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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나토, 6월까지 '방위비 GDP 2%' 이행해야 압박
등록일2025.02.21
▲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미국 정부는 20일(현지시간) 미국 주도의 외교안보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하지 않는 회원국에 대해 오는 6월 나토 정상회의 전까지 이를 이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시한을 못 박아 유럽 동맹에 대한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나선 것으로, 한국에 대해서도 머지않아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10년 전, 말 그대로 10년 전 최소한 GDP의 2%를 방위비로 내기로 한 약속을 나토 회원국 중 3분의 1이 이행하고 있지 않다 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미국)는 다른 국내 우선순위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분명히 밝혔고, (다른 회원국들은) 최소한을 충족해야 한다 면서 우리는 6월에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까지 100%(모든 회원국이 GDP의 최소 2%를 방위비로 지출하는 것)가 필요하다 고 요구했습니다. 왈츠 보좌관은 그러면서 그러고 나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로 (방위비로) GDP의 5% 넘게 지출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며 유럽은 파트너로서 자국의 방위를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친구이자 동맹으로서 어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고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미국과 미국 납세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뿐 아니라 유럽의 방위 비용까지 계속 부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 며 우리는 나토 회원국들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이제는 유럽의 동맹국들이 나서야 할 때 라고 강조했습니다. 왈츠 보좌관은 다음 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미국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언급하며 마크롱 대통령과 스타머 총리가 유럽이 주도하는 안보 보장에 관해 대화를 나눴고, 우리는 그것을 환영한다 며 우리는 유럽이 자국의 번영과 안전, 안보를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을 요청해 왔다 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따라서 우리는 유럽의 더 많은 지원을 환영한다 며 더 큰 자리를 원한다면 더 많은 것을 갖고 논의 테이블로 오라 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의 외교안보사령탑인 왈츠 보좌관이 직접 6월 나토정상회의까지로 시한과 목표를 못 박아 유럽 동맹에 방위비 증액을 공개 압박하면서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도 임박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미는 작년 10월 미국 대선 직전에 2026년부터 5년간 적용할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전격 타결했습니다. 2026년 분담금은 2025년 대비 8.3% 오른 1조 5천192억 원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한국을 여러 차례 '부자 나라'로 불러온 트럼프 대통령이 SMA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은 취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에도 5배 인상을 압박해 협상이 장기 표류했습니다. 이번에도 상당한 수준의 인상을 압박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가뜩이나 탄핵정국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한국에 부담이 추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왈츠 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밖에 없다 며 그는 최고의 협상가이며 최고 사령관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도했습니다. 또 푸틴이 부시 대통령 시절 조지아와, 오바마 대통령 시절 우크라이나와 바이든 대통령 시절 다시 이웃 국가(우크라이나)와 일종의 갈등, 침략 또는 문제를 겪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 며 트럼프 대통령이 있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멈출 것 이라고 했습니다. 왈츠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를 독재자라고 했는데, 푸틴도 독재자라고 생각하나', '젤렌스키와 푸틴 중 누가 더 전쟁에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나' 등의 질의엔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젤렌스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여러 가지(multi-fold) 라며 솔직히 키이우에서 나온 일부 수사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모욕은 용납할 수 없다 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젤렌스키는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고 우리가 제안한 기회(광물협정)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며 나는 그(젤렌스키)가 결국 그 지점(협정 체결)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미국이 무기 판매를 중단했다는 우크라이나 측 주장이 사실인가'라는 질의엔 그 과정의 많은 부분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만 말하겠다. 전 세계에서 벌이는 작전을 검토할 때 무기고가 점점 고갈되고 있다 고 답했습니다. 왈츠 보좌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정책차관에 지명된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 및 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에 대한 의회 내 반대가 있다는 지적엔 나는 콜비와 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다 며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고 했습니다. 국방부 정책차관은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미국 측 책임자이지만, 콜비 지명자는 지난해 5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이 자국 방어를 최대한 스스로 책임지고 주한미군은 중국 억제로 초점을 전환해야 하며, 북한의 비핵화도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오겜2'는 정말 우리나라 전통놀이인가?
