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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해외 기술규제 애로 142건 해소…작년보다 2배 이상 늘어 올해 해외 기술규제 애로 142건 해소…작년보다 2배 이상 늘어 등록일2025.12.10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오늘(10일) 서울 엘타워에서 &'제12회 기술규제 대응의 날&' 행사를 열고 기술규제 대응 유공자와 논문 공모전 수상자에게 정부 표창을 수여했다고 밝혔습니다. 국표원에 따르면 올해 142건의 해외 기술규제 애로를 해소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지난해(63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해외 기술규제 분석을 확대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및 양자 협의체 등을 통해 국가 간 논의를 강화한 데 따른 결과라고 국표원은 설명했습니다. 자원순환 및 에코디자인 관련 규제에 대해 정부와 공동 대응한 오진형 LG전자 책임연구원, 완구 시험절차 간소화 방안 등을 제시해 중소기업 기술규제 개선에 기여한 김수환 중소기업과협동조합연구원 소장 등 총 24명이 정부포상을 받았습니다. 10회 무역기술장벽 논문 공모전 부문에선 &'유럽연합(EU) 배터리 규정의 WTO 합치성 분석&'이라는 시의성 있는 주제로 기업·정부 차원의 균형 있는 대응 전략을 제시한 서울대 학생팀이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김대자 국표원 원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더 충실히 반영해 수출 상대국의 기술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런닝맨' 글로벌 인기 여전…4년 만에 귀환한 베트남판, 현지 폭발적 반응 '런닝맨' 글로벌 인기 여전…4년 만에 귀환한 베트남판, 현지 폭발적 반응 등록일2025.10.20 4년 만에 귀환한 '베트남 런닝맨'이 여전한 인기를 누리며 현지 최고 예능임을 입증했다. 지난 4일 HTV7을 통해 공개된 '베트남 런닝맨 시즌3(Ch?y ngay đi)'의 첫 회 '첫 사냥(The First Hunt)' 편은 방송 4일 만에 베트남 주간 예능 콘텐츠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온라인 누적 조회수는 현재 약 900만 회로 1,000만 회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고, 또한 실시간 검색 1위, 소셜SNS 반응 지수에서도 상위 1위를 기록하는 등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잡으며 성공적인 포문을 열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시즌1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트남 톱스타' 쩐탄(Tr?n Thanh)이 복귀하는 등 화려한 캐스팅 또한 주목받고 있다. 쩐탄은 베트남 박스오피스 사상 최고 기록을 두 번이나 갈아치운 이력이 있는 국민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베트남 국민 스타다. 현지 시청자들은 쩐탄의 복귀로 더 빛을 발하게 된 신규 멤버 간 케미와, 영화적 편집과 스릴감 넘치는 게임 연출 등 전반적인 제작 퀄리티에 높은 만족도를 드러냈다. 전 시즌보다 훨씬 치열한 토요일 프라임타임에 편성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오리지널 '런닝맨'의 저력을 입증한 결과라는 평가다. '베트남 런닝맨 시즌3' 연출을 맡은 김동욱 PD는 쩐탄을 비롯한 베트남 출연진들의 끝없는 열정에 놀랐다. 앞으로 반전에 반전을 더 할 이야기들이 준비돼 있으니 기대해 주셔도 좋다 며 이 추세로라면 베트남 예능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갈 수 있을 것 이라고 밝혔다. SBS 스튜디오프리즘이 베트남 현지제작사인 FOREST STUDIO와 공동제작한 '베트남 런닝맨 시즌3'는 SBS가 2019년부터 이어온 '베트남 런닝맨'의 지속적 성과이자, 국내 예능 포맷이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현지화 성공을 이어가는 대표 레퍼런스로, 이번 시즌 역시 한국 예능 제작 노하우와 베트남 현지 정서를 잘 결합해 냈다. 앞서 '베트남 런닝맨' 시즌1은 '2019년 올해의 베트남 예능'을 차지했고, 시즌2 역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SBS 스튜디오프리즘 글로벌사업센터 김수환 팀장은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베트남 런닝맨'이 한류 콘텐츠 확산의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내년도에 태국, 필리핀 등 다른 국가에서 선보일 '글로벌 런닝맨' 공동제작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라고 전했다.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꼬꼬무 찐리뷰] 임산부 폭행에 성폭력까지…악마 같았던 철거 용역 적준, 아직까지 사과는 없다 [꼬꼬무 찐리뷰] 임산부 폭행에 성폭력까지…악마 같았던 철거 용역 적준, 아직까지 사과는 없다 등록일2025.09.12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방송된 '사라진 나의 집, 그리고 적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베이비복스 출신 배우 윤은혜, 가수 KCM, 배우 채서진이 출연했습니다. (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특별한 기록이 담긴 사진 가수 故 김광석. 이 사진 속 김광석과 함께 있는 인물의 이름은 임종진. 한 언론사에서 사진 기자로 일했던 그는, 오랫동안 실력 있는 사진 작가로 활동했어. 이라크 전쟁터, 북한 등 남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어. 북한엔 6번이나 다녀와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도 그의 이름을 알 정도였대. 전 사진기자로 10여 년 활동했고,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 사회에 여러 형태로 빚어지고 있는 현상들에 관심이 많아져서, 이런 거에 제 몸이 늘 따라가더라고요.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빈민촌 같은 곳에 많이 다니고 장애를 지닌 분들에 대해 관심 많이 갖게 되고. 이런 분들을 사진으로 남겨서, 세상이 이런 분들에게 좀 더 알려지거나 삶이 개선되거나 뭐 이런 바람으로 그때는 사진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임종진, 사진작가 예전부터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다는 임종진 작가는 주로 인물사진을 촬영했어. 인물의 표정이나 몸짓이 찍힌 사진을 통해서 사람들의 사연을 알리고 싶었대. 그래서 그는 '사연 전달자'라고 불리기도 했어.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있어. 바로 이 사진이야. 故 김수환 추기경을 찍은 사진이지. 이 사진 속에는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사연이 담겨 있어. 임종진 작가는 지금도 이 사진들을 찍던 그 순간을 잊지 못 한대. 그의 시선을 따라서, 사진 속 그날로 돌아가 볼게. ▲ 도원동에서 일어난 사건들 때는 1998년 3월. 서울의 한 월간지 사무실이야. 당시 종진 씨는 이곳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었어. 정신없이 마감을 하던 그때, 종진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서울 용산구 도원동에서 한 남자가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야. 마감해야 해서 사진 정리하고 넘겨야 하고. 마감이 하루 이틀 정도밖에 시간이 안 남은 상황이었는데 연락이 온 거죠. 도원동에서 화재 사고, 화상 사고가 났다… 정말 불같이 또 화가 솟아서, 이거는 우리가 사진을 남겨서 실어야 되겠다. 그날 기사를 넘겼어야 하나, 다음날 오전에는 무조건 넘겼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래야지 책이 월간지가 나오니까. 