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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X박보검X이현욱, '몽유도원도'로 만난다…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연출 김남길X박보검X이현욱, '몽유도원도'로 만난다…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연출 등록일2025.10.17 배우 김남길과 박보검, 이현욱이 영화 '몽유도원도'로 만난다. '몽유도원도'는 꿈속의 아름답고도 기이한 풍경을 담은 그림 '몽유도원도'가 완성된 후 각기 다른 도원을 꿈꾸게 된 형제 '수양'과 '안평'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보았던 이상향, 도원의 풍경을 화가 '안견'에게 구술해 3일 만에 완성된 그림 '몽유도원도'를 중심으로 드라마틱한 운명을 마주한 조선 왕조의 순간을 담는다. 세종의 아들들 중에서도 가장 친했으나, 서로 다른 꿈을 품게 된 '수양'과 '안평'을 각각 김남길과 박보검이 연기한다. 드라마 '트리거', '열혈사제' 시리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영화 '무뢰한'과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 호쾌한 웃음과 액션, 마음에 잔상을 남기는 묵직한 여운까지, 종횡무진 대표작을 경신하고 있는 김남길은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수양'으로 분한다. '수양'은 그림 '몽유도원도'로 동생 '안평'의 욕망을 읽고자 하면서 점차 잔혹하게 변하는 인물로, 김남길은 '수양'을 통해 서서히 스스로의 야심을 깨달아가는 인물의 변화부터 '안평'을 향한 의심과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내면까지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줄 전망이다. 박보검이 연기할 '안평'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것을 즐기며, 조선을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시-서-화에 능했던 예술가로 조선의 풍류왕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최근작 '굿보이'와 '폭싹 속았수다'를 포함, 출연하는 작품마다 인물의 진심을 또렷하게 전해온 박보검은 꿈에서 본 아름다운 낙원을 세상에 구현하고 싶었던 '안평'을 통해 또 한 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이상주의자인 '안평'의 모습은 물론, 자신과 뜻을 달리 하는 형 '수양'에 맞서며 드러내는 곧고 단단한 인물의 사상과 내면은 박보검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기대케 하며 또 다른 변신에 궁금증을 높인다. 한편 '안평'의 예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예술적 동반자이자 친구로, '몽유도원도'를 그린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안견'은 이현욱이 연기한다. 최근 드라마 '원경'에서 태종 이방원의 욕망과 좌절을 실감 나게 그려내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도적: 칼의 소리'와 '블랙의 신부', '마인' 등 출연작에서 임팩트 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만나왔던 이현욱. 이현욱은 '안견'을 통해 '안평'의 내면까지 이해했던 관찰자이자 기록자이며,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꼿꼿함에 이르기까지 전작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몽유도원도'에 더욱 풍성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여기에 박원상, 최덕문, 류승수, 차순배, 김병철, 김태훈, 박명훈, 김남희 등 이름만으로도 스크린을 꽉 채우는 존재감의 배우들이 조선 왕조의 운명을 둘러싼 인물들을 연기, 치열하고도 역동적으로 전개될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배가시킨다. 또한 '몽유도원도'는 1,218만 관객을 동원한 '택시운전사'를 비롯, '고지전', '의형제', '영화는 영화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작품을 선사한 장훈 감독이 처음 연출하는 사극 영화다. '몽유도원도'는 10월 14일 크랭크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김새론·휘성 등 잇단 비보…스포트라이트 뒤 상처 감춘 스타들 김새론·휘성 등 잇단 비보…스포트라이트 뒤 상처 감춘 스타들 등록일2025.03.11 ▲ 가수 휘성 '안되나요'·'불치병'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가수 휘성이 지난 10일 43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연예계는 잇따른 비보에 침통한 분위기입니다. 스타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선 인기의 부침과 악성 댓글 등으로 심리적으로 취약한 만큼, 이들에 대한 소속사의 세심한 관찰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듭 제기됩니다. 최근 4개월 사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스타들은 배우 송재림(작년 11월), 배우 김새론(올해 2월), 휘성 등 여럿입니다. 이들이 각자 놓였던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20∼40대 한창 활동할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 팬과 대중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디어에 비치는 화려한 삶과 달리 연예인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마주했을 어려움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습니다. 대중 앞에서 늘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평생 안고 살 수밖에 없고,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스타들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평소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한 유명 배우는 사석에서 (영화에서 비치는 모습과 달리) 사람이 많은 행사장에 참석하는 게 어렵다 며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 고 말했습니다. 또한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은 직업의 특성상 어느 계기로 활동이 끊기면 곧바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기도 합니다. 배우 류승수가 지난 2019년 MBC 예능 '라디오스타'에서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고 장난스레 희망 사항을 밝히고 연예인들이 이에 공감한 것은 이들의 특수한 상황을 잘 대변합니다. 김새론은 2022년 음주운전 사고 이후 작품이 끊기면서 상당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해당 사고가 그의 잘못이기는 했지만, 수년째 비방과 악성 댓글이 이어지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됐으리라는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휘성 역시 과거 한때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면증 같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이후 프로포폴 같은 수면 마취제 상습 투약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2018년 아버지의 작고와 이후 지인의 연이은 사망, 자신을 둘러싼 루머 등을 겪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휘성은 생전 인터뷰에서 가수 휘성이 되고선 스트레스 탓인지, 걱정을 끼치는 게 싫어서인지 집안에서 말을 잘 안 하는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분명 좋은 아들은 아닌 것 같다 며 전 성공했다기보다 열등감, 자격지심, 호기심, 모험심 덕에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고 심리적 압박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강력 30년의 한 매니저는 연예인들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 '짜인' 삶을 산다. 매니저가 은행 ATM에서 돈을 찾아 주는 등 개인적인 업무도 챙겨준다 며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적고, 유명해진 만큼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교우 관계도 제한적이다. 심리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공연 전에는 무대를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끝난 뒤 집에 돌아오면 공허함이 밀려온다고들 한다 며 이러한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부적절한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고 덧붙였습니다. 이 때문에 소속사의 세심한 관찰과 그에 따른 맞춤형 심리 지원과 처방 등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아이돌 그룹이 다수 소속된 대형 기획사에서는 이 같은 시스템을 마련하는 추세입니다. 일부 기획사의 경우 회사 내부에 상주 의료진을 두고 적극적인 진료·치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한 유명 기획사 임원은 아이돌 가수는 거의 온종일 소속사 관계자가 함께하는 경우가 많아 우울함을 호소한다든지 감정 컨트롤이 안 되는 등 불안도나 긴장감이 높아졌다고 관찰되면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권한다 며 함께 지내는 관계자가 아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절대다수인 영세 중소 기획사에선 이 같은 시스템을 갖추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스타가 심리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연예인과 예술가는 다른 직업군보다 훨씬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경우가 많고, 그만큼 작은 일에도 심리적인 고충과 스트레스를 겪기 쉽다 며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들에게 마치 고위 공직자와 같은 너무 높은 (도덕적) 잣대를 대는 게 아닌가 싶다. 작은 잘못에도 신상을 털고 몰아가는 각박한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한데, 타인을 이해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습니다.
기재부, 최상목 대행 체제 첫 정기인사…과장급 '역대 최대' 교체 기재부, 최상목 대행 체제 첫 정기인사…과장급 '역대 최대' 교체 등록일2025.02.05 &<과장급 인사&> ▲공급망정책담당관 최지영 ▲공급망대응담당관 김태훈 ▲혁신정책담당관 김의영 ▲규제개혁법무담당관 김창화 ▲인사과장 정형 ▲예산총괄과장 김경국 ▲예산정책과장 박정민 ▲기금운용계획과장 최진광 ▲예산관리과장 김동규 ▲고용예산과장 이혜림 ▲교육예산과장 정원 ▲기후환경예산과장 박환조 ▲총사업비관리과장 이재우 ▲국토교통예산과장 최용호 ▲산업중소벤처예산과장 김정애 고용예산과장 ▲농림해양예산과장 김도영 ▲연구개발예산과장 오지훈 ▲정보통신예산과장 신명석 ▲복지예산과장 박철건 ▲연금보건예산과장 배준형 ▲지역예산과장 김혜영 ▲안전예산과장 임대한 ▲법사예산과장 이복원 ▲행정예산과장 이한철 ▲국방예산과장 강미자 ▲방위사업예산과장 김건민 ▲조세정책과장 김문건 ▲조세특례제도과장 문경호 ▲조세분석과장 조문균 ▲소득세제과장 최진규 ▲법인세제과장 조용래 ▲금융세제과장 윤수현 ▲재산세제과장 이영주 ▲부가가치세제과장 최지훈 ▲국제조세제도과장 김영현 ▲신국제조세규범과장 박은영 ▲관세제도과장 권기중 ▲산업관세과장 이종수 ▲관세협력과장 김의택 ▲자유무역협정관세이행과장 김대연 ▲종합정책과장 김귀범 ▲경제분석과장 조성중 ▲자금시장과장 임홍기 ▲물가정책과장 임혜영 ▲거시정책과장 백누리 ▲정책조정총괄과장 장보현 ▲산업경제과장 정일 ▲신성장정책과장 황경임 ▲서비스경제과장 박언영 ▲지역경제정책과장 최동일 ▲인력정책과장 장주성 ▲노동시장경제과장 민경신 ▲복지경제과장 이진민 ▲연금보건경제과장 이미희 ▲청년정책과장 김지은 ▲미래전략과장 곽상현 ▲국고과장 정동영 ▲국유재산정책과장 김장훈 ▲계약정책과장 강경구 ▲국채과장 이근우 ▲국유재산조정과장 마용재 ▲출자관리과장 박진호 ▲공공조달정책과장 노판열 ▲국유재산협력과장 이상섭 ▲재정정책총괄과장 조규산 ▲재정건전성과장 황희정(女) ▲재정분석과장 류승수 ▲재정제도과장 오현경 ▲재정정책협력과장 김숙진 ▲재정관리총괄과장 이지원 ▲재정성과평가과장 권기정 ▲타당성심사과장 김완수 ▲민간투자정책과장 신대원 ▲회계결산과장 이기훈 ▲재정지출관리과장 정석철 ▲공공정책총괄과장 김수영 ▲공공제도기획과장 오정윤 ▲재무경영과장 이민호 ▲평가분석과장 김준철 ▲인재경영과장 태원창 ▲공공윤리정책과장 이우형 ▲공공혁신기획과장 이철규 ▲경영관리과장 김한준 ▲국제금융과장 김희재 ▲외화자금과장 정여진 ▲외환제도과장 황희정(男) ▲금융협력과장 심승현 ▲대외경제총괄과장 배병관 ▲통상정책과장 곽소희 ▲통상조정과장 배성현 ▲개발금융총괄과장 박정현 ▲국제기구과장 범진완 ▲개발전략과장 서영환 ▲녹색기후기획과장 김도익 ▲복권총괄과장 하승완 ▲기금사업과장 양재영
[꼬꼬무 찐리뷰] 칼에 9번 찔려도, 살인마 끌어안고 놓지 않은 형사…숭고한 희생이 남긴 것 [꼬꼬무 찐리뷰] 칼에 9번 찔려도, 살인마 끌어안고 놓지 않은 형사…숭고한 희생이 남긴 것 등록일2024.08.30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9일 방송된 '인질범의 흉터'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류승수, 뮤지컬 배우 배다해, 그룹 위너 멤버 이승훈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대낮의 침입자 때는 2004년 8월 8일, 서울의 한 빌라야. 출근한 딸을 대신해 집에서 할머니 혼자 어린 손자를 돌보고 있었어. 한 2시쯤 됐나? 안방에 손자를 재운 뒤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막 나오는데, 헉! 할머니는 순간 까무러칠 뻔했어. 화장실 문 앞에 웬 남자가 우두커니 서서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어. 할머니가 너 누구야! 사람 살려! 라고 외치는데, 남자가 할머니의 목에 쓰윽 뭔가를 들이대. 칼이었어. 그것도 아주 길고 날카로운 회칼. 할머니는 지금도 그날의 공포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해. 내가 화장실에 있다가 문을 열고 딱 나왔는데, 화장실 문 앞에 칼을 들고 딱 서 있더라고. 신발을 신고 선글라스를 끼고. 얼마나 놀랐는지, 베란다 가서 막 사람 살리라고. 그때는 너무 나도 당황하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사람 살려'라고 외쳤는데. 사람들이… 여름이니까 지나가지도 않았고. 나를 붙잡아서 칼을 목에 대면서 '소리 지르면 죽인다'고 그러더라고. 그 서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아주… -집에서 괴한을 마주한 할머니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이 돼? 그런데, 이어지는 남자의 말이 더 소름이야. 남자가 선글라스를 쓱 아래로 내리더니 이렇게 말해 할머니... 나 누군지 알지? 그 순간, 할머니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얼어붙었어. 사실 얼마 전에 할머니는 이 남자를 본 적이 있어. 바로 여기에서. 수배 전단지에서 본 바로 그 얼굴. 역대급 현상금이 걸린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할머니의 집에 침입했고, 할머니는 인질이 된 거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부터 이 충격적인 인질극의 전말을 들려줄게. ▲ 로맨티스트 형사 먼저 시간을 8일 전으로 돌려 2004년 8월 1일, 일요일 새벽 6시. 요란한 알람소리에 한 남자가 잠에서 깨. 남자의 이름은 심재호, 나이는 서른둘이야. 일요일이지만 재호 씨는 오늘 출근을 해야 해. 출근 준비를 다 마친 재호 씨가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아이들 방으로 향했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우연이와 첫돌을 3개월 앞둔 딸 유리가 자고 있었거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재호 씨의 소중한 아이들이야. 나란히 잠든 모습이 어찌나 천사 같은지 출근도 잊은 채 아이들을 봤어. 그때, 아이들 곁에서 같이 자고 있던 아내 옥주 씨가 잠에서 깼어. 어? 우연 아빠, 나가게? 재호 씨는 아내에게 더 자라며, 뽀뽀를 쪽! 해줬어. 아직도 신혼 같은 사이좋은 부부야. 연애 4년, 결혼 4년, 그렇게 8년을 함께 했는데도 재호 씨는 아내가 여전히 예쁘대. 완전 사랑꾼이지. 어느 정도인지, 아내 옥주 씨에게 직접 들어볼게. 저한테 용돈을 항상 받았거든요. 그때 당시에. 그거를 따로 자기는 모았대요. 그래서 봉투에 모아서 제 생일 때 되면 꼭 현금을 봉투에 담아 가지고 몰래 그걸 줬어요. 매일 출근할 때 항상 인사가 '나 갔다 올게' 꼭 그러고. 현관 앞에서 한 번 안아주고. 그리고 제가 그냥 편하게 얘기할 때는 말을 놔요. 그런데 바깥에서 저한테 전화를 할 때는 항상 높여요. '저 이제 들어가요' 이렇게. '내가 당신을 존중해야 주변 사람들도 당신을 존중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는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황옥주, 심재호 씨 아내 이 로맨티스트 재호 씨, 직업은 경찰이었어.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서 경호를 담당하던 심 형사는 열심히 진급 공부를 한 끝에 2004년 3월, 마침내 꿈에 그리던 강력반 형사가 돼. 근무지는 서울서부경찰서 강력2팀. 동료 눈에 비친 심 형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체육대회나 족구나 배드민턴 하면 항상 그 자리에 재호 형이 끼어 있었습니다. 족구도 잘하고 배드민턴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같이 대화하고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밖에 없게끔 말도 잘하고. 강력한 카리스마, 또 어떨 때는 부드러운 얼굴로 조언도 많이 해주고. 저희의 롤모델,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의 멘토의 역할을 했죠. -황운영 경위, 심재호 형사 후배 그런데, 그런 말 있지? 불행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온다고. 8월 1일 일요일, 평소처럼 남편이 서에 출근한 바로 그날이야. 옥주 씨가 부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아들 우연이가 아빠 언제 오냐며,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아빠를 찾아. 그러고 보니 벌써 밤 8시야. 늦으면 늦는다 전화라도 할 텐데 오늘따라 연락도 없는 게 좀 이상해. 결국 옥주 씨가 먼저 전화를 걸었어. 전화를 받은 남편은 무슨 일인지 전화를 그냥 다급하게 끊었어. '다시 할게'도 아니고, 그냥 일방적으로 '나 지금 바쁘니까 끊어' 그러고 전화가 끊긴 거예요. 그러고는 영 전화가 안 오더라고요. -황옥주, 심재호 형사 아내 갑자기 출동 나갔을 수도 있으니, 옥주 씨는 일단 기다려 보기로 해. 얼마나 지났을까? 친정아버지한테 전화가 왔어. '이 밤에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아버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TV를 켜봐! 라고 말씀하셔. '너 지금 TV 좀 틀어보라'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TV를 틀었죠. 그랬더니 막 속보가 뜨는 거예요. 밑에 자막이 깔리면서 '서부경찰서 심 모 경사'가 이렇게 막 뜨더라고요. -황옥주, 심재호 형사 아내 옥주 씨는 속보의 자막을 채 끝까지 읽기도 전에 실신하고 말았어. 대체 그날 밤 남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마지막 출동 사건 당일 오후 7시, 경찰서로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와. 퇴근 준비를 마친 심 형사가 막 서를 나서려는데, 갑자기 팀장이 이런 말을 해. 그 얼마 전에 남자친구한테 감금 폭행 당했다는 피해자 있었지? 방금 연락이 왔는데, 오늘 밤에 그놈을 만나기로 했다네? 