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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한국은행 [인사] 한국은행 등록일2024.07.19 ◇ 부서장 이동 ▲ 금융통화위원회실장 임건태 ▲ 금융시장국장 최용훈 ▲ 금융결제국장 이병목 ▲ 발권국장 김기원 ▲ 국제협력국장 방홍기 ▲ 감사실장 정일동 ▲ 부산본부장 이한녕 ▲ 광주전남본부장 박완근 ▲ 인천본부장 최인방 ▲ 제주본부장 박구도 ▲ 강릉본부장 강환구 ▲ 포항본부장 남택정 ▲ 강남본부장 김병기 ◇ 1급 승진 ▲ IT전략국 김경욱 ▲ 인재개발원 정삼선 ▲ 감사실 서만호 ▲ 인사경영국 소속 강태수 ▲ 인사경영국 소속 송대근 ▲ 인사경영국 소속 신재혁 ▲ 인사경영국 소속 최정태 ◇ 1급 이동 ▲ 윤리경영실 서정민 ▲ 커뮤니케이션국 김규수 김근영 김봉기 ▲ 경제교육실 마남진 ▲ 인사경영국 홍철 ▲ 재산관리실 최낙균 ▲ 외자운용원 성광진 ▲ 경제연구원 류현주 ▲ 인사경영국 소속 윤성관 ◇ 2급 승진 ▲ 기획협력국 박정필 ▲ 금융통화위원회실 허현 ▲ IT전략국 박진성 ▲ 인사경영국 장세천 ▲ 조사국 김형석 이아랑 ▲ 통화정책국 이창기 ▲ 금융시장국 이종성 ▲ 국제국 이창헌 ▲ 국제협력국 윤수훈 ▲ 강남본부 홍승택 ▲ 인사경영국 소속 금재명 서정석 유영휘 이동규 이재원 임진수 ◇ 2급 이동 ▲ 기획협력국 강득록 박장호 ▲ 커뮤니케이션국 이상민 ▲ 경제교육실 박동준 ▲ IT전략국 안운섭 ▲ 인사경영국 김진국 ▲ 인재개발원 박준민 ▲ 경제통계국 박창현 ▲ 통화정책국 안성근 ▲ 금융결제국 이병학 최석기 ▲ 발권국 정복용 ▲ 국제협력국 송상진 ▲ 외자운용원 조석방 ▲ 강원본부 최석현 ▲ 인천본부 이인규 ▲ 경기본부 이범호 ▲ 강남본부 김천선 ▲ 인사경영국 소속 김상규 ◇ 3급 승진 ▲ 정책보좌관 이승현 ▲ IT전략국 김부강 ▲ 조사국 남석모 주현도 ▲ 경제통계국 최정윤 ▲ 금융시장국 송은영 ▲ 국제국 윤승완 ▲ 런던사무소 반진희 ▲ 외자운용원 이재광 ▲ 감사실 배상인▲ 광주전남본부 윤효진 ▲ 대전세종충남본부 손창남 ▲ 충북본부 박기정 ▲ 인천본부 김성원 ▲ 제주본부 송상윤 ▲ 경기본부 이한별 ▲ 강릉본부 이창건 ▲ 인사경영국 소속 김민수 ◇ 3급 이동 ▲ 기획협력국 조세형 ▲ 비서실 김보경 ▲ 커뮤니케이션국 임금선 ▲ 인사경영국 조용범 ▲ 조사국 곽법준 박병걸 ▲ 경제통계국 김성자 김성준 남민호 부상돈 이현영 ▲ 금융안정국 구자천 나영인 오석은 이윤숙 이현진 조은아 ▲ 통화정책국 김범서 박승문 ▲ 금융결제국 고경철 권동휘 송윤정 신성욱 장경수 ▲ 발권국 강호석 김수영 ▲ 국제국 김규희 김민규 정진우 황문우 ▲ 뉴욕사무소 김좌겸 ▲ 홍콩주재 최강욱 ▲ 국제협력국 노원종 ▲ 경제연구원 김태경 장근호 ▲ 감사실 박정민 엄주영 이상철 ▲ 부산본부 이윤복 임진호 ▲ 대구경북본부 오진하 ▲ 목포본부 전성범 ▲ 광주전남본부 문제철 ▲ 전북본부 김경근 ▲ 강원본부 홍정림 ▲ 인천본부 김보람 ▲ 경남본부 김도완 ▲ 울산본부 박용민 ▲ 강남본부 이향미 ▲ 인사경영국 소속 최인협 ◇ 4급 승진 ▲ 기획협력국 강원중 ▲ 윤리경영실 정주상 ▲ IT전략국 송형구 이제영 ▲ 경제통계국 민상오 박진 ▲ 국제협력국 허이슬 ▲ 부산본부 박태준 이송희 ▲ 대구경북본부 김세용 김현웅 ▲ 대전세종충남본부 이상원 ▲ 강원본부 홍지연 ▲ 울산본부 신준식 ▲ 인사경영국 소속 남명훈 ◇ 4급 이동 ▲ 공보관 이승훈 ▲ 기획협력국 남기훈 이태검 최지원 ▲ 비서실 이준원 ▲ 윤리경영실 박현주 ▲ 지속가능성장실 김태현 ▲ 커뮤니케이션국 김현태 이규환 ▲ 인사경영국 박신영 ▲ 조사국 정희완 ▲ 경제통계국 김민우 오지윤 최수훈 최혜정 ▲ 금융안정국 김민지 이준성 ▲ 통화정책국 노유철 박상순 이굳건 ▲ 금융시장국 김민정 어승훈 함건 ▲ 금융결제국 김성수 원창희 이가영 ▲ 발권국서지연 표상원 ▲ 뉴욕사무소 전은희 ▲ 동경사무소 최호식 ▲ 런던사무소 고지성 ▲ 북경사무소 설범영 ▲ 외자운용원 정용준 ▲ 경제연구원 송일환 ▲ 감사실 강석창 ▲ 광주전남본부 김정애 ▲ 강원본부 성연수 ▲ 인천본부 이동재 이성호 ▲ 경기본부 김민정 ▲ 경남본부 이진섭 ▲ 강릉본부 이영환 ▲ 인사경영국 소속 전현정 정영철 ◇ 5급 승진 ▲ 인사경영국 정행자 조화란 한정희 ▲ 발권국 김정희 ▲ 대구경북본부 이성희 ▲ 목포본부 염오순 ▲ 전북본부 황금실 ▲ 대전세종충남본부 김종예 ▲ 강원본부 김은주 ▲ 제주본부 조영해 ▲ 경기본부 장정미 홍승순 ▲ 강릉본부 김소희 ▲ 포항본부 김난희 ▲ 강남본부 선우유신
백작만 된다면 …돌아온 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백작만 된다면 …돌아온 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등록일2024.07.17 &<앵커&> 브로드웨이 4대 뮤지컬 시상식을 휩쓴 '젠틀맨스 가이드'가 3년 만에 국내 팬들에게 돌아왔습니다. 파격적인 내용을 재치 있게 그려냈습니다. 심우섭 기자입니다. &<기자&>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 광림아트센터 BBCH홀 / 10월 20일까지] 1909년 영국 런던, 낮은 신분에 가난하게 살아가던 몬티 나바로는 어느 날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연인 시벨라는 몬티가 백작이 되기 위해선 앞 순서의 후계자 8명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며 그를 자극합니다. 결국 몬티는 다이스퀴스 가문 백작 자리에 오르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하고, 여덟 명의 후계자들을 차례로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단 15초 만에 의상을 바꾸고 1인 9역으로 등장하는 퀵체인지가 큰 볼거리입니다. [정상훈/다이스퀴스역 : 1인 9역을 하다보니까 거기서 유발되는 웃음이 굉장히 많고, 아니 9명을 죽이는데 웃겨? 이게 지금 아이러니하잖아요. 소재 자체가 파격적이고 그런데 재미있어요.] 첫 뮤지컬에 나선 배우 김범은 주인공 몬티역을 맡았습니다. [김 범/몬티 나바로역 : 어렸을 때 막연하게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가서 봤던 뮤지컬이 아직도 기억이 나거든요. '오페라의 유령'이었는데 아, 나도 언젠가는 저런 곳에서 저런 분위기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로 참여를 같이 하게 되었고요. 굉장히 재미있고 신선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 [음악공간 : 플레이리스트 /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 소극장]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 도파민 해독이 필요한 사람들. 200석 소극장이 음악감상실로 변신해 도심 속 온전한 휴식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스윙과 블루노트 등 재즈 음악이 감상실을 가득 채웁니다. 임희윤 평론가는 직접 선곡한 다양한 음악들을 선보이며 그 뒷얘기까지 재미있게 전합니다. [임희윤/문화평론가 : 드러머가 5박자를 계속 치고 있고 폴 데스먼드가 멜로디를 개발을 했어요. 그래서 완성한 곡이 '테이크 파이브'고.] 관객들은 가장 편안한 자세에서 음악을 감상하고 또 사색에 빠지고 때로는 달콤한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황소라/마포아트센터 문화정책부 과장 : 저희는 음악 감상실을 표방하고 있고요. 음악 공간에서 듣는 여러 가지 장르들을 통해서 자신의 취향을 알아갔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다음 음악공간은 9월 25일과 10월, 11월 말에 오후 1시부터 열립니다. (영상편집 : 최혜영, VJ : 오세관)