근데 '이거는 무조건 실어야 된다' 해서. 스톱을 시켜놓고 병원으로 갔죠. -임종진, 사진작가 카메라를 들고 병원 응급실로 간 그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어.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그 남자는 신음을 내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의사 말로는 80% 죽음이고, 20% 소생이라고 하는데. 보면 막 물이 질질 흐르고, 좌우지간에 보질 못해. 사람으로서는. -화상 환자 가족 화상을 입은 사람은 27세 청년 백 씨. 전신 3도 화상에 불이 기도로 들어가 숨도 쉬지 못하는 상황이야. 어떻게 된 일일까? 뒤에서 뭐가 뒤통수를 치는데 앞에서 불이 번쩍하더래요. 그러면서 이제 정신을 잃었대요. 정신을 잃어서 누웠는데 뭐가 화끈하더래요. 온몸이. 화끈하고 정신이 아찔했는데, 깨어나보니 병원이랍니다. -화상 환자 가족 그런데 이날 도원동에서 다친 사람, 백 씨뿐만이 아니야. 인근 병원에는 예순 살 이 씨가 응급수술을 받고 있었어. 갈비뼈가 비장을 뚫고 다리 한쪽이 두 동강 나는 큰 부상을 입었어. 이 씨 말에 따르면, 그날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폭행을 당했대. 한 명은 뒤통수를 맞은 뒤에 전신 화상을 입었고, 또 한 명은 비장이 파열될 만큼 폭행당했어. 이들이 그날 겪은 일은, 임종진 씨가 찍은 사진과 함께 월간지에 기사로 실리게 됐어. &<누가 기절한 젊은이의 등에 화염방사기를 쏘았나&> 3월 30일 새벽 용산구 도원동 재개발 지구에서 두 사람이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한 청년은 온몸에 중화상을 입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온몸에 골절상을 입었다. 이 모든 일은 용산구 도원동 재개발 지구 철거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야. '철거촌', 본 적 있어? 지금 서울 곳곳에 즐비한 높은 아파트들. 이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전, 그 자리에는 소시민들이 사는 작은 집과 판자촌이 가득했어. 90년대 들어서며 서울시에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아파트를 짓기 위해 노후 주택을 철거하면서,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하나 둘 집을 떠났어. 그런데 그 과정에서, 누구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누군 죽을 만큼 폭행을 당한 거야. 철거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건 시작에 불과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질 거야. ▲ 사라진 보금자리 1990년대 초 30대였던 송경란 씨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살고 있었어. 결혼 후 작은 전셋집에서 살기 시작한 경란 씨는 옷을 만드는 일을 하며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어. 옛날에는 방 하나 부엌 하나. 그런 집들, 마루 있고 주방. 아주 전형적인 주택이었어요. 전농동은 거의 40년 산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아이도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빠가 그 학교 다녔던 그런 친구들도 많았고. 시골에서 뭐가 올라오면, 그 집으로 모여서 다 같이 밥도 먹고. 동해안이 친정이나 시댁인 집은 게가 올라온다거나 그러면 그 집 가서 다 먹고. 순덕이네 같은 경우에는 친정에서 파프리카가 그때 왔어. 파프리카가 흔하지 않을 때니까. 귀한 거였어요 그때는. 파프리카 오면 그 집 가서 다 밥 먹고 그랬어요. 골목마다 그런 게 있었죠. -송경란, 당시 전농동 주민 전농동은 이렇게 형편은 넉넉지 않아도 소박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어. 그리고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살던 유영우 씨는 사업에 실패하고 이곳에 이사를 오게 됐어. 조그마한 집들이 다닥다닥 다 붙어 있는 산동네에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곳이었죠. 대부분 그 동네에 그때 살았던 분들은, 아빠들은 건설 일용직이라든가, 엄마들은 파출부라든가, 가내수공업, 집에서 재봉틀 작업, 이런 걸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세입자들도 집주인들도, 풍족하게 산 건 아니었고. 집이라고 해봐야, 허름하게 다 쓰러져 가는… -유영우, 당시 행당동 주민 90년대의 행당동. 방 한 칸에 보증금 100만 원, 월세는 15만 원이었어. 저렴해서 집값 걱정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소중한 집이었던 거지. 그렇게 유영우 씨는 실패의 아픔을 딛고 다시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버텼대. 1997년 전농동에 살던 경란 씨는 그날 잠시 집 근처에서 일을 보고 있었어. 그런데 한 이웃이 다급하게 소리치기 시작해. 경란 씨네 집에 불이 났다는 거야. 당시 경란 씨 집엔 어린아이가 혼자 자고 있었어. 어떡해요. 불난 집에 어린애들이 있어요. 어린애들이 대피하고 있어요. 엄마들이 여기 나왔기 때문에. 어떡해요 어린애들...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철거 때 불이 났었어요. 홀랑 애들 돌사진 하나 안 남았어요. 홀라당 다 탔어요. -송경란, 당시 전농동 주민 화재가 난 곳에 있던 철거 용역. 경란 씨가 살던 전농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결정되고, 사람들의 집이 강제로 철거된 거였어. 그럼 화재는 왜 난 걸까? 유영우 씨가 살던 행당동 역시 마찬가지였어. 전쟁터죠. 폭격 맞은 전쟁터. 집 주변이 거의 다 몇 집 안 남겨두고, 다 반파돼 있는 거예요. 폭격을 맞은 거랑 똑같아. 굉장히 무기력하게, 정신없이. 굉장히 많이 울고 한탄하고 그랬던 것으로 기억해요. -유영우, 당시 행당동 주민 재개발 사업이 시작됐지만, 당장 떠날 곳도, 떠날 돈도 없던 사람들은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어. 갑자기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주변 집 값이 폭등했던 거야. 보통 집값의 한 세 배? 세 배 이상?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산동네 달동네에 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이주해 버리니까. -유영우, 당시 행당동 주민 그러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세입자들은 한순간에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됐어. 남은 철거민들은 터를 옮길 때까지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잠시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어. 하지만 이런 그들 앞에 나타난 건,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쇠파이프와 온갖 연장을 든 철거 용역들이었어. 그들은 사람들이 아직 살고 있는 곳에 불을 내고, 중장비와 연장으로 집을 부수기 시작했어. 애들만 있는데도 와서 (중장비로) 지붕 뚫고 막 그랬었다니까요. 뚫고 그거(집 천장)를 안방에다 떨어뜨렸다니까. 애들만 있는데. -송경란, 당시 전농동 주민 ▲ 철거 용역의 만행 철거 용역들은 이런 모습을 했어. 소위 용역 깡패라 불리는 이들은, 매일같이 철거촌에 찾아와 나가라고 협박했어. 한두 명이 오는 게 아니라 몇백 명씩 날짜를 잡고 새벽에 와요. 몸에 막 용 그려져 있고 그런 사람들이 밤에 옷 안 입고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면 무서워서 여자들 못 돌아다녀요. 젊은 애들이 욕도 험악하게 했어요. 용역들이. 우리 동네 같은 경우에도, 젊은 애들이 골목골목 있으니까 쇠 파이프 들고 있으니까 많이 겁났죠. -송경란, 당시 전농동 주민 각목에 쇠 파이프 들고 오고. 입에 담지 못할 몰상식한 말도 많이 하고. 