이틀 전에 한 여성이 112로 신고를 해온 일이 있었어. 남자친구한테 이별을 통보했더니 자신을 모텔에 가둬두고 폭행까지 했다는 거야. 겨우 도망을 나온 피해 여성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사건은 서부경찰서 강력1팀에 배정됐어. 용의자의 정체는 서른다섯의 '이 씨'야. 사실 이 씨는 6년 전에 이미 혼인신고를 마친 유부남이야.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어.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가야 했거든. 죄명은 강간치상죄. 결국 이 씨의 아내는 떠났고, 출소 이후 새 여자친구를 만났어. 근데 이번엔 애인을 감금 폭행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었던 거야. 이 씨는 자신의 연락을 피하는 여자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만나줄 것을 요구했어. 그럼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피해 여성은 고민 끝에 이 씨를 만나기로 했고, 곧바로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어. 이 씨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면 그를 꼭 체포해 달라고. 그런데, 하필이면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강력1팀이 다른 사건으로 전부 잠복에 나가 있는 거야. 현장에 투입할 인력이 없어 팀장이 고민하고 있던 그때, 강력2팀 소속의 심 형사가 자신이 가서 잡아오겠다고 나섰어. 담당 사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 발로 오겠다는 범인을 놓칠 순 없잖아. 그리고 심 형사 외에 강력2팀에서 또 한 명의 형사가 출동을 자처하고 나섰어. 바로 이분이야. 이름은 이재현. 키 187cm에 다부진 체격의 이 순경은 서부서 강력반에 온 지 세 달밖에 안 된 신입 순경이야. 이 순경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어볼게. 우리 재현이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좋아했고 엄마도 너무너무 챙기고. 동네 사람 보면 '인사 잘한다고 소문났다' 우리 재현이가. 인사 잘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자기 누나는 여자라도 그런 자상한 게 좀 별로인데, 얘는 덩치도 크고 남자다우면서도 좀 자상해. 자기 아빠하고 나하고 싸워서 딴 방에 거처하잖아. 그러면 엄마 아빠가 따로 자면 안된다고 하면서 와서 날 번뜩 안아서 자기 아빠 자는데 갖다 눕힌다니까. 그 정도로 자상했다니까. -유진숙, 이재현 순경 어머니 효자 이 순경과 사랑꾼 심 형사. 그렇게 두 사람은 잠복 중인 동료 형사들을 대신해 용의자 이 씨 검거 작전에 긴급 투입돼. 범인과의 약속 시간은 밤 9시. 장소는 서울 마포의 지하 커피숍이야. 두 형사의 계획은, 커피숍 밖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범인 이 씨가 나타나는 순간, 뒤따라가 조용히 수갑을 채우는 거야. 일단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눈치채면 안 되잖아. 게다가 체포 장소가 커피숍이야. 괜히 소란을 피웠다가는 피해자는 물론 손님들도 다칠 수 있어. 그래서 최대한 조용히 검거를 하기로 한거야. 두 형사는 용의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커피숍 입구를 예의주시 했어. 드디어 약속한 9시야. 그때, 두 형사가 몸을 숙여. 드디어 용의자 이 씨가 나타났어. 이 씨는 한참을 두리번대더니 곧이어 지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해. 심 형사와 이 순경도 그를 따라 조용히 커피숍으로 들어갔어. 일요일 밤 커피숍은 예상대로 만석이야. 심 형사가 빠르게 안을 훑어본 뒤에, 용의자 이 씨에게 다가갔어. 그리고는 신분증을 내밀며 미란다 원칙을 고지해. 서부경찰서 강력 2팀 심재호 형사입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바로 그때였어. 이 씨가 갑자기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더니 심 형사의 왼쪽 가슴에 그대로 내리꽂아. 이 씨의 손에 들린 건 칼이야. 손쓸 틈도 없이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어. 곧바로 뒤에 있던 이 순경이 이 씨를 덮쳤어. 우당탕탕. 둘은 격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해. 커피숍 여기저기 비명이 난무하고 아수라장이 됐어. 이 순경은 이 씨의 손에서 칼을 뺏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갑자기 이 순경의 몸이 순식간에 피로 뒤덮여. 하지만 이 순경은 칼을 맞으면서도 용의자의 허리춤을 놓지 않았어. 그리곤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리쳐. 누가 제발 이 사람 좀 같이 좀 잡아 주세요! 라고. 형사 한 사람이 좀 잡아달라고 그랬어요. 순간적으로 그 상황에서도 이걸 잡아야 되나 안 잡아야 되나 이런 생각을 잠시나마 하면서, 한 2미터 안에 그냥 멍하니 서 있었어요. 아마 넋이 빠졌나봐. -커피숍 목격자 다들 겁에 질려 지켜만 볼 뿐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어. 결국 필사적으로 범인을 붙들고 있던 이 순경의 손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어. 얼마 뒤, 심 형사와 가까웠던 후배 황운영 형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아. 외근 나와 있는데 전화가 오더라고요. 재호 형 동기한테. '재호가 다쳐서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있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니까. 응급실 침상이 있는 곳이 아닌 복도 쪽으로 데리고 가더라고요. 첫 번째 있는 흰 천을 걷으면서 '이분이에요?' 물어보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누군지 몰랐어요. 그래서 '아닌데요' 그랬더니, 지나서 바로 그 옆에 있는 침대 흰 천을 이렇게 딱 걷으니까, 재호 형이더라고요. 아무 표정 없이 창백하게 그냥 얼굴이 있고 그냥 누워 있는 거죠. 잠자는 것처럼. -황운영 경위, 심재호 형사 후배 급소인 왼쪽 가슴을 두 차례 찔린 심 형사, 등을 무려 아홉 차례나 찔린 이 순경은 결국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뒀어. 아침에 출근한 남편, 그리고 아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어. 가족들 심정이 어땠을까? 이 비보를 전해 들은 동료 형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동료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형사들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떠난 동료들의 마지막 가는 길만큼은 외롭지 않게 지켜주고 싶었지만, 장례식장조차 갈 수가 없었어. 왜? 범인 이 씨가 아직 잡히지 않았으니까. 단순 폭력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던 이 씨는 이제 두 형사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도주한 살인 용의자가 됐어. 이제 그 이 씨의 얼굴을 보여줄게. 누군지 알아보겠어? 할머니 집에 침입했던 그 남자. 수배전단지에서 봤던 그 살인용의자. 그가 바로 두 형사를 살해한 이 씨였던 거야. 자, 지금부터 살인용의자 이 씨가 어떻게 공포의 인질극을 벌이게 된 건지, 범행 직후의 행적부터 따라가 볼게. ▲ 미치도록 잡고 싶다 먼저 사건이 일어난 곳은 마포의 한 커피숍. 그 때 시각이 밤 9시. 이 씨는 3분 뒤에 커피숍에서 도망쳤어. 그 난투극과 경관 살인사건이 일어난 시간이 불과 3분이었어. 그리곤 정신없이 어딘가로 뛰기 시작해. 그 사람도 피투성이 돼서 택시 타는 것까지… 멀리서 봐서 그건 자세히 못 봤어요. -목격자 이 씨가 택시에 타는 게 목격됐어. 사실, 당시 이씨 의 직업은 택시운전기사였어. 이 씨는 범행 현장에 몰고 온 택시를 커피숍 맞은편에 세워뒀어. 이후 자신의 택시에 올라탄 이 씨는 빠르게 현장을 빠져나갔어. 곧바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따라붙었어. 순찰차의 등장에 마음이 급해진 걸까? 이 씨가 한껏 속도를 올려서 이 도심 속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로 도망치다가, 끼이이익- 갑자기 차를 멈춰 세워. 차가 멈춘 곳은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도로 중 하나인 신촌 로터리야. 그런데 로터리 한복판에서 이 씨가 갑자기 역주행을 하더니 반대편 좁은 골목길로 사정없이 내달리는 거야. 택시기사인 이 씨는 서울 지리에 빠삭했어. 결국 이 씨는 경찰을 따돌리고 유유히 현장을 벗어났어. 하지만 아직 이 씨를 잡을 단서는 있어. 택시 안에 이 씨의 발목을 잡을 뭔가가 있었거든. 바로, 택시 GPS. 지금은 택시 카드단말기에 위치 추적 기능이 포함되어 있지만, 2004년 당시만 해도 운전석 쪽에 이런 위치추적기가 달려 있었대. 경찰은 곧바로 택시의 위치를 추적했어. 그리고, 신호가 잡혔어. 동대문구 용답동의 주택가 골목에서. 그런데 현장으로 향하던 형사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갑자기 신호가 끊겼어. 이 씨가 위치추적기를 빼버린 거야. 택시는 결국 다음 날 아침, 영등포구에서 발견이 돼. 물론 이 씨는 없었어. 택시를 버리고 도주를 한 거야. 빈 택시에는 피 묻은 바지만 남겨져 있었어. 어느덧 도주 3일째. 경찰은 '공개수사' 카드를 꺼내 들어. 경찰은 조금 전 용의자 이**을 전국에 공개 수배했습니다. 용의자 이**은 키 170cm, 몸무게 60kg의 왜소한 몸집에 왼쪽 목 부분에 화상 흉터가 있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경찰은 이 씨의 사진을 확보해 공개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곧바로 이씨의 얼굴이 담긴 3만 여장의 수배전단지가 전국에 뿌려졌어. 효과는 바로 나타났어. 서울은 물론이고 부산 목포 충주 강릉 할 것 없이 전국에서 제보 전화가 빗발쳐. 하루에 무려 70여 통씩 제보가 쏟아졌어. 그런데 그 제보 중에 결정적인 건 없었어. 계속되는 허탕에도 형사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 오히려 독이 더 바짝 오르더래. 서부서는 물론 전 지역 경찰들이 퇴근도 반납하고 밤샘 수사에 매달렸어. 빨리 잡아야 결론이 나고 이제 재호 형한테도 '아 그래도 잡혔구나'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데. 도주가 길어지니까 참 착잡했죠.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황운영 경위, 故 심재호 형사 후배 사건 발생 3일째인 8월 3일 오후 5시.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 하나가 들려와. 경찰관 피살 사건의 용의자 이**의 위치가 경찰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오늘 오후 이**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인터넷에 접속한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드디어 범인의 꼬리가 잡혔어. 이 씨가 자신의 아이디로 인터넷에 접속을 한 거야. IP추적 결과 장소는 성북구의 한 아파트. 곧바로 대규모 경찰 병력이 아파트 주변을 에워쌌어. 한 쪽엔 에어매트가, 그 옆엔 구급차도 준비됐어. 궁지에 몰린 이 씨가 투신할 가능성에 대비한 거야. 그 사이 형사들은 아파트 단지 내 집들에 일일이 초인종을 누르고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 집 안을 살펴. 그렇게 수색한 집만 무려 700여 곳이야. 그런데 이 씨는 없었어. 분명 여기서 접속한 게 맞는데, 형사들은 꼭 귀신에 홀린 기분이야. 그리고 다음 날, 형사들 앞으로 기절초풍할 소식이 전해져. 특공대까지 투입하며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였던 경찰. 은신처 포착의 결정적 단서가 됐던 인터넷 아이디는 알고 보니, 한 초등학생의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이 모 군은 어제 낮 4시 반쯤 수배 전단지에 있는 이 씨의 주민등록번호를 보고 새 아이디를 만들어, 게임을 내려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그때 당시 수배 전단지에는 용의자의 주민번호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었대. 그걸 본 한 초등학생이 엄마 몰래 이 씨의 주민번호로 아이디를 개설한 거야. 게임 하려고... 결국 경찰병력 2백여 명이 투입된 대규모 검거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어. ▲ 유족의 트라우마 어느덧 사건 발생 5일째. 여전히 범인의 행방은 묘연한 가운데, 유가족과 경찰 2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어. 두 형사의 합동 영결식이 열렸거든. (사건이) 지하에서 일어났잖아요. 그 1층 중간까지 올라오다가 쓰러졌나 봐요. 거기까지 올라갔나 봐요, 도와달라고… 근데 그 숨 넘어가는 순간에 얼마나… 머리에 뭐가 스쳐 지나갔을까? 가족들? 나 지금 숨이 넘어가는데… 이제는 끝인데 싶었을 텐데... -황옥주, 故 심재호 형사 아내 심 형사는 당시 목표가 하나 있었어. 우연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경위로 진급하는 것. 무궁화 견장을 어깨에 달고 아들 앞에 누구보다 멋지게 서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그 목표는, 너무 슬프게 이뤄졌어. 순직 경관에게 주어지는 1계급 특진을 받았거든. 임명장. 경사 심재호. 경위에 추서함. 2004년 7월 31일. 이걸 받아 든 아내 옥주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훈장? 그거 뭐 필요한데요. 목숨 내놓고 그거 한 개.. 꽃 한 개 더 단 거잖아요. 전 안 올라가도 돼요. 살아있기만 하면 그게 훨씬… 어차피 그 사람은 없는데.. 그게 다 뭐가 소용 있어요. -황옥주, 故 심재호 형사 아내 이재현 형사도 1계급 특진을 받아 순경에서 경장으로 진급했어. 하지만 어머니에겐 역시나 아무 소용 없는 명예였지. 아들을 위해 요리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어머니는, 그날 이후 더 이상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어. 아니, 갈 수가 없었어. 2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칼을 잡지 못하신대. 그때부터는 내 정신이 아니지 뭐. 안 그렇겠나. 그리고 젊은 사람들만 봐도 내가 못 견디고, 또 경찰 보면 더 하고, 주방에서 음식 하잖아. 칼만 보면 내가 소름이 끼쳐. 그 칼만 보면 지금도 내가 온몸이 오싹해지거든. 자기는 좀 억울할 거야.. 그렇죠? 억울할 거다… 내가 뭐 한다고 공부 시켰는가.. 공부 안 시켰으면, 공부 못했으면 나하고 농사 지을 거 아니야? 농사나 지으면서 여태까지 나하고 살 텐데.... 우리 아들 만나면 안아주고 싶지… -유진숙, 故 이재현 형사 어머니 혹시 '트라우마'라는 말의 어원이 뭔지 알아? 그리스어로 '뚫리다' 라는 뜻 이래. 평생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을 가슴에 안고 사는 기분.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들, 그리고 아빠를 잃은 가족들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져 있어. ▲ 공포의 인질극 가족들이 슬픔에 젖어있는 사이, 형사들은 여전히 이 씨의 행방을 쫓고 있어. 어느덧 도주 8일째, 경찰은 이 씨의 포상금 액수를 더 올려. 탈주범 신창원과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과 같은 액수인 5천만 원으로. 그리고 이날,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돼. 그토록 애타게 찾던 범인 이 씨가 인질범으로 나타난 거야. 다시, 처음 할머니가 인질범 이 씨를 마주친 그 상황으로 돌아가 볼게. 이건 당시 할머니의 집 내부를 그린 거야. 할머니의 집은 빌라 1층에 있어. 오후 2시경, 용의자 이 씨는 작은방 창문을 통해 할머니의 집에 침입해. 맨 처음에 화장실 앞에 서 있던 이 씨가 할머니에게 칼을 들이대며 했던 말 기억나? 할머니, 나 알지? 했던 거. 사실 할머니는 이 씨를 한눈에 알아봤어. 당시 뉴스에서 종일 이 씨에 대한 얘기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목에 칼이 들어온 그 순간, 할머니의 눈에 뭔가가 들어와. 바로 안방에 곤히 잠들어 있는 어린 손자. 할머니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 잘못하면, 어린 손자가 다칠 수 있어.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범인을 자극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자신을 아느냐고 묻는 이 씨의 질문에 할머니는 저는 애기 보느라 뉴스고 뭐고 아예 TV를 못 켜요. 그래서 아무것도 몰라요 라고 답했어. 어린 손자를 핑계 대며 모른다고 딱 잡아뗐어. 범인은 이런 할머니의 거짓말을 믿었을까? 이 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순간 할머니는 보았어. 이 씨의 안심하는 눈빛을. 이제 할머니는 이 씨를 다독이기로 마음을 먹어. 이제 그 사람이, 일주일 동안 산에 숨어서 밥도 못 먹고 물만 마셨다더라고. 그래서 그 사람을 도닥거리기 시작했죠. 그러면 배고프지 않냐고. '배고프다' 그러더라고. 그래 가지고 내가 여름에 먹으려고 육수 내놓은 게 있어서 '국수 삶아줄까' 그랬더니 '국수는 삶아 달라' 하더라고. 국수 몇 숟갈을 먹더니, 앉아서 이제 자기 얘기를 다 하더라고요. -인질이 된 할머니 이 씨는 할머니를 붙잡고 자신이 여자친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경찰에게 흉기를 왜 휘두를 수밖에 없었는지, 한참 동안 자기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해. 그러더니 갑자기 이런 요구를 해. 근데 할머니, 컴퓨터 있어요? 내 기사를 좀 보고 싶은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눈치야. 이 집에 컴퓨터가 있는 장소는, 이씨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로 그 방이야. 할머니는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으로 이 씨를 안내해. 그런데 이때, 할머니의 눈에 또 뭔가가 들어와. 바로, 청소기. 이 청소기 소음을 이용해 아들에게 몰래 전화를 하려는 거야. 이 씨가 할머니네 집에 온 지가 거의 4시간이 다 되어가. 그 사이 국수도 삶아줘, 이야기도 들어줘, 그래서 이 씨는 할머니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거 같아. 할머니의 이 기막힌 청소기 아이디어는 성공했을까? 물었어요 내가. '청소기계를 좀 밀겠다' 그랬더니, '밀어라'고 하더라고. 그 순간에 '어떻게든 내가 신고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질이 된 할머니 이 씨의 허락을 구한 할머니는 곧바로 청소기 전원을 켜. 그리고 거실을 청소하는 척 액션을 취한 뒤, 청소기를 바닥에 슬쩍 내려놔. 물론 전원을 켜 놓은 채로. 그리고 재빨리 안방으로 가서 핸드폰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어. 잠시 후, 오후 6시 40분. 112로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 와. 할머니 아들 : 방화동 **이거든요. 저희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경찰관 죽인 놈 있죠. 그놈이 저희 집에 들어와 있다고 엄마가 몰래 휴대폰으로 전화하셨어요. 자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애기랑 같이 있는데.. 112 센터 : 감금되어 있대요? 할머니 아들 : 아니 그건 엄마가 달래는 놨다고 하더라고요. 112 센터 : 일단 조용히 경찰관 보내서 주위 에워싸고 시작하겠습니다. 소리 크게 안 나게. -112 신고센터 신고 내용 中 사실 아들은 처음에 엄마의 얘길 믿지 않았대. 아니 살인범한테 붙잡힌 상황에서 몰래 전화를 한다?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경찰에 일단 신고 전화를 한 거야. 아들과의 통화에 성공한 할머니는 이번엔 이 씨에게 이런 부탁을 해. 손자가 깨서 목욕을 시키려고 하는데, 해도 될까? 라고. 갑자기 웬 손자 목욕? 아들에게 신고를 부탁했잖아. 곧 경찰이 올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집에서 안전한 곳으로, 범인을 피해 대피할 수 있는 명분을 떠올린 거야. 할머니는 용의자의 허락을 받은 뒤, 손자를 안고 후다닥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어. 그런 뒤 조심스럽게 손잡이의 잠금 버튼을 눌렀어.