측은 A가 먼저 홈을 밟았다고 봤어. 근데 심판은, B가 아웃된 뒤에 A가 홈을 밟았다고 본 거야. VAR이 없던 시절, 삼미 측과 심판, 누구도 의견을 좁히지 않아. 그때! 김진영 감독이 마운드로 뛰어 나갔고,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를 하기 시작해. 김진영 감독은, 심판 위원장도 몸으로 밀치며 거칠게 항의했어. 막 굉장히 화나셨죠. 뭐 그냥 뭐 펄쩍펄쩍 뛰고 그랬으니까… 근데 저렇게라도 못했으면 너무 억울했을 것 같아요. 만약에 감독님이 아무 액션도 없었다면, 저희는 조금 실망했을 수도 있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결국 판정은 그대로 유지됐고, 9회에 1점을 내준 삼미는 경기에서 졌어. 억울하지만, 어쩌겠어. 남은 경기 잘해서 한국시리즈 가자고, 마음을 다잡았어. 그리고 내일 있을 경기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어.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알지 못했어. 이 일이,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서막이었단 걸 말야. 다음 날인 6월 2일, 부산에서 롯데와의 원정 경기야. 선발 장명부를 필두로, 4대 1로 경기를 이겼어. 근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덕아웃이 시끌시끌해. 경찰들이 덕아웃에 들이닥쳐서, 김진영 감독을 연행해 가는 거야. 그리고 다음날, 그대로 구속 됐어. 사유는 '많은 관중 앞에서 욕설과 폭행으로 청소년과 시청자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거였어. 하필 그날 경기를, 전두환 대통령이 보고 있었대. 김진영 감독이 항의하는 모습을 보고, 전두환 대통령은 쯧쯧쯧. 저러면 되나? 한마디를 했대. 그게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다음날 서울 경찰이 부산까지 내려가서, 현직 감독을 구속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거야. 진짜 그냥 멍하고, 큰 공백이죠 공백.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우리로서는 진짜 치명타를 받은 거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야. 하필 이때 삼미는, 2위 해태와의 3연전을 앞두고 있었어. 여기서 한 경기라도 지면, 삼미가 2위로 떨어질 수도 있어. 사령탑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치르게 된 거야. 결과는, 삼미가 세 경기 모두 졌어. 감독 없이 기를 쓰고 했지만, 결국 해태에게 1위를 내주고, 전반기를 2위로 마무리했어. 후반기에서도, 삼미는 2위를 했어. 모두가 꿈꿨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한국시리즈행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어. 말도 못 했죠 그때는. 운동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야구하면서 우승 한 번 해보는구나' '한국시리즈 나가 보는구나' 그랬는데, 꿈의 무대였었는데 그것마저도 안 되고 나니까. 진짜 허탈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하지만, 작년에 고작 15승을 했던 삼미가 83년에는 52번의 승을 올렸어. 꼴찌라는 오명을 달았던 팀이, 1년 만에 전반기 후반기 2위까지 올라간 거야. 게다가 최고의 에이스 투수 장명부를 보유하고 있잖아. 83년에 세운 장명부의 '시즌 30승' 기록은, 프로야구 역사 42년 동안 지금도 깨지지 않았어. 이땐 100경기인 시절에 혼자 30승을 기록한 거야. 더 이상 삼미는, 꼴찌만 하는 최약체팀이 아냐. 내년에는 진짜 상위권에 있는 팀이 될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이 조금씩 조금씩 선수들이 단단해졌던 것 같아요. 내년이 기대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즌을 마쳤던 것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 무너진 에이스, 18연패의 늪 84년, 세 번째 시즌이 시작됐어. 구속됐던 김진영 감독도 다시 복귀했어. 84년, 삼미의 성적은 어땠을까? 전반기는 6위, 후반도 또 6위. 꼴등을 차지했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에이스 장명부가 무너진 거야. 장명부는 100경기 중 60경기에 나가서, 427과 1/3이닝을 소화했어. 1년 동안 던진 공이 5,886개였어. 요즘 선발 투수가 한 경기에서 던지는 투구 수는 평균 90개, 한 시즌당 약 2,200개 정도야. (장명부가) 자동차 타이어 튜브를 한 뼘 정도 되는 넓이로 해서 허리에 압박을 해서 차고 할 정도로 허리도 안 좋고. 마지막에는 진짜 힘들게 운동을 했어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장명부가 무너지니까, 팀 자체가 무너진 거야. 그렇게 84년도 시즌이 허무하게 지나갔어. 그래도 팬들은 꼴찌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던 삼미를 기억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하지만 삼미는, 뭐에 홀린 것마냥, 경기만 했다 하면 졌어. 연패하는지도 저희는 몰랐었어요. 연패하는지도 모르고 '어어어' 하다 보니까 뭐…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어느새 10연패가 됐고, 그 뒤로도 연패는 계속 이어졌어. 무려 18연패까지. 연패를 끊으려고 노력은 무던히 했는데, 그때는 사실 절망이죠 절망. '올해는 이제 야구 끝이구나' 고참들도, '끝나는구나' 했어요.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트라우마가 온 건지 유니폼을 보는 자체가 두렵기 시작한 거예요. 연패에 들어가니까. 경직되고, 경기장에 나가는 게 두렵기 시작하고. 이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선수단 분위기는 완전히 뭐 최악이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그렇게 질 수 있나? 아무리 못해도 그렇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지옥이었던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정말 지옥 같은 야구를 했던 것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때는 1985년 4월 30일, 인천 도원 야구장. 상대는 MBC청룡이었어. 다행히 2회 말, 삼미 정구선의 솔로 홈런으로 먼저 1점을 냈어. 현재 스코어는 1대 0. 경기는 계속 진행되고, 선수들은 이닝이 바뀔 때마다 10년은 흐른 것 같아.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점수차라 불안한 거야. 수비하는 삼미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기도해. '공아, 제발 내 쪽으로 오지 마라'라고. 선수 입장에서 '만약 나의 실책으로 또 연패를 한다면'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거야. 이거 실책 하나 하면, 그걸 빌미로 또 질 수 있다… 18연패 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을 거예요. 수비수 입장에서는 '나한테 공 오지 마라'라는 생각도, 지금 와서 얘기하지만, 했던 거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그리고 8회 말, 불안함을 날려버리는 영화 같은 삼미의 공격이 시작돼. 2번 타자 김우근이 안타를 치고 나가. 다음 타석에 이선웅이 들어서자, 감독과 코치진이 사인을 보내느라 바빠져. 기습 번트 사인이 나왔는데, 작전은 성공했어. 1아웃 주자 2루. 다음 타자 금광옥은 볼넷으로 출루했어. 1사 주자 1, 2루가 됐어. 다음 타자 정구선은 안타를 쳤어. 현재 상황, 1아웃 주자 만루야. 이번에 점수를 내면, 연패를 끊을 수 있어. 관중석엔 삼미의 승리를 기원하는 팬들로 가득해. 중압감을 어깨에 지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불꽃 타자, 양승관이야. 무지 설��어요. 억누를 수가 없을 정도로 흥분되더라고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양승관은 이 타석에서, 3타점 3루타를 때렸어. 3루에 딱 도달했을 때는, 영화에서 보면 필름이 좌르륵 돌아가잖아요? 2루 베이스까지 가는데 연패하면서 그냥 그 과정들이 순간적으로 그냥 필름처럼 쫙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뭐 힘든 과정이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그 후 더 이상 실점을 없었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렇게 지옥 같았던 18연패 수렁에서 탈출했어. 선수들은 그제서야 웃었어. '아 이제 끝났다' 이게 아니고, 허탈했어요. 우리는 동굴인 줄 알았는데 터널을 지나갔구나. 