아빠들한테 굉장히 폭력을 가하려고 위협도 가하고, 그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있는 거예요. 많이 두들겨 맞았죠. -유영우, 당시 행당동 주민 존재만으로 위협이 된 철거 용역들. 철거 용역 중 일부는 철거 현장에 상주하며 밤낮으로 주민들을 위협했어. 이때 동원된 철거 용역은, 수십 명에서 수 백 명이야. 이 철거 용역은 뭐 하는 사람들이었을까. 실제로 예전 철거 용역이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많은 인원이 필요 없이 뭐 50명 100명 미만일 때는 직원들, 동생들이라고 해서 경비 절약해서 인원을 합치면 그래도 한 7, 80명 100명 미만은 있으니까. 필요시에는 그 인원들을 쓰고. 많은 인원을 동원시킬 때는 인력 시장 가서 사 오고. -이전 철거 용역원 대부분의 용역 깡패들은 인력 시장에서 구한 사람이거나, 조폭 출신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대. 그런데 서울시 재개발 지역의 철거를 맡았던 여러 철거 업체 중, 아주 유명한 철거 업체가 하나 있어. 그 누구보다 잔인했다고 알려진 곳이야. 이름하여 '적준 용역'. 이라크 전쟁 등 여러 긴박했던 현장을 취재했던 임종진 씨도, 적준의 철거 현장은 마치 전쟁터만큼 잔혹했다고 이야기했어. 적준. 저는 그 단어만 들어도, 이런 데가 올라와요. 지금 이 긴 시간이 지났는데. 그 사람들의 용역원들의 표정이 다 떠올라요. 적준 철거반원들이 치고 들어올 때, 진짜 무섭거든요. 욕은 기본이고, 쇠 파이프 들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예요. 굉장히 무자비하고. 엄청나게 폭력적이에요. -임종진, 사진기자 적준의 철거 용역들이 어떤 일을 벌였길래 종진 씨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살펴볼게. 관악구 봉천동. 2층에서 자고 있는 장ㅇㅇ씨의 집으로 침입. 'XXX 이리 나와'라고 하면서 쇠파이프와 망치로 위협. 발로 걷어차 치료 일수 미상의 상해를 입히고, 초교생 자녀 세 명을 계단 밑으로 던져버린 후 강제철거. 양천구 신정동. 임신 5개월 된 임산모를 때려 약 4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히는 등 주민 25명에게 치료일수 미상의 상해를 가하고 아주머니들에게 강제로 똥물을 먹이는 등의 폭행. -적준의 범죄 보고서 中 적준 철거 용역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했어. 머리를 다쳐서 피가 여기까지 내려온 것도 모르고 사람 죽는다고 악을 쓰고 이랬지. 뭐 정신이 없었어요. 나는 한국전쟁 때도 그런 거 못 보고, 일제강점기 때 그렇게 폭탄이 쏟아져도 그런 걸 못 봤는데, 세상 기가 막힌 일이지. -당시 철거민 목을 탁 한 명이 때리고 두 명이 양쪽에서 옆구리를 발로 차고 하는데 진짜. 맞는 게 아파서 엎드렸던 거야. 더 이상 맞으면 아프니까. 지금 그 생각하면 너무나 비굴해서 비참하지. -당시 철거민 이 사람들이 저지른 일은 이런 폭행뿐만이 아니었어. 관악구 봉천동 95년 4월 25일. 새벽 6시 20분경 주민 ㅇㅇㅇ 씨를 적준 용역의 철거 깡패 30여 명이 둘러싸고. 성폭력 테러를 자행했다. 명치를 발로 무자비하게 내리밟고 가슴을 사정없이 쥐어짜며 이것도 부족해 하체를 모두 벗겨 연탄재를 사타구니에 집어넣고 발로 짓이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성동구 행당동 97년 9월 30일 8시 50분경. 철거 깡패들은 여자들을 엎어놓고 올라타 머리를 바닥에 짓이기는 등의 상상할 수 없는 성폭력을 자행했으며 여자들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공을 패스하듯 이놈이 잡아서 저놈에게 돌려가며 추행을 서슴지 않았다. -적준의 범죄 보고서 中 기록에 의하면, 여성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입게 담지도 못할 성폭력까지 저질렀다고 해. 저를 갖다가 'XXX 절로 가라'면서, 제 머리카락을 당기며 넘어지면서 같이 그 사람하고 넘어졌어요. 같이 넘어졌는데 그 사람이 누운 상태에서 저를 여기를 젖가슴을 물고 누운 상태에서 발로 찼어요. 그러니까 저는 엎어진 상태에서 여기(가슴)를 맞았어요. 집에 와서 보니까 여기가 파랗게 멍이 든 거예요. 젖에서 피고름 같은 게 나왔어요. 애가 젖을 안 먹는 거예요. 그때 아기가 몇 개월이 안 돼서 젖을 먹이는데 젖을 안 먹으니까, 그게 최고 가슴이 아팠어요. -당시 철거민 이밖에 방화, 재산 손괴, 어린이 인권 유린 등 철거 현장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어.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모든 걸 깨끗이 치우는 거. 그 목적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 그럼 힘없이 당해야 했던 철거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모든 저희의 삶이 다 쓰러지는 거 같고. 정말 그때 저희 식구들은 아마 다 죽었다는 그런 생각에 좌절감에 빠져서 전부 그냥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그 상황이. -당시 철거민 집 없는 게 뭐 그렇게 죄도 아닌데. 집 없고 싶어서 없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엄마가 몸도 별로 안 좋거든요… -당시 철거민 자녀 ▲ 하늘 위의 집 철거민들은 내 집을 지키기 위해 온갖 모욕과 폭력을 버텼지만, 집이 무너지는 걸 막지 못했어. 결국 주민들은 적준 철거 용역의 폭력을 피해 하늘 위에 집을 만들었어. 골목골목이 이렇게 비스듬해서 잘 안 보였으니까. 우리 나름대로 방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망루를 짓게 된 거죠. 위에 올라가서 보면 보이니까. -송경란, 당시 전농동 주민 그 위에서 관찰하면 용역이나 위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도 있고. 하지만 적준 철거 용역들은 이들의 살기 위한 몸부림조차 허락하지 않았어. 1997년 7월 25일. 전농동에서 지내던 경란 씨와 사람들에게 상상치도 못한 사건이 벌어져. 어제저녁 6시 반쯤. 서울 전농동 재개발 지역. 세입자 10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던 망루에 불이 붙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현장. 부상자들이 속출했어. 이날 전농동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에 대한 기록이 있어. 폐타이어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면, 그 연기에 망루의 사람들이 질식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일명 '너구리 작전'으로 명명. 오후 5시경 탈수와 허기, 최루탄 등으로 탈진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폐타이어에 불을 질렀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과거에 사용했던 너구리 수렵 방식이야. 너구리 굴 입구에 불을 지펴 연기를 피워 굴 안에 그 연기를 넣고 너구리를 밖으로 나오게 한다는 거야. 기록에 의하면 아래에 불을 질러서 연기가 위로 올라가면, 주민들이 너구리처럼 나올 거라는 거지. 불은 순식간에 번졌고 안에는 유독가스가 가득 찼어. 연기가 계속 위로 올라가는데, 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18미터 되는 높이에서 사람들은 불을 피해 아래로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어. 경란 씨의 남편도 그때 다리를 크게 다쳤대. 그리고 뛰어내린 경란 씨 남편 옆에서 사망한 사람도 있었어. 순덕이는 배가 터져서 죽었거든요. 떨어진 자리가 남편의 옆이었다고 해요. '아저씨 우리 어떡해요' 그러더래. 순덕이가 죽어가면서. '괜찮아 곧 119 올 거예요' 그랬는데 119 오기 전에 숨이… -송경란, 당시 전농동 주민 경란 씨 남편 옆에서 사망한 사람이, 당시 귀했던 파프리카를 함께 나눠 먹었던, 경란 씨 앞집에 살던 순덕 씨였어. 철거 용역들은 사람이 있는 곳에 일부러 불을 질렀고, 그들이 불길을 피하다가 사망하게 만들었어. 도원동 역시, 임산부를 포함해 45명의 철거민들이 그들만의 집을 새로 지었어. 물도 전기도 끊긴 그곳에서 한 달이 넘도록 지낸 철거민들.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어. 