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어. 경찰이다! 칼 버려! 드디어 경찰이 출동했어. 이 씨는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경찰을 보고는 극도의 흥분 상태로 자신의 배에 칼로 상처를 내기 시작했어. 이 씨는 어떻게 됐을까? 이 씨는 검거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어.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대. 그렇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경관 살해 용의자 이 씨의 8일간의 도주극은 마침내 끝이 났어. 물론 할머니와 손자도 안전하게 구출이 됐지. ▲ 인질범의 흉터 이 씨의 검거 소식에 가장 안도한 이들, 누구였을까? 맞아. 동료 형사들. 당시 서부서 강력반 소속인 이대우 형사는 검거 소식을 듣자마자 이 씨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한 번 울분을 삼켜야 했대. 범인의 어깨에서 이걸 봤거든. 그때 상의를 탈의하고 자기 자해한 걸 치료하고 있었는데. 이 씨의 오른쪽 어깨에 선명하게 이빨자국이 멍들어 있더라고요. 그게 아마 이재현 순경이 칼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걔를 잡기 위해 물어뜯었던 그런 흔적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홉 번인가 찔렸다고 하는데,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잡고 부둥켜안고 이빨로 물어서라도 검거하려고 했던 그런 근성이 이제 오버랩되니까… 조금 울컥울컥 합니다. 그때 그거 보고 정말, 걔는 아프다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그러고 있는데… 참 패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올랐는데. 경찰관이고 또 감정적으로 대하면 안되기 때문에 참았던 기억이 납니다. - 이대우 형사, 당시 서부경찰서 강력 4팀 범인의 어깨에 선명하게 남겨진 흉터. 그건 이 순경의 이빨 자국이었어. 그 흉터를 본 형사들은 지난 8일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토해내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고 해. 그토록 잡고 싶던 범인이 잡혔어. 이제 남은 건 죗값을 치르는 일이겠지? 법원은 경관 두 명을 살해한 이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어. 이씨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를 했어. 그리고 최종 판결은 이렇게 났어. 피고인은 이미 여러 차례 절도나 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정당한 공무를 수행하던 경찰관을 칼로 찔러 잔인하게 살해하였는 바, 중형에 처하여야 할 사정이 있음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출소 이후 택시 기사로 근무하며 나름대로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해 온 점,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관들을 보고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라는 점, 깊이 참회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사형을 선고한 것은 부당하다. 따라서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유가족과 동료 형사들이 이 판결문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든 구절은 이거였어. '우발적 범행'. 이 씨가 범행 직후 뭘 타고 도주했는지 기억나? 자신이 몰고 온 택시. 그날 이씨는 커피숍으로 피해 여성을 만나러 가기 전, 자신의 택시를 맞은편 도로에 세워놨어. 아마도 이 씨는 도주할 계획을 미리 세웠던 것 같아. 게다가 범행을 계획한 증거는 또 있어. 사건 당일 오후 3시경, 택시회사 CCTV에 찍힌 이 씨의 모습이 있어. 화면에서 이 씨의 손을 주목해서 잘 봐. 이 씨가 든 저 가방엔 형사들에게 휘두른 칼이 있었어. 길이가 무려 24센티나 되는 회칼이야. 흉기를 소지했다는 것 자체가, '항상 누군가는 찔릴 수 있다'는 미필적 고의도 간직하고 있는 거거든요. 납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이대우 형사, 당시 서부경찰서 강력 4팀 이 씨의 검거에 도움을 준 할머니는 이 씨의 감형 소식에 해외로 이민을 가야 했어. 얼굴도 알고 어디 사는지도 아니까. 현행법상 아무리 무기수라도 20년의 형을 채우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어. 만에 하나 이 씨가 출소할 가능성 때문에, 도저히 한국에서 살 수가 없었다고 해. ▲ 두 형사의 희생, 남겨진 사람들 그런데 말야. 여기까지 들으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 없었어? 왜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검거 현장에서 범인이 위협을 가할 때 형사들이 총을 꺼내잖아. 하지만 두 형사가 범행 현장에 가져간 건, 삼단봉과 수갑이 전부였어. 그럼 왜 총은 안 가져간 걸까? 2004년 당시, 경찰학교 총기 사용 교육을 어떻게 했나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어. 경찰학교 교수는 총기 사용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3회 이상을 꼭 경고를 해야 합니다. 칼 버려! 칼 버려! 칼 버려! 그 다음에 안될 때 그런 상태에서도 사격을 하면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경찰관한테 칼을 찌를 때 있죠? 찌를 때. 그때 어디를 사격해야 됩니까? 허벅지, 넓적다리, 대퇴부라고 하죠. 거기를 사격해야 됩니다. 만약에 상반신을 맞췄다? 어떻게 됩니까? 비난이 온통 경찰에게 쏟아집니다. -경찰학교 교수 총기 사용에 대해서는 뭐 예전이나 지금이나 신중하고 굉장히 사용하는 걸 꺼려하는 건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총기를 사용하고 난 다음에, 거기에 따른 잘했나? 못했나? 수많은 조사를 거쳐야 되는 그런 시달림? 그래서 오죽하면 총을 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던져서 맞히라고 영화의 대사처럼 사용될 정도였으니까. 총기 사용을 꺼려하는 거죠. - 이대우 형사, 당시 서부경찰서 강력 4팀 실제로 이 사건이 있기 몇 달 전, 한 형사가 과잉 진압으로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대. 흉기를 휘두르던 범인에게 총을 쐈는데 공교롭게도 대퇴부가 아닌 상체에 맞았거든. 치료를 받고 깨어난 용의자는 인권위에 제소를 했고 형사는 결국 제복을 벗어야 했어.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찰들이 총을 들고 출동할 수 있었을까? 두 형사가 떠난 지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어. 그동안 유가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산에 가다가 내가 내려오면 막 새가 따라오면서 우는 거야 깍깍 하면서 우는 거라. 우리 재현이가 새로 좋은데 태어났는가.. 안 그러면 새가 돼서 다니는가.. 뭐라도 짐승이 내 옆에 오면 우리 재현이가 오는가 싶어서요. 내가 되게 못 살아도 아들만 있었으면 행복할 것 같아.. 죽을 먹고 살아도 아들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 -유진숙, 故 이재현 형사 어머니 심 형사의 아내 옥주 씨는 한동안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지 못했어. '고인'의 칸에 남편의 이름을 쓰는 순간 정말 남편을 떠나보내야 할 것 같아서 차마 펜을 들 수가 없었다고 해. 하지만 무엇보다 옥주 씨가 힘들었던 건 이거야. 제가 애들 아빠 생각하지 않게 주말마다 데리고 나갔어요. 어디가 됐든. 온 가족이 있는 팀이 있으면 자리를 피해서 없는 데 가서 애들이랑 놀고.. 거기서 놀고 있으면 우연이가, 저기 아빠랑 아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잖아요. 그럼 여기서 걔를 이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그런 부재를 안 느끼게 하려고 저도 엄청 애를 썼는데, 왜 우린 둘이서 놀아야 되냐고.. 우리도 가족끼리 같이 하면 안되냐고... 그 한 사람 빈자리가 온 가족이 다 파괴가 된 거예요. -황옥주, 故 심재호 형사 아내 4살 우연이, 생후 9개월이 된 유리. 한창 아빠의 품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를 이해시키는 게 가장 아프고 힘든 일이었대. 그럴 때마다 옥주 씨는 순직 경관들이 모인 추모 공간에 혼자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랬어. 그렇게 20년 동안 마음을 꼭꼭 눌러 담아 쓴 페이지가 어느새 책 한 권이야. &<2004년 11월 28일&> 우연 아빠! 오늘 유리 돌잔치를 했어. 우리 유리는 착하게 울지도 않고 사진도 잘 찍더라. 아빠가 함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2008년 1월 4일&> 또 새해가 밝았어. 자기가 떠날 때 우연이가 4살이었는데, 초등학교 간다고 벌써 의젓해진 것 같아. 유리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한글을 읽어. 자기 닮았나 봐. 모든 게 똑소리가 나. &<2012년 6월 26일&> 오늘 우연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대. 아빠 없다고. 하지만 자기는 슬프지 않았대. 훌륭한 일 하시다가 하늘나라 가셨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더라. 이제 함께한 시간보다 헤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아졌지만, 가족들의 그리움은 세월이 흐를수록 짙어만 갔어. 그럼, 범인 이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씨는 몇 년 전, 자신의 사건을 다룬 한 기자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어. 이건 이 씨가 교도소에서 보낸 편지의 일부를 발췌한 거야. 기자님,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되새기게 하는 건 매우 잔인한 일입니다. 물론 제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고, 죗값이지만 순간의 기억을 되살려 저와 가족이 받는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죠. 이런 제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 주시고 앞으로 기사 쓰실 때 기사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저는 속죄하고 회개하며 정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 씨가 기자에게 보낸 편지 中 유가족들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씨는 지금까지도 유가족들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어. '꼬꼬무'가 이번에 이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다 안타깝게 순직한 두 형사를 보며 경찰의 꿈을 키우게 된 한 아이를 만날 수 있었어. 우리가 아는 아이야. 안녕하세요. 저는 경찰을 꿈꾸는 심재호 경위의 아들 심우연이라고 합니다. 경찰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4살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오고 있고 엄마는 매일같이 울고. 아 우리 아빠가 돌아가신 거구나… 이렇게 인지하고 있었다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제가 혼자 조사를 하고. 범인이 왜 그랬는가, 왜 그런 짓을 했는가에 대한 심리를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들이 더 커져 가지고… 경찰이 더더욱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심우연, 故 심재호 형사 아들 4살 우연이는 아빠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경찰행정학과에 진학해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리는 중이야. 우연이의 최종 꿈은, 아버지와 같은 강력반 형사가 되는 거래. '꼬꼬무'가 우연이에게 경찰 임명장을 받는 그날,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물었어. 나 아빠 없이도 잘 컸다… 엄마도 많이 힘들었을 거고, 나도 동생도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 되게 자랑스럽게 크지 않았어? 하고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어쩔 때 한 번씩 아버지가 꿈에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럼 그때, 매번 아버지 말씀이 없으신데.... 제가 얘기하죠. 아버지 보고. '내가 꼭 아빠 넘는 경찰이 되겠다' '사회에 이바지하겠다'… 그러면 아버지는 항상 흐뭇하게 웃고 가세요. 경찰이 그렇게 순직을 하면, 그 가족들이 힘든 그런 고통… 더 이상 만들지 않도록 많이 노력하겠다, 그거 꼭 계속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하고 얘기할 것 같아요.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얘기할 것 같고… -심우연, 故 심재호 형사 아들 이번에 '꼬꼬무'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이 20년 전 아픈 상처를 다시 꺼낸 이유는, 단 하나야. 모두가 알지만 또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찰의 희생과 헌신. 오늘을 계기로 다시 한번 되새겨 줬으면 하는 마음에 나오셨다고 해. 이 사건을 계기로 바뀐 것들이 있어. 테이저건이 도입됐고, 갑옷처럼 무거웠던 방검복도 한결 가벼운 재질의 방검조끼로 바뀌었대. 두 형사의 숭고한 희생이, 오늘날 많은 걸 변화시킨 거지. 서울경찰청 앞에는 순직경찰관들의 추모 공간인 '경찰기념공원'이 있어. 1945년 광복 이후부터 나라를 위해 순직한 경찰관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데, 거기엔 1만 3700명의 이름이 적혀있어. 수많은 경찰관들이 범인 검거 현장에서, 또 교통정리를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대. 그리고 이곳엔 아직 300명의 순직경찰관들의 이름을 새길 수 있는 빈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고 해. 부디 이 빈자리가 영원히 채워지지 않기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나 누군지 알지? 집에 회칼 들고 들어온 살인 용의자…'꼬꼬무' 조명  나 누군지 알지?  집에 회칼 들고 들어온 살인 용의자…'꼬꼬무' 조명 등록일2024.08.29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두 형사를 무참히 살해한 뒤 다시 인질범으로 나타난 살인 용의자의 마지막 도주를 이야기한다. 29일 방송될 '꼬꼬무'는 '인질범의 흉터' 편으로, 지난 2004년 일어난 사건을 조명한다. 때는 무더위가 한창인 2004년 8월 8일. 서울의 한 빌라에 할머니가 혼자 어린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오후 2시경, 손자가 낮잠에 든 사이 화장실에 다녀온 할머니는 꿈에서조차 상상해 본 적 없는 공포의 순간을 마주했다. 화장실 문 앞에 정체불명의 낯선 남자가 할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 비명을 지르는 할머니를 향해, 남자는 곧바로 커다란 회칼을 들이밀며 할머니, 나 누군지 알지? 라는 말을 건넸다.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할머니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남자의 정체는 두 명을 칼로 잔인하게 찔러 살해한 살인 용의자 이 씨로, 며칠 전 우연히 할머니가 본 수배 전단지 속 그 얼굴이었던 것이다.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할머니는 숨이 멎을 듯한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옆 방에 손자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든 할머니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침착하게 모면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질범 이 씨의 사건은 8일 전, 한 커피숍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이 씨는 여자친구에게 폭행을 행사한 죄목으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여자친구의 신고를 받고 이 씨 검거를 위해 출동한 형사는 두 명이었다. 서울 서부서의 강력반 소속 형사인 심재호 경사와 이재현 순경이었다. 두 사람은 여자친구가 이 씨를 만나기로 했다는 신촌역 인근의 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심형사는 현장에 나타난 이 씨를 향해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그때였다. 이 씨가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 들더니 심형사와 이순경을 향해 느닷없이 칼을 휘둘렀다. 칼에 맞은 두 형사는 필사적으로 이 씨의 다리를 붙잡았지만 용의자 역시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급소인 왼쪽 가슴을 두 차례 찔린 심형사와 무려 아홉 차례나 등을 찔린 이순경은 결국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 심재호 형사는 어린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그날 이후 심형사의 아내 황옥주 씨는 아빠를 찾는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황옥주 씨는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순직 경찰관의 추모공간인 추모게시판을 찾아 글을 남기고 있다. 꾹꾹 눌러쓴 그리운 마음은 어느새 두꺼운 책 한 권이 됐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이재현 순경의 어머니 역시, 여전히 그날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어머니는 칼에 찔려 허망하게 떠난 아들 생각에 지금도 주방에서 칼을 잡지 못하고 있다. 두 형사를 무참히 살해하고 8일 만에 인질범으로 나타난 이 씨. 과연 살인 용의자를 마주한 할머니는 악몽 같은 그날 무사히 손자를 지킬 수 있었을지, '장트리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이 이야기한다. 이번 이야기에는 배우 류승수, 뮤지컬 배우 배다해, 그룹 위너 멤버 이승훈이 이야기 친구로 함께 한다. 류승수는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두 번째 방문했다. 류승수는 어린 두 자녀를 남기고 떠난 심형사의 이야기에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배다해는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찾아왔다. 남편을 잃고 홀로 남겨진 아내의 이야기와 남겨진 유가족들이 겪을 상처에 배다해는 폭풍 공감을 이어가며 눈물을 쏟아냈다. 이승훈은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등장해 남다른 추리력을 선보이며 그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로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를 울린 '꼬꼬무-인질범의 흉터' 편은 29일 목요일 밤 10시 20분에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스브스夜] '동상이몽2' 찰스♥ 한고운, 무엇이든 모으는 찰스에 마누라도 모으지 그래? 버럭 [스브스夜] '동상이몽2' 찰스♥ 한고운, 무엇이든 모으는 찰스에  마누라도 모으지 그래?  버럭 등록일2024.01.16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찰스가 제주도 집과 자신의 차량을 공개했다. 15일 방송된 SBS '동상이몽 시즌2-너는 내 운명'(이하 '동상이몽2')에서는 찰스와 한고운의 제주도 생활이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 찰스는 오랜만에 아내와 아들이 살고 있는 제주도로 향했다. 2층집 제주도 하우스는 찰스의 옥탑방에 비하면 파라다이스 그 자체. 