[E포토] 김범, '여전히 로맨틱한 남자' [E포토] 김범</font>, '여전히 로맨틱한 남자' 등록일2024.04.24 [SBS연예뉴스 | 백승철 기자] 배우 김범이 24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린 한 뷰티 브랜드 포토콜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포토] 김범, '내 품 안에 그녀의 립스틱' [E포토] 김범</font>, '내 품 안에 그녀의 립스틱' 등록일2024.04.24 [SBS연예뉴스 | 백승철 기자] 배우 김범이 24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린 한 뷰티 브랜드 포토콜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현장]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 [문화현장]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김범</font>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 등록일2023.08.08 [FunFun 문화현장] &<앵커&> 문화현장, 오늘(8일)은 전시 소식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또 다르게 볼 수는 없는지, 현대미술가 김범은 회화와 설치, 영상을 망라하며 상식과 통념의 실체를 파고듭니다. 이주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김범 개인전 : 바위가 되는 법 / 12월 3일까지 / 리움미술관] 망치의 손잡이 가운데가 불룩합니다. 임신한 여인의 의인화로 사물에 생명을 부여한 것입니다. 반면에 칠판을 바라보며 비디오 강의를 듣고 있는 사물들은, 자신들이 도구에 불과하다는 교육을 열심히 받고 있습니다. 현대미술가 김범은 이렇게 상식과 통념을 거부합니다. 사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사자의 외형만 본뜬 종이의 뒷면은 거칠고 어설프게 구성한 내장 기관입니다. [유지원/리움미술관 큐레이터 :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실제 사자와 괴리가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이 얄팍하고 피상적인지 경종을 울리는 그런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노란 비명 그리기&>, 2012 : 화면에 활기가 생길 때까지 붓 터치를 해줍니다. 아아아아!] 소리인 '비명'에 색채 '노랑'을 부여하고 그것을 회화로 표현한다는 설정입니다. 농담처럼 가벼우면서도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습니다. [김성원/리움미술관 부관장 : 김범 작가는 아주 많이 생각하고, 아주 적게 표현한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우리의 인지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단번에 일깨워주는 작업이죠.] 기하학적인 문양의 인테리어는 쥐와 박쥐 패턴의 반복을 통해 시각적 인지를 비틉니다. 거대한 미로 퍼즐 역시 압도적인 미적 체험 이면에 문제 해결 본능을 자극합니다. [김성원/리움미술관 부관장 : 특유의 재치로 우리를 웃게 만들지만, 우리에게 자기 성찰의 장을 열어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회화와 설치, 영상 모두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작품들로, 개념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이지만 한 땀 한 땀 수고를 아끼지 않는 치열함이 돋보입니다. (영상편집 : 정성훈, VJ : 오세관)
김범, 아시아 팬미팅 개최…도쿄에서 마닐라까지 김범</font>, 아시아 팬미팅 개최…도쿄에서 마닐라까지 등록일2023.07.07 배우 김범이 아시아 5개국에서 팬미팅을 개최한다. 7일, 소속사 킹콩 by 스타쉽 측은 김범이 오는 8월 25일(금)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아시아 팬미팅 'Between U and Me'를 개최한다. 이번 팬미팅은 그동안 많은 사랑을 보내준 글로벌 팬들에게 화답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로,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린다 라고 전했다. 공개된 포스터 속 김범은 화사한 무드 속에서 완벽한 비주얼을 빛내 시선을 끌어당긴다. 특히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의 달콤한 눈빛에서 팬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더불어 팬미팅 타이틀 'Between U and Me'는 김범의 영문명인 'BUM'을 활용한 것은 물론, 너와 나 사이의 비밀을 이야기할 때 쓰이는 말로 오로지 팬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김범의 바람을 담고 있다고. 김범은 그동안 장르를 불문하고 무한한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해 왔다. 그는 MBC '거침없이 하이킥', KBS 2TV '꽃보다 남자', JTBC '빠담빠담',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 수많은 대표작을 남기며 믿고 보는 배우의 저력을 입증했다. 특히 김범은 최근 JTBC '로스쿨', tvN '고스트 닥터'부터 지난 6월 종영한 tvN '구미호뎐1938'까지 법정물, 판타지, 로맨스를 완벽히 소화, 많은 이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 가운데 김범은 이번 팬미팅 'Between U and Me'를 통해 팬들이 원하는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전반적인 콘셉트, 다양한 코너 등 기획에 직접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모를 선보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한 김범은 아시아 5개 도시에서 글로벌 팬들과 만남을 가진 이후 서울에서 국내 팬들과 함께 대미를 장식할 예정으로 더욱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김범의 아시아 팬미팅 'Between U and Me'는 8월 25일(금) 도쿄를 시작으로, 9월 3일(일) 자카르타, 9월 16일(토) 방콕, 9월 22일(금) 마닐라, 9월 23일(토) 세부에 이어 마지막으로 10월 9일(월)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출처: 킹콩 by 스타쉽&>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김범, 아시아 팬미팅 개최…도쿄에서 마닐라까지 김범</font>, 아시아 팬미팅 개최…도쿄에서 마닐라까지 등록일2023.07.07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김범이 아시아 5개국에서 팬미팅을 개최한다. 7일, 소속사 킹콩 by 스타쉽 측은 김범이 오는 8월 25일(금)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아시아 팬미팅 'Between U and Me'를 개최한다. 이번 팬미팅은 그동안 많은 사랑을 보내준 글로벌 팬들에게 화답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로,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린다 라고 전했다. 공개된 포스터 속 김범은 화사한 무드 속에서 완벽한 비주얼을 빛내 시선을 끌어당긴다. 