동굴에 갇혔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사실. 너무너무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까. 힘들었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드디어 길고 길었던 18연패가 끝났어. 그런데,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지? 바로 다음 날,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소식이 전해져. ▲ 슈퍼맨과의 이별 야구처럼 기구한 슈퍼스타즈 청보식품서 70억 원에 인수 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가 부실한 운영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풍한그룹 청보식품으로 넘어갔다. 슈퍼스타즈가 18연패의 치욕적인 늪에서 겨우 헤어 나와 청룡에 1승을 거두던 30일 밤, 서울시내 모처에서 야구위원회, 슈퍼스타즈, 풍한 실무자 등 3자 회담에서 매도가 확정된 때였다. -당시 신문 보도 中 전혀 저희는 눈치 못 챘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이제 좀 분위기 좋아지려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야? 선수들 잘리고 감독도 잘리고 변화가 있는 거 아니야? 불안했죠. 그날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사실.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18연패를 끊고 모두가 기뻐하던 그날 밤에, 삼미 김현철 회장은 회사 적자 때문에 구단 운영을 포기하고, 청보식품이라는 기업에 구단을 넘긴 거야. 그것도 시즌 도중에 구단이 사라진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감독도 선수도 그대로 유지되고, 팀 이름만 '청보 핀토스'로 바뀐대. 85년 6월 21일, 인천 홈구장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경기가 열려. 마지막 경기에서, 삼미는 졌어. 그리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대로 사라졌어. 3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삼미 슈퍼스타즈는 최저 승률, 최다 연패, 특정팀 상대 전패 등 지금까지 회자되는 기록들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어. 예상대로 꼴찌를 하고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도 했지만,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뛴 슈퍼맨 구단. 그 슈퍼맨들을 여전히 소중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쁜 추억도 많지만 좋은 추억도 많고 팬들하고 쌓인 그런 추억이 많은 것 같아요. 팬들의 그런 성원이나 이런 거는, 지금도 가끔 문득문득 생각이 나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힘든 과정을 겪고 나니까, 그 사회에 나가서도 많이 도움이 됐어요. 인내하게 되고, 인내하는 걸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아쉬움도 있었지만, 삼미는 인천 팬들한테는 애증의 구단이거든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팀. 삼미가 아무리 연패에 빠져 있어도 인천 구장 내야석은 꽉 차 있다는 거.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거야, 하면서 계속 야구장을 찾았다는 거…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지옥같던 18연패…만년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는 이유
등록일2024.07.12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방송된 '영원한 나의 슈퍼맨-운명을 건 세 번의 승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신소율, 개그맨 지상렬, 골프 해설위원 이보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야구장의 사진사 때는 1982년 3월, 서울이야. 커다란 건물 앞에, 한 남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어. 건물로 들어간 남자는 성큼성큼, 계단을 하나씩 올랐어. 끝까지 오르자, 와아아!!!!! 하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 뜨거운 햇살, 날리는 흙먼지. 그 안에 광활한 풍경이 펼쳐졌어. 남자가 간 곳은 바로, 서울 동대문 야구장이야. 지금 DDP 자리가 예전엔 동대문 야구장이었어. 그날 야구장에선, 한 프로야구팀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어. 경기에 푹 빠져 있는 관중들 사이로, 남자가 들어섰어. 그리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어. 남자의 이름은 이광진. 사진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야. 광진 씨는 이 야구장에서 꿈을 펼치려고 해. 무슨 꿈일까? 직접 들어봐. 아버님이 교육자이셨는데, 역사적인 걸 굉장히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셨어요.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프로야구가 한국에서 처음이고 그래서, 그거를 한번 욕심을 냈죠. 프로야구 선수들이 갖고 있는 어떤 감성이라든지, 주제넘지만 내면의 세계를 담고 싶었죠. -이광진, 야구장을 찍는 대학생 1982년, 이 때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출범했어. 광진 씨는 그해 첫 출범한 프로야구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었던 거야. 광진 씨는 선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어. 그때는 지금처럼 S석, A석, B석이 없었고, 앉는 게 임자고, 넘버링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내야도 갔다가 외야도 갔다가 그랬어요. 근데 옆에 중년 신사가 계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나를 힐끔힐끔 봐요. 그분이 이제 저한테… -이광진, 야구장을 찍는 대학생 한 중년 남자가 광진 씨에게 무슨 사진을 찍냐며 말을 걸었어. 광진 씨는 응원하는 팀을 찍고 있다고 대답했어. 그러자 그 남자가 광진 씨에게 명함을 내밀어. 그럼, 그 사진들 좀 가지고 언제 한번 우리 회사로 올 수 있습니까? 이 남자의 이름은 이혁근. 한 대기업 상무이사래. 대기업 상무가, 광진 씨를 왜 불렀을까? 며칠 뒤, 광진 씨는 사진 몇 장을 인화해서 명함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어. 종로에 있는 삼일빌딩 31층이야. 고층건물이 거의 없던 그때, 삼일빌딩은 서울의 시그니처 건물이었어. 광진 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건물에 들어갔어. 그리고 사무실 문을 열었어.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쫙 앉아있고, 저 끝에 앉아있는 남자, 이혁근 상무가 광진 씨를 맞이해. 아, 왔는가? 자자 다들 모여봐. 이 친구가 아주 재밌는 걸 가져왔다고 직원들이 모이고, 광진 씨가 사진을 꺼내기 시작했어. 다들 보고는 깜짝 놀라더니, 칭찬 일색이야. 어떤 사진일지, 궁금하지? 어때? 너무 잘 찍었지? 그동안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따라다니면서 찍은 거야.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봐봐. 선수들 유니폼에 있는 마크. 광진 씨가 찍은 야구팀, 뭔지 알겠어? 바로, 인천 '삼미 슈퍼스타즈'야. 삼일빌딩은, 삼미 슈퍼스타즈 모기업인 삼미 그룹의 본사였어. 이혁근 상무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단장이었던 거야. 자기 팀 사진을 멋있게 찍어주니까, 단장이 너무 고마웠나봐. 이 단장은 광진 씨에게 뭐 도와줄 게 없냐고 물었어. 제가 학생이고 돈도 없고 그런데. 매일 경기 가서 사진 찍는 것도 다 돈이고. 그리고 지방 한 번 가려고하면 너무 힘들어요… 그랬더니, 직원을 부르더라고요. -이광진, 삼미 사진을 찍던 대학생 이 단장이 직원을 불러 뭔가를 가져오게 했어. 그리고 그걸 광진 씨에게 건넸어. 삼미 비표였어. 지금으로 치면 구단 직원들이 들고 다니는 ID카드야. 이것만 있으면, 삼미 슈퍼스타즈의 모든 경기를 공짜로 볼 수 있는 거야. 그것도 특석에서. 거기에 한가지 더, 원정경기 갈 때 구단 버스를 탈 수 있게 해준대. 선수들과 같이 이동할 수 있는 거야. 같이 이동하고, 같이 밥을 먹고. 그때부터 광진 씨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전담 사진사가 된 거야. 