집 옆으로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숲인 곶자왈이 있고, 깔끔하고 채광이 잘 되는 집은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또한 찰스는 류승수와 주민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집 곳곳에는 찰스의 취향도 잘 묻어 있었다. 찰스의 방에는 서울집 보다 훨씬 더 많은 옷들이 가득가득했고 아들 방 한편에는 찰스가 모아둔 피규어와 미개봉 굿즈로 가득했다. 또한 그 옆에는 펜싱 선수로 활약 중인 아들의 상장이 줄줄이 진열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오토바이를 몰고 집에 도착한 찰스. 이를 본 한고운은 펄쩍 뛰었다. 사실 찰스는 제주도에서 사용할 바이크 구매를 아내에게 허락받고자 했던 것. 하지만 그는 샀냐는 아내의 질문에 렌트야. 빌린 거야 라며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이후 아내에게 허락을 얻기 위해 집안일을 하며 생색을 냈다. 그러던 중 한고운은 찰스가 시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사람들이 그거 담배라잖아 라며 끊으라고 했다. 이에 찰스는 이거 끊으면 나 오토바이 사줄 거야? 라고 물었고, 한고운은 대답도 않고 창문을 닫아 버렸다. 찰스는 집안일을 계속하며 한고운에게 오토바이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리고 한고운은 그의 애원을 계속 외면했다. 급기야 찰스는 오토바이의 순기능 어필했다. 그러자 한고운은 왜 위험 부담을 안고 힐링을 할까? 오빠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는 즉시 가족들은 걱정을 시작한다 라며 오토바이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를 밝혔다. 또한 한고운은 지안이 낳고 우리의 목숨도 소중해졌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팔았잖냐. 그렇게 끝난 거다. 그런데 오빠가 10년 후에 졸라서 오토바이를 샀고 그렇게 이미 많은 돈을 썼다 라며 이미 가지고 있는 오토바이를 왜 또 사느냐고 물었다. 제주도에서 탈 것이 필요하다는 찰스에게 한고운은 욕심이 많네 타고 다니는 차가 4대 아니냐? 라고 물었다. 이에 방송에서는 찰스의 애마들이 공개됐다. 찰스는 업무차와 패밀리카부터 시작해서 차량이 무려 5대에 오토바이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것. 이에 패널들은 양심이 없네. 저렇게 많은데 또 사려고 하는 거냐? 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찰스는 자신이 가진 재산이 없으니 나중에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산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패널들의 질책은 계속되었고, 이에 찰스는 이럴 거면 십시일반 보태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고운은 무엇이든 모으는 찰스에 한숨을 쉬며 그럴 거면 마누라도 모으지 그래? 라고 말해 찰스를 할 말 없게 만들었다. 이어 한고운은 오빠는 돈 관리를 못 해. 이렇게 뜻대로 하면 지안이 학원도 못 보낸다. 오빠가 열심히 한 거 아는데 그걸 내가 잘 모았다. 그래서 지금 우리 노후 자금이랑 지안이를 위해 돈을 잘 모으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또 사겠다고 하면 어떡하냐 라고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에 찰스는 싼 거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한고운은 진심을 담아서 얘기했는데 아직도 못 알아듣겠어? 오빠는 할 말만 하지? 내 말 안 듣고 라며 화를 냈다. 이에 찰스는 갑자기 애교를 부리며 아내의 어깨를 주물렀고, 그렇게 한고운은 또 사르르 녹아 눈길을 끌었다. 찰스는 4형제 중 막내이다 보니 늘 내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 것에 대한 집착이 크다. 그래서 모으는 것에 집착하는 것 같다 라고 자신의 행동을 해명했다. 이에 패널들은 아내에게 오토바이 구매를 허락받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찰스는 이미 날아갔다. 그런데 어차피 저는 포기하지 않는다. 매물은 계속 생기니까 라고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배우 이선균 비보에 연예계도 충격…행사 줄줄이 취소 배우 이선균 비보에 연예계도 충격…행사 줄줄이 취소 등록일2023.12.28 배우 이선균 씨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연예계도 충격에 빠졌습니다. 주요 행사들이 연달아 취소됐고, 외신도 소식을 빠르게 전했습니다. 어제(27일) 박민영 씨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의 제작발표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이선균 씨의 소식에 급히 다음 달로 미뤘습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준사 역할로 출연한 김성규 씨의 언론 인터뷰도 취소됐고요, 오늘로 예정됐던 '서울의 봄' 무대인사도 취소됐습니다. 배우 류승수, 수현, 방송인 장성규, 작사가 김이나 씨 등 여러 연예인들은 SNS를 통해 이선균 씨를 추모했습니다. 외신들은 이선균 씨에 대해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양한 작품에서 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주목받았다고 덧붙였는데요. 영국 BBC는 이선균 씨의 마약 의혹 조사에 대중의 관심이 뜨거웠고, 그 과정에서 이 씨의 명예가 크게 실추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꼬꼬무 찐리뷰] 불이야 소리에 뛰쳐나갔더니 칼 든 살인마가…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꼬꼬무 찐리뷰]  불이야  소리에 뛰쳐나갔더니 칼 든 살인마가…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등록일2023.10.20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9일 방송된 '옆 방 살인마-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류승수, 그룹 여자친구 출신 예린, 가수 이석훈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착한 딸의 죽음 때는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오후. 맑던 하늘이 잔뜩 흐려지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나이 마흔아홉의 서병호 씨는 횟집 사장님이야. 이 횟집은 마포에 있는데 소문난 맛집이야. 초저녁인데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여. 그때 오랜 단골손님이 들어와서, 그 뉴스 봤냐고 물었어. 글쎄, 아침 댓바람부터 어떤 미친놈이 강남에서 사람들 찔러 죽이고 난리가 났대요. 회 써느라 바쁜 병호 씨는 또 그런 사건이 터졌냐며, 그런 놈들은 잡아서 똑같이 해줘야 한다고 대꾸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리고 저녁 7시쯤 됐을까. 한창 바쁜 병호 씨한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어. 당시 상황을, 병호 씨한테 직접 들어볼게. 강남 경찰서라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서진이 아빠입니까?' 물어서 그렇습니다 그랬더니, 뭔 일이 있었다는 말도 않고, 순천향대 병원으로 가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왜 순천향대 병원을 가면 되냐' 그랬더니, '순천향대 병원을 가면 안다'고 하더라고요. 순천향대 병원 입구에 딱 가니까, '이리로 오세요' 그래서 갔더니 서랍을 딱 끌어내니까 딸내미가 싸늘히 죽어있더라고요. 그걸 보는 순간에 내가 5분, 6분 정도 기절을 했어요. -서병호, 당시 횟집 사장 병호 씨의 막내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된 거야. 아까 단골손님이 말한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어. 사인은 다발성 자상에 의한 과다출혈. 칼에 찔린 상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야. 이름은 서진, 나이는 21세. 산둥대 국제무역학과 2학년이야. 중국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4개월 전 휴학계를 내고 한국에 와 있었어. 도대체 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빠 병호 씨는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강남 경찰서로 향했어. 그리고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듣게 돼. 오늘 아침에, 서진 씨가 살고 있던 논현동 고시원에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칼로 사람들을 해쳤고, 그 피해자들 중에 진이가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아빠 병호 씨는 그 말을 듣고 이해가 안 됐어. 우리 딸이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아빠는 진이가 고모 집에서 지낸다고 알고 있었거든. 고시원은 처음 듣는 얘기야. 사실 이 부녀 사이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어. 병호 씨는 홀로 진이와 진이 오빠를 키웠어. 진이가 8살, 진이 오빠가 11살 때 아내와 헤어졌거든. 횟집을 운영하면서 남매의 뒷바라지를 해왔던 거지. 근데 아빠 홀로 두 아이를 키운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야. 병호 씨는 하루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느낀 날이 없었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가 없어서 매일 아이들에게 미안했어. 하지만 막내딸 진이는 오히려 그런 아빠를 위로했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온갖 집안일을 돕고, 심지어 아빠 옷을 매일 다려놓곤 했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다리미질해서 와이셔츠 다려놓고. 엄마가 없을수록 아빠가 옷을 깔끔하게 입어야 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고요. 그렇게 잘했기 때문에 딸내미한테 더 애착이 가죠. 일을 하다가 밥을 못 먹으면, 자기가 먼저 챙겨서 '아빠 같이 식사합시다' 할 정도로 엄마 역할을 했어요. 자기 자식 안 착하다는 사람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 딸내미 같은 경우는 정말 착했어요. -서병호, 서진의 아빠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어. 다행히 횟집이 잘 돼서 축구 유망주였던 아들을 브라질로 유학을 보낼 수 있었어. 딸 진이도 일찌감치 중국으로 유학을 보냈어. 진이는 중국에서 잘 적응했고, 우수한 학교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교에 단번에 합격했어.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안 좋은 일이 생겨. 아빠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게 된 거야. 다행히 아빠를 대신해 오빠가 학비를 보태줬어. 오빠가 프로 축구선수가 됐거든. 오빠도 참 대단하지. 그런데 얼마 후, 오빠한테도 안 좋은 일이 생겨. 경기 중 당한 부상으로 재계약에 실패한 거야. 그런데도 오빠는 동생한테, 학비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어. 하지만 진이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바로 휴학계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어. 자신의 힘으로 학비를 마련하려 한 거야. 그렇게 시흥에 있는 고모 집에서 지내면서,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알바를 시작해.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무려 13시간을 매일 일했대. 아직 어린 나이인데, 참 대견하지. 그런데 이 모든 게 아빠한텐 비밀이었어. 한국에 그냥 잠시 쉬러 왔다고 거짓말한 거야. 아빠가 항상 넌 공부만 하면 돼. 학비 걱정은 하지 말고. 오빠랑 아빠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라고 했거든. 그런 아빠한테 학비를 벌려고 알바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어. 절대 허락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까 문제가 하나 생겨. 시흥 고모 집에서 강남까지 왔다 갔다 하려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 그래서 진이는 강남 논현동 고시원에 들어갔어. 그리고 걱정쟁이 아빠와 오빠한텐 비밀로 했어. 허락 안 했죠. 아르바이트하는 것도 허락 안 했어요. 자기 고모한테만 '나 금방 가서 며칠만 일하고 온다'고 하고 갔대요. 그러니까 고모도 '너 그냥 와라'라고 했는데, 그렇게 돼버렸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도 거기서 돈벌이가 조금 되니까 벌어 갖고 보태서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어린 마음에… -서병호, 서진 아버지 고시원에 들어가고 한 달 후, 진이는 다이어리에 이런 글을 썼어. 아빠한테 잠깐 다녀온 날. 미안… 아빠 ㅠ 짧은 글이지만, 아빠한테 말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부모에게 걱정거리가 되기 싫은 딸의 마음. 그 모든 게 느껴져. 그리고 이 날로부터 3개월 뒤, 진이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 거야. 진이가 지내던 그 고시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누가, 왜, 그곳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른 걸까. ▲ 고시원 사람들 그 문제의 고시원은, 논현동의 D고시원이야. 지하철 논현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논현동 먹자골목'이 나오지. 그 한가운데 5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건물 3, 4층에 고시원이 있어. 혹시 고시원에 들어가 봤어? 공용공간을 빼면, 방 하나당 크기가 한 평이 조금 넘어. 3층이 90평 정도 되는데, 여기에 방이 50개가 있었어. 4층에 있는 방까지 합하면 총 85개야. 강남에서 가장 작은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래도 입지가 좋고 보증금도 없어. 월 20만 원 중반이면,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생기는 거야. 목돈 없는 서민들에겐 이만한 곳이 없지. 그러다 보니 이 고시원의 입주민은 무려 70여 명이야. 그런데 고시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논현동 근처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야. 그리고 그들 중에 희대의 살인마도 있었던 거야. 그 고시원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알려줄게. 우선 3층에 살고 있는 49세 김선자 씨. 선자 씨는 중국 동포야. 한국으로 시집온 딸의 초청으로 2년 전에 한국에 들어왔어.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있었거든. 선자 씨의 아들은 어릴 적에 입은 화상으로 걷는 게 불편해.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했던 선자 씨는, 아들 다리를 고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자마자 식당에서 일을 해 왔어. 선자 씨는 돈 쓰는 걸 제일 무서워하는 자린고비야. 식당에서 밥 한 공기 남은 거 싸와서, 그걸 두 끼에 걸쳐 나눠 먹었어. 전화비 아낀다고, 그리운 아들과도 2주에 한 번만 통화했대. 하루라도 빨리 아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렇게 돈을 아끼고 아꼈어. 선자 씨와 같이 3층에 사는 29세 마준기 씨. 스무 살부터 독립해 쭉 고시원 생활을 했어. 배달, 대리운전, 안 해본 일이 없었어. 최근에 꿈이 하나 생겼어.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는 거. 틈틈이 공부도 할 겸, 낮에는 서점에서 알바를 하고, 밤에는 고시원에서 취업 준비를 하며 지냈어. 고시원 생활에 익숙한 건, 31세 정상진 씨도 마찬가지야. 여기 온 지 5년이 넘었어. 논현동 먹자골목에서 상진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고깃집에서 불판도 갈고, 서빙도 하고, 주차관리도 하고. 군 제대 후 쭉 먹자골목에서만 일했거든. 이런 상진 씨한테는 '종달새'라는 별명이 있었어. 입이 한 번 열렸다 하면 말이 끝나지 않는 '투머치 토커'였대. 종달새 상진 씨와 준기 씨는 서로 잘 아는 사이야. 이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 사이, 고시생이 한 명 있긴 있었어. 4층에 사는 29세 이지섭 씨야. 준기 씨, 상진 씨랑 비슷한 또래야. 4층은 3층보다 방의 개수가 적어서, 비교적 조용해. 지섭 씨는 밤낮없이 고시 공부 중이야. 그리고 4층에는 우리가 아는 사람도 살고 있어. 21세 서진 씨. 근처 음식점에서 새벽까지 일하고 방에 와서는 그대로 뻗어 점심때까지 자. 아빠 몰래 고시원에 들어온 지 백일이 좀 넘었어. 마지막으로, 서진 씨 방 근처에 49세 최정임 씨가 살아. 서진 씨와 비슷한 나이의 두 아들을 둔 엄마인데, 몇 년 전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는 집을 나왔어. 넉넉지 않은 형편에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거야.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 아닌 이웃으로 지내고 있었어. 이 중에 누가 범인인 거 같아? 참혹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 타인은 지옥이다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아침 8시. 고시원 안은 고요해. 대부분 새벽에 귀가하는 사람들이니까, 한창 자고 있는 시간이거든. 그중 중국동포 선자 씨는 아침부터 일어나 벼룩신문을 보며 더 괜찮은 일자리가 있나 찾고 있었어. 그런데 어디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그리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거뭇한 연기가 들어와. 선자 씨는 서둘러 복도로 나갔어. 그런데 다른 방 매트리스가 활활 타고 있는 거야. 불이야! 불이야! 를 외친 선자 씨. 그리고 그 순간, 복도 끝에서 검은 형체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범상치가 않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옷차림. 누군지 절대 알 수 없어. 머리에 랜턴을 달고, 마스크에 물안경까지 쓰고 있어. 허리엔 가스총도 찼어.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건, 길이 50cm의 회칼이야. 또 양쪽 바지 안 쪽에는 과도를 하나씩 더 찼어. 이 사람이 바로, 오늘 사건의 범인이야. 이런 복장을 한 사람이 뚜벅뚜벅 선자 씨를 향해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흉기로 가차 없이 공격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어. 그리고 도망가는 선자 씨를 쫓으며, 수십 차례나 더 공격했어. 결국 선자 씨는 아들의 다리를 고쳐주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끔찍한 칼부림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됐어.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해. 이 고시원에서 외부와 통하는 출입문은 하나인데, 거길 향하는 복도는 겨우 한 사람 지나다닐 정도로 좁아. 그런데 바로 여기에, 칼을 든 범인이 지키고 서 있는 거야. 복도 상황을 보고 깜짝 놀라서 다시 방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선자 씨처럼 연기를 피해 정신없이 나오다가 범인의 칼에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어. 지금 고시원은 완전 아비규환이야. 복도엔 매캐한 연기가 차오르고, 바닥엔 피가 흥건해. 그때 누군가 방 밖으로 나와 소화기를 집었어. 취준생 마준기 씨야. 소화기 안전핀을 뽑으려고 그러는데 뽑히지 않더라고요. 억지로 뽑았어요. 뽑은 다음에 소화기 호스를 잡고 딱 들어가려고 그러는데 갑자기 칼이 쑥 들어오더라고요. 