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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기레기'의 탄생 배경 - 단순화와 선명성의 유혹

속 시원한 기사는 오보 가능성도 높다

[데스크칼럼] '기레기'의 탄생 배경 - 단순화와 선명성의 유혹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복잡한 걸 싫어합니다. 모바일 스마트폰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움직이면서 역동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기에, 길고 복잡한 문장은 외면하게 됩니다. 길을 걸으면서, 운전을 하면서 혹은 다른 업무를 하면서 콘텐츠를 접하고 기기를 조작하는 데, 복잡성은 심신을 피로하게 만드는 거죠.

역동적 미디어가 강세인 시대엔 선명하고 간략한 기사가 더 각광을 받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합니다. 요점 정리가 잘된 간략한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긴 호흡의 기사는 앞에 몇 줄 읽다가 지쳐서 시선을 돌리기 십상입니다.

또, 엄청난 정보에 모두 관심을 보일 수 없기에, 자신이 공감하는 내용에 더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맞아 그랬어, 나도 그렇게 느꼈어.”할 수 있는 기사가 인기죠. 방송의 경우 내 생각과 비슷한 내용을 선명하게 말해주는 토론프로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렇습니다. 점잖고, 지나치게 기계적 균형을 지키는 지상파의 토론프로가 인기가 없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확실하게 공감하고, 화끈하게 욕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의 집중도는 높아집니다.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 자신이 공감할 수 있거나 혹은 흑백의 단색으로만 구성돼 있다면 해법도 간단하겠죠. 내막을 알고 보면 아무리 욕했던 사안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나, 그렇게 칭찬했는데 알고 보니 부조리가 내재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가끔씩 발생하는 이런 유형의 사건도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하기 힘들다며 동남아 여행을 빌미로 현지에 버리고 온 패륜 자식이 검거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선명하게 흑백논리로 쓸 수 있는 사안입니다. 일반적 정서로 볼 때 나쁜 아들놈을 난도질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기사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련함을 느끼죠.

성폭행 640

하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불편해집니다. 패륜아들의 패악 무도한 행위를 철저히 파헤치겠다며 열혈기자가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아비를 버린 아들도 죽일 놈이지만, 버려진 그 아비도 그에 못지않은 인간임을 알게 됩니다. 젊어서 방탕하게 생활하며 재산을 다 말아먹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온갖 폭력을 휘두르다, 급기야 내연녀와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갑니다. 그러다 늙고 병들자 그 여자에게 버림받은 뒤, 다시 조강지처에게 돌아와선 치매에 걸려 드러누운 겁니다.

이쯤 되면 기자는 머리가 아파옵니다. 선명하게, 시청자나 독자가 후련해지게 기사쓰기가 힘들어지죠. 취재한 내용을 너무 많이 담으면 주제가 흐려집니다. 우선 제목만 써 볼까요. ‘치매아버지 해외에 버린 패륜아들’이라고 쓰면 참 좋죠. 그러나 취재내용을 다 담게 되면 제목을 그렇게 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제목으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 혹은 ‘아픈 가족사 이해하지만 너무 한 아들’ 뭐 이럴 텐데, 많이 아쉽죠. 많은 내용을 담다 보면 정확할 진 모르지만, 속 시원하지 않은 불편하고 찜찜한 기사가 됩니다. 왜냐하면 기사는 기본적으로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힘이 생기거든요.

사건기사만 그런 게 아닙니다. 딱딱한 정책기사도 마찬가집니다. 서민들이 꼬박꼬박 내는 건강보험료를 떼먹는 고소득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기사도 마찬가집니다. 이 역시 선명한 기사로 쓸 수 있는 내용이지만, 한 발짝 들어가서 알아보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때 잘 나가다가 현재는 망가진 사람들로 재산을 다 날린 경우가 많다는 거죠.

공기업 방만 경영도 사실은 단순한 주제가 아닙니다. 공기업들은 그 특성상 이익을 너무 남겨도 문제가 됩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면서도 공익을 위해서 해야 할 사업이 있죠.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짓거나, 막대한 적자에도 불구하고 올리지 못하는 교통이나 가스요금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고용이 화두인 때, 정부에서 청년고용을 늘리라고 만만한 공기업에 강요해놓곤, 뽑아놓고 나면 인건비 지출이 많다며 나쁜 평가를 내립니다. 물론 말 그대로 방만 경영의 요소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단선적인 기사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억울한 면이 있다는 것이죠.

세상일은 따지고 들어가 보면 단순한 게 별로 없습니다. 팩트를 단순화시키고, 주제를 선명하게 써서, 시청자와 독자들을 후련하게 해주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많은 사안들의 지나친 복잡성이 기자들을 괴롭히고, 두뇌용량을 시험합니다. 복잡하고 가치충돌적인 상황을 짧고 선명하게 정리해서 기사화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럴 역량을 가진 기자들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기자들은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단순하고 화끈하게 써서 손님을 끌 거냐, 정확하지만 복잡하게 써서 양심을 지킬 거냐. 수많은 ‘기레기’가 탄생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현상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단순화시켜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는 ‘몰지각한’ 언론도 많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기자생활을 하다보면 참 속상하는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한 기자가 특정 사건을 심도 있게 취재해 나름대로 정확한 내용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도했다고 자평합니다. 그런데 같은 사건현장에 있던 다른 기자는 취재도 건성으로 한 뒤, 화끈한 제목과 함께  불균형적이며 단선적인 기사를 내보냅니다. 각종 포털에서 보니 전자의 기사는 묻혀버리고, 후자의 기사가 각종 칭찬성 댓글과 함께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작위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실제로 많이 발생하는 일입니다.

개별 언론사의 사시(社是)가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종사하는 기자들이 자신의 회사 방침에 따라 약간의 이념적 편향성을 가지거나 논쟁요소를 분석할 때 무게중심을 달리 잡는 것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사의 채도를 높이는 것에도 대가는 있습니다. 선명하게 쓰려고 주제를 흐리는 많은 부분을 생략했으니, 생략한 부분 때문에 손해 본 사람들이 소송을 거는 거죠. 엄청난 댓글 공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화와 선명성은 기자들에게 치명적 유혹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디지털,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시대적 상황이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사의 단순성과 선명성을 너무 믿지 않는 경계심이 필요합니다. 공급자인 기자와 수요자인 독자가 모두 지나친 단순화에 매몰돼 버리면, 인간사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더욱 적대적이고 파편적이며 이해 불가능한 혼돈상태가 될 거라는 걱정이 생깁니다. 가끔은 단순함 속에 숨은 현실을 살며시 엿보는 여유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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