이들의 사연을 들은 임종진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현장에 가서 사진으로 남겼어. 사람들은 그걸, '골리앗'이라 불렀대. 하지만 이름과 다르게 이 골리앗은, 철근으로 얼기설기 지어져서 툭 치면 무너질 듯 굉장히 위태로웠어. 그런데 철거 용역들은 거기에 매일같이 물대포를 쐈어. 적준 철거 용역들의 이런 폭력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졌어. 당시 현장에 있던 종진 씨도 피해를 봤어. 저희 같은 사진기자,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많이 있는데, 폭력은 사람을 가리지 않거든요. 카메라 부서지고, 스트로보(카메라 플래시) 꺾여서 나가떨어지고. 욕은 욕대로 먹고.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끼어들었다가 맞고. 늘 그건 현장을 같이 있던 동료 사진 기자들도 '적준' 하면 다들 몸서리를 쳤어요. -임종진, 당시 사진기자 ▲ 위기의 골리앗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어. 이걸 봐봐. 주변에 2.5미터 높이의 펜스가 쳐지면서, 골리앗이 봉쇄됐어. 그리고 펜스 주변에 200명 가까이 되는 철거 용역들이 순찰을 돌아. 한마디로 고립시켜 버린 거지. 아까 종진 씨가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뛰어갔었잖아? 청년 백 씨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발견되고, 이 씨가 폭행당했던 상황이, 바로 이 펜스 안에서 벌어진 일이야.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있어. 불에 탄 백 씨, 폭행당한 이 씨 모두, 골리앗에 갇힌 사람들이 아니었어. 그 사람들은 인근 주민들이었어. 내 이웃이 이 골리앗에 갇혀 배고프고 힘든 상황이니, 외면하지 못하고 식량을 전달하려 했던 거야. 당시 이들과 함께 있었던 이희재 씨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그걸(펜스를) 넘어서 약간 기어 올라가서 들어와야 해요. 그러니까 거기도 깡패들이 달려올 거 아니에요. 어쨌든 간에 막 이겨내고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보니 두 명의 낙오자가 생긴 거예요. 그중에 한 명이 우리 청량 1동 주민 백 씨였고. 생각을 해보세요. 이건 전쟁이에요. 잡히면 백 씨나 지역 주민처럼 죽거나… -이희재, 당시 인근 주민 심지어 '화염방사기'도 있었대. 대열 후미 쪽에 쓰러진 백 씨가 이 화염방사기에 의해 화상을 입었다는 거야.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백 씨는 손가락 6개를 잃었고. 폐가 오그라들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왔다고 해. 이희재 씨는 무사히 골리앗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 안에 갇혀서 주민들과 같이 고립됐어. 이 상황에서 제일 당황하고 놀란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아이들이야. 골리앗에 갇힌 주민들의 어린 자녀들은, 학교에서 돌아와도 돌봐줄 수가 없어. 결국 아이들은 이웃 주민들의 집에 머물게 됐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곳의 아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시간을 보냈어. 그리고 '꽃점놀이'를 자주 했대. 꽃잎을 떼어내며 철거민이 산다 , 철거민이 죽는다 하면서. 적준 아저씨들이 포클레인 갖다요. 막 뭐라고 하면서 집 부수려고 막 그랬는데. 한 사람은 막 쇠 파이프 갖다 막 때리고 그랬는데. 어떤 사람은 불 갖다 지르고. 엄마, 아빠가 철거 싸움 빨리 끝내게 해 주시면 좋겠고요. 도원동 주민들이 골리앗에 고립된 지 한 달 정도 지났어. 그러던 어느 날, 추위와 배고픔에 탈진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한 사람들이 밖을 쳐다봤어. 컨테이너 박스 하나 와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기(크레인)다가 그걸(컨테이너) 다는 거예요. '저걸 왜 달지?'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런데 그걸 달아서 딱 끌어올리는 겁니다. 위에 딱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문이 철컥 열리더니. 한 2미터 정도 되는 쇠막대기로 휘젓습니다. 깡패들이 막 밑으로 휘젓습니다. 깡패들이 막 철근 있죠. 막 제끼는 걸로 철근 뜯으면서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거예요. -이희재, 당시 인근 주민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안에는, 온갖 연장을 든 철거 용역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어. 마치 사냥하듯 위에서부터 아래로 몰아냈어. 그렇게 골리앗은 그대로 불타 사라졌어. 이들은 그렇게 살기 위해 지은 마지막 집에서조차 영원히 쫓겨나게 된 거야. 그대로 쭉 위에서 공격이 내려오니까. 저는 맨 위층에서 최대한 막아보려고, 몇몇 주민하고 버티다가 결국은 못 버티고 밑으로 이제…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 상황이었잖아요. 저항을 못하고 나와서 골리앗을 점령당하고 철거됐죠. -이희재, 당시 인근 주민 ▲ 닿지 않은 호소, 귀 기울여준 사람들 이건 1998년 무렵,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야. 그럼 철거민들은 왜 무자비한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까. 당시 임종진 씨가 찍은 사진들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경찰이야. 이런 상황에 경찰들이 왔으면 시민을 도와줘야지. 근데 보고만 있어. 철거민들은 피해를 입을 때마다 제발 도와달라 호소했어. 하지만 이들을 지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경찰은 전혀. 우리가 폭력을 당해도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공권력이 거의 눈을 감아줬기 때문에. -유영우, 당시 행당동 주민 도대체 공권력이 왜 도와주지 않은 걸까? '합동 재개발'이라 들어봤어? 과거엔 정부나 지자체가 재개발 사업의 시행 주체가 되어 철거 현장을 공무원들이 직접 감독, 관리했어. 그러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3년 이후, 합동재개발이란 방식이 도입됐어. 정부는 토지 확보나 인허가 등 행정 절차를 지원하고, 시행과 철거, 시공 등의 실질적인 사업 운영은 민간이 대부분 맞게 된 거야. 이 시기에 민간 철거 업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탄생한 업체 중 하나가 적준이었던 거지. 철거 업체 용역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온갖 형태의 범죄를 저질렀어. 국가는 민간에게 재개발을 맡겼으니, 민간에서 알아서 하라는 거야. 그건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해야지... 우리한테 뭐... 우리 책임구역이 아니고, 그 사람들의 책임구역이니까. -당시 용산경찰서 서장 공권력을 가진 자들이 수수방관하는 동안, 철거민들의 편이 되어준 사람들은 따로 있었어. 바로 故 김수환 추기경. 사진 속 이곳은 철거민들이 모여 노숙하던 임시 천막 안이야. 절망에 빠진 철거민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님이 행당동에 오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주민분들의 표정을 제가 잊을 수가 없어요. 애들 막 같이 안아주고. 부모들이 같이 와서, 당신들의 상황을 막 설명하고. 굉장히 애절하지만 희망의 부분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주민 분들의 표정들. 이런 것들이 그때 당시 현장에서 봤던 기억 중에 좀 많이 남죠. -임종진, 사진작가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철거민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했어. 