등록일2025.01.14
▲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전작에 이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번에도 드라마 속 게임들이 외국인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선 전작에도 나온 바 있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드라마 초반부를 장식했고, 드라마 중반엔 '5인 6각' 경기로 딱지치기, 비석 치기, 공기놀이, 팽이치기, 제기차기 등 게임 5개가 한꺼번에 소개됐고, 후반부엔 짝짓기 게임까지 등장했습니다. 3년 전 전작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딱지치기, 달고나 등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공기놀이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기놀이의 영어 표기인 'Gonggi'가 인기 검색어에 올랐고, 소셜미디어에선 공기놀이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드라마 속 게임들이 정말로 우리의 전통 놀이일까요?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한국민속예술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공기는 조선시대 화가 윤덕희의 '공기놀이' 그림이나 헌종 때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등장할 만큼 그 유래가 오래됐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엔 우리나라 아이들이 둥근 돌알을 가지고 노는 놀이가 있어 '공기'라고 한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의 '한국민속대관'에 따르면 오늘날 '공기놀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됐으나 지방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경북에선 '짜게받기', 경남에선 '살구', 전남은 '닷짝걸이', 평안도·황해도에선 '좌돌리기' 등으로 불렸습니다. 해안 지방에서는 검정 차돌을 공깃돌로 사용했고, 내륙 지방에선 적당한 돌이나 깨진 기왓장 같은 것을 둥글게 만들어서 썼다고 합니다. 서양에도 공기놀이와 유사한 '잭스', '너클본'이라는 놀이가 있습니다. '한국민속예술사전'은 공기놀이가 놀잇감을 구하기 쉽고 놀이 방법도 비교적 간단해 오래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행해졌던 놀이로 추정했습니다. 공기놀이는 오징어 게임 시즌2에 등장하면서 세계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었고, 유럽 축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황인범(페예노르트)과 백승호(버밍엄) 등 유명인들이 '공기놀이' 챌린지에 동참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제기차기는 고대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행하던 공차기 놀이인 '축국'(蹴鞠)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이 축국이 조선 초기엔 '뎌기'라고 불렸다가 18세기 이후 '져기', ''Ю?를 거쳐 오늘날의 '제기'가 됐습니다. 처음엔 공을 사용했다가 점차 공이 아닌 건, 건자, 척건자와 같은 제기가 등장했습니다. 이 중 척건자는 무거운 물체에 종이나 털을 엮어 만든 것으로, 공을 쉽게 만들 수 없던 상황에서 아이들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형태의 제기였다라고 '한국세시풍속사전'은 설명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시대에 축국을 즐겼다는 기록이 확인되고, 조선시대엔 아동들의 놀이로 크게 유행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엔 청년들이 내기 제기를 자주 해 급기야 제기가 엽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이 엽전 제기가 오늘날 제기 형태의 '모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지역에서는 한번 차고 땅을 딛고, 또 차고 땅을 딛는 방식의 차기를 '땅강아지', 두 발을 번갈아 차는 것을 '어지자지', 땅을 딛지 않고 계속 차는 것을 '헐랭이'라고 불렀습니다. 