특히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의 달콤한 눈빛에서 팬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더불어 팬미팅 타이틀 'Between U and Me'는 김범의 영문명인 'BUM'을 활용한 것은 물론, 너와 나 사이의 비밀을 이야기할 때 쓰이는 말로 오로지 팬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김범의 바람을 담고 있다고. 김범은 그동안 장르를 불문하고 무한한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해왔다. 그는 MBC '거침없이 하이킥', KBS 2TV '꽃보다 남자', JTBC '빠담빠담',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 수많은 대표작을 남기며 믿고 보는 배우의 저력을 입증했다. 특히 김범은 최근 JTBC '로스쿨', tvN '고스트 닥터'부터 지난 6월 종영한 tvN '구미호뎐1938'까지 법정물, 판타지, 로맨스를 완벽히 소화, 많은 이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 가운데 김범은 이번 팬미팅 'Between U and Me'를 통해 팬들이 원하는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전반적인 콘셉트, 다양한 코너 등 기획에 직접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모를 선보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한 김범은 아시아 5개 도시에서 글로벌 팬들과 만남을 가진 이후 서울에서 국내 팬들과 함께 대미를 장식할 예정으로 더욱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김범의 아시아 팬미팅 'Between U and Me'는 8월 25일(금) 도쿄를 시작으로, 9월 3일(일) 자카르타, 9월 16일(토) 방콕, 9월 22일(금) 마닐라, 9월 23일(토) 세부에 이어 마지막으로 10월 9일(월)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출처: 킹콩 by 스타쉽&> ebada@sbs.co.kr
문빈, 최근 라이브 방송 보니…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 행복해야지 문빈, 최근 라이브 방송 보니…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 행복해야지 등록일2023.04.20 아스트로 멤버 문빈이 스물다섯 짧은 생을 마감해 충격을 준 가운데, 최근 팬들과 한 라이브 방송이 주목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9일 저녁 8시 10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문빈이 숨져있는 걸 매니저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찰은 문빈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빈은 지난달 국내 팬콘서트를 시작으로 월드투어를 진행 중이었다. 지난 8일 방콕에서 진행된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으며, 다음 달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오는 5월 부산에서 진행되는 '드림콘서트'에도 출연자로 확정되는 등 활발한 활동 중이었다. 문빈은 방콕 콘서트 이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마음이 지친 모습을 보여 팬들을 안타깝게 한 바 있다. 그는 고백할 게 있는데 사실 많이 힘들었다. 팬콘서트 때부터 티가 났던 것 같다. 그래서 팬들에게도 많이 미안했다. 고 말했다. 이에 함께 라이브 방송을 한 멤버가 팬분들도 이해해 주실 거야. 라며 문빈을 다독였다. 이에 문빈도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이제 운동도 하고, 하나둘씩 놓치고 있는 걸 하려고 한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 내가 행복해서 팬들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며 자신을 다잡는 모습을 보였다. 문빈은 부모님의 권유로 아역배우 생활을 시작했으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김범 아역을 맡기도 했다. 이후 2016년 판타지오에서 만든 그룹 아스트로로 데뷔,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멤버 산하와 함께 유닛 '문빈&&산하'로도 활동 중이었다. 여동생 역시 오랜 연습생 생활을 한 끝에 그룹 빌리로 데뷔했다. 두 사람은 올초 방영된 예능프로그램 '호적메이트'에 함께 출연했다. 이 방송에서 문빈은 연습생 시절을 힘들게 버틴 동생을 향해 수아가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는 애틋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SBS연예뉴스 강경윤 기자)
문빈, 최근 라이브 방송 보니...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 행복해야지 문빈, 최근 라이브 방송 보니...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 행복해야지 등록일2023.04.20 [SBS 연예뉴스 ㅣ 강경윤 기자] 아스트로 멤버 문빈이 스물다섯 짧은 생을 마감해 충격을 준 가운데, 최근 팬들과 한 라이브 방송이 주목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9일 저녁 8시 10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문빈이 숨져있는 걸 매니저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찰은 문빈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빈은 지난달 국내 팬콘서트를 시작으로 월드투어를 진행 중이었다. 지난 8일 방콕에서 진행된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으며, 다음달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오는 5월 부산에서 진행되는 '드림콘서트'에도 출연자로 확정되는 등 활발한 활동 중이었다. 문빈은 방콕 콘서트 이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마음이 지친 모습을 보여 팬들을 안타깝게 한 바 있다. 그는 고백할 게 있는데 사실 많이 힘들었다. 팬콘서트 때부터 티가 났던 것 같다. 그래서 팬들에게도 많이 미안했다. 고 말했다. 이에 함께 라이브 방송을 한 멤버가 팬분들도 이해해 주실 거야. 라며 문빈을 다독였다. 이에 문빈도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이제 운동도 하고, 하나둘씩 놓치고 있는 걸 하려고 한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 내가 행복해서 팬들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며 자신을 다잡는 모습을 보였다. 문빈은 부모님의 권유로 아역배우 생활을 시작했으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김범 아역을 맡기도 했다. 이후 2016년 판타지오에서 만든 그룹 아스트로로 데뷔,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멤버 산하와 함께 유닛 '문빈&&산하'로도 활동 중이었다. 여동생 역시 오랜 연습생 생활을 한 끝에 그룹 빌리로 데뷔했다. 두 사람은 올초 방영된 예능프로그램 '호적메이트'에 함께 출연했다. 이 방송에서 문빈은 연습생 시절을 힘들게 버틴 동생을 향해 수아가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는 애틋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kykang@sbs.co.kr