많은 시민 단체들도 이들에게 힘을 보탰지. 87년 이후부터 철거 용역 업체가 대행을 하게 되면서 철거 폭력 문제가 계속해서 우리 사회에서의 이슈로 제기돼 왔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철거 폭력의 중심에는 적준 용역이라는 철거 용역 업체가 늘 대명사처럼 존재해 왔습니다. -고상만, 당시 천주교인권위원회 간사 정말 엄청나게 큰 체구에 폭력배 같은 철거 폭력배가 속옷만 입고 술에 취한 채 철거를 자행하면서 한 아주머니가 그걸 막아서면서 울부짖으니까. 그 아주머니를 무자비하게 폭행했고. 그걸 지켜보던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자기 엄마를 때리는 폭력배에게 당연히 달려들었겠잖아요. 그 아이가 울면서 절규하는 모습을 보니까. 그걸 보면서 제가 너무 많이 울었어요. 우리가 힘을 키워 처벌해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고상만, 당시 천주교인권위원회 간사 ▲ 철거 범죄 보고서 그렇게 시작된 노력은 1998년 11월, 놀라운 결과물로 만들어져. 바로 이거야. '다원건설 철거범죄 보고서'. 범죄 보고서의 발간 당시, 적준은 다원건설로 이름을 바꿨어. 여러 시민단체들은 이 보고서를 통해 이들의 범죄 행위를 낱낱이 고발했어. 오늘 공개된 기록들은 이 철거범죄 보고서 안에 기록된 내용들이야. 철거민들이 절망감이 굉장히 컸어요. 폭력배들에 대한 보복, 두려움이 커서. 그런 사례들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어요. -고상만, 다원건설(구 적준) 범죄 보고서 작성자 158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적준 철거 용역들은 폭력, 성폭력, 방화, 인권유린 등의 범죄를 셀 수도 없이 저질렀어. 마치 범죄 백과사전 같은 이 보고서가 세상에 드러난 후에, 이들의 처벌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섰어. 그럼 적준은 어떻게 됐을까? 범죄 행위에 대해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철거 범죄 보고서에 가득했던, 악행에 대한 처벌은 끝끝내 없었어. 이러한 브레이크라도 걸려서 폭력이 자정 되기 바라는 차원에서라도 저희가 문제 제기를 하고자 했던 거였지요. 어느 정도는 그래도 처벌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은 증거불충분이라고 얘기한 거죠. 굉장히 많이 싸웠어요. 범죄 사실이 분명히 이렇게 다 드러나고 확인되는 건데 어떻게 책임이 없냐고. -고상만, 다원걸설(구 적준) 범죄 보고서 작성자 적준은 철거민들에게 휘두른 폭력과 인권 유린을 통해 국내 주요 철거 업체로 급부상했어. 93년 이후 4년 간 적준이 서울에서 수주한 총액은 570억 원이 넘어. 현재 금액으로는 2천억 원이 넘는 금액이야. 이후에 자회사, 계열사들을 늘려갔고, 다른 회사들도 인수했어. 그 결과, 이젠 거대 기업이 된 거야. 확인된 계열사만 13개. 골프장도 두 개나 운영했대. 철거민들이 집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내앉게 된 그 순간, 다원건설은 업계에서 인정받는 성공한 기업이 된 거지. 적준 철거 용역 말고, 오히려 법의 처벌을 받게 된 사람들이 있어. 바로 철거민들.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갔고, 몇몇은 수배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됐어. 다 수배 내려져 있었죠. 전농동 사람들은, 왜 수배가 내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 수배가 내려졌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폭력, 뭔 저기라고 그랬는데. 동네 사람들 다 수배였죠. -송경란, 당시 전농동 주민 ▲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 그 옛날 철거 현장에는 적준 철거 용역에게 맞아가며, 그저 살게만 해달라 울부짖던 사람들이 있었어. 그리고 부모와 떨어져 남의 집에 얹혀살고, 몇 년을 천막에서 지내야 했던 철거촌 아이들이 있었어. 이번 인터뷰에 용기 내 참여해 준 철거민들 모두 여전히 그때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해. 난 지금도, 공사장의 흰 안전모가 무서워요. 철거 용역들이 들어올 때 항상 그 모자를 썼거든요. 위에서 보면 진짜 골목골목마다 그 모자들이 보여서. 지금도 난 도로공사 현장 보면 섬�해지더라고. -송경란, 당시 전농동 주민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된 것들이 그 상황이 끝난 뒤에도 심리적으로 내재돼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유영우, 당시 행당동 주민 가끔씩 꿈에 나타나요 지금도. 꼭 트라우마 같은 거예요. 그게 아직도 나타나요. -이희재, 당시 인근 주민 임종진 작가는 철거 용역들의 강압적인 폭력에 한없이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너무 괴로웠대. 이후 여러 현장들의 어려운 상황을 기록하며,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어. 2025년 8월. 그가 다시 서울 용산구 도원동을 찾았어. 한 25년, 26년 이렇게 만에 오니까.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이 아프고 짠하고 그랬어서, 오기가 약간 그랬었거든요. 그때의 기억 속에. 여기에 세월들이 쌓여있고, 지금도 저기 보면 빨래들이 널려 있잖아요. 이런 것도 정겹기도 하고. 아 여기에 또 이렇게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이어가고 있구나… -임종진, 사진작가 그래서 그는 단순히 기록으로 머무는 사진이 아닌, 사진으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전문 사진 심리 상담가가 됐어. 이젠 '사연 전달자'에서, '사진 치유자'가 된 거지. 철거촌의 참담한 그날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게 했고, 누군가에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지.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해, 구 적준 용역, 현 다원 측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어. 그리고 너무 늦었지만, 과거 철거민들에게 저지른 짓을 사과할 생각은 없는지 물어봤어. 뭐라는 답변이 왔을까. 답변은 무응답.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 27년 전 발간된 철거 범죄 보고서. 철거민들을 상대로 벌어진 범죄를 낱낱이 고발하는 보고서가 등장했지만,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어. 그럼 이 보고서는 실패한 걸까? 진실을 알려준 보고서. 2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보고서 덕분에 철거촌에서 벌어진 수많은 인권 유린과 잔인한 폭력의 실상에 대해 알 수 있었어. 인간의 권리를 짓밟힌 사람들의 고통과 울분도 기억할 수 있게 됐지. 그리고 다시는 이런 범죄가 일어나선 안된다는 다짐도 했어. 철거범죄 보고서의 머리말에 이런 글귀가 있어.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어떤 범죄도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건 없어. 진실은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서. 끝내 드러나게 될 테니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스브스夜] '꼬꼬무' 서울시 재개발 철거 참상 추적···적준이 저지른 '범죄 백과사전' 같은 범죄 기록 [스브스夜] '꼬꼬무' 서울시 재개발 철거 참상 추적···적준이 저지른 '범죄 백과사전' 같은 범죄 기록 등록일2025.09.12 1990년대 서울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11일 방송된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사라진 나의 집, 그리고 적준'이라는 부제로 1990년대 서울 곳곳에서 일어난 재개발 철거 참상을 추적했다. 1990년대 서울의 소시민들이 살던 용산구 곳곳에서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집에 불이 나기도 하고 폭격을 맞은 전쟁터처럼 집이 무너지기도 했던 것. 