얼굴 쪽으로 날아오니까 내가 친 거예요. 잡지는 못하니까요. 쳐내니까 나중에는 이 사람이 막 휘두르더라고요. 그냥 죽는구나. 아 이제 죽는구나. 가족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거밖에 안 들더라고요. -마준기(가명), 취업준비생 복부만 세 번을 찔린 준기 씨는 필사적으로 상처부위를 부여잡았어.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데, 범인이 다시 칼을 들어 올려. 그 순간, 누군가 또 복도로 뛰쳐나왔어. 범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쪽으로 향해. 준기 씨는 온 힘을 다해 총무실로 도망쳐. 황급히 문을 잠그려는데, 문고리가 고장 나서 안 잠겨. 밖에서 밀면 열릴 수도 있어. 있는 힘을 다해 온몸으로 문을 막았어. 바로 그때, 고시원 전체에 화재 경보가 울려. 지금 연기는 3층에만 퍼졌어. 4층에선 아직 불이 났는지 몰라. 그런데 화재경보가 울렸으니, 막 뛰쳐나왔을 거 아냐. 그런데 출입문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에, 범인이 있어. 평소엔 사람들을 살리는 화재경보음이, 이날은 죽음을 부르는 사이렌이 된 거야. 그때부터 이 살인마가 뚜벅뚜벅 4층으로 올라가. 마치,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경보음을 듣고 뛰쳐나온 4층 사람들 중 가장 먼저 범인과 마주친 건,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정임 씨야. 범인은 정임 씨의 가슴과 배를 수차례 공격했어.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아. 병호 씨의 딸, 서진이야. 범인은 이제 진이를 공격하기 시작해. 저항 한번 못하고 꼼짝없이 당할 위기야. 그런데 그때, 진이를 구하려는 듯, 누군가 범인을 잡고 늘어져. 범인과 맞선 사람, 바로 정임 씨야. 이미 몇 차례나 칼에 찔렸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진이를 구하려 한 거야. 정임 씨 가족들은, 그 상황을 생존자들한테 전해 들었대. 일단은 그 친구(서진이)가 너무 놀라버렸나 봐요. 얼어버린 거죠. 그러니까 발을 못 뗀 거예요. 거기서 굳어 버린 거예요. 근데 우리 언니도 거기 있었고, 그러니까 우리 언니가 범인을 잡았대요 양쪽 손을. 그러니까, 서진 씨를 찌르다 말고 이제 우리 언니 손을 놓게 하려고 범인이 손목을 내리쳤나 봐요 양쪽을. 다른 사람은 손목에 상처가 없었는데 저희 언니만 있었어요. 손목을 내리쳐도 끝까지 잡고 있으니까 범인이, 이제 언니 목 부위를 찌른 거예요. 그래서 목에 자상이 있었던 거예요. 여덟 군데인가… 엄마니까. 누구의 엄마니까 누구의 자식이든 그냥 내 자식 같은 거죠. 그건 엄마들에게 본능 같은 거예요. -최정임(가명) 씨 동생 안타깝게도 진이와 정임 씨도, 살인마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말아. 총무실로 도망쳤던 준기 씨는 지금 정신을 잃어가고 있어. 출혈이 너무 심해서 얼마나 버틸지 몰라. 그때, 준기 씨가 전화기를 발견해. 그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피 묻은 전화기. 1번과 9번에 찍힌 선명한 혈흔. 그 상황에서 죽을힘을 다해 119에 전화를 건 거야. 여기 논현동 D고시원인데, 칼 든 미친놈이 있어요. 사람들이 도살당하고 있어요. 그 순간에도 범인의 칼날은 멈추지 않아. 이번에 남자야. 4층 고시생 이지섭 씨. 우당탕 소리가 나길래 깨지는 소리도 나고 그래서, 숨을 참고 내려가는 와중에 계단 끝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뭐지? 하고 내려가는 와중에 찌르더라고요. 이렇게 잡아가지고 이렇게 찌른 거죠. 그런데 긴 회칼이어서 (팔을) 관통을 해서 여기까지… -이지섭(가명), 고시생 지섭 씨는 칼에 관통된 팔과 몸을 감싼 채 계단 아래로 굴렀어. 그야말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거지. 심각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지섭 씨는 그날의 첫 탈출자야. ▲ 내가 아는 살인마 119에 신고한 준기 씨도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야. 도망갈 틈을 보려고 조심히 문을 여는데 하필, 범인과 눈이 딱 마주쳤어. 그놈이 다시 3층으로 돌아온 거야. 그 순간 준기 씨는 소름이 쫙 끼쳐. 정체를 완전히 감춘 살인마, 그게 누군지 알아버렸거든. 처음에 찔렸을 땐 너무 당황해서 못 봤는데요. 햇빛이 들어와서 그 사람인 걸 한 번에 알아봤죠. 고시원에서 안면이 있었고 예전에 그 사람이 고깃집에서 불판 갈아주는 일을 했었거든요. 그때 그 고깃집 가서 고기도 많이 먹고 그래서… -마준기(가명) 이제 범인이 누군지 알겠지? 종달새라는 별명이 있다는 정상진. 정상진은 살아있는 준기 씨를 발견하고는 총무실 문을 발로 차고 칼로 내려치기 시작해. 그 순간 준기 씨가 할 수 있는 건, 경찰들이 빨리 오길 바라는 것 밖에 없어. 문을 뚫고 들어오는 칼을 맨손으로 막는 바람에 손에도 피가 철철 흘러. 그래도 초인적인 힘으로 문을 막은 채 버텼고, 다행히 문은 열리지 않았어. 정상진은 또 다른 공격대상을 찾아 자리를 떠나. 준기 씨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어. 그 지옥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했어. 칼이 무서워 연기가 나도 방 안에 숨어 있거나, 불이 더 무서워 방 밖으로 뛰쳐나가 거나. 둘 다 무서워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어. 소방대원들과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건 오전 9시. 그날 아침 화재와 함께 시작된 이 악몽은 무려 40분간 이어졌어. 이제 빨리 사람들을 구하고 범인을 잡아야 해. 그런데 현장에 온 구조대가, 범인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을까? 소방관들은 일단 화재 진압부터 시작했어. 현장은 너무 참혹했어. 주인 잃은 신발과 물건들이 나뒹굴고, 바닥과 벽, 계단까지 핏자국이 선명해. 몇몇 방은 시커멓게 타서 누구 방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어. 소방관들은 불을 끄는 와중에도 방 하나하나 수색하며,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해. 3층을 다 확인하고 이어서 4층. 칼에 찔린 사람부터 양손에 화상을 입은 사람까지, 조심조심 부축하며 나오는데, 한 경찰이 그 화상 입은 남자를 유심히 봐. 차림이 왜 이래? 뭐야. 이거 다 피야? 옷이며 신발에 끈적한 피가 잔뜩 묻어있어. 그런데 칼에 찔린 상처는 없어. 이 사람이 바로, 범인 정상진이야. 그 짧은 시간에 무기들을 다 버리고, 피해자인척 하며 4층에 숨어있던 거야. 그렇게 현장을 빠져나갈 뻔했던 정상진은, 경찰에 검거됐어. 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6명이야. 5명이 정상진의 칼에 죽었고, 1명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추락사했어. 부상자도 7명이나 됐어. 준기 씨는 대수술을 받고 5일 만에 겨우 의식을 되찾았어. 하루아침에 낯선 사람의 칼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충격과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내가 지금도 마음 아픈 게 뭐야. 그 피를 토하고 죽어갈 때, 얼마나 아빠를 찾았을 거냐 이거지. 천금같이 키워갖고 자식을 그렇게 보낼 때 오죽했겠어요. 내가 어려웠으니까. 학비를 제대로 못 줬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더 미치는 거예요 내가… -서병호, 서진 아버지 ▲ 살인마 정상진 말이 많아 별명이 종달새라던 정상진은, 왜 그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앵무새처럼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반복했어. 경찰 조사에서는 살기가 싫었다 , 세상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 라고 말하기도 했어. 자기가 살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는 게 무슨 말일까. 또 사람 몇 명을 죽이면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저를 죽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는 말도 했어. 경찰 손에 죽겠다는 사람이, 정작 현장에서 피해자인 척은 왜 한 건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현장에서 정상진의 노트가 발견됐어. 발견 당시 겉면에 시커멓게 탄 상태였는데, 안에 있던 글들은 훼손되지 않았어. 우리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재현해 봤어. 존재 가치성 없음 집 밖에서도 가치성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생쇼만 하다가 가는 거야 나 같은 태생은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거야 하는 일마다 한계에 부딪히고 삑사리 나고 -정상진의 메모 中 정상진의 메모를 보면, 큰 좌절감에 빠져있던 걸로 보여. 삶에 대한 의지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정상진은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정상진은 경남 합천에서 5남매 중 막내로 자랐어. 넷째와의 나이차는 아홉 살, 완전 늦둥이야. 초등학교 시절에는 몸집이 작고 성격도 소심해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대. 중학교 땐 구타를 당해 기절하는 일도 있었어. 그래서일까. 중1 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해치기로 마음먹어. 바로 자기 자신을.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어. 하지만 곧바로 발견됐고, 응급처치 후 깨어났어. 1년 후, 한 번 더 자살을 시도하지만 역시 살아남았어. 그 후로도 세 번이나 더 목숨을 끊으려 했어. 물론 정상진의 삶은 불우했어.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을 해칠 이유가 될 순 없어. 훨씬 더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데 전문가들은, 다른 건 몰라도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대. 자살과 타살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실제로 세로토닌이 상승해져 있는 공격성 자체는 똑같은데, 그 공격성이 날 향해서 공격하면 자해나 자살이 되는 것이고, 바깥으로 향하게 되면 그게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나 타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상황에서 누적이 된 스트레스가 단 한 번 적극적인 방향으로 전환이 되었는데 그게 엄청난 사고를 일으켰다 생각하고요. -임명호, 심리학과 교수 정상진의 별명이 '종달새'였다고 했지? 평상시의 정상진은 그리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어. (정상진이) 말하기를 좋아했는데요. 말을 받아주면 사람을 지겹게 해요. 아주 한 시간 두 시간씩 물고 늘어져서… (평소 술을 자주 마셨냐는 질문에) 아니요 아예 안 먹어요. 걔가 술을 안 먹는다니까요. 내가 일을 하고 있으면 자기가 일 끝나고 지나가다 이제 고시원 들어가면 심심하니까 와서 떠들어요. 얘기를 안 받아주고 짜증 내면 그냥 가요. 평상시에 까불다가 내가 소리 한 번 확 지르면 바로 애가 떨어지고 소심한 애인데. 겁도 많고… -먹자골목 상인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같기도 해. 눈에 띄는 문제를 일으키거나, 끔찍한 범행의 징조를 보이진 않았어.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을 느낀 사람이 한 명 있었어. 바로 D고시원 총무. 고시원에서 정기적으로 소방 점검을 하는데, 정상진이 방문을 절대 열어주지 않았던 거야. 끝까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방 공개를 거부했대. 그러다 사건 발생 한 달 전쯤, 참다못한 총무가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그 방을 보고는 한 10초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대. 방에서 뭘 봤길래? 5년 동안 한 번도 자기 방문을 누군가가 절대 못 열게 하는 거예요. 사고 터지기 한 달 전에 문 열었을 때, 장난감 총, 터보 라이터, 지포라이터, 인형, 이런 물건들이 꽉 차 있어요. 똑같은 인형이 색깔만 다르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배열이 되어 있는 거예요. -고시원 총무 마치 인형가게처럼, 크고 작은 인형 수십 개가 오와 열을 맞춰 전시되어 있었대. 그리고 정작 방바닥은 쓰레기가 가득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거지. 이 많은 인형들은 인형 뽑기 기계에서 얻은 거야. 정상진은 인형 뽑기에 빠져 있었어. 고시원 바로 앞 편의점에 그 기계가 있었는데, 어떤 날은 몇 시간이고 그 앞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대.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60만 원까지 인형 뽑기를 하는 것도 봤어요. 비가 오는데도 밖에서 3시간 동안 인형 뽑기를 하기도 했어요. 주차장에서 번 월급을 3~4일 만에 탕진하고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어요. -주변인들의 증언 정상진은 주차나 배달 일로 한 달에 150~180만 원 정도를 벌었어. 그런데 그 돈 대부분을 인형 뽑기에 썼어. 최소 1천만 원 이상은 썼을 거래. 왜 이렇게 정상진은 인형 뽑기에 집착했을까? 전 인형 뽑기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처한 상황이 굉장히 외롭고 사회적으로 박탈된 상황이었고, 상실감, 그리고 전혀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이런 사람으로 생각되고 있었을 때 인형 뽑기에 집착을 한 것은 저는 탈출 수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진은 딱 그거 하나가 유일하게 도파민(흥분감)을 상승시킬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목숨 걸고 어쨌든 인형 뽑기를 한 거고… -임명호, 심리학과 교수 인형 뽑기를 과하게 하는 게 뭐가 큰 문제냐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정상진의 경우는 좀 달라. 인형 뽑기에서 범행 도구들도 구했거든. 범행 당시 썼던 랜턴, 권총 모양 라이터 등을 모두 인형 뽑기에서 뽑은 거야. 정상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 억울한 죽음의 이유 이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지막 행복한 순간을 위하여. 자극이 되어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이제야 저도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순간을 맞을 거 같습니다. 피로써 싸워. 내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내 인생 마지막 하이라이트. 멋지게 끝내자 마지막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상진 노트 中 뭔가 거창하게도 써놨지? 대량 살인을 계획한 범인들은, 허세 가득한 메시지를 종종 남긴대. 이 사건 1년 전에 있었던 미국 버지니아주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도 그랬어. 마치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자신의 행위가 엄청 정당한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알지. 그들은 그냥, 비겁하고 찌질한 범죄자에 불과하다는 걸. 정상진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알아? 저 거창해 보이는 메모들, 언제 썼을 거 같아? 무려 사건 발생 4년 전에 쓴 거야. 4년 동안 잠잠하다가, 왜 하필 그날 범행을 저지른 걸까. 너무 어이없는 이유가 있어. 정상진은 예비군 훈련을 계속 불참했어. 그럼 벌금이 나와. 이 벌금이 쌓이고 쌓여서 150만 원이었대. 그런데 정상진은 그해 봄부터 무직 상태였거든. 벌금은커녕, 고시원 월세도 못 내고 휴대폰까지 끊길 상황이야. 그때 강남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벌금 미납으로 수배가 내려졌으니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그 출석 날짜가 바로, 사건 당일인 10월 20일 오전 10시였어. 출석일이 다가올수록 슬슬 걱정이 됐던 정상진. 그리고 그날은, 미납된 고시원비를 내겠다고 고시원 주인과 약속한 날이기도 했어. 하지만 돈은 없어. 그날 정상진은 새벽부터 일어났어. 검은색 건빵 바지에 검은색 상의를 입고, 칼을 챙겼어. 그리고 종이에 테이프를 감아서 나름 칼집도 만들었어. 허리엔 가스총을 차고, 권총 모형 라이터 2개는 어깨에 달았어. 검정 모자를 쓰고, 화재 속에서 시야 확보를 해줄 헤드랜턴을 장착했어. 마지막으로, 연기도 막고 얼굴도 가려줄 물안경과 마스크까지 착용했어.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정상진은, 자기 방 침대에 라이터 기름을 뿌려. 그리곤 인형 뽑기 기계에서 뽑은 모형 라이터로 불을 질렀어. 그다음은, 복도에 나가서 칼을 움켜쥐고 기다렸던 거야. 겁에 질려 뛰쳐나올 사람들을. 정상진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들의 경우, 정신질환이나 심신 미약을 이유로 감형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 정상진도 조사 중에 누굴 찔렀는지 어떻게 찔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중학교 때 자살에 실패하고 나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심각한 두통이 있었다 등의 말을 했대. 결국 정상진은 정신감정을 받게 돼. 그리고 전문가는 이렇게 진단했어. 정상진은 2년 이상 만성적인 우울증을 갖고 살아왔지만, 일종의 신경증일 뿐 현실감은 있는 상태이며 정신병질적 성격은 없어 보인다. 다행히 정신질환을 인정받지 못했어. 정상진은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 능력도 있었을 거래. 그럼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이 사건 범행이 피고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진 점, 그 범행 수단이 잔혹하고 무자비한 점,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진지한 참회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재범의 위험성이 매우 크고,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극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점,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판결문 中 정상진은 항소하지 않았고 그대로 판결이 확정됐어. 유가족들은, 법정 최고형을 받게 돼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기뻐할 수도 없었대. 우리나라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야. 정상진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어. 미집행 사형수로 감옥에서. 사형이란 소리 들어도 저는 담담했어요. 죽이지도 않을 텐데요 뭐. 지금 우리나라에 사형수가 얼마나 많아요. 근데 한 명도 안 죽이잖아요. 왜 비싼 세금을 가지고 밥 먹이고 잠재우고 놀리고 그러냐고요. 미치지 미쳐. 왜 내 새끼는 죽고 없는데, 정상진은 저렇게 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서병호, 피해자 유가족 제 동생이 교도관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에어컨 틀어주냐' 물어봤는데, 안 틀어준대요. 그나마 다행이다… 에어컨 안 틀어준다는 거에 제가 위안을 받아요. 그게 말이 돼요? 피해자들만 애가 타고, 속이 타고 미치고… -피해자 유가족 내 가족을 잔인하게 살인한 범인이,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 자고 안전하게 지내고 있어. 사형제도의 찬반을 논하자는 건 아니야. 유가족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자는 거야. ▲ 뒤늦게 드러난 문제들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범죄를 막긴 힘들어. 하지만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어. 이 사건에서도 그랬어. 가해자 정상진한테 집중한 사이에, 우리는 중요한 걸 하나 놓칠 뻔했어. 