[꼬꼬무 찐리뷰] 끝내 시신으로 돌아온 故 고미영…목숨 걸고 약속 지켜낸 김재수 대장 [꼬꼬무 찐리뷰] 끝내 시신으로 돌아온 故 고미영…목숨 걸고 약속 지켜낸 김재수 대장 등록일2023.02.24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3일 방송된 '목숨을 건 약속-철의 여인과 매니저 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유이, 김범, 카라 한승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오른 김재수 대장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모여 있는 히말라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8,000m가 넘는 14개의 산을 '14좌'라고 불러. 8,000m 위의 세계에서는 생명체는 살 수 없고, 오로지 눈과 얼음, 바위만이 존재해. 산소도 평지의 1/3 밖에 안 돼. 몇 발자국만 걸어도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숨이 가빠져. 게다가 기온은 영하 60도에 바람은 시속 200km.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극한 지대야. 그래서 8,000m 이상의 세계를 '신의 영역', 혹은 '죽음의 지대'라고 불러. 하지만 이곳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 때는 2009년 9월 25일. 한 남자가 눈 높인 설산을 오르고 있어. 이름은 김재수, 나이는 48세야. 그가 오르는 산은 히말라야에 있는 안나푸르나. 높이는 세계에서 10번째인데, 사망률이 1위야.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산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어. '8,000m 중에서 안나푸르나보다 치명적인 산은 없다. 안나푸르나를 무사히 등정한 세 명의 등반가가 있을 때, 한 명은 시도하다 가다 죽는다'는 말도 있어. 김재수 씨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산을 오르고 있는 거야. 정상을 향해 가는데, 예고 없이 위기가 찾아왔어. 어디선가 '꽝!'하는 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에서부터 눈이 쏟아져 내리는 게 보였어. 눈사태였어. 쏟아지는 눈의 속도는 무려 시속 200km. 휩쓸리면 끝이야. 꽝!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위를 쳐다보니, 산이 하나도 안 보이고 눈사태가 앞으로 덮치는 거예요. 처음에는 피해야지, 했는데 피할 수가 없죠. 그 반경이 수백 미터인데 그걸 어떻게 피해요. 까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죽음이라는 걸 직접 눈앞에서 보니까.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저 멀리에서부터 눈이 흘러내려요. '온다 온다 온다' 했을 때, 김재수 대장님이 '피해!' 하는데. 다 죽었구나 그냥… -문철한, 당시 원정대원 피할 수도 없는 눈사태에 대원들 모두가 피켈을 눈 속에 깊이 박고는 꽉 붙잡았어. 제가 70m 정도 허공을 날았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100m 정도 날아갔어요. 죽기를 각오하고 갔는데 정말 막상 죽음 앞에 딱 서니까 살기 위해서 발버둥 쳤죠.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이 위험한 곳을 김재수 대장은 왜 찾아간 걸까. 김 대장은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 누군가와 굳게 약속한 게 있거든. 그 약속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 고미영과 김재수 대장의 만남 2007년 봄, 김재수 대장은 에베레스트 원정을 준비하고 있었어. 후배들과 원정대를 꾸리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이번 원정대에 한 명을 더 합류시켜 줄 수 있겠냐고 묻는 후원사의 전화였어. 합류를 원하는 대상은 여성 클라이머였어. 암벽등반을 하는 여성 선수가 에베레스트 원정에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했대. 바로 이 사람이야. 이름은 고미영, 당시 39세였어. 전국 등반 경기 9년 연속 우승, 아시아 챔피언십 클라이밍 대회 6년 연속 우승, 암벽 등반 세계랭킹 5위, 빙벽 등반도 세계랭킹 5위. 그야말로 명실상부 스포츠 클라이밍계 최고의 선수야. 그런데 고미영 선수가 암벽등반을 잘하는 건 알겠는데, 높은 산도 잘 오를 수 있을까? 보통 암벽등반은 100m 달리기에 비유하고, 고산 등반은 마라톤으로 비유해. 단거리 선수가 마라톤으로 종목을 바꾸는 게 쉽겠어? 그리고 고산 등반은 팀플레이야. 혼자 뛰는 선수가, 팀플레이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김 대장은 이런 고민들에 고미영 선수의 합류를 처음에는 거절했어. 그랬더니 고미영 선수가 직접 김 대장한테 전화를 걸어왔어. 그녀는 할 수 있다고, 꼭 같이 하고 싶다고 거듭 부탁했어. 우여곡절 끝에 김 대장은 허락했고, 히말라야로 떠나는 날 공항에서 고미영 선수를 처음 만났어. 아직도 히말라야에 대해 잘 모르는 철부지구나 싶었어요. 친구들이 많이 배웅을 왔던데, 거기서 웃고 떠들고 하는 걸 봤을 때. 과연 히말라야 등반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사람인가, 걱정이 됐습니다. 서로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근육의 형태가 다릅니다. 그래서 많이 걷고 참고 견디는 게 과연 어디까지일까? 적응을 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을 많이 했죠.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김 대장은 여전히 고미영이 걱정됐어. 그런데, 히말라야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그 생각은 바뀌었어. 고미영 선수가 고소 적응 훈련을 하는데, 적응이 빨라. 또 성격이 쾌활하고 친화력도 좋아. 팀 하고도 자연스럽게 금방 잘 어울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가 강해. 고미영 선수는 그게 가장 돋보였대. 이 정도 힘든 걸 제가 견디지 못하고서 어떻게 8,000m를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힘들지만 좀 더 힘을 내서 끝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시 고미영 그래서 김재수 대장은 '이 정도면 같이 오를 수 있겠다' 생각했고, 고미영 선수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 도전에 나섰어. 그리고 고미영 선수는 많은 사람의 우려 속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어. ▲ '14좌 완등'의 꿈을 같이 꾸게 된 두 사람 등정 후 기분 좋게 하산하는 길, 고미영은 김 대장에게 넌지시 이런 이야기를 했어. 8,000m 14좌 완등이 제 꿈이에요 라고. 