팽이치기는 겨울철 얼음판 위에서 하는 대표적인 민속놀이입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시작됐는지 불분명하지만, 통상적으로 중국 당나라 때 성행하던 놀이가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 신라에서 팽이가 유입됐다는 기록이 있어, 팽이치기가 삼국시대에 이미 유행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 숙종 때 편찬된 '역어유해'와 정조 때의 '한청문감'엔 팽이가 '핑이'로 적혀 있는데, 핑이는 어떤 물체가 빙빙 돈다 또는 핑핑 도는 모습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보입니다. 팽이는 보통 박달나무, 향나무, 팽나무와 같이 무겁고 단단한 나무를 원추형으로 뾰족하게 깎아 만듭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엔 뾰족한 끝부분에 못이나 작은 쇠구슬을 박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일정한 거리에 놓인 작은 돌을 쓰러뜨리는 놀이인 비석치기는 '비사치기'가 표준어입니다. 비석치기 외에도 비사잭기, 비석까기, 목자까기, 비새치기, 비사색기, 자새치기, 망깨까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비석치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놀이로 추정되지만 그 기원은 분명치 않습니다. 탐관오리의 공을 기리는 송덕비를 돌이나 발로 차는 데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때 비석은 '돌로 만든 비'라는 의미의 '비석'(碑石)입니다. 하지만 돌을 날려서 치는 놀이라는 뜻의 '비석'(飛石)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한국민속예술사전'의 견해입니다. '한국민속대관'은 인류가 초기 문명 시절부터 즐겼던 투석전에서 비석치기가 유래한 것일 수 있다는 추정을 내놓았습니다. 드라마에선 돌을 손으로 던져 일정한 거리에 세워진 돌을 맞추는 것으로 비석치기를 그리고 있지만 실제 놀이에서 돌을 쓰러뜨리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발로 차서 맞추기, 발등에 얹고 가서 맞추기, 무릎에 끼고 가서 맞추기, 가랑이에 끼고 가서 맞추기, 배 위에 얹고 가서 맞추기, 어깨 위에 얹고 가서 맞추기 등이 있습니다. '한국세시풍속사전'은 비석치기에 과학적 운동 원리가 담겨 있다 며 손끝이나 발끝에서 무릎, 가슴, 어깨, 머리로 비석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신체의 상하좌우 균형이 치밀하게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난도에 따라 익살스러운 동작이 적절히 안배됐기 때문에 유쾌하게 놀이에 빠져들게 된다 고 평가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시즌1에 이어 시즌2에도 등장하며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의 '시그니처' 게임이 됐지만, 고문헌에는 이 놀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국민속예술사전'은 옛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볼 때, 이 놀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 판단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항목이 없습니다. 한국민속학회가 교육부 용역으로 수행한 '초등 교과서 전래놀이의 교육적 적절성 분석 정책연구'(2020)에 따르면 이 놀이는 전통적인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가 변형된 형태로 보입니다. 단, 참가자들이 숨지 않는다는 점에서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와 차이가 있습니다. 이 놀이가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재일동포 3세 홍양자 씨가 쓴 '우리 놀이와 노래를 찾아서'(2000)에 따르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1930년대 일본의 놀이가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로 건너와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에선 술래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말 대신 '오뚝이가 넘어졌다'는 의미의 '다루마상가 고론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라고 외칩니다. 둘 다 열 개 음절의 말입니다. 