바로 이 공간, 고시원.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한 유가족들에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얘기가 들렸어. 보니까 허가가 없어. 무허가예요. 그렇게 해서 고시원을 지어서 사람한테 돈을 받았으면 왜 책임이 없느냐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억울하단 얘기예요. -서병호, 피해자 유가족 논현동 D고시원은 무허가로 운영되고 있었어. 그런데 사실, 오해의 여지가 있어. 허가를 안 받은 게 아니라, 받을 필요가 없었던 거야. 독서실과 같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있어서, 신고만 하면 누구나 영업을 할 수 있었거든. 고시원의 용도는 고시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이야. 그런데 언젠가부터 서민들의 숙박시설로 이용되기 시작했어. 논현동 고시원 사건이 일어난 2008년, 전국에 고시원이 무려 5,500여 개였대. 입주자만 20만 명에 달했어. 게다가 해마다 300개씩 새로 생겨. 그럼 정부나 국회에서,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고시원을 숙박업으로 규정하고, 관련 법안을 만들어 관리했어야지. 그런데 그냥 방치한 거야. 숙박시설이었다면 받았을 건축법이나 보건법이,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어. 그러니 고시원 업주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했겠지. 방 개수가 늘어나도록 통로는 더 좁게, 방은 더 다닥다닥 붙였어. 비상대피로는 만들 필요도 없어. 당연히 스프링클러도 없어. 그러니 창문으로 뛰어내리지. 법이 없으니까. '불법'이 아니라 '무법' 천지였던 거야.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어. 논현동 고시원 사건이 일어나기 전 4년간, 고시원에서 화재, 방화로 숨진 사람만 60명이 넘어.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냐. 고시원 법에 대한 논의가 있긴 있었어. 하지만 매번 흐지부지된 거야. 그 사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났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어. 만약 정상진이 13명의 사상자를 낸 그날 그곳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었다면? 그리고 비상대피로가 따로 있었다면? 복도의 폭이 30cm만 더 넓었다면? 단 한 명이라도 덜 다치고, 덜 죽지 않았을까. 유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고시원 주인과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 소방법 및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고시원 주인은 대형 로펌 변호사 여섯 명을 대동하고 나타나. 이 사람, 동네에서 어마어마한 자산가라고 소문이 자자했거든. 소송 결과는, 고시원 주인, 서울시 모두 '혐의 없음'. 예측 불가능한 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는 고시원 주인이나 관할 당국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야. 관련법이 없었으니까, 법의 위반이 아니라는 거지. 근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이 사건 직후에 고시원 관련법이 제정돼. 피난유도선,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고, 통로 폭도 90cm에서 최소 120cm 이상으로 강화됐어. 그렇게 논현동 고시원 사건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끝나버렸어. 유가족들은, 견디기 힘들 만큼 슬픈데,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어.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 한 사람 두 사람,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 하지만 딸을 잃은 병호 씨는 그럴 수가 없었어. 횟집을 운영하던 병호 씨는, 도저히 다시 칼을 잡을 수가 없었어. 일을 못 했어요. 칼을 쳐다도 못 봤어요. 보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친다고 그러잖아요. 소름이 끼쳐요. 이 손이 떨려서 (칼을) 못 잡았어요. 그래서 오죽해서 아들이 '아빠 횟집 하지 마세요'. 4, 5년 그렇게 했었어요. 솔직한 얘기로 저녁에 자다가도 벌떡벌떡해요 요즘도. 왜 자식 안 보고 싶겠어. 딸이 죽은 날 비가 왔어요. 그래서 비만 오면 못 견뎠어요 내가… 비만 오면 나가서 술 퍼 마시고. 혼자 울다가 비 오면 미쳐갖고 흙탕물 둘러쓰고 집에 들어오고 그랬어요. -서병호, 서진 아버지 일을 놓으니 생활은 어려워지는데, 딸 생각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어느 날은, 정말 그래선 안 되는데, 한강 물에 뛰어들었다가 간신히 끌려 나온 적도 있었대. 범죄 피해 유가족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 ▲ 피해자의 권리 범죄 피해 유가족들 중엔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 병호 씨는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너무나 이해가 됐대. 그런데, 그런 병호 씨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어. 진이를 위해서라도 아버님이 힘을 내셔라 ,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가 돕겠다 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병호 씨를 돕겠대. 바로 이 분이야. 이 분은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는 현장을 찾아다녀. 그리고 모두가 범죄자의 신상, 증언, 처벌에 집중할 때, 피해자와 가족들을 챙겨. 혹시 너 SBS 드라마 '모범택시' 본 적 있어? 김의성 배우가 맡은 장성철 역할이 있어. 범죄 피해자들을 돕는 파랑새 재단의 대표. 그 모티브가 바로 이 분이야. 이용우 회장님. 드라마에선 택시회사를 운영하지만, 실제로는 꽤 규모 있는 문구업체의 대표야. 급작스럽게 치러야 하는 장례부터, 피해자, 유가족들의 심리 치료까지. 그 잊기 힘든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아. 회장님이 그림자처럼 도와주신 분이죠. 자기 사비를 빌려주고 그랬어요. 벌어다가 갚고 또 벌어다가 갚고. 그래서 그분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죠. -서병호, 피해자 유가족 (범죄 피해자) 유족분들은 삶이 굉장히 어렵죠. 특히 생활을 책임지고 있던 가장이 살해당했다든가 또 가족 중에, 자식이 살해당했다든가 그럴 경우에는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 거잖아요. 삶이, 삶이 아니에요. 범죄자 잡아갈 때 '미란다 원칙' 하잖아요. 당신은 변호사 살 권리가 있다 얘기하지만 옆에 있는 피해자는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범죄자 인권만 있는 거예요. 피해자 인권은 없어요. 어디 가서 치료받아라 아니면 어디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걸 안 했던 거죠. 그래서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는 시기에 피해자들을 지원하겠다는 그런 취지로 해서 피해자 지원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용우, 한국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장 원래는 이 분이 사비를 털어서 이 일을 했는데, 지금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어. 무려 20년 넘게 활동해 온 결과,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지원도 많이 달라졌어. 일례로, 피해 지원금도 논현동 고시원 사건 때보다 10배나 늘었대. 병호 씨는 이용우 회장님 덕분에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 10년이 조금 넘게 걸렸거든. 지금은 진도에서 횟집을 하고 있어. 병호 씨가 다시 횟집을 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 '묻지마 범죄'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생각해 보면, 범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말 같아. 정남규, 유영철,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들에 비해서 '묻지마' 살인범들은 잘 기억 못 하잖아. 최근에도, 신림역, 서현역에서 비슷한 비극들이 계속 일어났지. 정말 묻지 말아야 할까? 아니지. 이런 사건일수록 그 실체를 똑바로 파악해야 해. 이런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는,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2차 피해가 심각해. 당신이 거기 있었으니까 당했다 , 목숨값 받으려고 쇼한다 는 악의적인 이야기도 들어. 그렇잖아도 무너진 가족들이 더 위축될 수밖에 없어.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기피와 혐오 대신, 관심과 지원이 먼저래. '우리를 대신해서 당한 사람들'이라고 여긴대. 이웃들은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국가가 100% 피해자 지원을 책임져.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이용우 회장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어. 우리나라 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외국에서는 옆집이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면, 다 가서 위로해 주는 거예요. '춥지 않냐', '아픈 데는 없냐' 그러는데, 우리나라는 살인 사건이 나면, 그 집을 안 가는 거예요. 재수 없다고. 엄청난 문화 차이입니다. 어렵겠지만, 그 문화가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용우, 한국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장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불이야 소리에 뛰쳐나갔더니 칼 든 살인마가…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꼬꼬무 찐리뷰]  불이야  소리에 뛰쳐나갔더니 칼 든 살인마가…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등록일2023.10.20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9일 방송된 '옆 방 살인마-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류승수, 그룹 여자친구 출신 예린, 가수 이석훈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착한 딸의 죽음 때는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오후. 맑던 하늘이 잔뜩 흐려지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나이 마흔 아홉의 서병호 씨는 횟집 사장님이야. 이 횟집은 마포에 있는데 소문난 맛집이야. 초저녁인데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여. 그때 오랜 단골손님이 들어와서, 그 뉴스 봤냐고 물었어. 글쎄, 아침 댓바람부터 어떤 미친 놈이 강남에서 사람들 찔러 죽이고 난리가 났대요. 회 써느라 바쁜 병호 씨는 또 그런 사건이 터졌냐며, 그런 놈들은 잡아서 똑같이 해줘야 한다고 대꾸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리고 저녁 7시쯤 됐을까. 한창 바쁜 병호 씨한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어. 당시 상황을, 병호 씨한테 직접 들어볼게. 강남 경찰서라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서진이 아빠입니까?' 물어서 그렇습니다 그랬더니, 뭔 일이 있었다는 말도 않고, 순천향대 병원으로 가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왜 순천향대 병원을 가면 되냐' 그랬더니, '순천향대 병원을 가면 안다'고 하더라고요. 순천향대 병원 입구에 딱 가니까, '이리로 오세요' 그래서 갔더니 서랍을 딱 끌어내니까 딸내미가 싸늘히 죽어있더라고요. 그걸 보는 순간에 내가 5분, 6분 정도 기절을 했어요. -서병호, 당시 횟집 사장 병호 씨의 막내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된 거야. 아까 단골손님이 말한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어. 사인은 다발성 자상에 의한 과다출혈. 칼에 찔린 상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야. 이름은 서진, 나이는 21세. 산둥대 국제무역학과 2학년이야. 중국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4개월 전 휴학계를 내고 한국에 와 있었어. 도대체 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빠 병호 씨는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강남 경찰서로 향했어. 그리고 그 곳에서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듣게 돼. 오늘 아침에, 서진 씨가 살고 있던 논현동 고시원에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칼로 사람들을 해쳤고, 그 피해자들 중에 진이가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아빠 병호 씨는 그 말을 듣고 이해가 안 됐어. 우리 딸이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아빠는 진이가 고모 집에서 지낸다고 알고 있었거든. 고시원은 처음 듣는 얘기야. 사실 이 부녀 사이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어. 병호 씨는 홀로 진이와 진이 오빠를 키웠어. 진이가 8살, 진이 오빠가 11살 때 아내와 헤어졌거든. 횟집을 운영하면서 남매의 뒷바라지를 해왔던 거지. 근데 아빠 홀로 두 아이를 키운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야. 병호 씨는 하루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느낀 날이 없었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가 없어서 매일 아이들에게 미안했어. 하지만 막내딸 진이는 오히려 그런 아빠를 위로했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온갖 집안일을 돕고, 심지어 아빠 옷을 매일 다려놓곤 했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다리미질해서 와이셔츠 다려놓고. 엄마가 없을수록 아빠가 옷을 깔끔하게 입어야 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고요. 그렇게 잘했기 때문에 딸내미한테 더 애착이 가죠. 일을 하다가 밥을 못 먹으면, 자기가 먼저 챙겨서 '아빠 같이 식사합시다' 할 정도로 엄마 역할을 했어요. 자기 자식 안 착하다는 사람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 딸내미 같은 경우는 정말 착했어요. -서병호, 서진의 아빠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어. 다행히 횟집이 잘 돼서 축구 유망주였던 아들을 브라질로 유학을 보낼 수 있었어. 딸 진이도 일찌감치 중국으로 유학을 보냈어. 진이는 중국에서 잘 적응했고, 우수한 학교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교에 단번에 합격했어.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안 좋은 일이 생겨. 아빠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게 된 거야. 다행히 아빠를 대신해 오빠가 학비를 보태줬어. 오빠가 프로 축구선수가 됐거든. 오빠도 참 대단하지. 그런데 얼마 후, 오빠한테도 안 좋은 일이 생겨. 경기 중 당한 부상으로 재계약에 실패한 거야. 그런데도 오빠는 동생한테, 학비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어. 하지만 진이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바로 휴학계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어. 자신의 힘으로 학비를 마련하려 한 거야. 그렇게 시흥에 있는 고모 집에서 지내면서,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알바를 시작해.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무려 13시간을 매일 일했대. 아직 어린 나이인데, 참 대견하지. 그런데 이 모든 게 아빠한텐 비밀이었어. 한국에 그냥 잠시 쉬러 왔다고 거짓말한 거야. 아빠가 항상 넌 공부만 하면 돼. 학비 걱정은 하지 말고. 오빠랑 아빠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라고 했거든. 그런 아빠한테 학비를 벌려고 알바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어. 절대 허락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까 문제가 하나 생겨. 시흥 고모 집에서 강남까지 왔다 갔다 하려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 그래서 진이는 강남 논현동 고시원에 들어갔어. 그리고 걱정쟁이 아빠와 오빠한텐 비밀로 했어. 허락 안했죠. 아르바이트하는 것도 허락 안했어요. 자기 고모한테만 '나 금방 가서 며칠만 일하고 온다'고 하고 갔대요. 그러니까 고모도 '너 그냥 와라'라고 했는데, 그렇게 돼버렸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도 거기서 돈벌이가 조금 되니까 벌어 갖고 보태서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어린 마음에… -서병호, 서진 아버지 고시원에 들어가고 한 달 후, 진이는 다이어리에 이런 글을 썼어. 아빠한테 잠깐 다녀온 날. 미안… 아빠 ㅠ 짧은 글이지만, 아빠한테 말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부모에게 걱정거리가 되기 싫은 딸의 마음. 그 모든 게 느껴져. 그리고 이 날로부터 3개월 뒤, 진이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 거야. 진이가 지내던 그 고시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누가, 왜, 그 곳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른 걸까. ▲ 고시원 사람들 그 문제의 고시원은, 논현동의 D고시원 이야. 지하철 논현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논현동 먹자골목'이 나오지. 그 한가운데 5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건물 3, 4층에 고시원이 있어. 혹시 고시원에 들어가 봤어? 공용공간을 빼면, 방 하나당 크기가 한 평이 조금 넘어. 3층이 90평 정도 되는데, 여기에 방이 50개가 있었어. 4층에 있는 방까지 합하면 총 85개야. 강남에서 가장 작은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래도 입지가 좋고 보증금도 없어. 월 20만원 중반이면,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생기는 거야. 목돈 없는 서민들에겐 이만한 곳이 없지. 그러다보니 이 고시원의 입주민은 무려 70여 명이야. 그런데 고시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논현동 근처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야. 그리고 그들 중에 희대의 살인마도 있었던 거야. 그 고시원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알려줄게. 우선 3층에 살고 있는 49세 김선자 씨. 선자 씨는 중국 동포야. 한국으로 시집 온 딸의 초청으로 2년 전에 한국에 들어왔어.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있었거든. 선자 씨의 아들은 어릴 적에 입은 화상으로 걷는 게 불편해.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했던 선자 씨는, 아들 다리를 고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자마자 식당에서 일을 해 왔어. 