당시 8,000m 14좌를 모두 오른 여성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었어. 고미영 선수는 아무도 이루지 못한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그러면서 김 대장한테 한 가지 부탁을 해. 대장님이, 제 매니저가 되어 주세요. '등반 매니저'는 선수가 등반에만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해. 등반 코스를 연구하고, 일정을 짜고, 먹을 식량과 장비를 준비하는 것 등이 모두 매니저의 업무야. 그리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며 등반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매니저의 일이야. 당연히 정산까지 같이 올라가야 해. 오르는 선수와 똑같은 일을 하는 거야. 사실 고미영은 앞서 혼자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다가 경험 부족으로 실패를 맛봤어. 그래서 고산 등반 경험이 많은 김재수 대장한테 도와달라고 한 거지. 등반 매니저가 되어 달라는 이 부탁, 김대장은 딱 잘라 거절했어. 이미 히말라야를 은퇴할 나이가 지났던 나이였습니다. 47세였으니까 그때 당시에. 등반 매니저를 맡아서, 어떤 사람의 8,000m 꿈을 이뤄줄 만큼의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어요.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게다가 김 대장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시간적 여유도 부족했어. 김 대장은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 며 고미영에게 충분히 알아듣게끔 상황을 설명했어. 그런데도 고미영은 굽히지 않아. 대장님이 꼭 매니저가 되어주면 좋겠다 고 계속 부탁했어. 한참 옥신각신 하다가, 고미영이 한 발 물러서면서 그러면 다음 산까지만 같이 가주세요 라고 부탁했어. 그것까지 거절하기 좀 그렇잖아? 김 대장은 그 한 번은 함께 해주기로 결정했어. 그렇게 두 사람은 또 다른 8,000m 산, 브로드피크를 함께 오르게 됐어. 두 달 뒤 2007년 7월. 두 사람은 수시로 떨어지는 낙석과 눈폭풍을 해치고 정상에 섰어. 고미영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적었어. 온 힘을 다해 올랐던 정상을 자꾸만 돌아보았다. 혼자였다면 힘들었으리라. 더불어 사는 인생 함께 가는 파트너가 있기에 가능했다. 원정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은 김재수 대장과 나의 공통점이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당시 고미영이 쓴 글 中 그럼 김재수 대장의 생각은 어땠을까? 여전히 매니저를 맡을 생각을 안 했을까? 브로드피크에서 저도 생각이 조금 바뀌었죠. (고미영이) 등반에 임하는 자세는 항상 진지했어요. 목표의식이 항상 뚜렷했고, 실제로 등반 가게 되면 '두 번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 '한 번으로 끝내겠다'는 집념이 보였죠. 이걸 보면 '할 수 있는 만큼은 도와주자'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사람의 꿈을 한 번쯤 이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 인생의 선배로서, 한 사람의 최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일조를 한다면, 그거 역시 의미 있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브로드피크 이후에 매니저를 맡기로 했었죠. 이제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게 된 거야. '8,000m 14좌 완등'이라는 꿈을. ▲ 공무원이었던 그녀가 산을 타게 된 이유 3개월 후, 두 사람은 다음 목표 시샤팡마 정상에 올라. 고미영에게는 이게 4번째 8,000m 산이었어. 사실 고미영의 원래 직업은 공무원이었대. 누구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거지. 22살 봄날, 가평에 있는 명지산으로 야유회를 갔는데, 그때 본 산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거야. 그때부터 미영 씨는 전국의 산을 다니기 시작했어. 그러던 어느 날, 북한산에 갔다가 갈림길을 마주하게 돼. 왼쪽 길은 백운대 방향, 길이 편해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야. 오른쪽은 만경대 방향, 길이 험해서 선택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이야. 그런데 고미영 씨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오른쪽 길을 택했어. 가파르고 험한 길이야. 운명처럼 그 길에서 본 풍경이 고미영의 눈을 사로잡았어. 만경대에서 암벽 타는 사람들을 봤고, 그 순간 온 마음을 뺏기고 만 거야. 그렇게 고미영의 암벽등반이 시작이 된 거지. 주말마다 북한산 가고, 거기서 암벽타는 모습 보고 완전히 반했다고 하더라고요. 침낭을 챙겨가서 산에서 자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한몇 년을 그렇게 한 거 같아요. -고미란, 고미영 언니 왼쪽은 미영 씨가 처음 산에 다닐 때의 사진이야. 체중이 70kg을 넘었어. 그런데 암벽등반을 시작하고 완전히 바뀌어. 20kg 이상 빼면서 완벽한 근육질 몸매가 된 거야. 오전에는 조깅, 수영, 헬스, 오후엔 인공 암벽에 올라가 구슬땀을 흘렸어. 클라이밍 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면서 해외에도 나가게 되니,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없었어. 결국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암벽에 입문하게 됐어. 당시 미영 씨는 일기에 이런 글을 적었어. 실패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깨닫는 것은 몇 배 더 고통스럽다. 실패를 웃음으로 넘겨버릴 줄 아는 여유가 인생에서는 중요한 것이다. -고미영의 일기 中 대부분 자신에게 당부하는 다짐들이야. 이 일기에 자주 나오는 단어들은 '꿈', '노력', '인내', 그리고 '도전'이었어. 그렇게 고미영은 세계적인 선수가 됐어. 그리고 39세가 되던 해, 아무도 이루지 못한 도전을 시작한 거야. ▲ 산에서 동료를 잃는다는 것 지금까지 4개의 봉우리에 올랐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해. 히말라야에 오르기 힘든 겨울 시즌에도 멈추지 않았어.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에 이어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까지 올라. 아시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올랐잖아? 내친김에 7대륙 최고봉 완등, 세븐 서미츠(Seven Summits)에도 도전한 거야. 이렇게 거침없이 등정을 이어가는 동안, 고미영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 물건이 있어. 바로, 이니셜 M 자가 새겨진 목걸이야. 첫 등정을 함께 하고 김재수 대장이 선물한 거야. 'M'의 의미는 산(Mountain)의 M, 자신의 이름 미영(Mi-young)의 M이야. 