이는 모두 재개발을 위해 철거 용역들이 주민들의 집을 철거하기 위해 벌인 일들이었다. 서울 곳곳에서 일제히 시작된 철거로 전세 수요가 올라가며 전셋값이 폭등하자 갈 곳 없던 주민들은 집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었고 이들은 강제 철거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었다. 터를 옮길 때까지 시간을 달라, 잠시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간곡한 요청에도 철거 용역들은 쇠 파이프와 연장을 들고 불을 내고 집을 강제로 허물며 주민들을 쫓아낸 것. 용역 깡패들은 매일같이 철거민들을 압박하며 괴롭혔다. 수백 명이 밤에 옷도 안 입고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욕설과 폭력은 기본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폭행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철거 현장에 상주하며 밤낮으로 주민들을 괴롭힌 이 철거 용역은 인력 시장에서 동원하거나 조폭 출신의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여러 철거 업체들 중 가장 유명한 철거 업체, 누구보다 잔인했던 적준 용역이 있었다. 적준이 철거 현장에서 벌인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이를 계단 아래로 던져 버리고 임산부를 폭행하고, 여성들에게 강제로 똥물을 먹이기도 하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그리고 여성 철거민을 상대로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의 성폭력을 자행했다. 모든 걸 깨끗이 치우는 것이 목적이었던 이들은 그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 비참한 마음의 철거민들은 어떻게든 집을 지키고자 했지만 끝내 집이 철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갈 곳이 없었던 철거민들은 하늘 위의 집, 망루를 만들어 철거 용역에 대항했다. 그러나 철거 용역은 망루에 방화를 했다. 페타이어를 쌓아놓고 불을 피워 연기가 올라가면 철거민들이 질식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그대로 실행했다. 이는 과거 너구리 수렵 방식을 그대로 사용했던 것. 그러나 화염과 유독가스로 봉쇄된 입구에 철거민들은 높이 18미터에서 하나 둘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사망하거나 큰 부상을 입은 철거민들이 대부분. 도원동에서는 골리앗이라 불리는 망루를 만들었다. 툭 치면 무너질 듯한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위해 철거 용역들은 매일같이 물대포를 쏘았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악랄해진 용역은 골리앗 주변에 펜스를 치며 주민들을 고립시켰다. 또한 펜스 안에서 어떤 범죄든 가리지 않고 자행했다. 이를 보다 못한 인근 주민들은 골리앗에 갇힌 사람들을 돕기 위해 펜스를 넘었다. 그리고 펜스를 넘다 붙잡힌 인근 주민은 폭행을 당하고 화염방사기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특히 화염방사기 공격을 받은 인근 주민은 온몸에 전신 화상을 입었다. 이에 인근 주민들도 골리앗에 함께 갇혀 버리고 말았다. 골리앗에 갇힌 주민들의 자녀들은 돌봐줄 사람이 없어 이웃집에 머물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얼마 후 철거 용역은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들어 올려 골리앗에 가까이 갔다. 그리고 컨테이너에서 쏟아져 나온 연장을 든 용역들이 주민들을 사냥하듯 쫓아냈다. 결국 그렇게 골리앗 마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철거 용역들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공권력은 그저 눈을 감았다. 1983년 이후 도입된 합동 재개발로 민간이 주체가 된 재개발 사업. 이에 공권력은 모든 것은 민간에서 일어난 일이니 민간에서 알아서 하라며 나 몰라라 했던 것이다. 나라가 지켜주지 않는 철거민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도운 것은 김수환 추기경과 시민 단체들이었다. 그리고 1998년 11월, 구 적준, 현 다원 건설의 철거 범죄 보고서가 작성되어 세상에 이들의 범죄를 알렸다. 범죄 백과사전 같았던 범죄 보고서에서는 폭행, 성폭력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범죄가 망라되어 있었다. 철거민에게 휘두른 폭력과 인권 유린을 통해 국내 주요 철거 업체로 급부상한 적준. 93년 이후 4년간 적준이 서울에서 수주한 돈은 570억 원 이상, 현재 금액으로는 2천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이후 적준은 시행 시공 철거 폐기물처리까지 하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확인된 계열사만 13개. 철거민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그 순간 적준은 배를 불려 가고 있었던 것. 그리고 범죄 보고서가 작성되었음에도 처벌을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그저 살게 해달라고 울부짖기만 했던 철거민들이 처벌을 받고 수배자가 되기도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철거민들. 그리고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담아 세상에 알렸던 임종진 기자는 이제 사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전문 사진 심리 상담가가 되었다. 제작진은 방송 전 다원 측의 입장을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무응답. 구 적준, 다원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고서 덕분에 철거촌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게 된 우리들. 우리는 다시는 이런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라는 성경의 한 구절처럼 어떤 범죄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김수환 추기경 복자로 선포될까…시복 재판 개시 김수환</font> 추기경 복자로 선포될까…시복 재판 개시 등록일2025.09.03 ▲ 고(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고(故) 김수환(1922∼2009) 스테파노 추기경을 복자(福者)로 추대하기 위한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의 시복 재판을 오늘(3일) 서울대교구청에서 개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김 추기경이 공경할 대상(복자)이라고 교회가 공식적으로 선포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일종의 예비 심사입니다. 이후 교황청 시성부가 본심사를 하게 됩니다. 서울대교구의 예비 심사는 증인 신문, 현장 조사, 재판 문서 번역 등의 절차를 거치며 1∼2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 오후 예정된 예비 심사 법정 개정식에는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시복시성위원장 구요비 주교, 김 추기경의 생애 및 덕행과 명성을 연구해 온 역사전문가위원회 등이 참가합니다. 예비 심사 후 교황청 시성부가 본심사를 합니다. 결과가 긍정적이면 교황의 승인을 거쳐 가경자(可敬者·영웅적인 성덕이나 순교 사실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잠정적으로 붙이던 존칭)로 선포합니다. 이후 기적 심사를 통과하면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로 시복됩니다. 복자를 성인으로 선포하려면 새로운 기적 심사가 필요합니다. 복자는 지역교회에서, 성인은 전 세계 교회에서 공경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서울대교구는 2023년부터 김 추기경의 시복을 추진했습니다. 지난해 6월 18일 교황청 시성부로부터 시복 추진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의미인 '장애 없음'(Nihil Obstat) 승인을 받았습니다. 교황청 승인을 받은 공식 시복 추진 대상자에게는 '하느님의 종'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는 지난달 21일 발표한 '서울대교구 제11대 교구장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시복 추진에 관한 담화'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개인적 덕행의 모범, 한국천주교회의 성장과 위상을 높인 공헌, 우리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노력 등으로 교회를 넘어 시민 사회 안에서도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고 고인의 삶을 돌아봤습니다.