선자 씨는 돈 쓰는 걸 제일 무서워하는 자린고비야. 식당에서 밥 한 공기 남은 거 싸와서, 그걸 두 끼에 걸쳐 나눠 먹었어. 전화비 아낀다고, 그리운 아들과도 2주에 한 번만 통화했대. 하루라도 빨리 아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렇게 돈을 아끼고 아꼈어. 선자 씨와 같이 3층에 사는 29세 마준기 씨. 스무 살부터 독립해 쭉 고시원 생활을 했어. 배달, 대리운전, 안 해본 일이 없었어. 최근에 꿈이 하나 생겼어.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는 거. 틈틈이 공부도 할 겸, 낮에는 서점에서 알바를 하고, 밤에는 고시원에서 취업 준비를 하며 지냈어. 고시원 생활에 익숙한 건, 31세 정상진 씨도 마찬가지야. 여기 온 지 5년이 넘었어. 논현동 먹자골목에서 상진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고깃집에서 불판도 갈고, 서빙도 하고, 주차관리도 하고. 군 제대 후 쭉 먹자골목에서만 일했거든. 이런 상진 씨한테는 '종달새'라는 별명이 있었어. 입이 한 번 열렸다 하면 말이 끝나지 않는 '투머치 토커'였대. 종달새 상진 씨와 준기 씨는 서로 잘 아는 사이야. 이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 사이, 고시생이 한 명 있긴 있었어. 4층에 사는 29세 이지섭 씨야. 준기 씨, 상진 씨랑 비슷한 또래야. 4층은 3층보다 방의 개수가 적어서, 비교적 조용해. 지섭 씨는 밤낮 없이 고시 공부 중이야. 그리고 4층에는 우리가 아는 사람도 살고 있어. 21세 서진 씨. 근처 음식점에서 새벽까지 일하고 방에 와서는 그대로 뻗어 점심 때까지 자. 아빠 몰래 고시원에 들어온 지 백일이 좀 넘었어. 마지막으로, 서진 씨 방 근처에 49세 최정임 씨가 살아. 서진 씨와 비슷한 나이의 두 아들을 둔 엄마인데, 몇 년 전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는 집을 나왔어. 넉넉지 않은 형편에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거야.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 아닌 이웃으로 지내고 있었어. 이 중에 누가 범인인 거 같아? 참혹했던 그 날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 타인은 지옥이다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아침 8시. 고시원 안은 고요해. 대부분 새벽에 귀가하는 사람들이니까, 한창 자고 있는 시간이거든. 그 중 중국동포 선자 씨는 아침부터 일어나 벼룩신문을 보며 더 괜찮은 일자리가 있나 찾고 있었어. 그런데 어디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그리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거뭇한 연기가 들어와. 선자 씨는 서둘러 복도로 나갔어. 그런데 다른 방 매트리스가 활활 타고 있는 거야. 불이야! 불이야! 를 외친 선자 씨. 그리고 그 순간, 복도 끝에서 검은 형체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범상치가 않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옷차림. 누군지 절대 알 수 없어. 머리에 랜턴을 달고, 마스크에 물안경까지 쓰고 있어. 허리엔 가스총도 찼어.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건, 길이 50cm의 회칼이야. 또 양쪽 바지 안 쪽에는 과도를 하나씩 더 찼어. 이 사람이 바로, 오늘 사건의 범인이야. 이런 복장을 한 사람이 뚜벅뚜벅 선자 씨를 향해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흉기로 가차없이 공격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어. 그리고 도망가는 선자 씨를 쫓으며, 수십 차례나 더 공격했어. 결국 선자 씨는 아들의 다리를 고쳐주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끔찍한 칼부림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됐어.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해. 이 고시원에서 외부와 통하는 출입문은 하나인데, 거길 향하는 복도는 겨우 한 사람 지나다닐 정도로 좁아. 그런데 바로 여기에, 칼을 든 범인이 지키고 서 있는 거야. 복도 상황을 보고 깜짝 놀라서 다시 방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선자 씨처럼 연기를 피해 정신없이 나오다가 범인의 칼에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어. 지금 고시원은 완전 아비규환이야. 복도엔 매캐한 연기가 차오르고, 바닥엔 피가 흥건해. 그 때 누군가 방 밖으로 나와 소화기를 집었어. 취준생 마준기 씨야. 소화기 안전핀을 뽑으려고 그러는데 뽑히지 않더라고요. 억지로 뽑았어요. 뽑은 다음에 소화기 호스를 잡고 딱 들어가려고 그러는데 갑자기 칼이 쑥 들어오더라고요. 얼굴 쪽으로 날아오니까 내가 친 거예요. 잡지는 못하니까요. 쳐내니까 나중에는 이 사람이 막 휘두르더라고요. 그냥 죽는구나. 아 이제 죽는구나. 가족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거 밖에 안 들더라고요. -마준기(가명), 취업준비생 복부만 세 번을 찔린 준기 씨는 필사적으로 상처부위를 부여 잡았어.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데, 범인이 다시 칼을 들어 올려. 그 순간, 누군가 또 복도로 뛰쳐 나왔어. 범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쪽으로 향해. 준기 씨는 온 힘을 다해 총무실로 도망쳐. 황급히 문을 잠그려는데, 문고리가 고장나서 안 잠겨. 밖에서 밀면 열릴 수도 있어. 있는 힘을 다해 온몸으로 문을 막았어. 바로 그때, 고시원 전체에 화재 경보가 울려. 지금 연기는 3층에만 퍼졌어. 4층에선 아직 불이 났는지 몰라. 그런데 화재경보가 울렸으니, 막 뛰쳐나왔을 거 아냐. 그런데 출입문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에, 범인이 있어. 평소엔 사람들을 살리는 화재경보음이, 이날은 죽음을 부르는 사이렌이 된 거야. 그때부터 이 살인마가 뚜벅뚜벅 4층으로 올라가. 마치,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경보음을 듣고 뛰쳐나온 4층 사람들 중 가장 먼저 범인과 마주친 건,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정임 씨야. 범인은 정임 씨의 가슴과 배를 수차례 공격했어.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아. 병호 씨의 딸, 서진이야. 범인은 이제 진이를 공격하기 시작해. 저항 한번 못하고 꼼짝없이 당할 위기야. 그런데 그 때, 진이를 구하려는 듯, 누군가 범인을 잡고 늘어져. 범인과 맞선 사람, 바로 정임 씨야. 이미 몇 차례나 칼에 찔렸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진이를 구하려 한 거야. 정임 씨 가족들은, 그 상황을 생존자들한테 전해 들었대. 일단은 그 친구(서진이)가 너무 놀라버렸나 봐요. 얼어버린 거죠. 그러니까 발을 못 뗀 거예요. 거기서 굳어 버린 거예요. 근데 우리 언니도 거기 있었고, 그러니까 우리 언니가 범인을 잡았대요 양쪽 손을. 그러니까, 서진 씨를 찌르다 말고 이제 우리 언니 손을 놓게 하려고 범인이 손목을 내리쳤나 봐요 양쪽을. 다른 사람은 손목에 상처가 없었는데 저희 언니만 있었어요. 손목을 내리쳐도 끝까지 잡고 있으니까 범인이, 이제 언니 목 부위를 찌른 거예요. 그래서 목에 자상이 있었던 거예요. 여덟 군데인가… 엄마니까. 누구의 엄마니까 누구의 자식이든 그냥 내 자식 같은 거죠. 그건 엄마들에게 본능 같은 거예요. -최정임(가명) 씨 동생 안타깝게도 진이와 정임 씨도, 살인마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말아. 총무실로 도망쳤던 준기 씨는 지금 정신을 잃어가고 있어. 출혈이 너무 심해서 얼마나 버틸지 몰라. 그때, 준기 씨가 전화기를 발견해. 그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피묻은 전화기. 1번과 9번에 찍힌 선명한 혈흔. 그 상황에서 죽을 힘을 다해 119에 전화를 건 거야. 여기 논현동 D고시원인데, 칼 든 미친 놈이 있어요. 사람들이 도살당하고 있어요. 그 순간에도 범인의 칼날은 멈추지 않아. 이번에 남자야. 4층 고시생 이지섭 씨. 우당탕 소리가 나길래 깨지는 소리도 나고 그래서, 숨을 참고 내려가는 와중에 계단 끝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뭐지? 하고 내려가는 와중에 찌르더라고요. 이렇게 잡아가지고 이렇게 찌른 거죠. 그런데 긴 회칼이어서 (팔을) 관통을 해서 여기까지… -이지섭(가명), 고시생 지섭 씨는 칼에 관통된 팔과 몸을 감싼 채 계단 아래로 굴렀어. 그야말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거지. 심각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지섭 씨는 그날의 첫 탈출자야. ▲ 내가 아는 살인마 119에 신고한 준기 씨도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야. 도망갈 틈을 보려고 조심히 문을 여는데 하필, 범인과 눈이 딱 마주쳤어. 그놈이 다시 3층으로 돌아온 거야. 그 순간 준기 씨는 소름이 쫙 끼쳐. 정체를 완전히 감춘 살인마, 그게 누군지 알아버렸거든. 처음에 찔렸을 땐 너무 당황해서 못 봤는데요. 햇빛이 들어와서 그 사람인 걸 한 번에 알아봤죠. 고시원에서 안면이 있었고 예전에 그 사람이 고깃집에서 불판 갈아주는 일을 했었거든요. 그때 그 고깃집 가서 고기도 많이 먹고 그래서… -마준기(가명) 이제 범인이 누군지 알겠지? 종달새라는 별명이 있다는 정상진. 정상진은 살아있는 준기 씨를 발견하고는 총무실 문을 발로 차고 칼로 내려치기 시작해. 그 순간 준기 씨가 할 수 있는 건, 경찰들이 빨리 오길 바라는 것 밖에 없어. 문을 뚫고 들어오는 칼을 맨손으로 막는 바람에 손에도 피가 철철 흘러. 그래도 초인적인 힘으로 문을 막은 채 버텼고, 다행히 문은 열리지 않았어. 정상진은 또 다른 공격대상을 찾아 자리를 떠나. 준기 씨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어. 그 지옥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했어. 칼이 무서워 연기가 나도 방 안에 숨어 있거나, 불이 더 무서워 방 밖으로 뛰쳐나가 거나. 둘 다 무서워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어. 소방대원들과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건 오전 9시. 그날 아침 화재와 함께 시작된 이 악몽은 무려 40분간 이어졌어. 이제 빨리 사람들을 구하고 범인을 잡아야 해. 그런데 현장에 온 구조대가, 범인이 누군지 알아 볼 수 있었을까? 소방관들은 일단 화재 진압부터 시작했어. 현장은 너무 참혹했어. 주인 잃은 신발과 물건들이 나뒹굴고, 바닥과 벽, 계단까지 핏자국이 선명해. 몇몇 방은 시커멓게 타서 누구 방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어. 소방관들은 불을 끄는 와중에도 방 하나하나 수색하며,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해. 3층을 다 확인하고 이어서 4층. 칼에 찔린 사람부터 양손에 화상을 입은 사람까지, 조심조심 부축하며 나오는데, 한 경찰이 그 화상 입은 남자를 유심히 봐. 차림이 왜 이래? 뭐야. 이거 다 피야? 옷이며 신발에 끈적한 피가 잔뜩 묻어있어. 그런데 칼에 찔린 상처는 없어. 이 사람이 바로, 범인 정상진이야. 그 짧은 시간에 무기들을 다 버리고, 피해자인 척 하며 4층에 숨어있던 거야. 그렇게 현장을 빠져나갈 뻔 했던 정상진은, 경찰에 검거됐어. 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6명이야. 5명이 정상진의 칼에 죽었고, 1명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추락사했어. 부상자도 7명이나 됐어. 준기 씨는 대수술을 받고 5일만에 겨우 의식을 되찾았어. 하루아침에 낯선 사람의 칼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충격과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내가 지금도 마음 아픈 게 뭐야. 그 피를 토하고 죽어갈 때, 얼마나 아빠를 찾았을 거냐 이거지. 천금같이 키워갖고 자식을 그렇게 보낼 때 오죽했겠어요. 내가 어려웠으니까. 학비를 제대로 못 줬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더 미치는 거에요 내가… -서병호, 서진 아버지 ▲ 살인마 정상진 말이 많아 별명이 종달새라던 정상진은, 왜 그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앵무새처럼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반복했어. 경찰 조사에서는 살기가 싫었다 , 세상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 라고 말하기도 했어. 자기가 살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는 게 무슨 말일까. 또 사람 몇 명을 죽이면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저를 죽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는 말도 했어. 경찰 손에 죽겠다는 사람이, 정작 현장에서 피해자인 척은 왜 한 건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현장에서 정상진의 노트가 발견됐어. 발견 당시 겉면에 시커멓게 탄 상태였는데, 안에 있던 글들은 훼손되지 않았어. 우리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재현해 봤어. 존재 가치성 없음 집 밖에서도 가치성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생쇼만 하다가 가는 거야 나 같은 태생은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거야 하는 일마다 한계에 부딪히고 삑사리 나고 -정상진의 메모 中 정상진의 메모를 보면, 큰 좌절감에 빠져있던 걸로 보여. 삶에 대한 의지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정상진은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정상진은 경남 합천에서 5남매 중 막내로 자랐어. 넷째와의 나이차는 아홉 살, 완전 늦둥이야. 초등학교 시절에는 몸집이 작고 성격도 소심해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대. 중학교 땐 구타를 당해 기절하는 일도 있었어. 그래서일까. 중1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해치기로 마음 먹어. 바로 자기 자신을.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어. 하지만 곧바로 발견됐고, 응급처치 후 깨어났어. 1년 후, 한 번 더 자살을 시도하지만 역시 살아남았어. 그 후로도 세 번이나 더 목숨을 끊으려 했어. 물론 정상진의 삶은 불우했어.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을 해칠 이유가 될 순 없어. 훨씬 더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데 전문가들은, 다른 건 몰라도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대. 자살과 타살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실제로 세로토닌이 상승해져 있는 공격성 자체는 똑같은데, 그 공격성이 날 향해서 공격하면 자해나 자살이 되는 것이고, 바깥으로 향하게 되면 그게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나 타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상황에서 누적이 된 스트레스가 단 한 번 적극적인 방향으로 전환이 되었는데 그게 엄청난 사고를 일으켰다 생각하고요. -임명호, 심리학과 교수 정상진의 별명이 '종달새'였다고 했지? 평상시의 정상진은 그리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어. (정상진이) 말하기를 좋아했는데요. 말을 받아주면 사람을 지겹게 해요. 아주 한시간 두시간 씩 물고 늘어져서… (평소 술을 자주 마셨냐는 질문에) 아니요 아예 안 먹어요. 걔가 술을 안 먹는다니까요. 내가 일을 하고 있으면 자기가 일 끝나고 지나가다 이제 고시원 들어가면 심심하니까 와서 떠들어요. 얘기를 안 받아주고 짜증 내면 그냥 가요. 평상시에 까불다가 내가 소리 한 번 확 지르면 바로 애가 떨어지고 소심한 애인데. 겁도 많고… -먹자골목 상인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같기도 해. 눈에 띄는 문제를 일으키거나, 끔찍한 범행의 징조를 보이진 않았어.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을 느낀 사람이 한 명 있었어. 바로 D고시원 총무. 고시원에서 정기적으로 소방 점검을 하는데, 정상진이 방문을 절대 열어주지 않았던 거야. 끝까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방 공개를 거부했대. 그러다 사건 발생 한달 전쯤, 참다못한 총무가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그 방을 보고는 한 10초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대. 방에서 뭘 봤길래? 5년 동안 한 번도 자기 방문을 누군가가 절대 못 열게 하는 거예요. 사고 터지기 한 달 전에 문 열었을 때, 장난감 총, 터보 라이터, 지포라이터, 인형, 이런 물건들이 꽉 차 있어요. 똑 같은 인형이 색깔만 다르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배열이 되어 있는 거예요. -고시원 총무 마치 인형가게처럼, 크고 작은 인형 수십개가 오와 열을 맞춰 전시되어 있었대. 그리고 정작 방바닥은 쓰레기가 가득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거지. 이 많은 인형들은 인형뽑기 기계에서 얻은 거야. 정상진은 인형뽑기에 빠져 있었어. 고시원 바로 앞 편의점에 그 기계가 있었는데, 어떤 날은 몇시간이고 그 앞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60만원까지 인형뽑기를 하는 것도 봤어요. 비가 오는데도 밖에서 3시간 동안 인형뽑기를 하기도 했어요. 주차장에서 번 월급을 3~4일만에 탕진하고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어요. -주변인들의 증언 정상진은 주차나 배달 일로 한달에 150~180만원 정도를 벌었어. 그런데 그 돈 대부분을 인형뽑기에 썼어. 최소 1천만원 이상은 썼을 거래. 왜 이렇게 정상진은 인형뽑기에 집착했을까? 전 인형뽑기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처한 상황이 굉장히 외롭고 사회적으로 박탈된 상황이었고, 상실감, 그리고 전혀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이런 사람으로 생각되고 있었을 때 인형뽑기에 집착을 한 것은 저는 탈출 수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진은 딱 그거 하나가 유일하게 도파민(흥분감)을 상승시킬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목숨 걸고 어쨌든 인형뽑기를 한 거고… -임명호, 심리학과 교수 인형뽑기를 과하게 하는 게 뭐가 큰 문제냐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정상진의 경우는 좀 달라. 인형뽑기에서 범행 도구들도 구했거든. 범행 당시 썼던 랜턴, 권총 모양 라이터 등을 모두 인형뽑기에서 뽑은 거야. 정상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 억울한 죽음의 이유 이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지막 행복한 순간을 위하여. 자극이 되어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이제야 저도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순간을 맞을 거 같습니다. 피로써 싸워. 내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내 인생 마지막 하이라이트. 멋지게 끝내자 마지막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상진 노트 中 뭔가 거창하게도 써놨지? 대량 살인을 계획한 범인들은, 허세 가득한 메시지를 종종 남긴대. 이 사건 1년 전에 있었던 미국 버지니아주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도 그랬어. 마치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자신의 행위가 엄청 정당한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알지. 그들은 그냥, 비겁하고 찌질한 범죄자에 불과하다는 걸. 정상진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알아? 저 거창해 보이는 메모들, 언제 썼을 거 같아? 무려 사건 발생 4년 전에 쓴 거야. 4년 동안 잠잠하다가, 왜 하필 그날 범행을 저지른 걸까. 너무 어이없는 이유가 있어. 