그녀의 꿈을 상징하는 물건이면서, 자신을 지켜주는 부적처럼 생각했던 거 같아. 그리고 2008년 봄, 두 사람의 8,000m 도전이 다시 이어졌어. 세계 4위봉, 로체 등정에 성공한 두 사람은, 곧바로 다음 목표로 향해. 하늘의 절대 군주라 불리는, K2. 칼날처럼 솟은 능선, 예측 불가능한 강풍, 그리고 눈보라까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자, '죽음을 부르는 산'이라 불리는 곳이야. 2008년 8월 1일, 두 사람을 포함한 총 5명의 원정대가 강풍과 눈보라를 뚫고, K2의 가장 높은 곳에 서게 돼. 원정대는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어. '보틀넥'이란 곳을 지날 때, 히말라야 등반가들이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어. 바로 '세락'이 무너지는 소리야. '세락'은 눈이 모여 커다란 빙벽을 이룬 걸 말해. 크기가 엄청나. 거대한 빌딩 만한 것들도 있어. K2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히는 곳을 지나갈 때, 반드시 이 아래를 지나가야만 하는데 언제 빙벽이 무너질지 몰라. 고미영 씨는 이 아래를 지날 때의 기분을 마치 러시안룰렛을 하는 기분 이라고 했대. 총알이 언제 발사될지 모르는 것처럼, 세락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 이 세락은 지난 54년 동안 딱 두 번 무너졌대. 그런데 하필 이날 세 번째로 무너져 내린 거야. 거대한 세락이 그 밑을 지나고 있는 원정대를 덮쳤어. 김 대장과 고미영 씨가 지나가고 나서 벌어진 일이야. 그럼 뒤따라 내려오던 원정대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 사고로 한국팀 원정대원 3명과 셰르파 2명, 총 5명이 목숨을 잃었어. 외국팀까지 포함하면 모두 11명이 사망했어. 고산 등반 역사에 꼽히는 최악의 참사가 일어난 거야. (고미영 씨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고 베이스캠프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우울해했고 힘들어했어요. 제 눈으로 직접 본 사고였고, 제가 팀을 이끌었을 때 첫 번째 사고였기 때문에, 특히 더 힘들었어요. 산이라는 것에 대해, 참 가혹하구나… 항상 대원들이 생각나고, 생각하면 또 가슴이 미어지고 그러죠. -김재수, 원정대장 등반을 함께 하는 동료들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극한의 상황 속 믿고 의지하는 존재니까. 후배들을 잃은 김재수 대장은 그 충격으로 산을 떠날 생각까지 했어.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바로 고미영 씨였어. 여기서 포기하면 먼저 간 후배들은 어쩌냐,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셔야 한다 는 고미영의 말에, 김 대장은 고민 끝에 49제를 마치고 다시 짐을 쌌어.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로 한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7번째 산, 마나슬루로 향했어. 2008년 10월 14일. 늦어진 일정 탓에 강추위가 앞을 가로막아. 코와 발에 동상을 입었지만, 결국 정상에 올라. 두 사람이 그 정상에 두고 온 게 있어. K2에서 영면한 세 후배들의 사진을 묻고 왔대. 영혼이라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 서로의 몸에 묶은 로프…위기에도 꺾이지 않았던 마음 8,000m 14좌 중에서 7좌를 등정하자, 언론의 관심은 더 뜨거워져. 14좌를 모두 오른 인물은 전 세계 14명. 그중 여성 산악인은 한 명도 없었어. 누군가 해낸다면 역사에 남는 거야. 전 세계에서 고미영을 주목하기 시작했어. 언론사의 인터뷰, 행사가 줄을 이어. 그런데 인터뷰를 하던 그녀가 김대장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더래. 대장님이 왜 우냐 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해. 등반을 준비하고 코스를 정하고 다 대장님이 하잖아요. 난 그저 이를 악물고 정상에 오를뿐 인데, 나 혼자만 그 영광을 차지하는 거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김재수 대장은 매니저야. 정상에 오른 고미영 씨를 찍은 카메라 뒤에는 늘 김재수 대장이 있었어. 그녀가 무사히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또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그림자 역할을 해 온 거야. 하지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화려한 행사장에서 그는 주인공이 아니지. 그게 미안하다며, 고미영 씨는 늘 김재수 대장에게 감사인사를 돌렸어. 김재수 대장은 그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대. 함께 오른 봉우리가 늘어날수록 두 사람의 신뢰도 점차 두터워졌어. 그리고 운명의 2009년. 봄이 되자 두 사람은 다시 히말라야로 향해. 세계 5위 마칼루, 세계 3위 칸첸중가, 세계 7위 다울라기리까지. 봄 시즌에만 3개의 8,000m 봉우리에 올라. 한 시즌 최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거야. 물론, 아찔한 고비도 있었어. 다울라기리 때 한 번에 정상에 가고자 시도했었는데 거의 8,100m까지 갔다가 다시 철수했어요. 날이 너무 안 좋아가지고. 이래서 사람이 죽는구나를 느꼈어요. 고미영 씨가 환상, 환각,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큰 바위를 보고 '텐트가 있다'고 그러고. 그 바위 위로 반짝반짝 별이 빛나니까, '사람들 있는 불빛이 보인다'고 그러고... -김재수, 원정대장 고소 증상, 즉 산소부족으로 감각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거야. 게다가 악천후 때문에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야. 김재수 대장은 정말 큰일 났구나 싶었대. 심지어 이들을 도와주던 셰르파는 포기하고 먼저 산을 내려가버렸어. 현장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된 거야. 절체절명의 상황, 두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로프를 한 2m 정도 절단했죠. 그리고 고미영 씨하고 저하고 몸을 묶었습니다. 묶어서 같이 하산하면서 (고미영) 뒤에서 내려오게 됐죠. -김재수, 원정대장 등반 대원끼리 로프로 연결하는 걸 '안자일렌'이라 불러. 누군가 추락하더라도 다른 대원들이 붙잡아 주는 건데, 다섯 명 이상이 되어야 한 사람을 지탱할 수 있대. 그런데 단 둘이서 안자일렌을 한 거야. 만약에 한 사람이 앞에서 추락하거나 뒤에서 추락한다면, 그건 같이 희생당하는 방법 밖에 없지. 지쳐서 더 이상 갈 수 없어 앉아 있을 때면, '같이 옆에 앉아서 죽어 줄게'. 그러니까 그냥 이야기하자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 그런 심정이죠. -김재수, 원정대장 극한의 상황이지만, 절대 실수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우리 둘 다 같이 무사히 내려가자는 단단함 마음. 그 덕분인지 두 사람은 무사히 캠프까지 내려왔어. 이대로 철수를 할지 고민하던 때, 고미영 씨는 이대로 포기하지 말고 한 번 더 시도해 보자 라고 말했어. 