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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다시 발라드에 빠졌나? [스프]
등록일2025.11.26
깊어가는 가을, 거리를 물들이는 낙엽과 단풍은 올가을 발라드의 선율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일렁이며 물들인다. SBS &<우리들의 발라드&>와 JTBC &<싱어게인4&> 방송이 끝나면 무명의 경연자들이 부른 발라드가 놀라운 속도로 음원 차트인을 하기도 하고 참가자들의 영상은 100만 뷰 이상의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최종 파이널 전을 앞둔 &<우리들의 발라드&>와 우승자들의 윤곽이 잡히고 있는 &<싱어게인4&> 출연자들의 화제성은 코로나 직후 대중가요계를 점령한 트로트 장르 위주로 재편된 음악 예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신선한 얼굴을 찾는다는 취지가 무색해진 포화상태에 이른 트로트 경연 시장에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서랍 속 잠들어있던 발라드가 다가와 우리의 어깨를 두드린다. &<우리들의 발라드&>가 보여준 날것의 힘, 세대를 뛰어넘은 명곡의 귀환 평균 연령 18.2세라는 참가자들의 나이는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지향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십대의 청춘이 부르는 8,90년대 발라드 명곡들. 과거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의 콘셉트와도 유사하지만 슈가맨이 얼굴 없는 가수와 시대를 풍미한 명곡을 선정해 현재 뮤지션들이 트렌디하게 편곡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세대간의 융합과 이해를 도모한 프로그램이었다면 &<우리들의 발라드&>는 자신의 태어나기 전 세상에 나온 부모 세대가 사랑했던 곡들을 소화하는 틴에이저들을 조명하고 그들을 집중 발굴한다. 아이돌 연습생, 트로트 신동으로 발탁되어 어린 나이에 데뷔 준비를 했던 참가자들과 다른 뼛속까지 발라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신인 발라더들의 무서운 등장, 제작진은 무조건 신선함에 승부를 걸었다. 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신선한 얼굴을 찾았고 알고 보니 이미 이들은 수백만 뷰 조회수를 가진 화제성과 인지도를 보유한 잠재력 있는 신인들이었다. 더 큰 무대에서 노래를 하기 위해 기타 하나 매고 서울로 상경한 제주 소녀가 보여준 날것의 힘은 발라드의 본질인 '마음을 노래하는 서정시'와 자기 고백의 메시지를 담아 발라드가 가지고 있는 근원을 다시금 전달했다. 두 번째로 주목할 점은 기존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공식을 전복시킨 제작진의 시도다. &를 연출한 정익승 PD와 &<흑백 요리사&>를 성공시킨 모은설 작가의 색다른 전략은 무대 세트부터 나타난다. 방청석을 무대를 바라보게 만든 후면 배치가 아닌 소라고둥의 나선형으로 제작해 어느 방면에서나 참가자를 볼 수 있는 탑백귀라는 키워드의 탄생. 몇 시간을 서서 홀로 진행하는 MC가 아닌 자연스레 탑백귀의 한 명으로 활약하는 전현무의 활용, 탑백귀 140명 방청객들이 자신이 선택한 최고의 음악을 투명 레이블에 담아 추억을 설정한 디테일한 무대 장치, 단순히 오디션 서바이벌에 그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발라드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돌이키게 만드는 '발라드의 품격'을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수없이 탄생했다 소멸되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꾀했다. 각 주마다 '내 인생의 첫 발라드', '이럴 땐 이 발라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발라드' 등 챕터별 키워드를 정하고 노래 이전에 그 발라드에 얽힌 탑백귀 대표단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들려주며 단순히 이 프로가 지향하는 바가 10대 발라드 꿈나무를 발굴해 내는 것이 아니라 중장년 세대가 간직한 발라드에 대한 소중한 추억과 더불어 '보는 음악'에서 벗어나 '듣는 음악으로서 리스너의 기능'까지 부여하고 결국 '느끼는 음악'의 가치를 재조명했다는 점이다. 빅데이터 형식으로 이별, 첫사랑, 짝사랑, 위로, 성장 등 키워드를 띄우고 연관 곡들을 LED로 띄우며 함께 그 시절의 추억을 향유하는 시간. 발라드 곡의 가사를 함께 음미하며 화면에 가사가 올라가는 순간 자극적인 영상에 밀렸던 텍스트, 글의 힘, 가사의 힘을 믿는 세대들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무의미한 후렴구의 반복과 공격적인 가사, 후크 송들에게 빼앗겼던 그 시절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 우리들의 발라드는 그 지점을 공략한다. 텍스트의 힘을 보여주고, 퍼포먼스에 지치고 피로해진 우리의 눈과 귀를 다시 정화하고 리스너라는 역할을 되돌려준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들의 발라드&>가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감성적 접근이다. 9명의 전문가들은 평가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참가자들을 격려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전문가로서 평가하는 것을 넘어 부모의 입장, 가요계 선배의 입장에서 힘든 관문을 넘어 도전하는 경연자들을 위로하고 다독인다. 윤상, 정재형 등 발라드 전문가들의 따뜻한 조언과 과거 참가자들처럼 청춘의 모습을 선사했던 차태현과 박경림과 같은 이들이 이제 부모가 되어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평가나 감상의 모습과 근본적으로 다른 참여와 실천, 깊이 있는 '대화'의 본질을 전달한다. 차태현이 퇴장하는 출연자 뒤로 '친구 잘 사귀고 담배 피우지 말고'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박경림이 이제는 돌봄의 대상이 바뀌었다고 말해주는 순간 지켜보는 관객들은 알 수 없는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풀어야 할 숙제들도 보인다. 경연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위해 사전 제작진들에 의해 조율되는 참가자들의 자율성과 연령대가 낮아진 미성년자 대상 방송의 경쟁 구도, 일부 출연자들에 대한 감성적 애정 표현이 다른 출연자들에게 느껴질 소외감도 우려된다. 그런 점을 잘 극복한다면 &<우리들의 발라드&>는 분명 오디션 음악 예능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 클리셰를 정통으로 부숴버리는 것, 지금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의 반갑고도 용감한 회귀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리뷰] 문유강X연준석, 가장 젊고 뜨거운 '아마데우스'…대학로의 미래가 밝다