정상진은 예비군 훈련을 계속 불참했어. 그럼 벌금이 나와. 이 벌금이 쌓이고 쌓여서 150만원이었대. 그런데 정상진은 그해 봄부터 무직 상태였거든. 벌금은커녕, 고시원 월세도 못 내고 휴대폰까지 끊길 상황이야. 그때 강남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벌금 미납으로 수배가 내려졌으니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그 출석 날짜가 바로, 사건 당일인 10월 20일 오전 10시였어. 출석일이 다가올수록 슬슬 걱정이 됐던 정상진. 그리고 그날은, 미납된 고시원비를 내겠다고 고시원 주인과 약속한 날이기도 했어. 하지만 돈은 없어. 그날 정상진은 새벽부터 일어났어. 검은색 건빵 바지에 검은색 상의를 입고, 칼을 챙겼어. 그리고 종이에 테이프를 감아서 나름 칼집도 만들었어. 허리엔 가스총을 차고, 권총 모형 라이터 2개는 어깨에 달았어. 검정 모자를 쓰고, 화재 속에서 시야 확보를 해줄 헤드랜턴을 장착했어. 마지막으로, 연기도 막고 얼굴도 가려줄 물안경과 마스크까지 착용했어.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정상진은, 자기방 침대에 라이터 기름을 뿌려. 그리곤 인형뽑기 기계에서 뽑은 모형 라이터로 불을 질렀어. 그 다음은, 복도에 나가서 칼을 움켜지고 기다렸던 거야. 겁에 질려 뛰쳐나올 사람들을. 정상진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들의 경우, 정신질환이나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 정상진도 조사 중에 누굴 찔렀는지 어떻게 찔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중학교 때 자살에 실패하고 나서 한달에 한 번 정도는 심각한 두통이 있었다 등의 말을 했대. 결국 정상진은 정신감정을 받게 돼. 그리고 전문가는 이렇게 진단했어. 정상진은 2년 이상 만성적인 우울증을 갖고 살아왔지만, 일종의 신경증일 뿐 현실감은 있는 상태이며 정신병질적 성격은 없어 보인다. 다행히 정신질환을 인정받지 못했어. 정상진은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 능력도 있었을 거래. 그럼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이 사건 범행이 피고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진 점, 그 범행 수단이 잔혹하고 무자비한 점,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진지한 참회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재범의 위험성이 매우 크고,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극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점,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판결문 中 정상진은 항소하지 않았고 그대로 판결이 확정됐어. 유가족들은, 법정 최고형을 받게 돼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기뻐할 수도 없었대. 우리나라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야. 정상진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어. 미집행 사형수로 감옥에서. 사형이란 소리 들어도 저는 담담했어요. 죽이지도 않을 텐데요 뭐. 지금 우리나라에 사형수가 얼마나 많아요. 근데 한 명도 안 죽이잖아요. 왜 비싼 세금을 가지고 밥 먹이고 잠재우고 놀리고 그러냐고요. 미치지 미쳐. 왜 내 새끼는 죽고 없는데, 정상진은 저렇게 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서병호, 피해자 유가족 제 동생이 교도관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에어컨 틀어주냐' 물어봤는데, 안 틀어준대요. 그나마 다행이다… 에어컨 안 틀어준다는 거에 제가 위안을 받아요. 그게 말이 돼요? 피해자들만 애가 타고, 속이 타고 미치고… -피해자 유가족 내 가족을 잔인하게 살인한 범인이,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 자고 안전하게 지내고 있어. 사형제도의 찬반을 논하자는 건 아니야. 유가족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자는 거야. ▲ 뒤늦게 드러난 문제들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범죄를 막긴 힘들어. 하지만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어. 이 사건에서도 그랬어. 가해자 정상진한테 집중한 사이에, 우리는 중요한 걸 하나 놓칠 뻔 했어. 바로 이 공간, 고시원.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한 유가족들에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얘기가 들렸어. 보니까 허가가 없어. 무허가예요. 그렇게 해서 고시원을 지어서 사람한테 돈을 받았으면 왜 책임이 없느냐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억울하단 얘기예요. -서병호, 피해자 유가족 논현동 D고시원은 무허가로 운영되고 있었어. 그런데 사실, 오해의 여지가 있어. 허가를 안 받은 게 아니라, 받을 필요가 없었던 거야. 독서실과 같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있어서, 신고만 하면 누구나 영업을 할 수 있었거든. 고시원의 용도는 고시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이야. 그런데 언젠가부터 서민들의 숙박시설로 이용되기 시작했어. 논현동 고시원 사건이 일어난 2008년, 전국에 고시원이 무려 5,500여개였대. 입주자만 20만 명에 달했어. 게다가 해마다 300개씩 새로 생겨. 그럼 정부나 국회에서,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고시원을 숙박업으로 규정하고, 관련 법안을 만들어 관리했어야지. 그런데 그냥 방치한 거야. 숙박시설이었다면 받았을 건축법이나 보건법이,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어. 그러니 고시원 업주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했겠지. 방 개수가 늘어나도록 통로는 더 좁게, 방은 더 다닥다닥 붙였어. 비상대피로는 만들 필요도 없어. 당연히 스프링클러도 없어. 그러니 창문으로 뛰어내리지. 법이 없으니까. '불법'이 아니라 '무법' 천지였던 거야. 사고가 일어날 수 밖에 없어. 논현동 고시원 사건이 일어나기 전 4년간, 고시원에서 화재, 방화로 숨진 사람만 60명이 넘어.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냐. 고시원 법에 대한 논의가 있긴 있었어. 하지만 매번 흐지부지된 거야. 그 사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났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어. 만약 정상진이 13명의 사상자를 낸 그날 그 곳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었다면? 그리고 비상대피로가 따로 있었다면? 복도의 폭이 30cm만 더 넓었다면? 단 한 명이라도 덜 다치고, 덜 죽지 않았을까. 유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고시원 주인과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 소방법 및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고시원 주인은 대형 로펌 변호사 여섯 명을 대동하고 나타나. 이 사람, 동네에서 어마어마한 자산가라고 소문이 자자했거든. 소송 결과는, 고시원 주인, 서울시 모두 '혐의 없음'. 예측 불가능한 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는 고시원 주인이나 관할 당국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야. 관련법이 없었으니까, 법의 위반이 아니라는 거지. 근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이 사건 직후에 고시원 관련법이 제정돼. 피난유도선,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고, 통로 폭도 90cm에서 최소 120cm 이상으로 강화됐어. 그렇게 논현동 고시원 사건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끝나버렸어. 유가족들은, 견디기 힘들만큼 슬픈데,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어.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 한 사람 두 사람,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 하지만 딸을 잃은 병호 씨는 그럴 수가 없었어. 횟집을 운영하던 병호 씨는, 도저히 다시 칼을 잡을 수가 없었어. 일을 못 했어요. 칼을 쳐다도 못 봤어요. 보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친다고 그러잖아요. 소름이 끼쳐요. 이 손이 떨려서 (칼을) 못 잡았어요. 그래서 오죽해서 아들이 '아빠 횟집 하지 마세요'. 4, 5년 그렇게 했었어요. 솔직한 얘기로 저녁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해요 요즘도. 왜 자식 안 보고 싶겠어. 딸이 죽은 날 비가 왔어요. 그래서 비만 오면 못 견뎠어요 내가… 비만 오면 나가서 술 퍼 마시고. 혼자 울다가 비 오면 미쳐갖고 흙탕물 둘러쓰고 집에 들어오고 그랬어요. -서병호, 서진 아버지 일을 놓으니 생활은 어려워지는데, 딸 생각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어느 날은, 정말 그래선 안 되는데, 한강 물에 뛰어 들었다가 간신히 끌려나온 적도 있었대. 범죄 피해 유가족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 ▲ 피해자의 권리 범죄 피해 유가족들 중엔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 병호 씨는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너무나 이해가 됐대. 그런데, 그런 병호 씨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어. 진이를 위해서라도 아버님이 힘을 내셔라 ,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가 돕겠다 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병호 씨를 돕겠대. 바로 이 분이야. 이 분은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는 현장을 찾아다녀. 그리고 모두가 범죄자의 신상, 증언, 처벌에 집중할 때, 피해자와 가족들을 챙겨. 혹시 너 SBS 드라마 '모범택시' 본 적 있어? 김의성 배우가 맡은 장성철 역할이 있어. 범죄 피해자들을 돕는 파랑새 재단의 대표. 그 모티브가 바로 이 분이야. 이용우 회장님. 드라마에선 택시회사를 운영하지만, 실제로는 꽤 규모 있는 문구업체의 대표야. 급작스럽게 치러야 하는 장례부터, 피해자, 유가족들의 심리 치료까지. 그 잊기 힘든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아. 회장님이 그림자처럼 도와주신 분이죠. 자기 사비를 빌려주고 그랬어요. 벌어다가 갚고 또 벌어다가 갚고. 그래서 그 분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죠. -서병호, 피해자 유가족 (범죄 피해자) 유족분들은 삶이 굉장히 어렵죠. 특히 생활을 책임지고 있던 가장이 살해당했다든가 또 가족 중에, 자식이 살해당했다든가 그럴 경우에는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 거잖아요. 삶이, 삶이 아니에요. 범죄자 잡아갈 때 '미란다 원칙' 하잖아요. 당신은 변호사 살 권리가 있다 얘기하지만 옆에 있는 피해자는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범죄자 인권만 있는 거예요. 피해자 인권은 없어요. 어디 가서 치료받아라 아니면 어디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걸 안 했던 거죠. 그래서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는 시기에 피해자들을 지원하겠다는 그런 취지로 해서 피해자 지원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용우, 한국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장 원래는 이 분이 사비를 털어서 이 일을 했는데, 지금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어. 무려 20년 넘게 활동해온 결과,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지원도 많이 달라졌어. 일례로, 피해 지원금도 논현동 고시원 사건 때보다 10배나 늘었대. 병호 씨는 이용우 회장님 덕분에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 10년이 조금 넘게 걸렸거든. 지금은 진도에서 횟집을 하고 있어. 병호 씨가 다시 횟집을 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 '묻지마 범죄'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생각해 보면, 범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말 같아. 정남규, 유영철,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들에 비해서 '묻지마' 살인범들은 잘 기억 못하잖아. 최근에도, 신림역, 서현역에서 비슷한 비극들이 계속 일어났지. 정말 묻지 말아야 할까? 아니지. 이런 사건일수록 그 실체를 똑바로 파악해야 해. 이런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는,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2차 피해가 심각해. 당신이 거기 있었으니까 당했다 , 목숨값 받으려고 쇼한다 는 악의적인 이야기도 들어. 그렇잖아도 무너진 가족들이 더 위축될 수 밖에 없어.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기피와 혐오 대신, 관심과 지원이 먼저래. '우리를 대신해서 당한 사람들' 이라고 여긴대. 이웃들은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국가가 100% 피해자 지원을 책임져.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이용우 회장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어. 우리나라 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외국에서는 옆집이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면, 다 가서 위로해주는 거예요. '춥지 않냐', '아픈 데는 없냐' 그러는데, 우리나라는 살인 사건이 나면, 그 집을 안 가는 거예요. 재수 없다고. 엄청난 문화 차이입니다. 어렵겠지만, 그 문화가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용우, 한국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장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고시원 화재, 뛰쳐나갔더니 칼 든 살인마가…'꼬꼬무', 논현동 방화 살인사건 조명 고시원 화재, 뛰쳐나갔더니 칼 든 살인마가…'꼬꼬무', 논현동 방화 살인사건 조명 등록일2023.10.19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강남 한복판 고시원에서 일어난 방화 살인 사건을 조명한다. 19일 방송될 '꼬꼬무'는 '옆 방 살인마' 편으로, 총 13명의 사상자를 낸 끔찍한 논현동 방화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는 2008년 10월. 서울 마포구에서 횟집을 운영 중인 병호 씨는 한창 바쁘게 저녁 장사를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은 대형병원 영안실. 딸의 시신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빠 홀로 애지중지 키워온 딸은 횟집 일로 바쁜 아빠의 식사와 옷을 살뜰히 챙기며 엄마 역할까지 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중국 유학까지 보냈었는데, 대학 생활 도중 잠깐 한국에 들어온 딸이 누군가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논현역 먹자골목 안에 자리한 D고시원이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시원엔 입주민만 무려 칠십 여 명이었다. 그 중엔, 병호 씨의 딸 진이도 있었다. 학비 대느라 힘든 아빠를 위해 몰래 강남 식당에서 일을 하던 딸은 아빠에겐 고모 집에 머물겠다고 하고 고시원에 들어왔다. 입주민 대부분이 근처 시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거나 취업 준비생들이었는데, 문제는 그들 중에 끔찍한 살인마도 섞여 있던 것이다. 오전 8시경. 뿌연 연기가 고시원 복도를 덮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방에 불이 난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뛰쳐나온 사람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희한한 차림의 한 남자였다. 온통 검정 옷에 검정 마스크, 물안경에 헤드랜턴까지 장착한 그의 손엔 긴 회칼도 들려 있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공격했고 그 미쳐버린 칼날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갔다. 40분간 이어진 잔혹한 범행은 무려 13명의 사상자를 낸 채, 경찰이 도착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범인의 이름은 정상진(31). 군 제대 후 쭉 논현동에서 고깃집 서빙, 주차, 배달 등을 하며 D고시원에서 지내온 사람이었다. 그를 지켜본 주변인들은 그의 범행 소식에 놀라며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상진은 학창 시절부터 무려 다섯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 그는 고시원 전체 점검 시기에도 절대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범행 한 달 전쯤, 그의 방을 강제로 열고 들어간 고시원 총무는, 방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과연 무엇을 본 것일지, 2008년 10월 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꼬꼬무'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를 함께 할 친구로는 배우 류승수, 그룹 여자친구 출신 예린, 가수 이석훈이 나선다. 류승수는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를 찾았다. 1년 정도 고시원에 살았다는 류승수. D고시원의 방의 개수를 단번에 맞추는가 하면, 내부의 비좁음에 공감하는 등 고시원 '잘알' 모먼트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범인의 속마음이 담겨있던 메모들부터 광적인 취미 생활까지 보고 듣게 된 류승수는 도무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는 소감 한마디를 남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린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방문했다. 순진한 얼굴로 다소 수줍게 등장한 예린은, 구구절절 적은 메모들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범인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는 반전 매력을 보여줬다. 끝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분노가 치솟는 듯 표정이 굳어지던 예린. 참다못해 비속어(?)를 내뱉으며 잔혹한 범인에 분노했다. 이석훈은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꼬꼬무'에 오랜만에 방문했다. 오늘의 이야기를 진지한 태도로 듣던 이석훈은, 범인 정상진의 되풀이된 자살 시도를 듣고 측근들은 뭐 한 건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텐데 라고 말했다. 그리고 최근 잇따라 벌어진 신림역, 서현역 무차별 살인사건을 떠올리며 요즘 아픈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몸도 정신도 건강한 게 최고 라며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했다. 사망자만 6명, 총 13명의 사상자를 낸 방화 살인 사건의 전모와 충격적인 범행동기가 밝혀질 '꼬꼬무'의 '옆 방 살인마' 편은 19일 밤 10시 20분 방송된다.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