그 위기를 겪고도 고미영은 꺾이지 않았던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정상에 도전했고, 결국 등정에 성공해. 이로써 두 사람은 14좌 중에 10개의 산을 등정했어. ▲ 멈춰진 고미영의 도전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 씨는 휴식을 취하고 다음 산에 올라. 이번에는 세계 9위봉, 낭가파르바트야. 이 산에는 '킬러 마운틴'이라는 별명이 있어. 등정 난이도가 높고 위험해서 많은 산악인을 집어삼킨, 이른바 '악마의 산'이야. 이 산이 얼마나 오르기 힘든지 보여준 일화가 있어. 1953년, 29세의 헤르만 불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낭만파르바트에 올랐어. 그는 홀로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도전했고, 오랜 시간 눈 폭풍을 뚫고 사투 끝에 정상에 올랐어. 문제는 그때부터였어. 내려가기에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고, 눈보라는 심해지고 기온은 뚝뚝 떨어졌어. 게다가 아무런 장비도 지니고 있지 않았대. 그는 앉을 공간조차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선 채로 밤을 지새웠고, 우여곡절 끝에 날이 밝자 캠프로 내려왔어. 내려온 그를 보고 동료들은 깜짝 놀랐어. 헤르만 불의 모습이 완전 달라져 있었거든. 불과 41시간 만에, 29살 청년이 노인으로 변해버린 거야. 그만큼 낭가파르바트에 오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 거야. 이런 산이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의 다음 목표야. 등반은 순조로웠어. 베이스캠프를 떠나, 캠프1, 캠프2, 캠프3, 마지막 캠프4에서 정상 등반에 나섰어. 수직에 가까운 급경사,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온몸으로 헤쳐 나갔어. 거기다 갑자기 강풍까지 몰아쳐. 이렇게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더 갈 데가 없어. 어느새 가장 높은 곳에 서게 된 거야. 2009년 7월 10일, 드디어 11번째 봉우리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올랐어. 근데, 문제가 생겼어. 야간에 하산하게 됐는데 날씨가 급격히 나빠져. 눈보라 때문에 한 치 앞도 안 보여. 짐을 지고 가던 포터까지 이상증세를 보여. 저산소증으로 착란증이 일어난 거 같아. 심지어 무전기까지 말썽이야. 베이스캠프와 교신을 할 수가 없어. 간신히 캠프4까지 내려왔지만, 모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야. 거기서 간단하게 차 한잔 마시고, 김재수 대장은 안전을 위해 미리 설치해 둔 고정 로프를 확인하려고 먼저 산을 내려왔어. 도중에 로프가 없는 구간이 5m 정도 있었지만, 특별히 위험한 구간은 아니었어. 먼저 캠프2에 도착한 김재수 대장은 물을 끓이기 시작해. 곧 도착할 지친 대원들에게 따뜻한 차를 주려고 한 거야. 그런데 다른 원정대의 셰르파가 김 대장에게 이상한 소리를 해. 당신네 대원, 좀 전에 아래로 떨어졌어요 라고. 김 대장은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물었어. 그랬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고미영이 추락했다는 거야. 사고 지점은 캠프2에서 불과 100m 거리였어. 고정 로프가 없던 5m 구간에서 사고가 난 거야. 다른 대원들이 발로 디딜 곳을 만들면서 내려갔는데, 가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휘청 하면서 넘어지는 고미영의 모습이 보였다는 거야. 황급히 붙잡으려 했지만 닿지 않았고, 손 쓸 새도 없었대. 경사면으로 미끄러져 내려간 그녀는 1,500m 협곡 아래로 사라지고 말았어. 그때의 제가 받았던 충격, 마음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불과 몇 미터 사이에서 이렇게 된다는 게…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김재수, 원정대장 아무도 예상 못한 사고. 실종 소식은 바로 가족들에게 전해졌어. 그때 제가 연락을 받았거든요. 실종됐다고 그러니까, 진짜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말이 안 나왔죠 더 이상. 뉴스를 켜니까 (실종 소식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고미란, 고미영 언니 그 뒤에 김재수 대장님이 전화 왔더라고요. 대장님이 우시니까… 우리도 울고 그랬죠. -고석균, 고미영 오빠 고미영 씨가 처음 고산 등반에 도전했을 때, 로프가 끊어져 추락한 적이 있었대. 그때, 척추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도, 그 몸을 이끌고 정상에 올랐던 사람이야. 그녀는 걱정하는 가족들한테 늘 이렇게 말했대. 난 절대 안 죽어. 혹시 그런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올 테니까 걱정 마 라고. 가족들은 그 말을 믿고 싶어서 실낱 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어. 헬기를 동원해 수색을 시작했어. 히말라야에서 실종자를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한 거야. 세 번을 수색했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어. 보다 못한 김재수 대장이 직접 헬기를 탔어. 사고지점을 돌며 찾아봤지만, 역시 보이지 않아. 이제 연료가 부족하다고, 돌아가야 한대서 할 수 없이 돌아가려던 그때,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더래. 김재수 대장은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어. 그런데, 뭔가가 눈에 들어와. 저 가파른 경사면 위에 뭐가 있어. 자세히 보니, 하늘색이야. 바로 그녀가 입고 있던 옷 색깔이야. 가까이 가보니, 맞아. 새하얀 눈 위로 고미영이 보여. 정상을 바라보는 자세로 누워 있었어. 고미영이 실족한 곳은 캠프2 부근으로, 6,200m 지점이야. 발견된 곳은 캠프1 부근, 5,300m 지점이야. 무려 1,000m 가까이 추락한 거지. 생존을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야. 그런데 시신 수습도 쉽지 않아. 히말라야에는 등반가의 시신이 등산로 곳곳에 남아있어. 데려가고 싶어도 데려갈 수가 없거든. 심지어 고미영이 있던 곳은, 깎아지듯 가파른 경사면이라 헬기도 접근하기 어려워. 게다가 갑자기 눈보라가 불어와서 구조작업은 중단되고 말았어. 그렇게 며칠이 지나, 살아있을 거란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어. 김재수 대장과 대원들은 어떻게든 고미영 씨를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했어. 쉴 새 없이 낙석이 쏟아지고, 언제 눈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야. 다들 목숨을 걸고 구조에 나선 거야. 제가 지금까지 등반하면서 제일 위험을 느꼈던 때가 그때였던 거 같아요. 그 지역이 얼음벽에 돌들이 박혀있는 데예요. 머리만 한 돌들도 있고 주먹만 한 돌도 있고. 근데 햇빛이 나니까 이 돌들이 다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다 지나가더라고요. 제 옆으로. -문철한, 당시 원정대원 그렇게 목숨 걸고 수습한 고미영 씨의 시신을 팀원들이 번갈아 안고 절벽을 내려왔어. 이때 걸린 시간이 무려 13시간.