경기하는 선수들 뿐만 아니라, 버스에서 자는 모습, 관중과 만나는 모습, 삼미 슈퍼스타즈의 모든 풍경을 사진에 담았어. 그런데 어느 날, 광진 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대. '아 그게 없다, 딱 그것만 나오면 좋겠다'라고. 최초의 프로야구 다큐멘터리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장면이 없다는 거야. 스포츠 사진은 이제 어떻게 보면 환희잖아요 환희. 이겼을 때의 그 환희. 근데 저는 갈등 사진이 너무 많았죠. 환희보다는 갈등 사진이 많고, 극적인 것보다는 침울한 거. 그런 게 많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죠. -이광진, 슈퍼스타즈 전담 사진사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는 꼴찌의 대명사였어. 득점 보다는 실점이 많고, 승리보다 패배에 익숙했던 만년 꼴찌팀. 불꽃처럼 짧은 역사를 남기고 바로 사라진 팀.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아직도 빛나고 있는 '슈퍼맨' 같은 존재야. 그 이유가 뭘까? 오늘의 이야기는, 이 팀이 왜 이토록 오래도록 빛을 내고 있는지,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이야기야. ▲ 삼미 슈퍼스타즈의 탄생 1981년, 정부에선 국민들의 정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를 만들기로 해. 당시 프로야구 창립 계획은 이랬어.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 민간 기업에 운영을 맡겨. 민간 기업은 홍보를 위해 야구단을 이용했어. 지역에 연고가 있는 민간 기업이 해당 지역 출신 선수들을 모아 6개의 팀을 만들기로 했어. 서울엔 MBC청룡, 충청도엔 OB베어스, 대구에 삼성 라이온즈, 부산엔 롯데 자이언트, 광주엔 해태 타이거즈. 이렇게 다섯 지역의 팀이 정해졌어. 이제 한 곳만 정하면 돼. 인천, 경기, 강원을 맡을 기업이 필요했어. KBO 관계자들은 다급해. 프로야구 출범 발표일은 이제 보름 밖에 안 남았어. 먼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에게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어. 왜? 88올림픽 유치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대. 그 뒤에 제안한 건, 대한항공이었어. 다행히 처음엔 반겼어. 그런데 지금 회사가 적자라, 내년에 창단하면 안 되겠냐는 거야. 프로야구 출범을 내년으로 미룬다고 하면 정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그냥 다섯 팀으로 할까 했지만, 그럼 홀수라 경기수가 안 맞잖아. 프로야구 창립 관계자들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그때, 창립위원회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와. 그 프로야구팀 말이요. 내가 한번 만들어보겠소 전화를 건 사람은, 김현철 삼미 그룹 회장이었어. 창립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어. 삼미는 생각도 안 했던 회사였거든. 그때 삼미 그룹은 무역업, 해운업, 특수강을 취급하는 회사였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인데, 출범 발표 보름 전에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한 거야. 알고 보니까, 김현철 회장이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리그 야구를 그렇게 좋아했대. 그런데 어느 날, 인천 지역 야구팀을 맡을 기업이 없다는 뉴스를 본 거야. 그리고 바로 전화해서, 출사표를 낸 거지. 그때 김현철 회장 나이가, 서른 살이었대. 젊은 CEO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인천 연고의 프로야구팀이 턱! 생긴 거야. 프로야구가 창단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너무 기뻤죠. '내가 인천이니까 슈퍼스타즈를 응원해야 되는구나' 그 생각으로 슈퍼스타즈를 응원하기 시작했죠.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 팬 기쁘기만 한 팬들 마음과는 다르게, 삼미 측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 예정된 프로야구 개막은 82년 3월이야. 넉 달밖에 안 남은 거야. 넉 달만에 프로야구 한 팀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먼저 정해진 기업들은 진작에 팀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어. 하지만 삼미는 시간이 없어. 우선 팀 이름부터 '삼미 슈퍼스타즈'라고 지었어. 왜 슈퍼스타즈였을까? 김현철 회장의 아이디어였어. 미국 유학 당시 봤던 한 농구팀의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팀 이름이 '시애틀 슈퍼소닉스'였어. 거기서 '슈퍼'를 따와서 '슈퍼스타즈'라 지은 거야. 마스코트는 팀 이름이랑 어울리게, 슈퍼맨과 원더우먼으로 정했어. 일사천리로 마스코트까지 만들고, 이제 팀을 이끌어줄 사령탑, 감독을 찾을 차례야. 김혈철 회장이 감독으로 점찍은 사람은, 박현식. 1세대 홈런왕. 아시아의 철인이라 불리던, 야구계의 슈퍼스타였어. 이젠 삼미 유니폼을 입을 선수들, 슈퍼맨들을 찾아야 해. 지금부터 네가 삼미 스카우터라 생각하고, 프로필을 한번 봐봐. 먼저, 이 선수야. 이 양승관 선수는 어때? 대학야구 타격왕, 홈런왕을 석권했고,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외야 수비가 일품이야. 네가 스카우터라며 뽑을 거 같아? 이 선수는 삼미에 합격했어. 삼미 슈퍼스타즈 중견수를 보던 양승관입니다. 한국에 프로야구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프로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많이 설레더라고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이번엔 이 프로필을 봐봐. 김무관 선수야. 29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가 좀 걸리긴 한데, 건국대, 실업팀 한일은행 시절 각광받던 타격의 달인이야. 이 선수는 어떻게 됐을까? 저는 삼미 슈퍼스타즈 출신 야구선수 김무관이라고 합니다. (당시) 서른 정도 됐습니다. 실업팀에 있었으면 은퇴할 나이인데 프로가 생기는 바람에 그런 희망이 좀 생겼다고 할까요?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그리고, 인호봉, 금광옥, 조흥운, 김재현 등 인천 출신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하나 둘 영입했어. 이렇게 23명의 슈퍼맨이 삼미 슈퍼스타즈에 모였어. 근데 모인 선수들은, 걱정이 많았다고 해. 팀의 전력이 너무 약하다고 느꼈거든. 훈련하면서도 하루하루가 걱정이 많았었죠. 우리팀이 이게,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있을까? 할 정도의, 한숨이 날 정도로. 진짜 선수층이 얕았으니까요. 전혀 모르던 선수들도 왔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갓 들어온 선수들도 있었어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삼성 라이온즈나 OB베어스나 이런 팀은, 굵직굵직한 선수들이 많았어요. 투수력이나 야수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조금 약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다른 구단들은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영입했어. 해태 김봉연, MBC 백인천, 삼성 황규봉, 이만수 등의 선수들을. OB베어스 구단주는, 직접 미국까지 가서 마이너리그 투수를 데려왔어. 그게 OB의 영원한 에이스, 불사조 박철순이야. 근데 삼미 슈퍼스타즈는 시간도 없고, 데려올 만한 스타급 선수도 없었던거지. 그렇게 82년 2월, 삼미 슈퍼스타즈는 슈퍼스타 없이 창단했어. 창단식이 끝나고, 삼미 선수들은 경남 진해로 전지훈련을 갔어. 막상 훈련을 시작했더니, 감독은 한숨만 쉬어. 이건 도저히, 프로에 낄 실력이 아니야. 근데 그 와중에, 누군가 한 명이 감독 눈에 들어와. 배팅볼 투수였어. 타자들이 타격 연습을 할 때, 앞에서 공을 던져주는 투수야. 근데 보니까, 공을 왼손으로 던져. 예나 지금이나 왼손 투수는 별로 없어서, 귀하거든. 게다가 곧잘 던지는 게 실력도 괜찮아 보여. 감독이 그 배팅볼 투수를 슬쩍 불러 야구를 했었냐고 물었어. 알고보니까, 고등학교 때 선수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삼미 특수강에서 근무하고 있는 회사원이래. 실업 야구팀에 못 가서 일반 회사에 취직했는데,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직장인 야구를 하고 있던 거야. 