공수처 검사 7명 충원…검·경·군 출신 등 포함 공수처 검사 7명 충원…검·경·군 출신 등 포함 등록일2025.05.19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부장검사 2명, 평검사 5명 등 검사 7명을 충원합니다. 공수처는 지난 16일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공수처 검사인사위원회가 추천한 검사 7명을 임명 재가했다고 오늘(19일) 밝혔습니다. 이에 6명은 오는 26일자로 임명하고, 국방부 원성희 소령은 현직 군인 신분으로 의원면직 절차를 거친 즉시 임명할 예정입니다. 이번 임명은 공수처가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각각 검사 부장검사 1명, 평검사 2명 등 3명과 부장검사 1명, 평검사 3명 등 4명, 즉 총 7명의 신규 검사 임명을 제청한 이후 각각 8개월, 4개월 만입니다. 검사 7명이 임명되면 공수처는 처·차장 포함한 검사 정원 25명 중 21명 체제가 됩니다. 신규 임명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인 나창수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사법연수원 31기,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출신인 김수환 변호사(33기)입니다. 나 변호사는 2008년부터 2021년 7월 부장검사로 퇴직하기까지 2017년 인천 초등생 유괴살인 사건 등 공안·강력·형사사건 등을 수사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2019년까지 15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강력·금융·조세·기업범죄 등을 수사했습니다. 또 평검사로 최영진 법무법인 태하 변호사(41기), 원성희 국군복지단 법무실장(42기), 최정현 법무법인 클라스 한결 변호사(43기), 서울강남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출신인 이정훈 경감(변시 3회), 이언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변시 5회)가 임명될 예정입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수사인력 부족으로 수사 진척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풍부한 검사 경력을 갖춘 2명의 부장검사와 다양한 분야에서 법률전문성을 쌓아온 5명의 평검사를 임명하게 되어 한층 수사 추진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 전했습니다. 공수처는 검사 결원 4명에 대한 충원도 상반기 중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추진할 계획입니다.
교황 선출, '다크호스'로 주목받았던 유흥식 추기경 교황 선출, '다크호스'로 주목받았던 유흥식 추기경 등록일2025.05.09 ▲ 유흥식 추기경 한국인 성직자 최초의 교황청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성직자부 장관)이 가톨릭교회의 정점인 교황의 자리에 오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8일까지 이틀째 이어진 콘클라베에서 제267대 교황으로 미국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을 선출됐습니다. 유 추기경은 이번 콘클라베를 앞두고 차기 교황 후보군으로 분류되며 기대받았습니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다음 날인 지난달 22일 유 추기경을 포함한 12명이 유력 후보라고 보도했습니다. 교황청 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의 예측이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톨릭계에서는 교세가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아프리카 출신 교황 탄생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가톨릭 저널리스트와 연구자로 구성된 이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더 칼리지 오브 카디널스 리포트'(The College of Cardinals Report)는 차기 교황 선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유 추기경은 이들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41명에 포함됐습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12월 5일 공개한 '다음 교황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나올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로마발 기사에서 유 추기경을 동양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는 예상 밖의 주자로 지목한 것도 기대감을 키웠습니다. 이 매체는 유 추기경이 신학적으로 주류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사회적 불의와 정치적 권위주의를 고발하는 데 적극적이어서 조건 없이 가톨릭 신앙을 옹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비슷하다고 평가했습니다.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추기경은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로마 현지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로마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덕분에 교황청 내 인적 네트워크도 탄탄합니다. 2005년부터 대전교구장으로 직무를 수행해오다 2021년 6월 대주교 승품과 동시에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성직자부는 전 세계 사제·부제의 직무와 생활, 신학교 사제 양성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교황청의 주요 행정기구 중 하나입니다. 교황청 역사상 한국인 성직자가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된 첫 사례였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2022년 8월 추기경에 서임됐습니다. 