홍 씨는 이 책에서 일제 강점기에 유행했던 다른 놀이가 다 넘어왔는데 1940년대에 보편적으로 유행한 이 놀이('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만 넘어오지 않았을 리는 없다 고 지적했습니다. '한국민속예술사전'도 홍 씨의 주장이 일견 타당하다 라고 평가하면서도 일본에서 시작됐기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교육부 용역 보고서 '초등 교과서 전래놀이의 교육적 적절성 분석 정책연구'에도 일본 유래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보고서에 첨부된 '연구대상 5건의 놀이노래에 대한 한일 상호 간 연관성'이라는 자문자료에 따르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한국전통음악에서 별로 쓰이지 않는 2박 계통의 리듬과 '솔시b도'의 선율을 사용한 감안하면 일본식 민요선율로 노래가 만들어졌다고 보아도 무난하다 고 평가했습니다. 나아가 일본 와라베우타(わらべうた·전래노래)와 함께 전해져 온 놀이 문화가 당시엔 일본식 그대로를 답습했다가 해방 이후 변형돼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 보고서는 중국의 '하나둘셋, 나무사람', 서구권의 '왓츠 더 타임, 미스터 울프?(What's the time, Mr.Wolf?)', '레드 라이트, 그린 라이트(Red light, Green Light)' 등의 유사 놀이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점을 들며 서구 놀이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거나 직접 한국으로 바로 전해졌을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결국 '오징어 게임2'에 나오는 게임 중 적지 않은 수가 한반도에서 연원하기 보다는 다른 나라로부터 흘러들러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놀이가 전통 놀이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문화는 전파되기 마련이기에 놀이의 고유성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연합뉴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고장…중국 문학의 거장을 낳다 [스프]
등록일2025.01.06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필자가 중국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는 중학생 때 읽은 3권의 책 때문이다. 첫째는 한국인의 애독서 중 하나인 《삼국지(三國演義)》다. 둘째는 《중국의 붉은 별》로, 초판본을 우연히 구해서 읽었다. 셋째가 《중국의 붉은 별》로 인해 중국 현대사에 관심이 생겨 읽은 마오둔(茅盾)의 소설인 《식(蝕) 3부작(1930)》이다. 《식 3부작》은 마오둔이 경험했던 정치 활동을 바탕으로 중국 혁명운동의 그늘을 실감 나게 그렸다. '환멸', '동요', '추구' 등 3편의 중편 소설로 구성됐는데, 소설마다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에 따라 부딪히는 상황이 각기 달라 연작이면서 각 편이 독립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청년 지식인이 혁명에 참여해 내부 모순에 환멸을 느끼고 동요하며, 새로운 인생을 추구하다가 좌절하게 된다. 사실 마오둔의 본명은 선더훙(沈德鴻)으로, 자는 옌빙(雁氷)이다.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국민당 정권이 내린 수배령을 피하고자 필명으로 마오둔을 썼다. 마오둔은 1896년에 저장(浙江)성 퉁샹(桐鄕)시 우전(烏鎭)에서 태어났다. 마오둔의 집은 전형적인 강남 사합원이다. 대지 650㎡에 건평이 450㎡나 된다. 마오둔은 10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하지만 방이 10개 넘는 부유한 집안 환경과 지혜로운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았다. 어머니는 마오둔이 지적 상상력을 키우도록 독려했다. 이런 보살핌 아래 마오둔은 어릴 때부터 고전 소설에 탐닉했다. 그 때문에 마오둔은 장성한 뒤 자주 내 삶에서 가장 큰 스승은 어머니다 라고 말하곤 했다. 1913년 베이징 대학에 입학하면서 마오둔은 고향을 떠났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상하이로 가서 상무인서관에 입사했고 1920년에는 《소설월보》의 편집자로 일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21년에 '인생을 위한 문학'을 주창하는 문학연구회를 조직했다. 또한 같은 해 7월에는 공산당 창당에도 간여했다. 1924년 제1차 국공합작이 성사되자, 출판사를 그만두고 1926년 국민당 선전부에서 일했다. 하지만 이듬해 장제스(蔣介石)가 쿠데타를 일으켜 좌익 소탕에 나서자, 지하로 숨어들어 갔다. 이 시기에 쓴 소설이 《식 3부작》이다. 