그걸 알고 있는 회사 상사가, 삼미 선수들이 진해로 전지훈련을 온다고 하니 가서 도와주라고 보내준 거야. 전지훈련 내내 감독이 지켜보니, 성실하고 우직해. 감독은 그 배팅볼 투수에게 '마침 우리팀에 왼손 투수가 필요하니,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어. 이 선수의 이름은 '감사용'이야. 삼미 슈퍼스타즈 왼손 투수 감사용입니다. 45일 동안 합숙을 하고, 감독님 말씀이 '감사용이는 합류해' 그래서 인천으로 올라가는 그 길에, 진해에 우리 집으로 가서 가방 하나 더 들었죠. 이불을 가지고 합류하게 되었죠. 사실 그때는 파견 근무죠. 회사 출근 안하고 야구장에 출근했죠. 너무 좋았죠.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실제 주인공, 감사용 선수야. 그렇게 감사용까지 합류하며, 슈퍼스타즈 팀이 완성된 거야. ▲ 프로야구 개막, 슈퍼스타즈의 첫 경기 82년 3월 27일. 드디어, 대한민국 최초 프로야구 개막식이 열렸어. 삼미 슈퍼스타즈의 첫 경기는 개막식 다음 날인 3월 28일에 열렸어. 상대는, 당시 우승 후보로 꼽혔던 강팀, 삼성 라이온즈야. 삼성의 선발 투수는 국내 에이스 중 에이스라 불리는 국가대표 출신 황규봉. 그리고, 4번 타자 이만수. 바로 어제 개막전 경기에서 시즌 제1호 홈런을 쳤어. (삼성이) 그때는 막강한 우승 후보죠. 이선희, 배대웅 등,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을 갖다 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게다가 그날 경기는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렸어. 삼성팬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프로로서 첫 경기. 게다가 상대는 우승 후보야. 삼미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삼미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아마. 저희 자신들도 이길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경기장에 들어갔으니까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드디어, 삼미의 첫 경기가 시작됐어. 1회는 양팀 득점 없이 마무리되고, 2회초 삼미의 공격. 2루에 주자 금광옥이 있고, 타석엔 양승관이 들어섰어. 양승관은 안타를 때렸고, 2루 주자 금광옥이 홈을 밟았어. 삼미 슈퍼스타즈가 1점 앞서 나갔어. 의외의 변수가 생긴 거죠. 저희한테 일격을 당하니까, 이게 이런 경우가 있구나…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어느덧 경기는 4회 말, 삼성의 공격이야. 삼미의 투수는 선발 인호봉. 삼성 타석엔 바로 어제 홈런을 쳤던, 공포의 4번 타자 이만수야. 이때 이만수는 솔로 홈런을 쳐서 동점을 만들었어. 이 한 방으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삼성으로 넘어갔어. 근데, 시작할 땐 너무 긴장에서 공도 안 보일 정도였는데, 이제 슬슬 집중력이 돌아와. 삼미는 5회초에 곧바로 점수를 냈어. 스코어 2대 1로 다시 리드를 잡았어. 그리고 6회초, 삼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와. 무사 주자 만루의 기회가. 타석엔 5번 타자 김호인이 들어섰어. 김호인이 휘두른 방망이에 맞은 공은, 3유간으로 빠지는 안타로 이어졌어. 3루와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왔어. 스코어는 4대 1. 무사 만루의 기회는 계속 이어졌어. 타석엔 오늘 2타수 2안타를 기록 중인 양승관이 들어섰어. 양승관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추가했어. 스코어 5대 1. 최약체로 꼽혔던 팀이, 우승 후보팀을 상대로 팽팽한 경기를 펼치고 있어. 하지만 삼성은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야. 7회말 삼성의 공격. 2아웃 주자 1루 상황에, 4번 타자 이만수가 타석에 섰어. 투수 인호봉의 공을 받아친 이만수. 이만수는 2점 홈런을 쳤어. 연타석 홈런이야. 엎치락뒤치락,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해. 마침내 경기 종료야.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2만 2천여 야구팬이 지켜본 가운데 열린 오늘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 팀은 삼미 슈퍼스타즈 팀에게 5대 3으로 패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창단도 급하고 준비도 어설펐지만, 첫 경기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를 이겼어. 삼미 선수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우승 후보였던 삼성을 이겨서, '어? 한번 해볼 만한데?' 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어우 뭐 말도 못했죠. 축제 분위기죠. 제가 야구하면서 그렇게 희열을 느껴본 게, 몇 번 안 되는 것 같아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야구는 기세다'라는 말이 있어. 삼미는, 이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 슈퍼맨의 비애 삼성과의 경기가 끝나고, 82년 4월, 삼미는 한 달 동안 11번의 경기를 치렀어. 그중 몇 번이나 이겼을 것 같아? 한달간 11번의 경기 결과가, 2승 9패. 완전히 무너져 내렸어. 이유는 너무 얕은 선수층 때문이야. 특히 투수가 너무 없어. 하루 전날 이선덕 코치님이 '사용아 내일 선발 나가라' 그러면, 체력이 안 좋은데 못 나간단 소리도 못하고. 공이, 공이 아니고 쇠덩어리예요. 쇳덩어리. 어제 던지고, 또 대기하고. 어제 나가서 잘 던지면, 오늘 괜찮은 줄 알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나는 그런 체력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나는 80경기에서 41경기 나간 거예요.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어제 잘 던졌다, 체력이 돼 보인다, 싶으면 계속 경기에 내보내는 거야. 오늘 선발로 출전하면, 내일은 구원투수로. 그리고 모레는 또 선발로 나가곤 했어. 완전 혹사지. 그럼 야수들은 어땠을까? 이걸 한 번 봐봐 이게 무슨 상황 같아? 타석에 서 있는 남자, 이름 보여? 이춘근, 당시 삼미의 타자 코치였어. 하도 답답하니까, 코치가 대타로 나간 거야. 오죽하면 그랬을까. 선수들 사기가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져? 슈퍼스타즈의 사진사 광진 씨가, 이겼을 때의 환희를 찍고 싶다고 했잖아. 이맘때쯤 광진 씨가 찍은 사진들을 한번 봐봐. 웃음기 하나 없이 넋이 나간 표정들에서, 그때 분위기가 느껴지지? 스포츠는 이기고 봐야 영웅이 되는 거지, 지면 다 역적이거든요. -이광진, 슈퍼스타즈 사진사 이후 삼미는 계속 패만 쌓여가. 지고 있어도 지고, 이기고 있어도 나중에는 져. 창피했죠. 어디 돌아다니다가 밥 먹으러 나가도 그렇고, 술을 한잔 먹으러 가도 '술이나 먹으러 다니는구나' 매일 손가락질 당하기 바빴어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너무 지다보니까, 기억나는 부분들이 없어요. 그게 떠올리기 싫은 거예요. 자꾸 너무 많이 지니까. 그런 게 자꾸 삭제되지 않았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안 좋은 부분들이.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결국 그해 삼미는 6개 구단 중 6위. 이변 없이 꼴찌를 했어. 이 때 사람들은, 삼미 슈퍼스타즈를 '삼미 슬퍼스타즈'로 불렀대. 최소 득점, 최소 안타, 최소 홈런, 최다 실점. 이 처참한 기록들의 주인공이 바로 삼미였어. 그해 열린 80경기 중 삼미가 이긴 횟수는 단 15번. 승률은 0.188. 이 승률은 프로야구 42년 역사상, 아직도 깨지지 않은 최저 승률 기록이야. 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때 그 시절, 옛날엔 팬들이 상당히 과격했어. 제가 야구장을 갔다 와서 정말 절실하게 느낀 게 뭐냐면, 야구장은 어린이들이 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이에요. 왜냐면, 어른들이 관중들이 욕을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철망에 매달려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그러는 게 일상다반사였죠. 옷을 다 벗고 하얀 팬티 바람으로 그물망 타고 넘어가고 그랬어요. 과격하기가 말도 못해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선수한테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쓰레기를 던지고, 그물망을 타고 넘어가고, 경기장에 난입해 항의하고, 선수가 말리고.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아이들 사이에서 삼미 팬들은 놀림의 대상이 됐어. '꼴찌팀 팬'이라고. 