2023년 9월 가톨릭 성지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한국 최초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성상이 세워졌는데, 교황청 장관인 유 추기경은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아시아 성인의 성상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건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교황청 중앙 행정의 핵심 보직을 맡은 점, 탁월한 업무 추진력과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구한 개혁 노선의 연속성, 아시아 대표성 등으로 유 추기경은 이번 콘클라베에서 '다크호스'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교세 면에서 세계 가톨릭 전체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는 점, 그리고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이 아시아권 대표주자로 각인된 점 등은 한계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비록 콘클라베에서 최종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유 추기경은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으로서 콘클라베에 참여했습니다. 한국인 추기경이 콘클라베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것은 요한 바오로 2세를 교황으로 선출한 1978년 10월 투표 이후 약 47년 만입니다. 직전 콘클라베는 1978년 8월 열렸고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를 선출했습니다. 단기간에 콘클라베가 두 차례 열린 것은 요한 바로오 1세가 즉위 33일 만에 선종했기 때문입니다. 두 콘클라베 모두 '한국 1호'인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이 참가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자막뉴스] 뜨거운 바다도 끄떡없다…통영에 나타난 '슈퍼 물고기' [자막뉴스] 뜨거운 바다도 끄떡없다…통영에 나타난 '슈퍼 물고기' 등록일2025.03.10 경남 통영의 한 양식장. 그물을 들어 올리자, 4m 아래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급 횟감으로 30도가 넘는 수온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난류성 어종, 벤자리입니다. 15년째 가두리 양식장을 운영하는 김수환 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벤자리 시범 양식에 참여했습니다. [김수환/가두리 양식 어민 : 쥐치도 여름 고기라고 안 죽는다 생각했는데 작년 여름에 폐사가 엄청났거든요. 그래서 뭘 할까. 뭘 할까 찾다 보니까 이제 고수온이 되니까 아열대성 고기를 키워야겠다 싶어서…. ] 지난해 경남 지역 바다에서 고수온으로 952개 양식장에서 659억 원의 어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1년 전과 비교해 피해액이 2배가 넘습니다. 고수온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지자 난류성, 아열대 어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과 경남 수산자원연구소는 지난해 대체 어종으로 벤자리를 선택해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종자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박진우/국립수산과학원 아열대 수산연구소 연구사 : (벤자리는)수온이나 염분 이런 환경 변화에 강한 품종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조피볼락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경남도에 벤자리를 입식 해보자 이렇게 한 거고…. ] 수산 당국은 올여름이 오기 전에 벤자리 치어 가운데 일부를 양식장에 본격적으로 분양하기로 했습니다. 또 벤자리 외에도 잿방어나 흑점줄전갱이도 고수온 대응 양식 품종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혀 이상 기후에 따른 양식장 어민들의 시름을 덜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여름 고기도 다 죽어 659억 피해 '비상'…떠오른 대안  여름 고기도 다 죽어  659억 피해 '비상'…떠오른 대안 등록일2025.03.09 &<앵커&> 바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물고기 폐사가 잇따르고 어민들의 피해도 큽니다. 수온이 낮아질 기미도 사실 보이지 않죠. 당국이 그러자, 아예 높은 수온에 강한 '어종'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홍승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경남 통영의 한 양식장. 그물을 들어 올리자, 4m 아래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급 횟감으로 30도가 넘는 수온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난류성 어종, 벤자리입니다. 15년째 가두리 양식장을 운영하는 김수환 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벤자리 시범 양식에 참여했습니다. [김수환/가두리 양식 어민 : 쥐치도 여름 고기라고 안 죽는다 생각했는데 작년 여름에 폐사가 엄청났거든요. 그래서 뭘 할까. 뭘 할까 찾다 보니까 이제 고수온이 되니까 아열대성 고기를 키워야겠다 싶어서….] 지난해 경남 지역 바다에서 고수온으로 952개 양식장에서 659억 원의 어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1년 전과 비교해 피해액이 2배가 넘습니다. 고수온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지자 난류성, 아열대 어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과 경남 수산자원연구소는 지난해 대체 어종으로 벤자리를 선택해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종자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박진우/국립수산과학원 아열대 수산연구소 연구사 : (벤자리는)수온이나 염분 이런 환경 변화에 강한 품종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조피볼락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경남도에 벤자리를 입식 해보자 이렇게 한 거고….] 수산 당국은 올여름이 오기 전에 벤자리 치어 가운데 일부를 양식장에 본격적으로 분양하기로 했습니다. 또 벤자리 외에도 잿방어나 흑점줄전갱이도 고수온 대응 양식 품종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혀 이상 기후에 따른 양식장 어민들의 시름을 덜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영상취재 : 정경문)
한국프로스포츠협회, '부정행위 방지 교육 특별강사' 첫 운영 한국프로스포츠협회, '부정행위 방지 교육 특별강사' 첫 운영 등록일2025.03.05 ▲ 프로선수 대상 교육 장면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프로스포츠의 공정성 강화와 프로선수다운 자세 함양을 지원하기 위해 '부정행위 방지 교육 특별강사' 제도를 운영합니다. 전직 프로선수, 법조인, 현직 프런트로 구성된 특별강사들이 현역 프로선수들을 교육하는 것으로 이번에 처음 운영됩니다. 이택근 전 프로야구 선수, 임민혁 전 프로축구 선수, 손영배 변호사(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김수환 변호사(KPGA 고문변호사), 손민정 변호사, 이영웅 변호사(KPGA 상벌위원회 위원), 케이비엘 이혁준 경영관리팀장, 한국프로축구연맹 법무팀장 출신 김동민 변호사,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황명호 사무국장 등 총 9명이 특별강사로 나섭니다. 특별강사는 지난해 강사 역량 교육과 커리큘럼 이해 교육을 모두 이수했고, 올해 1년간 현장에 투입됩니다. 이들은 본인의 경험과 실제 사례, 징계 규정과 법적 처벌 정보를 함께 전달해 교육 효과를 높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KBO 10개 구단을 비롯한 프로축구(26개 구단), 프로농구(10개 구단), 여자프로농구(6개 구단), 프로배구(14개 구단) 총 66개 구단과 프로골프 선수(회원)를 대상으로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사진=한국프로스포츠협회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