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시신을 수습한 대원들은 목놓아 울었어. 먼저 혼자 내려와서… 정말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닌 거 같습니다. 여러 사람들한테 피해도 많이 줬고… 너무 힘듭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게 조금 위안은 되는데. 내 평생 어떻게 삽니까. 이래 가지고…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김재수 대장은 고미영 씨의 유해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어. 그리고 장례식 내내 고미영 씨의 곁을 지켰어. 고생 많이 했어 이제 편하게 쉬어. 정말 미안해. 내가 약속 못 지켜서… 그가 슬퍼한 이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였대. 8,000m에서 단둘이 남게 됐을 때, 안자일렌을 묶으며 했던 그 약속. 누가 되든, 혼자 죽게 놔두지 않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후회였어. 그렇게 고미영의 도전은 11번째 봉우리에서 멈추고 말았어. ▲ 결국 지켜낸 마지막 약속 두 달 뒤, 김재수 대장은 인천공항을 찾았어. 그의 목에는 낯익은 목걸이가 걸려있어. 첫 등정을 마치고 고미영에게 선물했던, 고미영이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던 그 M 목걸이였어. 김 대장은 고미영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새로운 약속을 했어. 혼자 살아남았으니까. 그 어떤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세 개 봉우리에 대해서는 정말 안전하고 완벽한 등반을 하면서 당신에게 8,000m 14개 봉우리를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있다면 지켜봐 주십시오…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그녀의 유품을 목에 건 김재수 대장은 안나푸르나로 가려는 거야. 다른 산악인들은 모두 말렸대. 지금 그 마음 상태로 가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아무도 김 대장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어. 낭가파르바트에서 함께 했던 문철한 대원도 함께 가기로 했어. 그렇게 김 대장은 고미영 씨가 오르지 못한 나머지 3개의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 먼저 안나푸르나로 향했어. 김재수 대장은 고미영의 사진을 옷 왼팔에 넣었어. 그녀와 함께 한다는 의미로. 아까 초반에, 안나푸르나에 오르다가 눈사태를 맞았던 대원들 기억나지? 그게 바로, 김재수 대장과 대원들이 고미영 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나푸르나에 오른 거야. 그럼 눈사태를 맞은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때 당시, 안나푸르나에 함께 했던 문철한 대원의 실제 헬맷이야. 깨진 헬맷만 봐도, 당시 눈사태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가지? 결국 두 사람은 안나푸르나를 뒤로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포기는 몰랐어. 어떻게든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2010년 여름, 김재수 대장은 또 다른 8,000m인 가셔브룸 1봉, 2봉 정상에 올랐어.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고미영의 사진을 묻었어. 혼자가 아닌 함께 정상에 올랐다는 의미로. 이제 남은 산은 하나, 뼈아픈 실패를 맛봤던 안나푸르나야. 두 사람의 약속을 완성하는 종착지였어. 2011년 봄. 김재수 대장은 다시 한번 안나푸르나에 도전해. 밤새 내린 눈 때문에 한걸음을 내딛는 것도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져.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지만 멈출 수 없어. 한 걸음은 고통, 한 걸음은 희망. 그렇게 주문을 외우면서 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마침내 저 앞에, 정상이 보여. 김재수 대장은 그 자리에 멈췄어. 그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 생각에 눈물이 울컥 차올라서 앞이 잘 보이지 않더래. 잠시 후 다시 걸음을 내걸었고,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어. 지금 전 대원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습니다. 많이 성원해 주고 도와준 많은 분들 고맙게 생각하고… 약속을 지키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김재수, 원정대장 8,000m 14좌 완등. 그녀의 못다 한 꿈은 김재수 대장이 이어받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된 거야. 김재수 대장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14좌를 완등한 인물로 이름을 올리게 됐어. 비록 고미영은 11번째 봉우리에서 멈춰 섰지만, 그녀의 꿈을 이어받아 마침표를 찍게 된 거야. 모든 여정을 마친 김재수 대장은, 뭔가를 유족들에게 돌려줬어. 바로 이거야. 고미영의 목걸이야. 고미영이 사랑했던 산 Mountain의 M,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Mi young의 M. 언젠가 고미영은, 왜 산에 오르냐 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어. 일단은 제가 좋으니까 가는 거고. 그리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거니까 가는 거고. 산에 가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냐, 전 엄마의 품속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거기 안겨 있으면 떠나고 싶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고 싶고. 언제든 다른 데 열심히 다니다가 안겨도 언제든 안아주는 그런 엄마의 품 속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고미영 씨와 김재수 대장의 관계는, 처음에는 원정대장과 대원, 그 후에는 14좌 도전자와 매니저, 그리고 같은 꿈을 꾸는 동반자였어. 이들 사이에는 그 무엇보다도 단단한 유대감이 있었어. 김재수 대장은 말해, 고미영 씨를 잊고 싶지 않다고. 잊고 싶지는 않아요. 기억하고 싶어요. 하지만 슬프게 기억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평상시에 웃던 모습, 후배들에게 씩씩하던 모습, 그리고 자신 있어하던 모습. 그런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8,000m의 높은 산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발 디뎌볼 수도 없는 곳이야. 모두들 각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잖아? 어쩌면 그것이 모두가 오르고 싶은 산이 아닐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