삼미 어린이 팬들은 창피해서 삼미 유니폼도 못 입고 다녔대. 그래도 팬들은, 맨날 지기만 하는 이 팀을, 이 약골 슈퍼맨을 계속 응원했어. 응원할 수 밖에 없는게. 오늘도 지고 어제도 지고 했는데, 만약에 내일 내가 야구장에 안 왔는데 그날 이기면 어떡해. 이걸 봐야 되잖아. 내가 삼미가 이기는 걸 한번 봐야 되잖아. 그래 갖고 내일도 또 야구장을 찾는 거예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워낙 팬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시니까, 거기에 많이 힘을 얻은 것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 1억 황금팔 장명부의 등장 83년도 시즌을 앞둔 스토브리그가 시작됐어. 삼미는 감독부터 다시 세팅해. 새 사령탑은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 감독이야. 김진영 감독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로, 등번호도 그해 년도인 83으로 달았어. 그리고 기존 선수 중 11명을 단칼에 방출했어. 전년도 꼴찌의 혜택으로 1차 선수 지명권을 가진 삼미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고 이 선수를 데려와. 이름은, 장명부. 재일 교포 선수였어. 일본 프로야구에서 소속팀인 히로시마 도요카프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에이스 투수였어. 당시엔 일본 야구가 우리보다 먼저 시작해서, 수준이 월등히 높았어. 그래서 당초 KBO는 85년부터 재일교포 선수를 영입하려 했었어. 그런데 팀간의 전력차이가 너무 나니까, 계획을 앞당긴거지. 그럼, 장명부 선수를 얼마에 데려왔을까? 작년 OB 박철순의 계약금과 연봉이 합쳐서 4,400만 원이었어. 그런데 장명부는, 계약금 4천에, 연봉 4천만 원. 무려 박철순의 두 배였어. 거기에 아파트 묻고, 더블로 자동차까지. 약 1억원을 주고 데려왔어. 당시 강남 은마아파트가 약 3천만 원이었어. 1억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와? 그렇게 1억짜리 투수 장명부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게 돼. 기대를 엄청 했죠. 어마어마한 선수가 온다는 걸 알았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저 선수가 오면 한국을 뒤집어 놓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장명부가 처음 훈련장에 나타났어. 키 182cm에 몸무게가 90kg이 넘는 거구야. 다들 몸은 훈련을 하고 있지만, 신경은 온통 장명부로 향해 있어. 장명부가 드디어 훈련을 하기 시작하는데, 선수들이 술렁이기 시작해. 운동장에 재일 교포라고 왔는데, 나가서 슬쩍 몇 바퀴 어슬렁어슬렁 다니더니, 몸 풀라는데 티 배팅을 치고 있더라고요. 이거 뭐, 몸도 안 풀고, 저런 선수가 왔냐 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막 그냥 전력을 안 하는구나, 그냥 대충대충 하는구나. 그래서 진짜 유명한 선수 안 같았지.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곧, 그의 실력을 확인해 볼 기회가 왔어. 정규 시즌에 들어가기 전, 롯데와의 시범 경기가 있었거든. 그 경기에 장명부가 중간 투수로 올라갔어. 어땠을 것 같아? 시범경기 첫날 롯데와의 경기에서 선을 뵌 삼미의 장명부는 5회에 1점 6회에 3점을 허용하는 부진을 보였다. 1억 원짜리 투수 장명부는 연습경기에다 준비없이 갑작스런 구원 등판 탓인지 소문대로의 위력적인 투구내용을 보이지 못했다. -당시 신문 보도 中 다음 경기에선 더 심각해. MBC청룡과의 시범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는데, 타자들에게 안타를 계속 맞아. 장명부는 2경기 동안 피안타가 17개, 무려 11 실점을 했어. 모두가 장명부의 실력을 의심하는 가운데, 83년 4월, 드디어 두번째 정규 시즌이 시작됐어. 삼미의 첫 경기는, 첫 시범경기 상대였던 롯데야. 선발 투수는, 장명부. 1회 말, 장명부가 마운드에 섰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첫 투구를 선보였어. 헛스윙 삼진! 묵직하게 날아오는 장명부의 공에 롯데 타자들이 얼어 붙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장명부 선수가 1억 원짜리 황금팔의 위력을 보여주면서, 10대 4로 슈퍼스타즈를 승리로 이끕니다. 의심을 날려버린 장명부의 첫 투구. 시범경기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야. 타자를 가지고 놀아. 타자를 그냥 요리를 하는 거예요 요리를. 자기 마음대로. 이제 우리가 놀란 거예요 전부 다.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이날 삼진 7개를 기록하며 경기를 압도했어. 그럼 시범경기 때는 어떻게 된 걸까? 일부러 안타를 맞았던 거야. 공을 맞으면서, 타자들의 전력 분석을 하고 있었던 거지. 정규 시즌에 들어간 장명부는, 완벽한 최고의 투수였어. 그리고 경기에 안 나오는 날이 없어. 계속 나오는데, 지치지도 않는지, 나오기만 하면 이겨. 그때 당시에 진짜, 자기가 던지다가 뒤에 중간 투수가 마음에 안 들면, 바꾸지 말라고 내가 계속 던지겠다고. 그리고 다음날 내가 던지겠다고 또 던질 정도였으니까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장효조 선수가 그 당시 최고 타격을 자랑하는 선수인데, 장명부가 장효조는 아주 안타를 거의 안 주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투수력으로 탄력을 많이 받았죠. 성적도 좋았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장명부는 좀 잘 친다 싶은 타자에겐, 거침없이 빈볼을 던져. 일부러 타자 몸에 공을 던지는 거야. 공을 맞춰놓고, 시치미 떼는 장명부의 모습에 사람들은 '너구리'라는 별명을 붙여줬어. 속을 알 수 없다고. 지금은 그러진 않지만, 그땐 빈볼도 타자의 흐름을 빼앗는 전략 중 하나였대. 장명부는 고도의 심리전을 주무기로, 차곡차곡 승을 쌓아갔어. 그만큼 삼미도 장명부를 등에 업고 순풍에 돛을 단 듯 승리했어. 4월에만, 15경기 중 9승. 5월은 19경기 중 12승. 벌써 21승이야. 작년 꼴찌팀이 순식간에 전체 1위. 언더독의 반란이 시작된 거야. 선수들 자체적으로 사기가 충만해 있었으니까.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진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 작년 게 많이 잊혀지더라고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제일 좋아하는 건 팬들이야. 삼미 어린이 팬들은 창피해서 유니폼도 못 입었다고 했잖아?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고. 이게 웬일이냐. 삼미가 맨날 이기고 그러니까, 특히 언론에서 장명부 얘기가 나오니까. 전에는 잡지책을 봐도 슈퍼스타즈 선수가 별로 없었거든요. 근데 이제 장명부로 도배가 되는 거예요. 친구가 소풍 갔을 때 찍은 사진을 저한테 보여주더라고요. 반에, 남자 아이들의 반 정도가 삼미 슈퍼스타즈 점퍼를 입고 간 거예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어린이팬 훈희 씨가 어릴 적 소풍을 갔을 때 사진이래. 삼미 모자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 보여? 친구들 사이에서, 이제 자신 있게 삼미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거야. ▲ 오래가지 못한 슈퍼맨의 반란 이제 팬들과 슈퍼맨들의 목표는 단 하나, '우승'이야. 이때는 우승을 정하는 방식이 지금과는 달랐어. 전반기 1위 팀과 후반기 1위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거야. 삼미는 5월까지 1위였고, 2위는 해태 타이거즈였어. 두 팀 간의 승수 차이가 크지 않아. 이제부터 전반기 1위를 위해 남은 경기가 매우 중요해. 그리고 6월 1일, 슈퍼맨의 운명을 바꾼 경기가 시작돼. 잠실에서 삼미와 MBC의 경기가 열렸어. 스코어 0대 1로, 삼미가 1점 뒤지고 있는 가운데, 8회 초, 삼미의 공격이 시작됐어. 2번 타자 이영구가 볼넷으로 출루했고, 3번 타자 이선웅의 안타가 터졌어. 4번 타자 김진우도 볼넷으로 출루했어. 그렇게 8회초 2아웃, 주자 만루의 기회가 왔어. 타석엔 삼미의 최홍석이 들어섭니다. 최홍석이 공을 때립니다! 때린 공이 왼쪽으로 큼지막하게 날아갑니다! 좌익수 쪽으로 떨어지는 안타!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옵니다! 삼미가 2점을 내며, 2대 1로 역전했어. 근데, 갑자기 경기장이 술렁이기 시작해. 다들 전광판에 뜬 스코어를 보고 어리둥절해. 스코어가 1대 1이야. 삼미 점수가 1점 밖에 안 올라간 거야. 어떻게 된 걸까? 아까 상황이, 투아웃 만루였잖아. 땅! 공이 날아가고, 주자 세 명이 동시에 뛰었어. 3루에 있던 주자가 들어오고, 스코어는 1대1이 됐어. 그리고 주자는 A와 B가 남았어. 