등록일2025.11.03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라이벌 관계는 픽션이지만 다양한 콘텐츠로 사랑받았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모차르트는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은 불세출의 스타였지만 대중문화 콘텐츠로 더 각광받은 건 살리에리를 중심에 둔 픽션이다. 사람들은 천재의 비범함보다 2인자의 콤플렉스와 질투에 더 큰 공감을 보냈다. 우리 모두는 범인(凡人)으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다가 조용하게 세상을 떠나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 극작가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손에서 탄생한 희곡 '아마데우스'는 1979년 영국 내셔널 시어터 올리비에 홀에서 초연된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1981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 돼 토니어워즈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4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을 석권했다. 국내에서는 2018년 초연했으며 2020년 재연, 2023년 삼연을 한 바 있다. 2년 만에 돌아온 연극 '아마데우스' 캐스트 중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역대 가장 젊은 살리에리, 아마데우스 페어인 문유강(27)과 연준석(28)이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동문이기도 한 두 사람은 2019년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나란히 대학로에 데뷔한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각기 다른 매력으로 무대를 꽉 채웠다. 연극의 타이틀을 '아마데우스'지만, 이 작품은 살리에리에 관한 이야기다. 천재 아마데우스를 향한 범재 살리에리의 끝없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신을 향한 원망 등을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여기에 모차르트의 짧지만 화려했던 삶, 그리고 인생 말미의 불운까지도 조명한다. 스물일곱 살의 배우 문유강은 노년의 살리에리로 무대 올라 중년의 살리에리를 거쳐 다시 노년의 살리에리로 공연을 닫는다. 이미 한 차례 공연한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이대를 거스르는 캐스팅은 모험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문유강은 주인공에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와 주연의 무게감을 즐길 줄 안다. 단단한 발음과 발성을 기반으로 감정의 강약, 고저를 조절하며 살리에리의 결핍과 상처와 분노를 표현해 냈다. 155분 극 내내 빼곡히 등장하는 문유강은 자아분열에 가까운 살리에리의 심리를 다층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의 시선을 한 데 모은다. '어나더 컨트리'로 데뷔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홀리 이노센트', '나의 아저씨' 등 매년 한 편 이상의 연극을 하며 필모그래피를 다져온 문유강은 빠른 속도로 정상급 배우로 도약하고 있다. 탄탄한 기본기와 타고난 스타성을 갖춘 이 배우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5년 후가 궁금하다.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극이다. 그러다 보니 모차르트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그려졌다. 연준석은 시대를 앞서간 신동이었으나 향락에 빠졌고 기행을 일삼았으며 유약했던 천재의 비극적 말로를 다채로운 연기로 표현했다. 캐릭터 특성상 화려한 테크닉을 동반한 연기가 필수적이었다. 모차르트의 등장신에는 대부분 피아노가 등장한다. 연준석은 모짜르트에겐 영감 놀이터이자 노동의 족쇄이기도 한 피아노를 무대 삼아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영화 캐릭터와 TV 더빙 연기에서 구축된 시그니처인 경박스러운 웃음소리를 활용하면서 보다 에너제틱하게 무대를 휘젓고 다녔다. 이런 역동성은 천재의 요절이라는 비극성을 더욱 강화했으며, 후반부의 섬세한 감정 연기로 방점을 찍었다. 특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상황에서 살리에리와 함께 라크리모사(Lacrimosa)를 완성해 나가는 장면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극에서도 명장면이다. 모차르트의 명곡을 뮤지컬 못지않은 구성으로 다채롭게 사용하며 서사를 채운 '아마데우스'만의 특성은 이 신에서도 돋보였다. 문유강과 연준석, 두 배우의 앙상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젊고 뜨거운 에너지였다. 일반적으로 경험과 연륜을 나이에 비례할 수밖에 없지만 배우에겐 늘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젊은 패기가 주는 강렬한 에너지와 기운이 온전히 객석으로 퍼진 155분이었다. '아마데우스'는 11월 23일까지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