원래 창작 활동에 들어설 때 마오둔은 깊은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바탕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투신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 현장을 떠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거대한 모순의 운명처럼 여겼다. 이에 모(矛) 위에 풀 초(草)를 올려 발음이 똑같은 띠 모(茅)처럼 만들어 필명을 완성했다. 《식 3부작》 이후 마오둔은 왕성한 글쓰기에 몰입했다. 1928년 《무지개(虹)》를 썼고 1930년에 중국좌익작가연맹을 창립했다. 1931년부터 《깊은 밤(子夜)》을 연재했고 1932년 《임씨네 가게(林家鋪子)》, 1933년 《추수(秋收)》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마오둔 문학의 특징은 어려운 현실에서 생활하는 인간 군상을 묘사한 사실주의다. 청년 지식인부터 농민까지 다양한 주인공이 등장해 당대의 고민과 삶을 그대로 드러냈다. '농촌 3부작'으로 불리는 《봄에 치는 누에(春蠶)》, 《추수》, 《늦겨울(殘冬)》은 중국 농촌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는 마오둔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강남의 농촌마을인 우전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1년에 마오둔은 돌연 소설 창작을 중단했다. 그 뒤에는 극작가와 편집자로 활동했다. 우전 곳곳에는 마오둔의 향취가 남아있다. 본래 우전은 강남 6대 수향(水?) 중 하나이자 비단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강남 6대 수향은 《미션 임파서블 3》에서 마지막 배경 무대로 등장한 시탕(西塘)을 비롯해 퉁리(同里), 저우좡(周莊) 등을 가리킨다. 수향은 대운하 때문에 생겨났다. 운하는 진대부터 조금씩 짓기 시작해서, 남북조시대에는 건설이 상당 부분 진척됐다. 이 시기 남부로 대거 이주한 한족이 강남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곳곳에 운하를 건설했다. 그러다가 수나라 때 양제가 기존 운하를 보수하고 연결해 강남에서 장안에 이르는 대운하를 완성했다. 우전은 대운하의 길목에 있기에, 당대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당대 말기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우전은 관군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때 우(烏) 씨 장군이 나타나 마을을 보호했다. 수년 뒤 도적이 쳐들어왔으나 우 장군이 앞장서 물리치고 전사했다. 주민은 그를 기리어 '우 씨의 마을'이라며 이름 지었다. 현재 우전은 크게 동책(東柵)과 서책(西柵)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책은 '울타리 마을'이라는 뜻이다. 두 마을은 십자 형태를 띤다. 수로가 가운데 흐르고 양옆에 민가가 줄지어 지어져 있다. 수로는 과거 그대로로, 여전히 우전과 다른 마을을 연결하는 교통로 역할을 수행한다. 수로 위에는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돌다리가 놓여 있다. 민가는 명·청대에 지어진 고풍 어린 전통가옥이다. 특히 집 한쪽을 강 위에 나무나 돌로 받침을 박아 놓고 지은 구조로 지었다. 수면에서 30~50cm 높게 떠 있도록 해서, 물 위까지 주거 공간을 넓힌 것이다. 수로의 물 관리가 철저한 덕분이다. 그래서 물 위의 누각(水閣)이라 부른다. 어느 마을이든 수각 옆에는 골목이 있고 다시 민가가 있다. 민가군은 수각과 달리 사합원 구조를 갖추었다. 강남의 사합원은 대문을 중심축으로 하여 전원과 후원으로 나뉜다. 전원 중앙에는 조당(祖堂)과 대청이 있고, 좌우로 서재와 부엌이 있다. 후원에 침실이 있다. 비단의 고장답게 우전은 잠사와 염색 기술이 발달했다. 누에는 우전 외곽에서 친다. 누에가 번데기가 되어 실을 토해 몸을 감싸 누에고치를 만들면 우전으로 가져온다. 우전 골목길을 누비다 보면 누에고치에서 번데기를 꺼내고 손가락으로 명주실을 뽑는 주민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명주실을 나무로 된 직물기로 해서 비단을 짰지만, 지금은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이와 달리 천을 염색하는 방식은 옛날 그대로다. 우전은 대표적인 남인화포(藍印花布)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남인화포는 흰 천에 다양한 꽃무늬 그림을 수놓은 뒤 남초에서 추출한 색소로 만든 염료를 물들인 무명천이다. 수백 년 전부터 우전에서는 이 남인화포를 이용해 옷, 신발, 가방 등 각종 수공예품을 생산했다. 염료 공방의 넓은 마당은 갓 염색한 천을 건조하기 위해 긴 장대 위에 걸어놓아 장관을 이룬다. 우전의 또 다른 명소는 1872년 청대 동치제 때에 문을 연 가오궁성조방(高公生糟坊)이다. 앞은 술을 파는 주점이고, 뒤는 싼바이주(三白酒)의 양조장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