근데 A가 다다다다 뛰어서 홈을 밟는 순간, 뒤에서 뛰고 있던 B가 아웃 처리된 거야. 이 상황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어. 뭐가 먼저인지 애매해. A가 먼저 홈을 밟았으면 1점 인정인데, B가 먼저 아웃 된 후에 A가 홈을 밟은 거라면, 점수 인정이 안 돼. 삼미 측은 A가 먼저 홈을 밟았다고 봤어. 근데 심판은, B가 아웃된 뒤에 A가 홈을 밟았다고 본 거야. VAR이 없던 시절, 삼미 측과 심판, 누구도 의견을 좁히지 않아. 그때! 김진영 감독이 마운드로 뛰어 나갔고,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를 하기 시작해. 김진영 감독은, 심판 위원장도 몸으로 밀치며 거칠게 항의했어. 막 굉장히 화나셨죠. 뭐 그냥 뭐 펄쩍펄쩍 뛰고 그랬으니까… 근데 저렇게라도 못했으면 너무 억울했을 것 같아요. 만약에 감독님이 아무 액션도 없었다면, 저희는 조금 실망했을 수도 있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결국 판정은 그대로 유지됐고, 9회에 1점을 내준 삼미는 경기에서 졌어. 억울하지만, 어쩌겠어. 남은 경기 잘해서 한국시리즈 가자고, 마음을 다잡았어. 그리고 내일 있을 경기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어.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알지 못했어. 이 일이,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서막이었단 걸 말야. 다음 날인 6월 2일, 부산에서 롯데와의 원정 경기야. 선발 장명부를 필두로, 4대 1로 경기를 이겼어. 근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덕아웃이 시끌시끌해. 경찰들이 덕아웃에 들이닥쳐서, 김진영 감독을 연행해가는 거야. 그리고 다음날, 그대로 구속 됐어. 사유는 '많은 관중 앞에서 욕설과 폭행으로 청소년과 시청자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거였어. 하필 그날 경기를, 전두환 대통령이 보고 있었대. 김진영 감독이 항의하는 모습을 보고, 전두환 대통령은 쯧쯧쯧. 저러면 되나? 한마디를 했대. 그게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다음날 서울 경찰이 부산까지 내려가서, 현직 감독을 구속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거야. 진짜 그냥 멍하고, 큰 공백이죠 공백.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우리로서는 진짜 치명타를 받은 거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야. 하필 이때 삼미는, 2위 해태와의 3연전을 앞두고 있었어. 여기서 한 경기라도 지면, 삼미가 2위로 떨어질 수도 있어. 사령탑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치르게 된 거야. 결과는, 삼미가 세 경기 모두 졌어. 감독 없이 기를 쓰고 했지만, 결국 해태에게 1위를 내주고, 전반기를 2위로 마무리했어. 후반기에서도, 삼미는 2위를 했어. 모두가 꿈꿨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한국시리즈행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어. 말도 못했죠 그때는. 운동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야구하면서 우승 한 번 해보는구나' '한국시리즈 나가보는구나' 그랬는데, 꿈의 무대였었는데 그것마저도 안 되고 나니까. 진짜 허탈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하지만, 작년에 고작 15승을 했던 삼미가 83년에는 52번의 승을 올렸어. 꼴찌라는 오명을 달았던 팀이, 1년 만에 전반기 후반기 2위까지 올라간 거야. 게다가 최고의 에이스 투수 장명부를 보유하고 있잖아. 83년에 세운 장명부의 '시즌 30승' 기록은, 프로야구 역사 42년 동안 지금도 깨지지 않았어. 이땐 100경기인 시절에 혼자 30승을 기록한 거야. 더 이상 삼미는, 꼴찌만 하는 최약체팀이 아냐. 내년에는 진짜 상위권에 있는 팀이 될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이 조금씩 조금씩 선수들이 단단해졌던 것 같아요. 내년이 기대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즌을 마쳤던 것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 무너진 에이스, 18연패의 늪 84년, 세번째 시즌이 시작됐어. 구속됐던 김진영 감독도 다시 복귀했어. 84년, 삼미의 성적은 어땠을까? 전반기는 6위, 후반도 또 6위. 꼴등을 차지했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에이스 장명부가 무너진 거야. 장명부는 100경기 중 60경기에 나가서, 427과 1/3이닝을 소화했어. 1년 동안 던진 공이 5,886개였어. 요즘 선발 투수가 한 경기에서 던지는 투구 수는 평균 90개, 한 시즌당 약 2,200개 정도야. (장명부가) 자동차 타이어 튜브를 한 뼘 정도 되는 넓이로 해서 허리에 압박을 해서 차고 할 정도로 허리도 안 좋고. 마지막에는 진짜 힘들게 운동을 했어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장명부가 무너지니까, 팀 자체가 무너진 거야. 그렇게 84년도 시즌이 허무하게 지나갔어. 그래도 팬들은 꼴찌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던 삼미를 기억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하지만 삼미는, 뭐에 홀린 것마냥, 경기만 했다 하면 졌어. 연패하는지도 저희는 몰랐었어요. 연패하는지도 모르고 '어어어' 하다 보니까 뭐…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어느새 10연패가 됐고, 그 뒤로도 연패는 계속 이어졌어. 무려 18연패까지. 연패를 끊으려고 노력은 무던히 했는데, 그때는 사실 절망이죠 절망. '올해는 이제 야구 끝이구나' 고참들도, '끝나는구나' 했어요.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트라우마가 온 건지 유니폼을 보는 자체가 두렵기 시작한 거예요. 연패에 들어가니까. 경직되고, 경기장에 나가는 게 두렵기 시작하고. 이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선수단 분위기는 완전히 뭐 최악이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그렇게 질 수 있나? 아무리 못해도 그렇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지옥이었던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정말 지옥 같은 야구를 했던 것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때는 1985년 4월 30일, 인천 도원 야구장. 상대는 MBC청룡이었어. 다행히 2회 말, 삼미 정구선의 솔로 홈런으로 먼저 1점을 냈어. 현재 스코어는 1대0. 경기는 계속 진행되고, 선수들은 이닝이 바뀔 때마다 10년은 흐른 것 같아.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점수차라 불안한 거야. 수비하는 삼미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기도해. '공아, 제발 내 쪽으로 오지 마라' 라고. 선수 입장에서 '만약 나의 실책으로 또 연패를 한다면' 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거야. 이거 실책 하나 하면, 그걸 빌미로 또 질 수 있다… 18연패 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을 거예요. 수비수 입장에서는 '나한테 공 오지 마라'라는 생각도, 지금 와서 얘기하지만, 했던 거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그리고 8회 말, 불안함을 날려버리는 영화 같은 삼미의 공격이 시작돼. 2번 타자 김우근이 안타를 치고 나가. 다음 타석에 이선웅이 들어서자, 감독과 코치진이 사인을 보내느라 바빠져. 기습 번트 사인이 나왔는데, 작전은 성공했어. 1아웃 주자 2루. 다음 타자 금광옥은 볼넷으로 출루했어. 1사 주자 1, 2루가 됐어. 다음 타자 정구선은 안타를 쳤어. 현재 상황, 1아웃 주자 만루야. 이번에 점수를 내면, 연패를 끊을 수 있어. 관중석엔 삼미의 승리를 기원하는 팬들로 가득해. 중압감을 어깨에 지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불꽃 타자, 양승관이야. 무지 설��어요. 억누를 수가 없을 정도로 흥분되더라고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양승관은 이 타석에서, 3타점 3루타를 때렸어. 3루에 딱 도달했을 때는, 영화에서 보면 필름이 좌르륵 돌아가잖아요? 2루 베이스까지 가는데 연패하면서 그냥 그 과정들이 순간적으로 그냥 필름처럼 쫙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뭐 힘든 과정이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그 후 더 이상 실점을 없었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렇게 지옥 같았던 18연패 수렁에서 탈출했어. 선수들은 그제서야 웃었어. '아 이제 끝났다' 이게 아니고, 허탈했어요. 우리는 동굴인 줄 알았는데 터널을 지나갔구나. 동굴에 갇혔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사실. 너무너무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까. 힘들었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드디어 길고 길었던 18연패가 끝났어. 그런데,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지? 바로 다음 날,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소식이 전해져. ▲ 슈퍼맨과의 이별 야구처럼 기구한 슈퍼스타즈 청보식품서 70억 원에 인수 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가 부실한 운영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풍한그룹 청보식품으로 넘어갔다. 슈퍼스타즈가 18연패의 치욕적인 늪에서 겨우 헤어나와 청룡에 1승을 거두던 30일밤, 서울시내 모처에서 야구위원회, 슈퍼스타즈, 풍한 실무자 등 3자회담에서 매도가 확정된 때였다. -당시 신문 보도 中 전혀 저희는 눈치 못 챘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이제 좀 분위기 좋아지려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야? 선수들 잘리고 감독도 잘리고 변화가 있는 거 아니야? 불안했죠. 그날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사실.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18연패를 끊고 모두가 기뻐하던 그 날 밤에, 삼미 김현철 회장은 회사 적자 때문에 구단 운영을 포기하고, 청보식품이라는 기업에 구단을 넘긴 거야. 그것도 시즌 도중에 구단이 사라진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감독도 선수도 그대로 유지되고, 팀 이름만 '청보 핀토스'로 바뀐대. 85년 6월 21일, 인천 홈구장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경기가 열려. 마지막 경기에서, 삼미는 졌어. 그리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대로 사라졌어. 3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삼미 슈퍼스타즈는 최저 승률, 최다 연패, 특정팀 상대 전패 등 지금까지 회자되는 기록들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어. 예상대로 꼴찌를 하고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도 했지만,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뛴 슈퍼맨 구단. 그 슈퍼맨들을 여전히 소중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쁜 추억도 많지만 좋은 추억도 많고 팬들하고 쌓인 그런 추억이 많은 것 같아요. 팬들의 그런 성원이나 이런 거는, 지금도 가끔 문득문득 생각이 나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힘든 과정을 겪고 나니까, 그 사회에 나가서도 많이 도움이 됐어요. 인내하게 되고, 인내하는 걸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아쉬움도 있었지만, 삼미는 인천 팬들한테는 애증의 구단이거든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팀. 삼미가 아무리 연패에 빠져 있어도 인천 구장 내야석은 꽉 차 있다는 거.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거야, 하면서 계속 야구장을 찾았다는 거…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최약체' 꼬리표, 하지만 누구보다 뜨거웠던 '삼미 슈퍼스타즈'…'꼬꼬무' 조명
등록일2024.07.11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프로야구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조명한다. 11일 방송될 '꼬꼬무'는 '영원한 나의 슈퍼맨-운명을 건 세 번의 승부' 편으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레전드 선수들을 직접 만나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운명적이고 역사적인 경기들을 돌아본다. 때는 1982년 3월,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 축제라도 열린 듯 쏟아지는 함성에 금세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이곳은, 바로 서울 동대문 야구장이다. 경기에 푹 빠져있는 관중들 사이로 비장한 표정의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사진학을 전공하는 24세 대학생 이광진 씨는 응원하는 팀을 사진에 담아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었고, 그가 응원하는 팀의 정체는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1982년 3월 27일, 대한민국 최초 프로야구 출범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이 시작됐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첫 데뷔전은 개막식 다음 날인 3월 28일. 상대는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강팀 삼성 라이온즈였다.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경기. 라이온즈의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고, 모두가 라이온즈의 승리를 예상했다. 과연 '최약체' 팀으로 꼽히던 슈퍼스타즈는 어떤 플레이를 했을까. 모두가 슈퍼스타즈의 열세를 예측했던 것과는 다르게, 엎치락뒤치락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다. 슈퍼스타즈는 최강팀인 라이온즈를 끝내 뒤엎고, 프로야구 첫 데뷔 경기에서 5:3으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짜릿했던 첫 승의 기세는 이어지지 않았다. 슈퍼스타즈는 첫 경기에서 첫 승을 거머쥔 뒤, 4월 한 달 동안 2승 9패를 기록했다. 계속되는 하락세를 보이던 슈퍼스타즈는 그해 최소 득점, 최소 안타, 최다 실점, 승률 0.188이라는 치욕적인 기록과 함께 6개 구단 중 6위를 기록하며 '꼴찌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전년도 꼴찌 혜택으로 첫 번째 지명권을 갖게 된 슈퍼스타즈는 거액을 들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거물급 선수를 데려왔다. 그는 바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소속팀 히로시마 도요카프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에이스 투수인 재일 교포 출신의 장명부였다. 1983년 4월, 프로야구 두 번째 시즌이 열렸고, 선발 투수로 나선 장명부가 마운드 위에 올라섰다. 장명부의 강속구와 심리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대 팀 선수들. 슈퍼스타즈는 180도 달라졌다. 전년도 꼴찌에서 순식간에 전반기 1위를 달렸다. 드디어 언더독의 반란이 시작된 걸까?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당시의 이야기를 '꼬꼬무'의 장트리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이 전한다.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에는 배우 신소율, 개그맨 지상렬, 골프 해설위원 이보미가 친구로 나선다. '야구 광팬'으로 유명한 신소율은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방문했다. 슈퍼 '꼬물이'답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등장한 신소율은 슈퍼스타즈의 이야기를 듣고 진짜 속상하다 며 뜨거운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은 지상렬은 등장부터 미친 예능감을 뽐내며 '그날'의 이야기에 입맛을 다셨다. 자타공인 슈퍼스타즈 어린이 회원 출신인 지상렬은, 녹화 내내 어릴 적으로 돌아가 추억 속에서 신난 모습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생생한 슈퍼스타즈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전직 골프선수이자, 이제는 SBS의 슈퍼 해설위원으로 활약할 이보미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등장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슈퍼스타즈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며 어떤 마음으로 매 경기에 임했을지 같은 운동선수 출신으로서 깊은 공감과 감동을 표했다. 창단부터 최약체 팀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작했지만, 매 순간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팀. 짧지만 강렬했기에 누군가에겐 여전히 슈퍼맨으로 기억되는 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그날 이야기는 11일 밤 10시 20분에 방송될 '꼬꼬무'에서 공개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찐팬구역' 인교진 북일고 후배 김태균, 입학 때부터 3학년 체격 떡잎부터 달랐던 이글스 영구결번
등록일2024.04.08
'찐팬구역' 인교진이 천안 북일고 후배인 김태균의 고교 입학 당시 모습에 대해 전한다. ENA&&채널십오야 신규 예능 '찐팬구역'은 '그깟 공놀이'에 인생을 걸고 사는 찐팬들의 처절한 응원기로 팬이 주인공이 되는 최초의 스포츠 예능이다. 첫 시즌은 한화이글스 팬들의 이야기가 담기는데, 한화이글스 찐팬으로 유명한 배우 차태현, 인교진, 페퍼톤스 이장원, 한화이글스 선수 출신 방송인 김태균이 고정 멤버로 함께한다. 또 개그맨 조세호가 '중립구역' MC로 나선다. '찐팬구역'은 '홍김동전'의 박인석 PD와 '대화의 희열'의 강윤정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스튜디오 수파두파와 에그이즈커밍이 공동 제작하고, ENA에서 방송되며, 유튜브 채널십오야에서 동시 공개된다. 8일 '야구 없는 월요일' 저녁 7시에 첫 방송되는 '찐팬구역' 첫 회에는 서울 근교 호프집에서 이글스의 개막전 응원을 펼치는 찐팬 차태현, 김태균, 인교진, 이장원의 모습이 담긴다. 또한 개막전 맞대결 게스트로 LG 트윈스 찐팬 가수 홍경민과 배우 신소율이 출격하고, 아나운서 출신 김환이 이글스 특파원으로 활약한다. 앞서 진행된 녹화에서는 김태균과 인교진이 뜻밖의 인연이 공개돼 멤버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김태균과 인교진은 천안 북일고 선후배 사이인 것. 어깨를 으쓱한 인교진이 태균이는 입학하자마자 4번 타자였다 라며 그런데 체격은 이미 3학년이었다. 1학년인데 라고 말했다. 이에 차태현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라며 떡잎부터 달랐던 '이글스 영구결번' 레전드 김태균의 존재감에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정작 이글스 영구결번 레전드 김태균에게도 흑역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해설'이었다. 이어진 칭찬에 몸 둘 바 몰라하던 김태균은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다 라더니 제가 지난 시즌에도 해설할 때 이글스 해설할 때면 전패였다 라고 충격적인 경기결과를 밝혀 '웃픈' 상황이 펼쳐졌다. 이어 김태균은 괴롭다는 듯이 3번 나갔는데 내가 해설하러 가면 졌다 라고 밝혀 결국 멤버들의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차태현은 승리요정이라며? 라며 김태균의 승리요정 타이틀에 의구심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그런가 하면 개막전 직관을 갔던 신원호PD가 '이글스 찐팬'임을 인증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글스의 우승 가능성에 대해서 신원호 PD는 많은 분들이 비웃지만 올해 이글스는 우승전력 이라고 밝혀 멤버들의 무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과연 신원호PD의 추측처럼 이글스가 꿈에 그리던 우승으로 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찐팬구역'의 제작진은 오늘(8일) 방송되는 '찐팬구역'의 첫 회는 야구를 좋아하는 시청자에게는 동창회 온 것 같은 수다거리를, 야구를 궁금해하던 시청자에게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야구 블랙홀의 입장권을, 야구를 모르던 시청자에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 되어 끊임없는 웃음을 선사하는 현장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라고 전하며 첫 만남에도 야구로 하나 되는데 채 1분이 걸리지 않는 차태현, 김태균, 인교진, 이장원과 홍경민, 신소율, 김환, 조세호 그리고 신원호PD까지 이들의 건강한 에너지를 함께 즐겨 주시기 바란다. 기대해 달라 고 전했다. [사진 제공= ENA&&채널십오야]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찐팬구역' 인교진 북일고 후배 김태균, 입학 때부터 3학년 체격 떡잎부터 달랐던 이글스 영구결번
등록일2024.04.08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찐팬구역' 인교진이 천안 북일고 후배인 김태균의 고교 입학 당시 모습에 대해 전한다. ENA&&채널십오야 신규 예능 '찐팬구역'은 '그깟 공놀이'에 인생을 걸고 사는 찐팬들의 처절한 응원기로 팬이 주인공이 되는 최초의 스포츠 예능이다. 첫 시즌은 한화이글스 팬들의 이야기가 담기는데, 한화이글스 찐팬으로 유명한 배우 차태현, 인교진, 페퍼톤스 이장원, 한화이글스 선수 출신 방송인 김태균이 고정 멤버로 함께한다. 또 개그맨 조세호가 '중립구역' MC로 나선다. '찐팬구역'은 '홍김동전'의 박인석 PD와 '대화의 희열'의 강윤정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스튜디오 수파두파와 에그이즈커밍이 공동 제작하고, ENA에서 방송되며, 유튜브 채널십오야에서 동시 공개된다. 8일 '야구 없는 월요일' 저녁 7시에 첫 방송되는 '찐팬구역' 첫 회에는 서울 근교 호프집에서 이글스의 개막전 응원을 펼치는 찐팬 차태현, 김태균, 인교진, 이장원의 모습이 담긴다. 또한 개막전 맞대결 게스트로 LG 트윈스 찐팬 가수 홍경민과 배우 신소율이 출격하고, 아나운서 출신 김환이 이글스 특파원으로 활약한다. 앞서 진행된 녹화에서는 김태균과 인교진이 뜻밖의 인연이 공개돼 멤버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김태균과 인교진은 천안 북일고 선후배 사이인 것. 어깨를 으쓱한 인교진이 태균이는 입학하자마자 4번 타자였다 라며 그런데 체격은 이미 3학년이었다. 1학년인데 라고 말했다. 이에 차태현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라며 떡잎부터 달랐던 '이글스 영구결번' 레전드 김태균의 존재감에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정작 이글스 영구결번 레전드 김태균에게도 흑역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해설'이었다. 이어진 칭찬에 몸 둘 바 몰라하던 김태균은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다 라더니 제가 지난 시즌에도 해설할 때 이글스 해설할 때면 전패였다 라고 충격적인 경기결과를 밝혀 '웃픈' 상황이 펼쳐졌다. 이어 김태균은 괴롭다는 듯이 3번 나갔는데 내가 해설하러 가면 졌다 라고 밝혀 결국 멤버들의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차태현은 승리요정이라며? 라며 김태균의 승리요정 타이틀에 의구심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그런가 하면 개막전 직관을 갔던 신원호PD가 '이글스 찐팬'임을 인증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글스의 우승 가능성에 대해서 신원호 PD는 많은 분들이 비웃지만 올해 이글스는 우승전력 이라고 밝혀 멤버들의 무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과연 신원호PD의 추측처럼 이글스가 꿈에 그리던 우승으로 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찐팬구역'의 제작진은 오늘(8일) 방송되는 '찐팬구역'의 첫 회는 야구를 좋아하는 시청자에게는 동창회 온 것 같은 수다거리를, 야구를 궁금해하던 시청자에게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야구 블랙홀의 입장권을, 야구를 모르던 시청자에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 되어 끊임없는 웃음을 선사하는 현장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라고 전하며 첫 만남에도 야구로 하나 되는데 채 1분이 걸리지 않는 차태현, 김태균, 인교진, 이장원과 홍경민, 신소율, 김환, 조세호 그리고 신원호PD까지 이들의 건강한 에너지를 함께 즐겨 주시기 바란다. 기대해 달라 고 전했다. [사진 제공= ENA&&채널십오야]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